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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
- 주성윤 시인의 시비를 찾아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문수제 지나 오미 송정간 둘레길에 주성윤 시인의 시비가 있다고 해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문수리 들어가는 마을 앞 오미 슈퍼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혹시 주성윤이라는 사람이 마을에 살았는지 묻자 흔쾌히 시비가 있는 곳을 안내한다. 차로 내죽 마을 위 단산 윗길로 들어서니 깔끄막에 朱成允 詩碑가 있다. 수풀 사이 자리한 시비에 풀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 주성윤 시인은 구례와 지리산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시비로 안내한 단산마을 정동기 님은 시비가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시비가 있는 땅은 어느 교장 선생님의 선산이라고 했다. 그분의 집이 운조루 옆이라고 해 찾아갔으나 문은 잠겨있고 초인종은 눌러도 대답이 없어 집 앞에 있는 500년 된 서어나무만 바라보다 왔다. 주성윤 시인(1939년~1992)은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니 본적은 경남 창원으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텅 빈 공백』, 『독설』, 『먼 산에 진달래』, 『산꼭대기의 말』 『조선의 빛』 많은 시집과 번역서가 있지만 절판된 상태였다. 유고시집 『무궁화밭』을 펴낸 도서출판 두꺼비는 사라지고 대행업체인 새길 아카데미에 연락되어 시집을 구할 수 있었다. 시집을 읽다 보니 평론을 쓴 임헌영 평론가와 유고시집을 펴낸 김승균 발행인, 추모글을 쓴 황선락 소설가와 시인은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시절 ‘최류탄문학 동인회’ 활동으로 유명하다. 『무궁화밭』, 임헌영 평론가의 발문/주성윤론에 의하면, 1966년 『청맥』에 실린 장시 <조국의 상>은 투사 주성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썼다. 『청맥』에 글을 싣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인들이 고통을 받던 당시 주성윤 시인도 그 희생자로서 깊은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시비 옆면에 1994년 7월 9일 한맥 문학사 주관으로 박혜범 스님의 부지 제공, 시공사인 문산 석재의 대표 최용길 님과 통화 후 한맥 문학사에 제작한 시비를 납품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주성윤 시인에 대해서는 더 알 수 없었다. 한 시인을 찾아가는 문턱은 시집 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구례에 머물며 한 시인에 대해 쓴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묻어두고 네이버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 몇 편 열람할 수 있어 1977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짧은 시 <스냅 1>을 소개한다. 수풀에는 조랑조랑 새 울음떼 열리다. 사원의 한밤에 아무런 뜻도 없이 멍청히 떠올라선 한동안 넌센스로 조용히 머문 세상사 시끄러움 같다. 모든 뜨거운 것은 서산 허리에 걸리고, 초설이 흰 이를 드러낸 여정 같이 쌕뚝쌕둑 그 면전에 스쳐내린다. 스냅처럼 지리산 자락 깔끄막에 조랑조랑 열린 시어들. 아니 풀이라는 시와 풀이 어우러져 시인이 풀로 와서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게 온통 시로 풀어지는 듯하다. 시인이여, 어찌하여 지리산 자락에 오게 되었는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새소리 듣고 있는지 아니 새가 되었는지 유고시집 『무궁화밭』에서 임헌영 평론가가 쓴 주성윤 시인,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인이 교류했던 그 당시를 빈약한 내 언어보다는 시를 직접 음미하는 편이 낫겠다. 난꽃이 피던 무렵 (임헌영 형의 일을 명상하며) 오늘은 웬 일인지 난이 핀 곁에서 난꽃이 핀 걸 보며 해 지는 줄 모른다. 길가에서 어제 만난 갓 출소한 그 친구. 친구의 얼굴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속에서. 감방에서 수년 살며 어쩌면 제 죄도 아닐지도 모를 죄를 다 씻어내고 이전보다 한결 더 스마아트해진 모습으로 갓 출소한 그 친구 인상을 나도 모르게 나는 난꽃에서 건져올리며 정처 없는 생각에 하염없이 잠긴다. 생각자면 나도 내 죄도 아닌 죄가 너무 많은 청춘……, 중략 이따끔씩 세상을 가르치러 온 것이 라이어트가 되지 않도록 목숨으로 값치른 스승들의 이름도 밝음으로써 어두운 난향 속을 떠돎을 봤다. 국립중앙국립도서관에서 찾은 또 한 편의 시는 <청산음>이다. 어슴푸레한 박명에 청산음이 실려 오듯 한 시인의 삶이 걸어온다. 어쩌면 한 생이 피다 말고 저버린 쉽게 닫혀버린 책이 되고 있어 더 바래지기 전에 펼쳐봐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 자락에 울리는 청산음을 듣고 있는가? 시에 걸린 그 죄명 하나 거울 속에서 울리는데, 하늘을 쳐다보고 풀밭에 누웠으면 나도 미풍에 나부끼는 한 포기 풀. 마음은 맑아져서 그 끝에 걸린 거울이다. 이따금씩 바람결에 기억의 박명이 실려와서 그 속에 얼굴들을 비치고 지나면서 풀잎 끝에 죄명을 하나씩 달아놓고 간다. 흡사 몰래 선생님 등 뒤에 망신스런 쪽지를 써붙여놓고 잠적해버리는 개구쟁이 생도들. 그러면 하늘이 파아래서, 그들을 저지못한 부끄럼으로 얼굴이 화끈 붉어져버린 풀은 꽃이라 갈채하는 사람들. 살고파라. 바람도 청산에 죄를 물어오지 않는 청산에. 그래서 이윽고는 기억도 백흑그림들처럼 깡그리 지워져 없어질 흑판같은 청산에. 주성윤 시인을 다시 좇는다. 김선기 평론가의 <시인 박진환론>을 보면 주성윤 시인은 1963년 9월 박진환, 김종해 시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新年代』의 창간 멤버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1969년 구중서, 임헌영 등과 함께 『상황』 의 동인지 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은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사라져갔는가? 1975년 3월 11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박재능 시인에 따르면, 주성윤의 『일광속에서』 는 현대시에서 정서 배제를 위한 지적 처리가 원만하게 시도된 느낌이 드는데 비법에서 소화가 덜된 생소한 단어들이 돌출되어 눈을 거슬리게 하지만 전달의 방편이란 입장에서만 본다면 시대적 호흡에 적응하려는 노고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시인을 찾는 과정의 수확은, 『청맥』에 연재하던 장시에 관한 연구이다. 1923년 한국해양대학교 김지녀, <1960년대 『청맥』誌의 ‘長詩’기획과 ‘참여시’의 의미에 관한 연구>에 실린 글을 옮겨적는다 잡지 『청맥』은 오경남, 주성윤, 김소영 등 신인들을 주축으로 장시가 실렸다. ‘장시’가 다양한 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시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을 검토해 작품 유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감각과 언어로 폭압적이고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청맥』에 장시를 연달아 3편 발표한 주성윤 시인은 사상적이거나 미학적 측면에서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신인들에게 묻고 또 그들이 장시의 형식으로 응답한 『청맥』이 지향한 문학 이념과 참여시의 속성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월 22일자 ifs Post News insight에서 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9> 에서 <문학적 사제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지는가-박목월 선생과 그 문하생들>을 인용한다. 주성윤 시인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시 쓰는 일에 모두를 걸고 있었다. 그가 박목월 선생 댁을 찾으면 사모님 유익순 여사는 옷가지며 반찬을 주어 보냈다. “주성윤이 시인으로 등단하면 사는 일이 나마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박목월 선생의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주성윤은 관념시로 자기 세계를 이뤄낸 시인이고. 주성윤의 타계 소식은 시간이 흐른 뒤 입을 통해 알려지고 시인의 은둔은 그렇게 깊고 적막한 것이었나 보다고 적고 있다. 드디어 주성윤 시비 옆면에 적힌 부지 제공한 박혜범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정환 님으로부터 그분이 구례에 상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994년 문수리 두지 바위 길옆에 시비를 건립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비가 사라지고 없어 궁금하던 차에 필자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시비를 찾았을 때 풀이 무성한 사이로 시인은 시비를 건립한 사람과 30여 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풀로 덮인 그의 약력은 잊힌 만큼 풀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박혜범 시인이 기억하는 주성윤 시인은 천재이고 이름 없는 별이었다고, 시인 천상병 같은 시인이었으나 다른 향기의 시인이고, 길을 잃고 스스로 갇혀버린 그의 죽음 앞에서 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주성윤 시인을 시작으로 문수리에 이름 없는 천재들의 시비 동산을 만들고 싶었다는 박혜범 시인. 이름은 있되 이름 없다는 말을 곱씹는다. 찾아야지 찾아가야지 돌에 새긴 시인 찾아가야지 하는 나는 해무처럼 적셔지는 근원적인 비애감에 갇힌다. 갇혀서 걷는 길 길은 항시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길에게 너 아디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갇혀 있기보다는 걷고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우리라고 길을 보면 나는 항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가도 가도 이다지도 가슴 답답함은 갇혀서 걷는 길인 탓도 아니라는데 나를 자유 속으로 해방시켜 줄 동행은 왜 또 아무도 없는 것일까? 절레절레 발을 절며 오늘도 나는 길을 따라 나서고 길은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시 시비가 있는 선산 주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500년 된 서어나무 앞집에 갔다. 여전히 문이 잠겨있다. 할 수 없이 마을 한 바퀴 돌아본다. 솔까끔 마을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을 기다리며 풀이 풀을 노래한다. 그 시절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다간 주류가 되지 못한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풀 같은 존재를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참여시를 쓰고 관념시를 쓰고 순수시를 쓴 주성윤 시인의 시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시인이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살다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미 슈퍼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 벽화 속 빨래하는 아낙들 소리가 도랑으로 흐른다 방망이질 소리가 도랑으로 빠진다 오미 슈퍼 할머니가 나와 기웃거린다 슈퍼가 이뻐서 사진 찍어요 하니 씨익 웃는다 시인이 싱겁게 웃는 것만 같다 시인의 육필 원고 <무궁화밭>이 수록된 시집 『무궁화밭』에 실린 <뚝섬 시초>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암만 해도 낯 익었네. 저 선회 풀밭 위를 지나다가 문득 꽃진 풀밭 위에 하얀 나비 두어 마리 배회하는 광경 전생 혹은 이생의 어딘가에서 꼭 한 번 만났던 것만 같이 생각 든다. 기억해 내려해도 푸른 잎사귀로 가려 덮으며 영 잃어버렸거나 죽었거나 없다고만 하고 손 젓고 섰는 이승의 풀밭. 해 저물녘엔 질퍽이는 관능의 바다 기일게 전개시켜 놓고, 그래도 물들지 않고 호올로 이승을 가는 외로운 사람처럼, 또는 영혼처럼 흰 돛단배 가네. 하루 해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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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을이야기
-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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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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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위해 채식하겠다던 네가 오늘 치킨을 먹는다고 해도
- 벽소령 관통도로 공약 철회를 요구하며 열린 2026 생명평화 하지제에서, 내게 온 꽃등에. 때로는 이런 작은 맞닿음이 수백 마디 말보다 힘이 셀 때가 있지요. 얼마 전까지 저는 350일 채식인이었습니다. 이젠 달걀을 조금씩 먹기 시작해서 이렇게 부를 수가 없지만, 전에는 한 해 365일 가운데 350일 정도 채식하고, 보름 정도는 잡식인으로 살았습니다. 채식하는 날이 349일이 될 수도 있고, 351일이 될 수도 있지만, 날 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한다는 게 중요하니까요. 벌써 채식한 지 열다섯 해가 넘었으니, 이제는 채식하는 일이 저에게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무서운 건, 어릴 때 고기 맛을 알아 버린 ‘입맛’이란 놈이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와 고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또, 저를 완전한 비건이 될 수 없게 만든 입맛이 하나 더 있는데, 그건 우유를 못 끊는 입맛이에요. 당신이 키가 작아 두 딸만큼은 꼭 키를 키우겠다고 한을 품은 우리 엄마는 어릴 때부터 두 딸에게 하루에 500리터씩 우유를 먹게 했습니다. 그 맛에 길들었는지, 우유를 끊는 일이 고기를 끊는 것보다 어려웠거든요. 입맛이라는 게 참 무서워요. 치킨을 찾는 입맛, 라테를 원하는 입맛이 제게 찾아오면, 아무리 머릿속으로 좁은 케이지에 갇힌 닭이나 강제로 임신해 우유를 착취당하는 젖소를 생각해도 그놈의 (우라질) 입맛을 떨쳐내기가 힘드니. 그렇더라도, 날마다 고기를 찾던 제가 350일 채식인이라도 된 걸 보면 입맛을 완전히 못 바꾸는 건 아닌 듯합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채식하고 채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입맛도 조금씩 바꿀 수 있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천천히 조금씩 너무 괴롭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생각해 350일 채식인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이어도 몸에 밴 습관을 이기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하물며 채식에 의지가 없는 사람이 채식하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렵겠어요? 그러니 채식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채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저도 잘 압니다. 남의 행동을 고치려 드는 지적질은 정말 못 만든 광고 같아서 아무리 해도 효과가 없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저는 가끔 못 만든 광고를 또 내보내기도 하니, 이 또한 습관의 폐단인가 싶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누군가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까지 고려해야 할 일들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는 걸 깨닫게 해 준 경험이 많았고, 덕분에 못된 지적질 습관을 꽤 줄이게 됐는데요, 그 가운데 하나가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나오는 ‘순자’를 만난 일입니다. 순자는 자기 핏줄인 나기뿐 아니라 옆방에 사는 아이인 소라와 나나를 위해 날마다 도시락 세 개를 여섯 해나 싸는 인물입니다. “반찬으로 머리 달린 부세 구이가 통째로 담겼다거나 고춧가루에 버무린 오이지만을 수북하게 담았다거나 이따금 달걀말이지만 대개는 달걀프라이 혹은 다른 반찬 없이 달걀프라이 한 가지를 밥에 얹고 양념간장을 뿌린 것 하는 방식으로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시락이었다.” _『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순자가 싼 도시락은 육식에 가깝습니다. 만약 순자가 환경을 위해 채식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거나, 누군가로부터 그런 강요를 당했다면, 아마도 옆방 아이들의 도시락까지 챙기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순자는 늦은 밤까지 과일을 팔고 돌아와야 했고, 뇌경색으로 죽은 남편이 남긴 빚도 해결해야 했는데, 그런 순자에게 달걀프라이는 손이 많이 가는 나물 반찬보다 쉽게 세 아이의 도시락을 싸도록 도와주었을 거예요. 게다가 싸구려 달걀 한 판이면 싼 값으로 여러 날 아이들을 먹일 수 있었겠죠. 들여야 하는 노력을 보나, 돈을 보나, 육식 도시락이 옆방 아이들을 위한 순자의 선물을 가능케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달걀이 어떻게 이렇게 싸게 대량으로 날마다 인간의 밥상에 오를 수 있는지를 두고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순자를 그저 동물복지나 기후위기도 생각 안 하는 악당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겠지요. 순자가 어떤 사람인가요, 여섯 해째 날마다 새벽같이 일어나 옆방 아이들 도시락까지 싸는 인물이면, 그 인품은 말 다했지요. 그가 동물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350일 채식하는 저보다 몇 배는 더 헤아렸을 겁니다. 다만 먹여 살려야 할 자식과 배고파하는 이웃 아이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순자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최선이라고,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모두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은 제삼자가 상상할 수 없는 고달픔과 슬픔, 우울함 같은 감정을 안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봅니다. 오늘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내일 오답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내가 어떤 까닭으로 공장식 대량 축산물을 덜 선택하려고 하는지를 말할 수는 있겠지만, 누군가가 육식을 한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다는 걸 순자가 제게 가르쳐줬습니다. 비건을 선택한 뒤로 섭식장애가 생겼다는 친구에게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벗아, 환경을 위해 채식하겠다던 네가 오늘 치킨을 먹는다고 해도 나는 널 비난하지 않을 거야. 당연히 너를 미워하지도 않지. 네 마음을 이해해. 너를 존중해. 오늘은 네 몸에 들어간 닭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내일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잖아. 네가 그간 더 나은 선택을 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잘 알아. 너와 같은 지구인 동료가 있어서 나에게도 큰 힘이 돼. 네가 무얼 먹고, 무얼 사고, 무얼 입든, 네가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한 선택이라고, 너만의 까닭이 있으리라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지금 네 모습 그대로 네가 좋아. 우리가 친구여서 좋아.” ‘그냥 될 대로 살다 죽자’ ‘혼자서 그런다고 뭐 달라지냐’ 하는 절망이 찾아오더라도 ‘계속해 보겠습니다’ 하고 마음을 다잡는 비폭력 사랑꾼들을 나는 응원합니다. 내 옆의 소라, 나나, 나기, 순자가 그 감수성을 놓지 않을 수 있게, 계속할 의지를 꺾지 않을 수 있게, 나는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을 응원합니다. 우리 서로가 무지개 색깔로 더 나은 선택을 해 나가도록 빌어 주기를 바라며,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고민하는 지구 생명체들을 나는 늘 응원하겠습니다. 글쓴이 : 문홍현경 _니은기역 출판사 이끄미 (이 글은 <봉성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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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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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위해 채식하겠다던 네가 오늘 치킨을 먹는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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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무더위의 한복판, 대서
- 하지 전후로 달궈진 복사열의 정점이자 복더위의 정점은 대서와 중복입니다.장마 끝무렵이자 무 더위 한복판이기도 하죠. 가끔 마른장마가 오기도 하지만 덥고 습한 무더위는 피할 수가 없어요. 동남아시아 몬순기후 지대의 특성입니다. 건기 우기로 나누는 적도 근방 열대지역도 여름인 우기에 습하고 무더운 건 비슷하죠. 반면 지중해와 유럽, 중동의 사막지대 들은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이 옵니다. 그 밖의 아열대 고원지대와 초원지대도 비슷하죠. 덥고 습한 우리의 장마철은 만물이 극성장하고 풀도 우거져 농부에겐 아주 바쁜 농번기입니다. 우리는 춥고 건조한 겨울에 만물이 겨울잠에 들어가니 비로소 농부도 쉬어가는 농한기에 들어갑니다. 봄이 새 학기인 이유고, 유럽에선 가물고 뜨거워 작물이 자랄 수 없는 여름이 농한기라 가을이 새 학기가 되는 이유입니다. 날씨에 따라 농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이치예요. 무더운 장마철은 물과 불이 치열하게 싸우는 현장입니다. 물이 이기면 홍수가 나고 불이 이기면 폭염과 가뭄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거구요, 대개는 물과 불이 만나는 곳에 생명이 깃듭니다. 장마철은 물과 불의 격렬한 싸움만큼 만물의 성장에너지도 격렬하지요. 암튼 어찌 되었든 물과 불이 만나는 곳에 생명이 깃드는 것은 왜 그럴까요? 물과 불이 만나기만 하면 다 그럴까요?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좀 다릅니다. 가장 좋은 만남은 올라가려는 물과 내려오려는 불이 만날 때입니다. 그래야 순환이 작동해 생명이 깃들 수 있거든요. 그걸 표현한 게 태극마크입니다. 불은 양(붉은색)이라 위에 있고 물은 음(파란색)이라 아래에 있지만 불의 머리는 아래를 향하고 물의 머리는 위를 향하고 있죠. 그렇게 해서 물과 불은 지속해서 순환하며 생명을 창조하는 겁니다. 원래 물은 내려가려 하고 불은 올라가려 하지만 그러면 잘 만나지지도 않거니와 만나면 큰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게 장마철이고 태풍이지요. 아니면 폭염과 가뭄이고요. 그러나 이게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망가진 순환 시스템을 고치고자 애쓰는 홍역일 수 있어요. 요즘의 기후변화도 그런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홍역 이후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어요.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물과 불이 만나는 곳 중 재밌는 곳이 부엌과 밭입니다. 먼저 부엌 얘길 해볼까요. 옛날엔 집에도 신이 있다고 했어요. 그중 부엌신이 원래는 최고였지요. 나중에 성주신이 들어와 최고 자리를 차지했지만요. 신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집에 25년 살고 있는데 어쩌다 해외여행 나갔다가 집에 뭔가를 두고 온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물건 같은 건 아니고요, 굳이 말하면 나를 받쳐주는 무언가였어요. 여독에 감기 걸려 호텔에 누워 있을 때 강하게 느꼈죠. 그때는 그냥 집에 두고 온 또 다른 내 흔적이거나 타지에서 힘들 때 생기는 향수병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만일 붙박이 생활이 강했던 옛날처럼 몇백 년을 조상 대대로 한 집에 살아 조상들의 흔적이 겹겹이 쌓였다면 그걸 신이라 표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조상뿐이겠습니까? 함께 살면서 쌓인 생명들의 흔적까지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할 것 같습니다. 그중 부엌신, 부뚜막신, 조왕신은 물과 불의 조화로 생명의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었으니 최고의 신이자 어머니 신이었어요.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깨끗한 정화수 한 사발을 떠와 아궁이 위에 정갈하게 걸어둔 선반 위에 얹어놓고 조왕신께 빌고 나서 아궁이에 불을 붙여 밥을 짓습니다. 물과 불의 위치가 바뀐 것 같지만 올라가는 불의 기운을 내려가는 정화수의 기운으로 눌러주어 밥을 태우지 않고 잘 익게 해달라 했을 겁니다. 이런 정성으로 온 식구의 먹을거리를 지었으니 그 밥은 사랑과 정성, 나아가 신이 깃든 생명의 음식이었던 겁니다. 제가 급식과 매식을 비판하고 도시락과 집밥을 살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사랑과 정성과 신이 깃들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쓰럽지 않을 수 없어요. 소아당뇨, 비만, 알러지, 각종 소아 대사질환, 그리고 옛날엔 보기 힘들었던 우울증, 신경발달장애 들까지 생각하면 원인이야 복합적이겠으나 신이 결핍된 먹을거리 문화의 영향이 적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럼 밭에선 어떻게 물과 불을 만나게 해야 할까요?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논에선 물을 잘 가둬두는 게 중요한 반면 밭에선 물을 잘 흘러가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논은 보수, 밭은 배수가 중요한 거죠. 배수를 강조하니 물이 필요없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물이 머물지 않고 흐르는 겁니다. 강물처럼 마냥 흐르는 게 아니라 저수지처럼 마를 때는 가둬두고 습할 때는 배출하는 거죠. 토양의 삼상구조라 해서 흙의 기본은 흙알갱이인 고상이 반이고 나머지 반을 액상과 기상이 반반씩 차지하면서 가물 때와 습할 때에 따라 들쑥날쑥 저수지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흙알갱이 벽면에 유기물이 5% 정도 코팅되어 있는데 비중은 적지만 흙의 삼상구조를 만들고 떠받치는 주역입니다. 땅심이라고도 하고 지력이라고도 하는 게 이 유기물을 표현하는 거고 이게 잘 있어야 흙의 저수지 기능이 작동해서 물이 흐르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땅심의 모습은 내면적인 거구요, 배수가 잘되는 외형적인 밭의 모습은 어떨까요? 가장 중요한 관건은 도랑입니다. 물을 잘 빠지게 하는 배수로이죠. 배수로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가장 큰 거는 밭 둘레의 도랑입니다. 밭의 경사와 방향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가장 근본이 되는 도랑이죠. 대동맥쯤 될 겁니다. 경사가 높은 쪽에서 장마 때 물이 쏟아진다면 도랑을 두 개는 파야 합니다. 이 도랑은 이웃과 경계가 되기도 해서 소홀하기 쉬워 방치하면 병해충의 숙주공간이 되고 잡초의 온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바람과 물이 잘 통하도록 관리해 주어야겠지요. 다음으론 본 밭에는 도랑보다 작은 고랑들을 만드는데요, 농부가 드나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때론 밭둑이 될 수도 있어요. 이 공간이 아까워 작게 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저도 초보 때 아까운 마음에 엉덩이도 돌리기 힘들 만큼 좁게 했다가 들락거리기 힘드니 역효과만 본 적이 있어요. 이 길은 통풍 배수에도 좋지만 작물에게도 여유 공간이 되어 줍니다. 밭 둘레보다 깊어선 안 되는 건 당연하겠죠. 그렇게 했다간 물이 빠지지 않고 고일 테니까요. 그다음 중요한 고랑은 두둑과 두둑 사이입니다. 물론 길도 되지요. 다만 융통성이 있어 해마다 바뀔 수가 있습니다. 작물을 돌려 심고(윤작), 섞어 심기(혼작)를 바꿀 때마다 달라질 수 있는 거거든요. 한 줄로 심은 작물 수확 후 두 줄로 심을 작물을 심는다면 달라지는 게 그려지죠? 이 고랑은 당연히 앞의 길로 쓰는 고랑보다 깊으면 안 됩니다. 마지막 고랑은 씨나 모종을 심는 곳입니다. 호미든 괭이든 줄뿌림할 때 골을 내고 심고는 골을 살려둡니다. 그러면 작물과 작물 사이는 두둑이 되겠죠. 그러다 작물이 자라고 두둑에도 풀이 올라오면 두둑을 뒤집어 작물에 북주기를 합니다. 그걸 한 번 내지는 두 번에 걸쳐서 하고 나면 작물은 두둑 위로 올라가고 작물 사이의 두둑은 고랑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이를 견종법이라 합니다. 고랑(견畎)에 심는다는 뜻이고 밭의 모양이 바뀐다 해서 대전(代田)법이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헛골농법이라 합니다. 골이 곧 없어지니 그렇게 이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인곡선이 코사인곡선으로 단면이 바뀐다 해서 사인코사인 농법이라 붙여 봤는데 다들 웃고 말대요. 암튼 이 방법은 두둑을 덮는 비닐멀칭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제초와 북주기를 동시에 하는 첨단 농법이었어요. 게다가 작물이 어릴 때는 마르면 안 되니 골에 심고, 어느 정도 자라선 통풍이 중요하니 두둑 위로 올라가게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것도 한방에 해결하니 얼마나 지혜로운 방법이에요? 밭이 크면 소 쟁기를 이용하는데 두둑 없애며 북주기를 할 때는 쟁기날이 쇠가 아닌 나무로 되어 있고요, 두둑을 뒤집지 않고 좌우로 훑어주기만 해서 훌치기라고도 합니다. 소 주둥이에는 작물을 못 먹게 입마개를 씌우지만, 잘 훈련된 소는 필요 없었답니다. 재밌죠? 어쨌든 이 헛골도 두둑과 두둑 사이의 골보다 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밭에도 물길과 바람길(온화한 불의 길?)을 잘 만들었습니다. 임원경제지를 쓰신 서유구 선생은 이렇게 밭을 만들면 밭이 저수지 같은 노릇을 해, 가물 때는 습기를 내어주고(또는 물을 가둬두고), 습할 때는 물을 빼주어 농부는 또다른 수자원 관리인이라 했으니 큰 물길 잡아주는 것 못지않은 치수정책이었던 겁니다. 황하의 본류를 잡으려다 실패한 우왕의 아버지와 다르게, 황하의 지류를 잡아 치수에 성공해 왕이 된 우왕과 다르게, 본류 지류가 아닌 물의 모세혈관을 다스리는 일이니 더 근본 방책 아니었겠어요? 기후변화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대가뭄을 생각하면 귀 기울여볼 만한 지혜이겠습니다. 방금 말한 도랑과 두둑 및 밭 전체 배수로와 견종법은 다음 그림을 참조해보세요. 통풍 배수가 잘 돼 작물이 건강하고 제초를 따로 하지 않고 한번에 하니 일석이조가 됩니다. 고랑 별 깊이를 잘 조절하고, 작물은 헛골에 심었다가 나중에 북주기 하면 작물은 두둑 위로 올라가고 작물 사이는 골이 되어 통풍과 배수가 잘 되니 건강하게 자랍니다. ** 대문사진 : 대서 되니 벼가 확실하게 그늘을 드리워 풀이 들어올 엄두를 못낼 때 물을 뺍니다. 처서 지나 이삭 패면 다시 물을 넣어주는데 적셔주는 정도로만 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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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무더위의 한복판, 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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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심장
- 항쟁의 심장(10.1대구항쟁) /160X130cm/콘테/2024 나는 나름 작품으로 철학적 구축을 다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의 흔적을 2017년 인터넷에서 순천경찰서기록으로 발견한다. 서울경기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약 15년간 할아버지 흔적을 찾아다녔는데 못 찾고 여수로 귀향한 지 2년 만에 기록을 찾은 것이다. 그 기록은 매우 건조했다. - 활동유형: 좌익활동(우익,좌익,좌익활동) - 장소: 광천 다리 밑 - 사망유형: 총살 순천경찰서의 이 기록은 그동안 우리 가족의 괴롭고 어둡던 모든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분노와 슬픔으로 그동안 그려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여순항쟁 작품에 몸을 던진 계기가 되었다. 기록을 발견하고 일주일간 잠도 잘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며 생각했던 것은, 첫째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알리자, 둘째 작품에서 지형이나 복장 무기 등은 철저히 고증하자, 셋째 피나 잔인한 장면을 서정적인 슬픔으로 승화하자(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이렇게 시작한 작품들이 방대한 여순항쟁 역사에 미미하지만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여순에 살고 있다. 여순항쟁은 대구항쟁과 제주4.3항쟁과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래서 여순의 기원을 그려 보기로 했다. 해방이 지난 1년 후 1946년 10월1일 미군정은 친일 관리를 등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한다. 쌀값은 폭등해서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또한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어린이들은 의약품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대구시민들은 "쌀을 달라! 생필품을 달라! 어린이를 치료할 의약품을 달라! 친일경찰 물러나라!" 외치며 차라리 길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거리로 나온다. 10월1일 대구부청 앞에서 기아 대책을 세우라는 시위 도중 민간인 황말용, 김종태 2명의 노동자가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게 된다. 다음 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으로 대구의 굶주린 일반시민들, 노동자, 학생들까지도 시위에 합세하게 된다. 만여 명의 시민들은 대구경찰서를 포위했고 결국 경찰들은 무장해제를 한다. 대구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며 경찰권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로 민중들은 거리 한쪽에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위 작품은 분노한 대구민중들이 돌을 들기 직전을 작품화한 것이다. 이후 몰리고 있던 경찰들은 발포를 해서 24명의 시민들이 사망한다. 이를 기점으로 대구항쟁은 영남일대로 번지고 나중 제주4.3항쟁, 여순항쟁까지 항쟁의 불꽃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대구시는 '10월 항쟁'이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난 2016년 대구시가 '대구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마련한 것이다. 이전에는 주로 '대구 10월 사건', '대구 10·1 사건' 등으로 불렸다. 일각에서는 폭동, 소요사태 등 부정적인 단어가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극렬 유튜버들은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며 대구항쟁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지리산人>에서 박금만 작가의 '여순그림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순항쟁을 담아 사실적인 역사화를 그려 오고 있는 박금만 작가의 이번 칼럼을 통해, 여순항쟁(여순10.19항쟁)의 역사와 아픔 나아가 항쟁에 함께한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리산人> 드림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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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남원학 아카데미: 지방자치와 주민자치회 연속 강좌
- [남원학 아카데미] 지방자치와 주민자치회 연속 강좌 온라인 페이지 참가 신청 : https://forms.gle/VGZ2qGfDyHoMY1bB문의 : 시민공감 이사 임현택 010-5544-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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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남원학 아카데미: 지방자치와 주민자치회 연속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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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전해야 할 숲의 조건?
- 보전해야 할 숲의 조건? 대상지에 가장 넓게 분포한고 있는 식생보전등급 Ⅲ등급의 소나무군락. 없어져도 되는 숲인가? 몇 해 전, 지리산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마을인 산청군에 골프장 건설이 추진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골프장 건설은 산림 파괴와 농약 살포로 인한 오염 등 여러 문제를 유발하기 마련이다. 이에 지역 환경단체인 지리산사람들을 중심으로 필자를 비롯한 지역의 생태 전문가가 모여서 사업 대상지에 대한 생태 조사를 했고, 그 결과를 얼마 전 공식적인 보고서로 작성하였다. 자연을 보전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였지만, 자연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느껴진 불편함과 답답한 보전 정책의 한계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상지의 생태 조사 결과 포유류와 조류 조사 결과에서 멸종위기종에 해당하는 삵, 하늘다람쥐, 수달, 담비, 참매, 붉은배새매, 팔색조가 확인되어 보전의 당위성을 주장하는데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식생, 식물상 분야는 그렇지 못했다. 한마디로 대상지의 숲은 ‘그저 그랬다’. 전국적으로 흔하디 흔한 소나무군락이 대부분이고, 간혹 가슴높이 직경(흉고직경)이 큰 나무가 분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슴높이 직경이 20cm를 조금 넘는 어린 숲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넓은 지역이 ‘숲가꾸기’란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사업이 시행되어 교목층(가장 큰 키의 나무들)을 제외한 하층 식생이 제거된, 인위적으로 관리된 숲이었다. 이러한 숲은 잘려진 하층에서 식물이 급격히 자라면서 서로 뒤엉킨 듯한 모습으로 복잡하게(안정적인 숲이 아닌 천이 초기의 모습) 자라난다. 국가에서는 식생의 상태에 따라 식생을 평가하고 등급을 부여한다. 이를 식생보전등급이라고 하며, 식생이 가장 좋은 Ⅰ등급에서 가장 좋지 않은 Ⅴ등급까지 다섯 단계로 구분하여 평가한다. 식생보전등급이 Ⅰ,Ⅱ등급으로 평가된 지역은 보전과 복원을 우선으로 하지만, 그 외 Ⅲ~Ⅴ등급은 큰 문제 없이 개발이 허가되고 숲은 사라진다. 이러한 평가 방식을 적용한 결과 대상지는 모두 식생보전등급 Ⅲ~Ⅴ등급에 분포하기에, 기존의 정책대로라면 숲을 보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동물분야도 마찬가지다. 법적보호종인 멸종위기종의 서식이 확인되지 않는 숲은 개발의 논리에서 지켜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렇게 숲을 보전하기 위해 조사를 하면, 멸종위기종을 찾고, 식생보전등급이 높은 숲을 찾아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상지 일대의 생태‧자연도. 대상지 내 보전 및 복원을 우선하는 1등급 지역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그런’ 식생보전등급 Ⅲ~Ⅴ등급의 소나무군락이 대부분인 이 숲에 대한 보고서를 조사 결과 그대로 담담히 작성하다보니, 불편함과 답답한 한계가 느껴진 것이다. 좋은 숲은 보전해야하고, 상대적으로 식생 발달 상태가 좋지 않은 숲은 보전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식생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간다. 그런 변화의 과정을 천이(succession)라 부르고 Clements의 고전적 천이 이론에 따르면 식생은 극상림으로 변해가고, 그러한 극상림(Climax forest)은 구조적 기능적으로 안정된 시스템을 갖춘다. 따라서 현재는 식생이 ‘그저 그렇게’ 보이더라도, 이러한 숲이 10년, 20년, 또는 50년, 100년간 보전된다면 국립공원 수준의 울창한 숲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시점에서만 좋은 숲을 보전하고,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숲은 계속 없어진다면 울창한 숲이 지금보다 넓게 확대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현재의 상태가 다소 좋지 않다고 그 숲을 보전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아름드리 나무로 자랄 어린 나무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울창한 숲 역시 과거에는 모두 식생보전등급이 낮은 ‘그저 그런 숲’ 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연을 평가하고 등급화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보전해야할 숲의 조건이 따로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희귀한 식물이 살고 있어야 보전될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천이 초기에 나오는 ‘그저 그런’ 숲이 우리 곁에 없다면 결국 극상림의 울창한 숲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데도 개발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작은 땅에 이미 많은 것을 개발해 왔고 많은 숲을 파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인간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의 상황을 맞닥뜨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숲에 식생보전등급을 매겨 ‘Ⅰ,Ⅱ등급이면 보전, Ⅲ~Ⅴ등급이면 개발 가능’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따라 보전할 숲과 개발할 숲을 판가름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있는 숲을 미래 세대에게 안전하게 전해 주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기후위기는,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느 것도 명확하게 좋다, 괜찮다,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보전되어야 할 숲의 조건'을 따져야 할 때는 지났다. 글쓴이 : 정태준 모두를위한생태연구소 소장(자연과 사람이 모두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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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전해야 할 숲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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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천마
- 「섬진강 편지」 -천마 노고할미! 오늘도 귀한 선물 주셔서 고맙습니다. 2026년 7월 20일, 모처럼 맑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일출을 볼까 하여 구례들꽃사진반 회원들과 새벽 4시에 성삼재에서 노고단을 향해 길을 나섰다. 안개가 짙은데도 헤드랜턴 불빛 너머 처음 보는 꽃이 눈에 확 띄었다. 잎 없이 줄기만 있는 무엽란 종류다. 혹, 한 번도 본 적 없는 전설의 ‘차일봉무엽란’이 아닐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내려오는 길에 찾기 쉽게 위치를 확인해 두었다. 구름 속 노고단정상에서 범꼬리, 지리터리, 원추리와 놀다가 내려오는 길에 아침에 확인해 둔 꽃을 찾아보니 전설의 꽃은 아니었으나 귀한 ‘천마’였다. 심봤다! 산림청에서 ‘희귀식물 위기종’으로 지정할 정도로 보기 힘든 천마를 3촉이나 발견한 것이다. 지리산 천마 덕분에 20여 년 전 덕유산에서 처음 천마를 만났을 때 썼던 시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 천마 -짧은 사랑의 때 햇빛을 누릴 이파리조차 없다네 꽃 피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그나마 꽃 피는 날도 길지 않다네 꽃대 그만 사그라지면 지상에 남은 흔적은 없다네 참다 참다 더는 못 참아 터져 나오는 외침처럼 썩은 참나무 뿌리 위로 불쑥 솟구친 한줄기 사랑 천마 꽃 피는 바로 지금 그대 앞의 지금이 그 짧은 사랑의 때라네 -김인호 포토포앰 ‘꽃앞에 무릎을 꿇다’중에서 #천마 #지리산천마 #구례들꽃사진반 #노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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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 Unsplash의 Shane Rounce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제 주변 사람들도 같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이야기해 오던 공동체를 느슨하게라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만드는 게 힘이 들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형성이 되고 나면 (마치 합창처럼) 거기서 느껴지는 ‘같이하는’ 것에 대한 행복감을 맛보고 싶었던 거죠, 시작은 안솔기마을이라는 생태마을에서 했습니다. 같이 음악회도 하고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하고.... 그러다 마을이 너무 작아 같이 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분들을 봤고 그러면서 안 하고 싶은 자유가 굉장히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마을들과 합창제도 해 보고 같이 운동회도 하고 했는데 이것도 역시 쉽지는 않더군요. 그러면서 규모가 좀 커야 개인의 자유도 보장하고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12년 전 산청에 한방 엑스포가 열린다길래 군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강좌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마수걸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운영위를 만들었고 그 운영위 중 한 분이 구례 콩장을 다녀와서는 우리도 플리 & 프리마켓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도 그게 너무 좋겠다 싶어 동의했고, 그 길로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모임을 열고 그 해에 목화장터라는 마켓을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엔 이 마켓이 생기면 촌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번씩 모여 안부도 묻고 정보도 나누고, 재미난 공연으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분들에겐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 제공도 되고, 또 혼자 먹기에는 많고 시장에 내다 팔기에는 어중간한 분들의 판매처도 되고, 직접 만든 공예품이나 옷 같은 것을 팔 수도 있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을 팔거나 나눔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적극적으로 찬성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기대를 했던 건 맥주나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소통을 하다가 집으로 갈 때는 장 본 것을 들고 가는 독일의 어느 장터를 우리도 했으면 하는 것이었죠. 그렇게 장터를 주변 사람들과 같이 열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우리 온라인 커뮤니티(밴드) 회원이 많아지다 보니(현재 5,075명) 모임을 만드는 것이 쉬워져 합창단,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원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이 장터의 힘으로 만들어진 지속넷(지속가능발전네트웍)에서 주최한 100인 원탁회의에서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었고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일도 진행이 되었죠. 사실 의료사협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제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돕고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어서였는데 만들고 보니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더군요. 시작할 때의 슬로건은 ‘함께 만드는 건강, 더불어 행복한 삶, 지속 가능한 공동체’였는데 한의원이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니 지역에서 일어나는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게 되었고 성심원 내에 장애와 비장애,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실제로 시작을 한 상태이긴 합니다) 제대로 된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을 포함한 힐링센터를 만들 수도 있겠단 꿈을 꾸기도 하고요. 그리고 즐거운 일들은 같이 나누고 힘든 일은 같이 돕는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 실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실제로 목화장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지속넷과도 같이 협력하며 도와 주기도 하고 지역의 ‘그늘과 언덕’이라는 곳과도 같이 힘을 모아 작년의 수해복구와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도 했고요. 이런 일들을 의료사협이라는 곳의 조직력과 (미미하지만) 재정적인 여유로 같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지금은 재택의료센터도 만들어 열심히 방문 진료를 하는 중이고 가정의학과도 열어서 한방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서 통합돌봄을 실천 중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어쩌면 정신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좋은 강좌나 지역 소모임을 통해 아프기 전에 건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혹시 아프면 믿을 수 있는 의료진과 주변의 도움으로 나을 수 있도록 하며, 설령 잘 낫지 않아 사망하게 되더라도 주변의 배웅과 도움을 받으며 존엄하고 평안하게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다 실행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익이다.’란 생각으로 ‘오늘도 어떻게 하면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글쓴이 : 김명철 _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홈페이지 https://gscmedc.org 사무국 055-973-0407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대로 1381번길 17 *산청 주민이 아니어도 조합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사무국으로 문의해주세요.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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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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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하여
- 고통에 대하여 붓다는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깨달음을 얻고 45년간 중생을 구제하다가 80세에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붓다의 처음 깨달음은 일반적으로 사성제와 연기법으로 정리되어 이야기되는데 그 사성제의 첫 번째가 고苦다. 그리고 불가에서는 苦를 또 셋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다치거나 병들어서 오는 육체적인 고통의 괴로움(苦苦)과 흐르는 세월 속에 어느덧 늙어 죽음에 이르는 덧없음에 대한 괴로움(行苦)과, 좋아하는 것들과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 즐거움이 사라지는 괴로움(壞苦)이 그것이다. 그렇게 보니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단순히 과장된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붓다의 고苦는 고통과 괴로움이라는 단순히 즐거움의 반대 개념만은 아니라고 한다. 고苦는 산티크리스트어로 두크아, 둑카,이며 그것은 깨달음, 해탈, 산티(평화)의 반대 개념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붓다의 고는 단순히 세상살이의 괴로움이라는 개념을 넘어 한 존재의 본질적 인식까지를 포함한, 그런 존재 자체의 근본적 불완전성에서 오는 의미의 괴로움, 고통의 개념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인식인 것이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우리는 태어난 것 자체가 고苦요, 존재 자체가 고苦이며 사는 것 자체가 고苦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는 일이 어디 그런가. 당신은 즐거움이라는 것은 1도 없이 살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즐겁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여서 즐겁고, 돌아와 쉴 수 있는 아늑한 방이 있어서 행복하다. 어쩌면 괴로움을 느낄 틈도 없이 바쁘게 살고 있다. 현실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내가 무엇에 집중하며 사느냐에 그 순간 괴로움과 즐거움이 교차 된다. 어쩌면 수상가옥 같은 것이기도 하다. 빠져 죽을 수 있는 깊은 물이지만 그 위에 배를 띄워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것이 우리다. 죽음 위에 삶이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 배가 낡아 물에 빠져 죽음에 이른다 해도 배를 타고 있는 동안이 삶이며, 삶은 그래서 ‘과정’일 뿐이다. 인생 뭐 별거 있냐고 흰소리 치는 말에는 사는 동안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한다는 목적이나 결론은 없고 단지 ‘과정’일 뿐이라는 뜻이 강하게 담겨 있다. 어차피 인생의 시작과 끝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한 목숨 얻어 살고 있는 ‘과정’만이 우리 것이다. 그러고 보면 순간순간, 하루하루라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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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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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 꽃무릇 박 석 면 잎이 있어야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는데 넌 잎이 없어도 꽃을 피울 수 있다지 넌 짝 없이도 사랑을 할 수 있다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사랑할 수 있다는 말 너에게는 한낱 너스레 네 잎과 꽃은 혼자 사랑하다 혼자 죽어갈 뿐 꽃이 진 뒤 다시 잎으로 태어나 잎은 땅 위에 꽃은 하늘로 치솟아 산을 붉게 물들인다지 죽어서 꽃을 사랑하고 쓰러져 잎을 사랑하는 일 한 사람이 죽어야 한 사람이 사는 하, 그게 사랑인거지 ---------------------------------- 꽃은 꽃대로 사랑하고 잎은 잎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 져서 잎을 피우고 잎이 져서 꽃을 피우는, 한 사람이 죽어서 한 사람을 살리는 그런 사랑, 사랑은 그런 것이리. 그립고 안타까운 일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랑을 본 것이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혼자 사랑하다 혼자 죽어도 그것은 하나의 꽃무릇, 그런 꽃무릇들이 무리 지어 산사를 붉게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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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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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