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1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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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잎의 겸손
    풀잎의 겸손 한세상 살면서 훌륭한 참스승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 보면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다. 아직도 살아계시는 세 분의 스승이 계시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일방적인 외사랑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내치지는 않으니 고마울 뿐이다. 이 세 분은 살아오며 인연을 맺은 후 마음속으로 늘 본받고 배우고자 애썼던 분들이고 지금도 그러하다. 교사로 지내던 때에 만났던 정해숙 선생님, 자기완성을 위한 수행 과정에서 만났던 칫따란잔아난다 다다지, 그리고 자기 수행과 사회적 실천이라는 삶의 균형감을 가르쳐주신 도법스님이 그분들이다. 이 세 분의 스승 모두 겉으로 보여주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겸손이다. 그분들의 겸손은 사람들을 만나 그저 자신을 낮추는 그런 겸손이 아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그런 겸손도 아니다. 내 말을 아끼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그런 겸손도 아니며 위선과 가식이 먼지처럼 내려앉아 있는 겸손과는 다르다. 그분들의 겸손은 상대방이 없어도 스스로에게 하는 겸손이다. 자기 자신을 모시는 겸손이고 생명이 있는 것들과 없는 것들까지도 모두 모시는 겸손이다. 세상을 살며 누구에게나 삶의 상처처럼 얻게 되는 작은 가식과 위선까지도 벗어나 본래 모습 그대로 숨 쉬는 겸손이다. 평생을 수행자로 사시면서 저절로 그러하듯 생겨난 겸손이다. 청화스님이라고 계셨다. 불가 쪽에서는 살아계실 때 많은 사부대중이 따랐던 큰스님인데 정해숙 선생님은 이분을 스승으로 모셨다. 그 청화스님이 살아계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수행자가 겸손 빼놓으면 뭐 남는 게 있겠나’라고. 생각해 보니 그렇다. 정말 오랜 수행으로 내공이 깊어진 자의 겉모습에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다만 누가 보아도 그냥 평범하면서 겸손하게만 보일 것이다. 길가 어느 구석에 놓여 있는 돌멩이 같은 그런 평범과 겸손 말이다. 내가 마음속으로 모시는 세 분의 스승님들이 그렇다. 그분들은 삶 자체가 수행이기도 하신 분들이고 각자의 분야에서 높은 수행과 함께 세상일을 거침없이 해오신 분들이다. 그런 그분들의 겸손은 오랜 수행 속에서 얻은 ‘탈 에고(脫 ego)’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풀잎처럼 겸손하라’(Ánanda Vacanámrtam Part 9)는 말이 있다. 아난다마르가의 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설명이 없어도 느낌이 강하게 오는 아포리즘 구절이다. 나는 여기서 풀잎을 땅이라는 근원(본성, 진리)에 뿌리내리고 지상의 모든 것을 받아내는 존재로 읽었다. ‘풀잎처럼 겸손하라’는 그런 겸손을 말하며 그것은 결국 모든 수행자가 목표로 하는 탈 에고(脫 ego)의 그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안에서 에고를 지워내고 ‘참나’(true self)에 이르게 된다면 저절로 ‘풀잎처럼 겸손’해질 것이다. 청화스님은 아마도 이 ‘풀잎의 겸손’에 닿은 수행을 이루셨을 것이다. 처음 명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비속(非俗)이나 비범(非凡)의 무엇을, 어떤 성취를 꿈꾸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니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된 생각이다. 그것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끝없이 생겨나는 집착과 그 에고(ego)를 지우는 일이고, 한 생을 살며 매일 군살처럼 달라붙는 위선의 껍질을 벗겨내는 일이며 풀잎처럼 근본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바로 스승들의 그 겸손에 이르는 일이다.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5-05-15
  • 지리산 모데미풀 숙제
    지리산 모데미풀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5-05-09
  • 참교육 키즈의 생애 15편 "겨울 역"
    기차가 멈추었다. 나경은 기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세 시간 내내 수현을 생각했다. 얼마나 변했을까? 결혼은 했을까? 내가 다시 수현을 만나도 되는 것일까? 고 등학생이었던 수현을 만나던 날, 그리고 수현이 학생운동에 빠지고 교도소까지 가고 난 이후에 도망치듯 떠난 자신이 다시 수현을 만나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수현을 만나도 될까? 다시 수현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나경은 자신이 아픈 아이가 있고, 이혼을 했고, 나이가 많고, 수현을 다시 만나면 수현을 사랑해 버릴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역안에서 서성이는 수현을 봤다. 검은색 롱코트에 잘 다려진 바지, 어디에 있어도 큰 키 때문에 한 눈에 찾을 수 있는 수현이 역 안에 있었다. 나경은 잠시 일어 섰다가 주저 앉았다. 수현은 기차가 떠나고 한 참을 역앞에서 기다렸다. 나경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수현은 역을 빠져 나왔다. 겨울 해는 짧게 머물다 서편으로 떠났다. 수현은 나경이 기차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경이 일어섰다가 다시 주저 앉는 것을 봤다. 수현은 나경이 탄 기차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나경을 만나면 나경을 사랑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한 나경을 사랑 할 수는 없었다. 수현은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옷가게 앞을 지날 때 현주가 나왔다. 수현아.. 어.. 현주야.. 잘 차려입고 어디 선이라도 보러 가나 했는데 왜 이렇게 빨리와? 어. 그냥,.. 다음에 보자… 현주야 야.. 이 수 현… 잠깐만 …. “눈도 오고 오늘은 손님도 없을 것 같은데 나랑 밥이나 함께 먹자.” 야. 기다려.. 네가 오늘 매상도 올려주고 내가 초등 동창에게 옷 판 기념으로다 밥한끼 사줄께. 너 집에 가야 함께 밥 먹을 사람도 없잖아… 어… 그 그래.... 눈도 오는데. 현주는 수현을 잡아 끌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읍에 가장 번화가 이층에 자리잡은 바나나숲이라는 경향식 집이었다. 수현은 여기서 나경과 만난 적이 있었다. 오래전 수현이 겨울에 아파트 잡부일을 하고 있을 때 나경과 함께 차를 마시러 왔던 곳이었다. 현주는 창문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나경과 함께 앉았던 곳이었다. 현주는 오래전 자신이 수현을 짝사랑하던 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때 시작한 짝사랑은 수현이 교도소에 갔다는 소문이 났을 때도 여전해었다. 수현이 학생운동을 하다가 교도소에 갔다면 그럴만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현주는 생각했다. 현주는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둘은 초등학교 친구들을 하나씩 이야기 하며 이야기 했다. 수현은 이런 이야기를 처음 해봤다. 기억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수현은 모두 잊고 살았다. 지난 10년간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농사를 짓고 수확하고 노무사 시험에 떨어졌고 그것이 다였다. 지숙을 만났지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고 나경을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고향에 친구들이 있었지만 찾지 않았고 찾아와도 인사만 했을 뿐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현주를 만났고 오래전 친구들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수현은 오랜만에 취했다. 현주는 취한 수현을 모텔에 데려갔다. 현주는 수현과 함께 잤다. 수현이 일어 났을 때 현주가 속옷만 입은 채 옆에 누워 있었다. 수현은 코트에서 담배를 꺼냈다. “수현아 일어 났어?’ “어" “어제 무슨일이… 수현은 더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무슨일이 있었냐고 묻는 것은 현주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주는 어색하게 수현을 바라보면 웃었다. “어제 아무일도 없었어. 수현아” 너랑나랑 취해서 여기서 잤을 뿐이야. 그러니까 부담갖지마…. 현주는 그렇게 서둘러 옷을 입고 모텔을 빠져 나갔다. 수현은 모텔방에서 두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래전 나경이 떠나던 밤이 생각 났다. 그 때 수현은 나경을 붙잡지 못했다. 나경이 수현의 손을 잡아 가슴에 올렸을 때 수현은 모르는 척 몸을 돌렸고 그 날 나경은 떠났다. 그때는 잠든 척했고 어제는 잠들었다.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어젯밤 일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수현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경은 기차를 타고 여수까지 갔다. 도착하니 밤이었다. 여수의 밤은 도쿄의 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도쿄에서 지치고 힘들때 오다이바에 해변을 걸었다. 이국적인 건물들이 즐비한 오다이바의 해변에서 나경은 오래전 수현과 걸었던 부산의 바다를 생각했다. 수현과 함께 걸었던 부산의 바다도 이 바다와 연결 되어 있으므로 수현과 자신이 아직은 연결 되어 있다고 나경은 스스로 만족했다. 나경이 역에서 나왔을 때 여수의 바다는 평화로웠다. “혼자 여행을 떠난 것이 언제였을까”라는 생각이들었다. 나경이 혼자 여행을 떠난 것은 아이를 낳고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온 집에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있었고 나경의 아이는 한국에 돌아온 후 그전에 비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스스로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갔다. 나경은 이만큼만 해도 아이가 다른 아이와 비슷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일들을 하나씩 해결 하는 것이 발달장애를 가진 나경의 아이가 해야하는 유일한 공부였다. 다른 아이들이 달릴때 걸었고 다른 아이들이 말을 할 때 무무 윽 윽 소리만 냈던 아이였다. 이제 엄마…무.. 라고 이야기 했던 아이는 이제 엄마 물 이라고 말했다. 한 음절이 한 단어가 되었고 두 단어가 뭉쳐 말이 되었다.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가 정확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이제 주어와 목적어를 정확히 알았다. 이제 자신의 욕구를 손가락이 아니라 말로 설명 할 수 있었다. 나경은 자신의 아이가 세상 살이의 기본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가장 큰 도전이 되는 아이를 키우는 나경은 수현이 싸우려 했고 얻고자 했던 것들, 억압과 폭력, 독재, 민주주의, 평화, 인권같은 것들이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해결 하면 다른 문제가 있었고 또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튀어 나온다. 나경의 아이도 화장실에 가면 다음은 스스로 변을 해결해야 하고 변을 해결하면 스스로 목욕을, 목욕을 해결하면 스스로 또 무언가를 해야 할 때 마다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끝이 없는 싸움이었다. 끝이 없는 것은 해결 할 수 없다. 오직 타협하거나 모른척 하는 길 뿐이다. 나경은 여수의 밤바다에서 자신의 아이와 수현을 생각했다. 나경은 천천히 오동도를 향해 걷다 지숙이 생각났다. “지숙이 고향이 여수라고 했었지" 나경은 지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랜만 나… 나경이야. 아. 선배 잘사셨어요? 그래 나.. 여수에 있어. 잠깐 볼래? 아. 잠시만요. 오늘은 힘들고 내일 만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내일은 … 내가 안 될 것 같아.. 다시 돌아가야 하거든 어디로요 서울 서울에 사세요? 어.. 돌아왔어… 얼마 전에… 그래요. 그럼 잠시만요. 선배 지금 어디에요 여기 오동도.. 그럼 기다리세요. 제가 지금 나갈게요. 지숙은 오동도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경 선배는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 왔을까? 수현 선배가 생각나서 돌아왔을까? 지숙은 나경이 수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사랑했던 수현이 나경을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나경은 일본에 있었고 그것은 충분히 안전한 거리였다. 하지만 다시 서울로 나경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지숙은 나경이 신경쓰였다. 지숙은 왜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웃었다. 수현과 자신이 지금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것이 생각 났기 때문이다. 자신이 몇해전 수현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더 이상 수현을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 그래 이제 수현 선배와 나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미련은 없어… 아니 없어야 한다고 지숙은 생각했다. 나경은 지숙을 기다리며 수현 생각을 했다. 자신이 떠난 후 지숙과 만나는 수현을 생각 할 때 나경은 질투를 느꼈다. 자 신이 수현을 떠나왔지만 그녀는 결국 수현을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페에 앉아 있는 나경을 본 지숙은 나경이 예전의 모습 그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 선배는 여전히 예쁘구나” 선배 오랜만이에요. 그래 지숙아… 잘살지 네. 공무원 생활은 어때? 뭐 그냥 매일 똑같죠. 출근하고 퇴근하고 각종 민원에…. 그냥 그래요. 요즘은 여수 엑스포를 한다고 해서 엄청 바빠요. 네가 공무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 도 못했다. 갑자기 공무원은 왜 된거야? 나름 열혈투사께서.. 선배 저 놀리는 거죠. 전 열혈 투사인적 없었어요. 그냥 열심히들 투쟁 하니까 옆에서 도와준 거죠. 너.. 강진이 있던 써클에 있었잖아? 그러면서 수현이랑 사귀고.. 그러니까요. 지금 생각하면 저도 참 웃기죠. 수현선배 입장에서 보면 제가 웃겼을 것 같아요. 수현 선배는 강진 선배랑 방향이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너도 참.. .. 그러니까요. 하하…. 지나고 나니 별 것도 아니지만요. 나경 선배 그거 알아요. 뭘 강진 선배 아직도 학교에 있어요. 아직도..네. 뭐 학교에서 뭘 하시는지.. 수현은 뭐해? 수현 선배요. 모르세요. 수현 선배 고향에서 농사짓잖아요. 꽤 되었을걸요. 그래 나경은 어제 수현의 모습을 생각했다. 전혀 농부와 어울리지 않았다. 검은색 롱코트에 흰색 셔츠에 날선 바지까지…. 농부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수현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준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수현이 아직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현이 농사를 짓는다고? 그래…. 너는 수현하고는? 진작에 헤어 졌어요. 수현 선배 교도소 갔을 때 이제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요. 그리고 공무원 준비해서 시험보고 바로 여수에 내려왔어요. 고향이 편하고 좋아요. 혼자 계신 어머니도 좋아하시구요. 저는 선배처럼 부자가 아니어서요. 전 안정적인 직장이 꼭 필요해요. 연애는 안 해? 연애요. 연애는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그냥 수현선배하고 자꾸 비교하게 되고 뭐 그래요. 너무 잘난 남자를 만났나봐요. 지숙은 나경을 보며 웃었다. 몇 해전에 수현 선배가 저를 찾아왔었어요. 예전 모습은 아니더라구요. 많이 변했어요. 자신도 없어 보이고, 열정도 없고 맥이 빠진 사람처럼 보이더라구요. 농사가 편해서 그런지 아니면 더 이상 투쟁할 목표가 없어서 그런지.. 아무튼 그랬어요. 오래전에 그 모습은 아니더라구요. 생긴 것 빼고요. 지숙은 나경을 보며 여전히 수현에게 관심이 많은 나경이 안쓰러워 보였다. 여전히 나경이 수현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고 하던데….. “여전하구나 선배는” 어. 뭐가 여전히 수현 선배를 좋아하죠? 네가… 무슨. 아니야.. 너랑 나랑 만나서 누굴 이야기 하겠니… 수현이 밖에 더있어… 나경은 지숙이 여전히 수현을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숙도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숙은 더이상 수현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자신이 그랬을지 몰라도 현재는 그렇지 않다. 수현을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보다 지금의 자신이 더 좋았다. 수현을 사랑할 때 지숙은 힘들었고 늘 불안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현이 가장 편안한 길을 선택했고 자신을 찾아 왔을 때 그런 수현에게 지숙은 맘이 가지 않았다. 지숙은 수현의 불안한 삶 때문에 떠났지만 수현이 안전한 길을 선택하자 수현에게 미련이 사라졌다. 지숙은 자신이 사랑했던 것은 수현이 아닌 학창시절의 투사 같던 수현을 사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숙은 자신이 사랑한 이수현의 본질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은 수현이 본질이 아닌 자신에 눈에 비친 또다른 이수현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자신이 수현을 사랑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경은 지숙에게 수현의 소식을 들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적어도 수현이 이제는 더이상 처음 자신과 만났던 그 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로써 나경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자신이 끼친 부채에서 벗어난 기분이 들었다. 한 편으로 이제는 정말 수현을 사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은 이미 결혼했고 아이가 있으며 그것도 아픈 아이가 있으며… 나이가 많고.. 나경은 자신의 마음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수현을 향한 마을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지숙과 나경은 밤 바다를 뒤로 하고 헤어졌다. 지숙은 다시 택시를 타고 자신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나경은 밤 바다를 뒤로 하고 밤 기차를 타고 아이가 있는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 문화예술
    • 연재소설
    2025-05-08
  • 도곳대춤
    유종화 시집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5-05-06
  • [책마을] "사회 적응 거부 선언" 이하루
    『사회적응 거부선언: 학살의 시대를 사는 법』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음악가이며 동물해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하루의 여행 산문집이다.
    • 문화예술
    • 책마을
    2025-04-29
  • [책마을] "노랑의 미로" 이문영
    쫓겨난 사람들의 ‘가난의 경로’ 5년을 좇다 저널리즘의 눈으로 기록하고 역사가 흘린 기억들에 귀 기울이며 문학의 언어로 쓴 마흔다섯 명의 이야기
    • 문화예술
    • 책마을
    2025-04-29
  • 비로소 봄
    비로소 봄 박 두 규 꽃이 피어 봄이 아니라 그 고운 꽃들이 다 져야 비로소 봄이다. 고통도 절망도 나누어 짐 질 수 없는 것들이 어떻게 꽃을 피우는가. 서로에게 갈 수 있는 길도 잃고 오랜 그리움마저 사라진 사나운 짐승이 되어 무엇을 봄이라 노래할 건가. 골목길 곱게 쓸어 손님을 맞는 봄은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오시는데 꽃이 피어 봄이 아니라 그 고운 꽃들이 다 져야 비로소 봄이다. --------------------------------------------------------------------- 봄은 5월 광주로만 기억되던 날들이 있었다. 수없이 많은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고 그 꽃들이 다 져야만 봄이 왔던 고통의 기억 속에 5월이 있었다. 그렇게 40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봄은 꽃이 져야만 봄인가. 따뜻하고 환한 마음들과 함께 화사한 꽃이 피며 오는 봄은 언제 일까.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5-04-24
  • 피아골 금낭화
    「섬진강 편지」 -금낭화 비 그친 아침 피아골 금낭화를 보러 갔다. 밤사이 마을로 내려온 구름이 산 위로 돌아가는 풍경은 그야말로 오! 아!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감탄화였다. 피아골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피아골 피아골을 외치는지 알 것도 같다. 그 피아골에 어마어마한 금낭화 군락이 있다. 사라진 피아골 다랭이논 대신 노고할미가 내어준 선물 같다. 섬진강, 지리산 보물이 또 하나 늘었다. 선암사에서 맨 처음 금낭화를 만나던 날, 그때는 진짜 봄날이었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선암사 금낭화 -김인호 이제껏 알지 못하던 우리가 이렇듯 서로를 부르며 만날 수 있다니 이 봄날 다 가 너 꽃잎 떨구더라도 내 마음속에 늘 환히 피어 있으리니 어디 멀리 떠나 다시 너를 찾지 못할지라도 내 마음속에 늘 이렇듯 피어 있으리니 내 가진 것 다 잃더라도 너는 내 맘에 남아 있을 것이리니 주렁주렁 연등 내 건 듯한 금낭화 곁만 맴도는 아, 사랑에 마악 눈뜨던 스무 살 적 마음의 한나절이여!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5-04-21
  • 거짓말, 눈물바다
    「섬진강 편지」 - 거짓말, 눈물바다 ‘2025년 4월 14일 오후 4시 01분 현재 구례군 대설주의보 발효중. 강설로 인해 노고단 일주도로(천은사 입구~달궁삼거리) 통행제한 중입니다. 도로 미끄러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구례군」’ 백몇년 만의 4월 대설이라니 기록을 남겨두어야겠다. 거짓말 같은 4월 중순 대설주의보 재난문자를 받고 오른 노고단 길. 구름이 걷힌 오후 1시 성삼재를 출발 노고단 거쳐 4시에 내려오는데 그 사이 눈이 녹아 허물어지며 눈물을 철철 흘린다. 뚝뚝 떨어져 내리는 눈물로 길은 그야말로 흥건한 눈물바다다. 눈물을 만나면 늘 어쩔 줄을 모르겠다. 모든 눈물은 그렇게 난감하다. 오늘 만나 이 눈물도 때를 잘못 만나 한나절을 못 버티고 녹아내려 엉엉 울음소리까지 요란한 서럽디 서러운 눈물이다. 마을에 내려와 돌아보니 거짓말처럼 산정의 눈이 흔적도 없다. 내일은 또 무슨 거짓말 같은 재난문자를 받게 되려나!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5-04-16
  • 참교육 키즈의 생애 14편 엇갈린 운명
    이삭이 무거워진 벼는 점점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남풍에서 북풍으로 바람의 방향이 변했다. 아침 저녁으로 찬 바람이 불었고 벼는 더 고개를 숙였다. 수현이 들판에서 익기 시작한 벼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노무사 시험을 봤지만 수현은 번번히 낙방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논 농사와 밭농사를 짓기 시작한지 5년이 되었다. 이제는 그 스스로도 농부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수현이 농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수현의 아버지는 농부였고 그의 어머니도 농부였다. 수현이 돌아 갈 곳은 농촌 뿐이었다. 농민회에 가입하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들었지만 농민회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한 때 그의 모든 것처럼 여겼던 민주주의 그리고 혁명 세상의 부조리 그런 모든 단어는 수현의 마음속 깊은 수렁에 빠져 다시 나오지 않았다. 수현은 근원을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살았다. 수현이 보낸 10년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지숙이 살고 있는 여수에 수현은 딱 한 번 가본적이 있었다. 지숙은 여전히 수현을 좋아했다. 하지만 과거의 수현을 좋아했다는 것을 수현을 다시 만나 보고 알았다. 지금의 수현은 과거의 열정이 넘치는 대학때 수현이 아니었다. “선배 왜 그래?” “뭐가" “과거의 모습은 어디로 갔어?” “과거라니….” “대학때 열정이 넘치던 수현선배는 어디 갔냐고?” “그러게….” “어디로 갔을까?” “초심을 잃어버린 자의 말로라고나 할까!” 지숙은 수현이 잃어버린 초심이 무엇인지 알 고 있었지만 더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지숙 자신도 잃어버리는 초심을 수현이라고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배 강진 선배 이야기 들었어?’ “무슨 이야기?” “강진선배 아직도 학교에 있던데?” “아직도?” “그래" “군 제대하고 복학하고 나서 지금까지 학교에 있더라구….” “학교에서 뭐하고 있는데?” “그것까지는 나도 모르고….” “ 뭐 하던 것 하겠지” “학교에 한 번 가봐?” 지숙과 수현은 여수 오동도를 걷다가 돌산 대교까지 걸었다. 바다는 여전히 푸르고 돌산의 다리는 여전했지만 지숙과 수현의 말을 겉돌았다. “수현 선배 저 가볼게요"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요" 지숙은 있지도 않은 약속을 핑계로 수현과 헤어졌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 질 수록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과거의 이야기는 가능 했지만 미래의 이야기가 불가 했다. 아무것도 없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고, 있지도 않을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헛된 것이었다. 그 후로 수현은 지숙를 찾지 않았다. 지숙 역시 수현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벚꽃이 피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눈이 올 때 마다 지숙은 수현을 생각했다. 수현은 가끔 나경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 나경은 잘 살고 있겠지.. 가끔 도쿄에 가서 나경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결혼한 나경을 만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수현은 도쿄에 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경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나.. 나경이야" 네….. 수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10년 만에 걸려온 나경의 전화 한 통으로 수현은 자신이 여전히 나경을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경 선배 맞아요?” “어 그래" “우리 한 번 만나자" “아.. 그래요.” 나경이 수현을 찾은 것은 첫 눈이 내린 며칠 후였다. 도로에 그 날 내린 눈이 갓길에 쌓여 있었다. 뉴스에서 빙판을 조심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나경은 수현이 사는 남쪽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수현을 만나야 할까? 아니면 그냥 말아야 할까? 한국에 돌아 오는 비행기에서 부터 고민했었다.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 한국에 가야 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수현이었다.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수현이라는 이름을 지워 버리고 싶어 일본에 도망치듯 떠난지 10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마음속엔 그 이름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었다. 수현역시 나경을 잊지 못했다. 지숙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떠났고 나경을 떠나 보냈지만 여전히 그리웠다. 수현은 그 후로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봄이 오면 농사를 시작했고 가을이 오면 수확했다. 그 단순한 삶에 빠져 살았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수현의 집엔 아무도 없었다. 들판에서 돌아오면 수현을 반기는 온기라고는 햇살에 뜨거워진 대문 손잡이 뿐이었다. 수현은 스스로를 방치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수현도 나이를 먹었다. 그런데 나경이 오늘 온다는 것이었다. 기차 도착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수현은 옷장에서 옷을 꺼내 보았다. 옷을 구입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오랜시간 동안 구입하지 않았다. 입을 만한 옷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현이 입고 있는 옷은 그가 20대에 구입했던 옷들 뿐이었다. 옷을 구입한 기억이 없었다. 수현은 미리 읍에 나가 옷이라도 하나 구입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수현이 중고 트럭을 구입한 것도 5-6년 전이었다. 구입 했을 때 이미 10년을 넘긴 차였다. 시동키를 돌렸지만 한 번에 시동이 걸리지도 않았다. 키를 돌리고 엑셀레이터를 살짝 밟았다. 그러자 시동에 걸리다가 푸드덕 하고 꺼져 버렸다. 겨울엔 항상 이랬다. “무엇하나 변변한 것이 없군" 수현은 스스로 변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현은 마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읍으로 나갔다. 인구 5만의 소도시, 모두가 떠나는 도시로 돌아온 수현을 반기는 것은 텅 빈 가게들 뿐이었다. 가게는 줄고 병원과 요양병원만 늘었다. 젊은 사람들은 서울로 갔다. ‘옷가게가 어디 있었더라” 토요일 오후에도 소도시엔 사람이 없었다. 겨우 찾은 옷가게에 들어가자 주인이 반색을 하며 수현을 반겼다. 겨울 잠바 하나 사려구요. 네. 주인은 수현의 얼굴을 바라봤다. 혹시… 이수현씨 아닌가요? 네.. 맞는데요. 아. 맞구나. 누구시죠? 나.. 몰라! 기억 안나? 나 최현주…. 우리 초등학교 동창인데…. 아.. 그런가… 미안해.. 기억을 못해서 그러겠지. 그때 너는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너 좋아하는 우리반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 그랬나…. 야.. 우리 다음에 한 번 보자. 어..그래 오늘 무슨 일 있어? 아.. 일은 무슨…. 그냥 옷이 없어서…. 그럼 잠바 하나 골라줘…. 내가 옷을 사본적이 없어서…. 수현은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사본적이 없어 무슨 옷을 사야하는지도 몰랐다. 알았어… 초등학교 동창이니까 내가 알아서 코디 해줄께… 근데 너 결혼 안 했어? 어… 혼자 살아. 야.. 너 같은 애가 혼자 살아? 어. 뭐… 현주는 초등학교때 학교에서 가장 키가 크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던 수현을 떠 올렸다. 그런 수현을 현주도 좋아했지만 워낙 인기가 많아 수현을 멀리서 보기만 했었다. 말 한 마디 못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그런 수현이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는 다는 소식을 현주도 친구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들끼리 만나면 수현을 두고 안주삼아 떠들었다. 야.. 너희들 이수현 알지. 어. 야 수현이를 모르면 간첩이지. 수현이 농사짓는다고 하던데? 정말? 좋은 대학도 졸업하고 뭐 좋은 곳이라도 갔을 것 같은데 농사를 짓는다고? 그래, 그것도 벼농사 삼천평….. 벼농사 3천평 지어서 어떻게 먹고 살아… 그러니까…. 뭐.. 유기농 벼농사 짓는다고 논에 피만 잔뜩 있다고 동네 사람들이 다 욕한다고 하더라…. 너 어떻게 알아? 야.. 수현이 우리 옆 동네 살잖아.., 그럼 너 수현이 본 적 있어? 몇 번 봤지…. 그래.. 요즘은 어때 뭘 묻는 거야? 수현이 얼굴…. 그래? 여전하지 뭐.. 농사 짓는 다고 그 얼굴이 어디 가냐? 여전히 키크고 몸도 좋고 잘생겼더라….. 그치… 야.... 한 번 보고 싶다… 우리 초등학교에서 수현이가 최고 였잖아…. 그치…. 내가 결혼만 안 했어도 한 번 말이라도 걸어 보려다가.. 야.. 너는 아이만 셋이잖아 그래..히 히 현주는 얼마전 친구들과 만나 수현에 대해 이야기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옷 안 골라줘?” “ 어.. 그래" 현주는 수현에게 어울릴 만한 롱코드를 골랐다. 야.. 키큰 남자에게 롱 코트가 어울려…. 잠바 보다는… 농사짓는 놈이 무슨 롱코트냐… 그냥 잠바나 줘… 야.. 아니야.. 이게 더 잘어울려…. 바지도 하나 더 사라.. 바지가 그게 뭐냐? 10년은 넘어 보인다. 그런가…. 내가 동창 디스카운트 팍팍 해줄게… 그래. 수현은 더 이상 이야기가 하기 싫어 현주가 권하는 대로 옷을 샀다. 수현아.. 셔츠는 서비스다. 선물이라고 생각해. 수현은 평생 입어 본적이 없는 고가의 옷을 구입했다. 수현은 그동안 5만원이 넘는 옷 한 벌을 구입해 본적이 없었다. 수현은 현주가 골라준 옷을 들고 탈의실로 향했다.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 입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자신의 모습이 생각났다. 거울을 보며 수현은 “그래 나도 꽤 보기 좋았던 때가 있었지”라는 생각을 했다. “역시 이수현 멋지다" 현주는 수현을 보고 말했다. 봐라. 내가 골라준 옷을 입으니까 완전 달라 보인다. 그래… 고맙다. 수현은 가게를 나왔다. 어느새 밖은 다시 눈이 오기 시작했다. 수현은 가게를 나와 시내를 걸었다. 수현이 중학교때 놀던 오락실은 세탁소로 바뀌어 있었다. 엄마 아빠도 없이 혼자 먹었던 초등학교 졸업식날의 짜장면집은 여전했다. 수현이 역 앞에 도착했을때는 기차가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은 많은 남은 상태였다. 눈은 펑펑 쏟아졌다. “차를 가지고 오지 않기를 잘했구나.” 수현은 나경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생각했다. 결혼 생활은 어떤지… 일본 생활은 어떤지.. 잘사는지.. 행복한지 ….. 수현은 나경에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해봤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물음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현이 사는 도시는 눈이 많은 곳이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며칠씩 내리곤 했다. 수현은 눈오는 날이 좋았다. 학교를 안 가도 되었고,. 이런 날은 엄마도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엄마는 고구마 삶거나 찐빵을 만들어 주었다. 수현은 엄마 생각이 나면 찐빵을 먹곤했다. 시큼한 막걸리가 들어간 찐빵을 먹을 때면 세상에 없는 엄마 냄새가 났다. “잠시후 여수행 새마을호가 도착 하겠습니다.” “여수행 새마을호를 이용하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안전한 승강장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역무원의 안내 방송이 끝나고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수현은 역 창문 너머로 나경의 모습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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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소설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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