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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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교육 키즈의 생애 4편 "우리는 무슨 사이"
    9월이 왔다. 뜨거운 더위가 살짝 물러섰다. 신입생들의 얼굴엔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에 돌아갔을 때 나경은 수현을 만났다. 나경이 먼저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그동안 잘 지냈어 “너 대학생 되더니 엄청 멋있어졌다.” “너 나 찾으러 우리 과에 왔다면서. 친구들에게 들었어" "네. 수현은 짧게 대답했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선배” “어…. 나. 그냥 잠시 쉬었어.” “몸도 안 좋고....." 나경은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방황했다. 같은 과 운동권 선배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다시 그 선배와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다행히 그 선배가 가을에 졸업했다. 나경은 다시 돌아왔다. 나경과 수현은 이후 자주 만났다. 연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경은 술을 마실 때 수현을 불렀다. 수현은 나경이 부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나경을 만나러 갔고, 수현이 만나자고 하면 나경도 그랬다. 우리 무슨 사이죠? 라고 나경에게 수현이 물었을 때 나경은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 수현은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관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수현이 좋았지만, 세살이나 어린 수현에게 먼저 고백할 수는 없었다. 벚나무의 잎들이 갈색으로 물들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풍이 점점 진하게 물들었다. 교정의 학생들은 따뜻한 햇살을 찾아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풋풋했던 신입생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처럼 보였다. 학생들이 방학으로 교정은 텅 비었다. 텅 빈 교정엔 눈이 내렸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왔다. 수현은 겨울 방학 내게 다시 현장에서 일했다. 더운 여름보다 겨울이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은 더 힘들었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현장에 나가면 손발이 꽁꽁 얼었다. 그럴 때면 페인트 깡통에 버려진 나무를 태워 언 발과 손을 녹였다. 연일 영하 10도가 넘나드는 추운 날이 이어졌다. 여름보다 더 힘들었다. 겨울에 수현은 고층 아파트 현장에서 일했다. 현장은 나름대로 체계가 있었다. 수현이 맞은 일은 일명 직영 잡부였다. 여기저기 청소일을 하거나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일이었다. 겨울에 시멘트 양성을 하기 위해 석탄을 가져와 불을 지피는 일도 수현이 해야 할 일이었다. 콘크리트 작업을 한 당일엔 온종일 불을 피워야 했다. 그 날은 야간이나 철야 일도 했다. 그런 날은 기본 일당에 야근 수당에 철야 수당까지 합쳐서 하루 10만 원이 넘었다. 수현을 야간 일이 있을 때마다 지원했다. 학비도 벌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나마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함바집은 밥 맛이 좋았다. 마음껏 먹어도 되었고 함바집 박씨 아주머니를 수현을 아들 같다면 특별하게 달걀부침을 더 챙겨 주기도 했다. ”젊은 학생이 고생하는구먼…. 울 아들은 지금 군대 갔는데…. “강원도는 여기보다 엄청 춥겠지?“ ” 아드님이 강원도에서 있어요. 거긴 여기보다 5~6도는 더 내려갈걸요?“ ”학생은 군대 안 가나.?“”저는 졸업 하고 가려고요. "아이고. 하루라도 젊었을 때 가야 고생을 덜 하는데….” “그러게요. 세상이 저를 놓아주지를 않네요.” “근데 아주머니 아들은 몇 살이에요? “21살…. 인데…. 아,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아…. 그려.” 그 후로 아들과 동갑이라며 아주머니는 수현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학생 일 적당히 해” 직영 일은 적당히 해도 돼…. 뭐 반장이 맨날 쳐다보는 것 도 아니고…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네. 아주머니 고마워요.” 수현은 아주머니의 아들이 같은 또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혹시 같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직영이 하는 일은 매일 매일 바뀌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해도 철근 반이나 조적이나 목수들은 일당이 2~3배는 되었는데 직영일을 하는 사람 일당이 가장 작았다. 아무 기술도 없는 수현 같은 학생들이나 기술 없이 다른 일을 전전 하다가 현장 일을 나온 사람들이 불려 오는 일이었다. 현장에서도 가장 낮은 일자리였다. 그해 겨울 방학 내내 수현은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파트 준공일이 얼마 남지 않아 현장은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2월 중순이 넘어가자, 아파트 현장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수현의 길고 긴 노동일도 끝이 나고 있었다. 나경은 현장에서 일하던 수현을 찾아왔다. 일이 끝나고 수현과 나경은 밤거리를 걸었다. “수현아, 꼭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해…” “손이 이게 뭐야….”“꽁꽁 얼고 튼 수현의 손을 잡았다.” "정 힘들면 이 누나에게 이야기해. 내가 좀 도와 줄 수도 있는데…. 수현은 별말 없이 걸었다. “선배처럼 부잣집 사람들은 우리 같은 가난한 빈민 출신들의 마음을 몰라요.” “전 빈민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라고요. 가진 것도 없고요.” 둘은 함바집으로 행했다. 아주머니 여기 밥 하나 더 주실 수 있죠? 그래. 누구야? 학생 애인인가? “네” “제 여자 친구예요?” “예쁘죠?” “수현아…. 여자 친구는….” “아이고 수현 학생 여자 친구가 왔으니, 오늘은 달걀부침 네 개는 해줘야겠네” “수현이 같은 착실한 남자를 어찌 알아봤을까?” 나경은 수현이 자신을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둘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이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함께 할 수 없을 거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선배 방학 끝나고 봐요!” 나경은 수현과 커피 한잔을 하고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경은 단 한 번도 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경에게 돈은 흔하고 편한 것이었다. 자신이 사는 큰 집과 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수현은 온종일 일을 하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더 고민하기는 싫었다. 나경과 수현은 역까지 걸었다. 찬바람이 둘 사이를 갈라놓듯이 불었다. 수현은 나경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나경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얼어붙은 수현의 손을 자신의 코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웠다. 둘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20분쯤 걸었을 때 역이 보였다. 역 앞에는 오래전 역 앞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 이용했을 것 같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봉봉, 박카스 같은 선물 상자들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경은 저 안에 물건이 들어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빈 껍데기겠지…. 나경은 자신이 저 빈 상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권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도 아니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자신이 먼지에 싸여 있는 빈 상자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서울행 기차가 도착하겠습니다" 안내 멘트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경은 서둘러 기차를 타기 위애 달려갔다. 수현이 손짓이 보였다. 잘 있어…. 수현아….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2025-01-08
  • 참교육 키즈의 생애 3편 “공사판”
    인기척도 없는 새벽, 수현은 밀려드는 잠을 밀쳐내고 새벽을 열어야 했다. 자취방에 나와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를 걸었다. 아침 대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하얀 연기가 수현을 몸을 돌고 돌아 다시 입으로 나왔다. 수현을 기다리는 봉고차가 멀리 보였다. “야, 뛰어” “네” 수현은 피우던 담배를 손에 쥐고 봉고차에 올랐다. 수현은 여름 내내 공사판에서 일했다. 조적 공 조수를 했다. 벽돌을 쌓으려면 시멘트가 필요하다. 수현은 여름 내내 시멘트와 모래를 비벼 조적 공에게 날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집합 장소에 나가면 봉고차가 수현을 실었다. 현장에 나가면 6시 그때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 일했다. 9시와 12시와 3시 새참과 점심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시멘트나 벽돌을 날랐다. 조공은 수현이 옮긴 벽돌로 벽을 만들고 담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수현은 오차 없이 올라가는 벽돌이 신기했다. 벽돌과 시멘트처럼 “ 시간이 가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자기도 시간이 지나면 더 친밀해지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현장은 오후가 되면 30도가 넘었다. 공사장 안으로 뜨거운 사우나 한증막처럼 변했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런 날씨라도 집회를 하고 있다면 신이 날 수현이었지만 오전 내내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더 이상 수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른 송장 같은 몰골을 한 수현은 점심을 먹고 나면 현장 아무 곳에서나 쓰러져 잠을 잤다. 이렇게 낮잠이라도 자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수현은 손은 시멘트 독이 올라 매일 밤 가려웠다. 40장씩 벽돌 지게를 지어 옮기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게로 모래를 퍼 날랐다. 이런 날은 일당이 조금 더 받았다. 매일 매일 허리와 다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하면 하루 일당이 4만 원에서 6만이었다. 적은 돈이 아니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하루도 쉴 수 없었다. 매일 매일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저녁에 버스를 타면 수현의 몸에서는 쉰내가 났고 땀을 절은 바지는 단단하게 굳었다. 창피했지만 수현은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 대부분 50~60대였다. 저분들이 평생 하는 일인데 한두 달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하다 보면 익숙해져. 나도 처음엔 정말 힘들더라.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 처자식과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뭐 그러다 보니 30년이네!…. 함께 일하던 김 씨 아저씨는 수현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학생은 끝나면 대학생이고 졸업하면 이런 일은 안 할 것 아니여… 수현은 여름 내내 땀과 시멘트 냄새로 시큼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수현은 버텼다. 두 달간의 노동일이 끝나고 수현은 학교에 돌아갔을 때 노동에서 해방된 기쁨을 느꼈다. 노동해방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임금과 안전하고 노동법이 지켜지는 노동 현장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노동 자체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일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수현은 하고 있었다. 이렇게 힘든 것이 노동인데 일도 하지 않고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다. 돈을 가졌다는 이유로 불로소득을 얻어 편하게 사는 사람들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평생 노예처럼 힘든 일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이런 잘못된 세상은 바꿔야 해….” 같은 노동 시간이라면 같은 소득을 버는 것은 정당하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차별할 수 없다. 의사와 노동자가 8시간을 일했다면 같은 수입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수현의 생각이었다.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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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교육 키즈의 생애 4편 "우리는 무슨 사이"
    9월이 왔다. 뜨거운 더위가 살짝 물러섰다. 신입생들의 얼굴엔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학에 돌아갔을 때 나경은 수현을 만났다. 나경이 먼저 수현을 찾아왔다. "수현아, 그동안 잘 지냈어 “너 대학생 되더니 엄청 멋있어졌다.” “너 나 찾으러 우리 과에 왔다면서. 친구들에게 들었어" "네. 수현은 짧게 대답했다.”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선배” “어…. 나. 그냥 잠시 쉬었어.” “몸도 안 좋고....." 나경은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고 방황했다. 같은 과 운동권 선배였던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나니 다시 그 선배와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다행히 그 선배가 가을에 졸업했다. 나경은 다시 돌아왔다. 나경과 수현은 이후 자주 만났다. 연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경은 술을 마실 때 수현을 불렀다. 수현은 나경이 부르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나경을 만나러 갔고, 수현이 만나자고 하면 나경도 그랬다. 우리 무슨 사이죠? 라고 나경에게 수현이 물었을 때 나경은 친한 사이라고 말했다. 수현은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관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경은 수현이 좋았지만, 세살이나 어린 수현에게 먼저 고백할 수는 없었다. 벚나무의 잎들이 갈색으로 물들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풍이 점점 진하게 물들었다. 교정의 학생들은 따뜻한 햇살을 찾아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풋풋했던 신입생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처럼 보였다. 학생들이 방학으로 교정은 텅 비었다. 텅 빈 교정엔 눈이 내렸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왔다. 수현은 겨울 방학 내게 다시 현장에서 일했다. 더운 여름보다 겨울이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은 더 힘들었다.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현장에 나가면 손발이 꽁꽁 얼었다. 그럴 때면 페인트 깡통에 버려진 나무를 태워 언 발과 손을 녹였다. 연일 영하 10도가 넘나드는 추운 날이 이어졌다. 여름보다 더 힘들었다. 겨울에 수현은 고층 아파트 현장에서 일했다. 현장은 나름대로 체계가 있었다. 수현이 맞은 일은 일명 직영 잡부였다. 여기저기 청소일을 하거나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일이었다. 겨울에 시멘트 양성을 하기 위해 석탄을 가져와 불을 지피는 일도 수현이 해야 할 일이었다. 콘크리트 작업을 한 당일엔 온종일 불을 피워야 했다. 그 날은 야간이나 철야 일도 했다. 그런 날은 기본 일당에 야근 수당에 철야 수당까지 합쳐서 하루 10만 원이 넘었다. 수현을 야간 일이 있을 때마다 지원했다. 학비도 벌어야 하고 생활비도 벌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나마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함바집은 밥 맛이 좋았다. 마음껏 먹어도 되었고 함바집 박씨 아주머니를 수현을 아들 같다면 특별하게 달걀부침을 더 챙겨 주기도 했다. ”젊은 학생이 고생하는구먼…. 울 아들은 지금 군대 갔는데…. “강원도는 여기보다 엄청 춥겠지?“ ” 아드님이 강원도에서 있어요. 거긴 여기보다 5~6도는 더 내려갈걸요?“ ”학생은 군대 안 가나.?“”저는 졸업 하고 가려고요. "아이고. 하루라도 젊었을 때 가야 고생을 덜 하는데….” “그러게요. 세상이 저를 놓아주지를 않네요.” “근데 아주머니 아들은 몇 살이에요? “21살…. 인데…. 아, 그럼 저랑 동갑이네요.” “아…. 그려.” 그 후로 아들과 동갑이라며 아주머니는 수현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학생 일 적당히 해” 직영 일은 적당히 해도 돼…. 뭐 반장이 맨날 쳐다보는 것 도 아니고… 끝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네. 아주머니 고마워요.” 수현은 아주머니의 아들이 같은 또래라는 것을 알았을 때 혹시 같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직영이 하는 일은 매일 매일 바뀌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거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해도 철근 반이나 조적이나 목수들은 일당이 2~3배는 되었는데 직영일을 하는 사람 일당이 가장 작았다. 아무 기술도 없는 수현 같은 학생들이나 기술 없이 다른 일을 전전 하다가 현장 일을 나온 사람들이 불려 오는 일이었다. 현장에서도 가장 낮은 일자리였다. 그해 겨울 방학 내내 수현은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파트 준공일이 얼마 남지 않아 현장은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2월 중순이 넘어가자, 아파트 현장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수현의 길고 긴 노동일도 끝이 나고 있었다. 나경은 현장에서 일하던 수현을 찾아왔다. 일이 끝나고 수현과 나경은 밤거리를 걸었다. “수현아, 꼭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해…” “손이 이게 뭐야….”“꽁꽁 얼고 튼 수현의 손을 잡았다.” "정 힘들면 이 누나에게 이야기해. 내가 좀 도와 줄 수도 있는데…. 수현은 별말 없이 걸었다. “선배처럼 부잣집 사람들은 우리 같은 가난한 빈민 출신들의 마음을 몰라요.” “전 빈민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라고요. 가진 것도 없고요.” 둘은 함바집으로 행했다. 아주머니 여기 밥 하나 더 주실 수 있죠? 그래. 누구야? 학생 애인인가? “네” “제 여자 친구예요?” “예쁘죠?” “수현아…. 여자 친구는….” “아이고 수현 학생 여자 친구가 왔으니, 오늘은 달걀부침 네 개는 해줘야겠네” “수현이 같은 착실한 남자를 어찌 알아봤을까?” 나경은 수현이 자신을 여자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둘이 정말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나이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함께 할 수 없을 거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선배 방학 끝나고 봐요!” 나경은 수현과 커피 한잔을 하고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경은 단 한 번도 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경에게 돈은 흔하고 편한 것이었다. 자신이 사는 큰 집과 부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수현은 온종일 일을 하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더 고민하기는 싫었다. 나경과 수현은 역까지 걸었다. 찬바람이 둘 사이를 갈라놓듯이 불었다. 수현은 나경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나경은 손을 놓지 않았다. 얼어붙은 수현의 손을 자신의 코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깍지를 끼웠다. 둘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20분쯤 걸었을 때 역이 보였다. 역 앞에는 오래전 역 앞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 이용했을 것 같은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봉봉, 박카스 같은 선물 상자들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경은 저 안에 물건이 들어있기는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빈 껍데기겠지…. 나경은 자신이 저 빈 상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권도 아니고 공부를 하는 학생도 아니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자신이 먼지에 싸여 있는 빈 상자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곧 서울행 기차가 도착하겠습니다" 안내 멘트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경은 서둘러 기차를 타기 위애 달려갔다. 수현이 손짓이 보였다. 잘 있어…. 수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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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1-08
  • 참교육 키즈의 생애 3편 “공사판”
    인기척도 없는 새벽, 수현은 밀려드는 잠을 밀쳐내고 새벽을 열어야 했다. 자취방에 나와 아무도 없는 텅 빈 거리를 걸었다. 아침 대신 담배 한 대를 피웠다. 하얀 연기가 수현을 몸을 돌고 돌아 다시 입으로 나왔다. 수현을 기다리는 봉고차가 멀리 보였다. “야, 뛰어” “네” 수현은 피우던 담배를 손에 쥐고 봉고차에 올랐다. 수현은 여름 내내 공사판에서 일했다. 조적 공 조수를 했다. 벽돌을 쌓으려면 시멘트가 필요하다. 수현은 여름 내내 시멘트와 모래를 비벼 조적 공에게 날랐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집합 장소에 나가면 봉고차가 수현을 실었다. 현장에 나가면 6시 그때부터 오후 6시까지 9시간 일했다. 9시와 12시와 3시 새참과 점심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시멘트나 벽돌을 날랐다. 조공은 수현이 옮긴 벽돌로 벽을 만들고 담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수현은 오차 없이 올라가는 벽돌이 신기했다. 벽돌과 시멘트처럼 “ 시간이 가면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자기도 시간이 지나면 더 친밀해지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 현장은 오후가 되면 30도가 넘었다. 공사장 안으로 뜨거운 사우나 한증막처럼 변했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런 날씨라도 집회를 하고 있다면 신이 날 수현이었지만 오전 내내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더 이상 수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른 송장 같은 몰골을 한 수현은 점심을 먹고 나면 현장 아무 곳에서나 쓰러져 잠을 잤다. 이렇게 낮잠이라도 자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수현은 손은 시멘트 독이 올라 매일 밤 가려웠다. 40장씩 벽돌 지게를 지어 옮기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게로 모래를 퍼 날랐다. 이런 날은 일당이 조금 더 받았다. 매일 매일 허리와 다리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하면 하루 일당이 4만 원에서 6만이었다. 적은 돈이 아니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면 하루도 쉴 수 없었다. 매일 매일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저녁에 버스를 타면 수현의 몸에서는 쉰내가 났고 땀을 절은 바지는 단단하게 굳었다. 창피했지만 수현은 어쩔 수 없었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 대부분 50~60대였다. 저분들이 평생 하는 일인데 한두 달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하다 보면 익숙해져. 나도 처음엔 정말 힘들더라.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 처자식과 아이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뭐 그러다 보니 30년이네!…. 함께 일하던 김 씨 아저씨는 수현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다. 그래도 학생은 끝나면 대학생이고 졸업하면 이런 일은 안 할 것 아니여… 수현은 여름 내내 땀과 시멘트 냄새로 시큼했다. 하지만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수현은 버텼다. 두 달간의 노동일이 끝나고 수현은 학교에 돌아갔을 때 노동에서 해방된 기쁨을 느꼈다. 노동해방이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임금과 안전하고 노동법이 지켜지는 노동 현장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노동 자체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일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수현은 하고 있었다. 이렇게 힘든 것이 노동인데 일도 하지 않고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분명 부당한 일이다. 돈을 가졌다는 이유로 불로소득을 얻어 편하게 사는 사람들과 돈이 없다는 이유로 평생 노예처럼 힘든 일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이런 잘못된 세상은 바꿔야 해….” 같은 노동 시간이라면 같은 소득을 버는 것은 정당하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차별할 수 없다. 의사와 노동자가 8시간을 일했다면 같은 수입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수현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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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20
  • 참교육 키즈의 생애 2편 세상은 멀고 술은 가까이 있었다.
    세상은 멀고 술은 가까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수현은 나경 선배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나경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 수현은 나경 선배가 다니는 국문과에 가봤지만, 나경 선배는 학교에 나오지 않은 지 꽤 되었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나경은 어디로 간 것일까? 수현은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만난 나경 선배는 어쩌면 수현이 이 대학에 들어온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 살 차이였지만 수현은 나경 선배를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학교에 없었다. 어디로 간 것인지 수소문했지만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열혈 전사처럼 보였던 나경 선배는 알고 보니 열혈 운동권도 아니라고 했다. 몇 번 나온 시위에서 수현이랑 몇 번 만난 것이 전부였다. [나경선배는 그냥 운동권이라기보다는 운동을 지지하는 주변 인물 정도에 불과해..] 이게 대부분의 평가였다. 수현은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몇 번 만난 선배가 좋다고 이 학교를 선택한 것도 그렇고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모르는 나경 선배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수현은 생각했다. 4월이 된 학교는 4.3 항쟁 세미나를 한다는 대자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3월이 등록금 투쟁이 계절이라면 4월은 4.3 항쟁과 4.19로 5.1일 노동절과 5.18로 연결되는 집회 시즌이었다. 세미나를 통해 신입생들을 확보하려는 동아리, 학회, 학생회가 열심히 홍보하기는 했지만, 참가 인원은 많지 않았다. 명확한 전선이 있었던 80년대가 지난 90년대에 접어든 학생 운동은 조금씩 시들해지고 있었다. 수현은 고등학교때 읽은 순이 삼촌이 생각났다. 해결하지 못한 비극의 불꽃은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고 살아나 산 사람의 목숨을 가져간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사회에 남아 있는 불의한 것들을 해결하는 것이 대학생의 임무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투쟁의 대상이 명확할 때는 전선이 투명하고 투쟁의 불길은 쉽게 오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선은 희미하고 집회보다는 도서관을 가는 학생들이 더 많은 시대였다. 학생 운동을 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 수현은 이 상황이 불편했다. 시들해진 것은 투쟁 전선이 아니라 운동권들의 나약함이 문제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여전히 군부 독재의 2인자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고, 작년만 해도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학생들이 몇 명인가? 여전히 통일은 멀고 노동자들의 삶은 팍팍했다. 수현은 당장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선배들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이야기해 보면 그만 생각하라며 술을 사주는 선배 말고는 특별하게 대안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아니 대학생들이 할 만한 일이 없었다. 세상일은 멀고 술은 가까이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있었다. 이제 곧 방학의 시작이었다. 학교엔 농민 학생 연대활동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수현은 참가하지 않았다. 수현은 농사일이라면 이미 집에서 충분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할을 하려면 집에서 집 농사일을 돕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가하게 농촌활동을 갈 만큼 집안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수현은 여름에 돈을 벌어야 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수현은 막노동일을 나갔다. 강진은 농활로 수현은 막일 현장으로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강진은 수현이 부러웠다. 수현은 생각에 막힘이 없었다. 강진은 우연히 문학서클 선배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집회까지 나가게 되었다. 첫 집회에서 강진이 던진 화염병이 안 깨지자, 전경이 그걸 다시 강진에게 던졌다. 그런데 우물쭈물하다가 자기 다리에 불이 붙어 버린 것이다. 그 일로 학교에서 유명해졌고 선배들도 강진을 아꼈다. 하지만 스스로 운동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강진의 부모님은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 그가 아는 부모님의 모습은 10여 년 전에 이미 멈춰 있었다. 사실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막내로 태어난 강진은 터울 많은 누님 집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성적에 따라서 대학에 입학했다. 아니 다른 곳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다. 화물차 운전을 하는 매형의 벌이로는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어떻게든 누나 집에서 대학까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강진은 하고 있었다. 강진의 누이 명숙은 처음 강진이 집회에서 다친 것을 보고 오래전에 사고로 떠나 부모 생각이 났다. 명숙은 겁이 덜컥 났다. 강진도 이러다 죽는 것이 아닌가. 방송에서 데모하다가 죽은 학생들을 명숙은 기억하고 있었다. 더구나 명숙이 처음 일을 했던 공장에서도 데모하다가 다치고 끌려간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명숙은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을 키워야 했다. 명숙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공장에 들어가서 일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나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철민과 결혼했다. 다행히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동생 강진과 사는 것도 그는 좋아했다. "내가 화물차 운전 때문에 멀리 떠나는 날이 많잖아” “동생과 함께 있는 것이 더 맘에 놓여" 남편이 이런 말을 했을 때 명숙은 눈물이 나왔다. 고마웠다. 강진은 이 모든 일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3월이 가기도 전에 집회에 나갔다가 화상을 입었다. 누나에게는 대충 다른 일로 다쳤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강진은 맘이 편하지 않았다. 아무 고민 없이 학생운동에 전념하는 수현이 강진은 그래서 부러웠다. 수현아, 너는 학생운동 하는 것…. 고민 없어? 강진이 물었을 때 수현은 간단하게 말했다. “없어.” 강진은 그렇게 짧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 지리산문화
    • 연재소설
    2024-12-06
  • 연재소설 참교육 키즈의 생애 1편 "봄날"
    1편 봄날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벚꽃처럼 피어올랐다. 수현은 날아오는 화염병이 강진 앞에서 터지는 것을 봤다. 화염병이 터지자, 강진의 바지에 불이 붙었다. 강진은 떨고 있었다. 수현이 강진에게 달려가 불을 껐다. 부지에 불이 붙어 있었다. 강진이 머뭇거리는 것을 본 체포조가 강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도망쳐” 수현은 강진의 손을 잡고 교문 안으로 달려갔다. “다행이다. “잡힐 뻔했잖아.” 교문 안으로 들어와 확인해 보니 불탄 바지가 찰거머리처럼 강진에 다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바지를 떼자, 강진의 피부와 함께 벗겨졌다.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억… 강진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병원에 가자… 아프지…. “ “아…. 괜찮아…. “ 강진은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뭐가 괜찮아…. 아파 보이는데….” 그해 강진과 수현은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같은 과에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 말이 없고 얌전하던 강진이 시위 현장에 나온 것을 본 수현은 많이 놀랐다. 그럴 놈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수현은 집에서 학교까지 강진을 부축했다. 화상에 심해서 혼자 걷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강진은 학교 근처에 살았다. 수현은 자취방에서 강진이 사는 곳까지 매일 걸어갔다. 그렇게 수현은 강진과 벚꽃이 질 때까지 함께 걸었다. 꽃이 지자, 강진은 혼자 걸었다. 강진은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강진은 고등학교 때 친구보다는 책하고 가까운 아이였다. 친구들이 운동장이나 체육관으로 향할 때 강진은 조용히 교실에 남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국문과에 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강진은 국문과가 아닌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생각이 있었는지 문학서클에 가입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운동권 서클이었다. 선배들을 따라 그날 처음 집회에 나갔다 화상을 당한 것이었다. 강진의 다리에는 커다란 화상자국이 남았다. 강진이 혼자 걷게 된 이후 그들은 한동안 보지 못했다. 수현과 강진 둘 다 서클 활동에 빠져 있었다. 강진이 가입한 해방문학 동아리는 말만 문학 동아리지 “운동권 양성소”라고 불리는 유명한 동아리였다. 강진의 권유로 수현은 그 서클에 가본 적이 있었다. 서클 방은 학생회관 지하에 있었다. 수현이 지하 서클 방을 열고 들어가자 5~6명의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선배들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었다. 벽에는 사회과학책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강진이 만나러 왔는데요?” "네가 수현이냐?" "네" "강진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너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 운동을 했다며? "네……. 뭐…. 그런 그것은 아니고 그냥 참교육 운동할 때 강당에서 연설을 좀 하기는 했습니다." "대학생들 집회 때 따라다니기도 하고요" "너 나경이를 안다며?" 네…. 나경은 수현이 고등학교 때 만난 선배다. 수현은 고등학교 때 경찰서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했었다. 경찰서 앞에서 집회가 자주 있었다. 집에만 있기 심심했던 수현은 시위대를 따라가 본 적이 있었다. 그날도 경찰서 앞에서 집회하던 날이었다. "야. 너 고등학생 아니야?" "네…. 그런데요. 고등학생이 여기 나오면 어떡해…. 나경은 어린 수현이 걱정되었다. 잡히면 너 고생한다. 그럼, 누나는요. 잡히면 고생 안 하나요? 뭐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대학생이고 너는 고등학생이잖아…. 상황이 달라…. 뭐…. 저는 달리기 잘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 딱 보니 잘 달리지 못해 경찰에게 잡힐 것 같은데요. 야. 너 누나를 뭐로 보는 거냐. 누난 절대 안 잡힌다. 왜요? 누나는 변신하면 되거든. 나경은 가방 안에 가발과 다른 옷을 보여 주었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나경과 수현은 그 후로 몇 번 시위 현장에서 만났다. 사실 나경를 만나기 전에도 수현은 대학교 앞 사회과학 서점에서 일명 운동권 필독서를 사서 읽고 있었다. 철학에세이, 공산당 선언, 강철군화, 전태일 평전, 그람시나,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집회에 참여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수연이 그런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대학생 형이 준 책이라면 수현에게 친구가 빌려준 책이 시발점이 되었다. 해직한 선생님들이 만든 거꾸로 읽는 교과서와 세계사를 읽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서정주가 친일파라고”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의 글을 공부해야 하지. “역사는 누구 입장에서 쓰는 거야? 왕의 역사와 백성의 역사는 다른 것 아닐까? 새장에서 태어난 새는 나는 자유를 모르지만, 새장으로 잡혀 온 새는 언제나 하늘을 마음껏 날던 자유가 그리운 것이다. 수현은 스스로 교실과 교과서라는 새장안에 갇혀서 진정한 자유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수현은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 후 나경 선배와 몇 번 만나면서 막연하게 대학교에 들어가 학생 운동을 해야겠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어쩌면 수현에게 나경과 학생 운동은 대학에 입학해야 할 유일한 이유 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수현의 꿈은 노동운동가였다. 수현이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힘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조직을 만들어 힘을 키우고 불의 일에 대항해서 싸우는 일은 멋있어 보였다. 가난한 농부들이 연대하여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싸우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권리와 임금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당연 것 처럼 보였다. 수현은 전태일 열사처럼 “노동해방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대학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졌다. 교실안에 친구들이 입시를 위해 공부하던 고 3학년때 수현은 고향 마을에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고등학생들의 모임이었다. 수현이 살던 마을엔 논과 들뿐이 시골 농촌 마일이었다. 아이들 부모는 농민이었고 모두 하나 같이 가난했다. 수현은 매주 토요일 밤에 아이들과 마을회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빠 이런 모임을 꼭 해야 해요?” “왜 우주야?” “이상해?” “아니" “오빠가 이상해 보여?” “아니”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어려워?” “세상이 그렇게 살기 어려워?” “열심히 일하고 절약해서 살면 잘 수 있잖아?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우주는 수현보다 두 살 어린 옆집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수현을 좋아했다. 모임을 만들자고 하자 가장 반기던 아이였다. 매일 밤 마을회관에 모이던 아이들만 15명 이상이었다. 수현의 모임의 회장으로 매일 밤 아이들에게 일주일 동안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해주거나 매주 주제를 만들어 토론하는 모임을 이끌었다. 아이들은 매주 모여서 함께 논다는 것만으로도 그 모임을 좋아했었다. 수현은 아이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회에서 나경을 만나고 나서 대학에 가야겠다고 수현은 생각하게 되었다. "수현아! 우리 서클에 가입하지 않을래" "친구 강진도 있고…. "전 이미 가입한 서클이 있어요. "아. 그래. "서클 두 개 가입한다고 잡아가는 것도 아닌데…. 근데 선배님들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데요? 우리…. 나이가 좀 있기는 하지…. 학생 운동이라는 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거든…. 네…. 수현은 서클에서 나왔다. 그때 강진이 서클로 들어오고 있었다. 수현아. 오랜만이다. 우리 서클에 왔구나. 같이 들어가자. 내가 선배들 소개해 줄게. 아니야…. 이미 만나고 왔어…. 그래…. 우리 서클에 가입할 거야? 아니야. 왜? 생각이 좀 달라…. 그래…. 나중에 보자.” 강진이 가입한 서클은 총학생회 간부를 주로 배출하는 유명한 서클이었다. 수현은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현은 이 서클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강진이는 알고 가입한 것일까?” 강진이 학생 운동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수현은 믿을 수 없었다. 수현이 고등학교 때 참교육 선생님들의 부당해고에 분노에 강당에서 연설했을 때 수현을 이상하게 쳐다보던 강진의 눈빛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에 가입한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강진의 인생이니 개입할 일은 아니라고 수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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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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