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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09-04 16:25
히말라야의 대재앙
「섬진강 편지」 -히말라야의 대재앙 새벽에 일어나 EBS 다큐 <하나뿐인 지구> '히말라야의 대재앙, 빙하 쓰나미'편을 봤다. 2014년 방영되었으니 벌써 12년 전에 히말라야의 온난화로 인한 재앙에 대해 예고를 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에메랄드빛 호수는 더없이 맑고 평온해 보이지만 어마어마한 물을 담고 있는 이 호수는 대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시한폭탄이다. 작은 연못에 지나지 않던 임자 호수는 지난 50년 사이에 거대한 호수로 성장했다. 빙하는 계속 녹아내리고 이런 호수는 매년 숫자가 늘어나고 규모도 커져 '빙하 쓰나미'의 위험이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지는 중이다. 세계의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26일 오전 9시경 일어난 네팔 대홍수로 392명 사망·1,400여 명 실종, 한국인 9명도 실종 상태이다. 아직도 2차 쓰나미의 우려가 남아 있고 이 홍수 사태가 지나고 나면 또 물 부족 재앙이 걱정이란다. 이 재앙은 네팔만의 재앙이 아니다. 히말라야 온난화의 주역인 국제 온실가스 배출량 국가별 순위(다큐 내용, 2014년 현재)를 보니 한국이 7위이고 배출량 증가율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망설이고만 있으면 우리는 더 끔찍한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다. 어제 남동발전에 근무했던 선배에게 혹시 네팔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실종된 후배들 소식을 아는 게 있는지 전화를 해봤으나 선배도 그저 애가 탄단다. 지금은 각기 나뉘어 있는 다른 회사지만 실은 다 같은 한전 직원이었던 전력산업 후배들, 나 또한 해외발전소 건설 현장 경험이 있어서 더 애가 탄다. 올해 말이면 준공 예정이었다니 지난 5년 간 국위선양이라는 자부심으로 견뎠을 열악한 현장의 생활이 짐작된다.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저녁에 열어주는 소주와 삼겹살 회식이 기다려지던 산간오지의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오늘은 제발 실종자들의 기적 같은 소식이 전해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비 내리는 아침 섬진강을 바라본다. *사진은 점점 사라져 가는, 몇 개체 남지 않은 <노고단 물매화>입니다. -
박두규 09-03 04:37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 에 대하여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 대하여 『요가 수트라』는 고대 인도에 난무하던 다양한 요가 철학을 통합하여 총 4장 195절의 수트라로 구성한 짧고 함축적인 요가 경전이다. ‘요가’라는 말은 ‘합일’이라는 뜻으로 제한된 에고 의식(개체의식)을 높은 영적 의식 수준(지고 의식인 전체의식)으로 끌어올려 합일을 이루는, 그래서 궁극의 자유로움(해탈,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수행의 한 방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요가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하나로 묶어주는 삼위일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몸의 자세나 호흡법 등의 바디 요가(하타요가)는 이 궁극의 합일을 위해 몸을 만드는 수단이며 마인드 요가와는 다르다. 전통적으로 요가는 의식의 자기 변형을 이루어 깨달음, 자유, 해탈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이라고 보면 된다. 요가 지식은 전통적으로 밀교의 형태로 스승이 제자에게 직접 가르치는 방법으로 전수되었다. 그러다 보니 혼란이 없지 않았는데 약 2500년 전에 파탄잘리(붓다 이후 2~3백년 사람으로 봄)가 『요가 수트라』를 지어 요가를 집대성하면서 요가의 마스터, 요가의 대부라고 불리게 되었다. 파탄잘리는 『요가 수트라』에서, 요가란 늘 움직이고 있는 마음을 고요 속으로 가라앉히는 것이며 그 고요는 유체 이탈이나 황홀경 같은 무의식적 상태가 아니라 완전하게 깨어 있는 의식의 상태라고 말한다. 완벽한 고요함과 완전한 의식으로 현재의 순간에 깨어 있는 그러한 의식 상태가 요가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요가는 우리가 현실에서 깨어 있으면서 보다 큰 의식적 단계에서 작용할 수 있도록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요가 수트라』2장 2~8 ►크리야 요가의 목적은 집중하는 힘을 기르고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번뇌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 있다. ►번뇌의 원인, 곧 깨달음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물은 무지, 에고의식, 집착, 증오, 그리고 목숨에 대한 애착이다. ►무지는 번뇌의 밭이다. 다른 번뇌가 잠자고 있든지, 요가 수행으로 미약하게 되든지, 억눌려서 중단되든지, 혹은 활동하든지 간에 항상 그의 밭으로써 존재한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한 것으로,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한 것으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참 자기가 아닌 것을 참 자기로 잘못 생각하는 것이 곧 무지이다. ►의식 자체(아트만, 참 자아의 순수의식)와 의식을 반영하는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하는 것이 곧 에고 의식이다. ►집착은 쾌락에 머물려고 하는 마음에서 생긴다. ►증오는 괴로움에 따라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위의 말씀은 『요가 수트라』의 2장에 실린 것인데 2장의 전체 구성은 요가의 수행에 대한 장으로 먼저 요가 수행의 첫걸음인 행위의 요가(크리야 요가)에 대해 말한다. 이어서 과거의 생각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카르마의 잠재적 경향(업, 삼스카라)에 대해 말하며 다음으로 제거되어야 할 괴로움의 원인인 '에고 의식'과 함께 아트만(진아)에 대해서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구체적인 수행법인 아스탕카 요가 8가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이 글에서는 인용한 구절에 대한 생각과 함께 요가 수행의 핵심인 아스탕카 요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위에 인용한 제2장 2절에서 8절까지에는 요가 수행을 방해하는 번뇌의 원인 5가지를 제시한다. 깨달음을 방해하는 이 다섯 가지 장애물은 무지, 에고의식, 집착, 증오, 그리고 목숨에 대한 애착 등이다. 여기서 무지는 우리의 본성(순수의식)에 대한 무지를 의미하며, 에고를 중심에 두고 에고 의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무지를 의미한다. 이것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 나와 참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의 엄청난 세상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며, ‘나’가 나의 전부라고 알며 살 뿐 ‘참나’에 대한 의식의 확장 자체를 아예 모르고 사는 것이 무지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번뇌의 근원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생존본능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우리의 의식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그것이다. 이 강력한 두려움의 본능이 사는 동안 끊임없이 번뇌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는 살고자 하는 강한 집착의 본능적인 힘이 아주 집요해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압도적이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동적인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능적이고 자동적인 감각이기 때문에 번뇌와 고통의 원인이 된다. 이렇게 파탄잘리는 요가의 수행에서 깨달음을 방해하는 번뇌의 원인으로 불가에서 말하는 탐, 진, 치, 3독(三毒)과 에고와 죽음,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다. 파탄잘리는 이러한 요가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번뇌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8가지의 탁월한 처방을 내놓는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는 아쉬탕카 요가이다. 이 요가를 수행하면 몸과 신경계에 누적된 불순함이 깨끗이 정화되고 순수의식(푸르샤)과 현상세계(프라크르티)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고 한다. 좀더 부연하면 첫 번째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회적 도덕률인 5가지 계율이고(야마), 두 번째는 자신의 완성된 삶을 위해 필요한 5가지 계율이다(니야마). 그리고 세 번째는 명상 수행을 돕기 위한 다양한 몸의 자세를 계발하는 것이다(아사나). 네 번째는 마음의 활동을 잘 컨트롤 할 수 있는 바른 호흡법이며(프라나야마) 다섯 번째는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흩어지게 만드는 감각기관의 활동을 컨트롤하여 의식이 한 방향으로 바르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프라티야하라). 그리고 여섯 번째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하나로 집중시키는 것이며(다라니), 일곱 번째는 마음이 가라앉아 고요해진 상태에서 바른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고(디엔), 여덟 번째는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이 그대로 순수의식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사마디)를 말한다. 이것이 7천 년 전 고대 인도의 시바로부터 시작된 그리고 이후 개인으로 전수되어 오던 탄트라 요가를 파탄잘리가 대중을 위해 8가지로 정리한 아스탕카 요가다. 이러한 수행이 깊어지고 사마디(삼매)의 경험을 조금씩 쌓게 되면, 삶에서 고통을 초래하는 원인들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음을 점차적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의식에 주의를 기울이면 척추를 통해 흐르는 차크라 에너지들(쿤달리니 파워)이 서서히 깨어나고 의식의 가장 깊은 상태에 이르러 몸과 마음이 순수의식 자체를 경험하고 영혼과 하나가 되는 합치(요가)가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다. 이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일상의 자신을 섬세하게 들여다 봄으로써 내면의 지혜가 점점 깊어지고 삶의 번뇌를 모두 극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렇게 일상의 삶 속에서 육체와 호흡을 정화하고 에고의 무지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순간순간 깨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몸과 마음과 영혼의 조화를 이루는 수련을 하며 흔들림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
김인호 08-13 23:21
역설의 꽃
「섬진강 편지」 -역설의 꽃차일봉에서 흘러 우번대 상선암 거쳐 천은사 계곡 지나 물들의 감옥천은저수지 가뭄 깊어 바닥 드러나니 백골꽃이 피는구나푸르렀던 나무가 무기징역살이 물속에서 침묵의 꽃을 피웠구나 물속에서 핀 바짝 마른 흰꽃이라니,저 역설의 꽃은 피어 쩍쩍 갈라질 메마른 세상을 예고하는구나 -
김인호 08-13 23:08
딱 한송이지만
「섬진강 편지」 - 딱 한송이지만 꽃봉오리를 올린 그제부터 숨죽여 기다렸는데 오늘 아침 드디어 꽃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침 7시 10분부터 몇 번씩 나가 들여다 본다. 부처꽃의 호위를 받으며 5시간 만에 꽃문을 활짝 열었다. 저 순백의 연꽃, 너무 늦어 못 오시나 아니, 이제 영영 아니 오시나보다 했는데 이 폭염을 뚫고 오시다니, 하루 종일 오도 가도 못하는 마음으로 순백의 꽃주변만 맴돈다. 폭염경보 아니 폭염중대경보 아무리 떠들어봐도 저 순백이 피는 한 여긴 화엄세상, 견딜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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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모두의 가게, 모두의 공간
[반달곰1%가게유람기] 모두의 가게, 모두의 공간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뀔 때 옷장을 정리했다. 아직 입을 수 있지만 손이 잘 가지 않아 따로 모아뒀던 옷들을 담아 악양에 있는 ‘모두의 가게’로 향했다. 내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그 곳에서는 새 주인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가게’는 하동 악양에 자리한 자원순환 공간으로 품질에 이상이 없으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다양한 물건을 기부받아 합리적인 가격으로 재판매하는 한편, 생활에 필요한 친환경 제품을 비닐포장 없이 판매하고 텃밭 농산물을 나누거나 크고 작은 소모임을 여는 곳이다. ‘모두의 가게’을 지키는 8명의 활동가 중 ‘진이’씨를 만나 가볍게 안부를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의 가게’를 손님으로 오가며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다. 소비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수진 : ‘모두의 가게’가 생기고 운영되는 것을 보며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어떤 인연으로 모두의 가게를 함께 시작하게 됐어요? 진이 :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모두의 가게’를 시작한 지 3년이 됐는데 시작하기 몇 년 전부터 제로 웨이스트 모임을 같이 했어요. 생활에 필요한 것(세제, 밀랍랩 등)을 함께 만들기도 하고 책을 같이 읽기도 하면서 ‘아지트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얘기를 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하게 될 줄은 몰랐죠. 목공방을 운영하던 자리에서 ‘모두의 가게’를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데 악양면사무소 앞이라 이웃들이 오며가며 들르기 좋을 것 같기도 했고 뭔가 해보면 재밌겠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 공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다가 제로웨이스트 모임을 계속 해왔으니 ‘자원을 순환할 수 있는 공간과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였어요.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공간으로요. 요즘은 어느 카페를 가든 소비를 해야 하는 구조잖아요. 소비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진 : 인테리어도 다 같이 한 거죠? 진이 : 맞아요. 8명이 함께 시작했어요. 그 중 시간이 되는 5명이 공간 지기를 하고 있어요. 함께 페인트칠도 하고 공방을 하던 친구가 남기고 간 가구를 활용하거나 각자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가구를 가져다놓았죠. 새로 산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필요한 게 있으면 ‘모두의 가게’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올리면 누군가 가지고 있는 걸 나눠주기도 했어요. 수진 : 저도 채팅방에 들어갈 수 있어요? 진이 : 그럼요. ‘모두의 가게 악양’이라고 검색하면 나올 거예요. 100명을 채우는 게 목표였는데 벌써 110명이 넘었어요. 가게 소식도 전하지만 개인들이 ‘우리 집에 이런 게 있는데 나누고 싶다.’는 것도 많이 올리셔요. 농산물을 나누거나 판매하고요. “선풍기 필요해요.”라고 올리면 누군가 “저희 집에 있어요.” 해서 나눠주시기도 해요.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 공유 경제라고 할까요? 그런 게 생각보다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24년 3월에 개설 된 ‘모두의 가게’ 오픈 채팅방에 함께하는 참여자는 26년 8월 기준 114명이다.) 수진 : 제로웨이스트 동아리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실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수익을 만들어야 공간 운영이 되니까요. 진이 : 그래서 고민이 되기도 해요. ‘소비하는 삶을 지양하고 있는 걸 나눠쓰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는데 이 곳 물건이 저렴하니까 필요 없어 보이는데도 마구 사가는 분들이 간혹 계셔요. 그러면 ‘우리가 괜히 소비를 조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해요. 필요한 게 아닌데 생각보다 싸고 괜찮은 물건이 있으면 갖고 싶어지잖아요. 그래서 공간 지기들은 물건을 사라고 부추기지 않아요. “필요 없으면 사지 마셔요.”라고 안내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건 뭐, 저희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죠. 수진 : 고민이 될 것 같아요. 공간이 더 활성화 되면 좋겠지만 소비를 조장하고 싶지는 않기도 하고요. 진이 : 그러게요. 소비를 조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월세는 또 벌어야 되고.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슬기롭게 해야 할까요? 한편으로는 ‘물건을 무조건 싸게 파는 게 좋은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몇 번 했었는데 지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뉘어요. ‘싸게 팔아서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게 하는 게 좋다.’라는 의견이 있고, ‘그래도 물건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반영해서 가격을 책정하는 게 좋다.’라고 하는 의견도 있고요. 어떻게 생각해요? 수진 : 음... 값을 어느 정도 받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돈과 상관없이 필요한 사람이 물건을 잘 사용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쉽지 않은 문제네요.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있잖아요. 운영을 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물건값을 ‘5만원’ 이렇게 받지는 않을 거잖아요. 비싸다고 하더라도 5천원-1만원 일 것 같은데. 진이 : 논의를 하다가 허탈해지는 게 그거예요. ‘천 원 받을지 3천 원 받을지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얘기를 해야 되나.’ 싶어 좀 웃겼죠. 결국 모든 물건에 천 원을 붙이는 것은 그만하자고 의견이 모였어요. 싸서 막 사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 노동력과 시간을 담은 공간 수진 : 이 공간을 지키는 분들 인건비는 거의 안 나올 것 같아요. 진이 : 전혀 안 나오죠. 수진 : 아이고. 그럼에도 공간을 지키고 사람들이 왔을 때 맞이하는 건 어떤 마음으로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봉사한다.’도 아닐 것 같아요. 진이 : 글쎄요. 지기들마다 다를 텐데 저는 봉사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우리가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알바비 정도를 책정해서 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어쨌든 자기 시간을 여기에 쓰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나의 노동력과 시간에 대해서 억울한 마음은 없어요. 그런 마음이라면 이 일을 할 수 없겠죠. 처음부터 그런 기대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글쎄, 어떤 마음으로 하는 걸까요? 나도 잘 모르겠네. 살다 보니 돈이 되는 일이 늘 재미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재미있든 재미없든 해야 되는 일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마음 안에서 ‘하고 싶다. 이거 너무 재밌겠다.’라고 우러나와서 하게 되죠. (진이는 일주일에 하루는 ‘모두의 가게’에서 공간 지기로 일하고, 하루는 하동 이웃 5명이 함께 만든 독립서점 ‘이런책방’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이상하게 돈과 연관이 없는 일들인 거예요. 그런가 보다 생각해요. 돈은 딴 데서 벌고 이런 일로 나의 다른 부분 채운다고 생각해요.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그게 꼭 돈이 따라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아마 다른 지기들도 그럴 거예요. 지금은 집 한 편을 수리해 작은 농어촌 민박(‘이런민박’)을 하고 있고 작년부터는 동네 농장에서 애호박 포장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아침에 3-4시간 정도 일하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시골에 내려올 때 ‘농사일에 품을 팔아서 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애호박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머리를 비우고 몰입해서 일하게 되는데 끝나면 개운하고 좋아요. 수진 :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하시네요. 시골이라 가능한 걸까요? 진이 : 맞아요. 시골이라서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시골에서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해요. 하루 종일 일하는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조그마한 일 하나로는 생계 유지가 안 되니까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어차피 아침에 일어나야하는데 더 누워있어서 뭐 해. 가서 일하지.’ 이런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모두를 위한 공간 수진 : 앞으로 ‘모두의 가게’가 좀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진이 : 몇 가지 있는데 일단 공간을 잘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모두의 가게’를 이용하는 분들 중심으로 여러 모임이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장소를 얼마든지 이용하실 수 있으니까요. 지금까지 ‘바느질 모임’도 해 보았고 ‘책 읽기’, ‘희극 읽기’ 같은 작은 모임들이 생겼다 사라지곤 했어요. 먹거리와 관련된 모임도 해보고 싶어요. ‘반찬 만들기’ 모임 같은 것을 하며 주기적으로 같이 ‘식사 모임’도 해보고 싶어요. 가게 한편에 공유 재봉틀이 있으니 사용하시라고 안내하는데 모임이나 공간 활용이 활발하게 잘 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수진 : 공간을 잘 쓰이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계속 알리고 사람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지역사람들은 이 공간을 어떻게 보시나요? 어르신들은 좀 낯설어하셨을 것 같아요. 진이 : 처음에는 많이 낯설어하셨어요. “여기 도대체 뭐 하는 데야?” 하시거나 “왜 이렇게 싸게 팔아? 누가 입던 옷 아니야?” 이런 이야기도 하셨죠. 그런데 저희가 잘 설명 드리면 “너무 좋네. 나도 집에서 좀 찾아볼게.” 하고 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면사무소가 가깝다보니 어르신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하셔요. 들어오셔서 물 한잔 하고 쉬었다 가시기도 하고 핸드폰에 문제가 있으면 “나 이것 좀 해줘라.”하시기도 해요. 그럴 때 뭐랄까, 뿌듯하다고 해야 할까요? 작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웃들이 편하게 생각하고 와주시는 게 고마워요. 처음에는 들어와도 되는 데인지 안 되는 데인지 몰라 기웃거리던 분들도 이제는 편하게 들어오셔요. 뭘 사지 않더라도 들어와서 잠시 쉬었다 가시기도 하고요. 요즘도 여기 앞에 써 놨어요. “에어컨 바람 공유합시다.”라고. 서로의 믿을 구석이 되어주는 사람들 수진 :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것은 늘 매끄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함께 운영하는 분들끼리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아요. 진이 : 이것도 운영자들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 생각처럼 큰 갈등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의견이 안 맞을 때는 꽤나 많아요. 그래도 대부분 대화로 잘 해결이 되었어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쪽을 따라간다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만 한 사람이 “난 이것만큼은 절대 포기 못해.” 하면 또 그 사람 뜻을 따르기도 하면서 해 왔던 것 같아요. 최악의 상황, 그러니까 “나 더 이상 같이 못하겠어!” 이렇게 관계가 틀어질 때까지 가면 안 되죠. 수진 : 이야기를 듣다보니 ‘모두의 가게’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이웃이나 일을 같이하는 사이 이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이 : 그 이상이긴 하죠. 저한테는 그래요. 우리가 오래된 친구처럼 일상을 다 공유하지는 않지만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으면 모두들 발 벗고 나서 줄 사람들이라는 믿음 같은 것도 있고 기댈 구석이 되는 것 같아 고맙기도 해요. 여태까지 경험해 온 인간관계랑 조금 다르다고 느껴요. 그렇다고 막 엄청 끈끈하진 않아요. 어느 정도의 거리는 있는데 또 어떨 땐 되게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사실 ‘이 사람들 없으면 여기 뭐 하러 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생각해 보면 복 받았죠.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서로 잘 조율하면서 재밌게, 때로는 싸우기도 하지만 함께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기쁘죠. 수진 : 그런 단단한 관계가 이 공간을 자연스럽게 운영되게 만드는 것 같아 보여요. ‘반달곰 친구들’과 연대하는 마음, 지구와 함께하는 발걸음 수진 : 이번 인터뷰는 하동에 있는 ‘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함께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진이 : ‘반달곰친구들’ 단체를 알고 있기도 했고, 그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었어요. 그 곳에 수익금의 1%를 후원하는 가게들이 구례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반달곰친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의 가게’의 관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익이 많이 나서 후원도 많이 하면 좋을 텐데... 뒤이어 도시의 현대인보다도 바쁜 시골사람들의 일상을 넋두리하며 자연스럽게 인터뷰가 끝이 났다. 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나 새로워진 ‘모두의 가게’ 공간을 휘리릭 둘러보았다. 더 넓고 환해진 공간에 이웃들이 둘러 앉아 크고 작은 모임을 열어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지나던 이웃이 “여기로 옮겼어?”하며 문을 열고 빼꼼히 들여다보며 안부를 묻고 돌아갔다. 더 이상 입지 않는 깨끗한 옷을 ‘모두의 가게’에 두고 꼭 필요해 사려고 온라인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큰 유리병을 한 편에서 발견해 반가운 마음으로 사 왔다. ‘이런 곳이 하동에 꼭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했던 그 모습 그대로의 공간을 기꺼이 꾸려가는 모두의 가게 공간 지기들이 참 고마웠다. 올해로 3년이 된 ‘모두의 가게’는 지난 7월 ‘악양면 악양동로 373’로 자리를 옮겨 새롭게 문을 열었다. 매주 월-금 11:00-15:00 열려있으며 매일 다른 지기들이 이웃을 맞이한다.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6년 현재 구례 11곳, 하동 11곳으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글쓴이_ 정수진 하동으로 이주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남편과 함께 인도와 네팔에서 NGO 활동가로 살아가고, 꽃피는 봄이 오면 하동으로 돌아와 민박집을 엽니다. 텃밭을 가꾸고 이웃 농부들의 농산물이 잘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요리하고 나누어 먹습니다.정수진 08-13 15:51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그리고 순례의 길 - 이원규 시인 인터뷰 2부
이원규 시인 인터뷰 2부에서는 지리산 댐 반대운동을 계기로 수경스님, 도법스님과 인연을 맺고 실상사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부터, 낙동강 천삼백리와 지리산 850리를 걸었던 도보순례, 지리산 둘레길의 원조가 된 기획, 대운하 반대 삼천리 순례까지 활동가로서 걸어온 길을 들어봅니다. 대표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 탄생한 배경과 안치환의 노래 이야기, 그리고 무리한 순례 끝에 찾아온 병까지 담았습니다. 00:00 인트로 00:43 지리산댐 반대운동 - 수경스님과의 만남 04:05 실상사 합류와 낙동강 도보순례 05:44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와 위령제 07:51 지리산 둘레길의 원조 기획과 한계 10:34 생명평화 탁발순례와 오체투지 14:58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창작 배경 17:01 안치환의 노래 18:11 지리산에 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19:20 '지리산사람들' 단체 결성과 박두규 시인 21:16 이런 때 불러주시면 달려갑니다 22:46 내가 사랑한 장면 - 정령치와 만항재의 밤 24:22 섬진강 조망 1번지, 오산 사성암과 풍수 이야기이지민 08-07 12:58 -
고1 때 가출 겸 출가하고 간첩으로 몰린 소년 '지리산 시인'이 되다 - 이원규 시인 인터뷰 1부
지리산 시인 이원규 선생님을 모시고 그의 삶을 들어봤습니다. 1부에서는 문경의 가난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우연히 만난 국어선생님(시인)을 통해 시와 인연을 맺고, 절에서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었던 젊은 시절, 그리고 서울에서의 노동운동과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오토바이 한 대로 지리산에 내려오기까지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00:00 인트로 00:39 시인 이원규를 만나다 02:45 가난한 산골마을 시인 국어선생님 04:35 중2때 출가하고 간첩으로 몰린 사연 06:46 절에서 만난 단 한권의 책 07:39 검정고시와 대학 진학, 시인 데뷔 09:44 시인이 된 후의 환멸과 노동운동 12:01 서울살이와 위장취업 기자 생활 13:40 오토바이 타고 지리산으로 17:11 이현상의 유품을 찾아헤멘 빗점골 20:15 지리산 정착 — 이장과의 만남, 98년 수해 23:30 오토바이로 지리산 곳곳을 홀로 탐색하다 #이원규시인 #지리산사람들TV #지리산 #시인인터뷰 #윤주옥 #지리산 #지리산시인 #행여지리산에오시려거든이지민 08-01 10:22
자연생태더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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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환 07-16 21:03
늙은 나무 생명의 숲
▲ 갈참나무 수공에 둥지를 만든 올빼미 함양 상림이나, 하동 취간림, 광릉 수목원 등 오래된 나무가 있는 공원을 가보면 원앙, 까막딱다구리, 올빼미, 솔부엉이가 나무속에 둥지를 만들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까막딱다구리가 만든 둥지를 원앙이 이용하기도 하고, 올빼미 종류가 이용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황새도 논 주변 도로가에 있는 고목 위에 둥지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나무를 찾기가 어려워 인공 탑을 만들어 둥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오래된, 늙은 나무는 생태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목, 늙은 나무가 있는 숲은 많은 생명을 품습니다. 나무가 나이가 들며, 가지가 부러지거나, 작은 틈새가 생겨서 거기로 물이 들어가 썩게 되고, 이때에 구멍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수공’이라 부릅니다. 이런 수공들은 올빼미, 부엉이, 원앙, 비오리, 호반새와 찌르레기 등 다양한 새들과 하늘다람쥐와 같은 작은 생명들의 집이 되어줍니다. 나무는 씨앗이었을 때는 새들과 많은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자라났지만, 다 자라서는 다시 생명들에게 다시 먹이를 제공해 주고, 보금자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서로 돌보는 숲의 공동체입니다. 딱다구리는 나무속에 있는 딱정벌레 애벌레를 잡아먹어 나무가 너무 많은 애벌레로 인한 피해를 조절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나무는 자신의 몸에 구멍을 내고 살아가는 딱다구리와의 공생을 선택한 것입니다. 딱다구리는 먹이와 집을 얻고, 나무는 자신의 몸에 있는 애벌레의 숫자를 조절하여 자신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나무와 식물들은 씨앗을 멀리 퍼트리기 위해 씨앗에 달콤한 과육을 덮어 다른 생명들이 배를 채울 수 있게 하였고, 소화되지 않고 남은 씨앗은 거름이 풍부한 똥 속에서 다시 자라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생명들과 숲은 서로 돕고, 보듬으며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늙은 숲은 진정으로 아름답고 생명다양성이 풍부한 숲입니다. 자본의 가치, 돈의 가치로 판단할 수 없는 그런 숲... 하지만 실제 우리 주변에서 늙은 나무가 있는 숲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40년 된 숲도 귀한 우리의 숲을 보고 숲이 늙었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을 사는 우리는 40이면 늙었다 말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사람과 달리 1000년까지 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당산나무가 400년 이상은 되었다는 것을 보면, 40년은 청년기에나 들어갈 수 있을까요? ▲ 나무 수공속에 둥지를 만든 솔부엉이 우리 숲의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많은 생명들이 늙은 나무의 돌봄 속에서 살아가고, 또 돌봄을 받던 생명들이 다른 나무들을 돌보면서 살아가는 생명의 숲, 생명을 키워내는 숲, 우리의 숲이 그렇게 자라나길, 그런 숲으로 나아가길 희망해 봅니다. 이 기사는 <봉성신문>에도 함께 싣습니다. -
정정환 06-17 11:05
낭비둘기가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화엄사의 낭비둘기, 지금은 화엄사에서 살아가기 어려워 졌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하게 참새부터, 까치, 멧비둘기 등 장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흔하게 만날 수 있고 흔적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면 매일 들리는 새소리도, 집 앞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도, 산보, 산책을 할 때 길 위에 보이는 야생동물들의 흔적도 모르고 지나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생명들을 만나기 위해 멀리 나가곤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관심이 없어 지나치다 다른 장소에 나가 소리와 모습을 보면 ‘우리 주변에도 저런 아이들이 있었단 말이야?’ 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번 배우고 오게 되면 다시 그 이전의 눈과 귀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집 주변에서도, 산책하는 와중에도 너무 많은 흔적과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 우포늪 따오기 복원개체, 농사철이 아니지만 물을 담아두어 따오기가 먹이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만나기 어려운 멸종위기종, 멸종위기까지는 아니지만 개체수가 계속해서 줄어들어 만나기 어려운 관심 단계에 있는 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멸종위기에서 절멸되거나, 절멸 위기까지 다다른 생명들은 ‘복원’을 진행하게 됩니다. 흔하게 복원‘사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복원을 대표하는 종은 반달가슴곰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황새, 따오기, 여우, 낭비둘기, 민물어류(임실납자루, 미호종개, 얼룩새코미꾸리 등)이 있습니다. 모두 복원이라는 ‘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업이다 보니 결과만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복원’은 하지만 서식지에 대한 ‘보전’은 뒷전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황새를 복원하겠다고 많은 돈을 들이고 있지만 황새가 서식할 만한 서식지에 대한 보전을 하려고 적극적인 행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가치가 높은 서식지도 개발로 인한 위협에 놓인 경우도 많습니다. 연어를 놓고 보아도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가 산란할 장소가 없는 이 현실에서 치어만 양식해서 풀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임실납자루를 열심히 키워서 섬진강에 풀어주었지만 이듬해 하도정비로 그 지역을 밀어버립니다. 얼룩새코미꾸리의 복원지도 하도정비로 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원 ‘사업’의 ‘본사’인 환경부(지금은 환경이 사라지고 있는 기후부)는 서식지 보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스스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규제 기관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원’을 하는 기관이라면 당연하게도 ‘규제’를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그들은 뭐 하는 집단이란 걸까요? 반달가슴곰은 서식지 확장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여우는 생태축 단절로 인한 로드킬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낭비둘기는 구례에 복원 개체 32마리를 풀어주었지만 구례 지역의 서식지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안전에 대한 책임은 낭비둘기의 책임이 아닌 환경부와, 지자체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당하게 잘 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가. 황새는 논습지, 갯벌, 자연습지가 필요하지만 영농형태양광, 갯벌 매립, 개발로 인해 서식지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지자체장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황새를 죽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생태 감수성도 사라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과연 복원이라는 이 중대한 책임을 그저 하나의 돈벌이 ‘사업’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 구곡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청왕봉의 모습 ‘Natural Capital’인 ‘자연자본’을 ‘Nature Positive’라는 목표로 2030년까지 자연 ‘자본’ 훼손을 멈추고 다시 역전시켜 2050년까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겠다는(다시 사용하기 위한?) 목표....생명의 근본마저 자본으로 취급하는 이 추악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생명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든 이야기인 걸까요? 글쓴이 : 정정환 _지리산사람들 사무국장,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지은이 -
이촉 05-27 12:48
반달곰친구들과 함께 하는 올무수거
올무수거 생초보의 하루 마지막 월요일 오후 (사)반달곰친구들과 함께 올무수거를 위해 함양 서하마을로 향한다. 짐이 될지 모르는 나는 올무수거에 관한 한 초보자다. 산에서 동물길을 더듬고 숲을 익힌다. 반달곰친구들과 함께 서하마을 산 왼쪽으로 잡목숲을 훑어간다. 잡목숲은 야생동물의 은밀한 숨구멍이자 복잡한 생태계의 결이라고 한다. 그 길은 가보지 않은 숲이다.바스락대는 숲의 호흡 따라 바스락거리며 약초 길에 들어 숨을 돌린다. 오른쪽에서 “찾았어요!” 외치는 소리. 따끔거리는 등을 타고 옷 소매에서 부러진 가지 하나가 나온다. 동물길에 불법 침입하다 들킨 기분이랄까? 순간 고요로 가슴이 철렁하다. 홀로 떨어진 적막을 지우려는 듯 새소리가 청량하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다는 올무. 올무를 놓은 주민과 올무를 찾는 우리 사이 파헤친 흙이 옴팍한 터를 보니 동물들이 목욕하고 지나갔구나. 기후변화로 인해 무너져가는 생태계, 먹이를 찾아 야생동물이 마을로 내려오고 주민은 피해를 막기 위해 올무를 설치해야 하는 악순환을 지속하고 있다. 올무 설치는 불법 포획이다. 올무 등 불법 도구의 피해와 죽음 없이 자연과 하나 되는 야생동물, 반달곰을 그려본다. 문득 사육되던 농장에서, 문수사에 살던 곰이, 구례 곰마루 쉼터에서 야생의 감각을 찾아 산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인가? 올무 4개를 찾았으니 육십령을 넘어 서하마을로 달려간 수확은 있다. 올무 하나는 멧돼지 다리에 걸렸다 끊어진 것이라고 한다, 멧돼지 비명이 산을 타고 서하마을에 울려 퍼졌으리라. 울었으리라. 올무를 설치한 인간의 마음 한쪽에도 울렸으리라. 숲에서 찾은 올무와 함께 돌아가는 길, 나 역시 올무나 덫 한두 개 걸려 살고 있지 않나, 굽이굽이 육십령을 돌아 돌아가면서 길 잃은 동물들, 반달곰이 생각나는 하루, 이제 숲을 헤치고 반복해서 숲을 헤쳐나가면 되리라고, -
정태준 05-20 20:55
죽어가는 구상나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죽어가는 구상나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천왕봉 구상나무 고사 현황 구상나무가 죽는다. 이미 많은 구상나무가 죽었고 지금도 일부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면 눈으로 봐도 절반에 가까운 구상나무가 고사하고 있는 모습을 누구나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걱정한다. 구상나무는 덕유산, 지리산, 가야산, 한라산의 1,000m 이상 아고산대에 자생하는 한국 고유종(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종)이기에 더욱 그렇다. 다시 말해서 구상나무가 계속 죽어가서 국내에서 멸종한다면, 결국 지구상에서 멸종한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러하니 환경단체 및 국가 기관에서도 ‘구상나무를 보호종으로 지정해야 한다.’, ‘복원해야 한다.’… 등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나 식목일 즈음이 되면 구상나무 고사 현상에 대한 기사가 크게 보도되고 관계 기관인 국립공원공단은 대응에 바빠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립공원공단은 아고산대 상록침엽수 자연적응실험 사업을 추진했고, 5월 13일에 구상나무 묘목을 식재하는 사업도 실행했다. 본 사업은 구상나무 고사 지역에 대한 상반된 견해(자연천이에 맡겨 인위적 개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과 적극적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하여 어떤 방식이 합리적인지를 판단해 보는 시범 사업이다. 지리산국립공원 반야봉과 중봉 사이에, 세석에서 키워낸 구상나무 묘목 160주(수고 40cm 내외)를 심고, 이렇게 식재한 구상나무를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이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국립공원공단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과 논의 과정을 거쳤다. 이때 가장 중요하게 논의된 부분이 ‘이 사업은 복원 사업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글에서 많은 시민과 기관이 구상나무를 복원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복원 사업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논의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생태복원이란 '저하되었거나, 훼손되었거나, 파괴된 생태계의 회복을 돕는 과정'으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구상나무 고사 지역은, 저하되었나? 훼손되었나? 파괴되었나? 교목층(산림식생에서 가장 높은 공간을 피복하는 층위)의 우점 수종이 죽고 있기에 생태적 기능에 있어 일시적 저하가 있다고 볼 수는 있지만, 훼손되거나 파괴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구상나무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로 밝혀진 구상나무 고사 원인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기후가 변한 것도 사실이다. 구상나무는 빙하기에 한반도 전체를 뒤덮으며 확장되었다. 하지만 빙하기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저지대에서 자취를 감추고 온도가 낮은 아고산대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빙하기가 끝난 것은 자연적인 기후변화였고, 지금은 인간에 의해서 기후가 변했다. 어쩌면 구상나무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식물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고 뿌리를 내린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성장하고, 번식하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급격한 기후변화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생각해 보자. 기후가 변해서 그 자리에 살던 식물이 죽었다…. 생태복원이 필요한 ‘훼손지’ 인가? 한반도의 식생은 다양하다. 난대림, 온대림, 아고산대 식생은 물론이고 염생식물군락, 습지식생, 울릉도 너도밤나무군락과 같이 고립되어 진화해 온 식생, 터주식물군락과 같이 사람이 사는 곳 가까이 살며 적응해 온 식생도 있다. 이처럼 어떤 지역의 환경에 따라 그곳에 살 수 있는 식물이 들어와서 살게 된다. 또한, 울창했던 산림도 벌채되거나, 교목층의 식물이 고사해서 틈이 생기면, 강한 광이 들어오면서 호광성 식물(양지를 좋아하는 또는 직사광선을 인내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 식물)이 자리 잡게 된다. 환경이 변하면 사는 식물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후는 급격히 변했고, 식물의 서식지는 서서히 북상하고 있으며, 구상나무는 죽고 있다. 구상나무가 죽고 있는 지역에 다시 구상나무를 심을 것인가? 구상나무가 죽은 자리에는 분명 변화한 기후에 적합한 다른 식물이 들어올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숲의 변화다. 그렇다면 이 글의 제목과 같이 죽어가는 구상나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구상나무의 멸종을 막고 싶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본다. 대답은 간단하지만, 실행은 어렵다. 기후변화를 늦추는 것뿐. 이번 자연적응실험을 위해 공단 직원 50여 명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고, 헬리콥터가 두 번 묘목을 옮겼다. 수많은 플라스틱 생수병이 버려졌고, 많은 차량이 노고단 대피소까지 이동했으며, 많은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헬리콥터가 또 한번 움직일 것이다. 많은 투자를 했고, 많은 노력을 했으며, 많은 비용을 치렀고, 또한 많은 탄소를 발생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러한 사업이 꼭 필요한 보전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노력의 방향에 대하여 질문할 때다. 우리는 정말 구상나무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 나무를 심고 과거의 모습으로 복원하려 노력하기보다, 기후변화를 늦추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구상나무를 살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이면서도 유일한 방법이다.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식물보전센터에서 발아시켜 세석에서 현지 적응된 구상나무 묘목 160주 식재된 구상나무 묘목 반야봉-중봉 구간에 식재된 구상나무(빨간 표식은 추후 모니터링을 위한 식별 장치) 글쓴이 : 정태준 모두를위한생태연구소 소장(자연과 사람이 모두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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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촉 09-08 09:38
구례 사는 맛
구례 살다 보면 구례 맛이 있다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정자 옆 연밭에 연꽃이 피었다. 유산 할미의 목소리가 정답다. 깜빡하는 기억도 이쁜 치매 어르신 파가 푸릇푸릇, 솔이 푸르고 열무가 파란 텃밭 대파 한두 뿌리 뽑고 싶다. 나는 영락없는 도둑심보다. 듬성듬성한 잔디가 말한다. 차라리 나를 밟고 밟아라. 내가 짠흐제! 분토마을 봉숭아꽃이 참 예쁘다. 손톱에 꽃물 들게 숯과 백반 넣어 봉숭아꽃, 잎을 넣고 돌로 찧던 날이 있었다. 할매들 합창을 한다. “긍께 말이요” 지리산에서 캔 고사리 말려 농산에 맡기고 센터로 가는 할미, 등을 쓰다듬자 “내가 짠흐제!“ 한다. 광의 주유소 왼쪽 길로 들어가면 백조미용실을 지난다. 마을 미용실이 남아있어 정답다. "이따 파마 흐러 강께 이따가 나 저그 앞에서 내려주씨요 이!" 아직 곱슬거리는 백발의 할미가 정겨워 자꾸 말을 걸고 싶다. 죽마리 할미 텃밭에도 대파가 쑥쑥 자란다. 파도 파도 팔 것이 많은 할매들, 입에서 나오는 입말이 맛깔스러운 파향처럼 퍼진다. 감칠맛 나는 꼬들빼기 넣은 파김치처럼, 언젠가 파꽃이 피겠지. 할매들 속에서 내 생각도 자란다. 긍께요, 거시기, 긍께말이요 일본어가 안되어 한숨을 푹푹 쉬는 정 선생. 나도, 복습 하나도 못했어요 흥께 “긍께요” 한다. 내 귀로 들어오는 낮은 음표 "긍께요" 후렴구 긍께요! 앞에서 일본어가 잘되는 문 선생님, "거시기해도 열심히 배워봅시다. 내가 도와줄게요." 학생들에게 일본어 자료를 출력하여 전해주는 팔순의 문 선생님 고마워 빠질 수 없는 일본어 수업, 일본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노트 한권씩 선물한다. 노트에 회화, 문법, 단어, 해석 등 자세하게 기록한 노트를 견본으로 보여주며 기록하여 항상 들고다니라고 나눠준다. 김선생님 덕에 일본 말이 몸으로 쳐들어와 빠질 수 없는 수업이 기다리고 있어요 구례, 긍께말이요, 거시기… 이 맛은 구례를 오래 살은 사람들이 주는 맛이그마요. 옆에서 정 선생이 긍께요, 한다. -
비아 09-07 11:38
[비아의 둘레길 완주1]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우리나라는 전국의 80% 가량이 산지로 되어있는 아주 작은 나라다. 따라서 아름답고 수려한 산들이 많다. 정상을 오르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즘은 모든 산들에 둘레길을 만들고 있다. 집 뒤 작은 산에도 운동을 위한 둘레길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니까. 작은 산은 한 바퀴 도는데 반나절, 조금 더 큰 산은 하루가 걸리는 곳도 있다. 네 개의 지역에 걸쳐 있는 지리산처럼 큰 산은 21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보통 사람은 21일 동안 걸어야 완주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공원에 모여 건강 체조나 춤을 춘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걷기 좋아하는 국민성 때문인지 전국에 ‘무슨 길’ 무슨 길‘ 하면서 전국을 걷는 길로 만들어 놓았다. 가보면 도로 옆을 하염없이 걸어야 하는 길도 있고, 아주 짧아서 거기까지 찾아온 것이 후회가 되는 길도 있고, 관리가 되지 않아 찾기 힘든 길도 많다. 혹자는 걷기는 명상의 일부라고 하고, 혹자는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걷든 걷기는 몸과 마음 건강에 좋은 방법이다. 누가 나에게 왜 그토록 걷기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숲이 좋아서’ 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나 임도 등을 걷는 것은 극히 싫어하니까. 나무가 있고, 여러 꽃들이 피어 있는 흙을 밟을 수 있는 숲길이 좋다. 그래서 난 지리산둘레길 걷는 것이 좋다. 내가 지리산둘레길을 처음 찾은 것은 아마도 거의 20여 년 전인 것 같다. 처음 지리산둘레길이 생겼다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왔으니까. 숲길로 이루어진 지리산둘레길은 둘레길다웠다. 그때는 초기이고 걷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혼자 둘레둘레 걸으며 산속 마을을 지나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밭에서 일을 하시다 나를 보고 물으신다. “이곳이 뭐 볼 것 있다고 걷는다요?” 울창한 숲과 작은 계곡, 논과 밭, 그리고 간혹가다 마주치는 산골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지리산이기에 느껴지는 정취는 지리산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후로 지리산둘레길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찾아온 지리산, 어느덧 21개의 코스가 형성되고, 함께 걷는 프로그램도 생겼다. ‘사단법인 숲길’에서 ‘벅스(길안내 화살표)’도 세우고, 늘 관리도 하기 때문에 지리산둘레길은 늘 정성들여 가꾸는 손길과 찾는 발길들로 분주하다. 지리산 둘레길은 지역마다 센터를 운영한다. 둘레길 코스에는 구간 구간에 ‘벅스’가 서 있기 때문에 벅스의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되니 길 찾기가 쉽다.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하려면 ‘스탬프포켓북’을 사서 스탬프를 찍으면서 다니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스팸프북에는 코스별 안내도와 난이도, 스탬프와 화장실 위치 등도 나와 있다. 스탬프북은 각 센터에서 구매할 수 있다. 자세한 코스별 안내는 ‘사단법인 숲길’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숲길’에서 운영하는 ‘토요걷기’ 프로그램에 신청하여 함께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교통편이 제공되기 때문에 다시 차를 가지러 되돌아와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혼자 다니는 위험도 피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걷는 길에 동행이 있다는 것은 든든하고 즐겁다. 지리산은 남원, 함양, 산청, 하동, 구례 이렇게 5개의 지역에 걸쳐있기 때문에 둘레길 코스도 5개지역 21개 구간으로 나뉜다. 보통은 남원 주천센터에서 시작하는 둘레길을 1코스로 친다. 물론 둘레길 센터에서 나눈 것은 아니고, 처음 시작이 남원이어서 그때부터 1구간이라 부르던 것이 고정관념으로 남겨진 것 같다. 주천에서 시작해서 운봉 방향으로 걷는 길을 순방향(빨간색 화살표), 반대편 검은 화살표 방향으로 걷는 길을 역방향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길은 순방향이 편하고, 어떤 길은 역방향으로 걷는 것이 좀 더 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길도 순방향으로 걸을 때와 역방향으로 걸을 때 바라보여지는 풍광과 길의 느낌이 다르니, 이쪽저쪽으로 두 번 걸어도 손색이 없다. 숲길을 좋아하는 사람은 포장도로나 마을도로 길을 따라갈 때면 ‘둘레길이 뭐이래’ 하면서 싫어하고, 둘레길이니 평탄한 길 걷기라 생각하고 걷는 사람은 경사가 있는 산길을 오를 때면 ‘둘레길이 아니라 등산이네’ 하면서 힘들어한다. 둘레길이 숲 오솔길로만 이루어져 있으면 금상첨화이겠으나, 그렇게 만들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니 좋은 점만 취하면 된다. 숲길을 오를 때면 ‘숲길이어서 좋네!’ 하고, 평지 길을 걸을 때는 ‘마을구경도 하고, 평지라 편해서 좋네!’ 하고. 그래도 지리산은 전국 곳곳의 ‘산둘레길’ 어느 곳보다, 가장 ‘산둘레길’다우니까. 봄이면 길가에 벚꽃이 만발하고, 농장엔 감꽃, 배꽃 등 갖가지 꽃이 핀다. 산에 갖가지 야생화가 만발하는 것은 물론이다. 여름에는 계곡이 있는 숲길과 폭포가 있는 숲길을 걸을 수 있고, 가을이면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든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바람따라 일렁이는 춤을 볼 수 있는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곳곳에 자리한 마을들의 아기자기함과 논과 밭이 만들어낸 선들의 아름다움. 계절별로 다른 색색의 풍광들을 볼 수 있는 길이 지리산둘레길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거의 숲길로만 이루어졌던 둘레길이 이제는 포장된 임도와 마을길들로 바뀐 곳이 많아지고, 그늘이 없이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걸어야 하는 길도 늘었다. 숲에서 나와 도로를 따라 걷는 길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었는데,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예를 들자면 이렇다. 먼저 산속에 있는 밭의 농작물과 과수에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자꾸 손을 데면서, 피해를 당한 주인들이 길이 내주지 않게 되면서 둘레길이 우회 도로로 달라진다. 둘레길이 도로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게 되는 이유다. 두 번째는 산 위까지 개발이 되면서 임가 포장이 되어 농로가 되고, 전원주택들이 들어서면서 포장도로로 변했다. 그러다 보니 임도를 또 다시 새로 내면서 시멘트 포장이 된다. 세 번째는 산사태, 산불 등의 자연재해다, 무분별한 개발이나 부주의로 인한 것이니 인재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작년과 올해는 산불과 산사태 등으로 인해 구간이 통제되고, 특히 산청지역의 피해가 심했다. ‘지리산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지리산에 오지 않는 사람이다’고 지리산둘레길 안내자는 말한다. 인간의 발길이 닿으면 그 자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의 훼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은 공존해야 하고, 숲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은 숲에 다녀간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등산을 하면서, 둘레길을 돌면서 지켜야 할 자연에 대한 예절이다.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가야 하고, 과일껍질 등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간혹 음료수병, 떨어진 사탕껍질, 휴지 등을 볼 때면 얼굴이 찌푸려진다. 길을 내어준 농부들에게도, 산속 마을 분들께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걸을 일이다. 둘레길을 돌면서 ‘농작물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을 종종 접할 때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마을 주변에 심어진 농작물뿐 아니라, 밤농장 주변에 떨어진 밤이나 감. 매달려 익어가는 오디, 두릅 등등... 떨어져 썩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주인이 수확을 위해 키우고 있는 모든 것에는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 산속 깊은 곳을 걷다보면 산밤도 있고, 자생하는 오디, 머루 산딸기 등의 열매도 많이 있으니, 그런 자연의 선물만으로도 충분하다. 산길을 걷다 보면 음악을 크게 틀고 걷는 사람을 만난다. 음악은 자신에게 좋은 선율일지 모르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소음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이어폰을 쓰면 좋겠다. 또산행을 할 때 스틱을 사용하는 것은 좋으나, 스틱을 자신의 몸보다 뒤로 들어 뒷사람을 다치게 할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가끔 겪는다. 스틱의 뾰족한 부분이 뒷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신경 쓸 일이다.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걷는 것도 좋지만 숲을 즐기면서 걷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숲속에는 다람쥐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시냇물소리 등 온갖 아름다운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귀 기울여 소리를 들어보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길에 핀 작은 야생화들이 제모습을 뽐내는 것도 바라보면서, 시인은 노래하지 않았나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쁘다’고. 지리산을 오르거나. 둘레길을 돌면서 느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리산 둘레길의 같은 코스를 서너 번씩 걷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렇게 여러 번 같은 길을 걸을 의미가 있어요?” 물론이다. 지리산둘레길은 걷는 계절에 따라,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보고, 느끼며, 걷는 걸음마다 길은 모습을 달리한다. 그러니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고, 오래도록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더없는 바이다. -
이촉 09-01 07:38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서 산이 보고 싶다니 산에 가기 전에 산은 이미 네 옆에 와 있다. 어디서 어디까지 산인지 모를 산에 도착하여 산을 딛고 산을 간다. 가고 싶던 지리산, 가자, 겁내지 말고. 이미 산에 왔잖아. 산에 왔으나 앞으로 가자고. 급하게 먹는 밥처럼 들어가지마. 산이 부르니? 가고 싶어 산에 간다니까 지리산이라서 간다니까, 지리산이 취향이야? 산에 가는 틈에 지리산의 틈새에 끼어 가는 중이야. 너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네가 가는 거야. 언젠가 산에 오지 마란 소리를 들었지. 산을 봐봐, 네가 지나치는 것 모두 산이야. 눈앞을 스치는 거미줄이 너를 기다리고, 우수수 낙엽 위로 미끄러진 바닥이 바로 산이야. 산이 네 몸과 하나 되는 그 착지에 목이 말라 턱없이 무너지는 산을 무너질까 두려워 시멘트벽을 쌓은 벽이 벽을 친다. 괴물 같은 벽을 돌아 우리를 돌아가게 하는 지리산에 주저앉아 가도 가도 길인 길을 어쩌라고, 언제 도착할까? 몇 시간 걸려요? 몇 km인가요? 가도 가도 보이지 않은 내리막. 턱턱 걸리는 돌부리, 가슴을 콕콕 찌르는 너는 멀리 보면 다정한 골짜기 너머 아득한 능선 찢어질 듯 닿지 않은 발이 헛발을 내리고 다시 오르내리는 능선은 바로 지금 네 능선, 신발 아래 느껴지는 감각이 가슴으로 퍼져온다. 생명을 밟고 또 밟은 너를 감싸는 공기, 산에 퍼지는 숲의 냄새 그 숨결 너는 모르고, 너를 보는 숲에서 잉잉거리는 벌의 추격에 잉잉대는 몸은 몸대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 빠져 산에서 허우적댄다. 산에 갔으나 산을 보지 못한 산속에 두고 온 것이 많아 또 가야 할 산은, 가지 않은 너를 몸으로 쓸 수밖에 없다. 산에서 앞으로 가지만 말고 산을 둘러보고 좀 더 머물다 올걸, 그 하얗게 내려앉을 별을 보고 별 위로 걸던 천상의 별꽃 허리 굽혀 찬찬이 들여다볼걸, 햇빛을 메고 가는 길 위로 떨어지는 햇빛 떨어지는 체력 안고 떨어지는 기분 엎어지는 발걸음 닥쳐올 시간 미리 겁먹지 말고 그늘에 앉아 숲의 노래 고요나 침묵 듣다가 올걸, 내 속에속에 불던 은밀한 바람 숲에 두고온 바람 앞으로 가지도 머물지도 못한 조심스러운 지리산 바라만 보는 지리산 오래오래 그 자리에 남아 품어나 주게, -
이촉 08-07 08:10
주지 못한 베개
주지 못한 베개 자려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에 병상의 환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종양 병동 근무 당시의 일이다. 1111호에 입원한 김가람 님은 폐암 환자로 몇 번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는 날이었다. 평소 말이 없던 그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몽고풍의 모자를 쓰고 있던 그는 평소에는 잘 내색하지 않아 표정으로 통증의 강도를 읽던 분이었다. “수간호사님,이 베개 집에 가져가면 안 돼요?” “그 베개가 편하세요? “네,이 베개가 잠이 잘 와요.” 나는 왜“드릴게요”라는 말을 입안에 담고 있었는지, 아이처럼 베개를 안고 애써 용기 내서 말하고 웃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나는 왜 베개를 주지 못했을까? 베개를 챙겨주려 했는데 퇴원할 때 미처 주지 못했을 거야. 핑계를 댄다. 언뜻언뜻 생각나는 1111호 문 옆 침대에서 투병하던 김가람 님.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고 밥이 약인, 밥 한 술 한 술 넘기던 모습이 액자처럼 벽에 걸려있다. 주지 못한 베개 하나 빈 침상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새 베갯잇 씌운 베개를 그 품에 안겨주고 싶다. 그때 항암치료 부작용을 잘 극복하고 퇴원했으니 지금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몽고풍 모자를 쓰고, * 김가람 님은 가몀임 -
이촉 08-01 08:06
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
주성윤 시인의 시비를 찾아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문수제 지나 오미 송정간 둘레길에 주성윤 시인의 시비가 있다고 해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문수리 들어가는 마을 앞 오미 슈퍼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혹시 주성윤이라는 사람이 마을에 살았는지 묻자 흔쾌히 시비가 있는 곳을 안내한다. 차로 내죽 마을 위 단산 윗길로 들어서니 깔끄막에 朱成允 詩碑가 있다. 수풀 사이 자리한 시비에 풀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 주성윤 시인은 구례와 지리산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시비로 안내한 단산마을 정동기 님은 시비가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시비가 있는 땅은 어느 교장 선생님의 선산이라고 했다. 그분의 집이 운조루 옆이라고 해 찾아갔으나 문은 잠겨있고 초인종은 눌러도 대답이 없어 집 앞에 있는 500년 된 서어나무만 바라보다 왔다. 주성윤 시인(1939년~1992)은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니 본적은 경남 창원으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텅 빈 공백』, 『독설』, 『먼 산에 진달래』, 『산꼭대기의 말』 『조선의 빛』 많은 시집과 번역서가 있지만 절판된 상태였다. 유고시집 『무궁화밭』을 펴낸 도서출판 두꺼비는 사라지고 대행업체인 새길 아카데미에 연락되어 시집을 구할 수 있었다. 시집을 읽다 보니 평론을 쓴 임헌영 평론가와 유고시집을 펴낸 김승균 발행인, 추모글을 쓴 황선락 소설가와 시인은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시절 ‘최류탄문학 동인회’ 활동으로 유명하다. 『무궁화밭』, 임헌영 평론가의 발문/주성윤론에 의하면, 1966년 『청맥』에 실린 장시 <조국의 상>은 투사 주성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썼다. 『청맥』에 글을 싣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인들이 고통을 받던 당시 주성윤 시인도 그 희생자로서 깊은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시비 옆면에 1994년 7월 9일 한맥 문학사 주관으로 박혜범 스님의 부지 제공, 시공사인 문산 석재의 대표 최용길 님과 통화 후 한맥 문학사에 제작한 시비를 납품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주성윤 시인에 대해서는 더 알 수 없었다. 한 시인을 찾아가는 문턱은 시집 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구례에 머물며 한 시인에 대해 쓴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묻어두고 네이버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 몇 편 열람할 수 있어 1977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짧은 시 <스냅 1>을 소개한다. 수풀에는 조랑조랑 새 울음떼 열리다. 사원의 한밤에 아무런 뜻도 없이 멍청히 떠올라선 한동안 넌센스로 조용히 머문 세상사 시끄러움 같다. 모든 뜨거운 것은 서산 허리에 걸리고, 초설이 흰 이를 드러낸 여정 같이 쌕뚝쌕둑 그 면전에 스쳐내린다. 스냅처럼 지리산 자락 깔끄막에 조랑조랑 열린 시어들. 아니 풀이라는 시와 풀이 어우러져 시인이 풀로 와서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게 온통 시로 풀어지는 듯하다. 시인이여, 어찌하여 지리산 자락에 오게 되었는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새소리 듣고 있는지 아니 새가 되었는지 유고시집 『무궁화밭』에서 임헌영 평론가가 쓴 주성윤 시인,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인이 교류했던 그 당시를 빈약한 내 언어보다는 시를 직접 음미하는 편이 낫겠다. 난꽃이 피던 무렵 (임헌영 형의 일을 명상하며) 오늘은 웬 일인지 난이 핀 곁에서 난꽃이 핀 걸 보며 해 지는 줄 모른다. 길가에서 어제 만난 갓 출소한 그 친구. 친구의 얼굴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속에서. 감방에서 수년 살며 어쩌면 제 죄도 아닐지도 모를 죄를 다 씻어내고 이전보다 한결 더 스마아트해진 모습으로 갓 출소한 그 친구 인상을 나도 모르게 나는 난꽃에서 건져올리며 정처 없는 생각에 하염없이 잠긴다. 생각자면 나도 내 죄도 아닌 죄가 너무 많은 청춘……, 중략 이따끔씩 세상을 가르치러 온 것이 라이어트가 되지 않도록 목숨으로 값치른 스승들의 이름도 밝음으로써 어두운 난향 속을 떠돎을 봤다. 국립중앙국립도서관에서 찾은 또 한 편의 시는 <청산음>이다. 어슴푸레한 박명에 청산음이 실려 오듯 한 시인의 삶이 걸어온다. 어쩌면 한 생이 피다 말고 저버린 쉽게 닫혀버린 책이 되고 있어 더 바래지기 전에 펼쳐봐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 자락에 울리는 청산음을 듣고 있는가? 시에 걸린 그 죄명 하나 거울 속에서 울리는데, 하늘을 쳐다보고 풀밭에 누웠으면 나도 미풍에 나부끼는 한 포기 풀. 마음은 맑아져서 그 끝에 걸린 거울이다. 이따금씩 바람결에 기억의 박명이 실려와서 그 속에 얼굴들을 비치고 지나면서 풀잎 끝에 죄명을 하나씩 달아놓고 간다. 흡사 몰래 선생님 등 뒤에 망신스런 쪽지를 써붙여놓고 잠적해버리는 개구쟁이 생도들. 그러면 하늘이 파아래서, 그들을 저지못한 부끄럼으로 얼굴이 화끈 붉어져버린 풀은 꽃이라 갈채하는 사람들. 살고파라. 바람도 청산에 죄를 물어오지 않는 청산에. 그래서 이윽고는 기억도 백흑그림들처럼 깡그리 지워져 없어질 흑판같은 청산에. 주성윤 시인을 다시 좇는다. 김선기 평론가의 <시인 박진환론>을 보면 주성윤 시인은 1963년 9월 박진환, 김종해 시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新年代』의 창간 멤버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1969년 구중서, 임헌영 등과 함께 『상황』 의 동인지 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은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사라져갔는가? 1975년 3월 11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박재능 시인에 따르면, 주성윤의 『일광속에서』 는 현대시에서 정서 배제를 위한 지적 처리가 원만하게 시도된 느낌이 드는데 비법에서 소화가 덜된 생소한 단어들이 돌출되어 눈을 거슬리게 하지만 전달의 방편이란 입장에서만 본다면 시대적 호흡에 적응하려는 노고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시인을 찾는 과정의 수확은, 『청맥』에 연재하던 장시에 관한 연구이다. 1923년 한국해양대학교 김지녀, <1960년대 『청맥』誌의 ‘長詩’기획과 ‘참여시’의 의미에 관한 연구>에 실린 글을 옮겨적는다 잡지 『청맥』은 오경남, 주성윤, 김소영 등 신인들을 주축으로 장시가 실렸다. ‘장시’가 다양한 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시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을 검토해 작품 유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감각과 언어로 폭압적이고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청맥』에 장시를 연달아 3편 발표한 주성윤 시인은 사상적이거나 미학적 측면에서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신인들에게 묻고 또 그들이 장시의 형식으로 응답한 『청맥』이 지향한 문학 이념과 참여시의 속성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월 22일자 ifs Post News insight에서 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9> 에서 <문학적 사제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지는가-박목월 선생과 그 문하생들>을 인용한다. 주성윤 시인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시 쓰는 일에 모두를 걸고 있었다. 그가 박목월 선생 댁을 찾으면 사모님 유익순 여사는 옷가지며 반찬을 주어 보냈다. “주성윤이 시인으로 등단하면 사는 일이 나마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박목월 선생의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주성윤은 관념시로 자기 세계를 이뤄낸 시인이고. 주성윤의 타계 소식은 시간이 흐른 뒤 입을 통해 알려지고 시인의 은둔은 그렇게 깊고 적막한 것이었나 보다고 적고 있다. 드디어 주성윤 시비 옆면에 적힌 부지 제공한 박혜범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정환 님으로부터 그분이 구례에 상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994년 문수리 두지 바위 길옆에 시비를 건립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비가 사라지고 없어 궁금하던 차에 필자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시비를 찾았을 때 풀이 무성한 사이로 시인은 시비를 건립한 사람과 30여 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풀로 덮인 그의 약력은 잊힌 만큼 풀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박혜범 시인이 기억하는 주성윤 시인은 천재이고 이름 없는 별이었다고, 시인 천상병 같은 시인이었으나 다른 향기의 시인이고, 길을 잃고 스스로 갇혀버린 그의 죽음 앞에서 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주성윤 시인을 시작으로 문수리에 이름 없는 천재들의 시비 동산을 만들고 싶었다는 박혜범 시인. 이름은 있되 이름 없다는 말을 곱씹는다. 찾아야지 찾아가야지 돌에 새긴 시인 찾아가야지 하는 나는 해무처럼 적셔지는 근원적인 비애감에 갇힌다. 갇혀서 걷는 길 길은 항시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길에게 너 아디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갇혀 있기보다는 걷고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우리라고 길을 보면 나는 항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가도 가도 이다지도 가슴 답답함은 갇혀서 걷는 길인 탓도 아니라는데 나를 자유 속으로 해방시켜 줄 동행은 왜 또 아무도 없는 것일까? 절레절레 발을 절며 오늘도 나는 길을 따라 나서고 길은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시 시비가 있는 선산 주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500년 된 서어나무 앞집에 갔다. 여전히 문이 잠겨있다. 할 수 없이 마을 한 바퀴 돌아본다. 솔까끔 마을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을 기다리며 풀이 풀을 노래한다. 그 시절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다간 주류가 되지 못한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풀 같은 존재를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참여시를 쓰고 관념시를 쓰고 순수시를 쓴 주성윤 시인의 시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시인이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살다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미 슈퍼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 벽화 속 빨래하는 아낙들 소리가 도랑으로 흐른다 방망이질 소리가 도랑으로 빠진다 오미 슈퍼 할머니가 나와 기웃거린다 슈퍼가 이뻐서 사진 찍어요 하니 씨익 웃는다 시인이 싱겁게 웃는 것만 같다 시인의 육필 원고 <무궁화밭>이 수록된 시집 『무궁화밭』에 실린 <뚝섬 시초>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암만 해도 낯 익었네. 저 선회 풀밭 위를 지나다가 문득 꽃진 풀밭 위에 하얀 나비 두어 마리 배회하는 광경 전생 혹은 이생의 어딘가에서 꼭 한 번 만났던 것만 같이 생각 든다. 기억해 내려해도 푸른 잎사귀로 가려 덮으며 영 잃어버렸거나 죽었거나 없다고만 하고 손 젓고 섰는 이승의 풀밭. 해 저물녘엔 질퍽이는 관능의 바다 기일게 전개시켜 놓고, 그래도 물들지 않고 호올로 이승을 가는 외로운 사람처럼, 또는 영혼처럼 흰 돛단배 가네. 하루 해 싣고. -
비아 07-13 20:12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아이들의 마음에 비친 반달가슴곰은 어떤 모습일까? 구례 토지초 아이들이 그린 반달가슴곰을 만나러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다녀왔다. 이번 반달가슴곰 작품 전시회는 지난 3월 27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열린 ‘우리동네 곰짝! 곰짝! 공존문화행사’(이하 곰짝곰짝 행사)의 결과 가운데 하나다. 곰짝곰짝 행사는 반달가슴곰 개체 수가 늘면서 안전 우려와 공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덩달아 늘어남에 따라 곰과의 공존 문화를 지역사회 안에 퍼뜨리기 위해 열린 행사로, 지리산 자락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 만든 행사다. 곰짝곰짝 행사에서는 지역 주민의 다양한 공연과 곰을 이해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구례 토지초등학교 아이들의 참여가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전교생이 ‘곰과의 공존’을 주제로 글·포스터 공모전에 참여했고, 4~6학년 학생들은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와 율동을 선보여 공존의 의미를 보여줬다.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가면 지난 행사 때 아이들이 만든 글·포스터 작품을 볼 수 있고,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도 들을 수 있다. 그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창의성에 놀라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지적 흡수력과 감수성에 다시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너무도 친근하게 표현된 반달가슴곰을 보고 있노라면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늘 무심했던 어른이었음이 부끄러워진다.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지역 주민들의 뜻이 아이들의 노력을 보태 이루어졌다니 참으로 희망이 가득한 사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보전하는 일에 함께해야 할까? 곰은 ‘생태계의 핵심종이자 우산종’이다. 말이 너무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곰의 존재가 생태계 내 다른 종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반달가슴곰은 다래, 머루, 도토리 같은 열매와 씨앗을 주로 먹는데, 곰이 싼 똥에서 식물이 발아하는 확률이 자연 발아에 비해 2배나 높다. 생태계 유지와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 반달가슴곰과 곰의 서식지를 보호하면 다른 종들의 서식지도 보호할 수 있는데, 마치 우산을 펼친 듯 하위 종들을 보호할 수 있어서 반달가슴곰과 같은 종을 우산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리산에? 곰은 단군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왔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먼저 살고 있던 한반도의 토박이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유전인자 보전을 위한 기존 야생곰이 남아 있고 안전하고 넓은 서식공간과 풍부한 먹이자원 등 충분하고 우수한 서식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반달가슴곰이 살아가기에 좋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반달가슴곰’을 보전하는 일을 해 온 남부보전센터는 곰짝곰짝 행사가 주민 주도로 이뤄질 수 있게 지원했다. 남부보전센터가 있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는 곰들이 산다. 이 곰들은 동물원처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야생성을 잃어버린 곰이나, 치료가 필요한 곰 등 보호·보존을 위해 마련된 곰들의 집이다. 남부보전센터틑 멸종위기종 복원과 탐사, 연구 사업 외에도 반달가슴곰과 함께 공존하기 위한 사업으로 탐방프로그램과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반달곰 보전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없애고, 인간이 생태계 파괴자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공존하도록 협의체를 구성하고 간담회를 연다. 왜 반달가슴곰을 보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까닭, 반달가슴곰의 생태, 반달가슴곰과 마주치지 않는 방법, 혹시 마주쳤을 때 피하는 방법 등 교육하기도 한다. 곰짝곰짝 행사도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찾아간 날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보전센터 소민석 센터장님을 만나 곰짝곰짝 행사에 대한 이야기와 보전센터의 역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소민석 센터장님은, 곰이 사람을 공격하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에 곰이 지리산에 사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사람이 곰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지, 곰이 사람의 영역으로 침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곰과의 공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강조했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한다. 반달곰도 마찬가지여서 사람 소리나, 방울, 종소리 등을 듣게 되면 먼저 피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시선을 피하지 말고 뒷걸음으로 곰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절대 혼자서 산행하면 안 된다.” 우리의 사고는 인간 위주여서,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한다. 학교에서 배운 ‘먹이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피라미드의 가장 우위에 있는 인간은,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두가 그 대답을 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려움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는 선뜻 행동으로 동참하기 쉽지 않다. 토지초 아이들과 토지면 주민들이 곰짝곰짝 행사를 멋지게 해낸 일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곰짝곰짝 행사를 마친 소감을 물었다.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프로그램이 좋았다고 소문이 나서 그 후로도 다른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까지 다녀갔지요. 보전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고 비협조적이어서 외롭고 힘든 일이었는데, 이 활동과 변화를 통해 직원들이 ‘아, 무언가 할 수 있구나’ 하는 활력과 힘을 얻게 되었지요.” 이어서 그는, ‘생태 보전 활동에 지리산 권역에 있는 기관들과 주민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함께 해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곰들은 보호 관리를 위해 추적기를 달고 있다. 야생생물보전원에서는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반달가슴곰 목격 제보를 받고 있는데, 추적을 나갔던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양봉하는 곳에서 반달곰이 벌집을 통째로 훔쳐 달아났는데 바위 뒤로 몸을 숨긴 곰이 꿀을 먹지 않고 바위 사이로 주인이 쫓아오는지를 엿보고 있더란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곰이 그제야 맛있게 꿀을 먹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사이에 출동한 사람들이 마취총을 쏘자, 오른쪽으로 날아오면 왼쪽으로 휙, 왼쪽으로 날아오면 오른쪽으로 휙, 고개를 돌리며 피하는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모두 같이 웃고 말았다고 한다. 곰의 식별 번호를 부르며, 거기 가만히 있어, 하니 또 가만히 서서 기다리더라는 이야기도 함께. 반달가슴곰들이 살고 있는 보전원 인공 서식지에서, 바위를 뒤뚱거리며 뒤로 내려오는 곰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이 ‘꿀을 훔친 곰’ 이야기 속 곰의 모습과 겹쳐 떠올라 혼자 웃었다. 오늘도 해가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지구 한편에 홍수가 나고, 다른 한 편은 가뭄으로 땅이 말라간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많은 동식물이 사라져 간다. 인간이 더 이상 환경 파괴자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이다. 반달가슴곰과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
이촉 07-09 13:17
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박순남 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보클보클한 구름이 짖는다. 노인복지센터 차가 박순남 할매 사는 이층집에 도착했다는 거다. 할매는 여든여덟이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다리에 힘이 없어 부축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 계단까지 가야 한다, 그 전에 차에서 내리는 순서가 있다, 오른발을 먼저 차 난간에 내려주고 엉덩이를 받쳐 내린 다음 오른발을 내려서 몸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하면 꽃님이가 꼬리치고 반긴다. 계단 앞까지 왔으니 계단에 한발 한발 옮기면 된다. 왼발을 손으로 계단에 올려준다. 그다음은 할매 스스로 오른발을 옮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시선은 자연스레 아래로 간다. 그 순간 스치는 경이로움, 화강석 계단 틈 사이 자란 풀이 꽃을 피웠다. 할매, 저 풀꽃 봐요! 할매는 두 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고 오르다 아래를 본다. “잘 안 보여” “꽃이 예뻐요” 저 풀도 이름이 있을 텐데, 그러게, 우리는 한 몸이 되어 계단을 오르고 구름이 짖는 소리가 하늘로 퍼져 구름이 된다. 보클보클한 구름이는 할매집에 사는 반려견 이름이다. 드디어 문 앞, 으싸! 마음이 바빠진 할매 발걸음이 빨라지며 앞으로 넘어질 듯 걷는다. 문고리에 걸린 열쇠를 빼고 문을 연다. 문을 여는 일은 할매가 오늘 하루 잘 지냈다는 일. 오늘도 애쓰셨어요. 꽃장식 보라색 모자도 벗어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 밖에서 문고리를 채운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할매가 기어서 계단에 내려와 낙상한 적이 있다. 노인들이 눈 깜빡할 사이 낙상하면 골다공증이 심해 골절될 확률이 높다. 할매와 헤어져 계단을 뛰어내린다. 살아가는 것은 계단이야. 할매가 휠체어 도움 없이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지금처럼 걸을 수 있다. 비 오듯 땀에 젖고 마르는 일 또한 계단이다. 나를 향해 구름이 짖고 난리다. 안녕, 구름아! 손을 흔들고 차에 오르자 우리를 차창으로 보고 있던 할매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금세 땀이 마르고 몸이 가벼워진다. 내 손이 박순남 할매의 발이 되는 계단. 가요! 파초길 지나 지리산을 보고 달려요. 잘 웃는 박순남 할매 목소리는 비음이 매력적이다. 키 크고 잘생긴 아들과 예쁜 며느리가 처음 만나 연애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체조 시간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 율동하지 못해도 콧노래 부르고 손뼉을 치며 웃는 할매 보고 나도 웃는다. 어느 날 잘생긴 아들이 밭에서 따온 호박을 건네준다. 다음날은 복지센터에서 호박전 부쳐 먹는 날이다. 달착지근한 호박전 생각에 벌써 행복해진다. -
문홍현경 06-22 12:16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올해도 지리산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며 하지제를 함께했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은 난개발로 힘들어하는 지역에 찾아가 연대의 마음으로 하지제를 열곤 했는데, 올해는 벽소령에서 하지제가 열렸습니다. 산청, 하동, 함양에서 벽소령을 깎아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들이 흘러나왔기에 벽소령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하지제였습니다.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이 두 군데가 있더군요, 함양에서 오르거나, 하동에서 오르거나. 함양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함양에서 올라왔고, 저를 포함해 하동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하동에서 올라왔지요. 함양에서 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함양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꽤 편했다고요,,,,, 산에 좀처럼 오르지 않는 저에게 하동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정말 정말 어려웠습니다. 올라올 때는 심장이 요동쳤고요, 내려올 대는 무릎이 욱신거렸지요. 그러나 힘듦보다는 숲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더욱 오래 남았습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숲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다만, 제 체력으로는 당분간 다시 오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정신이 아득하여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게다가 새 소리와 계곡 물 소리, 함박꽃 향기, 단당풍 향기, 나무 질감 같은 시각 아닌 감각을 자극하는 무수한 숲의 선물은 사진에도 담기 어려웠으니, 다녀오시는 분만이 알겠습니다. 발로 땅을 짚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은 제발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아름다우니까 지키자는 말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 제발 지켜지면 좋겠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숲을 살리며 살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실 테지요. 하지제를 열었습니다. 숲에 계신 분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따끈하게- 저마다 하나씩 가져온 감자를 모아 쪘습니다. 아, 맛이 기가막히네요. 온 세상 모두에게 이 감자 한 알씩 맛보게 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갖고 온 음식도 모아 모아, 햇차도 올리고, 다례상을 차렸습니다. 벽소령을 지켜 달라는 마음을 담아 목소리도 외치고, 글도 함께 읽었습니다. 해성과 영권 샘은 노래도 불러 주셨지요- 최고! 우리의 아기자기한 하지제가 부디 벽소령을 무사히 살게 하는 큰 힘에 보태져 세월이 흘러도 이 숲과 생명이 순환하며 이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읽은 편지를 아래 붙이겠습니다. 벽소령이, 지리산이, 그리고 모든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는 분들, 함께 읽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올리는 편지 하지, 여름이 이르렀다는 계절에 너무 무더운 하짓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무더운 하짓날 우리는 지리산 벽소령에 다 함께 모였습니다. 올해 만든 첫 햇차를 올리고, 함께 모여서 감자를 삶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와 노래를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리산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우리의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또 모인 이유는 지리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난개발 공약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리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댐을 만들겠다.’ 실현 불가능한,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공약과 개발 계획들이 비 온 뒤 죽순이 나오듯 사방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이 어떤 곳입니까? 국립공원 1호이고,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이곳만은 보전하자고, 훼손하지 말자고 함께 약속한 땅입니다. 다음 세대들 또한 지리산에 올라서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안기고, 지리산 속에서 위안과, 생명의 사랑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기후위기로 인해 여름은 우리가 알던 여름이 아니고, 계절의 경계가 사라지고, 절기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종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재난은 어느덧 해마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기후위기 시대에, 행정가나 정책 입안자들은 난개발 공약들만 즐비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숲을 지키고, 물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더 노력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기후위기 시대에 나무를 베어내고,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생명의 땅인 산을 깎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많은 발전과 개발이 아닌 탈성장, 멈춤입니다. 미래 아이들에게 이런 심각한 기후 재난의 세상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멈추고, 숲과 강, 산을 지켜나가는 보전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계를 모르고 발전과 개발만을 좇는다면 미래 아이들에겐 기후위기와, 기후 재난, 재앙만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멸망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함께 살아가는 길로 나아갈 것인지, 우리 미래 아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다시 생각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리산 마고신께 빕니다. 지리산 생명의 안녕을 바라며 힘겹게 마을을 지키는 이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지하수로 싸우고 있는 삼장면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골프장으로 싸우고 있는 차황면 철수마을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온갖 난개발 공약이 실현되면 위기에 처할 벽소령을 부디 난개발로부터 지켜주십시오. 기후위기로 재난과 같은 일이 없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우리도 올 한 해 지리산의 난개발 공약을 막아내기 위해 함께 연대하여 싸워 나가겠습니다. 2026년 6월 21일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산청난개발대책위, 함양난개발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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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현경 07-30 13:18
환경을 위해 채식하겠다던 네가 오늘 치킨을 먹는다고 해도
벽소령 관통도로 공약 철회를 요구하며 열린 2026 생명평화 하지제에서, 내게 온 꽃등에. 때로는 이런 작은 맞닿음이 수백 마디 말보다 힘이 셀 때가 있지요. 얼마 전까지 저는 350일 채식인이었습니다. 이젠 달걀을 조금씩 먹기 시작해서 이렇게 부를 수가 없지만, 전에는 한 해 365일 가운데 350일 정도 채식하고, 보름 정도는 잡식인으로 살았습니다. 채식하는 날이 349일이 될 수도 있고, 351일이 될 수도 있지만, 날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한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벌써 채식한 지 열다섯 해가 넘었으니, 이제는 채식하는 일이 저에게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무서운 건, 어릴 때 고기 맛을 알아 버린 ‘입맛’이란 놈이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와 고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또, 저를 완전한 비건이 될 수 없게 만든 입맛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우유를 못 끊는 입맛이에요. 당신이 키가 작아 두 딸만큼은 꼭 키를 키우겠다고 한을 품은 우리 엄마는 어릴 때부터 두 딸에게 하루에 500리터씩 우유를 먹게 했습니다. 그 맛에 길들었는지, 우유를 끊는 일이 고기를 끊는 것보다 어려웠거든요. 입맛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치킨을 찾는 입맛, 라테를 원하는 입맛이 제게 찾아오면, 아무리 머릿속으로 좁은 케이지에 갇힌 닭이나 강제로 임신해 우유를 착취당하는 젖소를 생각해도 그놈의 (우라질) 입맛을 떨쳐내기가 힘드니. 그렇더라도, 날마다 고기를 찾던 제가 350일 채식인이라도 된 걸 보면 입맛을 완전히 못 바꾸는 건 아닌 듯합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채식하고 채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입맛도 조금씩 바꿀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천천히 조금씩 너무 괴롭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생각해 350일 채식인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여도 몸에 밴 습관을 이기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채식에 의지가 없는 사람이 채식하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렵겠어요? 그러니 채식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남의 행동을 고치려 드는 지적질은 정말 못 만든 광고 같아서 아무리 해도 효과가 없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저는 가끔 못 만든 광고를 또 내보내기도 하니, 이 또한 습관의 폐단인가 싶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누군가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까지 고려해야 할 일들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경험이 많았고, 덕분에 못된 지적질 습관을 꽤 줄이게 됐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나오는 ‘순자’를 만난 일입니다. 순자는 자기 핏줄인 나기뿐 아니라 옆방에 사는 아이인 소라와 나나를 위해 날마다 도시락 세 개를 여섯 해나 싸는 인물입니다. “반찬으로 머리 달린 부세 구이가 통째로 담겼다거나 고춧가루에 버무린 오이지만을 수북하게 담았다거나 이따금 달걀말이지만 대개는 달걀프라이 혹은 다른 반찬 없이 달걀프라이 한 가지를 밥에 얹고 양념간장을 뿌린 것 하는 방식으로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락이었다.” _『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순자가 싼 도시락은 육식에 가깝습니다. 만약 순자가 환경을 위해 채식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거나, 누군가로부터 그런 강요를 당했다면, 아마도 옆방 아이들의 도시락까지 챙기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순자는 늦은 밤까지 과일을 팔고 돌아와야 했고, 뇌경색으로 죽은 남편이 남긴 빚도 해결해야 했는데, 그런 순자에게 달걀프라이는 손이 많이 가는 나물 반찬보다 쉽게 세 아이의 도시락을 싸도록 도와주었을 거예요. 게다가 싸구려 달걀 한 판이면 싼 값으로 여러 날 아이들을 먹일 수 있었겠죠. 들여야 하는 노력을 보나, 돈을 보나, 육식 도시락이 옆방 아이들을 위한 순자의 선물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달걀이 어떻게 이렇게 싸게 대량으로 날마다 인간의 밥상에 오를 수 있는지를 두고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순자를 그저 동물복지나 기후위기도 생각 안 하는 악당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겠지요. 순자가 어떤 사람인가요, 여섯 해째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옆방 아이들 도시락까지 싸는 인물이면, 그 인품은 말 다했지요. 그가 동물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350일 채식하는 저보다 몇 배는 더 헤아렸을 겁니다. 다만 먹여 살려야 할 자식과 배고파하는 이웃 아이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순자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최선이라고,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모두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제삼자가 상상할 수 없는 고달픔과 슬픔, 우울함 같은 감정을 안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봅니다. 오늘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내일 오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내가 어떤 까닭으로 공장식 대량 축산물을 덜 선택하려고 하는지를 말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가 육식을 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다는 걸 순자가 제게 가르쳐줬습니다. 비건을 선택한 뒤로 섭식장애가 생겼다는 친구에게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벗아, 환경을 위해 채식하겠다던 네가 오늘 치킨을 먹는다고 해도 나는 널 비난하지 않을 거야. 당연히 너를 미워하지도 않지. 네 마음을 이해해. 너를 존중해. 오늘은 네 몸에 들어간 닭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내일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잖아. 네가 그간 더 나은 선택을 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알아. 너와 같은 지구인 동료가 있어서 나에게도 큰 힘이 돼. 네가 무얼 먹고, 무얼 사고, 무얼 입든, 네가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한 선택이라고, 너만의 까닭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지금 네 모습 그대로 네가 좋아. 우리가 친구여서 좋아.” ‘그냥 될 대로 살다 죽자’ ‘혼자서 그런다고 뭐 달라지냐’ 하는 절망이 찾아오더라도 ‘계속해 보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다잡는 비폭력 사랑꾼들을 나는 응원합니다. 내 옆의 소라, 나나, 나기, 순자가 그 감수성을 놓지 않을 수 있게, 계속할 의지를 꺾지 않을 수 있게, 나는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응원합니다. 우리 서로가 무지개 색깔로 더 나은 선택을 해 나가도록 빌어 주기를 바라며,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고민하는 지구 생명체들을 나는 늘 응원하겠습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_니은기역 출판사 이끄미 (이 글은 <봉성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문홍현경 06-15 10:51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 복잡함을 문제 삼는 인간의 속도에 맞추려 하면, 강도 땅도 산도 한 가지 모양으로 반듯해진다. 어떤 꼴의 재앙이 될지 알 수 없다. 친구들과 생강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올해는 새로운 밭에서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그리하여 올해 생강 농사의 첫 일은, 갇힌 땅 구출하기였습니다. 거창해 보이지만, 그냥 제가 붙인 이름으로, 고랑을 꽉 덮고 있는 부직포를 걷어 내는 일입니다. 이미 있는 부직포를 굳이 걷을 필요가 있는지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몇 해나 묵은 부직포 위아래로는 또 다른 생태계가 끈끈하게 만들어졌고, 또 무엇보다, 걷어 낸 부직포는 또 다른 쓰레기가 되어 매립되거나 소각될 테니 그럴 바에야 땅에 그대로 두어 오랜 세월 뒤 땅으로 돌아가게 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지만 함께 농사짓는 친구들 생각은 달랐어요. 플라스틱이나 다름없는 부직포가 밭에 있으면 땅이 숨쉬기에도 어렵고, 미세플라스틱이 계속 땅으로 들어갈 것이고, 자연농 숲밭의 순환 기능에 해가 될 것이라고 했지요. 저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부직포가 다 벗겨진 우리 숲밭의 변화가. 그래서 친구들 의견에 따르기로 했어요. 내가 땅을 구출한 걸까, 땅이 나를 지켜본 걸까 갇힌 땅 구출하기가 시작됐습니다. 땅에 깔린 부직포와 현수막 겹겹을 벗기려고 힘을 주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덮개를 뚫고 자란 풀들이 덮개와 땅을 이어 주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풀과 흙과 낙엽의 무게까지 더해져 잘 들어 올려지지 않았지요. 있는 근육, 없는 근육을 다 끌어모아 덮개를 들어 올리니, 그 밑에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얽히고설킨 잔뿌리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도망가느라 정신없는 무수한 곤충 그리고 지렁이들…. 아, 지렁이가 정말 많았습니다. 마침내, 고랑 흙이 다 드러났습니다. 비를 맞은 뒤로 더 다채로운 음영을 보이던 숲은 자기가 품은 밭에서 플라스틱 덮개가 사라지자 훨씬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제 눈에는요. 숲도, 숲속 생명들도, 오늘 우리가 한 일을 좋아할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제겐 늘 의아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게 맞는가? 내가 하는 짓이 정말 옳은가? 내가 또 무언가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지난날,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갇혀서 내 고집만 부리며 산 것이 어리석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지금도 그러고 사는 게 아닌지 흠칫 놀라곤 합니다. 그래서 자꾸 질문해 보는 거예요. 숲밭에서도 그랬어요. 시간의 속도가 인간과는 다른 생명들에게 인간의 속도에 맞추라고 강요한 게 아닌지, 뜨끔해서요. 인간의 속도로 만드는 ‘보기에 좋은’ 함정 얼마 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리산 국립공원 구상나무 보전 세미나 및 자연적응실험>이 있었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과 한라산 아고산대에서 자라는 구상나무가 일부 지역에서 말라 죽은 일을 두고 걱정해 왔습니다. 고심 끝에, 그들은 미리 세석에서 기른 구상나무 묘목 160분을 헬기로 날라, 반야봉에 심었습니다. 이 사업을 위해 많은 이가 반야봉 땅을 밟았고, 할 수 없이 일회용품과 에너지가 쓰였고, 다른 곳에서 자란 묘목이 반야봉에 심어졌습니다. 그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을, 숲은, 구상나무는, 그 숲에 사는 생명들은, 좋아해 줄까요? 인간이 자연에 대해 아는 건 고작 빙산의 쪼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인간은 기다리지 못할까요? 아직 구상나무 죽음을 둘러싼 자료가 충분히 쌓이지도 않았고, 다른 장소에서는 어린나무가 활발하게 자라는 등 지역마다 상태가 다를뿐더러, 자연의 천이 과정을 고려하려면 수십 년을 지켜봐야 할 일인데도, 왜 더 지켜보지 못할까요. 우리 사회가 복잡한 것을 견디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걸까요? 불확실하고 복잡한 것을 못 견뎌서 측정할 수 있는 성과와 명확한 인과관계를 자꾸 요구하고, 이런 압력이 거세질수록 세계의 구불구불한 복잡성을 쫙쫙 펼쳐서 통제하려는 게 아닌지. 마치, 한 밭에 한 작물만 쫙 심고, 한 숲에 한 나무만 쫙 심고, 학교에선 아이들을 쫙 줄 세우고, 다양한 개성 같은 건 별종 취급하며 교정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는 것처럼요. 다양한 요인, 가지각색 요소, 저마다 가진 색깔, 무수한 변이를 느긋하게 바라볼 여유가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인간의 속도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들, 딱 거기에 맞춰서 해결책을 내려고 하다 보니 다양성도 사라지고 기다릴 여유도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구불구불, 꿀렁꿀렁, 가지각색, 제멋대로, 울퉁불퉁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것들을 좀 내버려둘 여유를 가져 보면 어떨까요. 그런 세상이라면, 인간들이 반야봉의 구상나무를 좀 더 지켜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그런 세상이라면, 땅이 맘껏 숨을 쉬고, 아이들도 맘껏 숨을 쉬고, 내가 세상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탐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생물이 함께 살 수 있는, 단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일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 세상 어떤가요? 글쓴이 : 문홍현경 _독립출판사 니은기역 이끄미 (이 글은 <봉성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문홍현경 05-15 18:20
종말이 오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종말이 오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우울하고 불안한 당신에게, 길가의 마거리트(마거렛) 꽃이 주는 햇살 같은 인사를 전합니다. 당신은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피어나는 꽃들을 빌려 계속 안부를 묻겠습니다. 지난 4월 22일 구례에서는 지구의 날이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2021년부터 해마다 열린 ‘구례 지구의 날 어린이·청소년 기후행동’으로 거리가 시끌벅적했던 지난 해들과 달리, 올해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기후운동을 이어가기로 한 까닭입니다. 지구의 날, 다른 지역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소식을 찾아보다가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지구 걱정은 시험 끝나고. 지구의 날 10분 소등도 어려운 캠퍼스>. “대학생들에게는 10분의 소등조차 허락되지 않는 ‘중간고사 기간’의 압박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라며 한 대학생 기자가 지구의 날조차 지구를 생각할 수 없는 캠퍼스 현실을 드러낸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대학생들이 사회 문제보다 개인 성적 따기에만 몰두한다고 쉽게 혀를 찰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듯합니다. 그들의 무관심은 지난 2022년 대선 토론회에 나와서 “알이백(RE100)이 뭐죠?”하고 묻던 후보 시절 윤석열 씨의 무책임한 무관심과는 결이 달라 보입니다. 고용 불안, 주거비 부담, 경쟁 압박, 우울, 고립과 은둔 등으로 종말보다 못한 현실을 걱정하는 청년들에게는, 어떤 권력도 믿을 구석도 없으니 말입니다. 기후위기라는 재난만큼 청년들의 희망 없는 일상은 우리 사회가 조금씩 쌓아 온 ‘느린 재난’이 된 것 같습니다. 종말을 바라거나, 이미 종말을 살고 있거나 고민실 작가의 단편소설 「쓰나미 오는 날」(『홈가드닝 블루』)에 나오는 인물 유경은 쓰나미가 올 거라는 소문에도 도시를 떠나지 않고 출근합니다. 왜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지 묻는 말에 유경은 “다시 취업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라고 말합니다. 이 사회에서, 쓰나미보다 실업이 두려운 자들은 유경만이 아닐 것입니다. 기후재난보다 시험이 두려운 아이들처럼요. “기후위기로 학교 문 닫으면 시험 안 봐도 되겠지?” 우연히 들은 고등학생 청소년들의 대화였습니다. 이들의 어깨에는 지구보다도 무거운 짐이 들려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선 기후위기를 시험 문제로 내는 ‘기후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습니다. 2025년 8월에 열린 제2회 기후수능의 점수와 1등 학생에 대한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환경 과목이 거의 외면받고, 환경을 담당하는 교사 또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환경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최 측 의도에는 공감하지만, 들고 나온 대안이 또 다른 시험이고 줄 세우기라니…. 기후수능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늘면, 아이들 입에서 “기후위기로 다 한꺼번에 죽으면 시험은 안 봐도 되잖아요.” 같은 말이 안 나올 수 있을까요? 쓰나미보다 실업이 두렵다는 유경이들은 환경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좀 덜 불안해할 수 있을까요?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할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2025년 여름 한반도에서 폭우로 사망한 이가 37명이었으며, 같은 해 폭염으로 사망한 이는 19명이었습니다. 한편, 2021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집계한 ‘자살 시도나 자해를 한 학생 수(자살한 학생 포함)’는 하루 평균 19.37명이었습니다. 수치만으로 어떤 죽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기후위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또 다른 재난이 가려지고 있음을 똑바로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혹은 눈감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폐허’가 이미 재난이나 종말이라는 단어보다도 더 끔찍하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요? 기후위기를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막을 생태적 전환의 목소리로 말입니다. 종말보다 못한 현실, 각자 풀어야 할 과제로 남기지 말아야 지구의 날에 열린 한 토론회에선 청년들의 ‘기후 우울’을 주목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우울감이나 무기력함, 생태적 상실감에 시달리는 청년이 늘어난 현실을 사회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위기라고 진단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기후 위기는 먼 미래가 아닌 현재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불안을 만드는 방식을 가져와 불안을 잠재우겠다고 합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라, 좋은 직장에 가라, 돈 많이 벌어라, 같은 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꼬드깁니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방법은 오직 재난뿐이라는 생각에 재난이 오기를 갈망하는 청소년·청년들, 현실이 재난보다 더 무서워서 재난에는 무감해진 무수한 유경이들 그리고 기후위기 불안에 시달려 우울한 청년들이 ‘지금 우리 옆에’ 있습니다. 이것 또한 재난입니다. 각자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게다가, 이미 재난을 겪고 있는 무리에 인간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너무 뜨거워진 물속의 물살이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나무 같은 생명도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나의 역사와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폐허를 우리는 어떻게 계속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2020년 『살자편지』 『벗자편지』 책들을 기획할 때, 독자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똑똑한 소비자와 과학자가 정말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치자, 그럼 그 뒤엔? 빈곤과 양극화, 각종 차별과 혐오, 지나친 경쟁과 열등의식, 한계를 모르는 성장 사회의 삶은 기후위기만큼 무서운 일상 아닌가?” 우리 사회가 느린 재난을 만들어 온 방식들을 의심해 보면 어떨까요. 왜 누군가의 일상이 종말보다 끔찍해졌는지 돌아보면 어떨까요. 저는 자꾸 까먹어요. 그래서 동료 지구인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우리 옆의 폐허와 저 너머의 폐허를, 그리고 인간 언어를 말할 수 없는 자들의 폐허를 못 본 척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글쓴이 : 문홍현경 독립출판사 니은기역 이끄미, <자기 씨앗대로 산다> 지은이 (이 글은 <봉성신문>에도 함께 싣습니다.) -
이해성 05-07 17:43
홍천 양수발전소 예정지를 다녀와서- "1년에 14.82분 가동. 오타가 아닙니다."
“야,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아~~~!” 저절로 쌍욕이 튀어나옵니다. 돈으로 자기 배 불리자고 수십년 동안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잣나무 수십만 그루를 베어내고, 산을 파헤치고, 골짜기를 수몰시키는 배은망덕한 개자식들,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 지구 간강범, C발놈들. 이곳은 강원도 홍천 풍천리입니다.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초과 전기의 쓰레기장으로 예정된 곳이죠. 핵전기쓰레기장을 고운말로는 ‘양수발전소’라고 합니다. 쓰레기처리장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만든 위선적인 이름입니다. 양수발전소는 얼마나 발전을 할까? (주)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공개하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한해 전국의 양수발전소는 평균적으로 39일 가동, 수력발전소는 94일 가동되었습니다. 10% 조금 넘는 가동률입니다. (자료출처: https://www.khnp.co.kr/main/selectWebDisoffView.do?key=152&siteId=&seq=19602, 합계 발전량 ÷ 합계 발전용량 ÷ 24시간으로 계산) ‘가동’이라는 단어는 발전소가 발전목적으로 쓰이는 시간을 뜻합니다. 나머지 시간 동안, 양수발전소는 핵전력을 소모하기 위해 하부저수지에서 상부저수지로 물을 끊임없이 퍼올리고 있으며, 상부저수지에서는 끊임없이 물을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발전기를 돌리지 않고 그냥 흘려보냅니다. 이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가동이라고 할 수 있고, 환경단체들의 ‘너무 낮은 가동률’ 주장도 오해를 일으킬 만한 지점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태양광이 24시간 발전할 수 없듯이, 양수발전소도 24시간 가동할 수는 없습니다. 물을 퍼올리는 동시에 발전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남는 전기를 소모(저장)하기 위해 물을 퍼올리는 시간이 당연히 감안되어야 합니다. 한수원에 따르면, 양수발전소를 풀로 가동한다면 하루에 6시간(25%)이 한계라고 합니다. 전국의 양수발전소는 하루 평균 2시간 30분 정도 가동하고 있습니다. 가동 가능 시간의 절반이 채 안되니, 태생적 한계를 감안하여도 여전히 낮은 가동률입니다. 저기요, 오타 아닐까요? 홍천 풍천리에 건설예정인 양수발전소의 ‘가동률’은 얼마나 될까요? 기절초풍할 정도로 낮습니다. 한수원의 홍천 양수발전소 승인 신청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연간 148.2MWh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며”(양수건설 타당성조사 용역(홍천지점), 2022, 한국수력원자력). 이 수치는 2025년 청평양수발전소 발전량의 0.059%, 예천양수발전소의 0.014%에 불과하고, 600MW용량임을 감안해 계산하면 연간 14.82분 발전에 불과합니다. 강원생명평화기도회 박성률 목사가 이설도로건설로 엉망이 된 숲속을 안내하며 말했습니다. “보통사람이 메가와트가 얼마나 되는 건지 감이 안 오잖아요. 그래서 AI에게 신청서 분석을 부탁했지요. 그런데 AI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전력 생산량이 오타가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GWh를 MWh로 잘못 쓴 거 아니냐고. 그래서 한수원에 전화를 걸었고, 담당자가 오타가 아니라고 확인해 주었어요.” 연간 14.82분. 오타가 아닙니다. 홍천 양수발전소 건설에 드는 비용은 1조 7천억. 이 돈을 들여서 양수발전소를 짓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가동률’이라는 단어를 치워버리고 기능의 비율로 보면 모든 것이 명쾌해집니다. 국내 양수발전소는 전기 쓰레기장 기능이 9할, 발전 기능이 1할이며, 홍천 양수발전소는 쓰레기장 기능이 백프로에 가깝습니다. 양수발전소를 더 짓는 이유는 전기가 더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밤에도 낮에도 항상 초과되는 전기를 내다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초과될 전기를 기존의 양수발전소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쓰레기장이 필요해진다는 겁니다. 전기 쓰레기장 만든다고 풍천리 할머니들이 50년 전에 심어 가꾼 잣나무 11만 2천 그루를 베어내고 잣수확으로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 생계를 박살냅니다. 쫄쫄쫄 흐르는 시냇물을 3년 동안 받아쓴다고 합니다. 그러면 풍천리에는 개천에 물도 없겠네요? 100대 명품숲 유아숲체험장도 물에 잠깁니다. 욕이 나옵니다. "썩을 놈의 개새끼들. 나쁜 새끼들. 한수원 니가 뭔데? 어? 이래도 돼는 거야? 이러고도 니들이 멀쩡할 줄 알아? 천벌 받을 놈들." 나무들은 착해서 욕을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인 내가 대신 욕을 해줍니다. 사람이 말을 할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말없는 나무들 대신 욕이라도 시원하게 한바가지 해달라고 목소리가 있는 것 아닌지. 풍천 주민들은 젊은 시절 손수 심어 가꾼 잣나무숲을 지키기 위해 7년 동안이나 싸웠습니다. 수몰되는 지역에 들어와 펜션 사업을 하던 이들에게는 보상절차가 진행되었고, 이설도로를 만드는 작업으로 나무들이 베어지고, 산이 파헤쳐졌습니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들을 실어와 불법적으로 방치하는 쓰레기장이 됐습니다. 댐 예정지 바깥에 살면서 평생을 잣숲에 기대어 살아온 주민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않고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이만큼 싸워온 덕분에 이만큼 숲이 지켜졌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자본의 폭력은 무자비합니다. 사치품과 쓰레기 사이에서 쓰레기장에 버려야 할 정도로 많은 전기는 왜 생산하는 걸까요? 조절이 어려운 ‘안정적’ 전력공급원인 원전에 모든 탓을 돌릴 수도 있지만, 태양력도 통제 불가능한 초과 전기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원전을 줄이지 않은 채 태양력만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태양광과 풍력이 각광을 받자, 태초에 핵전기 쓰레기장으로 지어진 양수발전소는 신재생에너지의 배터리 역할로 홍보되었습니다. 그래도 태양광이 늘어나면 원전을 폐쇄하려나 했더니 웬걸, 신규 원전을 늘이겠다고 합니다. 양수발전소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자연 방전되는 서랍 속 비상 배터리입니다. 부피가 어마어마한 이 배터리로 인해, 상당한 면적의 동식물 서식지와 인간 거주지가 사라지게 됩니다. 피크타임에도 항상 전기가 남아도는 판국에, 더 많은 비상 배터리가 정말로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집집마다 서랍에 비상 배터리 두세 개 갖추고 있는데, “예비 배터리는 생활에 필수”라며 나라에서 또 배터리를 선물해주겠다고 합니다. 기쁠까요? 집집마다 찬장에 안 쓰는 텀블러 여러 개 있습니다. 페트병 내다 버리는 건 일입니다. 넘치는 물건은 기능이 무엇이건, 새것이건 낡았건 관계없이 쓰레기입니다. 결국 쓰레기가 되는 물건을 자꾸 만들고 강매하는 이유는 뻔합니다. 누군가가 돈을 버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발전소와 전력망과 배터리는 국가 예산을 끌어다 쓸 그럴싸한 명분이 됩니다. “전기는 국민 생활에 필수”라고 하지요. 지나친 전기 사용으로 공급이 끊길 수 있는 전력수요 피크 어쩌고 하며 겁을 줍니다. 나라에 필수적으로 가동되어야 하는 시설들은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 시설들은 필수이기 때문에 전기가 우선적으로 공급되며, 비상용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소위 전력수요 피크를 세계종말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옛날에 사람은 전기 없이도 살았고, 전기는 인간에게 사치품이지, 필수품이 아닙니다. 필수라고 홍보되는 많은 것들이, 사실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전기 덕분에 감사하게도 사용할 수 있게 된 여러 사치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치품들로 세상을 채우기 위해 모든 생명의 생존에 필수품인 숲을 없애도 될까요? 과유불급이라 하였습니다. 어쩌다 정전이 되어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집집마다, 마을마다 대비하고, 어쩌다 모자랄 수도 있는 적당한 양의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365일 초과 전기를 생산하고 국토를 실리콘과 중금속의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것보다 안전하고 현명한 길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 경고 한 세기 동안 화석연료는 탄소 배출로, 우라늄은 중성자 방출로 지구 온도를 높였습니다. 자동차와 냉장고와 에어컨이 생존필수품이 되고, 연소기관과 전자제품이 지구 온도를 더더욱 높이는 악순환이 영구적으로 정착되었죠. 전기가 충분하고 남는다는 결론이 나자마자, AI를 ‘미래먹거리’로 부각시키며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원전과 송전선을 지어야 한다고 떠들어댑니다. 국가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요. 중동에 전쟁이 일어나면, 핵으로라도 에너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떠듭니다. 이 반이성의 미친 짓거리를 보면 저절로 외계인 음모론이 떠오릅니다. 아름답고 푸른 지구를 질투하는 외계인이 지구를 온통 실리콘과 중금속과 아스팔트와 방사능 쓰레기로 뒤덮고, 동식물과 인간을 멸망시키거나 노예로 만들기 위해 몇몇 인간의 뇌에 침투하여 영감과 정보와 미끼를 제공하고 있는 건 아닌지. AI는 경험의 멸종을 불러오고, 인간 개체들은 생각하는 능력과 기억력, 밝은 눈을 빠르게 상실하고 있습니다. 메가와트인지 기가와트인지 오타 확인도 AI가 담당할 판이죠. ‘모든 것의 외주화’가 이 시대의 좌우명입니다. 돈에 미친 이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숲은 태양의 에너지를 축적하고 저장하는 천연 배터리입니다. 인체 역시 전자기장을 발생시키는 발전소이며, 배터리이고, 모터입니다. 위대한 구루들은 인체를 둘러싼 전자기장을 활성화시키고 운용하는 법을 깨달으면,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시간과 별들 사이를 오갈 수 있으며, 육체의 모습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외주화된 것들, 모든 인공적인 것들은 본래 인간과 지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타이가의 잣나무숲에 사는 아나스타시아는 말합니다. 모든 것의 외주화와 금권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은 이런 종류의 지식을 미신이나 사이비로 치부하고 믿지 않으며, 신비주의는 히말라야 설표만큼이나 멸종위기입니다. 그러나 전기가 빛과 열을 발생시키고, 식물이 빛과 열을 흡수하여 저장하는 것은 현대의 ‘과학적’ 상식입니다. 온난화 현상으로 인류 생존이 위협받는 시대에, 우리가 먼저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일 년에 14.82분 가동되는 양수발전소일까요? 1800ha 잣나무숲일까요? 글쓴이 : 이해성 산청 책방 "지금부터 판타지" 이끄미,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 산청난개발대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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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만 08-26 19:59
1947년 3월1일관덕정에서(제주애국인민)
1947년 3월1일관덕정에서(제주애국인민) /130X160cm/아크릴물감,알루미늄판,못,콘테,연필/2023 1946년 10.1대구 항쟁이 폭발하면서 미군정은 이튿날인 10월 2일 오후 7시 대구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을 동원해서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군 개입으로 대구항쟁은 경산, 성주, 영천 등으로 확대되었다. 미군정의 행정에 분노한 경북도민들은 미군정과 계속 충돌했고 이후 경북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1946년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 열기는 1947년 3월 1일 제주로 이어졌다. 제주시민들은 삼일절 제28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관덕정에 모여 “통일을 먼저 이루자! 단선단정을 반대한다! 그리고 제주 중학생들은 양과자 수입 막아 식민지화를 막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했다. 가두시위 도중 어린아이가 말발굽에 치였는데 경찰은 아이를 두고 가버린다. 이를 본 시위 군중들은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경찰은 이 군중을 보고 시위대에 그대로 발포해 버려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시민들은 이날 발포 사건에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민.관 총파업을 벌여 투쟁한다. 미군정은 총파업을 강경 대응하며 500명을 체포하고 2,500명을 고문과 구타를 했다. 제주 민심은 들끓어 다음 해인 1948년 4.3일 제주 무장대는 봉기를 시작한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14연대 군인들도 이러한 제주도민들을 애국인민으로 보았고 학살할 수 없다며 항명하였다. 작품에서 나는 4.3항쟁의 시작점으로 내 분신을 보내 제주 애국인민들을 응원한다. 당신들은 애국인민이다!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칼럼에 게시된 글과 그림의 저작권은 박금만 작가에게 있으며, 작가의 허락 없이 복사하거나 다운로드하여 활용하시면 안 됩니다. -
김흥주 08-26 19:28
[뒤웅박 씻나락] "농촌기본소득에서 구례형 기본사회로 ―노인들의 천국, 구례를 꿈꾸다" 김흥주
농촌기본소득에서 구례형 기본사회로 ― “노인들의 천국, 구례”를 꿈꾸다 김흥주 (원광대학교 라이프케어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구례 주민) 구례에서 농촌기본소득이 시작된다. 구례군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지역으로 선정되어 모든 주민에게 매월 2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첫발은 잘 내디뎠다. 그러나 사업에 선정되고 돈을 지급한다고 해서 저절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성공은 그 돈이 구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바꾸고, 지역 안에서 얼마나 따뜻하게 순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본소득을 단순히 주민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정책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주민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보장하고, 동네 가게와 시장, 농민과 돌봄 제공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마중물이어야 한다. 그래서 구례 농촌기본소득의 성과를 인구가 얼마나 늘었는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주민의 식탁이 좋아졌는지, 동네 가게에 손님이 늘었는지, 혼자 지내는 어르신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생겼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동안 농촌의 발전 전략은 주로 외부의 사람과 돈을 끌어오는 데 집중되어 왔다. 산업단지를 만들고 관광시설이나 케이블카를 세우면 관광객이 몰려오고 젊은 사람도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사람이 오지 않으면 큰 시설과 유지관리비만 남는다. 건물은 번듯한데 정작 주민의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 일도 많았다. 구례의 미래를 토건 사업과 청년 유입에만 걸어서는 안 된다. 일자리와 생활 기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과 관광시설을 늘린다고 청년이 저절로 찾아오거나 오래 머무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구례는 65세 이상 주민이 전체 인구의 40%를 훨씬 넘는 초고령 지역이다. 이제 정책의 중심을 ‘언젠가 들어올 사람’에서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다면 발상을 바꿔보자. 고령화를 극복해야 할 약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초고령사회에 가장 잘 대응하는 지역을 만들 수 있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살던 마을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선 고령 친화 지역을 만들어보자. 구례의 미래 비전을 “노인들의 천국”으로 삼아보자는 이야기다. 물론 노인들만 모여 사는 거대한 복지시설을 만들자는 뜻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살던 집과 마을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밥을 먹고 병원에 가고 이웃을 만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지역을 만들자는 것이다. 노인이 행복한 동네는 아이와 장애인, 청년과 여성에게도 살기 좋은 동네다. 언젠가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결국 모든 주민을 위한 구례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기본소득과 통합돌봄을 단단하게 연결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받아도 마을에 쓸 곳이 없다면 돈은 금세 구례 밖으로 빠져나간다. 반대로 그 돈을 지역 먹거리와 반찬 배달, 병원 이동, 집수리, 문화와 여가 활동에 사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민의 생활이 편안해지고, 지역 안에는 새로운 일자리도 생긴다. 기본소득의 액수만큼 중요한 것이 “그 돈이 구례 안에서 몇 번이나 돌고 도는가”이다. 먼저 경로당부터 달라질 수 있다. 담소를 나누고 점심을 함께 먹는 공간을 넘어, 마을의 작은 생활돌봄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건강을 살피는 돌봄 반장, 식사와 반찬을 챙기는 먹거리 돌봄, 병원과 시장에 갈 수 있는 이동 지원, 간단한 집수리를 연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어르신들은 낯선 시설로 떠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마을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지역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구례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로 어르신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학교와 복지시설, 공공기관이 지역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면 어떨까. 마을부엌과 반찬가게, 공동급식과 식사배달을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이 맡을 수도 있다. 그러면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판로가 생기고, 청년에게는 일자리가 생기며, 어르신의 식탁은 더 건강해진다. 이렇게 기본소득은 농민과 청년, 노인을 하나로 이어주는 셈이다. 어르신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지리산의 산나물과 약초, 섬진강의 생태, 마을의 역사와 음식에는 오랫동안 살아온 어르신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들이 농산물 가공과 마을식당, 생태해설과 전통음식 교육에 참여하도록 해보자. 도움만 받는 노인이 아니라 일하고 가르치고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당당한 주민으로 서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구례만의 보물을 더할 수 있다. 자연을 깎고 파헤치는 대규모 관광개발보다 치유와 장수, 생태와 돌봄을 중심으로 한 체류형 관광이 구례에 더 잘 어울린다. 어르신과 가족이 함께 걷는 무장애 숲길, 섬진강 치유 프로그램, 지역 농산물로 만든 건강식, 농촌마을 체류를 연결하는 것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구례 사람들의 건강과 삶을 지켜주는 공동의 자산이어야 한다. 이런 변화는 행정에만 맡겨놓는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 활동가와 귀촌인, 농민과 상인, 의료기관과 사회적경제 조직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읍·면 기본소득위원회도 지급 대상자를 심사하는 데 머물지 말고, 기본소득과 돌봄, 먹거리와 지역경제를 함께 설계하는 주민자치 조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성과를 평가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전입 인구가 몇 명 늘었는지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식탁이 좋아졌는가?”, “병원에 가지 못하는 어르신이 줄었는가?”,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이웃과 함께 먹게 되었는가?”, “동네 가게와 농민의 소득이 늘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런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때 구례 농촌기본소득은 비로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구례는 더 큰 건물을 가진 지역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관광객이 잠시 보고 떠나는 곳을 넘어, 지금 사는 주민이 가장 존중받고 행복한 생활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리산과 섬진강, 농촌기본소득, 초고령사회라는 세 가지 조건을 잘 엮는다면 구례는 대한민국 농촌의 미래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노인들의 천국, 구례”는 고령화에 체념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고령화의 현실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이를 돌봄과 순환경제, 생태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역을 새롭게 설계하는 힘으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농촌기본소득에서 출발한 구례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구례는 사라져가는 농촌이 아니라 새로운 기본사회를 가장 먼저 만들어낸 지역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쓴이 : 김흥주 _현재 원광대학교 라이프케어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교육부 인문사회융합인재양성 사회구조사업단장(2025~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먹거리위원회 공동위원장(2026~현재), 한국농촌사회학회 회장(2021~2023), 한국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SSK) 먹거리지속가능성연구단장(2010~2021), 한국사회복지학회 운영이사(2011~2012), 서울시 친환경무상급식심의위원회 부위원장(2012~2015),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관 현장평가위원(제5기, 제6기, 제7기), 기초 푸드뱅크사업 현장평가위원(2012년),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배분위원(2015~2019). 저서 <지역사회복지론>, <사회적경제와 공공성>,<사회복지조사방법론>(공저) 등.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윤주옥 08-18 10:29
[곰주옥 X 인간주옥] ⑥ 문수사를 나온 곰들, 무니와 수리 그리고 부기
지금은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있는 무니, 수리, 부기는 올해 4월 30일까지 문수사에서 살았다. 내가 이들을 처음 만난 건 2012년이었는데, 그 후로 문수사를 생각하면 곰들이 갇힌 철장이 먼저 떠올랐다. “2013년에 문수사 갔다가 갇혀 있는 곰을 보고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사찰에서 철창에 갇힌 곰에게 줄 먹이를 팔다니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는 거대한 곰의 모습에 눈물이 납니다.” “저희 아이도 오래전에 거기 곰들을 보고 너무 충격받아서 문수사 간판만 봐도 싫어합니다.” 문수사와 그곳에 사는 곰들에 대한 사람들의 댓글이다. 나 역시 문수사를 떠올리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1년에 한 번씩은 문수사에 올라가 곰들이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지 확인했다. 확인한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질문에 매번 “그 곰들은 개인(문수사 주지)의 사유재산이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올해는 지난 2월, 문수사 주변으로 올무 수거 활동에 갔다가 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문수사에 올라갔다. 여전히 철장 안에서, 여전히 왔다 갔다 하고, 여전히 돈을 내고 곰들에게 먹이를 주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우리를 본 곰 한 마리가 철장에 머리를 부딪히며 소리를 지르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그 곰이 철장에 머리를 부딪힐 때마다 내 머리도 철장에 ‘쿵’ 부딪히는 통증이 전해졌다. 더는 그곳에 서 있을 수가 없어 일행들에게 내려가자고 이야기했다. 문수사에서 내려오면서, 가까이에 곰쉼터가 있는데 이 곰들은 왜 여전히 이곳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았다. ↑ 무니와 수리, 부기가 살던 문수사 철장(뜬장) 3월 초, ‘문수사 철장에 갇힌 곰들을 곰쉼터로 보내자’는 서명과 항의 전화를 요청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서명은 100명에서 1천 명으로, 다시 2천 명, 3천 명으로 삽시간에 늘어났고, 항의 전화를 했다는 분들이 상황을 전해왔다. 결과적으로 문수사의 곰들은 곰쉼터로 옮겨졌다. 3월 초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곰들이 이주한 게 4월 30일이니 두 달 만에 묵은 숙제를 한 셈이다.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고 실천하면 부조리한 일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 일이었다. 무니, 수리, 부기는 4개월째 곰쉼터에서 살고 있다. 잘 살고 있겠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더운 여름애 뭘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여 곰쉼터를 찾았다. 최신영 수의사는 무니, 수리, 부기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말해줬다. “무니, 수리는 문수사에서 온 친구들이라 자연스럽게, 마지막 한 친구에게 ‘사니’라고 붙이려 하니 ‘사니?’ 이런 물음으로 들려 좀 이상해서요. 그런데 그 친구가 잘 걷지를 못하는 거예요. 걷는 모습이 거북이 같아서 ‘부기’라고 했습니다.”(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 면담) ↑ 곰쉼터로 옮겨진 후 건강을 회복한 부기 (사진제공 : 구례곰마루쉼터) 곰쉼터에 왔을 때 거북이처럼 걷던 부기는 많이 좋아졌다. 척추에 손상을 입었을 것으로 예상되어 압박이나 염증을 줄여주는 약물치료를 했고, 곰쉼터 바닥이 타일이라 미끄러우면 걷는 게 힘들 수 있으니까 청소 후에는 최대한 물기가 없도록 했다. 이제는 걷는 모습이 눈에 띄게 괜찮아졌다. 100% 완벽한 건 아니지만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은 없다. 나는 문수사의 곰들이 ‘이사’, ‘이주’했다는 표현보다는 ‘옮겨졌다’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문수사 곰들뿐 아니라 곰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사람에 의해 이동하는 과정에는 마취를 하거나 포획틀을 사용하는 등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 윤주옥: 문수사에서 여기는 무척 가깝잖아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때, 마취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최신영: 네, 그렇습니다. 문수사 철장 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이동이나 환경 변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어서요. 흥분한 상황에서 마취를 하지 않고 케이지로 이송한다면, 그 친구들에게는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거든요. 윤주옥: 더 좋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거잖아요? 최신영: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작은 공간에 갇혔다가 (넓어지고 깨끗해졌지만) 익숙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흥분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곰이 다칠 수 있고 또 사람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마취가 좀 더 안전한 거죠. (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와의 대화) 무니와 수리, 부기는 얼떨결에 옮겨졌지만,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 최신영 수의사는 문수사에서 매일 같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공격적이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적응을 잘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지하게 더웠던 올여름은 어떻게 지냈을까? 지리산 자연에 사는 곰들은 계곡에서 지낼 수 있으니 어떻게든 여름을 보냈을 텐데, 털 많은 곰들에게 이 더위는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각 방에 물 양동이를 하나씩 넣었어요. 물놀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햇빛이 강하니까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중간방사장 위쪽에 검은색 천막을 쳐줬고요. 또 방마다 선풍기를 설치하고, 과일을 얼려서 주기도 합니다. 여기 바닥이 타일이거든요. 타일이 시원하니까 최대한 몸을 펼치고 누워 있더라고요. 입추 지나면서 조금 시원해져서 다행이에요.” (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 면담) ↑ 물통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무니 (사진제공 : 구례곰마루쉼터) ↑ 타일 바닥에 몸을 최대한 펼쳐 누워 쉬고 있는 수리 (사진제공 :구례곰마루쉼터) 최신영 수의사와의 대화 후에 무니와 수리, 부기를 만났다. 부기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봤고, 무니는 바닥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으며, 수리는 옆 방의 친구들이 궁금한 듯 눈과 귀가 옆 방을 향해 있었다. 최신영 수의사는 곰들을 ‘친구들’이라고 칭했고, 개별 곰에 대해 말할 때는 이름을 불렀다. ‘부기야, 뭐 하니?’, ‘무니, 많이 덥구나’ 이런 식이다. 곰들을 대하는 그의 말과 태도에서 곰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무니와 수리, 부기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덕분에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최신영 수의사는 ‘계속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사육농장에 남아 있는 곰들이 있고, 곰쉼터에서 살아가는 곰들도 사람들의 관심이 끊기면 지원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곰들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계속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작일 것이다. -
박금만 07-24 19:50
항쟁의 심장
항쟁의 심장(10.1대구항쟁) /160X130cm/콘테/2024 나는 나름 작품으로 철학적 구축을 다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의 흔적을 2017년 인터넷에서 순천경찰서기록으로 발견한다. 서울경기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약 15년간 할아버지 흔적을 찾아다녔는데 못 찾고 여수로 귀향한 지 2년 만에 기록을 찾은 것이다. 그 기록은 매우 건조했다. - 활동유형: 좌익활동(우익,좌익,좌익활동) - 장소: 광천 다리 밑 - 사망유형: 총살 순천경찰서의 이 기록은 그동안 우리 가족의 괴롭고 어둡던 모든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분노와 슬픔으로 그동안 그려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여순항쟁 작품에 몸을 던진 계기가 되었다. 기록을 발견하고 일주일간 잠도 잘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며 생각했던 것은, 첫째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알리자, 둘째 작품에서 지형이나 복장 무기 등은 철저히 고증하자, 셋째 피나 잔인한 장면을 서정적인 슬픔으로 승화하자(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이렇게 시작한 작품들이 방대한 여순항쟁 역사에 미미하지만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여순에 살고 있다. 여순항쟁은 대구항쟁과 제주4.3항쟁과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래서 여순의 기원을 그려 보기로 했다. 해방이 지난 1년 후 1946년 10월1일 미군정은 친일 관리를 등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한다. 쌀값은 폭등해서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또한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어린이들은 의약품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대구시민들은 "쌀을 달라! 생필품을 달라! 어린이를 치료할 의약품을 달라! 친일경찰 물러나라!" 외치며 차라리 길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거리로 나온다. 10월1일 대구부청 앞에서 기아 대책을 세우라는 시위 도중 민간인 황말용, 김종태 2명의 노동자가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게 된다. 다음 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으로 대구의 굶주린 일반시민들, 노동자, 학생들까지도 시위에 합세하게 된다. 만여 명의 시민들은 대구경찰서를 포위했고 결국 경찰들은 무장해제를 한다. 대구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며 경찰권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로 민중들은 거리 한쪽에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위 작품은 분노한 대구민중들이 돌을 들기 직전을 작품화한 것이다. 이후 몰리고 있던 경찰들은 발포를 해서 24명의 시민들이 사망한다. 이를 기점으로 대구항쟁은 영남일대로 번지고 나중 제주4.3항쟁, 여순항쟁까지 항쟁의 불꽃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대구시는 '10월 항쟁'이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난 2016년 대구시가 '대구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마련한 것이다. 이전에는 주로 '대구 10월 사건', '대구 10·1 사건' 등으로 불렸다. 일각에서는 폭동, 소요사태 등 부정적인 단어가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극렬 유튜버들은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며 대구항쟁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지리산人>에서 박금만 작가의 '여순그림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순항쟁을 담아 사실적인 역사화를 그려 오고 있는 박금만 작가의 이번 칼럼을 통해, 여순항쟁(여순10.19항쟁)의 역사와 아픔 나아가 항쟁에 함께한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리산人> 드림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
김명철 07-20 12:50
[뒤웅박 씻나락]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 Unsplash의 Shane Rounce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제 주변 사람들도 같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이야기해 오던 공동체를 느슨하게라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만드는 게 힘이 들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형성이 되고 나면 (마치 합창처럼) 거기서 느껴지는 ‘같이하는’ 것에 대한 행복감을 맛보고 싶었던 거죠, 시작은 안솔기마을이라는 생태마을에서 했습니다. 같이 음악회도 하고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하고.... 그러다 마을이 너무 작아 같이 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분들을 봤고 그러면서 안 하고 싶은 자유가 굉장히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마을들과 합창제도 해 보고 같이 운동회도 하고 했는데 이것도 역시 쉽지는 않더군요. 그러면서 규모가 좀 커야 개인의 자유도 보장하고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12년 전 산청에 한방 엑스포가 열린다길래 군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강좌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마수걸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운영위를 만들었고 그 운영위 중 한 분이 구례 콩장을 다녀와서는 우리도 플리 & 프리마켓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도 그게 너무 좋겠다 싶어 동의했고, 그 길로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모임을 열고 그 해에 목화장터라는 마켓을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엔 이 마켓이 생기면 촌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번씩 모여 안부도 묻고 정보도 나누고, 재미난 공연으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분들에겐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 제공도 되고, 또 혼자 먹기에는 많고 시장에 내다 팔기에는 어중간한 분들의 판매처도 되고, 직접 만든 공예품이나 옷 같은 것을 팔 수도 있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을 팔거나 나눔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적극적으로 찬성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기대를 했던 건 맥주나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소통을 하다가 집으로 갈 때는 장 본 것을 들고 가는 독일의 어느 장터를 우리도 했으면 하는 것이었죠. 그렇게 장터를 주변 사람들과 같이 열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우리 온라인 커뮤니티(밴드) 회원이 많아지다 보니(현재 5,075명) 모임을 만드는 것이 쉬워져 합창단,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원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이 장터의 힘으로 만들어진 지속넷(지속가능발전네트웍)에서 주최한 100인 원탁회의에서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었고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일도 진행이 되었죠. 사실 의료사협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제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돕고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어서였는데 만들고 보니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더군요. 시작할 때의 슬로건은 ‘함께 만드는 건강, 더불어 행복한 삶, 지속 가능한 공동체’였는데 한의원이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니 지역에서 일어나는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게 되었고 성심원 내에 장애와 비장애,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실제로 시작을 한 상태이긴 합니다) 제대로 된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을 포함한 힐링센터를 만들 수도 있겠단 꿈을 꾸기도 하고요. 그리고 즐거운 일들은 같이 나누고 힘든 일은 같이 돕는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 실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실제로 목화장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지속넷과도 같이 협력하며 도와 주기도 하고 지역의 ‘그늘과 언덕’이라는 곳과도 같이 힘을 모아 작년의 수해복구와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도 했고요. 이런 일들을 의료사협이라는 곳의 조직력과 (미미하지만) 재정적인 여유로 같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지금은 재택의료센터도 만들어 열심히 방문 진료를 하는 중이고 가정의학과도 열어서 한방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서 통합돌봄을 실천 중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어쩌면 정신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좋은 강좌나 지역 소모임을 통해 아프기 전에 건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혹시 아프면 믿을 수 있는 의료진과 주변의 도움으로 나을 수 있도록 하며, 설령 잘 낫지 않아 사망하게 되더라도 주변의 배웅과 도움을 받으며 존엄하고 평안하게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다 실행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익이다.’란 생각으로 ‘오늘도 어떻게 하면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글쓴이 : 김명철 _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홈페이지 https://gscmedc.org 사무국 055-973-0407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대로 1381번길 17 *산청 주민이 아니어도 조합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사무국으로 문의해주세요.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규빈 07-06 10:05
[푸른목소리] 오늘날 민주주의 안겨 준 헤아릴 수 없는 희생 기억해야
[푸른 목소리] 오늘날 민주주의 안겨 준 헤아릴 수 없는 희생 기억해야 안녕하세요? 산청 간디고 ‘역사사랑’입니다. 여러분은 6월 10일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시는가요? 오늘은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6월 민주항쟁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에도 국민의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국민은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중단하고 기존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국민의 불만은 더욱 커졌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전국으로 확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6월 민주항쟁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같은 해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정부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지만, 진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커졌습니다. 이후 종교인, 노동자, 학생,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와 집회를 이어 갔습니다. 그리고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의식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소식은 전국에 알려졌고 국민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결국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한 국민대회가 열리면서 6월 민주항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직장인, 종교인, 노동자, 시민 등 수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왔고,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을 이용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약 20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집회와 시위가 이어졌으며 국민은 민주주의를 위해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노력은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1987년 6월 29일 정부는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고, 대통령 직선제가 수용되었습니다. 이로써 국민은 직접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본권 확대와 지방자치, 언론과 표현의 자유 보장 등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비록 이한열 열사는 7월 5일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희생과 수많은 시민의 노력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민주주의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 용기를 통해 만들어지고 지켜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많은 시민이 부당한 현실에 맞서 목소리를 냈기에 지금의 민주주의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으며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6월 항쟁에 투쟁하고 용기를 낸 시민들이 있었기에, 민주주의가 있었기에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12.3 불법 비상계엄과 내란을 막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윤석열을 탄핵한 건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로써 부당한 일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서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배웠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행동하고, 여러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합시다, 투쟁합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기보다, 그것이 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루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상으로 6월 민주항쟁에 대한 간마디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 김규빈 _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2학년 안녕하세요. 저는 산청 간디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규빈입니다. 저는 동아리 ‘역사사랑’의 부원으로서, 학교 식구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식구총회에서 ‘간디인 한마디’, 줄여서 ‘간마디’라는 시간을 통해 6월 민주항쟁에 대해 제 생각을 더해 소개했습니다. 제가 속한 역사사랑 동아리는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들을 간마디를 통해 식구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4·19 혁명의 정신을 담은 4·19 마라톤을 기획하고 진행하며, 역사 기행을 통해 지역의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배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산청의 도천서원, 단성향교, 사직단 등을 방문했고, 학기 말에는 동아리 회지를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올해 역사사랑에 신입 부원으로 들어왔습니다. 1학년 때 보경 쌤의 한국사 수업을 들으며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사랑 활동을 통해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배우며 사회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6월 민주항쟁은 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낸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며, 그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의미를 식구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간마디에서 6월 민주항쟁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간마디가 식구들에게 6월 민주항쟁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고, 우리 사회와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리산人의 기획 칼럼 [푸른목소리]에는 지리산 둘레에 사는 청소년-어린이의 생태감수성이 담긴 글을 싣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사회에 '이런 삶도 괜찮잖아?'라든가 '난 이렇게 살고 싶어' 같은 생각거리를 주는 글, 자연의 생명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글, 우리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환영합니다. >> 지리산人 푸른목소리 기고 문의 : mhghg@naver.com -
누리 06-30 10:36
[뒤웅박 씻나락] "히가시카와에서 상상하는 n개의 산내" 누리
히가시카와에서 상상하는 n개의 산내 누리 (지리산이음, 산내청년네트워크틈새 활동가) 반듯한 도로와 평야가 펼쳐진 히가시카와의 풍경. 네모반듯한 ‘칼각’으로 푸르고 광활하게 펼쳐진 논밭 사이를 국도가 가로지른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어지는 평원 너머에는 하얀 물감을 군데군데 칠해 놓은 듯이 머리가 희끗한 설산이 자리 잡고 있다. 지붕이 비스듬한, 서로 닮은 디자인의 집들이 길가에 점점이 서 있어서, 시력 검사 기계 속 언덕 위의 빨간 집이 떠오른다. 6월의 홋카이도, 일본 1호라는 다이세쓰 국립공원은 아직 눈에 덮여 있었다. 6월 첫 주를 일본 최북단 북해도의 시골마을 히가시카와정에서 보냈다. 일본의 기초잔치단체인 시, 정, 촌 중 정은 한국으로 치면 ‘읍’ 정도에 해당한다. 요즘은, 평소와 다른 풍경 속에서 쉬엄쉬엄 일하라고, 여행 대신 ‘워케이션’을 오라며 현대 도시인들에게 말을 거는 지자체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많다. 우리는 바다 건너 히가시카와에서 워케이션을 보냈다. 이번 여정에는 제주, 태백, 거창 등 전국 곳곳, 각자의 지역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 13명이 함께했다. 사람들의 말소리보다 새들의 지저귐이 훨씬 크게 들려오는, 한적한 히가시카와에서 13인의 한국인들은 서로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마주쳤다. 미슐랭의 인정을 받았다는 작은 소바집에서, 행정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이자 복합 교류 공간인 ‘센토퓨어’의 서가에서,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의 조리식품 코너 앞에서. 일행 중 누군가가 자전거를 타고 몇 번이나 다녀왔다는, 걸어가기에는 제법 먼 거리의 주먹밥집에 옹기종기 찾아가 아침 찬을 쓸어오기도 했다. 여정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평을 듣고 즐겨찾기 해 둔 구글 지도가 있었는데, 낯선 동네에서 동행들의 추천 멘트는 하나같이 강력했다. 한 사람이 대화 중에 ‘여기 다녀왔는데 좋더라’ 하면 사람들은 귀를 열고 열심히 들었다. 그게 재밌어서 '도장 깨기'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쏘다녔다. 내가 사는 남원시 산내면은 히가시카와에 비하면 (적어도 구글 지도에서는) 불모지에 가깝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25년 연속으로 인구가 늘어났다는 농촌 마을, 히가시카와의 성공 비결이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구해 읽는다는 『히가시카와 스타일』 처럼 특별하고 고유한 ‘산내 스타일’ 따위를 정의한 책도 없다. “왜 여기 살고 계세요?”라는 말을 지금도 가끔 듣는다. 다른 곳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냐는 일말의 걱정 섞인 질문도 동네 어른들에게, 바깥에서 온 사람들에게 골고루 종종 듣는다. 나름대로 고민은 해 봤지만, 딱히 상대를 이해시킬 만한 뾰족한 대답도 없어서 얼버무리고 만다. 다만 몇 해 전 동네 한의원이 문을 닫고, 어린이집이 휴업을 하게 되면서 새로이 갖게 된 물음표는 이런 것이다. 여기가 없어지더라도 계속 산내에 살고 싶을까? 예를 들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여유 시간을 보내고 마음 맞는 커뮤니티를 찾아가는, 내 10대 시절이 담긴 품안작은도서관이 없어진 산내는 어떨까? 산내초등학교에는 4월이면 함께 추모식을 하고 노란 꽃을 심어 가꾸는 세월호 기억 꽃밭이 있는데, 꽃밭을 돌볼 어린이들이 없어진 산내는 어떨까?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 없는 옷과 물건들이 순환될 수 있도록 내어놓는 '득템'의 성지, 자원순환가게 나눔꽃이 없어진 산내는 또 어떨까? 눈인사를 건너뛰고 안부를 묻는, 서로의 맥락을 아는 이웃들이 떠난 산내라면?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계속 산내에 살고 있는 이유, 없어지면 몹시 아쉬울 산내 고유의 아름다움이라는 건 있는 셈이다. 산내청년네트워크 틈새에서는 올해 그러한 연유로 다른 지역에 사는 또래 청년들에게 산내에 잠깐 살아보자는 초대장을 보내고 있다. 방식은 여러 가지다. '지금 도시에서 살고 있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 고민된다면 여기 와서 조금 다른 속도로 사는 마을을 경험해 보는 건 어때?'하고 말을 걸기도 하고, 산내에 사는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거쳐서 마을을 소개하기도, 산내에서 더 예민하게 감각할 수 있는 사계절의 세계로 안내하기도 한다. 다가오는 7월의 프로그램을 위해 시도해 본 방식은 바로 함께 지도를 채워 나가는 작업이다. 산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람천과 임천의 물줄기를 따라, 지리산의 푸르른 산줄기를 따라 평면 지도 위를 짚어 나가다 보면 잊고 있던 장소 속 이야기들이 되살아난다. 산내 구석구석에 얽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조각도 받았다. 내가 일하고 가꾸는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은 누군가에게 카페 대신 소중한 '무대'로 의미화되었고, 물 흐르는 소리의 크기로 지금 계절이 비가 많은지, 가문지 가늠할 수 있는 해탈교는 누군가가 밤하늘 가득 총총한 별을 올려다보며 산내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곳이었다. 이럴 때는 같은 산내에 살고 있는 것 같아도, 100명이 경험하는 100개의 산내가 다 각기 다를 것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와 아득해지기도 한다. 수학이든 무엇이든 정말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다른 사람을 가르쳐 보라고 하는데, 우리는 스스로 무지를 깨닫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불특정 다수의 손님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한 덕분에, 오히려 내가 산내를 많이 알게 되었다. 센토퓨어의 '너의 의자' 프로젝트 전시 코너. 주민과 여행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히가시카와의 복합 교류공간 '센토퓨어'의 정문으로 들어가면 이 지역이 자랑하는 '너의 의자' 프로젝트 컬렉션이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다. 2006년부터 2026년까지, 히가시카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본인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새겨진 세상에 하나뿐인 수제 의자를 선물 받는다. 매년 그해만의 맞춤 디자인이 선정되고, 제작 또한 히가시카와에 위치한 목공방 중 하나에서 맡는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의자를 통해 소속감을 느낄 것이고, 학업이나 취업 등으로 다른 지역에 가게 되어도 마을에는 여전히 내 자리가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너의 자리는 여기에 있단다." 적어도 그런 의미를 담아 기획했다는 모양이다. '우리'라는 말에는 울타리 안의 요소들을 마법처럼 하나로 묶어 주는 힘이 있고, 동시에 그 바깥의 것들을 밀어내는 배타성도 숨어 있다. 그런 '너의 의자'의 의미가 확장된 순간이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큰 상흔으로 남은 3.11 동일본 대지진이다. 2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된 참사의 날에도 피해 지역인 도호쿠 지역에는 104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800km 떨어진 북해도에서 보내온 '희망의 너의 의자' 104개에는 "다부지게 미래로."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히가시카와 공민관 앞에 나란히 선 어린이용 자전거들. 히가시카와에서 보낸 시간 동안 먼 길을 떠나온 몸과 다르게 마음은 자꾸 고향으로 돌아가, 산내가 어떤 마을이기를 바라는지 상상하게 되었다. 숙소와 카페에 이 마을에서 만드는 가구와 잔, 소품들이 자연스레 비치되어 있었던 점, 거리낌없이 문턱을 넘고 자리 잡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점은 정말이지 마음에 들었고, 어딜 가든 외국에서 온 사람에게 편하고 친근하게 말 걸어 주는 점도 괜찮았다. 반면 마을버스를 타려면 전날 예약해야 하는 시스템은 잠시 다녀가는 입장에서는 높은 장벽으로 느껴졌고, 외식 메뉴를 고를 때에 채식 등 다양한 선택지가 없는 부분은 다소 아쉬웠다. 히가시카와에 함께 간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가서도 참 자기다웠는데, 농사를 짓는 사람은 줄기가 아직 여린 새싹 작물을 어떻게 보호하며 키우는지 유심히 들여다보았고, 산을 타는 사람은 새벽같이 뒷산을 오르며 울창한 나무들과 새를 만나고 왔고, 일본 각지를 누비며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은 그곳에서도 미니 탐방 루트를 만들어서 동행들을 능숙하게 가이드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13명이 만난 13개의 히가시카와가 거기 있었다. 산내 마을 구석구석에도 방문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선이 더해지고, 경험이 쌓여 나갈 것이 기대된다. n명의 사람들이 만나는 n개의 산내. 지금 '우리'를 넘어 누구에게 손을 내밀고, 어떤 의자를 내어줄 수 있을까? 거창하지 않더라도 함께 궁리하고, 무턱대고 실천하고 싶다. 틈새에서 진행한 2주살이 캠프 참여자들의 그날 하루를 돌아보는 엽서들. -
윤주옥 06-23 12:36
[곰주옥 X 인간주옥] ⑤ 곰과 커피 사이, 내가 몰랐던 세계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사육 농장에서 살던 곰들이 이주한 건 2025년 9월 말이다. 나는 곰들이 지리산에 살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이유로 구례에 오게 되었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곰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뜬장에 살았다고 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곰들도 있다고 했다. 나에게 곰은 원래도 관심이 가는 존재이지만, 이러한 상황을 들으니 더 마음이 쓰였다. ↑ 이가 없어서 모든 음식을 잘라서, 익혀서, 분쇄해야 먹을 수 있다는 ‘BM-22’ 방 앞 안내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곰곰학교’(곰처럼 곰곰이 생각하는 학교, 2025년 10월 구례에서 운영)를 열었고, ‘반달곰을 사랑하는 1%’(이하 반달곰1%)를 구례뿐 아니라 하동까지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 곰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지난 1월, 구례 반달곰1% 가게 주인들과 곰쉼터를 방문했다. 곰들의 상황을 설명하던 최신영 수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반달곰 1%에 카페들도 참여하나요? 그럼 커피박을 모아주실 수 있을까요? 여기 곰들에게 커피박은 좋은 풍부화 재료, 그러니까 사육농장에 있으면서 퇴화된 곰의 감각과 근육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곰들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반달곰 1% 가게 주인들도 ‘그거라면 할 수 있다’고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하기로 마음을 굳히자, 이왕이면 반달곰1% 가게뿐 아니라 관심 있는 카페에도 알리는 캠페인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캠페인 문구를 정하고, 그림과 디자인을 요청했다. 웹자보를 SNS에 올리고, 자주 가는 카페 주인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며 참여를 부탁했다. ↑ 캠페인 ‘곰에게 가는 커피향’ 웹자보 “일주일에 한 번씩 수거할게요. 커피박을 말려서 보관만 해주시면 됩니다.” 흔쾌히 해보겠다는 분도 있었지만, 커피박을 말리는 게 쉽지 않다고 주저하는 분도 있었다. 웹자보를 보고 연락한 분도 있었고, 카페를 운영하지 않지만 커피를 마신 후 나오는 커피박을 일반쓰레기로 버릴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다며 함께 하겠다는 분도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인 카페 10곳과 개인 1명이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을 시작하였다. ↑ 곰쉼터에 전달된 마른 커피박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은 100% 자원활동이다. 특히 매주 월요일마다 커피박을 수거해 곰쉼터에 전달하는 일에 나서준 이영숙 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번 해볼게요’로 시작한 이영숙 님은 매우 성실하게 활동했고, 마치 곰이 된 것처럼 커피박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영숙 님은 커피박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커피박은 충분히 말린다고 해도 플라스틱 통이나 비닐에 담아두면 바닥에서 곰팡이가 피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천으로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로 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회의에서, 참여자 유현숙 님이 직접 만든 가방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할 분을 찾고, 가방 재료를 고민하고, 실크스크린 작업을 도와줄 분들을 섭외했다. 여러 사람의 정성과 수고 덕분에 재활용 천과 커피 자루로 ‘커피박 수거 가방’이 완성되었다. 6월 8일, 커피박 수거 가방을 들고 곰쉼터에 갔다. 그날 함께한 분들은 곰을 직접 본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곰들이 얼마나 커피박 향기를 좋아하는지 커피박이 든 자루를 껴안고 뒹굴었으며, 방사장으로 나가지 않던 곰도 커피박 향기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임옥주 수의사는 커피박 자루를 넣어주면 곰들이 냄새를 맡고 탐색하거나 껴안고 굴리는 행동이 늘어나는데, 이런 자극이 곰들의 감각과 근육을 깨우는 ‘풍부화 효과’라고 설명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참여자들이 곰쉼터 답사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실크스크린 작업을 맡은 임산하 님, 커피 자루를 기부해 준 한지인 님, 유현숙 님과 함께 가방을 만든 이정훈 님, 필자, 곰쉼터에서 근무하는 임옥주 수의사. 곰쉼터 방문 후 커피 이야기가 나왔다. 25년째 커피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한지인 님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세인트헬레나 섬이 커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 윤리적 논쟁이 있지만 코끼리 배설 커피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따로 있었다. 커피가 콩과 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네? 커피가 콩과가 아니라고요? 그럼 왜 커피콩이라고 해요. 커피나무 열매가 체리와 같다고요? 브릭스가 12나 되니 단 것을 좋아하는 곰들도 좋아할 거라고요?” 내 생애에서 지금처럼 커피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설사를 한다. 어떤 때는 커피 향만 맡아도 배가 아플 때가 있다. 평생 마셔본 커피는 세 모금 정도다. 그런 내가 커피박을 수거하고, 커피 향을 맡고, 커피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니 묘한 일이다. 나는 이제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커피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곰을 통해 커피를 다시 배우고 있다. 관심은 연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아무 의미 없이 버려지던 커피박이 이제는 곰들의 감각을 깨우고 삶을 넓히는 도구가 된다. 내가 몰랐던 커피의 진실은 맛이나 향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생명과 이어지는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온통 오해뿐이던 커피에 대한 내 생각을 바로잡아준 곰주옥과 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작은 연결이 더 많은 생명과 사람에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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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인 09-07 12:05
[설문] 지리산권 주민 기후재난 보상·복구 인식 조사 설문
지리산권 주민 기후재난 보상·복구 인식 조사 설문 안녕하십니까! 본 조사는 지리산권에 거주하는 주민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기후위기와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한 재난 위험에 대해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진행됩니다. 또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보상 및 복구 제도에 대해 주민 여러분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실제로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조사하여 앞으로 더 나은 재난 대응 정책과 지원 제도를 마련하는 데 활용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응답은 통계 분석과 정책 제안에만 사용되며, 개인정보는 관련 법령에 따라 안전하게 보호됩니다. 설문에는 정답이 없으며, 평소 느끼신 생각과 경험을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은 지리산권 주민의 안전을 지키고, 기후재난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바쁘시더라도 잠시 시간을 내어 설문에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기후재난대비를 위한 지리산권 시민모임 - 설문 참여 https://forms.gle/LaU4q2r7jhERpQKi6 -
지리산인 09-06 20:25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주간 행사 안내
★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행진 안내 ★ 구례 : 2026.9.19(토) 오후 3시 구례읍사무소 ~ 봉성산 행진 남원산내 : 2026.9.19.(토) 오후 4시 산내면사무소 ~ 실상사 행진(사전행사 1시부터) 주최 :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조직위,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 불태우고, 섬진강 말려 죽이는 착취 폭주를 멈춰라! ▧ 지리산 불태우고, 람천·임천 말려 죽이는 착취 폭주를 멈춰라! ★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주간 행사 안내 ★ - 13일 (일) 16:00-18:00 네 이웃의 옷장(‘구병모_네 이웃의 식탁’ 오마주) @ 함양 동네책방 오후공책 - 14일 (월)·15일 (화) 19:00-21:00 기후정의 영화제 <캔 아이 겟 위트니스?> @구례자연드림시네마 - 16일 (수) 19:00-20:00 지구의 노래 sing-along @구례읍 봉동길 3, 1층 - 17일 (목) 10:00-12:00 기후정의 정책 요구안 만들기 @구례 중앙로 25, 2층 - 17일 (목) 13:00-15:00 햇빛소득마을, 네가 궁금 @구례 산보고책보고작은도서관 - 17일 (목) 16:00-18:00 <녹색계급의 출현> 함께 읽기 @온라인 - 18일 (금) 10:00-12:00 초등학생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법 발표 @구례 공유공간 '거실' - 19일 (토) 09:30-11:00 지구에 숲을! 곰에게 칡덩굴을!! @구례 한겨레숲 - 19일 (토) 17:00-19:00 모두의가게 옷케스트라 @하동 악양면사무소 앞 야외공터 ✅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7대 요구안 ✅ 1. 생태계 서식지·종 다양성 보장하고, 생태계 파괴 사업 중단하라 2. 에너지 사용 한계선 설정하고, 탈핵·탈화석연료·공공재생에너지로 에너지정의 실현하자 3. 지역을 희생시키고 생태계와 주민의 삶을 파괴하는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중단하라 4. 생태친환경농업으로의 전면적인 전환을 지원하고 생명농지 보전 정책과 소농으로의 전환 기반 마련하라! 5. 성장과 소비를 뒷받침하느라 지역에 강요되는 착취와 희생을 똑바로 보고, 성장 사회 신화 깨뜨릴 생태적 대안 문화로 전환하자! 6. 재난에 취약한 지역 인프라와 복지 체계 바로잡고, 재난 예방책과 적응 정책 함께 마련하라! 7. 시민들이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만드는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기후시민 참여권 보장하라 ● 주간 행사 정보 https://docs.google.com/document/d/1ewumSWzthXsrjqRGxulFsOlZnACvUSydJTviATLGur4/edit?usp=sharing ● 지리산사람들 https://www.instagram.com/jirisanpeople_/ -
지리산인 08-23 13:34
[소식] 함양 제2회 기후정의 영화제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함양작은영화관에서 하는 함양 기후정의영화제 보러 갈까요~! 9/4 나는 강이다 9/7 캔 아이 겟 위트니스? 영화를 통해 우리 함께 기후정의를 생각하고 두 손 모아 보아요 함양에서 만나요~ -
지리산인 08-23 13:25
[소식]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시민작당행동 모집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지리산 불태우고 섬진강 말라 죽이는 착취 폭주를 멈춰라" 해마다 오는 기후정의행진, 올해 지리산 자락은 구례&남원산내에서! (1)지리산남부 : 구례읍사무소~봉성산 정상 행진 2026. 9. 19. (토) 오후 3시 (2)지리산북부 : 남원 산내면사무소~실상사 행진 2026. 9. 19. (토) 오후 4시 (사전 행사 1시부터 시작) (참신한 깃발-피켓 등 기후정의를 외칠 도구 준비하시면 더 좋습니다.) 당일 행진으로 끝낼 수는 없죠. 9월 13일부터 9월 19일 기후정의행진 주간!! '시민 작당 행동' 모집 워크숍/산책/전시/장터/놀이/책모임 등 기후정의를 위한 모임 OK (지리산 고을고을에서 시민들 스스로 기후정의 주간 행동에 나서 주세요!) 신청은 맨 아래 링크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지리산행동 '7대 요구안'에도 힘 모아요! 문의.관심.신청 : https://docs.google.com/document/d/1UCRHRE7a81VaaPFKMRdmoMWGd3tVz8M3oBUbbKXtMbA/edit?usp=sha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