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0-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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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편소설 "군산"
    긴 겨울을 이겨내고 자란 푸른 보리밭에 봄바람이 불었고, 전주와 군산에 지리하게 심어진 벚꽃이 줄지어 피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우주에서 보면 100리 벚꽃길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다. 이리에서 군산으로 이어진 기차를 타기 위해 나는 이리역에서 기차표를 구했다. 군산에서 장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기차는 무거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리에서 군산은 사실 지척이라 기차가 출발하면 금세 도착하는 거리였다. 임피와 대아를 지난 기차는 곧 군산역에 도착했다. 군산역을 걸어 나오면 곧 선착장이었다. 장항으로 가는 배는 수시로 있어 길게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바다 건너 눈앞의 장항제련소에서 하얀 연기가 길게 뿜어져 이리 쪽으로 흘러갔다. 멀리 금강하구둑의 모습이 보였다. 금강은 말 그대로 금빛이 흐르는 아름다운 강이다. 발원지는 진안의 뜸봉샘이다. 한 줄기는 섬진강으로 가고 한 줄기는 금강으로 이어진다. 섬진강은 진안, 임실, 남원을 지나 남해로 흘러가고 금강은 충청도를 크게 휘돌아 다시 호남의 군산으로 흘러온다. 멀리 돌고 돌았지만 결국 시작한 호남에서 끝난다. 맑았던 금강은 군산 갯벌의 뻘물이 밀물에 밀려 탁류가 된다. 채만식은 맑고 고운 물이 세속에 빠져 탁류가 된다고 했다. 가방을 들고 장항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짭조름한 짠내가 훅 하고 밀려왔다. 포구 선창가에 길게 늘어선 술집 여자들의 향수 같거나 일꾼들이 찾는 여관의 싸구려 스킨 같은 진하고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배에 올라타자 아침 장사를 끝내고 장항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들의 장터 이야기로 배는 왁자지껄했다. 배낭을 메고 장항으로 넘어가 기차를 타려고 하는 여행객들이 보였다. 그중에 혼자서 작은 배낭을 메고 있는, 내 나이로 보이는 여자도 보였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가 궁금해해야 할 이유가 없지만 배에서 딱히 생각할 것도 없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아직 그 연유를 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배는 곧 장항 선착장에 도착했다. 나는 잡생각은 집어치우고 곧장 장항역으로 향했다. 뒤를 힐끔 쳐다보니 그 여자도 나와 함께 장항역으로 걷고 있었다. 기차는 이리 기차가 도착하고 배를 타고 넘어오면 탈 수 있도록 일부러 맞추기라도 한 듯, 도착하자마자 곧 출발했다. 기차라고 해봐야 서너 량에 불과해서 그랬는지 그 여자는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앉자마자 그녀는 배낭에서 책을 꺼내 보고 있었다. 채만식의 《탁류》였다. 초봉이처럼 예쁜 여자였다. 한마디 해볼까 하고 나의 방정맞은 입술이 근질거렸다. 소설을 읽었다고 잘난 척이라도 하면서 말이라도 건네 볼까 했지만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서 잠시 생각만 하고 창밖을 봤다. 기차는 서해안의 리아스식 해변을 따라가며 힐끔힐끔 서해 바다를 보여 주었다. 기차는 곧 보령역에 도착했다. 내가 보령에 온 이유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펜팔을 했던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보령여고를 다녔다는 그 여자아이가 한번 보자고 했고, 마침 할 일도 없어 가보겠다고 한 것이 겨울이 끝나는 2월쯤이었다. “벚꽃이 필 때쯤 가볼게.” 봄이 왔고 벚꽃이 피었고 나는 그 약속을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기차역에 내리자 그 여자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편지로는 꽤 길게 연락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재미로 보낸 편지들이었고, 사실 이렇게 만나기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편지 속에서 꽤 친한 친구처럼 글을 썼지만 막상 만나보니 그 어색함이라는 것은, 남자라고는 만나 본 적도 없이 맞선을 나온 시골 처자와 산골 남자처럼 서로의 얼굴에 역력했다. “와줘서 고마워.” “그래.. 오랜만..” “아니, 얼굴 본 것은 처음이구나..” “그러게.” 사실 오래전 고등학교 다닐 때 서로의 사진을 보낸 적이 있지만 그때뿐이었고, 지금은 이제 그 시절의 학생도 아니었다. 여자아이는 그 사진 속의 발랄함이 없어 보였다. 내가 그 아이와 펜팔을 시작한 것은 가요책 뒷페이지에 있던 '펜팔 구함'이라는 잡지 속의 주소를 보고 심심해서 보낸 편지에 그 아이가 답장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간 편지가 꽤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그 여자아이도 이렇게 만나기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왜 만나자고 했을까? 사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답장을 제대로 한 적도 없었다. 한 번 보면 좋겠다고 쓴 편지의 우울함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그래, 무슨 일이야?”라고 서둘러 묻고 싶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금방 꺼내고 나면 미안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보령은 어디가 좋아? 지난번에 대천에 MT 온 적이 있었는데 바다가 좋던데.” 사실 올 초에 학교에서 대천으로 MT를 온 적이 있었다. “전화하지 그랬어…” “아, 함께 온 사람들이 많아서…”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나.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전화번호를 알려준 것 같다. “전화해”라고 했지만 나는 한 번도 전화를 한 적이 없었다. “대학 입학한 것 축하해.” “무슨 축해야, 기껏해야 지방대인걸… 너는 재수하는 거야? 공부도 잘했잖아. 억울하게 떨어졌네…” “뭐 어쩔 수 없지.. 다 내 팔자지.” 우리는 대천으로 가는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버스는 곧 대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보였다. 대천 해변은 한 사람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라도 걷다 보면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길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해변으로 내려갔다. 바다에는 놀러 온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걷자…” “그래.” “근데 무슨 일로…” 나는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연인 사이도 아니고 굳이 만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그냥.. 한번 보고 싶었어. 서울 가기 전에 내 고향에서.” “서울에는 왜? 재수하러 가는 거야?” “아니야, 나 취직했어..” “취직.. 왜 대학에 안 가고. 그러게, 그냥 공부하기도 싫고 대학도 싫고, 집에서 재수하라고 하는데 다 귀찮아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사이에. 나보다 공부도 잘했는데…. 나는 달의 인력으로 끌려가는 바닷물을 보며 그 아이가 어떤 일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보통 이런 경우의 수는 몇 가지가 안 된다. 첫째 집안의 몰락, 둘째 부담감과 주위의 시선 그리고 가족의 눈초리, 셋째 공부가 싫어서 하는 일시적인 방황. 이 아이의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오면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줘야지, 라고 머릿속으로 이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다. “야, 너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나는 그 아이의 말에 뭐라고 해야 할지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너 내가 왜 재수를 하지 않고 서울에 가겠다고 했는지 그게 궁금해서 그렇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 아니야… 그냥 공부가 더 하기 싫어……” “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맞네. 사실 공부가 싫다고 하면 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내가 너보다 공부를 잘했으면 모를까 공부도 못한 주제에 조언을 하기는 그렇고, 그래도 그렇게 공부를 잘했는데 한번 실패했다고 그만두는 게 맞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지쳤어? 전교 1등이 그러면 되나… 아니면 전교 1등이라서 그런 거야? 나는 그런 점수를 맞아 본 적도 없어 잘 모르겠다.”나는 그 아이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대학에 가면 소개팅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꽤 재밌게 보낼 수 있다는 시시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아이도 그 정도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을 것 같다. “그래, 그러면 네 맘대로 해야지. 내가 뭐라고 너에게 조언을 하겠니.. 오늘은 바다나 실컷 보고 가야겠다.” 우리는 썰물이 끝나고 밀물이 올라오는 밤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 이제 가봐야겠는데.. 너무 늦었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면…” 사실 생각보다 예쁜 그녀에게 고백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서울까지 가는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어디 싸구려 여인숙이라도 알아봐야 할 참이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바닷가 근처의 여인숙을 찾아봤다. 가장 저렴한 방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뒤지다가 7천 원짜리 방을 하나 구했다. 가방을 던져두고 세면장에 가서 늦은 세수를 했다. 하루 종일 바닷가를 돌아다녀서 그런지 운동화는 젖어 있었다. 신발에 달라붙은 모래가 세면장으로 흘러 다시 바다로 돌아갔다. 쓰고 버려둔 녹슨 면도기, 그리고 분홍색 알비누, 말라비틀어져 갈라진 빨래비누가 보였다. 세수를 하고 세면장을 걸어 나오는데 기차에서 봤던 여자가 보였다. 나는 애써 그 여자 얼굴을 외면하고 방으로 들어와 따뜻한 방에 몸을 던졌다. 피곤함이 밀려왔다. 주인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방문 사이 벌어진 틈으로 찬바람과 함께 들어왔다. 곧 옆방의 문이 열렸다. 배낭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바다는 저녁 바다보다 활기차 보였다. 어제 쏟아낸 우리들의 이야기들은 밤새 파도와 함께 멀리 흘러가 버렸다. 여인숙을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른함과 상쾌함이 함께 들어왔다 나갔다. 바다로 나가는 계단에 기차 안에서 봤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불 좀 주시겠어요?” “아, 네.” 나는 주머니에서 서둘러 라이터를 꺼냈다. “여기요.” 나는 그녀의 화장기 없는 얼굴과 함께, 그녀의 입에서 파르르 떨리는 가느다란 장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기, 어제 기차에서 봤죠?” “저요?” “네. 배에서도 보고…” 나는 내심 힐끗힐끗 몇 번 봤던 것이 들킨 것 같아 정수리가 뜨끈했다. “사실 이리에서부터였어요. 그쪽이랑 저랑 함께 온 것이…” “아…” “제 앞에서 기차표를 끊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같은 기차표를 샀어요. 군산역에 처음 가봤고 장항에 가길래 저도 따라왔어요.” “왜요?” “그럼 여인숙도요?” “아뇨… 그건 그냥 우연히…” “그런데 그 여자친구분은 어디 갔어요? 미인이던데요.” “아.. 여자친구는 아니고요. 그냥 펜팔 친구….” “펜팔이요? 생각보다 순진한 아저씨네요.” 그녀는 담배를 입안에서 말아 돌리더니 후하고 불었다. 담배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뭐 하는 여자일까? 나는 다시 그 여자의 모습을 살폈다. 뭐 때문에 나를 따라온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히 심심해서…. “왜요.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쑥스럽게. 제가 스토커라도 되는 줄 아시나 봐요.” “뭐, 제가 그 정도 인물은 아니라서… 하하.” 웃고 있었지만 수상하기는 했다. “아저씨, 아니 학생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침이나 함께 먹으러 가요. 제가 살게요.” “뭐 그럽시다.” 우리는 해변가의 저렴해 보이는 전주식당에 갔다. “두 사람, 연인 사이인가 봐요? 좋을 시절이구만.. 부러워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장님이 농을 던졌다. “아뇨…” “맞아요.” 그 여자는 처음 본 나와 연인 사이라 말했는데, 거짓말이지만 그냥 잠자코 있었다. 항변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기 때문이다. 콩나물국밥을 먹고 우린 다시 해변에 나왔다. '맞아요'라고 말한 이후로 나는 잠시 엉뚱하게 그녀와 연인이기라도 한 상상을 해봤다. 나는 그녀와 다시 해변으로 나왔다. “저는 이제 돌아가야 하는데요. 뭐 함께 가시겠어요, 아니면 여기 있을 것인가요?” “왜요, 그 여자라도 만나시게요?” “아뇨. 이제 집에 가야죠. 학교도 가야 하고….. 할 일도 없는데 대천 바다에 이틀이나 있기도 싫고요.” 나는 여인숙에 가서 가방을 꺼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요, 그럼 가세요. 저는 여기 좀 더 있을게요.” 그녀는 별말 없이 바닷가로 향했다.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버스, 기차, 배를 타고 다시 이리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 오르기 전에 그녀(펜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이제 이리로 가고 있어…” “서울 잘 가고 연락해라…”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곧 서울에 취직을 했다고 했다. 큰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벚꽃이 피면 가끔 편지를 보냈다. 나도 가끔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점점 그녀를 잊었다. 그녀의 편지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대천 바다에서 이야기했던 그녀(기차 안의 여자)는 왜 나를 따라왔을까? 나는 가끔 그 여자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두 명의 여자는 그렇게 나의 머릿속에 대천, 군산, 기차와 함께 박제되었다. 제대 후 취업한 나는 뉴스에서 2009년을 마지막으로 군산~장항 간의 배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끝으로 멈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군산항을 찾았다. 마지막 배에 탄 사람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 다시 장항으로 넘어가 기차를 탔다. 그리고 홀린 듯 보령을 지나 대천을 찾았다. 바닷가에 도착하자 “전화하지 그랬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오래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의 어머니는 나에게 그녀의 새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나야..” “오랜만이야..” 그녀는 아직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무슨 일로….” “대천에 와서..” 그녀는 여전히 서울에 살고 있었고 결혼을 했다고 했다. “잠깐만, 아이가 울고 있어서…” 나는 못할 전화를 한 듯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가 온 것은 대천에서 돌아오고 난 며칠 후였다. 그녀는 그때 우리를 따라다니는 여자가 있었는데 아는 여자친구가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모르는 여자며 그날 처음 본 여자라고 이야기했다. “그랬구나.. 모르는 여자였구나.. 나는 네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물어볼 걸… 그랬어…” 그녀의 전화 목소리가 떨렸다.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한동안 그날을 생각했다. 머릿속이 금강의 물처럼 혼탁해졌다.
    • 문화예술
    • 연재소설
    2026-06-24
  • "내 마음대로 안 돼서 괴로우신가요?" 지리산 쌍계사에서 만난, 법제스님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과 위로의 차담
    안녕하세요, 지리산사람들TV 윤주옥입니다. 오늘 저희가 만난 분은 지리산 단천마을 출신이자, 현재 쌍계사 템플스테이에서 따뜻한 차담(茶談)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계시는 '법제스님'입니다. 평범한 대학생이자 직장인이었던 20대 후반, 과감하게 출가를 결심하게 만든 불교의 '탐진치' 가르침부터 다시 천혜의 고향 지리산 단천마을로 돌아오게 된 유쾌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아침에 눈떠서 잠들 때까지의 모든 순간이 수행이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상처받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걸림돌을 디딤돌로 인식하는 법', 그리고 마음의 설정을 내려놓는 지혜를 전합니다. ???? 쌍계사 템플스테이 참여 방법 인터넷 검색창에 '쌍계사 템플스테이'를 검색하시면 체험형(티소믈리에, 선다회 다도 체험) 및 휴식형 프로그램을 간편하게 예약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법당으로 마음 쉬어가세요. https://www.templestay.com/fe/MI000000000000000062/temple/introView.do?templeIdTmp=Ssanggyesa_hd -- 타임라인 -- 00:00 인트로 00:43 쌍계사에서 법제스님과 함께 01:31 해발 500m 아름다운 단천마을 04:13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고뇌 끝에 선택한 출가 06:55 수행은 마주하는 나를 살피는 시간 09:53 고향으로 돌아온 쌍계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12:45 차(茶) 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쌍계사 17:30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쌍계사만의 특별한 차담 20:52 100% 즐기는 쌍계사 템플스테이 22:24 지리산과 반달가슴곰 이야기 23:57 유기동물 30마리와 함께 살아가기 26:04 언제나 소박하게 열려 있는 단천마을 법당 27:07 행복해야 한다는 설정을 버리면 마음에는 평화가
    • 사람이야기
    2026-06-23
  • [소식] 지리산 여순10.19 생명평화기행 (강의 참여 가능)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지리산 여순 1019 생명평화기행’이 7월 3일~4일(1박2일), 구례에서 진행됩니다. 1박2일 참여할 분은 마감되었다고 하는데요. 7월 3일 저녁 7시 주철희 박사 특강 (장소_ 지리산생태탐방원) 7월 4일 낮 1시 30분 박금만 화백 특강 (장소_ 구례문화예술회관) 이렇게 두 강좌는 참여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참가비도 없고요.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 하셔도 좋겠습니다.
    • 소식
    2026-06-23
  • [곰주옥 X 인간주옥] ⑤ 곰과 커피 사이, 내가 몰랐던 세계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사육 농장에서 살던 곰들이 이주한 건 2025년 9월 말이다. 나는 곰들이 지리산에 살기 위한 목적이 아닌 이유로 구례에 오게 되었다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곰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뜬장에 살았다고 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눈이 보이지 않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곰들도 있다고 했다. 나에게 곰은 원래도 관심이 가는 존재이지만, 이러한 상황을 들으니 더 마음이 쓰였다. ↑ 이가 없어서 모든 음식을 잘라서, 익혀서, 분쇄해야 먹을 수 있다는 ‘BM-22’ 방 앞 안내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곰곰학교’(곰처럼 곰곰이 생각하는 학교, 2025년 10월 구례에서 운영)를 열었고, ‘반달곰을 사랑하는 1%’(이하 반달곰1%)를 구례뿐 아니라 하동까지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 곰들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지난 1월, 구례 반달곰1% 가게 주인들과 곰쉼터를 방문했다. 곰들의 상황을 설명하던 최신영 수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반달곰 1%에 카페들도 참여하나요? 그럼 커피박을 모아주실 수 있을까요? 여기 곰들에게 커피박은 좋은 풍부화 재료, 그러니까 사육농장에 있으면서 퇴화된 곰의 감각과 근육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곰들을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반달곰 1% 가게 주인들도 ‘그거라면 할 수 있다’고 동참 의사를 밝혔다. 하기로 마음을 굳히자, 이왕이면 반달곰1% 가게뿐 아니라 관심 있는 카페에도 알리는 캠페인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캠페인 문구를 정하고, 그림과 디자인을 요청했다. 웹자보를 SNS에 올리고, 자주 가는 카페 주인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하며 참여를 부탁했다. ↑ 캠페인 ‘곰에게 가는 커피향’ 웹자보 “일주일에 한 번씩 수거할게요. 커피박을 말려서 보관만 해주시면 됩니다.” 흔쾌히 해보겠다는 분도 있었지만, 커피박을 말리는 게 쉽지 않다고 주저하는 분도 있었다. 웹자보를 보고 연락한 분도 있었고, 카페를 운영하지 않지만 커피를 마신 후 나오는 커피박을 일반쓰레기로 버릴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다며 함께 하겠다는 분도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인 카페 10곳과 개인 1명이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을 시작하였다. ↑ 곰쉼터에 전달된 마른 커피박 ‘곰에게 가는 커피향’ 활동은 100% 자원활동이다. 특히 매주 월요일마다 커피박을 수거해 곰쉼터에 전달하는 일에 나서준 이영숙 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번 해볼게요’로 시작한 이영숙 님은 매우 성실하게 활동했고, 마치 곰이 된 것처럼 커피박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영숙 님은 커피박에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커피박은 충분히 말린다고 해도 플라스틱 통이나 비닐에 담아두면 바닥에서 곰팡이가 피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천으로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로 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회의에서, 참여자 유현숙 님이 직접 만든 가방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커피박 수거 가방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할 분을 찾고, 가방 재료를 고민하고, 실크스크린 작업을 도와줄 분들을 섭외했다. 여러 사람의 정성과 수고 덕분에 재활용 천과 커피 자루로 ‘커피박 수거 가방’이 완성되었다. 6월 8일, 커피박 수거 가방을 들고 곰쉼터에 갔다. 그날 함께한 분들은 곰을 직접 본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곰들이 얼마나 커피박 향기를 좋아하는지 커피박이 든 자루를 껴안고 뒹굴었으며, 방사장으로 나가지 않던 곰도 커피박 향기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임옥주 수의사는 커피박 자루를 넣어주면 곰들이 냄새를 맡고 탐색하거나 껴안고 굴리는 행동이 늘어나는데, 이런 자극이 곰들의 감각과 근육을 깨우는 ‘풍부화 효과’라고 설명했다. ↑ 커피박 수거 가방 만들기 참여자들이 곰쉼터 답사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실크스크린 작업을 맡은 임산하 님, 커피 자루를 기부해 준 한지인 님, 유현숙 님과 함께 가방을 만든 이정훈 님, 필자, 곰쉼터에서 근무하는 임옥주 수의사. 곰쉼터 방문 후 커피 이야기가 나왔다. 25년째 커피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한지인 님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폴레옹이 머물렀던 세인트헬레나 섬이 커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 윤리적 논쟁이 있지만 코끼리 배설 커피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따로 있었다. 커피가 콩과 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네? 커피가 콩과가 아니라고요? 그럼 왜 커피콩이라고 해요. 커피나무 열매가 체리와 같다고요? 브릭스가 12나 되니 단 것을 좋아하는 곰들도 좋아할 거라고요?” 내 생애에서 지금처럼 커피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 설사를 한다. 어떤 때는 커피 향만 맡아도 배가 아플 때가 있다. 평생 마셔본 커피는 세 모금 정도다. 그런 내가 커피박을 수거하고, 커피 향을 맡고, 커피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다니 묘한 일이다. 나는 이제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커피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곰을 통해 커피를 다시 배우고 있다. 관심은 연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때는 아무 의미 없이 버려지던 커피박이 이제는 곰들의 감각을 깨우고 삶을 넓히는 도구가 된다. 내가 몰랐던 커피의 진실은 맛이나 향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생명과 이어지는 가능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온통 오해뿐이던 커피에 대한 내 생각을 바로잡아준 곰주옥과 그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작은 연결이 더 많은 생명과 사람에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 기획
    • 곰주옥X인간주옥
    2026-06-23
  • [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가뭄에서 장마로 이어지는 하지
    해가 제일 높은 하지가 지나면 해 입장에선 가을로 접어 든 것임에도 하지 지나야 무더위가 찾아오니 왜 그럴까요? 다름아닌 복사열 때문인데요, 하지 때까지 달궈진 복사열이 하지 지나 소서 대서의 복 더위로 드러나는 겁니다. 게다가 몬순 기후의 영향으로 북태평양의 높은기온과 습한기운이 찾아와 무더운 장마가 시작되지요. 반면 하지 전엔 가뭄이 찾아옵니다. 이 가뭄이 참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이 시기의 속담으로 가뭄에 비 그칠 날 없다는 말이 궁금증을 더 했지요. 실제로 일주일이 멀다하고 비가 와도 흙을 뒤집어보면 먼지만 일어요. 왜 그럴까요? 비가 찔끔 와 오히려 흙속 수분마저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모세관현상인데요, 옛날에 문창호지를 바르고 입으로 물을 분사해주면 창호지가 마르면서 빳빳해지는 현상과 같아요.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과도 같지요. 그런데도 숲 속 나뭇잎들의 녹색은 더 짙어가니 무슨 조화일까요? 다들 아시겠지만 나무들은 일종의 물탱크입니다. 물 저장고죠. 사람도 몸의 70%가 물인 것처럼 나무도 50%~70%가 물이에요. 그 중 뿌리와 줄기, 가지의 비중이 크죠. 잎사귀도 적지 않으나 잎은 물 저장보다 증산작용으로 물을 퍼 올리는 ㅅ펌프 기능이 큽니다. 이 시기 녹색이 짙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아진 잎들이 물을 엄청 빨아대면서 자기 몸 키우는 데 쓰느라 내뿜지는 않고 저장만 하니 땅속에 물이 마르게 되는 겁니다. 물론 비도 적게 오지만 그보다 더 많이 퍼올리니 가물 수밖에요. 반면 하지 지나 장마기에 들면 비도 많이 오지만 나무도 적당히 자라 저장용량이 다 차서 물을 대기로 뿜게 되니 이래저래 물 많고 습한 철로 접어들게 됩니다. 하지전삼, 하지후삼이라 했습니다. 하지 삼일 전이 벼 모내기 마지막 적기고 삼일 후는 더 이상 넘겨서는 안되는 마지노선이란 뜻입니다. 물 사정이 좋은 곳은 일찍 하지만 아무리 물 사정이 좋지 않다해도 하지를 넘겨선 안된다는 뜻이겠죠. 벼는 단일식물이라 해서 해가 짧아지면 이삭(꽃)이 맺히는데, 하지 지나서까지 늦게 심으면 제대로 몸을 키우지 못한채 이삭을 올리니 수량이 확 떨어집니다. 미숙 상태에서 짝짓기하면 2세가 부실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하지 이후엔 장마가 시작되니 모낸 후 벼가 활착하기 딱 좋은 때라는 겁니다. 이게 천수답인데요, 왠지 천수답이라고 하면 미개한 농법 같지만 그게 아니라 장마비를 활용한 지혜로운 농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우제를 단오나 하지에 지냈으니 그 때 되면 비가 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다음 하지에 모내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때 되면 밀, 보리와 이모작이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밀, 보리 수확하고 이어 벼를 심을 수 있는 적기이거든요. 이런 조건 때문에 밀, 보리가 우리에겐 쌀 못지않은 소중한 식량이었습니다. 먹을 게 없어 먹는 구황식량이 아니라 여름에 먹는 필수 주식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쌀만으로 주식을 삼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요. 베트남이나 필리핀 같이 벼만 갖고 이모작 삼모작 하는 나라에서나 쌀만으로 주식이 가능한겁니다. 옆에선 벼 수확을 하는데 옆에선 모내기하는 나라이니 진정한 쌀 나라인거죠. 쌀만으로 보리고개를 넘겠다는 야심찬 의지로 만든 게 통일벼인데요, 그래서 저는 이게 큰 오산이었다고 평가합니다. 통일벼는 수량 많은 알랑미와 아끼바리 같은 찰진 쌀과 교배한 잡종쌀인데요, 문제는 얘는 밀, 보리 수확 전에 심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통일벼 수량이 재래벼에 두배 가까이 되서 다들 놀랐지만 밀, 보리를 심지 못하면 그 수량이 많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겠습니까? 그 다음으로 결정적인 문제는 통일벼는 자가채종이 안된다는 점이에요. 매년 분양 받아 심어야 됐습니다. 이게 농부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거였어요. 씨앗 농사가 근본이었거든요. 남의 씨 받아 자식농사를 지을 수는 없잖아요? 환경적으로도 문제였습니다. 밀, 보리와 이모작을 할 수 없으니 벼를 수확하고 나면 논이 일년 중 반은 사막인 거에요. 땅이 반은 놀고 있으니 토지의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겠죠. 그런데 왜 통일벼의 신화는 여전할까요? 사실 통일벼 자체는 보급된지 10년도 안되어 망했어요. 도열병이라는 게 번져 실패한겁니다. 일찍 심다보니 냉해에도 약했구요. 무엇보다 통일벼만 심게 한 단작방식이 위험을 더 키웠습니다. 원래 농가에선 한가지만을 심지 않았어요. 적어도 4~5가지 심어 먹었는데요, 그래야 흉년을 피할 수 있었답니다. 날씨에 따라 못 되는 놈 있으면 잘 되는 놈 있어 늘 평작은 거둘 수 있다는 얘기죠. 이는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위기를 대비할 수 있었던 조상님들의 대표적인 지혜였습니다. 단작 방식은 기후위기에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농사였던 겁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아일랜드의 감자역병으로 주식이 사라져 100만명 넘는 사람이 아사한 일입니다. 감자 원산지인 안데스 고산 지대에선 아직도 집집마다 여러종류의 감자를 심어 먹고 있는데 이유는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지역마다 대표적인 한가지 종류의 벼만 심는 지금의 농사 방식이 걱정이 아닐 수 없는 거에요. 그런데 아무튼 역설적이게도 통일벼 이후 육종기술이 늘어 신품종 개발에 성공해 알랑미 계통이 아닌 찰진 쌀 계통의 벼들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래서 통일벼 신화가 이어진 거지요. 여전히 종자는 사야되고 밀, 보리와 이모작이 안되는데도요. 더 아쉬운 사실은 통일벼 이후 개발한 종자들이 다 일본쌀 계통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미라 불렸던 아끼바리에서부터 최고의 밥맛(?)이라 불리는 고시히까리, 이누히까리 같은 쌀들입니다. 다행인 것은 아끼바리는 추청벼라 해서 들어온지 오래돼 저작권이 없어졌으나 다른 쌀들은 저작권이 있어 적지않은 종자 사용료를 일본에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몇 해전 바람 분 반일 정서가 농촌에까지 번져 이미 우리쌀이 된 추청벼도 불매운동의 영향을 받은 웃지 못할 일도 있었지요. 그런데 왜 일본쌀 계통의 찰진쌀이 우리밥상을 차지했을까요? 이건 순전히 일제시대 잔재라고 저는 봅니다. 백미주의를 일제가 퍼뜨린거에요. 알랑미나 보리밥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천한밥으로 낙인을 찍은 거죠. 한번은 베트남 가서 알랑미밥을 먹는데 20년 넘게 현미쌀을 먹어서 그런지 저는 거친 알랑미밥이 참 맛있는 거에요. 그 모습을 본 가이드가 반가워서 하는 말이, "알랑미 먹고 끼는 방구를 뭐라 하죠? " 하네요. 다들 깔깔 웃고 나니 이 사람 알랑미 예찬이 거침없이 이어집디다. 더운 지방 사람들은 알랑미를 먹어주어야 한다, 세계 대부분의 쌀은 알랑미다 등등 하면서 말이죠. 어쨌든 일제는 물러갔지만 백미주의는 강하게 남아 우리밥상과 우리입맛과 우리의식을 사로 잡았습니다.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내는 우리 토종쌀과 밀, 보리는 외면되고 말았지요. 구수하고 깊은 정이 있는 우리의 인심도 전설이 되면서 말이죠. 하지에 또 빠뜨릴 수 없는 얘기가 그루농사입니다. 요즘은 이도 보기 힘든 일이 돼버렸는데요, 뭐든 빨리 심고 비닐하우스 같은 철을 잊은 농사가 퍼져 그렇습니다. 그루농사 또는 그루갈이라고도 하는데요, 지난 가을이나 이른 봄에 심은 작물 수확하고 남은 작물의 그루(밑둥)를 갈아 엎고 심는 농사를 말합니다. 밀, 보리 수확하고 심는 벼도 그렇구요, 마늘, 양파, 시금치처럼 월동한 작물과 이른 봄에 심은 감자 배추 상추 수확 후 심는 콩, 팥, 들깨, 고구마, 조 같은 작물입니다. 이런 작물은 일찍 심으면 자칫 웃자라거나 봄 가뭄 피해를 볼 수 있어 하지 지나 심는 게 좋습니다. 이런 월동농사와 그루농사는 우리 윤작농사의 꽃이라 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지금도 되살릴 필요가 있고 되살릴 수 있는 전통농업의 지혜라고 저는 봅니다. 그외 하지는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절기입니다. 그래도 길면 지루하니 여기서 그만 하지 하고 마치렵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 대문사진 : 모든 게 푸르른 하지에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는 철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우리의 풍경이었습니다.
    • 기획
    • 절기이야기
    2026-06-23
  •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올해도 지리산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며 하지제를 함께했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은 난개발로 힘들어하는 지역에 찾아가 연대의 마음으로 하지제를 열곤 했는데, 올해는 벽소령에서 하지제가 열렸습니다. 산청, 하동, 함양에서 벽소령을 깎아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들이 흘러나왔기에 벽소령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하지제였습니다.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이 두 군데가 있더군요, 함양에서 오르거나, 하동에서 오르거나. 함양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함양에서 올라왔고, 저를 포함해 하동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하동에서 올라왔지요. 함양에서 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함양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꽤 편했다고요,,,,, 산에 좀처럼 오르지 않는 저에게 하동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정말 정말 어려웠습니다. 올라올 때는 심장이 요동쳤고요, 내려올 대는 무릎이 욱신거렸지요. 그러나 힘듦보다는 숲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더욱 오래 남았습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숲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다만, 제 체력으로는 당분간 다시 오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정신이 아득하여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게다가 새 소리와 계곡 물 소리, 함박꽃 향기, 단당풍 향기, 나무 질감 같은 시각 아닌 감각을 자극하는 무수한 숲의 선물은 사진에도 담기 어려웠으니, 다녀오시는 분만이 알겠습니다. 발로 땅을 짚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은 제발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아름다우니까 지키자는 말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 제발 지켜지면 좋겠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숲을 살리며 살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실 테지요. 하지제를 열었습니다. 숲에 계신 분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따끈하게- 저마다 하나씩 가져온 감자를 모아 쪘습니다. 아, 맛이 기가막히네요. 온 세상 모두에게 이 감자 한 알씩 맛보게 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갖고 온 음식도 모아 모아, 햇차도 올리고, 다례상을 차렸습니다. 벽소령을 지켜 달라는 마음을 담아 목소리도 외치고, 글도 함께 읽었습니다. 해성과 영권 샘은 노래도 불러 주셨지요- 최고! 우리의 아기자기한 하지제가 부디 벽소령을 무사히 살게 하는 큰 힘에 보태져 세월이 흘러도 이 숲과 생명이 순환하며 이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읽은 편지를 아래 붙이겠습니다. 벽소령이, 지리산이, 그리고 모든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는 분들, 함께 읽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올리는 편지 하지, 여름이 이르렀다는 계절에 너무 무더운 하짓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무더운 하짓날 우리는 지리산 벽소령에 다 함께 모였습니다. 올해 만든 첫 햇차를 올리고, 함께 모여서 감자를 삶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와 노래를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리산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우리의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또 모인 이유는 지리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난개발 공약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리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댐을 만들겠다.’ 실현 불가능한,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공약과 개발 계획들이 비 온 뒤 죽순이 나오듯 사방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이 어떤 곳입니까? 국립공원 1호이고,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이곳만은 보전하자고, 훼손하지 말자고 함께 약속한 땅입니다. 다음 세대들 또한 지리산에 올라서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안기고, 지리산 속에서 위안과, 생명의 사랑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기후위기로 인해 여름은 우리가 알던 여름이 아니고, 계절의 경계가 사라지고, 절기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종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재난은 어느덧 해마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기후위기 시대에, 행정가나 정책 입안자들은 난개발 공약들만 즐비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숲을 지키고, 물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더 노력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기후위기 시대에 나무를 베어내고,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생명의 땅인 산을 깎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많은 발전과 개발이 아닌 탈성장, 멈춤입니다. 미래 아이들에게 이런 심각한 기후 재난의 세상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멈추고, 숲과 강, 산을 지켜나가는 보전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계를 모르고 발전과 개발만을 좇는다면 미래 아이들에겐 기후위기와, 기후 재난, 재앙만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멸망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함께 살아가는 길로 나아갈 것인지, 우리 미래 아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다시 생각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리산 마고신께 빕니다. 지리산 생명의 안녕을 바라며 힘겹게 마을을 지키는 이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지하수로 싸우고 있는 삼장면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골프장으로 싸우고 있는 차황면 철수마을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온갖 난개발 공약이 실현되면 위기에 처할 벽소령을 부디 난개발로부터 지켜주십시오. 기후위기로 재난과 같은 일이 없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우리도 올 한 해 지리산의 난개발 공약을 막아내기 위해 함께 연대하여 싸워 나가겠습니다. 2026년 6월 21일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산청난개발대책위, 함양난개발대책위
    • 고을이야기
    2026-06-22
  • 마음의 눈을 뜨니
    마음의 눈을 뜨니 구 상 이제사 나는 눈을 뜬다. 마음의 눈을 뜬다. 달라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제까지 그 모습, 그대로의 만물이 그 실용적 이름에서 벗어나 저마다 총총한 별처럼 빛나서 새롭고 신기하고 오묘하기 그지없다. 무심히 보아 오던 마당의 나무, 넘보듯 스치던 잔디의 풀, 아니 발길에 차이는 조약돌 하나까지 한량없는 감동과 감격을 자아낸다. 저들은 저마다 나를 마주 반기며 티없는 미소를 보내기도 하고 신령한 밀어를 속삭이기도 하고 손을 흔들어 함성을 지르기도 한다. 한편, 한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새삼 소중하고 더없이 미쁜 것은 그 은혜로움을 일일이 쳐들 바 없지만 저들의 일손과 땀과 그 정성으로 나의 목숨부터가 부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너무나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그 始源(시원)의 빛에 눈을 뜬 나, 이제 세상 모든 것이 기적이요, 신비 아닌 것이 하나도 없으며 더구나 저 영원 속에서 나와 저들의 그 완성될 모습을 떠올리면 황홀해진다. -------------------------------------------------------- 마음의 눈을 뜬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은 사물의 그 모습이나 사람의 무엇이라는 그 이름이 있기 전의 ‘그 始源(시원)의 빛에 눈을 뜬’ 존재라고 말한다. 그 상태가 되면 나무나 풀이나 돌멩이 하나까지 모든 것들과 소통하게 되고 나의 목숨은 그들로부터 부지되고 있으며 그들과 하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존재 자체가 기적이요 신비이며 삶이 황홀해진다. 깨달음이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6-06-19
  • 2026 생명평화 하지제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2026년 생명평화 하지제 몇 해 전부터 해마다 하지가 오면, 지리산사람들과 친구들은 지리산 난개발로 몸살 앓는 마을에 찾아가 하지제를 열었습니다. 올해는, 난개발 공약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벽소령'에 찾아갑니다. 6월 21일 일요일 11시 벽소령 함께 모여서 감자를 삶아먹고, 지리산이 무사하길 바라며 차를 올립니다. (저마다 감자 딱 한 알씩 들고 와요- 벽소령 지키려는 마음 담아^^) (자기 찻잔도 하나씩 가져와요, 우리 마음 모아 쭉- 찻잔 줄지어 놓고 하지다례 올려요^^) 벽소령을 포함하여 지리산권을 파헤치려는 공약을 꾸짖는 목소리도 냅니다. 시와 노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많관부 :) 준비물 : 점심, 마실물, 지리산 사랑 담은 손피켓, 감자 한 알, 찻잔 하나씩 시간과 장소 : 2026년 6월 21일 11시 벽소령 대피소 앞 지역별 문의 구례 : 010-2972-3398 하동 : 010-9049-1218 남원 : 010-4029-5910 산청 : 010-9117-4285 함양 : 010-4740-1915 ※ 11시 벽소령에 도착 하도록 오시면 됩니다. 지역별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함께 오셔도 되며, 지역별 편한 코스로 직접 오셔도 됩니다. 사전 신청 링크 > https://m.site.naver.com/2alfr
    • 소식
    2026-06-18
  • [푸른목소리] 산청간디고 전지율 "환경 위한다면, 급식부터 남기지 말자"
    [푸른목소리] 환경 위한다면, 급식부터 남기지 말자 안녕하세요 식당문화부입니다. 저희가 간마디에 올라온 이유는 요즘 우리 학교에 생긴 안 좋은 식당문화에 대해, 또 이번 주가 환경주간인 만큼 우리가 식당에서 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어 이렇게 간마디를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요즘 식구들이 밥을 잘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선생님들과 식문부가 왜 자꾸 밥을 먹으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식문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식수조사에 왜 이렇게까지 매달리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밥을 먹지 않으면 그만큼의 음식이 남고, 식당쌤들께 예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거기서 멈추지 말고, 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4월에 식문부에서 남은 식판의 개수를 세어 봤습니다. 남은 식판 14개. 어느 날은 17개가 남은 날도 있습니다. 14인분, 17인분의 음식이 먹지도 않고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오지 않은 사람 분의 식판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치우게 됩니다. 식당쌤들은 항상 밥을 먹는 사람만큼의 식판을 딱 맞춰서 꺼내 두신다고 하셨는데 말이죠. 우리 학교는 환경친화적인 것들을 지향하고 다른 학교에는 없는 환경주간도 열며 환경감수성이 높은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런 학교에서 음식이 매일 이렇게나 많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우리가 한 노력들은 무슨 소용인 걸까요? 왜 모두가 환경을 지키자는 것에 동의를 하면서 한 반분 이상의 음식이 하루 만에 버려지고 있는 걸까요. 이번 환경주간 동안 많이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환경친화적인 삶을 살아 보고 싶다면, 자신도 환경을 위한 일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일단 밥부터 드시기 바랍니다. 남는 식판이 없게, 남는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려 노력해 봅시다. 그리고 환경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행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교의 급식은 정말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뒤져봐도 볼 수 없는 수준인 영양만점에 푸짐하고 맛도 훌륭한 급식이 제공됩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학교 식당은 자율 배식이며 심지어 채식 음식도 제공합니다. 우린 전 세계 1% 수준의 급식 안에서도 가장 훌륭한 급식을 매일 먹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급식노동자들의 노동환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안전사고에 취약하고, 명확한 기준이 없어 과도한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급식 노동자들의 현실입니다. 1990년대 이후 그동안 엄마인 여성들에게 전가해 온 ‘도시락 노동’을 사회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시작된 것이 학교급식입니다. 하지만 급식 노동은 오랜 세월 제도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왔습니다. 학교급식실의 산업재해율은 3.7%로 전체 산업 평균인 0.67%의 5배가 넘고, 매우 위험하다고 알려진 건설업보다도 높습니다. 폐암으로 산업재해 승인을 받은 조리노동자도 178명에 이르며, 그중 15명이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학교 식당은요? 남은 식판 개수 17개. 식당쌤들은 그날, 만들 필요도 없는 17인분의 음식을 만드셔야 했고, 치워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밥을 먹으러 오지 않더라도 그만큼의 음식까지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 학교 급식입니다. 주말에 식수조사를 한 학생이 5명도 안 되더라도, 단 한 명만 신청한 날도 밥해 주려 출근하십니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다고도 합니다. 올해 1월이 되어서야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노동자들의 힘든 투쟁 끝에 드디어 가결되었습니다. 개정된 학교급식법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급식은 교육의 일환”임이 법적 목적으로 명시되었다는 점입니다. 내 밥상에 오른 음식을 누가, 어떤 조건 속에서 만들었는지를 아는 일은 그 자체로 아주 중요한 교육이라는 이유입니다. 간디 식구분들, 이런 훌륭한 교육의 기회를 걷어차지 맙시다. 사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에 조금 의문이 듭니다.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자는 정말 당연한 이야기를 너무 어렵게 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요즘 정말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누군가가 밥을 만들어 줬는데 먹으러 오지도 않는 행동은 환경, 노동권 다 떠나서 그냥 정말 무례한 겁니다. 그런데 요즘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밥해 준 사람에게 아무런 미안한 마음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식구들이 정말 많습니다. 식당쌤들이 보는 앞에서 부식으로 나온 과일이나 간식, 음료만 챙겨서 식당에서 나가 버리고, 주말에 식수조사 해 놓고 먹으러 오지도 않거나, 오늘 나오는 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홍화원(학교와 가까운 식당)가서 먹고 오는 행동들 말입니다. 만약 사정이 있다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오늘 간마디가 조금 직설적이고 말이 뾰족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학교에서 꼭 다뤄야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점점, 남는 식판이 줄어들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6.06.04. "식구총회 식문부 간마디" 글쓴이 : 전지율 _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 3학년 안녕하세요. 경남 산청 간디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3학년 전지율입니다. 간디학교에서는 매년 6월 5일 ‘환경의 날’을 기념해 학생자치 부서인 환경부에서 ‘환경주간’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쭉 고민해 오던 것이 환경주간과 어울리는 주제였기에 우리 학교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인 ‘식구총회’에서 이야기하고 싶어 발표 전날 급하게 글을 써 식구총회 간마디(간디인의 한마디)시간에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앞서 말한 환경부와 같이 우리 학교 학생자치 부서인 ‘식당문화부’의 장을 맡고 있습니다(줄여서 ‘식문부’라고 부릅니다). 간디학교 관계자가 아니라면 식당문화부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 같아 조금 설명을 덧붙이자면, 식당은 학교 급식소를 말하는 것이며 우리 학교만의 좋은 급식문화를 만들고 식당쌤들(영영사, 조리사 선생님들)과 함께 식당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부서입니다. 사실 제가 사람 많은 곳에서 발표하는 걸 즐기는 성향도 아니고, 그렇다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 간마디는 학교 졸업할 때까지 절대 올라가고 싶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 주장이 담긴 글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읽고, 그 글을 기고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그만큼 어떻게든 표출하여 전하지 않고선 못 견딜 만한 마음들이 제 가슴속에 계속해서 쌓였었나 봅니다. 덕분에 전하고자 하는 것이 가장 잘 느껴지는 글은 분노가 담긴 글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글보단 대본에 가까운 이 글을 학교 사람들 앞에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읽었습니다. 어딘가에 글을 기고하는 것도 처음인데요. 이 글이 읽게 될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함께 분노할 수 있는, 공감되는 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푸른목소리의 첫 주인공이 되어 준 산청 간디고 전지율 님 고맙습니다. 애써 주신 산청 간디고 최보경 선생님께도 고마움 전합니다. 지리산人의 기획 칼럼 [푸른목소리]에는 지리산 둘레에 사는 청소년-어린이의 생태감수성이 담긴 글을 싣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하는 사회에 '이런 삶도 괜찮잖아?'라든가 '난 이렇게 살고 싶어' 같은 생각거리를 주는 글, 자연의 생명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내는 글, 우리 마을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를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환영합니다. >> 지리산人 푸른목소리 기고 문의 : mhgh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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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목소리
    2026-06-17
  • 낭비둘기가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화엄사의 낭비둘기, 지금은 화엄사에서 살아가기 어려워 졌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하게 참새부터, 까치, 멧비둘기 등 장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흔하게 만날 수 있고 흔적으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이 없다면 매일 들리는 새소리도, 집 앞을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도, 산보, 산책을 할 때 길 위에 보이는 야생동물들의 흔적도 모르고 지나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생명들을 만나기 위해 멀리 나가곤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는 관심이 없어 지나치다 다른 장소에 나가 소리와 모습을 보면 ‘우리 주변에도 저런 아이들이 있었단 말이야?’ 하며 놀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번 배우고 오게 되면 다시 그 이전의 눈과 귀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집 주변에서도, 산책하는 와중에도 너무 많은 흔적과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 우포늪 따오기 복원개체, 농사철이 아니지만 물을 담아두어 따오기가 먹이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만나기 어려운 멸종위기종, 멸종위기까지는 아니지만 개체수가 계속해서 줄어들어 만나기 어려운 관심 단계에 있는 종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멸종위기에서 절멸되거나, 절멸 위기까지 다다른 생명들은 ‘복원’을 진행하게 됩니다. 흔하게 복원‘사업’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복원을 대표하는 종은 반달가슴곰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황새, 따오기, 여우, 낭비둘기, 민물어류(임실납자루, 미호종개, 얼룩새코미꾸리 등)이 있습니다. 모두 복원이라는 ‘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업이다 보니 결과만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복원’은 하지만 서식지에 대한 ‘보전’은 뒷전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황새를 복원하겠다고 많은 돈을 들이고 있지만 황새가 서식할 만한 서식지에 대한 보전을 하려고 적극적인 행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가치가 높은 서식지도 개발로 인한 위협에 놓인 경우도 많습니다. 연어를 놓고 보아도 연어가 고향으로 돌아가 산란할 장소가 없는 이 현실에서 치어만 양식해서 풀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임실납자루를 열심히 키워서 섬진강에 풀어주었지만 이듬해 하도정비로 그 지역을 밀어버립니다. 얼룩새코미꾸리의 복원지도 하도정비로 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원 ‘사업’의 ‘본사’인 환경부(지금은 환경이 사라지고 있는 기후부)는 서식지 보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스스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규제 기관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원’을 하는 기관이라면 당연하게도 ‘규제’를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그들은 뭐 하는 집단이란 걸까요? 반달가슴곰은 서식지 확장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여우는 생태축 단절로 인한 로드킬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낭비둘기는 구례에 복원 개체 32마리를 풀어주었지만 구례 지역의 서식지 안전은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안전에 대한 책임은 낭비둘기의 책임이 아닌 환경부와, 지자체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당하게 잘 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가. 황새는 논습지, 갯벌, 자연습지가 필요하지만 영농형태양광, 갯벌 매립, 개발로 인해 서식지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지자체장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황새를 죽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생태 감수성도 사라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과연 복원이라는 이 중대한 책임을 그저 하나의 돈벌이 ‘사업’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 구곡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청왕봉의 모습 ‘Natural Capital’인 ‘자연자본’을 ‘Nature Positive’라는 목표로 2030년까지 자연 ‘자본’ 훼손을 멈추고 다시 역전시켜 2050년까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겠다는(다시 사용하기 위한?) 목표....생명의 근본마저 자본으로 취급하는 이 추악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생명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든 이야기인 걸까요? 글쓴이 : 정정환 _지리산사람들 사무국장, <새들은 우릴 기다려 주지 않아서> 지은이
    • 자연생태
    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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