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문화Home >  지리산문화
-
참교육 키즈의 생애 4편 "우리는 무슨 사이"
9월이 왔다. 뜨거운 더위가 살짝 물러섰다. 신입생들의 얼굴엔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에 돌아갔을 때 나경은 수현을 만났다. 나경이 먼저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그동안 잘 지냈어 “너 대학생 되더니 엄청 멋있어졌다.” “너 나 찾으러 우리 과에 왔다면서. 친구들에게 들었어" "네. 수현은 짧게 대답했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선배” “어…. 나. 그냥 잠시 쉬었어.” “몸도 안 좋고....." 나경은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방황했다. 같은 과 운동권 선배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다시 그 선배와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다행히 그 선배가 가을에 졸업했다. 나경은 다시 돌아왔다. 나경과 수현은 이후 자주 만났다. 연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경은 술을 마실 때 수현을 불렀다. 수현은 나경이 부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나경을 만나러 갔고, 수현이 만나자고 하면 나경도 그랬다. 우리 무슨 사이죠? 라고 나경에게 수현이 물었을 때 나경은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 수현은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관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수현이 좋았지만, 세살이나 어린 수현에게 먼저 고백할 수는 없었다. 벚나무의 잎들이 갈색으로 물들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풍이 점점 진하게 물들었다. 교정의 학생들은 따뜻한 햇살을 찾아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풋풋했던 신입생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처럼 보였다. 학생들이 방학으로 교정은 텅 비었다. 텅 빈 교정엔 눈이 내렸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왔다. 수현은 겨울 방학 내게 다시 현장에서 일했다. 더운 여름보다 겨울이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은 더 힘들었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현장에 나가면 손발이 꽁꽁 얼었다. 그럴 때면 페인트 깡통에 버려진 나무를 태워 언 발과 손을 녹였다. 연일 영하 10도가 넘나드는 추운 날이 이어졌다. 여름보다 더 힘들었다. 겨울에 수현은 고층 아파트 현장에서 일했다. 현장은 나름대로 체계가 있었다. 수현이 맞은 일은 일명 직영 잡부였다. 여기저기 청소일을 하거나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일이었다. 겨울에 시멘트 양성을 하기 위해 석탄을 가져와 불을 지피는 일도 수현이 해야 할 일이었다. 콘크리트 작업을 한 당일엔 온종일 불을 피워야 했다. 그 날은 야간이나 철야 일도 했다. 그런 날은 기본 일당에 야근 수당에 철야 수당까지 합쳐서 하루 10만 원이 넘었다. 수현을 야간 일이 있을 때마다 지원했다. 학비도 벌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나마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함바집은 밥 맛이 좋았다. 마음껏 먹어도 되었고 함바집 박씨 아주머니를 수현을 아들 같다면 특별하게 달걀부침을 더 챙겨 주기도 했다. ”젊은 학생이 고생하는구먼…. 울 아들은 지금 군대 갔는데…. “강원도는 여기보다 엄청 춥겠지?“ ” 아드님이 강원도에서 있어요. 거긴 여기보다 5~6도는 더 내려갈걸요?“ ”학생은 군대 안 가나.?“”저는 졸업 하고 가려고요. "아이고. 하루라도 젊었을 때 가야 고생을 덜 하는데….” “그러게요. 세상이 저를 놓아주지를 않네요.” “근데 아주머니 아들은 몇 살이에요? “21살…. 인데…. 아,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아…. 그려.” 그 후로 아들과 동갑이라며 아주머니는 수현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학생 일 적당히 해” 직영 일은 적당히 해도 돼…. 뭐 반장이 맨날 쳐다보는 것 도 아니고…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네. 아주머니 고마워요.” 수현은 아주머니의 아들이 같은 또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혹시 같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직영이 하는 일은 매일 매일 바뀌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해도 철근 반이나 조적이나 목수들은 일당이 2~3배는 되었는데 직영일을 하는 사람 일당이 가장 작았다. 아무 기술도 없는 수현 같은 학생들이나 기술 없이 다른 일을 전전 하다가 현장 일을 나온 사람들이 불려 오는 일이었다. 현장에서도 가장 낮은 일자리였다. 그해 겨울 방학 내내 수현은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파트 준공일이 얼마 남지 않아 현장은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2월 중순이 넘어가자, 아파트 현장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수현의 길고 긴 노동일도 끝이 나고 있었다. 나경은 현장에서 일하던 수현을 찾아왔다. 일이 끝나고 수현과 나경은 밤거리를 걸었다. “수현아, 꼭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해…” “손이 이게 뭐야….”“꽁꽁 얼고 튼 수현의 손을 잡았다.” "정 힘들면 이 누나에게 이야기해. 내가 좀 도와 줄 수도 있는데…. 수현은 별말 없이 걸었다. “선배처럼 부잣집 사람들은 우리 같은 가난한 빈민 출신들의 마음을 몰라요.” “전 빈민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라고요. 가진 것도 없고요.” 둘은 함바집으로 행했다. 아주머니 여기 밥 하나 더 주실 수 있죠? 그래. 누구야? 학생 애인인가? “네” “제 여자 친구예요?” “예쁘죠?” “수현아…. 여자 친구는….” “아이고 수현 학생 여자 친구가 왔으니, 오늘은 달걀부침 네 개는 해줘야겠네” “수현이 같은 착실한 남자를 어찌 알아봤을까?” 나경은 수현이 자신을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둘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이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함께 할 수 없을 거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선배 방학 끝나고 봐요!” 나경은 수현과 커피 한잔을 하고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경은 단 한 번도 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경에게 돈은 흔하고 편한 것이었다. 자신이 사는 큰 집과 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수현은 온종일 일을 하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더 고민하기는 싫었다. 나경과 수현은 역까지 걸었다. 찬바람이 둘 사이를 갈라놓듯이 불었다. 수현은 나경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나경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얼어붙은 수현의 손을 자신의 코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웠다. 둘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20분쯤 걸었을 때 역이 보였다. 역 앞에는 오래전 역 앞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 이용했을 것 같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봉봉, 박카스 같은 선물 상자들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경은 저 안에 물건이 들어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빈 껍데기겠지…. 나경은 자신이 저 빈 상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권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도 아니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자신이 먼지에 싸여 있는 빈 상자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서울행 기차가 도착하겠습니다" 안내 멘트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경은 서둘러 기차를 타기 위애 달려갔다. 수현이 손짓이 보였다. 잘 있어…. 수현아….
-
연재소설 참교육 키즈의 생애 1편 "봄날"
1편 봄날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벚꽃처럼 피어올랐다. 수현은 날아오는 화염병이 강진 앞에서 터지는 것을 봤다. 화염병이 터지자, 강진의 바지에 불이 붙었다. 강진은 떨고 있었다. 수현이 강진에게 달려가 불을 껐다. 부지에 불이 붙어 있었다. 강진이 머뭇거리는 것을 본 체포조가 강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도망쳐” 수현은 강진의 손을 잡고 교문 안으로 달려갔다. “다행이다. “잡힐 뻔했잖아.” 교문 안으로 들어와 확인해 보니 불탄 바지가 찰거머리처럼 강진에 다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바지를 떼자, 강진의 피부와 함께 벗겨졌다.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억… 강진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 가자… 아프지…. “ “아…. 괜찮아…. “ 강진은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뭐가 괜찮아…. 아파 보이는데….” 그해 강진과 수현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 말이 없고 얌전하던 강진이 시위 현장에 나온 것을 본 수현은 많이 놀랐다. 그럴 놈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수현은 집에서 학교까지 강진을 부축했다. 화상에 심해서 혼자 걷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강진은 학교 근처에 살았다. 수현은 자취방에서 강진이 사는 곳까지 매일 걸어갔다. 그렇게 수현은 강진과 벚꽃이 질 때까지 함께 걸었다. 꽃이 지자, 강진은 혼자 걸었다. 강진은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강진은 고등학교 때 친구보다는 책하고 가까운 아이였다. 친구들이 운동장이나 체육관으로 향할 때 강진은 조용히 교실에 남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국문과에 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은 국문과가 아닌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생각이 있었는지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운동권 서클이었다. 선배들을 따라 그날 처음 집회에 나갔다 화상을 당한 것이었다. 강진의 다리에는 커다란 화상자국이 남았다. 강진이 혼자 걷게 된 이후 그들은 한동안 보지 못했다. 수현과 강진 둘 다 서클 활동에 빠져 있었다. 강진이 가입한 해방문학 동아리는 말만 문학 동아리지 “운동권 양성소”라고 불리는 유명한 동아리였다. 강진의 권유로 수현은 그 서클에 가본 적이 있었다. 서클 방은 학생회관 지하에 있었다. 수현이 지하 서클 방을 열고 들어가자 5~6명의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선배들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벽에는 사회과학책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만나러 왔는데요?” "네가 수현이냐?" "네" "강진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너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 운동을 했다며? "네……. 뭐…. 그런 그것은 아니고 그냥 참교육 운동할 때 강당에서 연설을 좀 하기는 했습니다." "대학생들 집회 때 따라다니기도 하고요" "너 나경이를 안다며?" 네…. 나경은 수현이 고등학교 때 만난 선배다. 수현은 고등학교 때 경찰서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했었다. 경찰서 앞에서 집회가 자주 있었다. 집에만 있기 심심했던 수현은 시위대를 따라가 본 적이 있었다. 그날도 경찰서 앞에서 집회하던 날이었다. "야. 너 고등학생 아니야?" "네…. 그런데요. 고등학생이 여기 나오면 어떡해…. 나경은 어린 수현이 걱정되었다. 잡히면 너 고생한다. 그럼, 누나는요. 잡히면 고생 안 하나요? 뭐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대학생이고 너는 고등학생이잖아…. 상황이 달라…. 뭐…. 저는 달리기 잘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딱 보니 잘 달리지 못해 경찰에게 잡힐 것 같은데요. 야. 너 누나를 뭐로 보는 거냐. 누난 절대 안 잡힌다. 왜요? 누나는 변신하면 되거든. 나경은 가방 안에 가발과 다른 옷을 보여 주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나경과 수현은 그 후로 몇 번 시위 현장에서 만났다. 사실 나경를 만나기 전에도 수현은 대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에서 일명 운동권 필독서를 사서 읽고 있었다. 철학에세이, 공산당 선언, 강철군화, 전태일 평전, 그람시나,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집회에 참여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수연이 그런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대학생 형이 준 책이라면 수현에게 친구가 빌려준 책이 시발점이 되었다. 해직한 선생님들이 만든 거꾸로 읽는 교과서와 세계사를 읽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서정주가 친일파라고”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의 글을 공부해야 하지. “역사는 누구 입장에서 쓰는 거야? 왕의 역사와 백성의 역사는 다른 것 아닐까? 새장에서 태어난 새는 나는 자유를 모르지만, 새장으로 잡혀 온 새는 언제나 하늘을 마음껏 날던 자유가 그리운 것이다. 수현은 스스로 교실과 교과서라는 새장안에 갇혀서 진정한 자유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수현은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후 나경 선배와 몇 번 만나면서 막연하게 대학교에 들어가 학생 운동을 해야겠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어쩌면 수현에게 나경과 학생 운동은 대학에 입학해야 할 유일한 이유 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수현의 꿈은 노동운동가였다. 수현이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힘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조직을 만들어 힘을 키우고 불의 일에 대항해서 싸우는 일은 멋있어 보였다. 가난한 농부들이 연대하여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싸우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권리와 임금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당연 것 처럼 보였다. 수현은 전태일 열사처럼 “노동해방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대학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졌다. 교실안에 친구들이 입시를 위해 공부하던 고 3학년때 수현은 고향 마을에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임이었다. 수현이 살던 마을엔 논과 들뿐이 시골 농촌 마일이었다. 아이들 부모는 농민이었고 모두 하나 같이 가난했다. 수현은 매주 토요일 밤에 아이들과 마을회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이런 모임을 꼭 해야 해요?” “왜 우주야?” “이상해?” “아니" “오빠가 이상해 보여?” “아니”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어려워?” “세상이 그렇게 살기 어려워?” “열심히 일하고 절약해서 살면 잘 수 있잖아?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우주는 수현보다 두 살 어린 옆집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수현을 좋아했다. 모임을 만들자고 하자 가장 반기던 아이였다. 매일 밤 마을회관에 모이던 아이들만 15명 이상이었다. 수현의 모임의 회장으로 매일 밤 아이들에게 일주일 동안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해주거나 매주 주제를 만들어 토론하는 모임을 이끌었다. 아이들은 매주 모여서 함께 논다는 것만으로도 그 모임을 좋아했었다. 수현은 아이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회에서 나경을 만나고 나서 대학에 가야겠다고 수현은 생각하게 되었다. "수현아! 우리 서클에 가입하지 않을래" "친구 강진도 있고…. "전 이미 가입한 서클이 있어요. "아. 그래. "서클 두 개 가입한다고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근데 선배님들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요? 우리…. 나이가 좀 있기는 하지…. 학생 운동이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거든…. 네…. 수현은 서클에서 나왔다. 그때 강진이 서클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현아. 오랜만이다. 우리 서클에 왔구나. 같이 들어가자. 내가 선배들 소개해 줄게. 아니야…. 이미 만나고 왔어…. 그래…. 우리 서클에 가입할 거야? 아니야. 왜? 생각이 좀 달라…. 그래…. 나중에 보자.” 강진이 가입한 서클은 총학생회 간부를 주로 배출하는 유명한 서클이었다. 수현은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현은 이 서클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진이는 알고 가입한 것일까?” 강진이 학생 운동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수현은 믿을 수 없었다. 수현이 고등학교 때 참교육 선생님들의 부당해고에 분노에 강당에서 연설했을 때 수현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강진의 눈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에 가입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강진의 인생이니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
노고단의 아침
「섬진강 편지」 -노고단의 아침 천왕봉에서 반야봉으로 만복대 너머 덕유가야까지 왕시루봉 내려 섬진강 남해까지 구례읍 너머 백아무등으로 사방팔방 번지는 아침빛 어리석은 이도 머물면 지혜로워진다는 지리산 저 구름과 빛이 그려내는 아침 풍경을 모시러 새벽길 걷는 구도자의 길 허락하는 동안 이 길을 묵묵히 걸으리라 -섬진강 / 김인호
-
이호신 화백의 2024년 새해인사
지리산 산내 숲에 숨은 듯 드러나지 않은 한울아비 소낭구 하나 천녀의 별빛으로 우리를 깨우는 우주나무여 빛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아, 우주여 마음이여 빛이여 사랑이여 -불기 2566년(2022) 우주나무를 박두규 글 짓고 이호신 그림 지리산-인에 ‘지리산 그림순례’를 연재하고 있는 이호신화백께서 지리산 그림 두 폭을 2024년 새해인사로 전해오셨습니다. ‘이호신 화백의 지리산 그림순례’는 하동, 구례, 남원 순례를 마치고 새해에는 함양 순례를 시작합니다. 기대해주십시오.
-
첫눈
「섬진강 편지」 - 첫눈 어제는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조심 내가 그를 찾았는데 오늘은 어두운 산길을 더듬어 그가 나를 찾아 마을까지 내려왔다.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고 내일 또 만나도 싫지 않은 그대 같은 첫눈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 운동
지리산 운동에 대하여 ‘지리산 운동’이라는 용어는 아직은 좀 낯설지만 지리산 권에 있는 많은 단체나 소모임, 그리고 개인의 다양한 영역의 사회 변혁적 활동과 삶들을 하나의 큰 지향으로 엮어낼 수 있는 ‘지리산 공동체’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몇 마디 거들까 한다. 21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 사회 변혁운동은 크게는 군부독재라는 반정부 투쟁 속에서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을 통합한 전국 단위의 조직력을 가지고 명확한 하나의 전선에 복무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하면서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고 동구권이 몰락하는 국면 속에서 변혁운동의 중심주체들이 흔들리면서 운동의 내용과 형식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이전(반정부 투쟁 당시)의 운동은 당장 눈앞의 위중한 현실(열사들과 동지들의 죽음 등) 속에서 오로지 현실을 타개해야 하는 절박함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할 여유도 없이 비민주, 반인권 반통일을 대상으로 한 투쟁의 현실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국적 상황을 보면 집단적, 지역적, 인적 구성에 따라 전선이 형성되고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해지면서 운동의 폭이 좁아지고 조직 이기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권의 많은 단체와 소모임 또는 개인적 활동까지 포함해서 ‘지리산 운동’이라고 명명해본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여타운동과 크게 두 가지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하나는 넓게 보면 ‘대안적 삶 운동’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리산 권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 단체나 모임의 구성원들은 지역 주민들도 있지만 귀농, 귀촌인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대안적인 새로운 삶을 찾아 도시에서 지리산 자락으로 삶터를 옮겨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관심을 갖는 운동영역은 환경, 생태, 생명, 평화, 공동체, 등의 문제의식을 바탕에 둔 대안문화, 대안문명 찾기라는 운동적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크게 보아 인간 소외나 인간성 상실이라는 자본 중심적 삶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지리산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활동의 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문제의식의 공통분모라고 할 것이다. 근대 500년은 모든 삶이 자본으로 집중되는 과정으로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진행되었다. 근대의 과정 속에서 추구해온 물질의 풍요와 생활의 편리 뒤에 숨어 있던 인간의 탐욕이 근대화라는 명제 속에서 자연의 순환 질서를 깨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을 구체적 일상 속에서 일정부분 정당화시켜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심성이 피폐되고 사회적 가치관과 개인 삶의 목표는 선과 진실로부터 멀어졌으며 현대인들의 삶의 중심에는 물질이 자리 잡게 되고 사회생활은 보다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한 시스템으로 구조화되어 갔다. 이렇게 물질만능주의 사고가 사회에 만연되면서 생명경시와 함께 개인의 평화 또한 심하게 위협받게 되었다. ‘지리산 운동’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식 속에서 태동하였기 때문에 자본가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인본가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근본 운동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삶의 문화, 문명을 꿈꾸는 대안 운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지리산 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의 구조를 바르게 변혁하려면 ‘인간의 본래 심성을 되찾는 운동’과 함께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직이나 단체 모임들이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래 심성을 되찾는 노력을 통해 개인의식과 사회의식의 확장을 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회의 변혁은 어렵다는 생각들이 많은 사업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간디가 식민지 상황에서 벌인 사탸그라하(진리파지眞理把持) 운동이 그러했다. 간디는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해방은 영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보다도 자신으로부터 해방(절대자유)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한 사회의 변혁은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제도가 바뀌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회와 사람들의 의식이 함께 확장되어야 진정한 변혁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디는 종교를 통해 확장된 개인과 사회의 의식을 토대로 비폭력 투쟁이라는 전대미문의 운동방식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는 성찰과 수행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확장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의 단군시절에도 그러했다. 그 시절의 사회적 삶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성통공완性通功完이라는 말이 있다. 본성을 꿰뚫어 공덕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래 심성을 되찾는 수행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사회적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독이 가능하다. 성통공완이나 샤타그라하 모두가 개인의 자기완성과 사회적 실천을 하나로 인식하고 진행시킨 높은 의식의 사회적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완성의 노력과 사회적 실천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사회적 제도를 바르게 고치고 바르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이 그만한 역량과 수준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지리산 운동’은 지금껏 우리 변혁운동사에서 특별히 거론된 적이 없는 ‘개인의 자기완성’이라는 측면을 사회적 실천운동과 동등한 무게로 병행시키는 운동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지리산 운동’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것과 사회적 실천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기존의 우리 사회운동 방식보다는 한 단계 진화된 운동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의 문제를 자본의 관점과 방식으로 풀지 않고 모든 생명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순환할 때 진정한 평화가 있다는 자연 중심의 사유와 철학을 바탕에 두고 풀려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현실에서 민주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리산 자체가 모든 생명의 집합체인 것처럼 그래야만 개인과 전체의식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고 그러한 토대에서의 사회적 실천이 올바른 사회변혁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두규. 시인)
-
-
참교육 키즈의 생애 4편 "우리는 무슨 사이"
- 9월이 왔다. 뜨거운 더위가 살짝 물러섰다. 신입생들의 얼굴엔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에 돌아갔을 때 나경은 수현을 만났다. 나경이 먼저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그동안 잘 지냈어 “너 대학생 되더니 엄청 멋있어졌다.” “너 나 찾으러 우리 과에 왔다면서. 친구들에게 들었어" "네. 수현은 짧게 대답했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선배” “어…. 나. 그냥 잠시 쉬었어.” “몸도 안 좋고....." 나경은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방황했다. 같은 과 운동권 선배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다시 그 선배와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다행히 그 선배가 가을에 졸업했다. 나경은 다시 돌아왔다. 나경과 수현은 이후 자주 만났다. 연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경은 술을 마실 때 수현을 불렀다. 수현은 나경이 부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나경을 만나러 갔고, 수현이 만나자고 하면 나경도 그랬다. 우리 무슨 사이죠? 라고 나경에게 수현이 물었을 때 나경은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 수현은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관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수현이 좋았지만, 세살이나 어린 수현에게 먼저 고백할 수는 없었다. 벚나무의 잎들이 갈색으로 물들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풍이 점점 진하게 물들었다. 교정의 학생들은 따뜻한 햇살을 찾아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풋풋했던 신입생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처럼 보였다. 학생들이 방학으로 교정은 텅 비었다. 텅 빈 교정엔 눈이 내렸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왔다. 수현은 겨울 방학 내게 다시 현장에서 일했다. 더운 여름보다 겨울이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은 더 힘들었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현장에 나가면 손발이 꽁꽁 얼었다. 그럴 때면 페인트 깡통에 버려진 나무를 태워 언 발과 손을 녹였다. 연일 영하 10도가 넘나드는 추운 날이 이어졌다. 여름보다 더 힘들었다. 겨울에 수현은 고층 아파트 현장에서 일했다. 현장은 나름대로 체계가 있었다. 수현이 맞은 일은 일명 직영 잡부였다. 여기저기 청소일을 하거나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일이었다. 겨울에 시멘트 양성을 하기 위해 석탄을 가져와 불을 지피는 일도 수현이 해야 할 일이었다. 콘크리트 작업을 한 당일엔 온종일 불을 피워야 했다. 그 날은 야간이나 철야 일도 했다. 그런 날은 기본 일당에 야근 수당에 철야 수당까지 합쳐서 하루 10만 원이 넘었다. 수현을 야간 일이 있을 때마다 지원했다. 학비도 벌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나마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함바집은 밥 맛이 좋았다. 마음껏 먹어도 되었고 함바집 박씨 아주머니를 수현을 아들 같다면 특별하게 달걀부침을 더 챙겨 주기도 했다. ”젊은 학생이 고생하는구먼…. 울 아들은 지금 군대 갔는데…. “강원도는 여기보다 엄청 춥겠지?“ ” 아드님이 강원도에서 있어요. 거긴 여기보다 5~6도는 더 내려갈걸요?“ ”학생은 군대 안 가나.?“”저는 졸업 하고 가려고요. "아이고. 하루라도 젊었을 때 가야 고생을 덜 하는데….” “그러게요. 세상이 저를 놓아주지를 않네요.” “근데 아주머니 아들은 몇 살이에요? “21살…. 인데…. 아,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아…. 그려.” 그 후로 아들과 동갑이라며 아주머니는 수현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학생 일 적당히 해” 직영 일은 적당히 해도 돼…. 뭐 반장이 맨날 쳐다보는 것 도 아니고…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네. 아주머니 고마워요.” 수현은 아주머니의 아들이 같은 또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혹시 같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직영이 하는 일은 매일 매일 바뀌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해도 철근 반이나 조적이나 목수들은 일당이 2~3배는 되었는데 직영일을 하는 사람 일당이 가장 작았다. 아무 기술도 없는 수현 같은 학생들이나 기술 없이 다른 일을 전전 하다가 현장 일을 나온 사람들이 불려 오는 일이었다. 현장에서도 가장 낮은 일자리였다. 그해 겨울 방학 내내 수현은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파트 준공일이 얼마 남지 않아 현장은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2월 중순이 넘어가자, 아파트 현장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수현의 길고 긴 노동일도 끝이 나고 있었다. 나경은 현장에서 일하던 수현을 찾아왔다. 일이 끝나고 수현과 나경은 밤거리를 걸었다. “수현아, 꼭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해…” “손이 이게 뭐야….”“꽁꽁 얼고 튼 수현의 손을 잡았다.” "정 힘들면 이 누나에게 이야기해. 내가 좀 도와 줄 수도 있는데…. 수현은 별말 없이 걸었다. “선배처럼 부잣집 사람들은 우리 같은 가난한 빈민 출신들의 마음을 몰라요.” “전 빈민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라고요. 가진 것도 없고요.” 둘은 함바집으로 행했다. 아주머니 여기 밥 하나 더 주실 수 있죠? 그래. 누구야? 학생 애인인가? “네” “제 여자 친구예요?” “예쁘죠?” “수현아…. 여자 친구는….” “아이고 수현 학생 여자 친구가 왔으니, 오늘은 달걀부침 네 개는 해줘야겠네” “수현이 같은 착실한 남자를 어찌 알아봤을까?” 나경은 수현이 자신을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둘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이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함께 할 수 없을 거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선배 방학 끝나고 봐요!” 나경은 수현과 커피 한잔을 하고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경은 단 한 번도 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경에게 돈은 흔하고 편한 것이었다. 자신이 사는 큰 집과 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수현은 온종일 일을 하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더 고민하기는 싫었다. 나경과 수현은 역까지 걸었다. 찬바람이 둘 사이를 갈라놓듯이 불었다. 수현은 나경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나경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얼어붙은 수현의 손을 자신의 코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웠다. 둘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20분쯤 걸었을 때 역이 보였다. 역 앞에는 오래전 역 앞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 이용했을 것 같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봉봉, 박카스 같은 선물 상자들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경은 저 안에 물건이 들어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빈 껍데기겠지…. 나경은 자신이 저 빈 상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권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도 아니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자신이 먼지에 싸여 있는 빈 상자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서울행 기차가 도착하겠습니다" 안내 멘트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경은 서둘러 기차를 타기 위애 달려갔다. 수현이 손짓이 보였다. 잘 있어…. 수현아….
-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
참교육 키즈의 생애 4편 "우리는 무슨 사이"
-
-
참교육 키즈의 생애 3편 “공사판”
- 인기척도 없는 새벽, 수현은 밀려드는 잠을 밀쳐내고 새벽을 열어야 했다. 자취방에 나와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를 걸었다. 아침 대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하얀 연기가 수현을 몸을 돌고 돌아 다시 입으로 나왔다. 수현을 기다리는 봉고차가 멀리 보였다. “야, 뛰어” “네” 수현은 피우던 담배를 손에 쥐고 봉고차에 올랐다. 수현은 여름 내내 공사판에서 일했다. 조적 공 조수를 했다. 벽돌을 쌓으려면 시멘트가 필요하다. 수현은 여름 내내 시멘트와 모래를 비벼 조적 공에게 날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집합 장소에 나가면 봉고차가 수현을 실었다. 현장에 나가면 6시 그때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 일했다. 9시와 12시와 3시 새참과 점심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시멘트나 벽돌을 날랐다. 조공은 수현이 옮긴 벽돌로 벽을 만들고 담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수현은 오차 없이 올라가는 벽돌이 신기했다. 벽돌과 시멘트처럼 “ 시간이 가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자기도 시간이 지나면 더 친밀해지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현장은 오후가 되면 30도가 넘었다. 공사장 안으로 뜨거운 사우나 한증막처럼 변했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런 날씨라도 집회를 하고 있다면 신이 날 수현이었지만 오전 내내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더 이상 수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른 송장 같은 몰골을 한 수현은 점심을 먹고 나면 현장 아무 곳에서나 쓰러져 잠을 잤다. 이렇게 낮잠이라도 자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수현은 손은 시멘트 독이 올라 매일 밤 가려웠다. 40장씩 벽돌 지게를 지어 옮기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게로 모래를 퍼 날랐다. 이런 날은 일당이 조금 더 받았다. 매일 매일 허리와 다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하면 하루 일당이 4만 원에서 6만이었다. 적은 돈이 아니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하루도 쉴 수 없었다. 매일 매일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저녁에 버스를 타면 수현의 몸에서는 쉰내가 났고 땀을 절은 바지는 단단하게 굳었다. 창피했지만 수현은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 대부분 50~60대였다. 저분들이 평생 하는 일인데 한두 달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하다 보면 익숙해져. 나도 처음엔 정말 힘들더라.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 처자식과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뭐 그러다 보니 30년이네!…. 함께 일하던 김 씨 아저씨는 수현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학생은 끝나면 대학생이고 졸업하면 이런 일은 안 할 것 아니여… 수현은 여름 내내 땀과 시멘트 냄새로 시큼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수현은 버텼다. 두 달간의 노동일이 끝나고 수현은 학교에 돌아갔을 때 노동에서 해방된 기쁨을 느꼈다. 노동해방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임금과 안전하고 노동법이 지켜지는 노동 현장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노동 자체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일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수현은 하고 있었다. 이렇게 힘든 것이 노동인데 일도 하지 않고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다. 돈을 가졌다는 이유로 불로소득을 얻어 편하게 사는 사람들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평생 노예처럼 힘든 일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이런 잘못된 세상은 바꿔야 해….” 같은 노동 시간이라면 같은 소득을 버는 것은 정당하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차별할 수 없다. 의사와 노동자가 8시간을 일했다면 같은 수입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수현의 생각이었다.
-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
참교육 키즈의 생애 3편 “공사판”
-
-
지리산 첫눈 소식
- 「섬진강 편지」 - 지리산 첫 눈 소식 여기저기 눈소식입니다. 지리산에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첫눈이 왔습니다. 눈은 소통의 메신저입니다. 영문자판에 한글로 '눈'을 쳐보세요. 'SNS'입니다. 소원했던 친구에게 첫눈을 핑계로 전화를 해봐야겠습니다. 눈이 오면 누나가 많이 생깁니다. 설악산 눈 와? 전화를 하면 설악산 누나가 생기고 대둔산 눈 와? 전화를 하면 대둔산 누나가 생깁니다. 새롭게 태어난 하얀 세상, 첫눈 소식을 전합시다. 아침 일찍 노고단에 올라 첫눈을 맞이했습니다. 어렵게 올랐는데 살을 에는 칼바람에 20분을 못 견디고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자연 앞에 겸손하라! 새삼 깨달으면 지리산길 설설 기어 내려온 첫눈 오는 날이었습니다. -섬진강 / 김인호
-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
지리산 첫눈 소식
-
-
인생의 가장 큰 죄
- 인생의 가장 큰 죄 오래 전 일본의 명상 컨퍼런스에 다녀왔는데 그것은 아난다마르가 출가 수행자인 칫 따란잔 아난다와(칫 다다지)의 인연 때문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인도의 아쉬람 여행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국제 명상 컨퍼런스, 그리고 홍콩의 아시아권 명상 행사 등을 다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명상이라기보다는 명상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해외여행 하는 기분으로 따라다녔을 뿐이다. 칫 다다지는 한국 사람인데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경제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경제학자였다. 그리고 귀국하여 이런저런 국영 연구소를 다니며 가정을 꾸리고 잘살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우연처럼 인도에 가서 출가 수행자가 되신 분이다. 인도의 아난다마르가 수행공동체에서 줄곧 수행하며 지금은 아난다마르가의 다다(스승)의 단계에 올라 세계를 떠도는 지구인으로 현재는 주로 중국의 충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가난하다. 단체로부터 생활비를 따로 받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늘 밝고 긍정적이며 아무런 걱정 없이 나름의 일만 열심히 한다. 그 나름의 일은 사람들이 명상을 통해 스스로 개체의식을 밝히도록 도와주고 사회의식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난다마르가 사상과 철학의 핵심인 네오휴머니즘과 프라우트 사회를 실현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생명평화결사에서 일할 때 이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며 스스로 찾아온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인도에 있다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난다마르가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생명평화결사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나는 그를 통해 한 생을 살며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근본 문제를 구체적 일상과 일치시키며 살아야 한다는 배움을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자기완성을 위한 명상과 같은 구도행은 개인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실천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밥 먹고 일하며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반복적인 하루 일상도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그는 살면서 별난 하루가 아니더라도 매 순간 감동과 감격 속에서 일상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 매 순간 감동과 감격으로 이어지는 일상이라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그에게 명상을 배우며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걸러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겨우 현실적 에고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영역에 대한 그리움이 생겼다. 그리고 이 영역을 꾸준히 넓히고 다지는 것이 어쩌면 매우 중요한 일이고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당시 어떤 책을 읽으며 ‘인생의 가장 큰 죄는 인생을 낭비하는 죄다.’라는 구절이 뇌리에 깊이 박혀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낭비인지, 무엇이 낭비가 아닌지도 잘 모르면서 우선 최선을 다해 명상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길을 나서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고 가는 것이 당연한데, 하물며 인생길을 가며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칫 다다지를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선명해지고 구체화 되었다. 그리고 ‘어디로’나 ‘어떻게’의 정답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구나 똑같은 길을 갈 수는 없을 테니까. 다만 본질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 얼마나 충실하게 자기 현실을 소화하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일상은 중요한 현실이지만 쉽게 그 속에 묻히게 되는 자신의 한계를 항상 조망하고 콘트롤할 수 있는 어떤 힘 또한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칫 다다지에게는 그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명상을 배우며 마음속으로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세속의 예를 다하려 애썼다. 그는 수행이 깊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다정하며 누구에게나 격이 없고 매우 친절했다. 나는 그와 친구처럼 부담 없이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가 이 짧은 생에 친구이고 스승이 되어 함께 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무엇보다 인생의 가장 큰 죄를 짓고 싶지 않았다. (박두규. 시인.)
-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
인생의 가장 큰 죄
-
-
완벽한 당신
- 완벽한 당신 역사는 대부분 권력과 부와 사랑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행복이 그곳에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권력은 폭력이고 부는 탐욕이며 사랑은 치유와 정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람마다 또 다를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변화와 흐름 속에서 한목숨 살아내기 위해 자신에 그리고 자신의 현실에 매몰되어 사는 날이 많다 보니 똑같은 경험을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늘 상대방과 그 상대가 처한 현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서로 오해가 생기고 갈등과 반목의 관계가 만들어져 살아온 것이다. 개인은 물론 가정과 가정, 국가와 국가, 나아가 인간과 자연까지도 말하자면 상대에게 마음을 쓸만한 여유도 없이 우선 바쁘게 나만 챙기며 살아온 것이다. 말은 늘 이해한다고 사랑한다고 우리는 하나라고 하면서 진정으로 그러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든 자신이 모르는 것은 일단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대부분 사람이 자신이 아는 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박사나 학자라 하더라도 한 인간이 아는 것이라고는 우주라는 실제 공간의 실제 현실에 비추어 보면 허공의 먼지만큼이나 사소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것이 옳건 그르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고, 그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산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니 어쩌면 그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에고 의식에 매몰되어 사는 것을 불가에서는 치(痴),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세상의 실상, 그 실재(實在)를 살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 사물과 그 이치를 바로 보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편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내가 생각한 것이고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이니 나는 그냥 이렇게 살겠다고 한다. 나아가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의 우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생명을 하나의 우주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가치를 가지며 완벽한 존재라는 의미와 닿아 있는 말이다. 덧붙이면 현실은 전도몽상의 어리석음에 있지만 본래 성품은 그렇지 않고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군 때부터 삶의 목표로 성통공완(性通功完)을 이야기해 온 것 같다. 본래면목을 꿰뚫어 알아 세상에 공덕을 쌓는 것이 삶의 완성이라는 말로 읽힌다. 붓다도 모든 사람은 다 부처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런 결과적 발언이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은, 어렵기 짝이 없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듯이 이런 경지는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쩌다 제정신이 돌아와 잠깐 그런 상황을 수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성자들의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겸손을 말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삶의 모두라고 앞세우는 순간 그것은 이미 어리석음의 대열에 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라 이런 어리석은 자신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 하니 겸손이야말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겸손의 자리는 상대방이 완벽한 존재라는 그 본성을 보고 받아들일 때 자연히 생긴다고 한다. 이러한 겸손의 경지를 몸이 알아서 할 때 소위 우주적 관점에서의 완벽한 당신, 완벽한 상황이라는 그 무엇을 우리는 겨우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본래 완벽한 존재이고 그 존재가 사는 현실이 완벽한 상황이라는 것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으려면 겸손을 바르게 알고 또 언제나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은 어떤 상황이라도 완벽하다./ 오늘밤 떠들며 술 마시는 내가/ 내일 아침 졸지에 이승을 떠난다 해도/ 사실은 완벽한 상황인 거지./ 꽃망울 주렁주렁 올라온 어느 봄날/ 느닷없는 눈사태가 설중매를 만들 듯/ 그래, 그런 거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필연이고/ 세상살이가 이토록 처연하다 해도/ 사실은 완벽한 상황인 거지./ 이 완벽한 나, 완벽한 현실을/ 늘 아니라고, 아니라고 불평하는 것도/ 사실은 완벽한 것이지. (졸시 「완벽한 당신」 전문)
-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
완벽한 당신
-
-
숲에 들어가는 나이
- 숲에 들어가는 나이 나는 좀 우울했다. 한 달만 넘기면 어느덧 50수에 이른다고 생각하니 살아온 세월이 되짚어지면서 나의‘미래’라는 것도 이내 곧 바닥이 날 것만 같은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이었다. 아직도 내 어느 구석엔 무수한 날들의 까마득한 미래가 있고, 밤 새워 술 마시고 노래할 수 있는 20대의 열정과 치기도 다 빠져나가지 않았는데 50이라는 숫자에 의해 나는 갑자기 노인의 대열에 들어 벼랑 끝으로 내몰린 듯하였다. 12월의 하루하루가 결코 상쾌하지 않았다. 이 답답한 중압감에서 벗어날 무엇이 없나 하는 차에 지인으로부터 단식하러 가자는 전화가 왔다.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장소는 제주도라 했는데 돈 들여 따로 관광도 할런지라 오랜 술로 찌든 속도 좀 다스릴 겸, 또 다가오는 50수의 중압감도 날려 보낼 겸, 마음은 어쩔망정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주행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갑판에서 쌩쌩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옷을 잔뜩 껴입어서 그런지 춥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났으나 그렇다고 무슨 상념에 잠길 것도 없이 한참을 그저 멍멍하게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를 건넜다. 추자도를 지나니 멀리 한라산의 하얀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망망대해에 멀리 한 점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자 비로소 현실감에 몸이 가늘게 떨렸다. 제주로 향하는 나의 현재가 구체적 감각으로 다가왔다. 제주에 닿기 전에 무엇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니 제주단식이 생의 한 획을 그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설렘이 내 안에서 일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5일 단식 기간 내내 나의 화두는 50이라는 숫자였다. 인도에서는 50대와 60대 정도의 나이를 ‘바나플러스’라고 했다. 그 말은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뜻인데 나이 50이 되면 숲에 들어 명상을 해야 하는 나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20대 정도까지가 세상에 나갈 공부를 하는 기간이라면 3,40대 정도가 세상에 나와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기간이고 5,60대 정도가 세속의 부와 명예 등 그동안 쌓은 것들을 다 버리고 숲에 들어 명상을 하는 나이였다. 이후는 숲에서 나와 죽을 때까지 세상을 떠도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단식에서 나는 무슨 특별한 깨우침을 얻거나 삶이 달라졌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특별한 사건이라면 다만 스승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단식의 방장 어른으로 참여하여 같이 단식을 하셨는데 나의 단식은 오로지 그분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생님은 단식 기간 내내 그냥 조용히 우리 모두의 흐름을 타고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식 기간 중에 특별한 좋은 말씀이라거나 감동적인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별다른 말씀도 없이 조용히 우리와 함께 흐름을 타고 계실 뿐이었는데 선생님과 같이 있는 동안에 나는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많은 감화 감동이 내 안에서 저절로 일었다. 이 특이한 체험은 나를 내내 긴장시켰고, 나의 심란했던 50수를 설렘으로 맞을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선생님 같은 분이 바로‘숲의 세월’을 보낸 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50수를 맞는 단식을 통해 일단은 숲에 들어야 하는 나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퇴계를 읽으면서 그도 학생기와 출세기를 거쳐 50세에 관직을 스스로 그만두고(임금이 강하게 말렸으나 끝내 도망간다) 도산서원이라는‘숲’에 들어가 심경(心經)에 몰입했으니, 처지와 상황은 다르지만 세상에서 사는 동안 쌓았던 권력과 영화를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만은 확실했다. 나도 숲에 들고 싶었다. 그리고 퇴계가 그랬듯 나의 현실에서‘숲’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귀촌하여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숲’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인들은 시인이‘숲’에 들면 어떻게 저자거리의 번뇌와 갈등을 시에 담을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했지만 나는 그동안 키워온 무절제의 욕망과 그렇게 굳은 일상의 습(習)을 도려내고 싶은 것뿐이었다.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내면의 간절함이 있었고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내 안에서 주먹처럼 올라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문학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문학을 좇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실 숲에 드는 일은 단순히 세속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나’라는 에고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맞이하기 위한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에 다름 아니며 생명이 가지는 우주적 균형감각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50고개를 넘으며 숲에 들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내면의 소리를 맞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숲에 들어 몸과 정신과 영혼까지도 자본에 절어 있는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박두규. 시인.) ▣ 이 글은 산문집「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2017년 간행)에 수록된 것입니다.
-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
숲에 들어가는 나이
실시간 지리산문화 기사
-
-
너를 부른다
- 너를 부른다 - 김 현 주 봄꽃들이 십일월에 피어올랐다 봄인 줄 알고 꽃망울 피어올린 처연한 것들 봄꽃이라 부르랴 겨울꽃이라 부르랴 내일이면 콧등 시린 바람 분다는데 찬서리 내려앉은 여린 꽃은 어디로 가야 하나 피자마자 지는 것도 물들지 못하고 투둑 떨어지는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피어나지 못한 채 져버린* 만19세 청년 윤슬 위로 흘러가는 네 어미 울음소리에 따순 십일월 햇살 받아 피어오른게지 이렇게라도 다시 한번 피어나고 싶어 네 어미 눈썹 닯은 자귀꽃으로 피어난게지 * 2024년 6월 16일 전주페이페에서 일하던만 19세 청년노동자가 입사한지 6개월만에 사망했다. 그는 순천 모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현주┃길문학회 동인, 순천작가회의 회원, 저서 「구술생애사 ‘조곡동 철도관사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1.2」, 「마을의가치, 학교와같이(공저)」가 있다. 청소년노동인권활동가이자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이다. 현재는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소장이다. one61@hanmail.net
-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
너를 부른다
-
-
섬진강 설경
- 「섬진강 편지」 -섬진강 설경 남원 부절리 소나무 숲을 보고 섬진강을 거슬러 임실 진메마을까지 다녀왔다. 구담마을에서 장구목 길이 눈이 쌓여 차는 자꾸 미끄러지고 금방 날이 어두워진다. 쏟아지는 눈 속에 고립되어 하룻밤은 장구목가든에서 머물러도 좋겠다 싶었는데 사륜애마는 ‘뻘생각 말라'는 듯 어두워지는 언덕길을 박차고 올라선다. 순창을 지나 남원에 접어드니 눈발이 잦아들었다. 오늘은 섬진강 상류구간인 임실 붕어섬과 진안 데미샘까지 설경을 담고 싶었는데 순창지역 기온이 영하 15도가 넘어 엄두가 나지 않아 나사질 못했다. 한파에 가출해서 밤내 들어오지 않고 애태우던 냥이가 정 때가 지나서야 슬며시 나타나 얄밉게 밥그릇을 두들긴다. 어젯밤을 장구목에서 하룻밤 묵고 왔더라면 나도 냥이와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갈 뻔했다. -섬진강 / 김인호 -남원 부절리 솔숲 -진메 가는 길 -진메 징검다리 -구담마을 돌다리 -구담마을 -장구목 -요강바위 -장구목 -진메마을 -진메에서 천담마을 가는 길 -진메마을 -구담마을 파노라마
-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
섬진강 설경
-
-
참교육 키즈의 생애 4편 "우리는 무슨 사이"
- 9월이 왔다. 뜨거운 더위가 살짝 물러섰다. 신입생들의 얼굴엔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에 돌아갔을 때 나경은 수현을 만났다. 나경이 먼저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그동안 잘 지냈어 “너 대학생 되더니 엄청 멋있어졌다.” “너 나 찾으러 우리 과에 왔다면서. 친구들에게 들었어" "네. 수현은 짧게 대답했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선배” “어…. 나. 그냥 잠시 쉬었어.” “몸도 안 좋고....." 나경은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방황했다. 같은 과 운동권 선배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다시 그 선배와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다행히 그 선배가 가을에 졸업했다. 나경은 다시 돌아왔다. 나경과 수현은 이후 자주 만났다. 연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경은 술을 마실 때 수현을 불렀다. 수현은 나경이 부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나경을 만나러 갔고, 수현이 만나자고 하면 나경도 그랬다. 우리 무슨 사이죠? 라고 나경에게 수현이 물었을 때 나경은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 수현은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관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수현이 좋았지만, 세살이나 어린 수현에게 먼저 고백할 수는 없었다. 벚나무의 잎들이 갈색으로 물들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풍이 점점 진하게 물들었다. 교정의 학생들은 따뜻한 햇살을 찾아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풋풋했던 신입생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처럼 보였다. 학생들이 방학으로 교정은 텅 비었다. 텅 빈 교정엔 눈이 내렸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왔다. 수현은 겨울 방학 내게 다시 현장에서 일했다. 더운 여름보다 겨울이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은 더 힘들었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현장에 나가면 손발이 꽁꽁 얼었다. 그럴 때면 페인트 깡통에 버려진 나무를 태워 언 발과 손을 녹였다. 연일 영하 10도가 넘나드는 추운 날이 이어졌다. 여름보다 더 힘들었다. 겨울에 수현은 고층 아파트 현장에서 일했다. 현장은 나름대로 체계가 있었다. 수현이 맞은 일은 일명 직영 잡부였다. 여기저기 청소일을 하거나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일이었다. 겨울에 시멘트 양성을 하기 위해 석탄을 가져와 불을 지피는 일도 수현이 해야 할 일이었다. 콘크리트 작업을 한 당일엔 온종일 불을 피워야 했다. 그 날은 야간이나 철야 일도 했다. 그런 날은 기본 일당에 야근 수당에 철야 수당까지 합쳐서 하루 10만 원이 넘었다. 수현을 야간 일이 있을 때마다 지원했다. 학비도 벌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나마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함바집은 밥 맛이 좋았다. 마음껏 먹어도 되었고 함바집 박씨 아주머니를 수현을 아들 같다면 특별하게 달걀부침을 더 챙겨 주기도 했다. ”젊은 학생이 고생하는구먼…. 울 아들은 지금 군대 갔는데…. “강원도는 여기보다 엄청 춥겠지?“ ” 아드님이 강원도에서 있어요. 거긴 여기보다 5~6도는 더 내려갈걸요?“ ”학생은 군대 안 가나.?“”저는 졸업 하고 가려고요. "아이고. 하루라도 젊었을 때 가야 고생을 덜 하는데….” “그러게요. 세상이 저를 놓아주지를 않네요.” “근데 아주머니 아들은 몇 살이에요? “21살…. 인데…. 아,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아…. 그려.” 그 후로 아들과 동갑이라며 아주머니는 수현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학생 일 적당히 해” 직영 일은 적당히 해도 돼…. 뭐 반장이 맨날 쳐다보는 것 도 아니고…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네. 아주머니 고마워요.” 수현은 아주머니의 아들이 같은 또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혹시 같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직영이 하는 일은 매일 매일 바뀌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해도 철근 반이나 조적이나 목수들은 일당이 2~3배는 되었는데 직영일을 하는 사람 일당이 가장 작았다. 아무 기술도 없는 수현 같은 학생들이나 기술 없이 다른 일을 전전 하다가 현장 일을 나온 사람들이 불려 오는 일이었다. 현장에서도 가장 낮은 일자리였다. 그해 겨울 방학 내내 수현은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파트 준공일이 얼마 남지 않아 현장은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2월 중순이 넘어가자, 아파트 현장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수현의 길고 긴 노동일도 끝이 나고 있었다. 나경은 현장에서 일하던 수현을 찾아왔다. 일이 끝나고 수현과 나경은 밤거리를 걸었다. “수현아, 꼭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해…” “손이 이게 뭐야….”“꽁꽁 얼고 튼 수현의 손을 잡았다.” "정 힘들면 이 누나에게 이야기해. 내가 좀 도와 줄 수도 있는데…. 수현은 별말 없이 걸었다. “선배처럼 부잣집 사람들은 우리 같은 가난한 빈민 출신들의 마음을 몰라요.” “전 빈민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라고요. 가진 것도 없고요.” 둘은 함바집으로 행했다. 아주머니 여기 밥 하나 더 주실 수 있죠? 그래. 누구야? 학생 애인인가? “네” “제 여자 친구예요?” “예쁘죠?” “수현아…. 여자 친구는….” “아이고 수현 학생 여자 친구가 왔으니, 오늘은 달걀부침 네 개는 해줘야겠네” “수현이 같은 착실한 남자를 어찌 알아봤을까?” 나경은 수현이 자신을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둘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이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함께 할 수 없을 거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선배 방학 끝나고 봐요!” 나경은 수현과 커피 한잔을 하고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경은 단 한 번도 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경에게 돈은 흔하고 편한 것이었다. 자신이 사는 큰 집과 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수현은 온종일 일을 하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더 고민하기는 싫었다. 나경과 수현은 역까지 걸었다. 찬바람이 둘 사이를 갈라놓듯이 불었다. 수현은 나경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나경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얼어붙은 수현의 손을 자신의 코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웠다. 둘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20분쯤 걸었을 때 역이 보였다. 역 앞에는 오래전 역 앞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 이용했을 것 같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봉봉, 박카스 같은 선물 상자들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경은 저 안에 물건이 들어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빈 껍데기겠지…. 나경은 자신이 저 빈 상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권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도 아니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자신이 먼지에 싸여 있는 빈 상자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서울행 기차가 도착하겠습니다" 안내 멘트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경은 서둘러 기차를 타기 위애 달려갔다. 수현이 손짓이 보였다. 잘 있어…. 수현아….
-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
참교육 키즈의 생애 4편 "우리는 무슨 사이"
-
-
2025년 새아침
- '지리산 그림순례'를 연재하고 계신 이호신화백의 새아침 인사 올립니다.
-
- 지리산문화
- 이호신화백의 지리산 그림 순례
-
2025년 새아침
-
-
새 아침
- 「섬진강 편지」 - 새 아침 어지러운 꿈 조각들을 털어내고 새벽에 일어나 몸을 씻는다. 아이들아, 어서 일어나 떠오르는 새해를 맞이하자 지리산 능선 뻗어 내리는 맑은빛 깨어나는 섬진강 푸른빛을 담아 새봄을 준비하자 여느 봄이 아니라 삿된 기운들 걷어내고 새 맘으로 땅을 갈아엎어 새 씨를 뿌리는 새봄을 준비하자 아이들아, 어서 나아가 떠오르는 새해를 맞이하자.
-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
새 아침
-
-
구들방과 따오기 생각
- 「섬진강 편지」 - 구들방과 따오기 생각 동짓날 산청성심원에서 ‘2024 지리산사람들 이야기 자리’, ‘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회’ 1박2일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구들방이 얼음장처럼 싸늘하다. 웬만큼 불을 때서는 방이 뎁혀질 것 같지 않다. 장작을 좀 더 밀어 넣고 불 앞에서 생각한다. 사람의 관계도 영락없다. 영원할 것 같던 사이가 작은 오해로 소원해지고 내버려두니 그만 싸늘해지고 말았다. 다시 사이를 뎁혀보자 마음 내보지만 예전 같지 않다. 구들방이나 사람이나 온기가 식지 않도록 꾸준히 군불을 때야 쓸일이다. 지난주에는 빚을 하나 갚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볍다. 최근에 펴낸 ‘나를 살린 풍경들’ 책표지 추천글을 써준 복효근시인에게 어떻게든 글빚을 갚아야겠는데 시간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남원 운봉에 날아온 따오기 이야기에 마음이 맞아서 함께 운봉에 가 따오기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까지 이어졌다. 따오기가 내 글빚을 갚아주기 위해 먼먼 시간으로부터 날아와 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릴 적 동산 너머 학교를 함께 다녔던 금옥이, 정옥이, 병옥이 .. 산골마을 친구들 이름 옥이 같은 따오기! 날개를 펼쳐 꿈속 저편에서 날아와 꿈속 이편으로 날아가며 마법처럼 핑크빛 세상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새, 따옥따옥 따오기야! 메리크리스마스!! #따오기 #구들방 #복효근시인 #글빚
-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
구들방과 따오기 생각
-
-
지리산 품에 너를
- 「섬진강 편지」 - 지리산 품에 너를 오늘 노고단길은 특별하다. 실연 아픔을 안고 지리산을 찾은 조카와 함께 새벽 노고단 길을 올랐다. 동편 하늘 구름이 많아 붉덩이 일출은 만나지 못했지만 날은 차고 맑아 무등산 지척이고 남해바다 지척이여 손을 내밀면 가 닿을 것 같은 날이다. 골골 안개 어려 산그리메 고운 날이다. 겨울날 같지 않게 바람도 많지 않아 노고할미 곁에 서서 오래도록 섬진강을 바라본다. 저기 천왕봉, 저기 반야봉, 저기 무등산 가리키는 곳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는 조카의 얼굴도 환해진다. 그래 잘했다. 지리산 품으로 달려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고단한 짐 다 부려놓고 한 사흘 지리산 품에 너를 맡겨 보거라. -섬진강 / 김인호
-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
지리산 품에 너를
-
-
참교육 키즈의 생애 3편 “공사판”
- 인기척도 없는 새벽, 수현은 밀려드는 잠을 밀쳐내고 새벽을 열어야 했다. 자취방에 나와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를 걸었다. 아침 대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하얀 연기가 수현을 몸을 돌고 돌아 다시 입으로 나왔다. 수현을 기다리는 봉고차가 멀리 보였다. “야, 뛰어” “네” 수현은 피우던 담배를 손에 쥐고 봉고차에 올랐다. 수현은 여름 내내 공사판에서 일했다. 조적 공 조수를 했다. 벽돌을 쌓으려면 시멘트가 필요하다. 수현은 여름 내내 시멘트와 모래를 비벼 조적 공에게 날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집합 장소에 나가면 봉고차가 수현을 실었다. 현장에 나가면 6시 그때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 일했다. 9시와 12시와 3시 새참과 점심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시멘트나 벽돌을 날랐다. 조공은 수현이 옮긴 벽돌로 벽을 만들고 담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수현은 오차 없이 올라가는 벽돌이 신기했다. 벽돌과 시멘트처럼 “ 시간이 가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자기도 시간이 지나면 더 친밀해지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현장은 오후가 되면 30도가 넘었다. 공사장 안으로 뜨거운 사우나 한증막처럼 변했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런 날씨라도 집회를 하고 있다면 신이 날 수현이었지만 오전 내내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더 이상 수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른 송장 같은 몰골을 한 수현은 점심을 먹고 나면 현장 아무 곳에서나 쓰러져 잠을 잤다. 이렇게 낮잠이라도 자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수현은 손은 시멘트 독이 올라 매일 밤 가려웠다. 40장씩 벽돌 지게를 지어 옮기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게로 모래를 퍼 날랐다. 이런 날은 일당이 조금 더 받았다. 매일 매일 허리와 다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하면 하루 일당이 4만 원에서 6만이었다. 적은 돈이 아니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하루도 쉴 수 없었다. 매일 매일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저녁에 버스를 타면 수현의 몸에서는 쉰내가 났고 땀을 절은 바지는 단단하게 굳었다. 창피했지만 수현은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 대부분 50~60대였다. 저분들이 평생 하는 일인데 한두 달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하다 보면 익숙해져. 나도 처음엔 정말 힘들더라.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 처자식과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뭐 그러다 보니 30년이네!…. 함께 일하던 김 씨 아저씨는 수현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학생은 끝나면 대학생이고 졸업하면 이런 일은 안 할 것 아니여… 수현은 여름 내내 땀과 시멘트 냄새로 시큼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수현은 버텼다. 두 달간의 노동일이 끝나고 수현은 학교에 돌아갔을 때 노동에서 해방된 기쁨을 느꼈다. 노동해방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임금과 안전하고 노동법이 지켜지는 노동 현장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노동 자체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일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수현은 하고 있었다. 이렇게 힘든 것이 노동인데 일도 하지 않고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다. 돈을 가졌다는 이유로 불로소득을 얻어 편하게 사는 사람들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평생 노예처럼 힘든 일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이런 잘못된 세상은 바꿔야 해….” 같은 노동 시간이라면 같은 소득을 버는 것은 정당하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차별할 수 없다. 의사와 노동자가 8시간을 일했다면 같은 수입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수현의 생각이었다.
-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
참교육 키즈의 생애 3편 “공사판”
-
-
금대암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 함양의 겨울그림 <금대암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을 올립니다. 지리산-인에 연재하는 '이호신 화백의 지리산 그림 순례'가 어느새 4년이 지났네요. 하동, 구례, 남원, 함양에 이어 내년 산청편 사계그림을 마치면 계획한 지리산 5개 지역을 완결합니다. 2025년에 산청편 사계 그림으로 뵙겠습니다. - 이호신 삼가 - 이호신/금대암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70x275cm 2024, 부분1 - 이호신/금대암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70x275cm 2024, 부분2 -이호신 / 함양 금대암에서 59x72cm, 2011년 -이호신 / 금대암과 지리산 천왕봉 스케치
-
- 지리산문화
-
금대암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
-
은행나무 아래서
- 은행나무 아래서 조 영 옥 가장 찬란란 모습으로 제 몸을 던지는 은행나무 아래서 한 잎 두 잎 허공 중의 은행잎과 작별을 했다 가야할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소멸 속에서 생명을 얻는 자 생명을 통해 소멸에 이르는 자 세상은 둘이라 생각했다 오래토록 그렇게 서 있었다 세상은 어두워지고 문득 고개를 들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영겁의 길 이별은 서로가 하나가 되는 것 만남은 그대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렇듯 은행잎과 내가 다르지 않아 은행나무 아래서 나도 나무가 되었다 ---------------------------------------------------------------- 조영옥 시인은 지난달에(2024. 11.) 돌아가셨다. 나는 그녀와 전교조 동지로, 생명평화결사 도반으로, 같이 시를 쓰는 글벗으로, 한 생을 같이 해왔다. 언제나 가엽고 약한 자 편에 서서 세상일을 앞서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 모두의 귀감이 되었다. 오래된 시지만 그녀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그녀를 돌아보게 하는 시다.
-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
은행나무 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