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8-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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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나는 옛이야기2-대전리 공양인물상 지리산둘레길 방광-산동 구간을 걷다가 만나게 되는 ‘대전리 비로자나불’ 옆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계시는 ‘한 분’을 우리는 종종 그냥 지나치게 된다. 크기도 작고 또 얼굴부분이 깨어져 있고, 안내판에 이분에 대한 설명이 한 줄, 한 글자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심결에 지나치는 순례객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관리하는 지자체나 문화재청에서 이분에 대해 이리도 무심할 수 있나? 오직, 마을주민들만 대전리 비로자나불과 이분에 대한 경배심을 간직하고 있다. 가면 늘 음료수와 공양간식이 가득가득하다. 예전부터 비로자나불을 미륵불이라 ‘오인’하면서 불심과 사심 가득히 공양해 온 까닭에 부처님은 코가 좀 닳아 없어지는 공덕을 배풀었지만, 이분은 옆에 계시다는 이유만으로 공양물을 아쉬움 없이 받아 오셨다. 그럼, 이분은 누구인가? 앞서 말했듯이, 남아있는 사료나 기록이 없기에,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앉아 계시는 자세와 형태가 비슷한 인물상을 통해 추론해 볼 수 밖에 없다. 앉아 계시는 자세는 오른무릎을 땅에 꿇고 왼무릎은 세우고 있고, 오른손은 공손히 무릎 위에 사뿐히 올려놓고, 왼손은 무언가를 들고 계시다(물론 훼손되어있다) 어려운 말로 우슬착지(右膝着地)이다.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인도의 예법으로 어른 앞에 물건을 놓거나 주고 받을 때, 공양할 때 하는 자세이며, 야외나 오체투지의 예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존경하는 자세로도 사용된다. 단서는, 우슬착지이다. 우슬착지한 공양인물상을 한번 다 모아보면, 그 안에 실마리가 있을 것이다. 그림이나 조각상(부조)으로 계시는 분을 제외하고, 독립된 환조(한 덩어리의 재료에서 물체의 모양 전부를 조각해 내는 작품)로 조성된 공양인물상은 우리나라에 모두 8분이 남아계시는데, 그중 한 분은 금강산에 계시는 관계로 실물을 확인할 수 없다 ㅠㅠ 8분의 공양인물상은 승려상과 보살상으로 구분된다. 한번 알현해보자! 우선, 시대순으로 앞선다고 판단되는 공양승려상(공양석등) 화엄사 공양석등은 그 앞에 있는 4사자 삼층석탑만 국보로 지정되었고, 논곡리 공양상도 앞의 삼층석탑만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전리 공양상도 비로자나불입상만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물론 모두 석탑과 불상과 함께 세트로 이해되어지는 유물이기에 같은 국보와 보물로 봐야 하겠다. 금강산 금장암지 공양석등 역시 앞의 석탑과 함께 북한의 국보급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문화유물 제100호로 변경 지정되었다. 그리고, 공양보살상 논산 개태사의 공양보살상은 머리부분이 손실된 것을 근래에 새로 조성하면서 웬지 원래의 분위기가 좀 사라진듯하며, 극락보전에 모셔진 삼존불입상은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공양보살상은 아무런 훈장이 없다. 신복사지 공양보살상은 그 앞의 삼층석탑과 ‘따로’ 보물로 지정되어있다. 법천사지 공양보살상은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가, 최근 조사결과 공양보살상으로 판명되었다 월정사 공양보살상은 그 앞의 팔각석탑은 국보, 공양보살상은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따로 지정된 것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어 국보48-2호로 격상되었다. 공양보살상은 우슬착지한 자세에서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들고 있는 형상이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어, 승려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주로 고려전기에 조성되었으며, 대전리 공양상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그래서 이 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넘기고자 한다. 공양인물상의 시초는 화엄사 4사자 삼층석탑 앞에 있는 공양석등이라는 데는 전문가들의 이견이 없다. 다만, 조성년대와 조성이유, 인물의 성격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가득하다. 대전리 공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리산둘레길을 걸어서 두어시간만 가면 볼 수 있는 화엄사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앉아 계시는 자리도 그렇고, 석탑의 양식과 아우라, 그 앞의 독특한 공양인물상이 받들고 있는 석등....누구라도 그 앞에 서면, 가슴 설레이는 감동을 받게 된다. 효대(孝臺)라고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고, 화엄사의 홈페이지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화엄사 창건설화에 나오는 연기조사가 그 어머니에게 차를 공양하는, 효와 불(佛)이 만나는 전래없는 스토리와 조각품이라는 게, 현재 정설로 여겨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효대라는 명칭은 고려 대각국사 의천의 시에 처음(남아있는 기록) 등장한다. 그때가 고려초 11세기말경이다. 그러나, 연기조사의 화엄사 창건설화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는 없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유교의 효사상이 강조되어지면서, ‘추강집’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을 통해 재해석된 것이다. 화엄사의 4사자 삼층석탑과 공양석등은 조성될 당시인 통일신라말에는 ‘효’를 중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연기조사의 창건설화와도 관련이 없었다. 이는 화엄사의 삼층석탑과 공양석등이 인근의 논곡리 공양상과 대전리 공양상, 그리고 멀리 금강산으로 그 조형양식이 퍼져나간 것을 보면 납득할 수 있다. 탑과 공양상을 조성하는 것이 당시 국가적(혹은 지방권력)인 사업인데, 불교적 교리와 부처에 대한 공경이 우선인 시대에 ‘효’를 모티브로 하는 조성사업이 많은 곳에서 진행되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혹여 그렇다면, 논곡리와 대전리, 금강산 금장사에서도 연기조사 설화와 같은 ‘효’관련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전해지는 바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독특한 양식의 석탑과 공양석등이 만들어진 연유는 무엇일까? 화엄사 4사자 석탑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석탑에서 출발해 보자. 유구한 역사를 가진 4사자 석탑은 초기에는 사자가 기단석에 배치되거나 탑신부에 있다가, 점차로 탑신부를 머리로 받드는 모양으로 변해간다. 남아있는 4사자 석탑 중에서 가장 명확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사자빈신사지(獅子頻迅寺址)’ 석탑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절도 사라지고, 문헌기록도 없는 절터에 탑만이 하나 덩그라니 남아있고, 그런데 다행히 탑 기단부에 명문(조탑 연기문)이 새겨져 있어, 탑을 세운 년도와 이유, 그리고 절의 이름을 알게해준다. 고려 현종 13년(1022년)이라는 정확한 조성년도와 ‘사자빈신사’라는 절 이름이 표기되어있다. 이름도 생소한 ‘사자빈신사’라는 절 이름에 주목해 보자. 사자빈신(獅子頻迅)이라는 말은 화엄경 입법계품에 ‘세존이 모든 보살들을 여래의 사자빈신삼매에 들어가게 하려고 미간백호(부처님의 미간에 있는 흰털)로부터 큰 광명을 놓는다’라는 구절에서 나온다. ‘빈신’이라는 말은 인도어 ‘비실름다’에서 온 말이며, ‘하품을 한 상태’를 의미한다. 사자가 하품하는 것을 포효하는 것으로 해석해 ‘신음소리’라는 뜻의 ‘빈신’으로 쓴 것이다. 사자를 탑 사면에 내세운 것도 사자빈신의 경지를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매(三昧)는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도 마음의 평온을 깨뜨리지 않는 집중 상태, 곧 선정에 든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사자빈신삼매’란 사자의 포효처럼, 어떠한 두려움도 없고 걸림이 없는 선정의 상태를 말하며, 부처께서 이러한 삼매의 경지를 모든 보살들과 중생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것을 말한다. 아마도, 절 이름답게 구층탑도 빈신삼매에 드신 부처님과 화엄경의 한 구절을 조형물로 옮겨놓은 게 분명할게다. 석탑에 사자가 등장할 때, 처음엔 기단부 옆에, 혹은 탑신부 옆에 배치되다가, 점차 사자가 탑신을 떠받드는 형상으로 변모했을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흔히, 사자가 떠받드는 형상으로 인해 생성된 공간과 그 안에 놓여진 인물상에 주목한다. 물론, 그 공간과 인물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지점은 그렇게 공경스럽게 떠받드는 ‘탑신’에 있다. 화엄경 세계의 주불, 사자빈신삼매에 들어가신 ‘비로자나불’이 바로 그 탑신이다. 그렇다면 탑 안에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사자빈신삼매가 등장하는 화엄경 입법계품을 보면 답이 나온다.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해탈에 이르는 진리의 길을 찾아가는 구도의 행각을 기록한 내용이며, 이 중에 25번째로 찾아가는 선지식이 빈신비구니이다. 그렇다, 탑 안에 있는 인물은 ‘빈신비구니’이다. 그래서 탑 안의 인물상이 ‘여인’의 형상을 띄게 되었고, 연기조사의 어머니라는 오해를 낳게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탑 앞에 우슬착지하고 공양하는 모습을 띤 인물은 ‘선재동자’이다. 뜬금없이 ‘천지창조’와 ‘수태고지’를 등장시켜 보았다. 서양의 성당이나 궁전, 귀족들의 애장품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성경의 내용들이다. 성경의 내용 중 주요한 장면을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이유는, 종교적 신념을 나타내고 또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믿음의 표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백성’들이 글을 모르기에 성경의 내용을 쉬운 그림과 조각으로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상과 불화, 그리고 절집의 많은 문화재도 불경의 한 대목을 말하고 있다. 참, ‘수태고지(受胎告知)‘는 말이 너무 어렵다. 성처녀인 마리아가 예수를 임신했다는 것을 천사 가브리엘이 하늘에서 내려와 알려주는 성경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즉, 임신사실(수태)을 알려주는(고지) 장면인데, 한문이 너무 어려워 제목을 보고 그 뜻을 알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보면 성경이나 불경이나 어려운 한문을 한글로 풀어 해석해 주면 좋으련만..... 흔히 효대라 잘못 알려진 화엄사의 4사자 삼층석탑과 공양석등은, 신라말 불교의 핵심교리인 ‘화엄경’의 한 구절을, 빈신삼매에 든 비로자나불과 선지식을 찾는 선재동자와 빈신비구니를 표현한 것이다. “세존께서 혼자만 사지빈신삼매에 드는 것이 아니라 법회에 모인 보살들도 사자빈신삼매에 들도록 미간의 흰 털로부터 ‘삼세의 법계를 두루 비추는 문(普照三世法界門)’이라는 큰 광명을 비춘다. 이 큰 광명을 통해 보살들도 삼매에 들게 되거니와 이를 통해 모든 중생의 교화도 쉬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 화엄경의 화엄사상을 대표하는 화엄사라는 절집에, 그것도 그 절의 가장 높고 핵심적인 자리에, ‘효’를 모티브한 효대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화엄세계의 주불과 그 부처님의 진심가득한 중생사랑을 표현할 것인가? 당신이라면, 어떤 것을 표현하겠는가...... 대전리 공양상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많이 삼천포로 빠졌다. 너무 많이 훼손된 대전리 공양상의 원형은 어떤 모습일까? 가까이에 있는 화엄사 공양석등이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원형일게다. 공양인물상이 받들고 있는 석등을 세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그런데, 해체 수리를 하면서 머리 위의 옥개석과 기둥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옥개석의 홈과 기둥이 맞지 않기도 하고, 세 개의 기둥 굵기가 다르다는 점에서, 공양석등 조성 이후 추가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금장암지 4사자 삼층석탑과 공양석등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공양상의 머리로만 석등을 받치고 있는 사진이고, 두 번째는 공양상의 몸통과 머리와 석등이 분리된 사진이다. 무거운 석등을 머리로만 받치게 만든 조형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균형이 흐트러지고, 세월의 힘에 못 이겨 석등이 무너진 것이다. 화엄사 공양석등도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 것이며, 다시 세우기를 반복하다, 급기야 옥개석과 기둥을 세워서 석등을 받치도록 한 것이다. 공양상의 머리 위에 상대석과 석등만 있었던 원형에서,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 머리와 상대석 사이에 옥개석을 새로 만들고 기둥을 세운 것이다. 입면도를 보면, 금장암지 석등과 화엄사 석등의 차이점, 원형에서 추가한 부분이 무엇인지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대전리 공양상의 주변에도 석등을 받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둥 2개가 남아있다. 기둥의 크기와 생김새가 화엄사 공양석등과 얼추 비슷하다. 아마도, 대전리 공양상은 화엄사 공양석등 이후에 세워졌으며, 화엄사의 고충(석등이 무너짐)을 가까이서 보아왔고, 또 화엄사 공양석등에 기둥을 세우는 추후 작업도 지켜 본 이후, 조성할 때부터 기둥을 세우지 않았을까 유추해본다. 그렇다면, 대전리 공양상도 머리 위에는 석등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다만, 주변에서도, 발굴조사 과정에서도 삼층석탑과 관련된 유물들이 발견되지 않아서 공양상이 석탑을 향해 있었는지 아니면 비로자나불을 바로 보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화엄사 공양석등도, 또 지척에 있는 구례 논곡리 공양상도, 금강산의 금장암지 공양석등도 다 삼층석탑을 향해 공양하고 있는 모습이기에, 대전리 공양상도 필시 삼층석탑을 향해 우슬착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니 그럴게다. 다소 장황하게, 한국 불교의 가장 문제적인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감히 화엄사의 효대를 효대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기에, 조금 난망하기도 하다. 그러나, 나말려초의 혼란한 시기에, 법신 비로자나불의 공덕을 빌어오고, 선지식을 찾아 구도의 길을 나선 선재동자에 빗대어, 조금이나마 삶의 위안을 받고자 했던, 지리산 자락의 보살들과 중생들의 마음이 읽혀지는 대전리 석불과 공양상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보살행이라고 헤아려 주시면 고맙겠다. 다음엔, 날도 더운데 지리산둘레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시원한 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 보려 한다. 어디로 갈까?
    • 지리산문화
    2022-08-02
  • 구례 사성암
    - 구례 사성암에서 66x270cm(2022) - 구례 사성암에서 (부분,2022) - 사성암, 69x135cm(2010) -스케치1.jpg -스케치2.jpg -스케치3.jpg -스케치4.jpg
    • 지리산문화
    • 이호신화백의 지리산 그림 순례
    2022-07-13
  • 장애여성공감 회원들의 '불타오르는 독립여행' 버스킹 공연. 구례여행
    장애여성공감 회원과 활동가 분들이 구례를 찾아 '불타오르는 독립여행'을 왔습니다. 일정중에 구례오일장에서 기금마련을 위한 물품판매도 하고 작은 공연을 열었습니다. 장애여성공감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만든 노래에 담긴 의미를 함께 만나보세요.
    • 지리산문화
    2022-07-06
  • 장애여성공감 구례오일장 버스킹 공연 - 난 나왔다
    장애여성공감 구례오일장 버스킹 공연 '난 나왔다' 입니다. 30년간 시설에 있던 여성이 탈시설을 통해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느끼는 행복을 노래한 내용입니다. 노래: 쿠로미, 도토, 나무, 여름, 별이, 초록, 옥수수 (장애여성공감 회원, 활동가) 작사, 작곡: 장애여성공감, 옥수수
    • 지리산문화
    2022-07-06
  • 장애여성공감 구례오일장 버스킹 공연 - 공감아리랑
    장애여성공감 구례오일장 버스킹 공연 '공감아리랑' 입니다. 노래: 김미진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개사: 장애여성공감, 옥수수
    • 지리산문화
    2022-07-06
  • 이런저런 지리산 이야기 2
    이런저런 지리산 이야기 2 ◔ 칠불암이 칠불사가 된 것은 전씨의 5공 시절 실세 중의 실세라는 쓰리 허의 작품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 옛적 인도에서 시집 온 허황후의 일곱 왕자가 성불한 곳이 칠불암이고, 나머지 중 두 왕자가 어머니의 허씨 성을 퍼뜨렸으니 쓰리 허가 그 자손이라는 것이다. 지리산 중턱까지 관광버스가 오르내리는 길을 만들고 그 비싸다는 銅기와로 모든 지붕을 씌워 권세를 자랑했으나 오히려 그 치적으로 인해 역사 속에 두고두고 욕을 먹게 되었다. ◔ 피아골의 끝 마을은 직전마을이다. 피 직(稷)에 밭 전(田)을 쓰니 그 옛날 곡식이 귀한 시절의 이름이다. 그 피밭골이 피아골로 불려지게 되었으나 그 골짜기에서 전쟁 이후 한 트럭분의 유골이 나왔다고 하니 피아골은 피(彼)와 아(我)가 싸워 계곡이 핏빛으로 물들었던 전쟁의 상흔이 담긴 이름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이 피아골을 오르다 보면 삼홍소(三紅沼)가 나오는데 김시습이 이곳에 앉아 술 한 잔 하며 단풍이 붉고 그것을 비추는 맑은 계곡물이 붉고 제 얼굴이 붉어 삼홍이라 하였으니 이래저래 피아골은 붉은 골짜기라는 이미지를 버릴 수 없다. ◔ 여름이 끝나갈 무렵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남부능선을 내려오다 능선 끝자락의 원강재로 하산하려는데 길이 묵어 없어지는 바람에 늦은 적이 있다. 이미 어두워진 시루봉 근처에서 길이 끊겼는데 친구와 나는 지도를 보며 의견이 달랐다. 친구는 더디더라도 길을 찾아 가자는 것이었고 나는 여기서 곧바로 직선으로 길을 뚫자는 거였다. 가시덩굴이 우거진 길을 억지로 뚫어 새벽 2시가 넘어서야 힘들게 내려와 생각했다. 내 스스로 길이 되었던 고단한 하루였다고. 하지만 그것 또한 나의 오만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 왕실봉의 외국인 산장을 지키는 보살님에게 점심으로 비빔밥을 얻어먹은 일이 있다. 따뜻한 보리밥에 근처에서 방금 끊어온 산나물을 넣고 참기름 한 숫갈에 여러 봄꽃들의 꽃잎들을 낱낱이 따서 얹어 주었다. 그 형형색색의 꽃잎 비빔밥은 먹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아름다움 자체를 먹는다는 사실에 흥분했으나 나는 결코 아름다워지지 않았다. ◔ 상선암으로 해서 차일봉을 오르다 멧돼지 네 식구를 만났다. S 곡선을 돌아 갑자기 조우했는데 나도 놀랐지만 그 가족들이 더 놀랐던 것 같다. 그들이 먼저 순간적으로 등을 돌려 왔던 길로 돌아갔는데 그 찰나에 마주친 어미 멧돼지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마 그녀도 그럴 것이다. ◔ 지금 야간산행은 벌금이 50만 원이지만 예전에 밤으로 걷는 즐거움은 제법 컸었다. 지상의 모든 것들이 달빛에 젖어 조용히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간에 나는 홀로 깨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껏 고무되었던 철없는 발자국 소리였다. 달빛에 촉촉이 젖은 구상나무며 이슬 머금은 동자꽃, 숲의 어둠을 얼핏 스쳐가는 고뇌까지도 경이로웠던 밤, 그렁그렁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한 밤, 불무장등의 작은 봉우리들과 피아골의 들리지 않는 물소리마저도 모두가 나를 향해 밀려오는 것만 같던 그 치기어린 감상의 밤이 그립다. ◔ 대설주의보가 해제되기를 기다려 산에 오르곤 했다. 티 없이 맑은 하늘,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누구도 밟지 않은 새로운 길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눈꽃을 가득 피운 나무 사이로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맨 처음 길을 열다보면 외로움도 슬픔도 세상의 고단함도 내 안의 두려움까지도 모두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까닭모를 그리움 하나가 발자국처럼 질기게 따라올 뿐이었다 -노고단 설경 / 사진 김인호
    • 지리산문화
    • 문장 속의 지리산
    2022-06-12
  • 불무장등不無長嶝
    ☐지리산에서 온 편지 9 불무장등不無長嶝 불무의 꽃들 지리산의 8월이 오면 오르고 싶은 곳이 불무장등 능선이다. 숲은 무성하게 우거지고 숲의 오솔길엔 여기저기 여름 꽃들이 피어있을 것이다. 나는 꽃에 큰 관심 없이 산을 올라 다녔지만 불무장등을 다니던 어느 때부터 그 이름들이 궁금해졌다. 꽃이라기보다는 그 녀석들이 내 마음의 어느 구석을 침탈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마음에 새겨질 때면 이름부터 궁금해지는 것이 일상의 습習이어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찾아 불러주기 시작했다. 동자꽃, 솔나리, 수국, 꿩의다리, 비비추, 원추리...... 나는 평소 아름다움은 꽃이나 어떤 풍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행위,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오는 깊고 그윽한 어떤 느낌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산을 오르며 특히 지리산의 여름 산을 오르며 숲을 고요히 호흡해내는 작고 여린 꽃들의 순결한 숨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그 존재 자체부터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인간의 어떤 한계점에 있는 것이기도 해서 늘 막연한 슬픔으로 이어졌다. 그 무렵에 써졌던 시가 생각난다. 숲에 들어 비로소 나의 적막을 본다./ 저 가벼운 나비의 영혼은 숲의 적막을 날고/ 하얀 산수국, 그 고운 헛꽃이 내 적막 위에 핀다./ 기약한 세월도, 기다림이 다하는 날도 오기는 오는 걸까./ 이름도 없이 서 있던 층층나무, 때죽나무도 한꺼번에 슬퍼지던 날/ 그리운 얼굴 하나로 세상이 아득해지던 날/ 내 적막 위에 헛꽃 하나 피었다. (「헛꽃」전문) 불무장등의 이름 지리산 불무장등은 주능선의 삼도봉에서 화개 쪽으로 벋은 남쪽 능선인데 한자로는 不無長嶝이라고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그 설명도 각각이다. 불교와 관련한 설명은 ‘지리산은 문수보살의 일신인데 문수는 오로지 반야般若를 주관하며, 반야는 제불의 어머니(諸佛之母)이다.’ 라는 것에서 불모佛母가 불무不無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불무장등 봉우리가 풀무 모양으로 생겨서 풀무잔등으로 불리다가 일제 때 국토의 우리말 지명을 한자화 시키는 과정에서 불무장등不無長嶝으로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무장등 능선을 올라가면 마지막에 주능선의 삼도봉에 이르는데 이 삼도봉도 본래는 날라리봉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그 형상이 낫날처럼 생겼다고 낫날봉인데 발음하기 쉽게 날라리봉으로 불리다가 한자화 과정에서 3개 도(전남, 경남, 전북)가 만나는 곳이니 삼도봉三道峰이라고 공식화 되어 지도에 올랐다. 하찮은 이름의 역사가 이렇듯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으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를 따질 새도 없이 세월은 흐르고 흐르는 시간 중에 모든 것은 그렇게 변해간다. 우리 스스로도 늘 변하여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니니 10대의 나와 50대의 내가 어찌 같은 ‘나’란 말인가. 위벽은 5일이면 바뀌고 피부는 한 달, 뼈의 골격조차도 3개월이면 모두 바뀌어 1년이면 몸속 원자의 98%가 바뀐다고 하니 사실상 고정된 ‘나’라는 실체는 없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오래된 기억만이 남아 세월을 왜곡할 뿐, 늘 새로워지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있을 뿐이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도계를 이루는 능선 불무장등 능선은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능선이다. 능선의 길을 오르다보면 발 한번 띄면 경상도요 또 한 발자국 옮기면 전라도일 때가 많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래 전부터 경상도와 전라도 동서 지역감정이 극에 있을 때 이 능선을 자주 올랐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왔다 갔다 도계의 경계를 지우며 이 능선을 오르면 마음의 지역 경계가 사라지는 듯도 하여 많은 위로를 받았던 것인데 한편으론 개인과 파당의 이익을 위해 남북으로 나뉜 나라를 다시 동서로 나누는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가 증폭되기도 했었다. 내 주변에도 같이 NGO 활동을 했던 이들이 현실정치의 변화를 위해서라며 정가에 입문한 이들이 많이 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물론 개인의 진정성이야 그대로 마음 속 어딘가에 있겠지만 일단 국회의원이 되었든 지방의원이 되었든 혹은 시장이 되었든 현실정치라는 것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사람의 신념이라는 것도 수시로 변하는 일상 삶의 상황과 조건 속에서 원형으로 보존되어 그 신념에 의해 일상을 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물며 정치에 있어서야 더 그렇지 않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죽음을 담보로 그 신념을 지킨 자들도 없지 않았으니 희망이라는 단어도 빛을 잃지 않고 쓰이는 것 아니겠는가. 불무의 무덤들 하지만 내가 불무장등 능선을 오르며 가장 마음에 쓰였던 것은 죽음이었다. 이 능선에는 무슨 묘들이 그렇게 많은지 오르며 수시로 만나는 것이 무덤이었다. 누군가의 삶의 종지부들이 수없이 찍혀 있는 이 무덤들을 보며 숲의 살랑이는 무수한 이파리들만큼이나 많은 생령들의 부재를 떠올리곤 했다. 누군가는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라며 사는 것이 곧 죽어가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삶, 그 자체만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안의 어딘가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또 애써 무시하려는 것도 아니지만, 늙고 병든다 해도 삶 그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사는 것만이 그나마 스스로에게는 답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불무장등을 오르며 많은 여름의 꽃들과 무덤들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무심하게 지나쳐가는 것이다. -천마꽃 / 사진 김인호
    • 지리산문화
    • 박두규 시인의 지리산에서 온 편지
    2022-06-12
  • 그 길은 아름답다
    그 길은 아름답다 신경림 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서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답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 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아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서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 하동공원 벚꽃 /사진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시인과 시
    2022-06-12
  • 자연주의 건축의 백미 구층암 모과나무와 야생차
    영상작업을 함께 해 오던 정정섭 해설사님이 정년퇴임을 하게 되셨습니다. 앞으로 유튜브로 자연과 문화를 해설하는 일을 계속 하시겠다고 합니다. 새로 유튜브 체널을 개설 해서 함께 영상을 만들어 봤습니다. 울퉁불퉁한 나무의 모양을 그대로 살린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 이야기 입니다. 저는 이 기둥을 보면 '남들과 달라도 괜찮아. 남들과 똑 같을 필요는 없어' 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리산 자락 화엄사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을 만나보세요.
    • 지리산문화
    2022-06-03
  • 지리산 연곡사 소요대사탑, 현각선사탑비. 아름다운 지리산 연곡사의 탑비 3부
    아름다운 지리산 연곡사의 탑비 3부. 지리산 연곡사에 있는 보물 제154호 소요대사탑, 보물 제152호 현각선사탑비를 소개합니다. 정정섭 해설사님께서 신라, 고려, 조선때의 불교문화재의 구분되는 특징에 대해서도 알려주십니다.
    • 지리산문화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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