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지리산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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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을 시작한 꼬리의 방구일기
    ‘함께 살아간다’이 말의 첫 느낌은 여전히 참 다정하다. 이 말을 들으면 왠지 의지할 구석이 생긴 것 같고, 더는 외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끝까지 불러본 적도 없는 ‘손에 손잡고~’로 시작되는 노랫말이 떠오르기도 한다.그러나 곱씹다 보면 전혀 상반된 기억들이 밀려온다.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에게 도저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래서 내가 새롭게 찾아낸 공동체에서 지긋지긋하게 싸우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치고마는 무례한 사람들 틈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말은 무섭게 돌변한다. 그러면 상처입을까 두려워 크게 분노하거나 떠나버리곤 했다.방랑단 친구들은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식구였다가 지붕없이 한 길을 걸었던 동료였다가 지금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이웃이다. 그리고 방랑단 각자 저마다의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더 많은 친구들과 연결되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우린 ‘함께 사는’ 쪽을 자꾸 선택하는 것 같다. 그래서 싸우거나 피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 필요해졌다.평생을 일궈온 습관을 단숨에 고치는 건 불가능해도 잠시 멈춰서 내 말 속에 담긴 감정과 욕구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용기있게 마주하는 시간만이라도 꾸준히 가져가고 싶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형편은 못 되어서, 다만 배웠던 걸 조금 공유하는 수준이지만 고맙게도 글쓰기 모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마음을 내주어 연습모임을 시작했다. 서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 안에서 조금 더 내공이 쌓이면 더 많은 이웃들과 열린 모임으로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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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여성환경연대 부설 에코페미니즘연구센터 ‘달과나무’에서 방랑단에게 연락이 오셨어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을 만나고 싶어 구례에 놀러오신다고요. 지리산의 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며 만남이 얼마나 기대됐는지 몰라요. 꽃철에 겹쳐 못오실까봐 부랴부랴 숙소부터 추천드렸답니다. 방랑단도 귀촌하기 전 여성환경연대에서 펴낸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책에 큰 영감과 용기를 얻었는데요. 이번엔 따끈따끈한 신간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의 공동저자 중 네분(김혜련, 유서연,이현재, 황선애 작가님)을 모셔서 책담도 나눠주실 수 있다니! 이리 좋은 기회를 함께 준비하게 되어 영광이었어요! “지구가 불탄다고 화성으로 떠날 건 아니잖아요?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싶은 여성들이 기후위기시대에 지구를 돌보는 법” 여성주의x환경에 관심있는 지리산의 에코페미니스트들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눠요! - 24년 3월 30일 (토) 15-16시반 캄다운파티 - 신청: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오-붓한 책담 신청 (google.com) <신청하러가기! - 참가비: 1만원 (대관료입니다. 음료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음료를 원하시는 분은 영업마감 3시 이전에 오셔서 주문하시면 됩니다) - 참가비 입금 계좌번호 - 카카오뱅크 3333131937387 ㅂ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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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27
  • ♪ 숲(에 나무가 있어야지 골프장이 있냐) 음악회♬
    작년에 구례군 산동면 사포마을 뒷산에서 21만㎡ 너비의 면적의 숲이 사라졌습니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부터 지리산 국립공원 경계 인근까지 최소 2만 5천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구례군과 시행사는 이 자리에 1000억원을 들여 45만 평 너비의 대형 골프장을 지을 거라고 합니다.골프장 사업을 막아내고 무단 벌목지에 봄을 돌려주기 위해 음악회를 엽니다. 음악회에 앞서 지리산골프장 개발 예정인 벌목지 답사도 준비했습니다.다시 숲으로 돌아갈 날을 위해 음악과 이야기와 마음을 모으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2024년 4월 6일(토)▶ 오후 1시, 벌목지 답사 사포마을회관 (구례군 산동면 사포길 72)에서 시작- 지리산 난개발에 대한 소책자를 읽고나서, 주민분의 안내로 벌목지를 함께 걷습니다.▶ 오후 4시, 숲 음악회사포저수지 옆 공터 (구례군 산동면 관산리 401)♬ 공연자- 오프닝 : 캄캄밴드- 살래 재즈 트리오와 옥수수- 김목인☞ 참가비 20,000 원 이상 (카카오뱅크 3333-11-3005007 이신지원)☞ 주최 : 지리산골프장백지화연대, 지리산방랑단, 동아시아에코토피아포스터배경 사진: @phoma_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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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18
  • 층층집에 나눔해주세요!
    층층집에 모실 입주자를 선정했어요. 구례에 오고 싶은 이유도, 각자의 관심사도 다양한 분들이 신청해주셨어요. 층층집을 온기로 채워주실 분들이 참 반갑고 기대되어요.층층집 프로젝트는 정부나 재단에서 지원금을 받지 않아요. 지리산사람들 시민단체에서 입주자분들의 월세를 일부 지원할 뿐입니다. 보증금 2천만원도 개인 후원자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층층집엔 아직 필요한 물품이 남아있어요. 자세한 품목은 웹자보에 기재해두었습니다. 지리산 곁으로 온 새 이웃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물품을 나눔해주시길 요청드려요.기재해둔 물품목은 총총이가 생각한 최소필요물품이에요.(감사하게도 여기저기 나눔해주셔서 현재난로와 식탁 의자만 구하면 됩니다!) 이외에 물품도(예: 에어프라이어, 전기포트, 집안을 꾸밀 장식 등) 얼마든지 선물해주실 수 있어요. 다만 불필요한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품후원 시 연락망: 칩코 010-2구5육-팔115(카톡이나 디엠 선호해요:)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길거예요!!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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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8
  •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캄다운파티의 두 번째 작은 콘서트 <흙과 바람과 별과 농부_서와콩> # 기획자, 상글로부터의 편지 달콤한 매화 향기에 마냥 설레다가도 매년 빨라지는 봄꽃의 개화 소식과 이상한 흐름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어요. 올해도 어김없이 호미를 들고 밭에 앉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기후변화에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밀려와요. 서와콩은 합천에서 농사지으며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움을 시와 노래로 짓는 남매(서와&수연) 듀오예요. 서와가 쓴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같이 낭송하고 노래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흙을 만질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서와콩의 노랫말이 아직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기를 바래요. - 일시 : 3월 17일 일요일 오후 4시 - 장소: 캄다운파티(구례읍 중앙로 25, 2층) - 신청: 인원수와 함께 문자(010-2075-140공) 혹은 DM(@cdp.gurye) 주세요. - 참가비: 어른/ 1만 5천원, 어린이/ 5천원 (음료 포함) ——————————————————————————— *서와콩* 서와콩은 서와&수연 남매듀오로 합천 황매산 기슭에 서식하며 퍼머컬처 방식으로 숲밭을 꾸리고 있는 농부이자 음악가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작은 존재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래를 부른다. 서와는 시집 『생강밭에서 놀다가 해가 진다』를 썼다. ——————————————————————————— # 서와의 시들 “수수밭은 내 마음 같아 키우고 싶은 것만 키울 수 없는 마음 같아” - 「수수밭」 중에서 “나는 쓸모 있는 사람보다 오늘 본 밤하늘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 「오늘부터」 중에서 “그래도 괜찮아 사실 고래는 내 안에 살고 있거든 바다로 이 고래를 풀어 줄 수 있는 바다로 가기만 하면 돼” - 「바다 고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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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방랑단
    2024-03-05
  • 도림사로 동안거 다녀온 상글이의 방구+단식일기
    #단식 1일차몸이 퉁퉁 부었다. 손가락도 발가락도 퉁퉁, 스마트폰은 어찌나 봤는지 눈도 시렵고, 종아리도 아팠다. 그동안에 쌓인 피로가 올라오는 듯 했다. 이사에, 축제에, 텃밭수업에, 공유회 준비로 하반기에는 쉼없이 달려왔던 까닭이다. 꼬리, 아림, 아라, 주옥쌤, 차라, 칩코 편안한 동지들과 함께 도림사에서의 5일을 보낼 수 있음이 감사하다.우리가 온다고 청소부터 보일러까지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방이 지글지글 따뜻해서 들어가자마자 꿀잠을 잤다. 핸드폰도 시계도 없으니 몇시간을 잤는지도 모르겠다. 쓰러져서 잠에 들었다.수행을 삶으로 사는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런 호강을 누린다. 덕분에 나를 지극히 살피는 시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이런 시간을 마련해준 친구들에게 나는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단식 2일차시계가 없으니 눈을 뜨면 지금이 몇시일까 생각하다 잠을 뒤척였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이다 옆에서 울리는 첫 알람 소리를 들었다. 4시였다.아침에는 속이 메스꺼렸다.울렁거리는 와중에도 열심히 요가와 명상 일정을 해냈다. 아침일정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다.아림, 주옥샘, 아라와 도림사 뒤에 있는 동악산에 올랐다. 동근, 봄이랑 종종 올랐던 길이라 익숙하고 반가웠다. 단식 중인 내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주는 동료들 덕분에 산행이 편안했다.마지막 2km는 매우 가파랐다. 배고픔이 많이 느껴졌지만 쉬엄쉬엄 함께 숨을 고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동악산을 둘러싸고 있는 능선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저 멀리 우리들의 지리산도 보였다. 먹을 것이 없으니 그저 아름다운 경치로 점심을 대신했다.산에 다녀와서는 밤 무서운 줄 모르고 내리 잠을 잤다. 저녁을 먹지 않으니 시간이 많다. 고요한 밤이 참 길었다.#단식 3일차4시 알람을 듣고 일어나 공양간으로 오면 주옥쌤이 책을 읽고 계신다. 하루를 시작하며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람. 따뜻한 눈인사로 맑은 기운이 전해진다.속이 울렁거린다. 아침 명상을 하고 한 숨 자고나면 제 컨디션으로 돌아오니 다행이다.여여의 ‘0원으로 사는 삶’을 읽고 있는데 글에서 그녀의 여정이 눈에 선하다. 깨지고 부딪히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다보면 여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글이 살아있다.아림이와 108배를 올리기로 했다. 참회문 한구절을 소리내어 읽고 절을 올렸다. 문득 이 순간 평화로운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종종 비구니스님인 친구를 찾아가 절에서 쉬었다가셨다는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잠시 멈추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셨을까, 눈물이 핑 돌았다. 시야가 흐려져서 글자를 엉터리로 읽는 바람에 잠깐 웃음이 났다. 108배를 마치고 아림이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아림과 진하게 함께 맞춰보는 첫 호흡이었다.사람들이 저녁예불을 드리는 동안 공양간 설거지를 했다. 몸을 비워내는 시간도 좋지만 함께 맛있게 먹는 시간도 의미가 있다. 그 시간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잘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 단식에 활기가 넘치니 감사할 일이다.#단식 4일차입이 바짝타고 메슥거림이 심해 힘겹게 요가를 마쳤다. 잠깐 잠든 사이 온갖 꿈을 꾸었다. 살아오면서 만난 인연들이 전부 찾아오는 느낌이다.빨래를 했더니 개운했다. 독소가 나오는 것인지 몸에서 쾌쾌한 냄새가 자꾸 신경쓰였다. 단식할때는 세제가 손에 안닿게하라하여 손빨래는 적게했다.도림사에 있는 동안 내게 가장 많이 찾아 온 메세지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였다. 살집이 붙은 내 몸이 맘에 들지 않아서, 다른 동물의 살덩이를 먹고 싶은 내 욕구가 불편해서, 몸이 정화되었으면 해서, 나를 불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된 단식의 동기가 컸다.단식을 진행하는 동안 이만큼 건강할 수 있는 나의 몸에 감사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한 상태로 바라봄에서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더 멋있어져야할, 더 깨끗해져야할 ‘나’가 아닌, 이로써 충분한 ‘나’라는 거. #보식 1일차집에 돌아왔다. 벌써 절에서 지낸 시간이 꿈같다. 배농장에서 동근이와 반가움 입맞춤을 나누고 봄이와 실컷 뛰어노니 집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집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_()_어느새 처리해야할 것, 당장 해야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천천히 주변을 살피는 것을 잊는다. 너그러운 마음상태로 주변을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그리고 나의 몸을 연인처럼 애정해주어야지.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4-02-02

실시간 지리산 오늘 기사

  • [우수 편지 : 참새와 돌]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을까요?
    디자인.칩코 <우수의 편지, 돌에게> 그간 잘 지냈냐고 편지를 시작하고 싶었는데, 밤낮이 바뀐 채 지냈다니 안쓰러운 마음으로 돌의 안부를 묻고 싶네요.(빨개진 허벅지는 다행히 금방 가라앉았어요!ㅎ) 저는 돌의 편지를 기다리면서 지치지도, 실망하지도 않았어요. 당연히 돌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고, 그걸 편지에 담아줄 거라고 믿고 있었거든요. 그러니 편지가 조금 늦은 걸로 너무 염려마세요. 헐레벌떡인 일상을 살아가는 돌에게 이 펜팔마저 부담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는 저도 펜팔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답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요~! 돌의 편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뜨면 설레고, 편지를 읽으며 마음이 포근해지지만 이제 내가 글을 쓸 차례라고 생각하면 긴장되고, 떨려요. 내가 가진 이야기와 문장들이 돌에게 들려주기엔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편지쓰기를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겨우 키보드 앞에 앉았어요. 너무 솔직한가요? 하하. 저부터가 이런 사람이라 때로는 너무 무거워서 느려질 때가 있다는 걸 알아요. 활동을 자신의 일상보다 우선하면서 지낸다는 얘기에 가슴이 철렁했어요. 활동과 일상의 경계는 무엇일까요. 활동을 통해 지키고자 하는 건 무엇이고, 일상에서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일까요. 돌의 말처럼 나와 서로를 분리하고 싶지 않으니 너의 고통이 곧장 나의 것으로 느껴져요. 일상과 활동 속에서 피어오른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고, 뒤섞이고요. 어디부터가 시작이고, 끝인지, 뭐가 맞고, 틀린지 잘 모르겠는 와중에 그 무엇도 놓치지 않고, 꼿꼿이 중심을 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한가요. 그러니 반듯한 선으로 만들어진 경계가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도 십분 이해가 되어요. 저는 서울에서 활동가로 살면서 한 번 무너진 적이 있어요. 사실 여러 번 무너졌었겠지만, 그걸 인정한 건 처음이었죠. 소용돌이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그래 지금이 기회야.’라고 생각하며 내 안에서 무너지는 것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었어요. 열정을 다했던 일들과 진심이었던 관계들을 다 내려놓고, 채우고, 채워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던 나와 일상을 이번엔 반대로 완전히 비워보았어요 그런 다음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어요. 아마 저도 그 때 스스로 서는 법을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이 돌의 깨달음이자 다짐이었다는 말이 정말 와 닿아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말이 있잖아요. 별로라고 생각했던 문구였는데 갈대에 숨겨진 비밀을 친구가 알려주었어요. 바람 불면 사정없이 휘날리고, 흔들리는 갈대들은 사실 땅 밑에서 뿌리로 서로를 붙잡아주고 있대요. 사람들 눈엔 그저 쉽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잘 모르는 소리죠.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을까요? 똑바로 서기위해서는 힘이, 넘어지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겠어요. 저는 ‘계절이 바뀌는 건 제가 지연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니까요.’라는 돌의 말에서 올 것은 오고, 떠날 것은 떠나리라는 받아들임의 용기를 얻었어요. 홀로 온전히 서는 법을 같이 흔들리며 찾아가 봐요. 돌은 우아한 당신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저는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라 그런지 처음에는 화면 속 인물들만 떠올랐어요. 혹시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을 보셨나요? 저는 그 드라마에서 김태리 배우가 연기한 ‘고애신’ 캐릭터의 대사들을 너무 사랑해요. 사람들이 고애신을 ‘곱게 자란 양반집 딸’내지 ‘보호해야 하는 연약한 여인’으로 대할 때, 그래서 그가 가려는 길을 가로막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짓밟을 때 그는 기품 있는 말과 당당한 움직임으로 그들이 무엇을 오해하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주거든요. 누군가 나를 침범해 올 때, 큰 소리로 화내지도 않고, 억울해하지도 않고, 숨어버리지도 않는 모습이 우아해요. 또 이와 비슷한 화면 속 인물이 있는데요. 바로 김혜수 배우에요. 어느 날 우연히 김혜수 배우가 17살 때 한 인터뷰 영상을 보았는데요. 그 때 리포터가 ‘어떤 면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고 생각하세요? 김혜수 양의 외모 중에요.’라는 질문을 해요. 여성 배우들은 본인들이 펼친 연기에 대한 질문보다 외모에 대한 질문을 더 먼저, 더 많이 받는다는 게 참 환장할 노릇이죠. 거기서 김혜수 배우가 이렇게 답해요. “글쎄요. 저는 외모 중에 특출한데가 없기 때문에요. 연기할 적에 그 연기에 푹 빠져서 진실 되게 연기하려고 많이 노력하거든요. 근데 다른 분들이 저를 보실 때 친근감이 드신대요.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게 바로 우문현답이지 않겠어요? 저는 여전히 주변의 시선을 살피느라 때로는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제 모습을 애써 연기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렇게 억지로 친절한 척을 하고 나면 반작용으로 안에선 화가 끓어오르죠. 그래서 진심을 말할 수 있는 타이밍이 되었을 때 썩 우아하지 못해요. 목소리부터 파르르 떨리거든요. 우아함은 정직하지 않고서는 흉내 낼 수 없는 부드러움 같아요. 초등학생 때 마을에서 가끔 마주치던 할머니가 계셨는데요. 몸도 왜소하시고, 옷도 평범하게 입으시고, 나이도 지긋해서 등도 굽은 그 할머니 얼굴 주름이 잊히지 않아요. 사람의 주름살은 나무의 나이테 같은 거라는데 정말 나이테마냥 온 얼굴 가득히 둥그런 주름이 길고 깊게 패였는데 ‘안녕하세요.’ 인사하면 ‘예, 안녕하세요.’하고 받아주실 때 그 주름 모양이 더 둥글게 휘어졌어요. 그 때 ‘아 저 모양대로 주름이 진거구나.’ 알게 되었죠. 저런 얼굴로 늙어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직해지려면 자꾸 목소리가 떨리고, 부드러워지려면 입꼬리에 경련이 나는 저는 아직 한참 멀었어요. 부드럽고, 단단해지는 두 가지를 다 얻으려다 또 몇 차례 무너지기를 반복할 각오를 하며 우수의 편지는 여기서 이만 마칠게요. 돌이 일상이 보다 안녕해졌기를 바라며 짹짹! <우수, 참새에게> 참새, 돌이에요. 어제는 잘 돌아갔나요? 서울 회동에서 만났지요, 우리! 여러 펜팔 짝꿍들 사이에서 참새는 누굴까 궁금한 마음에 눈을 도록도록 굴렸어요ㅎㅎ 참새는 저를 찾으셨나요? 다른 짝꿍들이 그동안 주고 받은 이야기도 들었고요. 같이 모인 이들과 주고 받은 웃음과 친절 속에서, 누가 내 짝꿍이어도 좋겠다 했어요. 누구더라도 펜팔을 주고 받으며 참새에게 받은 힘, 저에 대해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고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겨울이 되면 행복하게 포동포동해지는 참새를 만나 반가웠어요:) 속상한 소식일까 싶지만, 아직 다 지나보내지는 못했어요. 매듭짓고자 했던 ‘우리’의 일들요. 사실 지나보내고 싶은 건 아녜요. 매듭을 지어도 이어지는 줄처럼, 끝보다는 쉼표가 필요한 마음 같아요. 줄이 이어지는 와중에 저를 세우는 연습을 천천히 시도하고 있어요. 마음이 조금 더 차분해요! 그래서 많이 속상하지 않아요. 그런데 참새의 이야기는 또 새로워요. 내 안에서 무너지는 것들을 지켜보다니.. 가만히 내버려둘 그 용기가 가늠이 안 되어요. 비우고 출발한 여행길에서 새롭게 나를 채우게 될 것들이 다시 두렵지는 않았을까, 비어있는 마음이 허전하지는 않았을까, 중력 없이 붕 떠버릴까 무섭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다 비우고 또 채운 참새에게 저의 말이 와닿았다니 위안이 되어요.이번 겨울 내내 묵혀온 저의 깨달음과 고민이 부질없지 않다고 응답받은 기분이에요. 조금 미뤄지긴 했어도, 곧 마주할 매듭짓기의 순간을 긴장보다는 기대로 기다려볼게요. 참새가 찾은 스스로 서는 법을 저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볼게요. ‘우리에게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을까요?’ 참새의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뭔가 쿵 하고 속에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날짜를 두고 여러 번 읽어도 그렇더라고요. 왜 그랬을까, 하고 잠시 글자들을 응시했어요. 그러니, 물음표가 달린 참새의 질문 가장 아래에, 우리에게도 뿌리가 있다는 강한 믿음이 느껴져요. 우리 존재의 본질이 생명임을 천명하는 저 덤덤한 문장이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뿌리와 곁이 있음을 가끔은 잊고 사는, 그래서 혼자 두려워하는 일이 익숙한 저를 깨달으며 한 번 철렁. 용기를 내라고 등을 밀어주는 듯한 그 힘에 또 철렁. 그런 이유에서 ‘쿵’ 소리가 났나봐요. 사실은 알고 있었겠죠. 흔들리지 않고는 나에게 뿌리가 있는지도 알 수 없고, 튼튼한 뿌리를 갖기 위한 연습도 없다는 걸요. 옆 친구에게 살짝 기대어볼 일도 없다는 걸요. 새 계절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구르는 돌 옆에, 날다가 걷다가 하는 참새가 있기 때문일 거예요! 목소리가 떨리고 입꼬리에 경련이 나도, 결국 ‘큰 소리로 화 내지 않고 억울해하지도 않고 숨어버리지도 않고 말을 이어가는 참새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우아함이 뭔지 느껴요. 친절을 거짓으로 지어내고 난 후 차오르는 화는, 참새가 스스로를 지키고자 기른 강한 생명력 같아요. 존재한다는 건 바람과 비와 눈, 강한 햇빛, 가끔은 커다란 지진과 해일 속에서도 수없이 흔들리며 나를 유지하는 일이잖아요. 먹고 소화하고 내보내고, 힘을 쓰고 다시 자는 일, 사랑하고 상처받고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지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는 살아있을 수 없어요. 떨림과 경련은 내가 살아있다는 걸, 호흡하고 있다는 걸, 애쓰고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는 걸 수없이 반복해 알려주어요. 말하는 일이, 호흡하는 일이, 존재하는 일이 능숙해지면 여유가 생기겠지요? 그 여유 속에서 온화해지고 이해의 그릇이 커질 때 조금 더 우아해질 것 같아요. 그렇지만 능숙하지 않아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손이 떨리더라도 온화함을 잃지 않고자 하는 눈을 마주하면 저는 편안해졌던 것 같아요. 이완의 순간이지요! 긴장만큼 이완할 수 있는 장소가, 관계가, 이야기가,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우아해질 수 있을까요? 진심을 말할 수 있는 순간이 많다면, 사랑과 환대와 위안을 주고 받는 순간이 쌓여 관계가 되면 우리 모두는 우아해질 수 있을까요? 다음 편지는 조금 더 일찍 시작해야 겠어요. 두번이나 늦은 답장을 보낸 미안한 마음이기도 하지만,, 제 일상 속 펜팔의 시간을 더 길게 늘이고 싶어서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쉬며 천천히 흐르는 펜팔의 시간도 우아함을 연습하는 시간일 거라 생각해요. 어제 봤는데 벌써 보고 싶어요 참새! 우수의 편지도 고마웠어요. 고마움, 반가움, 기쁨, 설렘, 위안을 잔뜩 담아 답장을 보내고 싶었어요. 날씨가 풀리고 봄기운이 돋는 우수의 시간이, 지리산에서는 어떻게 마무리되어가고 있을지 궁금해요. 새 절기에 만나요! 저도 따라 굴러갈게요, 데구르르~! 돌이, 우수의 끝자락 2023년 2월 26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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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6
  • [우수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우아한 당신과의 교감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안녕하셨나요? 갈토에게 편지를 보낼 때가 되면, 늘 절기가 바뀌는 때라는 걸 실감해요. 곧 우수가 다가오니 흐린 하늘을 보는 날이 많네요. 저는 새롭게 뻗어내는 나무가지들과 매화의 꽃봉우리, 가지각색 겨울눈을 구경을 하면서 입춘을 보냈어요. 아침에 이메일 체크를 한다는 갈토 이야기를 듣고 저도 모르게 숨겨 놓았던 제 모습이 들킨 양 재밌었어요. 보통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느긋하게 앉아서 갈토에게 편지를 쓰는데, 다 써 놓고 그대로 잠을 자요.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더 읽어봐야 하거든요. 갈토의 답장이 빠른 편이라 저도 빨리 써서 보내고 싶지만 꼭 다시 한번 읽고 보내야 아차 싶지 않더라구요. 경찰과 대치한 상황에서 느낀 갈토의 감정이 또렷하게 와 닿았어요.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갈토를 위로하고 싶어요. 몸 다친 데는 없었나요? 당일 이태원에 없었는데도 참사 이후 압력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어요. 사방이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을 타게 되면 미세한 압박이더라도 그 날이 떠올라요. 희생자들의 당시 두려움의 크기를 저는 헤아릴 수 없겠지요. 그런데 추모하는 자리마저 대치를 해야 하니 마음이 혼란스러워요. 갈토도 그랬을 것 같아요. 내 앞의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밀고 있을까. 어떤 신념으로 무엇을 지키고 싶을까 알 수 없어 슬퍼져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느낌이에요. 지리산 산악열차도 마찬가지였어요. 지난 10월, 남원에서 산악열차 시범사업 동의안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시의회에서 농성을 했어요. 건물 안 좁은 계단에서, 시의원과 이야기하고자 올라가려는 우리들과 그 앞을 막는 공무원들이 땀을 뻘뻘 내며 위태롭게 엉켜서 몇시간을 있었어요. 화를 내는 공무원, 허공을 바라보며 초점이 나간 공무원을 바라보면서 더 밀치고 싶지 않아졌어요. 그들은 어떤 명령을 받은 걸까요? 어떤 결단으로 그 곳에 있던 걸까요. 그럼에도 갈토가 또 다른 정의를 향해 사부작 하려는 모습이 멋져요. 이번에도 패스트 패션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실상을 알게 되는 만큼 마음이 힘들 수 있잖아요. 갈토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듯하면서도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사는 분 같아요. 관심 있는 주제의 다큐를 챙겨 보거나, 집회에 참여하거나, 조금 더 걸리더라도 자연을 만나는 출근길을 다니시고요. 지인이 준 옷들을 입고 다니는 것도, 친구들이 다칠까 봐 더 용감해지는 것도요. 제가 갈토 주변에 있는 친구라면 좋은 영향을 많이 받겠어요. 더 이상까지 말하면 서로 부끄러우니까 여기까지만 할게요. 이번 주제는 ‘우아한 당신’이에요. 우아하다는 말을 찾아보니 근사한 말이더라구요. 고상하고 기품있는데 아름답기까지! 이런 존재를 단숨에 떠올렸어요. 제가 살던 곳 근처에 큰 호수 공원이 있었는데, 휴일에 자주 그 곳으로 산책을 갔어요. 햇빛이 내리쬐는 호수 위에 하얀 왜가리가 있었어요. 홀로 깃털을 정리하는데 그 순간 발걸음과 시선을 빼앗겨 버렸지요. 왜가리에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한참을 쳐다보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나서야 아쉬움을 남긴 채 발을 돌렸어요. 그토록 홀려 버린 이유는 정말 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있구나 하는 감동이었어요. 세상살이에 휩쓸리고, 이런 저런 감정에 휩쓸리다가 문득 본질을 깨달은 느낌! 왜가리의 순수한 힘이 절 붙잡았나 봐요. 아마 잔잔하게 반짝이던 호수가 왜가리의 자태를 더욱 우아해질 수 있게 한몫 더했겠지만, 구름 잔뜩 낀 하늘아래의 호수라도 왜가리에게 같은 것을 느꼈을 거에요. 그 모든 게 있는 그대로 어우러져 한 장면이 되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겠죠! 우리 사람동물들도 왜가리처럼 지구를 누리며 살 날이 올까요? 모습 그대로의 서로를 이해하고 어울리는 거에요. 산악 열차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지 않아도, 패스트 패션을 소비하지 않아도 우리들은 충분히 멋진 삶일 텐데요. 깊숙히 숨겨둔 스스로의 본질을 찾아내면 대치 상황들 속에서 더 우아한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갈토를 곧 보네요. 오신 분들 중 누가 갈토인지 모르겠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에 신이 나요. 건강히 지내다가 만나요. 유우야드림 <유우야에게> 이번 답장이 많이 늦어졌죠? 저는 최근 감기로 심하게 아팠고 지금도 컨디션이 좋지 못해요. 오랜만에 몸이 아프다는 감각을 느껴봤네요. 몸이 아프고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 내가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과 건강함이 주는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통에 시달리고 잠을 못 자게 되니, 잠에 빠져드는 밤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고 아프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너무 바쁘게 내 몸을 돌보지 않은 나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아파야 되나 보다 싶기도 합니다. 건강을 잃었을 때, 아프지 않은 일상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삶에 대한 태도가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아무일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 너무 그리워집니다. 제가 출근길을 걸어서 갔는데, 아프니까 그것도 못하게 되네요. 편지를 쓰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머리가 아파서 생산적인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어요. 쓰다가 마무리 못하고 미루게 되네요. 예전의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가득합니다. 평소보다 편지가 짧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우선 답장을 읽으며 경찰과 대치하며 느꼈던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서 아주 큰 위로가 되었어요. 아주 복잡한 마음이잖아요. 그걸 표현하기가 참 어려웠거든요. 근데 그걸 딱, 이해받은 느낌이었어요. 감사해요. 이번 편지의 주제가 ‘우아한 당신’인데, 진짜 한참 고민했어요. 평소 우아하다는 표현도 잘 안 쓰고, 우아한 당신을 만난 적이 있나. 생각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유우야가 왜가리를 이야기 하시는데, 아 맞다 생각이 들면서 저도 작년 겨울에 청계천을 걸었는데 그 때 봤던 새들이 생각났어요. 날씨가 추운데도 물에 긴 다리를 넣고 고고하게 서있는 이름 모를 새들이 위풍당당해 보였거든요. 어떤 새는 바위처럼 꼼짝 않고 서 있어서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물소리, 사람 소리, 차 소리로 혼란함 속에서 홀로 자기만의 세계를 온전히 지키고 있는 것 같았어요. 멋진 새에 대해서는 유우야가 이미 말했고, 저는 제 인생에서 우아함은 느꼈던 순간을 떠올려봤습니다. 문득 이 사진이 기억나서 사진첩을 오랜만에 뒤졌어요. 십년 전, 제가 여행중일 때였는데 여행 온 김에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밥먹는 시간도, 돈도 아까워서 아침에 일찍 나가서 식빵봉지 들고 다니며 돌아다니고 밤에 숙소에 들어왔어요. 여행 막바지기도 했고 체류비도 비싼 곳이다 보니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어요. 그 날도 서둘러 아침 일찍 미술관 오픈 시간에 맞춰 나와서 걸어가는데 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없고 한적했어요. 아마 주말 오전이었던 것 같아요. 길가에 핀 초록이들을 만났어요. 아침 이슬을 맞았는지 물이 맺혀있었는데 그 모습에 매료되어 길에 서서 이들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어요. 미술관의 전시실에 걸린 유명한 작품들을 보려고 바빴는데, 그 그림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게 했죠. 단순히 신선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살아있는 생명체가 뿜어내는 신비로운 빛깔이라고나 할까요. 나뭇잎을 둘러싼 초록색 테두리와 나뭇잎사귀가 그려내는 추상적 선들, 도로롱 맺힌 맑은 물방울이 생명체의 힘을 뽐내는 것 같았어요. 바삐 돌아다니던 여행자인 저에게 “어이, 당신 왜 그리 바빠, 나 좀 보고가. 좀 천천히 다니라고. 중요한 걸 놓치지마”라고 말하는 대자연의 목소리로 저를 잡아 당기는 순간이었어요. 우아한 당신이라는 주제를 듣고 이 사진이 왜 기억났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저에게 우아함은 만들어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움과 힘을 갖고 있을 때 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에게서는 찾기가 좀 어려웠겠다 싶어요. 인간은 멋내기를 좋아하잖아요. ^^ 저에게 우아한 당신은 멋내지 않음에서 오는 당당함과 생명력의 힘, 통찰력을 주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 날 제가 만난 초록이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는 것, 내 안의 고요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우아한 당신이었습니다. 이 주제 덕분에 내가 왜 이 사진을 좋아했는지, 왜 내가 그 순간 길가에 서서 한참 초록이들을 봤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감정을 잘 해석하지 못했거든요. 다만 내가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있고, 이건 뭔가 잘못됐어라고 느꼈고 초록색이 참 아름답다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우아한 당신과 나의 교감이 만들어 낸 순간이었어요. 십 년 후에야 그 때의 나를 이해하게 됩니다. 오래 살아야겠어요. 유우야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나의 경험을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십 년이 필요할 테니 말 입니다. ^^ 먼 십년의 일은 둘째 치고 우선 당장의 건강부터 회복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만나기로 되어 있는데, 저는 잠을 못 이루고 있답니다. 아파서 저녁부터 잤는데 자정 전에 깨고 아직 잠들지 못했답니다. 저는 오늘 무사히 유우야님을 만날 수 있겠죠. 너무너무 기다리던 날인데, 이런 날 아프다니 속상합니다. 아침이 지나면 싹 나을 거에요. 곧 만나요. 갈토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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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5
  • 환경부는 이제.. 환경파괴부, 멸종추진부다
    어제(3월 3일)는 ‘국립공원의 날’이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무등산국립공원 지정 10년을 맞이하여 ‘2023년 국립공원의 날’ 행사를 무등산국립공원에서 한다며 나에게 초청장을 보내왔다. 당연히 간다고 하였다. 누구보다도 축하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을 포함한 우리는 국립공원제도개선시민위원회의 이름으로 2001년 ‘국립공원 100대 개혁의제’를 발표하였다. 그때 의제 중의 하나가 ‘국립공원의 날’ 지정이었고, 그날 하루라도 국립공원을 쉬게 해주라고, 사람의 출입을 금하자고 제안하였다. 우리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2020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국립공원의 날’은 국립공원을 사랑하는, 국립공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선물 같은 날이다. 그런 ‘국립공원의 날’이 올해는 난장판이 되었다. 지난 2월 27일 환경부가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조건부 협의’하였기 때문이다. 1월 31일 흑산공항이 가능하도록 흑산공항 예정지를 국립공원에서 해제한 환경부가 이제는 설악산 케이블카까지 허가한 것이다. 이제 정말 환경부는 환경을, 자연을, 보호지역을, 국립공원을, 야생동식물을 보호하고, 보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게 됐다. 이제 우리는 환경부를 ‘환경파괴부’, ‘멸종추진부’가 불러야 한다. 설악산 케이블카가 허가되자 전국이 난리다. 지리산, 소백산, 속리산, 무등산, 월출산, 모든 곳에서 ‘설악산이 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느냐’며 너도나도 케이블카 추진 명함을 내밀고 있다. 전 국토, 모든 명산, 국립공원을 개발 전시장으로 만들어 놓고, 환경부는 한화진 장관이 ‘국립공원의 날’ 행사에 참여한다고 자랑한다. 세상에! 이런 열불나는 일들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할까? 환경부의 몰염치와 유체이탈 행정에 말문이 막힌다. 그래서 환경부가 보내온 초청장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 등이 준비한 집회와 행진에 참여하였다. 집회는 무등산국립공원 초입에서 별일 없이 진행되었지만, 행진은 행사장 입구에서 막혔다. 경찰들이 우리를 두 겹, 세 겹으로 에워싸고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게 했다. 그런 사이 한화진 장관이 큰 길이 아닌 잔디밭 너머길로 가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대열에 있던 나는 그곳으로 방향을 틀고 움직였는데 경찰이 제지했고 그리고, 나는 경찰 1명에 의해 시멘트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닥에 누워 이게 뭔 상황인가 잠시 생각했다. 아픔보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그놈의 얼굴을 보고 싶어.. 일어나서 소리소리 질렀다. 누구냐고, 누구냐고.. 우리는 경찰에 의해 포위당한 채 1시간을 넘게 이리저리 몰렸고, 한화진 장관은 그 입으로 국립공원과 생태계 보전을, 국립공원의 날 축하를 말하고는 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떠나는 승용차를 바라보면서 아무 힘도 없는 나에게 절망하였고, 내 앞의 여경 얼굴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왜 이러고 서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눈물이 쏟아졌다. 이게 뭐냐고, 왜 설악산에, 국립공원에, 산양의 삶터를 빼앗냐고. 누구를 위해서.. 그다음은 지리산에, 반달곰의 삶터에 산악열차, 케이블카를 놓겠다고 할거냐고, 대체 왜, 그냥 인간들끼리 박 터지게 싸울 것이지 야생동식물의 삶까지 갈기갈기 찢어 놓냐고.. 대체 왜.. 이제 그만 하라고, 제발 그만 좀 하라고..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3-03-04
  • 설악산오색케이블카 허가한 환경부를 규탄한다
    <3월 3일 국립공원의 날> 설악산오색케이블카 허가한 환경부 규탄 집회 개최 • 일 시: 2023년 3월 3일(금) 오후 12시 30분부터 • 장 소: 광주광역시 무등산국립공원 증심사버스회차장 앞(국립공원의 날 행사장 앞) • 내 용: 환경부 규탄 및 환경부장관 퇴진 요구, 퍼포먼스 등 환경부가 기어이 설악산케이블카사업을 허가했습니다. 대통령의 공약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문기관들의 부정평가와 국민들의 바람은 무시됐습니다. 벌써부터 전국 국립공원에 개발광풍이 불어닥칠 기세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지난 1월 31일에는 흑산공항 사업부지를 아예 국립공원에서 해제시켰습니다. 오랜 기간 조사와 논의 과정을 거쳐왔지만, 이 역시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3월 3일은 국립공원의 날입니다. 염치없어야 할 환경부가 국립공원의 날을 축하하겠다고 합니다. 무등산국립공원에서 기념행사를 진행합니다. 낯짝도 두껍습니다. 환경부는 정권 눈치나 보며 개발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공원의 날을 축하할 자격도, 국립공원을 언급할 자격도 없습니다. 이에 국립공원을 사랑하는 일반 시민분들과 국립공원무등산지키기시민연대,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강원행동, 케이블카반대설악권주민대책위와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 등 규탄집회를 개최합니다. 환경부를 규탄하고, 환경부장관의 퇴진을 요구할 것입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국민들의 모습을 전하겠습니다. 2023년 3월 3일 국립공원무등산지키기시민연대 /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강원행동 / 케이블카반대설악권주민대책위 /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 등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3-03-02
  • 지리산에서 40년 그리고 성삼재 도로 (해발 1,100미터! 지리산 우번암에서 40년, 법종스님의 지리산 이야기)
    해발 1,100미터! 지리산 우번암에서 40년간 수행하고 계신 법종스님을 만났습니다. 성삼재 도로가 만들어질 당시의 이야기 부터 지리산에서 스님이 겪은 여러 이야기들을 몇 개의 영상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 영상은 '지리산에서 40년 그리고 성삼재 도로' 입니다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위기
    2023-02-28
  • [숲샘의 지리산통신] 울타리 없는 학교, 지리산
    하동 지리산문화예술학교, 남원 산내 진달래산천, 함양 온배움터, 구례 봉서리책방, 산청 공간산아... 지리산 자락에 깃들어 움을 틔우고 있는 울타리 없는 학교이자 움직이는 교실들이다. 물론 지리산 5개 시군에서 한 곳씩만 나열한 것이라 지리산 아흔아홉 골에 숨어 있는 숱한 배움터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중에 필자가 교사로 참여하고 있는 지리산문화예술학교는 2009년 지리산학교로 출발해서 지금은 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로 그 이름이 바뀌어 14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필자는 올해로 4년째 초록걸음반 수업을 진행할 예정인데 지리산을 걸으며 지리산의 속살을 만나는 초록걸음반 말고도 산야초반, 디카시반, 와인아카데미반 등 십여 개 반이 신학기 수강생 모집을 마치고 3월 개강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수업이 가능한 것은 지리산 전체를 교실로 하는 움직이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우리 초록걸음반은 매달 첫 토요일에 총연장 295Km 21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지리산 둘레길을 위주로 걷긴 하지만 여름철엔 둘레길을 벗어나 시원한 계곡을 따라 걷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길동무(수강생들을 이렇게 부름) 중에는 해마다 어린이들 한두 명이 참여하고 있다. 쉬엄쉬엄 걷기 때문에 가능하고 또 이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청량한 비타민으로 길동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는데 올해는 또 어떤 아이들과 함께 걸을지 기대가 자못 크다. 길동무들과 지리산을 걷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우선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시는 동네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고 그 동네를 굽어살피는 정자나무들 또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게다가 세계 최장 야생화길로 기네스북에 오른 지리산 둘레길은 어느 구간을 걷든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들꽃들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리고 걸음을 걸으면서 필자가 길동무들에게 들려드리는 시와 음악은 초록걸음반 수업의 비밀병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구간에 어울릴 만한 시와 음악을 고르는 일은 참으로 고역임을 실토한다. 지리산 둘레길이 만들어진 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지리산 둘레길은 천왕봉 등정이나 화대종주, 태극종주 등으로 대표되던 지리산의 산행 문화에 큰 전환점이 된 건 분명하다. 수직으로 급하게 오르던 산행에서 사부작사부작 느릿느릿 걷는 수평의 길이 생김으로써 지리산에 새 지평을 열었다고 감히 주장한다. 결국 또 하나의 학교가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라 할 수 있다.
    • 지리산 오늘
    • 숲샘의 지리산 통신
    2023-02-27
  • [토토의 입춘 편지] 내가 직접 지어 입는 전투복
    디자인.칩코 <가로에게> 와아, 이사 축하해요! 독립한 것도 축하합니다! 지금쯤 방 정리를 마무리하고 아늑한 가로만의 공간을 꾸몄을까요? 산달리기를 다녀왔을 날에는 따뜻한 차와 함께 몸도 녹이고 열 발가락을 쭈욱 뻗고 온전한 한 숨을 깊게 내쉴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을 가졌길 바래봅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라니.. 제가 다 기뻐요!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참 뿌듯한 일인것 같아요. 문득, 새로 이사간 곳에는 어떤 이웃생명들이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새로운 주변의 환경에서도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을 눈으로, 냄새로, 분위기로.. 하나씩 잘 찾아내는 재미가 있길 바라요. ‘집’이라는 공간은 우리들에게 참 중요한 곳인 것 같네요. 몇년 전 도시에서 살 땐,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과 걸어서 15분 거리에서 따로 살았어요. 따뜻한 밥, 가족들의 온기, 편안함보다 저에게 더 소중했던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키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땐 나의 마음과 생각들을 공감해주는 이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아.. 너는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공감의 언어가 필요했는데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외톨이가 된 느낌이었달까. 온전히 나로써 인정받고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나 역시도 가족들에게 그런 품을 내어주기엔 부족하기도 했구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게 산이 내게 주는 느낌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문득 높은 곳에 올라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바람 소리, 새 소리, 낙엽을 떨어뜨리는 소리로만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아 기뻤어요. “있는 그대로의 너는 참 아름다워.” 하고 말이에요. 산은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까요. 지리산으로 이사 온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그런 산에게 기대어 산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그 존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요.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내 이웃이 된 그들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인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강아지에게 인사할땐 눈을 마주치지 않고 손 등을 내밀며 매너있게 인사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처럼, 나무 한 그루에게 다가갈 땐 가지 끝에 달린 작은 겨울눈과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불러보고 있어요. 가까이 다가가 손끝으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목을 길게 뻗고 높이 올려다보기도 해요. 새롭게 알아가는 이름이 하나씩 늘고 있는데 꽤 즐거운 일이에요. 서울 회동을 곧 앞두고 입춘 편지의 주제는 ‘나의 전투복’이네요. 전투복이라니! ‘전투'라는 단어는 듣기만해도 무서운 느낌이에요. 적을 만드는 것을 무서워하는 저는 쫄보인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날 만큼은 당당하고 싶고, 멋진 아우라를 뽐내고 싶다하는 날에 입는 옷을 생각해봤어요. 어릴 적 엄마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보여서 저도 한참 손으로 만드는 것을 배우는 걸 좋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옷만들기에요. 엄마만큼 솜씨가 좋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배워서 흉내는 내보았어요. 스웨터나 가디건을 직접 짜입기도 하고 조끼와 바지를 직접 만들어 입기도 해요. 모자를 짠다던지 안입는 코트를 잘라서 가방을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나에게 전투복이란 내가 직접 만든 옷을 꺼내입는 것인것 같아요. 나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잘 전해지기를 바라는 그런 날에는 내가 만든 옷들 중에서 하나를 코디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로 만든 옷이기도 하고, 내게 가장 편안한 감촉과 품으로 만든 옷이기에 입었을때 가장 나다운 느낌이랄까. 옷을 지어입는다는 것은 그런 것인것 같아요. 오롯이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에요. 나의 몸을 떠올려보고 나의 몸짓은 어떤지, 나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습관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를 위한 옷을 만들기가 어려우니까요. 옷을 만드는 시간은 산만하게 움직이는 마음과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요즘엔 손으로 옷을 만든 적이 정말 뜸했어요. 시골에 살다보니 옷도 가짓수가 많은 것은 짐만 되는 것 같아 필요없는 옷은 사지도 않고 만들지 않으려하는 것도 있어요. 취미라고 생각하고 옷을 만들었는데 가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옷을 만들어 입는 행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네요. 나에게 이만큼이나 의미가 있는 일이었구나..! 하고요. 최근엔 바늘을 잡는 시간보다는 누워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은데.. 몸이 자꾸 편한 쪽으로 선택이 기울때 나를 탓하기도 하고 지금의 시간들이 불편하고 불안함을 느껴요. 가로의 문장들을 여러번 곱씹어 봐요. 나 자신을 믿고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어요. 천천히 조금씩 쉬어가는 법을 배우고 싶은 것처럼. 종종 아름답고 사랑이 깃든 존재들 곁에서도 나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요. 내 안에 두려움을 마주칠 때마다 찾아오는 습인것 같아요. 쫄보여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줄래요. 이 글을 적다보니 지금의 나를 충분히 안아주고 싶어요! 새로운 전투복을 만들어보고 싶은 느낌이 말랑 말랑 찾아오네요. 옷을 만드는 솜씨가 좋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배우는 재미가 있어서요. 편지를 쓰다보면 생각 속 저편에 있는 나를 꺼내게 되는 것 같아요. 편지가 온통 나에 대한 이야기라 부끄럽기도 하네요.. 가로의 전투복 이야기도 기다려져요! 내일은 봄을 세우는 날 ‘입춘’이네요. 가로와의 펜팔 덕에 지난 겨울은 참 포근했어요. 우리는 어떤 봄을 맞이하게 될까요? :) -토토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2-27
  • [입춘 편지 : 덕복희와 산달] 사진을 찍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다니요
    디자인.칩코 <가까운 이웃이 되어주고픈 산달에게> 반가운 산달! 이번 편지는 자중해야겠어요. 웃기다는 말에 살짝 벅차오를 뻔했는데요. 신이 나 적당한 익살의 경계를 넘어버리는 것은 하수들의 흔한 실수죠. 저는 하수라서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되겠습니다. 저는 몇 주 전에 본가에 다녀왔던 터라 설에는 구례를 지켰어요. 귀촌한 첫 해에도 설에 집에 안갔었는데요. 엄청 외롭더라고요. 시골은 명절만 되면 텅 비었던 마을 어귀의 주차장이 가득 차요. 집집이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들리지 않던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요. 손자들 놀러왔다고 맛있는 음식을 해주시는가봐요. 벚꽃시즌 다음으로 지리산이 붐비는 때일 거예요. 첫 해는 왁자지껄한 속에 저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기분이었는데… 해가 쌓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시골인심이 좋다는데 정말이에요. 이번 설에는 이웃께서 나물과 부각을 잔뜩 챙겨주셨어요. 제가 채식하는 걸 알고 일부러 젓갈도 넣지 않으셨다면서요. 저희 집엔 냉장고도 없고 전 먹는 양도 적어서, 그 많은 반찬을 상하기 전에 해치우느라 복에 겨운 고생을 했답니다. 시골은 동지나 새해 같은 날엔 이웃끼리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가봐요. 저 같은 외지인에게도 꼭 한 솥씩 챙겨주시더라고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제게는 매번 놀라운 경험이에요. 작은 방에서 혼자 일어나 외출했다가 다시 혼자 침대로 돌아온다는 산달을 그려보면서 꼭 예전의 제 모습이 겹쳐보였어요. 산달이 제 이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많은 나물 반찬을 나눠먹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동치미랑 김부각은 먹어본 중에 최고였어요. 산달, 대단한 걸 놓쳤다고요. 그렇지만 인심이 푸진 이웃 대신으로, 산달에게는 사랑과 기다림을 허락한 가족들이 곁을 지켜주었나봐요. 오랜 반려자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니 다행한 마음입니다. 산달! 이번 입춘의 주제는 ‘나의 전투복’이에요. 회동을 앞두고 서로를 상상해볼 수 있도록 정하긴 했는데요. 저한테 그닥 이득이 있는 주제인지 모르겠어요. 썩 근사한 전투복은 아니거든요. 저는 계절별로 단벌인 펑퍼짐한 절복을 입고 지내요. 겨울을 제외하곤 나머지 계절은 머리에 터번을 두르곤 해요. 색은 온통 파란색입니다. 지독한 컨셉을 가진 듯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실용성을 중시해요. 절복은 밭일과 환경운동, 어느 때고 편안한 옷이에요. 색이 통일 돼 있어 모든 옷을 돌려입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외출 준비가 양치질보다 빨리 끝나는 기적의 실용성! 특별한 전투복이라기엔, 딱히 골랐다고 볼 수 없는 단벌이지만… 좀 웃긴 얘기를 해보자면 본의 아니게 이게 환경운동에 먹히더라고요(?) 기자회견 같은 곳에 가면 꼭 기자들이 저를 가운데 세우려고 하세요. 외관이 독특하니까 기사사진으로 쓰기 좋다나 봐요. 그들의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그림이 된다”는 거죠. 뭐랄까… 약간 꼬질꼬질해서 사연이 있어보이고, 시골에서 보기 드문 젊은이에, 방금 밭일을 하다 나온 듯한 현장감… 이게 그림이란 걸까요? 덥수룩한 수염에 떡진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니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도 저와 같은 신세에요. 사진 찍을 때 어리둥절한 채로 나란히 세워지곤 합니다. 아마 회동에서도 더 멋진 옷을 고르는 덴 실패하고 똑같은 옷을 입을 텐데요. 기자회견 사진처럼 떫은 감을 먹은 표정이진 않을 거예요. 산달의 편지를 읽을 때처럼 활짝 웃고 있을 거예요. 제게도 산달의 편지는 기쁨이거든요. 산달은 한 문단마다 한 번씩은 꼭 저를 번뜩 놀래는 문장을 숨겨놔요. 싣지 못한 산달우드향이 코끝에 덥썩 매달린대도 그 문장들만큼 이목을 끌지 못할 지도 몰라요. 저는 그 문장들 앞에선 일순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다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서성거려요. 그래서 두번째 산달의 편지는 꼭 여명의 숲길 같았어요. 집 뒤편에 바로 이어진 지리산둘레길이 있어요. 매일 아침, 사물의 푸르스름한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재빨리 집을 나서요. 해가 다 뜨도록 게으름을 피우면 놓치는 것들이 많아요. 숲속은 동틀 무렵이 가장 분주하거든요. 아침 산책을 하며 다람쥐를, 붉은배새매를, 운이 좋으면 담비를 만나고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게 제 낙이랍니다. 요즘은 나무 공부에 푹 빠졌어요. 나무의 수피와 겨울눈을 요리조리 살피다 도감에서 본 나무가 딱 등장하면 그때의 환희란! 그 나무를 지나칠 때마다 덩실덩실 손을 맞잡고 아는 체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에요. 그런데도 숲길은 여전히 수수께끼에요. 저는 새들의 ‘송’과 ‘콜’을 구분하지도, 바위 위에 놓인 불그스레한 똥이 누구의 똥인지, 진흙에 찍힌 멧돼지 발자국이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알고 싶은 것들 투성인데 다 알 수 없어 숲을 떠나지 못해요. 한동안 서서, 바람의 방향이나 나뭇잎이 흩어진 모양새를 골똘히 노려만 보다가 돌아온답니다. 그 수수께끼의 숲을 지나고 나면 아침 해가 다 차올라있어요. 알쏭달쏭한 공간을 헤매고 제게 남는 건 놀랍게도 고단함보단 아름다움이에요. 신비이고 눈부심이에요. 저는 궁금해요. 산달은 어느 누군가를 닮고 싶어 어떤 색으로 물들어있는지, 갸우뚱한 표정과 미지근한 미소를 짓고서도 어떻게 사랑에 대해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지, 자신을 감당하기만도 벅찼던 지난 날들은 어땠는지. 저는 산달에게 꼬치꼬치 캐묻지 못해,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 앞에 주춤거리는 발자국을 남기는 걸로 대신해요. 온통 동글동글한 그 문장들의 잔상을 바라보는 걸로 만족하기로 해요. 산달의 편지가 제게 남긴 것 역시 아름다움이에요. 산달의 전부를 알지 못해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신비와 눈부심이 있어요. 산달의 사진을 보고 신기했어요. 어디인지 모를 그 숲이 제가 늘 걷는 숲과 꼭 닮았거든요. 저도 모르게 마치 산책하는 것처럼, 그 사진 속 어린 나무의 겨울눈과 낙엽 틈에 있을지 모를 고라니 똥을 찾고 있더라고요. 산달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먼 곳에서도 비슷한 풍경들을 눈에 담고 있잖아요. 산달이 작은 방에서 혼자라고 느낄 때면, 저라면 이 사진을 건네겠어요. 산달이 이 사진을 찍으려 시선을 낮출 때부터, 아마 사진 속의 존재들이 산달을 따라왔을 거예요. 생강나무꽃 색의 햇살자국이 작은 방까지 비춰주지 않나요? 그럼 이만 산달, 입춘대길입니다! 김부각 혼자 다 먹은 덕복희 올림 p.s. 새벽마다 시 한 편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타로카드를 뽑듯이 설레는 마음으로 시집의 아무 쪽이나 펼치거든요. 오늘은 달복의 예쁜 노랫말이면 충분하겠어요. 다음에 선율을 들을 행운이 오길. <봄을 전해준 복희에게> 어느덧 입춘이군요! 복희의 편지가 제게 봄처럼 도착했어요. 많이 기뻤답니다. 복희가 올해에는 제게 봄의 전령처럼 봄의 소식을 전해주었으니까요. 저뿐 아니라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봄이 올 때 풍기는 향긋한 내음과 걸음 소리를 놓친 채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봄 속에 들어와 있을테니까요. 아,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요? 저는 얼마나 많은 손짓들을 놓쳐왔던 걸까요? 현대인들이 무릇 그렇듯, 살아가기 위해서 도시 사람들은 너무 많은 정보들을 끌어 안고 살고 있어요. 매일 새로운 이야기들을 접하면서도 어제 들은 이야기들을 내려놓지 않아요. 아니, 그건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환상 덩어리일 뿐이에요. 사람을 마비시키는 환상 덩어리. 그것들 때문에 우리는 만성적인 신경과민에 시달려요. 저만 해도 덜렁거리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는걸요. 매일을 메모장에 기록하고 계획하고 신문을 읽고 새로 나온 책은 뭐가 있는지 살펴보고 저기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키지 않지만) 지켜봐야 하고,, 놓치지 않는 정보들이 없는지 늘 긴장하게 돼요. 매일을 자극적인 음식들을 먹다보면 혀가 얼얼해지듯, 귀에 전자 음악을 늘 꽂고 살면 점점 귀가 들리지 않듯, 도시는 사람들을 무뎌지게 만들어요. 오직 어떤 의미인지도 모를 숫자들과 시곗바늘들과 정신없는 글자들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게끔 훈련되죠. 어떤 감각들을 잃어버렸는지도 알지 못하고 저는 오늘도 버스에 탑니다. 지리산을 넘어가는 동백처럼 붉은 태양이 어떤 시를 만들어낼지 우리는 알 수 없어요. 도시라고 부를 수 없는 곳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다가 복희의 편지를 받았어요. 창문을 대뜸 넘어와 피아노 위에 자리잡은 생강나무꽃 색의 햇살자국을 전해 준 복희를 읽다 보니 지리산이 제가 더듬어보던 그런 곳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지리산에 사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니 조심하셔야 해요. 다만 생명이 사는 모든 곳이 그리 아름답고 연약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리산 숲길의 숨을, 그 생경한 시들을 편지에 한아름 담아줘서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저는 이번 주 내내 무엇을 담아 보낼지 고민하다가 봄소식을 늦게 전해버리고 말았네요. 미안함을 전합니다. 그런데 복희가 김부각을 혼자 다 먹었으니 조금 덜 미안해하도록 할게요. 저는 명절을 끝내고 다시 본가로 돌아왔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 화순은 참 걷기 좋은 곳이에요. 집을 나서서 천변을 따라 쭈욱 내려가다 보면 마른 갈대가 우거진 습지가 있어요. 그곳에서는 늘 오리들이 떼를 지어 유유히 물장구를 치고 있기도 하고 큰 백로가 기지개를 펴고 날아가는 것을 볼 수도 있어요. 어제는 잿빛 두루미를 만나 얼마나 기뻤는데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집을 지나치면 무등산자락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우리 전라도의 산들은 침엽수와 활엽수가 함께 살고 있어 충청도나 강원도의 외로운 산들보다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대요. 따뜻한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만나는 곳이라고들 하더라구요.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저의 하늘을 따스하게 덮어주던 나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전에는 함경도에 있는 나무나 제주도에 있는 나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여러 조건들이 만나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나무님들을 내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저는 참 감사했어요. 복희가 만나는 새벽녘의 나무들은 어떤 분들일지 문득 궁금해져요. 지리산에 가게 된다면, 제게도 그 분들을 소개시켜 주세요. 복희에게도 제가 만난 나무님들을 소개시켜 줄게요. 함께 나무 앞에서 환희를 나누는 날을 상상해봐요. 복희, 적당한 익살의 경계를 넘어버리는 것이 하수들의 실수라면서요. 복희가 덥수룩한 수염의 소유자와 함께 절복을 입고 기사 사진을 찍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다니요. 조금 더 긴장의 끈을 붙들어 매어야 되겠어요 복희. 아니, 근사하지 않다니요! 그만큼 근사한 전투복이 어디있나요? 절복과 터번을 걸치고 환경운동을 하다니. 제게도 남는 절복이 있다면 하나만 나눠 줄 수 있나요? 부탁하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나요. 휴, 도시에서 기후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답니다. 동물들이 저마다의 보호색으로 자신의 몸을 주변 환경에 맞추듯, 도시생활자들 또한 마찬가지거든요. 다만 자신 주변의 색을 닮아 물들어가는 것이 섭리인 두꺼비와 달리 도시에 사는 존재들은 때를 묻히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거리 어딜 가나 서로 나서 자신이 아름답다 우기는 옷들이 돌아다녀요. 가련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너도나도 가지지 못해 안달이고요. 아마 복희도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독 묻은 옷을 입고는 고통스러워 불에 뛰어 들죠.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서는 사람들이 피부가 두꺼워져서 독을 입고서도 끄떡없는 존재가 된 것만 같아요. 아,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독을 흘려보내는 방법을 기어코 터득한 걸까요? 흠흠 샛길로 잠깐 샜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겨울의 저는 늘 무릎부터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다닙니다. 도시인처럼 보이기 딱 좋은 옷이죠. 하지만 그 속에는 기후운동을 하는 사람다운 옷을 입고 있답니다. 많은 옷을 가지고 있지 않아 갈색 면바지와 청바지를 돌려 입구요. 몸통은 찻빛이나 하늘빛을 담은 니트를 주로 두른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양말이에요. 꽃이 수놓아진 양말을 입고 지하철을 탈 때면, 어느 때보다도 신난 상태로 기후악당들을 무찌르러 출동하는 기후운동가로 변신하곤 합니다. 그게 왜 기후운동을 하는 사람다운 복장인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답은 간단하답니다. 그런 옷을 입은 제가 기후운동을 하기 때문이에요 히히. 사실 어떤 옷을 입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맥락 속에서 자신의 전투복들을 선택하니까요. 옷뿐만일까요? 우리는 각자가 가진 욕망이 허락되는 만큼 자신의 관계 방식을 만들어내요. 맨날 검은색 옷만 입는 사람도, 파란색 옷만 입는 사람도, 말을 하다가 말고 숨어버리는 사람도, 몸짓 발짓 다 해가며 온 맘 가득 표현하는 사람도, 다 저마다의 살아가는 방식이죠. 그건 선택과 의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주어지거나 휩쓸리기 쉬운 종류의 것인 것 같아요. 사랑조차도요. 운명이란 말의 존재 가치가 분명히 있답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저 사람이 왜 저런 옷을 입고 다니는지 이해하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너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은 이렇고, 내가 사랑하는 방식은 이런데, 우리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함께 삶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물음 말이에요. 거기서부터 창조적인 것이 시작된다고 믿어요. 저도 궁금해요. 복희는 언제부터 절복을 입게 되었는지, 도시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왜 지리산에서 살기로 결심했는지, 나무 공부는 복희에게 어떤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지. 아침에 지리산 둘레길에 들어서면 어떤 숨들이 복희의 몸을 그렇게 벅차게 만드는지. 복희를 읽어가는 것은 참 편안하고 기분좋은 일이에요. 곧 있을 복희와의 만남을 상상해요. 이럴 것이다 쉽게 그려지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들이 또 오고 갈 지 잘 떠오르지 않기도 해요. 그치만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향한 질문을 품고 있으니, 턱끝까지 벅차오를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아요. 내일 복희가 매일 걷는 숲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영혼은 누구일까요? 새롭게 꺼내 읽을 시는 누구의 말들일까요? 그동안 또 어떤 숨들을 모아 보내올까요? 저는 그 무한한 마음을 새롭게 받아 안으며 기다릴게요. 봄이에요. 함께하는 봄이네요. 안녕. 여전히 궁금함이 많은 산달 올림 p.s. 메리 올리버의 ‘마침 거기 서 있다가’라는 시를 아나요? 내일 아침에는 이 시를 읽으면 어때요? “해바라기는 눈부시게 빛나. 어쩌면 그게 그들의 방식이겠지. 어쩌면 고양이는 곤히 잠드는지도. 아닐 수도 있고.”
    • 지리산 오늘
    • 지리산 방랑단
    2023-02-16
  • [입춘 편지 : 참새와 돌] 이 계절이 힘을 실어주길 바라며
    디자인.칩코 <돌에게> 입춘이네요 돌. 추운 대한 무사히 보냈는지 궁금해요. 지난 편지에서도 말했다 시피 저는 산책을 무척 좋아하는데요. 지난 영하 15도까지 떨어졌던 추운날씨에 집에만 있기가 갑갑해서 나갔다가 허벅지가 시뻘개진 것을 보고는 엄청 놀라고, 가벼운 동상인가 싶어 전전긍긍했었어요. 그런데 편지를 쓰는 지금 벌써 봄기운이 살짝 내려온 것 같은 날씨에요. 벌써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달까요? 매 년 왠지 모르게 설레는 감정이 제게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데 그게 참 신기해요. 겨울동안에는 그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쉬고 있는데도 더욱 열렬히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에 ‘아 내가 번 아웃이 온 건가?’했거든요? 그러면서도 괜히 불안했어요. 이렇게 영영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의욕이 사라져 암울하게만 지낼까봐요. 그치만 계절처럼 제 마음도 매 순간 변하고 있었네요. 돌의 편지를 읽고, 돌에게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아졌어요. 돌이 굴러온 삶 속에서 의식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행위는 무엇이었을까요? “원래의 방식대로 살면 참 편한데 그렇게 살면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아”라는 말을 나도 들어보지 않았던가 떠올렸어요. 제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보기도 했고요. 돌이 말한 것과 꼭 같은 의미는 아닐 수 있겠지만요. 우리는 변해야 하고, 그것은 불편한 일이 될 테고, 그걸 감수하면서도 나와 함께 하겠느냐고. 그런 얘기를 들었던 저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야?’ 하면서 실망해 떠나는 시늉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시늉이라고 얘기한 이유는 내가 그래서 원래의 방식을 고집하며 살고 있나? 하면 그렇지 않고, 결국 그와 나는 따로가 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마치 모든 관계가 지구와 인간의 관계 같아요. 우리가 쓴 반려고양이, 반려다육이 얘기만 보아도 질병과 죽음으로 인한 고통을 중요하게 담았던 것 같아요. 그만큼 지구의 위기, 아픔, 고통이 머지않아 나의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데요. ‘불편하게 사느니 같이 살지 않겠어.’하고 지구 밖으로 날아가 버릴 궁리를 하는 사람도 꽤 많아 보여요. 지구도 떠나버릴 생각을 하는데 지구 품에 사는 우리들끼리는 또 얼마나 쉽게 자기를 고집하고, 이별을 고하며 사는가요. 저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외면하고, 뒤돌아버릴 수 있는 그 순간에 직면하고, 나의 생김새를 돌아보고, 손을 잡고, 변화의 길목에 들어서는 돌이 참 용감해요. 입춘의 주제는 ‘나의 전투복’이에요. 저는 싸우는 걸 싫어해요. 근데 또 목청껏 ‘투쟁!’하고 외칠 때나 텅 빈 넓은 차도를 뛰어다닐 때면 속이 뻥 뚫린 듯 후련해서 집회 나가는 데 거부감이 없었어요. 최근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집회에 도통 가보질 못했는데요.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고, 지리산에 내려오면서 큰 규모의 운동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거든요. 개인적인 일상을 생태적으로 꾸리고, 또 누리는 데 더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았던 것 같아요. 작년 9.24 기후 행진이 참 오랜만인 대규모 환경운동 집회 현장이었죠. 여기저기서 알음알음 사귀었던 친구들이 전부 다 모이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고, 풍물패, 퍼커션, 댄서들이 흥을 올려놔서 이게 지금 집회에 온 건지 축제에 온 건지 헷갈리기도 했어요. 나도 모르게 두 팔과 엉덩이를 앞뒤좌우로 미친 듯이 흔들고 있더라고요. 홍대 클럽도 이만큼 재밌지는 않았어요. 쓰다 보니 재미보다 ‘즐거움’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네요. 집회를 나갈 때 어떻게 하면 만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궁리하던 때도 있었어요. 어디선가 공격이 훅 들어와 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항상 긴장되어있었죠. 지금은 운동을 하러 나갔을 때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고 싶어요. ‘나는 지더라도 두 번 세 번 이 자리로 나올 거야! 왜냐하면 나는 당당하고, 즐거우니까!’라고 말하고 싶고요. 아무래도 제가 노는 걸 너무 좋아하나 봐요. 때때로 밀려오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실컷 우는 만큼 또 실컷 웃을 수 있길 바라요. 락 페스티벌에 가기 전날 밤 무슨 옷을 입어야 화끈하게 놀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듯이 환경 운동하러 가기 전날 밤에도 잔뜩 설레며 옷을 고를 거예요. 봄을 기다리듯이 돌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럼 이만! 짹짹. <참새에게> 참새, 돌이에요. 많이 늦었어요. 미안하다는 말부터 전해요.. 밤낮이 바뀐 채로 지냈어요. ‘띵동! 돌에게 입춘 편지가 도착했어요:)’라는 메일이 알림창에 열흘을 떠있었는데, 매일 새벽 감기는 눈으로 바라만 봤어요. 어떤 얘기가 있을까, 나는 어떤 얘기를 이번에 담을까.. 생각하다 잠들었어요. 기다리며 지치고 실망할 마음이 걱정되는데, 그동안 제가 지나온 시간을 잘 나누면 괜찮을까 하는 바람을 담아 편지를 열어요. (빨개진 허벅지는 잘 회복되었나요? 참새가 느꼈을 얼얼한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겨울의 흔적을 따라 느껴져요.) 온도가 영상에 머무는 날들을 지내며 입춘의 시간도 꽤 지나왔음을 느껴요. 저는 아직 봄이라는 계절이 주는 ‘새로움’에 진입하기 전인 것 같아요. 헐레벌떡이 일상이거든요. 활동을 제 일상의 안정보다 우선하고 있어요. 활동이 일이고 일이 곧 저와 제 관계에 구성한다고 생각하며, 지금의 우선 순위를 유지해왔어요.(참새가 물어봐준, 공동체를 의식적으로 구성하는 행위는 이런 마음을 배경해왔을 거예요) 그런데 스스로 선 다음, 서로를 살릴 수 있잖아요. 연말부터 연초까지, 겨울잠처럼 넘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이 시간’동안, 스스로 서는 법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찾고 싶었어요. 저에겐 나름 큰 깨달음이고 다짐이었답니다ㅎㅎ 그래서 먼저 해오던 것들을 잘 매듭짓고 싶은데. 끝이 따로 없나봐요. 나와 서로를 분리하고 싶지 않은 마음, 두려운 마음이 섞였어요. 그렇게 헐레벌떡이 누적되고, 매듭짓기는 유예시키고 있어요. 약속들이 자꾸 지연되는 와중에 편지도 한참이 지나 열게 되었어요. 아직 새로운 시간에 접어들지는 않았지만, 참새가 말한 설렘의 기운은 느껴요. 계절이 바뀌는 건 제가 지연할 수 있는 약속이 아니니까요. 계절을 따라, ‘아직 덜 된 거 같은데..!’하는 마음을 가져도 넘어가야만 하니까요. 아쉽더라도, 그 덕에 한발짝 내딛어요. 무겁고 미련도 정도 많은 ‘돌’을 굴리는 이 계절을, 참새의 편지 덕분에 감각해요. 그치, 설렘의 계절이지. 산책하기 좋지 하며 봄맞이를 준비하는 2월이 될래요. 전투복이라니! 전투라는 단어랑 친하지 않아서 바로 생각나지는 않아요. 방랑단분들이 주신 이야기를 힌트 삼아 고민해봤어요. ‘쎄보여야 할 때’라.. 저는 각진 옷을 자주 찾아요. 어깨가, 소매 끝이, 깃이 반듯한 옷을 입으면 위풍당당하게 걸을 수 있어요. 서울에 사는, 바삐 활동하는, 개인의 능력을 계속 질문받는다고 느끼는 저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그런 마음가짐을 필요로 하더라고요. 나를 지키고 유지하려면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어야 해요. 저의 방이나 산 그늘, 숲, 농촌 길거리에서는 그런 반듯함이 오히려 어색하고요. 참새가 지리산에서 보낸 시간, 일상을 생태적으로 꾸리고 누리는 일을 할 때는 경계 짓기가 아닌 허물고 스며드는 방법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밭일용 바지의 엉덩이와 무릎에 든 흙빛과 내음은 어떻게 털고 빨아도 잘 안 사라지잖아요.ㅎㅎ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환경운동은 ’인디언들의 마지막 전투‘였군요. 그렇게 생각하면 전투라는 단어가 조금은 이해돼요. 참새는 싸우는 걸 싫어한댔죠. 저도 그래요. 해결하고 대화를 제안하고 중간에 끼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투쟁이라! 저는 왜 싸울까요. 곁을 관계를 생명을 터전을 잃는 일이 더 두렵고 절박해서 ‘지키는 싸움’을 하는 것 같아요. 924기후행진이 즐거운 축제였다는 것, 어떤 공격을 걱정하며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정말 반갑고 감사해요. 다행이에요, 924 때 행진을 담당해 준비했거든요! 축제를 바랬어요 정말로. 해방의 순간에 우리는 이런 기분일까 하고 느낄 수 있는 틈새를, 장을 만드는 것이 행진에 담은 여러 마음 중 하나였어요. 투쟁은 뭘까, 어때야 할까 라는 고민에 머리 아팠는데 해방과 축제의 장소를 지키는 것도 투쟁의 중요한 이유라는 걸 참새 덕에 확신해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 또 다른 전투복은 퀴퍼 옷 같기도 해요. 즐거운 긴장을 주는 화끈함과 무지갯빛의 화려함과 편안함을 주는 옷들요. 나의 투쟁과 싸움은 해치고 짓밟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지키고 나와 너를 연결해 살리는 일이라는 걸 새기고 나니, 전투복도 자랑스러워요! 일상이 투쟁인 서울살이지만 옷장을 열 때, 긴장보다 용기를 얻겠어요. 진짜 봄맞이와 함께 다음 편지를 나누고 싶어요. 나중으로 미뤄둔 일들을, 계절의 힘을 빌려 ‘지금’으로 끌고 올래요. 오래된 우선순위를 바꾸는 일이, 부분적이라도 활동을 떠나는 것 같고 충분한 것 같지 않고 오히려 내 의미를 잃는 것 같아 두려웠는데요. 구르는 돌도 땅과 떨어지진 않으니까요. 더 오래 같이 걸어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새기며. 구석에 박힌 돌을 바람이 밀어주길 바라며! 참새의 설레는 산책과 축제같은 투쟁을 만드는 일에도 이 계절이 힘을 실어주길 바라며, 편지를 닫을게요! 데구르르~ 돌이, 2월 13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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