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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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 편지 : 참새와 돌] 기대어 사는 우리
    디자인.칩코 <돌에게> 돌, 추운 겨울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지난 주만해도 벌써 봄같은 날씨에 소한이 이렇게 따뜻해도 되나 걱정했는데 이번주는 이불밖으로 나오기가 무서울정도로 춥네요. 돌의 편지를 받고 몇번이고 읽어보았어요. 가만히 멈춰있는 돌이 아니라 데구르르 구르는 돌을 상상하니 묵직한 에너지가 느껴져요. 돌의 습관은 일기군요. 저도 제 이야기에 귀기울여줄 누군가가 너무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부터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누군가의 필요와 요청에 ‘반응’하며 살아온, 별명마저 누구나 부르기 쉽게 정했다는 돌의 존재가 참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나타났다면 너무 큰 행운이었겠죠. 홀로있는 외로움을 자신과의 대화로 채워온 시간만큼 다른 이에게 기대거나, 신세지는 일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어요. 지금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일기쓰는 시간보다 수신자가 있는 편지를 쓸 때 더 설레고 기뻐하는 저를 보니, 혼자 견고히 살아가는 법보다 더불어 신세지며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수밖에 없겠어요. 그래서 나의 펜팔 짝꿍인 돌이 “더 적극적으로 서로 기대는 삶의 방식을 바래요.”라고 말해주어서 참 반가웠어요. 제가 돌의 이야기에 응답할 수 있는 수신인이 되어서 정말 기뻐요. 마침 이번 펜팔 주제가 나의 반려생물이네요. ‘반려’라는 단어를 사전에 찾아보니 ‘짝이 되는 동무’라고 합니다. 짝이 된다는 건 평생 서로에게 신세를 지고, 기댈 곳이 되는 걸까요? 반려자, 반려동물을 넘어 반려식물, 반려돌멩이까지도 들어봤어요. 반려돌멩이.. 무척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반려머시기들 중에 저는 저의 6년차 반려고양이를 소개해주고 싶어요. 처음 고양이를 데려왔을 때 저는 주중에 서빙알바를 하고, 주말에는 집회나 세미나 등을 쏘다니며 서울의 원룸에 살고 있었어요. 덜컥 고양이를 데려오기엔 너무 불안정한 삶이었는데요. 같이 서빙알바를 하던 언니가 매일같이 안타까운 유기묘 사연과 그보다 더 안타까운 고양이 학대사건을 말해줬어요. 그러면서 너는 비건이니까 고양이를 입양하면 그 누구보다 잘 키울거라며.. 지금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논리입니다. 어찌되었든 저는 제대로 바람이 들어서 이 친구를 데려와버렸어요. 한 달 벌어서 겨우 다음 한 달을 버티며 살던 때였는데 각종 고양이 용품에 사료에 병원비 등등 감당하기가 벅찼던 것 같아요. 근데 또 내 새끼 좋은 거 해주고 싶다고 나도 안 쓰는 원목 용품과 유기농사료로 싹 구비했었죠. 언젠가 나갔다 들어오니 애가 뭘 잘못 주워먹었는지 눈이 띵띵 부은채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거에요. 심장이 덜컹해서 바로 케이지에 넣어 병원까지 울면서 뛰어갔어요. 동물병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흥분한 목소리로 “선생님! 애기 눈이 왜 이러죠! 어떡하죠?”하고, 케이지를 번쩍 들어 선생님 코 끝에 닿을 정도로 들이밀었어요. 그런데 “음..알레르기 같네요? 잠시 앉아계세요.”하는 차분한 목소리가 돌아왔고, “아..네.”하고 머쓱해진 기억도 있습니다. 잠든 고양이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다 돌연 ‘돈 많이 벌어서 아주 호화로운 고양이로 만들어줄게.’하는 이상하리만치 낯선 열의가 타오른 적도 있습니다. 오래 집을 비워야해서 부모님께 잠시 맡기거나, 어디가 아프거나, 어쩐지 무료해 보일 때면 ‘내가 부족해서 미안해.’라는 생각에 괴로웠어요. 속이 타는 것 같은 고통이 진짜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철이 들었다며 좋아했어요. 쉽지 않았어요 고양이의 반려인이 되는 거요. 지금도 여전히 도전중인 것 같아요. 저는 여전히 가진 게 없는데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니까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죠.알바를 하면서 살 때 노동자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달라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돈을 달라고,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외치며 살았어요. 현실에 맞설 힘은 점점 줄어드는데 세상의 반응은 잘 돌아오지 않고, 돈은 점점 더 커보이고, ‘가난한 삶은 참 불행구나’하고 단정지을 참이었어요.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바쁘고 힘든 재정 상태를 이제 반려고양이에게도 나눠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이상하게 일상은 더 좋아지더라고요. 제 반려고양이가 돈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뭔지 잃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준 것 같아요. 내가 누군가를 돌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고양이를 사랑하는 또 다른 반려인들과 그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고, 고양이를 가만히 바라볼 때, 같이 놀 때는 금세 초집중 상태가 되어서 어떤 걱정과 불안도 끼어들 틈이 없어요. 작은 몸짓만으로도, 제가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웃음짓게 만들어요. 돈을 줄지만 일상은 즐거워지는 무언가 자본주의의 논리에 맞지 않는 이상한 인과성을 발견하게 해준 게 제 반려고양이입니다. 어쩌면 그게 반려의 힘인지도 모르겠어요. 역시 내 새끼 자랑은 시간이 모자라요. 너무 편지가 길어진 것 같아 걱정입니다. 돌의 반려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이만 짹짹! <참새에게> 참새, 돌이에요. 두 번째 인사네요! 겨울의 큰 추위 ‘대한’다운 날씨예요. 사실 참새의 편지가 도착하기 직전 즈음부터 말도 안되게 춥다며 호들갑 떨었는데, ‘대한’이라고 말하고 나니 그럴만 하달까, 괜찮은 것도 같아요. 별명을 지을 때의 태도랑 닮았는데요. 저는 나를 믿기보다는, ‘나를 믿는 너’를 믿어요. 그래서 ‘돌’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을 때보다, “데구르르 구르는 돌을 상상하니 묵직한 에너지가 느껴져요”라고 답해주는 참새의 말을 들으며, 정말 제가 돌이 되었다고 느껴요. 고마워요. 별명을 지을 때도 나를 정의할 때도, 누군가 저에게 기대어주기를, 그것으로 저의 가치와 의미를 인정해준 시간이었어요. 혼자 있는 게 익숙한 참새가 다른 이에게 기대고 신세지는 게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는 것처럼 저도 그랬어요. ‘기대는 나’는 민폐 이상의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지? 몰랐거든요. 살면서 좋은 관계 속에서 주로 지내왔다고 생각해요. 공동체를 의식적으로 구성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익숙하고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삶과 그 의미에 대해 자주 말해왔어요. 우리의 관계로서 나라는 존재가 가능하다고요. 그런데 사실 아주 최근에서야 저는 이 말의 무게를 실감하는 것 같아요. 희망차고 이상적이고 뿜어나는 기운을 만드는 순간도 ‘관계로서 함께 하는 삶’이지만, 내가 무너지고 다시 태어나도록 요청하는 그런 ‘관계로서 함께 하는 삶’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거든요. 근래 저는 제가 속한 어떤 관계가, “원래의 방식대로 살면 참 편한데 그렇게 살면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아”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누군가의 용기로 또는 예민하게 받아낸 다른 친구의 감수성으로 감각되었죠. 이전의 관계들이 이상하다는 걸 알았고 이 불편함을 가지고 잘 살 수 있으려면 바뀌어야만 하는 거예요. 저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저에게, 지난 모든 관계와 기대온 방식과 익숙해지고 무감해지던 불평등-폭력의 모습들을 직면하기를 요청하고 있어요. 기후운동도 그런 모습인 것 같아요. 아픈 만큼 바뀔 수 있는 것 같아요. 아프지 않고 살아왔다면 아픈 이의 옆에 함께 서봐야겠죠. 아픔의 모습을 조금 보고나면, 아픈 건줄 몰랐던 나와 우리의 어떤 생김새가 또 보일 거예요. 그런 용기는 손잡고 있는 이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 같아요. 손을 잡고 있으면, 무서워서 내빼고 싶을 때 잡아주고, 앞으로 달려나가고 싶을 때 속도를 낮추며 따라갈 수 있게 되니까요. 저는 요즘 그런 용기를 내보며, 비로소 ‘기대어 있는 나’를 상상하고 그 의미를 감각해요. 이런 시기에 ‘반려생물’이라는 주제는 또 한 번 질문하게 해요. 제가 반려식물이라 불렀던 이는 있는데요, 이런 무게와 책임을 나누며 ‘반려(짝이 되는 동무)’가 되었나? 생각해보면 자신이 없어서요. 식목일 행사에서 나눔 받은 것이 첫 만남이었어요. 다육식물이고요, 작은 화분이에요. 농사는 지어봤는데, 작물이 아닌 화분은 처음이었어요. 물을 많이 주어 뿌리가 썩는 바람에 죽는 경우가 많다는 말에, 잎이 바짝 마를 때까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기다리며 챙겼어요. 쪼글쪼글 얇게 줄어든 잎이, 물을 준 다음 날이면 아주 팽팽하게 단단하게 커져 기세를 보이는 게 신기했어요. 줄기의 힘보다, 늘어난 잎의 무게가 커지면서 끈으로 묶어도 줬고요. 그렇게 늦봄부터 여름, 가을을 잘 지나 이번 겨울이 왔어요. 날이 건조한데도 물을 자주 필요로 하지 않길래 또 쪼글쪼글해지는 날을 기다렸죠. 그러다 때가 되어 물을 듬뿍 줬고, 물이 잘 빠지도록 바깥에 내놨어요. 그런데 생각이 짧았어요. 저는 외투도 입고 난방되는 실내에서 지내니 기온이 5도인지 0도인지 크게 상관 없는 사람이지만, 물을 잔뜩 먹은 식물 입장에서 0도는 어는 점이었던 거예요. 얼어서 까맣게 된 줄기와 잎을 보면서 너무 속상했어요. 샤워 후에 수건으로 닦지도 않고 바깥에 내놓은 거구나. 얼었던 잎도 금방 녹이면 회복되는 경우도 있다길래 뜨끈한 바닥에 두고 담요도 둘러줬어요. 얼어서 힘이 빠진 줄기가 다시 살아날 때 도움이 되라고, 흙에 연필을 꽂아 지지대도 마련했고요. 하지만 며칠 뒤 연필을 빼는데 아무 힘도 없이 줄기가 제 손 위로 툭, 떨궈졌어요.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났어요. 아 정말 힘을 다 잃었구나. 세심치 못해, 몇 달 간 함께 한 이가 한 순간에 이렇게 된 게 미안했어요. 슬픈만큼 그래도 애정했던 스스로를 도닥이며 인사했어요. 다육식물의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한 달을 세어보기도 했지만, 다육식물처럼 흡수하고 바람 맞는 법은 몰랐어요. ‘반려’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그 존재가 되어보는 일인가보다 어렴풋이 배웠어요. 덕분에 당위적으로 ‘생태적 존재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생명으로 연결되어 기대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느끼고 있어요. 저의 반려생물 이야기는 이렇게 일단락해보아요. 두서없이 펼쳐놓은 이야기를 담아, 약속한 날의 마지막 순간에야 편지를 부쳐요. 참 급하죠. 그렇지만 너무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잠을 쪼개 답하고 싶은, 그런 손내밀기를 해줘서 꼬옥 충분하게 풀어내고 싶었어요. 다음 편지를 받을 때는 변화의 기점에 있는 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돈되어 있을 예정이에요. 그때는 조급함보다 제 일상의 여유를 담을 수 있기를, 그런 마음과 힘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닫을게요. 따뜻한 밤이길요, 참새! 데구르르 돌 2023.1.26.
    • 지리산운동
    •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
    2023-01-30
  • 흔적은 발자국이다
    수달의 흔적 발자국
    • 지리산의 강
    • 수달아빠의 수다
    2023-01-28
  • 흰 꽃으로 치장한 노고단 설경
    봄~가을엔 화려한 야생화로. 겨울엔 흰 눈꽃으로 치장하는 지리산 노고단의 설경을 감상해 보세요
    • 지리산정보
    2023-01-28
  • 쇳밥일지
    행운은 어떻게 찾아올까? 최근 내가 만난 젊은 친구 중 갑자기 유명해진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김동식', 가수 '이승윤', 이 책을 쓴 '천현우'. 물론 그 외에도 수없이 많다.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진 것은 맞는데 그렇다면 왜 그 많은 사람중 그들은 어떻게 행운을 잡았을까.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남들이 뭐라하던 꾸준히 한길을 걸어온 시간과 노력의 축적이다. 남이 뭐라하던 쓰고, 노래하고, 제 할 일을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다고 유명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만 말이다. 물론 유명=행운이라는 말은 아니고, 유명=행복도 아니다. 요즘 젊은세대가 힘들다고 한다. 우리세대도 힘들었다. 힘들지 않은 세대가 어디있는가? 내 세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산업화의 불길이 활활 타올르고 대기업이 우수죽순 격으로 만들어지던 때였다. 덕분에 취업자리는 많았다. 또 조금만 운이 좋았다면(내경우) 대기업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면 뭐하나? 오래 남아 커리어여성이 된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한데 말이다. 각 시대 마다 맞닥뜨려야 하는 시대적 상황과 풍토가 있다. 다행히 그 파도를 잘 타고 넘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파도와 함께 무인도로 쓸려간 사람도 있고 파도와 싸우다 바닷속으로 침몰한 사람도 있다. 운이 없거나 배경이 없거나 재산이 없거나...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알고 보면 적지 않다. 그러나 어느 위치에 있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건 있다. 그리고 잘 하는 것도 있다. 뭐든 한가지를 꾸준히 한 사람은 결국은 행운을 잡는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유명해 지지 않아도 돌이라도 매일 줍는 사람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행복은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매일 행복하지 않으면 어느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사랑도 연습, 행복도 연습, 천국도 연습이다. 매일 연습한 사람만 그것이 축적되어 사랑의 결과물, 행복의 결과물, 천국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결과물이 드러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연습하는 것을 즐기며 살아 갈 뿐이다. 천현우는 요즘 청년이 어떻게 어려운지 그 상황을 직접 겪었고 그걸 유려한 문체로 전해 주었다. 그가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전문 작가도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독자들은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소중하고 고맙다. 노동환경이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어둠 속에서 법의 헤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다. 매년 2000가량의 노동자가 사고나 질병으로 숨지고 있다. 천현우도 부상을 당했고 여러번 위험에 처했지만 적절히 처우받지 못했다. 노동환경도 부적절하고 사고시 처우도 부적절한게 현재의 노동현장이다. 김용균 사건 이후로 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법을 고친다고 노동현장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는다. 이태원참사를 보면 당장 알 수 있다. 위험은 어는 곳에나 있지만 위험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언제 어디서나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암튼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나라가 되어야 겠는데 말이다.
    • 사는 이야기
    • 책마을
    2023-01-28
  • 숲샘의 지리산통신
    역대급 강추위는 우리 동네도 예외가 아니지만 날씨야, 아무리 추워봐라~ 납매가 꽃을 안 피우나, 내가 초록걸음을 안 걷나... 산청 묵곡생태숲길을 걷다가 납매와 학이재 그리고 꽁꽁 언 경호강을 담다.
    • 연재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01-28
  • [답사대원 모집] “지리산 華엄사 옛길을 踏사하다”
    지리산 華엄사 옛길을 踏사하다 화엄사, 국립공원과 함께 구례에 흩어져 있는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의 옛암자터를 답사하고, 절과 암자를 이어주던 옛암자길도 답사합니다. 옛암자터와 옛산길 답사에 관심 있으신 분, 불교문화에 관심 있으신 분, 화답 대원으로 모십니다. - 모집인원 : 10명 - 1차 모임 일시와 장소 : 2023년 2월 14일(화) 오후2시, 화엄사 박물관 - 물어보기 : 061-783-6547. 010-4029-5910 지리산사람들 ․ 화엄선재연구소
    • 지리산사람들
    • 공지사항.알림
    2023-01-27
  • [대한 편지 : 유우야와 갈토] 반려 생물로부터 얻은 자기 통찰!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대한을 맞이하며 두번째 편지를 보내요! 먼저, 늦었지만 갈토의 속상했던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고 싶을 만큼 생일 축하해요. 제가 생일 전날 편지를 보낸 건 1월 중 가장 잘 한 일이 되었어요. 뿌듯합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갈토가 던져 준 '느긋하게 산다는 게 어떤건지'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던 오늘, 문득 창 밖에 내리는 눈들을 보다가 반짝 떠올랐어요. 생명력이 있는 자연과 현재 이 순간 함께 있음을 느낄 때가 바로 느긋함 아닐까! 하고요. 그 순간이 선처럼 이어진다면 느긋하게 일상을 보낸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까요? 지리산을 떠나 본가인 인천에서 지내는 요즘엔, 주로 하늘에 뜬 것들로 자연을 만나요. 그래서 그런지 눈과 함께 현재를 느끼는 소중한 경험도 해보네요. 인천이라니, 갈토와 꽤나 가까이 살아서 놀랐지요? 설명을 드리자면, 저도 지리산에서 살고 싶은데 인연이 닿는 집이 좀체 나오질 않아요. 산내라는 마을을 통해 지리산을 만났고, '지리산방랑단'을 하면서 그 외에 다른 지역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구례에서 느꼈지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구례는 읍내가 있는데 적당히 상점이 늘어진 거리와 뒤에 펼쳐진 산들이 한적하고 맘에 들었어요. 저는 어느정도 번화된 곳을 좋아해요. 도시와 시골의 중간 느낌이랄까요. 시골집에서 흔히 만나는 벌레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제가 유독 무서워 해요. 게다가 마을 곳곳에는 풀려 있는 개가 정말 많은데요. 개의 레이더에 걸렸다, 심지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이러면 뭐ㅎㅎ 평소 위아래로 뛰던 심장이 앞뒤로, 몸 밖으로 뛰쳐나왔다 들어갔다 해요. 지난 날 개가 공격하지 않고 겁만 주고 간 것에 감사합니다... 인간동물들은 '말'하면서 서로 의사를 확인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저와 소통 방식이 다른 생물과는 제가 그들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두려운 것 같아요. 제가 두려워하기엔 그 작은 생물들보다 덩치가 훨씬 큰 게 아이러니지만 벌레와 닿는 촉감이 낯설어서 소스라치게 돼요. 외딴 시골일수록 자주 마주치더라구요. 그래서 어느정도 자연과 단절된(...) 읍내에서 살고 싶은가봐요. 갈토의 말처럼 '서울 중심으로 자원과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깊이 공감했어요. 서울은 또 자연과 단절된 부분이 많지요. 제 안에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경험한 권력의 익숙함 또는 자연과의 단절감이 있고, 그 도시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꿈틀대는 대자연을 향한 본능, 간절함이 있어요. 이 두 감각 속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지요. 아무튼 읍내에 있는 집 중에서도 아파트는 돼야 벌레나 풀린 개와의 만남을 회피할 수 있겠죠. 결국 아파트 살 돈이 없는 저는 방랑 이후 안성맞춤 보금자리를 못 구한 채 본가로 돌아왔답니다..ㅎㅎ 아쉬운 대로 지리산에는 자주 내려가는 방법으로 작년을 보냈어요. 약 한 달에 한 번씩 내려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식으로요. 큰 맘 먹고 여름 한동안은 구례 작은 마을의 친구 집에서 지냈는데요, 그 집엔 많은 곱등이 가족들과 애집개미 군단이 있었어요. 부러운 점이 있었어요. 그 집에는 저처럼 여름 한 철 놀러 온 개가 있었거든요. 그는 애집개미들이 우르르 있는 벽면에 철썩 기대어 잠을 자거나, 바삐 움직이는 거미 뒤에 코를 바싹 대고 따라 다녔어요. 강아지 시절부터 봐와서 저와 퍽 가까운 사인데 그땐 거리감이 살짝 들었어요. 결코 따라할 순 없었지만 벌레와 다정할 수도 있는 모습에 뭔지 모를 안도도 했어요. 풀린 개들과 벌레는 아마 오래오래 제 반려생물이 되어 줄 것 같아요. 제가 그들과 언어로 소통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겠지요. 나름대로 해마다 두려움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기에 앞으로도 기꺼이 기회로 받아 보려고요! 갈토도 궁금해요. 어떤 반려 생물이 계실지요! 편지를 마무리 할 때가 되었네요. 갈토의 편지를 읽고 한 문장 한 문장 모두 답변하고 싶은 충동과 앉은 자리에서 바로 편지를 쓰고 싶은 들뜬 마음이 있었어요. 갈토가 감사 일기 쓰는 멋진 습관이 부러웠구요. 저도 그 이후 열심히 써 보는 중이랍니다! 오늘은 일기를 적극 추천해준 갈토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곳에 적어 볼게요. 1. 갈토가 제 편지를 읽어주어서 고맙습니다. 2. 오늘 눈이 내려 고맙습니다. 3. 비건 꼬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서 고맙습니다. (어디서 파나요..?) 그럼 갈토,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조금 느긋해진 유우야 드림 <유우야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오늘은 일찍 깼어요. 꿈 속에서 엄청 헤매다가 ‘이건 꿈이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잠에서 깨버렸어요. 전날 꽤 피곤해서 잘 자야했는데, 다시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뒹굴뒹굴하다가 문득 이렇게 어둠속 에서 잡생각을 할 바에는 유우야에게 답장을 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부터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났거든요. 유우야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서 깬건가 싶기도 하네요. 하하하. “생명력이 있는 자연과 현재 이 순간 함께 있음을 느낄 때가 바로 느긋함 아닐까!”라는 문장이 좋아서 곱씹어 읽었습니다. 제가 작년에 이사를 했는데 그 전에는 지층에서 오년간 살았어요. 지층에 살면, 날씨가 좋고 쉬는 날이 참 귀해요. 햇볕이 좋을 때 빨래 해서 밖에 널어야 하고 현관문을 열고 그 앞에 앉아 따뜻한 태양의 기운을 느끼곤 했거든요. 그 문장을 읽으며 그 때 느꼈던 느긋함이 기억났어요. 온전히 나의 몸이 밝은 빛과 따스함으로 연결되는 순간의 느긋함. 그 집이 그립지는 않지만, 그 순간은 그립네요. 얼른 날씨가 따뜻해져서 좀더 가벼운 옷차림으로 햇볕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저의 반려생물은 수경식물들과 은행목이에요. 내가 어떻게 이들과 살게 되었나를 생각해보니, 대단한 인연이구나 싶어요. 제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대표 취임 축하 화분들이 여러 개 있었어요. 작은 화분들 말고 대형 화분들이었는데, 대표가 변경이 되면서 이전 대표가 받은 축하 화분들을 치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멀쩡하게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버리는게 너무 아까워서 혹시 내가 좀 가져가도 되는지 물었더니 가져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행운목과 홍콩야자를 만나게 되었어요. 모두 흙에 심어져 있었는데, 제가 차도 없고 큰 화분을 둘 수가 없어서 가지를 잘라서 가져와 행운목은 수경으로 키우기 시작했어요. 홍콩야자는 흙에 키우려고 흙까지 가져와서 심었는데 잘 적응을 못하길래 수경으로 바꿨더니 잘 자라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이 흙보다는 수경식물이 잘 자란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은행목도 사연이 있는데요. 제 자리 뒷 편에 입사하신 분께 지인으로부터 입사 선물로 은행목이 배달되었어요. 저는 처음 보는 식물이고 너무 예뻐서 사랑에 빠질 것만 같았어요. 소비욕이 별로 없는 제가 하나 구입할까 인터넷을 검색할 정도로 참 예쁘더라고요. 선물 받으신 분은 선물을 보고 당황해 하셨는데 자신이 똥손이라 키우는 식물마다 결과가 좋지 않았고, 예쁜데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겨울이 되고, 은행목은 점차 잎이 하나 둘 떨어져 갔고, 나중에는 나무 가지조차 말라버렸어요. 그 분이 퇴사하시게 되었는데, 그 예쁘던 은행목 입사귀가 모두 떨어졌고 죽은 나무처럼 보였어요. 그 분이 은행목을 보시면서, 몇 달간 너무 소진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화분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셨어요. 자신은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하셔서 제가 한 번 키워보겠다고 해서 은행목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몇 달간 은행목을 정말 정성스럽게 보살폈어요. 인터넷에서 은행목 키우는 법을 찾아보고 아침에 출근하면 햇빛을 많이 볼 수 있도록 밖에 놔두고 오후에 햇볕 자리를 보고 위치를 바꿔 줬습니다. 정말 신기하게 초록빛깔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잎이 나기 시작했어요. 물론 처음 은행목을 만났을 때 만큼 풍성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살아났어요. 생명체는 신비롭고 아름다워요. 잎이 사라지고 죽은 건가 쉬는 건가 도통 알 길이 없었는데, 이렇게 짜잔하고 다시 생명의 힘을 보여주잖아요. 3개의 잎이 자라고 열 개가 되는 과정을 보며 마음이 흡족해졌어요. 화분에 영양분을 줘서 더 빨리 자라게 하고 싶기도 한데, 겨우 다시 살아난 은행목이 쉬엄 쉬엄 회복하도록 천천히 시간을 주려고요. 저와 함께 첫 겨울을 맞이하였는데 아직도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워요. 은행목이 초록 빛을 내기까지 저의 특별한 집중 관심을 받았지만 저는 게을러서 관리를 많이 해줘야 하는 반려 식물은 잘 못 키워요. 가끔 물을 주면 되는 다육이라던가 수경식물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저의 적절한 무관심이 이 식물들과 잘 맞아요. 하루에 한번 볼까 말까 하다가 좀 시들해보이면 물이 없어서 말라 있으면 새 물을 채워줍니다. 물을 갈아 줄 때 홍콩야자의 새끼잎사귀가 자라는 거 보면 신기하고 너무 귀여워요. 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들과 지냅니다. 집에 초록이 들이 많아서 좋고 특히 수경식물이 가습 효과가 좋고 여름에 집 온도 낮추는데도 좋다고 전기도 덜 쓰게 됩니다. 반려 생물 자랑이 너무 길었네요. 하하하 반려 생물과 지내면서 생명체와 살기 위한 책임감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요. 제가 너무 게을러서 물을 못 주면, 식물들은 색깔로 신호를 보내요.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물을 줍니다. 저에겐 딱 이 정도의 생명체가 맞는 것 같아요. 밥을 챙겨주고, 소통도 해야하고, 놀아주기도 해야하는 동물 생명체를 키우기에는 저는 너무 게으른 사람이고. 그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편지를 쓰며 저와 반려생물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께서 식물구입과 동물구입이 비슷한 맥락이기 때문에 식물구입보다는 식물입양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이 있어요. 공장에서 예쁜 화분들이 만들어지고, 식물들이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리고 사람들은 이들을 키우죠. 근데 제가 만난 식물들은 그렇게 선물받은 식물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질 때 저와 만나게 되었잖아요. 최근 반려 식물이 유행이 되면서 관련 전자제품, 비싼 식물들로 재테크를 하고 시장이 과열되는 게 좀 우려스럽더라고요. 물론 반려 식물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니, 다른 취미보다는 쓰레기가 덜 나오겠지만 생명체를 만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좀더 하면 좋겠어요. 저에게 반려 생물들은 혼자 사는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들이네요. 나의 게으름을 참아주고 나와 함께 살아가주는 이 존재들이 참 귀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 입니다. 세 번째 편지 기다릴게요~ 추가: 편지 주제는 함께 정하시는 건가요? 진짜 주제 선정 너무 좋다. 박수X 1,000 저는 대체육 별로 안 좋아하는 넥스트밀에서 나온 불구이 꼬치는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2023년 1월 19일 갈토 드림
    • 지리산운동
    • 지리산에서 보내는 펜팔
    2023-01-26
  • 가여워 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 연재
    • 지리산인 칼럼
    2023-01-26
  • 세석고원을 넘으며
    세석고원을 넘으며 고 정 희 아름다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고 발아래 산맥들을 굽어보노라면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산머리에 어리는 기다림이 푸르러 천벌처럼 적막한 고사목 숲에서 무진벌 들바람이 목메어 울고 있다 나는 다시 구불거리고 힘겨운 길을 따라 저 능선을 넘어야 한다 고요하게 엎드린 죽음의 산맥들을 온몸으로 밟으며 넘어가야 한다 이 세상으로부터 칼을 품고 그러나 서천을 물들이는 그리움으로 저 절망의 능선들을 넘어가야 한다 막막한 생애를 넘어 용솟는 사랑을 넘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저 빙산에 쩍쩍 금가는 소리 들으며 자운영꽃 가득한 고향의 들판에 당도해야 한다 눈물겨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고정희 시인(1948~1991) 본명 성애, 전남 해남 출신, 5남 3녀의 장녀로서 거의 독립적으로 성장.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광주 YMCA 대학생부 간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를 거치는 동안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그 이상의 어떤 본질 문제를 환기시키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김주연 평) 시들을 써왔다.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평민사, 1979), {실락원}(인문당, 1981 절판), {초혼제}(창작과 비평사, 1983), {이 시대의 아벨}(문학과 지성사, 1983), {눈물꽃}(실천문학사, 1986), {지리산의 봄}(문학과 지성사, 1987),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창작과 비평사, 1989), {Sister's We Are the Path and the Light}(둥지, 1989), {광주의 눈물비}(동아, 1990), {여성해방출사표}(동광출판사, 1990), {아름다운 사람 하나}(들꽃세상, 1990), {뱀사골에서 쓴 편지}(미래사, 1991),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창작과 비평사, 1992) 등을 통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쉽게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함께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했다. 그는 5.18 광주 항쟁을 계기로 전통적인 남도 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어 민중의 아픔을 드러내고 위무하는 장시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으로 일하면서 여성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 1984년 대안 문화 운동 단체인 [또 하나의 문화] 창립에 참여, 이후 적극적인 동인 활동과 함께 한국 여성 해방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1989년에는 여성 해방을 지향하는 여성들의 자발적인 출연으로 창간된 여성 정론지 {여성신문}의 초대 주간을 맡아 1년간 그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으며,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1990)에서는 여성의 삶과 수난을 통하여 인류 해방의 비전을 제시하는 등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1991년 6월 8일, 한국 여성 해방 문학의 정립을 위한 작업의 하나로서, [또 하나의 문화] 월례 논단에서 "여성주의 리얼리즘과 문체 혁명"을 주제로 발표를 마치자마자 평소 그의 시의 모태가 되어 온 지리산 등반을 감행, 이튿날 뱀사골에서 실족, 43세를 일기로 불타던 삶을 마감하였다. ( 또 하나의 문화 자료 참조)
    • 지리산문화
    • 시인과 시
    2023-01-26
  • 지리산 법화종주
    「섬진강 편지」 -지리산 법화종주 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칠선봉, 덕평봉,형제봉,삼각봉,명선봉,토끼봉,삼도봉 2박 3일, 지리산 품으로 출가를 했습니다 40km 지리능선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린 수행길 절뚝이며 휘청이며 30시간을 걸으며 우리네 삶도, 사랑도 이렇게 숱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깊어지는 것임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폐절제 수술 3년이 지나고 망설이던 지리산 종주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니 폐가 잘려 나간 자리에 새로운 기운이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넘어지면 손잡아 주고 가파르면 끌어주고 카메라 짐을 나누어지어 준 지리산사람들 길동무님들이 있어 힘들다는 겨울 지리산 종주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섬진강 /김인호 *지리산 법화종주 ; 법계사에서 화엄사까지 오는 종주길
    • 지리산의 강
    • 섬진강 편지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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