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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하늘다람쥐
- 「섬진강 편지」 - 아기 하늘다람쥐 내내 기다리던 비가 내리자 사람 떠난 앞집 치자꽃 피었다 밤 내 뒤척이게 하는 까짓 몇 푼 없었던 셈 치자 치자꽃 피었으니 뻘생각 떨쳐버리고 안개 끼인 숲으로 가자 아기 하늘다람쥐 떨어졌다 다시 오르며 날개짓 연습하는 생명의 숲으로 가자 순백의 요정 나도수정초 무리 피는 갈매빛 갈맷빛 숲으로 가자 한 뼘 병아리난초 꽃피기를 숨죽여 기다려 주는 매화노루발 숲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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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참기생꽃을 찾아서
- 「섬진강 편지」 - 지리산 참기생꽃을 찾아서 해마다 이맘때면 만나러 가야 하는데 하는데 서성이게 하는 이름이 있다 마음만 있으면 어딘들 못 가랴 하지만 쉽지가 않다 지리산길 9km 해발 1600고지에 올라서야 만날 수 있다 지리산 참기생꽃 지난 만남의 날자를 헤아려본다. 중봉 부근에서 22년 6월 10일, 그리고 지난해 영신봉 부근에서 5월 30일이다 그 자리에서 피었을까, 하마 져버렸을까 구례들꽃사진반 회원들과 함께 하는 길이라 산길 오르는 내내 애가 탄다 참기생꽃을 보고 싶어 나선 이들이 꽃을 볼 수 있을까 산행 다섯 시간 만에 힘들게 꽃자리에 도착했다 지난해 꽃핀 날보다 열흘이나 늦게 왔는데도 아, 이제 겨우 눈곱만한 꽃몽우리만 달려있다 아쉬움에 서성거리는데 비명소리가 들린다 눈 밝은 이가 꽃을 찾아냈다 딱 한 송이 참기생꽃이 피어있다 꽃 앞에서 감사인사를 올린다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마고할미 감사합니다 10시간, 이만 팔천 보, 18킬로의 힘든 산길이었지만 한해 한번 만날 수 있는 지리산 참기생을 만나고 산을 내려오는 걸음 가뿐하다 내년에는 반야봉의 참기생을 찾아뵈야겠구나 벌써 마음이 설렌다 참, 세석습지에서 지난 해에 처음 만났던 습지등불버섯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참기생꽃 앵초과 기생꽃속으로 가야산, 지리산 이북의 고산지역에 자생하는 특산식물 산림청 선정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1997) 환경부 선정 보호야생동ㆍ식물(1997) - 두루미풀 -큰황새냉이 -구상나무 열매 -구상나무 숫꽃 -쥐오줌풀 -자주솜대 -참기생꽃 -습지등불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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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복주머니란
- 「섬진강 편지」 - 지리산 복주머니란 애타게 기다렸다. 다른 해보다 열흘쯤 늦게 핀 것 같다. 꽃 앞에 엎드려 꽃송이 하나 둘 세어보는 사이 축하사절 하얀나비도 왔다 간다. 아래쪽 숲에 피던 한 송이는 사라졌다. 꽃을 찾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다 보니 임걸령까지 가고 말았다. 임걸령 샘물에 목 축이고 돌아오는데 느닷없이 우르릉 꿍꽝 천둥벼락 요란하더니 우박 섞인 장대비가 쏟아진다. 비옷도 없이 함빡 비를 맞는데 제법 아프다. 요즘은 노고단 오를 때마다 기상이변이다! 아, 겨우 피어난 복주머니꽃 상했겠다. -2025. 5.29일 노고단에서 성삼재 하산길에 천둥벼락 요란하고 우박 섞인 된비가 쏟아짐 - 산행 중에 만난 구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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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마을] 대선 후보 기후 공약 좀 봐 주세요
- 대선 후보 기후 공약 좀 봐 주세요 기후 공약을 왜 봐야 하느냐고요? 폭염, 가뭄, 집중호우, 산불 같은 기후 재난이 해마다 더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기후 문제는 우리의 생명, 건강, 생계에 바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피해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지요. 게다가 기후 공약은 우리나라의 에너지·산업·일자리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먹을거리 주권을 지키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도 연결되는 핵심 의제입니다. 그러니 대선 후보들이 기후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다루는지는 그 자체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보여 주는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분야별로 기후 공약을 살펴봤습니다. 보고 판단해 주세요.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부터 똑바로 세워야 세계 각국은 5년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얼마나,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를 담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설정하는데요, 이번 대선에서 선출되는 21대 대통령은 최소 10년간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짜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될 겁니다. 그러니 이들의 NDC 목표를 점검하는 것이 기후 공약을 따져보는 첫걸음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선언하여, 2050 탄소 중립 목표에 도달하기에 무척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 이재명 후보는 구체적 수치를 밝히지 않은 채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고 2035년 이후 감축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만 밝혔습니다. - 권영국 후보는 2035년 70%, 2040년 85%, 2045년 95% 등 시기별 감축 목표를 제시했으며 이는 “지구 온도 1.5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허용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가능한 한 초기에 많이 감축해야 한다”는 국제적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에너지 집중 vs 분산 - 이재명 후보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겠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민 주도 태양광과 풍력 발전 사업을 ‘햇빛·바람 연금’이라 칭하며 이를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개선과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을 공약했습니다. - 김문수 후보도 에너지고속도로 건설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에너지고속도로 건설은 사실상 서해안의 재생에너지와 동해안의 원전·석탄발전 에너지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건설하겠다는 얘기가 아닌가요? 에너지 분산과 자급 노력 없이 전력망을 늘리겠다는 공약은 지방의 에너지 착취만 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습니다. - 이준석 후보는 10대 공약 등에서 에너지 관련 정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 권영국 후보는 산업단지와 대규모 전력 사용 시설을 재생에너지 생산 지역으로 이동시키겠다고 밝혀 에너지 분산에 힘을 실었습니다. 또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60%로 높이고, 공공재생에너지법을 제정해 해상풍력을 비롯한 전력산업의 민영화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원전, 확대냐 탈핵이냐 - 이재명 후보는 원전에 대해 “위험한 에너지”라면서도 기존 원전과 수명 연장이 가능한 한 원전은 계속 쓰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 김문수 후보는 현재 30%대인 원전 비중을 60%까지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며 계획 중인 대형 원전 6기를 차질 없이 완공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를 앞당기겠다고 했습니다. - 권영국 후보는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탈핵기본법’을 제정해 2040년까지 핵발전소를 폐지하겠다고 했습니다. - 그런데 TV토론회에서 김문수·이준석 후보가 발전비용 등을 근거로 ‘원전 확대론’을 주장한 것과 달리, 5년 뒤 한국에서 태양광이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이 될 것이라는 미국 국립연구소의 전망이 나왔습니다. 연구진과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는 비중이 커질수록 싼 발전원”이라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정부 조직 개편 방안? - 이재명 후보는 언급하지 않았고, 김문수 후보는 환경부를 기후환경부로 개편해 기후 재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이준석 후보는 환경부를 국토교통부와 해양수산부와 함께 건설교통부로 축소 개편하겠다고 했습니다. - 권영국 후보는 ‘기후에너지부’ 신설, 이해당사자 참여를 늘린 ‘탈탄소사회전환위원회’ 설치, 재생에너지 전문 국책연구기관을 설립, 한국전력의 발전자회사를 ‘재생에너지공사’로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기후 재난 시대에 더 중요해진 생물다양성은? - 이재명 후보는 산불 발생 지역의 생물다양성을 복원하고, 생물다양성 보호구역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등의 장기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 권영국 후보는 생태보호지역을 국토 및 해양의 30%까지 지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두 후보는 관련 공약이 없었습니다. 신공항 건설? - 이재명 후보는 “가덕도 신공항을 취소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국토 균형발전이라고 하는 전략적 목표와 지역 소외, 정치적 혼란 이런 것들로 더 큰 손실이 발생할 것 같다”라며 보완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 김문수 후보는 지난 13일 부산 집중 유세에서 “제가 대통령이 되면 가덕도 신공항을 반드시 해내겠다.”라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 권영국 후보는 “가덕도는 무안공항보다 조류 충돌 위험이 246배, 새만금 공항은 610배나 높은 지역”이라고 주장했으며, 전국의 신공항 건설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실망스러운 기후 공약 후보마다 기후 공약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만, 다수 후보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기후불평등 해소, 취약계층 보호, 지역 회복력 강화와 같은 실질적인 정책 비전이 제대로 담겨 있지 않았다고 평가받았습니다. 여러 기후시민단체의 지적처럼 다수 후보의 기후 공약은 “기후대응 재정 확보 방안, 농민·노년층 등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농업·노동·산업 구조 개편 방안, 식량 위기 대응 전략” 같은 핵심 쟁점이 제대로 담기지 않아 우리 정치권이 얼마나 기후 문제에 무관심하고 무기력한지를 보여 줬습니다. 다음 대통령, 보이십니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제6차 종합보고서(AR6)를 통해 “앞으로 10년 안에 온실가스 감축이 실패하면 회복 불가능한 피해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대통령과 함께해야 안전하게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요? 버들(독립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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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흙을 지키는 나무
- 흙을 지키는 나무, 나무와 혼작하기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사실 나무에 대해선 저는 아직 초보입니다. 막연히 나무가 좋아 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는 20년이 넘긴 했어요. 저희 농장에 심은 나무만 쥐똥나무 같은 관목 포함해 느티나무 잣나무 노나무 무궁화나무 등까지 하면 대략 개수로는 200그루, 종수로는 50종은 심었을 겁니다. 그런데 재배 관점에서 먹거리 나무 곧 유실수와 새순 먹는 특용수를 심은 건 2019년부터이니 잘해야 5~6년 되었지요. 나무는 대표적인 다년생인데다 방치해도 죽지 않으니 게으름을 피우기 딱 좋아 그렇게 세월이 지났어도 공부를 하진 않아 여전히 초보나 다름없는 거지요. 나무 이야기를 쓰기가 영 자신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쓸까말까를 몇 번 망설인 끝에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은 어차피 제 글은 전문적인 글이기보다는 체험담에 가까운 얘기라 좀 어설프더라도 독자님들이 이해해주시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제 글쓰기 버릇 중에 하나는 공부한 걸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공부하는 스타일이어서 이번 참에 공부를 좀 더 하자는 욕심도 작용했지요. 또 이번 글은 흙 이야기라는 틀 속에서 하는 거라 본격적인 나무 얘기는 아니니 부담도 덜 하긴 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전에 심었던 나무들은 거의가 조경수라 사실 손 볼 것도 없었던 반면에 새로 심은 유실수와 특용수는 수확을 목적으로 하기에 손 볼 게 적지 않았습니다. 거름 주기는 일반 작물과 별 차이가 없어 어려울 게 없지만 전지(가지치기)는 5~6년이 지난 지금도 헷갈리기만 합니다. 다만 이 전지 작업을 하다 보니 일반 작물 재배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습디다. 바로 전지 작업은 하늘을 보고 일한다는 점입니다. 일반 작물은 쭈그려 앉든, 허리 굽혀 하든, 땅을 보고 하는 일들이죠. 그 때는 몰랐어요. 근데 전지는 하늘을 보고 일을 하더란 말입니다. 일단 좋은 점은 허리가 자연스레 펴진다는 겁니다. 보통 촌로 농부님들은 대부분 허리가 꼬부랑이잖아요. 그런데 한참을 하늘을 배경으로 전지 작업을 하다보니 느낌이 참 좋더라구요. 비로소 내가 하늘과 소통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요. 초보자의 소감은 그 정도로 하고요, 어차피 이번 글에선 흙 입장에서 본 나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나무를 심으면 흙에 좋을까요, 나쁠까요? 저희 밭 가엔 한 50살은 되어 보이는 참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북쪽 끝에 있어 남향을 하고 있으니 저희 밭엔 나무 바로 아래나 해질녁에 그늘을 드리우지만 나무 넘어 이웃 밭에는 남쪽에 큰 나무가 자리 차지하고 있으니 그늘을 드리우죠. 저희 밭을 구입하곤 경계 측량 후 경계 따라 도랑을 내기 위해 포크레인을 불러 작업하는데 그 나무 너머 밭을 빌려 농사짓는 동네 할배가 다짜고짜 포크레인으로 참나무를 죽이라는 거지 뭐에요. 어르신 밭에 그림자 드리우긴 하지만 그리 심해 보이진 않고, 저런 큰 나무는 함부로 죽이면 안된다, 지금까지 가만 계시다 왜 이제 와서 나무를 죽이라 하시나, 어쨌든 내 밭에 있는 나무이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 하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 어르신은 힘들다며 당신 밭을 내게 권리금 받고 경작권을 팔아 제가 직접 그 땅에서 농사지어봤더니 별 문제 없더라구요. 그 다음에 10년쯤 지나니 이번엔 제 밭을 둘러싸고 있는 땅들을 시에서 몽땅 임차해 산림욕장 시설 공사를 하며 또 이 참나무를 죽이려 하지 뭡니까? 경계측량을 해보니 그 나무가 내 땅 안에 있는 게 아니라면서요. 얼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며 또 참나무를 지켰습니다. 별로 폼새도 나지 않는 나무를 그림자나 드리우는데 왜 저걸 보호하려 하냐며 되레 나를 가르치려 하대요. 큰 나무가 그림자 드리워 피해 주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5년째 이 나무 밑에서 농사지어보니 별 피해도 없어요. 오히려 나는 큰 나무가 땅 밑으로 크게 뿌리를 뻗어 우리 밭 토양을 지켜준다고 생각하지요. 토양의 물리성도 좋게 해줄 뿐만 아니라 뿌리에 많은 미생물들이 살며 더불어 우리 토양 속 생물다양성을 풍부히 해줄 것입니다. 지상에선 선풍기 역할도 해 줍니다. 큰 나무의 왕성한 증발산 작용으로 주변 기후를 건강하게 청소해주는 것이죠. 옛날엔 논 가에 버드나무와 미류나무가 있었습니다. 시골의 정겨운 경관이었지만 논을 바둑판처럼 개간하며 다 없애버렸죠. 분명 그림자 탓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농촌 경관은 황량해졌어요. 그 정도의 그림자가 작물 재배에 큰 영향을 주기는 만무한 일이죠. 사실 오랜 세월 나무 밑에서 재배해 온 토종 벼들은 적응해왔는데 통일벼 이후 다수확 종자로 육종된 개량 벼들은 조금의 그림자에도 영향을 받았다곤 합니다. 흙을 지키는 나무 무엇을 심을 때는 꼭 유념할 게 있습니다. 심기 전 그게 내 땅과 맞는지를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겁니다. 나무가 특히 그렇습니다. 나무는 한번 심으면 최소 몇 십년 살기 때문에 한번 심으면 빼도박도 못하기 때문이거든요. 나무는 진짜 욕심낼 게 못 됩니다. 2019년 저희 밭이 산림과학원 지정 민간형 먹거리숲(산림생태텃밭)으로 선정되어 유실수와 산채나물을 많이 식재했는데요, 심고 나서 한 3년 되고 나서야 우리 밭엔 유실수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 뭡니까? 열매가 작은 나무들은 어느 정도 버티는 편인데 사과나 복숭아 같이 좀 큰 나무들은 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벌레는 엄청나고요, 전체적으로 생육 상태가 좋지 않아요.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저희 밭이 원래는 논이었던데다 객토도 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웃들 밭 주변은 다 객토를 했으니 우리 밭만 푹 꺼진 꼴이 되고 만거죠. 물론 배수로는 정성껏 팠기 때문에 습하진 않은데, 그래도 심토는 논흙이라 습했던 모양입니다. 나무가 어릴 때는 잘 자라다가 3년 쯤 되어 뿌리를 깊게 내릴 때쯤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거죠. 반면 서울의 가락시장 옥상에 텃밭 만들어주고 상자텃밭에 사과나무 3그루를 심어주었는데 생육상태가 얼마나 좋은지 저희 밭 사과나무와 비교가 안될 정도에요. 통풍도 좋고 일조량도 아주 풍부한데다, 콘크리트 바닥의 복사열까지 가세해 광합성 에너지를 확실하게 공급해 준 때문인지 열매도 실하고 벌레도 거의 없었죠. 맛도 기가 막혔어요. 사과뿐만이 아니에요. 저희 밭 온실에서 과채류 작물 모종을 키워 심어주면 저희 밭보다 훨씬 잘 자라대요. 토마토 가지 고추들이 얼마나 맛이 좋은지 놀랐어요. 옥상텃밭은 여름에 복사열로 작물들이 마르는 걸 조심만 하면 진짜 끝내줍니다. 유실수든 과채류든 열매 맺는 식물들은 습기는 좋아하지 않으면서 통풍, 일조량, 높은 기온을 절대적으로 좋아해서 그럴 겁니다. 아무튼 그래서 나무는 심을 곳의 토양 상태와 기후 조건을 잘 살펴 심어야 합니다. 1년생 작물이야 실패해도 1년만 고생하면 되지만 나무는 다년생이라 ‘실패하면 다시 심지...’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다년생이라 해도 풀하고는 달라요. 풀이야 수틀리면 옮겨 심어도 되지만 나무는 옮겨 심는 게 만만치 않잖아요? 그래서 나무 심을 때는 나무 공부도 필요하지만 그에 맞는 흙 공부를 강력히 권합니다. 아무튼 먹거리 나무를 심은 지 5년이 넘었어요. 적응할 놈 적응하고 아직도 고생하는 놈도 있고 개 중 잘되는 놈도 있어요. 밤나무는 그 중 참 잘됩니다. 머루나무도 잘 되고요, 다래, 포도, 매실, 두릅, 개두릅(엄나무), 화살나무(홑잎), 구기자 나무도 그럭저럭 되는 편이지요. 나무를 심어놓으니 몇 가지 재밌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한여름 폭염이 덜하죠. 제가 볼 때는 쉬원할만큼 그늘이 많이 드리운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나무 그늘로 피해보는 작물들이 많을텐데 거의 피해보는 일은 없어요. 그보다는 나무들의 증발산 작용으로 밭 전체적으로 기온이 떨어진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적당히 솔솔 바람도 불고요. 제가 위탁받아 관리해 주는 밭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 드러나죠. 우리 밭만큼 나무가 심어져 있지 않아 진짜 뙤약볕이 보통이 아닙니다. 폭염이 흙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장난이 아닙니다. 이 삼일 전 비가 적당히 왔는데도 일주일은 넘게 비가 오지 않은 것 같죠. 뜨거운 뙤약볕이 흙에 내리쬐며 흙을 바싹 말려버린 겁니다. 흙이 마르면 흙 속 물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공기도 사라집니다. 표토의 물이 마르면 모세관현상에 따라 심토의 염류가 표토로 빨아올려집니다. 공기도 사라지니 토양 내 호기성 미생물이 사라지고 흙이 딱딱해집니다. 그러면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죠. 병에도 잘 걸립니다. 그런데 나무가 적당히 심어져 있으면 폭염으로 인한 고온도 완화해주지만 뿌리로 땅 속도 보호해주는 거지요. 게다가 나무를 적당히 심으면 폭염도 폭염이지만 여름철 폭우로부터 흙을 보호해 줄 수 있습니다. 폭우로 인한 타격을 완충해 줄 수도 있겠지만 땅 속에서 뿌리로 흙을 보호하는 효과가 더 의미있을 거라 봅니다. 나무가 아니라도 폭염으로 인한 토양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멀칭(mulching, 덮개)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다음의 무경운 글에서 다루도록 하지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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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세계 수달의 날 "제4회 수달의 아우성"에 함께해 주세요
-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지리산을 사랑하는 분들, 강의 연대에도 함께해 주세요. 생명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지역 학교와 단체, 개인 모두 환영합니다. 2025년 5월 27일(화) 14시 ~ 28일(수) 10시 경남 함양군 휴천면 천왕봉로 2257-2 지리산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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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개발에 저항하는 연대의 노래,< 제2회 지리산 작은음악회>에 초대합니다
-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함께해 주세요! 지리산과 푸른 산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리산작은음악회>가 5월 31일(토) 오후 4시 산청문화원 앞 야외공연장(산청문화의거리)에서 열립니다. 살아있는 자연이 숨쉬는 힐링의 고장 산청은 마냥 평안하지는 않습니다. 2023년 7월 발족한 지리산케이블카반대산청주민대책위원회는 산청군에서 추진중인 중산리케이블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어왔으며, 삼장면 샘물공장 증량, 차황골프장 추진 등의 지역 난개발 문제에 연대해 왔습니다. 지하수 고갈 등 이미 현실로 일어난 주민피해의 책임을 회피하고, 지자체장 스스로도 적자 가능성을 인정한 케이블카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행정의 독단에 대처하기 위한 연대가 절실함을 느끼고, 지리산케이블카반대산청주민대책위원회는 산청난개발대책위원회로 확장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5월 중 산청군은 용역비 5억 4천 만원을 들여 작성한 새로운 케이블카신청서를 환경부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환경부는 2023년도 신청서를 반려하지 않은 채로, 삭도 설치 가이드라인 폐기, 지리산권 지자체 단일화 원칙 폐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대응이 예상되어 기금 마련을 위한 행사를 기획하였습니다. 산청, 구례, 우포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아온 음악가들이 단오날에 연대의 노래를 부릅니다. 전환의 시대, 혼돈의 시간입니다. 다들 어려운 상황이지만 작은 도움을 보태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금은 지리산케이블카반대 뿐 아니라, 산청 지역의 난개발 대응에 사용됩니다. 지리산작은음악회 후원계좌: 농협 351-1285-4584-83 이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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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달곰1% 가게 유람기]도로 위의 심산, 깨달음이 있는 오차공방
- [반달곰1% 가게 유람기] 도로 위의 심산, 깨달음이 있는 오차공방 “원래 제가 산을 참 좋아해요. 예전에 선생님이 너는 산에 풀어놓으면 제일 좋아해, 라고 하셨는데 인연을 따라 오다 보니 도로 위에 자리를 잡게 되었네요. 저는 여기가 내 산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산속이라면 혼자서도 잘 논다는 오차공방의 주인장 오은주 님은 지리산으로 오기 전에는 강원도에 살았다. 그러다가 화개로, 그리고 지금은 구례, 오차공방이라는 자신만의 산속에 산다. 공방이라는 산 속에서 숨을 쉬고 손을 움직여 수행하는 삶을. 공방에 울리는 만트라는 세상의 번다함을 이기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평안하고 순탄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주파수에 맞추어 흐르고 있었다. 임산부와 아이에게도 내어줄 수 있는 차 오차공방의 이름은 깨달을 ‘오(悟)’와 ‘차(茶)’의 두 음을 합쳐서 ‘오차’, 공방을 겸하는 공간이어서 ‘공방’이라는 두 글자를 더했다. 차를 깨닫는다는 건 어떤 걸까. “저는 손님들을 기억할 때 그 분이 드신 차로 기억을 해요. 한 분 한 분 사진처럼 기억이 나거든요. 가게에 와서 차를 드신 분들이 몸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실 때 좋죠.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래도 일관되게 지켜온 건, 아이들이 오거나 임산부가 왔을 때도 내가 편안하게 내어드릴 수 있는 메뉴들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문을 연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오차공방의 메뉴는 오은주 님이 블렌딩한 차들이 대부분이다. 손님들이 뭔가 부족한 것을 표현하면 그것을 고민해 하나씩 채워온 것이 지금의 차 메뉴들. 20여 년 전 직접 차를 배운 그녀는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 설국차’라는 메뉴를 이야기하자면, 설국차는 높은 산에서 자란 야생국화인데, 특이하게도 잎차가 갖고 있는 약성과 맛, 수색(水色)을 지녔다고 한다. 꽃차인데 몸에 열을 내는 발효차와 같은 효능이 있어 모든 분들이 평이하게 좋아할 수 있는 메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그 외에도 탄산이 없는 야생화 꽃잎에이드, 산딸기에이드, 돌배모과차, 지리산 야생녹차 등 다른 찻집에서 보기 힘든 메뉴들이 여럿 있어 오차공방만의 색을 더하고 있다. 오차공방의 유명인사, 볼 오차공방에는 이렇게 직접 블렌딩한 차 외에 유명한 존재가 또 있다. 볼, 13세의 불테리어. “볼은 빠다틱하게 지은 이름인데, 영어로 ‘공(ball)’이 우리말 공으로 하면 둥글다, 비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불테리어는 원래 힘이 좋은 견종인데, 저 아이는 힘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아는 것 같아요. 언젠가 멀리서부터 저를 향해 달려오는데, 직선으로 달려오다가 중간에 서있는 아이를 피해 돌아서 달려오는 걸 보고 생각했어요. 아, 저 아이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그렇다면 볼은 오차공방에 너무 잘 어울리는 녀석이다. 불테리어는 공격성이 강한 맹견 중 하나인데, 볼은 이 개가 불테리어 종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순박하고 우직하다. 나이가 들어 그런가 했는데 원래 그런 성품이란다. 얼굴은 웃는 표정이고 아는 손님이 오면 꼬리치며 다가가 몸으로 부딪히며 알은체를 한다. 쓰다듬으면 마다하지 않고 드러누워 순순히 손길을 받아준다. 그래서 오차공방 손님들에게 인기짱이다. 볼을 형상화한 조각이나 그림이 여럿 있는 것도 손님들이 선물한 것들이 많다. 이제는 볼에게 오차공방의 지분이 어느 정도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은주 님이 가게 쪽방에 들어 있어 손님이 오는 걸 눈치 채지 못할 때는 주인을 부르러 오기도 한다니, 오차공방을 지키는 또 다른 사장님이라고 할 법하다. 언제나 산과 함께 하고픈 마음으로 차가 다니는 도로 위에 10년을 있으면서도 오은주 님은 한 번도 지리산과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본인은 언제나 그 속에 있었다고. 그러니 반달곰1%에 참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제안이 왔을 때 90%는 윤주옥 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 분이 하시는 일이니까 지지하는 마음으로 고민 없이 수락했어요. 산을 품은 분이니까. 그리고 나머지 10%는 자연에 대한 공감이었죠.” 아니다 싶은 일은 절대 못한다는 그녀의 선택이었다. 반달곰1%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좋은 점을 물었더니 손님들이 가게를 지리산과 연결되어 있다고 친밀하게 느끼는 것 같아서 좋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반달곰 하면 자연스럽게 지리산이 떠오르고 자연, 생태계와 연결해서 생각하니까. 게다가 처음에는 직접 반달곰1%를 소개해야 했는데, 지금은 알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훨씬 많아진 느낌이다. 시간이 가져온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젊은 분들은 가족이나 지인들한테 소개하기도 한다고. 덕분에 가게도 홍보가 된다. 그러니 반달곰 1% 프로그램을 시작하길 잘했다. 은주 님의 ‘산이 숨이 되고 내가 되었고 지금은 공방이 숨이 되고 내가 된다’는 말은 그녀가 얼마나 산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알게 한다. 우리 모두가 그녀처럼 산을 사랑했다면 산도 그 안의 생명체들도 힘들지 않았을 텐데. 모두가 그녀의 마음을 닮아갔으면 좋겠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4년 현재 10개 가게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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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06-25 11:20
약난초
지리산 특정식물 약난초 섬진강 편지 -
김인호 06-17 15:57
구례들꽃사진반
「섬진강 편지」 - 구례들꽃사진반 비에 젖으며 노고단 간다 안개빛 젖은 꽃들 보러 간다 혼자가 아니라 구례들꽃사진반 벗들 이약이약하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구름 속의 노고단 간다 새로운 나도수정초 군락을 찾았다 젖었으나 신비로움은 그대로이다 운해 속의 함박꽃은 또 다른 매력이다 복주머니란은 시들었지만 쥐오줌풀 나리난초 쥐다래꽃 미나리아재비 붓꽃 영국병정지의 큰뱀무 범꼬리는 피어난다 봄꽃들 지고 여름꽃들이 기지개를 켠다 함빡 젖었으나 사람의 마을에서 시들었던 마음이 노고단길에 서면 함박꽃처럼 활짝 피어나니 어찌 이 길을 좋아하지 않을쏘냐 *구례들꽃사진반은 20여명의 회원이 지리산과 섬진강변의 들꽃들을 찾아 이름을 불러주며 매년 가을 천은사 보제루에서 들꽃사진전을 열어 들꽃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구례들꽃도감'을 준비하고 있다. -나도수정초 -정상부는 아직 함박꽃이 한창이다 -영국병정지의 -상복을 입은 함박꽃 -함께가는 사람들 -구례들ㄲ초사진반 -개다래꽃 -세잎종덩굴 -붓꽃 -
김인호 06-17 15:50
아기하늘다람쥐
「섬진강 편지」 - 아기 하늘다람쥐 내내 기다리던 비가 내리자 사람 떠난 앞집 치자꽃 피었다 밤 내 뒤척이게 하는 까짓 몇 푼 없었던 셈 치자 치자꽃 피었으니 뻘생각 떨쳐버리고 안개 끼인 숲으로 가자 아기 하늘다람쥐 떨어졌다 다시 오르며 날개짓 연습하는 생명의 숲으로 가자 순백의 요정 나도수정초 무리 피는 갈매빛 갈맷빛 숲으로 가자 한 뼘 병아리난초 꽃피기를 숨죽여 기다려 주는 매화노루발 숲으로 가자 -
김인호 06-17 15:37
지리산 참기생꽃을 찾아서
「섬진강 편지」 - 지리산 참기생꽃을 찾아서 해마다 이맘때면 만나러 가야 하는데 하는데 서성이게 하는 이름이 있다 마음만 있으면 어딘들 못 가랴 하지만 쉽지가 않다 지리산길 9km 해발 1600고지에 올라서야 만날 수 있다 지리산 참기생꽃 지난 만남의 날자를 헤아려본다. 중봉 부근에서 22년 6월 10일, 그리고 지난해 영신봉 부근에서 5월 30일이다 그 자리에서 피었을까, 하마 져버렸을까 구례들꽃사진반 회원들과 함께 하는 길이라 산길 오르는 내내 애가 탄다 참기생꽃을 보고 싶어 나선 이들이 꽃을 볼 수 있을까 산행 다섯 시간 만에 힘들게 꽃자리에 도착했다 지난해 꽃핀 날보다 열흘이나 늦게 왔는데도 아, 이제 겨우 눈곱만한 꽃몽우리만 달려있다 아쉬움에 서성거리는데 비명소리가 들린다 눈 밝은 이가 꽃을 찾아냈다 딱 한 송이 참기생꽃이 피어있다 꽃 앞에서 감사인사를 올린다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마고할미 감사합니다 10시간, 이만 팔천 보, 18킬로의 힘든 산길이었지만 한해 한번 만날 수 있는 지리산 참기생을 만나고 산을 내려오는 걸음 가뿐하다 내년에는 반야봉의 참기생을 찾아뵈야겠구나 벌써 마음이 설렌다 참, 세석습지에서 지난 해에 처음 만났던 습지등불버섯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참기생꽃 앵초과 기생꽃속으로 가야산, 지리산 이북의 고산지역에 자생하는 특산식물 산림청 선정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1997) 환경부 선정 보호야생동ㆍ식물(1997) - 두루미풀 -큰황새냉이 -구상나무 열매 -구상나무 숫꽃 -쥐오줌풀 -자주솜대 -참기생꽃 -습지등불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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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 07-03 22:00
[기후+마을] 산불을 돌아보며, 고을고을 숲 교육의 필요성
산불을 돌아보며, 고을고을 숲 교육의 필요성 경남 산청·하동과 경북 의성·안동·영덕 둘레로 퍼져 나간 산불이 지난 3월 30일 열흘 만에 꺼졌지요. 그때 바닷가 주민들은 “앞은 바다, 뒤는 불바다”였다며 얼마나 막막했는지를 말하기도 했습니다. 불은 4만 8,236㏊를 태웠습니다. 사람 서른 명이 죽고 마흔다섯 명이 다쳤으며 죽은 동식물을 다 따지자면 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산불이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커진 데 대해 고온 건조해진 날씨와 강풍만을 탓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때 불을 잡지 못한 행정과 산림청의 몇몇 사업이 국가 재난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산림청의 임도와 숲가꾸기 사업이 산불 키운다” 몇 해 전부터 기후위기로 봄 산불은 더 늘어나고 강도가 세질 거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산림청은 예방도 대응도 실패했고, 오히려 또다시 ‘임도’ 카드만 들이밀었습니다. 산불 현장을 찾은 산림청장은 임도가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국립공원에까지 임도를 놓자고 주장했습니다. 산림청은 임도를 새로 놓는다며 해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데요, 임도가 정말 산불을 미리 막거나 커지는 불을 잡는 데 도움이 될까요? 임도가 있으면 산불을 끄는 차량이 좀 더 쉽게 불을 끄러 드나들 수도 있겠지만, 임도가 오히려 산불을 키우는 바람길 역할을 하므로 현장에 맞게 진단하고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번 산불 현장을 찾아가 조사한 이들은 “산림청의 말과 달리 임도를 사이에 두고 양옆이 그대로 불탄 현장을 확인했다.”라며 산림청의 임도 확대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임도보다 더 문제로 지적되는 산림청의 사업은 소나무 위주의 인위적인 ‘숲가꾸기 사업’입니다. 이번 경북 산불과 산청 산불을 분석한 부산대 홍석환 교수는 강한 피해를 본 수림대의 92%가 침엽수림이고, 활엽수림은 약 2%에 지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숲가꾸기 사업을 통해 억지로 정리된 땅은 바람길이 되어 산불을 잘 퍼뜨릴 수 있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 소나무를 심은 숲은 산불 크기나 퍼지는 면적으로 볼 때 활엽수림보다 크고 넓었습니다. 오히려 활엽수림대는 산불이 더 커지지 못하게 막는 방어선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산림청의 30년 숲가꾸기 사업 결과 숲이 자연스럽게 활엽수림으로 바뀌지 못했으며 큰 산불의 원인이 된 게 아닌가요? 사진1. 하동 두양리 임도 둘레 산불 현장. 임도가 산을 돌아 만들어져 있는데도 산불이 커지는 걸 막지 못했고 소나무림이 다 불에 탔다.(출처: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사진2. 지리산국립공원 구역 안의 산불 현장. 산림청이 숲가꾸기를 한 지역과 달리, 산불이 지표면만 태우고 지나갔다. 활엽수림은 산불이 나무를 타고 가지 끝까지 올라가는 수관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산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다.(출처: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산불 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후위기로 해마다 평균 기온이 오르고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 늘면서 전 세계에서 산불 피해가 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계속 임도만 늘리자 하고 억지로 침엽수림을 만드는 산림청에는 정말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산불은 언제 어디서든 생길 수 있어 남의 지역만의 일도 아닌데,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당연히 봄철 숲에서 불티를 내지 않는 일이 가장 처음 일이겠지만, 숲을 파괴하는 정책들에 반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산림청의 잘못된 정책을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야겠지요. 집 잃은 이들이 다시 터전을 가꿀 수 있게 지원받도록 목소리 실어 주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아울러 그보다 더 근본적 해법으로 마을 단위 산림 교육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산불 예방 수칙이나 대피 요령만 한두 시간 떠들고 끝나는 교육 말고요, 훨씬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교육 말입니다. 기후위기 시대라는 위기 상황에선 숲과 사람의 공존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지역 주민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도 그에 맞춰 이뤄져야겠지요. 마을 단위 ‘진짜’ 숲 교육이 이뤄지면 산불 초기에 간단한 장비를 사용해 불을 잡는 방법뿐 아니라 산불을 생기게 하는 주요 원인과 위험 요소가 무엇인지 이해하여 산불에 강한 건강한 숲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공부해야 합니다. 또 기후위기가 지역 숲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이고, 앞으로 기후위기로부터 숲의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지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도 산림 교육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산불 현장을 찾아가 눈으로 보고, 자연이 다시 건강한 모습을 되찾는 과정을 기록해 가는 교육도 좋겠습니다. 우리 마을 숲에 사는 야생 동식물을 관찰하고 분류하고 조사하는 일도 건강한 숲을 지키려면 필요합니다. 숲은 나무 몇 그루 심는 곳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동식물이 모두 함께 살아가는 터전으로 인식한다면, ‘산불은 공무원이 알아서 해결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우리 마을 스스로 지키는 우리의 숲’이라는 책임감과 생태 감수성을 기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마을 단위 숲 교육은 지역의 숲을 어떻게 우리 삶의 일부로 돌보고 이어갈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장이 될 수 있습니다. 봄 산에서 우리는 쑥, 두릅, 고사리, 가죽나물, 다래순, 찔레순, 취 같은 먹을거리를 셀 수 없이 넉넉하게 얻으면서도, 숲이 인간뿐 아니라 모든 동식물에게 소중하며 누군가의 집이라는 생각을 잘 못 했습니다. 산불로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은 건 인간뿐이 아닙니다. 또 산에 살지 않는 이들이더라도 모두가 그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산불을 막고 숲을 지킬 수 있는 일을 모두가 같이하면 좋겠습니다. 그 긴 여정에 마을 고을고을의 진짜 숲 교육이 필요합니다. 버들 (독립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에 실렸습니다. -
버들 06-19 23:11
[기후+마을] 기후정부와 지리산 케이블카
기후정부와 지리산 케이블카 구례군이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성삼재 주차장(사진: <지리산인> 김인호).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기후’라는 단어를 두 차례 썼습니다. “기후위기가 인류를 위협하고 산업 대전환을 압박”한다고 했고, 이어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계적 흐름에 따라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 조속히 전환”하겠다고 했습니다. 후보 시절 10대 공약 가운데 하나로 ‘미래세대를 위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던 대통령답게 기후위기 인식이 담긴 연설문이었습니다. 물론 기대가 있다면 걱정도 있겠지요.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라며 내세운 성장 주도 경제 정책들이 기후위기 대응 공약과 충돌할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진국의 책임에 걸맞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립, 한반도 생물 다양성 복원, 4대강 재자연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실현 방안 마련” 등을 분명히 약속한 대통령이기에, 우리나라 첫 ‘기후정부’라는 평가에 걸맞게 방향을 잡아 나갈 거라는 기대의 목소리도 큽니다. 역대 첫 ‘기후정부’에 케이블카 떼쓰기? 그런데 우리 구례에서는 지난 13일 산동면 지리산국립공원 성삼재 주차장에서 지리산 케이블카 재추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구례 지리산 케이블카 추진위원회가 연 기자회견에 김순호 구례군수도 참석해 케이블카 사업을 지지했습니다. 추진위는 다가오는 12일엔 지리산 케이블카 승인 촉구 결의대회를 열겠다고 예고하며 여기저기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산 케이블카 촉구 목소리는 첫 기후정부가 될 거라 평가받는 이재명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특히 이재명 정부는 “한반도 생물 다양성 복원” 정책을 약속하며 “산불 발생 지역 생물 다양성 복원 추진, 육지와 해양의 생물 다양성 보호구역 단계적 확대”를 내걸었는데,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은 생물 다양성을 해치는 데다가 나아가 생물 다양성 보호구역 확대라는 세계적 흐름과 새 정부의 약속을 무시하는 사업이 아닌가요? 진짜 대한민국과 진짜 지역 경제 생각한다면, 경제성도 없는 케이블카 매달릴 까닭 없어 이제는 많이들 아시다시피 케이블카는 생태계 다양성을 위협할뿐더러 경제성도 없습니다. 전국 관광 케이블카 41곳 가운데 38곳이 적자이며, 한때 케이블카의 모범 사례로 불린 통영 케이블카도 2023년에는 탑승객이 이전의 1/3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 39억 원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2021년 개통한 전남 해남 명량 해상케이블카는 개통 첫해부터 15억 원의 영업 손실 이후 계속 적자이고, 2013년 개통한 밀양 얼음골케이블카는 첫해 매출 이후 해마다 10억 원 이상 적자이며, 부산 송도 해상케이블카는 2020년 기준 10억 3,900만 원 적자, 충북 제천 청풍호반 케이블카 23억 6,000만 원 적자 등 경제적으로도 지역에 득이 되기 어렵다는 사례가 수두룩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이 중심이 되는 진짜 변화”를 강조해 왔습니다. 이러한 새 정부의 기준에 지리산 케이블카는 국민을 중심에 둔 정책도, 기후정부의 위상에 맞는 정책도, 진짜 변화로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환경부로부터 일곱 번이나 부결 또는 반려를 받아 온 지리산 케이블카를 계속 고집하는 건 지역에도, 나라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약속했던 ‘기후에너지부’가 곧 새로 꾸려질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데요, 산업부의 에너지 업무와 환경부의 기후 업무를 한데 모아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포괄적으로 세우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와 실행력을 보건대, 케이블카 사업은 생태적이든 경제적이든 어떤 측면에서도 기후에너지부의 승인을 받기 어려워 보입니다. 기후정부에 걸맞은 기후지방정부 대한민국은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 다양성 프레임워크’의 당사국으로서 “203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육상 및 해양의 최소 30%를 보호지역 등으로 보전·관리, 훼손된 육지 및 해양 생태계를 최소 30% 복원 등”의 실천 목표를 이행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케이블카를 설치해 국립공원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이는 국제적 망신이며 이재명 정부의 신인도 또한 낮아지겠지요. 지금은, 구례군을 포함해 모든 지자체가 기후정부에 걸맞은 지방정부로서 기후 정책을 펴야 할 때입니다. 새 정부가 더 나은 기후 정책을 펴도록 풀뿌리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목소리를 내도 모자랄 판에 기후정부의 첫걸음마저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요. 구례가 우리나라 첫 기후지방정부의 모습을 보여 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버들(독립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에 실렸습니다.) -
버들 04-29 10:18
[기후+마을] 거리를, 마을을, 지구를 커머닝하라
거리를, 마을을, 지구를 커머닝하라 2021년 4월 22일, 구례에서는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사건’이 있었어요. 이름하여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 기후행동’. 이 사건은 우리 구례의 길이 자동차 중심이어서 정작 사람은 자기 발로 혹은 자전거나 휠체어로 지나가기 어려운 현장임을 깨달으면서 시작했어요. 여러 날 거리를 조사한 시민들이 구례의 거리가 얼마나 걷기 어려운지,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곳인지를 밝혔고, 그 뒤로 생태적 교통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모였지요. 여기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더해진 덕분에 아주 짧은 거리긴 하지만, 그해 구례에서 조금 더 생태적이고 조금 더 안전한 길이 잠시 만들어졌던 사건이었더랬지요. 거리는 지자체의 것? 거리는 모두의 것! 그때 시민들이 만든 길은 단지 차 없는 거리만이 아니었어요. 그건 모두의 거리였고, 모두를 위한 거리였고, 모두에 의한 거리였죠. 무슨 말이냐고요? 이렇게 걷기가 어렵고 불편한 구례의 거리가 여태 바뀌지 않은 까닭은 거리가 ‘모두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길은 나라님 것, 길은 지자체 관리 아래 있는 것’으로 인식해 온 탓에 ‘길은 시민들이 바꾸기 어려운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모두의 것이었던 길이 지자체나 기득권 세력의 것으로 바뀐 거지요. 힘 있는 자들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소유물이 돼 버린 거예요. 그러니, 길을 어떤 주체가 지배하는 것 혹은 소유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버리면 좋겠어요. 길은 모두가 함께 돌보고 모이고 새롭게 만들어 가는 장소여야지요. 그런 의미에서 2021년 구례 시민들의 힘으로 만든 차 없는 거리는 ‘모두의 거리’를 되찾는 경험이었던 거예요. 차가 주인인 줄 알았던 거리를 사람과 동물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거리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지요. 시민이 거리의 역할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예요. 커먼즈로 기후위기 늦추기 지자체의 길은 매연이 가득해도, 위험해 보여도, 쓰레기가 쌓여도 대부분 신경 쓰지 않아요. 하지만 모두의 길이 되면 달라져요. 우리 모두의 길이니까 스스로 돌보고 가꾸게 되지요. 쓰레기가 떨어지면 누구라도 주워요. 위험한 곳이 있으면 누구라도 고쳐요. 누군가 힘겨워하면 길 가다 멈춰 도와요. 누군가 길 위에서 새 일을 시작하면 함께 맞이하고 응원해요. 또 나무도 심고 꽃도 가꾸어 길 위아래 모든 생명에게 이롭게 해요. ‘길은 모두의 것, 길은 우리의 것’이라는 마음이 바로 변화를 만드는 밑바탕이에요. 기후위기 시대에 모두의 것을 함께 돌보고 가꾸는 이러한 마음이 더욱 주목받고 있어요. 사람들은 이를 커먼즈(commons) 혹은 커머닝(commoning) 같은 말로 불러요. 커먼즈는 우리말로 공유지, 공유재, 공동자원, 공동자원체제, 공통재, 공통장, 공통계 같은 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딱 들어맞는 한 단어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만큼 다양한 방식을 의미하겠지요. 제 생각엔,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돌보는 무언가 혹은 함께 돌보고 함께 살자는 삶의 양식을 만드는 행동을 뜻하는 듯해요. 우리 거리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기를 지금까지 길은 차량 중심으로 쓰였고, 길의 역할을 행정기관이 정해 왔지만 길을 시민이 함께 돌보는 커먼즈로 본다면 완전히 다르게 쓸 수 있어요! 지금과는 다른 길을 상상해 보세요. 차가 막고 있던 도로를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바꿀 수 있어요. 도로 일부를 녹지, 정원, 텃밭, 빗물 정원 같은 생태 커먼즈로 바꿀 수도 있지요. 남성-젊은이-어른-인간 운전자 중심의 공간이던 거리를 모든 보행 약자를 위한 공간으로 바꾸는 거예요. 길의 ‘사용권’을 시민에게 돌려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우리 시민들이 스스로 거리를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할 수 있어요. 시민, 상인, 행정이 함께 운영할 수 있겠죠. 청년들이 원하는 거리, 어린이가 원하는 거리, 예술가가 원하는 거리, 선생님이 원하는 거리가 다 다르겠지만 천 명이 있으면 천 개의 거리가 탄생하도록 함께 만들어 가는 거예요. 그런데 길을 커먼즈로 되살리려는 노력이 또 하나의 ‘소비, 경쟁, 유흥의 공간’을 만들지는 않으면 좋겠어요. 제가 제시하고픈 커먼즈로서의 길은, ‘아는 이들을 만나 속닥거릴 수 있는 공간, 내가 직접 기른 작물이나 직접 만든 물품이나 작품 등을 가져와 팔고 나눌 수 있는 공간, 기후정의 팻말을 들고 행진할 수 있는 공간, 재난 상황에선 돌봄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 자립기술을 공유하는 공간, 새로운 삶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공간, 청소년과 청년이 다른 삶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차 없는 거리로 끝날 게 아니라, 생태적 위기를 초래한 지속 불가능한 삶의 양식들을 반성하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거리로 거듭나야 진짜 ‘모두의 길’ 아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올해로 다섯 번째 맞이하는 ‘지구의 날 구례 어린이 기후행동’을 주목해 주세요. 올해는 장날에 맞추어 4월 23일에 할 예정이래요. 아이들이 모여 거리 쓰레기를 줍고, 지구가 불타는 상황을 알리며 모두의 것을 모두가 돌보자고 외치는 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기후위기를 늦출 수 있는 실마리가 아니겠어요? 23일에 거리에 나와 외쳐 주세요. 이 거리를, 이 마을을, 이 지구를 함께 돌보자고요. 어린이들에게뿐 아니라 동식물과 지구에게도 안전한 거리, 나무와 새가 행복한 거리, 아이들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거리를 만들자고 말이에요. 구례 경찰서 로터리에서 군청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바뀌면 어떨까요? 챗GPT와 함께 만든 생태적 거리 상상도입니다.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4월 청명호에 실렸습니다. -
정정환 04-22 21:02
불탄 마을 앞에서 말해야 할 것들
불탄 마을 앞에서 말해야 할 것들 ▲ 의성 산불의 모습, 도로가 있음에도 숲이 전소했다. 임도는 산불예방 큰 도움이 되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숲의 구성이다. ▲ 도로 주변으로 검게 타버린 숲의 모습(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 임도 주변의 다 타버린 숲의 모습, 숲가꾸기가 진행된 소나무림이다. 2025년 3월 21일 경남 하동군, 산청군, 지리산 일대에 대형 산불이 났다. 거의 동시에 의성에서도 대형 산불이 났는데 2000년대 이후 최대의 산불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하동, 산청의 산불과 지리산의 산불을 보면 같은 산불임에도 다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하동군 두양리와 산청 중태리의 산불의 공통점을 알아봤다. 산불이 진화되고 1주일이 지난 뒤 찾은 두양리는 지난 산불로 인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산 중턱부터 능선까지, 마을 뒤편 일부 숲은 수관화(나무의 가지로 불이 번지는 상황)로 진행되어 전소됐다. 일부는 수간화(나무의 몸통까지 불에 타버림)로 진행되어 노랗게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나무들은 대부분 소나무였다. 임도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임도 주변의 숲이 더 심하게 타버린 경우도 있었다. “도깨비불이 산을 넘었다.”는 주민의 말처럼, 불길은 바람을 타고 도로를 건너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길 속에서도 활엽수는 하층만 그을렸을 뿐 소나무처럼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가 크고 수관화로 이어진 지역은 대부분 하층정비(숲가꾸기)가 이루어진 소나무 숲들이었다. 전문가들은 교목층(상층부 식생, 키가 큰 나무)과 아교목(교목 아래의 식생) 관목(아교목 아래의 식생)층이 잘 이루어진 숲은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교목과 관목이 수관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내는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패효과’라 부른다. 그 좋은 예로 같은 시각 산불이 확산했던 지리산국립공원을 보면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내원사 능임암 일대의 산불지역 산불이 지나간 지역이었지만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내부의 모습, 바닥이 검게 그을렸지만 새싹이 나왔고 진달래도 피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의 하층 관목은 모두 조릿대였다. 지금은 조릿대만 다 타고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능인암 위쪽 지리산국립공원 산불 피해지역, 바닥은 그을렸지만 새싹을 피워냈다. 활엽수는 불에 강하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으며 인공복원보다 자연복원이 더 빠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지리산국립공원구역은 겉에서 봤을 때는 산불이 났는지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적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불이 하층만 지나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굴참나무와 졸참나무는 새싹을 피워내고 있었고 진달래는 분혹색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바닥이 검게 그을린 것만 빼면 평온해 보였다. 이유는 무엇일까? 하층 조릿대 덕분이었다. 산림청은 조릿대 때문에 산불을 끄기가 어려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하층 낙엽도 산림청의 주장과는 다르게 많아야 5cm 정도 층을 이루고 있었고 일부는 흙이 들어나 있었다. 산에 비탈진 지역의 낙엽은 겨울을 지나면서 바람에 날려 모두 골짜기로 모이게 된다. 100cm 이상 쌓이는 경우는 드물다. 골짜기에 모여있는 낙엽도 겨우내 내린 눈과 비에 젖어서 불에 잘 타지도 않으며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국립공원의 산불은 지표화에서 끝났으며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져 불이 날아다니는 ‘도깨비 산불’로 이어지지 않았다. 산림청의 ‘숲가꾸기’에서 벗어난 국립공원은 산불에 강한 숲이 되었던 것이다. 인위적인 간섭만 없다면 자연스럽게 산불에 강한 숲이 된다는 것이 들어난 것이다. 이 명확한 대비 앞에서 산림청이 꾸준히 강조해온 ‘숲가꾸기’와 ‘임도 확대’가 모두 실패한 정책임이 여실히 들어났다. 산림청은 숲가꾸기사업으로 숲을 산불에 취약한 숲으로 만들었고 산불 위기 대응에도 실패함으로써 엄청난 국가적 손실과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단 한번도 사과를 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고만 하고 있다. 산림청장은 산불 이후 공식 석상에서 끊임없이 임도설치와 숲가꾸기를 해야 한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하여야 할 말은 ‘임도 추가건설’ ‘숲가꾸기’ 이야기가 아니라 ‘죄송하다’ ‘빠르게 피해 지역민에 대한 피해 복구가 징행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 한마디인데 말이다. -
정정환 04-10 16:07
산청, 하동, 지리산 산불 긴급 기자회견
4월 10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경남환경운동연합, 지리산사람들,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하동참여자치연대, 산청함양난개발대책위에서 경남 산청, 하동, 지리산 산불과 관련하여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습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산림청의 숲가꾸기 사업과 임도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문제제기와 산불 현장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산림청의 주장과는 다르게 숲가꾸기를 진행한 지역인 하동 두양리와 산청 중태리 일대의 산불은 피해가 심각했으며 불이 수관화(산불이 나무를 타고 나무의 가지까지 올라오는 상황)로 이여져 산불이 바람을 타고 산을 넘어 갔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일부 주민의 집은 전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소나무 위주로 관리한 소나무림은 모두 고사한 것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사진은 맨 아래 사진을 참고) 그러나 산림청의 숲가꾸기가 진행되지 않은 자연림임 국립공원구역의 숲의 산불은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았고 지표화에서 멈추었으며 수목에 대한 피해도 사진에서 보듯 거의 없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데도 산림청은 임도가 없어서 산불진화가 어려웠고 숲가꾸기를 하지 않아 진화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거짓말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현장에 있습니다. 현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산림청은 산불 대응에도 실패하였습니다. 민가로 불이 내려오는 것 부터 막아야 할 산림청은 헬기만 투입시켜 산위에 불만 잡으려 하고 있었고 이러고 있는 사이 마을에 있는 일부 집들은 불에 전소하였습니다. 여기에 책임을 느끼고 사과를 하고 지역민의 터전을 복구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산림청장은 임도 이야기나 하고 있습니다. 뭐가 중요한지 모르나 봅니다. 지금 임도, 숲관리에 대한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터전을 잃은 주민과 생명들 여기서 희생된 사람과 생명들, 그리고 그 가족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것이 먼져입니다. 산불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숲이 산불에 강한 숲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산불로 활엽수는 산불에 강하며 소나무 처럼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아 산불이 바람을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도깨비 산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산불관리와 숲 관리에 실패한 산림청은 숲 관리에서 손을 때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숲을 망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서 생명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아래는 4월 10일에 있었던 기자회견 전문입니다. 임도 확대와 숲가꾸기 사업은 산불 방지의 대안이 아니다. 산림청은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하라!!! 최근 전국적으로 일어난 산불의 원인을 두고 산림 전문가 등은 “소나무는 죄가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소나무는 죄가 없다. 산림청이 주장하는 임도 확대 주장과 관련, 상반되는 의견으로 임도 논란도 뜨겁다. 임도 또한 죄가 없다. 그럼 누가 죄인인가! 2025년 산림청은 2024년 대비 120억 원이 증가한 2조 6,246억 원 예산을 편성하고 주요 내용으로 ‘일상화·대형화되는 산림재난 대응을 위한 투자’를 한다며 과학적인 산림재난 대응체계로 국민안전 확보를 외쳤다. 많은 예산 투자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산림은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4월 4일 경남환경운동연합은 ‘지리산사람들’회원들과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일대와 산청 지리산국립공원 내 산불피해 지역을 찾았다. 숲가꾸기를 통해 조림이 이루어진 곳과 숲가꾸기 사업으로부터 산림이 보호되는 국립공원 내 산불 피해 양상은 달랐다. 소나무 중심으로 숲가꾸기를 한 곳은 수관화(지표화로부터 발생한 불이 나무의 잎과 가지를 태우면서 수관으로 강한 화력이 퍼지는 위험한 불)가 발생, 대형 산불로 이어진다. 수관화로 상승한 불똥이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현상인 비화는, 다른 곳에 옮겨 붙어 새로운 산불을 만든다. 도깨비불처럼 날아가는 불똥은 바람을 따라 최대 2km도 날아간다. 보도에 따르면 2009년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불똥이 최대 35km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숲가꾸기를 통해 지표층이 정리된 곳은 바람의 통로가 되어 산불 확산의 원인이 된다. 이때는 소방헬기는 물론 인력으로 진화가 어렵고 인근 주민의 대규모 인명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소나무 조림지는 산불 규모, 확산면에서 활엽수림보다 크고 넓으나 활엽수림대는 산불 확산의 방어선 역할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자체로 수분을 가지고 있는 활엽수는 지표의 낙엽만을 태우며 확산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국립공원 산불피해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우리나라는 온대활엽수림의 식생 상황으로 바뀌고 있으니 숲의 생태에 맞춰 그대로 전이할 수 있게 두어야 한다. 인위적인 조림사업은 숲을 해칠 뿐이다. 국립산림과학원(2017)자료에 따르면, 「침엽수림은 산불에 취약한 수종으로써 수관이 하나뿐인 단층으로 이루어져 불의 통로가 쉽게 나타나고··· 이른 봄에도 수관층에 잎이 붙어 있기 때문에 활엽수림에 비해 연료의 양이 많아 수관화에 취약하다··· 수종 간 확산속도를 분석한 결과, 활엽수는 273.2m/h를 이동한 반면에 침엽수는 364.0m/h를 이동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한다. 4월 7일 하동 산불현장을 찾은 산림청장은 "소나무 등 침엽수는 빠른 산불을 유발하고 활엽수는 깊은 산불을 초래한다“고 했다. 활엽수가 수분함량이 많아 화재 저항성이 강하고 활엽수 낙엽 또한 무겁고 수분 함량이 많다는 사실을 산림청장이 모를 리 없다.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처럼 지중화(땅속의 이탄층이 타는)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산림청장이 말하는 ‘깊은 산불’이란 바람이 없고, 지중화가 일어나 땅속에서 계속적으로 타는 불을 얘기하는데, 정말 오래된 원시림으로 수만 년 쌓인 낙엽이 있어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경북 산불과 산청 산불의 강도 분석 결과> 아래 표는 이번 경북 산불과 산청 산불의 분석 결과 피해강도를 강, 중강, 중약, 약의 4개 등급으로 구분해서 분석한 것이다.(NASA 표준 제시) 강한 피해를 입은 수림대의 92%가 침엽수림이고, 활엽수림의 비율은 약 2%에 불과하고, 6% 정도의 혼효림이 있다. 침엽수림의 거의 대부분은 소나무림인데, 산청 산불은 그 차이가 커서 96% 가까이가 소나무림이다. 중강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 또한 소나무림이 압도적이다. 경북 산불은 75% 정도가 소나무림을 포함한 침엽수림이었고, 활엽수림은 조금 늘어 10% 정도를 차지했다. 약한 피해를 입은 지역(지표화지역)은 활엽수림의 비율이 약간 높은 수준으로 정리된다. 이는 강산을 푸르게 가꾼다는 명목으로 30년간 꾸준히 숲가꾸기를 해 온 산림정책 결과, 활엽수림으로 바뀌지 못하게 만든 것이 대형 산불의 원인임을 말하고 있다. 영상 분석과 현장 경험으로 본 전문가는 중약 이상의 지역은 사람과 차량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산불이 발생했을 때 적어도 대형산불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 숲 관리의 핵심이고 시급한 방법이다. 출처: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 우리나라 임도는 「산림자원법」에서 정의하는 ‘산림 경영 및 관리를 위해 산림청이 설치한 도로’인 간선임도, 산불진화임도, 작업임도를 말한다. 이 임도 전체를 합치면 총 임도 길이가 나오고, 이를 산림면적으로 나누면 임도밀도가 계산되는데, 우리나라 임도밀도는 4.1m/ha이다. 산림청이 임도 확대를 외치며 비교하는 나라가 일본 24.1m/ha,오스트리아 50.5m/ha인데, 2023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미향 의원실 분석 결과 위 국가들의 임도밀도 산정방식과 기준이 우리나라와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단순수치로만 비교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산림청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임도밀도가 낮다며 임도 개설을 위해 해마다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2023년과 마찬가지로 산불 현장을 찾은 산림청장은 국립공원 임도설치를 주장했으나 지리산국립공원 관계자는 국립공원 내 임도 설치는 불가함을 명확히 밝혔다. 현장의 다양한 환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산불 예방책의 모든 해답이 임도로 귀결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임도로 산불 초동 대응은 가능할지 몰라도 대형화된 산불에는 오히려 바람길 역할을 한다. 임도가 조성되어 탈 것을 없애면 산불을 끌 수 있다는 산림청의 말과 달리 임도를 사이에 두고 양 옆이 그대로 불탄 현장을 확인했다. 산불로 불탄 집은 전부 도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끄지 못했다. 임도가 있는 곳에는 불을 껐는가? 임도를 산 곳곳에 설치한다 해도 산불 현장으로 진입하여 불을 끄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립공원 내 산불 피해 현장을 보면, 국립공원이 임도가 없고 탈 것이 많아 불을 끄기 어렵다는 산림청장의 말이 거짓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산불 발생 시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마을로 불이 번지지 못하게 주거지를 지키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조건 산불만을 끄기 위한 진화작업은 문제가 있다. 산림청 산불진화 관련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자연의 생명력과 생태가치를 종종 무시한다. 산청 주불이 잡히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산불 피해현장 잿더미를 뚫고 초록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산불로 많은 생명을 잃고 생태환경이 무너진 뒤에야 교훈을 얻은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산림청은 임도 확대와 숲가꾸기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에 명확한 답을 하고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구성해야 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구역의 산불현장 ▲ 지리산국립공원 구역 안의 산불현장, 피해 정도가 숲가꾸기를 진행한 지역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산불이 지표면만 태우고 지나갔고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아 산불이 크게 확산하지 않았고 그 피해도 적었다. 굴참나무는 코르크층만 그을렸을 뿐 죽지 않았다. 공원구역안의 소나무의 모습, 숲가꾸기가 진행된 다른 숲들과의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사하지 않았음 하층으로 불이 지나갔으나 수관화로 이어지지 았았다. 그래서 소나무숲과 다르게 불이 산에서 산으로 넘어다니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동 옥종면 두양리 산불현장 임도가 산을 돌아 만들어져 있음에도 산불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하동 두양리 임도 주변의 산불 확산 현장 소나무는 타 죽었지만 서어나무는 하부만 불이 지나갔고 죽지 않았다. 소나무는 수관화로 불이 이어졌으며 임도 주변의 소나무임에도 수관화로 이어져 불이 산을 넘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2025. 4. 10. 경남환경운동연합 지리산사람들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
삵 03-25 21:27
새만금 수라갯벌도 그대로, 지리산도 그대로!
새만금 수라갯벌도 그대로, 지리산도 그대로! 오늘 3월 25일,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는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를 촉구하며 1144일째 천막에서 농성하는 친구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내려고 전주에 다녀왔어요. 전날 정환, 아림, 삵 함께 모여 만든 '아주 멋진' 구호 팻말을 들고 전북지방환경청으로 갔답니다. (우리가 만든 팻말을 들고. 사진=지리산사람들.) 새만금신공항 철회촉구 천막농성은 2022년 2월 6일부터 주말을 뺀 날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종시에서 계속돼 왔어요. 곳곳에서 300명이 넘는 많은 분이 천막농성장 지킴이로 함께해 왔다고 해요. 지난 2월 25일 국토교통부 서울지방환경청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전북지방환경청에 접수하면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은 세종시 국토교통부·환경부 청사 앞에서 해 오던 천막농성장을 전북환경청 앞으로 옮겨 오게 되었답니다. 전북환경청이 평가서에 부동의한다면 새만금신공항 계획은 철회됩니다!!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따르면 새만금신공항 부지인 수라갯벌 반경 13km와 그 둘레엔 저어새, 황새, 흰발농게, 금개구리, 삵 등 법정보호종이 무려 64종이나 살고 있다고 해요. 다큐 <수라>를 보신 분들은 더 잘 아시겠지만, 수라갯벌은 수많은 야생동식물이 살아가는 새만금 만경수역의 마지막 갯벌이며 우리 지구의 소중한 일부입니다. 그뿐인가요? 계절마다 다양한 새가 찾아오는 철새들의 집이고, 동아시아-대양주 철새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쉼터입니다. 특히 우리 지구에 5천~6천 명밖에 남지 않은 저어새의 90% 이상이 한반도에서 번식하는데, 수라갯벌엔 그들의 번식지가 세 곳이나 있고, 그 가운데 두 곳은 각각 8km, 10km 안에 있다고 합니다. 수라갯벌이 공항으로 사라진다면 이 소중한 생명들도 함께 사라질 거예요. 수라갯벌이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질 거예요. 불타는 산과 들을 보세요. 사계절이 사라지는 한반도를 보세요. 먹을거리가 줄어들고 가뭄과 홍수가 잦아진 둘레를 보세요. 수라갯벌을 지키는 건 우리 목숨을 지키는 것과 같아요. 오늘 우리 지리산권 시민들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촉구 천막농성장을 방문한 까닭을 아시겠지요? 지리산과 더불어 수라갯벌이 하나라는 걸 이야기하고, 뭇 생명과 함께하는 연대의 힘으로 생태학살을 막기 위해 부동의 촉구 기자회견에 함께했습니다. 지난 2월 12일 전북지방환경청이 남원시가 제출한 지리산산악열차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를 재검토(사실상 부동의) 결정한 데 이어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역시 반드시 부동의 결정하길 바랍니다. 함께하는 일은, 참, 힘이 셉니다. 우리는 이런 시위가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될까' 하는 물음으로 허전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여태껏 많은 생태학살을 막는 일엔 꼭 '연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 힘을 보태 주세요. 목소리를 내 주세요. 왜 여전히 공항이 더 필요하냐고 물어 주세요. 놀고 싶다고요? 같이 놀아야지요. 자기만 비행기 타고 슝슝 놀러 다니며 편하게 지구를 망가뜨리는 게 어떻게 떳떳한가요? 왜 신공항을 짓겠다는 이들이 고개를 들고 다니나요? 이상해요. 그러니 다들 막아 주세요. 신공항도, 골프장도, 케이블카도, 무슨 무슨 막개발 모두 싫다고 해 주세요. 개발이 필요하다면 정말 필요한 곳에 알맞게 해야지요. 왜 갯벌을 없애고, 숲을 없애고, 동식물을 다 죽여서 짓겠다는 걸까요? 이상하잖아요. 그건 정말 끔찍하잖아요. 한 생명으로서 할 짓이 아니잖아요. 놀고 싶으면 함께 놀아야죠. 죽이면서 놀지는 말자고요. 수라갯벌을 그대로, 지리산을 그대로! -
버들 03-25 20:52
[기후+마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도시에서 살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요? 걷기 좋은 도시, 자전거 중심 도시, 공원녹지가 많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그러지 못한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걷기 편한 길이 많고 공원이나 녹지가 가까운 지역에 살면 신체 활동이 자연스럽게 늘고, 정신 건강도 좋아져 결국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들의 특징은 생태 친화적인 도시의 특징과 잘 들어맞습니다.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의 건강한 삶까지 보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요. 대표적인 도시로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프라이부르크, 호주 멜버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코펜하겐은 시민의 62%가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자전거 전용도로가 400km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로 손꼽힙니다. 자전거를 정기적으로 타는 사람들은 심혈관 질환 위험이 30% 감소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코펜하겐 사람들은 기대수명이 높고, 비만율은 10% 이하로 OECD 평균보다 매우 낮으며 천식·호흡기 질환 비율이 낮게 보고되었습니다. 프라이부르크는 도시의 90%가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 도로로 이어져 있기로 유명한데요, 특히 남쪽의 바우젠 지구는 자동차 없이도 생활이 가능한 곳으로 70%가 넘는 주민이 자가용 없이 생활하며 자전거를 주 이동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지구 외곽의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걸어 들어와야 한다고 해요. 또 40% 이상이 녹지 공간으로 공원과 커뮤니티 정원이 많아 주민들 사이 교류가 활발합니다. 프라이부르크 시민의 기대수명이 높고 당뇨병·고혈압 발병률이 독일 평균보다 낮은 까닭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멜버른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약 200만 그루 이상 나무를 심어 왔습니다. 도시 나무 심기 프로젝트라고 부르는데요, 가로수를 좀 많이 심는 정도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녹지 공간을 넓히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2040년까지 멜버른 곳곳에 나무 480만 그루를 심겠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고요? 기후변화로 인한 불볕더위와 도시 열섬 효과를 낮추고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가로수를 더 많이 심어 그늘을 만들고,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며, 방치된 공터를 다양한 나무와 풀이 우거진 녹지 공간으로 바꿔 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도심 평균 기온이 감소하고 불볕더위 피해가 줄었으며 시민들의 건강 지표가 나아졌다고 합니다. 코펜하겐, 프라이부르크, 멜버른의 사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건강한 도시를 만드는 방법을 잘 보여줍니다. 게다가 해마다 심해지는 불볕더위와 홍수, 가뭄에 대비하려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화석 연료가 필요 없는 걷기 좋은 도시, 자전거 중심 도시, 생태계 다양성이 살아 있는 녹지가 많은 도시로 변해 가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그러한 도시는 인간의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길고양이와 풀, 나무, 새, 곤충 모두의 삶에도 좋으며 기후재난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길가 나무 그늘도 물웅덩이도 공원이나 녹지도 없는 도시의 길고양이를 상상해 보세요. 무더운 여름에 사람들이 에어컨을 돌리는 동안 길고양이는 어디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을까요? 작은 생명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에서는 인간도 건강할 수 있겠지요. (가로수 하나 없는 구례의 어느 거리1.) (가로수 하나 없는 구례의 어느 거리2.) (구례읍 어느 작은 골목에 생긴 주차장 공사장.) 그럼 우리 구례는 어떤가요? 지리산과 섬진강 같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볼 수는 있지만, 사람들이 생활하는 도시 안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공원이나 생물 다양성이 살아 있는 녹지가 거의 없고 심지어 보행로도 잘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도시 안 생활용 자전거도로는 보기 힘들고 오히려 야생동물의 서식지 근처에 관광용 자전거도로를 놓아 생태계 파괴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우리 구례는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명이 함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인가요?기후위기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 나무가 있는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기온이 최대 4°C 낮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불볕더위에 대응하려면 나무 그늘 쉼터가 늘어야 하는데, 우리 구례는 주차장만 자꾸 늘고 있습니다. 보행 환경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자동차 운전자를 위한 주차장이나 도로 폭이 늘었습니다. 침수를 예방할 수 있는 흙길이나 녹지 공간 또한 부족해 보입니다. 자꾸 아스팔트로 덮고, 나무를 베고, 주차장을 늘리는 정책은 우리 구례군민의 건강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에게도 좋지 않으며, 앞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살아갈 우리 미래에도 좋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전 세계 여러 도시가 주차장을 없애거나 줄이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주민 건강을 지킬 뿐 아니라 기후위기를 부추기지 않으려는 노력이며, 다가올 기후재난을 예방하고자 하는 정책입니다.이제 주차장이나 도로 폭을 늘릴 게 아니라 걷기 좋은 도시, 생태계 다양성이 지켜지는 도시, 불볕더위나 홍수에 대비할 수 있는 기후변화 대응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이에 덧붙여, 주차장 없는 불편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될 수 있으면 차를 두고 다니려는 마음도 모여야겠지요.내 건강도 지키고 다른 이들의 건강도 지킬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도시는 주차장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내 건강을 길고양이의 건강과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도시입니다.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2025년 3월 경칩 호에 실렸습니다.) -
버들 03-04 21:12
[기후+마을] 감나무에 대한 예의
감나무에 대한 예의 우리 구례는 단감과 대봉으로 이름난 고장이죠. 감 덕분에 살림을 이어가는 감 농부님들도 많습니다. 또 감을 실컷 먹을 수 있어 즐거운 이웃들도 많아 보입니다. 해마다 우리에게 감을 선물하는 감나무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살았을까요? 고려시대인 1138년에 고욤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하니, 짧게 보아도 고려 때에 이미 우리나라에서 감나무속 나무가 자라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감나무는 제법 추위를 잘 견디지만, 겨울철 온도가 영하 25°C 이하로 떨어지면 다음 봄철에 가지가 부서지기 쉽고 새순이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아시아 온대 지방인 중국 중북부, 일본, 한국 중부 아래쪽에서 주로 자라 왔지요. 그렇다면 더위엔 강할까요? 열대지방에도 감나무속 나무가 살고 있긴 하지만 감이 달리지는 않는다고 해요. 열대기후가 되면 감을 먹기 어려울 거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해마다 불볕더위가 늘고 있습니다. 기상청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쓰면 2080년쯤에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남도까지 아열대 기후구에 속하리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렇지만 울릉도 동해 연안에는 벌써 열대 어류가 나타났고, 지리산을 포함한 고산지대에서만 서식하는 구상나무는 말라 죽어 가며, 가을에 남쪽 나라로 날아가야 할 여름 철새들이 한겨울에도 우리나라에서 먹이활동을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서 벌써 한반도에 열대화가 시작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는 사계절 내내 이어진 이상기후로 먹을거리가 사라질 수 있음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봄철 이상고온으로 사과나무는 보통 해보다 2주나 일찍 꽃을 피웠고, 뒤이어 닥친 늦서리로 꽃들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귀해진 사과는 한 알에 5,000원이나 하여 많이들 사과 먹기를 포기했지요. 배추는 어땠나요? 35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가을 들머리까지 이어진 데다 선충 피해까지 겹치면서 고랭지 배추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지요. 지난 추석엔 어땠나요? “이렇게 더운 추석은 처음이다.” 할 정도로, 기온이 30도를 넘었습니다. 당연히 추석 밥상 물가는 껑충 뛰었습니다. 게다가 벼멸구가 무섭게 퍼져 전국 논의 3% 정도가 누렇게 죽었습니다. 그뿐인가요, 11월 첫눈이 어마어마하게 내려 수많은 농가 시설이 무거운 눈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렇듯 한반도 열대화와 예측하기 어려운 이상기후는 먹고 사는 일상을 어렵게 합니다. 앞으로 인류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쓰면, 2070년대에 사과는 한국에서 사실상 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의 주식이 밥과 김치가 아닌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지구 기온이 계속 올라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권이 되면 쌀 그리고 고랭지 배추, 고추 같은 김치용 작물을 재배할 수 없으리라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동남아시아 같은 아열대 기후권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사람이 살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이렇게 빠른 기후변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생물들은 멸종할 수밖에 없어요. 벌써 15분에 한 종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다른 종들이 사라지면 현재 지구의 먹이 피라미드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포식자인 인간 역시 살아남기 어렵겠지요. 참 슬프고 무섭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2024년 들머리에 윤석열 정부는 국내 과일값 폭등 대책으로 해외 과일 수입을 크게 늘리기로 했습니다. 그해 상반기에만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 모두 30만t을 무관세나 낮은 관세로 수입했습니다. 기후위기로 먹을거리가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윤 정부는 사과 대신 바나나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감 대신 망고를 먹으면 될까요? 우리 구례 농부님들은 감 농사 대신 파인애플이나 망고 농사를 시작하면 될까요? 사과나 배추를 외국에서 들여오고,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자고요? 계속해서 먹을거리가 없어질 텐데요? 마실 물과 잠잘 삶터가 줄어드는 이 기후재난 시대에요? 그건 마치 구례군수님의 신년사에 나오는 “1조 4천억 원 규모의 양수발전소, 550억 원 규모의 지역활력타운, 12월에 착공될 오산케이블카, 온천지구에 들어설 산수유 스카이워크와 힐링꽃길, 화엄사 야간 경관 길, 밤에도 빛날 서시천 미디어 파사드 분수, 섬진강 그린케이션”이 기후위기 시대에도 지역을 살려 줄 것이라 믿는 것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오늘날의 기후위기를 가져온 똑같은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풀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감 없으면 망고를 먹자는 생각이 아니라, 우리 감나무가 감나무답게 살 방법을 궁리해야 합니다. 넓은 땅에서 한 작물만 키워 파는 산업형 농업과 목축으로 토양은 생명력을 잃어 갑니다. 강으로 흘러든 비료 성분은 해수면 아래에 산소가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녹조현상을 일으켜 강 생물을 죽게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뿌려진 살충제와 제초제는 벌처럼 가루받이를 돕는 생물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또 가축과 사료를 기르느라 숲을 없애고 엄청난 물을 써 왔습니다.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한 산업형 식량 시스템은 뭇 생명을 죽이며 오늘날의 이상기후를 불러들인 한 축입니다. 왜 이러한 대규모 산업형 농축산업이 전 세계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먹을거리를 더 싸고 편하게 길러 대량으로 유통해야만 싼 임금으로 공장을 돌리고 더 소비를 부추길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돈을 버느라 밥할 시간도 내 먹을거리를 기를 시간도 없는 임금 노동자의 삶을 지탱하기 위해 지금까지 농업은 더 싸게, 더 빠르게, 더 많이 키우기 위한 방식으로 생명을 죽여 오지 않았습니까? 돈만 있으면 1년 365일 삼시 세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삶을 뒷받침해 오느라, 돈만 있으면 가뭄에도 아랑곳없이 골프장과 수영장을 드나드는 삶을 지탱하느라, 숲을 벗기고 물을 써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감나무가 감나무답게, 흙이 흙답게, 강이 강답게 살려면 감을 망고로만 바꾸면 안 되겠지요. 돈이 주인인 삶을 지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숲이 벗겨지고 얼마나 많은 어린이 노동자가 죽었고 얼마나 많은 종이 사라졌는지를, 이제껏 우리는 내 눈으로 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쉽게 그런 풍요를 고맙게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아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지구 밑에 잠들어 있어야 할 화석연료를 꺼내 펑펑 쓴 결과가, 또 돈이 되기만 하면 막개발이어도 환영해 온 결과가, 또 능력만 되면 끝도 없이 성장하는 게 제일이라고 경쟁을 부추겨 온 그 결과가 이제 불볕더위, 홍수, 태풍, 산불, 가뭄, 한파 같은 재해의 모습으로 그리고 먹을 것이 사라지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감나무 덕에 살림을 이어 온 감 농부님들뿐 아니라, 수많은 나무 덕에 삶을 이어 온 우리 인간은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덕이 있다면 이제라도 기후위기를 막는 일에 함께해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불러온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막개발을 그만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먹여 온 감나무에 대한, 나아가 지구에 대한, 예의이자 지구를 함께 사는 종으로서의 마지막 할 일이 아닐까요. 버들(독립 연구자) (이 글은 <봉성신문> 2025년 2월 입춘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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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자락책방] 함양의 온도를 올리는 동네서점 “오후공책”
사월 말이었다. 수달래가 예쁘게 피던 날이었다. 함양의 오후공책을 찾아가고 있다. 오후공책은 23년 4월에 문을 연 함양의 작은 책방이다. 같은 협동조합에 속한 세 사람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따스한 사월의 오후 햇살 같은 미소를 가진 책방지기 두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우리는 책방 안에 있는 4인용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조영선 대표는 출장 중이었고, 김현임 님과 정은경 님이 책방을 지키고 있었다. 오후공책? 이름이 재밌네요. 어떤 뜻인가요? > 처음에는 함양의 귀촌한 사람들이 모여서 책 읽기 모임에서 시작했어요. 매주 한 번씩 만나 책 읽기 모임을 했죠. 함께 책을 읽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고, 함께 죽이 잘 맞아 책 모임을 1년 정도 하게 되었어요. 책이라는 주제로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함께 서점을 준비하면서 협동조합 “오늘”을 만들게 되었죠. 오후공책(5 Who 함께하는 책방)은 협동조합 “오늘”에서 운영하는 독립 서점입니다. 협동조합 오늘,은 삶에 문화, 예술, 놀이, 철학과 가치가 스며들기를 바라며 생활 속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고자 뭉쳤습니다. 책방은 실험을 위한 꿈의 아지트이며, 책, 먹거리, 예술, 놀이 등의 다양한 활동을 도구 삼아 환경, 교육, 성찰, 치유의 바다를 항해할까 합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함양이라는 산골 작은 읍에서 그것도 작은 책방으로 살아남는 것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2년이나 지났으니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네. 맞아요. 서점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아니죠. 그렇다고 아무런 수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거나 최근에는 지역서점 희망도서 바로대출 같은 일도 하고 있습니다. 희망도서 바로대출은 어떤 사업인가요? >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경우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고 내가 지정한 서점에서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지역서점에서 빌려 보고 반납도 할 수 있어요. 정부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책방에 보조금을 주기도 해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저희가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고요. 지금 책 모임 다섯 개 등산 모임과 바느질 모임까지 운영하고 있죠. 저희가 처음 생각했던 책이라는 주제로 지역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책 이야기 마당이나 음악 주제로 모임을 하기도 하고요. 책방에서 책을 읽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글을 쓰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계신가요. 자, 이제는 산에도 가보실래요? 오후공책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네요. > 다양한 일을 만들어 지역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거든요. 다행히 서로 죽이 잘 맞다 보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함께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또 일이 하나 늘어나고 하는 식입니다. 올해는 책 문화제도 해 볼 생각이에요. 책 문화제는 어떤 일인가요? > 김현임(김) : 함양의 작은 서점이 두 곳이 있어요. 그림책을 주제로 하는 그림 책방 “퐁당”이라는 곳이 하나 더 있는데 올해가 그림책의 해라서 그림책을 주제로 체험도 하고 그림책을 보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후공책과 퐁당이 멀지 않아서 가는 길에 책이 있는 거리 같은 것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지금 기획 중입니다. 책방은 모두가 아는 사양 사업 중 하나잖아요. 많이 없어지기도 하는데 사실 창업자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거든요. 책방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 정은경(정) : 저희가 책방 창업을 준비하면서 다른 책방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봤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있는 인문학 교수님이 운영하는 인문학 책방 대표님 이야기를 보니 종일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 며칠 이어진 경우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어요. 사람이 없으면 여기저기 전화도 합니다. 저희가 처음 책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도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_김현임 책방지기 책방을 운영하는 일은 재밌나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책방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누가 봐도 책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어 보이거든요. > 정 : 음. 사실 힘들고 지치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즐겁지 않은 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손님이 거의 없는 날도 있거든요. 그런 날은 제가 책을 좋아해서 손님이 없다면 책을 읽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책을 많이 읽기도 해서 손님이 없는 날도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리고 손님이 없어도 바쁜 일이 많아요. > 김 : 저희가 처음 책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도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시골 책방 문을 열면서 책방으로 집 한 채 마련해야지, 이런 마음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들 이런 점은 공유된 상태였어요. 그래도 책방을 유지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최저 인건비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정도는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정 : 사실 조금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너무 활발해진 것 같기도 해요. 처음 시골에 내려왔을 때는 번잡하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도시에서 바쁘게 살았으니 이제 좀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서점을 하면서 재밌는 일을 자꾸 하고 싶고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은 없어서 약간 아쉽기도 해요. 그래서 짧은 시간이라도 혼자 있거나 숲을 걷거나 합니다. 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재밌어요. 재미가 없다면 못 할 것 같아요. _정은경 책방지기 운영 시간은 어떤가요? 오후공책이니까 오후에만 운영하나요? >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오후 8시까지 운영했는데 6시 이후에는 손님이 거의 없더라고요. 저희도 사실 오후에 좀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바꾸었어요. 그랬더니 몇몇 손님들이 오후에 열지 않아서 아쉽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손님들은 주말에 다시 오시기도 합니다. 저희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열고 있거든요. 사실 추석이나 설 명절을 제하고는 매일 문을 열고 있어요. 저희 서점은 세 명이 운영하고 있어 가능하거든요. 일주일에 한 사람이 2번에서 3번 정도 나오면 되니까요. 뭐 함께할 일이 있으면 모두가 출동하기는 합니다만.... 힘들지는 않나요. > 정 :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재밌어요. 재미가 없다면 못 할 것 같아요. 아직은 뭐 할 만하고 좋아요. (책 외에도 음료와 의미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많은 책방이 책보다는 음료 판매나 기타 수익이 더 많은 경우가 있던데 오후공책은 어떤가요? > 정 : 함양에서 책을 구매하는 분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말에 여행을 오시는 분들이 책을 구매하는 편입니다. 월 150에서 200권 정도가 판매돼요. 우리 책방에 책이 천 권 정도가 있어요. 공공기관에 납품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통해서 책을 판매하기도 하고 프리마켓에서 책을 팔기도 합니다. 책을 판매하기 위해 분투 중이시네요. > 김 : 책방이니까 책 판매가 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밖에서 보면 한가롭게 책방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열심히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고 봐야겠죠. 오후공책만의 책 선별 기준이 있을까요? 공간이 크지 않다 보니 진열 공간도 부족할 것 같고요. 각자의 취향이나 판매도 해야 하니까요. > 정 : 음… 세 명이 한 책장씩 선별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소설을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선택한 곳도 있고, 환경이나 에세이를 좋아해서 그런 책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그림책을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고른 책도 있고요. 팔릴 만한 책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운영하는 세 명의 취향이 담긴 책들이죠. 팔릴 만한 책과 취향과의 마찰이 있기는 해요. 책은 문화이자 상품이니까요. 독립 출판사들의 책도 많은데 독립 출판사 책은 잘 팔리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씩 구매해 주는 사람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1년에 3번 정도 안 팔리는 책들은 반품하는데요. 반품하면 대부분 폐기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최대한 팔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에 대한 예의라고 할까요! > 김 : 제가 서점을 시작한 이후에 여행을 가면 지역 서점들을 많이 찾거든요. 책방에 들어서면 그 책방지기의 취향이 알겠더라고요. 책방이 없는 곳도 있는데 그런 곳은 왠지 모르게 삭막해 보이고 차가워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오후공책은 함양의 온도를 2도 정도는 올려 주고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저에게 추천할 만한 책도 있을까요? > 정 : 저는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보고서>를 추천해요. 최근에 김금희 작가에게 푹 빠져 있는데, <나의 폴라 일지>라는 에세이 추천해요. 기회가 있다면 읽어 보세요. 책방을 창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시겠어요. 저도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거든요. 대학 때 후배 한 명이 선배는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책방 해 볼까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못하고 있네요. > 두 분 모두 : 누군가 하고 싶다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매력이 있는 일이니까요. 수익은 보장이 안 되지만요. 그래도 역시 좋은 일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고 저희는 사실 아직은 만족하고 있거든요. (책방을 짓는 과정 ) 오후공책도 음료를 판매하시는데 수익은 어떤가요? > 매출은 책이 많은 편이지만 책은 이윤이 많지 않으니까 음료 판매가 아무래도 수익은 더 많은 편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아요. 거의 반반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는 책이 중요하고 책을 고르거나 읽는 데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믹서기를 사용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드립커피만 제공하고 있어요. 맞아요. 요즘 카페에 가면 얼음 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기는 하더라고요. > 그래서 오후공책은 믹서기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지역과 함께하기 위해 만드는 음료나 식자재들은 가능하면 지역 농산물을 이용합니다. 지역의 딸기를 사용해서 딸기 음료를 만들고 지역의 생강으로 생강 음료를 제공하고 있어요. 많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이 중요하죠. 그 외에도 비닐 없는 책방, 숍인숍으로 제로웨이스트 상품 같은 것을 판매하기도 해요. 액체세제 리필스테이션을 운영 합니다.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어요. 책방이나 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요즘 책 읽는 사람들이 정말 없잖아요. 제가 보기엔 가장 책을 많이 읽는 나이는 가장 어린 나이 때일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님들이 그림책을 정말 많이 읽어 주잖아요. 그러다가 점점 아이가 크면 책이 학습지가 되고 또 문제집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하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듣기도 하고요. > 김 :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접하는 소식도 그렇고 사람에 대한 관심도 빨리 생기고 식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책을 읽는 속도는 변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저는 책을 읽는 속도가 다른 인간에게 적절한 속도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가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고 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책 읽는 속도로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에게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만화책이라도 읽으면서 뒹굴뒹굴하는 여유를 주는 것이 책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문해력도 결국 책을 많이 읽지 않아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 정 : 저는 책을 읽는 이유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해요. 책을 읽고 있으면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 같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책은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것은 인공지능이 채워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는 인간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요. 주류는 못되겠지만 아웃사이더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요. 나른한 오후에 햇살이 책방을 비추고 있었다. 책과 책방이라는 주제로 수다를 떨다 보니 인터뷰라기보다는 책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함양에서 작은 지역 책방으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이 있다면, 그 마을엔 온기가 깃든다.” 서점 하나 없는 곳은 어쩐지 삭막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읽은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따스한 햇살 아래, 책을 읽으며 살고 싶어.” 사월의 오후의 햇살이 오후공책에 따스하게 들어왔다. 그 안에는 마음이 지칠 때,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 때, 혹은 그냥 조용히 무언가가 그리울 때, 따뜻한 음료와 책이 함께 위로를 건네는 작은 책방이 있다. 그곳에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정성껏 맞이하는 책방지기가 있고, 한 권의 책을 통해 마음을 건네는 책이 있었다. 책이 그리운 날, 혹은 햇살 좋은 날, 책방으로 여행을 가고 싶은 날 향기로운 음료 한 잔과 함께 조용한 책이 있는 공간을 찾는다면 함양의 ‘오후공책’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책과 햇살,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당신도 분명,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오후공책 책방 여는 시간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추석과 설날을 빼고 매일 오픈 함양읍 한들로 67번지 글 조태용 사진 김인호조태용 04-26 14:17 -
[지리산자락책방] "지역에서 인정받는 책방이 되고 싶어요"
구례읍 봉서리 귀퉁이에 문을 연 작은 동네서점이 있다. 오가며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들어가 보지 못했다.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서점은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는 900개 정도의 작은 서점이 있고, 대부분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이제 막 삼 년 차가 된 봉서리 책방은 나름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다. 봉서리 책방 대표 장 승준 님은 오랫동안 책방을 하고 싶었단다. 서점을 시작하기전 5~6년 동안 한 번은 해야지 했는데 어느 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이미 부동산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봉서리 책방은 개업했다. 그는 순천에 산다. 순천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오간다. 구례구역에서 내려 봄가을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요즘 같은 겨울엔 구례구역에 차를 두고 이동한다. 그가 그렇게 출퇴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엔 비용을 줄이지 않고는 서점을 오래 할 수 없어요” “작은 비용이라도 줄여서 예순 다섯까지는 하고 싶어요? 돈 안 되는 서점은 왜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책하고 친했죠. 아이들이 다 컷서 이제 돈 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 시기가 온 거죠. 그래서 오랫동안 해도 싫증이 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저에게는 책방이었죠” 사실 오래전부터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고요. 흔한 말 중에 취미가 일이 되면 지속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책방은 독서라는 취미와 일이라는 두 가지를 함께 해도 좋을 것 같았죠. 그리고 제 생각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책방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아요. 하지만 책방 일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오래 하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돈을 안 쓰고 있어요. 그래서 버스도 타고 다니고요. 돈 벌이가 적은데 많이 쓴다면 당연히 운영이 어렵겠죠. 돈을 적게 쓰고 하고 싶은 책방 일을 오래 하는 것이 제가 3년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뭐 그렇다고 전혀 수익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최소한 생활을 하고 서점을 유지할 만큼은 벌고 있어요.” 처음 책방을 하려고 준비할 때 서점을 운영하시는 한 분이 “돈 못 버는 정우성” 데리고 사는 것 같다. 는 말씀을 하셨어요. 서점이 돈은 안 되고, 모양새는 나는 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라면 서점을 시작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이라는 것은 수익이 없다면 안 되죠. 저는 수익이 없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해보니까 결과는 어떤 가요? 생각보다 쉽지도 어렵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개업 했을 때는 5일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책만 읽다가 퇴근했습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지역에 책 좋아하시는 분들이 한 두 명 찾아오시기 시작했어요. 책을 읽고 싶고,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구례에는 그런 책방은 없으니까요. 그런 분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니까 점점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책방을 운영하기 전에는 뭘 하셨어요? 다른 직업도 있었을 텐데요. 책방을 하기 전까지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구례는 국립공원 일을 하면서 연이 있는 곳이고요. 영어 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책방 운영의 장점은 뭔 가요?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요. 책은 주제가 있고 내용이 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 각자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죠. 찾는 책을 찾아 주거나 절판된 책들을 찾아주는 일도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봉서리 책방만의 책 선택기준이 있나요? 처음에 제가 좋아하거나 읽었던 책들을 주로 판매했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들이라 고객과 소통도 가능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책방이 제 개인 서가가 되어 버리더군요. 그래서 가능하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배치하려고 합니다. 손님들이 찾을 만한 책들과 제가 좋아하는 책들을 절충한 것이죠. 그리고 가끔은 저에게 이런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 분들은 정말 감사하죠. 책방 주인의 책 선택 기준까지 파악해서 추천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저도 점점 어떤 책을 골라야 하나 어렵기도 하고요. 만약 서점을 개업하고 싶어 하는 분이 추천 하시겠어요? 결국 결심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확고한 생각이 있다면 결국 하겠죠. 그리고 서점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니 지구력이 있으면 할 수도 있죠. 그래도 그냥 폼으로 한다면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적어도 서점으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정도의 마음준비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서점이 책 판매로 수익이 한정적이라서 음료나 술을 팔거나 공간 대여 같은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방도 음료를 판매하고 계시고요. 음료 판매가 운영에 도움이 많이 되나요? 음료 판매로 임대료 정도의 수익이 나옵니다. 처음에 커피만 팔았어요. 그런데 커피를 안 마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커피와 차 두 종류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커피는 책과 잘 어울려서 팔고 있고요. 다른 음료 두 종류도 팔고 있어요. 달콤한 청을 넣은 음료와 달지 않은 음료 이렇게요. 단 음료를 싫어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출판 기념회나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공간 대여를 원하면 빌려주기도 하고요. 독서 모임도 자연스럽게 생겨 매주 일요일 오후에 하고 있습니다. 저도 회원으로 함께하고 있지만 조용히 있는 편입니다. 도서 모임에서 지금 어떤 책을 읽고 계신 가요? 시저의 갈리아 원정기를 읽고 있어요. 매번 책을 선정해서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책을 좋아하는 한 회원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좋더군요. 같은 책이라도 생각하는 방향은 다 다를 수 있잖아요. 같은 책을 읽었지만 나와는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배울 수도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책방을 방문한 분들에게 책을 추천하기도 하시나요? 추천은 가급적 안 하는 편입니다.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어 서요. 그리고 추천해도 관심 없는 분야가 아니면 관심도 없고요. 그래도 꼭 추천해 달라고 하면 얇고 저렴한 책으로 추천합니다. 비싼 책을 추천하면 오해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책의 선택 기준이 주관적이 상대적이라서 추천도 쉽지 않더라고요. 만약 고객이 호기심이 있는 책이고 그 책을 제가 읽은 것이라면 내용을 이야기해 주기는 합니다. 운영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화요일이 휴무일입니다. 화요일을 빼고는 매일 12시에서 6시까지 운영해요. 처음엔 11시에 했는데 오전에 일이 있어 지금은 이 시간에 하고 있어요. 가능하면 영업시간은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구례 봉서리에 책방을 내신 이유가 있을까요? 구례 사람들 중에 이 동네 안 와본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읍내가 사람들이 많은 장소가 좋지 않을까요? 처음엔 도서관 옆에서 하고 싶었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봤는데, 이 책은 소장해서 줄도 긋고 싶고 그런 책을 만나면 제 책방에서 사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지인을 통해서 여기 장소를 알게 되었는데 저도 모르게 여기서 책방을 하고 있더라고요. 하하 동네서점이 운영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책을 많이 구매하지 않은 경향도 있지만 온라인에서 동네 책방보다 책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요? 보통 인터넷 서점은 10% 할인 5% 적립해 줍니다. 하지만 동네 책방은 그렇게 운영하기 어렵거든요. 책 마진은 보통 30% 장도니까 그렇게 하면 수익이 거의 없겠죠. 가끔 책방에 와서 책을 고르고 난 다음 책 사진만 찍고 나가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경우엔 대부분 온라인에서 구입하려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속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도서 정가제를 원하는 것이겠죠? 네. 하지만 요즘 분들이 도서정가제를 납득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떤 제품이든 자율적으로 할인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니까요. 그나마 지금은 10%라는 기준이 있어서 그래도 할 만하죠. 앞으로 목표가 있나요? 제가 서점을 하기 전에 전국에 있는 서점들을 많이 찾아가 봤어요. 지속 가능한 서점은 지역 사람들이 찾고 인정받은 곳들이었습니다. 저도 이 지역에서 인정받는 책방이 되고 싶어요. 3년이면 인정받은 것 아닐까요? 아직은 좀 아니고요.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지역 분들에게 친밀하고 함께하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몇 분의 손님들이 책방을 찾았다. 오자마자 음료를 주문하고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단골손님이라고 했다. 또 한 분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거의 한 시간 동안 책방에 들어와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늘 처음 오신 손님이라고 했다. 요즘엔 책은 대부분 온라인을 구입한다. 나 역시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하는 편이다. 보통 온라인 책방에 접속하면 내가 원하는 책을 검색해서 바로 구매한다. 책을 둘러본다는 개념은 사실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책 저 책 고르기보다는 내가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 책만 달리기하듯 고르고 배송되는 날을 기다리는 식이다. 하지만 오래전 서점에 가면 이 코너 저 코너를 돌며 책 산책을 했었다. 지금 온라인 서점에는 이제까지 대한민국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을 만큼의 책을 구입할 수 있다. 원하면 해외 서적도 클릭 몇 번으로 구입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는 책방을 걸어 다니면 이 책 저 책 골라보는 재미는 없다. 오랜만에 책을 오랫동안 고르고 있는 분의 모습을 보니 책방의 감성이라는 것은 역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성을 찾는 독자라면 지금 봉서리 책방에 가보면 좋을 것 같다. 사진-김인호조태용 02-14 11:40 -
[반달곰1%가게유람기] 너무나 사랑스러운 로컬 소품숍, 호호의 숲
피아골 겨울의 한 복판에 찾아간 호호의 숲 앞마당은 여느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은 마을 어귀부터 다정한 손글씨로 쓴 팻말이 ‘여기로 가면 호호의 숲입니다’라고 말을 걸어왔다는 정도. 겨울 풍경 속에 갇힌 마당에서 주인장을 어떻게 불러낼까 고민하던 중인데 미닫이가 스르르 열리면서 그녀가 나타났다. 호호의 숲 주인장인 류호화 님이다. 운명 같은 시작 그녀의 반가운 안내를 받으며 실내로 들어서자 흐린 바깥 풍경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알록달록 동화적인 색감의 사랑스러운 소품들로 가득한 호호의 숲을 누군가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선물가게 같다고 했단다. 필자의 눈에도 이곳은 악이라고는 스밀 수 없는 순수한 동화세상 같았다. 휘둥그레 뜬 눈이 분주해지면서 갑자기 기분이 둥실댔다. 정성 담긴 사랑스러운 소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걸까? “원래 이 공간은 숙박을 했던 곳이에요. 그런데 제가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걸 워낙 좋아해서 대나무공예를 배웠거든요. 저기 달려 있는 대나무 등은 죽예회 회원과 함께 만든 거예요. 저 등을 완성해서 저곳에 다는 순간, 아 이제 숙박을 접고 소품숍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마치 소품숍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는 듯이 그녀가 말한다. ‘호호의 숲’이라는 숍의 이름 역시 그녀의 별명인 ‘호호(년식이 좀 있는 사람들은 알 만한 TV만화영화 시리즈 주인공이다)’에, 자연에서 온 것이나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 자연과의 협업이라는 의미를 담은 ‘숲’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지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6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21년 7월 호호의 숲을 열었다. 처음에는 호화 님처럼 꼼지락거리는 걸 좋아하는 지인 10명의 작품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는 패브릭과 유리공예, 나무공예, 손뜨개와 자수, 그림 등 구례와 하동 등지의 작가들 60여 명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호호의 숲을 먼저 알고 찾아오는 작가들도 있다. 자연의 사계, 그 색을 담은 작품들 류호화 님은 사실 구례에서 전설처럼 남아 있는 플리마켓 콩장의 운영자였다. 나중에는 남원, 광양, 순천 등지에서도 셀러들이 모이고 콩장이 열리는 날에 맞춰 가족나들이를 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성공적인 자리매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8년 여의 기간 동안 애정을 가지고 알차게 꾸려오던 콩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콩장이 열리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녀는 이제 다시 판을 벌일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얘기한다. 해서 누군가 에너지 만땅인 사람이 시작한다면 박수치고 손을 더해줄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지금 호호의 숲 작가들도 실은 콩장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성껏 만든 지역의 핸드메이드 작품들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리고 작가들도 호호의 숲과 함께 3년 동안 많이 성장했어요. 제가 워낙 자연을 좋아해서 작가분들께 사계절을 모티브로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하고 손님들이 좋아할 것 같은 포인트를 이야기해드리기도 하거든요. 작품에 자연의 색과 모습을 담으면서 결이 비슷해지고 공간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그녀가 내어온 다과상에도 겨울과 봄이 담겨 있었다. 호호의 숲에서 판매하는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티 매트, 벚꽃모양의 작은 차받침 역시 호호의 숲에서 판매하는 소품이다. 워낙 정성 들인 수공예품들이 많다 보니 한 번에 대량생산은 있을 수 없고, 그래서 하나하나의 가치는 더 귀하다. 소품뿐 아니라 차, 밤잼, 꿀 등 지역의 생산품도 판매한다. 이 날의 웰컴티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꾸지뽕차였다. 구수하고 달큰한 차향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손님이 많지 않을 때 방문하는 운 좋은 손님들은 이렇게 정성 담긴 다과상을 받을 수도 있다니, 피아골 골짜기까지 찾아오는 길은 쉽지 않겠지만 일단 호호의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의 만족도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손님 중에는 호호의 숲을 통째로 서울로 가져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호화님이 직접 그리고 적어 작품을 소개하는 이름표를 사고 싶다는 손님도 있단다. 자연은 살아가는 힘이 돼요 호호의 숲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마을어르신들이 이런 외진 동네에 가게를 하니 사람이 찾아올까 걱정을 했다는데, 이제는 소문이 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도 곧잘 찾아온다. 언덕길을 오르느라 숨을 헐떡이기는 하지만. 또 찾아오신 손님들 중에 네댓 팀은 다른 지역에 소품숍을 내기도 했으니 호호의 숲이 주는 영향력을 알 만하다. 그런데 어떻게 피아골 마을 안에 자리잡을 생각을 했을까. “소개로 오게 되었는데, 뭘 몰랐어요. 자연을 좋아하는데 제가 겁이 많아요. 그런데 여기는 산 속에 있는 마을이라 멧돼지, 고라니, 족제비 같은 야생동물들이 많이 내려오거든요. 한 번은 마당에 이불을 널었는데 저녁에 갑자기 비가 오는 거예요. 이불을 걷어야 하는데 무서워서 못 나가고 그대로 비를 맞혔어요. 그런데 4, 5년이 지나니까 어느 여름날 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풀을 뽑고 있는 거예요.(웃음)” 이제 집 앞 수로를 허둥지둥 건너는 멧돼지 가족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앞산에 있는 복숭아나무 열매는 야생동물에게 양보한 지 오래다. 봄, 여름, 가을 계절마다 마당에 앉아 있으면 이곳에 사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소리에 잠을 깨고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준비하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그녀에게 힐링이자 살아가는 힘이다. 그래서 그녀는 최소한의 다짐이 있다. 나로 인해 자연에 해를 끼치지는 말아야지 하는. 남들은 이쁘게 집 짓고 살라지만 내가 인공 구조물 하나 더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고, 이쁜 쓰레기를 만드는 포장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호호의 숲에서는 포장재를 재사용하고 습자지로 소포장한다. 자연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하는 다짐이다. 반달곰 1%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게 하고, 실천하는 삶에 한 발이라도 얹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이 다른 이들에게 공명처럼 전해지면 좋겠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4년 현재 10개 가게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강은경 02-08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