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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환경위기는 곧 인권위기다!
1장: 야누스의 비극은 어떻게 벌어지는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지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 책을 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 예로 우리세대에 경험했던 '걸프전'은 매일 뉴스에서 보도되어 그 참혹함을 알 수 있었지만 이 책에 적힌 숫자를 보면 가히 끔찍함의 극치다. "1991년 걸프전쟁 때 쿠웨이트에서 철수하던 이라크군이 방화를 하여 유전 736개가 화염에 뒤덮였다. 인공위성에서 불길이 보일 정도였다. 1월에 시작된 화제가 거의 1년이 지나서야 불길이 잡혔던 전대미문의 전쟁-환경 사건이었다. 칼 세이건과 같은 과학자는 쿠웨이트 유전 화제로 지구상에 핵겨울 비슷한 재난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이때 원유 약 10억 배럴이 연기로 사라졌다고 추산된다. 유전 방화는 중동지역의 환경에 궤멸적인 피해를 끼쳤다. 페르시아만 인근의 기상조건이 변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에는 연기와 그을음이 뒤섞인 검은 산성비가 내렸다. 그해 전세계 이산화탄소의 2퍼센트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불길에 싸인 유전에서 훌러나온 원유로 기름 '호수'가 300개 이상이나 생겼고, 주변의 모래와 토양이 4000만 톤 이상 오염되었다. 쿠웨이트 국토의 퍼센트 이상이 원유 찌꺼기로 뒤덮였다. 인군의 식물계도 타격을 받았고, 땅속으로 스며든 원유는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80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페르시아만으로 유입되어 해양 생물계를 파괴시켰다. 이 사건으로 '걸프전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불길을 잡기 위해 동원되었던 병사들이 만성피로, 근육통, 인지능력 저하, 연기 흡입으로 인한 폐질환 등을 앓았던 것이다. 담배를 하루 세갑씩 3년 연속 피운 것보다 더 나쁜 상태였다고 한다. 2021년 현재까지 올림픽급 수영장 7600개를 채울 수 있을 만한 분량의 원유가 여전히 처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식물에 의존하는 동물들도 거의 사라졌다. 현지 환경단체들은 쿠웨이트의 자연이 사고 이전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개탄한다. P61-62 2장 :: 지구, 인류를 법정에 세우다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 "마지막 한그루까지 나무를 다 베어내고서야, 마지막 강줄기까지 오염시키고 나서야, 마지막 한마리 물고기까지 씨를 말리고 나서야 당신은 돈을 먹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크리 인디언 부족의 격언 그럴까? 아마 그래도 돈에 중독돼 굶으면서도 죽어가면서도 돈을 움켜쥐고 있지 않을까? 고엽제를 생산하여 베트남의 미군에 납품했던 몬산토와 다우케미칼 등 9개 화공약품 회사들은 지금까지도 자기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 플라스틱, 대기오염, 물오염, 다이옥신, 살충제, 제초제 등 거의 모든 공해가 주로 기업활동을 통해 배출된다. 전세계 737개 기업이 전세계 부의 8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는 현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도 기후, 환경, 생태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룰 때 기업의 활동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드물다. p140 3장 :: 자연에게 권리를 주자 -인류세의 새로운 권리 "모든 위대한 운동은 조롱, 논의, 채택의 세 단계를 거치게 마련이다." -존 스튜어트 밀 응급병동의 긴박한 시선으로 이장을 읽어주시 바란다. p162 지구 전체에 사는 '동물'의 무게가 약 4기가톤인데, 생산된 모든 플라스틱의 무게가 8기가톤이다. 지구상의 포유류 무게를 따져보면 인간이 30퍼센트, 가축이 67퍼센트이며, 야생동물은 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p167 스톡홀름 환경선언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선언 이전만 해도 인간의 법체계에서 자연은 그저 '대상물'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 선언을 기점으로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상호의존적 관계가 확실히 인정되기 시작했다.p177 스톡홀름 환경선언과 리우선언의 바탕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철학은 다음과 같다. 인간이 기본적 욕구와 의식주를 충족시키려면 자연환경이 주는 각종 혜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의 건강, 적절한 생활수준, 생계, 심미적 충족감 등을 위해 사람은 환경에 대한 평등한 접근성과 이용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곧 '환경에 대한 권리'즉 환경권이다.p178 3세대 인권이라고 불리는 '연대권'에는 환경권, 문화권, 발전권이 포함된다. p179 자유권위원회는 2018년에 환경파괴, 기후변화 그리고 지속불가능한 발전이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생명권'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장 시급하고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발표했다.p183 2021년 10월 8일 유엔인건이사회는 '건강한 환경권'을 정식 인권으로 인정하는 '결의안 48/13'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와함께 기후비상사태를 인권문제로 다룰 인권 특별보고관을 임명하자는 '결의안 48/14'도 통과시켰다. 2021년 영국정부는 척추동물에 적용하기로 했던 동물복지법안의 범위를 문어와 같은 두족류, 바닷가재와 같은 십각류에까지 넓히기로 했다. 따라서 고통을 느끼는 지각력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 문어, 오징어, 바닷가재를 산 채로 삶지 못하게 되었다. p192 2021년 국립생물자원관은 "국가생물적색자료집"의 개정판을 펴냈다. 이 땅에서 생물다양성이 얼마나 훼손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이 책자를 읽다보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를 만단다. 바다사자는 190년대 후반 이후 완전히 '절멸'되었고, 늑대, 대륙사슴, 스라소니, 표범, 호랑이는 '지역멸절'되엇다. 사향노루와 여우는 '위급'상태에 잇으며, 무산쇠족제비, 물범, 반달가슴곰, 산양, 작은관코박쥐는 '위기'상태에 놓여있다. 사향노루는 약용을 위한 무분별한 포획, 산림 개발과 도로개설로 인한 서식지 축소 때문에 위급한 상태에 빠졌고, 여우는 19770년대에 많이 살포했던 살서제(쥐약), 산지 개발, 불법 포획, 올무사냥 때문에 위급한 상태에 빠졌다. 올무에 걸린 동물은 뼈가 드러날 대까지 몸부림을 치다 죽는다고 한다. 만일 자연의 권리가 인정되었더라면 사향노루와 여우가 이렇게까지 비참한 지경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한 연방 생물학자는 상아부리딱따구리의 멸종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보고서를 쓰면서 말 그대로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현재 지구 생태계의 주요 영역들이 거의 모두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 농경지, 산림, 담수, 목초지, 관목지, 사바나, 산악지대, 해양, 연안지대, 토탄지대, 도시지역 등의 생태계가 중병을 앓고 있다. 기후변화, 자원추출, 경작방식, 공해, 질병 때문에 6차 대멸종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발표도 나왔다. 현재 우리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가 결합된 이중적 복합위기에다 경제사회적 격차와 박탈이 함께 진행되고 있는 사회-생태붕괴 상황에 놓여 있다. 흔히 '침묵의 위기'라고 표현되는 생태계 붕괴가 기후위기보다 사실은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경고하는 학자들도 있다.p198 현재의 위기를 기후-생태 복합위기로 간주한다면, 탄소감축은 기본이고 그것에 더하여 우리가 지구-자연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지구의 지탱역량을 훨씬 초과하여 돌아가고 있는 소비지상주의와 무한 경제성장의 문제점까지 직시해야 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생태계를 살리면서 자연의 한계 내에서 살아가는 법을 실천해야 한다. 생태계에 자연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와 직졀되는 과제가 되었다. p202 애당초 자연의 권리가 왜 필요하게 되었는지, 전지구적으로 생태-환경이 왜 이렇게 나빠졌는지를 되짚어보자. 첫째,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는 주인이라고 보는 관점, 즉 '인간중심주의'적 시각에 문제의 근원이 있다. 둘째, 그것과 연관하여 인간의 소유관념을 법적으로 최대한,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재산권의 문제도 있다. 셋째, 경제규모가 계속 늘어나야 한다고 전제하는 경제성장 모델의 문제도 있다. p206 토착민의 지식, 생계, 인권을 무시하면서 자연만을 '순수하게'보전하자는 것은 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리겠다는 발상과 다를 바 없다.p219 4장 공존을 위한 지도 그리기 -사회-생태 전환의 길 미래세대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팀 플래너리 모든 것을 줄이지 않으면 우리는 망한다.-조지 몬비오 우리나라는 이제 덩치 큰 아이가 되엇습니다. 이 아이에게 성장이란, 더이상 기름진 음식으로 몸집을 키우는 일이 아닙니다. 지식과 용기와 덕성을 키우는 일이 성장입니다.-이원재 생물문화다양성의 쐐기돌을 그 자리에 고정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이 '언어다양성'이다. 어떤 사회계가 환경에 적응, 진화할 때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언어로 그 과정을 표현, 소통, 기록한다. 지역민이 쓰는 고유한 방언은 전통생태지식이 보전되어 있는 거대한 아카이브 같은 것이다. p232 대다수 문명붕괴에 적용되는 공통요인은 환경 수용능력을 초과한 자원고갈 및 극심한 경제 계층화였다. 문명의 초기에는 소수 엘리트들과 자연자원의 적절한 활용 시스템이 공조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엘리트들의 소비가 늘어났다. 그 결과 평민들은 기근에 빠지고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결국 사회가 붕괴했다. 자연자원이 완전히 고갈되지 않더라도 계층화가 심해지면 문명이 붕괴했다.p243 전세계 최빈곤층 10억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전세계 최부유층 20명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8000배 이상된다. p244 "현재의 경제성장 방식, 즉 지역에서 전지구적 차원에 이르는 환경파괴 그리고 인류사회 내부의 갈등(빈부격차)을 심화시키는 방식이 과연 생태계 여건상 지속가능하고, 사회윤리상 바람직하며, 나아가 미래세대(혹은 여타 생물종)의 안정적인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가?"p246 "문명의 역사는 에너지 효율성 향상의 역사다.(...)에너지 기술의 효율이 높아질수록 비용이 떨어지지만 그와 동시에 소비가 더 늘어나고 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용도도 늘어나기 마련이다."p248 환경주의의 역설 첫째, 환경이 나빠지면 삶의 질이 나빠지지만 그것을 잘 알아채지 못하다는 '불인지 가설'이다. 삶의 질을 측정하는 방식이 부정확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어쨌든 과거보다 요즘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둘째, 생태계의 여러 역할 중 인간에게 직접 필요한 부분만 인식하는 '착시효과 가설' 이다. 생태계는 '자원제공 서비스'(식량생산, 식수, 목재, 원유), '조절 서비스' (산사태 방지, 연안지역 범람 억제), '문화 서비스'(심미적 경관, 영감 제공, 교육기능), '지원 서비스'(광합성, 물 순환)등 다 기능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식량생산과 같은 '자원제공 서비스'만 계속되면 생태계 전체에 문제가 없다고 느낀다. 셋째, 생태계 훼손을 기술혁신으로 막을 수 있다는 '상쇄 가설' 이다. 환경이 나빠져도 그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면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대로 사회계와 생태계를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고, 생태계 서비스(환경자원)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 결국 사회계에 악영향이 온다. 넷째, 생태계 악화가 인간 삶에 끼칠 악영향을 해결하지 않고 계속 미루어왔다는 '문제해결 지연 가설'이다. 전세계의 자원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환경붕괴로 이주-난민 현상과 자원쟁탈 갈등이 일어나면 인간의 삶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런 문제를 외부화하면서 버텼지만 이제는 더이상 시한폭탄을 돌려막기 어려워졌다.. . . 이런 논리의 바탕에는 지구해성의 생태용량이 초과되든 말든 계속 돈을 벌겠다는 자본축적의 맹목성이 깔려 잇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들의 수요가 있으니 화석연료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인데 왜 석유회사만 탓하느냐는 주장도 있다. 에너지 소비자들이 문제라고 하는 것은 주객이 바뀐 논리다. 화석연료 인프라를 구축하여 그 안에서 사람들이 생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다음, 끝없이 수요를 부추기고, 마케팅과 광고를 이용해 소비자의 기호를 무의식의 차원에서 조종하는 현실에 대해서 눈감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p249-250 우선 선거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기성 정당이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생태 전환과 같은 의제를 제기할 수 있는 소수파의 의회 진출이 필요하다.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거나, 권역별 비례대표제(지역 대표성 확보)를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녹색헌법'으로 개정하고 청소년의 정치참여를 최대한 확대해야 한다. p255 세계 상위 10퍼센트 사람들의 소비만으로도 지구 온도가 1.5도보다 더 올라간다는 결론이 나왔다. 상위 10퍼센트에는 한국인의 평균 소비 수준도 포함된다. 세계 상위 1페센트 부자들 (약 7800만명)의 배출만 놓고 보면, 2015년 기준으로 이들이 소비의 97퍼센트를 줄여야 1.5도 억제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다. 특히 최상위 억만장자들은 호화 요트, 개인 제트기, 럭셔리 사치품 소비 등으로 천문학적인 탄소를 배출한다. 최근에는 개인 우주관광까지 시작되었다. 네 사람이 우주선을 타고 10분 비행하는 동안 배출하는 탄소가 수백 톤에 이른다. 부자들이 탄소를 배출하는 사업에 투자하는 패턴 때문에 발생하는 배출향도 어마어마하다. 옥스팜은 상위 1퍼센트의 탄소배출에 걸맞은 세금을 매기거나, 그런 식의 흥청망청 배출을 아예 금지시켜야 한다고 제안하다.p259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세가지 '연대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돌봄 패러다임을 실현하는 현세대내연대가 필요하다. 둘째, 투자적 패러다임을 실현하는 세대간 연대가 필요하다. 셋째, 지속가능 패러다임을 위한 사람과 자연과의 연대가 필요하다.p261 '좋은삶'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기본욕구가 충족되면서도 사치와 과잉에 빠지지 않고 안분자족하는 가치 있는 삶을 뜻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삶'을 취한 최소한의 조건인 최저 소비기준을 보장하면서, 타인이 '좋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않도록 최대소비기준을 정할 수 있다. 이때 '타인'에는 미래세대도 포함된다. 현세대가 최대 소비기준을 지키면 미래세대에게 제일 좋은 유산을 물려주는 셈이 된다.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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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
행운은 어떻게 찾아올까? 최근 내가 만난 젊은 친구 중 갑자기 유명해진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 '김동식', 가수 '이승윤', 이 책을 쓴 '천현우'. 물론 그 외에도 수없이 많다.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진 것은 맞는데 그렇다면 왜 그 많은 사람중 그들은 어떻게 행운을 잡았을까.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남들이 뭐라하던 꾸준히 한길을 걸어온 시간과 노력의 축적이다. 남이 뭐라하던 쓰고, 노래하고, 제 할 일을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다고 유명해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만 말이다. 물론 유명=행운이라는 말은 아니고, 유명=행복도 아니다. 요즘 젊은세대가 힘들다고 한다. 우리세대도 힘들었다. 힘들지 않은 세대가 어디있는가? 내 세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산업화의 불길이 활활 타올르고 대기업이 우수죽순 격으로 만들어지던 때였다. 덕분에 취업자리는 많았다. 또 조금만 운이 좋았다면(내경우) 대기업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면 뭐하나? 오래 남아 커리어여성이 된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한데 말이다. 각 시대 마다 맞닥뜨려야 하는 시대적 상황과 풍토가 있다. 다행히 그 파도를 잘 타고 넘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파도와 함께 무인도로 쓸려간 사람도 있고 파도와 싸우다 바닷속으로 침몰한 사람도 있다. 운이 없거나 배경이 없거나 재산이 없거나...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알고 보면 적지 않다. 그러나 어느 위치에 있건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건 있다. 그리고 잘 하는 것도 있다. 뭐든 한가지를 꾸준히 한 사람은 결국은 행운을 잡는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유명해 지지 않아도 돌이라도 매일 줍는 사람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행복은 어떠한 여건 속에서도 매일 행복하지 않으면 어느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사랑도 연습, 행복도 연습, 천국도 연습이다. 매일 연습한 사람만 그것이 축적되어 사랑의 결과물, 행복의 결과물, 천국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결과물이 드러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연습하는 것을 즐기며 살아 갈 뿐이다. 천현우는 요즘 청년이 어떻게 어려운지 그 상황을 직접 겪었고 그걸 유려한 문체로 전해 주었다. 그가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전문 작가도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독자들은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소중하고 고맙다. 노동환경이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어둠 속에서 법의 헤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다. 매년 2000가량의 노동자가 사고나 질병으로 숨지고 있다. 천현우도 부상을 당했고 여러번 위험에 처했지만 적절히 처우받지 못했다. 노동환경도 부적절하고 사고시 처우도 부적절한게 현재의 노동현장이다. 김용균 사건 이후로 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법을 고친다고 노동현장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는다. 이태원참사를 보면 당장 알 수 있다. 위험은 어는 곳에나 있지만 위험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언제 어디서나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암튼 젊은이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는 나라가 되어야 겠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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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의 겨울산사
1-구례의 겨울산사 전경 전도(66x270cm)2022년.JPG -구례의 겨울산사 전경 중 좌측 부분도 -구례의 겨울산사 전경 중 우측 부분도 2-구례 천은사의 겨울.JPG 3-구례 화엄사의 겨울.JPG 4-구례 문수사의 겨울.JPG 5-구례 연곡사의 겨울.JPG 6-천은사(137x170cm)2010년 7-화엄사(168x273cm)2010년 8-연곡사(138x170cm)2010년 ............................................................................................... <'지리산 그림순례' 이호신 화백이 드리는 새해인사> 안녕하세요, <지리산-人> 여러분. 2021년 인터넷 신문 <지리산인>창간 발행과 함께한 '지리산 그림순례'가 어느덧 하동, 구례편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2년 동안 하동과 구례의 사계절을 두루마리 화폭에 담아 왔지요. 부족하지만 지리산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떠올리며 작가의 의무를 생각해야했습니다. 2023년에는 '남원의 사계'를 화폭에 담아 보려고 합니다. 새해를 맞아 인사드리며 우리 모두 새 뜻, 새 길로 나아갑시다. 어머니 품 같은 지리산을 통해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스스로 작은 등불이 되길 기원합니다. - 2023년을 맞이하여 이호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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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다 하는 것은 재미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직업이라면? 책 제목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바닥 닦기를 싫어하는 내게 이 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이 재밌고 바닥 닦는 일이 큰 의미가 있다해도 그게 과연 나와는?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적어도 나, 한사람에게 큰 깨우침을 주었다. 그녀는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잘못된 제도와 정치로 인해 고통받는 지구인의 고통에 동참했다. 지은이 마이아 에켈뢰브는 1918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1940년에, 그러니까22살에 굴착기 작업자 와 결혼하여 5남매를 두었지만 1957년에 이혼했다. 결혼생활은 17년 이었고 그동안 아이를 5명 났으니 3년에 한명씩 난 셈이다. 그녀는 6년 초등과정을 마쳤지만 야간학교에 다니며 향학열을 붙태웠다. 독일어로 된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와 했고, 외국어를 틈틈이 공부했다. "점점 더 나는 다른 언어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페르 베스트 베리의 "엔슈트와 밈미"를 읽었을 때 독일어를 할 줄 몰라서 너무 슬펐다. P152 이혼하기 몇년전부터의 일기지만 남편에 대한 얘기는 없다. 아이들의 이야기와 적은 월급에 대한 걱정은 틈틈이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지구 다른 곳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것이다. 지구위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젊은이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차 있다. 그녀의 일기 처음에 '1953년 한국 위기'라는 제목으로 시작해 깜짝 놀랐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도움과 기도로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출근할 때 나는 다섯 아이 모두 겨울 옷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한 손에 펜을 쥔 채 앉아 있지만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있다. 마음은 한국에 가 있다. 한 철이 지나면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재킷이 필요할까? 마침내 나는 재빨리 "바지 한 벌과 재킷 한 벌"이라고 적는다. 나는 온통 한국 생각뿐이다. "(p14) 이런 식으로 그녀는 온통 세상사에 깊은 관심과 공감과 연민으로 가득하다. 그녀의 일기에는 전쟁이 벌어지고 어려움에 처한 모든 나라의 이야기와 그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하다. "지금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와 평온한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바람에 많은 속삭임이 실려있다..... 모든 시간은 상처를 준다는 말이 라디오에서 방금 나왔다. 이는 진실이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살 힘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게릴라 병력은 지금 사이공에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대규모 공격에 대비한 상태로-게릴라 병사들이 성공하기를. 미국인들을 자기 나라로 돌려보낼 수 있기를(양쪽 병사 모두 불쌍하다)."((p139) 그런 그녀의 기쁨과 도피처는 독서다. "도대체 어떻게 견뎌야 하는 것일까 -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 읽고 있는 책이 있는 한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다음은.....그런 다음은..... 막심 고리키의 '나의 대학'을 방금 읽었다. 이제 오늘 읽을 책이 없다 - 이 삶에서 견딜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음을 아는 일이다. 고통과 절멸 앞에서의 같은 공포, 같은 무의미를 경험한. 그때는 혼자가 아니다. 문학 덕분에. 세계영혼...(p153) '청소부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제길, 만일 대부분의 사람이 직업을 청소부로 상상한다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저 말은 기분이 나쁘다. 먼지와 더러운 구정물 냄새가 느껴지다시피 한다. 아픈 허리와 튼 손도 생각한다. 이 일은 저임금 직업군에 속한다. 아마도 온갖 힘든 작업은 다 할 것이다. 청소부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 고된 일이라 누구라도 끝낼 수가 없다..... . 건강해야 한다. 온몸이 부서진다(닮아빠진 허리와 부어터진 손, 아픈 무릎의 대가는 누가 치를까?)-생략-만일 모든 것이 깨끗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면 황폐해진다. 환경미화원들이 일주일 동안 파업했을 때 뉴욕의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보라.아무도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다면 도시는 이내 파괴된다."p137 그녀는 틈틈이 신문에 독자투고를 한다. 열심히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 오래 전에 본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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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람은 두 배 더 재밌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다.그것도 가능하면 지역성이 강한 소설을 더 좋아한다. 소설 속의 배경을 이해하고 읽는 소설은 그렇지 않은 것과는재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 고향을 배경으로 쓴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이 그랬다. 옆 동네 내촌마을과 죽산, 하시모토 농장 등 내가 이미알고 있는 동네가 나오면 소설 속의 인물들이 마냥 소설 속의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구례에 19년을 살았다. 그리고 소설 속에 나오는 지명 대부분을 알고 가본 곳들이다. 소설속의 주요 배경인 아버지를 떠나보낸 산림조합 장례식장은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고작 400m도 떨어지지 않았다.오거리도 반내골도 가려고 하면 5분 20분이면 가는 곳이다. 반내골은 2008년에 처음 가봤다. 그때 내가 일하던 사무실은 간전면 양동마을에 있었다. 오래된 한옥이었다. 딱 이맘때 볕 좋은 오후에 반내골에 살던 손종안씨에게 전화가 왔다. 토종꿀을 좀 팔아달라는 이야기였다. 문척면 반내골과 간전 양동마을은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되는 지척이다. 별일 없던 나는 그날 오후에 그와 함께 반내골에 갔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이제 막 오산에 가려져 가고 있었다. 골짜기 깊은 곳에 마을이 이었는데여기저기 밤과 감나무가 많았다. 그 사이에 산속에서 그는 벌을 키우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 애써 챙겨준 간식거리를 먹고 대충 이야기를 끝냈다. 마을을 떠나오기 전에 동네 한 바퀴 돌아봤다. 여기구나…. 1990년 초에 나는 정지아 작가의 빨치산의 딸을 읽었다. 정지아 작가가 반내골에서 살았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걸어서 문척 다리까지 가려면 두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문척면 반내골에 살던 손종안씨는 작년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장은 구례 산림조합 장례식장이었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장례식장과 같은 곳이다. 나는 구례에 산지 꽤 오래되었다. 정지아 작가를 만난 본 기억이 없다. 만난 기억이 있는 것도 같다.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생각해 보니 모 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인사를 했던 것 같다. 소설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장례식을 치르면서 문상을 오는 사람들과 아버지의 관계 그리고 이웃 친척, 아버지의 혁명동지와 동네 술친구들과 얼키고 얽힌 전후 현대사 만큼 복잡하고 슬픈 늙은 아버지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이해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중년의 딸 자신의 이야기다. 얼마 전에 끝난 나의 해방일지의 손석구는 매일 술을 마신다. 그것도 매일 소주를 마신다. 작가의 아버지도 매일 소주를 마신다. 지천에 술친구들이 많다. 나는 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20대에는 소주를 잔뜩 마시고 취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한 번도 취하도록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나의 치열한 삶이 끝났기 때문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영원한 사회주의자로 세상을 떠났다. 혁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소주를 취할 때까지 마셔도 될 것 같다. 혁명가의 삶은 치열하고 힘들고 고단하기 때문이다 술 말고는 위안이 되어줄 것이 없다. 내 아버지도 병이 깊어지기 전에는 항상 술을 마셨다. 그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울분을 삭이고 사람을 사귀는 방법이 술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진 돈이 작고 술은 늘가까이 있으니까.. 아버지가 죽어서야 작가는 아버지와 진심으로 화해하고 자신이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니 드디어 자신이 세상과 화해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소설은 무척이 재밌었다. 최근 읽은 소설 중엔 빠친코 만큼 재밌었다. 더구나 내가 다 아는 동네 이야기지금 사무실에 나가서 오거리에 나가면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소설이니 더 재미가 있었다. 가끔 눈물이 났고 실실 웃고 나니 소설은 끝나 있었다. 페이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소설은 오랜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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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하루끼는 유명한 소설가이기도 하고 유명한 런너이기도 하다. 그는 30대 초반에 달리기를 시작해서 지금도 매일 10km를 아침마다 달린다고 한다. 그는 오전에 달리기 하고 아침을 먹고 매일 4시간 정도 글을 쓰는 일상을 30년이상 유지했던 것이다. 그의 소설의 많은 부분이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달리기일지라는 것이 있다. 매일매일 달린 거리를 쓰고 그날의 컨디션이나 느낌을 적는 일종의 일기다. 나 역시 런다이어리라는 사이트에 10년 가까이 런닝일기를 쓴적이 있고 지금은 페이스북에 쓴다. 하루끼역시 달리기일지를 쓴다고 한다. 그것이 소설 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기록이 좋은 런너는 아니다. 달리기를 좋아하고 그것를 하지 않으면 인생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는 경쟁주자가 아닌 달리기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에 가깝다. 나는 20년 넘게 달리기를 습관처럼 하고 있지만 이 단순한 행동이 지금까지 했던 다른 어떤 운동보다 좋다. 하지만 가끔은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이 싫은 날이 많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고 봄은 예쁘고 가을은 날씨가 너무 좋다. 새벽에 달리면 졸립고 퇴근후엔 피곤하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는 한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라는 하루끼의 말은 내 마음과 같다. 그럼에도 나는 또 달린다. 런너는 달려야 그 존재의 아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인생이 무료하고 우울하며 삶에 지쳐있다면 지금 운동화를 신고 달려보면 좋을 것같다. 60대나 70대에 축구나 농구 배구 야구를 시작 하는 것은 늦었을 수 있다.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 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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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 인류
-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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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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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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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르침 한 수
- 몸 가르침 한 수 절에 있을 때 이야기다. 참 오래된 이야긴데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갈 곳이 없었다. 집에 있자니 부모님 보기도 민망하고 나가 돌아다니자니 어느 대학에 갔냐는 질문이 무서워 사람 만나는 것도 겁나고, 혼자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서 작은 보따리 하나 들고 무작정 절로 들어갔다. 그 길로 거의 1년을 절집에서 살았는데 그해 여름의 일이었다. 그곳은 서래선림(西來禪林)이라는 비석이 입구에 서 있는 지장암(地藏庵)이라는 절이었는데 해안(海眼) 큰스님이 돌아가시고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기고 상좌들도 밖으로 나가 있어서 말 그대로 절간처럼 조용한 절이었다. 때는 한 여름이라 녹음이 짙을 대로 짙어져 숲 그늘에 누워 잔잔한 바람에 책이라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달콤한 낮잠에 빠지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 여름 어느 날 객승이 한 분 오셨는데 작달막한 키에 별 말이 없는 얼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스님이었다. 대개 스님들은 객으로 묵을 때면 예의상 곧잘 예불도 드리곤 하는데, 그 스님은 아침 예불이건 저녁 예불이건 한 번도 불당에 오르는 일이 없고, 도통 방에만 틀어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의 종일토록 잠을 자거나 방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부턴가 그 스님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한 낮에도 쉬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죽어라고 일만 하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도, 이를테면 아랫마당에서 법당까지 놓여 있는 돌계단을 괜히 파헤쳐 놓고 다시 하나하나 계단을 맞추어 쌓는 그런 일이었다. 내가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멀쩡한 돌계단을 부수고 쌓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더우니 보통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강한 햇살이 죽었을 때 일을 하는 법인데 이 스님은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는 10시쯤에야 일을 시작하여 밖에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런 뙤약볕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지는 무렵이면 일을 끝냈다. 정말 온몸이 땀에 젖어 금방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젖은 채 하루 종일 일을 하였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났으나 스님은 매일매일 죽어라고 일만 했다. 그런 스님에게 나는 말 붙이기도 왠지 꺼려했는데 하도 궁금해서 언젠가 ‘스님, 왜 스님은 예불은 안 모시고 일만 한답니까?’ 하고 물었더니 스님은 별다른 표정도 없이 ‘나는 예불 드리는 거 몰라.’ 라며 마당으로 가서 또 괜한 돌계단을 허무는 것이었다. 진짜로 염불을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염불도 못하면서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왜 그렇게 가장 더운 시간에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 스님은 나의 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언젠가 말도 없이 훌쩍 지장암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 스님이 생각난다. 아니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에 말만 앞세우고 말로만 해결하려 들며 몸은 까딱도 않는 나에게 말이 아닌 ‘몸’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는 ‘몸의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강변하듯 그의 여름날 노동이 그의 수행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행은 말보다도 공부보다도, 온몸의 행위로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위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이 튀어나오는 거짓 덩어리의 이 몸뚱어리, 살아온 세월만큼 두꺼워진 위선의 몸집, 거짓으로 가득 찬 비만의 몸뚱어리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이처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스승은 아직 없었다. 사실 요즘 현대인들은 가급적이면 모든 일을 ‘앉아서’ 처리하려고 한다. ‘몸으로 뛰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문명과 컴퓨터 문화의 일반화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져서 몸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치장’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사는 것 같다. 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몸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하는 것, 그 자체는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의 궁극적인 지향은 결국 몸의 상품성을 높이는 것으로 귀착되는듯하여 씁쓸하다. 요즘 세태를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실 인류의 역사가 자본주의의 역사로 넘어 오면서 전 지구적 시장경제를 통해 지상의 모든 것은 이미 상품이 되어 버렸으니 ‘몸’인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부쩍 더 30년 전의 그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는 스님이 자주 내 앞에 나타나 어른거린다. (박두규. 시인) -노루귀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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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르침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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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산
-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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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에서
- ■ 시 겨울 산에서 이건청 나는 겨울 산이 엄동의 바람 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서서 겨울밤을 견디고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큰 그늘 속에 빠져 기진해 있는 줄만 알았다. 겨울 산 작은 암자에 며칠을 머물면서 나는 겨울 산이 살아 울리는 장엄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대개 자정을 넘은 시간에 시작되곤 했는데 산 아래, 한신계곡이나 칠선계곡 쪽을 지나 대원사 스쳐 남해 바다로 간다는 지리산 어느 골짜기 물들이 첫 소절을 울리면 차츰 위쪽이 그 소리를 받으면서 그 소리 속으로 섞여 들곤 하였는데 올라오면서 마천면 농협 하나로마트 지나 대나무 숲을 깨우고 산비탈, 마천 사람들의 오래된 봉분의 묘소도 흔들어 깨우면서 골짜기로 골짜기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오를수록 그 소리는 점점 더 곡진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산 중턱을 넘어서면서 홍송들이 백 년, 이 백년씩 그들의 가지로 서로의 어깨를 걸친 채 장대한 비탈을 이루고 있는 곳까지 와서는 웅장한 코러스가 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사순절의 어느 날, 대성당에서 들었던 그레고리 찬트의 높은 소절과 낮은 소절이 번갈아 마주치는 어느 부분과 같았다. 이따금 이 산에 사는 산짐승들이 대합창의 어느 부분에 끼어들기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때마다 그레고리 찬트 속에서 짐승들의 푸른 안광이 빛나곤 하였다. 겨울 산이 울려내는 대합창이 온 산을 울리다가 서서히 함양 쪽으로 잦아들 때쯤 건너 쪽 지리산 반야봉, 제석봉의 윤곽도 밝아오는 것이었는데 날이 밝고 산의 윤곽들이 선연해지면 자작나무도 굴참나무도 그냥 추운 산의 일부로 돌아가 원래의 자리에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는 것이었다. 그냥 겨울 산이 되어 침묵 속으로 잠겨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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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학의 길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 박 두 규 (시인) 1 코로나 국면을 맞고 보니 그동안 꾸준히 거론되어 오던 기후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위기라는 것이 코앞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인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문학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논의를 해왔지만 지금의 현실상황을 보면 ‘지구 위기, 인류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문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학도 과학이나 기술처럼 현실에서 우선적으로 ‘지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삶 문학에 일정 부분 복무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도 문학은 문학대로 지금껏 확장해온 영역이 있고 인류사 속에서 다양하게 그 역할을 해왔으며 또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그 상황에 맞게 대응해왔기 때문에 지금처럼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이 상상력의 문학이고 영적 문학이라는 점과 ‘지구의 위기, 인류의 위기’의 현실에 대한 복무를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100년의 지구, 100년의 인류를 염두에 두며 글을 통해 더 세밀하게 그려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과 기술보다 100년의 현실을 앞서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올바른 방향의 길을 찾는 더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 요즘 쏟아져 나오는 학자들의 글들을 읽어 보면 기후 환경으로 인한 지구의 위기 상황은 현실의 감도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금 우리가 해마다 역대 기록을 갱신하며 겪는 자연재해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대량학살의 위기이며 재앙의 시작이라고 봐야 옳다는 것이다. 인류가 자본주의 문명의 현행 기조를 고수할 경우 2100년에는 탄소배출량으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약 4도 이상 상승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북극의 빙상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고 알프스의 만년설은 70% 이상 녹으며 해수면은 최대 2.4미터 상승할 수 있다고 한다. 인구 천만의 자카르타 같은 도시가 물에 잠기며 세계의 주요도시는 거의 2/3가 해안에 위치해 있으니 그에 따른 발전소, 항구, 농경지 등 주요시설도 함께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고 적도 지방의 주요 도시들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미 2018년 폭염 시에 로스엔젤레스 42도, 파키스탄 50도, 알제리 51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물 부족과 폭염으로 북위도 지역마저도 해마다 수천 명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가 끝날 무렵이면 코로나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 상상을 초월하는 산불과 홍수의 증가, 수천만 명에 이르는 기후 난민, 경제 대공황과 지역 간의 기후분쟁, 농산물 생산이 크게 줄면서 일어나는 자원전쟁 등 한 해 기준 100조 달러의 세계 피해규모가 예상된다니 앞으로 80년 안에 변화될 지구의 모습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지금의 자본주의적 개발과 소비 패턴에서 조금도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었을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코로나19가 해결된다 해도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 예전의 일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지구와 인류는 이미 변화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시점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기존의 자본주의를 토대로 이루어낸 과학기술문명, 물질문명의 틀에서 벗어나 이전의 의식에서 한 단계 점핑된 도덕적 과학기술과 새로운 정신문명으로의 판짜기 변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현재 소비와 개발성장의 자본문명에서 전환하여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해야 된다. 포스트 코로나를 맞아 변화되어야 할 의, 식, 주, 의료, 교육 그리고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까지 기존의 질서와 그 틀을 어떻게 바꿔가야 할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문학은 이 현실 변화의 중심에서 어떤 마음, 어떤 영혼을 가진 인간이어야 하는 것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다. 3 지금껏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초래해온 자본문명을 벗어나 새로운 문명을 꿈꾼다면 먼저 기존의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세계관 등 일상 속의 대중들에게도 정신적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생각이 바뀌어야 그 삶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정제 없이 그대로 반영된 이데올로기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그렇게 이익을 극대화하며 개발과 성장의 경제논리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은 배고픔과 위험한 환경 조건에서 풍요로움과 안전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도를 넘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풍요와 편리를 거느린 현실 자본주의를 앞세워 공존공생을 위한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깨고 탐욕과 욕망을 당연하고 정당한 인간 정서로 편입시켰다. 단순하게 이야기 했지만 사실 이런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자본주의와 잘 어울려 끝없이 달려온 결과 현재의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맞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개인의 인간도 그 탐욕이 지나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반성과 성찰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인류는 21세기가 끝나는 지점부터는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혹독한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피엔스의 종말을 향해 추락해 갈 것이다. 그래서 문학예술은 지금의 시점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21세기 이후의 현실을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새로운 문명, 새로운 문학예술에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문명에 대응하는 문학을 생각하려면 자본주의의 속성인 탐욕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 새로운 문화를 궁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움’은 어쩌면 삶의 본질과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총체적 근원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서 그것은 현실 자본주의를 벗어나 근본 진리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본래 모든 생명들은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하나의 공존공생의 공동체적 존재라는 것과 그것을 위해 인간은 가장 경계해야 할 본성인 ‘탐욕’을 꾸준히 정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이것을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생각한다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단순한 삶’과 ‘소박한 삶’을 하나로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인데 ‘단순한 삶’의 문학은 개인 스스로를 전체의 한 부분이면서, 그렇기 때문에 전체라는, 그래서 전체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이미 붓다나 예수 등 많은 현자들이 발견했던 동체대비, 궁극과의 합일 등 진리의 삶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며 이를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문학을 말한다. 이는 ‘단순성’이라는 진리의 영역을 문학으로 가져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누구나 실현할 수 있는 ‘단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삶은 당장 그렇게 살려는 스스로의 결단과 실천만 있으면 되는 ‘단순성’에서 시작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진리에 의해 사는 삶’은 어떤 거창한 것은 아니고 현재의 실상을 바로보고 그것에 어긋남 없이 사는 것, 다시 말하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실상은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려(연기적 관계를 가지고) 전체가 하나의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렇게 있는 그대로(본질 그대로) 어울려 순환하고 진화하는 것이 바로 ‘단순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변곡점에서 문학이 주시해야 할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소박한 삶’은 이런 ‘단순한 삶’을 현실로 가져오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사실은 방법이면서 그 본질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진화시켰던 인간의 탐욕은 끝없는 집착을 가져와 현재 지구의 기후재앙과 함께 모든 문제의 화근이 되었고 이 탐욕과 집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소박한 삶’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본의 끝없는 성장 시나리오는 이제 그 한계에 왔다. 대체 에너지 등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과학기술의 노력과 성과가 있다하더라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결국은 소박한 삶으로 가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없는 것이다. ‘소박한 삶’은 스스로의 탐욕을 다스리는 삶이고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조화와 균형으로 이끄는 해답이라고 본다. 이‘소박한 삶’을 통해 모든 생명과 지구가 하나의 완결체로 존재할 수 있는 공존, 공생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문명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의 길로 가는 길목에 이러한 물질 중심의 삶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문학’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 문학적 화두를 통해 개인의 이기(利己)를 극복하고 무아(無我)와 탈에고(脫ego)의 수준까지 의식을 확장하여 탐욕을 순치(順治)하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문학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과 지구의 기후재앙을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첫눈이 내린 노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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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 '제주도우다'? 제주도가 도와? 제주도의 우다? 제주도가 울어? 책의 내용을 읽기 전까지 제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궁금했다. '제주도다', 혹은 '제주도이다'의 제주도 말이 '제주도우다'이다. "남한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제주도다!" 과연 제주도는 제주도다! 제주도 말이 많이 나오지만 해석이 필요하지는 않다. 경상도나 전라도 말같이 어미가 다르다. 그러고보면 모든 지방의 어미는 다르다. 1권만 읽었는데 3권까지 읽으면 제주도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주도 민요나 노동요도 많이 나오는데 참 정겹고 마음이 아리다. "이여싸 이여싸나 요 파도야 뭘 먹고 둥듯둥긋 살쩠느냐 바람통 먹었느냐, 구르몽 먹었느냐 뭉클뭉클 잘도 올라온다 이여싸나 넘고 가자 이여싸나" 1930년대 오사카의 이주조동자는 제주출신이 오만명이었다고 한다. 짧은 노래가락이 조선인의 형편을 그대로 알려준다. "조선 사람 가엽구나, ,싸움 지고 나라 잃고 지진 탓에 집 무너져 납작궁 납작궁 조선 사람 가엽구나, 넝마 주워 하루 5전 밥 모자라 배때기가 호올쪽 호올쪽"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할 때 '스텐카라진' 이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넘쳐 넘쳐 흘러가는 볼가 강물 위에 스텐카 라진 배 위에서 노랫소리 들린다 페르시아의 영화의 꿈 다시 찾는 공주의 웃음 땐 그 입술에 노랫소리 드높다 돈 코사크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교만할 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주린다 다시 못 올 그 옛날의 볼가강은 흐리고 꿈을 깨는 스텐카 라진 장하도다 그 모습" 낯선 외국의 독특한 고유명사가 나오는 이런 노래를 아이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노래는 누가 만들었을까?? 나와 띠 동갑이신 현기영 작가님은 이런 노래를 다 기억하실까? 우리 때도 고무줄 놀이는 많이 했다. 나는 변방에서 엄청난 기술로 검은 고무줄을 마치 무용수 같이 늘이고 줄이며 노래하는 아이들을 구경만 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나는 외톨였거나 운동신경이 젬병이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는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라든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그리고 "대통령 우리 대통령 이승만" 어쩌구~~ 모든 제주의 조천리 사람들은 "새콧알할망"이 하느님이다. 지리산의 '마고 할미' 같은 분이시다. 모든이가 간절한 마음으로 두손모아 새콧알할망에게 빌고 또 빈다. 처음 이사와 이 시골동네에서 내가 참석했던 당산제는 내 안에 있던 담벼락을 다 부숴놓았다. '새콧알할망'이나 '마고할미'같은 이름이 이제는 참으로 정겹다. 3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1권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까지의 제주 조천리 마을의 이야기다. "영미야, 창근아, 그 시절엔 의리를 매우 중요시하고, 선배를 잘 따랐주. 반일 투쟁했던 선배들의 정신을 본 받으려고 했어. 그분들이 대부분 좌익이었고, 그래서 후배들은 유식하면 유식한대로,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좌익이 된거라. 그땐 다 그랬쥬."p343 해방이 되었는대도 어이없게도 '맥아더 포고령'이라는 것이 내려졌다. 이것은 미군이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할 것이며, 일본군은 미군이 인수할 때까지 삼팔선 이남에서 조선의 치안을 유지하는 동시에 행정기관을 존치할 것과, 경찰관, 면서기 등은 별도 명령이 없는 한 종래의 직무에 종사할 것을 명하는 것이었다. 말이 해방이지 해방이 아닌 것이다. 듣고 또 들어도 괘씸한 일본의 만행과 우리 조상이 당한 억울하고 분하고 불쌍한 삶과 죽음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절대로 잊을 수 없고 잊으면 안된다.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그들을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지금 아주 적절할 때 발간 된 것이다. 나라는 잃었어도 남녀는 사랑을 하고 친구는 우정을 쌓는다. 여기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 중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그 당시 살았던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도 없다. 다만 소설 속의 창세, 만옥, 행필 같은 사람들 만이 살아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의 조상이고 가족이며 나 자신인 것이다. 모든 기억과 역사를 동원해 죽은 이들을 살아 숨쉬게 하는 작가라는 존재는 참으로 위대하다. 2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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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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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치코 멘데스
- 멀고도 먼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 브라질에는 세계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우림이 존재한다. 아마존은 남미 9개국에 걸쳐 있으며 60%가 브라질에 있다. 아마존은 세계 산소의 20%를 생산하며 지구 열대 우림의 절반을 차지하고 세계에서 가장 긴 아마존강이 흐른다. 아마존우림은 매년 17만 km2씩 파괴되고 있다. 치코 멘데스의 형제는 17명 이었다. 브라질 인구의 대부분은 카토릭이다. 치코는 그의 아버지가 했던대로 9살부터 고무농장에서 고무를 채취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전혀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농장주들은 노동자들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그들이 당하고 있는 비합법적인 노동과 학대의 실상을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아 노동자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이 금했다. 치코 역시 18세까지 읽고 쓰지 못했다. 그런 치코의 운명을 바꿀 계기가 된 것은 한 사람을 만나고 부터다. 그는 유클리드 페르난데스 타보라이다. 타보라는 반정부 활동을 하다 쫓겨 혼자 숲에 숨어 살고 있었다. 치코는 일주일에 한번씩 그를 찾아 숲으로 갔고 그에게서 신문을 통해 글을 배웠고 노동자가 처한 정치 상황을 알게되었다 . 유클리드는 "레닌은 노조가 선동적이라는 이유로 탈퇴해서는 안 된다고 항상 말했지. 노조에 들어가서 풀뿌리 조직을 만들고 너의 생각을 퍼뜨리고 운동역량을 키우는 데 활용해야 해. 누가 알겠어. 네가 부패한 체재를 전복할 수 있을지? 노조는 정부에 완전히 얽애여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철학이나 우두머리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까지 없어. 명심해, 노조는 지금 정부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으니 노조에 들어가면 그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될 거야."p61 유클리드의 예언은 사실이 되었다. 치코는 이후 노동자의 권리와 숲을 위해 싸우는데 앞장섰다. 그는 44살에 암살 당했다. 노동없이 살 수 없는 인간세상을 노동을 하지 않는 자들이 지배하며 노동자를 대우하지 않고 있는 현상은 아직도 지구위의 모든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자신과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하고 거짓이 아닌 진실을 알아야만 한다.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진실은 없으며 있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핏값이라는 것을 이책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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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치코 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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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의 이의신청
-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빨강머리 앤 인문학"에 이은 박홍규 님의 내가 읽는 세번째 독서다. "영화감독 켄 로치, 다른 미래를 꿈꾸다"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켄 로치가 감독한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켄은 영국인이고 그가 감독한 영화를 한개라도 봤다면 그가 어떤 영화를 만드는 감독인지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비교적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디 올드오크(2023), 미안해요 리키(2019),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빵과 장미(2000), 등 일 것이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황금 종려상을 받았과 '빵과 장미'는 부산영화제에서 초청 상영되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 선진국이라는 영국의 실상을 여지없이 파고 들어 깨부순다. 제목 앞에 '나'와 이름이 붙은 것을 봐도 인간 개개인에 대한 존중과 깊은 사랑을 짐작 할 수 있다. 700년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은 아일랜드의 형제간의 비극을 보여주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조국이 뭔지 형제나 가족은 뭔지 나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골치 아프다. 이 영화의 주인공 킬리언 머피는 최근 화제작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에서 우뚝 선다. 켄이 어떤 영화를 찍는지 이 책의 목차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1장 죽어도 멜로드라마는 찍지 않는다 2장 오로지 민주주의 영화를 찍는다 3장 최악의 검열에도 항상 찍는다 4장 언제나 최하층 사람들을 찍는다 5장 목숨을 건 진실투쟁을 찍는다 6장 참된 민중 혁명을 위해 찍는다 7장 해방과 자유를 위해 찍는다 8장 행복과 복지를 위해 찍는다 9장 인간성 회복을 위해 찍는다 저자 박홍규는 한 인물을 집중 파고드는 글을 쓴다. 그는 켄을 자기의 스승이자 친구라고 말한다. 그는 켄의 영화 속 인물과 배경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와 정치, 인간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는 '자유로운 개인이자 행복한 노동자'입니다. 그 자신이 자유로운 개인, 행복한 노동이 가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p363 이 책의 목차를 읽고 벌써 이 책을 읽으려고 마음을 정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 그렇게 강렬하고 의지적인 인간 켄을 우리에게 알려 준 작가 박홍규도 그와 비슷한 사람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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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의 미래
- 세상에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잔소리는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자주 들어야하고 싫지만 자주 하는 것이다. 나는 잔소리를 듣고 자라지 않아서 그런지 잔소리하는 것에 익숙치 않다. 무엇보다 잔소리를 들어야 할 대상이 싫다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에서다. 일종의 믿음이다. 안해도 잘 알겠지 하는 믿음! 믿는 도끼에 발등깨진 나!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잔소리는 꼭 필요한 금쪽 같은 대화다. 그걸 애들에게나 어른에게나 하지 못한게 후회된다. 책도 그런 책이 있다. 제목을 보면 내용이 뻔하다 생각해 안 읽는다. 그러나 읽어보면 잔소리같은 말이라도 다시 새기고 싶은 말들이 있다. 이 책이 그런책이다. 로컬의 중요성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시골에 살다보니 로컬 푸드니 로컬 경제에 관심이 간다. 하지만 들여다 보면 뭔가 문제가 태산같아 지레 나자빠진다. 나같은 사람이 감히 어디서부터 어떻게...비닐 대신 시장 바구니, 택배 대신 로컬마켓을 이용하고 텃밭을 잘 가꾸는 것부터 우선이다. 그러나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텃밭! 말이 쉬워 텃밭이지 순식간에 잡초밭이 되고 차타고 털털 읍내까지 가도 마땅히 찾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 없으면 안먹고 안쓰면 된다! 그래서 안먹고 안쓰다 보니 이상한 것만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사람이 되가지만 그래도...점점 이상하고 수상한 사람이 되야한다. 그동안 너무 이상한 것에 길들여져 왔으니 말이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경제 성장을 강조하는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 다른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 온전한 경제를 회복하려면 삶의 중심을 로컬로 전환하고 전 세계의 로컬 경제가 튼튼해져야 한다. 지역화는 지구촌이 당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자녀들과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열어줄 것이다."-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글로벌 경제는 기술-경제 체제로서 인간 생활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까지도 상품으로 만든다. 글로벌 경제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을 분리시키며 번영하고 있다. P10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몹시 멀어져서 윤리적인 선택이 불가능해졌다. 캘리포니아주의 어느 식당에서 파는 생선은 불법으로 노예 노동자들을 고용한 태국에서 잡은 생선인지도 모른다. 독일에서 파는 티셔츠는 열악한 환경에서 박봉으로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글라데시의 공장에서 만든 옷인지도 모른다. 인도 중산층의 소비 수준이 높아지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기후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마치 팔이 길게 자란 사람이 제 손으로 하는 일을 보지 못하는 격이다.”p19 “세계화의 본질은 의도적인 경제활동이다. 무역과 투자의 규제 완화다. 대기업과 은행은 전 세계의 로콜 시장에 자유롭게 진입해서 그곳을 장악한다. “P20 “근본적으로 오늘날의 ‘세계화’는 500년 전에 시작한 정복과 식민주의에 새로운 탈을 씌우고 계속 이어가는 착취에 불과하다. 세계화는 현재 전 세계로 더 깊숙이 침투해서 생태계, 지역과 지방 경제, 국가 경제를 빨아들여 중앙에서 관리하는 단일 글로벌 경제를 형성하고 있다. 단일 글로벌 경제의 발판은 영원한 성장과 무시무시한 소비지상주의, 즉 기업 지배다. P21 "노르웨이에서 파는 대구 필레는 현지에서 잡은 대구를 중국으로 수출해서 가공한 뒤 다시 수입한 제품이다.” 생선 하나가 1만 6000킬로미터를 왕복하는 셈이다." P29 "이 같은 지나친 무역으로 이득을 얻는쪽은 거대 기업밖에 없다. 일한 일이 전부 가능한 것은 효율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보조금과 눈먼 비용 때문이다." P29 “’외부로 빠지는 비용’은 고스란히 사회와 환경이 부담한다.”P32 “스페인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한 마늘이 스페인 현지에서 재배한 마늘에 비해 반값에 팔린다. 그러나 중국산 마늘 가격에는 운송에서 발생하는 공해는 물론 운송 인프라 비용도 빠져 있다.”p33 세계의 금융 체계가 변동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 도는 돈에 ‘유령 자산’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작가 데이비드 코튼David Korten은 유령자산을 “실제 가치나 효용과 무관하며 분식 회계와 자산 거품으로 마술처럼 새기거나 사라지는 금융 자산” 이라고 정의한다. P40 오늘날 경제에서 순환하는 돈의 약 97퍼센트, 즉 수십억 달러에서 수조 달러에 이르는 디지털 화폐가 대출에서 나왔다. 은행은 대출을 승인할 때마다 원금과 이자를 ‘창출’한다. 사실상 민간 은행은 돈을 찍어내는 면허를 받은 셈이다.p41 종합해 보면 이동이 지나치게 자유로운 초국적 기업, 규제가 풀린 은행이 만들어내는 돈, 정권과 기업의 유착 관계에서 글로벌 기업이 지배하는 체제가 탄생한다. 결국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전 세계가 ‘바닥을 향한 경주’에 나서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회와 환경, 보건의 기준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간다. P49 세계화의 목표는 건강한 식량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 농기업, 슈퍼마켓 체인, 초국적 식품기업이 돈을 벌 수 있게 돕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75 지역화를 이루려면 몇 가지 중요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기업이 사회의 기준을 정하기보다 사회가 기업의 기준을 정하고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 P88 지역화를 위해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땅을 일구며 사는 마을 주민과 사람들이 기업의 일자리를 약속하는 도시로 떠나지 않도록 막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작은 마을을 다시 살고 싶고 일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즉 지역의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P151 지역화란 경제를 인간적인 규모로 되돌리자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주변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있고, 각자 지역 사회에서 수행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스스로의 행동에는 사회적, 생태적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규모를 줄이자’는 뜻입니다. P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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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의 집 청소
- 사람은 왜 자살을 할까?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특별한 직업이 얼마나 많을까? 모두 쉽사리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저자 김완은 대학에서 시를 전공했고 전업작가로 살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고 일본에서 죽은자의 뒷수습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는 '하드웍스'라는 회사를 차려 죽은자의 집청소를 의뢰 받아 죽은자의 흔적을 없애는 일을 하고 있다. 죽은자는 주로 혼자 살다 고독사하거나 자살하여 뒷수습을 할 사람이 없는 경우나 동물, 주로 고양이의 시체의 처리같은 것을 한다. 이 책에는 죽은자는 말이 없지만 어쨌든 흔적을 남기기에 그 흔적을 없애며 쓴 글이다. 책을 읽는 나는 나지도 않는 냄새에 시달린다. 냄새는 흔적도 보이지 않지만 죽은 자들이 남긴 것 중 가장 고약한 것이다. 참으로 여러 형태의 흔적을 남기며 사람은 사라진다. 자신은 어떤 수단을 사용해 이 세상과의 연을 끊지만 그가 살았던 흔적은 다 지우고 갈 수 없다. 그 흔적은 누군가 다 없애주어야 한다. 가족이 있다면 그 일을 해주겠지만, 또 가족이 있어도 이름만 가족인 경우도 있고 생사여부를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내가 떠난 후 뒤정리를 해 줄 사람이 있다면 최소로 할 수 있도록 흔적을 최소로 하는게 예의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상식일 것 같지만 세상에는 사람 수 만큼 생각과 삶의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며 다시 알게된다. 가끔 우울이 머리부터 서서히 그 파란색깔을 물들여 발끝까지 내려가려 할 때가 있다. 파랑이 나를 점령하려는 것을 막고 싶은 의지가 일도 없어 온통 내가 파랑이 된다면 바로 자살을 생각하는 때다. 원래 게을러서 인지 이미 파랑에서 벗어나기를 포기해서 게을러 진건지 알 수 없지만 이 책에 나오는 어떤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최소의 정리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또 어떤이는 그 반대로 모든 것을 다 없애고 죽음에 필요한 연장만 남기고 가기도 한다. 다양한 죽음의 현장에서 삶과 죽음의 사유를 하는 작가 '김완'은 내가 본 사람중 가장 강심장이다. 그는 역겨운 냄새 만큼, 견디기 힘든 일만큼,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정리는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내 주위를 둘러본다. 정리가 필요하다. 여기가 끝이라면 누군가 엄청난 고생을 하겠구나. 미루고 미룬 정리, 오늘 하자! 난 살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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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의 집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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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 지구 위에 많은 사람 중에 가장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을 꼽을 수 있다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생한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인간으로서 가장 힘든 고생은 또 무엇일까? 등등 이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 킴 투이는 보트피풀이었다. '보트피풀' 말은 들어보고 보트를 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본적은 있다. 그 후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뭐든 언론이라는 것은 후속 취재가 부족하다. 가끔 그 사건은, 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만 그냥 한 때의 뉴스로 지나가 버린다. 모두 제 살기 바쁜 세상이니 그렇기도 하다. 책도 얇고 문장도 간결하다. 마치 폭풍후 산산히 부서진 잔해가 강물에 무심하게 떠내려가듯 조각나고 깨어진 이야기는 흘러간다. 자기가 겪은일을 담담히 쓰는 쓴 이 자전적 소설은 오래도록 아무말도 아무글도 쓸수 없게 만든다. 베트남 전쟁 관련 영화도 많이 봤지만, 영화의 그 참혹한 현장보다 이 짧은 책이 더 임팩트가 있다. 똥통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자꾸 생각나 괴롭다. 누구는 그렇게 죽고 누구는 살아 남아 그 이야기를 전한다. 한사람은 하나의 우주이기도 하지만 사람 하나 하나가 뿌리와 가지를 이루는 거대한 나무이며 숲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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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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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원했다
- 정지돈은 "자신이 흡수한 텍스트에서 사실을 차용해 새로운 글로 탄생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모든것은 영원했다"는 한때 미국 스파이로 오인 받던 공산주의자 현앨리스의 아들인 실존 인물 '정웰링턴'의 삶을 주축으로 삼는다. 정지돈은 건조한 정보에 풍부한 허구를 뒤섞고 필연과 우연, 회의와 믿음을 오가는 진지한 담론에 실없는 농담을 교차시키면서 정웰링턴과 그 시대 사람들에게 지면을 내어준다. 흩어져있던 이미지, 자료와 텍스트가 정지돈을 경유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인용과 질문과 아이러니로 가득찬 이 지적인 책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ㅡ문지닷컴에서 옮김 박민규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신선함과 흥미를 잊지 못한다. 그후 난 그의 팬이 되어 그가 쓴 글을 거의 읽다시피했다.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후 그는 스스로 고백하고 절필했다. 9년후 장편을 연재했다는데 내가 아직 못봤다니! 박민규이후 나를 놀래킨 작가가 바로 정지돈이다.(정재돈 신부님 사촌?은 아니겠지?) 그의 소설은 박민규같이 절로 웃음이 실실나오고 입맛을 쪽쪽 다시면서 볼 수 있는게 절대 아니다. 이거슨 소설인지 다큐인지? 흠 소설책 맞는데? 이러면서 보게 되는 다큐같은 소설이다. 독자에 따라선 얼마간 인내가 필요하기도하다. 책 장정도 특이하다. 표지도 그렇고 작가 소개란도 없고 뒤에 참고서적이 수십권에 이른다. 지식이란 욕조에 빠졌다 나온 느낌이랄까? 흠 옛날 이런 해박한 소설가가 또 있었는데? 생각 안난다. 그 이후 처음이다. 이제 늙어서 솔까말 지구력이 떨어진다. 그래도 참 대단하다 칭찬하고싶다. 내 창찬이 필요하진 않겠지만. 누구나 지 멋에 사는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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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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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죽어가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누구나 죽어가고 있다. 다만 그 정확한 시점을 모를 뿐이다. 신경외과 의사인 폴 칼라티니의 죽음이 나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유는 그가 죽는 그 순간까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에 끊임없이 매진했다는 것이다. 자기도 통증이 심한 환자이면서 다른 환자의 수술을 집도하고 암의 심한 고통 속에서 책을 집필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너무나 젊은 36살의 나이에 생을 마쳤다는 것이다. 의사가 되려고 하는 이들은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지금은 의사 불신의 시대이며 생명이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전공했고 인간의 생명을 더 깊이 알기 위해 의사가 되었다. 인문학과 과학은 그가 했던 것같이 공존하며 같이 가야 하는 인간의 길인 것이다. 산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과 모든 생명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다만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그것을 바라보는냐의 차이일 것이다. 폴 칼라니티는 환자를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자기가 환자가 되어 주관적인 삶을 살았다. 그 모든 삶의 치열함에 눈물이 난다. 마치 내 눈 앞에서 내가 잘 아는 한 사람의 임종을 보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나오는 흐느낌을 멈출 수 없었다. 인간이 일생동안 살아야 하는 총량이 누구나 다 똑같다면 그는 너무 짧은 시간에 그것을 다 써버린 것은 아닐까? 이미 이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담긴 가족 사진이 마치 잘 아는 사람의 사진처럼 느껴진다. 그는 책의 집필을 완성하지 못했고 그의 아내인 내과의사 루시가 책의 에필로그를 썼다. 마치 한사람이 쓴것 같은 느낌이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소중하지만 이 한장의 사진이 생전 한번 만나보지도 못한 나에게도 소중하게 느껴져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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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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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하나 뿐인 빨강머리 앤 인문학
-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엄마 없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엄마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아봤고, 엄마 노릇을 해본 입장에서 든 생각이다. 엄마의 사랑은 '무조건'이다. 조건이 없을 뿐더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준다. 아버지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지만, 아버지가 되어보지 못해 확실히 말할 수 없다. 만약,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남자로 태어나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보고 싶다. 애인도. 여자에게 엄청 잘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몇년동안 소년원에 일주일에 한번씩 봉사를 간 적이 있다. 그냥가서 애들하고 놀며 대화하는 것이다. 그곳에 온 아이들의 다수가 한쪽 부모만 있거나 아버지만 있다. 엄마만 있는 애들은 그곳에 오지 않고, 아버지만 있는 애들이 더 많이 온다는 야그다. 아버지는 돈벌고 애들 돌보는 것 외에 할 일이 많다. 엄마는 돈벌고 애들 돌보는 것만 한다. 이런 경우를 많이 봤기에 내가 스스로 결론 지은 것이지 오해는 없기를 바란다. 우리 엄마도 같은 경우였다. 암튼 고아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는 나의 결론의 이유다. 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라 세상 온갖 불쌍한 모습을 해야 하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다. 당당하고 활발하고 명량하다. 여기서 나의 결론 또 한가지. 성격은 타고 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최고의 환경과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어도 몸 속에 뿌리박혀 있는 우울은 소리없이 자라 어느날 거대한 나무가 되어있기도 하다. 빨강머리 앤에게도 왜 우울과 슬픔의 뿌리가 없을까마는 어쨌든 우리가 아는 앤은 그런 것쯤 싹이 날때 댕강 잘라버리는 성격을 가진 애다. 빨강머리앤이 책 뿐아니라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로 드라마로도 상연됐었다고 한다. 그런데 시리즈 별로 책하고는 좀 다른 부분도 있는 모양이다. 볼까 말까... 어쨌든 저자는 박홍규는 책 속의 앤과 드라마의 앤을 분석하며 자기 딸 미령에게 편지를 쓴다. 박홍규는 딸 미령에게 대화하며 딸과 함께 앤을 분석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의 딸 미령은 지금 출가해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부모는 장성한 자식을 보면서도 그의 어렷을 적 모습을 같이 기억한다. 자식이 그의 자식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너는 그 나이 때 이랬는데...라고. 내가 그렇다는 야그. 그래서 80이 되어도 자식은 아직 어리다. 엊그제 가수 시네이드 오커너가 저세상 사람이 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직 젊은 그녀가 왜? 뉴스를 듣고 처음 드는 생각이다. 정확히는 모르나 최근 17세 아들을 잃었고 정신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자식의 상실만큼 큰 상실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 박홍규가 딸 미령에게 부탁하는 말의 일부로 독후감을 대신한다. " 이 새벽에 문득 앤 그림을 그리다가 네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 한 자 적어본다. 네게 뭘 하지 마라, 고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평생 노력했지만 오늘만큼은 참고 들어주었으면 좋겠구나. 무엇보다 아이를 앤처럼 자유롭게 자라게 해주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으로 키우지 마라. 부모 찬스니 스펙 조작이니 하는 더러운 짓은 제발 상상도 하지 마. 가난한 집 아이라고 함께 놀지 못하게 하는 비인간적인 부모가 되지 말아라. 마릴라나 매슈처럼 딸도 아닌, 그냥 가족으로 입양한 아이인데도 지극한 사람으로 키우는 그런 어른이 되어주렴. 그들이 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당당하게 자라도록 도와준 것처럼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기억하는 너는 나의 앤이지. 앤과 비교할 것도 없지. 모든 부모에게 그렇듯이 세상에 둘도 없는 딸이고 아들이지. 그 유일성을 지켜주는 게 바로 부모란다. 세상이 요구하는 틀에 집어넣어 인형처럼 만들지 마라. 앤이 인형처럼 변하는 모습은 섬찟하잖아? 그래서 나는 [빨강머리 앤]만 좋아하고 그 뒷이야기는 싫어했어. 너는 운이 좋은 아내이자 엄마이고 딸이란다. 그러나 앤처럼 언제나 네 유일성을 잊지말고 살아가길 바라. 이렇게 긴 편지를 쓴 이유도 바로 그거야. 나도 편지를 쓰는 동안 '이제 여생을 나의 유일성을 찾는 시간으로 살아볼까' 생각해보았단다. 그래, 우리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지겠지? 사랑한다. 딸아. 우리, 앤처럼 살자. 자기만의 삶을 살자. 기성의 속물이 되지 말자. 나를 세우되 남을 돕자. 야만에 맞서 바르게 살자. 그래서 다시 '앤'처럼 살아보자. 앤은 못생기고 충동적이고 때로 거만해. 한마디로 문제아일지도 몰라. 그런데 앤은 계속 문제를 일으키기에 펄펄 살아있어. 앤이 만약 바른생활 어린이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겠지. 앤은 어린 반항아이자 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어린 아나키스트야. 그래, 뭔가 새로운 게 나오려며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p23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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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 카뮈는 노벨 문학상도 받았고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도 많아 여러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러나 파농은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 카뮈와 파농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특히 그들의 식민지관에 대해. 저자는 식민지로서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 알제리와 조선을 비교한다. 일본식민지 정책이 프랑스, 영국, 스페인등의 서방을 모방한 것이며. 특히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 정책에서 언어교육을 통한 '동화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130년 동안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 카뮈의 문학이 식민주의를 문학에 반영하지 못한 것을 지적한다. 35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국이 해방되고도 일제를 청산하지 못해 지금까지 겪는 어려움을 생각하면, 무려 100년이상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 카뮈가 알제리해방을 찬성하지 않고 동화정책에 찬성한 것은 그의 평생 그가 프랑스인으로 착각하고 살아오게 한 주변 환경과 정책, 역사에도 책임이 있지만, 그럼에도 비슷하게 같은 환경에서 살았지만 다른 입장을 취했던 파농같은 인물이 있다. 유대인은 쓴나물과 누룩없는 빵을 먹으며 선조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전통을 통해 자기의 언어와 풍습을 지켜왔다. 카뮈의 정치적 성향은 아나키스트였기에 취한 태도였다고 변명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역사적, 정치적, 환경적 상황을 직시하지 않으면 자기가 어떻게 사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수 없는 것이다. 지금 나는 역사의 물결 속에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이책을 읽고 드는 생각이며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언젠가는 역사의 심판을 받고야 만다는 생각이 든다. 카뮈와 파농은 모두 알제리 출신이다. "프랑스인이나 유럽인은 카뮈를 결코 알제리인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알제리를 설명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뮈는 알제리를 빼고서 절대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고 작가 박홍규는 말한다. 그러면 알제리가 어떤 나라인지 잠시 알아본다. 알제리의 현재 정식 국명은 '알제리 민주인민공화국'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20배가 넘고 남한보다 40배 이상이나 인구는 2천만 명을 조금 넘는다. 그러나 내륙은 대부분 사하라 사막이어서 사람들은 북쪽 해안가에 모여 산다. 수도 알제는 지중해에 면한 바닷가에 있고, 인구는 2백만명 정도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는 대단히 크고 현대적인 도시 중의 하나다. 1954년부터 시작된 알제리 해방투쟁은 쿠바, 베트남과 더불어 20세기 후반 민족해방투쟁의 거대한 발자취였다. 알제리의 선주민인 베르베르족은 기원전 2세기에 침입자인 카르타고를 격퇴하여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곧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7세기에는 아랍인의 지배를 받았으며, 16세기 이래 다시 터키인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1830년 프랑스가 침략했다. 터키는 곧 프랑스에 항복하여 알제리는 1834년 프랑스 영토로 선언됐으나, 선주민은 1871년까지 프랑스와 싸웠다. 1850년 11만 헥타르 정도였던 식민자 소유지는 1세기후 그 100배로 늘었다. 반면 알제리 농민이 소유한 국토의 1/3은 대부분 황무지였다. 1940년 반이상의 농가가 토지를 갖지 못했고, 농민의 칼로리 섭취량은 유럽인의 1/3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야말로 빈곤의 극치였다. 식민지화는 문화 강제의 역사였다. 1850년경 프랑스 교육제도가 강제된 이래 1세기동안 아랍어 교육은 금지했다. 1938년 아랍어는 외국어로 인정되었는데, 그것이 프랑스어와 함게 공용어로 인정 받은 것은 1947년 이후다. 초. 중등학교에서는 일주일에 두시간만 가르칠 수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취학률이 15퍼센트 가량이었다. 알제리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약간의 반란이 이어지다가 1945년 4만명이 죽은 대학살을 계기로 민족운동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1954년 민족해방전쟁이 터져 1962년에 끝났다. 카뮈는 1960년에 죽었다. 알제리 민족해방 2년 전에 죽은 것이다. 그의 생애는 제국주의 식민지와 떼려야 뗄 수 없으나, 1940년부터 알제리를 떠나 있었다. 반면 파농은 전쟁이 터지기 1년 전인 1953년에 알제리에 와서 전쟁이 끝나기 1년 전인 1961년에 죽었다. 전쟁동안 카뮈는 프랑스에 있었고 파농은 알제리에 있었다. 두사람이 살아 생전 알고 지내지는 않았다. 저자는 거의 모든 카뮈의 작품에서 낱낱이 그의 식민지관을 짚고, 파농의 작품과 일생을 깊이 있게 적고 있다. 이렇게 재밌고 깊이 있는 글을 쓰는 박홍규의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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