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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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7] 윤작과 혼작 더 넓게 보기
    [도시농부 안철환의 땅 이야기 7] 윤작과 혼작 더 넓게 보기 월동작물과 다년생, 땅 살리는 지혜 안철환(전통농업연구소 대표) 월동작물과의 윤작 우리의 주식 작물은 대부분 여름을 나죠. 대표적으로 벼와 곡식류가 그렇고 고추와 열매 맺는 과채류가 그렇습니다. 여름 나는 작물이 주연배우라면 겨울을 나는 작물은 조연배우쯤 될 겁니다. 밀, 보리가 그렇고 마늘, 양파가 그렇지요. 그렇지만 조연 없이 주연 있을 수 없듯이 월동 작물 없으면 여름 작물도 없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월동 작물도 예전엔 주연 배우나 다름 없었어요. 대표적으로 보리밥은 쌀밥에 버금가는 주식이었습니다. 마늘도 우리에겐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양념 작물이죠. 특히 우리는 세계에서 마늘을 제일 많이 먹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월동작물의 의미는 주식이든 부식이든 그것을 떠나 우리의 토양을 지켜주는 아주 고마운 작물이라는 겁니다. 일단 여름 작물 수확 후 월동 작물을 심는 것을 윤작이라 하죠. 월동 작물을 심지 않고 겨울에 땅을 방치해두면 땅이 좋아질까요? 휴경(休耕)한다고 해서 땅이 좋아질까요? 토양은 방치해두면 무조건 좋아질까요? 사실 서양의 생태주의 사상은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좀 다릅니다. 우리는 방치하는 게 능사가 아니고 사람이 적당히 개입하는 게 최선이라 봤습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보았던 거지요. 그래서 서양의 토양 관리법엔 휴경이 매우 중요한 반면 우리는 윤작 혼작을 잘 활용하기에 그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양의 농업은 기본적으로 단작과 연작이 발달해 휴경이 필수입니다. 밀 농사와 방목이 더 그걸 부추깁니다. 농법 자체가 토양 수탈 농사라 토양을 정기적으로 쉬게 해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휴경할 만큼 땅이 넓지도 않거니와 윤작 혼작법으로 충분히 토양의 지력을 지켜왔지요. 그 중에 핵심이 바로 겨울 농사입니다. 여름 농사만 짓고 겨울엔 사막처럼 방치해 두면 연작 효과가 생겨 토양은 좋아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토양은 여름 폭염과 폭우로 제일 망가지고 그 다음으로 토양을 망가뜨리는 것은 겨울의 혹한과 가뭄입니다. 기후 온난화로 요즘은 혹한보다 겨울 가뭄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이 겨울 가뭄으로부터 토양을 보호하는 기술이 발달했는데 바로 월동작물 농사가 대표적입니다. 물론 토양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겨울 농사만 있지 않았어요. 겨울 작물을 심기 힘들 경우 제일 일반적인 것은 겨울 길목인 동지 즈음해서 땅을 깊게 가는 것입니다. 대략 20센티 정도로 깊게 갈아 엎었지요. 그럼 그렇게 갈린 표토층이 심토층을 춥고 가문 겨울 날씨로부터 보호해주는 겁니다. 일종의 말하자면 흙으로 흙을 덮어 보호해주니 저는 그걸 흙 멀칭mulching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다음으로 벼 수확 후 보리를 심지 못하는 중부지방과 그 이북 지역에선 논을 깊게 갈고 물을 담았습니다. 물로 땅을 보호하는 겁니다. 저는 이걸 물 멀칭이라 했지요. 그럼 월동작물로 땅을 보호하는 건 당연히 작물 멀칭이겠죠. 물론 조상들이 땅을 보호할 목적으로 작물을 심은 건 아니겠죠. 당연히 먹기 위해 심었을 겁니다. 토양 보호는 부수효과였겠죠. 월동 작물은 의외로 많습니다. 앞의 밀, 보리, 마늘, 양파 외에도 대파, 쪽파, 시금치도 있고요, 배추와 무도 보온만 해주면 겨울을 넘겨 봄에 새싹을 올리지요. 봄동 배추가 바로 겨울을 나고 새싹을 올린 배추에요. 우리 도시농업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바로 이 월동농사를 못한다는 사실이에요. 대부분의 도시텃밭이 봄에 개장해 가을에 폐장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겨울을 사막처럼 보냅니다. 그러니 도시농부의 먹거리는 반쪽짜리에 불과하고 토양을 살리는 환경보호 효과도 반감됩니다. 게다가 봄 되면 새로운 사람에게 땅을 분양해주니 공동체 함양도 남 얘기에 불과합니다. 매번 사람이 바뀌니까요. 저는 그래서 지속적인 경작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으로 힘을 합쳐 땅을 매입하던가, 농촌의 방치되어 있는 땅을 도시농부들이 안정적으로 경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던가 해야 합니다. 다년생과의 혼작 농작물은 일년생 식물이 대부분이죠. 그 다음으로는 위에서 말한 월동(越冬) 작물, 다른 말로 하면 한 해를 넘긴다 해서 월년생(越年生) 작물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많은 게 이른바 다년생 식물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 다년생 식물은 야생 식물이 대부분이라는 점입니다. 야생 식물이기에 이 식물들은 또한 자생식물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재배 과정이 없이 오랜동안 우리 땅에서 스스로 살아 온 식물입니다. 이 풀들은 오랜 세월 자연의 풍파 속에서 적응해 왔기에 우리 땅과 기후에 맞춰 왔습니다. 다르게 보면 야생 식물은 그 지역의 흙과 날씨를 가장 많이 닮았죠. 그런 식물을 먹고 살아 온 사람도 결국 마찬가지일겁니다. 반면 일년생 작물들은 대부분 귀화식물이 많습니다. 만주와 한반도가 원산지인 메주콩만 빼고는 말이죠. 특히 일년생 작물 중 임진왜란 전후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들이 많아요. 고추, 옥수수, 고구마, 감자 등이 대표적이죠. 그보다 들어온 지 더 짧은 것으로는 토마토가 있지요. 이런 작물들은 병이 많아요. 농약도 많이 치고, 물도 많이 주고, 비료도 많이 주는데다 비닐하우스 재배를 많이 합니다. 반면 야생 식물인 냉이나 쑥이나 각종 산나물 들나물은 병에 강하죠. 냉이가 고추처럼 탄저병에 걸렸다는 얘길 들은 적은 없잖아요? 이건 아마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자생식물보다는 훨씬 짧아 아직 우리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 환경에 오래동안 적응해 건강하고 우리 몸과 입맛에도 맞는 야생 식물보다 사람들은 왜 병에도 약한 재배 식물을 더 좋아할까요? 아마도 우리의 야생 식물엔 과채류가 별로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더라도 엽채류는 우리의 야생 식물이 훨씬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요즘엔 그조차 귀화식물인 재배채소가 많은 건 좀 아쉽기는 합니다. 우리 나라는 야생식물, 곧 자연산 들나물 산나물이 매우 풍부한 지역입니다. 한반도는 빙하기가 짧아 그만큼 식물의 역사가 깁니다. 또 그만큼 먹을 수 있는 나물들이 많았습니다. 구석기 채집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고인돌이 세계에서 한반도에 제일 많이 분포하는 것은 먹을 게 많았다는 반증이고 저는 그걸 풍부한 자연산 나물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특히 서해안에 많이 분포하는 건 조개 등 단백질 섭취원이 펼쳐진 갯벌도 큰 역할을 했겠으나 산과 숲이 많은 강원도에도 고인돌이 발견되는 걸 보면 어디에나 자생한 야생 식물, 곧 나물들이 큰 기여를 했을 거라는 거죠. 이런 들나물 산나물은 실로 없는 데가 없을 정도로 어디에나 펼쳐져 있기에 따로 밭을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숲이나 밭이나 자투리 공간, 길가나 논둑 밭둑, 도랑, 집 마당과 울타리 주변 어디에나 씨 뿌리지 않았는데도 절로 자랐습니다. 우리 산천의 토양을 지켜 온 파수꾼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요. 이런 풀들을 잡초라 여기고 제초제 뿌리고 비닐을 덮고 기계로 갈아버리면 우리의 토양은 근본이 약해지고 말 겁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자연산 나물들과 재배 채소들이 공존하는 농지 경관을 강조합니다. 말하자면 재배 채소가 자라는 두둑은 신석기 농경문화가, 고랑이나 경계지 또는 길섭에는 구석기 채집문화가 공존하는 경관이 참으로 생태적인 모습이라 생각하지요. 말하자면 야생과 재배가 공생하는 윤작혼작의 확장이자 토양을 보호하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라 역설합니다. 제가 이른바 사계절 내내 먹거리 생명이 살아 숲을 이루는 먹거리숲을 제안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기획
    • 땅이야기
    2025-04-28
  • [지리산자락책방] 함양의 온도를 올리는 동네서점 “오후공책”
    사월 말이었다. 수달래가 예쁘게 피던 날이었다. 함양의 오후공책을 찾아가고 있다. 오후공책은 23년 4월에 문을 연 함양의 작은 책방이다. 같은 협동조합에 속한 세 사람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따스한 사월의 오후 햇살 같은 미소를 가진 책방지기 두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우리는 책방 안에 있는 4인용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조영선 대표는 출장 중이었고, 김현임 님과 정은경 님이 책방을 지키고 있었다. 오후공책? 이름이 재밌네요. 어떤 뜻인가요? > 처음에는 함양의 귀촌한 사람들이 모여서 책 읽기 모임에서 시작했어요. 매주 한 번씩 만나 책 읽기 모임을 했죠. 함께 책을 읽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고, 함께 죽이 잘 맞아 책 모임을 1년 정도 하게 되었어요. 책이라는 주제로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함께 서점을 준비하면서 협동조합 “오늘”을 만들게 되었죠. 오후공책(5 Who 함께하는 책방)은 협동조합 “오늘”에서 운영하는 독립 서점입니다. 협동조합 오늘,은 삶에 문화, 예술, 놀이, 철학과 가치가 스며들기를 바라며 생활 속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고자 뭉쳤습니다. 책방은 실험을 위한 꿈의 아지트이며, 책, 먹거리, 예술, 놀이 등의 다양한 활동을 도구 삼아 환경, 교육, 성찰, 치유의 바다를 항해할까 합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함양이라는 산골 작은 읍에서 그것도 작은 책방으로 살아남는 것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2년이나 지났으니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네. 맞아요. 서점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아니죠. 그렇다고 아무런 수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거나 최근에는 지역서점 희망도서 바로대출 같은 일도 하고 있습니다. 희망도서 바로대출은 어떤 사업인가요? >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경우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고 내가 지정한 서점에서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지역서점에서 빌려 보고 반납도 할 수 있어요. 정부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책방에 보조금을 주기도 해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저희가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고요. 지금 책 모임 다섯 개 등산 모임과 바느질 모임까지 운영하고 있죠. 저희가 처음 생각했던 책이라는 주제로 지역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책 이야기 마당이나 음악 주제로 모임을 하기도 하고요. 책방에서 책을 읽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글을 쓰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계신가요. 자, 이제는 산에도 가보실래요? 오후공책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네요. > 다양한 일을 만들어 지역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거든요. 다행히 서로 죽이 잘 맞다 보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함께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또 일이 하나 늘어나고 하는 식입니다. 올해는 책 문화제도 해 볼 생각이에요. 책 문화제는 어떤 일인가요? > 김현임(김) : 함양의 작은 서점이 두 곳이 있어요. 그림책을 주제로 하는 그림 책방 “퐁당”이라는 곳이 하나 더 있는데 올해가 그림책의 해라서 그림책을 주제로 체험도 하고 그림책을 보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후공책과 퐁당이 멀지 않아서 가는 길에 책이 있는 거리 같은 것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지금 기획 중입니다. 책방은 모두가 아는 사양 사업 중 하나잖아요. 많이 없어지기도 하는데 사실 창업자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거든요. 책방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 정은경(정) : 저희가 책방 창업을 준비하면서 다른 책방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봤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있는 인문학 교수님이 운영하는 인문학 책방 대표님 이야기를 보니 종일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 며칠 이어진 경우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어요. 사람이 없으면 여기저기 전화도 합니다. 저희가 처음 책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도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_김현임 책방지기 책방을 운영하는 일은 재밌나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책방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누가 봐도 책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어 보이거든요. > 정 : 음. 사실 힘들고 지치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즐겁지 않은 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손님이 거의 없는 날도 있거든요. 그런 날은 제가 책을 좋아해서 손님이 없다면 책을 읽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책을 많이 읽기도 해서 손님이 없는 날도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리고 손님이 없어도 바쁜 일이 많아요. > 김 : 저희가 처음 책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도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시골 책방 문을 열면서 책방으로 집 한 채 마련해야지, 이런 마음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들 이런 점은 공유된 상태였어요. 그래도 책방을 유지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최저 인건비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정도는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정 : 사실 조금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너무 활발해진 것 같기도 해요. 처음 시골에 내려왔을 때는 번잡하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도시에서 바쁘게 살았으니 이제 좀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서점을 하면서 재밌는 일을 자꾸 하고 싶고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은 없어서 약간 아쉽기도 해요. 그래서 짧은 시간이라도 혼자 있거나 숲을 걷거나 합니다. 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재밌어요. 재미가 없다면 못 할 것 같아요. _정은경 책방지기 운영 시간은 어떤가요? 오후공책이니까 오후에만 운영하나요? >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오후 8시까지 운영했는데 6시 이후에는 손님이 거의 없더라고요. 저희도 사실 오후에 좀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바꾸었어요. 그랬더니 몇몇 손님들이 오후에 열지 않아서 아쉽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손님들은 주말에 다시 오시기도 합니다. 저희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열고 있거든요. 사실 추석이나 설 명절을 제하고는 매일 문을 열고 있어요. 저희 서점은 세 명이 운영하고 있어 가능하거든요. 일주일에 한 사람이 2번에서 3번 정도 나오면 되니까요. 뭐 함께할 일이 있으면 모두가 출동하기는 합니다만.... 힘들지는 않나요. > 정 :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재밌어요. 재미가 없다면 못 할 것 같아요. 아직은 뭐 할 만하고 좋아요. (책 외에도 음료와 의미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많은 책방이 책보다는 음료 판매나 기타 수익이 더 많은 경우가 있던데 오후공책은 어떤가요? > 정 : 함양에서 책을 구매하는 분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말에 여행을 오시는 분들이 책을 구매하는 편입니다. 월 150에서 200권 정도가 판매돼요. 우리 책방에 책이 천 권 정도가 있어요. 공공기관에 납품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통해서 책을 판매하기도 하고 프리마켓에서 책을 팔기도 합니다. 책을 판매하기 위해 분투 중이시네요. > 김 : 책방이니까 책 판매가 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밖에서 보면 한가롭게 책방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열심히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고 봐야겠죠. 오후공책만의 책 선별 기준이 있을까요? 공간이 크지 않다 보니 진열 공간도 부족할 것 같고요. 각자의 취향이나 판매도 해야 하니까요. > 정 : 음… 세 명이 한 책장씩 선별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소설을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선택한 곳도 있고, 환경이나 에세이를 좋아해서 그런 책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그림책을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고른 책도 있고요. 팔릴 만한 책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운영하는 세 명의 취향이 담긴 책들이죠. 팔릴 만한 책과 취향과의 마찰이 있기는 해요. 책은 문화이자 상품이니까요. 독립 출판사들의 책도 많은데 독립 출판사 책은 잘 팔리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씩 구매해 주는 사람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1년에 3번 정도 안 팔리는 책들은 반품하는데요. 반품하면 대부분 폐기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최대한 팔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에 대한 예의라고 할까요! > 김 : 제가 서점을 시작한 이후에 여행을 가면 지역 서점들을 많이 찾거든요. 책방에 들어서면 그 책방지기의 취향이 알겠더라고요. 책방이 없는 곳도 있는데 그런 곳은 왠지 모르게 삭막해 보이고 차가워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오후공책은 함양의 온도를 2도 정도는 올려 주고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저에게 추천할 만한 책도 있을까요? > 정 : 저는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보고서>를 추천해요. 최근에 김금희 작가에게 푹 빠져 있는데, <나의 폴라 일지>라는 에세이 추천해요. 기회가 있다면 읽어 보세요. 책방을 창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시겠어요. 저도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거든요. 대학 때 후배 한 명이 선배는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책방 해 볼까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못하고 있네요. > 두 분 모두 : 누군가 하고 싶다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매력이 있는 일이니까요. 수익은 보장이 안 되지만요. 그래도 역시 좋은 일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고 저희는 사실 아직은 만족하고 있거든요. (책방을 짓는 과정 ) 오후공책도 음료를 판매하시는데 수익은 어떤가요? > 매출은 책이 많은 편이지만 책은 이윤이 많지 않으니까 음료 판매가 아무래도 수익은 더 많은 편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아요. 거의 반반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는 책이 중요하고 책을 고르거나 읽는 데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믹서기를 사용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드립커피만 제공하고 있어요. 맞아요. 요즘 카페에 가면 얼음 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기는 하더라고요. > 그래서 오후공책은 믹서기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지역과 함께하기 위해 만드는 음료나 식자재들은 가능하면 지역 농산물을 이용합니다. 지역의 딸기를 사용해서 딸기 음료를 만들고 지역의 생강으로 생강 음료를 제공하고 있어요. 많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이 중요하죠. 그 외에도 비닐 없는 책방, 숍인숍으로 제로웨이스트 상품 같은 것을 판매하기도 해요. 액체세제 리필스테이션을 운영 합니다.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어요. 책방이나 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요즘 책 읽는 사람들이 정말 없잖아요. 제가 보기엔 가장 책을 많이 읽는 나이는 가장 어린 나이 때일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님들이 그림책을 정말 많이 읽어 주잖아요. 그러다가 점점 아이가 크면 책이 학습지가 되고 또 문제집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하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듣기도 하고요. > 김 :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접하는 소식도 그렇고 사람에 대한 관심도 빨리 생기고 식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책을 읽는 속도는 변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저는 책을 읽는 속도가 다른 인간에게 적절한 속도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가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고 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책 읽는 속도로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에게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만화책이라도 읽으면서 뒹굴뒹굴하는 여유를 주는 것이 책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문해력도 결국 책을 많이 읽지 않아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 정 : 저는 책을 읽는 이유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해요. 책을 읽고 있으면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 같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책은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것은 인공지능이 채워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는 인간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요. 주류는 못되겠지만 아웃사이더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요. 나른한 오후에 햇살이 책방을 비추고 있었다. 책과 책방이라는 주제로 수다를 떨다 보니 인터뷰라기보다는 책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함양에서 작은 지역 책방으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이 있다면, 그 마을엔 온기가 깃든다.” 서점 하나 없는 곳은 어쩐지 삭막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읽은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따스한 햇살 아래, 책을 읽으며 살고 싶어.” 사월의 오후의 햇살이 오후공책에 따스하게 들어왔다. 그 안에는 마음이 지칠 때,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 때, 혹은 그냥 조용히 무언가가 그리울 때, 따뜻한 음료와 책이 함께 위로를 건네는 작은 책방이 있다. 그곳에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정성껏 맞이하는 책방지기가 있고, 한 권의 책을 통해 마음을 건네는 책이 있었다. 책이 그리운 날, 혹은 햇살 좋은 날, 책방으로 여행을 가고 싶은 날 향기로운 음료 한 잔과 함께 조용한 책이 있는 공간을 찾는다면 함양의 ‘오후공책’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책과 햇살,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당신도 분명,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오후공책 책방 여는 시간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추석과 설날을 빼고 매일 오픈 함양읍 한들로 67번지 글 조태용 사진 김인호
    • 사람이야기
    2025-04-26
  • 춘향사당에 있어야 할 최초 춘향영정의 수난
    130주년이 다가오는데 첫 춘향영정은 지금도 남원시의 고집으로 창고에 방치되고있다. 꺼꾸로 가짜 춘향영정을 받들고 있다.
    • 문화예술
    2025-04-23
  • 불탄 마을 앞에서 말해야 할 것들
    불탄 마을 앞에서 말해야 할 것들 ▲ 의성 산불의 모습, 도로가 있음에도 숲이 전소했다. 임도는 산불예방 큰 도움이 되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숲의 구성이다. ▲ 도로 주변으로 검게 타버린 숲의 모습(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 임도 주변의 다 타버린 숲의 모습, 숲가꾸기가 진행된 소나무림이다. 2025년 3월 21일 경남 하동군, 산청군, 지리산 일대에 대형 산불이 났다. 거의 동시에 의성에서도 대형 산불이 났는데 2000년대 이후 최대의 산불로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하동, 산청의 산불과 지리산의 산불을 보면 같은 산불임에도 다른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하동군 두양리와 산청 중태리의 산불의 공통점을 알아봤다. 산불이 진화되고 1주일이 지난 뒤 찾은 두양리는 지난 산불로 인해 검게 그을려 있었다. 산 중턱부터 능선까지, 마을 뒤편 일부 숲은 수관화(나무의 가지로 불이 번지는 상황)로 진행되어 전소됐다. 일부는 수간화(나무의 몸통까지 불에 타버림)로 진행되어 노랗게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검게 그을린 나무들은 대부분 소나무였다. 임도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임도 주변의 숲이 더 심하게 타버린 경우도 있었다. “도깨비불이 산을 넘었다.”는 주민의 말처럼, 불길은 바람을 타고 도로를 건너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길 속에서도 활엽수는 하층만 그을렸을 뿐 소나무처럼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가 크고 수관화로 이어진 지역은 대부분 하층정비(숲가꾸기)가 이루어진 소나무 숲들이었다. 전문가들은 교목층(상층부 식생, 키가 큰 나무)과 아교목(교목 아래의 식생) 관목(아교목 아래의 식생)층이 잘 이루어진 숲은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교목과 관목이 수관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내는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방패효과’라 부른다. 그 좋은 예로 같은 시각 산불이 확산했던 지리산국립공원을 보면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내원사 능임암 일대의 산불지역 산불이 지나간 지역이었지만 새싹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내부의 모습, 바닥이 검게 그을렸지만 새싹이 나왔고 진달래도 피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의 하층 관목은 모두 조릿대였다. 지금은 조릿대만 다 타고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능인암 위쪽 지리산국립공원 산불 피해지역, 바닥은 그을렸지만 새싹을 피워냈다. 활엽수는 불에 강하다는 것이 확인이 되었으며 인공복원보다 자연복원이 더 빠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지리산국립공원구역은 겉에서 봤을 때는 산불이 났는지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피해가 적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불이 하층만 지나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굴참나무와 졸참나무는 새싹을 피워내고 있었고 진달래는 분혹색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바닥이 검게 그을린 것만 빼면 평온해 보였다. 이유는 무엇일까? 하층 조릿대 덕분이었다. 산림청은 조릿대 때문에 산불을 끄기가 어려웠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하층 낙엽도 산림청의 주장과는 다르게 많아야 5cm 정도 층을 이루고 있었고 일부는 흙이 들어나 있었다. 산에 비탈진 지역의 낙엽은 겨울을 지나면서 바람에 날려 모두 골짜기로 모이게 된다. 100cm 이상 쌓이는 경우는 드물다. 골짜기에 모여있는 낙엽도 겨우내 내린 눈과 비에 젖어서 불에 잘 타지도 않으며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국립공원의 산불은 지표화에서 끝났으며 산불이 수관화로 이어져 불이 날아다니는 ‘도깨비 산불’로 이어지지 않았다. 산림청의 ‘숲가꾸기’에서 벗어난 국립공원은 산불에 강한 숲이 되었던 것이다. 인위적인 간섭만 없다면 자연스럽게 산불에 강한 숲이 된다는 것이 들어난 것이다. 이 명확한 대비 앞에서 산림청이 꾸준히 강조해온 ‘숲가꾸기’와 ‘임도 확대’가 모두 실패한 정책임이 여실히 들어났다. 산림청은 숲가꾸기사업으로 숲을 산불에 취약한 숲으로 만들었고 산불 위기 대응에도 실패함으로써 엄청난 국가적 손실과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단 한번도 사과를 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고만 하고 있다. 산림청장은 산불 이후 공식 석상에서 끊임없이 임도설치와 숲가꾸기를 해야 한다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하여야 할 말은 ‘임도 추가건설’ ‘숲가꾸기’ 이야기가 아니라 ‘죄송하다’ ‘빠르게 피해 지역민에 대한 피해 복구가 징행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 한마디인데 말이다.
    • 자연생태
    2025-04-22
  • 피아골 금낭화
    「섬진강 편지」 -금낭화 비 그친 아침 피아골 금낭화를 보러 갔다. 밤사이 마을로 내려온 구름이 산 위로 돌아가는 풍경은 그야말로 오! 아!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감탄화였다. 피아골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피아골 피아골을 외치는지 알 것도 같다. 그 피아골에 어마어마한 금낭화 군락이 있다. 사라진 피아골 다랭이논 대신 노고할미가 내어준 선물 같다. 섬진강, 지리산 보물이 또 하나 늘었다. 선암사에서 맨 처음 금낭화를 만나던 날, 그때는 진짜 봄날이었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암사 금낭화 -김인호 이제껏 알지 못하던 우리가 이렇듯 서로를 부르며 만날 수 있다니 이 봄날 다 가 너 꽃잎 떨구더라도 내 마음속에 늘 환히 피어 있으리니 어디 멀리 떠나 다시 너를 찾지 못할지라도 내 마음속에 늘 이렇듯 피어 있으리니 내 가진 것 다 잃더라도 너는 내 맘에 남아 있을 것이리니 주렁주렁 연등 내 건 듯한 금낭화 곁만 맴도는 아, 사랑에 마악 눈뜨던 스무 살 적 마음의 한나절이여!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5-04-21
  • [송만규화백의 섬진팔경사계] 광양 무동산에서 봄
    -광양 무동산에서 봄 2016. 110x210. 장지에 수묵채색 무동산 1 새벽 서너 시 쯤 스케치하러 나선다. 그래야 해 뜨기 전에 정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동산(275m)은 높지 않지만 마치 삼각뿔 모양새로서 약간 가파른 산길을 따라 20~30분 소요된다.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조그만 암자가 자리하고 있다. 여러 번 지나쳤던 요사(寮舍)에 인연이 되어 며칠 동안 머문 적이 있다. 창문을 열면 저 멀리 강물에 담긴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새벽녘 낮고 장엄하게 들려오는 종소리가 계곡마다 전하는 여음이 진하게 파고 든다. 쌍계사인 듯하다. 이 곳 무등암에도 어느 중생을 위한 염불인지 목탁소리와 함께 낙낙한 주지승의 음성이 되돌아온다. 계단을 덮은 대숲을 조용히 지나자 새벽바람에 댓잎 스치는 소리가 스산함을 더하고 어둠이 적막함으로 다가온다. 강 건너 어스름한 하동 읍내의 아련한 불빛은 하나, 둘 꺼져가고 지리산과 백운산을 끼고 내려오는 강줄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간에 나는 새벽공기를 마시며 강변을 서성였나보다. 영감이 가장 몰입되는 순간이고 오롯이 혼자로써 사유하며 주변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산 정상 바위위에 가부좌 틀고 앉아 있으니 발아래 강물에서부터 맞은편 저 너머 어슴푸레하게 능선을 드러내는 지리산까지를 모두 섭렵하는 듯하다. 강가의 아침이란, 어느 강이든 그러하지만 특히 산을 휘감고 흐르는 섬진강은 잔뜩 설레이며 기대하게 한다. 시간과 기후에 따라 변화무쌍함을 연출하기에 기대치를 한껏 높이고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다. 드디어 여명이 떠오르면 이 산, 저 산 골짜기, 강줄기마다 환희의 운해가 펼쳐진다. 주위는 순식간에 강한 입체감을 주며 집체무용이라도 연상케 하는 대단한 파노라마를 만들어 낸다. 어느새 남해 금산에서 힘찬 해가 솟아오르면 운해는 슬그머니 어디론가 퇴장하고 새 세상이 펼쳐진다. 무동산, 낮고 작은 산이지만 가장 가까이에서도 넓고 긴 섬진강을 보여주는 옹골찬 곳이다. 하류에 자리하고 있어 넓어진 강폭의 규모가 남해바다를 향해서 구불거리며 흐르는 곡선의 끝에는 광양제철의 굴뚝이 우뚝 서있다. 괜한 망상을 떠올릴 때가 있다. 기상변화로 인해 사계절이 없어진다면? 2 섬진강 물길은 600리 이다.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 째로 긴 강이다. 참 먼데서부터 흘러와준 것이 장하다! 조그마한 옹달샘,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 모인 물방울들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 되어 작은 도랑, 하천을 이루며 주변과 함께 어우러진다. 메마른 논밭에, 강가 언덕의 억새를 적셔주고 밭 메는 어머니의 갈증을 달래준다. 날 저물어 집에 돌아가는 아버지의 삽을 씻어주고 흘러간다. 높은 곳에 고여 있지 않고 필요한 곳을 찾아 아래로, 이 땅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간다. 또 다른 지천들과 함께 더 많은 곳을 더트면서 땅을 적시고 강을 이룬다. 그렇게 목마른 곳을 적시며 협곡이나 들녘을 돌아 돌아 서두르지 않고 이르른 곳 여기, 광양 무동산 아래에서 폭넓은 강, 강다운 강을 만든다. 섬진(蟾津)이란 이름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사회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왜구가 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광양 땅 섬거에 살던 수십만 마리 두꺼비가 떼 지어 몰려와 울부짖자 왜구들이 피해갔다는 전설에 따라 불리어졌다는 고마운 두꺼비의 공덕을 광양군 다압면에 ‘섬진강유래비’는 전한다. 이렇듯 이 물길은 평온할 수만은 없었다. 선비들이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도포 깃을 휘날리고, 민중들이 시퍼런 죽창을 치켜세웠음에도 섬진강은 끊임없이 왜구들의 침탈로가 되었다. 동학농민전쟁 당시 농민군과 관군의 치열한 싸움이었던 방아치전투(1894) 이후에도 동족상잔으로 강물을 물들게 했던 아픔을 안고 흐른다. 여인들이 잡은 재첩을 실어 나르는 동력선이 물길을 가르며 분주하게 다닌다. 저 앞에 지리산 능선의 부드러운 선율과 그 틈새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숨어있는 강변마을이 주는 아련함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여기 강가의 사람들이 흘린 서러움과 눈물, 절망까지 모두 받아 안고 바다가 보이는 광양만으로 간다. 이제 600리 섬진강은 버려라. 그리고 바다의 시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를 버린 물방울은 강이 되어 바다의 시원으로 거듭나 강들의 유토피아, 대동세상일 바다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릴 것이다. 경전선인 섬진철교에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대 여섯 량을 단 여객열차도 평온하게 지나간다. 섬진교 위로 하동과 광양을 오가는 버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달린다. 두 다리를 품어주는 섬진강도 하나의 물줄기로 흘러간다. 목포에서 탔다는 아주머니가 집에서 삶아 온 달걀이라고, 경상도 아지매는 목을 축이라며 두유팩이 서로 오간다. 누가 강사이로 깊은 간극을 만들었나. 사람만이 나뉘어 가고 있다. 마음에 평화를 가져본다. -송만규
    • 기획
    • 섬진팔경사계
    2025-04-19
  • 거짓말, 눈물바다
    「섬진강 편지」 - 거짓말, 눈물바다 ‘2025년 4월 14일 오후 4시 01분 현재 구례군 대설주의보 발효중. 강설로 인해 노고단 일주도로(천은사 입구~달궁삼거리) 통행제한 중입니다. 도로 미끄러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구례군」’ 백몇년 만의 4월 대설이라니 기록을 남겨두어야겠다. 거짓말 같은 4월 중순 대설주의보 재난문자를 받고 오른 노고단 길. 구름이 걷힌 오후 1시 성삼재를 출발 노고단 거쳐 4시에 내려오는데 그 사이 눈이 녹아 허물어지며 눈물을 철철 흘린다. 뚝뚝 떨어져 내리는 눈물로 길은 그야말로 흥건한 눈물바다다. 눈물을 만나면 늘 어쩔 줄을 모르겠다. 모든 눈물은 그렇게 난감하다. 오늘 만나 이 눈물도 때를 잘못 만나 한나절을 못 버티고 녹아내려 엉엉 울음소리까지 요란한 서럽디 서러운 눈물이다. 마을에 내려와 돌아보니 거짓말처럼 산정의 눈이 흔적도 없다. 내일은 또 무슨 거짓말 같은 재난문자를 받게 되려나!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5-04-16
  • 참교육 키즈의 생애 14편 엇갈린 운명
    이삭이 무거워진 벼는 점점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남풍에서 북풍으로 바람의 방향이 변했다.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었고 벼는 더 고개를 숙였다. 수현이 들판에서 익기 시작한 벼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노무사 시험을 봤지만 수현은 번번히 낙방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논 농사와 밭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5년이 되었다. 이제는 그 스스로도 농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수현이 농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수현의 아버지는 농부였고 그의 어머니도 농부였다. 수현이 돌아 갈 곳은 농촌 뿐이었다. 농민회에 가입하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지만 농민회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한 때 그의 모든 것처럼 여겼던 민주주의 그리고 혁명 세상의 부조리 그런 모든 단어는 수현의 마음속 깊은 수렁에 빠져 다시 나오지 않았다. 수현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살았다. 수현이 보낸 10년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지숙이 살고 있는 여수에 수현은 딱 한 번 가본적이 있었다. 지숙은 여전히 수현을 좋아했다. 하지만 과거의 수현을 좋아했다는 것을 수현을 다시 만나 보고 알았다. 지금의 수현은 과거의 열정이 넘치는 대학때 수현이 아니었다. “선배 왜 그래?” “뭐가" “과거의 모습은 어디로 갔어?” “과거라니….” “대학때 열정이 넘치던 수현선배는 어디 갔냐고?” “그러게….” “어디로 갔을까?” “초심을 잃어버린 자의 말로라고나 할까!” 지숙은 수현이 잃어버린 초심이 무엇인지 알 고 있었지만 더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지숙 자신도 잃어버리는 초심을 수현이라고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배 강진 선배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강진선배 아직도 학교에 있던데?” “아직도?” “그래" “군 제대하고 복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학교에 있더라구….” “학교에서 뭐하고 있는데?”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고….” “ 뭐 하던 것 하겠지” “학교에 한 번 가봐?” 지숙과 수현은 여수 오동도를 걷다가 돌산 대교까지 걸었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돌산의 다리는 여전했지만 지숙과 수현의 말을 겉돌았다. “수현 선배 저 가볼게요"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요" 지숙은 있지도 않은 약속을 핑계로 수현과 헤어졌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 질 수록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과거의 이야기는 가능 했지만 미래의 이야기가 불가 했다. 아무것도 없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고, 있지도 않을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헛된 것이었다. 그 후로 수현은 지숙를 찾지 않았다. 지숙 역시 수현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벚꽃이 피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눈이 올 때 마다 지숙은 수현을 생각했다. 수현은 가끔 나경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 나경은 잘 살고 있겠지.. 가끔 도쿄에 가서 나경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결혼한 나경을 만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수현은 도쿄에 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경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나.. 나경이야" 네….. 수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10년 만에 걸려온 나경의 전화 한 통으로 수현은 자신이 여전히 나경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경 선배 맞아요?” “어 그래" “우리 한 번 만나자" “아.. 그래요.” 나경이 수현을 찾은 것은 첫 눈이 내린 며칠 후였다. 도로에 그 날 내린 눈이 갓길에 쌓여 있었다. 뉴스에서 빙판을 조심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나경은 수현이 사는 남쪽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수현을 만나야 할까? 아니면 그냥 말아야 할까? 한국에 돌아 오는 비행기에서 부터 고민했었다.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 한국에 가야 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수현이었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수현이라는 이름을 지워 버리고 싶어 일본에 도망치듯 떠난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그 이름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었다. 수현역시 나경을 잊지 못했다. 지숙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떠났고 나경을 떠나 보냈지만 여전히 그리웠다. 수현은 그 후로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봄이 오면 농사를 시작했고 가을이 오면 수확했다. 그 단순한 삶에 빠져 살았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수현의 집엔 아무도 없었다. 들판에서 돌아오면 수현을 반기는 온기라고는 햇살에 뜨거워진 대문 손잡이 뿐이었다. 수현은 스스로를 방치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수현도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 나경이 오늘 온다는 것이었다. 기차 도착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수현은 옷장에서 옷을 꺼내 보았다. 옷을 구입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오랜시간 동안 구입하지 않았다. 입을 만한 옷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현이 입고 있는 옷은 그가 20대에 구입했던 옷들 뿐이었다. 옷을 구입한 기억이 없었다. 수현은 미리 읍에 나가 옷이라도 하나 구입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수현이 중고 트럭을 구입한 것도 5-6년 전이었다. 구입 했을 때 이미 10년을 넘긴 차였다. 시동키를 돌렸지만 한 번에 시동이 걸리지도 않았다. 키를 돌리고 엑셀레이터를 살짝 밟았다. 그러자 시동에 걸리다가 푸드덕 하고 꺼져 버렸다. 겨울엔 항상 이랬다. “무엇하나 변변한 것이 없군" 수현은 스스로 변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현은 마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읍으로 나갔다. 인구 5만의 소도시, 모두가 떠나는 도시로 돌아온 수현을 반기는 것은 텅 빈 가게들 뿐이었다. 가게는 줄고 병원과 요양병원만 늘었다. 젊은 사람들은 서울로 갔다. ‘옷가게가 어디 있었더라” 토요일 오후에도 소도시엔 사람이 없었다. 겨우 찾은 옷가게에 들어가자 주인이 반색을 하며 수현을 반겼다. 겨울 잠바 하나 사려구요. 네. 주인은 수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혹시… 이수현씨 아닌가요? 네.. 맞는데요. 아. 맞구나. 누구시죠? 나.. 몰라! 기억 안나? 나 최현주…. 우리 초등학교 동창인데…. 아.. 그런가… 미안해.. 기억을 못해서 그러겠지. 그때 너는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너 좋아하는 우리반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 그랬나…. 야.. 우리 다음에 한 번 보자. 어..그래 오늘 무슨 일 있어? 아.. 일은 무슨…. 그냥 옷이 없어서…. 그럼 잠바 하나 골라줘…. 내가 옷을 사본적이 없어서…. 수현은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사본적이 없어 무슨 옷을 사야하는지도 몰랐다. 알았어… 초등학교 동창이니까 내가 알아서 코디 해줄께… 근데 너 결혼 안 했어? 어… 혼자 살아. 야.. 너 같은 애가 혼자 살아? 어. 뭐… 현주는 초등학교때 학교에서 가장 키가 크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던 수현을 떠 올렸다. 그런 수현을 현주도 좋아했지만 워낙 인기가 많아 수현을 멀리서 보기만 했었다. 말 한 마디 못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런 수현이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는 다는 소식을 현주도 친구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들끼리 만나면 수현을 두고 안주삼아 떠들었다. 야.. 너희들 이수현 알지. 어. 야 수현이를 모르면 간첩이지. 수현이 농사짓는다고 하던데? 정말? 좋은 대학도 졸업하고 뭐 좋은 곳이라도 갔을 것 같은데 농사를 짓는다고? 그래, 그것도 벼농사 삼천평….. 벼농사 3천평 지어서 어떻게 먹고 살아… 그러니까…. 뭐.. 유기농 벼농사 짓는다고 논에 피만 잔뜩 있다고 동네 사람들이 다 욕한다고 하더라…. 너 어떻게 알아? 야.. 수현이 우리 옆 동네 살잖아.., 그럼 너 수현이 본 적 있어? 몇 번 봤지…. 그래.. 요즘은 어때 뭘 묻는 거야? 수현이 얼굴…. 그래? 여전하지 뭐.. 농사 짓는 다고 그 얼굴이 어디 가냐? 여전히 키크고 몸도 좋고 잘생겼더라….. 그치… 야.... 한 번 보고 싶다… 우리 초등학교에서 수현이가 최고 였잖아…. 그치…. 내가 결혼만 안 했어도 한 번 말이라도 걸어 보려다가.. 야.. 너는 아이만 셋이잖아 그래..히 히 현주는 얼마전 친구들과 만나 수현에 대해 이야기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옷 안 골라줘?” “ 어.. 그래" 현주는 수현에게 어울릴 만한 롱코드를 골랐다. 야.. 키큰 남자에게 롱 코트가 어울려…. 잠바 보다는… 농사짓는 놈이 무슨 롱코트냐… 그냥 잠바나 줘… 야.. 아니야.. 이게 더 잘어울려…. 바지도 하나 더 사라.. 바지가 그게 뭐냐? 10년은 넘어 보인다. 그런가…. 내가 동창 디스카운트 팍팍 해줄게… 그래. 수현은 더 이상 이야기가 하기 싫어 현주가 권하는 대로 옷을 샀다. 수현아.. 셔츠는 서비스다. 선물이라고 생각해. 수현은 평생 입어 본적이 없는 고가의 옷을 구입했다. 수현은 그동안 5만원이 넘는 옷 한 벌을 구입해 본적이 없었다. 수현은 현주가 골라준 옷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 입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거울을 보며 수현은 “그래 나도 꽤 보기 좋았던 때가 있었지”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이수현 멋지다" 현주는 수현을 보고 말했다. 봐라. 내가 골라준 옷을 입으니까 완전 달라 보인다. 그래… 고맙다. 수현은 가게를 나왔다. 어느새 밖은 다시 눈이 오기 시작했다. 수현은 가게를 나와 시내를 걸었다. 수현이 중학교때 놀던 오락실은 세탁소로 바뀌어 있었다.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먹었던 초등학교 졸업식날의 짜장면집은 여전했다. 수현이 역 앞에 도착했을때는 기차가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많은 남은 상태였다. 눈은 펑펑 쏟아졌다. “차를 가지고 오지 않기를 잘했구나.” 수현은 나경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생각했다. 결혼 생활은 어떤지… 일본 생활은 어떤지.. 잘사는지.. 행복한지 ….. 수현은 나경에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해봤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물음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현이 사는 도시는 눈이 많은 곳이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며칠씩 내리곤 했다. 수현은 눈오는 날이 좋았다. 학교를 안 가도 되었고,. 이런 날은 엄마도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엄마는 고구마 삶거나 찐빵을 만들어 주었다. 수현은 엄마 생각이 나면 찐빵을 먹곤했다. 시큼한 막걸리가 들어간 찐빵을 먹을 때면 세상에 없는 엄마 냄새가 났다. “잠시후 여수행 새마을호가 도착 하겠습니다.” “여수행 새마을호를 이용하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안전한 승강장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역무원의 안내 방송이 끝나고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수현은 역 창문 너머로 나경의 모습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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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소설
    2025-04-15
  • 산청, 구례에서 열리는 세월호 다큐 상영회
    산청과 구례에서 세월호 다큐 <제로썸>을 볼 수 있습니다. 각 고을 소식 전합니다. (1) 세월호 다큐 "침몰 10년, 제로썸" 함께 보기 in 산청 산청에서 4월 15일에 원지 작은영화관에서 '제로썸' 상영회가 있습니다. 2014년 그날의 사회적 참사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산청의 뜻있는 단체와 개인이 11주기를 맞아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는 영화 상영회를 준비하였습니다. 상영 후 윤솔지 감독,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호 님과의 대화 시간이 있습니다. 지리산사람들도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습니다. (2) 세월호 다큐 "침몰 10년, 제로썸" 함께 보기 in 구례 이번 공동체 상영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청하고, 사회적 재난의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고자 구례 시민사회의 요청으로 마련되었습니다. ○ 영화 <제로썸>은 추모를 넘어,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침몰원인 · 승객을 구조하지 못한 까닭에 대한 ‘합리적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 영화는 11일부터 16일까지 각자 보실 수 있지만, 16일 저녁 7시엔 4.16을 함께 맞이하고픈 분들이 모여 작게 추모와 연대의 뜻을 새기고자 합니다. 많은 분이 함께하여 따뜻한 기억의 자리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참고로, 단체 관람 원하시는 단체(학교 등)는 영화관에 문의하여 원하는 시간을 배정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 16일 <제로썸>함께보in구례 신청 페이지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D2LfIxHgHxrFcwmaDqbi2Cf_ox1l8I98NfCyJqra4C79nMA/viewform 고맙습니다.
    • 지리산고을소식
    • 산청
    2025-04-14
  • 산청, 하동, 지리산 산불 긴급 기자회견
    4월 10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경남환경운동연합, 지리산사람들,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하동참여자치연대, 산청함양난개발대책위에서 경남 산청, 하동, 지리산 산불과 관련하여 기자회견을 진행하였습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산림청의 숲가꾸기 사업과 임도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문제제기와 산불 현장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산림청의 주장과는 다르게 숲가꾸기를 진행한 지역인 하동 두양리와 산청 중태리 일대의 산불은 피해가 심각했으며 불이 수관화(산불이 나무를 타고 나무의 가지까지 올라오는 상황)로 이여져 산불이 바람을 타고 산을 넘어 갔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일부 주민의 집은 전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에서 보듯 소나무 위주로 관리한 소나무림은 모두 고사한 것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사진은 맨 아래 사진을 참고) 그러나 산림청의 숲가꾸기가 진행되지 않은 자연림임 국립공원구역의 숲의 산불은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았고 지표화에서 멈추었으며 수목에 대한 피해도 사진에서 보듯 거의 없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데도 산림청은 임도가 없어서 산불진화가 어려웠고 숲가꾸기를 하지 않아 진화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거짓말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현장에 있습니다. 현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산림청은 산불 대응에도 실패하였습니다. 민가로 불이 내려오는 것 부터 막아야 할 산림청은 헬기만 투입시켜 산위에 불만 잡으려 하고 있었고 이러고 있는 사이 마을에 있는 일부 집들은 불에 전소하였습니다. 여기에 책임을 느끼고 사과를 하고 지역민의 터전을 복구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산림청장은 임도 이야기나 하고 있습니다. 뭐가 중요한지 모르나 봅니다. 지금 임도, 숲관리에 대한 이야기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터전을 잃은 주민과 생명들 여기서 희생된 사람과 생명들, 그리고 그 가족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것이 먼져입니다. 산불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숲이 산불에 강한 숲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산불로 활엽수는 산불에 강하며 소나무 처럼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아 산불이 바람을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도깨비 산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산불관리와 숲 관리에 실패한 산림청은 숲 관리에서 손을 때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숲을 망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서 생명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아래는 4월 10일에 있었던 기자회견 전문입니다. 임도 확대와 숲가꾸기 사업은 산불 방지의 대안이 아니다. 산림청은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하라!!! 최근 전국적으로 일어난 산불의 원인을 두고 산림 전문가 등은 “소나무는 죄가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소나무는 죄가 없다. 산림청이 주장하는 임도 확대 주장과 관련, 상반되는 의견으로 임도 논란도 뜨겁다. 임도 또한 죄가 없다. 그럼 누가 죄인인가! 2025년 산림청은 2024년 대비 120억 원이 증가한 2조 6,246억 원 예산을 편성하고 주요 내용으로 ‘일상화·대형화되는 산림재난 대응을 위한 투자’를 한다며 과학적인 산림재난 대응체계로 국민안전 확보를 외쳤다. 많은 예산 투자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산림은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4월 4일 경남환경운동연합은 ‘지리산사람들’회원들과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일대와 산청 지리산국립공원 내 산불피해 지역을 찾았다. 숲가꾸기를 통해 조림이 이루어진 곳과 숲가꾸기 사업으로부터 산림이 보호되는 국립공원 내 산불 피해 양상은 달랐다. 소나무 중심으로 숲가꾸기를 한 곳은 수관화(지표화로부터 발생한 불이 나무의 잎과 가지를 태우면서 수관으로 강한 화력이 퍼지는 위험한 불)가 발생, 대형 산불로 이어진다. 수관화로 상승한 불똥이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현상인 비화는, 다른 곳에 옮겨 붙어 새로운 산불을 만든다. 도깨비불처럼 날아가는 불똥은 바람을 따라 최대 2km도 날아간다. 보도에 따르면 2009년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불똥이 최대 35km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숲가꾸기를 통해 지표층이 정리된 곳은 바람의 통로가 되어 산불 확산의 원인이 된다. 이때는 소방헬기는 물론 인력으로 진화가 어렵고 인근 주민의 대규모 인명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소나무 조림지는 산불 규모, 확산면에서 활엽수림보다 크고 넓으나 활엽수림대는 산불 확산의 방어선 역할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자체로 수분을 가지고 있는 활엽수는 지표의 낙엽만을 태우며 확산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 이는 국립공원 산불피해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우리나라는 온대활엽수림의 식생 상황으로 바뀌고 있으니 숲의 생태에 맞춰 그대로 전이할 수 있게 두어야 한다. 인위적인 조림사업은 숲을 해칠 뿐이다. 국립산림과학원(2017)자료에 따르면, 「침엽수림은 산불에 취약한 수종으로써 수관이 하나뿐인 단층으로 이루어져 불의 통로가 쉽게 나타나고··· 이른 봄에도 수관층에 잎이 붙어 있기 때문에 활엽수림에 비해 연료의 양이 많아 수관화에 취약하다··· 수종 간 확산속도를 분석한 결과, 활엽수는 273.2m/h를 이동한 반면에 침엽수는 364.0m/h를 이동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한다. 4월 7일 하동 산불현장을 찾은 산림청장은 "소나무 등 침엽수는 빠른 산불을 유발하고 활엽수는 깊은 산불을 초래한다“고 했다. 활엽수가 수분함량이 많아 화재 저항성이 강하고 활엽수 낙엽 또한 무겁고 수분 함량이 많다는 사실을 산림청장이 모를 리 없다.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처럼 지중화(땅속의 이탄층이 타는)자체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산림청장이 말하는 ‘깊은 산불’이란 바람이 없고, 지중화가 일어나 땅속에서 계속적으로 타는 불을 얘기하는데, 정말 오래된 원시림으로 수만 년 쌓인 낙엽이 있어야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경북 산불과 산청 산불의 강도 분석 결과> 아래 표는 이번 경북 산불과 산청 산불의 분석 결과 피해강도를 강, 중강, 중약, 약의 4개 등급으로 구분해서 분석한 것이다.(NASA 표준 제시) 강한 피해를 입은 수림대의 92%가 침엽수림이고, 활엽수림의 비율은 약 2%에 불과하고, 6% 정도의 혼효림이 있다. 침엽수림의 거의 대부분은 소나무림인데, 산청 산불은 그 차이가 커서 96% 가까이가 소나무림이다. 중강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 또한 소나무림이 압도적이다. 경북 산불은 75% 정도가 소나무림을 포함한 침엽수림이었고, 활엽수림은 조금 늘어 10% 정도를 차지했다. 약한 피해를 입은 지역(지표화지역)은 활엽수림의 비율이 약간 높은 수준으로 정리된다. 이는 강산을 푸르게 가꾼다는 명목으로 30년간 꾸준히 숲가꾸기를 해 온 산림정책 결과, 활엽수림으로 바뀌지 못하게 만든 것이 대형 산불의 원인임을 말하고 있다. 영상 분석과 현장 경험으로 본 전문가는 중약 이상의 지역은 사람과 차량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산불이 발생했을 때 적어도 대형산불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 숲 관리의 핵심이고 시급한 방법이다. 출처: 부산대학교 조경학과 홍석환 교수 우리나라 임도는 「산림자원법」에서 정의하는 ‘산림 경영 및 관리를 위해 산림청이 설치한 도로’인 간선임도, 산불진화임도, 작업임도를 말한다. 이 임도 전체를 합치면 총 임도 길이가 나오고, 이를 산림면적으로 나누면 임도밀도가 계산되는데, 우리나라 임도밀도는 4.1m/ha이다. 산림청이 임도 확대를 외치며 비교하는 나라가 일본 24.1m/ha,오스트리아 50.5m/ha인데, 2023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미향 의원실 분석 결과 위 국가들의 임도밀도 산정방식과 기준이 우리나라와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단순수치로만 비교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산림청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임도밀도가 낮다며 임도 개설을 위해 해마다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 2023년과 마찬가지로 산불 현장을 찾은 산림청장은 국립공원 임도설치를 주장했으나 지리산국립공원 관계자는 국립공원 내 임도 설치는 불가함을 명확히 밝혔다. 현장의 다양한 환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산불 예방책의 모든 해답이 임도로 귀결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임도로 산불 초동 대응은 가능할지 몰라도 대형화된 산불에는 오히려 바람길 역할을 한다. 임도가 조성되어 탈 것을 없애면 산불을 끌 수 있다는 산림청의 말과 달리 임도를 사이에 두고 양 옆이 그대로 불탄 현장을 확인했다. 산불로 불탄 집은 전부 도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끄지 못했다. 임도가 있는 곳에는 불을 껐는가? 임도를 산 곳곳에 설치한다 해도 산불 현장으로 진입하여 불을 끄기에는 한계가 있다. 국립공원 내 산불 피해 현장을 보면, 국립공원이 임도가 없고 탈 것이 많아 불을 끄기 어렵다는 산림청장의 말이 거짓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산불 발생 시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마을로 불이 번지지 못하게 주거지를 지키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조건 산불만을 끄기 위한 진화작업은 문제가 있다. 산림청 산불진화 관련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자연의 생명력과 생태가치를 종종 무시한다. 산청 주불이 잡히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산불 피해현장 잿더미를 뚫고 초록 새순이 올라오고 있었다. 산불로 많은 생명을 잃고 생태환경이 무너진 뒤에야 교훈을 얻은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산림청은 임도 확대와 숲가꾸기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에 명확한 답을 하고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구성해야 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구역의 산불현장 ▲ 지리산국립공원 구역 안의 산불현장, 피해 정도가 숲가꾸기를 진행한 지역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산불이 지표면만 태우고 지나갔고 수관화로 이어지지 않아 산불이 크게 확산하지 않았고 그 피해도 적었다. 굴참나무는 코르크층만 그을렸을 뿐 죽지 않았다. 공원구역안의 소나무의 모습, 숲가꾸기가 진행된 다른 숲들과의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고사하지 않았음 하층으로 불이 지나갔으나 수관화로 이어지지 았았다. 그래서 소나무숲과 다르게 불이 산에서 산으로 넘어다니는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동 옥종면 두양리 산불현장 임도가 산을 돌아 만들어져 있음에도 산불의 확산을 막지 못했다. 하동 두양리 임도 주변의 산불 확산 현장 소나무는 타 죽었지만 서어나무는 하부만 불이 지나갔고 죽지 않았다. 소나무는 수관화로 불이 이어졌으며 임도 주변의 소나무임에도 수관화로 이어져 불이 산을 넘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2025. 4. 10. 경남환경운동연합 지리산사람들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 기후위기
    202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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