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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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시를 찾아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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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에서 온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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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숲에서 온 전화
유순예
아가, 나 여기 있다! 니들 아버지도 옆에 있다
부모님 산소가 있는 밭을 빙 둘러보는데
풀숲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행방불명이던 핸드폰이 손을 흔들며 기어 나온다
아이고, 옴마!
핸드폰 없어졌다고 그 소란을 피운지가 몇 년여
여기다 떨어뜨려놓고
혼자 밭일 하느라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어!
뒤죽박죽된 핸드폰 틈새마다 끼어든
해묵은 흙을 맨손으로 쫓아내고
해묵은 잡초 부스러기들 떼어내기를 반복하는데
초겨울 찬비가 쏟아진다
우둑! 우둑!
쏟아진다, 속절없이 쏟아지는 빗소리에
불통이던 휴대폰이 전화를 받는다
옴마, 아버지 옆에 누우니까 편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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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잃어버렸던 핸드폰을 딸이 밭에서 일하다 우연히 찾았다. 그 딸의 심정이 되어 나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시다. 그 핸드폰으로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안부를 물을 수 있다면 나는 무어라 말할까? 생각하니 갑자기 아득한 심정이 되어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늙었으나 해맑은 그 미소가, 늙은 아들을 안쓰러워하는 그 모습이 그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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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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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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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부른다
- 김 현 주
봄꽃들이 십일월에 피어올랐다
봄인 줄 알고 꽃망울 피어올린 처연한 것들
봄꽃이라 부르랴
겨울꽃이라 부르랴
내일이면 콧등 시린 바람 분다는데
찬서리 내려앉은
여린 꽃은 어디로 가야 하나
피자마자 지는 것도
물들지 못하고 투둑 떨어지는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피어나지 못한 채 져버린* 만19세 청년
윤슬 위로 흘러가는 네 어미 울음소리에
따순 십일월 햇살 받아 피어오른게지
이렇게라도 다시 한번 피어나고 싶어
네 어미 눈썹 닯은 자귀꽃으로 피어난게지
* 2024년 6월 16일 전주페이페에서 일하던만 19세 청년노동자가 입사한지 6개월만에 사망했다. 그는 순천 모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현주┃길문학회 동인, 순천작가회의 회원, 저서 「구술생애사 ‘조곡동 철도관사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1.2」, 「마을의가치, 학교와같이(공저)」가 있다. 청소년노동인권활동가이자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이다. 현재는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 소장이다.
one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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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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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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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서
조 영 옥
가장 찬란란 모습으로
제 몸을 던지는
은행나무 아래서
한 잎 두 잎
허공 중의 은행잎과
작별을 했다
가야할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소멸 속에서 생명을 얻는 자
생명을 통해 소멸에 이르는 자
세상은 둘이라 생각했다
오래토록 그렇게 서 있었다
세상은 어두워지고
문득 고개를 들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영겁의 길
이별은 서로가 하나가 되는 것
만남은 그대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렇듯 은행잎과 내가 다르지 않아
은행나무 아래서
나도 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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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옥 시인은 지난달에(2024. 11.) 돌아가셨다. 나는 그녀와 전교조 동지로, 생명평화결사 도반으로, 같이 시를 쓰는 글벗으로, 한 생을 같이 해왔다. 언제나 가엽고 약한 자 편에 서서 세상일을 앞서서 실천하는 삶을 살아 모두의 귀감이 되었다. 오래된 시지만 그녀가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그녀를 돌아보게 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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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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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텁나루숲,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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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텁나루숲, 그대
박 두 규
1. 비가 그치기 전에 숲에 갈 수 있을까
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오늘 같은 날은 숲에 가고 싶다. 숲 어귀 파초 잎사귀 아래 비를 긋고 있는 휘파람 소리 하나 있을 것이다. 그 소리의 반경 안에 그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백이 되어 숲에 들어도 그대를 통속通俗하지 못하니 언제나 그대를 안을 수 있을 것인가. 비가 그치기 전에 숲에 갈 수는 있는 것인가.
2. 숲에 들다
그대 눈부신 속살에 들면
편백나무 서늘한 그늘 어디쯤에
정처 없는 것들의 거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그 생각이 무사하기를 빌며
그대 앞에 이르렀을 뿐이다.
그대 안에 드는 일이 두렵기도 하나
단지, 때가 되어 어미의 자궁 밖을 나왔던 것처럼
마침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온 것뿐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렇게 또 날이 저물었다.
그대의 어디쯤에
달빛에 빛나는 지붕 하나가 있기를 바란다.
그곳에 들어 내 눈부신 맨몸을 볼 수 있다면
사랑한 사람들이 이승을 떠난 것도
잠 못 이루는 짐승들의 매일 밤 울음소리도
그대에 이르기 위한 육탈肉脫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리.
강줄기를 타고 오는 한 줄기 바람에도
이승의 한 십년을 뚝, 떼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숲에 쌓인 무수한 잎들의 신음소리가
나의 일상으로 진입해 오고
해가 지는 세상의 두려움 위로
설레는 가슴은 늘 두근거리기를 바란다.
그렇게 허물을 벗고
단 한 번의 해가 오로지 나에게로 올 것을 믿는다.
나는 달이 뜨는 그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3. 헛꽃
-산수국꽃은 너무 작아 꽃 위에 또 헛꽃을 피워 놓고 제 존재를 수정해 줄 나비 하나를 기다린다.
숲에 들어 비로소 나의 적막을 본다.
저 가벼운 나비의 영혼은 숲의 적막을 날고
하얀 산수국, 그 고운 헛꽃이 내 적막 위에 핀다.
기약한 세월도, 기다림이 다하는 날도 오기는 오는 걸까.
이름도 없이 서 있던 층층나무, 때죽나무도 한꺼번에 슬퍼지던 날
그리운 얼굴 하나로 세상이 아득해지던 날
내 적막 위에 헛꽃 하나 피었다.
4. 축시丑時의 숲
숲의 어둠 속, 소리 없이 흐르는 고요를 본다.
이 고요, 결코 붙잡지 말고
반딧불이의 느린 유영처럼 따라 흘러야 한다.
축시에 이르러 숲길의 풀들은 온통 이슬로 촉촉하니
수천수만의 내가 잠에서 깨어 홀가분하다.
파편처럼 박혀있던 외로움도 회한도 황홀했던 시간도
모두 투명한 침묵이 되어 풀잎에 매달려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이토록 나의 몽상夢想을 깨운다.
축시의 숲, 이 찰나의 어디쯤에서
그대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5. 숲에서 길을 잃고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이제야 그대 있음을 눈치챘어요.
때죽나무 하얀 꽃들이 떨어진 길을 걸으며
풀섶에 숨은 듯 피어있는 동자꽃을 보며
무심히 날아오르는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이 모든 것이 그대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종일토록 걷고 또 걸어도
태양을 도는 행성처럼 반경은 좁혀지지 않네요.
그대의 광휘는 보이나 이를 수 없네요.
아, 그 빛은 밖에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빛나는 것인가요.
이 숲의 어디에나 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나무의 무수한 이파리처럼
보이지 않지만 몸을 감싸는 향기처럼
그 빛이 이미 내 안에 있다 해도
나는 나로 꽁꽁 묶여 그대에게 갈 수 없습니다.
눈 코 입 귀 내 모든 감각을 잃고 마음까지 잃어
그대를 그리워할 수도 없을 때
그래야 그대와 하나 될 수 있다는 말은
너무 가혹합니다.
스스로의 모든 것을 잃어야
하나 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합니다.
오늘도 이토록 가여운 나를 위로하며
강물을 거슬러 오르건만
나는 아직도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맵니다.
그대의 반경만을 빙빙 돕니다
6. 반짝이는 비늘의 물고기처럼
지금껏 그대 그림자 좇아 왔으니 그대 또한 반드시 내 숲의 어느 지경에 들어와 있을 것을 믿는다. 별을 바라보거나 혹은 저무는 강가에서 만난 그대의 환영幻影 또한 나를 향한 그대의 연모라고 생각한다. 그래, 이미 내 안의 어디에 들어와 나의 술래잡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대를 좇아 온 한 세월은 언제나 매듭을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아직도 마음은 오만 가지의 생각이 맴돌건만 이 저자거리의 모퉁이를 다 도는 어느 날, 그대 불현듯 나에게 오실 것을 믿는다. 비늘의 반짝임과 함께 순간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물고기처럼.
7. 푸르샤여, 나의 푸르샤여
히어리꽃 눈부신 봄 숲길을 걸으며 사랑하는 그대를 생각합니다.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대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길 머무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그대 있으니 아무런 걱정 없이 모두가 나의 길이지요.
하지만 그대 생각만 벗어나면 오랜 슬픔은 다시 나를 찾아오고 나는 그대를 잃고 숲속의 미아가 됩니다. 아무 곳도 갈 수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종일토록 울면서 보냅니다. 푸르샤여, 나의 푸르샤여 어디에 있나이까. 나를 온통 채우고 있던 그대여.
두려움과 죽음이 내려앉은 적막의 숲에서 한 줄기 강한 빛의 광휘를 기다립니다. 다시금 그대의 나를 떠올립니다. 푸르샤여, 그대를 기다립니다. 어둠 속 고요에 떠오른 나의 주검이 긴 호흡에 실려 흘러가는 것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고요의 바다에 소리 없이 파문이 일고 빛의 몸, 가득한 사랑입니다.
*푸르샤는 파라마 푸르샤를 말하며.. 지고의 의식으로 내 안의 신성에 닿아.. 그 합일을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8. 그렇게 그대가 오면
숲길에서 꽃 한 송이에 걸음이 멈추면
나는 그 꽃입니다.
밤하늘 바라보다 별 하나 눈 마주치면
나는 그 별입니다.
세상의 어떤 슬픔 하나 마주쳐도
나는 그 슬픔입니다.
어느 순간, 그대가 오면
나는 그대일 뿐입니다.
9. 나마스카
그대의 영혼에 안부를, 나마스카
강 노을과 함께 산마루에 해가 저물고
이승의 하루가 스러지는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그대를 떠올리게 됩니다
세상 속 홀로 저무는 하루를 보며
아직도 남아 있는 내 안의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하루의 끝에서 그대를 생각합니다
나마스카, 아름다운 내 영혼 그대여
종일토록 그대를 찾아 헤맨 고단한 육신도
말없이 곁을 지켜준 모든 것들에도
어둠 속 야윈 달빛에 기대어 안부를 전합니다
나마스카, 깊은 밤 고요를 흐르는 은하여
아직도 세상의 화려한 불빛을 좇아 흐르는 저에게
별빛에 젖은 촉촉한 눈망울과
숲속의 부드러운 바람결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것이 모두 그대가 보내는 안부임을 알게 하소서
나마스카, 사랑인 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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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섬진강 국제실험예술제에서 쓰인 행사를 위해 재구성한 연작시이다. 나는 실험예술같은 앞서가는 문학을 하는 사람은 아닌데 섬진강가에 사는 시인들이 불려나오면서 같이 하게 되었다. 시인이 시를 낭송을 하는 동안 화가가 그 시에서 받은 느낌을 옆에서 그림으로 그리며 퍼포먼스를 하는 거였는데 나의 시를 표현할 아티스트는 임택준이라는 분이었다. 10여분 동안 주어진 시간이었고 나는 '두텁나루숲, 그대' 라는 제목의 연작시를 낭송했다. 이 시는 지금까지 발표한 두텁나루숲 관련 시들 중에서 9편을 선별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재구성한 것인데 그것은 그대(파라마푸르샤)를 찾아 숲에 들어가는 과정과 들어가서, 그리고 현재까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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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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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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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에 가서
나 종 영
그대는 바람소리를 놓아두고 떠났다.
하얀 눈길 위로 발자국 하나 없어도
그대 가는 길이 훤히 보여 눈이 아프고 시리다.
물염정 적벽 소나무에 눈꽃이 일고
강물이 멈춘 어두운 시간에
그대는 홀로 어디쯤 닿아 있는가?
훨훨 버리고 떠난 그대가 남겨둔 솔바람 소리
저 단애를 비껴간 세월은 아직 눈썹달마냥 남아 있는데
흩어지는 눈발을 뒤로 하고
그대는 오늘도 어느 길위에서 뒤척이는지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는 물염 절벽에
그대는 칼끝을 세워 청풍 바람소리를 새기고
쇠기러기 떼 지어가는 새벽하늘
강물은 굽이굽이 떠나간 그대 흰 옷자락을
혼신의 힘으로 붙들고
멀리 하나둘 등불 켜진 마을
언 강둑 위로 맨발을 끌고 가는
그대의 마지막 잔기침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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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은 전남 화순 이서의 물염절벽에 있는 정자로 물염은 물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파에 물들지 않는 꼿꼿한 선비를 떠올리게 하는 정자 이름이다. 세상은 늘 변하는 세상이지만 한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변치 않아야 할 무엇이 항상 있는 것이니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지키는 것이 옛 선비들의 지조였고 사람의 도리였다. 시인은 이 시대에 너무 휩쓸리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물염의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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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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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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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서
조 영 옥
가장 찬란란 모습으로
제 몸을 던지는
은행나무 아래서
한 잎 두 잎
허공 중의 은행잎과
작별을 했다
가야할 길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소멸 속에서 생명을 얻는 자
생명을 통해 소멸에 이르는 자
세상은 둘이라 생각했다
오래토록 그렇게 서 있었다
세상은 어두워지고
문득 고개를 들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영겁의 길
이별은 서로가 하나가 되는 것
만남은 그대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렇듯 은행잎과 내가 다르지 않아
은행나무 아래서
나도 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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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경은 사회적으로 민주와 반민주의 구도 속에서 군사독재정권과의 선명한 전선이 형성되어 민주와 통일의 큰 변혁의 물꼬가 터져 흐르던 격동의 시기였다. 그때만 해도 조영옥은 해직교사로서 교육운동을 했던 걸출한 여전사로서의 이미지가 강했고 시를 쓰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녀의 시에는 조직활동가로 살아온 세월 속에서 단련된 대담함과 성실성, 소탈함과 겸허함, 그리고 늘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일상 속 삶이 잘 녹아있다. 이 시는 가을빛의 중심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은행잎들을 보며 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사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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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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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獨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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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獨居
이 원 규
남들 출근할 때
섬진강 청둥오리 떼와 더불어
물수제비를 날린다.
남들 머리 싸매고 일할 때
낮잠을 자다 지겨우면
선유동계곡에 들어가 탁족을 한다.
미안하지만 남들 바쁘게 출장 갈 때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고
정말이지 미안하지만
남들 야근할 때
대나무 평상 모기장 속에서
촛불을 켜놓고 작설차를 마시고
남들 일중독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일없어 심심한 시를 쓴다.
그래도 굳이 할 일이 있다면
가끔 굶거나 조금 외로워하는 것일 뿐
사실은 하나도 미안하지 않지만
내게 일이 있다면 그것은 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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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은유한 ‘가끔 굶는 것과 조금 외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원규 시인이 삶의 현실에서 가장 비중 있게 지향하고 있는 그 무엇이다. 나는 그것을 인간적 욕망을 벗어나 존재의 본연을 찾아가려는 구도자적 지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볼 때 이원규는 구도자가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혼자 떠돌며 살아가는 것으로 보아 훌훌 털어 버렸을 것 같은 세속의 질긴 인연들도 사실은 자신의 내면에서 늘 데리고 다니는 것들이고, 시대적 현실문제도 나몰라라하고 도망치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이처럼 그는 탈속하지 않으면서도 그 지향은 구도의 길이다. ‘가끔 굶는 것과 조금 외로워하는 것’에서 ‘굶는 것’은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구체적 생활세계에서 자신을 앞질러 가려는 세속적 욕망을 끊어주는 것이요, ‘외로워하는 것’은 앞서 말한 존재의 본질적 외로움이며 또한 바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잃고 사는 현대인들은 존재의 본연인 자아를 만나야 한다는 당위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과 ‘조금’의 수식이 의미하는 것은 그럼에도 그것에 전격적으로 매달려 구도자의 길을 가는 것보다는 주어진 세속의 세월을 부대끼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점을 깊이 깨달은 것이라고 본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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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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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읍 장미 나이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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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읍 장미 나이트 클럽
- 박 두 규
구례에 첫발을 디딘 1986년에도
번잡한 장터거리 끄트머리에 있었지
입구의 골목에 빨간 넝쿨장미가 피어 있는
일반 가정집 같은 장미 나이트클럽
키 큰 사람이 손을 올리면 천장에 닿는
손바닥만 한 나이트클럽
대여섯 식탁의 홀에 룸도 하나 딸려 있어
장날이면 견우와 직녀가 된
광의면 홀애비와 문척면 홀엄씨가
술잔을 훌쩍이며 손을 잡고 신세타령도 할 만한
구례읍 장미 나이트클럽
읍내에서 어울리던 늙은 한량 중 한 명이
가족을 따라 미쿡으로 영영 들어간다고
송별식을 위해 장미 나이트클럽을 통째로 빌렸는데
흰머리, 벗은 머리 여나뭇 모이니 홀이 꽉 찬다
장에서 사 온 순대와 회무침, 김밥을 벌여 놓고
음주가무에 판이 어우러지니 석별의 정인들 따로 있을까
파장 술에 취해 늘 그러하듯 취하면 그만인 것을
어쩌면, 한 치 앞을 모르고 더듬거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어서
부는 바람 홀로 맞아내는 것이 사람의 일이기도 해서
그렇게 오늘도 섬진강의 노을이 붉다
어두워진 지리산의 공제선이 더욱 또렷하다
장미 나이트클럽의 쌍팔년도 장밋빛 붉은 사랑
불현듯 한 생이 그처럼 지나간다
구례읍 한량들이 그렇게 또 취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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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장터거리의 끄트머리에 이 나이트클럽이 있다. 지나갈 때마다 젊은 날 나이트클럽(고고장)에 가고 싶어서 친구들과 함께 공사판 노가대 일을 다녔던 일이 생각나는 곳이다. 입구에 덩쿨장미가 피어있고 텃밭이 딸려있는 가정집처럼 보여서 묘하게도 애틋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구례에 산 날들이 20년 가까이 되지만 올해에서야 처음으로 우연한 기회로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래서 시도 한 편 쓰게 되었다. 이 시를 페북에 올리려고 나이트클럽 야경을 찍으러 갔는데 밤 10시경, 나이트 클럽의 영업이 이제 막 시작되는 시간이어야 할 텐데 벌써 영업이 끝나 간판의 불이 꺼져있었다. 나이트라는 말이 무색하게 행인 하나 없는 거리에 가로등 불빛만 가물거리고 있었다. 요즘 시골의 밤 풍경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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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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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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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김 영 언
집을 짓는다
허공에 벽을 둘러치고
길을 막고 하늘을 가린다
바람의 길이었으나
구름의 정원이었으나
하늘을 덮고 서서 자는 벚나무의 잠자리였으나
욕망의 높이만큼
견고하게 구획을 짓고
나무의 잠을 쓰러뜨린다
이 세상 잠시
꿈의 밀실을 꾸미기 위해
층층이 벽돌을 쌓아 올린다
지상을 밀어 올려
구름 같은 삶을 세웠으나
비로소 허공을 차지하였으나
저 멀리
흰 구름 흩어지는 것도 모르고
눈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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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처럼 우리는 ‘허공에 집을 짓는다.’ 바람의 길이나 구름의 정원 그리고 벚나무의 잠자리를 빼앗아 허공에 집을 짓는다. 많은 시들에 등장하는 ‘집’이라는 시어의 의미망 속에는 ‘존재의 근원’을 가리키는 것들이 많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짓기 위해 자연의 균형을 깨고 우주의 순환 질서를 거스른다. 하지만 그것은 허공에 집을 짓는 것처럼 존재의 거처로서는 부질없고 허망한 것일 뿐이고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 세상에 와서 잠시 ‘꿈의 밀실’을 꾸미기 위한 것이지 본질에서 벗어난 삶이라는 것이다. 탐욕의 본질을 참으로 적절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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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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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수 없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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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일기 1 -이길 수 없는 싸움
박 일 환
넌 맨날 지각이냐?
지각 안 한 날이 더 많은데요?
그래서 잘했다는 거냐?
선생님이 말은 똑바로 하라고 하셨잖아요.
남아서 벌 청소 하고 가.
청소 말고 다른 거 하면 안 되나요?
오늘은 일찍 가야 해서요.
갈 데가 왜 그리 많아?
학교만 아니면 갈 데야 많죠.
그럼 학교는 왜 오는 거냐?
졸업하려고요.
졸업은 해서 뭐 하게?
지금까지 다닌 게 억울하잖아요.
억울하면 청소하고 가.
한 번만 봐주세요, 어차피 도망갈 건데.
니가 나를 좀 봐줘라.
헤헤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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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면 대화하는 학생과 선생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그 심리까지도 세밀화처럼 그려져 떠오른다. 나는 사실 이런 애들이 맘에 든다. 그냥 삐딱하고 순종적이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자기 삶을 향한주체적 대응이 맘에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응이 매우 논리적이다. 물론 그건 논리라기보다는 말대답일 뿐인데 그게 자신의 주체적 삶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맘에 든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진솔한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체적 삶과 연계된 진솔함은 사실 우리 현실 사회의 삶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이지 않은가.
이처럼 진짜 교육은 학교나 교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부딪히는 현실 삶에 더 많이 있다. 그래서 교사의 교육은 수업 시간보다 수업 외의 시간들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좋은 교사란 수업을 잘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사람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아닐까. 교육이 무엇인가. 결국은 사람을 사람답게 길러 내자는 것이 아닌가.
달라이라마가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 대목이생각나 인용해 본다. “언제고 공교육 기관들이 내가 ‘가슴 교육(Educating Heart)’이라고 부르는 내용에 관심을 갖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기본적인 학문에 적절히 숙달될 필요를 우리 모두 인정하듯이 아이들이 학교 커리큘럼으로 사랑, 자비, 정의, 용서 같은 내적 가치들의 필요불가피성을 배우는 그런 때가 오기를 나는 희망한다.”
달라이라마가 말하는 내적 가치들을 학교 커리큘럼으로 넣어서 가르치는 시절이 온다면 위 시 속의 화자 박일환 선생 같은 사람이 바로 적임의 교사일 것이다. ‘니가 나를 좀 봐줘라’ 라는 말에 담겨 있는 것처럼 아이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가장 적절한 대화를 거짓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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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