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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 9월 19일 구례와 남원산내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 보아요!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연대는 계속됩니다. 구례 구례군민뿐 아니라 멀리 부산, 산청, 순천, 여수, 전주, 진주에서 온 시민들까지 100여 명의 참여자가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였습니다. 구례 읍사무소 광장에서 구례 풍물패 단원들과 함께 지신밟기와 강강술래로 행진의 문을 열고, 남생이놀이로 참여자들 사이 벽을 허물어 행진의 열기를 달구었습니다. 경찰서 로터리에서 피켓의 문구와 기후정의 구호를 외친 뒤 구례읍 일대를 돌아 구례 봉성산 정상으로 행진하였습니다. 봉성산 정상에서는 참여자들이 기후정의를 외치며 지리산 자락 각지에서 벌어지는 환경 파괴 현장을 알렸습니다. 또 19일 하루 행사만이 아니라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기후정의주간으로 정하고 워크숍, 책모임, 에너지토론회, 씨앗 나눔과 정책 제안, 기후정의 영화제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남원 산내 919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남원산내의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은 람천과 임천의 수질 오염 문제, 송전탑 건설, 탈핵 및 기후위기 대응 등 지역과 지구적 현안을 한데 모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다양한 체험 부스와 문화 공연, 토크 콘서트가 이어져 온 마을이 함께하는 축제이자 연대의 장을 선보였습니다. 행사장 한편에서는 참가자들이 수달, 다슬기, 맨홀 뚜껑, 반달가슴곰 등의 가면과 피켓을 들고 각 생물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색 인터뷰와 지역에서 다양한 현장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실천가들의 토크 콘서트도 열렸습니다. 이야기마당이 마무리된 후 참가자들은 마당에 동그랗게 모여 손을 잡고 '평화의 둥근춤'을 추며 행진을 준비했습니다. 이어서 노래에 맞춰 직접 만든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산내면 일대를 힘차게 행진했습니다. 함께한 모든 분, 그리고 이날 오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함께한 모든 분 덕분에 기후정의의 나무가 더 튼튼하게 자라겠지요. 고맙습니다.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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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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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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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지하수의 지속가능성과 주민생존권을 위한 먹는물관리법 개정 방향 토론회
- 지하수의 지속가능성과 주민생존권을 위한 먹는물관리법 개정 방향 토론회 -산청군 삼장면 사례를 중심으로- ◦토론회 일정: 9월 30일(수) 오후 2~4시 ◦장소: 삼장면 복지회관 회의실 ◦주최·주관: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 정혜경 국회의원실 ◦토론참여: 발제자 전원, 삼장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3인),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 (2인), 전국 및 경남 환경단체 (3인), 낙동강유역환경청 담당관, 산청군 담당관 ◦진행자: 윤주옥 (지리산마을살이기록단) <진행순서> 1. 모두발언 (삼장 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원회) 2. 인사말 (정혜경 국회의원) 3. 연대사 (전국지하수공동대책위원회(거제주민대책위원회)) 4. 발제 (10분 내외, 자료집 제작 예정) ① 삼장 투쟁의 시작과 현재, 먹는물관리법의 문제점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 삼장지하수보존비상대책위) ② 삼장지역 물환경설문조사 및 현장조사 결과보고 (지리산지하수지키기공동행동) ③ 삼장 생수공장 증량과정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이병대 박사, ㈜지리산산청샘물 환경영향조사서 심의위원) ④ 먹는물관리법 개정 방향 (하승수 변호사, 지리산사람들) 5. 질의응답 및 토론 (40분 내외) 생수를 만드느라 엄청난 양의 물을 퍼내 지하수가 말라 가고 있는 현실, 아시나요? 이번 토론회에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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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지하수의 지속가능성과 주민생존권을 위한 먹는물관리법 개정 방향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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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농민·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식량주권 실현" 이수미
- 농민·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식량주권 실현 _이수미(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 ○ 유엔 농민권리선언과 식량주권 201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선언’(UNDROP, United Nations Declaration on the Rights of Peasants)은 국제 체제에서 가장 야심 찬 문서 중 하나이다. 비아 깜페시나(La Via Campesina)에서 주도한 거의 20년에 걸친 운동의 결과물인 이 선언은 세계 식량의 대부분을 생산하면서도 빈곤, 폭력, 정치적 소외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한다. 유엔 농민권리선언은 다른 국제 문서에서 거의 명시되지 않은 권리들을 인정한다. 바로 토지에 대한 권리, 종자에 대한 권리, 물에 대한 권리, 강제 퇴거로부터의 보호, 의사결정 참여, 집단적 권리와 관습적 권리, 농민 지식에 대한 인정 등이다. 또한 식량주권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유엔 농민권리선언(2018년)에서의 식량주권은 농민과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여러 국가와 지역에서 식량주권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자신들의 먹거리 및 농업 체계를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먹거리 및 농업 정책 수립 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와 각각의 문화를 존중하는 생태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을 통해 생산된 건강하고 충분한 먹거리에 대한 접근권을 포함한다(유엔 인권이사회. 2018). * 유엔농민권리선언 참고 :https://viacampesina.org/en/2026/08/the-un-working-group-on-the-rights-of-peasants-undrop-will-soon-present-its-reports-on-land-and-seeds-in-geneva/ ○ 기후위기 극복, 지속가능한 농생태학 확대 적정한 소득과 생계에 대한 권리는 농업의 지속가능성에 있어 중요한 측면이며 농생태학적 전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농생태학적 원칙을 수용함으로써 농민과 농촌 노동자는 지속가능한 생계와 공정한 소득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정책 및 투자를 통해 농촌지역에서 생계 보장 방안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강화시켜야 한다. 농생태학은 생산 다각화,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촉진하고 용이한 영토 시장과 지역 식품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불평등을 줄이고, 생산자와 농업 노동자의 적절한 소득과 생계에 대한 권리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농생태학은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식량시스템을 위해 해결해야 할 사회적 측면을 고려하면서 식물, 동물, 인간 및 환경 간의 상호 작용을 최적화할 수 있다. 농생태학적 및 친환경농업을 포함한 지속가능한 농업 생산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을 강조해야 한다. 농촌 지역 사회의 노동 가치를 인식하고, 그들의 사회 경제적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적절한 소득과 생계를 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주와 빈곤,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고, 식량시스템 회복력을 위해 농생태학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기후위기 대응책으로 다국적 기업이 추진하고 있는 거짓된 해결책에 투자가 쏟아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농민이 주도하는 농생태학적 해결책에 할당되는 기금을 늘려야 식량시스템을 기후위기에 적응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식량주권은 관계, 연대를 중심으로 확장된다 세계의 농민운동, 농업계 뿐 아니라 소비자,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집단과의 폭넓은 연대 속에서 확장되어 온 것이 식량주권이다. 이들과 단결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힘을 강화하는 길이다. 식량주권 운동은 초기 농업 기반을 넘어 점차 확장되어 더 다양한 생산자뿐만 아니라 윤리적 소비, 공정 무역, 농촌 및 도시 개발, 기후 변화 대응을 촉진하며 변화를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 농촌에 사는 사람과 도시에 사는 사람 간의 새로운 관계를 확립하고, 생산 비용에 따라 공정한 가격을 보장하는 공공 정책을 개발하여, 농촌에서 생산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정한 소득을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건강한 식량에 대한 공정한 접근을 보장(via campesina)한다. 식량주권은 더 이상 상징적 구호가 아니다. 실제 구체적인 실천의 사례를 담고 있는 현장 투쟁으로 만들어진 실천적 개념이다. 식량주권 실현은 근본적인 먹거리 체계의 전환이다. 식량주권 원칙은 생산과 소비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식량주권은 다양한 대안 먹거리운동과 함께다. 식량주권 제도화의 핵심은 농정에 농민과 소비자가 주체로 참여(설계, 집행, 평가의 과정에 주도적으로)하는 것이다. 농식품 체계에서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원칙과 기준 마련이 중요하며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을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 식량주권은 시장과 기업의 요구가 아닌 식량을 생산, 유통, 소비하는 사람들의 열망과 필요를 식량 시스템과 정책의 핵심에 둔다(La Via Campesina) ○ 농업에서의 정의로운 무역 신자유주의 시장 체제는 세계의 굶주림과 빈곤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불평등 확대, 기아 증가, 극심한 양극화를 불러왔지만 여전히 막강한 힘의 우위에 서 있다. 더 나쁜 상황은 농업의 미래, 농업의 디지털화라는 명목으로 농민없는 농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아 캄페시나와 전세계 농민운동의 투쟁으로 식량주권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전 세계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유엔농민권리선언 15.4조에서 식량에 대한 권리가 명시되어 세계적으로 강조되었다. 또한 일부 국가는 식량주권을 헌법, 법률로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장벽이 농민 앞에 놓여 있고 자본주의 세계질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이윤추구 방식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자본은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해 대량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식량시스템을 선호하고 생태적, 인간적 영향은 무시되고 있다. 식량안보는 식량의 가용성, 접근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식량주권은 세계적 기아와 영양실조의 근간이 되는 구조적 요인을 강조하여 기술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규정한다. 식량을 상품과 이윤의 원천으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권, 문화적 가치의 원천으로 인식한다(Rachel Carlile, 2021). 식량주권은 식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식량주권은 농민에게 자신의 농사활동을 통제할 힘을 부여한다. 우리는 기후위기, 식량위기, 농업위기, 지역위기 시대에 살아가게 되었고 모든 일들이 실타래처럼 얽혀져 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도 없고, 미래의 지속가능성을 말하기도 어려운 시기다. 단편적인 접근이 아닌 종합적인 그림 속에서 우리의 요구를 펼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기다. 이 글은 9월 2일 곡성군농민회와 항꾸네 틈모임이 주관하여 연 "AI와 농촌" 제2강에서 이수미 녀름 소장이 발표한 주제의 자료집 "농민권리보장과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뒤웅박 씻나락에 글을 실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신 필자께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_대안문화웹진 <지리산人>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누리집 : https://nongye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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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농민·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식량주권 실현" 이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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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
- 소설小雪 송창섭 11월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손끝에서 시장기가 도집니다 지금쯤이면 시장통에서 흑설탕 밴 호떡을 팔지도 모릅니다 마당에 둔 밑이 둥근 절구를 보다가 곁눈질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새 자란 남천은 기온이 떨어질수록 작고 붉은 열매로 새를 불러들였고 나뭇잎 지는 일이 예사롭지 않아 운명이 그와 같을 거란 얘기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코스모스를 두고 미쳤다는 아낙의 푸념이 남의 일 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개울 물소리가 누그러지길 기다려 옷을 꿰입고 산을 올랐습니다 하루를 버리듯 등지는 뒷산 마루의 그림자에 때 이른 눈이라도 쥐어 보낼까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조금은 놓일 것 같습니다 ========================= 시에 보이는 배경의 풍경들이 가지고 있는 팽팽한 긴장감들이 압권이다. 시장통에서 장사하고 있을 아낙네와의 전화. 그 내용은 ‘나뭇잎 지는 일이 예사롭지 않아 운명이 그와 같을 거란 얘기’와.. ‘코스모스를 두고 미쳤다는 아낙의 푸념’이다. 그리고 이 전화 내용과 마지막 연의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조금은 놓일 것 같다’는 그 구절을 통해 펼쳐지는 상상이 소설(小說, 小雪) 한 편이다. 시가 이래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감추고 그냥 상황과 그 풍경만 서로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게 그려내는, 그래서 읽는 이들이 마무리 짓게 하는 시. 물론 시나 예술에 있어서 무엇이,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부분의 시들이 마음을 드러내고 싶어서 조급한 시들이고 이런 시들이 적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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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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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트 사회’를 꿈꾸다
- ‘프라우트 사회’를 꿈꾸다 모든 선거는 누가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되느냐가 아니라, 사실은 어떤 나라를 꾸려나가느냐의 첫 단추일 뿐이다. 우리는 한때 누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가 꿈꾸는 나라가 금방 올 줄로만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간정부가 들어서도, 일생을 민주화 투쟁을 했던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우리가 원하던 나라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원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보지도 못했다. ‘프라우트 사회’는 현실사회로 봐서는 이상주의적 측면이 강하지만 그래도 자본주의를 끝내고 도래할 세상으로 가장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데 한 번쯤은 살펴볼 만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맛보기처럼 잠깐이라도 그 사회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프라우트 사회는 요가명상 수행공동체인 아난다마르가의 창시자 P.R.샤카르(슈리슈리 아난다 무르띠)로부터 나왔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탄생되었으며 네오-휴머니즘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현실세계에서 구현시키고자 하는 사회, 경제, 정치제도라고 할 수 있다. 프라우트 경제체제의 핵심은 자기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 활용하는 한편, 수출입의 의존도를 줄이고 의, 식, 주, 의료, 교육을 자급자족하는 체제를 목표로 하며 농업(농산물가공 및 농기계 산업 포함)의 비중이 40-50% 정도가 되는 반면에 서비스 부분은 10%를 넘지 않는 산업 체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과에 따른 임금의 차등을 인정하되 최저소득과 최고소득의 차이를 자본주의 체제처럼 무한정으로는 인정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소득과 부의 상한선을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설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농업을 비롯하여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다양한 공업부문에는 도덕성과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바람직한 협동조합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노동과 자본이 분리되지 않는 협동조합식 기업구조 속에서 일자리와 적어도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임금을 누구에게나 보장하는 제도이다. 특히 자본의 역할이 그 투자된 지역에 남아서 그 지역의 생산성을 제고하는 기능을 하게 해서 자본의 유출과 인재의 유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체제는 정당정치를 지양하고 풀뿌리 자치제도에 근간을 둔 정당공천이 아닌 인물 중심적 선거제도를 수립하는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의 3권 분립의 체제가 통상의 민주주의 국가처럼 그대로 유지되지만, 프라우트에서는 “원로기구”라고 하는 주민들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그 지역의 도덕성과 경륜을 갖춘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높은 의식을 가진 사드비프라 급의 자기 통제력과 도덕성,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진 영적 수행자 조직이라고 할 수 있으며 평소의 비 선거기간에는 공직자들의 활동을 감시하며, 주민과 이들 3권 기관 간의 의사소통의 채널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선거기간에는 그동안 공직자들의 활동 상황을 선거인단에게 자세히 알림으로써 도덕성과 업무 능력이 잘 갖추어진 공직 후보자들이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프라우트는 Progressive Utilization Theory(진보적 활용 이론)의 약자(PRO+U+T)로서, 모든 우주상의 존재들이 같은 원천에서 나왔으며, 그 원천은 바로 “동체대비”의 사상을 그 기저에 깔고 있다. 그러므로 프라우트 철학에서는 모든 존재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형제자매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모든 존재들 중에서 가장 정묘한 마음을 가진 생명체로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이 우주상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자신들의 길(道)을 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세계의 적지 않은 곳에서 이미 프라우트 모델을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으며, 인도에서는 일부 풀뿌리 지역선거에서 프라우트의 강령을 내세우고 선거에 출마하고 있는 상황이다. 덴마크에 프라우트 본부(www.prout.org)가 있으며, 호주에는 프라우트의 이론과 실천 방안을 가르치는 대학과정(www.proutcollege.org)의 코스를 상주 및 온라인 강의를 통하여 제공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의 SMU 대학의 세계적인 경제학 교수인 라비 바트라(Ravi Batra)는 세계경제 대공황 및 프라우트와 관련된 베스트셀러, “1990년의 대공황”을 포함한 많은 책을 저술하였고, 세계 순회강연과 온라인 교육(www.proutworld.org)을 통해서 프라우트를 알리고 있다. 베네수엘라에는 프라우트 연구소(www.priven.org)가 있어 이론적 연구와 함께 프라우트 제도를 사회에 정착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프라우트는 생태계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네오휴머니즘의 사상에 기반을 둔 물질적, 정신적, 영적인 면이 모두 고려된 통합적이며 총체적인 대안이라는 점에서, 미래사회의 모델을 만들어 가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시하고 있어서 깊은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저런 정치적 사건들로 인해 사회의 의식이 매우 높아졌다. 이렇게 확장된 의식 속에서 선거가 치러지고 진정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이 프라우트 사회가 가지는 철학과 삶의 방식을 우리에 맞게 가져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바야흐로 계절은 또 바뀔 것이고 우리는 이제 모두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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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트 사회’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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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는 맛지구에게 숲을, 곰에게 칡덩굴을
- 곰에게 숲을, 칡덩굴을 전하러 갑니다 숲! 하면 벌써 시원한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하물며 숲에서는 숲 할 필요없이 숲과 한 몸이 되지요. 기후 정의 행진의 날 우리는 구례향교 앞에서 만나 숲으로 갑니다. 왜냐구요? 칡덩굴을 모아 구례 곰마루 쉼터의 곰에게 가려고 합니다. 산에 숲에 있지 못한 곰에게 숲을 전하려고요. 곰이 칡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칡 이파리 너풀거리는 한겨레 평화의 숲 앞에서 멀리 캐나다에서, 전주 남원 아영 하동 악양에서 모여 구례 우리와 마음을 한데 모읍니다. 칡인 줄 몰랐던 넓고 푸른 잎을 덩굴 채 잡아끌며 칡을 알아갑니다. 언젠가 맡음 직한 향이 코를 찌릅니다, 덩굴을 잘라 자루에 담습니다. 칡덩굴에 꽃이 딸려오고 풀이 딸려옵니다. 옆의 초등학생 아이가 재채기합니다. 그래도 칡을 끊어내는 아이의 손길이 자랑스럽네요. 울타리를 동여매던 칡을 제거하니 길이 환해집니다. 트럭에 가득 찬 칡덩굴을 싣고 구례 곰마루 쉼터로 달려갑니다. 가는 길에도 칡이 넝쿨 채 나무를 감고 하늘로 오르고 있네요. 대다수 처음 방문한 곰 마루 쉼터. 트럭에서 칡덩굴을 한데 끌어 내립니다. 트럭만 한 면적의 칡 한 덩굴이 바닥에 내려앉는 순간을 상상해보세요. 커다란 쑥떡 한 판처럼 말이죠. 쉼터 직원이 칡공을 만들어 보입니다. 우리 손을 거친 다양한 칡공, 커다란 공, 중간 공, 작은 공, 곰의 장난감인 타이어 빈 곳에 칡잎을 넣고 있어요, 작은 칡공에 과일을 넣어줍니다. 칡공은 오늘 곰들에게 주는 간식거리입니다. 운동장에 커다란 칡공을 넣고 작은 숲을 만들고 싶군요. 쉼터에 있는 곰 식구들이 다양한 동작과 언어로 우리를 환대합니다. 사육되던 곰이, 다리 하나가 없는 곰이, 왼쪽 다리에 상처가 흉터로 남아있군요. 앞이 보이지 않은 곰이 앞에 보입니다. 각자 곰이 사는 곳에 이름과 성별이 있고 그 옆에 "약" 이 궁금하여 묻자 정형 행동이 있어 약물을 복용한다고 합니다. 처음 곰마루쉼터를 방문하여 CCTV로 본 곰의 행동이 떠오릅니다. 지속적으로 배회하던 곰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그들에게 감각풍부화를 위해 우리가 고민할 때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한 칡덩굴을 모아 곰에게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문수사에서 옮겨온 곰에게 칡공을 주러 갑니다. 작은 칡 공에 사과를 넣어서 부기에게 줍니다. 아삭아삭 먹는 소리 들려주고 싶군요. 넝쿨을 잡고 뜯어 입으로 가져가는 무니, 수리를 한참 지켜봅니다. 문수사에서 울부짖던 그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던 그 눈동자가 비록 산은 아닐지라도 더 나은 자리를 찾아 다행입니다. 신선한 칡 이파리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푸릇한 칡 향과 영양분을 산에서 숲에서 함께 하던 곰의 기억이 야생성이 살아나기를, 사육되던 곰들, 일일이 이름을 다 말할 수 없어도 그들에게 오늘 우리 각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숲이 곰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구례에 곰마루 쉼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곰에게 가는 처음이 두 번 세 번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칡덩굴처럼 연결된 시간을 뿌듯해하며, 오늘 작은 활동이 일회성이 아닌 두 번 세 번의 내일로 이어지기를 희망하며 곰들과 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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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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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는 맛지구에게 숲을, 곰에게 칡덩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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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곡 수탈
- 미곡 수탈 / 162.2X130.3 / 아크릴 물감, 캔버스 / 2020 여순항쟁이 일어나기 전 여수나 순천 또는 전국적으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미곡 수집령으로 쌀 가격이 폭락하고 정부의 관리들은 착취한 쌀을 창고에 넣어두고 비싸 질 때까지 풀지 않았다. 농민들의 그 피 같은 쌀로 자신들의 배만 불릴 기회를 엿보았고 실제로 두 배 이상 폭등 할 때 팔아서 부를 축적하였다. 이런 부류를 당시는 모리관상배라 하였다. 관리들은 경찰이 비호하는 가운데 농민에게서 쌀을 무자비하게 착취해 갔다. 여수농민들은 자신이 농사 진 쌀을 두 배 값을 주고 사먹어야 할 상황이었다. 당시 여순지역에 태풍까지 와서 그야 말로 삶은 피폐해져 있었다. 신문기사 한 토막에 순천에 사는 딸이 너무 굶주려 감춰둔 쌀을 자루에 넣고 몰래 기차를 타던 아버지가 철도 경찰에 걸려 쌀을 압수당하고 몽둥이로 머리를 맞아 부상당했다는 기사도 있다. 여수토박이인 86세의 한 할머니는 자산공원 밑이 자신의 집이었다고 한다. 집 아래 종화동 식량영단창고(정부의 창고)에서 여순항쟁 때 활짝 열린 식량영단창고에 쌀이 썩어나고 쥐가 들끓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말해 주셨다. 이렇게 많은 쌀이 썩어나고 있는데도 쌀을 풀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에게 굶주린 민중이란 무엇이었을까? 작품 속에서 한줌의 쌀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농부의 저항! 우리민족에게는 쌀이란 목숨이었다. 14연대의 봉기로 촉발된 여순항쟁은 여수 민중의 분노였다. 작품을 위해 나는 내가 직접 모델이 되어 그림 속에 등장한다. 이 작품은 순천낙안읍성 민속마을에서 촬영한 것이다. 내가 한복을 입고 스스로 사진 찍을 수 없어서 배경이 된 집의 주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집주인은 자기 집을 위주로 사진을 찍는 바람에 집은 크게 나오고 나는 아주 작게 사진에 나왔다. 거의 모든 사진이 그랬다. 아마 집주인이 자기 집을 잘 그려 달라는 무언의 압력이었을 것이다. 작업하기 참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칼럼에 게시된 글과 그림의 저작권은 박금만 작가에게 있으며, 작가의 허락 없이 복사하거나 다운로드하여 활용하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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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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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곡 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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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의 둘레길 완주2] 남원 편
- 지리산둘레길 남원 주천센터를 보통 지리산둘레길 시작점이라 부른다. 둘레길은 어디서든 시작해도 둥근원이니까. 한바퀴 도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개하기 쉽도록 ‘주천센터’를 시작점으로하여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 운봉으로 향하는 길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1구간- 남원 주천센타->운봉: 거리 14.9km / 난이도 중/ 6시간>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개천가를 따라, 농로를 따라 걷다가 숲길로 들어섰는데, 도로가 나면서 도로가를 걸어 숲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주천센터 앞 개울을 건너고, 도로를 건너 마을길을 따라 숲 입구까지 가면, 개미정자가 숲길의 시작점이다. 개미정자는 ‘왜적이 침입해 오자 개미가 잠든 장군의 다리를 물어 알려, 왜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있는 쉼터이다. 이 숲길은 지리산 구룡폭포에 이르는 등산로와도 만나기 때문에 여름철 산행코스로 자주 다녔던 길이다. 오래전에는 구룡폭포를 돌아 다시 원점회귀 하는 1-1코스가 있었는데, 이번에 와보니 1코스라는 말이 없어지고, 둘레길 정식코스가 정비되면서 돌아 내려오는 코스는 없어졌다. 구룡폭포 등산로쪽으로 포함시킨 것 같다. 육모정에서 시작하는 구룡폭포계곡길을 따라 폭포까지 다녀오는 등산로도 좋은 길이다. 지리산을 올라 운봉방향으로 하산하면 운봉이 워낙 고지대에 있는 마을이라 하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산을 내려 평지길 마을과 논길, 그리고 다시 조그만 숲길을 내려서, 개천가를 따라 걷다보면 1코스 종점에 다다른다. 이 길에서 지나게 되는 마을 중 ‘노치마을’이 있다.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에서 유일하게 지나게 되는 마을이라고 한다. 잠깐 길에서 벗어나 500년 된 보호수가 있는 쉼터로 찾아들면 백두대간 정맥도와 호랑이상, 일제침략기에 나라의 정기를 막는다고 박은 돌 등을 볼 수 있다. 시원한 그늘에서 한숨 돌리면서 백두대간의 정기를 마시고 가자. 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숲이 있다. 2000년에 ‘아름다운 숲’으로 대상을 받은 서어나무 숲이 행정마을에 있다. 개천가길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 잠깐 들렸다 가면 좋은 곳이다. 보통은 시작점이라고 생각하는 주천에서 오르는 코스들로 많이들 다니나, 사실 이 코스는 역방향(?)으로, 운봉에서 시작하여 내려오는 코스로 걷는 것이 쉽다. 물론 역방향이라는 게 등산에서 의미는 없다. 난 이 코스를 좋아해서 숲길만 여러 번 이쪽, 저쪽 방향에서 많이 걸어 보았는데 어느 방향에서 오르고 내리던 간에 그 나름의 묘미가 있어 아주 좋은 코스다. <2구간. 운봉-인월 : 거리 9.7km / 난이도 하 /3-4시간> 서림공원에서 출발하는 이 코스는 둘레길 구간 중 가장 짧은 코스이다. 마을길이 대부분이라 그늘이 거의 없다, 이 구간에서는 ‘황산대첩비’와 국악의 성지 ‘동편제 마을’을 지난다. 황산대첩비와 고려말기 왜적을 물리친 이성계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왜구가 여기까지?’ 놀란다. 하긴 1코스의 개미정자도 왜적의 침입이었군. ‘황산대첩’이라고 하면 삼국시대의 황산벌싸움을 생각하게 하는데, 이성계와 얽힌 황산은 벌판이 아니라 뒤에 있는 황산을 일컫는 이름이다. 바로 옆에 있는 동편제 마을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동편제 마을을 둘러본다. 동편제를 맥을 세운 송흥록과 국창 박소월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짧은 구간에 난이도도 없는 구간이어서 여유롭게 쉬엄쉬엄 편안하게 걷는다. 이 코스는 짧고, 다음 ‘인월-금계’ 코스는 길기 때문에 3코스를 약간 걸어두는 것이 좋다. 오전에 출발하면 2코스 종점인 인월마을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먹을 수 있다. 인월센타에서 조금 휴식을 취하고, 다시 3코스를 출발하여 산을 넘어 장항마을까지 걸어두면 3코스의 부담을 좀 줄일 수 있다. 2코스는 인월 버스터미널 인근에 주차를 하고 남원버스를 타고 시작점인 서림공원까지 가고, 코스 걷기가 인월마을에서 끝나면 차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만약 코스를 연장하여 장항마을까지 오후에 걸었을 경우에도 장항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인월마을로 돌아올 수 있다. 지리산둘레길 코스 걷기가 끝나고 여력이 남으면 남원 끝자락에 위치한 ‘실상사’에도 들러 보면 좋다. 실상사는 계곡옆 평지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문화재를 보유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3구간. 인월-금계 (거리 20.5km / 난이도 상 /시간 8시간)> 인월에서 시작하여 여러마을을 지나, 동구재를 넘으면 남원과 함양의 경계를 만난다. 남원 인월센터를 출발하여 항양센터에서 끝나게 되는 구간이다. 구간 중 가장 긴 구간이지만, 거의 모든 길이 숲길로 이루어져 있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둘레길 순례자들이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평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인월에서 장항마을로 넘어가는 구간은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숲과 계곡을 만날 수 있는 예쁜 길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피로를 풀며 쉴 수 있다. 배너미재를 넘어 장항마을에서 감식초공장 방향으로 도로를 건넌다. (2코스를 할 때 장항마을 감식초공장에서 끝냈다면 3코스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농장과 만난다. 사과농장의 빨간 사과, 다랭이 논의 푸르름, 아름다운 숲길, 그리고 설악초가 하얗게 피어있는 한옥. 그래서 순례자들이 이 코스를 좋아한다. 산자락을 타고 둘레둘레 힘들이지 않고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둘레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숲길 중간에 만나는 ‘동구렁 쉼터’는 이 구간의 또 하나의 묘미이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간절히 생각나게 하는 분위기의 주막이다. 3코스에는 포토존이 있다. 언덕을 넘어가는 곳(아래 사진)과 대나무 숲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람을 찍은 사진들은 아주 멋진 연출이 된다. 이제 3구간을 타고 남원에서 함양으로 넘어왔다. 길은 다시 함양으로 이어진다. (다음 '함양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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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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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의 둘레길 완주2] 남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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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시간
- 계절이 달라졌다. 그 뜨겁던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 가을이 온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고, 자기 전엔 창문을 닫고 이불을 덮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그 시간 속에 살아간다. 식물들도 물론 그러한 시간의 변화 속에 살아간다. 유난히 잎을 빨리 떨구는 벚나무들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벌써 앙상한 가지를 보여준다. 식물의 시간? 식물은 시간을 어떻게 느끼고 있고, 어떤 시간을 살아갈까? “광주기성과 생체시계” 식물의 계절 변화에는 온도뿐만 아니라 빛의 변화가 매우 중요한 신호로 작용하고 있고, 이를 광주기성이라고 한다. 광주기성이란 하루 동안 밝고 어두운 시간이 반복되는 주기의 변화에 식물이 반응하는 현상을 말한다. 장일식물, 단일식물이라는 구분도 여기에서 나온다. 봄과 초여름처럼 낮이 길어지는 시기에 꽃을 피우는 식물을 장일식물, 가을처럼 낮이 짧아지는 시기에 꽃을 피우는 식물을 단일식물이라고 흔히 설명한다. 그런데 조금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식물이 정말 '낮의 길이'를 재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많은 식물에게는 낮의 길이보다 밤이 얼마나 길게 이어지는가가 더 중요한 신호가 된다. 긴 낮을 좋아한다고 알려진 장일식물은 사실상 '짧은 밤'을 필요로 하고, 짧은 낮을 좋아한다고 알려진 단일식물은 '긴 밤'을 필요로 하는 셈이다. 그러니 식물에게 계절을 알려주는 것은 단순히 햇빛이 얼마나 오래 비추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해가 진 뒤 찾아오는 어둠, 그리고 그 어둠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가 중요하다. 식물은 밤을 세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식물이 우리처럼 시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많은 생명체들에게는 생체시계(circadian clock)가 있다. 약 24시간을 주기로 반복되는 유전자와 단백질의 활동 변화가 서로 맞물리면서 식물의 하루를 만들어낸다. 잎의 움직임, 성장, 발아, 기공을 통한 기체교환, 효소 활성, 광합성과 같은 작용이 생체시계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생체시계가 단순히 하루를 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식물은 자신의 생체시계와 바깥의 빛을 비교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알아챈다. 밤이 조금씩 짧아지는지, 길어지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며칠, 몇 주 동안 계속되는지를 감지한다. 그렇게 식물은 지금이 어느 계절쯤인지를 가늠한다. “식물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다” 식물에게는 달력도 시계도 없다. 그 대신 태양계의 거대한 움직임에 의해 좌우되는 빛과 어둠, 그 반복되는 리듬이 달력이다. 우리는 시간을 시계로 측정하지만, 식물은 어쩌면 몸으로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을 숲을 걷다가 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면, 단순히 '가을이 왔구나'라고 생각하는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저 나무는 지금 어떤 시간을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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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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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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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바가 없는 발걸음을 누가 막을 것인가 _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을 마치며
- 바라는 바가 없는 발걸음 어제는 날이 맑았다. 오랜만에 아는 얼굴들을 마주했다. 처음 보는 이들이어도 좋았다. 기후정의행진에 온 이들은 모두 날씨처럼 맑았다. 물론 그 얼굴 한쪽에는 먹구름을 조금씩들 갖고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가 맑은 날씨에도 먹구름을 간직한 하늘 같다는 것을. 우리는 깃발을 들었다. 피켓을 보였다. 소리를 질렀다. 아무 소리도 없이 산길을 올랐다. 그리고 이야기도 했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파랑과 하양이 하늘에 가득한 날이었다. 세상은 불 타고 있다. 우리도 안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오늘 깃발을, 피켓을, 목소리를 높이 쳐든다고 해서 세상의 불을 끌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면 그건 웃기는 일이다. 하루아침에 타오른 불길이 아니다. 세상은 계속 불 탈 것이다. 그러나 나는 걷는다. 나는 소리를 낸다. 나는 바라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불을 끌 생각이 없다. 그 불이 꺼지든 꺼지지 않든 나는 이 불길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그저 소리를 낸다. 내가 불을 끌 수 없다는 사실이 내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나는 악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나는 악을 따르지 않을 뿐이다. 내가 악을 무너뜨린다거나 불을 끈다거나 무슨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는 환상적인 희망은 내게 필요하지 않다. 그건 나를 더욱 밑으로 끌어내리는 엿 같은 것이다. 나는 이 종말의 길에서 내가 갈 길을 가는 것뿐이다. 내 발걸음에는 바라는 바가 없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희망이 나를 유혹해도 나는 희망을 품지 않을 것이다. 희망의 등에는 늘 절망이 업혀 있으니까. 나는 바라는 바 없이 갈 길을 가겠다. 그게 내 남은 언어. 나의 유일한 언어가 될 것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얼굴에 남은 먹구름. 여전히 내가 어리석기 때문이다. 이 먹구름을, 슬픔을 거두어 그 슬픔마저도 내가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연료로 써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머지 않아. 나는 어쩌면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희망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먹구름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울고 싶다는 걸. 잘 가, 얘들아. 안녕. 우리는 헤어진다. 또 헤어진다. 또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헤어지겠지. 안녕.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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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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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바가 없는 발걸음을 누가 막을 것인가 _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을 마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