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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 가게 유람기]도로 위의 심산, 깨달음이 있는 오차공방
- [반달곰1% 가게 유람기] 도로 위의 심산, 깨달음이 있는 오차공방 “원래 제가 산을 참 좋아해요. 예전에 선생님이 너는 산에 풀어놓으면 제일 좋아해, 라고 하셨는데 인연을 따라 오다 보니 도로 위에 자리를 잡게 되었네요. 저는 여기가 내 산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산속이라면 혼자서도 잘 논다는 오차공방의 주인장 오은주 님은 지리산으로 오기 전에는 강원도에 살았다. 그러다가 화개로, 그리고 지금은 구례, 오차공방이라는 자신만의 산속에 산다. 공방이라는 산 속에서 숨을 쉬고 손을 움직여 수행하는 삶을. 공방에 울리는 만트라는 세상의 번다함을 이기고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평안하고 순탄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주파수에 맞추어 흐르고 있었다. 임산부와 아이에게도 내어줄 수 있는 차 오차공방의 이름은 깨달을 ‘오(悟)’와 ‘차(茶)’의 두 음을 합쳐서 ‘오차’, 공방을 겸하는 공간이어서 ‘공방’이라는 두 글자를 더했다. 차를 깨닫는다는 건 어떤 걸까. “저는 손님들을 기억할 때 그 분이 드신 차로 기억을 해요. 한 분 한 분 사진처럼 기억이 나거든요. 가게에 와서 차를 드신 분들이 몸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실 때 좋죠.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래도 일관되게 지켜온 건, 아이들이 오거나 임산부가 왔을 때도 내가 편안하게 내어드릴 수 있는 메뉴들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문을 연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는 오차공방의 메뉴는 오은주 님이 블렌딩한 차들이 대부분이다. 손님들이 뭔가 부족한 것을 표현하면 그것을 고민해 하나씩 채워온 것이 지금의 차 메뉴들. 20여 년 전 직접 차를 배운 그녀는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차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 설국차’라는 메뉴를 이야기하자면, 설국차는 높은 산에서 자란 야생국화인데, 특이하게도 잎차가 갖고 있는 약성과 맛, 수색(水色)을 지녔다고 한다. 꽃차인데 몸에 열을 내는 발효차와 같은 효능이 있어 모든 분들이 평이하게 좋아할 수 있는 메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그 외에도 탄산이 없는 야생화 꽃잎에이드, 산딸기에이드, 돌배모과차, 지리산 야생녹차 등 다른 찻집에서 보기 힘든 메뉴들이 여럿 있어 오차공방만의 색을 더하고 있다. 오차공방의 유명인사, 볼 오차공방에는 이렇게 직접 블렌딩한 차 외에 유명한 존재가 또 있다. 볼, 13세의 불테리어. “볼은 빠다틱하게 지은 이름인데, 영어로 ‘공(ball)’이 우리말 공으로 하면 둥글다, 비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불테리어는 원래 힘이 좋은 견종인데, 저 아이는 힘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아는 것 같아요. 언젠가 멀리서부터 저를 향해 달려오는데, 직선으로 달려오다가 중간에 서있는 아이를 피해 돌아서 달려오는 걸 보고 생각했어요. 아, 저 아이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그렇다면 볼은 오차공방에 너무 잘 어울리는 녀석이다. 불테리어는 공격성이 강한 맹견 중 하나인데, 볼은 이 개가 불테리어 종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순박하고 우직하다. 나이가 들어 그런가 했는데 원래 그런 성품이란다. 얼굴은 웃는 표정이고 아는 손님이 오면 꼬리치며 다가가 몸으로 부딪히며 알은체를 한다. 쓰다듬으면 마다하지 않고 드러누워 순순히 손길을 받아준다. 그래서 오차공방 손님들에게 인기짱이다. 볼을 형상화한 조각이나 그림이 여럿 있는 것도 손님들이 선물한 것들이 많다. 이제는 볼에게 오차공방의 지분이 어느 정도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은주 님이 가게 쪽방에 들어 있어 손님이 오는 걸 눈치 채지 못할 때는 주인을 부르러 오기도 한다니, 오차공방을 지키는 또 다른 사장님이라고 할 법하다. 언제나 산과 함께 하고픈 마음으로 차가 다니는 도로 위에 10년을 있으면서도 오은주 님은 한 번도 지리산과 단절되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본인은 언제나 그 속에 있었다고. 그러니 반달곰1%에 참여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제안이 왔을 때 90%는 윤주옥 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 분이 하시는 일이니까 지지하는 마음으로 고민 없이 수락했어요. 산을 품은 분이니까. 그리고 나머지 10%는 자연에 대한 공감이었죠.” 아니다 싶은 일은 절대 못한다는 그녀의 선택이었다. 반달곰1%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좋은 점을 물었더니 손님들이 가게를 지리산과 연결되어 있다고 친밀하게 느끼는 것 같아서 좋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반달곰 하면 자연스럽게 지리산이 떠오르고 자연, 생태계와 연결해서 생각하니까. 게다가 처음에는 직접 반달곰1%를 소개해야 했는데, 지금은 알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훨씬 많아진 느낌이다. 시간이 가져온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젊은 분들은 가족이나 지인들한테 소개하기도 한다고. 덕분에 가게도 홍보가 된다. 그러니 반달곰 1% 프로그램을 시작하길 잘했다. 은주 님의 ‘산이 숨이 되고 내가 되었고 지금은 공방이 숨이 되고 내가 된다’는 말은 그녀가 얼마나 산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알게 한다. 우리 모두가 그녀처럼 산을 사랑했다면 산도 그 안의 생명체들도 힘들지 않았을 텐데. 모두가 그녀의 마음을 닮아갔으면 좋겠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4년 현재 10개 가게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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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 가게 유람기]도로 위의 심산, 깨달음이 있는 오차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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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사회 적응 거부 선언" 이하루
- 『사회적응 거부선언: 학살의 시대를 사는 법』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음악가이며 동물해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하루의 여행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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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사회 적응 거부 선언" 이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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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자락책방] 함양의 온도를 올리는 동네서점 “오후공책”
- 사월 말이었다. 수달래가 예쁘게 피던 날이었다. 함양의 오후공책을 찾아가고 있다. 오후공책은 23년 4월에 문을 연 함양의 작은 책방이다. 같은 협동조합에 속한 세 사람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따스한 사월의 오후 햇살 같은 미소를 가진 책방지기 두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안녕하세요” “네” “반갑습니다.” 우리는 책방 안에 있는 4인용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조영선 대표는 출장 중이었고, 김현임 님과 정은경 님이 책방을 지키고 있었다. 오후공책? 이름이 재밌네요. 어떤 뜻인가요? > 처음에는 함양의 귀촌한 사람들이 모여서 책 읽기 모임에서 시작했어요. 매주 한 번씩 만나 책 읽기 모임을 했죠. 함께 책을 읽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고, 함께 죽이 잘 맞아 책 모임을 1년 정도 하게 되었어요. 책이라는 주제로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을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함께 서점을 준비하면서 협동조합 “오늘”을 만들게 되었죠. 오후공책(5 Who 함께하는 책방)은 협동조합 “오늘”에서 운영하는 독립 서점입니다. 협동조합 오늘,은 삶에 문화, 예술, 놀이, 철학과 가치가 스며들기를 바라며 생활 속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보고자 뭉쳤습니다. 책방은 실험을 위한 꿈의 아지트이며, 책, 먹거리, 예술, 놀이 등의 다양한 활동을 도구 삼아 환경, 교육, 성찰, 치유의 바다를 항해할까 합니다. 이곳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함양이라는 산골 작은 읍에서 그것도 작은 책방으로 살아남는 것은 어려울 것 같은데요. 2년이나 지났으니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네. 맞아요. 서점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아니죠. 그렇다고 아무런 수익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거나 최근에는 지역서점 희망도서 바로대출 같은 일도 하고 있습니다. 희망도서 바로대출은 어떤 사업인가요? > 도서관에 책이 없는 경우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고 내가 지정한 서점에서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읽고 싶은 책을 지역서점에서 빌려 보고 반납도 할 수 있어요. 정부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책방에 보조금을 주기도 해서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저희가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고요. 지금 책 모임 다섯 개 등산 모임과 바느질 모임까지 운영하고 있죠. 저희가 처음 생각했던 책이라는 주제로 지역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책 이야기 마당이나 음악 주제로 모임을 하기도 하고요. 책방에서 책을 읽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글을 쓰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계신가요. 책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계신가요. 자, 이제는 산에도 가보실래요? 오후공책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고 있네요. > 다양한 일을 만들어 지역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거든요. 다행히 서로 죽이 잘 맞다 보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함께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다 보면 또 일이 하나 늘어나고 하는 식입니다. 올해는 책 문화제도 해 볼 생각이에요. 책 문화제는 어떤 일인가요? > 김현임(김) : 함양의 작은 서점이 두 곳이 있어요. 그림책을 주제로 하는 그림 책방 “퐁당”이라는 곳이 하나 더 있는데 올해가 그림책의 해라서 그림책을 주제로 체험도 하고 그림책을 보고 함께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오후공책과 퐁당이 멀지 않아서 가는 길에 책이 있는 거리 같은 것을 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지금 기획 중입니다. 책방은 모두가 아는 사양 사업 중 하나잖아요. 많이 없어지기도 하는데 사실 창업자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거든요. 책방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 정은경(정) : 저희가 책방 창업을 준비하면서 다른 책방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봤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있는 인문학 교수님이 운영하는 인문학 책방 대표님 이야기를 보니 종일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 며칠 이어진 경우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어요. 사람이 없으면 여기저기 전화도 합니다. 저희가 처음 책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도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_김현임 책방지기 책방을 운영하는 일은 재밌나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책방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누가 봐도 책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어 보이거든요. > 정 : 음. 사실 힘들고 지치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즐겁지 않은 날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손님이 거의 없는 날도 있거든요. 그런 날은 제가 책을 좋아해서 손님이 없다면 책을 읽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책을 많이 읽기도 해서 손님이 없는 날도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리고 손님이 없어도 바쁜 일이 많아요. > 김 : 저희가 처음 책방이라는 공간을 생각했을 때도 성공을 바라지는 않았거든요. 아마 시골 책방 문을 열면서 책방으로 집 한 채 마련해야지, 이런 마음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들 이런 점은 공유된 상태였어요. 그래도 책방을 유지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최저 인건비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정도는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정 : 사실 조금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너무 활발해진 것 같기도 해요. 처음 시골에 내려왔을 때는 번잡하지 않게 조용히 살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도시에서 바쁘게 살았으니 이제 좀 조용하게 살고 싶었는데 서점을 하면서 재밌는 일을 자꾸 하고 싶고 책방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혼자만의 시간은 없어서 약간 아쉽기도 해요. 그래서 짧은 시간이라도 혼자 있거나 숲을 걷거나 합니다. 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재밌어요. 재미가 없다면 못 할 것 같아요. _정은경 책방지기 운영 시간은 어떤가요? 오후공책이니까 오후에만 운영하나요? >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오후 8시까지 운영했는데 6시 이후에는 손님이 거의 없더라고요. 저희도 사실 오후에 좀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바꾸었어요. 그랬더니 몇몇 손님들이 오후에 열지 않아서 아쉽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손님들은 주말에 다시 오시기도 합니다. 저희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열고 있거든요. 사실 추석이나 설 명절을 제하고는 매일 문을 열고 있어요. 저희 서점은 세 명이 운영하고 있어 가능하거든요. 일주일에 한 사람이 2번에서 3번 정도 나오면 되니까요. 뭐 함께할 일이 있으면 모두가 출동하기는 합니다만.... 힘들지는 않나요. > 정 :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하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재밌어요. 재미가 없다면 못 할 것 같아요. 아직은 뭐 할 만하고 좋아요. (책 외에도 음료와 의미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많은 책방이 책보다는 음료 판매나 기타 수익이 더 많은 경우가 있던데 오후공책은 어떤가요? > 정 : 함양에서 책을 구매하는 분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말에 여행을 오시는 분들이 책을 구매하는 편입니다. 월 150에서 200권 정도가 판매돼요. 우리 책방에 책이 천 권 정도가 있어요. 공공기관에 납품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통해서 책을 판매하기도 하고 프리마켓에서 책을 팔기도 합니다. 책을 판매하기 위해 분투 중이시네요. > 김 : 책방이니까 책 판매가 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밖에서 보면 한가롭게 책방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열심히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고 봐야겠죠. 오후공책만의 책 선별 기준이 있을까요? 공간이 크지 않다 보니 진열 공간도 부족할 것 같고요. 각자의 취향이나 판매도 해야 하니까요. > 정 : 음… 세 명이 한 책장씩 선별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소설을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선택한 곳도 있고, 환경이나 에세이를 좋아해서 그런 책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그림책을 좋아하는 책방지기가 고른 책도 있고요. 팔릴 만한 책을 선택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운영하는 세 명의 취향이 담긴 책들이죠. 팔릴 만한 책과 취향과의 마찰이 있기는 해요. 책은 문화이자 상품이니까요. 독립 출판사들의 책도 많은데 독립 출판사 책은 잘 팔리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씩 구매해 주는 사람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1년에 3번 정도 안 팔리는 책들은 반품하는데요. 반품하면 대부분 폐기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가능하면 최대한 팔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에 대한 예의라고 할까요! > 김 : 제가 서점을 시작한 이후에 여행을 가면 지역 서점들을 많이 찾거든요. 책방에 들어서면 그 책방지기의 취향이 알겠더라고요. 책방이 없는 곳도 있는데 그런 곳은 왠지 모르게 삭막해 보이고 차가워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오후공책은 함양의 온도를 2도 정도는 올려 주고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저에게 추천할 만한 책도 있을까요? > 정 : 저는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보고서>를 추천해요. 최근에 김금희 작가에게 푹 빠져 있는데, <나의 폴라 일지>라는 에세이 추천해요. 기회가 있다면 읽어 보세요. 책방을 창업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하시겠어요. 저도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거든요. 대학 때 후배 한 명이 선배는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책방 해 볼까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못하고 있네요. > 두 분 모두 : 누군가 하고 싶다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매력이 있는 일이니까요. 수익은 보장이 안 되지만요. 그래도 역시 좋은 일이에요. 하고 싶은 일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고 저희는 사실 아직은 만족하고 있거든요. (책방을 짓는 과정 ) 오후공책도 음료를 판매하시는데 수익은 어떤가요? > 매출은 책이 많은 편이지만 책은 이윤이 많지 않으니까 음료 판매가 아무래도 수익은 더 많은 편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아요. 거의 반반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는 책이 중요하고 책을 고르거나 읽는 데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믹서기를 사용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드립커피만 제공하고 있어요. 맞아요. 요즘 카페에 가면 얼음 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기는 하더라고요. > 그래서 오후공책은 믹서기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지역과 함께하기 위해 만드는 음료나 식자재들은 가능하면 지역 농산물을 이용합니다. 지역의 딸기를 사용해서 딸기 음료를 만들고 지역의 생강으로 생강 음료를 제공하고 있어요. 많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이 중요하죠. 그 외에도 비닐 없는 책방, 숍인숍으로 제로웨이스트 상품 같은 것을 판매하기도 해요. 액체세제 리필스테이션을 운영 합니다.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싶어요. 책방이나 책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요즘 책 읽는 사람들이 정말 없잖아요. 제가 보기엔 가장 책을 많이 읽는 나이는 가장 어린 나이 때일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님들이 그림책을 정말 많이 읽어 주잖아요. 그러다가 점점 아이가 크면 책이 학습지가 되고 또 문제집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하지 않는다고 꾸지람을 듣기도 하고요. > 김 :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접하는 소식도 그렇고 사람에 대한 관심도 빨리 생기고 식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책을 읽는 속도는 변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저는 책을 읽는 속도가 다른 인간에게 적절한 속도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가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고 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책 읽는 속도로 살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에게 초등학생 딸이 있는데 만화책이라도 읽으면서 뒹굴뒹굴하는 여유를 주는 것이 책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문해력도 결국 책을 많이 읽지 않아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고요. > 정 : 저는 책을 읽는 이유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해요. 책을 읽고 있으면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 같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책은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으니까요. 그것은 인공지능이 채워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는 인간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요. 주류는 못되겠지만 아웃사이더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요. 나른한 오후에 햇살이 책방을 비추고 있었다. 책과 책방이라는 주제로 수다를 떨다 보니 인터뷰라기보다는 책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함양에서 작은 지역 책방으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이 있다면, 그 마을엔 온기가 깃든다.” 서점 하나 없는 곳은 어쩐지 삭막한 느낌이 든다. 오래전 읽은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싶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따스한 햇살 아래, 책을 읽으며 살고 싶어.” 사월의 오후의 햇살이 오후공책에 따스하게 들어왔다. 그 안에는 마음이 지칠 때,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 때, 혹은 그냥 조용히 무언가가 그리울 때, 따뜻한 음료와 책이 함께 위로를 건네는 작은 책방이 있다. 그곳에는 책을 사랑하는 이들을 정성껏 맞이하는 책방지기가 있고, 한 권의 책을 통해 마음을 건네는 책이 있었다. 책이 그리운 날, 혹은 햇살 좋은 날, 책방으로 여행을 가고 싶은 날 향기로운 음료 한 잔과 함께 조용한 책이 있는 공간을 찾는다면 함양의 ‘오후공책’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책과 햇살,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그곳에서, 당신도 분명,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오후공책 책방 여는 시간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 추석과 설날을 빼고 매일 오픈 함양읍 한들로 67번지 글 조태용 사진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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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자락책방] 함양의 온도를 올리는 동네서점 “오후공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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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자락책방] "지역에서 인정받는 책방이 되고 싶어요"
- 구례읍 봉서리 귀퉁이에 문을 연 작은 동네서점이 있다. 오가며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들어가 보지 못했다. 책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서점은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는 900개 정도의 작은 서점이 있고, 대부분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이제 막 삼 년 차가 된 봉서리 책방은 나름 잘 버티고 있는 셈이다. 봉서리 책방 대표 장 승준 님은 오랫동안 책방을 하고 싶었단다. 서점을 시작하기전 5~6년 동안 한 번은 해야지 했는데 어느 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이미 부동산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봉서리 책방은 개업했다. 그는 순천에 산다. 순천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오간다. 구례구역에서 내려 봄가을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요즘 같은 겨울엔 구례구역에 차를 두고 이동한다. 그가 그렇게 출퇴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결국엔 비용을 줄이지 않고는 서점을 오래 할 수 없어요” “작은 비용이라도 줄여서 예순 다섯까지는 하고 싶어요? 돈 안 되는 서점은 왜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책하고 친했죠. 아이들이 다 컷서 이제 돈 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 시기가 온 거죠. 그래서 오랫동안 해도 싫증이 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저에게는 책방이었죠” 사실 오래전부터 하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있었고요. 흔한 말 중에 취미가 일이 되면 지속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책방은 독서라는 취미와 일이라는 두 가지를 함께 해도 좋을 것 같았죠. 그리고 제 생각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책방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좋아요. 하지만 책방 일이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오래 하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돈을 안 쓰고 있어요. 그래서 버스도 타고 다니고요. 돈 벌이가 적은데 많이 쓴다면 당연히 운영이 어렵겠죠. 돈을 적게 쓰고 하고 싶은 책방 일을 오래 하는 것이 제가 3년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뭐 그렇다고 전혀 수익은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최소한 생활을 하고 서점을 유지할 만큼은 벌고 있어요.” 처음 책방을 하려고 준비할 때 서점을 운영하시는 한 분이 “돈 못 버는 정우성” 데리고 사는 것 같다. 는 말씀을 하셨어요. 서점이 돈은 안 되고, 모양새는 나는 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이라면 서점을 시작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이라는 것은 수익이 없다면 안 되죠. 저는 수익이 없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해보니까 결과는 어떤 가요? 생각보다 쉽지도 어렵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개업 했을 때는 5일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책만 읽다가 퇴근했습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지역에 책 좋아하시는 분들이 한 두 명 찾아오시기 시작했어요. 책을 읽고 싶고,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구례에는 그런 책방은 없으니까요. 그런 분들이 찾아오기 시작하니까 점점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책방을 운영하기 전에는 뭘 하셨어요? 다른 직업도 있었을 텐데요. 책방을 하기 전까지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구례는 국립공원 일을 하면서 연이 있는 곳이고요. 영어 수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책방 운영의 장점은 뭔 가요?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요. 책은 주제가 있고 내용이 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 각자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죠. 찾는 책을 찾아 주거나 절판된 책들을 찾아주는 일도 재밌는 일이었습니다. 봉서리 책방만의 책 선택기준이 있나요? 처음에 제가 좋아하거나 읽었던 책들을 주로 판매했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들이라 고객과 소통도 가능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책방이 제 개인 서가가 되어 버리더군요. 그래서 가능하면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배치하려고 합니다. 손님들이 찾을 만한 책들과 제가 좋아하는 책들을 절충한 것이죠. 그리고 가끔은 저에게 이런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 분들은 정말 감사하죠. 책방 주인의 책 선택 기준까지 파악해서 추천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저도 점점 어떤 책을 골라야 하나 어렵기도 하고요. 만약 서점을 개업하고 싶어 하는 분이 추천 하시겠어요? 결국 결심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확고한 생각이 있다면 결국 하겠죠. 그리고 서점은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아니니 지구력이 있으면 할 수도 있죠. 그래도 그냥 폼으로 한다면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 적어도 서점으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정도의 마음준비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은 서점이 책 판매로 수익이 한정적이라서 음료나 술을 팔거나 공간 대여 같은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방도 음료를 판매하고 계시고요. 음료 판매가 운영에 도움이 많이 되나요? 음료 판매로 임대료 정도의 수익이 나옵니다. 처음에 커피만 팔았어요. 그런데 커피를 안 마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커피와 차 두 종류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커피는 책과 잘 어울려서 팔고 있고요. 다른 음료 두 종류도 팔고 있어요. 달콤한 청을 넣은 음료와 달지 않은 음료 이렇게요. 단 음료를 싫어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출판 기념회나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공간 대여를 원하면 빌려주기도 하고요. 독서 모임도 자연스럽게 생겨 매주 일요일 오후에 하고 있습니다. 저도 회원으로 함께하고 있지만 조용히 있는 편입니다. 도서 모임에서 지금 어떤 책을 읽고 계신 가요? 시저의 갈리아 원정기를 읽고 있어요. 매번 책을 선정해서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책을 좋아하는 한 회원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좋더군요. 같은 책이라도 생각하는 방향은 다 다를 수 있잖아요. 같은 책을 읽었지만 나와는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배울 수도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책방을 방문한 분들에게 책을 추천하기도 하시나요? 추천은 가급적 안 하는 편입니다.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어 서요. 그리고 추천해도 관심 없는 분야가 아니면 관심도 없고요. 그래도 꼭 추천해 달라고 하면 얇고 저렴한 책으로 추천합니다. 비싼 책을 추천하면 오해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책의 선택 기준이 주관적이 상대적이라서 추천도 쉽지 않더라고요. 만약 고객이 호기심이 있는 책이고 그 책을 제가 읽은 것이라면 내용을 이야기해 주기는 합니다. 운영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화요일이 휴무일입니다. 화요일을 빼고는 매일 12시에서 6시까지 운영해요. 처음엔 11시에 했는데 오전에 일이 있어 지금은 이 시간에 하고 있어요. 가능하면 영업시간은 바꾸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구례 봉서리에 책방을 내신 이유가 있을까요? 구례 사람들 중에 이 동네 안 와본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읍내가 사람들이 많은 장소가 좋지 않을까요? 처음엔 도서관 옆에서 하고 싶었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봤는데, 이 책은 소장해서 줄도 긋고 싶고 그런 책을 만나면 제 책방에서 사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지인을 통해서 여기 장소를 알게 되었는데 저도 모르게 여기서 책방을 하고 있더라고요. 하하 동네서점이 운영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책을 많이 구매하지 않은 경향도 있지만 온라인에서 동네 책방보다 책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요? 보통 인터넷 서점은 10% 할인 5% 적립해 줍니다. 하지만 동네 책방은 그렇게 운영하기 어렵거든요. 책 마진은 보통 30% 장도니까 그렇게 하면 수익이 거의 없겠죠. 가끔 책방에 와서 책을 고르고 난 다음 책 사진만 찍고 나가는 분들이 있어요. 이런 경우엔 대부분 온라인에서 구입하려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속이 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도서 정가제를 원하는 것이겠죠? 네. 하지만 요즘 분들이 도서정가제를 납득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어떤 제품이든 자율적으로 할인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니까요. 그나마 지금은 10%라는 기준이 있어서 그래도 할 만하죠. 앞으로 목표가 있나요? 제가 서점을 하기 전에 전국에 있는 서점들을 많이 찾아가 봤어요. 지속 가능한 서점은 지역 사람들이 찾고 인정받은 곳들이었습니다. 저도 이 지역에서 인정받는 책방이 되고 싶어요. 3년이면 인정받은 것 아닐까요? 아직은 좀 아니고요.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지역 분들에게 친밀하고 함께하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몇 분의 손님들이 책방을 찾았다. 오자마자 음료를 주문하고 익숙하게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단골손님이라고 했다. 또 한 분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거의 한 시간 동안 책방에 들어와 책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늘 처음 오신 손님이라고 했다. 요즘엔 책은 대부분 온라인을 구입한다. 나 역시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하는 편이다. 보통 온라인 책방에 접속하면 내가 원하는 책을 검색해서 바로 구매한다. 책을 둘러본다는 개념은 사실 없다고 봐야 한다. 이 책 저 책 고르기보다는 내가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 책만 달리기하듯 고르고 배송되는 날을 기다리는 식이다. 하지만 오래전 서점에 가면 이 코너 저 코너를 돌며 책 산책을 했었다. 지금 온라인 서점에는 이제까지 대한민국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을 만큼의 책을 구입할 수 있다. 원하면 해외 서적도 클릭 몇 번으로 구입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는 책방을 걸어 다니면 이 책 저 책 골라보는 재미는 없다. 오랜만에 책을 오랫동안 고르고 있는 분의 모습을 보니 책방의 감성이라는 것은 역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성을 찾는 독자라면 지금 봉서리 책방에 가보면 좋을 것 같다. 사진-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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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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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자락책방] "지역에서 인정받는 책방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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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너무나 사랑스러운 로컬 소품숍, 호호의 숲
- 피아골 겨울의 한 복판에 찾아간 호호의 숲 앞마당은 여느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것은 마을 어귀부터 다정한 손글씨로 쓴 팻말이 ‘여기로 가면 호호의 숲입니다’라고 말을 걸어왔다는 정도. 겨울 풍경 속에 갇힌 마당에서 주인장을 어떻게 불러낼까 고민하던 중인데 미닫이가 스르르 열리면서 그녀가 나타났다. 호호의 숲 주인장인 류호화 님이다. 운명 같은 시작 그녀의 반가운 안내를 받으며 실내로 들어서자 흐린 바깥 풍경과는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알록달록 동화적인 색감의 사랑스러운 소품들로 가득한 호호의 숲을 누군가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선물가게 같다고 했단다. 필자의 눈에도 이곳은 악이라고는 스밀 수 없는 순수한 동화세상 같았다. 휘둥그레 뜬 눈이 분주해지면서 갑자기 기분이 둥실댔다. 정성 담긴 사랑스러운 소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걸까? “원래 이 공간은 숙박을 했던 곳이에요. 그런데 제가 손으로 꼼지락거리는 걸 워낙 좋아해서 대나무공예를 배웠거든요. 저기 달려 있는 대나무 등은 죽예회 회원과 함께 만든 거예요. 저 등을 완성해서 저곳에 다는 순간, 아 이제 숙박을 접고 소품숍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마치 소품숍을 해야 할 운명이었다는 듯이 그녀가 말한다. ‘호호의 숲’이라는 숍의 이름 역시 그녀의 별명인 ‘호호(년식이 좀 있는 사람들은 알 만한 TV만화영화 시리즈 주인공이다)’에, 자연에서 온 것이나 자연을 모티브로 한 작품, 자연과의 협업이라는 의미를 담은 ‘숲’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지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6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21년 7월 호호의 숲을 열었다. 처음에는 호화 님처럼 꼼지락거리는 걸 좋아하는 지인 10명의 작품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는 패브릭과 유리공예, 나무공예, 손뜨개와 자수, 그림 등 구례와 하동 등지의 작가들 60여 명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제는 호호의 숲을 먼저 알고 찾아오는 작가들도 있다. 자연의 사계, 그 색을 담은 작품들 류호화 님은 사실 구례에서 전설처럼 남아 있는 플리마켓 콩장의 운영자였다. 나중에는 남원, 광양, 순천 등지에서도 셀러들이 모이고 콩장이 열리는 날에 맞춰 가족나들이를 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으니 성공적인 자리매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8년 여의 기간 동안 애정을 가지고 알차게 꾸려오던 콩장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콩장이 열리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녀는 이제 다시 판을 벌일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얘기한다. 해서 누군가 에너지 만땅인 사람이 시작한다면 박수치고 손을 더해줄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지금 호호의 숲 작가들도 실은 콩장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성껏 만든 지역의 핸드메이드 작품들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리고 작가들도 호호의 숲과 함께 3년 동안 많이 성장했어요. 제가 워낙 자연을 좋아해서 작가분들께 사계절을 모티브로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하고 손님들이 좋아할 것 같은 포인트를 이야기해드리기도 하거든요. 작품에 자연의 색과 모습을 담으면서 결이 비슷해지고 공간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그녀가 내어온 다과상에도 겨울과 봄이 담겨 있었다. 호호의 숲에서 판매하는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티 매트, 벚꽃모양의 작은 차받침 역시 호호의 숲에서 판매하는 소품이다. 워낙 정성 들인 수공예품들이 많다 보니 한 번에 대량생산은 있을 수 없고, 그래서 하나하나의 가치는 더 귀하다. 소품뿐 아니라 차, 밤잼, 꿀 등 지역의 생산품도 판매한다. 이 날의 웰컴티는 매장에서 판매하는 꾸지뽕차였다. 구수하고 달큰한 차향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손님이 많지 않을 때 방문하는 운 좋은 손님들은 이렇게 정성 담긴 다과상을 받을 수도 있다니, 피아골 골짜기까지 찾아오는 길은 쉽지 않겠지만 일단 호호의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의 만족도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손님 중에는 호호의 숲을 통째로 서울로 가져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심지어 호화님이 직접 그리고 적어 작품을 소개하는 이름표를 사고 싶다는 손님도 있단다. 자연은 살아가는 힘이 돼요 호호의 숲을 시작할 때만 해도 마을어르신들이 이런 외진 동네에 가게를 하니 사람이 찾아올까 걱정을 했다는데, 이제는 소문이 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도 곧잘 찾아온다. 언덕길을 오르느라 숨을 헐떡이기는 하지만. 또 찾아오신 손님들 중에 네댓 팀은 다른 지역에 소품숍을 내기도 했으니 호호의 숲이 주는 영향력을 알 만하다. 그런데 어떻게 피아골 마을 안에 자리잡을 생각을 했을까. “소개로 오게 되었는데, 뭘 몰랐어요. 자연을 좋아하는데 제가 겁이 많아요. 그런데 여기는 산 속에 있는 마을이라 멧돼지, 고라니, 족제비 같은 야생동물들이 많이 내려오거든요. 한 번은 마당에 이불을 널었는데 저녁에 갑자기 비가 오는 거예요. 이불을 걷어야 하는데 무서워서 못 나가고 그대로 비를 맞혔어요. 그런데 4, 5년이 지나니까 어느 여름날 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풀을 뽑고 있는 거예요.(웃음)” 이제 집 앞 수로를 허둥지둥 건너는 멧돼지 가족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한다. 앞산에 있는 복숭아나무 열매는 야생동물에게 양보한 지 오래다. 봄, 여름, 가을 계절마다 마당에 앉아 있으면 이곳에 사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소리에 잠을 깨고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준비하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은 그녀에게 힐링이자 살아가는 힘이다. 그래서 그녀는 최소한의 다짐이 있다. 나로 인해 자연에 해를 끼치지는 말아야지 하는. 남들은 이쁘게 집 짓고 살라지만 내가 인공 구조물 하나 더 만드는 일은 하고 싶지 않고, 이쁜 쓰레기를 만드는 포장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호호의 숲에서는 포장재를 재사용하고 습자지로 소포장한다. 자연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하는 다짐이다. 반달곰 1%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좀더 적극적으로 공부하게 하고, 실천하는 삶에 한 발이라도 얹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이 다른 이들에게 공명처럼 전해지면 좋겠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이다.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4년 현재 10개 가게로 늘어났다. 반달곰1%는 ‘유랑인증서’를 발행하고 있는데, 손님들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면, 반달곰1% 가게들은 수익금의 1%를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에 기부하고, 그 기부금이 모아지면 사단법인 반달곰친구들과 논의하여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기로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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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너무나 사랑스러운 로컬 소품숍, 호호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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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이유
- 작년 가을에 광고 문자 하나를 받았다. 내가 주로 꽃씨나 구근을 구입하는 인터넷 쇼핑몰이었다. "지금 구매해서 심어야 봄에 예쁜 꽃을 볼 수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런 문구에 약하다. 달리기를 하다 보니 운동화나 용품에도 관심이 있지만, 철저하게 계획적으로만 구매한다. 절대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꽃이나 나무에는 속절없이 당한다. 결국 사이트에 들어가 튤립 구군 삼만 원어치를 구매했다. 튤립은 대부분 몇 년 지나면 열성화되어 꽃이 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꽃이다. [튤립원종] 물론 그 화려하고 상큼한 매력을 가진 꽃을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단지 잠깐 만나 사랑만 남겨 두고 떠나는 연인처럼, 이삼 년 예쁜 모습을 보이다가 은근슬쩍 사라져 버리는 튤립이 야속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구입한 튤립은 개량종과 원종 두 종이다. 원종은 절대 열성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원종이 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아는 튤립은 꽃이 크고 화려한 지금의 개량종들뿐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작고 귀여운 원종 튤립을 보게 되었다. 튤립의 원산지는 파미르고원과 톈산산맥의 구릉에서 자라던 매우 강한 식물이라고 한다. 이 식물이 유목민을 따라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해졌다. 16세기에 투르크 정원사들이 처음 튤립 육종을 시작했다는데, 그 시기에 이미 1,600여 개의 변종을 생산했다고 한다. 17세기 유럽으로 이어져 수천 종의 튤립 품종들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한 개의 가는 꽃대에 크고 화려한 한 개의 꽃만 피도록 육종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원종은 120종 정도가 있다고 하는데 내가 구매한 것은 그중에서 예쁜 몇 품종일 것이다. 물론 개량종도 함께 구매했다. 2월이 되고 햇살이 따뜻해지니 요즘 매일 정원에 나가 튤립 싹을 나왔는지 확인한다. 여기저기 심어 놓은 곳을 살펴보지만, 아직 하나도 올라온 것이 없었다. 처음 튤립을 심을 때 혹시 두더지가 다 먹어버릴까 봐 여기저기 보물 숨기듯 심어 두었는데 어디다 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면 두더지란 놈이 다 먹은 것은 아닌가? 기억나는 곳이라도 땅을 파볼까 하다가 멈춘다. 기다리면 나오겠지. 먹어 버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래도 먹기 좋은 커다란 개량종은 먹었을지 모르지만, 작은 원종은 남아 있을 것 같다. 원종은 증식도 잘 된다고 하니 올해 튤립 알뿌리 부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도 가져 본다. 봄이 오고 있고 튤립은 붉은색 노란색 물감처럼 진하고 진한 모습으로 화려하게 봄을 채색할 것이다. 세상이 혼탁하고 때로는 절망적일 때가 있다. 이럴 때 일 수록 변하지 않는 자연을 곁에 두고 심신을 달래는 것으로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한다. 매서운 꽃샘추위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만 땅속에서 올라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이룬다."라는 노자의 말이 있다. 내가 기다리는 튤립도 내 마음과 다르게 서두르지 않고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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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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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동의편지] 난세란 과연 어떤 세상을 말하는가
- ‘난세(亂世)’란 과연 어떤 세상을 말하는가? 박소동 지난해 8월 15일 현암사에서 출간한 번역 『맹자(孟子)』의 머리말에 내가 어릴 때 들었던 ‘난세에는 반드시 맹자를 읽어라[亂世必讀孟子]’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난세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나는 고전에 나타난 난세의 판단 기준으로 3가지를 제시하고 21세기를 사는 대한민국 집단지성들의 판단을 구한다. 첫째 : ‘상벌부중(賞罰不中)’이다. 잘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잘못한 자에게는 벌을 주는 일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른 통치의 치세이자 통치자의 기본 덕목이다. 그래야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상을 주는 것과 벌을 주는 것이 그 행위에 적중하지 않고 통치자의 자의적인 집행으로 법의 기능을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작은놈은 걸리고 큰놈은 통과하는 ‘거미줄 법’이 되면 국민은 법치를 불신하게 되고 통치자를 증오하게 된다. 난세의 길로 가는 조짐이자 상징이다. 둘째 : ‘현재불거(賢才不擧)’이다. 통치자는 혼자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직이 동원되어 통치하는 것이다. 그러니 조직에 알맞은 인재를 등용해서 맡겨야 하는 일이 통치자의 중요한 임무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직과 임무에 알맞은 인재가 아니라 사적인 친불친과 이해관계로 관리를 등용하면 그 조직이 무너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국민의 몫이 된다. 국민은 통치자를 불신하게 되고 원망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회복할 수 없는 ‘시스템 붕괴’로 이어져 국가 존립의 중요 기능인 ‘국내의 치안[內治]’은 물론이고 국방과 외교마저 위태롭게 된다. 국가의 존망을 좌우했던 지난날 모든 나라들의 역사가 이를 대변해 주는 지금의 교훈이다. 셋째 : ‘언로폐색(言路閉塞)’이다. 통치자에게는, 잘한다고 칭찬하는 말은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올바른 판단을 하고 올바른 통치를 하는 데는 독이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통치자를 망치는 말이다. 그래서 ‘말[言]’이라고 하지 않고,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바른말을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른말은 듣기에는 거북하다. 바른말을 할 수 있고 수용하는 통로를 ‘언로(言路)’라고 한다. 전통 군주 시대에도 통치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고 법으로 보장하였다. 그래서 2중 3중으로 ‘언관제도(言官制度)’를 두어서 언제든지 통치자에게 바른말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말이 옳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지 옳지 않다고 벌을 주면 바른말 하는 사람을 천리 밖에서 거절하는 것이고 그러면 군주의 주변에는 달콤한 말만 하는 아첨배 간신배만 가득할 것이니 눈멀고 귀먹은 군주가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알아서 바른 정치를 하겠느냐?”라고 군주에게 언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이 『조선왕조실록』에 종종 등장하는 이유이다. 조선왕조 시대의 군주가 모두 현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500년을 유지했던 것은 실로 언로의 활성화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로가 시스템화한 덕에 어리석은 혼군(昏君)의 전횡을 극복한 사례가 많다. 『조선왕조실록』의 한 사례를 들어 보면 얼마나 언로가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한 선비의 상소문 중에 ‘당신은 허수아비 같은 군주다.’라는 비유를 하는 문장까지 있었다. 왕은 이 상소에 답하면서 ‘내게도 이렇게 말할 정도면 다른 일에야 얼마나 더 강직하겠는가. 가상하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 답 아래에 ‘사신왈(史臣曰)’로 시작하는 댓글이 달려 있다. ‘말은 가상하다고 하지만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니 그 말이 받아들여지겠는가.’ 임금 앞에 앉아서 사실을 기록하는 사관이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 것이다. 이렇듯 군주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역사를 의식하며 하여야 하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국민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는 정치가 가장 말기적인 난세의 현상이라는 『춘추』의 판단이 지금도 유효하다. 현실 정치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21세기를 사는 우리 민주시민의 집단지성들은 과연 이 세 가지 판단 기준에 얼마나 동의하고 동감할지 자못 궁금하다. 글을 쓴 박소동 교수는 구례에서 태어났다. 난포蘭圃 서한봉徐漢奉 선생을 사사하였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장 · 편찬실장 · 교무처장, 한국고전번역원 한학교수, 성균관대학교 한문고전번역 석박사 통합과정 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 한국고전번역원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명예한학교수이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지난해 출간한 『맹자』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 귀향 후 구례 호양학교를 터 삼아 고전에서 길어 올린 시대의 좌표를 가르치고 있다. 호양학교는 을사늑약 이후 구례 지역의 선각자들이 망국의 한을 안고 후학 양성을 위하여 1908년 광의면에 설립하였고 1920년 폐교되었으나 2006년에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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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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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동의편지] 난세란 과연 어떤 세상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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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방송국
- 지리산방송국 “여보, 노랑이 눈이 왜 이래?” 마당 어귀 가마솥 앞에 앉아 메주콩을 삶는 아내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부지깽이로 불잉걸을 툭툭 치며 손바닥만 바라보던 아내는 그러나 내 큰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또 귀에 이어폰을 꽂은 모양이다. ‘쯧쯧’ 혀를 찼다. 바깥마당 길고양이 노랑이 눈에 안약 넣어줄 궁리를 하며 아내께로 다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화들짝 놀란 아내가 뒤로 나자빠지는 듯했다. “엇따야, 경기하겠네. 뭘 듣기에 그리 푹 빠졌어?” “아유, 좀 가만가만 말로 하지. 지금 소설 듣고 있거든.” 지난봄 유튜브 방송 가운데 책 읽어주는 방송이 있다는 말이 퍼뜩 떠올랐다. 그때부터 아내는 유튜브 방송에 빠져 살았다. 이른 아침 정치방송에서 시작된 아내의 유튜브 사냥은 저녁때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엔 그런 아내가 못마땅했다. 흥미를 끌어 돈벌이하려는 유튜버가 대부분일 거라 믿었다. 거기 나오는 정보가 옳을 리가 있나. 허접한 몸짓과 익살스런 표정으로 관심 끌기에 혈안이 된 돈벌이광기의 도가니일 거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진실은 드러나고 진정은 느껴지기 마련이다. 몇몇 좋은 방송을 만나면서부터 나 또한 유튜브 채널의 중독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지금 국회로 나와 주십시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 주십시오.” 야당 정치지도자의 다급하고 처절한 목소리가 유튜브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무장한 경찰과 군인이 국회를 막아섰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국민은 국회로 나갔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 자리를 지켜낸 국민 모두가 기자였고 기록자였다. 밤새 텔레비전을 켜두고 있었지만 정작 눈과 귀는 손바닥 속에 든 유튜브 방송에 열려있었다. 명망 있는 독점언론 독점방송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느꼈다. 누구나 방송인이 되어 주관을 밝힐 수 있는 방송국이 내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낮은 곳에서 느리게 살자’는 맹세를 하면서 지리산에 들어온 지 스무 해가 다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내 삶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괭이 하나에 의존했던 농사에 관리기를 더했고 농사는 늘었다. 자꾸 위를 향하는 숨 가빠지는 세월이었다. 내 삶만 그랬을까. 곳곳이 갈라지고 파이는 국토와 이리저리 떠밀리며 착취당하는 이웃들, 서식처를 잃고 쫓기는 가녀린 생명들, 이 문명은 우리들을 느리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리산 여기저기 함성은 끊임없이 들끓었다. 누구는 ‘케이블카반대’를 외쳤고, 어디서는 ‘골프장반대’를 외쳤다. 저 언덕엔 산악열차가 저 골짜기엔 양수발전소가 들어올 거라는 말이 들렸다. 이 광란의 문명은 삶터를 지키려는 우리들 저항의 돛을 꺾고 노를 부러트리기 일쑤였다. ‘여기 와보세요. 저 아름다운 숲을 보세요. 거기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들 순수무구한 눈빛을 봐주세요. 저들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세요. 그 길을 여럿이 함께 따박따박 걸어주세요.’ 이런 말을 해주는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 구상나무 떡갈나무 사이를 오가는 하늘다람쥐의 비행과 연하능선 흐드러진 범꼬리 산오이풀 현란한 춤사위를 보여주는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 덕산장 인월장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가 흐르는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 낮은 곳에서 느리게 살아 더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전해주는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 유튜브 방송채널에 아내가 즐겨 만날 ‘지리산방송국’이 더해지면 좋겠다. 지리산의 노래와 시와 함성과 소곤거림이 세상천지에 메아리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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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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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새참 먹는 시간, 그녀가 만드는 한 끼
- 반달곰을 사랑하는 1% 가게 유람기입니다. 반달곰1%는 지리산권 가게들(현재는 구례)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공존프로그램으로 반달곰1% 가게에 가면 반달가슴곰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특별히 계획하지 않아도 반달가슴곰 보호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2021년 5개 가게로 시작한 반달곰1%는 2024년 현재 10개 가게로 늘어났습니다. ‘유랑인증서’를 통해 반달곰1% 가게에 들러 물품을 먹거나, 마시거나, 구입하여 모아진 1%의 기부금은 올무수거 활동, 무인센서카메라 구입 등 반달곰 보전활동을 위해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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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곰1%가게유람기] 새참 먹는 시간, 그녀가 만드는 한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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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아래에서 새 문명을 꿈꾸네
- 김석봉 선생 댁 마당에 들어서니 귀여운 고양이들이 먼저 나를 맞이하였다. 40여 마리에 이른다니 이 집의 주인은 고양이들이 아닌가. 집안에서는 또 견공들이 활달하게 손님을 접대한다. 나중에 만났지만 밖에는 목욕을 마친 거위도 집안 곳곳을 활보하고 있었다. 대부분 일부러 들인 게 아니라 갈 곳 없는 처지의 생명들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들을 돌보는 데 들이는 시간과 정성뿐 아니라 먹이기 위해서 투입하는 경제적 부담은 내가 상상하는 수준을 몇 배는 뛰어넘었다. 선생의 마음, 살아가는 태도가 깊숙이 다가온다. 원래 선생은 지역의 청년 작가로 활동하면서 진주교도소에 재직하고 있었는데 재소자로 온 문익환 목사를 만나면서 생애의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이때부터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는데 2천년대 초반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굵직한 장면들을 이끌었다. 2009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2012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거쳐 2007년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함양의 이 집으로 들어왔다. 여기로 오셔서 한 번도 옮기지 않고 18년째 살고 계십니다. 귀농, 귀촌할 때 지역과 집을 결정하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운명 같습니다. 그게 결심해서 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2년 동안 방치되어 있어서 보잘것없었지만 내 느낌이 참 좋았어요. 집을 보러 온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따라서 우연히 온 것인데 너무 좋아서 집사람하고 함께 다시 한번 보고 나서 바로 계약했어요. 그 전에 시골에 살아야겠다는 계획은 하고 계셨나요? 우리 나이 정도(선생은 57년생이다)면 그런 꿈은 다들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내 경우는 갑작스러운 일이었어요. 그때 진주환경운동연합 상근 의장을 하고 있었는데 이 집을 사고 나니까 가서 살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도배, 장판만 하고 이사를 하면서 단체 일을 정리했습니다. 과연 그럴까? 10년 넘게 준비하고서야 내려온 사람으로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선생은 무의식 속에서 오랜 시간 자연 속에서의 삶을 이미 살고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 농사 규모가 적지는 않습니다. 농사일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처음부터 농사를 지었던 것은 아니예요.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반대 싸움 등 환경운동연합 대표로 활동하고 이후 녹색당 운영위원장까지 서울을 왔다갔다 하느라고 농사는 뒷전이었지요. 2012년 중반 서울 활동을 정리하고 나서 그때부터 전업농부로 살았어요.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규모가 어느 정도죠? 농사일이 운동보다는 쉬웠어요. 지금 밭으로만 2,400평 정도 됩니다. 제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합니다. 더구나 밭농사여서 그렇습니다. 예전에 논농사도 했는데 그건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모든 것을 기계가 하잖아요. 그래서 ‘이건 하나마나 한 농사다’ 생각이 들어 3년 하고 때려치웠습니다. 밭농사는 자기 의지대로 하는 거잖아요. 작은 관리기 하나하고 괭이 가지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고랑과 두둑을 크게도 하고 작게도 하고 얼마나 자유로운지 몰라요. 한동안 선생께서는 수확물을 판매하는 데 힘을 쓰셨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신 적도 있었다. 이제는 대부분을 나눔으로 소진하고 계시다. 농사의 규모도 조금은 줄이셨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러나 나는 농사일을 결코 욕심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내 삶에 부여하는 고결한 예의라 여겼다. 그랬거나 말거나 내년부턴 이 밭을 주인께 돌려주리라 마음먹었다. 욕심이라면 도려내기로 했고 스스로에 대한 예의라 해도 채울 만큼 채웠다 싶었다.”(선생의 페이스북에서) 선생님! 펜션인가요? 운영하고 계시죠? 펜션은 무슨(웃음), 민박입니다. 이 아래채인데 1945년 해방되던 해에 지은 집이예요. 그 사이 기둥을 보강한다거나 했겠지만 원형을 최대한 살리면서 방 세 칸 짜리 민박을 하고 있어요. 생활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인 것 같습니다. 맞아요. 우리가 여기서 살게끔 하는 가장 큰 동력이기도 했고 소재이기도 했지요. 이웃들이 있지만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너무 달라서 소통이 어려워요. 농사 얘기 말고는 할 얘기가 없고. 민박 손님들과는 대화, 소통, 교류가 잘 되니까 적적하지 않았어요. 사모님께서 음식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계신 점이 큰 힘이 되었겠어요. 그렇죠. 시설 보고 오는 사람은 없을 것 같고 음식 때문에 오는 사람은 있어요. 아들과 며느리, 이쁜 손녀딸까지 3대가 모여 사는 모습이 오늘날에는 흔치 않은 사례가 될 것 같다. 바로 곁에 며느님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고 선생의 페이스북에서는 이쁜 손녀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페이스북을 훑어보면서 사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을 듯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마을 가운데 있는 이 집이 좋았어요. 외따로 떨어져서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약간은 이해가 가요. 마을기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웃들은 내 이익 이외에 공동의 이익, 마을의 이익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 벽을 허물어보려고 함께 견학도 다니고 열심히 설득을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보조사업 지원금이 나왔는데 그걸 나눠 갖자는 거예요. 기가 막히더라니까. 내가 ‘우리 모두 쇠고랑 찹니다’라고 했죠. 결국 2~3년 후 접었어요. 그 아픈 기억이 있지만 선생은 여전히 마을의 일원으로서 음식도 나누고 마을행사에 참여한다. 불편함도 삶의 한 부분이 아니던가. 우리 모두 함께 늘 고민하고 깊이 성찰해야 할 중요한 주제가 아닐까. 선생님께서 열정을 바친 환경운동을 회고하면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십시오. 쉰 한 살 때 운동을 정리하고 완전히 내려왔어요. 한창 일할 나이이고 더 나이 든 분들도 열심히 하고 계시지만 나보다 더 진취적이고 잘할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돌아보면 우리가 했던 환경운동은 모두 옳다고 확신했어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일들이 모두 미래지향적이고 생태적이었나 안타까운 점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체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태양광 발전에 힘을 쏟았지요. 그런데 그 결과 논과 밭, 숲을 파헤치고 사방에 태양광 패널이 볼썽사납게 설치되고 또 그것 때문에 길을 내는 등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주차장 등 우리 삶의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환경운동의 큰 방향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요? 개별적인 운동들은 대부분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전개돼요. 예를 들어 군산에 골프장 들어선다고 함양 사람이 가지는 않잖아요? 물론 그런 운동이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문명의 전환을 도모하는 어젠다를 제시하는 운동을 개발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해요. 다만 그것은 민간 차원에서는 쉽지 않지요. 전환은 지방정부나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하는데 자본이 최고인 이 사회에서 가능할까요? 자본주의 체제의 극복을 목표로 정치지형을 전복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나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말씀이다. 기후위기를 향해 돌진하는 이 미친 문명을 멈춰 세우기 위해서 우리가 숙고하고 토론해야 할 무겁고도 뼈아픈 말씀이다. 선생은 땅을 일구고 사람을 만나고 고양이를 돌보는 모든 일상을 시인의 눈길로 갈무리해 왔다. 따스하고 애틋하다. 2020년 농사일 와중에 틈틈이 써온 글들을 엮어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을 펴냈다. 선생의 글을 읽으면 자연과 하나 된 삶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된다. “볕이 쏟아지는 빈 밭에 나가 내 몸뚱이도 말려야겠다. 한 시절 흘렸던 뜨거운 눈물도 말려야겠다. 사랑도 말리고, 분노도 말리고, 그리움도 말려두면 좋겠다. 아, 눈물 나게 좋은 가을볕이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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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아래에서 새 문명을 꿈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