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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지리산 편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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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지리산에서 세월호를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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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유가족 두 분이 그 먼 길을 오셨다.
간디고등학교 아이들이 기획하고 진행한 세월호 추모제에 동네 아저씨로 함께 했다. 노래로, 시로, 그림으로, 이야기로 진행된 추모제를 보면서 아프고 힘들었던 9년을 떠올리며 또다시 그 아픔이 되풀이되지 말길 바랐다. 두 분의 산청 나들이가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우리들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아니길 바란다"는 간디고 학생의 마지막 발언에 결국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어른이라서...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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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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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지리산 목화장터에서 만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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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시작된 지리산 목화장터는 매달 둘째 넷째 일요일 오후 산청군 신안면에서 열리는 주민들의 자발적 장터다. 지자체의 지원 없이 주민들 스스로 지속가능한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데 어제 127번째 장터가 열렸다. 그 장터에서 위기의 지구를 걱정하며 4.14 기후정의파업 손팻말을 들고 있는 단성초 6학년 아이들을 만났는데 어른으로서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4월 14일 세종시에서 열릴 기후정의파업을 통해 이 아이들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초록의 희망세상으로 만들어야 할 텐데... (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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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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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바와 어머니의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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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노바와 어머니의 차별
박 두 규 (시인)
삶 속에서 까르마 요가의 실천을 우선했던 인도의 성인 비노바 바베에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비노바 바베를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된 ‘부단운동’도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배운 탁발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탁발은 단순한 구걸 행위가 아니라 어렵고 힘든 자들에 대한 연민을 일으키게 하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주는 선한 마음, 그 본성을 일깨워 실천하게 하는 것이니 그렇다.
비노바 바베가 했던 탁발은 먹을 것이 아닌 토지였다. 그는 사람들이 공기와 물과 햇빛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누구나 땅을 누릴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다며, 토지가 없어 고통받는 하리잔(불가촉천민)들을 위해 토지헌납 운동인 ‘부단운동’을 전개했다. 그것은 돈(토지)을 삶의 가장 중심에 두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것이었고, 사람들의 소유욕을 내려놓게 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이 실험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뿌리 그 자체를 흔들어 놓는 일이었다. 동료들에게는 이게 진짜 ‘정치’ 아니냐며 이 일에만 전념하자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전 국토를 맨발로 걸어 다니며 토지를 탁발했는데 만일 땅을 내놓으면서 허영된 마음이나 권력을 위해서 땅을 내놓는다는 기미가 조금만 있어도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마음에는 선함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선함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비노바는 선한 마음의 자비롭고 온화한 인품의 소유자였는데 그것은 헌신과 소박함으로 뒷받침한 것이어서 누구나 감동을 받았다. 그러한 감동이 있었기에 인도의 지주들이 사람의 바탕에 있는 선한 마음을 낼 수 있었고 400만 에이커의 땅(영국의 스코틀랜드 넓이만 한 토지)을 자발적으로 기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노바 바베는 부단운동이 사회변화를 위한 혁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혁명의 첫 번째가 마음의 변화이고 다음이 개인적인 생활 습관의 변화이며 그것이 사회구조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했으며 그 일의 방법으로 자비와 사랑의 길을 택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비노바 바베는 부단운동을 통해 인도 사회의 변화를 위해 헌신했으며 자비와 사랑만이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비노바 바베는 브라만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한 브라만의 사회적 역할과 품성 교육에 힘썼고 스스로는 구도적 삶을 사신 분이었다. 비노바의 집에서는 항상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어머니와 함께 ‘찬드라야나’ 라고 하는 단식을 하며 달을 공경하는 의식을 했는데, 음력 초하루에는 음식을 한 입만 먹고 둘째 날에 두 입을 먹으며 그렇게 보름달이 뜨면 열다섯 입을 먹는다. 그리고 달이 기울면 반대로 매일 그만큼씩 줄어든다. 그러다 달이 뜨지 않게 되면 단식을 하는 그런 의식이었다. 어머니는 이 의식을 하는 동안 매일 달을 향해 하는 ‘푸자 예배’를 드렸는데 비노바는 어머니가 매일 올리는 이 평범한 푸자 예배에서 항상 눈물 흘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마음이 아니고는 흘릴 수 없는 눈물이었고, 비노바에게는 어머니의 그 눈물 자체가 큰 교육이었다.
비노바 바베의 어린 시절, 햇볕 따가운 어느 날의 일이다. 육체가 건장한 거지가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심도 없이 그에게 적선하는 걸 보며 비노바는 매우 못마땅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말한다. ‘어머니, 저런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게으름을 키워주는 겁니다. 바가바드기타에도 나오잖아요? 순수한 선물은 적절한 시간과 적절한 장소에서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무엇인데 누가 받을만한 사람이고 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 판단한단 말이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누구나 다 존중해주고 힘이 닿는 대로 베푸는 거란다.’ 그녀는 그렇게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며 사는 것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한참 뒤 어느 날 무슨 일 끝에 비노바는 어머니께 말한다. ‘어머니는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스스로 차별하십니다. 나에게는 차갑게 식은 음식을 잘도 주시면서 집에 오는 다른 사람에게는 한 번도 그렇지 않아요.’ 그러자 어머니가 말한다. ‘그래, 나는 아직도 스스로 차별하고 있다. 나는 너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고 또 편애하고 있어. 왠지 아니? 나는 아직도 너를 아들로 생각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사람의 몸을 입은 하느님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너마저 그렇게 볼 수 있다면 그 차별은 없어질 거다.’
어머니는 그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사랑하는 자식마저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모든 이와 동등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 그리고 어머니는 배를 채울 만큼의 음식과 몸을 가릴 만한 의복이 생활에 필요한 전부이며, 생명을 가진 모두는 동등하며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노바 바베는 그렇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사는 것이 배우는 것의 전부라는 어머니의 교육 속에서 자란 것이다.
-사진/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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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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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성심원의 애틋한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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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어오는 곳 산청 성심원,
그래서 풍현마을이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문이 활짝 열려 있지만
긴 세월 육지 속의 고독한 섬이었기에
저 환한 벚꽃들이 더 애틋하다.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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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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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복수초 흐드러진 김우명달 할매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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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 길을 '김우명달 할매길'이라 부르기로 했다.
지리산둘레길 6구간 중 산청읍 평화의 소녀상에서 지막골 김우명달 할머니 산소까지 6Km 그 길을 오늘 우리 산청 사람들이 함께 걸었다. 8개월 된 서로, 6살 동녘이, 8살 지은이부터 70을 훌쩍 넘긴 할배도 함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로 산청 지막마을이 고향이신 김우명달 할머니의 16주기에 맞추어 진행된 묘비석 제막 행사는 산청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그랬던 것처럼 산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모금으로 이루어졌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욕외교에 작지만 의미 있는 저항의 몸짓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때마침 할머니 산소 앞에 지천으로 핀 복수초를 보면서 앞으로도 변함없는 발걸음과 몸짓을 이어 가기로 한 산청 ‘함께평화’ 식구들에게 큰 격려와 응원의 손뼉을...
(2023.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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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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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반가운 히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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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성심원 둘레길에서 만난 히어리,
지리산 깃대종이기도 하지만 이 위태로운 기후 위기의 시대에도 지리산 곳곳으로 널리 퍼져 멸종위기종에서 제외되었기에 더 고맙고 대견스러운...
(2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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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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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르침 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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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가르침 한 수
절에 있을 때 이야기다. 참 오래된 이야긴데 나는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갈 곳이 없었다. 집에 있자니 부모님 보기도 민망하고 나가 돌아다니자니 어느 대학에 갔냐는 질문이 무서워 사람 만나는 것도 겁나고, 혼자 빈둥거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어서 작은 보따리 하나 들고 무작정 절로 들어갔다. 그 길로 거의 1년을 절집에서 살았는데 그해 여름의 일이었다.
그곳은 서래선림(西來禪林)이라는 비석이 입구에 서 있는 지장암(地藏庵)이라는 절이었는데 해안(海眼) 큰스님이 돌아가시고 사부대중의 발길이 끊기고 상좌들도 밖으로 나가 있어서 말 그대로 절간처럼 조용한 절이었다.
때는 한 여름이라 녹음이 짙을 대로 짙어져 숲 그늘에 누워 잔잔한 바람에 책이라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달콤한 낮잠에 빠지곤 하던 시절이었다. 그 여름 어느 날 객승이 한 분 오셨는데 작달막한 키에 별 말이 없는 얼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스님이었다. 대개 스님들은 객으로 묵을 때면 예의상 곧잘 예불도 드리곤 하는데, 그 스님은 아침 예불이건 저녁 예불이건 한 번도 불당에 오르는 일이 없고, 도통 방에만 틀어박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다고 방에서 공부를 하거나 참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의 종일토록 잠을 자거나 방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부턴가 그 스님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한 낮에도 쉬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죽어라고 일만 하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도, 이를테면 아랫마당에서 법당까지 놓여 있는 돌계단을 괜히 파헤쳐 놓고 다시 하나하나 계단을 맞추어 쌓는 그런 일이었다. 내가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멀쩡한 돌계단을 부수고 쌓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더우니 보통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강한 햇살이 죽었을 때 일을 하는 법인데 이 스님은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는 10시쯤에야 일을 시작하여 밖에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그런 뙤약볕에서 일을 하다가 해가 지는 무렵이면 일을 끝냈다. 정말 온몸이 땀에 젖어 금방 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젖은 채 하루 종일 일을 하였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났으나 스님은 매일매일 죽어라고 일만 했다.
그런 스님에게 나는 말 붙이기도 왠지 꺼려했는데 하도 궁금해서 언젠가 ‘스님, 왜 스님은 예불은 안 모시고 일만 한답니까?’ 하고 물었더니 스님은 별다른 표정도 없이 ‘나는 예불 드리는 거 몰라.’ 라며 마당으로 가서 또 괜한 돌계단을 허무는 것이었다. 진짜로 염불을 못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염불도 못하면서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아니 무엇보다도 왜 그렇게 가장 더운 시간에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 스님은 나의 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고 언젠가 말도 없이 훌쩍 지장암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30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 스님이 생각난다. 아니 그는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일에 말만 앞세우고 말로만 해결하려 들며 몸은 까딱도 않는 나에게 말이 아닌 ‘몸’을 가르쳐준 스승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는 ‘몸의 행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강변하듯 그의 여름날 노동이 그의 수행법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수행은 말보다도 공부보다도, 온몸의 행위로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 위한 것은 아니었나 싶다. 입만 벙긋하면 거짓말이 튀어나오는 거짓 덩어리의 이 몸뚱어리, 살아온 세월만큼 두꺼워진 위선의 몸집, 거짓으로 가득 찬 비만의 몸뚱어리에게 ‘진실’이 무엇인가를 이처럼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스승은 아직 없었다.
사실 요즘 현대인들은 가급적이면 모든 일을 ‘앉아서’ 처리하려고 한다. ‘몸으로 뛰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현대 과학기술문명과 컴퓨터 문화의 일반화로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져서 몸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치장’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사는 것 같다. 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몸을 아름답게 가꾸려고 하는 것, 그 자체는 이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의 궁극적인 지향은 결국 몸의 상품성을 높이는 것으로 귀착되는듯하여 씁쓸하다. 요즘 세태를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실 인류의 역사가 자본주의의 역사로 넘어 오면서 전 지구적 시장경제를 통해 지상의 모든 것은 이미 상품이 되어 버렸으니 ‘몸’인들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부쩍 더 30년 전의 그 이름조차 기억이 안 나는 스님이 자주 내 앞에 나타나 어른거린다. (박두규. 시인)
-노루귀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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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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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울타리 없는 학교,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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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리산문화예술학교, 남원 산내 진달래산천, 함양 온배움터, 구례 봉서리책방, 산청 공간산아... 지리산 자락에 깃들어 움을 틔우고 있는 울타리 없는 학교이자 움직이는 교실들이다. 물론 지리산 5개 시군에서 한 곳씩만 나열한 것이라 지리산 아흔아홉 골에 숨어 있는 숱한 배움터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중에 필자가 교사로 참여하고 있는 지리산문화예술학교는 2009년 지리산학교로 출발해서 지금은 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로 그 이름이 바뀌어 14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필자는 올해로 4년째 초록걸음반 수업을 진행할 예정인데 지리산을 걸으며 지리산의 속살을 만나는 초록걸음반 말고도 산야초반, 디카시반, 와인아카데미반 등 십여 개 반이 신학기 수강생 모집을 마치고 3월 개강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수업이 가능한 것은 지리산 전체를 교실로 하는 움직이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우리 초록걸음반은 매달 첫 토요일에 총연장 295Km 21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지리산 둘레길을 위주로 걷긴 하지만 여름철엔 둘레길을 벗어나 시원한 계곡을 따라 걷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길동무(수강생들을 이렇게 부름) 중에는 해마다 어린이들 한두 명이 참여하고 있다. 쉬엄쉬엄 걷기 때문에 가능하고 또 이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청량한 비타민으로 길동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는데 올해는 또 어떤 아이들과 함께 걸을지 기대가 자못 크다.
길동무들과 지리산을 걷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우선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시는 동네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고 그 동네를 굽어살피는 정자나무들 또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게다가 세계 최장 야생화길로 기네스북에 오른 지리산 둘레길은 어느 구간을 걷든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들꽃들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리고 걸음을 걸으면서 필자가 길동무들에게 들려드리는 시와 음악은 초록걸음반 수업의 비밀병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구간에 어울릴 만한 시와 음악을 고르는 일은 참으로 고역임을 실토한다.
지리산 둘레길이 만들어진 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지리산 둘레길은 천왕봉 등정이나 화대종주, 태극종주 등으로 대표되던 지리산의 산행 문화에 큰 전환점이 된 건 분명하다. 수직으로 급하게 오르던 산행에서 사부작사부작 느릿느릿 걷는 수평의 길이 생김으로써 지리산에 새 지평을 열었다고 감히 주장한다. 결국 또 하나의 학교가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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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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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수라 갯벌과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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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감동적인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 '수라'를 함양에서 만났다. 바다의 허파가 갯벌이라면 육지의 허파는 숲과 강이란 생각이다. 그래서 '수라'와 '지리산'은 닿아 있음을... 그 위태로움까지 닮았다. 함양까지 한달음에 달려와 준 황윤 감독과 숨막히게 아름다운 영상 담아준 김정근 카메라 감독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아름다운 광경을 본 죄로 새만금을 지키고 있다’는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둘레길을 걷는 죄로 '있는 그대로의 지리산'을 지킬 수밖에...
(20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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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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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샘의 지리산통신] 경호강백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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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의 길이라 더 흐뭇한 경호강백리길,
진주 대평면에서 산청 동의보감촌까지
경호강 따라 조성 중인 자전거 및 걷는 길이다.
첫 구간인 대관교에서 소남마을까지 잠시 짬을 내서 걸었다.
경호강 가로질러 진주 찍고 다시 산청으로...
걷는 내내 강의 자정 능력에 감탄하다.
하지만 그 한계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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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