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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규 09-21 11:09
소설小雪
소설小雪 송창섭 11월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손끝에서 시장기가 도집니다 지금쯤이면 시장통에서 흑설탕 밴 호떡을 팔지도 모릅니다 마당에 둔 밑이 둥근 절구를 보다가 곁눈질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새 자란 남천은 기온이 떨어질수록 작고 붉은 열매로 새를 불러들였고 나뭇잎 지는 일이 예사롭지 않아 운명이 그와 같을 거란 얘기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코스모스를 두고 미쳤다는 아낙의 푸념이 남의 일 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개울 물소리가 누그러지길 기다려 옷을 꿰입고 산을 올랐습니다 하루를 버리듯 등지는 뒷산 마루의 그림자에 때 이른 눈이라도 쥐어 보낼까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조금은 놓일 것 같습니다 ========================= 시에 보이는 배경의 풍경들이 가지고 있는 팽팽한 긴장감들이 압권이다. 시장통에서 장사하고 있을 아낙네와의 전화. 그 내용은 ‘나뭇잎 지는 일이 예사롭지 않아 운명이 그와 같을 거란 얘기’와.. ‘코스모스를 두고 미쳤다는 아낙의 푸념’이다. 그리고 이 전화 내용과 마지막 연의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조금은 놓일 것 같다’는 그 구절을 통해 펼쳐지는 상상이 소설(小說, 小雪) 한 편이다. 시가 이래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감추고 그냥 상황과 그 풍경만 서로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게 그려내는, 그래서 읽는 이들이 마무리 짓게 하는 시. 물론 시나 예술에 있어서 무엇이,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부분의 시들이 마음을 드러내고 싶어서 조급한 시들이고 이런 시들이 적다는 것이다. -
박두규 09-21 10:55
‘프라우트 사회’를 꿈꾸다
‘프라우트 사회’를 꿈꾸다 모든 선거는 누가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되느냐가 아니라, 사실은 어떤 나라를 꾸려나가느냐의 첫 단추일 뿐이다. 우리는 한때 누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금방 올 줄로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간정부가 들어서도, 일생을 민주화 투쟁을 했던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가 원하던 나라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원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보지도 못했다. ‘프라우트 사회’는 현실사회로 봐서는 이상주의적 측면이 강하지만 그래도 자본주의를 끝내고 도래할 세상으로 가장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데 한 번쯤은 살펴볼 만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맛보기처럼 잠깐이라도 그 사회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프라우트 사회는 요가명상 수행공동체인 아난다마르가의 창시자 P.R.샤카르(슈리슈리 아난다 무르띠)로부터 나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탄생되었으며 네오-휴머니즘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현실세계에서 구현시키고자 하는 사회, 경제,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다. 프라우트 경제체제의 핵심은 자기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 활용하는 한편, 수출입의 의존도를 줄이고 의, 식, 주, 의료, 교육을 자급자족하는 체제를 목표로 하며 농업(농산물가공 및 농기계 산업 포함)의 비중이 40-50% 정도가 되는 반면에 서비스 부분은 10%를 넘지 않는 산업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과에 따른 임금의 차등을 인정하되 최저소득과 최고소득의 차이를 자본주의 체제처럼 무한정으로는 인정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소득과 부의 상한선을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설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농업을 비롯하여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다양한 공업부문에는 도덕성과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바람직한 협동조합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노동과 자본이 분리되지 않는 협동조합식 기업구조 속에서 일자리와 적어도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임금을 누구에게나 보장하는 제도이다. 특히 자본의 역할이 그 투자된 지역에 남아서 그 지역의 생산성을 제고하는 기능을 하게 해서 자본의 유출과 인재의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체제는 정당정치를 지양하고 풀뿌리 자치제도에 근간을 둔 정당공천이 아닌 인물 중심적 선거제도를 수립하는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분립의 체제가 통상의 민주주의 국가처럼 그대로 유지되지만, 프라우트에서는 “원로기구”라고 하는 주민들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그 지역의 도덕성과 경륜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높은 의식을 가진 사드비프라 급의 자기 통제력과 도덕성,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진 영적 수행자 조직이라고 할 수 있으며 평소의 비 선거기간에는 공직자들의 활동을 감시하며, 주민과 이들 3권 기관 간의 의사소통의 채널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선거기간에는 그동안 공직자들의 활동 상황을 선거인단에게 자세히 알림으로써 도덕성과 업무 능력이 잘 갖추어진 공직 후보자들이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프라우트는 Progressive Utilization Theory(진보적 활용 이론)의 약자(PRO+U+T)로서, 모든 우주상의 존재들이 같은 원천에서 나왔으며, 그 원천은 바로 “동체대비”의 사상을 그 기저에 깔고 있다. 그러므로 프라우트 철학에서는 모든 존재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형제자매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모든 존재들 중에서 가장 정묘한 마음을 가진 생명체로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이 우주상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자신들의 길(道)을 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세계의 적지 않은 곳에서 이미 프라우트 모델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으며, 인도에서는 일부 풀뿌리 지역선거에서 프라우트의 강령을 내세우고 선거에 출마하고 있는 상황이다. 덴마크에 프라우트 본부(www.prout.org)가 있으며, 호주에는 프라우트의 이론과 실천 방안을 가르치는 대학과정(www.proutcollege.org)의 코스를 상주 및 온라인 강의를 통하여 제공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의 SMU 대학의 세계적인 경제학 교수인 라비 바트라(Ravi Batra)는 세계경제 대공황 및 프라우트와 관련된 베스트셀러, “1990년의 대공황”을 포함한 많은 책을 저술하였고, 세계 순회강연과 온라인 교육(www.proutworld.org)을 통해서 프라우트를 알리고 있다. 베네수엘라에는 프라우트 연구소(www.priven.org)가 있어 이론적 연구와 함께 프라우트 제도를 사회에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프라우트는 생태계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네오휴머니즘의 사상에 기반을 둔 물질적, 정신적, 영적인 면이 모두 고려된 통합적이며 총체적인 대안이라는 점에서, 미래사회의 모델을 만들어 가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시하고 있어서 깊은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저런 정치적 사건들로 인해 사회의 의식이 매우 높아졌다. 이렇게 확장된 의식 속에서 선거가 치러지고 진정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이 프라우트 사회가 가지는 철학과 삶의 방식을 우리에 맞게 가져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바야흐로 계절은 또 바뀔 것이고 우리는 이제 모두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
김인호 09-19 08:40
토란꽃
「섬진강 편지」 -토란꽃 '100년에 한 번 피는 꽃'이라는 토란꽃입니다. 1 5년 전에 악양 평사리에서 처음 보고 이번이 두 번째이니 100년까지는 아니지만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은 아니지요. 토란꽃이 피었으니 와보라는 선배의 연락을 받고 만나러 가서 토란밭에서 일하시던 꽃보다 더 환한 산동아짐의 미소까지 담아왔습니다. 토란이나 고구마는 아열대성 식물로 우리 기후에서는 생육기간이 부족하여 채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데 토란꽃, 고구마꽃이 자주 핀다는 것은 기후가 바뀌어 가고 있는 까닭이겠지요. 쉽게 볼 수 없는 꽃이라 토란꽃을 보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도 있고, 꽃말도 '행운', '그대에게 소중한 행운'입니다. 이 아침 편지에 그득한 섬진강마을의 안개와 토란꽃의 행운을 실어 보냅니다. 또 이 아침은 좋아하는 박두규시인이 조태일문학상을 받는 날이라 태안사에 가서 오랫만에 보는 얼굴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하는 아침이기도 합니다. -
김인호 09-07 21:00
섬진강 무지개
「섬진강 편지」 -섬진강 무지개 윗녘에 내린 비로 불어난 강물이 탁해졌습니다. 구월, 첫 아침 구례에서 곡성까지 섬진강변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 강에서 선연한 무지개가 피어올랐습니다. 상서로운 기운입니다. 네팔에서 기적 같은, 기쁜 소식이 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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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통 오일장이 무허가? 일심철물 60년, 산동 오일장과 함께한 세월 - 임순덕 어르신 인터뷰
구례 산동에는 100년 역사의 산동오일장이 있습니다. 그 장터 곁을 60년 동안 지켜온 일심철물, 그리고 그곳의 주인 임순덕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한때 구례에서 두 번째로 유명했던 산동 오일장은 지금은 허가조차 없는 상태로 명맥만 겨우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오늘도 장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들어봤습니다. 산수유와 맑은 물, 맑은 공기로 유명한 산동면. 그 산동의 오일장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지리산사람들TV는 지리산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00:00 인트로 00:31 산동 오일장 일심철물을 찾아서 01:41 산동 오일장은 2일, 7일장 02:05 60년 세월, 일심철물의 시작 02:34 100년 역사를 지닌 산동 오일장 03:38 하루아침에 무허가 오일장이 된 이유 05:21 코로나와 인구 감소, 쇠퇴하는 오일장 05:56 산동 오일장이 다시 활기를 찾았으면 06:56 8개 면 중 가장 컸던 그 시절 산동장 09:09 남편과 함께 일군 철물점, '일심'이라는 이름 11:41 현재 산동오일장의 모습 13:38 다시 활기를 찾기 위한 조건들 15:07 산동 자랑 – 맑은 물, 맑은 공기, 친환경 농산물 16:25 임순덕 어르신이 그리는 희망 #구례 #산동 #산동오일장 #오일장 #전통시장 #지리산 #구례여행 #산수유마을 #일심철물 #임순덕 #시골할머니 #인생이야기 #지리산사람들tv #구례산동면 #오일장투어 #윤주옥이지민 09-23 19:43 -
3,855Km 송전탑의 그림자 - 용인반도체산단, 지방은 에너지 식민지인가 / 남원시송전탑백지화대책위원회 김진수위원장 인터뷰
용인반도체국가산단으로 향하는 초고압 송전선로가 지리산을 품은 남원·구례를 관통합니다. 지리산사람들TV가 남원시송전탑백지화대책위원회 김진수 집행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산악열차 백지화 투쟁을 함께했던 그가 이번에는 송전탑 문제를 들고 왔습니다. 전국 54개 지자체, 3,855km에 달하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 계획. 왜 우리 지역과 상관없는 전기를 위해 지리산권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내줘야 하는지, 입지선정위원회는 왜 요식행위에 불과한지, 이재명 대통령의 약속은 왜 지켜지지 않고 있는지 김진수 위원장이 직접 설명합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이 분리되는 구조, 지산지소(地産地消)가 왜 국가적으로도 더 합리적인 선택인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들어보시죠. 00:00 인트로 01:09 남원시송전탑백지화대책위원회 김진수 대책위원장 02:06 지리산과 함께 자란 어린 시절 03:15 계속되는 지리산 개발 사업, 그 근본 원인 04:26 고기댐의 교훈: 개발이 부른 역효과 085:25 3,855Km - 호남의 전기가 용인으로 향한다 11:16 '한전만을 위한 법' - 입지선정위원회의 실체 15:04 갑자기 날벼락처럼, 주민들이 분노하는 이유 17:05 용인반도체산단 선정의 문제점 - 공모 마감일에 선정 01:21 이재명 대통령의 약속 "송전탑은 원시적인 방법이다" 23:45 지켜지지 않는 약속, 호남산단은 가능할까 26:43 용인만 '지중화', 지방은 에너지 식민지인가 28:32 매수된 입지선정위원회, 주민 의견은 없다 30:01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문제다 32:23 자연공원지역으로 노선을 변경할 수 있다고? 35:09 용인산단 RE100 가능할까? 39:03 호남산단의 강점과 분산배치가 필요한 이유 40:57 용인행 송전탑, 송전선로의 문제를 알려야 합니다 #지리산사람들TV #윤주옥 #김진수위원장 #송전탑백지화 #용인반도체산단 #초고압송전탑 #남원 #구례 #장수 #지리산 #에너지식민지 #지산지소 #RE100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 #호남산단 #반도체 #국립공원 #기후에너지환경부 #지역균형발전 #송전탑반대 #입지선정위원회이지민 09-11 17:09 -
별빛과 사진과 시, 그리고 지리산이 주는 것 - 이원규 시인 인터뷰 3부
3부에서는 무리한 순례로 얻은 병을 계기로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들어간 이원규 시인의 사진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독학으로 익힌 사진으로 15년 넘게 지리산의 야생화, 별과 은하수, 반딧불이를 기록해온 과정과 지리산학교가 만들어진 배경,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을 위한 '자연 분양' 아이디어, 기후위기 시대에 문학과 예술이 할 수 있는 일까지 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지리산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지리산의 시인이 전하는 마지막 당부로 마무리합니다. 00:00 인트로 00:46 오체투지, 임진각까지 그리고 무너진 건강 04:36 카메라를 들고 산으로 - 김인호 작가와의 인연 06:17 지리산학교의 탄생 배경 07:44 독학으로 배운 사진, 야생화를 찍다 10:17 별과 은하수, 반딧불이를 기록하다 13:15 지속가능한 환경운동을 위한 제안 - 자연을 분양하다 17:06 지리산 국립공원, 주인의식으로 지키기 21:02 기후위기 시대, 문학과 예술은 어디로? 24:37 은하수와 별, 도시화로 잃어버린 것들 27:24 지리산문화예술학교 소개 31:35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게 전하는 당부 #이원규시인 #지리산사람들TV #지리산별빛 #지리산반딧불이 #지리산문화예술학교이지민 08-1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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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준 09-20 14:54
식물의 시간
계절이 달라졌다. 그 뜨겁던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 가을이 온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고, 자기 전엔 창문을 닫고 이불을 덮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그 시간 속에 살아간다. 식물들도 물론 그러한 시간의 변화 속에 살아간다. 유난히 잎을 빨리 떨구는 벚나무들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벌써 앙상한 가지를 보여준다. 식물의 시간? 식물은 시간을 어떻게 느끼고 있고, 어떤 시간을 살아갈까? “광주기성과 생체시계” 식물의 계절 변화에는 온도뿐만 아니라 빛의 변화가 매우 중요한 신호로 작용하고 있고, 이를 광주기성이라고 한다. 광주기성이란 하루 동안 밝고 어두운 시간이 반복되는 주기의 변화에 식물이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장일식물, 단일식물이라는 구분도 여기에서 나온다. 봄과 초여름처럼 낮이 길어지는 시기에 꽃을 피우는 식물을 장일식물, 가을처럼 낮이 짧아지는 시기에 꽃을 피우는 식물을 단일식물이라고 흔히 설명한다. 그런데 조금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식물이 정말 '낮의 길이'를 재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많은 식물에게는 낮의 길이보다 밤이 얼마나 길게 이어지는가가 더 중요한 신호가 된다. 긴 낮을 좋아한다고 알려진 장일식물은 사실상 '짧은 밤'을 필요로 하고, 짧은 낮을 좋아한다고 알려진 단일식물은 '긴 밤'을 필요로 하는 셈이다. 그러니 식물에게 계절을 알려주는 것은 단순히 햇빛이 얼마나 오래 비추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해가 진 뒤 찾아오는 어둠, 그리고 그 어둠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가 중요하다. 식물은 밤을 세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식물이 우리처럼 시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많은 생명체들에게는 생체시계(circadian clock)가 있다. 약 24시간을 주기로 반복되는 유전자와 단백질의 활동 변화가 서로 맞물리면서 식물의 하루를 만들어낸다. 잎의 움직임, 성장, 발아, 기공을 통한 기체교환, 효소 활성, 광합성과 같은 작용이 생체시계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생체시계가 단순히 하루를 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식물은 자신의 생체시계와 바깥의 빛을 비교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알아챈다. 밤이 조금씩 짧아지는지, 길어지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며칠, 몇 주 동안 계속되는지를 감지한다. 그렇게 식물은 지금이 어느 계절쯤인지를 가늠한다. “식물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다” 식물에게는 달력도 시계도 없다. 그 대신 태양계의 거대한 움직임에 의해 좌우되는 빛과 어둠, 그 반복되는 리듬이 달력이다. 우리는 시간을 시계로 측정하지만, 식물은 어쩌면 몸으로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을 숲을 걷다가 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면, 단순히 '가을이 왔구나'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저 나무는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까? -
정태준 07-23 11:48
보전해야 할 숲의 조건?
보전해야 할 숲의 조건? 대상지에 가장 넓게 분포한고 있는 식생보전등급 Ⅲ등급의 소나무군락. 없어져도 되는 숲인가? 몇 해 전, 지리산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마을인 산청군에 골프장 건설이 추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골프장 건설은 산림 파괴와 농약 살포로 인한 오염 등 여러 문제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이에 지역 환경단체인 지리산사람들을 중심으로 필자를 비롯한 지역의 생태 전문가가 모여서 사업 대상지에 대한 생태 조사를 했고, 그 결과를 얼마 전 공식적인 보고서로 작성하였다. 자연을 보전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지만, 자연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느껴진 불편함과 답답한 보전 정책의 한계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상지의 생태 조사 결과 포유류와 조류 조사 결과에서 멸종위기종에 해당하는 삵, 하늘다람쥐, 수달, 담비, 참매, 붉은배새매, 팔색조가 확인되어 보전의 당위성을 주장하는데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식생, 식물상 분야는 그렇지 못했다. 한마디로 대상지의 숲은 ‘그저 그랬다’. 전국적으로 흔하디 흔한 소나무군락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슴높이 직경(흉고직경)이 큰 나무가 분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슴높이 직경이 20cm를 조금 넘는 어린 숲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넓은 지역이 ‘숲가꾸기’란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사업이 시행되어 교목층(가장 큰 키의 나무들)을 제외한 하층 식생이 제거된, 인위적으로 관리된 숲이었다. 이러한 숲은 잘려진 하층에서 식물이 급격히 자라면서 서로 뒤엉킨 듯한 모습으로 복잡하게(안정적인 숲이 아닌 천이 초기의 모습) 자라난다. 국가에서는 식생의 상태에 따라 식생을 평가하고 등급을 부여한다. 이를 식생보전등급이라고 하며, 식생이 가장 좋은 Ⅰ등급에서 가장 좋지 않은 Ⅴ등급까지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평가한다. 식생보전등급이 Ⅰ,Ⅱ등급으로 평가된 지역은 보전과 복원을 우선으로 하지만, 그 외 Ⅲ~Ⅴ등급은 큰 문제 없이 개발이 허가되고 숲은 사라진다. 이러한 평가 방식을 적용한 결과 대상지는 모두 식생보전등급 Ⅲ~Ⅴ등급에 분포하기에, 기존의 정책대로라면 숲을 보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물분야도 마찬가지다. 법적보호종인 멸종위기종의 서식이 확인되지 않는 숲은 개발의 논리에서 지켜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렇게 숲을 보전하기 위해 조사를 하면, 멸종위기종을 찾고, 식생보전등급이 높은 숲을 찾아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상지 일대의 생태‧자연도. 대상지 내 보전 및 복원을 우선하는 1등급 지역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런’ 식생보전등급 Ⅲ~Ⅴ등급의 소나무군락이 대부분인 이 숲에 대한 보고서를 조사 결과 그대로 담담히 작성하다보니, 불편함과 답답한 한계가 느껴진 것이다. 좋은 숲은 보전해야하고, 상대적으로 식생 발달 상태가 좋지 않은 숲은 보전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식생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간다. 그런 변화의 과정을 천이(succession)라 부르고 Clements의 고전적 천이 이론에 따르면 식생은 극상림으로 변해가고, 그러한 극상림(Climax forest)은 구조적 기능적으로 안정된 시스템을 갖춘다. 따라서 현재는 식생이 ‘그저 그렇게’ 보이더라도, 이러한 숲이 10년, 20년, 또는 50년, 100년간 보전된다면 국립공원 수준의 울창한 숲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시점에서만 좋은 숲을 보전하고,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숲은 계속 없어진다면 울창한 숲이 지금보다 넓게 확대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현재의 상태가 다소 좋지 않다고 그 숲을 보전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아름드리 나무로 자랄 어린 나무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울창한 숲 역시 과거에는 모두 식생보전등급이 낮은 ‘그저 그런 숲’ 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평가하고 등급화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보전해야할 숲의 조건이 따로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희귀한 식물이 살고 있어야 보전될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천이 초기에 나오는 ‘그저 그런’ 숲이 우리 곁에 없다면 결국 극상림의 울창한 숲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데도 개발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작은 땅에 이미 많은 것을 개발해 왔고 많은 숲을 파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인간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의 상황을 맞닥뜨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숲에 식생보전등급을 매겨 ‘Ⅰ,Ⅱ등급이면 보전, Ⅲ~Ⅴ등급이면 개발 가능’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따라 보전할 숲과 개발할 숲을 판가름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있는 숲을 미래 세대에게 안전하게 전해 주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기후위기는,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느 것도 명확하게 좋다, 괜찮다,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보전되어야 할 숲의 조건'을 따져야 할 때는 지났다. 글쓴이 : 정태준 모두를위한생태연구소 소장(자연과 사람이 모두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
정정환 07-16 21:03
늙은 나무 생명의 숲
▲ 갈참나무 수공에 둥지를 만든 올빼미 함양 상림이나, 하동 취간림, 광릉 수목원 등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공원을 가보면 원앙, 까막딱다구리, 올빼미, 솔부엉이가 나무속에 둥지를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까막딱다구리가 만든 둥지를 원앙이 이용하기도 하고, 올빼미 종류가 이용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황새도 논 주변 도로가에 있는 고목 위에 둥지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나무를 찾기가 어려워 인공 탑을 만들어 둥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오래된, 늙은 나무는 생태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목, 늙은 나무가 있는 숲은 많은 생명을 품습니다. 나무가 나이가 들며, 가지가 부러지거나, 작은 틈새가 생겨서 거기로 물이 들어가 썩게 되고, 이때에 구멍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수공’이라 부릅니다. 이런 수공들은 올빼미, 부엉이, 원앙, 비오리, 호반새와 찌르레기 등 다양한 새들과 하늘다람쥐와 같은 작은 생명들의 집이 되어줍니다. 나무는 씨앗이었을 때는 새들과 많은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자라났지만, 다 자라서는 다시 생명들에게 다시 먹이를 제공해 주고,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서로 돌보는 숲의 공동체입니다. 딱다구리는 나무속에 있는 딱정벌레 애벌레를 잡아먹어 나무가 너무 많은 애벌레로 인한 피해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나무는 자신의 몸에 구멍을 내고 살아가는 딱다구리와의 공생을 선택한 것입니다. 딱다구리는 먹이와 집을 얻고, 나무는 자신의 몸에 있는 애벌레의 숫자를 조절하여 자신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나무와 식물들은 씨앗을 멀리 퍼트리기 위해 씨앗에 달콤한 과육을 덮어 다른 생명들이 배를 채울 수 있게 하였고, 소화되지 않고 남은 씨앗은 거름이 풍부한 똥 속에서 다시 자라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생명들과 숲은 서로 돕고, 보듬으며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늙은 숲은 진정으로 아름답고 생명다양성이 풍부한 숲입니다. 자본의 가치, 돈의 가치로 판단할 수 없는 그런 숲... 하지만 실제 우리 주변에서 늙은 나무가 있는 숲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40년 된 숲도 귀한 우리의 숲을 보고 숲이 늙었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을 사는 우리는 40이면 늙었다 말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사람과 달리 1000년까지 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당산나무가 400년 이상은 되었다는 것을 보면, 40년은 청년기에나 들어갈 수 있을까요? ▲ 나무 수공속에 둥지를 만든 솔부엉이 우리 숲의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많은 생명들이 늙은 나무의 돌봄 속에서 살아가고, 또 돌봄을 받던 생명들이 다른 나무들을 돌보면서 살아가는 생명의 숲, 생명을 키워내는 숲, 우리의 숲이 그렇게 자라나길, 그런 숲으로 나아가길 희망해 봅니다. 이 기사는 <봉성신문>에도 함께 싣습니다. -
정정환 06-17 11:05
낭비둘기가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화엄사의 낭비둘기, 지금은 화엄사에서 살아가기 어려워 졌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하게 참새부터, 까치, 멧비둘기 등 장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흔하게 만날 수 있고 흔적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면 매일 들리는 새소리도, 집 앞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도, 산보, 산책을 할 때 길 위에 보이는 야생동물들의 흔적도 모르고 지나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생명들을 만나기 위해 멀리 나가곤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관심이 없어 지나치다 다른 장소에 나가 소리와 모습을 보면 ‘우리 주변에도 저런 아이들이 있었단 말이야?’ 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번 배우고 오게 되면 다시 그 이전의 눈과 귀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집 주변에서도, 산책하는 와중에도 너무 많은 흔적과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 우포늪 따오기 복원개체, 농사철이 아니지만 물을 담아두어 따오기가 먹이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만나기 어려운 멸종위기종, 멸종위기까지는 아니지만 개체수가 계속해서 줄어들어 만나기 어려운 관심 단계에 있는 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멸종위기에서 절멸되거나, 절멸 위기까지 다다른 생명들은 ‘복원’을 진행하게 됩니다. 흔하게 복원‘사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복원을 대표하는 종은 반달가슴곰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황새, 따오기, 여우, 낭비둘기, 민물어류(임실납자루, 미호종개, 얼룩새코미꾸리 등)이 있습니다. 모두 복원이라는 ‘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업이다 보니 결과만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복원’은 하지만 서식지에 대한 ‘보전’은 뒷전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황새를 복원하겠다고 많은 돈을 들이고 있지만 황새가 서식할 만한 서식지에 대한 보전을 하려고 적극적인 행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가치가 높은 서식지도 개발로 인한 위협에 놓인 경우도 많습니다. 연어를 놓고 보아도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가 산란할 장소가 없는 이 현실에서 치어만 양식해서 풀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임실납자루를 열심히 키워서 섬진강에 풀어주었지만 이듬해 하도정비로 그 지역을 밀어버립니다. 얼룩새코미꾸리의 복원지도 하도정비로 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원 ‘사업’의 ‘본사’인 환경부(지금은 환경이 사라지고 있는 기후부)는 서식지 보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스스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규제 기관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원’을 하는 기관이라면 당연하게도 ‘규제’를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그들은 뭐 하는 집단이란 걸까요? 반달가슴곰은 서식지 확장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여우는 생태축 단절로 인한 로드킬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낭비둘기는 구례에 복원 개체 32마리를 풀어주었지만 구례 지역의 서식지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안전에 대한 책임은 낭비둘기의 책임이 아닌 환경부와, 지자체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당하게 잘 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가. 황새는 논습지, 갯벌, 자연습지가 필요하지만 영농형태양광, 갯벌 매립, 개발로 인해 서식지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지자체장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황새를 죽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생태 감수성도 사라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과연 복원이라는 이 중대한 책임을 그저 하나의 돈벌이 ‘사업’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 구곡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청왕봉의 모습 ‘Natural Capital’인 ‘자연자본’을 ‘Nature Positive’라는 목표로 2030년까지 자연 ‘자본’ 훼손을 멈추고 다시 역전시켜 2050년까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겠다는(다시 사용하기 위한?) 목표....생명의 근본마저 자본으로 취급하는 이 추악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생명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든 이야기인 걸까요? 글쓴이 : 정정환 _지리산사람들 사무국장,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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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 10-08 16:35
[비아의 지리산 둘레길 완주3] 함양 편
지리산둘레길 함양 구간은 금계에서 동강까지, 동강에서 수철까지 이렇게 두 구간에 해당한다. 남원인 인월 구간에 함양 구간인 금계로 넘어오고, 동강에서 다시 산청 구간인 수철마을로 넘어가게 된다. 다른 구간은 끝점을 기준으로 나눈 반면 함양 구간은 시작점을 기준으로 나눈 까닭은, 동강에서 수철로 넘어가는 구간이 거의 산청 구간이긴 하지만, 이래저래 행정편의로 나누고 보니 온전한 함양 구간은 한 구간만 해당하여 함양에서 시작하는 동강 구간도 함양에 포함해 본다. 꼭 지역을 나누어 둘레길을 걷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별로 미미한 차이점과 특징들을 볼 수 있다. 함양 산청 구간은 지리산 자락을 타고 넘는 마을과 길들이어서 경사가 다소 있는 숲구간과 임로길이 많다. 또한 남원의 2,3구간을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함양의 금계-동강 구간도 버스로 다시 원점회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함양군은 군청과 대부분의 마을이 오도재 너머에 있고, 지리산 천왕봉 자락에 위치한 마천읍 마을만 지리산자락에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함양군이 있는 곳과는 별개의 다른 군의 마을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이유로 마천 사람들은 남원 인월방향으로 더 잦은 교류를 한다. 마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다소 뒤섞인 말투를 사용한다고 하니 굳이 지역을 구분하는 것은 행정상의 편이에 해당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4구간. 금계-동강 (12.7km/ 난이도 상. 5시간)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에서 시작되는 둘레길이다. 인월에서 금계로 천왕봉자락이 있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계곡 건너편 길을 걸어서 금계로 왔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 지리산 자락 안으로 들어는 코스이다. 의중마을 아름드리 당산나무에서 인증 스탬프를 찍고, 벅스의 화살표를 바라보면 두 갈래 길로 나뉜다. 지리산둘레길 ‘숲순환코스’다. 평탄한 아랫길을 따라 걷든지, 산길로 들어서든지,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걷는 역량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산이 좋아 왔으니 당연히 숲길을 권한다. 당산나무가 있는 의중마을에서 서암정사에 이르는 숲길은 정말 아름답다. 서암정사는 벽송사로 오르는 길 아래에 있다. 벽송사로 오르기 전에 아름다운 서암정사를 둘러볼 수 있는 것은 이 코스의 또 하나의 묘미다. 입구부터 탄성을 자아내는 바위와 조각들이 색다른 느낌과 풍광으로 반긴다. 또한 서암정사 석굴법당은 자연 암반에 굴을 파 극랑정토를 표현한 예술품에 가까운 조각상들로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돌다 잠깐 옆으로 비켜갔다. 다시 벽송사 가는 갈림길로 돌아와 벽송사를 향해 오른다. 찻길로 나 있어 길은 넓고 시멘트길이나 경사가 다소 있는 편이다. 벽송사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면 정말 가파른 등산로를 올라야 한다. 그러나 그리 길지 않으니 쉬엄쉬엄 오르면 된다. 어느 정도 오르면 오솔길이 이어지고, 다음에는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숲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계곡도 건너고. 산길을 내려오면 당산마을에서 갈라졌던 ‘숲순환길’과 만난다. 급경사 산길이 힘든 사람들은 아랫길을 이용해 오면 된다. 여기서부터는 아주 길고 긴, 임로와 마을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숲길까지는 탄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포장길을 내려오며 툴툴거린다. 포장도로를 걸어 마을과 마을을 지나는 길은 그늘이 없어 덥고 지루하다. 계곡을 따라 쭉 뻗은 길, 구불구불 마을길, 구시락재를 넘어가는 길. 그래도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건너편 마을의 풍경도 즐기고, 도토리를 주워 걸어가시는 할아버지, 물에 담아 많은 도토리를 불리고 계시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 정겨운 길이다. 숲이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그래도 좋은 코스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완주가 목표가 아니라면 긴 숲길만 걸어도 좋은 길이다. 당산나무에서 서암정사, 벽송사로 갔다가 다시 순환지점을 타고 원점회귀하는 방법으로 선택하면 된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이런 포장도로를 산길보다 더 좋아하기도 했으니 사람마다 길을 걷는 취향이 다름에 틀림없다. 5구간 동강-수철 (12.1km/난이도 중/5시간) 지리산둘레길 구간 중 유일하게 폭포를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거의 숲길로 이루어져 있어 난 이 길을 아주 좋아한다. 추모공원에서 산을 넘어가는 구간은 네다섯 번 걸었던 것 같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 길 걷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 동강마을에서 조금 걸어 점촌마을로 향하면 바로 ‘함양방면 표지판 시작점이 나타난다. 마을길은 함양에서 산청으로 이어지고, 산길은 함양과 산청을 넘나든다. 그러니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사실 동강-수철 구간은 ‘산청함양추모공원’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산청함양 추모공원은 산청함양사건 희생자 합동 묘역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지리산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중 무고한 민간인 705명을 학살하였는데, 이 때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모신 묘역이다. 지리산은 많은 역사의 아픔을 품은 산이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만큼 한국 현대사의 슬픔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추모공원을 둘러보고, 숙연한 마음으로 저수지길을 돌아 산길로 접어든다. 좁은 오솔길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자그마한 폭포를 만나게 된다. 상사폭포다. 늦봄까지 얼음이 남아 있는 서늘함에 잠시 피로를 식히고, 다시 길을 나선다. 폭포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쌍재에 이른다. 쌍재는 함양사람들이 곶감을 지고 산청으로 넘나들던 고개이다. 쌍재와 고동재에서는 왕산이 바라보인다. 왕산은 가야 10대 왕인 비운의 왕 '구형왕'의 타원형 (구)돌무덤이 있다고 한다. 구형왕은 자신이 죄인이라하여 돌무덤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그래서 무덤에 풀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지리산둘레길 5구간에는 구형왕의 슬픈 이야기가 얽혀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쌍재에서 임로를 따라 오르면 또 하나의 고개가 나오는 데, 그래서 쌍재인가 보다. 아무튼 또 다른 쌍재에서 산길을 따라 올라 고동재에 이른다. 고동재는 고동형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고동재라 불린다. 신라군을 피해 피난 생활을 하던 '구형왕'의 군사가 멀리 산청의 황매산에서 신라군사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보고를 하자, 왕은 다시 피난길에 올라 왕등재에서 내려와 고동재를 넘으며 고동을 불며 쌍재를 지나 왕산을 넘어갔다고 한다. 비록 전설이지만 고동을 불던 왕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헤아려본다. 고동재부터는 내리막길이다. 경사도 급하지 않은 예쁜 숲길이다. 숲길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나무가 울창한 임로를 만나고, 임로에서 수철마을까지는 금방 내려온다. 5구간은 추모공원에서 수철마을까지 거의 모든 길이 숲길로 이루어진, 그리고 슬픈 역사를 되새겨 보게 하는 아름다운 구간이다. 이제 산청으로 넘어왔다. 또 다른 아픔을 간직한, 그리고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산청 구간을 만나 보자. 함양구간은 두 구간 밖에 해당하지 않아 좀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으나, 산청, 하동 구간은 구간이 많아서 간단히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하긴 더 자세한 설명은 둘레길 홈페이지에 다 있으니 긴 말이 필요 없기는 하다. -
문홍현경 09-23 09:51
사진으로 보는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9월 19일 구례와 남원산내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 보아요!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연대는 계속됩니다. 구례 구례군민뿐 아니라 멀리 부산, 산청, 순천, 여수, 전주, 진주에서 온 시민들까지 100여 명의 참여자가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였습니다. 구례 읍사무소 광장에서 구례 풍물패 단원들과 함께 지신밟기와 강강술래로 행진의 문을 열고, 남생이놀이로 참여자들 사이 벽을 허물어 행진의 열기를 달구었습니다. 경찰서 로터리에서 피켓의 문구와 기후정의 구호를 외친 뒤 구례읍 일대를 돌아 구례 봉성산 정상으로 행진하였습니다. 봉성산 정상에서는 참여자들이 기후정의를 외치며 지리산 자락 각지에서 벌어지는 환경 파괴 현장을 알렸습니다. 또 19일 하루 행사만이 아니라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기후정의주간으로 정하고 워크숍, 책모임, 에너지토론회, 씨앗 나눔과 정책 제안, 기후정의 영화제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남원 산내 919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남원산내의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은 람천과 임천의 수질 오염 문제, 송전탑 건설, 탈핵 및 기후위기 대응 등 지역과 지구적 현안을 한데 모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다양한 체험 부스와 문화 공연, 토크 콘서트가 이어져 온 마을이 함께하는 축제이자 연대의 장을 선보였습니다. 행사장 한편에서는 참가자들이 수달, 다슬기, 맨홀 뚜껑, 반달가슴곰 등의 가면과 피켓을 들고 각 생물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색 인터뷰와 지역에서 다양한 현장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실천가들의 토크 콘서트도 열렸습니다. 이야기마당이 마무리된 후 참가자들은 마당에 동그랗게 모여 손을 잡고 '평화의 둥근춤'을 추며 행진을 준비했습니다. 이어서 노래에 맞춰 직접 만든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산내면 일대를 힘차게 행진했습니다. 함께한 모든 분, 그리고 이날 오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함께한 모든 분 덕분에 기후정의의 나무가 더 튼튼하게 자라겠지요. 고맙습니다.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人> -
비아 09-20 15:00
[비아의 둘레길 완주2] 남원 편
지리산둘레길 남원 주천센터를 보통 지리산둘레길 시작점이라 부른다. 둘레길은 어디서든 시작해도 둥근원이니까. 한바퀴 도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개하기 쉽도록 ‘주천센터’를 시작점으로하여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 운봉으로 향하는 길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1구간- 남원 주천센타->운봉: 거리 14.9km / 난이도 중/ 6시간>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개천가를 따라, 농로를 따라 걷다가 숲길로 들어섰는데, 도로가 나면서 도로가를 걸어 숲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주천센터 앞 개울을 건너고, 도로를 건너 마을길을 따라 숲 입구까지 가면, 개미정자가 숲길의 시작점이다. 개미정자는 ‘왜적이 침입해 오자 개미가 잠든 장군의 다리를 물어 알려, 왜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있는 쉼터이다. 이 숲길은 지리산 구룡폭포에 이르는 등산로와도 만나기 때문에 여름철 산행코스로 자주 다녔던 길이다. 오래전에는 구룡폭포를 돌아 다시 원점회귀 하는 1-1코스가 있었는데, 이번에 와보니 1코스라는 말이 없어지고, 둘레길 정식코스가 정비되면서 돌아 내려오는 코스는 없어졌다. 구룡폭포 등산로쪽으로 포함시킨 것 같다. 육모정에서 시작하는 구룡폭포계곡길을 따라 폭포까지 다녀오는 등산로도 좋은 길이다. 지리산을 올라 운봉방향으로 하산하면 운봉이 워낙 고지대에 있는 마을이라 하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산을 내려 평지길 마을과 논길, 그리고 다시 조그만 숲길을 내려서, 개천가를 따라 걷다보면 1코스 종점에 다다른다. 이 길에서 지나게 되는 마을 중 ‘노치마을’이 있다.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에서 유일하게 지나게 되는 마을이라고 한다. 잠깐 길에서 벗어나 500년 된 보호수가 있는 쉼터로 찾아들면 백두대간 정맥도와 호랑이상, 일제침략기에 나라의 정기를 막는다고 박은 돌 등을 볼 수 있다. 시원한 그늘에서 한숨 돌리면서 백두대간의 정기를 마시고 가자. 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숲이 있다. 2000년에 ‘아름다운 숲’으로 대상을 받은 서어나무 숲이 행정마을에 있다. 개천가길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 잠깐 들렸다 가면 좋은 곳이다. 보통은 시작점이라고 생각하는 주천에서 오르는 코스들로 많이들 다니나, 사실 이 코스는 역방향(?)으로, 운봉에서 시작하여 내려오는 코스로 걷는 것이 쉽다. 물론 역방향이라는 게 등산에서 의미는 없다. 난 이 코스를 좋아해서 숲길만 여러 번 이쪽, 저쪽 방향에서 많이 걸어 보았는데 어느 방향에서 오르고 내리던 간에 그 나름의 묘미가 있어 아주 좋은 코스다. <2구간. 운봉-인월 : 거리 9.7km / 난이도 하 /3-4시간> 서림공원에서 출발하는 이 코스는 둘레길 구간 중 가장 짧은 코스이다. 마을길이 대부분이라 그늘이 거의 없다, 이 구간에서는 ‘황산대첩비’와 국악의 성지 ‘동편제 마을’을 지난다. 황산대첩비와 고려말기 왜적을 물리친 이성계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왜구가 여기까지?’ 놀란다. 하긴 1코스의 개미정자도 왜적의 침입이었군. ‘황산대첩’이라고 하면 삼국시대의 황산벌싸움을 생각하게 하는데, 이성계와 얽힌 황산은 벌판이 아니라 뒤에 있는 황산을 일컫는 이름이다. 바로 옆에 있는 동편제 마을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동편제 마을을 둘러본다. 동편제를 맥을 세운 송흥록과 국창 박소월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짧은 구간에 난이도도 없는 구간이어서 여유롭게 쉬엄쉬엄 편안하게 걷는다. 이 코스는 짧고, 다음 ‘인월-금계’ 코스는 길기 때문에 3코스를 약간 걸어두는 것이 좋다. 오전에 출발하면 2코스 종점인 인월마을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먹을 수 있다. 인월센타에서 조금 휴식을 취하고, 다시 3코스를 출발하여 산을 넘어 장항마을까지 걸어두면 3코스의 부담을 좀 줄일 수 있다. 2코스는 인월 버스터미널 인근에 주차를 하고 남원버스를 타고 시작점인 서림공원까지 가고, 코스 걷기가 인월마을에서 끝나면 차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만약 코스를 연장하여 장항마을까지 오후에 걸었을 경우에도 장항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인월마을로 돌아올 수 있다. 지리산둘레길 코스 걷기가 끝나고 여력이 남으면 남원 끝자락에 위치한 ‘실상사’에도 들러 보면 좋다. 실상사는 계곡옆 평지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문화재를 보유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3구간. 인월-금계 (거리 20.5km / 난이도 상 /시간 8시간)> 인월에서 시작하여 여러마을을 지나, 동구재를 넘으면 남원과 함양의 경계를 만난다. 남원 인월센터를 출발하여 항양센터에서 끝나게 되는 구간이다. 구간 중 가장 긴 구간이지만, 거의 모든 길이 숲길로 이루어져 있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둘레길 순례자들이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평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인월에서 장항마을로 넘어가는 구간은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숲과 계곡을 만날 수 있는 예쁜 길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피로를 풀며 쉴 수 있다. 배너미재를 넘어 장항마을에서 감식초공장 방향으로 도로를 건넌다. (2코스를 할 때 장항마을 감식초공장에서 끝냈다면 3코스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농장과 만난다. 사과농장의 빨간 사과, 다랭이 논의 푸르름, 아름다운 숲길, 그리고 설악초가 하얗게 피어있는 한옥. 그래서 순례자들이 이 코스를 좋아한다. 산자락을 타고 둘레둘레 힘들이지 않고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둘레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숲길 중간에 만나는 ‘동구렁 쉼터’는 이 구간의 또 하나의 묘미이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간절히 생각나게 하는 분위기의 주막이다. 3코스에는 포토존이 있다. 언덕을 넘어가는 곳(아래 사진)과 대나무 숲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람을 찍은 사진들은 아주 멋진 연출이 된다. 이제 3구간을 타고 남원에서 함양으로 넘어왔다. 길은 다시 함양으로 이어진다. (다음 '함양 편'에서 이어집니다.) -
이촉 09-08 09:38
구례 사는 맛
구례 살다 보면 구례 맛이 있다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정자 옆 연밭에 연꽃이 피었다. 유산 할미의 목소리가 정답다. 깜빡하는 기억도 이쁜 치매 어르신 파가 푸릇푸릇, 솔이 푸르고 열무가 파란 텃밭 대파 한두 뿌리 뽑고 싶다. 나는 영락없는 도둑심보다. 듬성듬성한 잔디가 말한다. 차라리 나를 밟고 밟아라. 내가 짠흐제! 분토마을 봉숭아꽃이 참 예쁘다. 손톱에 꽃물 들게 숯과 백반 넣어 봉숭아꽃, 잎을 넣고 돌로 찧던 날이 있었다. 할매들 합창을 한다. “긍께 말이요” 지리산에서 캔 고사리 말려 농산에 맡기고 센터로 가는 할미, 등을 쓰다듬자 “내가 짠흐제!“ 한다. 광의 주유소 왼쪽 길로 들어가면 백조미용실을 지난다. 마을 미용실이 남아있어 정답다. "이따 파마 흐러 강께 이따가 나 저그 앞에서 내려주씨요 이!" 아직 곱슬거리는 백발의 할미가 정겨워 자꾸 말을 걸고 싶다. 죽마리 할미 텃밭에도 대파가 쑥쑥 자란다. 파도 파도 팔 것이 많은 할매들, 입에서 나오는 입말이 맛깔스러운 파향처럼 퍼진다. 감칠맛 나는 꼬들빼기 넣은 파김치처럼, 언젠가 파꽃이 피겠지. 할매들 속에서 내 생각도 자란다. 긍께요, 거시기, 긍께말이요 일본어가 안되어 한숨을 푹푹 쉬는 정 선생. 나도, 복습 하나도 못했어요 흥께 “긍께요” 한다. 내 귀로 들어오는 낮은 음표 "긍께요" 후렴구 긍께요! 앞에서 일본어가 잘되는 문 선생님, "거시기해도 열심히 배워봅시다. 내가 도와줄게요." 학생들에게 일본어 자료를 출력하여 전해주는 팔순의 문 선생님 고마워 빠질 수 없는 일본어 수업, 일본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노트 한권씩 선물한다. 노트에 회화, 문법, 단어, 해석 등 자세하게 기록한 노트를 견본으로 보여주며 기록하여 항상 들고다니라고 나눠준다. 김선생님 덕에 일본 말이 몸으로 쳐들어와 빠질 수 없는 수업이 기다리고 있어요 구례, 긍께말이요, 거시기… 이 맛은 구례를 오래 살은 사람들이 주는 맛이그마요. 옆에서 정 선생이 긍께요, 한다. -
비아 09-07 11:38
[비아의 둘레길 완주1]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우리나라는 전국의 80% 가량이 산지로 되어있는 아주 작은 나라다. 따라서 아름답고 수려한 산들이 많다. 정상을 오르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즘은 모든 산들에 둘레길을 만들고 있다. 집 뒤 작은 산에도 운동을 위한 둘레길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니까. 작은 산은 한 바퀴 도는데 반나절, 조금 더 큰 산은 하루가 걸리는 곳도 있다. 네 개의 지역에 걸쳐 있는 지리산처럼 큰 산은 21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보통 사람은 21일 동안 걸어야 완주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공원에 모여 건강 체조나 춤을 춘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걷기 좋아하는 국민성 때문인지 전국에 ‘무슨 길’ 무슨 길‘ 하면서 전국을 걷는 길로 만들어 놓았다. 가보면 도로 옆을 하염없이 걸어야 하는 길도 있고, 아주 짧아서 거기까지 찾아온 것이 후회가 되는 길도 있고, 관리가 되지 않아 찾기 힘든 길도 많다. 혹자는 걷기는 명상의 일부라고 하고, 혹자는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걷든 걷기는 몸과 마음 건강에 좋은 방법이다. 누가 나에게 왜 그토록 걷기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숲이 좋아서’ 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나 임도 등을 걷는 것은 극히 싫어하니까. 나무가 있고, 여러 꽃들이 피어 있는 흙을 밟을 수 있는 숲길이 좋다. 그래서 난 지리산둘레길 걷는 것이 좋다. 내가 지리산둘레길을 처음 찾은 것은 아마도 거의 20여 년 전인 것 같다. 처음 지리산둘레길이 생겼다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왔으니까. 숲길로 이루어진 지리산둘레길은 둘레길다웠다. 그때는 초기이고 걷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혼자 둘레둘레 걸으며 산속 마을을 지나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밭에서 일을 하시다 나를 보고 물으신다. “이곳이 뭐 볼 것 있다고 걷는다요?” 울창한 숲과 작은 계곡, 논과 밭, 그리고 간혹가다 마주치는 산골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지리산이기에 느껴지는 정취는 지리산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후로 지리산둘레길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찾아온 지리산, 어느덧 21개의 코스가 형성되고, 함께 걷는 프로그램도 생겼다. ‘사단법인 숲길’에서 ‘벅스(길안내 화살표)’도 세우고, 늘 관리도 하기 때문에 지리산둘레길은 늘 정성들여 가꾸는 손길과 찾는 발길들로 분주하다. 지리산 둘레길은 지역마다 센터를 운영한다. 둘레길 코스에는 구간 구간에 ‘벅스’가 서 있기 때문에 벅스의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되니 길 찾기가 쉽다.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하려면 ‘스탬프포켓북’을 사서 스탬프를 찍으면서 다니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스팸프북에는 코스별 안내도와 난이도, 스탬프와 화장실 위치 등도 나와 있다. 스탬프북은 각 센터에서 구매할 수 있다. 자세한 코스별 안내는 ‘사단법인 숲길’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숲길’에서 운영하는 ‘토요걷기’ 프로그램에 신청하여 함께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교통편이 제공되기 때문에 다시 차를 가지러 되돌아와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혼자 다니는 위험도 피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걷는 길에 동행이 있다는 것은 든든하고 즐겁다. 지리산은 남원, 함양, 산청, 하동, 구례 이렇게 5개의 지역에 걸쳐있기 때문에 둘레길 코스도 5개지역 21개 구간으로 나뉜다. 보통은 남원 주천센터에서 시작하는 둘레길을 1코스로 친다. 물론 둘레길 센터에서 나눈 것은 아니고, 처음 시작이 남원이어서 그때부터 1구간이라 부르던 것이 고정관념으로 남겨진 것 같다. 주천에서 시작해서 운봉 방향으로 걷는 길을 순방향(빨간색 화살표), 반대편 검은 화살표 방향으로 걷는 길을 역방향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길은 순방향이 편하고, 어떤 길은 역방향으로 걷는 것이 좀 더 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길도 순방향으로 걸을 때와 역방향으로 걸을 때 바라보여지는 풍광과 길의 느낌이 다르니, 이쪽저쪽으로 두 번 걸어도 손색이 없다. 숲길을 좋아하는 사람은 포장도로나 마을도로 길을 따라갈 때면 ‘둘레길이 뭐이래’ 하면서 싫어하고, 둘레길이니 평탄한 길 걷기라 생각하고 걷는 사람은 경사가 있는 산길을 오를 때면 ‘둘레길이 아니라 등산이네’ 하면서 힘들어한다. 둘레길이 숲 오솔길로만 이루어져 있으면 금상첨화이겠으나, 그렇게 만들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니 좋은 점만 취하면 된다. 숲길을 오를 때면 ‘숲길이어서 좋네!’ 하고, 평지 길을 걸을 때는 ‘마을구경도 하고, 평지라 편해서 좋네!’ 하고. 그래도 지리산은 전국 곳곳의 ‘산둘레길’ 어느 곳보다, 가장 ‘산둘레길’다우니까. 봄이면 길가에 벚꽃이 만발하고, 농장엔 감꽃, 배꽃 등 갖가지 꽃이 핀다. 산에 갖가지 야생화가 만발하는 것은 물론이다. 여름에는 계곡이 있는 숲길과 폭포가 있는 숲길을 걸을 수 있고, 가을이면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든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바람따라 일렁이는 춤을 볼 수 있는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곳곳에 자리한 마을들의 아기자기함과 논과 밭이 만들어낸 선들의 아름다움. 계절별로 다른 색색의 풍광들을 볼 수 있는 길이 지리산둘레길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거의 숲길로만 이루어졌던 둘레길이 이제는 포장된 임도와 마을길들로 바뀐 곳이 많아지고, 그늘이 없이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걸어야 하는 길도 늘었다. 숲에서 나와 도로를 따라 걷는 길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었는데,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예를 들자면 이렇다. 먼저 산속에 있는 밭의 농작물과 과수에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자꾸 손을 데면서, 피해를 당한 주인들이 길이 내주지 않게 되면서 둘레길이 우회 도로로 달라진다. 둘레길이 도로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게 되는 이유다. 두 번째는 산 위까지 개발이 되면서 임가 포장이 되어 농로가 되고, 전원주택들이 들어서면서 포장도로로 변했다. 그러다 보니 임도를 또 다시 새로 내면서 시멘트 포장이 된다. 세 번째는 산사태, 산불 등의 자연재해다, 무분별한 개발이나 부주의로 인한 것이니 인재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작년과 올해는 산불과 산사태 등으로 인해 구간이 통제되고, 특히 산청지역의 피해가 심했다. ‘지리산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지리산에 오지 않는 사람이다’고 지리산둘레길 안내자는 말한다. 인간의 발길이 닿으면 그 자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의 훼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은 공존해야 하고, 숲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은 숲에 다녀간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등산을 하면서, 둘레길을 돌면서 지켜야 할 자연에 대한 예절이다.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가야 하고, 과일껍질 등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간혹 음료수병, 떨어진 사탕껍질, 휴지 등을 볼 때면 얼굴이 찌푸려진다. 길을 내어준 농부들에게도, 산속 마을 분들께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걸을 일이다. 둘레길을 돌면서 ‘농작물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을 종종 접할 때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마을 주변에 심어진 농작물뿐 아니라, 밤농장 주변에 떨어진 밤이나 감. 매달려 익어가는 오디, 두릅 등등... 떨어져 썩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주인이 수확을 위해 키우고 있는 모든 것에는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 산속 깊은 곳을 걷다보면 산밤도 있고, 자생하는 오디, 머루 산딸기 등의 열매도 많이 있으니, 그런 자연의 선물만으로도 충분하다. 산길을 걷다 보면 음악을 크게 틀고 걷는 사람을 만난다. 음악은 자신에게 좋은 선율일지 모르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소음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이어폰을 쓰면 좋겠다. 또산행을 할 때 스틱을 사용하는 것은 좋으나, 스틱을 자신의 몸보다 뒤로 들어 뒷사람을 다치게 할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가끔 겪는다. 스틱의 뾰족한 부분이 뒷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신경 쓸 일이다.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걷는 것도 좋지만 숲을 즐기면서 걷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숲속에는 다람쥐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시냇물소리 등 온갖 아름다운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귀 기울여 소리를 들어보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길에 핀 작은 야생화들이 제모습을 뽐내는 것도 바라보면서, 시인은 노래하지 않았나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쁘다’고. 지리산을 오르거나. 둘레길을 돌면서 느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리산 둘레길의 같은 코스를 서너 번씩 걷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렇게 여러 번 같은 길을 걸을 의미가 있어요?” 물론이다. 지리산둘레길은 걷는 계절에 따라,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보고, 느끼며, 걷는 걸음마다 길은 모습을 달리한다. 그러니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고, 오래도록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더없는 바이다. -
이촉 09-01 07:38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서 산이 보고 싶다니 산에 가기 전에 산은 이미 네 옆에 와 있다. 어디서 어디까지 산인지 모를 산에 도착하여 산을 딛고 산을 간다. 가고 싶던 지리산, 가자, 겁내지 말고. 이미 산에 왔잖아. 산에 왔으나 앞으로 가자고. 급하게 먹는 밥처럼 들어가지마. 산이 부르니? 가고 싶어 산에 간다니까 지리산이라서 간다니까, 지리산이 취향이야? 산에 가는 틈에 지리산의 틈새에 끼어 가는 중이야. 너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네가 가는 거야. 언젠가 산에 오지 마란 소리를 들었지. 산을 봐봐, 네가 지나치는 것 모두 산이야. 눈앞을 스치는 거미줄이 너를 기다리고, 우수수 낙엽 위로 미끄러진 바닥이 바로 산이야. 산이 네 몸과 하나 되는 그 착지에 목이 말라 턱없이 무너지는 산을 무너질까 두려워 시멘트벽을 쌓은 벽이 벽을 친다. 괴물 같은 벽을 돌아 우리를 돌아가게 하는 지리산에 주저앉아 가도 가도 길인 길을 어쩌라고, 언제 도착할까? 몇 시간 걸려요? 몇 km인가요? 가도 가도 보이지 않은 내리막. 턱턱 걸리는 돌부리, 가슴을 콕콕 찌르는 너는 멀리 보면 다정한 골짜기 너머 아득한 능선 찢어질 듯 닿지 않은 발이 헛발을 내리고 다시 오르내리는 능선은 바로 지금 네 능선, 신발 아래 느껴지는 감각이 가슴으로 퍼져온다. 생명을 밟고 또 밟은 너를 감싸는 공기, 산에 퍼지는 숲의 냄새 그 숨결 너는 모르고, 너를 보는 숲에서 잉잉거리는 벌의 추격에 잉잉대는 몸은 몸대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 빠져 산에서 허우적댄다. 산에 갔으나 산을 보지 못한 산속에 두고 온 것이 많아 또 가야 할 산은, 가지 않은 너를 몸으로 쓸 수밖에 없다. 산에서 앞으로 가지만 말고 산을 둘러보고 좀 더 머물다 올걸, 그 하얗게 내려앉을 별을 보고 별 위로 걸던 천상의 별꽃 허리 굽혀 찬찬이 들여다볼걸, 햇빛을 메고 가는 길 위로 떨어지는 햇빛 떨어지는 체력 안고 떨어지는 기분 엎어지는 발걸음 닥쳐올 시간 미리 겁먹지 말고 그늘에 앉아 숲의 노래 고요나 침묵 듣다가 올걸, 내 속에속에 불던 은밀한 바람 숲에 두고온 바람 앞으로 가지도 머물지도 못한 조심스러운 지리산 바라만 보는 지리산 오래오래 그 자리에 남아 품어나 주게, -
이촉 08-07 08:10
주지 못한 베개
주지 못한 베개 자려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에 병상의 환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종양 병동 근무 당시의 일이다. 1111호에 입원한 김가람 님은 폐암 환자로 몇 번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는 날이었다. 평소 말이 없던 그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몽고풍의 모자를 쓰고 있던 그는 평소에는 잘 내색하지 않아 표정으로 통증의 강도를 읽던 분이었다. “수간호사님,이 베개 집에 가져가면 안 돼요?” “그 베개가 편하세요? “네,이 베개가 잠이 잘 와요.” 나는 왜“드릴게요”라는 말을 입안에 담고 있었는지, 아이처럼 베개를 안고 애써 용기 내서 말하고 웃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나는 왜 베개를 주지 못했을까? 베개를 챙겨주려 했는데 퇴원할 때 미처 주지 못했을 거야. 핑계를 댄다. 언뜻언뜻 생각나는 1111호 문 옆 침대에서 투병하던 김가람 님.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고 밥이 약인, 밥 한 술 한 술 넘기던 모습이 액자처럼 벽에 걸려있다. 주지 못한 베개 하나 빈 침상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새 베갯잇 씌운 베개를 그 품에 안겨주고 싶다. 그때 항암치료 부작용을 잘 극복하고 퇴원했으니 지금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몽고풍 모자를 쓰고, * 김가람 님은 가몀임 -
이촉 08-01 08:06
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
주성윤 시인의 시비를 찾아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문수제 지나 오미 송정간 둘레길에 주성윤 시인의 시비가 있다고 해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문수리 들어가는 마을 앞 오미 슈퍼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혹시 주성윤이라는 사람이 마을에 살았는지 묻자 흔쾌히 시비가 있는 곳을 안내한다. 차로 내죽 마을 위 단산 윗길로 들어서니 깔끄막에 朱成允 詩碑가 있다. 수풀 사이 자리한 시비에 풀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 주성윤 시인은 구례와 지리산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시비로 안내한 단산마을 정동기 님은 시비가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시비가 있는 땅은 어느 교장 선생님의 선산이라고 했다. 그분의 집이 운조루 옆이라고 해 찾아갔으나 문은 잠겨있고 초인종은 눌러도 대답이 없어 집 앞에 있는 500년 된 서어나무만 바라보다 왔다. 주성윤 시인(1939년~1992)은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니 본적은 경남 창원으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텅 빈 공백』, 『독설』, 『먼 산에 진달래』, 『산꼭대기의 말』 『조선의 빛』 많은 시집과 번역서가 있지만 절판된 상태였다. 유고시집 『무궁화밭』을 펴낸 도서출판 두꺼비는 사라지고 대행업체인 새길 아카데미에 연락되어 시집을 구할 수 있었다. 시집을 읽다 보니 평론을 쓴 임헌영 평론가와 유고시집을 펴낸 김승균 발행인, 추모글을 쓴 황선락 소설가와 시인은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시절 ‘최류탄문학 동인회’ 활동으로 유명하다. 『무궁화밭』, 임헌영 평론가의 발문/주성윤론에 의하면, 1966년 『청맥』에 실린 장시 <조국의 상>은 투사 주성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썼다. 『청맥』에 글을 싣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인들이 고통을 받던 당시 주성윤 시인도 그 희생자로서 깊은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시비 옆면에 1994년 7월 9일 한맥 문학사 주관으로 박혜범 스님의 부지 제공, 시공사인 문산 석재의 대표 최용길 님과 통화 후 한맥 문학사에 제작한 시비를 납품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주성윤 시인에 대해서는 더 알 수 없었다. 한 시인을 찾아가는 문턱은 시집 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구례에 머물며 한 시인에 대해 쓴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묻어두고 네이버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 몇 편 열람할 수 있어 1977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짧은 시 <스냅 1>을 소개한다. 수풀에는 조랑조랑 새 울음떼 열리다. 사원의 한밤에 아무런 뜻도 없이 멍청히 떠올라선 한동안 넌센스로 조용히 머문 세상사 시끄러움 같다. 모든 뜨거운 것은 서산 허리에 걸리고, 초설이 흰 이를 드러낸 여정 같이 쌕뚝쌕둑 그 면전에 스쳐내린다. 스냅처럼 지리산 자락 깔끄막에 조랑조랑 열린 시어들. 아니 풀이라는 시와 풀이 어우러져 시인이 풀로 와서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게 온통 시로 풀어지는 듯하다. 시인이여, 어찌하여 지리산 자락에 오게 되었는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새소리 듣고 있는지 아니 새가 되었는지 유고시집 『무궁화밭』에서 임헌영 평론가가 쓴 주성윤 시인,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인이 교류했던 그 당시를 빈약한 내 언어보다는 시를 직접 음미하는 편이 낫겠다. 난꽃이 피던 무렵 (임헌영 형의 일을 명상하며) 오늘은 웬 일인지 난이 핀 곁에서 난꽃이 핀 걸 보며 해 지는 줄 모른다. 길가에서 어제 만난 갓 출소한 그 친구. 친구의 얼굴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속에서. 감방에서 수년 살며 어쩌면 제 죄도 아닐지도 모를 죄를 다 씻어내고 이전보다 한결 더 스마아트해진 모습으로 갓 출소한 그 친구 인상을 나도 모르게 나는 난꽃에서 건져올리며 정처 없는 생각에 하염없이 잠긴다. 생각자면 나도 내 죄도 아닌 죄가 너무 많은 청춘……, 중략 이따끔씩 세상을 가르치러 온 것이 라이어트가 되지 않도록 목숨으로 값치른 스승들의 이름도 밝음으로써 어두운 난향 속을 떠돎을 봤다. 국립중앙국립도서관에서 찾은 또 한 편의 시는 <청산음>이다. 어슴푸레한 박명에 청산음이 실려 오듯 한 시인의 삶이 걸어온다. 어쩌면 한 생이 피다 말고 저버린 쉽게 닫혀버린 책이 되고 있어 더 바래지기 전에 펼쳐봐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 자락에 울리는 청산음을 듣고 있는가? 시에 걸린 그 죄명 하나 거울 속에서 울리는데, 하늘을 쳐다보고 풀밭에 누웠으면 나도 미풍에 나부끼는 한 포기 풀. 마음은 맑아져서 그 끝에 걸린 거울이다. 이따금씩 바람결에 기억의 박명이 실려와서 그 속에 얼굴들을 비치고 지나면서 풀잎 끝에 죄명을 하나씩 달아놓고 간다. 흡사 몰래 선생님 등 뒤에 망신스런 쪽지를 써붙여놓고 잠적해버리는 개구쟁이 생도들. 그러면 하늘이 파아래서, 그들을 저지못한 부끄럼으로 얼굴이 화끈 붉어져버린 풀은 꽃이라 갈채하는 사람들. 살고파라. 바람도 청산에 죄를 물어오지 않는 청산에. 그래서 이윽고는 기억도 백흑그림들처럼 깡그리 지워져 없어질 흑판같은 청산에. 주성윤 시인을 다시 좇는다. 김선기 평론가의 <시인 박진환론>을 보면 주성윤 시인은 1963년 9월 박진환, 김종해 시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新年代』의 창간 멤버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1969년 구중서, 임헌영 등과 함께 『상황』 의 동인지 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은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사라져갔는가? 1975년 3월 11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박재능 시인에 따르면, 주성윤의 『일광속에서』 는 현대시에서 정서 배제를 위한 지적 처리가 원만하게 시도된 느낌이 드는데 비법에서 소화가 덜된 생소한 단어들이 돌출되어 눈을 거슬리게 하지만 전달의 방편이란 입장에서만 본다면 시대적 호흡에 적응하려는 노고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시인을 찾는 과정의 수확은, 『청맥』에 연재하던 장시에 관한 연구이다. 1923년 한국해양대학교 김지녀, <1960년대 『청맥』誌의 ‘長詩’기획과 ‘참여시’의 의미에 관한 연구>에 실린 글을 옮겨적는다 잡지 『청맥』은 오경남, 주성윤, 김소영 등 신인들을 주축으로 장시가 실렸다. ‘장시’가 다양한 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시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을 검토해 작품 유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감각과 언어로 폭압적이고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청맥』에 장시를 연달아 3편 발표한 주성윤 시인은 사상적이거나 미학적 측면에서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신인들에게 묻고 또 그들이 장시의 형식으로 응답한 『청맥』이 지향한 문학 이념과 참여시의 속성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월 22일자 ifs Post News insight에서 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9> 에서 <문학적 사제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지는가-박목월 선생과 그 문하생들>을 인용한다. 주성윤 시인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시 쓰는 일에 모두를 걸고 있었다. 그가 박목월 선생 댁을 찾으면 사모님 유익순 여사는 옷가지며 반찬을 주어 보냈다. “주성윤이 시인으로 등단하면 사는 일이 나마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박목월 선생의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주성윤은 관념시로 자기 세계를 이뤄낸 시인이고. 주성윤의 타계 소식은 시간이 흐른 뒤 입을 통해 알려지고 시인의 은둔은 그렇게 깊고 적막한 것이었나 보다고 적고 있다. 드디어 주성윤 시비 옆면에 적힌 부지 제공한 박혜범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정환 님으로부터 그분이 구례에 상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994년 문수리 두지 바위 길옆에 시비를 건립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비가 사라지고 없어 궁금하던 차에 필자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시비를 찾았을 때 풀이 무성한 사이로 시인은 시비를 건립한 사람과 30여 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풀로 덮인 그의 약력은 잊힌 만큼 풀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박혜범 시인이 기억하는 주성윤 시인은 천재이고 이름 없는 별이었다고, 시인 천상병 같은 시인이었으나 다른 향기의 시인이고, 길을 잃고 스스로 갇혀버린 그의 죽음 앞에서 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주성윤 시인을 시작으로 문수리에 이름 없는 천재들의 시비 동산을 만들고 싶었다는 박혜범 시인. 이름은 있되 이름 없다는 말을 곱씹는다. 찾아야지 찾아가야지 돌에 새긴 시인 찾아가야지 하는 나는 해무처럼 적셔지는 근원적인 비애감에 갇힌다. 갇혀서 걷는 길 길은 항시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길에게 너 아디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갇혀 있기보다는 걷고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우리라고 길을 보면 나는 항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가도 가도 이다지도 가슴 답답함은 갇혀서 걷는 길인 탓도 아니라는데 나를 자유 속으로 해방시켜 줄 동행은 왜 또 아무도 없는 것일까? 절레절레 발을 절며 오늘도 나는 길을 따라 나서고 길은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시 시비가 있는 선산 주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500년 된 서어나무 앞집에 갔다. 여전히 문이 잠겨있다. 할 수 없이 마을 한 바퀴 돌아본다. 솔까끔 마을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을 기다리며 풀이 풀을 노래한다. 그 시절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다간 주류가 되지 못한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풀 같은 존재를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참여시를 쓰고 관념시를 쓰고 순수시를 쓴 주성윤 시인의 시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시인이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살다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미 슈퍼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 벽화 속 빨래하는 아낙들 소리가 도랑으로 흐른다 방망이질 소리가 도랑으로 빠진다 오미 슈퍼 할머니가 나와 기웃거린다 슈퍼가 이뻐서 사진 찍어요 하니 씨익 웃는다 시인이 싱겁게 웃는 것만 같다 시인의 육필 원고 <무궁화밭>이 수록된 시집 『무궁화밭』에 실린 <뚝섬 시초>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암만 해도 낯 익었네. 저 선회 풀밭 위를 지나다가 문득 꽃진 풀밭 위에 하얀 나비 두어 마리 배회하는 광경 전생 혹은 이생의 어딘가에서 꼭 한 번 만났던 것만 같이 생각 든다. 기억해 내려해도 푸른 잎사귀로 가려 덮으며 영 잃어버렸거나 죽었거나 없다고만 하고 손 젓고 섰는 이승의 풀밭. 해 저물녘엔 질퍽이는 관능의 바다 기일게 전개시켜 놓고, 그래도 물들지 않고 호올로 이승을 가는 외로운 사람처럼, 또는 영혼처럼 흰 돛단배 가네. 하루 해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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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현경 09-20 14:15
바라는 바가 없는 발걸음을 누가 막을 것인가 _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을 마치며
바라는 바가 없는 발걸음 어제는 날이 맑았다. 오랜만에 아는 얼굴들을 마주했다. 처음 보는 이들이어도 좋았다. 기후정의행진에 온 이들은 모두 날씨처럼 맑았다. 물론 그 얼굴 한쪽에는 먹구름을 조금씩들 갖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가 맑은 날씨에도 먹구름을 간직한 하늘 같다는 것을. 우리는 깃발을 들었다. 피켓을 보였다. 소리를 질렀다. 아무 소리도 없이 산길을 올랐다. 그리고 이야기도 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파랑과 하양이 하늘에 가득한 날이었다. 세상은 불 타고 있다. 우리도 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오늘 깃발을, 피켓을, 목소리를 높이 쳐든다고 해서 세상의 불을 끌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면 그건 웃기는 일이다. 하루아침에 타오른 불길이 아니다. 세상은 계속 불 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걷는다. 나는 소리를 낸다. 나는 바라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불을 끌 생각이 없다. 그 불이 꺼지든 꺼지지 않든 나는 이 불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그저 소리를 낸다. 내가 불을 끌 수 없다는 사실이 내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나는 악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나는 악을 따르지 않을 뿐이다. 내가 악을 무너뜨린다거나 불을 끈다거나 무슨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는 환상적인 희망은 내게 필요하지 않다. 그건 나를 더욱 밑으로 끌어내리는 엿 같은 것이다. 나는 이 종말의 길에서 내가 갈 길을 가는 것뿐이다. 내 발걸음에는 바라는 바가 없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희망이 나를 유혹해도 나는 희망을 품지 않을 것이다. 희망의 등에는 늘 절망이 업혀 있으니까. 나는 바라는 바 없이 갈 길을 가겠다. 그게 내 남은 언어. 나의 유일한 언어가 될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얼굴에 남은 먹구름. 여전히 내가 어리석기 때문이다. 이 먹구름을, 슬픔을 거두어 그 슬픔마저도 내가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연료로 써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머지 않아. 나는 어쩌면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희망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먹구름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울고 싶다는 걸. 잘 가, 얘들아. 안녕. 우리는 헤어진다. 또 헤어진다. 또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헤어지겠지. 안녕. 안녕. 안녕. -
문홍현경 08-31 17:35
상상할 것인가 상실할 것인가
여름에 감기라니. “아니, 땀이 줄줄 나는데 어떻게 감기에 걸릴 수 있죠?” 침만 넘어가도 통증으로 답하는 나의 목에게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신호 줬잖아?” 아뿔싸, 그랬구나. 목은 내게 계속 따끔따끔하게 신호를 보냈던 거예요. 목감기가 올 거야, 따뜻한 물을 마셔, 목을 따뜻하게 감싸, 좀 쉬어, 하고요. 그러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여러 날을 앓았지요.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몸에서 나비효과가 일어났던 걸까요?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 몸에서 감기라는 태풍을 일으킨 ‘사소한’ 변화는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오로지 목의 문제였을까요? 어쩌면 이것은 육체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정신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목에서 시작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장에 사는 균에 의해 시작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염증이나 바이러스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평소 내가 늘 하는 자세와 태도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드러난 감기는 결말이 아니라 더 큰 한 방을 예고하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사소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런던에 사는 루시(Lucy Jiachun Hu)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가꿔 온 공동체 정원을 시의회가 철거할 계획이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그들만의 나비효과를 계획했습니다. 루시와 친구들은 나비를 유인하는 꽃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이 철거될 거라는데 왜 꽃을 심었을까요? 꽃을 심으면, 나비가 모여들고, 나비는 박쥐의 주요 먹이라서 박쥐가 정원에 나타날 것이고, 박쥐가 정원에 둥지를 틀면 그 공간이 종 보호 지역이 될 것이며, 결국 시의회는 종 보호 지역을 함부로 파헤칠 수 없게 될 것이기에, 정원 철거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이 바란 나비효과는 제대로 나타났을까요? 안타깝게도 당장 박쥐는 오지 않았습니다.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눈으로 보면 루시와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바보 같은 짓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력, 창의성 그러니까 무수한 연결고리를 과소평가하지 않는 공생을 향한 애정 어린 발상이야말로 지금 너무나 이성적이고 너무나 인과를 중시해 능력주의로까지 변질된 이 딱딱한 세상에 꼭 필요한 나비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벌이 사라지면, 참새가 사라지면, 환삼덩굴과 은행나무가 사라지면 생길 무수한 연쇄 반응을 상상하는 힘은 얽히고설킨 연결고리를 따라 오는 거대한 나비효과의 신호를 알아차리게 해 줄 테니까요. 상상하지 못하는 자들의 도시는 신호를 받지 못한다 큰 대형 사고가 생기기 전에 그와 비슷한 가벼운 사고가 스물아홉 번, 그리고 위험한 징후나 전조가 300번 정도 반드시 먼저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습니다. 이 통계적 법칙이 모든 사안에 들어맞진 않겠지만,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가볍게 넘기면 안 된다는 점을 일깨울 때 종종 인용됩니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 구조는 계속 신호를 보냅니다. 이러다 큰일 난다, 하고요. 그러나 상상하지 못하는 자들의 도시는 허점을 알려 준 사고를 신호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치하다 결국 대형 사고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이 불볕더위는 과연 무엇의 전조 증상일까요? 아니면 반대로 어떤 신호를 무시해 온 나비효과일까요? 목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한 탓에 며칠을 앓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수한 고리로 연결된 내 몸에, 이 사회에, 나아가 전 우주에, 얼마나 다양한 나비효과가 벌어지고 있을지를 상상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들의 보금자리에 공항 하나를 들이는 일이, 야생동물의 집에 도로를 뚫고 케이블카를 놓는 행위가, 원전을 추가하고 데이터 센터를 짓는 일들이 지구의 시간에서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맞닥뜨릴 나비효과가 사랑하는 이를 잃는 거대한 사고나 재난, 나아가 멸종의 형태로 찾아오길 바라지 않는다면요. 목감기가 차츰 잦아들고 기침과 콧물이 수줍게 나올 때쯤, 귀와 턱이 만나는 지점이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사랑니가 솟아 나오고 있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우와, 나라는 몸뚱어리의 신비로움이 어디까지 나를 끌고 갈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덕분에 요즘 나의 더듬이는 어디를 향해 나 있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너무, 나의 고통에만 집중하고 있었더라고요. 내 안의 충만함을 넘어서 지구로 확장되는 연결을 가능케 하는 상상력을 잃지 않으려면, 더듬이의 방향을 잘 잡아야겠습니다. 전쟁 덕분에 이윤을 보는 자들로부터 인간다움의 절멸을 느껴야 하는 요즘, 당신의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봉성신문>에 실렸습니다. -
문홍현경 07-30 13:18
환경을 위해 채식하겠다던 네가 오늘 치킨을 먹는다고 해도
벽소령 관통도로 공약 철회를 요구하며 열린 2026 생명평화 하지제에서, 내게 온 꽃등에. 때로는 이런 작은 맞닿음이 수백 마디 말보다 힘이 셀 때가 있지요. 얼마 전까지 저는 350일 채식인이었습니다. 이젠 달걀을 조금씩 먹기 시작해서 이렇게 부를 수가 없지만, 전에는 한 해 365일 가운데 350일 정도 채식하고, 보름 정도는 잡식인으로 살았습니다. 채식하는 날이 349일이 될 수도 있고, 351일이 될 수도 있지만, 날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한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벌써 채식한 지 열다섯 해가 넘었으니, 이제는 채식하는 일이 저에게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무서운 건, 어릴 때 고기 맛을 알아 버린 ‘입맛’이란 놈이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와 고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또, 저를 완전한 비건이 될 수 없게 만든 입맛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우유를 못 끊는 입맛이에요. 당신이 키가 작아 두 딸만큼은 꼭 키를 키우겠다고 한을 품은 우리 엄마는 어릴 때부터 두 딸에게 하루에 500리터씩 우유를 먹게 했습니다. 그 맛에 길들었는지, 우유를 끊는 일이 고기를 끊는 것보다 어려웠거든요. 입맛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치킨을 찾는 입맛, 라테를 원하는 입맛이 제게 찾아오면, 아무리 머릿속으로 좁은 케이지에 갇힌 닭이나 강제로 임신해 우유를 착취당하는 젖소를 생각해도 그놈의 (우라질) 입맛을 떨쳐내기가 힘드니. 그렇더라도, 날마다 고기를 찾던 제가 350일 채식인이라도 된 걸 보면 입맛을 완전히 못 바꾸는 건 아닌 듯합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채식하고 채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입맛도 조금씩 바꿀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천천히 조금씩 너무 괴롭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생각해 350일 채식인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어도 몸에 밴 습관을 이기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채식에 의지가 없는 사람이 채식하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렵겠어요? 그러니 채식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남의 행동을 고치려 드는 지적질은 정말 못 만든 광고 같아서 아무리 해도 효과가 없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저는 가끔 못 만든 광고를 또 내보내기도 하니, 이 또한 습관의 폐단인가 싶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누군가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까지 고려해야 할 일들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경험이 많았고, 덕분에 못된 지적질 습관을 꽤 줄이게 됐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나오는 ‘순자’를 만난 일입니다. 순자는 자기 핏줄인 나기뿐 아니라 옆방에 사는 아이인 소라와 나나를 위해 날마다 도시락 세 개를 여섯 해나 싸는 인물입니다. “반찬으로 머리 달린 부세 구이가 통째로 담겼다거나 고춧가루에 버무린 오이지만을 수북하게 담았다거나 이따금 달걀말이지만 대개는 달걀프라이 혹은 다른 반찬 없이 달걀프라이 한 가지를 밥에 얹고 양념간장을 뿌린 것 하는 방식으로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락이었다.” _『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순자가 싼 도시락은 육식에 가깝습니다. 만약 순자가 환경을 위해 채식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거나, 누군가로부터 그런 강요를 당했다면, 아마도 옆방 아이들의 도시락까지 챙기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순자는 늦은 밤까지 과일을 팔고 돌아와야 했고, 뇌경색으로 죽은 남편이 남긴 빚도 해결해야 했는데, 그런 순자에게 달걀프라이는 손이 많이 가는 나물 반찬보다 쉽게 세 아이의 도시락을 싸도록 도와주었을 거예요. 게다가 싸구려 달걀 한 판이면 싼 값으로 여러 날 아이들을 먹일 수 있었겠죠. 들여야 하는 노력을 보나, 돈을 보나, 육식 도시락이 옆방 아이들을 위한 순자의 선물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달걀이 어떻게 이렇게 싸게 대량으로 날마다 인간의 밥상에 오를 수 있는지를 두고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순자를 그저 동물복지나 기후위기도 생각 안 하는 악당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겠지요. 순자가 어떤 사람인가요, 여섯 해째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옆방 아이들 도시락까지 싸는 인물이면, 그 인품은 말 다했지요. 그가 동물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350일 채식하는 저보다 몇 배는 더 헤아렸을 겁니다. 다만 먹여 살려야 할 자식과 배고파하는 이웃 아이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순자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최선이라고,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모두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제삼자가 상상할 수 없는 고달픔과 슬픔, 우울함 같은 감정을 안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봅니다. 오늘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내일 오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내가 어떤 까닭으로 공장식 대량 축산물을 덜 선택하려고 하는지를 말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가 육식을 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다는 걸 순자가 제게 가르쳐줬습니다. 비건을 선택한 뒤로 섭식장애가 생겼다는 친구에게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벗아, 환경을 위해 채식하겠다던 네가 오늘 치킨을 먹는다고 해도 나는 널 비난하지 않을 거야. 당연히 너를 미워하지도 않지. 네 마음을 이해해. 너를 존중해. 오늘은 네 몸에 들어간 닭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내일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잖아. 네가 그간 더 나은 선택을 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알아. 너와 같은 지구인 동료가 있어서 나에게도 큰 힘이 돼. 네가 무얼 먹고, 무얼 사고, 무얼 입든, 네가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한 선택이라고, 너만의 까닭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지금 네 모습 그대로 네가 좋아. 우리가 친구여서 좋아.” ‘그냥 될 대로 살다 죽자’ ‘혼자서 그런다고 뭐 달라지냐’ 하는 절망이 찾아오더라도 ‘계속해 보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다잡는 비폭력 사랑꾼들을 나는 응원합니다. 내 옆의 소라, 나나, 나기, 순자가 그 감수성을 놓지 않을 수 있게, 계속할 의지를 꺾지 않을 수 있게, 나는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응원합니다. 우리 서로가 무지개 색깔로 더 나은 선택을 해 나가도록 빌어 주기를 바라며,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고민하는 지구 생명체들을 나는 늘 응원하겠습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_니은기역 출판사 이끄미 (이 글은 <봉성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문홍현경 06-15 10:51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복잡함을 문제 삼는 인간의 속도에 맞추려 하면, 강도 땅도 산도 한 가지 모양으로 반듯해진다. 어떤 꼴의 재앙이 될지 알 수 없다. 친구들과 생강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밭에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그리하여 올해 생강 농사의 첫 일은, 갇힌 땅 구출하기였습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그냥 제가 붙인 이름으로, 고랑을 꽉 덮고 있는 부직포를 걷어 내는 일입니다. 이미 있는 부직포를 굳이 걷을 필요가 있는지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몇 해나 묵은 부직포 위아래로는 또 다른 생태계가 끈끈하게 만들어졌고, 또 무엇보다, 걷어 낸 부직포는 또 다른 쓰레기가 되어 매립되거나 소각될 테니 그럴 바에야 땅에 그대로 두어 오랜 세월 뒤 땅으로 돌아가게 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함께 농사짓는 친구들 생각은 달랐어요. 플라스틱이나 다름없는 부직포가 밭에 있으면 땅이 숨쉬기에도 어렵고, 미세플라스틱이 계속 땅으로 들어갈 것이고, 자연농 숲밭의 순환 기능에 해가 될 것이라고 했지요. 저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부직포가 다 벗겨진 우리 숲밭의 변화가. 그래서 친구들 의견에 따르기로 했어요. 내가 땅을 구출한 걸까, 땅이 나를 지켜본 걸까 갇힌 땅 구출하기가 시작됐습니다. 땅에 깔린 부직포와 현수막 겹겹을 벗기려고 힘을 주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덮개를 뚫고 자란 풀들이 덮개와 땅을 이어 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풀과 흙과 낙엽의 무게까지 더해져 잘 들어 올려지지 않았지요. 있는 근육, 없는 근육을 다 끌어모아 덮개를 들어 올리니, 그 밑에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얽히고설킨 잔뿌리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도망가느라 정신없는 무수한 곤충 그리고 지렁이들…. 아, 지렁이가 정말 많았습니다. 마침내, 고랑 흙이 다 드러났습니다. 비를 맞은 뒤로 더 다채로운 음영을 보이던 숲은 자기가 품은 밭에서 플라스틱 덮개가 사라지자 훨씬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제 눈에는요. 숲도, 숲속 생명들도, 오늘 우리가 한 일을 좋아할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제겐 늘 의아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게 맞는가? 내가 하는 짓이 정말 옳은가? 내가 또 무언가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지난날,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갇혀서 내 고집만 부리며 산 것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그러고 사는 게 아닌지 흠칫 놀라곤 합니다. 그래서 자꾸 질문해 보는 거예요. 숲밭에서도 그랬어요. 시간의 속도가 인간과는 다른 생명들에게 인간의 속도에 맞추라고 강요한 게 아닌지, 뜨끔해서요. 인간의 속도로 만드는 ‘보기에 좋은’ 함정 얼마 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리산 국립공원 구상나무 보전 세미나 및 자연적응실험>이 있었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과 한라산 아고산대에서 자라는 구상나무가 일부 지역에서 말라 죽은 일을 두고 걱정해 왔습니다. 고심 끝에, 그들은 미리 세석에서 기른 구상나무 묘목 160분을 헬기로 날라, 반야봉에 심었습니다. 이 사업을 위해 많은 이가 반야봉 땅을 밟았고, 할 수 없이 일회용품과 에너지가 쓰였고, 다른 곳에서 자란 묘목이 반야봉에 심어졌습니다. 그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을, 숲은, 구상나무는, 그 숲에 사는 생명들은, 좋아해 줄까요? 인간이 자연에 대해 아는 건 고작 빙산의 쪼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인간은 기다리지 못할까요? 아직 구상나무 죽음을 둘러싼 자료가 충분히 쌓이지도 않았고, 다른 장소에서는 어린나무가 활발하게 자라는 등 지역마다 상태가 다를뿐더러, 자연의 천이 과정을 고려하려면 수십 년을 지켜봐야 할 일인데도, 왜 더 지켜보지 못할까요. 우리 사회가 복잡한 것을 견디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요? 불확실하고 복잡한 것을 못 견뎌서 측정할 수 있는 성과와 명확한 인과관계를 자꾸 요구하고, 이런 압력이 거세질수록 세계의 구불구불한 복잡성을 쫙쫙 펼쳐서 통제하려는 게 아닌지. 마치, 한 밭에 한 작물만 쫙 심고, 한 숲에 한 나무만 쫙 심고, 학교에선 아이들을 쫙 줄 세우고, 다양한 개성 같은 건 별종 취급하며 교정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는 것처럼요. 다양한 요인, 가지각색 요소, 저마다 가진 색깔, 무수한 변이를 느긋하게 바라볼 여유가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인간의 속도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들, 딱 거기에 맞춰서 해결책을 내려고 하다 보니 다양성도 사라지고 기다릴 여유도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구불구불, 꿀렁꿀렁, 가지각색, 제멋대로, 울퉁불퉁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것들을 좀 내버려둘 여유를 가져 보면 어떨까요. 그런 세상이라면, 인간들이 반야봉의 구상나무를 좀 더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 세상이라면, 땅이 맘껏 숨을 쉬고, 아이들도 맘껏 숨을 쉬고, 내가 세상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탐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생물이 함께 살 수 있는,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일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 세상 어떤가요? 글쓴이 : 문홍현경 _독립출판사 니은기역 이끄미 (이 글은 <봉성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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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옥 10-07 19:24
[곰주옥 X 인간주옥] ⑦ 풍요로운 삶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풍요로운 삶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걷고, 지리산에 가고, 관심 가는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텃밭에서 갓 딴 채소로 먹을거리를 만들며 살아간다고 말할 것이다. 크고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것은 나에게 풍요로운 삶의 한 모습이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풍요로운 삶을 위해 여러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원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은 갈등으로 번지기도 한다. 풍요롭다는 것은 많이 가지는 것과는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는 풍요로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권리를 빼앗긴 존재들이 많다. 인간의 먹이가 되거나 인간의 필요를 위해 이용되는 존재들이 그렇다.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의 곰들도 당연한 권리를 빼앗긴 존재들이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한국에 와서 사육농장의 뜬장에서 평생을 살았다. 다행히 그들은 구조되어 곰쉼터에서 살고 있다. 곰쉼터는 곰들에게 안전한 공간이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곰들에게는 넓은 땅이 제공되지 않았고, 사육농장에서 살아오는 동안 잃어버린 몸의 기능도 있다. 그래서 곰들이 풍요로운 삶으로 나아가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 그 부족함을 조금씩 채워가는 활동 가운데 하나가 ‘풍부화’다. 풍부화는 잃어버린 감각과 근육을 되살리고, 동물이 본래 가지고 있던 행동을 다시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다. 곰쉼터에서 풍부화를 담당하는 신유리 님은 곰들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을까? “초반에는 이것저것 많이 해봤어요. 커피박을 사료 봉지에 넣어서 줘보기도 하고, 생수통에 넣어줘 보기도 했어요. 그때는 계획표를 만들어서 오늘은 마대, 내일은 생수통, 그다음에는 또 다른 것을 하는 식으로 로테이션 했지요. 그런데 곰들은 생각보다 흥미를 보이는 빈도가 높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를 하기보다는 한 가지를 우물 파듯이 깊이 있게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예를 들면 일주일이나 한 달 동안 한 가지 풍부화 물품을 집중적으로 사용해 보는 식으로요. 지금은 곰들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조금씩 체계를 잡아가는 중이에요.” (2026년 10월 1일 신유리 님 인터뷰) 곰쉼터의 풍부화 활동에 곰들은 제각각 반응한다. 사람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 곰에게도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지난여름 곰쉼터에서는 얼린 과일을 매일 오후 1시에 하나씩 주기도 했다. 목욕통에 입욕제를 넣어 거품을 만들어주었더니 곰들이 좋아했지만, 가끔 그것을 마시는 곰이 생겨 중단했다. 곰들은 큰 타이어에서 눕는 것을 좋아한다. 호스로 만든 해먹을 사용하는 곰들도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곰들도 성격이 다르다. 좋아하는 활동과 도구가 다르고,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곰들을 위한 풍부화는 정해진 답을 실행하는 일이 아니라, 곰들의 반응을 살피고 시도하고 다시 바꾸는 과정에 가깝다. 풍부화 활동은 나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난봄 구례의 카페들은 커피박을 모아 곰쉼터에 전달했다. 커피박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는 곰들을 보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다른 존재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 과정에 나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의 날에는 곰들의 풍부화를 돕기 위해 칡덩굴을 수거했다. 칡덩굴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칡을 걷어내고 있는 모습을 본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물었다. “뭐 하는 사람들이요?”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고속도로 다리 아래에서 도로공사 직원도 아닌데, 초등학생부터 지긋한 나이의 어른까지 여러 사람이 칡덩굴을 열심히 걷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날 사람들은 성심껏 활동했고, 어느새 트럭 한가득 칡덩굴이 쌓였다. 40분 만에 수거를 마치고 곰쉼터로 이동했다. ↑고속도로 다리 아래에서 칡덩굴을 수거하는 활동 참여자들 ↑40분 만에 한 트럭 가득 칡덩굴을 모았다 곰쉼터에서는 수거한 칡덩굴을 곰들의 먹이이자 놀이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칡공을 만들었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흔하게 자라는 덩굴이지만, 곰에게는 잎을 뜯어 먹고, 남은 덩굴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새로운 풍부화 물품이 된다. 칡공을 만드는 것까지가 이날 활동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문수사를 나온 무니, 수리, 부기에게 칡공을 전달할 수 있었고, 그들이 칡잎을 맛있게 먹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활동 참가자들은 칡잎을 먹는 곰을 보는 순간 모든 피곤이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뿌듯하고, 기쁘고, 고맙고, 앞으로 뭔가 더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구례곰마루쉼터에서 칡공을 만드는 활동 참여자들 우리에게 흔한 식물이 곰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숲에서 살아보지 못한 곰들에게 칡잎을 맛보는 일은 어떤 경험일까. 윤주옥 : 모든 곰들이 칡잎을 좋아하는 건 아니겠죠? 신유리 : 대부분 좋아할 것 같아요. 모든 곰들에게 주지는 않았지만요. 이곳에 처음 들어온 곰들에게 칡잎을 줬을 때는 다 좋아했어요. 새로 들어온 문수사 곰들도 좋아하고요. 윤주옥 : 진짜 너무 맛있게 먹더라고요. 칡잎을 좋아하나봐요. 신유리 : 칡잎만이 아니라 먹고 남은 덩굴을 가지고 노는 것도 좋아한답니다. (2026년 10월 1일 신유리 님과의 대화) ↑칡잎을 뜯어 먹는 곰 (사진 제공: 구례곰마루쉼터) 곰들이 칡잎을 먹고 남은 덩굴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풍부화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풍부화는 곰에게 무언가를 ‘주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펴보고, 좋아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 나타나면 다시 방법을 바꾸는 일이다. 곰쉼터는 돈을 내면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관광지가 아니다. 동물원도 아니다. 곰을 구경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 인간에게 이용당하며 살아온 곰들이 남은 삶을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곰쉼터가 구례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우리 역시 생추어리와 동물원, 동물구조센터가 어떻게 다른지 잘 알지 못했다. 곰쉼터가 왜 필요한지, 그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선뜻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칡덩굴을 모으고, 그것으로 칡공을 만들며, 곰쉼터에서 그 의미를 직접 확인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곰쉼터는 곰들에게 안전한 삶터를 마련해주는 곳인 동시에, 우리가 다른 존재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풍요로운 삶은 혼자 더 많이 가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가진 시간과 힘을 조금 나누고, 그 작은 마음이 다른 존재에게 닿고, 그 존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기뻐하는 것. 그렇게 서로의 삶이 조금씩 이어지는 것도 풍요로운 삶의 모습일 것이다. 그날 우리가 모은 것은 칡덩굴 한 트럭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흔하고 귀찮은 덩굴이었을지 모르지만, 곰들에게는 먹고, 뜯고, 가지고 놀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게는 곰의 삶을 조금 더 가까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곰마루쉼터 중간 방사장에 칡공을 넣어주는 활동 참가자 ↑중간 방사장에서 타이어 안쪽에 넣어둔 칡잎을 꺼내 먹는 곰 (사진 제공: 구례곰마루쉼터)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나 자신에게 다시 묻는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볼 것이다. 다른 존재의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나의 삶도 그만큼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사진 _ 정이어린. 윤주옥 -
이수미 09-21 17:00
[뒤웅박 씻나락] "농민·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식량주권 실현" 이수미
농민·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식량주권 실현 _이수미(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 ○ 유엔 농민권리선언과 식량주권 201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선언’(UNDROP, United Nations Declaration on the Rights of Peasants)은 국제 체제에서 가장 야심 찬 문서 중 하나이다. 비아 깜페시나(La Via Campesina)에서 주도한 거의 20년에 걸친 운동의 결과물인 이 선언은 세계 식량의 대부분을 생산하면서도 빈곤, 폭력, 정치적 소외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한다. 유엔 농민권리선언은 다른 국제 문서에서 거의 명시되지 않은 권리들을 인정한다. 바로 토지에 대한 권리, 종자에 대한 권리, 물에 대한 권리, 강제 퇴거로부터의 보호, 의사결정 참여, 집단적 권리와 관습적 권리, 농민 지식에 대한 인정 등이다. 또한 식량주권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유엔 농민권리선언(2018년)에서의 식량주권은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러 국가와 지역에서 식량주권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자신들의 먹거리 및 농업 체계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먹거리 및 농업 정책 수립 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와 각각의 문화를 존중하는 생태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을 통해 생산된 건강하고 충분한 먹거리에 대한 접근권을 포함한다(유엔 인권이사회. 2018). * 유엔농민권리선언 참고 :https://viacampesina.org/en/2026/08/the-un-working-group-on-the-rights-of-peasants-undrop-will-soon-present-its-reports-on-land-and-seeds-in-geneva/ ○ 기후위기 극복, 지속가능한 농생태학 확대 적정한 소득과 생계에 대한 권리는 농업의 지속가능성에 있어 중요한 측면이며 농생태학적 전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농생태학적 원칙을 수용함으로써 농민과 농촌 노동자는 지속가능한 생계와 공정한 소득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정책 및 투자를 통해 농촌지역에서 생계 보장 방안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강화시켜야 한다. 농생태학은 생산 다각화,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촉진하고 용이한 영토 시장과 지역 식품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불평등을 줄이고, 생산자와 농업 노동자의 적절한 소득과 생계에 대한 권리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농생태학은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식량시스템을 위해 해결해야 할 사회적 측면을 고려하면서 식물, 동물, 인간 및 환경 간의 상호 작용을 최적화할 수 있다. 농생태학적 및 친환경농업을 포함한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 농촌 지역 사회의 노동 가치를 인식하고, 그들의 사회 경제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적절한 소득과 생계를 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주와 빈곤,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고, 식량시스템 회복력을 위해 농생태학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다국적 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거짓된 해결책에 투자가 쏟아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농민이 주도하는 농생태학적 해결책에 할당되는 기금을 늘려야 식량시스템을 기후위기에 적응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식량주권은 관계, 연대를 중심으로 확장된다 세계의 농민운동, 농업계 뿐 아니라 소비자,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집단과의 폭넓은 연대 속에서 확장되어 온 것이 식량주권이다. 이들과 단결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힘을 강화하는 길이다. 식량주권 운동은 초기 농업 기반을 넘어 점차 확장되어 더 다양한 생산자뿐만 아니라 윤리적 소비, 공정 무역, 농촌 및 도시 개발, 기후 변화 대응을 촉진하며 변화를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농촌에 사는 사람과 도시에 사는 사람 간의 새로운 관계를 확립하고, 생산 비용에 따라 공정한 가격을 보장하는 공공 정책을 개발하여, 농촌에서 생산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정한 소득을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건강한 식량에 대한 공정한 접근을 보장(via campesina)한다. 식량주권은 더 이상 상징적 구호가 아니다. 실제 구체적인 실천의 사례를 담고 있는 현장 투쟁으로 만들어진 실천적 개념이다. 식량주권 실현은 근본적인 먹거리 체계의 전환이다. 식량주권 원칙은 생산과 소비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식량주권은 다양한 대안 먹거리운동과 함께다. 식량주권 제도화의 핵심은 농정에 농민과 소비자가 주체로 참여(설계, 집행, 평가의 과정에 주도적으로)하는 것이다. 농식품 체계에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원칙과 기준 마련이 중요하며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을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 식량주권은 시장과 기업의 요구가 아닌 식량을 생산, 유통, 소비하는 사람들의 열망과 필요를 식량 시스템과 정책의 핵심에 둔다(La Via Campesina) ○ 농업에서의 정의로운 무역 신자유주의 시장 체제는 세계의 굶주림과 빈곤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불평등 확대, 기아 증가, 극심한 양극화를 불러왔지만 여전히 막강한 힘의 우위에 서 있다. 더 나쁜 상황은 농업의 미래, 농업의 디지털화라는 명목으로 농민없는 농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아 캄페시나와 전세계 농민운동의 투쟁으로 식량주권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전 세계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유엔농민권리선언 15.4조에서 식량에 대한 권리가 명시되어 세계적으로 강조되었다. 또한 일부 국가는 식량주권을 헌법, 법률로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장벽이 농민 앞에 놓여 있고 자본주의 세계질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이윤추구 방식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자본은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대량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식량시스템을 선호하고 생태적, 인간적 영향은 무시되고 있다. 식량안보는 식량의 가용성, 접근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식량주권은 세계적 기아와 영양실조의 근간이 되는 구조적 요인을 강조하여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규정한다. 식량을 상품과 이윤의 원천으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권, 문화적 가치의 원천으로 인식한다(Rachel Carlile, 2021). 식량주권은 식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식량주권은 농민에게 자신의 농사활동을 통제할 힘을 부여한다. 우리는 기후위기, 식량위기, 농업위기, 지역위기 시대에 살아가게 되었고 모든 일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져 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도 없고,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말하기도 어려운 시기다. 단편적인 접근이 아닌 종합적인 그림 속에서 우리의 요구를 펼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기다. 이 글은 9월 2일 곡성군농민회와 항꾸네 틈모임이 주관하여 연 "AI와 농촌" 제2강에서 이수미 녀름 소장이 발표한 주제의 자료집 "농민권리보장과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뒤웅박 씻나락에 글을 실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신 필자께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_대안문화웹진 <지리산人>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누리집 : https://nongyeon.org/ -
박금만 09-20 15:15
미곡 수탈
미곡 수탈 / 162.2X130.3 / 아크릴 물감, 캔버스 / 2020 여순항쟁이 일어나기 전 여수나 순천 또는 전국적으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미곡 수집령으로 쌀 가격이 폭락하고 정부의 관리들은 착취한 쌀을 창고에 넣어두고 비싸 질 때까지 풀지 않았다. 농민들의 그 피 같은 쌀로 자신들의 배만 불릴 기회를 엿보았고 실제로 두 배 이상 폭등 할 때 팔아서 부를 축적하였다. 이런 부류를 당시는 모리관상배라 하였다. 관리들은 경찰이 비호하는 가운데 농민에게서 쌀을 무자비하게 착취해 갔다. 여수농민들은 자신이 농사 진 쌀을 두 배 값을 주고 사먹어야 할 상황이었다. 당시 여순지역에 태풍까지 와서 그야 말로 삶은 피폐해져 있었다. 신문기사 한 토막에 순천에 사는 딸이 너무 굶주려 감춰둔 쌀을 자루에 넣고 몰래 기차를 타던 아버지가 철도 경찰에 걸려 쌀을 압수당하고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부상당했다는 기사도 있다. 여수토박이인 86세의 한 할머니는 자산공원 밑이 자신의 집이었다고 한다. 집 아래 종화동 식량영단창고(정부의 창고)에서 여순항쟁 때 활짝 열린 식량영단창고에 쌀이 썩어나고 쥐가 들끓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말해 주셨다. 이렇게 많은 쌀이 썩어나고 있는데도 쌀을 풀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에게 굶주린 민중이란 무엇이었을까? 작품 속에서 한줌의 쌀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농부의 저항! 우리민족에게는 쌀이란 목숨이었다. 14연대의 봉기로 촉발된 여순항쟁은 여수 민중의 분노였다. 작품을 위해 나는 내가 직접 모델이 되어 그림 속에 등장한다. 이 작품은 순천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촬영한 것이다. 내가 한복을 입고 스스로 사진 찍을 수 없어서 배경이 된 집의 주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집주인은 자기 집을 위주로 사진을 찍는 바람에 집은 크게 나오고 나는 아주 작게 사진에 나왔다. 거의 모든 사진이 그랬다. 아마 집주인이 자기 집을 잘 그려 달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을 것이다. 작업하기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칼럼에 게시된 글과 그림의 저작권은 박금만 작가에게 있으며, 작가의 허락 없이 복사하거나 다운로드하여 활용하시면 안 됩니다. -
안철환 09-09 11:09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가을 익어가는 백로
8월령백로는 보통 음력 8월에 들지만 올해는 7월 25일에 들었습니다. 8월의 시작이 백로인데 7월에 들었으니 빠른 백로입니다.음력 8월은 12지지 중 유酉월로 유는 항아리에서 술 익는 모습을 표현한 겁니다. 7월에 시작한 가을이 8월에 익어가는 거겠지요. 7월 처서에 팬 이삭이 8월 백로에 익기 시작하는 건데요, 그래서 백로가 되서야 늦게 팬 이삭은 쭉정이가 됩니다."백로에 벼 이삭패지 않은 집엔 가지도 말아라" 라는 속담은 얻어먹을 게 없다는 뜻일거구요, 괜히 민폐끼칠 걸 저어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8월의 정점은 추분과 추석입니다. 이 대목에선 진짜 드릴 말이 많으니 그 때 가서 하기로 하고 요번엔 백로에 집중할까 합니다.가을이 무르익는 백로이젠 진짜 본격적인 가을에 들어섰습니다. 새벽엔 이불 덮어야 남은 잠 청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이죠. 찬 기운에 놀라 창문 닫고 겹이불 덮었는데도 이미 깬 잠을 이어가지 못 해 이글을 긁적이고 있네요.그런데도 한 낮은 여름이 아직 남아있어 조심은 해야 합니다.백로에 딱 맞춰 출수를 완료한 벼 이삭의 익어가는 모습은 진짜 그럴듯합니다. 그 거 보고 싶어 눈에 어른 거릴 정도니요.모종하지 않고 씨로 심어 지주 없이도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고추와 가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듬직하기만 합니다. 때를 놓쳐 너무 웃자란 놈을 모종해 기대도 안했던 들깨와 콩들도 고추 가지 못지 않은 기세를 보면 미안키도 하지만 대견한 마음이 크네요. 논 둑에 심은 콩은 자리잡자마자 떡잎만 남기고 과감히 적심해주는데요, 웃자라 이미 떡잎은 대부분 떨어져 어딜 잘라줄지 몰라 물어보는 아내를 저는 그냥 모른 척 하고 말았어요. 아내도 결국 죽거나 말거나 대충 하고 뒤돌아선 모양이대요. 풀 속에서 목숨줄 겨우 잇고 있는 놈에게 숨통을 터 주려 풀을 벤 건 순전히 벼를 위한 거였어요. 근데 그러고 나서 힘을 내기 시작하더니 벼를 흉내 내려는 건지 그럴 듯하게 코투리를 달고 키우고 있는거지 뭡니까. 어린 콩코투리 즙을 쪽 빨아먹어 쭉정이 만드는 개미허리노린재도 올 해는 나타나질 않아 코투리가 예쁘게 익어갑니다.들깨는 웃자라도 잘 사는 편이지만 이번엔 좀 심했습니다. 그렇게 뻘춤히 웃자란 들깨를 고구마 심듯 누여 심고 윗 순을 잘라주라는 제 말에도 아내는 심드렁했지요.워낙 생명력이 강한 놈이라 믿긴 했지만 뿌리 내릴 때쯤 북을 주며 바라보는 제 마음도 심란하긴 매 한가지였어요.그럴 때는 그냥 잊고 마는 게 상책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들깨는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여지껏 키운 것 중 단연 제일입니다. 열심히 순도 지르고 잎사귀도 따다 먹었지요. 이젠 이놈도 가을이 온 걸 눈치 챘는지 잎의 기세가 약해져 있더만요. 에너지를 모아 꽃을 피우려 용을 쓰고 있는 겁니다.네팔 소식을 그냥 넘기려니 개운치가 않습니다. 남 얘기가 아니기도 하고 또 우리 잘못 같아 더 그렇습니다.사실 기후 변화는 지구 입장에선 하나의 생리현상 같은 걸지 모릅니다. 감기 같은 거라 할까요?구석기 시대처럼 이동하는 삶에선 기후변화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답니다. 기후 따라 이동하면 되니까요. 아마 기후변화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전 지구로 퍼져갔을 겁니다.그런데 농사지으며 붙박이 삶이 위기를 키웠습니다. 어디 갈 데도 없고 갈 방법도 잊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이번 기후변화는 도시문명이 주도하고 있어 그 심각성이 더 합니다. 네팔이 그걸 얘기해주고 있는데요 당장의 홍수는 새발의 피일지 모릅니다. 빙하가 사라지는 게 더 큰 문제이지요. 히말라야 빙하는 남극, 북극과 또 다른 극으로 몬순기후의 발원지입니다. 그 덕에 장마가 있어 폭염에도 견디고 살 수 있는 거겠죠. 알프스, 안데스 고산 빙하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지구 곳곳의 고산 빙하들이 지구의 다양한 기후 조건들을 만들어주어 인간도 그 외 많은 생명들도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겠지요.더 중요한 사실은 고산 빙하들이 바로 많은 강들의 발원지라는 사실입니다. 빙하가 사라지면 강들도 말라버릴 수 있다는 점이죠. 강도 사라지고 몬순도 사라져 비도 오지 않는다면 지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기후변화의 끝판은 바로 가뭄입니다. 제가 되도록 물 적게 주고 작물의 자생력을 키워보려 농사짓는 나름의 명분입니다. 되도록 직파한다든가, 지주를 세워주지 않는다든가 논에 물을 자주 뺀다든가 하는 식이죠.고추든 가지든 직파를 하면 지주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뿌리를 깊게 내려 스스로 버티고 쓰러지지 않으려 열매를 많이 달지 않지요. 적당히 감당할만큼만 열매를 여니 쓰러지지도 않고 거의 병도 없습니다. 가지는 더 쉽구요, 토마토는 아직 모종을 하지만 지주는 세워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량은 적지만 물도 안 주고 지주도 안 해주는데 병도 없다면 전체적으론 가성비가 높지요. 더 중요한 건 가뭄에 대비한 이른바 한전旱田농법의 주요 방법이라는 겁니다. 전통농법의 지혜이지요.논에도 벼가 자리잡아 그늘을 드리우면 풀이 힘을 못 쓸 때 물을 뺍니다. 그러다 이삭 팰 때 물을 넣는데 자작자작할 정도 넣고 그것도 이삼일 있다 빼지요. 수확할 직전까지 물 담아 놓는 논하곤 다릅니다. 물이 상시로 담겨 있으면 논 흙이 혐기상태가 되어 발생하는 메탄도 거의 없을 겁니다. 거름도 완숙된 거나 오줌으로 웃거름 정도만 주니 메탄가스든 그보다 더 무섭다는 아산화질소 같은 온실가스가 별로 발생되지 않을 거라 자신하지요.몇년 전까진 저희 논에 장마 때 아니면 아얘 물이 없었어요. 논 벼인데도요. 모내기도 건답에서 했지요. 훨씬 전엔 벼도 직파를 했어요. 그러다 지금처럼 제한 급수를 하고 모내기를 하는 건, 제초와 밀 이모작 때문입니다. 확실히 물을 채우니 피사리를 한 두번밖에 하질 않아요. 수량도 1.5배는 되구요. 더 결정적인 건 밀과 이모작이 된다는 겁니다. 직파하면 일찍 심어야 해서 이모작이 안되거든요.암튼 지금처럼 물을 많이 쓰는 농사방식은 기후변화에 아주 위험합니다. 물을 아끼며 농사지었던 조상들의 지혜가 절실합니다. 네팔사태가 일러주는 메시지를 저는 그렇게 해석하지요.옛날처럼 기후변화에 따라 이동하며 살 수는 없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붙박이 삶이 기후변화를 억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땅이 가뭄으로 사막화되는 걸 막아야 하니까요. 이동하는 삶은 떠나면 그뿐이니 사막화를 막지는 않을거잖아요. 지금 지구 곳곳의 사막들이 그렇게 방치되어 생긴 것들이 많을 겁니다.그렇지만 지금처럼 물도 낭비하고 끝없는 단작농사로 토양을 망가뜨리고 도시에선 온실가스를 펑펑 뿜어대면 지구엔 더 많은 사막들이 생길겁니다.반대로 조상들의 지혜를 살리면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당장의 문제를 막지는 못해도 노아의방주 같은 대안은 되지 않을까요? 내일 당장 하늘이 무너진다해도 나는 오늘 한알의 콩씨를 심으려 하는 명분이지요.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박금만 08-26 19:59
1947년 3월1일관덕정에서(제주애국인민)
1947년 3월1일관덕정에서(제주애국인민) /130X160cm/아크릴물감,알루미늄판,못,콘테,연필/2023 1946년 10.1대구 항쟁이 폭발하면서 미군정은 이튿날인 10월 2일 오후 7시 대구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을 동원해서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군 개입으로 대구항쟁은 경산, 성주, 영천 등으로 확대되었다. 미군정의 행정에 분노한 경북도민들은 미군정과 계속 충돌했고 이후 경북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1946년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 열기는 1947년 3월 1일 제주로 이어졌다. 제주시민들은 삼일절 제28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관덕정에 모여 “통일을 먼저 이루자! 단선단정을 반대한다! 그리고 제주 중학생들은 양과자 수입 막아 식민지화를 막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했다. 가두시위 도중 어린아이가 말발굽에 치였는데 경찰은 아이를 두고 가버린다. 이를 본 시위 군중들은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경찰은 이 군중을 보고 시위대에 그대로 발포해 버려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시민들은 이날 발포 사건에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민.관 총파업을 벌여 투쟁한다. 미군정은 총파업을 강경 대응하며 500명을 체포하고 2,500명을 고문과 구타를 했다. 제주 민심은 들끓어 다음 해인 1948년 4.3일 제주 무장대는 봉기를 시작한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14연대 군인들도 이러한 제주도민들을 애국인민으로 보았고 학살할 수 없다며 항명하였다. 작품에서 나는 4.3항쟁의 시작점으로 내 분신을 보내 제주 애국인민들을 응원한다. 당신들은 애국인민이다!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칼럼에 게시된 글과 그림의 저작권은 박금만 작가에게 있으며, 작가의 허락 없이 복사하거나 다운로드하여 활용하시면 안 됩니다. -
김흥주 08-26 19:28
[뒤웅박 씻나락] "농촌기본소득에서 구례형 기본사회로 ―노인들의 천국, 구례를 꿈꾸다" 김흥주
농촌기본소득에서 구례형 기본사회로 ― “노인들의 천국, 구례”를 꿈꾸다 김흥주 (원광대학교 라이프케어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구례 주민) 구례에서 농촌기본소득이 시작된다. 구례군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지역으로 선정되어 모든 주민에게 매월 2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첫발은 잘 내디뎠다. 그러나 사업에 선정되고 돈을 지급한다고 해서 저절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성공은 그 돈이 구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바꾸고, 지역 안에서 얼마나 따뜻하게 순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본소득을 단순히 주민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정책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주민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보장하고, 동네 가게와 시장, 농민과 돌봄 제공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마중물이어야 한다. 그래서 구례 농촌기본소득의 성과를 인구가 얼마나 늘었는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주민의 식탁이 좋아졌는지, 동네 가게에 손님이 늘었는지, 혼자 지내는 어르신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생겼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동안 농촌의 발전 전략은 주로 외부의 사람과 돈을 끌어오는 데 집중되어 왔다. 산업단지를 만들고 관광시설이나 케이블카를 세우면 관광객이 몰려오고 젊은 사람도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사람이 오지 않으면 큰 시설과 유지관리비만 남는다. 건물은 번듯한데 정작 주민의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 일도 많았다. 구례의 미래를 토건 사업과 청년 유입에만 걸어서는 안 된다. 일자리와 생활 기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과 관광시설을 늘린다고 청년이 저절로 찾아오거나 오래 머무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구례는 65세 이상 주민이 전체 인구의 40%를 훨씬 넘는 초고령 지역이다. 이제 정책의 중심을 ‘언젠가 들어올 사람’에서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다면 발상을 바꿔보자. 고령화를 극복해야 할 약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초고령사회에 가장 잘 대응하는 지역을 만들 수 있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살던 마을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선 고령 친화 지역을 만들어보자. 구례의 미래 비전을 “노인들의 천국”으로 삼아보자는 이야기다. 물론 노인들만 모여 사는 거대한 복지시설을 만들자는 뜻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살던 집과 마을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밥을 먹고 병원에 가고 이웃을 만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지역을 만들자는 것이다. 노인이 행복한 동네는 아이와 장애인, 청년과 여성에게도 살기 좋은 동네다. 언젠가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결국 모든 주민을 위한 구례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기본소득과 통합돌봄을 단단하게 연결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받아도 마을에 쓸 곳이 없다면 돈은 금세 구례 밖으로 빠져나간다. 반대로 그 돈을 지역 먹거리와 반찬 배달, 병원 이동, 집수리, 문화와 여가 활동에 사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민의 생활이 편안해지고, 지역 안에는 새로운 일자리도 생긴다. 기본소득의 액수만큼 중요한 것이 “그 돈이 구례 안에서 몇 번이나 돌고 도는가”이다. 먼저 경로당부터 달라질 수 있다. 담소를 나누고 점심을 함께 먹는 공간을 넘어, 마을의 작은 생활돌봄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건강을 살피는 돌봄 반장, 식사와 반찬을 챙기는 먹거리 돌봄, 병원과 시장에 갈 수 있는 이동 지원, 간단한 집수리를 연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어르신들은 낯선 시설로 떠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마을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지역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구례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로 어르신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학교와 복지시설, 공공기관이 지역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면 어떨까. 마을부엌과 반찬가게, 공동급식과 식사배달을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이 맡을 수도 있다. 그러면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판로가 생기고, 청년에게는 일자리가 생기며, 어르신의 식탁은 더 건강해진다. 이렇게 기본소득은 농민과 청년, 노인을 하나로 이어주는 셈이다. 어르신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지리산의 산나물과 약초, 섬진강의 생태, 마을의 역사와 음식에는 오랫동안 살아온 어르신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들이 농산물 가공과 마을식당, 생태해설과 전통음식 교육에 참여하도록 해보자. 도움만 받는 노인이 아니라 일하고 가르치고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당당한 주민으로 서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구례만의 보물을 더할 수 있다. 자연을 깎고 파헤치는 대규모 관광개발보다 치유와 장수, 생태와 돌봄을 중심으로 한 체류형 관광이 구례에 더 잘 어울린다. 어르신과 가족이 함께 걷는 무장애 숲길, 섬진강 치유 프로그램, 지역 농산물로 만든 건강식, 농촌마을 체류를 연결하는 것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구례 사람들의 건강과 삶을 지켜주는 공동의 자산이어야 한다. 이런 변화는 행정에만 맡겨놓는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 활동가와 귀촌인, 농민과 상인, 의료기관과 사회적경제 조직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읍·면 기본소득위원회도 지급 대상자를 심사하는 데 머물지 말고, 기본소득과 돌봄, 먹거리와 지역경제를 함께 설계하는 주민자치 조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성과를 평가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전입 인구가 몇 명 늘었는지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식탁이 좋아졌는가?”, “병원에 가지 못하는 어르신이 줄었는가?”,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이웃과 함께 먹게 되었는가?”, “동네 가게와 농민의 소득이 늘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런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때 구례 농촌기본소득은 비로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구례는 더 큰 건물을 가진 지역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관광객이 잠시 보고 떠나는 곳을 넘어, 지금 사는 주민이 가장 존중받고 행복한 생활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리산과 섬진강, 농촌기본소득, 초고령사회라는 세 가지 조건을 잘 엮는다면 구례는 대한민국 농촌의 미래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노인들의 천국, 구례”는 고령화에 체념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고령화의 현실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이를 돌봄과 순환경제, 생태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역을 새롭게 설계하는 힘으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농촌기본소득에서 출발한 구례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구례는 사라져가는 농촌이 아니라 새로운 기본사회를 가장 먼저 만들어낸 지역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쓴이 : 김흥주 _현재 원광대학교 라이프케어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교육부 인문사회융합인재양성 사회구조사업단장(2025~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먹거리위원회 공동위원장(2026~현재), 한국농촌사회학회 회장(2021~2023), 한국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SSK) 먹거리지속가능성연구단장(2010~2021), 한국사회복지학회 운영이사(2011~2012), 서울시 친환경무상급식심의위원회 부위원장(2012~2015),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관 현장평가위원(제5기, 제6기, 제7기), 기초 푸드뱅크사업 현장평가위원(2012년),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배분위원(2015~2019). 저서 <지역사회복지론>, <사회적경제와 공공성>,<사회복지조사방법론>(공저) 등.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윤주옥 08-18 10:29
[곰주옥 X 인간주옥] ⑥ 문수사를 나온 곰들, 무니와 수리 그리고 부기
지금은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있는 무니, 수리, 부기는 올해 4월 30일까지 문수사에서 살았다. 내가 이들을 처음 만난 건 2012년이었는데, 그 후로 문수사를 생각하면 곰들이 갇힌 철장이 먼저 떠올랐다. “2013년에 문수사 갔다가 갇혀 있는 곰을 보고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사찰에서 철창에 갇힌 곰에게 줄 먹이를 팔다니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는 거대한 곰의 모습에 눈물이 납니다.” “저희 아이도 오래전에 거기 곰들을 보고 너무 충격받아서 문수사 간판만 봐도 싫어합니다.” 문수사와 그곳에 사는 곰들에 대한 사람들의 댓글이다. 나 역시 문수사를 떠올리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1년에 한 번씩은 문수사에 올라가 곰들이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지 확인했다. 확인한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질문에 매번 “그 곰들은 개인(문수사 주지)의 사유재산이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올해는 지난 2월, 문수사 주변으로 올무 수거 활동에 갔다가 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문수사에 올라갔다. 여전히 철장 안에서, 여전히 왔다 갔다 하고, 여전히 돈을 내고 곰들에게 먹이를 주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우리를 본 곰 한 마리가 철장에 머리를 부딪히며 소리를 지르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그 곰이 철장에 머리를 부딪힐 때마다 내 머리도 철장에 ‘쿵’ 부딪히는 통증이 전해졌다. 더는 그곳에 서 있을 수가 없어 일행들에게 내려가자고 이야기했다. 문수사에서 내려오면서, 가까이에 곰쉼터가 있는데 이 곰들은 왜 여전히 이곳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았다. ↑ 무니와 수리, 부기가 살던 문수사 철장(뜬장) 3월 초, ‘문수사 철장에 갇힌 곰들을 곰쉼터로 보내자’는 서명과 항의 전화를 요청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서명은 100명에서 1천 명으로, 다시 2천 명, 3천 명으로 삽시간에 늘어났고, 항의 전화를 했다는 분들이 상황을 전해왔다. 결과적으로 문수사의 곰들은 곰쉼터로 옮겨졌다. 3월 초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곰들이 이주한 게 4월 30일이니 두 달 만에 묵은 숙제를 한 셈이다.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고 실천하면 부조리한 일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 일이었다. 무니, 수리, 부기는 4개월째 곰쉼터에서 살고 있다. 잘 살고 있겠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더운 여름애 뭘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여 곰쉼터를 찾았다. 최신영 수의사는 무니, 수리, 부기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말해줬다. “무니, 수리는 문수사에서 온 친구들이라 자연스럽게, 마지막 한 친구에게 ‘사니’라고 붙이려 하니 ‘사니?’ 이런 물음으로 들려 좀 이상해서요. 그런데 그 친구가 잘 걷지를 못하는 거예요. 걷는 모습이 거북이 같아서 ‘부기’라고 했습니다.”(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 면담) ↑ 곰쉼터로 옮겨진 후 건강을 회복한 부기 (사진제공 : 구례곰마루쉼터) 곰쉼터에 왔을 때 거북이처럼 걷던 부기는 많이 좋아졌다. 척추에 손상을 입었을 것으로 예상되어 압박이나 염증을 줄여주는 약물치료를 했고, 곰쉼터 바닥이 타일이라 미끄러우면 걷는 게 힘들 수 있으니까 청소 후에는 최대한 물기가 없도록 했다. 이제는 걷는 모습이 눈에 띄게 괜찮아졌다. 100% 완벽한 건 아니지만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은 없다. 나는 문수사의 곰들이 ‘이사’, ‘이주’했다는 표현보다는 ‘옮겨졌다’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문수사 곰들뿐 아니라 곰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사람에 의해 이동하는 과정에는 마취를 하거나 포획틀을 사용하는 등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 윤주옥: 문수사에서 여기는 무척 가깝잖아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때, 마취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최신영: 네, 그렇습니다. 문수사 철장 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이동이나 환경 변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어서요. 흥분한 상황에서 마취를 하지 않고 케이지로 이송한다면, 그 친구들에게는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거든요. 윤주옥: 더 좋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거잖아요? 최신영: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작은 공간에 갇혔다가 (넓어지고 깨끗해졌지만) 익숙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흥분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곰이 다칠 수 있고 또 사람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마취가 좀 더 안전한 거죠. (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와의 대화) 무니와 수리, 부기는 얼떨결에 옮겨졌지만,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 최신영 수의사는 문수사에서 매일 같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공격적이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적응을 잘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지하게 더웠던 올여름은 어떻게 지냈을까? 지리산 자연에 사는 곰들은 계곡에서 지낼 수 있으니 어떻게든 여름을 보냈을 텐데, 털 많은 곰들에게 이 더위는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각 방에 물 양동이를 하나씩 넣었어요. 물놀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햇빛이 강하니까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중간방사장 위쪽에 검은색 천막을 쳐줬고요. 또 방마다 선풍기를 설치하고, 과일을 얼려서 주기도 합니다. 여기 바닥이 타일이거든요. 타일이 시원하니까 최대한 몸을 펼치고 누워 있더라고요. 입추 지나면서 조금 시원해져서 다행이에요.” (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 면담) ↑ 물통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무니 (사진제공 : 구례곰마루쉼터) ↑ 타일 바닥에 몸을 최대한 펼쳐 누워 쉬고 있는 수리 (사진제공 :구례곰마루쉼터) 최신영 수의사와의 대화 후에 무니와 수리, 부기를 만났다. 부기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봤고, 무니는 바닥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으며, 수리는 옆 방의 친구들이 궁금한 듯 눈과 귀가 옆 방을 향해 있었다. 최신영 수의사는 곰들을 ‘친구들’이라고 칭했고, 개별 곰에 대해 말할 때는 이름을 불렀다. ‘부기야, 뭐 하니?’, ‘무니, 많이 덥구나’ 이런 식이다. 곰들을 대하는 그의 말과 태도에서 곰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무니와 수리, 부기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덕분에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최신영 수의사는 ‘계속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사육농장에 남아 있는 곰들이 있고, 곰쉼터에서 살아가는 곰들도 사람들의 관심이 끊기면 지원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곰들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계속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작일 것이다. -
박금만 07-24 19:50
항쟁의 심장
항쟁의 심장(10.1대구항쟁) /160X130cm/콘테/2024 나는 나름 작품으로 철학적 구축을 다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의 흔적을 2017년 인터넷에서 순천경찰서기록으로 발견한다. 서울경기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약 15년간 할아버지 흔적을 찾아다녔는데 못 찾고 여수로 귀향한 지 2년 만에 기록을 찾은 것이다. 그 기록은 매우 건조했다. - 활동유형: 좌익활동(우익,좌익,좌익활동) - 장소: 광천 다리 밑 - 사망유형: 총살 순천경찰서의 이 기록은 그동안 우리 가족의 괴롭고 어둡던 모든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분노와 슬픔으로 그동안 그려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여순항쟁 작품에 몸을 던진 계기가 되었다. 기록을 발견하고 일주일간 잠도 잘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며 생각했던 것은, 첫째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알리자, 둘째 작품에서 지형이나 복장 무기 등은 철저히 고증하자, 셋째 피나 잔인한 장면을 서정적인 슬픔으로 승화하자(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이렇게 시작한 작품들이 방대한 여순항쟁 역사에 미미하지만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여순에 살고 있다. 여순항쟁은 대구항쟁과 제주4.3항쟁과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래서 여순의 기원을 그려 보기로 했다. 해방이 지난 1년 후 1946년 10월1일 미군정은 친일 관리를 등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한다. 쌀값은 폭등해서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또한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어린이들은 의약품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대구시민들은 "쌀을 달라! 생필품을 달라! 어린이를 치료할 의약품을 달라! 친일경찰 물러나라!" 외치며 차라리 길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거리로 나온다. 10월1일 대구부청 앞에서 기아 대책을 세우라는 시위 도중 민간인 황말용, 김종태 2명의 노동자가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게 된다. 다음 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으로 대구의 굶주린 일반시민들, 노동자, 학생들까지도 시위에 합세하게 된다. 만여 명의 시민들은 대구경찰서를 포위했고 결국 경찰들은 무장해제를 한다. 대구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며 경찰권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로 민중들은 거리 한쪽에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위 작품은 분노한 대구민중들이 돌을 들기 직전을 작품화한 것이다. 이후 몰리고 있던 경찰들은 발포를 해서 24명의 시민들이 사망한다. 이를 기점으로 대구항쟁은 영남일대로 번지고 나중 제주4.3항쟁, 여순항쟁까지 항쟁의 불꽃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대구시는 '10월 항쟁'이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난 2016년 대구시가 '대구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마련한 것이다. 이전에는 주로 '대구 10월 사건', '대구 10·1 사건' 등으로 불렸다. 일각에서는 폭동, 소요사태 등 부정적인 단어가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극렬 유튜버들은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며 대구항쟁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지리산人>에서 박금만 작가의 '여순그림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순항쟁을 담아 사실적인 역사화를 그려 오고 있는 박금만 작가의 이번 칼럼을 통해, 여순항쟁(여순10.19항쟁)의 역사와 아픔 나아가 항쟁에 함께한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리산人> 드림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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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09-23 09:46
[소식] 지하수의 지속가능성과 주민생존권을 위한 먹는물관리법 개정 방향 토론회
지하수의 지속가능성과 주민생존권을 위한 먹는물관리법 개정 방향 토론회 -산청군 삼장면 사례를 중심으로- ◦토론회 일정: 9월 30일(수) 오후 2~4시 ◦장소: 삼장면 복지회관 회의실 ◦주최·주관: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 정혜경 국회의원실 ◦토론참여: 발제자 전원, 삼장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3인),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 (2인), 전국 및 경남 환경단체 (3인), 낙동강유역환경청 담당관, 산청군 담당관 ◦진행자: 윤주옥 (지리산마을살이기록단) <진행순서> 1. 모두발언 (삼장 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 2. 인사말 (정혜경 국회의원) 3. 연대사 (전국지하수공동대책위원회(거제주민대책위원회)) 4. 발제 (10분 내외, 자료집 제작 예정) ① 삼장 투쟁의 시작과 현재, 먹는물관리법의 문제점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 삼장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 ② 삼장지역 물환경설문조사 및 현장조사 결과보고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 ③ 삼장 생수공장 증량과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이병대 박사, ㈜지리산산청샘물 환경영향조사서 심의위원) ④ 먹는물관리법 개정 방향 (하승수 변호사, 지리산사람들) 5. 질의응답 및 토론 (40분 내외) 생수를 만드느라 엄청난 양의 물을 퍼내 지하수가 말라 가고 있는 현실, 아시나요? 이번 토론회에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
지리산인 09-07 12:05
[설문] 지리산권 주민 기후재난 보상·복구 인식 조사 설문
지리산권 주민 기후재난 보상·복구 인식 조사 설문 안녕하십니까! 본 조사는 지리산권에 거주하는 주민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기후위기와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재난 위험에 대해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진행됩니다. 또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보상 및 복구 제도에 대해 주민 여러분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실제로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조사하여 앞으로 더 나은 재난 대응 정책과 지원 제도를 마련하는 데 활용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응답은 통계 분석과 정책 제안에만 사용되며, 개인정보는 관련 법령에 따라 안전하게 보호됩니다. 설문에는 정답이 없으며, 평소 느끼신 생각과 경험을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은 지리산권 주민의 안전을 지키고, 기후재난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바쁘시더라도 잠시 시간을 내어 설문에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기후재난대비를 위한 지리산권 시민모임 - 설문 참여 https://forms.gle/LaU4q2r7jhERpQKi6 -
지리산인 09-06 20:25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주간 행사 안내
★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행진 안내 ★ 구례 : 2026.9.19(토) 오후 3시 구례읍사무소 ~ 봉성산 행진 남원산내 : 2026.9.19.(토) 오후 4시 산내면사무소 ~ 실상사 행진(사전행사 1시부터) 주최 :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조직위,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 불태우고, 섬진강 말려 죽이는 착취 폭주를 멈춰라! ▧ 지리산 불태우고, 람천·임천 말려 죽이는 착취 폭주를 멈춰라! ★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주간 행사 안내 ★ - 13일 (일) 16:00-18:00 네 이웃의 옷장(‘구병모_네 이웃의 식탁’ 오마주) @ 함양 동네책방 오후공책 - 14일 (월)·15일 (화) 19:00-21:00 기후정의 영화제 <캔 아이 겟 위트니스?> @구례자연드림시네마 - 16일 (수) 19:00-20:00 지구의 노래 sing-along @구례읍 봉동길 3, 1층 - 17일 (목) 10:00-12:00 기후정의 정책 요구안 만들기 @구례 중앙로 25, 2층 - 17일 (목) 13:00-15:00 햇빛소득마을, 네가 궁금 @구례 산보고책보고작은도서관 - 17일 (목) 16:00-18:00 <녹색계급의 출현> 함께 읽기 @온라인 - 18일 (금) 10:00-12:00 초등학생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법 발표 @구례 공유공간 '거실' - 19일 (토) 09:30-11:00 지구에 숲을! 곰에게 칡덩굴을!! @구례 한겨레숲 - 19일 (토) 17:00-19:00 모두의가게 옷케스트라 @하동 악양면사무소 앞 야외공터 ✅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7대 요구안 ✅ 1. 생태계 서식지·종 다양성 보장하고, 생태계 파괴 사업 중단하라 2. 에너지 사용 한계선 설정하고, 탈핵·탈화석연료·공공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정의 실현하자 3. 지역을 희생시키고 생태계와 주민의 삶을 파괴하는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중단하라 4. 생태친환경농업으로의 전면적인 전환을 지원하고 생명농지 보전 정책과 소농으로의 전환 기반 마련하라! 5. 성장과 소비를 뒷받침하느라 지역에 강요되는 착취와 희생을 똑바로 보고, 성장 사회 신화 깨뜨릴 생태적 대안 문화로 전환하자! 6. 재난에 취약한 지역 인프라와 복지 체계 바로잡고, 재난 예방책과 적응 정책 함께 마련하라! 7. 시민들이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만드는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기후시민 참여권 보장하라 ● 주간 행사 정보 https://docs.google.com/document/d/1ewumSWzthXsrjqRGxulFsOlZnACvUSydJTviATLGur4/edit?usp=sharing ● 지리산사람들 https://www.instagram.com/jirisanpeople_/ -
지리산인 08-23 13:34
[소식] 함양 제2회 기후정의 영화제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함양작은영화관에서 하는 함양 기후정의영화제 보러 갈까요~! 9/4 나는 강이다 9/7 캔 아이 겟 위트니스? 영화를 통해 우리 함께 기후정의를 생각하고 두 손 모아 보아요 함양에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