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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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첫눈 소식
    「섬진강 편지」 - 지리산 첫 눈 소식 여기저기 눈소식입니다. 지리산에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첫눈이 왔습니다. 눈은 소통의 메신저입니다. 영문자판에 한글로 '눈'을 쳐보세요. 'SNS'입니다. 소원했던 친구에게 첫눈을 핑계로 전화를 해봐야겠습니다. 눈이 오면 누나가 많이 생깁니다. 설악산 눈 와? 전화를 하면 설악산 누나가 생기고 대둔산 눈 와? 전화를 하면 대둔산 누나가 생깁니다. 새롭게 태어난 하얀 세상, 첫눈 소식을 전합시다. 아침 일찍 노고단에 올라 첫눈을 맞이했습니다. 어렵게 올랐는데 살을 에는 칼바람에 20분을 못 견디고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자연 앞에 겸손하라! 새삼 깨달으면 지리산길 설설 기어 내려온 첫눈 오는 날이었습니다. -섬진강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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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진강 편지
    2024-11-28
  • 인생의 가장 큰 죄
    인생의 가장 큰 죄 오래 전 일본의 명상 컨퍼런스에 다녀왔는데 그것은 아난다마르가 출가 수행자인 칫 따란잔 아난다와(칫 다다지)의 인연 때문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인도의 아쉬람 여행과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국제 명상 컨퍼런스, 그리고 홍콩의 아시아권 명상 행사 등을 다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명상이라기보다는 명상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해외여행 하는 기분으로 따라다녔을 뿐이다. 칫 다다지는 한국 사람인데 서강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가서 경제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경제학자였다. 그리고 귀국하여 이런저런 국영 연구소를 다니며 가정을 꾸리고 잘살고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우연처럼 인도에 가서 출가 수행자가 되신 분이다. 인도의 아난다마르가 수행공동체에서 줄곧 수행하며 지금은 아난다마르가의 다다(스승)의 단계에 올라 세계를 떠도는 지구인으로 현재는 주로 중국의 충칭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가난하다. 단체로부터 생활비를 따로 받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늘 밝고 긍정적이며 아무런 걱정 없이 나름의 일만 열심히 한다. 그 나름의 일은 사람들이 명상을 통해 스스로 개체의식을 밝히도록 도와주고 사회의식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난다마르가 사상과 철학의 핵심인 네오휴머니즘과 프라우트 사회를 실현하려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생명평화결사에서 일할 때 이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며 스스로 찾아온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인도에 있다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아난다마르가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생명평화결사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나는 그를 통해 한 생을 살며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근본 문제를 구체적 일상과 일치시키며 살아야 한다는 배움을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자기완성을 위한 명상과 같은 구도행은 개인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실천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밥 먹고 일하며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반복적인 하루 일상도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그는 살면서 별난 하루가 아니더라도 매 순간 감동과 감격 속에서 일상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아, 매 순간 감동과 감격으로 이어지는 일상이라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그에게 명상을 배우며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걸러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겨우 현실적 에고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영역에 대한 그리움이 생겼다. 그리고 이 영역을 꾸준히 넓히고 다지는 것이 어쩌면 매우 중요한 일이고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당시 어떤 책을 읽으며 ‘인생의 가장 큰 죄는 인생을 낭비하는 죄다.’라는 구절이 뇌리에 깊이 박혀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낭비인지, 무엇이 낭비가 아닌지도 잘 모르면서 우선 최선을 다해 명상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길을 나서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고 가는 것이 당연한데, 하물며 인생길을 가며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칫 다다지를 만나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선명해지고 구체화 되었다. 그리고 ‘어디로’나 ‘어떻게’의 정답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구나 똑같은 길을 갈 수는 없을 테니까. 다만 본질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 얼마나 충실하게 자기 현실을 소화하는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일상은 중요한 현실이지만 쉽게 그 속에 묻히게 되는 자신의 한계를 항상 조망하고 콘트롤할 수 있는 어떤 힘 또한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칫 다다지에게는 그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명상을 배우며 마음속으로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세속의 예를 다하려 애썼다. 그는 수행이 깊어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다정하며 누구에게나 격이 없고 매우 친절했다. 나는 그와 친구처럼 부담 없이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나는 ‘친구가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으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떠올리며 그가 이 짧은 생에 친구이고 스승이 되어 함께 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무엇보다 인생의 가장 큰 죄를 짓고 싶지 않았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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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편지
    2024-09-11
  • 완벽한 당신
    완벽한 당신 역사는 대부분 권력과 부와 사랑을 중심에 두고 진행되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행복이 그곳에 있다는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권력은 폭력이고 부는 탐욕이며 사랑은 치유와 정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람마다 또 다를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변화와 흐름 속에서 한목숨 살아내기 위해 자신에 그리고 자신의 현실에 매몰되어 사는 날이 많다 보니 똑같은 경험을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늘 상대방과 그 상대가 처한 현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서로 오해가 생기고 갈등과 반목의 관계가 만들어져 살아온 것이다. 개인은 물론 가정과 가정, 국가와 국가, 나아가 인간과 자연까지도 말하자면 상대에게 마음을 쓸만한 여유도 없이 우선 바쁘게 나만 챙기며 살아온 것이다. 말은 늘 이해한다고 사랑한다고 우리는 하나라고 하면서 진정으로 그러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든 자신이 모르는 것은 일단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대부분 사람이 자신이 아는 것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박사나 학자라 하더라도 한 인간이 아는 것이라고는 우주라는 실제 공간의 실제 현실에 비추어 보면 허공의 먼지만큼이나 사소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것이 옳건 그르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고, 그것이 전부인 양 생각하며 산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니 어쩌면 그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에고 의식에 매몰되어 사는 것을 불가에서는 치(痴), 어리석음이라고 한다. 세상의 실상, 그 실재(實在)를 살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에 가려 사물과 그 이치를 바로 보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 생각대로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차라리 그편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내가 생각한 것이고 내가 그렇게 믿는 것이니 나는 그냥 이렇게 살겠다고 한다. 나아가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의 우주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생명을 하나의 우주라고 말하는 것은,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가치를 가지며 완벽한 존재라는 의미와 닿아 있는 말이다. 덧붙이면 현실은 전도몽상의 어리석음에 있지만 본래 성품은 그렇지 않고 완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군 때부터 삶의 목표로 성통공완(性通功完)을 이야기해 온 것 같다. 본래면목을 꿰뚫어 알아 세상에 공덕을 쌓는 것이 삶의 완성이라는 말로 읽힌다. 붓다도 모든 사람은 다 부처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이런 결과적 발언이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은, 어렵기 짝이 없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정하듯이 이런 경지는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쩌다 제정신이 돌아와 잠깐 그런 상황을 수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성자들의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늘 겸손을 말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삶의 모두라고 앞세우는 순간 그것은 이미 어리석음의 대열에 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행위가 아니라 이런 어리석은 자신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라 하니 겸손이야말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 겸손의 자리는 상대방이 완벽한 존재라는 그 본성을 보고 받아들일 때 자연히 생긴다고 한다. 이러한 겸손의 경지를 몸이 알아서 할 때 소위 우주적 관점에서의 완벽한 당신, 완벽한 상황이라는 그 무엇을 우리는 겨우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본래 완벽한 존재이고 그 존재가 사는 현실이 완벽한 상황이라는 것을 그대로 수용할 수 있으려면 겸손을 바르게 알고 또 언제나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은 어떤 상황이라도 완벽하다./ 오늘밤 떠들며 술 마시는 내가/ 내일 아침 졸지에 이승을 떠난다 해도/ 사실은 완벽한 상황인 거지./ 꽃망울 주렁주렁 올라온 어느 봄날/ 느닷없는 눈사태가 설중매를 만들 듯/ 그래, 그런 거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두가 필연이고/ 세상살이가 이토록 처연하다 해도/ 사실은 완벽한 상황인 거지./ 이 완벽한 나, 완벽한 현실을/ 늘 아니라고, 아니라고 불평하는 것도/ 사실은 완벽한 것이지. (졸시 「완벽한 당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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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편지
    2024-08-06
  • 숲에 들어가는 나이
    숲에 들어가는 나이 나는 좀 우울했다. 한 달만 넘기면 어느덧 50수에 이른다고 생각하니 살아온 세월이 되짚어지면서 나의‘미래’라는 것도 이내 곧 바닥이 날 것만 같은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이었다. 아직도 내 어느 구석엔 무수한 날들의 까마득한 미래가 있고, 밤 새워 술 마시고 노래할 수 있는 20대의 열정과 치기도 다 빠져나가지 않았는데 50이라는 숫자에 의해 나는 갑자기 노인의 대열에 들어 벼랑 끝으로 내몰린 듯하였다. 12월의 하루하루가 결코 상쾌하지 않았다. 이 답답한 중압감에서 벗어날 무엇이 없나 하는 차에 지인으로부터 단식하러 가자는 전화가 왔다.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장소는 제주도라 했는데 돈 들여 따로 관광도 할런지라 오랜 술로 찌든 속도 좀 다스릴 겸, 또 다가오는 50수의 중압감도 날려 보낼 겸, 마음은 어쩔망정 가벼운 발걸음으로 제주행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갑판에서 쌩쌩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옷을 잔뜩 껴입어서 그런지 춥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났으나 그렇다고 무슨 상념에 잠길 것도 없이 한참을 그저 멍멍하게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를 건넜다. 추자도를 지나니 멀리 한라산의 하얀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망망대해에 멀리 한 점의 존재가 눈에 들어오자 비로소 현실감에 몸이 가늘게 떨렸다. 제주로 향하는 나의 현재가 구체적 감각으로 다가왔다. 제주에 닿기 전에 무엇인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니 제주단식이 생의 한 획을 그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설렘이 내 안에서 일렁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5일 단식 기간 내내 나의 화두는 50이라는 숫자였다. 인도에서는 50대와 60대 정도의 나이를 ‘바나플러스’라고 했다. 그 말은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뜻인데 나이 50이 되면 숲에 들어 명상을 해야 하는 나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20대 정도까지가 세상에 나갈 공부를 하는 기간이라면 3,40대 정도가 세상에 나와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기간이고 5,60대 정도가 세속의 부와 명예 등 그동안 쌓은 것들을 다 버리고 숲에 들어 명상을 하는 나이였다. 이후는 숲에서 나와 죽을 때까지 세상을 떠도는 것이다. 하지만 제주단식에서 나는 무슨 특별한 깨우침을 얻거나 삶이 달라졌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특별한 사건이라면 다만 스승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분은 단식의 방장 어른으로 참여하여 같이 단식을 하셨는데 나의 단식은 오로지 그분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선생님은 단식 기간 내내 그냥 조용히 우리 모두의 흐름을 타고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식 기간 중에 특별한 좋은 말씀이라거나 감동적인 무슨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별다른 말씀도 없이 조용히 우리와 함께 흐름을 타고 계실 뿐이었는데 선생님과 같이 있는 동안에 나는 저절로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많은 감화 감동이 내 안에서 저절로 일었다. 이 특이한 체험은 나를 내내 긴장시켰고, 나의 심란했던 50수를 설렘으로 맞을 수 있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선생님 같은 분이 바로‘숲의 세월’을 보낸 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50수를 맞는 단식을 통해 일단은 숲에 들어야 하는 나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퇴계를 읽으면서 그도 학생기와 출세기를 거쳐 50세에 관직을 스스로 그만두고(임금이 강하게 말렸으나 끝내 도망간다) 도산서원이라는‘숲’에 들어가 심경(心經)에 몰입했으니, 처지와 상황은 다르지만 세상에서 사는 동안 쌓았던 권력과 영화를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만은 확실했다. 나도 숲에 들고 싶었다. 그리고 퇴계가 그랬듯 나의 현실에서‘숲’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귀촌하여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숲’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인들은 시인이‘숲’에 들면 어떻게 저자거리의 번뇌와 갈등을 시에 담을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했지만 나는 그동안 키워온 무절제의 욕망과 그렇게 굳은 일상의 습(習)을 도려내고 싶은 것뿐이었다.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내면의 간절함이 있었고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내 안에서 주먹처럼 올라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문학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문학을 좇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실 숲에 드는 일은 단순히 세속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나’라는 에고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맞이하기 위한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정한 자기 존재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에 다름 아니며 생명이 가지는 우주적 균형감각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50고개를 넘으며 숲에 들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내면의 소리를 맞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숲에 들어 몸과 정신과 영혼까지도 자본에 절어 있는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박두규. 시인.) ▣ 이 글은 산문집「生을 버티게 하는 문장들」(2017년 간행)에 수록된 것입니다.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4-07-11
  • 바늘
    바늘 김 경 옥 쇠를 갈고 남은 몸이다 매끈한 은빛 몸매 뾰족한 침 끝, 더는 아무것도 없다 저 침에 닿을 때까지 사방 팔방 십이방 모서리 없어지고 이웃마저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제 몸을 깎아냈을까 이 악물고 덜어내어 물러설 수 없는 절벽에 이르렀을까 갈고 닦는 일의 무한함이여 깎고 덜어내는 일의 은은한 아픔이여 가는 몸속에서 들리는 소리 하나에 기울이며 작은 귀 하나만 열어놓은 세월이여. ---------------------------------------------------------------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말은 그저 지식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사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무엇이며 왜 존재하고 있으며 이 세상은 또 무엇인가 하는 궁극적 질문을 안고 사는 존재다. 세상을 살아내는 일의 첫 번째가 나의 존재와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느티나무의 작은 박새 한 마리도 알에서 깨어나 날개를 퍼덕이며 제가 날짐승인지 들짐승인지부터 가늠하고 바람이 불면 어디로 날아야 한다는 것을 눈치 채며 자란다. 그렇게 모든 생명은 구체적 생활세계 속에서 자기 존재와 세상을 일치시켜내는 것이 세상을 살아내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그 답을 말하고 죽는다. 태어나 죽기까지의 삶 자체가 스스로의 답일 것이니 그렇다. 다시 말하면 삶에는 정답이 없고 우리는 스스로를 살다가 죽을 뿐이다. (박두규. 시인)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3-11-13
  • 안개 유감
    「섬진강 편지」 -안개 유감 2023년 10월 22일 안개, 10월 23일 안개, 10월 24일 안개, 10월 25일 안개, 10월 26일 안개, 내리 닷새 아침 안개가 점령군처럼 구례를 장악했습니다. 안개가 옅은 날은 9시쯤이면 걷히지만 독한 날은 11시가 되어서야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섬진강과 서시천, 그리고 지리산 골짜기 아래마다 하나씩 있는 저수지들이 봄가을이면 구례를 안개의 마을로 만듭니다. 구례로 이사를 와서 8년이 지나고 나서야 안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구례 사람이면 다 알고 있는 안개의 피해를 모르고 아침마다 안개 예찬론을 펼쳤으니 얼마나 철부지로 보였을까요! 봄, 가을이면 일조량이 현저히 부족하고 습도가 높아 농작물들은 병에 취약하고 강마을 노인들은 기관지, 천식 등으로 고통을 받는답니다. 오죽하면 안개를 피해 산동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겠느냐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런데 최근에 지자체가 유치 신청한 양수발전소가 건설되게 된다면 구례는 그야말로 안개공화국이 되고 말겠지요. 섬진강댐보다 큰 규모의 댐이 2개나 들어선다면 1년 내내 안개에 시달리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거기다가 양수발전에 부족한 물은 섬진강에서 끌어 쓰게 된다니 그렇지 않아도 바닥으로 겨우 기어가는 섬진강물은 더 마를 것이고 가둬둔 물을 흘려보내게 되면 섬진강 하류의 오염은 뻔하지요.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들어 내는 때 묻지 않은 풍광들이 있어 귀촌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입니다. 귀촌 인구가 감소 추세인 최근에도 705명(2022년, 구례군 자료)이 귀촌했을 정도로 구례는 3년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나를 포함한 구례지역 귀촌자들의 특성은 주로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사람들로 최근 우리 마을에 7명의 젊은이가 이사를 왔는데 다들 구례의 천연 풍광에 매료되어 온 친구들입니다. 진정 애향 애민의 위정자들이라면 국비 1조 원이란 곶감으로 지역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자연으로 가는 길, 구례”의 본심을 잊지 않도록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댐이 들어서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어 30여 년 전에 댐이 건설된 순천 주암댐 주민들의 호소를 들어보시라! "자욱한 안개에 폐암까지"‥주암댐 주민 피해 호소 https://ysmbc.co.kr/article/d4H__7afKF797La-l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3-10-27

실시간 지리산문화 기사

  • 여의도 희망가 1
    섬진강 편지」 -여의도 희망가 1. / 지리산 천은사 노랑망태버섯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나부끼는 젊은이들의 깃발 아래서 젊은이들의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그놈에게’ 가사는 다 알진 못하지만 더 나은 내일의 희망가라는 건 압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젊은이들의 몸짓을 따라 어깨춤을 추었다. 그 리듬을 다 따라 하진 못하지만 평화의 춤이라는 건 압니다. ‘탄핵윤석열탄핵윤석열탄핵“ 젊은이들 구호를 따라 외칩니다 내 작은 목소리는 함성에 묻히지만 거대한 물결이 되다는 건 압니다. 추운 날씨에도 밤이 깊어 가도 흐트러지지 않는 젊음대오 여의도에 가서 젊음이 소리치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여의도에 가서 젊음이 만드는 내일을 보았습니다. 여의도에서 돌아와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이번에 펴낸 ‘나를 살린 풍경들’ 책 속의 지리산 섬진강 사진들로 <여의도 희망가> 시리즈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4-12-09
  • 참교육 키즈의 생애 2편 세상은 멀고 술은 가까이 있었다.
    세상은 멀고 술은 가까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수현은 나경 선배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나경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 수현은 나경 선배가 다니는 국문과에 가봤지만, 나경 선배는 학교에 나오지 않은 지 꽤 되었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나경은 어디로 간 것일까? 수현은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만난 나경 선배는 어쩌면 수현이 이 대학에 들어온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 살 차이였지만 수현은 나경 선배를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학교에 없었다. 어디로 간 것인지 수소문했지만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열혈 전사처럼 보였던 나경 선배는 알고 보니 열혈 운동권도 아니라고 했다. 몇 번 나온 시위에서 수현이랑 몇 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나경선배는 그냥 운동권이라기보다는 운동을 지지하는 주변 인물 정도에 불과해..] 이게 대부분의 평가였다. 수현은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몇 번 만난 선배가 좋다고 이 학교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모르는 나경 선배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수현은 생각했다. 4월이 된 학교는 4.3 항쟁 세미나를 한다는 대자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3월이 등록금 투쟁이 계절이라면 4월은 4.3 항쟁과 4.19로 5.1일 노동절과 5.18로 연결되는 집회 시즌이었다. 세미나를 통해 신입생들을 확보하려는 동아리, 학회, 학생회가 열심히 홍보하기는 했지만, 참가 인원은 많지 않았다. 명확한 전선이 있었던 80년대가 지난 90년대에 접어든 학생 운동은 조금씩 시들해지고 있었다. 수현은 고등학교때 읽은 순이 삼촌이 생각났다. 해결하지 못한 비극의 불꽃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고 살아나 산 사람의 목숨을 가져간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사회에 남아 있는 불의한 것들을 해결하는 것이 대학생의 임무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투쟁의 대상이 명확할 때는 전선이 투명하고 투쟁의 불길은 쉽게 오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선은 희미하고 집회보다는 도서관을 가는 학생들이 더 많은 시대였다. 학생 운동을 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 수현은 이 상황이 불편했다. 시들해진 것은 투쟁 전선이 아니라 운동권들의 나약함이 문제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여전히 군부 독재의 2인자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고, 작년만 해도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학생들이 몇 명인가? 여전히 통일은 멀고 노동자들의 삶은 팍팍했다. 수현은 당장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선배들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이야기해 보면 그만 생각하라며 술을 사주는 선배 말고는 특별하게 대안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아니 대학생들이 할 만한 일이 없었다. 세상일은 멀고 술은 가까이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었다. 이제 곧 방학의 시작이었다. 학교엔 농민 학생 연대활동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수현은 참가하지 않았다. 수현은 농사일이라면 이미 집에서 충분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할을 하려면 집에서 집 농사일을 돕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가하게 농촌활동을 갈 만큼 집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수현은 여름에 돈을 벌어야 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수현은 막노동일을 나갔다. 강진은 농활로 수현은 막일 현장으로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강진은 수현이 부러웠다. 수현은 생각에 막힘이 없었다. 강진은 우연히 문학서클 선배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집회까지 나가게 되었다. 첫 집회에서 강진이 던진 화염병이 안 깨지자, 전경이 그걸 다시 강진에게 던졌다. 그런데 우물쭈물하다가 자기 다리에 불이 붙어 버린 것이다. 그 일로 학교에서 유명해졌고 선배들도 강진을 아꼈다. 하지만 스스로 운동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강진의 부모님은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아는 부모님의 모습은 10여 년 전에 이미 멈춰 있었다. 사실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막내로 태어난 강진은 터울 많은 누님 집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성적에 따라서 대학에 입학했다. 아니 다른 곳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다. 화물차 운전을 하는 매형의 벌이로는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어떻게든 누나 집에서 대학까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강진은 하고 있었다. 강진의 누이 명숙은 처음 강진이 집회에서 다친 것을 보고 오래전에 사고로 떠나 부모 생각이 났다. 명숙은 겁이 덜컥 났다. 강진도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 방송에서 데모하다가 죽은 학생들을 명숙은 기억하고 있었다. 더구나 명숙이 처음 일을 했던 공장에서도 데모하다가 다치고 끌려간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명숙은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을 키워야 했다. 명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가서 일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나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철민과 결혼했다. 다행히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동생 강진과 사는 것도 그는 좋아했다. "내가 화물차 운전 때문에 멀리 떠나는 날이 많잖아” “동생과 함께 있는 것이 더 맘에 놓여" 남편이 이런 말을 했을 때 명숙은 눈물이 나왔다. 고마웠다. 강진은 이 모든 일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3월이 가기도 전에 집회에 나갔다가 화상을 입었다. 누나에게는 대충 다른 일로 다쳤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강진은 맘이 편하지 않았다. 아무 고민 없이 학생운동에 전념하는 수현이 강진은 그래서 부러웠다. 수현아, 너는 학생운동 하는 것…. 고민 없어? 강진이 물었을 때 수현은 간단하게 말했다. “없어.” 강진은 그렇게 짧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2024-12-06
  • 노고단 칼바람
    「섬진강 편지」 -노고단 칼바람 경찰서 로터리에서 비상시국 촛불을 켜고 돌아와 잠들었는데 새벽에 깨어 불안감에 휩싸여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비상계엄 획책한 저들이 변명 한마디 없이 그 자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못내 불안하다. 전쟁, 이 땅을 전쟁의 참화 속으로 내몰 수 있는 자들이 아닌가. 속이 바짝 탄다. 입 밖으로 차마 내뱉기 어려운 말이 입안에서 맴돈다. 새벽길 나서 노고단 정상 칼바람 속에서 참혹한 일들을 막아달라고 노고할미에게 빌었다. 해가 뜨지 않은 바람 드세고 어두운 날이다.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4-12-05
  • 연재소설 참교육 키즈의 생애 1편 "봄날"
    1편 봄날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벚꽃처럼 피어올랐다. 수현은 날아오는 화염병이 강진 앞에서 터지는 것을 봤다. 화염병이 터지자, 강진의 바지에 불이 붙었다. 강진은 떨고 있었다. 수현이 강진에게 달려가 불을 껐다. 부지에 불이 붙어 있었다. 강진이 머뭇거리는 것을 본 체포조가 강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도망쳐” 수현은 강진의 손을 잡고 교문 안으로 달려갔다. “다행이다. “잡힐 뻔했잖아.” 교문 안으로 들어와 확인해 보니 불탄 바지가 찰거머리처럼 강진에 다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바지를 떼자, 강진의 피부와 함께 벗겨졌다.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억… 강진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 가자… 아프지…. “ “아…. 괜찮아…. “ 강진은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뭐가 괜찮아…. 아파 보이는데….” 그해 강진과 수현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 말이 없고 얌전하던 강진이 시위 현장에 나온 것을 본 수현은 많이 놀랐다. 그럴 놈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수현은 집에서 학교까지 강진을 부축했다. 화상에 심해서 혼자 걷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강진은 학교 근처에 살았다. 수현은 자취방에서 강진이 사는 곳까지 매일 걸어갔다. 그렇게 수현은 강진과 벚꽃이 질 때까지 함께 걸었다. 꽃이 지자, 강진은 혼자 걸었다. 강진은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강진은 고등학교 때 친구보다는 책하고 가까운 아이였다. 친구들이 운동장이나 체육관으로 향할 때 강진은 조용히 교실에 남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국문과에 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은 국문과가 아닌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생각이 있었는지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운동권 서클이었다. 선배들을 따라 그날 처음 집회에 나갔다 화상을 당한 것이었다. 강진의 다리에는 커다란 화상자국이 남았다. 강진이 혼자 걷게 된 이후 그들은 한동안 보지 못했다. 수현과 강진 둘 다 서클 활동에 빠져 있었다. 강진이 가입한 해방문학 동아리는 말만 문학 동아리지 “운동권 양성소”라고 불리는 유명한 동아리였다. 강진의 권유로 수현은 그 서클에 가본 적이 있었다. 서클 방은 학생회관 지하에 있었다. 수현이 지하 서클 방을 열고 들어가자 5~6명의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선배들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벽에는 사회과학책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만나러 왔는데요?” "네가 수현이냐?" "네" "강진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너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 운동을 했다며? "네……. 뭐…. 그런 그것은 아니고 그냥 참교육 운동할 때 강당에서 연설을 좀 하기는 했습니다." "대학생들 집회 때 따라다니기도 하고요" "너 나경이를 안다며?" 네…. 나경은 수현이 고등학교 때 만난 선배다. 수현은 고등학교 때 경찰서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했었다. 경찰서 앞에서 집회가 자주 있었다. 집에만 있기 심심했던 수현은 시위대를 따라가 본 적이 있었다. 그날도 경찰서 앞에서 집회하던 날이었다. "야. 너 고등학생 아니야?" "네…. 그런데요. 고등학생이 여기 나오면 어떡해…. 나경은 어린 수현이 걱정되었다. 잡히면 너 고생한다. 그럼, 누나는요. 잡히면 고생 안 하나요? 뭐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대학생이고 너는 고등학생이잖아…. 상황이 달라…. 뭐…. 저는 달리기 잘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딱 보니 잘 달리지 못해 경찰에게 잡힐 것 같은데요. 야. 너 누나를 뭐로 보는 거냐. 누난 절대 안 잡힌다. 왜요? 누나는 변신하면 되거든. 나경은 가방 안에 가발과 다른 옷을 보여 주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나경과 수현은 그 후로 몇 번 시위 현장에서 만났다. 사실 나경를 만나기 전에도 수현은 대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에서 일명 운동권 필독서를 사서 읽고 있었다. 철학에세이, 공산당 선언, 강철군화, 전태일 평전, 그람시나,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집회에 참여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수연이 그런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대학생 형이 준 책이라면 수현에게 친구가 빌려준 책이 시발점이 되었다. 해직한 선생님들이 만든 거꾸로 읽는 교과서와 세계사를 읽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서정주가 친일파라고”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의 글을 공부해야 하지. “역사는 누구 입장에서 쓰는 거야? 왕의 역사와 백성의 역사는 다른 것 아닐까? 새장에서 태어난 새는 나는 자유를 모르지만, 새장으로 잡혀 온 새는 언제나 하늘을 마음껏 날던 자유가 그리운 것이다. 수현은 스스로 교실과 교과서라는 새장안에 갇혀서 진정한 자유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수현은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후 나경 선배와 몇 번 만나면서 막연하게 대학교에 들어가 학생 운동을 해야겠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어쩌면 수현에게 나경과 학생 운동은 대학에 입학해야 할 유일한 이유 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수현의 꿈은 노동운동가였다. 수현이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힘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조직을 만들어 힘을 키우고 불의 일에 대항해서 싸우는 일은 멋있어 보였다. 가난한 농부들이 연대하여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싸우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권리와 임금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당연 것 처럼 보였다. 수현은 전태일 열사처럼 “노동해방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대학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졌다. 교실안에 친구들이 입시를 위해 공부하던 고 3학년때 수현은 고향 마을에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임이었다. 수현이 살던 마을엔 논과 들뿐이 시골 농촌 마일이었다. 아이들 부모는 농민이었고 모두 하나 같이 가난했다. 수현은 매주 토요일 밤에 아이들과 마을회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이런 모임을 꼭 해야 해요?” “왜 우주야?” “이상해?” “아니" “오빠가 이상해 보여?” “아니”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어려워?” “세상이 그렇게 살기 어려워?” “열심히 일하고 절약해서 살면 잘 수 있잖아?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우주는 수현보다 두 살 어린 옆집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수현을 좋아했다. 모임을 만들자고 하자 가장 반기던 아이였다. 매일 밤 마을회관에 모이던 아이들만 15명 이상이었다. 수현의 모임의 회장으로 매일 밤 아이들에게 일주일 동안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해주거나 매주 주제를 만들어 토론하는 모임을 이끌었다. 아이들은 매주 모여서 함께 논다는 것만으로도 그 모임을 좋아했었다. 수현은 아이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회에서 나경을 만나고 나서 대학에 가야겠다고 수현은 생각하게 되었다. "수현아! 우리 서클에 가입하지 않을래" "친구 강진도 있고…. "전 이미 가입한 서클이 있어요. "아. 그래. "서클 두 개 가입한다고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근데 선배님들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요? 우리…. 나이가 좀 있기는 하지…. 학생 운동이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거든…. 네…. 수현은 서클에서 나왔다. 그때 강진이 서클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현아. 오랜만이다. 우리 서클에 왔구나. 같이 들어가자. 내가 선배들 소개해 줄게. 아니야…. 이미 만나고 왔어…. 그래…. 우리 서클에 가입할 거야? 아니야. 왜? 생각이 좀 달라…. 그래…. 나중에 보자.” 강진이 가입한 서클은 총학생회 간부를 주로 배출하는 유명한 서클이었다. 수현은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현은 이 서클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진이는 알고 가입한 것일까?” 강진이 학생 운동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수현은 믿을 수 없었다. 수현이 고등학교 때 참교육 선생님들의 부당해고에 분노에 강당에서 연설했을 때 수현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강진의 눈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에 가입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강진의 인생이니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2024-12-04
  • 지리산 첫눈 소식
    「섬진강 편지」 - 지리산 첫 눈 소식 여기저기 눈소식입니다. 지리산에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첫눈이 왔습니다. 눈은 소통의 메신저입니다. 영문자판에 한글로 '눈'을 쳐보세요. 'SNS'입니다. 소원했던 친구에게 첫눈을 핑계로 전화를 해봐야겠습니다. 눈이 오면 누나가 많이 생깁니다. 설악산 눈 와? 전화를 하면 설악산 누나가 생기고 대둔산 눈 와? 전화를 하면 대둔산 누나가 생깁니다. 새롭게 태어난 하얀 세상, 첫눈 소식을 전합시다. 아침 일찍 노고단에 올라 첫눈을 맞이했습니다. 어렵게 올랐는데 살을 에는 칼바람에 20분을 못 견디고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자연 앞에 겸손하라! 새삼 깨달으면 지리산길 설설 기어 내려온 첫눈 오는 날이었습니다.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4-11-28
  • 노고단‘대피소’는 어색하다
    나는 지리산자락 구례에 산다. 구례에 산다는 건, 어디에 있더라도 반야봉, 노고단, 왕시루봉을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행복한 일이다. 눈 오는 오늘, 지리산은 뿌옇다. 눈이 쌓이고 있는 지리산을 바라보니, 지리산에 깃든 생명들은 겨울 준비를 끝냈을까 궁금해진다. 지리산의 겨울은 춥고, ‘생태환경 보호 및 산불방지를 위한 국립공원 탐방로 출입 통제’를 하니 방문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덕분에 지리산은 쉴 수 있다. 국립공원공단은 ‘2023년 국립공원 탐방객 수는 봄철(3월~5월) 증가하다가, 여름철(6월~7월, 장마 기간) 소폭 감소 이후 여름 휴가철(8월)과 가을철(10월, 단풍 절정 기간)에 크게 증가한 후, 겨울철(11월 이후)에는 감소하는 추세’라고 하였다. 2024년에도 비슷할 것이다. ‘대피소’는 지리산에 가는 사람들에게 무척 고마운 곳이다. 쉴 수 있고, 따뜻한 것을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공원법 시행령」은 대피소를 ‘공원자원을 보호하거나 탐방자의 안전을 도모하는 보호 및 안전시설’로 분류하고 있다. 대피소는 국립공원에서 보전의 강도가 가장 높은 ‘공원자연보존지구’에 허용되는 시설이며, 위치 특성상 여러 제한이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대피소가 있는 국립공원은 지리산(8개소), 설악산(5개소), 한라산(7개소), 덕유산(2개소), 오대산(1개소), 북한산(5개소), 소백산(1개소) 등 7곳이다. 대부분 고지대에 위치한 대피소는 탐방객 안전만이 아니라 산불, 야생동식물 보호 등 현장관리 기능도 한다. ‘대피소인데 왜 예약을 해야 하냐?’, ‘대피소가 아니라 숙박시설이다.’, ‘아플 때 쉬려고 하니 내려가라고 했다.’ 등은 ‘대피소’란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나오는 문제제기이다. 국어사전에 대피소(待避所)는 ‘비상시에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국립공원 대피소는 예약제로 운영되니 사전적 의미의 대피소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 세석대피소 ↑ 세석대피소와 장터목대피소 길 안내 표지목 예전에는 대피소를 ‘산장’이라 불렀다. 1924년 건립된 북한산국립공원 ‘백운산장’이 우리나라 최초 산장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부터 건립된 산장을 국립공원공단은 2000년대에 철거하거나 리모델링하였다. 노고단산장, 세석산장, 치밭목산장 등 ‘산장’이었던 시설은 어느 날부터 노고단대피소, 세석대피소, 치밭목대피소 등 ‘대피소’가 된다. 고산지에서는 대피의 기능이 다른 기능에 우선하니 ‘대피소’가 타당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 치밭목대피소(위)와 ‘지리산산장’이라 쓴 치밭목대피소 옛 표지석 산장을 대피소로 명칭 변경한 국립공원공단은 1998년부터 직영 대피소에 대한 사전예약제를 시행하여, 이제 국립공원 모든 대피소는 예약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되었다. 지리산, 설악산 등 면적이 넓은 국립공원의 경우 한나절 탐방이 어려우니 숙박을 ‘공식’화하는 게 국립공원 훼손이나 탐방객 안전, 이용 편의 등에 적절했을 것이다. 산장이든, 대피소든 명칭이 뭐 그리 중요하냐 싶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립공원 대피소에서 잔 분들은 너무 더웠다, 찜질방이냐고 투덜댄다. 대부분 1,000m(장터목대피소는 1,653m이다) 이상에 위치한 대피소가 겨울에도 따뜻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전기를 쓴다는 이야기이다. 국립공원공단 관리자 중에는 ‘상전(국립공원 밖에서 생산된 전기는 전선을 따라 대피소까지 올라간다)이니 무방하지 않냐’는 분도 있지만 국립공원 안이건 밖이건 전기를 생산하려면 화석연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국립공원 대피소가 ‘대피소’라는 특성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기대하지만, 상황은 거꾸로 가는 듯하다. 올해 지리산사람들은 지리산국립공원 대피소 전수조사를 하였다. 마지막 조사는 노고단대피소였는데, 정말 놀랄 만한 대피소가 등장했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노고단대피소는 예전 대피소가 ‘내진등급 D’로 평가되어 철거하고 다시 지었다고 알고 있다. 나는 대피소 에너지에 관심이 많기에 다른 것은 몰라도 대피소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100% 재생에너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고단대피소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상전도 있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도 운영 가능하다고 하였다. 하룻밤을 노고단대피소에서 지낸 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노고단대피소는 요즘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한 건축물이었다. 국립공원의 여느 대피소와는 다르게 개인 방(옆 사람과 차단된)이 있고, 난방을 개인이 알아서 할 수 있으며, ‘저녁 8시 소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개인 방에서는 전등을 켤 수 있다. 게다가 취사장에는 콘센트가 있어 전기쿠커로 물을 끓이는 분도 있었다. ↑노고단대피소 시설 (개인용 난방시설, 개인 전등, 취사장 콘센트) 노고단대피소의 이런저런 시설을 경험하고 나니 건물에 붙여놓은 노고단‘대피소’라는 글씨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노고단은 성삼재에서 1시간이면 걸어갈 수 있고, 위급한 상황이면 차도 운행될 수 있으니 ‘대피소가 꼭 필요한 곳일까?’란 생각도 들었다. 국립공원 시설이라 해서 불편하고, 옹색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대피소’가 아닌 시설을 왜 대피소라 했을까도 궁금해졌다. 이러다가 노고단대피소가 기준이 되어 다른 대피소도 이렇게 바뀌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간판에서 ‘대피소’를 떼어야 할 것 같았다. ↑ 전기가 들어온 노고단대피소 간판 이에 대해 의문을 갖는 나에게 국립공원공단 직원 한 분은 ‘사람들이 엄청 좋아해요. 다른 대피소도 그렇게 바뀔 거예요.’라고 한다. ‘진짜요?’ 그러고 보니 로터리대피소를 신축하던데 거기도 이렇게 바뀌는 걸까? ❚ 참고자료 『2024 국립공원 기본통계』(2023.12.31.일 기준),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공단 누리집』 (https://www.knps.or.kr) 『연합뉴스』, “1924년 설립 국내 최초 산장 '백운대피소' 존치한다,” 2017.5.2.일자. 「자연공원법 시행령」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4-11-27
  • 사진에세이집 '나를 살린 풍경들' 출간
    「섬진강 편지」 -사진에세이집 '나를 살린 풍경들' 출간 지난 10년 동안 늘 함께였던 섬진강과 지리산의 풍경들을 한자리에 모아 사진에세이집을 펴냈습니다. 제목은 ‘나를 살린 풍경들’입니다. 지난 10년은 어머니의 죽음, 사십 년 직장의 퇴직, 암 투병 5년, 구례로 귀촌, 아이들의 결혼 등 아슬아슬하고 가파른 생의 정점인 십 년이었습니다. 그 가파른 삶의 순간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섬진강과 지리산 풍경들, 그 강길과 산길에 피는 들꽃들의 환한 웃음이었습니다. 이 책에 실린 95장의 풍경이 나를 일으켜 세운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에도 삶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메시지로 가 닿기를 바랍니다. 어제는 출간된 책을 들고 첫서리 내린 노고단에 올랐습니다. 칼바람 속에서 지리산을 지키는 노고할미에게 제사를 올리는 마음으로 ‘나를 살린 풍경들’ 출간을 고했습니다. 나의 남은 시간들은 강산의 뭇 생명들과 한껏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겠노라는 약속도 드렸습니다. 내일은 우체국에 나가 ‘나를 살린 풍경들’을 그대에게 발송하겠습니다. 느닷없는 부탁에도 기꺼이 추천 글을 써준 이강산, 복효근 시인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 시인이자 사진가 김인호. 그의 이름이 입술에 닿으면 곧장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지리산 능선과 섬진강 저녁노을, 폭설 속 얼음새꽃. 그 셋이 찰나에 오버랩되면서 실존 인간은 사라지고 원시 자연의 몇 컷 풍광으로 눈앞에 들이닥치는 사람이 김인호다. 그 풍광의 스펙트럼은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야생화 한 점을 품기 위해 몸에 밧줄을 묶고 벼랑 끝에서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 오랜 세월 지리산과 섬진강에 발자국을 찍어 ‘구도자의 길’을 낸 사람만이 가능하다. 그가 ‘탐매探梅’하듯 떠돈 10년의 순례 끝에 포토에세이를 묶는다. 지리산이며 섬진강의 뭇 생명이 어디 책 한 권에 담길 수 있을까만 오늘 같은 허욕의 세상에서 10년을 감내하고 ‘가장 아름다운 춤, 멈춤’의 시간을 누리는 그의 책이 반갑고 놀라워 경외敬畏라는 낱말을 감추기 힘들다. 그는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르는’ 강물처럼 자신을 비우고 마침내 이 책에 다다랐다. 우리는 책장을 넘기는 동안 눈 앞에 펼쳐지는 ‘인간의 홍매’, 김인호의 바다에서 자맥질을 반복할 것이다. -이강산(시인․사진가) ...................................................................................................................................................................................... 김인호 작가의 사진 에세이를 본다. 읽는다. 이미지를 통한 영상미와 문자를 통한 메시지가 때로 부합하고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때로 반전하면서 감동을 연출하는 방식이다. 작가는 국립공원 1호 지리산과 아직은 청정 수역으로 남아있는 구례의 섬진강을 작품의 태반으로 삼았다. 작가의 시적인 사진 이미지의 빼어남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만이 그의 작업 의도는 아니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품고 있는 오묘한 자연의 아름다움, 역사와 인문학적 유산, 그 속에 펼쳐지는 사람살이의 애환, 위기의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 영성적인 삶을 지향하는 철학적 사유가 사진 이미지와 버무려져 있음을 본다. 모든 참다운 예술이 그렇듯이 김인호의 이번 사진 에세이집도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며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종국에 돌아갈 육신과 정신의 귀의처가 어디인가 묻고 있다. 작업 기간에 코로나19가 있었고 작가 개인적으로는 투병의 기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치유’라는 화두가 그 중심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자연도 인간도 황폐화 일로에 서 있는 전 지구적인 위기의 상황에서 이러한 예술적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아니할 수 없다. -복효근(시인) #나를살린풍경들 #노고단 #노고할미 #지리산 #섬진강 #포토에세이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4-11-24
  • 진리파지眞理把持(사티아그라하)
    진리파지眞理把持(사티아그라하) ► 一神降衷일신강충, 性通光明성통광명, 在世理化재세이화, 弘益人間홍익인간 (본래 신성이라고 할 수 있는 진성이 사람의 중심에 내려와 있으며 이 본성을 통하면 모든 것이 환하게 광명해진다. 이러한 근본 이치(진리)를 펼치는 세상을 이루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한다) 위 구절은 『三一神誥삼일신고』의 내용과 목적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말인데 괄호 속 구절의 해석은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말을 조금 덧붙였다. 『三一神誥삼일신고』는 우리 상고사 속의 경전으로 진리의 모체가 되는 원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천부경’과 함께 단군 이전의 시절부터 백성들을 일깨우기 위해 쓰였던 경전인데 삼성기전과 단군세기, 태백일사 같은 책에서도 ‘백성들을 교화할 때 천경(천부경)과 신고(삼일신고)를 가르치고 환단의 옛 역사를 강론했다’고 나온다. 이 경전들은 처음에는 구전되다가 환웅시절에 녹도문자로 기록되었으며 단군시절에 와서 가림토 문자로 기록되었고 이후 한자로 전해져 지금에 이른다고 전한다. 이런 상고사 속의 경전들은 학계에서는 환국 7세, 신시의 환웅 18세, 그리고 단군 47세의 상고사 자체를 고증하기 어려워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중국의 고서나 우리의 고문헌 속에 단편적으로 나오는 구체적 사실 언급들을 보면 존재했던 과거사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삼일신고의 三一思想삼일사상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이며 천지인(天地人) 우주만물이 하나라는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는 좀 넓게 보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도 상통하며 모든 생명은 서로 뗄 수 없는 하나의 존재라는 생명평화결사의 ‘어울림 삶 무늬’의 의미와도 그 괘를 같이 한다. 위의 ‘一神降衷일신강충’은 하나의 신이 몸 가운데 내려와 있다는 것인데 이는 삼일신고의 2장 一神에 나오는 구절인 ‘자성구자自性求子강재이뇌降在爾腦’의 구절에서 비롯된다. 자성自性은 자신의 본성이니 자성구자自性求子는 그 본성에서 하나님의 씨를 구하라는 것이고, 강재이뇌降在爾腦’는 너의 머릿골 속에 내려와 있다는 뜻이니 이는 곧 스스로의 본성(본래면목)은 신성의 그것이며 이미 가지고 태어났으니 스스로의 안에서 찾고 구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性通光明성통광명은 그 본성을 통하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는 빛과 같은 밝은 지혜가 생긴다는 것이며 在世理化재세이화, 弘益人間홍익인간은 이러한 이치와 진리를 통해 세상을 다스려서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일신강충과 성통광명’은 性通성통을 말한 것이고 ‘재세이화 홍익인간’은 功完공완을 말한 것인데, 요즘에 맞춰 말하면 性通성통은 인간의 참성품을 깨달아 자기완성에 이르는 것이며 功完공완은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적 실천을 완성한다는 사회적 삶에 관한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을 닦아서 진리를 깨달아 세상에서 실천을 완성하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삼일신고에서 말하는 性通功完성통공완의 진리다. 나는 『三一神誥삼일신고』를 보며 상고(上古)의 그 오랜 옛날 정신세계는 오늘날의 그것과 비교할 때 훨씬 높았으며 세상을 살아내는 구체적인 삶 또한 더 바르고 깊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의 과학기술문명이 삶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그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자본주의에 이르면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부추겼고 인류 역사의 모든 사건 사고가 이것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본다. 그리고 상고의 시대건 요즘과 같은 문명의 시대건 사람의 본질은 같은 것일 테니 삶의 근본 원리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사실 ‘나(우리)는 왜 사는가?’라는 근본 질문보다는 먹고 즐기는 것에 우선을 두고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다. 또한 진리가 삶의 바탕에서 운용되는 세상이야말로 진정한 유토피아이고 사랑과 평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진리가 책 속에만 있고 일상 삶 속으로 내려오지 않는 한 태어나면서부터 존재한다는 머릿골 속의 높고 귀한 신성의 자성은 자신의 것이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하면 끝내 먹고사는 일의 일차적 욕구만으로 세상을 살다 간다면 요샛말로 정작 메인요리는 먹어 보지 못하고 에피타이저만 먹고 끝나는 것이니 그 또한 얼마나 억울하고 손해 보는 일인가. (박두규. 시인)
    • 지리산문화
    • 지리산 편지
    2024-11-09
  • 두텁나루숲, 그대
    두텁나루숲, 그대 박 두 규 1. 비가 그치기 전에 숲에 갈 수 있을까 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오늘 같은 날은 숲에 가고 싶다. 숲 어귀 파초 잎사귀 아래 비를 긋고 있는 휘파람 소리 하나 있을 것이다. 그 소리의 반경 안에 그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백이 되어 숲에 들어도 그대를 통속通俗하지 못하니 언제나 그대를 안을 수 있을 것인가. 비가 그치기 전에 숲에 갈 수는 있는 것인가. 2. 숲에 들다 그대 눈부신 속살에 들면 편백나무 서늘한 그늘 어디쯤에 정처 없는 것들의 거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 생각이 무사하기를 빌며 그대 앞에 이르렀을 뿐이다. 그대 안에 드는 일이 두렵기도 하나 단지, 때가 되어 어미의 자궁 밖을 나왔던 것처럼 마침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 것뿐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또 날이 저물었다. 그대의 어디쯤에 달빛에 빛나는 지붕 하나가 있기를 바란다. 그곳에 들어 내 눈부신 맨몸을 볼 수 있다면 사랑한 사람들이 이승을 떠난 것도 잠 못 이루는 짐승들의 매일 밤 울음소리도 그대에 이르기 위한 육탈肉脫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리. 강줄기를 타고 오는 한 줄기 바람에도 이승의 한 십년을 뚝, 떼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숲에 쌓인 무수한 잎들의 신음소리가 나의 일상으로 진입해 오고 해가 지는 세상의 두려움 위로 설레는 가슴은 늘 두근거리기를 바란다. 그렇게 허물을 벗고 단 한 번의 해가 오로지 나에게로 올 것을 믿는다. 나는 달이 뜨는 그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3. 헛꽃 -산수국꽃은 너무 작아 꽃 위에 또 헛꽃을 피워 놓고 제 존재를 수정해 줄 나비 하나를 기다린다. 숲에 들어 비로소 나의 적막을 본다. 저 가벼운 나비의 영혼은 숲의 적막을 날고 하얀 산수국, 그 고운 헛꽃이 내 적막 위에 핀다. 기약한 세월도, 기다림이 다하는 날도 오기는 오는 걸까. 이름도 없이 서 있던 층층나무, 때죽나무도 한꺼번에 슬퍼지던 날 그리운 얼굴 하나로 세상이 아득해지던 날 내 적막 위에 헛꽃 하나 피었다. 4. 축시丑時의 숲 숲의 어둠 속, 소리 없이 흐르는 고요를 본다. 이 고요, 결코 붙잡지 말고 반딧불이의 느린 유영처럼 따라 흘러야 한다. 축시에 이르러 숲길의 풀들은 온통 이슬로 촉촉하니 수천수만의 내가 잠에서 깨어 홀가분하다. 파편처럼 박혀있던 외로움도 회한도 황홀했던 시간도 모두 투명한 침묵이 되어 풀잎에 매달려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이토록 나의 몽상夢想을 깨운다. 축시의 숲, 이 찰나의 어디쯤에서 그대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5. 숲에서 길을 잃고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이제야 그대 있음을 눈치챘어요. 때죽나무 하얀 꽃들이 떨어진 길을 걸으며 풀섶에 숨은 듯 피어있는 동자꽃을 보며 무심히 날아오르는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이 모든 것이 그대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종일토록 걷고 또 걸어도 태양을 도는 행성처럼 반경은 좁혀지지 않네요. 그대의 광휘는 보이나 이를 수 없네요. 아, 그 빛은 밖에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빛나는 것인가요. 이 숲의 어디에나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나무의 무수한 이파리처럼 보이지 않지만 몸을 감싸는 향기처럼 그 빛이 이미 내 안에 있다 해도 나는 나로 꽁꽁 묶여 그대에게 갈 수 없습니다. 눈 코 입 귀 내 모든 감각을 잃고 마음까지 잃어 그대를 그리워할 수도 없을 때 그래야 그대와 하나 될 수 있다는 말은 너무 가혹합니다. 스스로의 모든 것을 잃어야 하나 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오늘도 이토록 가여운 나를 위로하며 강물을 거슬러 오르건만 나는 아직도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맵니다. 그대의 반경만을 빙빙 돕니다 6. 반짝이는 비늘의 물고기처럼 지금껏 그대 그림자 좇아 왔으니 그대 또한 반드시 내 숲의 어느 지경에 들어와 있을 것을 믿는다. 별을 바라보거나 혹은 저무는 강가에서 만난 그대의 환영幻影 또한 나를 향한 그대의 연모라고 생각한다. 그래, 이미 내 안의 어디에 들어와 나의 술래잡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대를 좇아 온 한 세월은 언제나 매듭을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도 마음은 오만 가지의 생각이 맴돌건만 이 저자거리의 모퉁이를 다 도는 어느 날, 그대 불현듯 나에게 오실 것을 믿는다. 비늘의 반짝임과 함께 순간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물고기처럼. 7. 푸르샤여, 나의 푸르샤여 히어리꽃 눈부신 봄 숲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그대를 생각합니다.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대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길 머무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그대 있으니 아무런 걱정 없이 모두가 나의 길이지요. 하지만 그대 생각만 벗어나면 오랜 슬픔은 다시 나를 찾아오고 나는 그대를 잃고 숲속의 미아가 됩니다. 아무 곳도 갈 수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종일토록 울면서 보냅니다. 푸르샤여, 나의 푸르샤여 어디에 있나이까. 나를 온통 채우고 있던 그대여. 두려움과 죽음이 내려앉은 적막의 숲에서 한 줄기 강한 빛의 광휘를 기다립니다. 다시금 그대의 나를 떠올립니다. 푸르샤여, 그대를 기다립니다. 어둠 속 고요에 떠오른 나의 주검이 긴 호흡에 실려 흘러가는 것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고요의 바다에 소리 없이 파문이 일고 빛의 몸, 가득한 사랑입니다. *푸르샤는 파라마 푸르샤를 말하며.. 지고의 의식으로 내 안의 신성에 닿아.. 그 합일을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8. 그렇게 그대가 오면 숲길에서 꽃 한 송이에 걸음이 멈추면 나는 그 꽃입니다. 밤하늘 바라보다 별 하나 눈 마주치면 나는 그 별입니다. 세상의 어떤 슬픔 하나 마주쳐도 나는 그 슬픔입니다. 어느 순간, 그대가 오면 나는 그대일 뿐입니다. 9. 나마스카 그대의 영혼에 안부를, 나마스카 강 노을과 함께 산마루에 해가 저물고 이승의 하루가 스러지는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그대를 떠올리게 됩니다 세상 속 홀로 저무는 하루를 보며 아직도 남아 있는 내 안의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하루의 끝에서 그대를 생각합니다 나마스카, 아름다운 내 영혼 그대여 종일토록 그대를 찾아 헤맨 고단한 육신도 말없이 곁을 지켜준 모든 것들에도 어둠 속 야윈 달빛에 기대어 안부를 전합니다 나마스카, 깊은 밤 고요를 흐르는 은하여 아직도 세상의 화려한 불빛을 좇아 흐르는 저에게 별빛에 젖은 촉촉한 눈망울과 숲속의 부드러운 바람결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것이 모두 그대가 보내는 안부임을 알게 하소서 나마스카, 사랑인 줄 알게 하소서 ---------------------------------------------------- ■ 이 시는 섬진강 국제실험예술제에서 쓰인 행사를 위해 재구성한 연작시이다. 나는 실험예술같은 앞서가는 문학을 하는 사람은 아닌데 섬진강가에 사는 시인들이 불려나오면서 같이 하게 되었다. 시인이 시를 낭송을 하는 동안 화가가 그 시에서 받은 느낌을 옆에서 그림으로 그리며 퍼포먼스를 하는 거였는데 나의 시를 표현할 아티스트는 임택준이라는 분이었다. 10여분 동안 주어진 시간이었고 나는 '두텁나루숲, 그대' 라는 제목의 연작시를 낭송했다. 이 시는 지금까지 발표한 두텁나루숲 관련 시들 중에서 9편을 선별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재구성한 것인데 그것은 그대(파라마푸르샤)를 찾아 숲에 들어가는 과정과 들어가서, 그리고 현재까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 지리산문화
    • 시를 찾아서
    2024-11-08
  • 11월의 산타
    「섬진강 편지」 -11월의 산타 쿵! 형님! 가요! 문밖에 소리가 있어 내다보니 올해도 어김없이 11월의 산타가 다녀갑니다. 1톤 포터 썰매에 이십 킬로 쌀자루가 한가득 실려있습니다. 올해는 벼멸구병으로 농사도 시원찮았다는데... .............................................................................................................. 녹명(鹿鳴) ‘사슴 록(鹿), 울 명(鳴)’ 먹이를 발견한 사슴이 함께 나누기 위해 다른 사슴들을 부르는 울음소리가 녹명이다. 대개 짐승들은 먹이를 발견하면 혼자 먹고 남는 것마저 숨기기에 급급한데, 사슴은 울어 울어 친구들을 불러 함께 나눈다. 녹명은 저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말이다. 형님! 문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있어 나가 보니 마을 후배가 20킬로 쌀 포대를 마루에 부려 놓는다. 추수했으니 햅쌀 맛 좀 보시라 내려놓고, 잠깐 들어오라 불러도 손사래 치며 서둘러 다음 집으로 간다. 해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루돌프 사슴 썰매 대신 1톤 포터를 몰고 골목길을 오가는 마을 산타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사슴 울음소리는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햅쌀 자루 메고 와서 부르는 후배의 “형님” 소리가 바로 녹명이 아닐까! - 섬진강 / 김인호
    • 지리산문화
    • 섬진강 편지
    202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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