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보기
-
-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 에 대하여
-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에 대하여 『요가 수트라』는 고대 인도에 난무하던 다양한 요가 철학을 통합하여 총 4장 195절의 수트라로 구성한 짧고 함축적인 요가 경전이다. ‘요가’라는 말은 ‘합일’이라는 뜻으로 제한된 에고 의식(개체의식)을 높은 영적 의식 수준(지고 의식인 전체의식)으로 끌어올려 합일을 이루는, 그래서 궁극의 자유로움(해탈,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수행의 한 방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요가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과 영혼을 하나로 묶어주는 삼위일체의 조화와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몸의 자세나 호흡법 등의 바디 요가(하타요가)는 이 궁극의 합일을 위해 몸을 만드는 수단이며 마인드 요가와는 다르다. 전통적으로 요가는 의식의 자기 변형을 이루어 깨달음, 자유, 해탈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이라고 보면 된다. 요가 지식은 전통적으로 밀교의 형태로 스승이 제자에게 직접 가르치는 방법으로 전수되었다. 그러다 보니 혼란이 없지 않았는데 약 2500년 전에 파탄잘리(붓다 이후 2~3백년 사람으로 봄)가 『요가 수트라』를 지어 요가를 집대성하면서 요가의 마스터, 요가의 대부라고 불리게 되었다. 파탄잘리는 『요가 수트라』에서, 요가란 늘 움직이고 있는 마음을 고요 속으로 가라앉히는 것이며 그 고요는 유체 이탈이나 황홀경 같은 무의식적 상태가 아니라 완전하게 깨어 있는 의식의 상태라고 말한다. 완벽한 고요함과 완전한 의식으로 현재의 순간에 깨어 있는 그러한 의식 상태가 요가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요가는 우리가 현실에서 깨어 있으면서 보다 큰 의식적 단계에서 작용할 수 있도록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요가 수트라』2장 2~8 ►크리야 요가의 목적은 집중하는 힘을 기르고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번뇌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 있다. ►번뇌의 원인, 곧 깨달음을 방해하는 다섯 가지 장애물은 무지, 에고의식, 집착, 증오, 그리고 목숨에 대한 애착이다. ►무지는 번뇌의 밭이다. 다른 번뇌가 잠자고 있든지, 요가 수행으로 미약하게 되든지, 억눌려서 중단되든지, 혹은 활동하든지 간에 항상 그의 밭으로써 존재한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한 것으로, 깨끗하지 않은 것을 깨끗한 것으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참 자기가 아닌 것을 참 자기로 잘못 생각하는 것이 곧 무지이다. ►의식 자체(아트만, 참 자아의 순수의식)와 의식을 반영하는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하는 것이 곧 에고 의식이다. ►집착은 쾌락에 머물려고 하는 마음에서 생긴다. ►증오는 괴로움에 따라서 일어나는 마음이다. 위의 말씀은 『요가 수트라』의 2장에 실린 것인데 2장의 전체 구성은 요가의 수행에 대한 장으로 먼저 요가 수행의 첫걸음인 행위의 요가(크리야 요가)에 대해 말한다. 이어서 과거의 생각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카르마의 잠재적 경향(업, 삼스카라)에 대해 말하며 다음으로 제거되어야 할 괴로움의 원인인 '에고 의식'과 함께 아트만(진아)에 대해서 말한다. 마지막으로는 구체적인 수행법인 아스탕카 요가 8가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이 글에서는 인용한 구절에 대한 생각과 함께 요가 수행의 핵심인 아스탕카 요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위에 인용한 제2장 2절에서 8절까지에는 요가 수행을 방해하는 번뇌의 원인 5가지를 제시한다. 깨달음을 방해하는 이 다섯 가지 장애물은 무지, 에고의식, 집착, 증오, 그리고 목숨에 대한 애착 등이다. 여기서 무지는 우리의 본성(순수의식)에 대한 무지를 의미하며, 에고를 중심에 두고 에고 의식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무지를 의미한다. 이것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 순수한 것과 불순한 것, 나와 참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의 엄청난 세상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며, ‘나’가 나의 전부라고 알며 살 뿐 ‘참나’에 대한 의식의 확장 자체를 아예 모르고 사는 것이 무지이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번뇌의 근원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생존본능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우리의 의식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그것이다. 이 강력한 두려움의 본능이 사는 동안 끊임없이 번뇌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는 살고자 하는 강한 집착의 본능적인 힘이 아주 집요해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압도적이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동적인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생존과 안위를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능적이고 자동적인 감각이기 때문에 번뇌와 고통의 원인이 된다. 이렇게 파탄잘리는 요가의 수행에서 깨달음을 방해하는 번뇌의 원인으로 불가에서 말하는 탐, 진, 치, 3독(三毒)과 에고와 죽음,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다. 파탄잘리는 이러한 요가를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번뇌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8가지의 탁월한 처방을 내놓는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는 아쉬탕카 요가이다. 이 요가를 수행하면 몸과 신경계에 누적된 불순함이 깨끗이 정화되고 순수의식(푸르샤)과 현상세계(프라크르티)를 식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고 한다. 좀더 부연하면 첫 번째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회적 도덕률인 5가지 계율이고(야마), 두 번째는 자신의 완성된 삶을 위해 필요한 5가지 계율이다(니야마). 그리고 세 번째는 명상 수행을 돕기 위한 다양한 몸의 자세를 계발하는 것이다(아사나). 네 번째는 마음의 활동을 잘 컨트롤 할 수 있는 바른 호흡법이며(프라나야마) 다섯 번째는 마음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흩어지게 만드는 감각기관의 활동을 컨트롤하여 의식이 한 방향으로 바르게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프라티야하라). 그리고 여섯 번째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을 하나로 집중시키는 것이며(다라니), 일곱 번째는 마음이 가라앉아 고요해진 상태에서 바른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고(디엔), 여덟 번째는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이 그대로 순수의식으로 머물러 있는 상태(사마디)를 말한다. 이것이 7천 년 전 고대 인도의 시바로부터 시작된 그리고 이후 개인으로 전수되어 오던 탄트라 요가를 파탄잘리가 대중을 위해 8가지로 정리한 아스탕카 요가다. 이러한 수행이 깊어지고 사마디(삼매)의 경험을 조금씩 쌓게 되면, 삶에서 고통을 초래하는 원인들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음을 점차적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의식에 주의를 기울이면 척추를 통해 흐르는 차크라 에너지들(쿤달리니 파워)이 서서히 깨어나고 의식의 가장 깊은 상태에 이르러 몸과 마음이 순수의식 자체를 경험하고 영혼과 하나가 되는 합치(요가)가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다. 이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일상의 자신을 섬세하게 들여다 봄으로써 내면의 지혜가 점점 깊어지고 삶의 번뇌를 모두 극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렇게 일상의 삶 속에서 육체와 호흡을 정화하고 에고의 무지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순간순간 깨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몸과 마음과 영혼의 조화를 이루는 수련을 하며 흔들림 없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 에 대하여
-
-
행간행간行間
- 행간行間 김영춘 겨울이 봄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추적추적 비가내리던 것처럼 넘기는 갈피마다 무엇인가 글썽이기를 바랐다 있는 듯 없는 듯 햇빛이나 바람 같은 것들이 따뜻하거나 서늘하게 살고 있기를 바랐다 나의 말과 말이 겨우 이어져 살아나려고 할 때 영영 분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떠난 어머니나 봄날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기를 바랐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뭇머뭇 서성이게 되기를 오래 바랐다 ================================================ 행간行間은 시의 한 행과 행 사이를 말한다. 시를 쓸 때 행과 행의 사이에 시인들은 많은 것을 숨기고자 한다. 그것이 시다. 많은 여백을 만들어 그 여백에 또 많은 숨은 그림을 그려넣고 싶은 것이 시 쓰는 자의 소망이다. 햇빛이나 바람 같이 따뜻하거나 서늘한 것들, 어머니나 봄날 아지랑이 같은 사는 일의 그리움 같은 것들, 그래서 사람들이 순간 머뭇거리며 무엇인가의 생각에 사로잡히게 하고 싶은 것이다. 어디 시뿐이랴, 사는 일의 순간순간이 이미 그런 것을.
-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
행간행간行間
-
-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서 산이 보고 싶다니 산에 가기 전에 산은 이미 네 옆에 와 있다. 어디서 어디까지 산인지 모를 산에 도착하여 산을 딛고 산을 간다. 가고 싶던 지리산, 가자, 겁내지 말고. 이미 산에 왔잖아. 산에 왔으나 앞으로 가자고. 급하게 먹는 밥처럼 들어가지마. 산이 부르니? 가고 싶어 산에 간다니까 지리산이라서 간다니까, 지리산이 취향이야? 산에 가는 틈에 지리산의 틈새에 끼어 가는 중이야. 너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네가 가는 거야. 언젠가 산에 오지 마란 소리를 들었지. 산을 봐봐, 네가 지나치는 것 모두 산이야. 눈앞을 스치는 거미줄이 너를 기다리고, 우수수 낙엽 위로 미끄러진 바닥이 바로 산이야. 산이 네 몸과 하나 되는 그 착지에 목이 말라 턱없이 무너지는 산을 무너질까 두려워 시멘트벽을 쌓은 벽이 벽을 친다. 괴물 같은 벽을 돌아 우리를 돌아가게 하는 지리산에 주저앉아 가도 가도 길인 길을 어쩌라고, 언제 도착할까? 몇 시간 걸려요? 몇 km인가요? 가도 가도 보이지 않은 내리막. 턱턱 걸리는 돌부리, 가슴을 콕콕 찌르는 너는 멀리 보면 다정한 골짜기 너머 아득한 능선 찢어질 듯 닿지 않은 발이 헛발을 내리고 다시 오르내리는 능선은 바로 지금 네 능선, 신발 아래 느껴지는 감각이 가슴으로 퍼져온다. 생명을 밟고 또 밟은 너를 감싸는 공기, 산에 퍼지는 숲의 냄새 그 숨결 너는 모르고, 너를 보는 숲에서 잉잉거리는 벌의 추격에 잉잉대는 몸은 몸대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 빠져 산에서 허우적댄다. 산에 갔으나 산을 보지 못한 산속에 두고 온 것이 많아 또 가야 할 산은, 가지 않은 너를 몸으로 쓸 수밖에 없다. 산에서 앞으로 가지만 말고 산을 둘러보고 좀 더 머물다 올걸, 그 하얗게 내려앉을 별을 보고 별 위로 걸던 천상의 별꽃 허리 굽혀 찬찬이 들여다볼걸, 햇빛을 메고 가는 길 위로 떨어지는 햇빛 떨어지는 체력 안고 떨어지는 기분 엎어지는 발걸음 닥쳐올 시간 미리 겁먹지 말고 그늘에 앉아 숲의 노래 고요나 침묵 듣다가 올걸, 내 속에속에 불던 은밀한 바람 숲에 두고온 바람 앞으로 가지도 머물지도 못한 조심스러운 지리산 바라만 보는 지리산 오래오래 그 자리에 남아 품어나 주게,
-
- 고을이야기
- 구례
-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
-
소녀상을 지키는 마음으로 연대와 협력, 기후위기 앞에 서다 - '함께평화' 임미루 대표 인터뷰
- 지리산 자락, 산청에서 평화와 인권을 위해 활동해온 '함께평화' 임미루 대표를 만났습니다. 경상도와는 인연이 없던 부부가 어떻게 지리산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지리산종교연대에서 만난 스승들이 대표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산청 평화의 소녀상 건립부터 '함께평화' 창립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위안부 할머니를 기리는 활동, 함께평화영화제, 그리고 바쁜 일상 속 자신만의 쉼을 지켜가는 방법까지— 지리산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소녀상을 만들고 보전해온 '함께평화' 회원으로 동참해 주세요 1만원의 후원금으로 평생회원이 되어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 : https://band.us/n/aba4A8fcEeM3H 후원계좌 : 농협 351-1205-4015-13 (예금주:함께평화) 00:00 인트로 00:49 함께평화 임미루 대표 소개 01:46 지리산과의 인연 – 이주 계기와 성심원 04:54 나를 키운 사람들, 지리산종교연대 10:49 '함께평화'는 어떻게 시작됐나 – 평화의 소녀상 건립 13:49 함께평화가 하는 일 – 교육, 위안부 할머니 기림, 영화제 20:15 쉼과 휴식의 의미 – '쉼 지리산' 힐링캠프 22:47 임미루 대표의 자기 충전법 – 차와 밥 26:42 소녀상을 지키던 마음으로 연대와 협력을 29:32 지리산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함께평화 #임미루 #산청 #평화의소녀상 #지리산사람들TV #지리산종교연대 #위안부할머니 #기림의날 #함께평화영화제 #지리산둘레길 #윤주옥 #생명평화
-
- 사람이야기
-
소녀상을 지키는 마음으로 연대와 협력, 기후위기 앞에 서다 - '함께평화' 임미루 대표 인터뷰
-
-
산을 깎던 남자, 지리산을 지키다 - 지리산 초록걸음 최세현 대표 인터뷰
- 시멘트 회사에서 10년간 산을 깎던 남자가, 지리산에서 26년째 닭을 키우고 있습니다. 지리산 초록걸음 최세현 대표는 지리산댐 백지화(2018)를 이끌어낸 지리산 활동가이자, 매일 아침 '숲샘의 폰카 일기'로 지리산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동시에 기록해온 사진가이기도 합니다. 또한 간디유정란을 경영하며 닭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산을 깎던 삶에서 산을 지키는 삶으로,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닭을 돌보며 얻은 '꾸준함'의 의미까지 — 최세현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최세현 대표의 '숲셈의 폰카일기'는 페이스북에서 검색하시면 바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계란은 간디유정란을 검색해 주세요. 00:00 인트로 00:37 최세현 대표 소개 01:12 산을 깍는 일을 떠나 지리산으로 02:36 생태귀농과 함께 시작한 환경운동 03:29 지리산 운동 20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04:57 다시 불거지는 댐 논쟁과 반대 이유 - "강은 흘러야 산다" 07:10 숲샘의 폰카 일기 09:58 26년 개근, 꾸준함의 비결 -"닭이 제 스승입니다" 11:38 간디유정란 창업기 13:17 안솔기 마을 이야기 – 간디생태마을의 시작과 변화 15:23 냄새 없는 건강한 양계장의 비결 17:32 회원과의 관계 -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닌 작은 공동체" 19:40 자녀 교육 이야기 – 간디학교와 아이들의 자립 21:48 유일한 여행, 그리고 일상이 주는 행복 23:27 지리산에게 전하는 마음 #지리산사람들TV #윤주옥 #최세현대표 #간디유정란 #지리산댐백지화 #안솔기마을 #간디학교 #생태마을 #귀농귀촌 #유정란 #야마기시양계 #지리산 #산청 #환경운동 #소농직거래 #폰카일기 #숲샘
-
- 사람이야기
-
산을 깎던 남자, 지리산을 지키다 - 지리산 초록걸음 최세현 대표 인터뷰
-
-
상상할 것인가 상실할 것인가
- 여름에 감기라니. “아니, 땀이 줄줄 나는데 어떻게 감기에 걸릴 수 있죠?” 침만 넘어가도 통증으로 답하는 나의 목에게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신호 줬잖아?” 아뿔싸, 그랬구나. 목은 내게 계속 따끔따끔하게 신호를 보냈던 거예요. 목감기가 올 거야, 따뜻한 물을 마셔, 목을 따뜻하게 감싸, 좀 쉬어, 하고요. 그러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여러 날을 앓았지요.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몸에서 나비효과가 일어났던 걸까요?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내 몸에서 감기라는 태풍을 일으킨 ‘사소한’ 변화는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오로지 목의 문제였을까요? 어쩌면 이것은 육체의 문제일 수도 있고 정신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목에서 시작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장에 사는 균에 의해 시작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염증이나 바이러스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평소 내가 늘 하는 자세와 태도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드러난 감기는 결말이 아니라 더 큰 한 방을 예고하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사소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런던에 사는 루시(Lucy Jiachun Hu)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가꿔 온 공동체 정원을 시의회가 철거할 계획이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그들만의 나비효과를 계획했습니다. 루시와 친구들은 나비를 유인하는 꽃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이 철거될 거라는데 왜 꽃을 심었을까요? 꽃을 심으면, 나비가 모여들고, 나비는 박쥐의 주요 먹이라서 박쥐가 정원에 나타날 것이고, 박쥐가 정원에 둥지를 틀면 그 공간이 종 보호 지역이 될 것이며, 결국 시의회는 종 보호 지역을 함부로 파헤칠 수 없게 될 것이기에, 정원 철거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이 바란 나비효과는 제대로 나타났을까요? 안타깝게도 당장 박쥐는 오지 않았습니다.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눈으로 보면 루시와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바보 같은 짓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력, 창의성 그러니까 무수한 연결고리를 과소평가하지 않는 공생을 향한 애정 어린 발상이야말로 지금 너무나 이성적이고 너무나 인과를 중시해 능력주의로까지 변질된 이 딱딱한 세상에 꼭 필요한 나비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벌이 사라지면, 참새가 사라지면, 환삼덩굴과 은행나무가 사라지면 생길 무수한 연쇄 반응을 상상하는 힘은 얽히고설킨 연결고리를 따라 오는 거대한 나비효과의 신호를 알아차리게 해 줄 테니까요. 상상하지 못하는 자들의 도시는 신호를 받지 못한다 큰 대형 사고가 생기기 전에 그와 비슷한 가벼운 사고가 스물아홉 번, 그리고 위험한 징후나 전조가 300번 정도 반드시 먼저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습니다. 이 통계적 법칙이 모든 사안에 들어맞진 않겠지만,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가볍게 넘기면 안 된다는 점을 일깨울 때 종종 인용됩니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 구조는 계속 신호를 보냅니다. 이러다 큰일 난다, 하고요. 그러나 상상하지 못하는 자들의 도시는 허점을 알려 준 사고를 신호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치하다 결국 대형 사고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이 불볕더위는 과연 무엇의 전조 증상일까요? 아니면 반대로 어떤 신호를 무시해 온 나비효과일까요? 목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한 탓에 며칠을 앓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수한 고리로 연결된 내 몸에, 이 사회에, 나아가 전 우주에, 얼마나 다양한 나비효과가 벌어지고 있을지를 상상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들의 보금자리에 공항 하나를 들이는 일이, 야생동물의 집에 도로를 뚫고 케이블카를 놓는 행위가, 원전을 추가하고 데이터 센터를 짓는 일들이 지구의 시간에서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맞닥뜨릴 나비효과가 사랑하는 이를 잃는 거대한 사고나 재난, 나아가 멸종의 형태로 찾아오길 바라지 않는다면요. 목감기가 차츰 잦아들고 기침과 콧물이 수줍게 나올 때쯤, 귀와 턱이 만나는 지점이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사랑니가 솟아 나오고 있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우와, 나라는 몸뚱어리의 신비로움이 어디까지 나를 끌고 갈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덕분에 요즘 나의 더듬이는 어디를 향해 나 있는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너무, 나의 고통에만 집중하고 있었더라고요. 내 안의 충만함을 넘어서 지구로 확장되는 연결을 가능케 하는 상상력을 잃지 않으려면, 더듬이의 방향을 잘 잡아야겠습니다. 전쟁 덕분에 이윤을 보는 자들로부터 인간다움의 절멸을 느껴야 하는 요즘, 당신의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봉성신문>에 실렸습니다.
-
- 기후위기
-
상상할 것인가 상실할 것인가
-
-
지리꽃길 0811
- 「섬진강 편지」 -지리꽃길 0811 새벽 5시 세석대피소에서 산행 준비를 하는데 촛대봉 너머 동녘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예사롭지 않은 아침을 예감하고 발걸음이 앞선다. 5시 30분 촛대봉에서 천왕봉을 마주하고 아침 빛을 맞이한다. 일출을 준비하는 하늘은 붉고 운해는 지리골골을 가득 채우고 넘친다. 노고단과 반야봉 사이, 연하천, 벽소령 봉우리 봉우리 사이로 흐르는 운해 폭포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어! 아! 오!, 단 세 마디로 쓰는 지리산의 대서사시다. 지리산의 대서사시를 직접 받아 적는 황홀한 아침이다, 내 언제 또 이런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연하선경의 풍경을 기대하며 8시 10분 천왕봉을 향해 길을 나선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는 마타리, 네귀쓴풀, 난쟁이바위솔, 꽃며느리밥풀, 참취, 도라지모싯대, 산오이풀, 송이풀, 단풍취, 미역취, 참바위취가 주를 이루고 장터목에서 천왕봉 구간은 바위 바위에 산오이풀이 주인공이다. 특이한 점은 천왕봉 성모상을 복원해 놓았는데 제자리가 아닌 듯 영 낯설다. * 천왕봉 성모상은 800년 이상(1188년~) 천왕봉에 존재하다가 1970년대에 분실 되었고 2025년에 복원되었다.
-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
지리꽃길 0811
-
-
눈이 오면 바래봉이죠. 여름에도 좋았다.
- 산을 꽤 오래 좋아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김제 평야라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지평선으로 뻗어나간 들뿐이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지리산을 올랐다.그후 꽤 오랫동안 지리산을 다녔다. 매일 출근하는 길도 같은 길로 가지 않고 가끔 다른 길을 선택하고, 학교에 다닐 때도 매번 가는 길이 아니라 딴길로 가곤 했다. [바래봉으로 가는 길 등산로가 꽤 거칠다] 지리산도 매번 같은 길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길을 선택하다 보니 웬만한 지리산의 등산로는 다 가봤다. 그런데 내가 꽤 오랫동안 가보지 않은 곳이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이다. "눈이 오면 바래봉이죠." 운봉이나 산내, 남원 사람들은 눈이 오면 바래봉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꽤 오래전이다. 구례 사람들은 눈이 온다고 노고단에 가지는 않는다. 눈이 오면 노고단으로 가는 도로는 폐쇄되고 눈 내린 노고단을 화엄사에서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는 사람이 많은지 정성은 모두 덮혀 있었다.] 바래봉은 높이가 1,165m라 지리산에서는 매력적인 높이도 아니고, 구례에서 바래봉에 가려고 운봉까지 가기도 그렇고, 매력적인 노고단이 있는데 굳이 운봉까지... 그러다 보니 미루고 미루어 아직까지도 바래봉에 가지 못했는데, 함께 가자는 분들이 있어 바래봉에 다녀왔다.바래봉 등산은 운봉의 허브밸리에서 보통 시작하는데 우리는 전북학생수련원에서 시작했다. 거리는 대략 12km 정도 되는 길이다. [바래봉은 정령치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전북학생수련원에서 찾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운봉 허브벨리에서 시작한다] 전북학생수련원에 주차를 하고 산길을 찾는데 진입로를 찾기가 조금 어려웠다. 이 길로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한참을 올라 능선길에 접어들었다. 등산로는 일부 구간은 풀이 우거진 구간이 많았다. 여름이라 반바지를 입은 상태라 등산로로 뻗어 나온 딸기 덩굴이 맨살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혹시라도 여름에 이 구간을 찾는다면 긴바지가 필수다. 팔랑치를 넘어가니 곳곳에 '바래봉 생태계보전지역'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1995년까지 바래봉에서 양을 키웠다고 되어 있고, 사진엔 수많은 양들이 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혹시 바래봉이 철쭉으로 유명해진 것이 양들이 독성이 있는 철쭉을 먹지 않고 다른 풀만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찾아보니 맞았다. 양들이 없어서 그런지 생태보전지역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바래봉은 오래전엔 양들의 차지였다.] 양을 키워서 황폐해지기는 했지만, 양을 키워서 철쭉으로 유명한 산이 된 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바래봉에서 유명한 것은 구상나무와 주목나무 군락이다. 바래봉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펼쳐진 구상나무 군락은 지리산 어디에서보다 밀집되어 있고 관리가 잘 되어 있다. 겨울에 눈이 내려 구상나무에 흰 눈송이가 가득하다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천연 트리가 될 것 같다. 실제로 구상나무는 외국으로 퍼져 나가 가장 예쁜 트리 나무가 되기도 했다. [바래봉 가는길 양옆으로 구상나무숲이 산책로처럼 펼쳐진다] 1900년대 초 프랑스 신부이자 식물학자인 포리(Faurie)와 타케(Taquet), 그리고 미국 어놀드 수목원의 윌슨(Wilson) 교수에 의해 제주도 등지에서 채집되어 미국과 유럽으로 건너간 뒤, 품종 개량을 거쳐 대표적인 고급 크리스마스트리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이나 북미의 나무 농장에서는 'Korean Fir'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재배·판매되고 있다. 바래봉으로 향하는 길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라 걷기에도 편하고 좋았다. 위로 올라가니 주목이 많이 보였는데 붉은 열매들이 보석처럼 달려 있었다. 잘 익은 주목나무 열매는 단맛이 있어 몇 개 정도는 먹어도 된다. 하지만 많이 먹으면 복통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몇 개 먹어보니 달달했다. [멀리 보이는 운봉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산지역이다] 바래봉에 올라가 보니 바래봉 전체에 데크를 깔아 놓아서 여느 산의 정상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래도 이 주변에서는 높은 봉우리라 사방이 탁 트여 경치가 좋았다. 하지만 나무 한 그루 없는 정상으로 쏟아지는 8월의 태양에 우리는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오는 길과 다르게 자동차 도로처럼 뻥 뚫린 곳이라 내려가는 길은 순탄했다. [주목나무 열매다. 먹어보면 달달하다] 바래봉의 등산 난이도는 하 수준으로 올라갈 정도로 평이해서 누구나 가볼 만하다. 봄에는 철쭉이, 여름과 가을엔 구상나무 숲을, 겨울에는 그 어디보다 아름다운 구상나무 트리를 감상할 수 있다. [1971년 시작: 한국과 호주의 시범목장 협정 체결로 국립종축장 운봉지장이 설립되면서 바래봉 일대에 면양 방목이 시작되었다. 면양 2,500여 마리를 도입해 바래봉 일대 약 200만 평 규모의 목초지에 방목하면서 사육했다. 1990년대 중반 양모(모직물)와 양고기의 수입 자유화로 인해 경제성이 떨어지고 생태계 훼손 지적이 이어지면서, 1990년대 중반(1995년경)을 기점으로 산상 방목이 사실상 전면 중단되었다.]
-
- 자연생태
-
눈이 오면 바래봉이죠. 여름에도 좋았다.
-
-
1947년 3월1일관덕정에서(제주애국인민)
- 1947년 3월1일관덕정에서(제주애국인민) /130X160cm/아크릴물감,알루미늄판,못,콘테,연필/2023 1946년 10.1대구 항쟁이 폭발하면서 미군정은 이튿날인 10월 2일 오후 7시 대구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을 동원해서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군 개입으로 대구항쟁은 경산, 성주, 영천 등으로 확대되었다. 미군정의 행정에 분노한 경북도민들은 미군정과 계속 충돌했고 이후 경북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1946년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 열기는 1947년 3월 1일 제주로 이어졌다. 제주시민들은 삼일절 제28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관덕정에 모여 “통일을 먼저 이루자! 단선단정을 반대한다! 그리고 제주 중학생들은 양과자 수입 막아 식민지화를 막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했다. 가두시위 도중 어린아이가 말발굽에 치였는데 경찰은 아이를 두고 가버린다. 이를 본 시위 군중들은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경찰은 이 군중을 보고 시위대에 그대로 발포해 버려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시민들은 이날 발포 사건에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민.관 총파업을 벌여 투쟁한다. 미군정은 총파업을 강경 대응하며 500명을 체포하고 2,500명을 고문과 구타를 했다. 제주 민심은 들끓어 다음 해인 1948년 4.3일 제주 무장대는 봉기를 시작한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14연대 군인들도 이러한 제주도민들을 애국인민으로 보았고 학살할 수 없다며 항명하였다. 작품에서 나는 4.3항쟁의 시작점으로 내 분신을 보내 제주 애국인민들을 응원한다. 당신들은 애국인민이다!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칼럼에 게시된 글과 그림의 저작권은 박금만 작가에게 있으며, 작가의 허락 없이 복사하거나 다운로드하여 활용하시면 안 됩니다.
-
- 기획
- 여순그림이야기
-
1947년 3월1일관덕정에서(제주애국인민)
-
-
[뒤웅박 씻나락] "농촌기본소득에서 구례형 기본사회로 ―노인들의 천국, 구례를 꿈꾸다" 김흥주
- 농촌기본소득에서 구례형 기본사회로 ― “노인들의 천국, 구례”를 꿈꾸다 김흥주 (원광대학교 라이프케어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구례 주민) 구례에서 농촌기본소득이 시작된다. 구례군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지역으로 선정되어 모든 주민에게 매월 2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첫발은 잘 내디뎠다. 그러나 사업에 선정되고 돈을 지급한다고 해서 저절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성공은 그 돈이 구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바꾸고, 지역 안에서 얼마나 따뜻하게 순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본소득을 단순히 주민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정책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주민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보장하고, 동네 가게와 시장, 농민과 돌봄 제공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마중물이어야 한다. 그래서 구례 농촌기본소득의 성과를 인구가 얼마나 늘었는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주민의 식탁이 좋아졌는지, 동네 가게에 손님이 늘었는지, 혼자 지내는 어르신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생겼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동안 농촌의 발전 전략은 주로 외부의 사람과 돈을 끌어오는 데 집중되어 왔다. 산업단지를 만들고 관광시설이나 케이블카를 세우면 관광객이 몰려오고 젊은 사람도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사람이 오지 않으면 큰 시설과 유지관리비만 남는다. 건물은 번듯한데 정작 주민의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 일도 많았다. 구례의 미래를 토건 사업과 청년 유입에만 걸어서는 안 된다. 일자리와 생활 기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과 관광시설을 늘린다고 청년이 저절로 찾아오거나 오래 머무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구례는 65세 이상 주민이 전체 인구의 40%를 훨씬 넘는 초고령 지역이다. 이제 정책의 중심을 ‘언젠가 들어올 사람’에서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다면 발상을 바꿔보자. 고령화를 극복해야 할 약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초고령사회에 가장 잘 대응하는 지역을 만들 수 있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살던 마을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선 고령 친화 지역을 만들어보자. 구례의 미래 비전을 “노인들의 천국”으로 삼아보자는 이야기다. 물론 노인들만 모여 사는 거대한 복지시설을 만들자는 뜻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살던 집과 마을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밥을 먹고 병원에 가고 이웃을 만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지역을 만들자는 것이다. 노인이 행복한 동네는 아이와 장애인, 청년과 여성에게도 살기 좋은 동네다. 언젠가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결국 모든 주민을 위한 구례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기본소득과 통합돌봄을 단단하게 연결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받아도 마을에 쓸 곳이 없다면 돈은 금세 구례 밖으로 빠져나간다. 반대로 그 돈을 지역 먹거리와 반찬 배달, 병원 이동, 집수리, 문화와 여가 활동에 사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민의 생활이 편안해지고, 지역 안에는 새로운 일자리도 생긴다. 기본소득의 액수만큼 중요한 것이 “그 돈이 구례 안에서 몇 번이나 돌고 도는가”이다. 먼저 경로당부터 달라질 수 있다. 담소를 나누고 점심을 함께 먹는 공간을 넘어, 마을의 작은 생활돌봄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건강을 살피는 돌봄 반장, 식사와 반찬을 챙기는 먹거리 돌봄, 병원과 시장에 갈 수 있는 이동 지원, 간단한 집수리를 연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어르신들은 낯선 시설로 떠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마을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지역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구례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로 어르신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학교와 복지시설, 공공기관이 지역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면 어떨까. 마을부엌과 반찬가게, 공동급식과 식사배달을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이 맡을 수도 있다. 그러면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판로가 생기고, 청년에게는 일자리가 생기며, 어르신의 식탁은 더 건강해진다. 이렇게 기본소득은 농민과 청년, 노인을 하나로 이어주는 셈이다. 어르신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지리산의 산나물과 약초, 섬진강의 생태, 마을의 역사와 음식에는 오랫동안 살아온 어르신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들이 농산물 가공과 마을식당, 생태해설과 전통음식 교육에 참여하도록 해보자. 도움만 받는 노인이 아니라 일하고 가르치고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당당한 주민으로 서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구례만의 보물을 더할 수 있다. 자연을 깎고 파헤치는 대규모 관광개발보다 치유와 장수, 생태와 돌봄을 중심으로 한 체류형 관광이 구례에 더 잘 어울린다. 어르신과 가족이 함께 걷는 무장애 숲길, 섬진강 치유 프로그램, 지역 농산물로 만든 건강식, 농촌마을 체류를 연결하는 것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구례 사람들의 건강과 삶을 지켜주는 공동의 자산이어야 한다. 이런 변화는 행정에만 맡겨놓는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 활동가와 귀촌인, 농민과 상인, 의료기관과 사회적경제 조직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읍·면 기본소득위원회도 지급 대상자를 심사하는 데 머물지 말고, 기본소득과 돌봄, 먹거리와 지역경제를 함께 설계하는 주민자치 조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성과를 평가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전입 인구가 몇 명 늘었는지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식탁이 좋아졌는가?”, “병원에 가지 못하는 어르신이 줄었는가?”,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이웃과 함께 먹게 되었는가?”, “동네 가게와 농민의 소득이 늘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런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때 구례 농촌기본소득은 비로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구례는 더 큰 건물을 가진 지역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관광객이 잠시 보고 떠나는 곳을 넘어, 지금 사는 주민이 가장 존중받고 행복한 생활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리산과 섬진강, 농촌기본소득, 초고령사회라는 세 가지 조건을 잘 엮는다면 구례는 대한민국 농촌의 미래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노인들의 천국, 구례”는 고령화에 체념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고령화의 현실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이를 돌봄과 순환경제, 생태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역을 새롭게 설계하는 힘으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농촌기본소득에서 출발한 구례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구례는 사라져가는 농촌이 아니라 새로운 기본사회를 가장 먼저 만들어낸 지역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쓴이 : 김흥주 _현재 원광대학교 라이프케어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교육부 인문사회융합인재양성 사회구조사업단장(2025~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먹거리위원회 공동위원장(2026~현재), 한국농촌사회학회 회장(2021~2023), 한국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SSK) 먹거리지속가능성연구단장(2010~2021), 한국사회복지학회 운영이사(2011~2012), 서울시 친환경무상급식심의위원회 부위원장(2012~2015),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관 현장평가위원(제5기, 제6기, 제7기), 기초 푸드뱅크사업 현장평가위원(2012년),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배분위원(2015~2019). 저서 <지역사회복지론>, <사회적경제와 공공성>,<사회복지조사방법론>(공저) 등.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 기획
- 뒤웅박 씻나락
-
[뒤웅박 씻나락] "농촌기본소득에서 구례형 기본사회로 ―노인들의 천국, 구례를 꿈꾸다" 김흥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