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12-10(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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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엄사 금정암 설경
    「섬진강 편지」 -화엄사 금정암 설경 금정암 일연스님 부탁으로 지난 겨울에 담은 화엄사 금정암 설경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젊은 시절 2달 동안 머물면서 고시공부를 했다는 불교신문 기사를 보고 금정암이 새삼스러워 다시 꺼내봅니다. 평등과 공정을 향한 그의 정신에 지리산의 기운이 서려있었구나! -금정암 설경 -화엄사 설경 -노고단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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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편지
    2025-12-06
  • 노고단 첫눈길
    「섬진강 편지」 -노고단 첫눈길 천왕봉 보다 조금 늦게 오셨다. 노고단 첫눈, 첫눈 길을 밟아 노고단에 올라 시린 발가락을 어르느라 동동거리며 섬진강을 내려다본다. 11월에 2번의 문상을 다녀왔다. 외사촌형과 몽피다. 그 이들에게 좀 더 따뜻했어야 했다. 지리산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따뜻함에 대해 묻고 묻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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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편지
    2025-12-02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1주기 추도시 연재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1주기 추도시 연재 보고 싶다는 말 권 민 경 우리의 짝사랑은 언제 끝날까 나는 보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문다 침묵은 아니다 정체 모를 기관에서 자꾸 솟아나는 말하자면 내가 어떤 애를 쓰고 있지 않아도 솟아나 는 호르몬이나 내 몸을 돌고 도는 피의 흐름 막을 수 없이 일어나는 일들 몸의 작용보다 속도가 빠른 마음 작용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 하루가 오고 가는 속도 누군가는 순리라 부르는 자연스러움 그런데 난 왜 자꾸 어지러울까 소용돌이 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사람은 잊어야 살 수 있다는데 솟아나는 감정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해가 지고 모두가 사는 집에 작은 불이 켜지고 매일 켜지는 불을 순리라 하진 않겠지만 삶이라 부를 순 있을 것 자연스러운 슬픔처럼 ------------------------------------------------------------------------ <시인의 말> 충분히 추모해야 비로소 내일을 살 수 있다. 심술과 악의는 내일로 나아가려는 행진에 발을 건다. 물론 타 인에 공감하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 은 곧 나를 위한 일임을 믿는다. 삶 속에서 몇 번이나 슬퍼질 미 래의 나를 위한 예비를 하는 일. 나는 타인을 위해 기도하고, 그 것은 ‘너’와 ‘나’를 포함한 ‘우리’를 위한 일이다. 기도는 조용하지 만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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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찾아서
    2025-12-01
  • 가을강빛
    「섬진강 편지」 -가을강빛 새벽길 모처럼 좌회전을 합니다. 마을 앞 첫 신호등에서 우회전은 지리산, 좌회전은 섬진강 영하의 날씨라 물안개를 기대하고 좌회전을 합니다. 풍경 하나가 생의 길을 바꾸기도 합니다. 저에겐 섬진강이 그렇습니다. 가을강빛 담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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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편지
    2025-11-22
  • [벗자편지] 함께읽기 4_똥폼:함께 살자는 그 말, 아주 힘이 센 그 말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엔 ❹ 똥폼이 월간정상순에게 “함께 살자는 그 말, 아주 힘이 센 그 말” 꼭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⑤ 변화를 갈망하며 파동을 느끼는 친구들에게 “겨드랑이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똥폼이 월간정상순에게 “함께 살자는 그 말, 아주 힘이 센 그 말” 똥폼 비가 그쳤어. 구름이 동쪽으로 천천히 움직여. 물기를 잔뜩 머금은 무겁고 어두운 구름. 먹구름이 파란 하늘에 잠시 자리를 내어 주면 나는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며 하늘을 봐. 한 줄기 햇살 사이로 들려오는, 여치인지 귀뚜라미인지 메뚜기인지 스무 해를 살고도 여전히 분간 못 하는, 곤충들의 울음소리. 이제 가을인가 봐. 어제 텃밭을 정리했어. 대파는 두 줄 남기고 다 뽑고, 지난해에 먹다 지쳐 제풀에 올라온 토마토는 그냥 두었어. 팥 이파리는 무성한데 열매도 실할지. 주말엔 호박넝쿨을 거둬 내야겠어. 무씨를 뿌려야 하니까. 정리된 밭은 말끔하겠지만 그만큼 또 쓸쓸하겠지. 실은 날이 갈수록 붉어지는 토마토와 보랏빛 선명한 가지를 볼 때마다 뒤로 물러날 여름을 실감했지. 순간을 살기로 마음먹었지만 오지 않은 시간을 끌어당기는 버릇을 난 아직 어쩌지 못했어. 이맘때가, 그러니까 월말 공연을 끝내고 다음 달 공연을 시작하기 2주 전까지가 가장 한가한 시간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맞니? 좀 쉬고 있는 거야? 네가 처음 달마다 공연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속으론 많이 걱정했어. 다시 머리가 아프면 어쩌나, 몸에 기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관객과 한 약속이니 지키려고 또 얼마나 애를 쓰려나.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생각이 많았어. 다만 한 가지, 공연을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하겠다는 선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이더라. 도망, 가고 싶니? 산내에 내려온 지 이제 꼭 스무 해가 되었어. 절반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가고 싶다”던 최승자의 시를 읊조리며 살았고, 나머지 절반은 단전에 잔뜩 힘을 넣고 ‘버텨 보겠어’를 주문처럼 외우고 살았지. 가끔은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이 마을의 성평등 감각과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는 성인지 감수성에 거품을 물기도 했어. 시골은 단언컨대 남성에 최적화된 거주지다. 기본값 ‘남 성’이 그 어느 곳보다 활성화되는 장소다. 이 때문에 마 을회관은 늘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누워서 빈둥거리며 TV를 보는 거실 혹은 방 중심의 남성 공간 과 그 남성을 위해 밥을 짓고 상을 차리는 여성들이 분 주하게 움직이는 주방 공간. 귀농 후 첫해는 누구보다 열심히 성별분업의 현장을 수용하며 살았다. 고무장갑, 호미, 목장갑, 앞치마 4종 세트를 상시 휴대하며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 이다. - 정상순, <정상순의 브런치> 2021. 1. 기억나니? 그때마다 우리도 저들처럼 힘을 갖고 싶다고, 동등해지자고 두 손을 불끈 쥐기도 했지. 마을 노동이 성별에 따라 나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니 가사노동이 부불노동unpaid labor인 까닭을 생각해야 했어. 동시에 가사노동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괜찮은 건지, 충분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었지. 왜냐면 결국은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누군가 대신해야 하니까. 게다가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기 가족 아닌 다른 이의 가족을 돌봐야 하는 이주 노동자일 테니까. 우리는 백만 이주 노동자와 함께 살고 있고 이미 그들 없이는 농사도, 돌봄 노동도, 공장 노동도, 택배 노동도 지금처럼 지속될 수 없을 테니까. 그래, 마침내 다시 생각해야 했어. 스무 해 전 너와 나는 왜 이곳으로 왔는지. 우리가 꿈꿨던 것은 생태적이고 자립적이며 조화로운 삶이었어. 환경을 해치지 않고 자연을 망치지 않으면서 함께 사는 삶을 원했지. 그러나 생태적이며 자립적이고 조화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밑 빠진 항아리를 채우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우리가 생각하는 자립이 누군가가 희생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다시 멈춰 서야 하지 않을까. “페미니즘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십니까?” 지난해에 한 환경운동가가 내게 물었어. 나는 우선 그 사람 질문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이야기를 이어갔지.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하던 중이었는데 교육 시간 내내 이분이 보인 태도는 호의적이지 않았거든.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동등한 것으로 만드는 데 만족하는 주의 혹은 주장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누군가를 착취하거나 배제하는 것으로 개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이제 제가 질문하신 분께 다시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겠습니까?” 나는 그 질문을 네가 이어받았다고 생각해. 질문, 하고 싶니? 「월간정상순」 4월호에서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우린 서로를 돌보는 것’이라 선언한 순간이 그랬어. 아픈 사람을 무능력한 존재로 보는 사회, 아프지 않은 몸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 생산하지 않는 존재를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 절하하는 사회에서, 능력이 무엇인지, 정상적인 몸이 무엇인지, 생산성이 무엇인지 질문했으니까. 아팠지만 내 인생이 총체적으로 망가진 건 아니었어. 그 러나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나를 망가진 무엇으로 대했 지. 그러지 않고서야 건강을 위해 살을 빼라느니, 생리 통이 줄어들게 임신을 하라느니 저런 말들을 저토록 쉽 게 내뱉을 수는 없었을 거야. 너도 반찬 맡기고 빨래 맡기고 그렇게 의존하며 살면서 왜 나만 그렇게 독립적 이길 요구하니? 대체 의존적이라는 게 뭐니, 독립적이라 는 게 뭐야? - 「월간정상순」 4월호 5월호는 필수노동인 가사노동을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위치시키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해 질문했지. 임신, 출산, 양육의 시기를 거쳐 노동시장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여성들에게 경단녀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이들에게 왜 경단녀냐고, 경단녀 아니고 경력 보유 여성, 경보녀라고 소리쳤어. 무엇보다 ‘남자들을 따라잡는 그 길’ 아닌 다른 길을 찾으려는 여성들을 상상할 수 있어서 좋았어. 나는 졸라 열심히 일했어요/ 먹고 살기 위해서란 말은 마요/ 그런 말은 당신 말고 내 몫이니/ 누구 덕에 먹고 사나 생각해 봐/ 돈 벌어와 으스대면 가장이니/ 가장이 란 살림하는 사람인 걸/ 이제부터 가장은 너 아닌 나/ 가사노동자라네 (…) 백만이주노동자를 밟고 섰네/ 돌봄 가사 농사 택배 공장 노동/ 남자들을 따라잡는 이 길 말고/ 다른 길은 없나/ 다른 길 만드세 - 「월간정상 순」 5월호 6월호는 고기 이전에 생명이라는 존재들의 호소 즉, ‘단 한 번만 멈춰 서자’는, ‘단 한 번만 돌아보자’는, ‘먹히기 위해서 사는 삶은 없다’는 비인간동물들의 피를 토하는 호소였어. 단 한 방울의 피도 손에 묻히지 않고 남의 살점을 입에 넣을 수 있는 이들에게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었지. 우리는 붉은 피를 손에 묻힌 도살장의, 상업적 어선의 저 많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얼굴 가진 동물들을 보지 않았습니다. 소가 돼지가 닭이 그러하듯 우리는 동물입니다. 당신도 그러합니다. - 「월간정상순」 6월호 7월호는 마을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한 마을 주민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고민하는 시간이었어.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숨어 있어야 해?’라는 대사를 곱씹었다는 관객도 있었지. 현식이 엄마 얘기 들어 주지 마. 그 얘기 듣고 여기 와 서 옮기지도 말고. 니가 뭔가 중간에서 해 보고 싶을 수 있는데, 지금처럼 현식이 엄마 말 나한테 전하는 거,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그냥 살던 대로 사 는 거야. 그러다 너 제풀에 지쳐서 나도 할 만큼 했는 데 중간에 끼어서 내가 제일 힘들다느니, 내가 피해자라 느니 그런 말 하게 된다.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어. 내 딸이, 그리고 내 딸 친구들이 지금 어떤 지옥에 있을지 상상이 안 되면 그냥 가만히 있어. 그래도 꼭 무슨 말 이 하고 싶거든. 현식이 엄마한테 가서 말해. 현식이 공 부시키라고. 똑같은 짓 다시 안 하게 공부시키고, 제대 로 된 처벌 받으라고. - 「월간정상순」 7월호 8월호는 ‘가난한 자 뒤에 서서 세상을 망치고 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이었지. 왜 세상은 점점 살 만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곳이 되어 가는지, 우리가 함께 살 만해지려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어. 누가 세상을 망치나. 가난한 자 뒤에 서서. - 「월간정 상순」 8월호 곧 선보일 9월호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성과 난민을 다룰 거라고 들었어. 그래, 9월호에서만큼은 몇 해 전, 예멘 난민에게 보였던 미숙함과는 다른 환대의 언어와 행동이 넘실거린다면 좋겠어. 돌아, 보고 싶니?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에코페미니즘에 분노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어. 시골에 내려와 살아 보니 농사가 요구하는 집약적 노동을 대부분 여성이 감당하고 있더라. 그런데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철없이 과거를 복원하거나 과거로 회귀하자며 변죽만 울리는 것 같아 답답했지. ‘돌봄 노동이 중요하다는 건, 그래 알겠다고. 근데 나더러 평생 재생산노동에 뼈를 갈아 넣으라는 거야? 페미니즘을 통해 성별 고정관념이나 성별화된 노동에서 겨우 벗어났어. 근데 뭐야, 이건 그때로 다시 돌아가라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좋으면 당신들이나 해. 평생 애도 안 키우고 살림도 안 해 본 거 같은 사람들이 말만 번지르르하네.’ 내 마음속 저항은 어마어마했어. 처음 이곳에 내려왔을 때 생태주의자 흉내를 내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어. 하루를 비닐봉지 씻어 말리는 일로 시작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네. 하지만 지역으로 내려와 도시와는 다른 삶을 살고자 했을 때, 생태적으로 자립적으로 조화롭게 살고자 했던 나에겐 페미니즘적 사유가 없었어. 도시나 지역이나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패배감이 더 컸던 시간도 있었지. 그런데 마침내 페미니즘적 사유를 하게 됐을 때, 귀농을 결심했을 때와는 달리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사고가 상대적으로 약해진 나를 발견했어. 난 여전히 권리 투쟁 중이었거든.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여성의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확장해야 한다는 욕망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남녀 불평등은 더 심해지는지, 여성 혐오와 여성을 향한 폭력이 멈추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지 살피지 못했어. 결국 너와 내가 왜 이곳으로 내려왔는지 그 까닭을 금세 잊고 말았어. 그리고 오랫동안 굳이 그 까닭을 다시 묻지 않았어. 한 달 전쯤 같은 마을에 사는 인터뷰 집단이 나를 만나러 온 적이 있어. 간단한 소개를 듣고 싶다기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을 구성원 중 한 명입니다.”라고 대답했지. 너도 알다시피 내가 부캐가 많잖아. 닉네임도 여러 개고.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부캐도, 어떤 닉네임도 나를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을 주민’이라는 말을 능가할 답을 찾지 못했달까. 며칠 전엔 지역 에코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초대됐는데 또 “어떻게 살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어. 내 대답은 같았어.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그들이 꺼낸 질문은 줄곧 너와 내가 우리 자신에게 했던 질문이었어. 지난해, 몸이 몹시 아프던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생각했어. 원래 생각이 많은데, 아파 누운 시간이 많아지니까 정말 생각이 많아지더라. 내친김에 묻고 또 물었어. 나는 왜 도시 삶을 접고 이곳으로 내려왔는지, 그리고 지금 왜 이곳에서 삶을 이어 가고 있는지. 응답, 하고 싶어 땅을 살리고 씨앗을 살리는 일이 여성으로서 네 몸을 소외시키지 않는 일이며 재생의 에너지와 재생산 권리 (능력)를 되찾는 일에 다름 아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임신 출산 육아 노동을 고된 노동으로만 여기 지 않고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노동임을, 다른 노동의 가 치에 견주어 하위에 속하는 노동이 아님을 좀 더 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리하여 임출육의 기간 이후에 찾아올 상대적 자유를 배우자 따라잡기에 허비 하지 않고 캐롤 엠쉬윌러Carol Emshwiller의 놀라운 소 설 「애들」의 여성들처럼 남성들에게 “우리처럼 살라” 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 <정상순의 브런치> 2020. 11. 아마도 지금 우리는 페미니스트로서 이 사회에 깔린 구조적 모순을 기억하는 사람들일 거야. 모순된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일 거야. 페미니스트로서 인식한 가부장제의 모순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음을 똑똑히 알고 그 시스템에서 모두가 벗어난, 해방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내가 해방이라는 말을 쓸 줄 이야)일 거야. 그래서 나는 보다 작은 원으로 둘러앉고, 보다 작은 모임을 꾸리며, 보다 작은 극장에서, 보다 적은 수의 관객과 마주하는 너를 응원해. 더 작게 모이고, 더 가까운 곳을 바라보고, 더 적은 양에 만족하는 일로 너는 이 지긋지긋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벗겨 내고 있잖아.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바꾸지 못한 나는, 너에게서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방법을 배워. 여전히 힘이 필요한 순간들을 느껴. 하지만 나는 누군가와 동등해지기 위해 힘을 쓰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어. 세상 어떤 존재도 누군가를 위한 쓸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감각, 권리에 대한 주의나 주장만으론 바꿀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사유, 함께 사는 해방된 삶에 대한 원대하고 창대한 상상. 만약 힘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면 이 감각과 사유와 상상을 키우기 위해서일 거야. 내가 잘 살기 위한 권리가 아닌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해방의 투쟁, 이것이 스무 해를 이곳에서 살아 내며 너와 내가 함께 가게 된 길임을 믿어. 해가 졌어. 구름이 별을 가릴지도 모르지. 한낮에도 하늘은 무겁고 흐렸으니까. 하지만 나는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떠오르면 다시 아침이 온다는 걸 알아. 낮에는 뵈지 않는 달과 별이 늘 거기 있다는 것도 알아. 우리가 함께한다는 걸 알아. 그래서 오늘은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걱정하는 나를 좀 봐주려고 해. 이번만큼은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돌보려고 해. 그러지 않으면 미래는 영영 오지 않을 테니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는 함께 평화로울 수 없을 테니까. 함께 평화롭기 위해 나는 네 손을 잡을 테니까. 이윽고 우린 다른 이와 손을 잡고 있을 테니까.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면 우린 먹구름 속에서도 별과 달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면 결코 길을 잃지 않을 테니까. ◌ 똥폼 ◌ 산내 사는 ‘마을 사람’. 공연 플랫폼 ‘월간 정상순’에서 한 달에 한 번 뛰놀고, 농한기 마을극단 ‘떼아뜨르 마고’, 페미니즘 공연예술단 ‘아무튼, 유랑단’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만끽 중이다. ** 여러 각주가 있으나 <지리산인> 지면엔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가진 구조적 착취를 꼬집는 「월간정상순」 8월호는 똥폼이 보내는 이번 편지와 주제가 맞닿아 독자들을 <<벗자편지>>에 전문을 실었으나, <지리산인> 지면에는 담지 않았습니다. 책에서 확인해 주세요.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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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1-21
  • [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4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
    지리산뱀사골탐방안내소 자료집 『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 _빨치산과 토벌부대, 그리고 사람들 2008년 5월 10일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발행 <지리산인>은 과거 지리산에 깃들었던 빨치산과 이들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기회로 『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의 전문을 총 10회에 걸쳐 싣고자 합니다. 연재 순서 ➊ [연재를 시작하며] 지리산 소개 + 책을 내며 ➋ 빨치산이란 무엇일까요? +지도로 보는 빨치산과 토벌부대 루트 ➌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1 ➍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 ➎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➏ 토벌부대는 어떤 활동을 했을까요? ➐ 숙명의 대결, 토벌군 사령관 백선엽 ➑ 뱀사골에서 있었던 일-1 ➒ 뱀사골에서 있었던 일-2 ❿ 뱀사골탐방안내소, 전시관을 열다 이번 시간은 <➍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을 함께 보겠습니다. 알립니다. 책 <그들이 지리산으로 찾아든 까닭> 글 가운데 '반란군'이라는 표현처럼,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거나 표현이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더러 있습니다. <지리산인>의 역사 인식과 다른 점이 있음에도, 빨치산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부족한 현실에서 독자들께 빨치산 역사에 더 다가갈 기회를 드리고자 역사적 자료로서 이 책을 인용하여 싣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좀 더 나은 자료를 찾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 지리산 빨치산, 조직력을 갖추다 그러자 국군은 반란군 토벌을 위해 10월 21일 광주에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10개 대대를 동원하여 공격하기 시작했다. 토벌부대는 10월 27일까지 순천과 여수를 탈환하고 진압작전을 벌였는데, 반란군 패잔병 350여 명이 광양 백운산과 지리 화엄사골, 웅석봉 같은 깊은 산으로 숨어들었다. 이듬해인 1949년 4월 9일 지리산 뱀사골 반선마을에서 반란부대장인 김지회와 홍순석이 사살되면서 여수, 순천 사건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잔여부대원들은 빨치산(야산대)에 합류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정규군의 형식을 갖춘 빨치산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사진 : 1952년 2월, 빨치산의 습격에 대비하여 요새 같은 방어 태세를 갖춘 경찰서) 이들은 지휘관이 되어 구빨치산을 이끌었다. 이때 빨치산의 대표 인물인 이현상이 등장했다. 남로당의 지령을 받은 이현상은 지리산 빨치산의 정치위원으로 참가했는데, 스스로 지리산으로 지원해서 반란군 잔여세력을 기반으로, 부근의 야산대와 반란에 동조했다가 도피 중인 민간인을 모아 ‘지리산 인민유격대’를 조직했다. 1949년 7월부터는 공식 명칭을 ‘제2병단’이라 했는데, 이것이 지리산 빨치산의 시작이었다. 격렬했던 투쟁 1950년 6월 25일 전쟁과 함께 빨치산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현상이 이끄는 구빨치산은 지리산을 떠나 월북을 결심하고 북상하던 중 전쟁소식을 들었다. 이 부대는 다시 낙동강전선으로 배치받아 활동했는데, 9월 15일 유엔군과 한국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상황은 다시 뒤집어졌다. 북으로 후퇴하던 이현상의 구빨치산은 다시 당의 지령을 받고 남하하여 1951년 5월 중순 덕유산 송치골에서 도당회의를 열어 ‘남부군’이라는 대규모 군사조직 체계로 개편했다. 이때 빨치산의 조직총책인 이현상이 남부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이들 남부군 850여 명은 남쪽으로 진군하며 속리산,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에 자리잡았다.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갔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로를 잃어버린 북한의 정규군, 인민위원회 주도세력, 우익세력의 보복이 두려웠던 사람들이 다시 산으로 모여들게 되는데, 이때부터 ‘한국전쟁기의 빨치산(산빨치산)’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규모 군사조직체제롤 개편한 남부군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강력한 유격투쟁을 전개했다. 주로 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게릴라전에서 대낮에도 전면전을 불사하는 전투를 하게 되었다. 전쟁 기간 동안 이 일대에는 2만여 명이 모여들어 남한 내의 인민공화국 지대가 만들어졌다. 이때 지리산은 ‘빨치산의 왕국’이라 부를 정도로 그들의 세력과 규모는 대단했다. (사진 1952년 1월 14일, 전주교도소로 이송되는 빨치산들 역사 속으로 저물다 빨치산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자 1950년 10월 11사단이 창설되어 빨치산의 근거지가 될 만한 모든 곳을 제거한다는 ‘견벽청야’ 작전을 통해 토벌작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부군 창설과 함께 위기감을 느낀 유엔군 사령부는 1951년 11월 26일 남원에서 백선엽을 사령관으로 하는 ‘백야사(백선엽 야전전투사령부, Task Force Paik)’를 창설하여 이듬해 3월까지 군인과 경찰합동으로 대대적인 동계토벌작전을 벌였다. 이때 빨치산은 큰 타격을 받게 되는데, 사살되거나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약 2개월 뒤 지리산 빗점골에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빨치산 5명과 함께 사살되었다. 이후 1954년 2월 27일 전남도당부위원장 김선우가 백운산에서 전사하고, 도당의 지도자들이 죽음을 맞았다. 산속으로 뿔뿔이 도망친 빨치산은 정부의 끊임없는 항복 유도 방송과 추격전으로 점점 소멸되었다. 1955년 7월 1일 빨치산 토벌을 목적으로 편성되었던 토벌부대 또한 빨치산 소멸과 함께 해체했다. 그리고 1963년 11월 12일 새벽, 산청에서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생포되면서 빨치산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사진 마지막 빨치산인 정순덕과 이홍이가 가지고 있었던 무기 치열했던 빨치산의 역사는 저물었지만 지금도 그들에 대한 연구와 평가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현대사의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살을 에는 듯한 혹한의 겨울산을 누비며 그들은 무엇을 주장하고,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지금 그들이 살아 있다면 현 시대를 향해 무어라고 토로할 것인가? 지리산은 그들의 못다 이룬 꿈마저도 조용히 품어주고 있다. 다음 시간에 "➍ 빨치산이 생겨난 배경은 무엇일까요?-2"이 이어지겠습니다.
    • 문화예술
    • 책마을
    2025-11-21
  • 노고할미 수묵화
    「섬진강 편지」 -노고할미 수묵화 산 아래서 기상청산악날씨 정보 하나 보고 산 위 날씨가 좋으니 나쁘니 하지만 택도 없는 일이다. 시시때때 시시각각 변하는 노고단의 날씨를 누가 장담하랴 이런저런 핑계 대지 말고 오라는 노고할미 말씀이시다. 자, 보아라 잘 왔다고 노고할미 수묵화 한 점 선물로 내어주신다.
    • 문화예술
    • 섬진강 편지
    2025-11-19
  • 박두규 시집‘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나눔잔치
    박두규 시집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나눔잔치. 00:00 인트로 00:44 여섯줄의 행복 / 구례 기타 그룹 공 01:44 시낭송 - 윤성호 / 고향친구 04:03 시낭송 - 임우기 문학평론가 05:34 시낭송 - 정지아 작가 06:46 시낭송 - 김유철 시인 07:44 시낭송 - 박남준 시인 10:44 박성훈 가수 축하공연 12:00 시낭송 - 김민해 목사 13:11 시낭송 - 나종영 시인 14:34 시낭송 - 복효근 시인 15:30 시낭송 - 정성권 시인 16:52 시낭송 - 김인호 시인 18:17 시낭송 - 김경윤 시인 22:35 판소리 축하공연 - 김근수 / 친구 34:28 박두규 시인 인사말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5-11-17
  • [시를찾아서] 뒷간에 앉아 보낸 세월
    뒷간에 앉아 보낸 세월 박 두 규 사진: Unsplash의Marko Lengyel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있으면 강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강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쪼그려 앉아 바라보는 두텁나루의 아침은 또 다른 세상이다. 새들은 날아오르거나 자맥질하거나 바위에 외다리로 서 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경이로운 풍경 속 점 하나로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세상은 그 세상대로 이 세상은 이 세상대로 쪼그려 앉아 다리가 저린 세상,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해가 가고 한 생이 간다. 그렇게 지리산 어느 구석 바위틈에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구절초 하나 홀로 피었다 진다. ------------------------------------------ <시작 노트> 거처가 강가에 있다 보니 매일 흐르는 강을 보며 산다. 흐르는 세월이다. 촌음도 멈추지 않고 세월이 흐르고 있음을 매일 느끼며 사는 것인데 이는 生의 무상함으로 온다. 붓다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두텁나루숲 뒷간에 앉아 하나의 풍경으로 보는 것이다. 모두가 스스로에 주어진 한 生을 보내는 촌음의 시간인데 누구의 눈길이 부럽거나 두려울 게 무어 있을까. 지리산의 홀로 핀 구절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디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살다 가지만, 세상의 비와 바람을 다 맞고 꽃을 피워 스스로 봄이 되고 벌과 나비의 양식이 되고 씨를 맺어 생명을 잉태한다. 평생을 한 곳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건만 스스로에게 또는 세상에게 하지 않은 것이 없다.
    • 문화예술
    • 시를 찾아서
    2025-11-04
  • [벗자편지] 함께읽기 3_칩코; 삶이 신비가 되려면
    <지리산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벗자편지>>를 펴낸 니은기역 출판사입니다. 자급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고 나와 둘레를 돌보며 고귀한 하루를 살려는 농부들의 편지, <<벗자편지>>를 여기 <지리산인>에 한 달에 한 번, 한 꼭지씩 들려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나의 시간을, 나의 생산수단을, 나의 재주를 좀 더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이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엔 ❸ 칩코 : 말이 글이 되게 해 주는 이들에게 "삶이 신비가 되려면" 꼭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다음 시간엔 ❹ 똥폼이 월간정상순에게 “함께 살자는 그 말, 아주 힘이 센 그 말” 이 함께합니다. 고맙습니다. 말이 글이 되게 해 주는 이들에게 “삶이 신비가 되려면” 칩코 도인의 딸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습니다. 어느 부부나 그렇듯 둘은 상극이었습니다. 아빠는 멋쟁이셨어요. 어딜 가나 사람들 시선을 사로잡는 유머와 언변이 있었고, 동안 외모에 옷은 명품을 두르고 다녔습니다. 명품이 아빠의 지갑 형편에 맞아서는 아니었습니다. 저흰 집도 차도 없었으나 아빠는 ‘없어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빠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집도 차도 없이 자랐습니다. 친척 집을 전전하고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고 아는 형들에게 얻어터지는 것이 아빠가 기억하는 그의 유년 시절이에요. 아빠는 세 딸을 ‘없어 보이지’ 않게 기르는 것에 가장 열과 성을 쏟았습니다. 어쩌다 돈만 생겼다 하면 딸들을 백화점에 데려가 비싼 옷을 입혔고, 먹다 체할 듯한 분위기의 고급 식당에 앉히곤 했습니다. 대학 시절 저는 또래에게서 찾기 힘든 브랜드 옷을 입고 다니는 바람에, 우리 집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제가 왜 국가장학금을 꼬박꼬박 받는지, 학교 근로장학금은 왜 학기마다 신청하는지 이해를 못 하기도 했습니다. 엄마로 말하자면 도인이었습니다. 어디서 배우지도 않았는데 벽을 보고 틀어 앉아 명상했다는 것이 엄마의 유년 시절이에요. 결혼 생활이 힘들어지면서 엄마는 더더욱 내면에 몰두했고, 온갖 영성 서적들을 탐독했습니다. 덕분에 안방엔 아빠의 ‘박정희 평전 시리즈’와 엄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따위의 ‘영성 서적’이 뒤섞인 책장이 자리 잡았어요. 어릴 적에 전 엄마와 함께한 기억이 없습니다. 엄마를 떠올릴라치면, 집에선 워낙 아빠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어서 엄마는 술 취한 아빠의 안주를 만들어 주거나 발을 씻겨 주시던 것만 기억날 뿐입니다.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게 된 것은 이혼 후 아빠가 집을 나가고 난 고등학교 시절부터였어요. 전 미운 친구가 생기면 엄마에게 하소연했는데, 엄마는 그럴 적마다 그 친구는 네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엔 사실 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요. 세상은 내 마음의 슬픔, 오만, 증오, 기쁨 등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기에, 마음 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잘난 척해서 미운 친구는 사실은 내가 잘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미운 것이고, 날 소외시켜서 미운 친구는 관심받고 싶은 내 마음 때문에 미운 것이었어요. 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의 질투와 탐욕마저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 한, 계속 다른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저를 괴롭힐 거라고 했습니다. 냉정한 상담이라고 들릴 법도 하지만, 어린 저는 그 말에 용케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어릴 적엔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다가, 나이가 들면서 엄마의 영향을 빠르게 흡수하며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삶은 아빠와 비슷했다가 엄마와 비슷한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흘렀어요. 저는 유행에 민감한 10대를 보냈습니다. 외출을 준비하느라 무려 두 시간 가까이나 쓰곤 했으니까요. 머리를 손질하고 옷을 고르고, 손톱과 발톱까지 멋을 낸 후에야 집을 나섰습니다. 화장대와 옷장은 늘 가득 차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종아리에 알이 밸까 봐 맥주병으로 마사지하며 하루를 마쳤고요. 이십 대 초반을 넘고부터는 서서히 이런 일과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서른을 바라보는 지금 저를 그때와 같은 사람이라고 보려면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명상하고, 방의 모퉁이마다 깃든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면 해가 밝아 옵니다. 집에는 거울이 없습니다. 외출 준비 시간은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편이 나아요. 계절별로 단벌인 개량 한복을 입고 집을 나서면, 내 까까머리를 보고 이웃 할머니는 ‘여잔지 남잔지 모르겠어’ 하면서 나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십니다. 이제 저는 아빠와 썩 데면데면합니다. 아빠는 ‘남자인 척하는 여자’를 가장 혐오하는데, 제가 머리를 밀고 화장하지 않고 젖꼭지를 가리지 않는 것이 남자 행세하기 위함이라고 이해하신 듯합니다. 아빠에게 여자를 만난다고 커밍아웃을 한 적은 없으나 아마 고백한다면 아빠의 이런 오해에 더욱 힘을 실어줄 듯합니다. 언젠가 아빠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는지 협박식으로 ‘난 내 자식이 홍석천 같은 놈이면 죽여 버릴 거야.’라고 한 적이 있는데요. 저는 아빠의 말을 살인 예고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빠의 눈에서 살기보다는 두려움을 읽은 까닭이어요. 살인 협박이 전혀 먹히지 않은 것은 아니라, 저도 두려움 때문에 아빠와 계속 거리는 두고 있긴 하지만요. 제가 돌연 시골 생활을 시작해 버린 것으로, ‘남자 행세’가 아니라 ‘스님 행세’였나 헷갈리시는 듯합니다. 그런데도 아빠와 영 만나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마치 이혼하지 않은 것처럼, 예전의 그 정상 가족이었던 것처럼, 아빠는 딸들을 비싼 식당에 데려가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입히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중처럼 하고 다니니, 이제 더는 아빠가 사 주시던 금팔찌나 가죽가방이나 원피스 따위가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채식하니, 아빠가 데려가던 식당에서 제가 먹을 메뉴는 전혀 없었어요. 아빠의 당황스러움과 서운함도 십분 이해는 갑니다. 아빠는 허탈하면서도 쓸쓸하게 웃으며 말하곤 했습니다. “네 엄마 명상하러 다니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었는데… 딸도 똑같이 되다니.” 늘 그렇듯이, 오랜만에 만난 아빠와 도리어 더 외로워진 마음으로 헤어지고 나면, 엄마의 말이 생각납니다. ‘삶 속에서 반복해 아빠를 괴롭힌 아내와 딸’이라고. 신은 아빠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저를 엄마와 똑 닮은 삶을 살도록 했을까요? 명상을 너무 했네 벌써 세 차례 화장실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밤새 메스꺼움에 발만 비비적대다가, 기어코 밀려오는 토기를 참을 수 없던 것이죠. 그날 새벽은 원인을 알 수 없는 구토를 여러 차례 하고, 결국 토를 받을 대야를 가져와 침대 아래에 두고서야 겨우 잠든 날이었습니다. 명상센터에서 장기 봉사를 하던 때였어요. 다음 날은 쫄쫄 굶고 나서도 메스꺼움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도 두 차례 속을 게워 낸 이후, 결국 센터를 나와 병원으로 향할 참이었습니다. 전 서구 의학으로 치료하는 병원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 애인은 심장이 아파서 심장 전문 병원에 갔는데, ‘이상 무’를 판정받았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던 애인은 요즘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그것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자신은 심장만 알기 때문에 그건 정신과에 문의하라고 했답니다. 요즘 코피를 자꾸 쏟는데 그게 심장 통증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닌지 물었더니, 다시 말하지만 자신은 심장만 다루므로 이비인후과에 가라고 했답니다. 이 사례 때문에 삐친 것은 아니고, 서구 의학은 인간을 물질로만 취급해서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인간을 영성과 물질의 유기조합으로 보는 게 아니고, 부품으로 구성된 자동차 정도로 보는 듯합니다. 저는 생물만큼은 1과 1을 더해서 2 이상이 된다고 여기거든요. 일반 병원 대신으로 대체의학 마사지를 치료받았습니다. 온몸이 멍이 들도록 마사지를 했는데 몸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국 혼자 단식 치료를 하기로 했습니다. 속이 편안해질 때까지 계속 굶었어요. 그러다 보식 양을 점차 늘려 가던 중 또다시 새벽에 구토가 시작됐습니다. 임시방편으로 동네 내과에 가서 양약을 타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갔어요. 몸은 크게 지쳐 갔습니다. 집 근처에 용하다는 한의원에 찾아갔습니다. 한의원장은 무당처럼 사람을 꿰뚫듯이 보는 집요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제 배를 이곳저곳 눌러 보고, 혓바닥을 들춰 보고, 제 최근 일정과 변화에 대해 캐묻더니 역시나 무당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기병氣病이네. 명상을 적당히 해야지, 너무 했어.” 의사는 내 몸이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위장이 건강하다고 말입니다. 다만 명상을 과하게 해서 기가 복부에서 막힌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약을 줄 테니 먹으면 한 방에 나을 것이라고, 자기도 기병을 그렇게 치료했다고 말했습니다. 별로 믿음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으나, 제 믿음과는 무관하게 저는 그 약으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구토라고 했지만, 사실 짐작 가는 바는 있습니다. 구토를 시작한 그 날. 저는 명상센터의 정화조를 홀로 청소했던 것이어요. 센터에서는 수행자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해 드립니다. 혼자 시골 생활을 할 적에 저는 가스 불로 요리하지 않고 장작을 주워 와서 불을 때서 밥을 합니다. 세제를 쓰지도 않고, 물은 극도로 아껴서 설거지합니다. 또 설거지로 더러워진 물은 절대 하수로 흘려보내지 않아요. 아무리 화학 세제가 없는 물이라 한들, 인간들이 사용하는 마을 전체의 오수와 합쳐지면 결국 강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설거지나 양치나 샤워를 한 물 모두 양동이에 받아서 텃밭에 돌려줍니다. 어차피 화학성분은 없기에 텃밭에는 유기물이 섞인 좋은 양분이 되니까요. 그럼 텃밭에 새 물을 주지 않아도 되니 물도 아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명상센터에서 실천하기는 불가능했어요. 빠른 속도로 수많은 설거짓감을 해치워야 하니 말입니다. 세제는 필수적으로 사용하라고 규정에도 있었고요. 어느 날부터 설거지하는데 역겨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설거지통 아래 정화조에 쌓인 음식물 찌꺼기가 썩어서 나는 냄새였어요. 정화조라는 걸 태어나 처음 봤습니다. 뚜껑이 닫힌 채로도 무시무시한 냄새가 나는 그곳을 열어 보는 순간, 제가 받은 충격이란. 설거지한 물이 하수로 내려가기 전에 음식물을 거르는 곳인데, 수챗구멍도 통과할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분해된 음식물 가루들이 사막의 고운 모래처럼 정화조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냄새는 그대로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지독했고요. 저는 숨을 참고 그곳을 청소했습니다. 잠시라도 숨을 들이켜면 정신이 아찔해 왔습니다. 정화조의 물을 다 퍼내고 가장 아래 있는 고운 음식물들을 다 긁어냈습니다. 네. 다시 하라고 하면 다음 생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하겠지만, 그때는 죄책감이 저를 움직였습니다. 명상센터에 있으면서 모른 척하고 흘려보낸 물 생각에 마음이 늘 무거웠기 때문이에요. 전 이 정도 거리만도 견디기 힘든 악취인데, 이게 어느 물속 생물 그들 집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못 본 척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물을 내가 마신다면, 이 물로 내가 샤워한다면, 이 물에서 잠을 잔다면……. 불쾌한 수준이 아니라 죽을 수도 있는 악취였으니까요. 얼굴도 모르는 그 물속 생물들이 뻐끔뻐끔 제게 말을 거는 것 같은 환청 이후엔, 손이 절로 움직였습니다. 수영 선수처럼 그토록 숨을 오래 참은 것도 처음이었답니다. 어느 모로 보아도 욕본 것은 맞지만, 그날 두 시간 남짓한 청소로 한 달을 몸져누운 것은 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본래 육신이 건강한 편은 아니어도, 제 평생 그 지경으로 아파 본 적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때 병은 단순한 위장 문제로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마사지 치료도, 내과 양약도, 단식 치료도 효과가 없었고, ‘요상한’ 무당 한의사가 준 기병 치료제만 말을 들었으니까요. 믿거나 말거나, 저는 그 고통이 물속 생물들이 내게 선물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한 말로 표현해 보자면, 그 정화조에 깃든 물속 생물들의 한 같은 것이 제게 붙었다고도 느껴졌어요. 무려 한 달간 금식으로 갚았어야 할 어떤 마음들이었다고요. 투명한 거미줄 제가 언제부터 벽에다 대고도 인사를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병을 앓은 이후 제 삼의 눈이라도 열린 것은 아니겠으나, 세상을 적어도 눈으로만 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명상하는 동안에는 아무리 졸려도 눈을 뜨지 않습니다. 눈을 내내 감는 것은 답답한 어둠 속에 저를 가두는 일처럼 느껴졌으나, 반대로 그 아무것도 없는 칠흑 속에서 제 생각과 감정이 쉬지도 않고 팔딱거리는 것을 깨닫게 하는 장치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혼자서 과거의 일을 떠올리면서 후회하다가, 미래의 일을 상상하면서 불안하다가, 미워하는 이를 떠올리면서 씩씩대다가,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면서 애틋합니다. 그러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현재인 내 숨에 집중하면 진정한 쉼이 찾아옵니다. 가능한 모든 물질적 자극을 차단한 어두운 골방에서조차, 저는 자신을 천국으로 데려갈 수도 있고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었어요. 명상하면서 저는 엄마의 말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엔 결국 나 혼자뿐이라는 말. 제가 바라보는 대로 세상은 펼쳐지고, 행복도 고통도 모두 제 속에서 피었다 지는 것이라는 말도. 저는 세상이 놀랍도록 공평하다고 느꼈고, 믿기 어려울 만큼 편안해졌습니다. 삶에서 물질적 조건은 중요치 않았어요. 진짜 행복은 어차피 마음에 달린 것이니 말입니다. 얼마나 더 검소한 조건에서, 얼마나 더 풍요로운 행복을 내면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해졌습니다. 느끼한 드라마 대사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라면 우린 모두 독립된 개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러하지 않은 것 같단 말입니다. 저와 물속 생물은 몇 킬로나 떨어져 있었는데, 제 손을 움직여 정화조를 청소한 것은 그들이었으니까요. 눈을 감고 상상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투명한 거미줄로 연결돼 있다고요.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한 것이 없고, 내가 아닌 것도 없다고요. 그럼 남보다 돈을 많이 벌 필요도,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질 필요도, 더 안락한 집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나’이니 말입니다. 우리 집 쓰레기를 남의 집 앞에 버릴 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내 집’이니까요. 제가 살면서 버린 과자 봉지들이 아직도 태평양에 떠다니고 있겠지만, 태평양도 결국 내 집이라는 걸 알아차린다면요. 눈을 뜨면, 투명한 거미줄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느낄 수 있습니다. 제 상상이 영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작은 텃밭이나 집 근처의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명상하는 존재를 많이 만납니다. 오직 지금 여기에만 존재하는 이들. 고양이나 귀뚜라미나 딸기나 호박이나 바위나 바람이 그렇습니다. 대부분 존재가 제 스승처럼 여겨지면서 자연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상냥하게 인사를 하거나 호명하기도 합니다. 텃밭 생물의 이름표에도 ‘토마토님’, ‘상추님’ 등 존칭을 써 두는 식으로요. 그들을 헤아릴 때도 ‘곱등이 한 마리’나 ‘옥수수 한 개’라는 단위보다는 ‘한 명’으로 셉니다. 다 똑같이 ‘목숨 명命’ 자를 사용하는 것이에요. 다른 사람이 보면 영 쑥스러워서 혼자 있을 때만 합니다. 바람이나 물에도 존대하다 보니, 문득 공기나 어떤 기운도 마찬가지로 존중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방문을 세게 닫으면 작은 곤충도 놀라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들도 놀랄 것입니다. 핸드폰에도 어떤 정령이 붙어서 쉴 수도 있으니 조심스레 내려놓아야 하고요. 누군가 마구 짜증을 내거나 투덜대면, 옆에 있던 사람도 그 파장이 전달되어 덩달아 불쾌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혼자서도 부정성이 올라올 때 분출하기보다는 정화하려 애씁니다. 제 주위의 존재가 함께 불쾌해지지 않도록 예의를 차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제가 득도한 양 공갈하는 기분이라 영 찜찜하긴 합니다. 제가 엄마를 사랑하고 섬긴다고 해서 늘 효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는 못하듯, 만물을 섬기긴 하되 부족한 점은 늘 많아요. 특히 혼자가 아닐 때 더욱 그렇습니다. 혼자일 때는 저보다 작거나 말이 없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훨씬 잘 느껴지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일 때는 잘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 동물이 너무 커서 그러려나 싶긴 합니다. 한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다면,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에서였습니다. 인간이 꽃과 새를 보면서 유독 진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꽃과 새는 물질이 유약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톨레는 말합니다. “식물에서 나왔지만, 그 식물보다 더 덧없고, 더 여리며, 더 섬세한 꽃은 물질적인 형상의 세계와 형상 없는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된다.” 물질성이 단단하고 강할수록 영적인 힘이 약해지고, 반면 곧 사라지는 것엔 영적인 힘이 부각된다고요. 제가 추리하건대, 어린이들이 그토록 맑은 영혼을 가진 것도, 육신이 병들고 늙을수록 지혜가 생기는 것도 같은 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명상할 때 숨에 집중하는 것도 숨은 제 육신을 이루는 것 중 가장 희미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부처나 테레사 수녀가 어느 것도 소유하지 않고도 충만한 삶을 살다 간 까닭 역시 물질을 버릴수록 영적인 힘이 강해진다는 걸 알아서였을 테죠. 저에게 역대급 고통을 가져다준 기병도, 육신을 약하게 해서 영적인 어떤 깨달음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결국 전 제 삶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저를 이 지구에 초대한 ‘내 삶’에 대해서, 신이 있다면 삶이 바로 그것이라고 여기면서. 어떤 우연도 우연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고, 삶이 제게 보여 주는 어떤 만남과 사건이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해 배움을 찾았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아빠의 딸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가 굳이 말하지 않는 마음도 들으려 하고, 보이지 않는 상처도 끌어안으려 합니다. 그 마음을 지구 전체로 확장한다면, 세상에 보이거나 들리지 않아도 느끼는 것들이 있다고 믿어 본다면, 삶은 하나의 신비가 됩니다. 삶에는 매 순간 상상하지 못할 다채로운 방식으로 말을 걸어 오는 신비로움이 분명히 있다고요. 아빠는 ‘나이 들면 딸은 어차피 엄마 편’이라며 볼멘소리를 하시곤 했지만, 저는 ‘딸’이어서 엄마 같은 성질을 지니게 된 게 아닙니다. 전 아주 어릴 적부터 안방의 서재에서 박정희 평전이 아니라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꺼내 들던 아이였어요. 저 스스로 인지하기도 전부터 제 삶은 저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제가 상극인 엄마와 아빠를 만난 것도, ‘없어 보이지 않는 딸’이었다가 ‘남자인 척하는 여자’가 된 것도, 삶이 저를 이끈 완벽한 커리큘럼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저를 향한 아빠의 오해를 풀자면, 저는 남자 행세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남자 행세’는 덜 귀찮고 돈도 아껴서 좋긴 했지만요. 제 삶이 가르쳐 준 게 ‘남자 행세는 편리하다!’ 정도라고 여기면 삶이 조금 언짢아하실 것도 같습니다. 삶은 제게 신인데요? 신이면 더 본질적인 가르침을 주셨을 겁니다. 저는 자신을 정교한 칼로 다듬으면서, 오로지 군더더기 없는 ‘나’만 남기고 싶었습니다. 어색한 까까머리의 거울 속 나를 보면서 신에게 물었어요. “나 누구예요?”라고요. 삶은 제가 매일 얼굴에 덧바르다 하수로 흘려보낸 화장품이나 그것들로 색칠된 제 얼굴이 ‘나’가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제 지갑 속 형편도, 제 능력을 향한 평판이나 학교에서의 성적표, 그 어느 것도 ‘나’가 아니라고 알려 주었어요. 그리고 동시에 화장품 안전 검증 실험에 동원된 토끼나, 화장품 때문에 오염된 물에서 살게 된 물속 생물은 결국 ‘나’라고 알려 주었고, 저를 비웃거나 평가했고 그래서 제가 증오하던 사람들 역시 ‘나’라고 했습니다. 물 한 양동이로 아끼고 아껴서 샤워하다 보면, 오줌 한 번 싸고 13리터의 물을 낭비하는 사람들에 경악하게 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저도 수세식 변기 레버를 아무 망설임 없이 눌렀음을 깜빡 잊어버리고요. 저는 백화점의 호화로움이, 어떤 존재의 핏자국을 지우고 화려하게 치장된 금이나 가죽 따위가 미울 때가 많습니다. 그걸 다달이 열심히 소비하는 아빠 같은 사람들마저 밉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눈을 감아야 합니다. 투명한 거미줄이 보이도록요. 어둠 속에서 곰곰이 고민합니다. 삶이 제게 다른 누구도 아닌 백화점광 호모포비아 아빠를 선물한 이유를. 그런 아빠에게 저의 모든 연약하던 시절을 맡겨 저를 숨 쉬게 하고, 제가 지구에 온 순간부터 아빠에게 빚을 지게 한 얄궂은 진실을. 다시 천천히 눈을 뜨고 나면, 제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살인 협박 속의 두려움이나, 고약한 정화조 속에 담긴 한이나, 핸드폰에 매달린 정령의 쉼 같은, 가장 여린 마음을 느낄 수 있기를 말입니다. 삶은 제가 아빠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백화점광을 사랑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과 다르지 않은 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빠가 올해는 용돈을 ‘턱’ 보내셨습니다. 백화점에서 옷 한 벌 사 입히지 못하는 딸을 두고 몇 년을 헤매시더니 결국 돈이라도 주고 싶으셨나 봅니다. ‘네가 필요한 게 뭔지 당최 모르겠으니 알아서 사라’며 무뚝뚝하게 건네시더군요. 자식 노릇보다는 중노릇에 더 재능 있는 딸이 뭐가 그리 예쁘다고 이러시는지 눈물이 핑 돌았답니다. 평소보다 한 자릿수가 늘어난 통장 잔고를 보며, 제가 돈으로 하는 일이라고는 환경 운동밖에 없다는 걸 떠올립니다. 아빠가 본의 아니게 ‘홍석천 같은 놈’에게 용돈도 주시고, 환경 운동 후원도 하게 된 아이러니를 떠올립니다. 딸을 그토록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도 떠올려 보고요. 아무리 미워도 아빠는 역시 저보다 사랑에 대해 많이 아시니까요. 아빠만큼만 제가 사랑을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인디언들은 바구니를 만들려고 삼나무껍질을 벗길 때면, 나무를 향해 노래를 바치고 허락을 구했답니다. ‘너에게는 쓸모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나를 부디 가엽게 여기고 너의 옷을 달라’고 말입니다. 저도 이렇게 제 글을 책에 보태게 됐는데요. 제 말이 글이 되도록 해 준 존재들에게 가장 먼저 편지가 가닿으면 좋겠습니다. 지리산은 겨울만 되면 산등성이 한 편이 훤해지도록 나무가 베어집니다. 비울 때를 놓친 휴지통이 넘치듯, 몸통만 남은 나무들이 마구잡이로 쌓이고 구릅니다. 이 종이는 어느 나무에서 왔을까 헤아려 보면서, 그 나무를 먹여 살린 물과 바람과 새들마저 그려 봅니다. 당신들이라면 제 몸을 깎아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고민하면서 편지글을 채웁니다. ‘나’도 결국 당신들이니까 제가 그런 고민을 감히 대신해도 되겠지요.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한 번, 물줄기가 흘러가는 남쪽을 향해 한 번, 집 뒤편에 서 계시는 지리산을 향해 한 번. 절과 합장. 입맞춤을 담아 칩코 드림. ◌ 칩코 ◌ 8살. 죽는 상상을 처음 했다. 죽는 상상도 못 하도록 영영 사라지는 것이 죽음일까 봐 엉엉 울었다. 무척이나 살고 싶던 사람이었다. ‘나의 목숨’을 ‘나’라고 여겼다. 14살. 학교 성적이 좋았다. 동시에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예쁜데 공부도 잘하는’ 타이틀을 놓치고 싶지 않던 사람이었다. ‘나의 성적과 외모’를 ‘나’라고 여겼다. 19살. 학교 성적이 떨어졌다. 하루 14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것을 지옥이라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책만 읽으며 다독상 문화상품권이나 챙기는 것을 좋아했다. ‘나의 지식’을 ‘나’라고 여겼다. 20살. 국문과에 갔는데 천국이었다. 책만 읽었는데 성적이 좋을 수 있는 게 국문과였다. 정말 공부가 재밌어서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외모를 향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예쁜데 공부도 잘하는’ 타이틀에 다시 욕심을 냈다. ‘나의 지식과 외모’를 ‘나’라고 여겼다. 22살. 책을 열심히 읽다가 환경운동에 열정을 갖게 됐다. 외모에 쏟던 노력을 과감하게 철수하고 머리를 싹둑 잘랐다. ‘환경운동’을 ‘나’라고 여겼다. 25살. 살다 보니 빡빡머리의 타투가 많은 강경 환경운동가가 돼 있었다. 동물과 식물과 곤충은 사랑했는데 낭비가 심하고 돈 욕심 많은 인간은 도저히 사랑하지 못했다. ‘쟤보단 나은 인간’이 ‘나’라고 여겼다. 26살. ‘쟤’들이 늘어나면서 마음이 힘들어졌다. 명상을 시작했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리산에 생전 받아보지 못한 사랑과 겸손을 배웠다. ‘쟤를 사랑하고 싶은 인간’이 ‘나’라고 여겼다. 29살. 아침에 토마토를 먹고 토마토와 하나가 된 사람. 내가 내뱉은 숨을 지리산이 들이키는 바람에 지리산과도 하나가 됐다. 하나라고 저절로 조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요가할 때 팔다리가 따로 노는 것처럼 아직은 지리산과 따로 놀 때도 많다. ‘쟤’가 결국 ‘나’라고 여긴다. <<벗자편지>> _자급하는 삶을 어렵게 하는 허울을 벗어던지자 • 지은이 : 김혜련, 칩코, 똥폼, 문홍현경, 풀, 상이, 아랑, 김정희 • 펴낸 곳 : 니은기역 • 펴낸 날 : 2022년 11월 22일 • 판형 120*188 / 쪽수 256쪽 • ISBN 979-11-968328-4-1 (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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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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