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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지리산 편지 기사

  • [숲샘의 지리산통신] 풀천지 우리 집 마당 봄소식
    광양 소학정 매화와 통도사 자장매가 핀다고 난리들이지만 풀천지 우리 집 마당에서 꼼지락거리는 봄의 실마리가 더 반갑다. 낮게 엎드려 그 추운 겨울을 견디더니 이렇게 봄의 실마리를 선사하는 상사화야, 달맞이야, 봄동배추야, 개망초야~ 고맙고 또 고맙다. -2024.02.15 별을 품고 있는 달맞이꽃의 꽃방석(로제트) 봄이 오면 장다리꽃을 피울 봄동은 잎마다 한 그루 나무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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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편지
    2024-02-15
  • 지극정성至極精誠
    지극정성至極精誠 저희 『생명평화결사』의 평생교사이신 송기득 선생님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선생님은 수년 전 사모님께서 돌아가시자 자신의 삶도 이런저런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셨는지 그동안 발행해오던 잡지 『신학비평』을 폐간하시겠다고 하셨지요. 그때 주변에서 제자들이며 지인들이 극구 말려서 『신학비평』은 끝났지만 이후 그 여운을 담아내는 부록처럼 『신학비평 너머』라는 제호로 전보다 규모가 작아진 책을 내며 마음을 달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신학비평 너머』 원고를 청탁하시면서 말씀 뒤 끝에 이 『신학비평 너머』도 올해 겨울호를 끝으로 폐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왠지 그 말씀이 삶의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말씀처럼 들려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신학비평』은 당신의 모든 일상을 길어 올리던 두레박 같은 것이며 여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할 것인데 이를 그만둔다는 말은 예삿말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도 선생님의 판단인데 내가 이런저런 짐작을 해서도 또 말려서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연기緣起에 의한 것이어서 오늘의 행위가 내일을 결정하게 되니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해야만 운명도 나의 운명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선생님의 『신학비평 너머』 폐간 결정이 그러하신 것 같았습니다. 생성하는 것은 반드시 소멸이 따르는 것이라 하니 선생님께서 그 시기를 보시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어쨌거나 나는 『신학비평 너머』를 더 하시라는 말도 못 꺼내고 글이나 더 열심히 써서 보내겠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지요. 그리고 나는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마음을 집중하니 성誠이라는 글자 하나가 떠올랐지요. 선생님의 삶 자체를 이 글자 하나가 오롯이 떠받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군 때의 경전인 『참전계경參佺戒經』을 보면 성誠에 대해서 이러한 말이 나옵니다. 誠者 衷心之所發 血性之所守 (성이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타고난 참 본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성誠에 대한 연변대학에 있던 최민자 교수의 해설을 보면 “일념으로 誠을 다할 때 자신의 誠門이 열리면서 스스로의 신성과 마주치게 된다. 매순간 정성을 다하는 것이 타고난 참 본성을 지키는 것이요 인간의 중심에 내려와 계신 ‘하나’님(‘삼일신고’에 나오는 一神降衷의 의미)을 경배하는 것이다.” “정성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마음을 바르게 갖는 것이며 잊지 아니하는 것이고 쉬지 않는 것이며 지극한 감응에 이르는 것이다.” 라는 글들이 나옵니다. 내가 송기득 선생님을 자신의 일상 삶 자체를 오롯이 성誠으로 사신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수년간의 지극한 돌봄과 그 죽음 이후 현재 삶만 보더라도 그렇고 선생님의 삶 전체를 한마디로 평한다 해도 성誠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한 말인 듯싶습니다. 젊은 날 구도행의 시절도 성誠이요 학자로서 학문을 할 때도 성誠이요 가르침이나 모든 삶 행위도 성誠이요 사모님에 대한 극진한 모심도 성誠이었으니 그 지극정성의 삶 자체가 이미 참 본성으로 세속을 살아내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위의 책 내용에서 “정성이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우러나오게 된다. 정성이 더욱 깊어져 우리의 몸 세포 하나하나에 그것이 각인되는 단계에 이르면 호흡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이는 존재의 전 과정이 정성의 발현인 것으로 나타나게 되어 가히 정성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역사상 알려졌거나 혹은 알려지지 않은 밝은이(覺者)들이 이에 속한다. 이는 한마디로 ‘나’(에고)를 잊고 ‘나’(참 본성)를 잃지 않는 경지이다.” 라는 대목을 보면 더욱 선생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선생님은 현재 아파트에서 두유나 과일주스 등으로 식사를 하시며 불편한 몸으로 혼자서 하루를 보내고 계십니다. 나는 그 선생님의 심정을 헤아려보다가 시를 한편 만들었습니다. 새는 낮게 날아 나무의 그늘로 그늘로만 옮겨 다니며 아무런 지저귐도 없이 폭염을 견디었다. 견딘다는 것은 영역과 영역의 경계를 사는 일이기도 해서 한편으론 외롭고 쓸쓸한 일이기도 했다. 모든 경계를 지우고 순일純一한 하늘을 보게 되는 어느 날이 온다면 오늘이겠지. 오늘이겠지. 그렇게 막연한 설렘 하나로 또 하루가 갔다. (박두규의 시 「또 하루가 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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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9
  • 강을 바라보다
    강을 바라보다 강은 저무는 강이 가장 아름답다. 물론 이것은 매우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다. 안개 자욱한 새벽 강인들 아름답지 않을 것인가. 나는 언제부턴가 강을 자주 바라보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거처가 강가에 있다보니 좋든 싫든 하루 종일 강을 힐끗거리며 살고있는 것이다. 그리고 딱히 일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일과가 끝나는 저녁이면 나도 모르게 툇마루에 앉아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강을 바라보게 된다. 검붉은 노을의 강을 건너는 새들도 뜸해지면서 서서히 어두워지는 시간에 비례해 강은 점점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멀리 마을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마침내 주변이 다 어두워져도 강은 홀로 반짝이며 흐른다. 어둠 속 적막을 흐르는 빛나는 강물을 보며 앉아 있으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사무쳐 온다. 이 시간이면 마음은 끝없이 깊게 내려앉아 저절로 명상의 상태에 이른다. 실제로 십여 년 전 이 두텁나루숲에서 ‘강을 바라보다’라는 이름을 붙이고 명상 캠프를 가졌었다. 그때 아난다마르가의 수행자 칫따란잔아난다 다다를 모시고 지역의 활동가들을 포함해 열댓 명 정도가 단식하며 ‘인간의 의식층’에 대한 강의를 듣고 명상을 배웠다. 명상은세상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상을 더 깊고 밝게 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명상은 자기중심적인 관점을 극복하고 세상을 하나로 만나기 위한 것이며 ‘지금 여기’에서 실천적으로 살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많은 현상과 그 지식의 현실은 당대의 삶을 규정짓는 환경이고 조건이지만 한편으로는 존재와 생명을 구속하는 것이기도 해서 이를 극복하고 삶과 죽음의 균형감각을 일구는데 명상은 매우 유효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고 떠나고 사라지는 것들의 무상함이 주는 생의 쓸쓸함과 두려움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소멸하는 것들에 대한 아픔을 이 나이토록 제법 훈련받아 왔지만, 나는 아직도 늘 그 무상의 끝자락에서 울음 운다. 세속의 삶을 산다는 것이 얼추 그렇지 않은가. 욕망과 집착의 낮은 의식층을 살고 있는 한 성인군자의 그것처럼 아무리 위선을 떨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지 않던가. 평생토록 많은 지식을 머리에 담아냈다 해도 실천이 없으면 삶의 지층에는 변화가 없듯이 우리는 길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속절없이 그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무런 말 없이 어둠 속을 흐르는 강물은 어둠 속의 빛을 끌어모아 반짝이고 또 반짝이며 우리에게 이런 생의 왜곡과 허망함을 가르쳐준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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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9
  • [숲샘의 지리산통신] 사진으로 되돌아보는 2023년 지리산
    진부한 표현이라 해도 다사다난 말고는 달리 쓸 단어가 없을 2023년 한 해도 그 꼬리를 감추고 있다. 나라 안팎이 숨 가쁘게 돌아간 올 한해, 숱은 사람이 들고 나기도 했던 지리산 자락에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풍운아처럼 지리산과 수도산을 넘나들던 반달곰 오삼이도 그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우리 초록걸음 길동무들도 변함없이 지리산의 실핏줄 같은 그 길들을 걷고 또 걸었다. 2023년 지리산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웠고 그 위태로움은 쉬 끝나지 않을 듯싶다. 산청과 함양의 케이블카, 남원 산악열차, 구례의 골프장과 양수발전 댐에 최근엔 한동안 잠잠하던 덕천강 덕산 댐까지 온 지리산이 천박한 자본주의를 앞세운 개발 광풍에 휩싸이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지리산권 지자체들은 주민 공동체가 망가지든 말든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고 현 정부 또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승인 과정에서 보여주듯 기후 위기의 시대에 역주행하고 있으니 더 절망적이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지키려는 지리산 사람들이 아픈 지리산 곳곳을 누비며 지리산을 껴안고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들의 이런 몸짓이 비록 달걀로 바위 치기가 될지라도 우린 우리의 방식으로 뚜벅뚜벅 지리산을 걸어갈 것이다. 1월 산청 정취암에서 맞은 해돋이, 필자가 농장으로 향하는 그 길에서 날마다 이토록 장엄한 일출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저 멀리 한우산과 자굴산 그리고 운무에 휩싸인 단계마을까지 신비로움을 연출한다. 4월 악양 평사리 들녘, 활짝 핀 자주구름꽃 자운영 뒤로 무딤이뜰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부부송이 정겹다. 5월 지리산 둘레길 마지막 고개 밤재의 초록 터널을 지나고 있는 초록걸음 길동무들 6월 구재봉 활공장, 섬진강을 적시는 노을을 바라보는 젊은 연인들의 뒷모습을 훔치다. 반짝거리는 평사리 무논들 또한 노을로 물들어간다. 7월 운봉읍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 필자의 어린 길동무가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서어나무 숲을 걸으며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9월 노고단 가는 길, 아빠와 아들로 오해할 뻔한 할아버지와 아들의 뒷모습이 하도 부러워 뒤를 따라 걸으며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11월 실상사, 실상사 주변 오체투지를 마치고 보광전 앞에서 합장하면서 마무리하는 길동무들의 뒷모습을 보며 지리산의 깊고 엄숙한 울림이 그대로 전해져 왔음을... 12월 눈 쌓인 천왕봉,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산천재 앞 덕천강을 가로지르는 돌다리에서 신령스럽기만 한 천왕봉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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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편지
    2023-12-27
  • 가여워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 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게 되기를 바란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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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07
  • [숲샘의 지리산통신] 다시. 지리산의 가을본색
    [숲샘의 지리산통신] 다시, 지리산의 가을 본색 지난여름의 긴 장마에 잦은 가을비까지 더해져 올해 지리산의 단풍 농사는 영 시원찮다. 단풍나무류의 단풍은 그 어느 해보다 우중충한 민낯으로 가을을 맞았다. 광합성에 최적화된 초록 잎으로 화장을 하고는 햇빛을 열심히 흡수하던 나무들은 이제 동파 방지를 위해 물길을 닫았고 제 몸속에 지니고 있던 본색을 드러내면서 제 가진 것 하나둘 땅으로 돌려보내면서 긴 월동을 준비한다. 단풍 농사가 흉작인 숲에서도 은행나무가 있어 그나마 지리산의 가을 풍경을 남길 수 있음에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 은행나무 단풍을 사진으로 남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은행잎들이 노랑으로 물드는 시기가 해마다 다르고 또 어떤 때에는 밤새 불어닥친 강풍에 그 노랗던 잎들이 깡그리 떨어져 허탈해하던 적도 있었다. 사랑이 그렇듯 은행나무 단풍 사진 찍기도 타이밍이 좌우한다는 사실,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싶다. 올가을 노란 단풍이 절정일 때 제대로 알현한 하동 옥종 청룡리 은행나무 어르신의 풍채는 여전하셨다. 산청 산천재 앞 도로에서 만난 은행나무 가로수는 동네 할머니의 출연으로 그 색감이 진하게 담겼다. 은행나무가 살아 있는 화석 나무로 불리듯 노란 가을 단풍으로도 그 긴 전통을 이어오고 있고 또 이어가리라. 은행나무 말고도 이 가을의 끝자락에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만난 가을의 본색들을 떠올려 본다. 은행나무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메타세쿼이아의 단풍 색감 또한 찬란하단 표현이 절로 나오는데, 수면에 데칼코마니로 투영되는 한 폭의 수채화를 둘레길이 지나는 산청 내리저수지에서 감상할 수가 있다. 그리고 노고단 가는 길에서 만나는 파스텔톤의 붉은 단풍들을 보면서 바람을 견뎌내는 키 작은 나무들의 지혜를 느낄 수가 있었다. 지리산의 가을빛은 숲에만 깊어가는 건 아니다. 지리산의 중요한 구성체인 지리산의 강들 또한 가을빛 강물로 유장하게 흐른다. 며칠 전 노을이 질 무렵 성철스님순례길을 걸으며 경호강과 양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에서도 노을이 더해져 가을빛이 물씬 묻어있는 강 풍경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실상사 공양간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들은 또 다른 가을 색감으로 다가왔다. 이렇듯 떠나는 가을의 흔적이 지리산 도처에 스며 있음을 보면서 언제나 단명인 그 가을의 본색을 필자의 졸시로 남긴다. 가을 본색 / 최세현 초록으로 속마음 숨겨오던 숲 그 숲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풍의 남하 속도 하루 25Km 그 속도로... 하지만 알록달록 그 본색을 다 보여주기엔 너무도 단명인 가을이다 일제히 불타올라 장렬히 소신공양하고 나면 온 숲은 바람으로 뒤척거릴 것이다 사람들아, 부디 경배의 절을 올리시라 이 눈부신 가을날에 제 할 일 다 마치곤 각양각색의 본색을 드러내는 저 숲을 향해서... 600년 세월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노란 단풍 축제를 이어오고 계신 하동 옥종 청룡리 은행나무 어르신 남명 선생이 말년을 보내신 산천재 옆 은행나무 가로수, 때마침 그 길을 지나는 동네 할머니의 노란 옷과 길바닥에 깔린 은행잎이 깔 맞춤이다. 실상사에서 함양 마천 가는 길, 지리제일조망 금대암 들머리에서 은행나무 가로수에 홀려 스쿠터를 세우고 사진 한 컷 남기다. 지리산 둘레길 산청 구간 내리저수지의 메타세쿼이아 단풍, 수면에 투영된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바람이 잠잠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겨우 건진 데칼코마니 숲이 어떻게 바람을 견디며 적응하고 그 생존을 이어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노고단 가는 길, 키 작은 나무들의 단풍 색감이 파스텔 풍이었다. 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는 산청 신안면 두물머리 풍경, 갈대와 저녁놀이 어우러져 가을빛이 강물에 스몄다. 저 수평의 강 또한 지리산의 한 부분인 것을... 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는 산청 신안면 두물머리 풍경, 갈대와 저녁놀이 어우러져 가을빛이 강물에 스몄다. 저 수평의 강 또한 지리산의 한 부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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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편지
    2023-11-27
  • 지리산 운동
    지리산 운동에 대하여 ‘지리산 운동’이라는 용어는 아직은 좀 낯설지만 지리산 권에 있는 많은 단체나 소모임, 그리고 개인의 다양한 영역의 사회 변혁적 활동과 삶들을 하나의 큰 지향으로 엮어낼 수 있는 ‘지리산 공동체’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몇 마디 거들까 한다. 21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 우리 사회 변혁운동은 크게는 군부독재라는 반정부 투쟁 속에서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을 통합한 전국 단위의 조직력을 가지고 명확한 하나의 전선에 복무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현실사회주의가 실패하면서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고 동구권이 몰락하는 국면 속에서 변혁운동의 중심주체들이 흔들리면서 운동의 내용과 형식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이전(반정부 투쟁 당시)의 운동은 당장 눈앞의 위중한 현실(열사들과 동지들의 죽음 등) 속에서 오로지 현실을 타개해야 하는 절박함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할 여유도 없이 비민주, 반인권 반통일을 대상으로 한 투쟁의 현실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전국적 상황을 보면 집단적, 지역적, 인적 구성에 따라 전선이 형성되고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해지면서 운동의 폭이 좁아지고 조직 이기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권의 많은 단체와 소모임 또는 개인적 활동까지 포함해서 ‘지리산 운동’이라고 명명해본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여타운동과 크게 두 가지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하나는 넓게 보면 ‘대안적 삶 운동’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리산 권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 단체나 모임의 구성원들은 지역 주민들도 있지만 귀농, 귀촌인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문화에 염증을 느끼고 대안적인 새로운 삶을 찾아 도시에서 지리산 자락으로 삶터를 옮겨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관심을 갖는 운동영역은 환경, 생태, 생명, 평화, 공동체, 등의 문제의식을 바탕에 둔 대안문화, 대안문명 찾기라는 운동적 성격을 갖는다. 이것은 크게 보아 인간 소외나 인간성 상실이라는 자본 중심적 삶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지리산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사업과 활동의 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문제의식의 공통분모라고 할 것이다. 근대 500년은 모든 삶이 자본으로 집중되는 과정으로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 그리고 자본주의의 확장과 함께 진행되었다. 근대의 과정 속에서 추구해온 물질의 풍요와 생활의 편리 뒤에 숨어 있던 인간의 탐욕이 근대화라는 명제 속에서 자연의 순환 질서를 깨기 시작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탐욕’이라는 것을 구체적 일상 속에서 일정부분 정당화시켜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심성이 피폐되고 사회적 가치관과 개인 삶의 목표는 선과 진실로부터 멀어졌으며 현대인들의 삶의 중심에는 물질이 자리 잡게 되고 사회생활은 보다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한 시스템으로 구조화되어 갔다. 이렇게 물질만능주의 사고가 사회에 만연되면서 생명경시와 함께 개인의 평화 또한 심하게 위협받게 되었다. ‘지리산 운동’은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식 속에서 태동하였기 때문에 자본가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인본가치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근본 운동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새로운 삶의 문화, 문명을 꿈꾸는 대안 운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지리산 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의 구조를 바르게 변혁하려면 ‘인간의 본래 심성을 되찾는 운동’과 함께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직이나 단체 모임들이 이 부분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래 심성을 되찾는 노력을 통해 개인의식과 사회의식의 확장을 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사회의 변혁은 어렵다는 생각들이 많은 사업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간디가 식민지 상황에서 벌인 사탸그라하(진리파지眞理把持) 운동이 그러했다. 간디는 자신이 바라는 진정한 해방은 영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보다도 자신으로부터 해방(절대자유)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한 사회의 변혁은 식민지에서 벗어나고 제도가 바뀌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회와 사람들의 의식이 함께 확장되어야 진정한 변혁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디는 종교를 통해 확장된 개인과 사회의 의식을 토대로 비폭력 투쟁이라는 전대미문의 운동방식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는 성찰과 수행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확장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의 단군시절에도 그러했다. 그 시절의 사회적 삶을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성통공완性通功完이라는 말이 있다. 본성을 꿰뚫어 공덕을 완성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래 심성을 되찾는 수행을 통해 개인의 의식을 확장시키고 사회적 공덕을 쌓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독이 가능하다. 성통공완이나 샤타그라하 모두가 개인의 자기완성과 사회적 실천을 하나로 인식하고 진행시킨 높은 의식의 사회적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완성의 노력과 사회적 실천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사회적 제도를 바르게 고치고 바르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이 그만한 역량과 수준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지리산 운동’은 지금껏 우리 변혁운동사에서 특별히 거론된 적이 없는 ‘개인의 자기완성’이라는 측면을 사회적 실천운동과 동등한 무게로 병행시키는 운동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지리산 운동’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의식을 확장시키는 것과 사회적 실천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기존의 우리 사회운동 방식보다는 한 단계 진화된 운동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본의 문제를 자본의 관점과 방식으로 풀지 않고 모든 생명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며 순환할 때 진정한 평화가 있다는 자연 중심의 사유와 철학을 바탕에 두고 풀려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현실에서 민주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리산 자체가 모든 생명의 집합체인 것처럼 그래야만 개인과 전체의식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고 그러한 토대에서의 사회적 실천이 올바른 사회변혁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두규. 시인)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3-11-13
  • [숲샘의 지리산통신] 이 가을, 미술관으로 다가온 실상사
    지리산에서 실상사가 갖는 의미는 아주 각별하다. 지리산 생명 평화 운동의 시작점이자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엄숙 진지함보다는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는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웃 같은 절집으로 느껴지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지리산이 위태로울 땐 저항의 구심점이 되어 지리산의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역할을 자임해 온 것도 실상사였다. 이 가을날, 지리산 운동의 심장 그 실상사가 지리산프로젝트란 이름을 달고 울타리 없는 미술관이 되었다. 그림, 사진, 설치미술 등등 다양한 모습으로 실상사 곳곳을 장식하면서 문화 불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2014년 '우주예술집'이란 제목으로 시작된 지리산프로젝트는 해마다 진행되다가 코로나 등으로 잠시 소원해지기도 했지만 올해 '정의도 빛나고 평화도 빛나라'란 주제로 독일과 일본 작가를 포함해 스무 명의 작가들이 참여, 실상사를 미술관으로 변신시켜 9월 22일부터 10월 29일까지 작품들을 전시했다. 지리산프로젝트 김준기 예술감독은 “지리산프로젝트2023은 한국 근현대 역사가 만들어 낸 이분법적인 진영 대립 구도를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적 시도들에 집중해보고자 한다”면서 “이는 동시대 사회와 예술의 최전방에 위치한 정의와 평화를 다루고자 함이며, 정의의 추구는 곧 평화의 실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실천의 과정으로서 지리산의 생명 평화 사상과 결합한 다양한 예술 형식을 새로이 모색하고자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번 지리산프로젝트2023의 스태프로 참여한 실상사 수지행은 “실상사를 찾는 분들이 언제부턴가 실상사에 문화재 말고도 볼 것이 많아졌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면서 “절은 나를 돌아보는 성찰과 치유의 쉼터로 예술이 가진 성찰의 힘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법문이고 절은 불교 신자들에겐 신행의 공간이자 모든 사람에게도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전통문화를 배우고 현재의 삶을 치유하는 열린 문화공간”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리산프로젝트는 “천년고찰 실상사에 스며있는 문화유산의 가치에 더해서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예술에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번 지리산프로젝트는 10월 29일 “윤리와 예술의 관점에서 본 정의와 평화”란 제목으로 진행된 토론회를 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필자가 지리산 운동에 발을 디디면서 숱하게 찾았던 실상사였지만 지리산프로젝트2023으로 또 다른 실상사로 다가왔다. 다양한 모습으로 전시된 작품들 하나하나를 사진에 담으면서 실상사의 문화재와 더불어 저 멀리 장쾌하게 펼쳐진 지리산 주 능선과 천왕봉도 작품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산청에서 실상사로 이어지는 60번 지방도 그 길을 수없이 오가면서 엄천강 따라 펼쳐진 가을 풍경 또한 그대로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감히 주장한다. 끝으로 이번 지리산프로젝트를 마감하면서 지리산권 지자체들은 지리산 케이블카나 산악열차 그리고 골프장 건설 등 시대착오적 개발사업에 예산 낭비하지 말고 지리산 전체를 커다란 예술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궁리를 해 주길 간곡히 당부한다. (자료 출처 : 지리산프로젝트2023 리플렛) 이번 지리산프로젝트에서 스태프로 참여했던 실상사 수지행이 엄혁용 작가의 “‘책 피어오르다”를 바라보고 있다. 지리산의 구름, 나무와 책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선재집 앞마당에 설치되어 있는데 담 너머 저 멀리 지리산 주 능선과 함께 천왕봉이 조망된다. 김화순 작가의 “불어라, 생명평화의 바람”은 보광전 뒤 숲속에 걸려있는데 기후위기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뒷모습으로 이들이 바라보고 있는 불타는 산과 녹아내리는 빙하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의 실제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를 업은 포대기에 그려진 인드라망 생명평화 문양에 눈길이 먼저 간다. 실상사 목탑지에 설치된 한호 작가의 “영원한 빛 코스모스”, 우주의 정원에서 빛나는 별들은 우리가 바라본 먼 세계이며, 인간이 가진 사유의 우주 또한 투영된 자신의 셰계와 연결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저 목탑지 바로 옆에는 세월호지리산천일기도소가 자리하고 있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팽나무를 배경으로 설치된 홍경태 작가의 “설계”는 인간관계의 의미로 출발하는 격자구조의 철근은 이어짐과 끊어짐 그리고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해주는 지지대의 역할이고 내부의 편지 봉투 형상의 상자는 상호 간의 교류를 의미한다. 절집 주련은 대부분 한자로 새겨져 있지만 실상사 천왕문에는 한글 주련이 있어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안상수 교수님의 글씨로 한글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 주련을 지나는 필자의 어린 길동무들, 지리산 칠암자길 중 영원사에서 출발해서 실상사까지 여섯 암자를 걸어온... 실내 전시관 역할을 하고 있는 선재집에는 천왕봉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방석이 놓여져 있다. 그 방석에 앉으면 선재집 출입문을 통해 보광전과 천왕문 그리고 저 멀리 천왕봉까지 일직선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에서 이런 풍광을 만날 수 있겠는가. 칠성각 앞 반송 아래에서 “평화를 지키는 고양이 심바”는 권군 작가의 작품으로 이곳을 가상의 산신각 자리로 정하고 지리산을 지키는 호랑이 대신 시대적 현상을 반영해 고양이 심바가 그 역할을 하도록 위치시켰다. 심바의 두 눈은 해와 달을 상징하고 두 눈 사이의 하트 형상은 사랑과 평화를 뻗어나가게 하는 전류와 파동의 중심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선재집 벽면에 걸린 선무 작가의 “손에 손 잡고”는 여덟 명의 어린이가 각각 다른 국기를 달고 있지만 그들은 평화를 원한다고 말한다. 선이 없다는 의미의 ’선무‘는 탈북 작가의 가명인데, 세계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체제들의 경계를 해제시키는 것, 그래서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는 것이 선무 작가의 메시지라고 한다.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3-11-02
  • 부부라는 게 그랬다
    부부라는 게 그랬다 어쩌다 보니 이번 여름은 두텁나루숲을 살지 못했다. 먼 여행을 다녀왔고 아내가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시간이 많았다. 부부라는 게 그랬다. 좋은 날과 나쁜 날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오르락내리락 이 나이토록 같이 걸어온 거 아닌가. 지상의 나무 한 그루 자라듯 어떤 의도도 없이 평생 서로 영향을 미치고 사는 것이 부부이니 그 이승의 인연이야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사랑을 확인하는 일상을 산다 해도 그렇게 사랑이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랑은 본디 잡거나 잡히는 것도 아니고 깊은 산 속 샘물처럼 그냥 홀로 늘 솟아나는 무엇일 텐데, 보통은 물 한 모금 입술에 적시는 찰나에 묶여 사니 그렇다. 어찌 부부만이 그럴까. 일상의 욕망을 일깨우는 새로움은 찰나를 스쳐 갈 뿐이고 누군가나 무엇인가를 향해 끊임없이 솟아나는 사랑의 새로움은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어느 깊은 숲을 사니. (박두규. 시인)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3-10-09
  • [숲샘의 지리산통신] 지리산의 가을은 들녘에서부터...
    참으로 힘들었던 여름은 그 꼬리를 감추고 언제나 단명인 가을이 서서히 지리산을 물들이고 있다. 이번 여름이 가장 덜 더운 여름으로 기록될 거라 했고 극한호우란 단어가 등장했던 지난 여름, 유난히 더웠고 또 비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쏟아부었던가. 그럼에도 지리산의 들녘엔 알곡들이 여물면서 단순한 식량 그 이상의 무게로 벼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초봄 모를 준비하고 논물 대면서 시작하는 벼농사, 식량은 기본이고 가장 생태적인 저수지에 청정 산소를 생산하는 초록 공장 역할을 하는 우리들의 오래된 미래다. 게다가 봄부터 가을 그리고 겨울 빈 들녘까지 논은 설치미술 그 이상의 예술작품으로 우리 곁을 지킨다. 그러니 긴 세월 논을 지켜온 우리 농부들은 자연의 예술가들임이 분명하다. 쥐꼬리만한 농민수당은 작품 감상비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필자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 아름다운 가을 들녘을 감상하고 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지리산 자락을 한 바퀴 돌 요량으로 길을 나섰다. 산청을 출발해서 하동 구례 남원 함양 찍고 다시 산청까지는 대략 300km, 구석구석 누비기엔 스쿠터가 딱 좋은데 비가 오락가락해서 차를 운전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이동하면서 둘레길 모니터링도 병행할 수가 있어 더 유익했다. 필자가 산청 안솔기마을에 살면서 날마다 만나는 외송 들녘은 규모가 크진 않지만 다랑이 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더 애정이 가고 또 아름답다. 그리고 경호강 건너 저 멀리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이 배경이라 지리산의 의미를 더한다.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외송 들녘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간디고등학교 아이들에게도 커다란 축복이리라. 하동 적량과 악양 들판에 들렀다가 섬진강을 따라 구례를 지나오면서 시간이 허락지 않아 골프장 건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사포마을 다랑이 논을 들리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밤재를 넘어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 대상을 받은 서어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는 남원 행정마을로 향했다. 지리산 둘레길 1구간인 주천-운봉 사이에 자리한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감동을 주는 숲이라고 감히 말한다. 해발 400m 고원지대인 운봉 들녘은 정령치에서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릉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 논두렁에서 하늘거리며 피어있는 코스모스 꽃무리는 가을 들녘의 운치를 더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조연이라 할 수 있다. 운봉과 인월을 지나고 산내 실상사를 지나면서 강물은 남강 수계가 되고 남원과 함양의 경계 쯤에 자리한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은 다랑이 논으로 그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지만 벼농사의 어려움으로 면적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지금은 국가중요농업유산 등재를 위해 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시 옛 명성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지리산 칠암자길로 유명한 삼정산을 배경으로 도마마을 다랑이 논 풍경을 멋지게 담기 위해서는 건너편 금대암 오르는 길에서 찍어야 제대로 된 작품을 얻을 수 있다. 지리산 자락을 한 바퀴 돌면서 돌아본 가을 들녘, 비와 바람과 햇볕 그리고 농부의 손길이 만들어 내는 그 예술작품이 지속가능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과연 그 벼농사를 이어 갈 젊은 농부들이 있을지가 관건이지 싶다. 아무튼 지리산의 가을은 들녘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곧 온 산이 가을의 본색으로 번져 나갈 것임을...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을 배경으로 노을로 물들어 가는 외송 들녘 삼정산 아래 자리 잡은 도마마을 다랑이 논 평사리 부부송이 지키고 있는 악양 들녘 웅석봉과 달뜨기능선에 걸린 운무 그리고 외송 들녘 정령치에서 바래봉까지의 지리 서북릉 아래 행정마을 들녘 하동 적량 들녘을 지키는 용버들 지리산 둘레길 주천-운봉 구간 들녘을 걷는 길동무들
    • 문화예술
    • 지리산 편지
    2023-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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