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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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처음 보는 식물이 너무 예뻐서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대한을 맞이하며 두번째 편지를 보내요! 먼저, 늦었지만 갈토의 속상했던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고 싶을 만큼 생일 축하해요. 제가 생일 전날 편지를 보낸 건 1월 중 가장 잘 한 일이 되었어요. 뿌듯합니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갈토가 던져 준 '느긋하게 산다는 게 어떤건지' 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던 오늘, 문득 창 밖에 내리는 눈들을 보다가 반짝 떠올랐어요. 생명력이 있는 자연과 현재 이 순간 함께 있음을 느낄 때가 바로 느긋함 아닐까! 하고요. 그 순간이 선처럼 이어진다면 느긋하게 일상을 보낸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까요? 지리산을 떠나 본가인 인천에서 지내는 요즘엔, 주로 하늘에 뜬 것들로 자연을 만나요. 그래서 그런지 눈과 함께 현재를 느끼는 소중한 경험도 해보네요. 인천이라니, 갈토와 꽤나 가까이 살아서 놀랐지요? 설명을 드리자면, 저도 지리산에서 살고 싶은데 인연이 닿는 집이 좀체 나오질 않아요. 산내라는 마을을 통해 지리산을 만났고, '지리산방랑단'을 하면서 그 외에 다른 지역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던 중 구례에서 느꼈지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다... 구례는 읍내가 있는데 적당히 상점이 늘어진 거리와 뒤에 펼쳐진 산들이 한적하고 맘에 들었어요. 저는 어느정도 번화된 곳을 좋아해요. 도시와 시골의 중간 느낌이랄까요. 시골집에서 흔히 만나는 벌레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제가 유독 무서워 해요. 게다가 마을 곳곳에는 풀려 있는 개가 정말 많은데요. 개의 레이더에 걸렸다, 심지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이러면 뭐ㅎㅎ 평소 위아래로 뛰던 심장이 앞뒤로, 몸 밖으로 뛰쳐나왔다 들어갔다 해요. 지난 날 개가 공격하지 않고 겁만 주고 간 것에 감사합니다... 인간동물들은 '말'하면서 서로 의사를 확인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저와 소통 방식이 다른 생물과는 제가 그들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걸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두려운 것 같아요. 제가 두려워하기엔 그 작은 생물들보다 덩치가 훨씬 큰 게 아이러니지만 벌레와 닿는 촉감이 낯설어서 소스라치게 돼요. 외딴 시골일수록 자주 마주치더라구요. 그래서 어느정도 자연과 단절된(...) 읍내에서 살고 싶은가봐요. 갈토의 말처럼 '서울 중심으로 자원과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 깊이 공감했어요. 서울은 또 자연과 단절된 부분이 많지요. 제 안에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경험한 권력의 익숙함 또는 자연과의 단절감이 있고, 그 도시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꿈틀대는 대자연을 향한 본능, 간절함이 있어요. 이 두 감각 속에서 딜레마를 겪고 있지요. 아무튼 읍내에 있는 집 중에서도 아파트는 돼야 벌레나 풀린 개와의 만남을 회피할 수 있겠죠. 결국 아파트 살 돈이 없는 저는 방랑 이후 안성맞춤 보금자리를 못 구한 채 본가로 돌아왔답니다..ㅎㅎ 아쉬운 대로 지리산에는 자주 내려가는 방법으로 작년을 보냈어요. 약 한 달에 한 번씩 내려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여러 활동에 참여하는 식으로요. 큰 맘 먹고 여름 한동안은 구례 작은 마을의 친구 집에서 지냈는데요, 그 집엔 많은 곱등이 가족들과 애집개미 군단이 있었어요. 부러운 점이 있었어요. 그 집에는 저처럼 여름 한 철 놀러 온 개가 있었거든요. 그는 애집개미들이 우르르 있는 벽면에 철썩 기대어 잠을 자거나, 바삐 움직이는 거미 뒤에 코를 바싹 대고 따라 다녔어요. 강아지 시절부터 봐와서 저와 퍽 가까운 사인데 그땐 거리감이 살짝 들었어요. 결코 따라할 순 없었지만 벌레와 다정할 수도 있는 모습에 뭔지 모를 안도도 했어요. 풀린 개들과 벌레는 아마 오래오래 제 반려생물이 되어 줄 것 같아요. 제가 그들과 언어로 소통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겠지요. 나름대로 해마다 두려움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기에 앞으로도 기꺼이 기회로 받아 보려고요! 갈토도 궁금해요. 어떤 반려 생물이 계실지요! 편지를 마무리 할 때가 되었네요. 갈토의 편지를 읽고 한 문장 한 문장 모두 답변하고 싶은 충동과 앉은 자리에서 바로 편지를 쓰고 싶은 들뜬 마음이 있었어요. 갈토가 감사 일기 쓰는 멋진 습관이 부러웠구요. 저도 그 이후 열심히 써 보는 중이랍니다! 오늘은 일기를 적극 추천해준 갈토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이곳에 적어 볼게요. 1. 갈토가 제 편지를 읽어주어서 고맙습니다. 2. 오늘 눈이 내려 고맙습니다. 3. 비건 꼬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서 고맙습니다. (어디서 파나요..?) 그럼 갈토, 다음 편지에서 만나요! 조금 느긋해진 유우야 드림 <유우야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오늘은 일찍 깼어요. 꿈 속에서 엄청 헤매다가 ‘이건 꿈이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잠에서 깨버렸어요. 전날 꽤 피곤해서 잘 자야했는데, 다시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뒹굴뒹굴하다가 문득 이렇게 어둠속 에서 잡생각을 할 바에는 유우야에게 답장을 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제부터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났거든요. 유우야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서 깬건가 싶기도 하네요. 하하하. “생명력이 있는 자연과 현재 이 순간 함께 있음을 느낄 때가 바로 느긋함 아닐까!”라는 문장이 좋아서 곱씹어 읽었습니다. 제가 작년에 이사를 했는데 그 전에는 지층에서 오년간 살았어요. 지층에 살면, 날씨가 좋고 쉬는 날이 참 귀해요. 햇볕이 좋을 때 빨래 해서 밖에 널어야 하고 현관문을 열고 그 앞에 앉아 따뜻한 태양의 기운을 느끼곤 했거든요. 그 문장을 읽으며 그 때 느꼈던 느긋함이 기억났어요. 온전히 나의 몸이 밝은 빛과 따스함으로 연결되는 순간의 느긋함. 그 집이 그립지는 않지만, 그 순간은 그립네요. 얼른 날씨가 따뜻해져서 좀더 가벼운 옷차림으로 햇볕을 만나고 싶어집니다. 저의 반려생물은 수경식물들과 은행목이에요. 내가 어떻게 이들과 살게 되었나를 생각해보니, 대단한 인연이구나 싶어요. 제가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 대표 취임 축하 화분들이 여러 개 있었어요. 작은 화분들 말고 대형 화분들이었는데, 대표가 변경이 되면서 이전 대표가 받은 축하 화분들을 치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멀쩡하게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버리는게 너무 아까워서 혹시 내가 좀 가져가도 되는지 물었더니 가져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행운목과 홍콩야자를 만나게 되었어요. 모두 흙에 심어져 있었는데, 제가 차도 없고 큰 화분을 둘 수가 없어서 가지를 잘라서 가져와 행운목은 수경으로 키우기 시작했어요. 홍콩야자는 흙에 키우려고 흙까지 가져와서 심었는데 잘 적응을 못하길래 수경으로 바꿨더니 잘 자라더라고요. 그래서 이 집이 흙보다는 수경식물이 잘 자란다는 것도 발견했습니다. 은행목도 사연이 있는데요. 제 자리 뒷 편에 입사하신 분께 지인으로부터 입사 선물로 은행목이 배달되었어요. 저는 처음 보는 식물이고 너무 예뻐서 사랑에 빠질 것만 같았어요. 소비욕이 별로 없는 제가 하나 구입할까 인터넷을 검색할 정도로 참 예쁘더라고요. 선물 받으신 분은 선물을 보고 당황해 하셨는데 자신이 똥손이라 키우는 식물마다 결과가 좋지 않았고, 예쁜데 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겨울이 되고, 은행목은 점차 잎이 하나 둘 떨어져 갔고, 나중에는 나무 가지조차 말라버렸어요. 그 분이 퇴사하시게 되었는데, 그 예쁘던 은행목 입사귀가 모두 떨어졌고 죽은 나무처럼 보였어요. 그 분이 은행목을 보시면서, 몇 달간 너무 소진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 화분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셨어요. 자신은 잘 키울 자신이 없다고 하셔서 제가 한 번 키워보겠다고 해서 은행목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몇 달간 은행목을 정말 정성스럽게 보살폈어요. 인터넷에서 은행목 키우는 법을 찾아보고 아침에 출근하면 햇빛을 많이 볼 수 있도록 밖에 놔두고 오후에 햇볕 자리를 보고 위치를 바꿔 줬습니다. 정말 신기하게 초록빛깔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잎이 나기 시작했어요. 물론 처음 은행목을 만났을 때 만큼 풍성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살아났어요. 생명체는 신비롭고 아름다워요. 잎이 사라지고 죽은 건가 쉬는 건가 도통 알 길이 없었는데, 이렇게 짜잔하고 다시 생명의 힘을 보여주잖아요. 3개의 잎이 자라고 열 개가 되는 과정을 보며 마음이 흡족해졌어요. 화분에 영양분을 줘서 더 빨리 자라게 하고 싶기도 한데, 겨우 다시 살아난 은행목이 쉬엄 쉬엄 회복하도록 천천히 시간을 주려고요. 저와 함께 첫 겨울을 맞이하였는데 아직도 푸른 잎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워요. 은행목이 초록 빛을 내기까지 저의 특별한 집중 관심을 받았지만 저는 게을러서 관리를 많이 해줘야 하는 반려 식물은 잘 못 키워요. 가끔 물을 주면 되는 다육이라던가 수경식물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저의 적절한 무관심이 이 식물들과 잘 맞아요. 하루에 한번 볼까 말까 하다가 좀 시들해보이면 물이 없어서 말라 있으면 새 물을 채워줍니다. 물을 갈아 줄 때 홍콩야자의 새끼잎사귀가 자라는 거 보면 신기하고 너무 귀여워요. 저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들과 지냅니다. 집에 초록이 들이 많아서 좋고 특히 수경식물이 가습 효과가 좋고 여름에 집 온도 낮추는데도 좋다고 전기도 덜 쓰게 됩니다. 반려 생물 자랑이 너무 길었네요. 하하하 반려 생물과 지내면서 생명체와 살기 위한 책임감에 대해서 종종 생각해요. 제가 너무 게을러서 물을 못 주면, 식물들은 색깔로 신호를 보내요.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물을 줍니다. 저에겐 딱 이 정도의 생명체가 맞는 것 같아요. 밥을 챙겨주고, 소통도 해야하고, 놀아주기도 해야하는 동물 생명체를 키우기에는 저는 너무 게으른 사람이고. 그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편지를 쓰며 저와 반려생물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께서 식물구입과 동물구입이 비슷한 맥락이기 때문에 식물구입보다는 식물입양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이 있어요. 공장에서 예쁜 화분들이 만들어지고, 식물들이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리고 사람들은 이들을 키우죠. 근데 제가 만난 식물들은 그렇게 선물받은 식물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질 때 저와 만나게 되었잖아요. 최근 반려 식물이 유행이 되면서 관련 전자제품, 비싼 식물들로 재테크를 하고 시장이 과열되는 게 좀 우려스럽더라고요. 물론 반려 식물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니, 다른 취미보다는 쓰레기가 덜 나오겠지만 생명체를 만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좀더 하면 좋겠어요. 저에게 반려 생물들은 혼자 사는 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들이네요. 나의 게으름을 참아주고 나와 함께 살아가주는 이 존재들이 참 귀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 입니다. 세 번째 편지 기다릴게요~ 추가: 편지 주제는 함께 정하시는 건가요? 진짜 주제 선정 너무 좋다. 박수X 1,000 저는 대체육 별로 안 좋아하는 넥스트밀에서 나온 불구이 꼬치는 진짜 맛있게 먹었어요~ 2023년 1월 19일 갈토 드림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1-26
  • 가여워 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1-26
  • 세석고원을 넘으며
    세석고원을 넘으며 고 정 희 아름다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고 발아래 산맥들을 굽어보노라면 역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산머리에 어리는 기다림이 푸르러 천벌처럼 적막한 고사목 숲에서 무진벌 들바람이 목메어 울고 있다 나는 다시 구불거리고 힘겨운 길을 따라 저 능선을 넘어야 한다 고요하게 엎드린 죽음의 산맥들을 온몸으로 밟으며 넘어가야 한다 이 세상으로부터 칼을 품고 그러나 서천을 물들이는 그리움으로 저 절망의 능선들을 넘어가야 한다 막막한 생애를 넘어 용솟는 사랑을 넘어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는 저 빙산에 쩍쩍 금가는 소리 들으며 자운영꽃 가득한 고향의 들판에 당도해야 한다 눈물겨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고정희 시인(1948~1991) 본명 성애, 전남 해남 출신, 5남 3녀의 장녀로서 거의 독립적으로 성장.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광주 YMCA 대학생부 간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를 거치는 동안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그 이상의 어떤 본질 문제를 환기시키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김주연 평) 시들을 써왔다.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평민사, 1979), {실락원}(인문당, 1981 절판), {초혼제}(창작과 비평사, 1983), {이 시대의 아벨}(문학과 지성사, 1983), {눈물꽃}(실천문학사, 1986), {지리산의 봄}(문학과 지성사, 1987),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창작과 비평사, 1989), {Sister's We Are the Path and the Light}(둥지, 1989), {광주의 눈물비}(동아, 1990), {여성해방출사표}(동광출판사, 1990), {아름다운 사람 하나}(들꽃세상, 1990), {뱀사골에서 쓴 편지}(미래사, 1991),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창작과 비평사, 1992) 등을 통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쉽게 절망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함께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노래했다. 그는 5.18 광주 항쟁을 계기로 전통적인 남도 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어 민중의 아픔을 드러내고 위무하는 장시들을 잇달아 발표했다.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으로 일하면서 여성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 1984년 대안 문화 운동 단체인 [또 하나의 문화] 창립에 참여, 이후 적극적인 동인 활동과 함께 한국 여성 해방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큰 몫을 담당했다. 1989년에는 여성 해방을 지향하는 여성들의 자발적인 출연으로 창간된 여성 정론지 {여성신문}의 초대 주간을 맡아 1년간 그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하였으며,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1990)에서는 여성의 삶과 수난을 통하여 인류 해방의 비전을 제시하는 등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1991년 6월 8일, 한국 여성 해방 문학의 정립을 위한 작업의 하나로서, [또 하나의 문화] 월례 논단에서 "여성주의 리얼리즘과 문체 혁명"을 주제로 발표를 마치자마자 평소 그의 시의 모태가 되어 온 지리산 등반을 감행, 이튿날 뱀사골에서 실족, 43세를 일기로 불타던 삶을 마감하였다. ( 또 하나의 문화 자료 참조)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01-26
  • 지리산 법화종주
    「섬진강 편지」 -지리산 법화종주 천왕봉,제석봉,연하봉,촛대봉,영신봉,칠선봉, 덕평봉,형제봉,삼각봉,명선봉,토끼봉,삼도봉 2박 3일, 지리산 품으로 출가를 했습니다 40km 지리능선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린 수행길 절뚝이며 휘청이며 30시간을 걸으며 우리네 삶도, 사랑도 이렇게 숱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깊어지는 것임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폐절제 수술 3년이 지나고 망설이던 지리산 종주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니 폐가 잘려 나간 자리에 새로운 기운이 차오르는 것 같습니다. 넘어지면 손잡아 주고 가파르면 끌어주고 카메라 짐을 나누어지어 준 지리산사람들 길동무님들이 있어 힘들다는 겨울 지리산 종주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섬진강 /김인호 *지리산 법화종주 ; 법계사에서 화엄사까지 오는 종주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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