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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성다양성축제 : 구례에도 무지개가 뜰까요?
안녕하세요. 벌써 4회를 맞이한 성다양성축제가 올해는 ‘남원시 산내면’이 아닌 ‘구례읍’에서 활짝 열립니다! 3년을 함께 해온 산내의 든든한 이웃들을 떠나 구례에서 첫 출발을 한다는 게 긴장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데요. 이 곳에도 정말 많은 친구들이 응원과 지지를 보내오고 있어 구례에도 무사히 무지개가 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오셔서 다채롭게 즐길 수 있도록 재미난 기획들을 아주 많이 준비했어요(분명히 소소하게 하자고 했는데..) <차린건 개뿔도 없지만 무지개주간 행사> - 일시: 10/22(일)~28(토) - 장소: 워크숍마다 달라요. 구례 일대 - 신청폼: https://forms.gle/hCUazF61duaJYGfA8 축제 참가자들이 손수 준비한 다양한 워크숍들이 일주일 동안 구례 이곳 저곳에서 열립니다. 퀴어풋살, 양수댐반대 출정기자회견, 강강술래 워크숍, 양반새 탐조모임, 탈정상연애 수다회, 영화상영회 GQFF, 즉흥실험영화제작 워크숍에서 더 깊이 서로를 만나보아요! 자세한 내용과 장소, 시간은 위 신청폼과 인스타그램 @rainbow_mago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션, 숨은 무지개를 찾아라!> - 일시: 10/22(일)~10/28(토) - 장소: 구례의 퀴어프렌들리 가게와 공간(추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간 공개)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는 구례의 퀴어프렌들리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각 공간에 어울리는 소소한 전시와 미션에 참여해보세요. 사장님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미션을 수행하다보면 무지개가 뜬 구례가 더 좋아질 거에요. 미션을 완료한 참가자들에겐 상품도 있어요.(28일 장터 인포 데스크에서 수령) <구례성다양성축제 장터&퍼레이드> - 일시: 10/28(토) 15시~17시 - 장소: ‘느긋한 쌀빵’ 앞 공터 (구례읍 봉서산정길 61-8) 구례의 로컬 직거래장터 두루다살림장과 함께 장을 엽니다. 음식, 물건, 판매, 나눔 뭐든 좋아요. 성다양성축제에 함께하고 싶은 누구나 장꾼이 되어 돗자리를 깔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아래 신청폼만 작성해 주세요. https://docs.google.com/document/d/18fTaVX-blGtSOlSdxYYE-kWghbEr57R2Cyd2tfsMVzw/edit?usp=sharing > 춤과 드랙 공연, 퍼레이드까지 마치면 피날레로 모두가 모두의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할 거에요.(너무 재밌겠당!) 많은 분들이 와서 즐겨주시고, 서로의 다름과 다양함을 응원하는 자리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퀴어를 그대로! 지리산을 그대로! 디자인. 칩코 글.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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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지리산의 가을은 들녘에서부터...
참으로 힘들었던 여름은 그 꼬리를 감추고 언제나 단명인 가을이 서서히 지리산을 물들이고 있다. 이번 여름이 가장 덜 더운 여름으로 기록될 거라 했고 극한호우란 단어가 등장했던 지난 여름, 유난히 더웠고 또 비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쏟아부었던가. 그럼에도 지리산의 들녘엔 알곡들이 여물면서 단순한 식량 그 이상의 무게로 벼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초봄 모를 준비하고 논물 대면서 시작하는 벼농사, 식량은 기본이고 가장 생태적인 저수지에 청정 산소를 생산하는 초록 공장 역할을 하는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다. 게다가 봄부터 가을 그리고 겨울 빈 들녘까지 논은 설치미술 그 이상의 예술작품으로 우리 곁을 지킨다. 그러니 긴 세월 논을 지켜온 우리 농부들은 자연의 예술가들임이 분명하다. 쥐꼬리만한 농민수당은 작품 감상비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필자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 아름다운 가을 들녘을 감상하고 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지리산 자락을 한 바퀴 돌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산청을 출발해서 하동 구례 남원 함양 찍고 다시 산청까지는 대략 300km, 구석구석 누비기엔 스쿠터가 딱 좋은데 비가 오락가락해서 차를 운전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둘레길 모니터링도 병행할 수가 있어 더 유익했다. 필자가 산청 안솔기마을에 살면서 날마다 만나는 외송 들녘은 규모가 크진 않지만 다랑이 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더 애정이 가고 또 아름답다. 그리고 경호강 건너 저 멀리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이 배경이라 지리산의 의미를 더한다.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외송 들녘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간디고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커다란 축복이리라. 하동 적량과 악양 들판에 들렀다가 섬진강을 따라 구례를 지나오면서 시간이 허락지 않아 골프장 건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사포마을 다랑이 논을 들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밤재를 넘어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 대상을 받은 서어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는 남원 행정마을로 향했다. 지리산 둘레길 1구간인 주천-운봉 사이에 자리한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감동을 주는 숲이라고 감히 말한다. 해발 400m 고원지대인 운봉 들녘은 정령치에서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릉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 논두렁에서 하늘거리며 피어있는 코스모스 꽃무리는 가을 들녘의 운치를 더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조연이라 할 수 있다. 운봉과 인월을 지나고 산내 실상사를 지나면서 강물은 남강 수계가 되고 남원과 함양의 경계 쯤에 자리한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은 다랑이 논으로 그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지만 벼농사의 어려움으로 면적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지금은 국가중요농업유산 등재를 위해 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시 옛 명성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지리산 칠암자길로 유명한 삼정산을 배경으로 도마마을 다랑이 논 풍경을 멋지게 담기 위해서는 건너편 금대암 오르는 길에서 찍어야 제대로 된 작품을 얻을 수 있다. 지리산 자락을 한 바퀴 돌면서 돌아본 가을 들녘, 비와 바람과 햇볕 그리고 농부의 손길이 만들어 내는 그 예술작품이 지속가능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과연 그 벼농사를 이어 갈 젊은 농부들이 있을지가 관건이지 싶다. 아무튼 지리산의 가을은 들녘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곧 온 산이 가을의 본색으로 번져 나갈 것임을...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을 배경으로 노을로 물들어 가는 외송 들녘 삼정산 아래 자리 잡은 도마마을 다랑이 논 평사리 부부송이 지키고 있는 악양 들녘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에 걸린 운무 그리고 외송 들녘 정령치에서 바래봉까지의 지리 서북릉 아래 행정마을 들녘 하동 적량 들녘을 지키는 용버들 지리산 둘레길 주천-운봉 구간 들녘을 걷는 길동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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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그대로!" 노고단에서 '기후정의'를 외치다
지리산을 그대로 ⓒ 최상두 ⓒ 최상두 노고단 정상에서 참가자들은 웃으면서 저기 보이는 아랫마을은 어디인지 저 산줄기의 끝은 어디로 이어지는지 헤아려 보았다. 노고단 돌탑 앞에 펼쳐진 현수막들이 하늘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 "지리산 케이블카 백지화!" "지리산 골프장 중단하라!" "구례 양수댐 중단하라! 제발 그만하라!" 지리산 노고단의 높은 언덕에서 참가자들은 마음이 든든했다. 섬진강도 반야봉도 천왕봉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맑고 푸른 가을날이다. '923지리산기후정의행진'을 마무리하는 참가자들의 외침은 길게 여운으로 남았다. "지리산을 그대로! (그대로!)" "지리산아, 고마워! (고마워!)"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와 수많은 골짜기가 참가자들의 외침에 메아리로 호응하는 듯했다. 영원히 그립고 가슴 울컥할 외침이고 메아리였다. ⓒ 최상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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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치밀하게 구례 양수력 발전소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에 살았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의 이야기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는 중산리 반내골에서 태어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여순 사건이 시기에 빨치산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전신주를 박고 죽었다. 이후에 문상을 온 사람들과 만나는 딸의 이야기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중산리에 처음 가본 것은 2008년쯤이었다. 구례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마을 대부분 문척에서 감전으로 가기 때문에 중산리까지 들어오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골을 깊고 들어가면 빠져나오는 길이 없어 왔던 길을 다시 나가야 한다. 이곳에 1조 원 규모의 양수력 발전소를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를 짓겠다고 한다. [양수발전소 건설은 약 1조 원 규모의 대형 국책사업으로 건설 기간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매우 크다. 또한 양수발전소 주변 지역은 건설 및 운영 기간 동안 법률에 따라 다양한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상부․하부 저수지는 지역의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자체의 유치 열기가 뜨거운 상황이다. 구례군은 양수발전소 유치가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중요한 대안이 될 것으로 보고 군의회와 함께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 - 관련보도뉴스- 지난 토요일에 중산리를 가보니 마을 곳곳에 양수력 발전소 반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수몰예상 지역은 중산리와 토금리가 갈라지는 다리부터 중산리 양계장 근처 까지라고 한다. 양수력 발전소는 남는 전기로 펌프를 이용해 댐에 물을 가두고 전기가 부족하면 발전을 하는 발전소를 말한다. 섬진강에 양수력 발전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몇 해전엔 화개에 만들겠다고 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고 간전면에도 만들겠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번에 문척 중산리다. 아룬다티 로이의 9월이여를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다. 인도 작가인 아룬다티 로이는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책으로 부커상(세계3대문학상)을 받았다. 돈을 벌었지만 인도의 다마르강 댐 공사를 보면서 그녀는 힘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로이가 보기에 국가가 말하는 소위 '개발'이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싸움을 걸어 이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하필이면 왜 양수력 발전소는 구례에 짓는 것일까? 서울에는 한강이 있으니 서울 어디에 한 강물을 퍼올려 양수력 발전을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힘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힘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댐을 짓거나 발전소를 짓거나 하는 것은 모두 힘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짓는다. 힘없는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타지로 내몰린다. 힘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전력 안정화를 위하여 힘없는 사람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공격한다. 충분한 배상을 해줄 것이면 지역발전이 되고 인력 창출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충분한 보상을 했는데 반대를 한다며서 지역이기주의라고 공격한다. 매번 같은 방식이지만 매번 통한다. 왜냐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고 수몰민이 되더라는 돈을 벌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고향은 돈 보다 아래이기 때문이다. 중산리에서 주민 한 분을 만났다.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안개가 많아서 농사짓기도 힘든데 뭔 짓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결사반대다"라고 말했다 평화롭게 하루하루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한 대가로 누군가는 막대한 이득을 얻는다.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는 골프장과 양수력 발전소로 개발로 가는 구례로 변하고 있다. "내 고향 반내골은 보이는 것이라곤 죄 밭과 내(川)뿐이라고 해서 이름조차 반내골이다. 계곡과 좁은 신작로를 빼면 평평한 땅 찾기가 어렵다. 고향 사람들은 눈만 뜨면 산자락으로 달려가 화전을 일구거나 산을 뒤지고 다니며 먹을 것을 찾았다. 거칠고 가파른 산의 품은 뜻밖에 풍요로워 더덕이며 칡이며 송이며 능이며, 갖가지로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거친 산이 어른들의 영역이라면 냇물은 아이들의 것이었다.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는 개울가에서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탕을 먹는 동안 너럭바위 위에서는 젖은 옷이 뽀송뽀송 말라갔다. 누군가는 부른 배를 두들기며 너럭바위에 빨래처럼 널브러져 깜빡 잠이 들었다 팔이며 다리며 배까지 껍질이 홀라당 벗겨지기도 했고, 누군가는 용감무쌍하게 어른들이 절대 가지 말라는 소(沼)에 뛰어들었다가 시커멓게 소용돌이치는 물을 한 말이나 마시기도 했다. - 정지아자가글중에서- 밭과 내만 있는 조용한 산골 마을에 양수력 발전소가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익을 보는 자와 피해자가 뚜렷한 이 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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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 날 온 종일 비가 내렸다. 멀미를 하는 작은 아이는 앞자리에 앉았다. 구례를 출발할 때 내리던 비는 남원에서 잠시 멈추더니 임실로 넘어가자 너 거세게 내렸다. 창밖으로 뿌연 비안개가 가득 차서 차 안에서 보이는 것은 그나마 선명한 흰색 차선 뿐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적이 일과 공적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는 전주를 넘어갈 때 공사 차량을 보더니 질문을 했다. 아빠 공적인 일이 뭐 죠? 공적인 일... 우리가 지금 도로를 이용하고 있잖아. 이런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만든 것이니까 이런 일을 공적인 일이라고 하는 거야. 반대로 사적인 일은 모두가 이익이 되지는 않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공적인 일은 모두 옳은 일인가요? 그것은 아니지 아빠 한나 아렌트가 이런 말을 했잖아요 악의 평범성 말이야? 네. 그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과 연관이 있나요? 아이가 한나 아렌트에 대해 아는 이유는 이렇다. 작년 어린이날 섬진강 헌책방에서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던 책이 있었다. 그 중에 아무도 가져 가지 않은 책을 내가 챙겨 왔다. 그 책은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철학책이 50권 정도 되는데 아이는 그 책을 3-4번씩 모두 읽었다고 한다. 순자, 공자, 맹자 헤겔, 마르크스, 데카르트, 갈릴레오 같은 유명한 철학자나 사상가 부터 나도 잘 모르는 성리학자나 서양 철학자들의 핵심적인 내용을 소설처럼 엮은 책이었다. 몇 권 읽어 봤는데 내용이 아이들에게 조금 어렵겠지만 책 내용은 좋았다. 아이는 그 책 중에서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아이히만이 법정에서 한 말] 한나 아렌트는 철학자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이 유명하다. [아이히만은 슈츠슈타펠 중령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인 학살 계획의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인데, 그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상관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시킨 대로만 했을 뿐이라며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책이 충격적인 이유는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아이히만이 아주 사악하고 악마적인 인물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매우 평범했다는 점이다.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서 결론을 내린 것은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쉽게 말해서 악의 평범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악이 특별히 악마적인 어떤 것에 기원하는 게 아니라는 아렌트의 주장은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이 책이 출간된 후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아렌트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 기계적으로 행하는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는 무사유(thoughtless) 그 자체가 바로 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편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 아이히만의 사례를 들며 기계적으로 행하던 일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상상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언급한다.] – 나무위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 한나 아렌트는 유태인 이었잖아. 그는 히틀러를 명령에 따라 충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던 아히히만을 취재했는데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나는 내일을 충실히 했을 뿐이다. 내가 만약 내 임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문제가 아닌가? 라는 태도로 일관 했었지. 나는 어느 유태인도 미워하거나 증오 한 적이 없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이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업무였다는 것이라고 말이야. 아히히만이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낸 것도 당시 독일에서는 공적인 업무였지. 하지만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히만은 사형을 당했어. 지금 구례에서 하는 일들 중에도 공공의 이익이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재로는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서 하는 일도 있을 거야.. [구례에는 골프장 환영 현수막 400개가 걸리는 이상한 일이 있었다.] 골프장 같은 거요? 그것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 하는 일이지 그런데 왜 현수막도 걸고 그러는 거죠? 아마도 골프장이 공공의 이익이 된다고 말하려고 하는 것이겠지. "사적인일 이라면서요" 그러게 ... 사적인 개인 기업이 골프장을 만드는데 400개씩 현수막을 걸은 것을 보면 이상하기는 하지.. 구례군이 앞서서 업무협약을 하고 말이야.. 한나 아렌트가 그랬지 "사유하지 않는 것 즉 생각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죄라고 말이야" 자연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과 자연을 파괴하고 그곳에 골프장을 짓는 일 과연 어느 쪽이 공적인 일인지는 누구나 알 것 같은데... [골프장 예정지 잘려 나간 나무들] 이이히만이 가스실로 보내 죽은 유태인들이 다시 살아올 수 없듯이 베어낸 나무가 다시 살수 없지, 하지만 나무를 다시 심을 수는 있지. 어느 쪽이 더 옳은 선택인지는 훗날 평가하겠지. 아이힌만도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훌륭한 군인이라고 평가받았으니까. 다음 질문은 성선설과 성악설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에 하기로 하자. 아빠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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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포마을 다랭이논 사계절 풍경
지리산골프장개발 예정지인 전남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사포마을의 다랭이 논입니다. 다랭이논 위에 지리산 골프장이 들어서면 농업용수 오염 문제 등으로 이 아름다운 농업문화유산인 다랭이 논들도 사라지지않을까요.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는 볼 수없을 이 사랑스런 사포다랭이논을 지켜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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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장 앞에서_꼬리의 방구일기
- “저는 단 한번도 이 곳에 케이블카가 지어질거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산은 그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산은 그러면 안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케이블카 착공식장 안으로 고급 자동차들이 하나 둘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미 슬퍼지고 있었다. 눈앞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멀리 하얗게 빛나는 바위와 아마 그 곳에서 부지런히 겨울나기를 준비할 야생동물들을 슬픈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있었다.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바위가 많은 설악산 사람은 산을 닮아 꿋꿋하고 우직한가. 이미 오랜시간 싸워왔다는 주민의 말씀이 무너지던 나의 마음을 단단히 받쳐주었다. ‘맞네. 설악산에 케이블카? 절대 못 오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어느새 기세가 등등해졌다. 정부가 바뀌자마자 법과 연구결과를 전부 부정하고, 말을 싹 바꿔버리는 저 사람들은 사실 내보일게 없어서 저렇게 비싼 옷과 차와 경호원으로 제 자신을 두르고 착공식장에 들어가는구나. 어떻게 말도 안되는 사기를 당하냐고 남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시공사도 안 정해진 2시간짜리 착공식에 3억원을 편성하고, 전체 사업비 1172억원(이게 도대체 얼마여..)을 마련하려고 양양군은 위급상황에 쓰여야할 ‘지방안정화기금’까지 끌어다 쓰겠다고 한다.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다.. 나는 지리산에서 기쁨과 행복이 어디서 오는 건지 배웠다. 산에 피는 꽃이 달라지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 아침에 새소리를 듣고, 낮에 햇볕을 쬐고, 노을 물든 지리산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탈 때, 둘레길 계곡물을 만두(강아지)가 찹찹거리며 마시면 나도 옆에 앉아 얼굴 씻을 때, 우연히 푸른 논밭을 바람처럼 가로지르는 고라니를 만날 때, 또 우연히 만난 이웃이 자기네 감을 그냥 쥐어줄 때, 그 감을 깎아 만든 곶감이 처마 밑에서 말라가는 걸 보며 나는 누구에게 선물할까 생각할 때, 반려인이 불피운 구들방 아랫목에 나란히 몸 뉘여 잠들 때. 기쁨과 행복은 오직 감사와 사랑에서 온다. 그리고 감사하고, 사랑하면 욕심 부릴 수 없다. 산에 바위가 이끼가 도토리나무가 반달곰과 산양이, 수리부엉이와 꿀벌이 오랜시간 지구에서 제 모습대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왔기에 바로 그 케이블카를 타면서 보고 싶은 맑은 풍경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유리창으로 둘러막힌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20분만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은 그리 기쁘거나 행복한 일이 아니다. 나도 해봤기 때문에 안다. 산에 사는 생명들의 평화를 빼앗으며 만든 기계 속에서 아무리 즐거워해보려 해도 잠깐의 자극, 그 이상을 느낄 수는 없다. 그 이상의 것들은 이미 너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을테다. 반짝 관광지였던 곳은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나 쓸쓸한 콘크리트 건물들만 무성한 채 유령도시가 되어있다. 아직 살아있는 나무들과 꽃과 새들만이 그나마 사람들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단언컨대 케이블카를 짓고, 운영하고, 타는 이들은 케이블카를 막겠다고 눈물 흘린 이들보다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변덕은 죽 끓듯 해도 산은 언제나 거기 있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이들만이 설악산을 제 모습 그대로 끝까지 지켜낼테니까. 사진. 수달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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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장 앞에서_꼬리의 방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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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이 가을, 미술관으로 다가온 실상사
- 지리산에서 실상사가 갖는 의미는 아주 각별하다. 지리산 생명 평화 운동의 시작점이자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엄숙 진지함보다는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는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웃 같은 절집으로 느껴지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지리산이 위태로울 땐 저항의 구심점이 되어 지리산의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역할을 자임해 온 것도 실상사였다. 이 가을날, 지리산 운동의 심장 그 실상사가 지리산프로젝트란 이름을 달고 울타리 없는 미술관이 되었다. 그림, 사진, 설치미술 등등 다양한 모습으로 실상사 곳곳을 장식하면서 문화 불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2014년 '우주예술집'이란 제목으로 시작된 지리산프로젝트는 해마다 진행되다가 코로나 등으로 잠시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올해 '정의도 빛나고 평화도 빛나라'란 주제로 독일과 일본 작가를 포함해 스무 명의 작가들이 참여, 실상사를 미술관으로 변신시켜 9월 22일부터 10월 29일까지 작품들을 전시했다. 지리산프로젝트 김준기 예술감독은 “지리산프로젝트2023은 한국 근현대 역사가 만들어 낸 이분법적인 진영 대립 구도를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적 시도들에 집중해보고자 한다”면서 “이는 동시대 사회와 예술의 최전방에 위치한 정의와 평화를 다루고자 함이며, 정의의 추구는 곧 평화의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실천의 과정으로서 지리산의 생명 평화 사상과 결합한 다양한 예술 형식을 새로이 모색하고자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번 지리산프로젝트2023의 스태프로 참여한 실상사 수지행은 “실상사를 찾는 분들이 언제부턴가 실상사에 문화재 말고도 볼 것이 많아졌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면서 “절은 나를 돌아보는 성찰과 치유의 쉼터로 예술이 가진 성찰의 힘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법문이고 절은 불교 신자들에겐 신행의 공간이자 모든 사람에게도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전통문화를 배우고 현재의 삶을 치유하는 열린 문화공간”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리산프로젝트는 “천년고찰 실상사에 스며있는 문화유산의 가치에 더해서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예술에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번 지리산프로젝트는 10월 29일 “윤리와 예술의 관점에서 본 정의와 평화”란 제목으로 진행된 토론회를 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필자가 지리산 운동에 발을 디디면서 숱하게 찾았던 실상사였지만 지리산프로젝트2023으로 또 다른 실상사로 다가왔다. 다양한 모습으로 전시된 작품들 하나하나를 사진에 담으면서 실상사의 문화재와 더불어 저 멀리 장쾌하게 펼쳐진 지리산 주 능선과 천왕봉도 작품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산청에서 실상사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 그 길을 수없이 오가면서 엄천강 따라 펼쳐진 가을 풍경 또한 그대로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감히 주장한다. 끝으로 이번 지리산프로젝트를 마감하면서 지리산권 지자체들은 지리산 케이블카나 산악열차 그리고 골프장 건설 등 시대착오적 개발사업에 예산 낭비하지 말고 지리산 전체를 커다란 예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궁리를 해 주길 간곡히 당부한다. (자료 출처 : 지리산프로젝트2023 리플렛) 이번 지리산프로젝트에서 스태프로 참여했던 실상사 수지행이 엄혁용 작가의 “‘책 피어오르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리산의 구름, 나무와 책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선재집 앞마당에 설치되어 있는데 담 너머 저 멀리 지리산 주 능선과 함께 천왕봉이 조망된다. 김화순 작가의 “불어라, 생명평화의 바람”은 보광전 뒤 숲속에 걸려있는데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뒷모습으로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불타는 산과 녹아내리는 빙하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의 실제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를 업은 포대기에 그려진 인드라망 생명평화 문양에 눈길이 먼저 간다. 실상사 목탑지에 설치된 한호 작가의 “영원한 빛 코스모스”, 우주의 정원에서 빛나는 별들은 우리가 바라본 먼 세계이며, 인간이 가진 사유의 우주 또한 투영된 자신의 셰계와 연결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저 목탑지 바로 옆에는 세월호지리산천일기도소가 자리하고 있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팽나무를 배경으로 설치된 홍경태 작가의 “설계”는 인간관계의 의미로 출발하는 격자구조의 철근은 이어짐과 끊어짐 그리고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해주는 지지대의 역할이고 내부의 편지 봉투 형상의 상자는 상호 간의 교류를 의미한다. 절집 주련은 대부분 한자로 새겨져 있지만 실상사 천왕문에는 한글 주련이 있어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안상수 교수님의 글씨로 한글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 주련을 지나는 필자의 어린 길동무들, 지리산 칠암자길 중 영원사에서 출발해서 실상사까지 여섯 암자를 걸어온... 실내 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는 선재집에는 천왕봉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방석이 놓여져 있다. 그 방석에 앉으면 선재집 출입문을 통해 보광전과 천왕문 그리고 저 멀리 천왕봉까지 일직선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에서 이런 풍광을 만날 수 있겠는가. 칠성각 앞 반송 아래에서 “평화를 지키는 고양이 심바”는 권군 작가의 작품으로 이곳을 가상의 산신각 자리로 정하고 지리산을 지키는 호랑이 대신 시대적 현상을 반영해 고양이 심바가 그 역할을 하도록 위치시켰다. 심바의 두 눈은 해와 달을 상징하고 두 눈 사이의 하트 형상은 사랑과 평화를 뻗어나가게 하는 전류와 파동의 중심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선재집 벽면에 걸린 선무 작가의 “손에 손 잡고”는 여덟 명의 어린이가 각각 다른 국기를 달고 있지만 그들은 평화를 원한다고 말한다. 선이 없다는 의미의 ’선무‘는 탈북 작가의 가명인데, 세계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체제들의 경계를 해제시키는 것, 그래서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는 것이 선무 작가의 메시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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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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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이 가을, 미술관으로 다가온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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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여신과의 비대면 회의
- 이 글은 [생명 다양성 재단]의 뉴스레터 [하늘다람쥐]에 실린 글입니다. <마고여신과의 비대면회의> 칩코(지리산방랑단) 지리산 주민 채용 면접 칩코는 긴장한 얼굴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지리산 주민 채용 면접’이라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칩코는 절복의 매무새를 다시 살피곤 차렷자세로 섰다. “안녕하십니까! 지리산 주민 지원자 칩코입니다!” 칩코의 우렁찬 인사에 멧비둘기가 화들짝 놀라 날개를 푸드덕 댔다. 의자에 걸터앉은 수달은 눈이 퀭한 채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운데 자리를 꿰찬 개망초만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세 명의 면접관은 모두 검은 양복을 차려입었으나 수달은 흰 리본을 달았다. “자기소개 하세요. 지리산 방랑단이라고요?” 개망초가 서류를 뒤적거리며 물었다. “예! 지리산방랑단은!” 칩코의 목소리에 또 놀란 멧비둘기가 깃털을 날리자 개망초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후 “작게 말해도 다 들립니다.”라고 엄숙하게 지적했다. 칩코는 입이 바짝 말라 침을 꿀꺽 삼켰다. 면접에서 떨어지면 지리산에서 쫓겨날 것이었다. “예. 지리산방랑단은 네 명의 인간으로 구성된 환경운동 단체입니다. 지리산방랑단은 이 년 전, 지리산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기 위해 선배 야생동물님들을 본받아 사개월의 무전방랑을 하며 시작됐습니다.” “무전방랑이 뭐야?” 수달이 책상에 뺨을 기댄 채 별로 안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선배님들처럼 돈 없이, 차 없이 지리산을 떠돌았다는 뜻입니다. 지리산 5개 시군구를 매일 걸으며 숲과 마을에서 얻어 먹고 얻어 자면서 지냈습니다.” 대답을 들은 수달은 더욱 미궁에 빠졌다. 도대체 그게 뭐가 특별한 건지 이해를 못한 듯했다. 개망초는 한숨을 쉬며 수달에게 귓속말로 덧붙였다. “인간들은 보통 안 그래. 인간들은 돈 없으면 밥도 못 먹고 집도 못 구하거든.” 개망초는 칩코에게 마저 말하라고 눈짓했다. “예, 예. 지리산을 방랑하며 개발사업으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를 채집해서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이후 지리산에 정착하여 생태적인 삶을 고민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생태적인 삶은 또 뭐야?” 수달이 반대쪽 뺨을 책상에 납작 붙인 채 물었다. 칩코는 구변 좋은 방랑단원을 데리고 올 걸 후회 중이었다. “예! 선배님들처럼 돈 없이 지내는 삶입니다! 텃밭농사를 짓거나 산나물을 캐서 식량을 자급하고, 산에서 장작을 구해 난방하고 매일 불을 피워 밥을 짓습니다! 빨래나 설거지한 물은 모아서 텃밭에 돌려주며 물을 아끼고요! 사실 전기는 조금… 쓰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생태적으로…” 멧비둘기가 고개를 앞뒤로 두번 까딱했다. 진땀을 빼던 칩코는 그의 반응에 안도했다. 하지만 수달은 한층 복잡해진 표정으로 개망초를 바라봤다. 개망초는 “인간들은 보통 안 그래. 전기랑 돈 없이는 하루도 못 살아.”라고 귓속말로 알려주었다. 개망초는 책상에 턱을 괸 채 물었다. “그래서… 올봄에 구례 산동면 ‘지리산 골프장 예정지’에서 벌어진 대참사를 알고 계시겠죠? 그때 지리산방랑단은 어떤 활동을 하셨습니까?” 칩코는 잠깐 오줌을 싸고 와도 되느냐고 묻고 싶은 걸 참았다. 이 면접이 생긴 이유가 바로 그놈의 지리산 골프장 때문이었다. 골프장 예정지에서 생긴 일 올봄, 구례 전역에 현수막이 나부꼈다. ‘(축)지리산 골프장 업무협약체결 축하합니다(축)’라고 적힌 현수막 400여개가 온 구례에 동시다발적으로 걸린 것이다. 알고보니 골프장 예정지에서는 겨울부터 이미 21헥타르 규모에 달하는 벌목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삶을 잃은 나무가 몇이며, 집을 잃은 멧돼지가 몇이던가! 땅 속 박힌 나무뿌리와 바위까지 다 파헤치자, 흐르던 계곡물도 자취를 감추고 비탈은 운동장처럼 평평해졌다. 칩코는 깎아지른 벌목지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나무 시체 더미를 보고 눈 앞이 아득해졌었다. 골프장 예정지 아래 사포마을 인간들도 날벼락을 맞긴 마찬가지였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그 독한 농약이 다랭이논으로 고스란히 흘러갈 게 뻔했다. 사포마을은 옛사람들이 손으로 만들어 아름다운 곡선이 그대로 남아있는 다랭이논이 유명했다. 누구 맘대로 골프장을 뒷산에 들인다고 했단 말인가! 인간들은 군청에 달려가 호소했으나 군수는 골프장을 추진하겠다는 기자회견만 성대하게 치르고 주민 면담을 거부했다. 척박한 곳 어디든 먼저 달려가는 선구식물 개망초가 벌목지에 온 것도 올봄이었다. 개망초는 이보다 좋은 번식지가 없다며 신났지만, 숲을 잠식한 음울한 기운이 찝찝했다. 그러다 집을 잃고 또 다른 둥지를 찾아 헤매는 소쩍새 가족에게 숲의 사정을 들었다. 물론 소쩍새 가족도 영문을 몰라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였지만, 깨진 시멘트 틈마다 끼어 인간들 하는 짓을 가까이 지켜보던 개망초만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수달도 그곳에 살고 있었다. 수달의 고향은 사포저수지였다. 한때는 매일 넘쳐나는 은어에 다망하고도 풍족했으나 다 옛말이 됐다. 인간들이 정겨운 옛저수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높은 홍수방어벽이 솟아났다. 수달은 어린 젖먹이를 바위틈에 숨겨두고 길렀다. 공사차량 소리가 시끄럽던 어느 날, 먹을 게 없어 먼 곳까지 먹이를 구하러 나간 사이 바위틈은 젖먹이들과 함께 시멘트로 메워져버렸다. 그렇게 홍수방어벽에는 덜 마른 시멘트에 찍힌 수달의 애처로운 다섯 발가락이 남게 되었다. 수달이 흰 리본을 매단 이유였다. 난리통은 끝이 아니었다. 매일 밤낮 그 우람하던 나무들의 비명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벌목지에 영역을 빼앗긴 동물들은 서로 영역다툼을 하느라 소란이었다. 수달이 이용하던 계곡길도 간데 없이 사라졌다. 더이상 맛있는 것도 없고 귀여운 자식도 없었다. 살고 싶지 않아진 수달이 벌목지를 보며 자빠져있던 곳이 마침 개망초의 옆자리였던 건 우연이었다. 개망초는 안쓰러운 수달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다 지리산에 아무나 들인 탓이다! 이웃 간의 상도라곤 없는 인간 녀석들이 문제다!’ 주민 채용 면접을 해서 지리산과 어울리는 인간을 가려낼 필요가 있었다. 개망초는 지리산 마고여신의 결재를 받아 면접을 대대적으로 열었다. 우울한 수달을 달래 일단 면접관으로 앉혔다. 종다양성을 고려해 조류 면접관도 한 명 두려던 차에, 개망초의 연설 때마다 고개를 앞뒤로 까딱이던 기특한 멧비둘기가 발탁됐다. 지리산에서 쫓겨난 생물 “그게… 저는 ‘지리산사람들’ 시민단체와 ‘사포마을 골프장 건설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와 함께 벌목지 답사 프로그램을 열어 사람들에게 참사소식을 알렸습니다. 향과 쌀을 바치며 애도하는 시간을 갖고요. 지리산방랑단은 방구룸 뉴스를 기획하여 희생된 나무님들과 수달님 등을 인터뷰하였습니다!” 수달이 살짝 고개를 들어 칩코의 얼굴을 봤다. 그제야 자신을 인터뷰하러 왔던 방구룸 뉴스팀이 떠올랐다. “아 그게 지리산방랑단이었군. 지난해 대규모 골프장이 들어선 강원도 화천군에서 수달이 수은중독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왔지.” 면접장은 다시 침울해졌다. “흠, 질문은 이쯤하자. 칩코는 그럼 계속 지리산에 살 것을 허락할까?” 개망초가 조심스럽게 침묵을 깼다. 수달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책상에 퍼졌고, 멧비둘기는 고개를 앞뒤로 까딱였다. 칩코는 연신 감사인사를 드리며 허리를 90도로 접었다 폈다. 면접장을 나서려던 칩코는 다음 대기자에 구례군수가 앉았던 것을 기억해냈다. 칩코는 홱 뒤돌아 면접관을 향해 물었다. “저어…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는 인간들은 당연히 주민권이 박탈되겠지요?” “엥?” 개망초는 멈칫했다. 마고여신께서 누굴 쫓아낸 적이 있던가? 면접을 해도 된다고만 하셨지, 그 면접을 통해 누굴 쫓아내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개망초는 목을 가다듬고 답했다. “주민권을 박탈하지는 않습니다. 지리산에서 계속 살 수는 있습니다.” 칩코는 방금 들은 게 말인지 방귀인지 헷갈렸다. “네? 그게 무슨… 그럼 애초에 이 면접을 왜 하는 거죠?” 개망초는 눈을 피하며 “그게… 마고여신님은 한번도 누굴 내치신 적이 없습니다. 그저 모든 생명을 품으셨죠. 그…이만 나가주세요.”라고 말했다. 칩코는 입이 떡 벌어지다 못해 길길이 날뛸 기세였다. “무슨 소리냐고요! 생명을 품는 것도 정도가 있지!” 멧비둘기가 고개를 앞뒤로 까딱했다. “저봐요. 멧비둘기님 말씀해보셔요!” 멧비둘기는 한번 더 고개를 앞뒤로 까딱하더니 갸우뚱 기울였다. 칩코는 비둘기가 동의의 표현으로 까딱거리는 건지 점차 혼란스러워졌다. 수달은 책상에 뺨이 인절미처럼 늘어진 채 “왜 저렇게 화난거야?”라고 개망초에게 물었다. 개망초는 여전히 칩코 눈을 피하며 “인간은 보통 저래. 자기랑 생각이 다르면 없애고 싶어해.”라고 중얼거렸다. 칩코는 개망초의 멱살을 잡고 싶었으나 어디가 목인지 알 수 없어 두 주먹만 불끈 쥐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골프장 따위를 짓겠다는 놈들을 가만두겠다고요? 이런 놈들을 가만두다간 숲이 절멸할 거에요! 무려 기후위기 시대라고요! 또, 또 수달님 태평하게 기후위기가 뭐냐고 물어볼 거죠? 지구가 마구 뜨거워져서 생물체가 도저히 살 수 없게 되는 거라고요!” 그때 면접관들 끝에 빈 줄 알았던 의자가 빙그르 돌았다. 알고보니 면접관은 셋이 아니라 넷이었다. 의자엔 바퀴벌레가 여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개망초는 종다양성을 위해 곤충 면접관을 한 명 모셨고 유구한 지구의 역사를 살아온 바퀴벌레가 안성맞춤이었다. 바퀴벌레는 제 목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것을 알고는 칩코에게 손짓했다. 칩코는 씩씩거리며 바퀴벌레에게 다가가 귀를 댔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내가 살아봤는데 지구가 뜨거워져도 모조리 죽진 않는다네. 껄껄껄.”하는 소리가 모기 날갯짓만한 소리로 들려왔다. 칩코의 이성의 끈이 드디어 똑 끊어졌다. 마고여신과의 비대면회의 “당장 책임자를 모셔오세요! 아무도 탈락하지 않는 괴상한 면접을 열어 시간만 낭비하게 하다니! 마고여신님께 제가 직접 물어야겠습니다! 그런 나쁜 놈들마저 품는 게 위대한 마고여신님의 할 일인 건지!” 개망초는 난감했다. 개망초는 그런 인간을 가려낼 생각은 있었지만 쫓아낸다는 건 상상해보지 못했다. ‘하여간 인간들은 늘 끝장을 보려하지’라는 말만은 저 폭주기관차에게 닿지 않게 속으로 뱉었다. 그때 바퀴벌레가 마고여신님에게 비대면 회의 링크를 전송했다. “모시도록 하죠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껄껄껄.”하고 말했으나 누구도 듣지 못했다. 면접장 뒤 흰 벽에 커다란 얼굴이 번쩍 떴다. 멧비둘기가 요란하게 날개를 푸드덕 댔다. 바퀴벌레를 제외한 모두가 놀라 영상화면을 바라봤다. 마고여신인 반달가슴곰이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곰은 한창 도토리를 씹느라 뭉개진 발음으로 “왜 불렀지?”하고 물었다. “제게 생명을 주시는 마고여신님! 늘 맑은 물과 달콤한 산딸기를 주심에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그런데 이런 감사함을 모르고 숲을 해치는 자가 있다면 응징이 인지상정이지 않습니까? 명재경각의 벌목지를 굽어살피시어 나쁜 놈들을 모두 물리치옵소서!” 칩코는 스스로 어디서 이런 말투를 배운건지 알 수 없었으나 되는 대로 나불댔다. 모두가 고요히 마고여신의 말을 기다렸다. 마고여신은 도토리를 다 삼키고는 조금 분명해진 발음으로 입을 열었다.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아. 둘은 뭐랄까… 딸기케이크와 초코케이크 같은 거지. 뭐가 옳고 그른 건 없어.” 곰의 말이 끝나고도 면접장은 여전히 침묵에 싸였다. “케이크보단 꿀이 더 맛있지만.”라고 덧붙인 후엔 다시금 곰의 ‘찹찹찹’ 씹는 소리만 가득했다. 갑자기 엉엉 우는 소리가 고요를 갈랐다. “알아요. 삶과 죽음이 케이크라는 거 다 안다고요. 그래도 너무 슬픈 걸 어떡해요” 수달이었다. 곰은 화면에 한 발짝 다가와서 다정하게 말했다. “수달아 속상하지? 벌써 가을이야. 가을 열매엔 달콤함과 시간이 들어있어. 둘다 슬픔을 잊는 데 도움이 되지.” 숲에 옳고 그름은 없어도 기쁨과 슬픔은 있다. 숲의 모든 달콤함은 슬픔을 위로하는 마고여신의 선물이었다. 수달은 눈물을 글썽이며 마고여신을 바라봤다. 시간은 늘 우리를 열매처럼 말랑하게 만들어준다. 수달은 ‘저는 열매를 안 먹는데요’라는 말은 삼키고 마고여신님께 경배했다. 기운을 차린 수달이 씩씩하게 면접장을 달려나갔고, 밝아진 수달을 보고 개망초도 뿌듯함에 뒤따라 달려갔다. 마고여신의 먹방도 막을 올리고 바퀴벌레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모두가 해피엔딩인 양 가버렸지만 정작 칩코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면접장에 칩코는 홀로 남았다. 마고여신은 법이요 진리. 초코니 딸기니 이해가 잘 되진 않았지만 그분 말씀에 삶과 죽음이 케이크라면 케이크인거였다. 못된 놈들도 처벌 따위 받지 않고 달콤한 가을열매를 나눠먹을 수 있는 거였다. 다만 칩코는 허탈했다. 그렇다면 칩코가 사명감을 가져온 환경운동은 뭘까? 정의란 건 없는 걸까? 처참한 벌목지고 기후위기고 모든 게 그냥 케이크라면… 칩코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칩코는 수달처럼 턱을 괸 채 자빠지고 싶은 슬픔에 빠졌다. 그때 처음 듣는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네가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걸 하고 살아. 누굴 탓할 건 없어. 희망은 가을열매처럼 착한 놈 못된 놈 가리지않고 찾아오거든.” 멧비둘기가 칩코의 머리통에 잘 익은 정금열매 한 알을 떨어뜨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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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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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여신과의 비대면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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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편지 : 덕복희와 산달] 그저 그것대로 품어서
- 디자인.칩코 <음악을 말할 때 반짝반짝 빛나는 산달에게> 산달! 매번 이런 식으로 편지를 시작하는 것 같지만… 지난 편지는 정말 최고였어요! 산달은 아주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군요. 음악을 이야기하는 산달은 다른 편지에서보다 유난히 더 발랄하면서도 포근하게 느껴져요. 여명이 드는 예배당에서 혼자 드뷔시를 연주하는 산달의 모습은 정말 근사할 거예요. 어린왕자의 구절에서도 무릎을 탁 쳤답니다. 안간힘보다는 오히려 시간에 몸을 맡기면서 해결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장구를 처음 칠 때는 제가 마치 돌돌 쥐어짠 빨랫감이 된 기분이었어요. ‘장구가 내 몸을 파고든다’고 느껴질 만큼 몸에 붙들어 메라고 하거든요. 일 년이 지나고는 장구가 엄청나게 불편하진 않아요. 피아노가 산달을 변화시켰듯이 장구도 제 몸을 길들였나 봐요. 산달의 피아노와 비교하기엔, 전 장구를 너무 게을리 쳤지만… 악기를 배우는 게 어떠냐는 들뜬 질문이 참 반가워요. 악기와의 순간을 이토록 소중히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하는 듯이 설레요. 우쿨렐레는 이제 막 배우는 단계라서 즐겁고 가벼워요. 소리가 형편 없어도 노래 부르는 재미로 치고말죠. 그런데 장구는 워낙 잘하는 분들과 하니 기가 죽기도 해요. 우쿨렐레는 동네의 조그만 동호회처럼 모이는 반면, 장구는 ‘호남여성농악보존회’라는 전문기관에서 배워요. 아마 디스코팡팡을 타면서도 장구를 끄떡없이 치실 듯한 무형문화재 원로 선생님이 계시고요. 장구수업은 중년 여성 수강생이 압도적인데, 선생님께서는 수강생을 통틀어서 ‘엄마들’이라고 칭해요. “자, 이때 엄마들이 삼채 시작해요.” 이렇게 지시하거든요. 그 ‘엄마들’이 어찌나 장구를 다 잘 치시는지… 대충 흉내만 내다가 집에 돌아오면 진이 쏙 빠져요. 재밌는 게, 우쿨렐레 수업은 나이 많은 이웃들이 저를 ‘애기’라고도 부르시는데요. 두 악기수업 동안 전 애기가 됐다가 엄마가 됐다가 하는 셈이에요. 둘 다 도무지 어리둥절한 호칭이지만, 역시 애기였던 적은 있어도 엄마였던 적은 없어서 그런지 장구수업이 훨씬 어렵게 느껴져요. 지난 편지가 왜 최고였는지는 바로 이제야 말할 참인데요! 산달이 건넨 마지막 질문이 저를 오랫동안 몰두하게 한 까닭이어요. 새들의 목소리가 여러 주파수의 화음일 거라는 말은 참으로 당연하면서도 놀라웠어요. 해가 저물 무렵 마당을 어슬렁대다보면, 새소리 같기도, 고양이 소리 같기도, 곤충 소리 같기도 한 묘한 소리가 들릴 때가 있어요. 누군지 정체를 통 몰랐는데, 어쩌면 그건 그들 모두의 소리였을 지도 모르겠더군요! 저의 진지함도 우리의 유연함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주파수일 지도 모른다는 말 역시, 참으로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헉’하고 숨을 절로 들이켰어요. 산달이 꼭 예리한 심리상담사처럼도 느껴졌답니다. 분명 제 진지함도 어떤 순간엔 화음을 만들어낼 텐데, 실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진지함을 미워하기 바빠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나 봐요. 다만 어느 순간에는 진지함도 유연함을 만드는 재료가 될 거라는 그 다정한 말이 참 고마웠어요. 산달 역시 잡담이 어색하다는 맞장구를 쳐주어서 위로도 많이 되었고요. 이번 주제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인데요. 저를 싫어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체로 저를 재수 없어 했던 것 같아요. 이게 참 표현이 모자란데... ‘재수 없다’는 말 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어디서 진단해준 건 아니지만, 전 완벽주의 강박이 있는 모양이에요. 제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보여줄 용기가 안 나요. 어릴 적에 전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했는데요. 사람을 그리면 꼭 얼굴에 눈, 코, 입을 안 그렸대요. 머리칼이나 옷차림은 섬세하게 그리는데 얼굴만 텅 비어있는 거죠. 부모님은 좀 섬뜩하기도 하셨겠어요. 제 딴에는, 얼굴은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거길 실수했다간 그림 전체를 망칠까 봐 손도 못 대는 거였어요. 요즘도 전 비뚤어진 커텐과 색조합이 영 맞지 않는 침대시트를 잘 견디지 못해요. 컴퓨터의 가득 찬 휴지통과 정렬되지 않은 폴더도 마찬가지고요. 늘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돈되고 절제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해요. 완벽주의는 아마 겁이 많은 사람들의 질병일 거예요. 저는 이런 강박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저를 재수 없어 한다고 느껴요. 사람들에게 잘보이고 싶어 생긴 강박일 텐데 참 역설이죠. 다른 건 사소한 걸로 꼬투리를 잡으면서도, 제 허점은 보여주기 싫어하니 진짜 재수 없긴 한 것 같아요. 그런데도 제 교우관계가 썩 나쁘지 않은 것은, 아마 아무리 허점을 가려도 남들 눈엔 훤히 보이기 때문일 지도 몰라요. 정말로 완벽해 보이면 진짜 재수 없을 텐데, 전 허점투성이라 별로 재수 없을 것도 없는 거죠. 벽에 비뚤어진 커텐은 못 견디면서, 제 얼굴은 씻지도 않아서 하루 종일 눈꼽을 달고 다니는 식이에요. 말이 샜는데, 제가 세수를 안 하는 걸 고백하려 한 말은 아니고... 제 진지함도 아마 이 완벽주의 강박에서 기인한 게 틀림없다는 말이었어요. 이쯤 되면 ‘진지함’도 억울할 것 같아 화음을 만드는 순간을 요리조리 골똘했는데요. ‘진지함의 순기능 찾기’ 숙제를 풀지 못한 변명만 들고 왔습니다. 최근 열흘 간 아주 골치 아픈 일이 있었답니다. 제가 매번 진지한 꿈만 꾼다고 했던 말을 취소해야겠어요. 어느 날 똥꿈을 꾸었어요. 김밥김에 단무지까지 넣어서 똥을 돌돌 말아먹는 꿈이었는데요. 똥꿈이면 복권을 사야한다고들 하길래 좋은 일을 기대했어요. 그날 새벽 어스름한 부엌을 지나다가 발바닥에 촉촉하고도 바삭한 무언가가 닿았어요. 소스라치는 느낌에 펄쩍 뛰어올랐는데… 바나나만한 지네님이었답니다. 밟았다기보다 스친 정도라서 제가 해를 끼친 것 같진 않은데 이미 어디가 아픈지 몸을 또아리를 틀고 힘이 없었어요. 만약 이 정도 통통한 지네님이 팔팔한 상태로 절 물었다면 아마 그 새벽에 응급차를 불러야 했을 지도 몰라요. 제 복권꿈은 그렇게 지네님이 절 살려준 목숨값으로 퉁쳐버린 것이죠. 그날은 하루종일 발바닥에 지네 화석이 박힌 양 그 감촉이 가시질 않고 오소소 소름이 돋았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물리진 않았으니 촌인식은 아직이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414기후정의파업 전날 일이 터졌어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수상한 날갯짓 소리에 새벽 2시에 잠에서 깼는데요. 집안이 날개달린 흰개미떼로 뒤덮인 거죠. 새벽에 흰개미떼와 전쟁을 벌이다 일단 세종시로 후퇴했는데요. 일주일 뒤, 3배가 되는 흰개미떼가 정말이지 모래알처럼 나무기둥에서 쏟아져 나왔어요. 이 흰개미님들은 나무를 먹고사는데요. 주로 동남아에서 서식하는데, 우리나라 남부가 아열대기후로 변하면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죽은 나무가 주요 먹이라니, 생태순환을 위해 없어선 안될 분들이지만… 저희 집을 순환시키려고 나서실 줄은 몰랐어요. 실로 동남아나 호주에선 이 흰개미 때문에 집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대요. 기사를 검색해보니 우리나라 남부지역 목조문화재들도 여럿 흰개미님들의 공격에 맥을 못 추나봐요. 열흘 가까이 집에 못가고 인근 빈집에 피난을 와있어요. 방역업체에 문의해보니 왜 이렇게 늦게 연락을 했느냐고… 이 정도 크기의 성충과 유충의 양이면 이건 최근 일이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집을 갉아먹고 있었을 거라더군요. 개미떼가 나온 나무 기둥을 통통 쳐보면 텅 빈 드럼통 같은 소리가 나요. 흰개미떼가 나온 이후론 아무리 씻어도 몸이 간지러운 기분이고, 검은깨가 박힌 쿠키를 보면 개미가 박힌 줄 알고 흠칫 놀라고, 꿈에서도 내내 개미 꿈만 꿔요. 산달이 지난 편지에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내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된다’는 멋진 문장을 전해주었는데, 전 개미 생각을 하도 많이 해서 개미가 된 게 분명해요. 근래 식욕이 없고 무기력한데, 제 짝꿍도 상태가 비슷해요. 일이 도무지 손에 잡히질 않는 와중, 이웃 개를 산책시키고 모종들 물 주는 일은 멈출 수가 없으니 무거운 몸을 힘겹게 일으켜 겨우 움직이고 있어요. 지리산엔 골프장을 짓겠다고 해서 또 그 관련 자료를 며칠간 정리하다보니 영 어깨와 목이 아파서 편지를 쓰러 노트북 앞에 앉기가 어려웠어요. 그래도 저희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오고, 탱자쌤은 ‘이건 기후재난이다! 기사로 써야한다!’며 노발대발 해주셨다니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기도 해요. 어쨌거나 촌인식을 거하게 치룬 것 같죠? 바나나만한 지네님보다 새끼손톱만한 흰개미님이 더 무섭더군요. 기가 막히고 우울한 이야기로 마무리가 돼서 난감하네요. 편지가 늦어 미안한 마음을 전해요. 제가 존경하는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가 이런 말을 했어요. ‘삶은 생각보다 진지하지 않다!’고요. 전 기차를 놓치기 직전이나,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이 문장을 주문처럼 외우곤 해요. 생각보다 별일 아닌 것들에 우린 너무 크게 상심하고 침울하잖아요. 흰개미님에게 집을 뺏긴 순간에도 이 주문을 외웠어요. 이건 별일이 아니다! 낙관적으로 생각하자! 하고요. 그런데 역시 기운이 쪽쪽 빠지는 걸 보면, 아무래도 삶이 진지하지 않다는 걸 배우기 전에, 진지함과 화해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산달! 숲도 마을도 새소리로 가득해요. 제비가 돌아왔고요. 아주 가까이서 할미새와 오목눈이와 팔색조를 본 행운을 자랑하고 싶어요. 썩어서 한바탕 죽었던 감자는 또 다른 새순이 올라와서 다들 번듯하게 자라나요. 요즘은 산 전체가 소나무 꽃봉오리가 된 양 노란 꽃가루를 안개처럼 뿜어내요. 고단했던 열흘 남짓 안에, 산달의 따스한 청명 편지를 포함해서 좋은 소식도 꽤 많았군요! 전 흰개미님을 너무 많이 죽여서 위령제를 지내야겠어요. 산달도 멀리서 물 한그릇 떠다놓고 기도해주세요. 흰개미가 된 덕복희 올림 <조금은 안쓰런 나의 웃음보따리 복희에게> 복희, 오랜만이에요! 제가 곡우 편지를 받은지 3주가 넘도록 답신을 못해 어느새 입하를 지나 소만이 가까워졌네요. 오기로 한 날에 편지를 받지 못해 서운했죠.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과 염려를 했을 복희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해요. 사실 번아웃이 왔었어요. 왜 뒷감당도 하지 못할 많은 일들을 모조리 손에 쥐었는지, 욕심이 많아 탈이 났던 거죠. 하나를 겨우 끝내면 다른 하나가 떡하니 앞에 서 있고, 그렇게 몇 개의 산을 넘는 과정에서 숨을 편히 내쉬기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결국 몸에 무리가 오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깊이 있는 대화를 집중해서 나누는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자꾸 이런 모습을 반복하는 저의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하는데, 늘 뾰족한 해법은 잘 생각나지 않아요. 어제 하루는 일부러 여유로운 척을 해보려 노력했어요. 친구와 전화도 하고, 볕을 쬐면서 산책도 하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도 함께 했어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라도 숨을 내쉴 틈이 필요했던 건가 싶어요. 그렇게 더 잠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돌아보니까 주변에 과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더라고요. 스스로에게 쉴 공간을 마련해주지 않으면서 자신을 혹사시키는 모습을 많이 보는데, 그게 바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제 모습이겠거니 싶었어요. 그러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복희에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답장을 바로 하지 않았더니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더 막막하더군요. 갓 받은 편지를 읽고 난 후의 기쁨을 소중한 줄 모르고 흘려보낸 제가 원망스러웠어요. 이대로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복희와 제가 한 계절을 몽땅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다시 읽었어요! 그건 마치 맛좋은 음식을 먹는 것만 같았어요. 식은지가 한참 되었는데도 변함없이 감질나는 그런 음식이요. 물론 밥이나 빵을 막 했을 때의 그런 따끈따끈함은 찾아보기가 어려웠지만, 몇 날 며칠을 묵혀 두면서 먹는 발효 음식처럼 예전에 못 보았던 것들을 찾을 수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지각도 밥 먹듯이 하고, 그러다보니 복희에게 준 말들도 충분히 정성을 들이지 못했던 것 같아요. 늘 다른 일을 하다가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 급하게 하는 요리들은 망하기가 십상이잖아요. 마치 제 글이 그렇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가끔은 투정도 부리고, 이해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요. 반면에 복희의 글은 정말, 뭐랄까요. 마치 지리산 같았어요! 제가 어떤 말을 편지에 담아서 보내든 그저 그것대로 품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려주는 그런 지리산이요. 복희가 편지에서 묘사해주었던 사랑 가득한 지리산 말이에요. 복희는 모든 편지에서 저를 있는 그대로 ‘기다려주고’ ‘감싸 안아주고’ 있었어요. 제가 어떻게 이 편지를 써왔는지에 대해서 후회하고 자책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건 큰 의미가 없다고 느끼거든요. 다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펜팔을 충분한 감사와 온전한 솔직함을 담고 싶었어요. 저는 늘 그 두 가지가 참 어려워요. 내 삶에 온 모든 것들을 하염없이 감사해보려고 노력하는데, 늘 거짓감사를 드리는 것만 같아요. 누군가에게 솔직하려고 노력하는 제 모습은 늘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져요.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소리가 몹시도 아름다워 흉내내려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의 몸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그런 상태로 겉으로만 소리를 흉내내려니 당연히 될 리가 없었어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여유로움과 꾸준함을 따라해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래야 한 음을 낼 때도 곧고 맑은 소리가 나고, 다른 악기들의 소리와도 듣기 좋게 어우러지더라구요. 언제나 가장 어려운 적은 조급함이에요. 지금의 나의 행동이 앞으로의 나를 어떻게 쌓아가고 있는지 상상할 줄 아는 것이 현명함이더라고요. 저의 말들은 어쩌면 그런 조급함으로 자아내어진 문장들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의 하루도요. 그러니 그렇게 모든 일을 혼자 다 해내려고 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나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허락하지 않고서 헛된 것들을 좇아 흉내내었던 거에요. 그런데 그런 제 말들을 싯다르타의 법문으로 만들어준 건 바로 복희가 섬세하게 들어주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복희를 보면 저는 제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희같은 사람이 되주었나 돌아보게 돼요. 흉내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걸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져요. 더욱 옹골진 진심을 담아 다른 존재를 대하고 싶다는 말이에요.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어요. 복희가 전해준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그 말을 같이 새겨보려고요. “삶은 생각보다 진지하지 않다.” 식욕이 없고 무기력할 때도 번아웃이 왔을 때도 그 말을 되새기면서 산책하고 음악을 들어볼게요. 그나저나 이제는 식욕도 기력도 다시 돌아왔나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지금쯤이면 돌아왔어야 할텐데 말이죠. 흰개미님과 집을 공유한 경험도 지금 돌아보니 조금 웃기기도 하나요? 물론 복희의 고생은 유감입니다… 그래도 복희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늘 재밌어요.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거리가 많은지! 누가 복희더러 진지하다고 했나요? 참, 그리고 위안이 될 만한 사실 하나 알려줄까요? 제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저를 싫어했던 적이 있었어요. 잘난 척 한다고, 재수없다고요. 성적도 좋고 발표도 잘했던 제가 샘이 났던 모양이에요. (제가 생각해도 조금 재수없긴 했어요.) 제게는 그게 큰 상처였던지 그 이후로 겁이 많이 생겼는데요. 사실 지금까지도 그래요. 누군가가 저를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감각이 제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불쑥불쑥 튀어나오거든요.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사람들이 그때처럼 대놓고 제 욕을 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대놓고 욕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애정을 담아서요..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이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흠흠, 같은 욕을 들었다는 것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위안이 되었을지 모르겠네요. 복희, 아마 이게 제가 드리는 마지막 편지일 수도 있겠어요. 그동안 저는 괜찮은 펜팔 짝꿍이었나요? 그랬든 안 그랬든, 복희는 제게 최고의 펜팔 짝꿍이었어요. 복희가 제게 보여준 기다림과 진지함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해요. 저는 지금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는 제주도에 와 있어요! 이곳은 바람도 많이 불어 마치 하늘에서 누군가가 계속 분무기를 뿌리는 것만 같아요. 내일이면 바다를 만나겠어요. 먹먹하고 향긋하지만은 않은 바다를요. 사랑하는 공간이 될 것만 같아요. 이 곳을 가득 담아 지리산으로 갈게요. 복희에게 보여드릴 햇살 담긴 웃음을 들고 갈게요. 안녕, 곧 만나요. 양팔 들고 벌서고 있는 산달이, 사랑과 솔직함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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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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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편지 : 덕복희와 산달] 그저 그것대로 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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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편지 : 토토와 가로] 세상과 조화롭게 산다는 것이
- 디자인.칩코 <가로에게>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편지를 띄워요. 이번 편지는 기약한 날짜를 한참 지나버렸네요. 혹시 나의 편지를 기다렸다면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한동안 편지로 소식을 주고 받는 일이 드물어지니 가로의 근황을 꽤나 오랜 시간 못 들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지난 잊을 수 없는 향기에 대한 편지를 받았을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들었어요. 많이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렇게 향기로 종종 떠오르기도 하는구나. 같은 향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맡는다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일텐데, 심장을 쿵 하고 멈춰버릴 것만 같았던 그 강렬했던 향기는 어떤 향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때의 시간과 추억을 향기를 통해 소중히 간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로의 향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어서 고마워요. 가로의 말처럼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은 닮아있어서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 했다면 편지가 비슷했을 수 있겠어요. 이번 편지의 주제는 두 가지 중에서 한가지를 고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주제로 하냐에 따라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고민하게 되더라구요. 지리산방랑단이 정한 지난 청명의 주제는 ‘나를 바꾼 꿈’이고 곡우의 주제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네요. 가로와 저의 편지를 주고 받는 기간이 절기를 빗겨가게 되면서 가로의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모든 주제를 함께 나누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어요. 어느덧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 곡우의 절기를 맞이했으니, 조금은 어렵겠지만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해요. 흔히들 착한사람 콤플렉스 라고 하나요? 예전에는 좋은 사람으로만 타인에게 비춰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하고, 나를 싫어할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관계가 잘 이어갈 수 있게 때에 따라서 착한 척(?)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사회생활도 하게되고 조금씩 더 살아가다보니, 나와는 세상에 대한 관념이 다른 채로 훨씬 더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도 있고, 의도가 없었더라도 나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나를 싫어해서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오늘은 왜 화장 안했니?’ ‘너무 편하게 입고 다니는 거 아니야?’ 등 나라는 사람을 지워내는 말을 들을 때면 볼이 빨개지도록 화가나고 억울하기도 했어요. 그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이라도 해야하나? 머리를 꽁꽁 싸매다가 아, 나는 세상 모두를 담기엔 내 그릇이 부족하구나 라는 것을 느꼈지요. 날카로운 말로 상대에게 불편한 내 마음을 표출하는데만 온 에너지를 쏟았거든요. 지리산에 내려오면서 인간 관계가 이전과 많이 달라지기도 했어요. 가까이 있던 사람들과 연락이 소원해지기도 하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생기기도 하고,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주는 사람들도 새롭게 생겼을거에요. 가로보다 나의 주변에 물리적으로 가까이 살고 있는 이웃들 중에는 지리산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골프장을 짓는데 열심히 하루를 보낸 노동자가 살기도 하고, 아름다운 섬진강이 주변으로 흙을 퍼다나르며 물 속의 누군가의 집을 파헤치는 노동자도 건너집에 살고 있을 거에요. 나와는 생각도 삶도 많이 다르지만 한 마을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온 마음을 다해 그 삶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세상과 조화롭게 산다는 것이 꼭 모두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배웠어요. 굳이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것, 굳이 받아들이려고 애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조화를 이루는 것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해요. 음, 생각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도 하는 것이니 내일은 또 다른 시선으로 관계를 바라볼 수도 있겠어요. 이것이 영원한 저의 생각이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비가 촉촉히 내리는 봄이에요. 땅에 심어놓은 씨앗들이 새싹을 움트고 있어요. 씨앗마다 다른 모양의 얼굴을 들이밀고 나오는 것이 사랑스러워요. 그걸 알아보려고 매일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고요. 갈색의 고수 씨앗은 동글동글하게 생겨놓고 새싹은 길쭉하고 뾰족하고요, 아욱 씨앗은 까맣고 조그마한 것이 하트 모양으로 뿅뿅뿅 얼굴을 빼꼼 내밀더라구요. 지리산에 내려오는 날 소개해줄게요. 아참, 우리가 편지를 주고 받을 날이 몇 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펜팔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손편지를 적는 것에 대한 설렘을 느꼈던 적이 있거든요. 한번쯤은 가로에게 손편지를 보내보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혹시 메일을 보낼 때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알려줄 수 있나요?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어요. 다시 한번 늦은 편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해요.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수도 있을텐데 너그러이 이해해준다면 지리산에 왔을 때 꼭 특별한 보답을 할게요! 다음 편지 기다릴게요. 가로의 근황이 궁금한 토토가 <토토에게> 토토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묻기엔 너무 늦은감이 있어 살짝 민망하네요... 벌써 계절이 또 한 번 바뀌었어요. 우리가 정말로 만나네요! 마침내! 내일 만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또 한번 우리의 만남이 혹시라도 무산될까 혼자서 마음을 졸였답니다... 편지는 늦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토토와 지리산 방랑산을 생각하며 설레임으로 가득했어요. 지리산 방랑단과의 여정이 너무 기대되요. 그동안의 궁금증과 여러 마음들이 함께 모두 해소될 수 있기를 바라요. 먼저 보내준 우리가 묵을 숙소와 자연들을 보며 정말 오랜만에 기분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고 생각헀어요! 구례의 아름다운 풍경과 그 자연 속에서의 경험들은 저에게 분명 많은 영감과 평온을 안겨줄 것이에요. 늘 토토가 걸었던 곳을 함께 걷고, 대화하고, 토토가 기르고 있는 자연의 신비로움을 함께 탐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정말로 소중하게 느껴져요. 이 특별한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요. 토토와 친구들에게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 함께 살아온,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또 도시의 저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 해줄 수도 있을까요? 우리가 만날때까지 참 오래도 걸렸네요. 이편지를 통해 저의 설렘과 기대를 전해요. 우리의 여정이 토토와 가로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멋진 시간이 되길 바라며 마칠게요. 안녕 토토 내일 봐요!!! 여름도시의 가로가. 토토 이번 주제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네요. 저는 오랫동안 엄마가 나를 미워했다고 생각해요. 왜 나를 미워할거라고 생각했을까요? 나는 똑같이 엄마를 미워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대로 엄마와 딸이네요. 이제는 엄마가 안 미워요. 엄마도 내가 안 미운 것 같아요. 가끔씩 가족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과 미움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그때는 어떤 이유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미워했을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기가 정말 어려웠던 것 같아요. 가끔 우리는 나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인정 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면서도 참 쉽지 않았네요. 지금도 서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사건이나 상황속에서 엄마와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어떤 감정을 느꼈고 상상이상으로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을지, 정말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개인적인 이유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미워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정말 중요한 사실은 여전히 엄마와 딸 관계로 남아있다는 거에요. 가족이라서 그 힘든 시간과 갈등을 수십년을 걸쳐 극복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오래된 이야기였네요. 엄마와 솔직하게 대화하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상처가 있는 과거에서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계절이 몇 번 바뀌면서 제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제는 상처가 있는 과거는 뒤로 하고, 지금과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요.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이해와 사랑을 보여주는 주저하지 않고 싶어요. 내 마음이 변하니까 엄마도 나를 사랑하고 이해로 바라봐 주는 것 같아요. 엄마도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걸 느끼고 있는 걸까요? 토토 잠시라도 제가 싫었을 수도 있지만,, 부족한 저를 그동안 이해와 사랑으로 다독여줘서 고마웠어요. 정말 이만 마치고 내일 봐요!!! 보고싶어요! 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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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편지 : 토토와 가로] 세상과 조화롭게 산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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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살고 싶었던 거에요 간절히
-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안녕하세요~ 아슬아슬하게 편지를 보내네요. 요새 마음도 뒤숭숭하고 공부도 손에 안 잡히는데 그 와중에 일도 이동도 많은 주간이었어요. 내일은 꼭 편지를 보내야지 하고 잤는데, 오늘은 아침에 비도 많이 오고 잠도 푹 자서 상쾌한 아침이네요. 제가 비를 좋아하다 보니 아침에 비가 오면 산타 선물을 받은 것처럼 신나거든요. 그간의 복잡함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서 가벼운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어요. 갈토 말마따나 지리산의 축복스러운 기운을 받고 모꼬지에 올 수 있게 된 여파가 제게도 왔나봐요. 저는 갈토가 올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답니다 호호 참 기뻐요. 갈토의 편지를 읽으며 느껴온 부분도 있지만 역시나 갈토는 강강약약이 맞았군요. 그런데 적잖이 놀랐어요. 저도 비슷한 면이 있거든요. 상사와의 대면 구도도 그렇고, 와다다 쏟아내고 퇴사의 길을 걷는 것 도요. 우스갯소리로 말하자면 살아온 동안 출근일자보다 퇴사일 수가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상사의 명령을 조건 없이 수용해야 살아 남는 조직문화가 제겐 어려워서 그런 수직적 구조의 단체를 잘 못(안) 버텨요. 이번 주제가 ‘지금까지 내어본 가장 큰 목소리’죠. 편지를 쓰려고 어제 개와 산책하며 생각했어요. 가장 큰 목소리가 언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초등학생때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싸움 나면서 내어본 데시벨을 이긴 적은 없었어요. 평소 그렇게 큰 목소리를 내는 타입도 아니고. 그러던 중이었어요. 개와 신호 대기로 멈춰 있는데 어떤 자전거가 무모하게 개 옆에 바싹 앞바퀴를 들이 밀더라고요. 몇 초 후에 개가 소스라쳤어요. 안 그래도 예민한 쫄보인데 바로 앞에 차가 지나다니기도 했고 자전거 바퀴에 꼬리나 발이 깔릴 뻔했어요. 강아지에게 매너 좀 해 달라며 순간 버럭 해버렸답니다. 개와 산책하다 보면 자전거들이 그렇게 개에 대해 매너가 없더라구요. 개가 안 비켰으면 다쳤을 것 같은 아찔함도 많았고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아서 개 물론 저도 놀라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강아지가 안 보인다는 듯이 앞을 지나갈 때도 많고. 그러면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벨로 알림을 줬을텐데 하구요. 이런 일이 쌓이니 못 참고는 결국 어제의 사달이 났네요. 페미니즘을 배우고 ‘탈코르셋 운동’으로 온몸을 무장했을 때도 언제나 경계태세였어요. 어디서 염산이 날라올지 몰라서요. 당시도 많이 소리지르고(?) 다녔는데 그때는 용기보단 두려움의 소리였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가장 큰 목소리는 용기에서 비롯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내 인생의 가장 큰 목소리는 바로 어제였다... 라는 이야기였지만, 사실 정말 큰 목소리는 행동으로 표현했던 적이 많은 것 같아요. 동물 해방을 외치고자 비건을 결심한 순간, ‘아름다움’은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하며 밀어버린 순간, 우리의 몸은 음란물이 아니야 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계곡에서 홀딱 벗어버린 순간들이 어쩌면 살아오면서 진정한 목소리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갈토는 어떤가요? 아니 근데 윗집에서 세탁기를 새벽에 돌린다니요... 저도 그 고통을 압니다. 새 집에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야 적응이 빨리 되는데...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이 잘 잠들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지난 주 힘들었던 이슈 중 하나가 관계에서 오는 허탈함이었거든요. 갈토의 지난 편지 마지막 문단은 ‘내가 들어야 하는 말이구나’ 싶었어요. 전전긍긍하던 마음이, 한순간에 그러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바꼈어요. 갈토처럼요. 싫어하는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갈토의 모습이 부러웠는데 그래도 한발짝 갈토와 닮아진 느낌이에요. 좋은 말 나눠주어서 고맙습니다. 갈토를 닮아가서 기분좋은 유우야드림 <유우야에게> 갈토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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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살고 싶었던 거에요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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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다시. 지리산의 가을본색
- [숲샘의 지리산통신] 다시, 지리산의 가을 본색 지난여름의 긴 장마에 잦은 가을비까지 더해져 올해 지리산의 단풍 농사는 영 시원찮다. 단풍나무류의 단풍은 그 어느 해보다 우중충한 민낯으로 가을을 맞았다. 광합성에 최적화된 초록 잎으로 화장을 하고는 햇빛을 열심히 흡수하던 나무들은 이제 동파 방지를 위해 물길을 닫았고 제 몸속에 지니고 있던 본색을 드러내면서 제 가진 것 하나둘 땅으로 돌려보내면서 긴 월동을 준비한다. 단풍 농사가 흉작인 숲에서도 은행나무가 있어 그나마 지리산의 가을 풍경을 남길 수 있음에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 은행나무 단풍을 사진으로 남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은행잎들이 노랑으로 물드는 시기가 해마다 다르고 또 어떤 때에는 밤새 불어닥친 강풍에 그 노랗던 잎들이 깡그리 떨어져 허탈해하던 적도 있었다. 사랑이 그렇듯 은행나무 단풍 사진 찍기도 타이밍이 좌우한다는 사실,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싶다. 올가을 노란 단풍이 절정일 때 제대로 알현한 하동 옥종 청룡리 은행나무 어르신의 풍채는 여전하셨다. 산청 산천재 앞 도로에서 만난 은행나무 가로수는 동네 할머니의 출연으로 그 색감이 진하게 담겼다. 은행나무가 살아 있는 화석 나무로 불리듯 노란 가을 단풍으로도 그 긴 전통을 이어오고 있고 또 이어가리라. 은행나무 말고도 이 가을의 끝자락에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만난 가을의 본색들을 떠올려 본다. 은행나무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메타세쿼이아의 단풍 색감 또한 찬란하단 표현이 절로 나오는데, 수면에 데칼코마니로 투영되는 한 폭의 수채화를 둘레길이 지나는 산청 내리저수지에서 감상할 수가 있다. 그리고 노고단 가는 길에서 만나는 파스텔톤의 붉은 단풍들을 보면서 바람을 견뎌내는 키 작은 나무들의 지혜를 느낄 수가 있었다. 지리산의 가을빛은 숲에만 깊어가는 건 아니다. 지리산의 중요한 구성체인 지리산의 강들 또한 가을빛 강물로 유장하게 흐른다. 며칠 전 노을이 질 무렵 성철스님순례길을 걸으며 경호강과 양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에서도 노을이 더해져 가을빛이 물씬 묻어있는 강 풍경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실상사 공양간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들은 또 다른 가을 색감으로 다가왔다. 이렇듯 떠나는 가을의 흔적이 지리산 도처에 스며 있음을 보면서 언제나 단명인 그 가을의 본색을 필자의 졸시로 남긴다. 가을 본색 / 최세현 초록으로 속마음 숨겨오던 숲 그 숲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풍의 남하 속도 하루 25Km 그 속도로... 하지만 알록달록 그 본색을 다 보여주기엔 너무도 단명인 가을이다 일제히 불타올라 장렬히 소신공양하고 나면 온 숲은 바람으로 뒤척거릴 것이다 사람들아, 부디 경배의 절을 올리시라 이 눈부신 가을날에 제 할 일 다 마치곤 각양각색의 본색을 드러내는 저 숲을 향해서... 600년 세월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노란 단풍 축제를 이어오고 계신 하동 옥종 청룡리 은행나무 어르신 남명 선생이 말년을 보내신 산천재 옆 은행나무 가로수, 때마침 그 길을 지나는 동네 할머니의 노란 옷과 길바닥에 깔린 은행잎이 깔 맞춤이다. 실상사에서 함양 마천 가는 길, 지리제일조망 금대암 들머리에서 은행나무 가로수에 홀려 스쿠터를 세우고 사진 한 컷 남기다. 지리산 둘레길 산청 구간 내리저수지의 메타세쿼이아 단풍, 수면에 투영된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바람이 잠잠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겨우 건진 데칼코마니 숲이 어떻게 바람을 견디며 적응하고 그 생존을 이어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노고단 가는 길, 키 작은 나무들의 단풍 색감이 파스텔 풍이었다. 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는 산청 신안면 두물머리 풍경, 갈대와 저녁놀이 어우러져 가을빛이 강물에 스몄다. 저 수평의 강 또한 지리산의 한 부분인 것을... 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는 산청 신안면 두물머리 풍경, 갈대와 저녁놀이 어우러져 가을빛이 강물에 스몄다. 저 수평의 강 또한 지리산의 한 부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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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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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다시. 지리산의 가을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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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고농서인가
- 지금 왜 고농서인가 이선재(한겨레생명평화농장 이사) 오늘 천하의 일 가운데 하루라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을 찾는다면 무엇이 으뜸인가? 곡식이다! 시공을 통틀어 신분의 귀천과 지식의 다과에 관계 없이 하루라도 몰라서는 안 되는 것을 찾는다면 무엇이 으뜸인가? 농사다! <임원경제지> 지금 왜 고농서인가? 트랙터같은 힘센 기계와 효과 좋은 비료, 농약이 넘치는 이 시대에 고농서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눈앞의 현실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그 영향의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도 기후위기가 가져올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는 없다. 인류는 기후위기의 쓰나미를 물리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있다. 물론 그 책임의 대부분은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은 이것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더욱 서글픈 사실은 기후위기의 고통은 저 기득권자들이 아니라 대다수 민중, 오랜 세월 피압박의 세월을 견뎌온 저개발 국가의 백성들이 짊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미래의 대안을 찾아 피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위기를 불러온 화석 에너지 문명을 끝내고 지구를 살리는 방법, 미래적 삶의 철학을 세우기 위한 치열한 모색과 성찰의 행진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전개되고 있다. 다양한 방면의 노력들이고 그러기에 얼핏 보기에 모두 다르게 보이지만 생태주의라는 큰 흐름 안에 있다. 퍼머컬처가 그중 하나이고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가장 탁월한 생태주의 철학이자 방법론이라고 믿는다. 화석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사람의 노동력 역시 적게 사용하면서 효율적으로 생활하기 위한 원칙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의 그 어떤 이론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듯이 퍼머컬처만으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과 다른 동양의 생활방식과 자연환경, 작물의 다름에 기인한 많은 사안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세부적인 대안들을 연구하고 현실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퍼머컬처가 농사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기계와 비닐, 농약과 비료에 의존하지 않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고농서가 우리에게 유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전통농업은 이 땅에서 아주 오랜 세월 실천해 온 농사법이다. 옛 선인들은 오늘의 농사꾼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하고 실험하고 자연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비료와 농약 같은 편리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한 해 한 해 새롭게 바꾸고 대를 이어 발전시킨 것이 전통농업이고 그것이 고농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완벽할 수 없고 일부 내용은 과학이 발달한 현재의 지식으로 판단했을 때 황당한 경우조차 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들을 고려한다면 전통농업에만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땀과 눈물이 깊이 밴 고농서의 내용은 곱씹을수록 참맛이 우러나는 지혜의 샘이다. 나는 생태적 삶을 살고자 한다면 고농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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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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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고농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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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장 앞에서_꼬리의 방구일기
- “저는 단 한번도 이 곳에 케이블카가 지어질거란 생각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산은 그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산은 그러면 안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케이블카 착공식장 안으로 고급 자동차들이 하나 둘 들어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이미 슬퍼지고 있었다. 눈앞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멀리 하얗게 빛나는 바위와 아마 그 곳에서 부지런히 겨울나기를 준비할 야생동물들을 슬픈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있었다.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바위가 많은 설악산 사람은 산을 닮아 꿋꿋하고 우직한가. 이미 오랜시간 싸워왔다는 주민의 말씀이 무너지던 나의 마음을 단단히 받쳐주었다. ‘맞네. 설악산에 케이블카? 절대 못 오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어느새 기세가 등등해졌다. 정부가 바뀌자마자 법과 연구결과를 전부 부정하고, 말을 싹 바꿔버리는 저 사람들은 사실 내보일게 없어서 저렇게 비싼 옷과 차와 경호원으로 제 자신을 두르고 착공식장에 들어가는구나. 어떻게 말도 안되는 사기를 당하냐고 남 비웃을 처지가 아니다. 시공사도 안 정해진 2시간짜리 착공식에 3억원을 편성하고, 전체 사업비 1172억원(이게 도대체 얼마여..)을 마련하려고 양양군은 위급상황에 쓰여야할 ‘지방안정화기금’까지 끌어다 쓰겠다고 한다. 도무지 신뢰할 수가 없다.. 나는 지리산에서 기쁨과 행복이 어디서 오는 건지 배웠다. 산에 피는 꽃이 달라지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 아침에 새소리를 듣고, 낮에 햇볕을 쬐고, 노을 물든 지리산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탈 때, 둘레길 계곡물을 만두(강아지)가 찹찹거리며 마시면 나도 옆에 앉아 얼굴 씻을 때, 우연히 푸른 논밭을 바람처럼 가로지르는 고라니를 만날 때, 또 우연히 만난 이웃이 자기네 감을 그냥 쥐어줄 때, 그 감을 깎아 만든 곶감이 처마 밑에서 말라가는 걸 보며 나는 누구에게 선물할까 생각할 때, 반려인이 불피운 구들방 아랫목에 나란히 몸 뉘여 잠들 때. 기쁨과 행복은 오직 감사와 사랑에서 온다. 그리고 감사하고, 사랑하면 욕심 부릴 수 없다. 산에 바위가 이끼가 도토리나무가 반달곰과 산양이, 수리부엉이와 꿀벌이 오랜시간 지구에서 제 모습대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왔기에 바로 그 케이블카를 타면서 보고 싶은 맑은 풍경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유리창으로 둘러막힌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20분만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것은 그리 기쁘거나 행복한 일이 아니다. 나도 해봤기 때문에 안다. 산에 사는 생명들의 평화를 빼앗으며 만든 기계 속에서 아무리 즐거워해보려 해도 잠깐의 자극, 그 이상을 느낄 수는 없다. 그 이상의 것들은 이미 너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을테다. 반짝 관광지였던 곳은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나 쓸쓸한 콘크리트 건물들만 무성한 채 유령도시가 되어있다. 아직 살아있는 나무들과 꽃과 새들만이 그나마 사람들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한다. 단언컨대 케이블카를 짓고, 운영하고, 타는 이들은 케이블카를 막겠다고 눈물 흘린 이들보다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변덕은 죽 끓듯 해도 산은 언제나 거기 있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이들만이 설악산을 제 모습 그대로 끝까지 지켜낼테니까. 사진. 수달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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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장 앞에서_꼬리의 방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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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대문집 마고할미를 아시나요?
- 초록대문집에 산다는 마고할미를 아시나요?! 방랑단은 자주 마고할미타령을 하는데.. 뭔지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어서 궁금하셨죠? 실은 저도 올해 처음 공부를 해보았습니다.올해 지리산사람들 활동가 깊은강, 윤주옥, 칩코가 마고할미를 조사하고 보고서를 책자로 펴냈어요. 마고할미설화 유래부터 변천사, 현재 마고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지리산권 단체들, 마고할미설화를 담아 재창작한 그림책까지! 마고할미에 대한 정보가 알차게 들어있답니다.책자를 읽어보고 싶으시면 자율보시 후 지리산사람들 사무실(봉서산정길 61-3)에서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늘 열린 공간이 아니니 오시기 전 연락주세요.) 보시금은 전액 지리산을 지키는 활동에 사용합니다. 후원계좌는 농협301-0214-8860-11(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지리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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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대문집 마고할미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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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후원해주신 감사한분들
- 구례성다양성축제 아직 끝이 아니에요! 무지개코딱지들은 해마다 축제의 장터수익금 일부와 남은 후원금을 지리산권 개발반대 활동에 기부했는데요! 올해도 축제를 물심양면 후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기부금을 잘 전달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후원금 보내주신 분들 장소영/ 정이어린/ 똥폼/ 우물/ 강혜인/ 조아라/ 국승일/ 느림보/ 새봄여름/ 강효선/ 진명일_백지/ 탱자씨 (이외 칩코차라의 유부어묵탕을 구매해주신 분들????) > 공간과 물품 대여해주신 분들 비온뒤무지개재단/ 서울퀴어문화축제/ 동아시아에코토피아/ 지리산사람들/ 느긋한쌀빵/ 두루다살림장/ 행행행 올해 축제 기부금(총400,000원)은 아래 단체들에 나누어서 전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 지리산사람들 - 새벽이생추어리 사진. 나무(@fishbowl_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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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후원해주신 감사한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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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하편
- -이전 게시글에 이어서 축제 공간을 어디로 할지 고민이 많았다. 우리 축제는 퍼레이드도 인가 없는 논둑길을 걸어왔다. 우리끼리 안전하게 놀기 위함이었다. 무지개코딱지들이 평소 자주 다니는 두루다살림장은 이미 산정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장터를 해왔고, 장터 기획쌤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우리 축제를 환영해주신 분들이셨다. 두루다살림장의 명성에 묻혀서 장터인 척 축제를 해버리자는 게 우리의 얄팍한 꾀였는데, 장터 기획쌤들은 아무래도 이장님께 허락을 받아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셨다. 우린 또 어물쩡 다양성 축제라고 주절댈 심산이기도 했고, 속으론 성다양성축제라고 해도 못 알아들으실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장님은 찰떡같이 ‘티비에서 보던 헐벗은 축제’를 알아채셨고, 허락은 하겠지만 마을에서 시끄러운 말이 나오는 게 염려되니 떡이라도 돌리면 어떠냐고 해주셨다. 축제날 마을회관에 무지개떡을 돌린 이유였다. 물론 이장님의 허락도 두루다살림장 쌤들이 아니었다면 떡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을 테다.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확실히 세상 물정을 안 기분이다. 나쁘게 보면 쫄은 거고, 좋게 보면 신중해진 거다. 근데 또 나만 이렇게 조심스러운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번 축제 참여자들은 모르는 얼굴이 부쩍 늘어났다. 그들도 우리 축제에는 처음 오셔서 그랬는지 조금은 수줍고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산내 축제에선 공연을 볼 때 무조건 강제 스탠딩석이었다. 퍼레이드가 끝나서도 람천교가 부서져라 흔들어대는 친구들을 진정시켜 집에 보내는 게 매번 일이었다(실로 퍼레이드 마지막곡은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였다.) 구례 축제는 산내의 활기와는 또 다른 설렘이 있었다. 올해 피날레는 퍼레이드가 아닌 강강술래로 했는데, 그게 올해 참여자들 텐션에 딱 맞아 기쁘기도 했다. 강강술래 가락에 맞춰 손잡고 돌다 보면 고요하고 부드럽게 모두 하나가 되었고, 우리만큼 둥글게 차오른 달님을 다들 한동안 바라보았다. 세상 물정을 알고 나니 더 깊이 감사하게 된다. 산내라는 유일무이한 동네도 기적이었음을 새삼 느끼고, 올해 구례 축제를 도와주던 새로운 이웃들의 다정함도 기적이고, 벽장에서 나와 축제에 놀러와 준 참여자들도 기적이고, 아무 혐오세력 없이 안전하게 축제를 마친 것도 기적이고, 축제날 달이 밝은 것마저 기적이었다. 글이 길었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이다. 일일이 헤아리지 못하는 친애하는 존재들이여, 내내 사랑스럽고 퀴어하소서. 나무마고할미불. 사진. 정환쌤(@potodoto93 ), 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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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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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상편
- “축제갈 때 마스크 써야 하나 싶었어요.” 이번 축제 참여자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구례에서 처음 여는 성다양성축제는 확실히 산내와 달랐다. 애초에 산내 성다양성축제는 우리 놀자고 만든 거였다. 더 많은 퀴어를 만나고 싶다거나, 퀴어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거나 하는 대단한 포부도 없었다. 산내 축제에선 다 이미 건너건너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놀러 왔다. 또 산내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성다양성 축제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퀴어’란 단어를 모르실까봐 ‘성다양성’이라는 단어로 바꿔 부른 것이었는데, 산내는 대체로 퀴어라고 하면 다 아셨던 것도 같다. 오히려 ‘성다양성축제’라는 이름이 더 낯설어서, 본의 아니게 위장용 이름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구례로 축제 장소를 옮긴 것이 대단한 포부가 생겨서는 아니다. 구례에서 놀거리를 또 찾아야 했을 뿐이다. 다만 어떤 퀴어한 수다를 지껄여도 척하면 척 알아듣던 산내 친구들이 없으니, 더 많은 퀴어 친구를 만나고 싶기는 했다. 지역살이 햇수가 쌓이면서 퀴어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이면 좋겠다는 소망도 스멀스멀 생겼다. 뭣도 모르던 귀촌 1년 차에는 아예 상상력이 없어서 겁대가리가 없었다. 시골에선 한 명이 어떤 사실을 알면 곧 마을 전체가 다 알게 된다는 것과, 퀴어라고 하면 집주인이 쫓아낼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학습한 후, 나랑 애인은 마을 길을 걸을 땐 손을 잡지 않는다. 한 마디로 구례 성다양성축제는 조심성이 많아졌다. 산내라는 다 된 밥상에서 축제를 차리다 보니, 지역 퀴어축제 기획을 너무 물로 본 듯싶다. 나의 집주인은 매우 다정하고 사교적인 기독교인이시다. 환경보호에도 퍽 관심이 있어, 우리가 하는 행사를 요리조리 물으시다 지난 골프장 반대 문화제 땐 놀러 오시기도 했다. 우리가 축제 준비로 정신이 쏙 빠져있자 집주인댁은 무슨 축제냐고 물으셨고, 우린 “다양성 축제요”라고 중요한 단어를 빼먹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셔서 한숨 돌렸는데 다음날 또 오시더니 “근데 뭐가 다양해요?”하고 또 물으셨다. “성...별, 나이, 인종, 뭐든 다양한...”하고 얼버무리니 무릎을 탁 치시며 “아하! 풍습이나 종교도 다양하고요?”라며 해맑게 덧붙이셨다. 나는 급하게 프라이빗 파티인 척 선을 그었고, 그날 우린 집 마당에서 ‘성다양성축제’라고 적힌 대문짝만한 피켓을 칠할 때 집주인이 지나가실까 망을 봐야했다. 또 나는 젊은이들을 너무 납작하게 봐왔다. 내 얕은 경험상, 서울이나 산내나 또래들은 대부분 퀴어거나 앨라이였어서 내 머릿 속엔 ‘젊은이=퀴어축제 짱좋아함’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피어싱을 한 젊은 빡빡이 여성 분과 알게 됐는데 그분은 캐나다에서 오래 거주하셨다고 했다. 나는 또 그분을 납작하게 보고 “담주에 퀴어 축제 놀러오세요!”하며 방방 뛰었는데, 그분은 “퀴어...가 뭐에요?”라고 물으셨다. 내 발음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퀴얼... 퀴이얼ㄹ...”하고 몇 차례 다시 발음해주다가 결국 그가 퀴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이번 축제 땐 무지개공간을 섭외했는데, 이때도 퀴어를 전혀 모르거나 알지만 정중히 거절했던 몇몇의 젊은 분들에 여러 차례 내심 놀랐다. (물론 내 머릿속 공식을 강화시킨 젊은 퀴어나 앨라이들이 정말 많아서 놀라기도 했다.) -다음 게시글에 이어서 사진. 정환쌤(@potodoto93 ), 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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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성다양성축제 칩코의 후기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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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삼으로부터] 서론부터 좔좔 오열한 칩코의 독후감
- 오삼이는 익히 들었다. 그는 지리산에서 태어났으나 거의 한반도 중부이남의 모든 숲을 쏘다닌 전설적인 모험가였다. 오삼이만큼 인가와 도로도 서슴지 않고 넓은 영역을 여행하는 반달가슴곰은 전무후무하다고 했다.주옥쌤과 오삼이의 인연이 끈끈해진 것도 오삼이가 인간이 정해놓은 선 밖을 수시로 넘나든 까닭이었다. 오삼이에겐 어디까지가 당신에게 허락된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인지 보일리 없었고, 지리산은 섬이 아니라 덕유산을 거쳐 설악산과 백두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였다. 오삼이가 상상도 못한 곳에서 발견될 때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 야생동물 정책을 관리하는 행정가들은 탁상에 모였다. 주옥쌤을 비롯한 활동가들은 ‘오삼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라’는 피켓을 들고 설 수밖에 없었다.올해 <오삼으로부터>책이 나왔다. 책작업이 한창일 때 허무하고도 공교롭게도 오삼이의 죽음이 보도되었다고 했다. 오삼이를 추적하는 발신기 배터리를 교체하려 마취총을 쏘았는데, 오삼이가 몸을 못가누며 이동하다 계곡물에 익사한 채 발견됐다는 전말이었다. 오삼이의 죽음 이후 또 행정가들과 주옥쌤은 비참한 마음으로 탁상에 모여야만 했다.주옥쌤은 수도산에서 잡혀와 지리산 자연적응훈련장에 갇힌 오삼이의 눈빛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누누이 외쳐온 말을 책에서도 말했다. ”2015년 1월 지리산에서 태어나 2023년 6월 경북 상주에서 삶을 마무리한 오삼이는 이 산줄기를 오가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잊힌 야생동물의 길, 끊어진 생명의 길을 연결하라고 말입니다. 반달가슴곰을 인간이 관리하는 동물이 아니라 자연에 사는 야생동물로 여겨달라고 말입니다.“이 책은 앞장부터도 읽을 수 있고 뒷장부터도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구조로 되어있다. 앞에서는 주옥쌤이 오삼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리고 뒤에서는 결님이 그린 오삼이의 그림책이 실려서, 가운데서 주옥쌤과 오삼이가 만난다! 현경쌤의 반짝이는 편집실력이 유난히 돋보이는 책이다. 주옥쌤과 결님의 아름다운 글과 그림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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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삼으로부터] 서론부터 좔좔 오열한 칩코의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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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리산 선언 쓰기
- 나의 지리산 선언 쓰기 『다시! 지리산』 운동은 지리산이 품고 있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지리산 품고 있는 의미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운동입니다.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운동, 지리산댐 반대 운동, 그 후로도 지리산을 지키는 것 뿐 아니라 나부터 돌아보고 지리산의 마음으로 살아가자 하며 이어져온 지리산운동. 이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우리 각자의 언어로 모아 우리 시대에 맞는 지리산운동을 찾아가려 합니다. 함께 만나고 함께 걸어갔으면 합니다. 당신에게 지리산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의 삶의 변화 또 세상의 변화를 위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목소리로 <지리산선언>을 만들어주세요. 나의 지리산 선언 쓰기,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3bNa4pF3EkbdQ-IccJBXWhHE7-A5zpB92Y0xyS4NcFYULVQ/viewform 『다시 지리산』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gainjirisan/22326150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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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리산 선언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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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교육 2023년 가을호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 윤주옥 대표님의 인터뷰 글이 있어서 자료 공유합니다. ## 녹색교육 2023년 가을호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환생교) ## https://eduhope.net/eBook/2023_2/2023_2kon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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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교육 2023년 가을호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