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Home >  이야기
-
게임에는 있고 놀이에는 없는 것은?
"달빛 놀이터를 하는 금요일이 너무 기대되요" “게임은 시작하기 전부터 긴장이 되는데 놀이는 승부가 없어 맘이 편해요” 우리는 나이가 들기 때문에 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놀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드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지리산산골 토지면 토지초등학교에는 달빛 놀이터라는 전래 놀이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노는 마을학교가 있다. "놀이도 배워야 하는 시대" ▲ 전래놀이를 하는 아이들 어른 아이들이 함께 놀이를 즐기고 있다. ⓒ 마을학교 지난주 일요일 전래놀이를 보급하는 아자 학교 대표 고갑준선생님과 함께 놀이를 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날 아이들과 학부모는 이랑타기, 진놀이, 두부놀이, 안경놀이, 술래잡기, 짝꿍 술래잡기를 배우고 함께 놀았다. 학부모들도 땀을 듬뿍 흘렸고 아이들은 녹초가 되었다. 반나절 동안 놀이에 빠지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신이 나서 놀이에 몰입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시절 놀이는 마을형과 누나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 배웠 다기 보다는 그냥 알게 되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되었다. 하루 종일 이 놀이 저 놀이가 끝이지 않았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부는 때에는 고산댁 담벼락 양지에 모여 소꿉놀이를 했다. 반짝이는 사금파리를 모으고 분유통을 가져다 솥단지를 만들어 밥도 하고 국도 끓여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며 놀다가 지겨워지면 밤톨 같은 돌을 주어 다가 공기놀이를 했다. 공기놀이처럼 기술이 필요한 놀이는 동네 선수들이 다 파악이 되어 있기 마련이어서 승부의 재미를 위해 적당히 편을 만들어 놀았다. 그것도 지치면 다른 놀이를 하면 된다. 시간이 없지 놀이가 부족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놀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고 굴뚝에 연기가 난다. " 종구야! 너네 집 연기 난다" 밥먹으로 가야겠다. "왜 우리 엄마는 밥을 빨리하지" 불평이 따라오기 일수였지만 어쩔 수 없다. 해가 지고 여기저기 동무들 집에 연기가 모락모락 퍼지면 누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아쉬워할 것도 없다. 내일도 놀며 되니까? 우리는 모두 시간 부자였다. 우리의 놀이는 끝이 없었지만 어제 함께 놀던 형과 누나들이 고학년이 되면 우리와 함께 놀아주지 않는 것이 그저 섭섭할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나도 어른이 되었고 놀이는 점점 잊혀 갔다. 그러다가 마을하교를 하게 하면서 옛 놀이를 하나 둘 다시 하게 되었다. 좀 덜 잘 놀기 위해서 잊힌 놀이를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을 초대해서 놀이를 배우고 전래 놀이를 하며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전하는 일이 토지 마을학교가 달빛 놀이터가 1년 동한 한 사업의 전부다. 놀이와 게임의 가장 큰 차이는 승부에 있다고 한다. 게임에는 반드시 승부가 있다.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 놀이에도 승부가 있는 놀이도 있고 없는 놀이도 있지만 승부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이겨도 그만인 것이 놀이다. 술래도 승자가 아니고 숨는 아이도 승자가 아니다. 승자는 없고 재미만 있다. 더구나 놀이는 함께 해야 하고 맨날 나만 이기면 그 친구가 더 이상 놀아주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져주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 맨날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다음판에는 이긴 사람 진사람을 섞어 버리면 어느새 승부는 사라지고 만다. ▲ 잘 놀려면 놀이도 배워야 한다. 놀이를 배우는 아이들과 학부모들 ⓒ 토지달빛놀이터 전래 놀이는 어른도 아이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물론 축구를 아이와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구도 아이와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물다. 왜냐면 체격과 능력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이는 아니다. 달빛 놀이터에서 매번 하는 그물 술래잡기나 대문 술래잡기는 학부모와 유치원생이 함께 뛰어 놀면서 할 수 있다. 특별한 능력도 필요 없다. 아이들이 더 유리한 놀이도 있고 어른들이 배려해야 하는 놀이도 있지만 나이와 성별로 능력으로 인해 차별당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다는 점이 게임과는 다르다. 승부도 없고 오직 재미만 있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어떤 것을 배우게 될까요? "PC게임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놀이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놀이를 하려면 혼자서 할 수 없지만 배려하지 않으면 놀이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내가 힘이 쌔고 강하다고 해서 매번 이기면 친구가 더이상 놀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힘 빼고 배려하면서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놀이입니다. 다음번에 놀아주지 않기 때문에 매번 승리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놀이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 놀이선생님- 우리의 고전 놀이는 두 가지로 보면 된다. 민속놀이는 특정한 날에 하는 대규모 놀이 예 줄다리리 강강수월래 차전놀이 같은 놀이다. 전래놀이는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성적인 놀이다. 예를 소꿉놀이, 재기차기,비석치기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토지 아이들이 게임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내 아이들도 매번 달빛놀이터에 나가서 신나게 놀지만 집에 오면 다시 게임을 한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들도 게임 시간을 포기하고 달빛놀이터에 나가서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전래놀이는 맘이 편해요. 놀기만 하면 되니까요” “게임은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해요 이기면 좋지만 지면 기분 나쁘고 매번 이기는 아이만 이겨서 기분이 별로 에요” 내 아이에게 물어보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 게임은 혼자 또는 팀이 상대방과 경쟁을 통해서 승부를 결루는 것이 대부분이다. 항상 승부가 있고 패자가 있다. 승자는 즐겁고 패자는 유쾌하지 않다. 전래 놀이는 하다 보면 승부도 없고 패자도 없다. 즐겁게 땀 흘리고 놀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렇다고 PC 게임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만한 시간도 없고 공간도 부족하다. ▲ 놀이에 관한 토론을 하는 놀이 선생님과 학부모들 놀이와 게임의 차이 그리고 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 토지달빛놀이터 우리가 하는 것은 한 달에 한 두번이라도 아이들에게 놀시간과 공간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아이들과 더불어 전래 놀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지리산 산골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 놀이의 핵심이라는 생각이다. 오래전엔 놀이가 일의 연장선에 있었다. 놀이를 통해 힘을 키우고 놀이를 통해 협동과 협력을 배웠다. 이를 통해 서로 돕는 품앗이와 두레를 했던 민족이 바로 우리의 민족문화였다. "전래놀이는 인공적인 것이 필요하지 않다” 자본이 필요 없다. 고가의 PC가 없어도 되고 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가능하다" 놀이는 평등하다. 청소년 자살율 1위인 우울한 한국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래 놀이를 통해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마을 공동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과 관계의 미학이 필요한 시기다. 놀이의 반대는 일이 아니라 우울이기 때문이다.
-
5천 원짜리 약속
못먹겠지.. 이번에도.. 지난 5월 햇볕이 따스하고 좋았던 날 점심시간 구례장에 갔다가 무화과 나무를 파는 농부를 만났다. 나무를 판매하는 장사꾼 대부분은 나무를 농부에게 구매해서판다. 근데 이분은 자기가 키운 나무를 팔고있었다. 어떻게아냐고요? 나무 종류가 두 종류뿐이고 파는 자세가 달랐다. 그 농부가 팔던 나무가 무화과 나무였다. 한 그루에 5천 원이었는데 묘목이 튼실하고 좋아보였다. 사실 무화과 나무를 마당에 여러 번 심었다. 모두 얼어 죽거나 열매가 열린 다음 익지 않았다. "이것도 얼어 죽거나 안 익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익을겁니다. 제가 시험을 해보고 파는 것이니 믿어도됩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두 그루를 5천원에 드릴게요. 그리고 만약 죽으면 내년봄에 5천 원 돌려드리거나 다른 묘목을 드리겠습니다" 커피 한 잔 값 이라 속는샘 치고 나무를 받아왔다. 두 그루의 무화과를 주차장옆 양지에 심었다. 마당에 워낙 나무가 많다보니 심을자리가 궁색해 거기 외엔 심을 자리가 없기도 했다. 무화과는 심자마자 쑥쑥크기 시작했다. 무화과는 햇 가지에서 열매가 열리기 때문에 올해 심어도 열매가열린다. 그렇게 심은 나무에 무화과가 콩알만하게열린것이 7월이었다. 곧 대추, 골프공, 그리고 테니스공만하게 커지고 나면 익기 시작하는데 너무 늦어서인지 골프공 사이즈에서 끝났다. 결국 하나도 익지 않았다. 너무늦게 심었으니 내년에는 더 많이 열리고 익기도하겠지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지난 11월 10일 무서리가내렸다. 무화과 잎은 바싹 발라 버렸다. 추위를 이기지못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맛 보기는 어렵겠구나.... 어제 아침출근을 하려고보니 나무 아래 떨어진 무화과 하나를 발견했다. 살펴보니 끝에 붉은 기운이 보인다. 익은 것이다. 무화과를 살짝 벌려보니 안에 붉은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묘목 농부말이 맞았던것이다. 하지만 아직 약속 하나가 더 남았다. 추운 겨울을 이겨 내고 살아남을 것인가? 겨울을 이겨내면 나무가 살고 이겨내지 못하면 뿌리만 살아움이 터서 다시자란다. 아.. 그리고 그농부와 나도 약속하나를 했다. "올해 키워보시고 내년 봄에 만나면 나무상태가 어쩐지이야기 해주세요. 저도 사실 구례에 이 묘목이 잘 크는지 열매는 익는지 궁금 하거든요." 그 묘목 농부를 만나서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은데 무화과 나무는 이 겨울을 무사하게 보낼 수 있을까? 아.. 그리고 무화과는 달콤하니 맛이 좋았다.
-
백두대간 마루금인 운봉고원 수정봉 산행 이야기
남원시 주천면 노치마을(해발 550m)은 예로부터 억새가 많아서 갈재(가재)라 하였다. 백두대간 마루금의 수정봉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 이 마을은 백두대간이 마을의 중앙에 뚫린 돌담 고샅을 통과하며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계를 형성한다. 수정봉을 향해 볼 때 이 마을에서 왼쪽은 섬진강으로, 오른쪽은 낙동강으로 빗물이 흘러간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노거수와 호랑이 조형물, [사진] 이완우) 10월 하순, 노치마을에서 북쪽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을 1.8km 오르는 수정봉(804.7m)을 찾아갔다. 이 마을 앞에는 수령 500년 된 할머니 당산 느티나무 한 그루와 마을 뒤편에 수령 250년 된 할아버지 당산 소나무 4그루가 당당하게 서 있다. 당산 느티나무 아래에는 백두대간과 14 정맥의 조형석이 놓였으며, 호랑이 두 마리의 조형물이 백두대간을 지키고 있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 육송인 당산 소나무는 소나무 가지가 땅에 닿을 듯한 낙락장송으로 운치가 그만이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샘, [사진] 이완우) 노치마을의 공동우물이던 노치샘은 고려시대에는 절터의 청량한 우물이었다고 한다. 이 샘에서 물을 뜨다가 물이 부족해지면 우물 속의 바위틈에 물이 고이게 되는데, 그때는 이 마을의 엄전한 처녀가 정성껏 퍼 올렸다고 한다. 예전에 이 마을은 정월 초하루에 우물을 깨끗이 하고 금줄을 쳤다. 당산제 날 이른 새벽에 정화수를 뜨러 가면 호랑이가 이 샘을 지키다가, 제사의 첫물을 올린 후에 수정봉으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위 수정봉 산기슭 다랑논 흔적, [사진] 이완우) 수정봉을 향하여 한참을 오르면, 한때 다랑논이었을 계단식 지형을 지난다. 다랑논의 수평을 유지하며 아래 논과 윗논의 경계가 되는 논두렁의 석축 흔적이 보인다. 평평한 땅에 소나무와 활엽수 둥치가 크게 자랐다. 빗물에 의존하여 농사짓던 수십 두락의 천수답 다랑논이 숲으로 돌아가는 풍경이었다. 수정봉으로 향하는 백두대간 마루금은 바위들이 우뚝 솟고 토양이 척박한 환경인데, 울창한 소나무 숲의 행렬이 이어진다. 졸참나무 등 활엽수의 세력에 밀려 소나무들이 바람결 강한 산등성이에 군락으로 버티고 있다. (백두대간 수정봉 등산로 보라금풍뎅이, [사진] 이완우)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소나무 뿌리의 거칠게 마른 거죽을 3cm 크기의 보라금풍뎅이가 힘겹게 넘어가고 있다. 보랏빛 금속광택이 빛나는 이 곤충을 거북이 모양으로 보았는지 한자로는 금귀자(金龜子)라고도 한다. 이 곤충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2급 곤충인 소똥구리처럼 소똥을 굴리지 못하지만, 보는 위치와 빛의 강도에 따라 번쩍이는 색깔이 다르게 보여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수정봉은 이 산의 암벽에 수정 광산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어린 시절에 이 산에 올라가 육각 기둥의 수정을 주워서 놀던 추억이 있다고 한다. 수정은 석영의 큰 결정 광물이며 주성분은 이산화규소로 모래와 같은 성분인데, 동굴, 암석의 균열, 단층 지역에서 결정으로 성장한다. 이산화규소가 적정한 공간과 온도 등 조건이 충족되면 기나긴 지질시대를 거쳐 맑고 아름다운 수정 결정이 응축되어 자란다. 백두대간의 맑은 기상을 간직한 수정봉 봉우리의 보라금풍뎅이는 마치 보라색 자수정 같다. (백두대간 수정봉 등산로 구절초, [사진] 이완우) 수정봉으로 향하는 마루금 등산로에 소나무 마른 잎인 가리나무가 떨어져 쌓인 메마른 길섶에 구절초 한 그루가 싱싱하게 꽃을 피웠다. 국화과 산국속의 여러해살이풀로 산과 들에 널리 자생하는 구절초는 뿌리줄기를 땅속으로 뻗어나가며 세력을 키워 무리 지어 피기 마련이다. 구절초꽃은 연한 분홍색으로 피어나서 흰색으로 변하는데, 구절초 군락이 꽃피우는 향연은 가을의 계절에 때 이른 설국(雪國)이 펼쳐진 듯하다. 백두대간 등산로 길섶에 오롯한 꽃 한 송이의 자태로 자신의 그림자를 친구 삼아 피어 있는 한 포기의 구절초는 고고하며 장엄했다. 고독하지만 산뜻한 생명력으로 충실한 이 구절초를 한참 바라보다가 꽃 사진을 설레는 마음으로 찍었다. 산길을 동행하며 지리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류요선(남원시 주천면)씨가 구절초의 그림자까지 사진에 담으라고 충고해 준다. (백두대간 수정봉 바위 능선의 소나무와 고인돌 바위, [사진] 이완우) 수정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의 서쪽 기슭 소나무 숲은 가을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면 송이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구룡폭포로 가는 갈림길을 지난다. 이 구룡폭포 방향의 산줄기는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구룡폭포 방향의 산줄기가 몇 만 년 전에는 원래의 백두대간 마루금이었다. 원래의 백두대간의 마루금이었던 운봉고원의 외륜을 섬진강 지류인 주촌천이 수만 년 동안 파고들어 와서 3km를 하천쟁탈로 낙동강의 수계를 침식하였다. 그 결과로 현재의 수정봉 아래 노치마을에서 정령치 아래 고기삼거리까지의 도로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로서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형성한 특이한 지형이다. 수정봉으로 접근하는 능선길에 고인돌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형태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흡사하여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 바위는 자연적인 토르(Tor)인데 희귀한 형태이다. 지표의 바위가 풍화되면서 기반암 위에 단단한 바위가 쌓인 형태로 탑 모양의 흔들바위 등과 같은 유형이다. (백두대간 수정봉의 무등산 조망 원경, [사진] 이완우) 수정봉 정상에 이르렀다. 이 수정봉의 9부 능선에 삼국시대 축조 추정 테뫼식 노치산성(蘆峙山城)의 돌무더기 흔적이 남아 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의 장엄한 원경은 고리봉에서 덕두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 능선에 가려졌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무등산(1,187m)이 희미하게 보였다. 백두대간의 맑은 기상을 품은 수정봉에서 만난 보라금풍뎅이와 한 포기의 구절초는 오래 기억될 가을 산의 생명력이었다. (백두대간 수정봉 정상의 지리산 서북능선 원경, [사진] 이완우)
-
은목서가 피던 날 생각나는 책 하나...
마당에 향기 가득한 은목서를 보고 있으니 책 한 권이 떠오른다. < 10월 마당에 은목서 향이 가득하다> 정채봉 작가의 멀리 가는 향기라는 책이다. 아주 오래전에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책이 부제목이었다. 구례에 가까운 순천에서 태어난 정채봉님의 책이다. 그는 1998년 간암 선고를 받고 2001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채봉님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시를 보면 기억에 없는 어머니를 만나보는 것이라고 했다. - 정채봉,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 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다음은 멀리가는 향기 책 중 일부다. 어느날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괴로워하던 이씨. "한번 멋지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죽게 되다니…." 그는 이불섶이 흥건히 젖도록 울었다. 지나온 날들이 후회와 원망뿐이었다. 며칠 후, 병원으로부터 오진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갑자기 돌 틈에 피어 있는 꽃 한송이, 공기 한 모금, 주변의 사소한 것들까지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는 그제서야 행복을 제대로 본 것 같았다. 의사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위기의 고비를 넘긴 사람은 대개 당신과 같이 이 순간이 인생의 첫걸음인 것처럼 감격하고 다짐을 새로이 하지요. 허나 그것도 잠시입니다. 며칠 지나면 다시 자기가 무한하게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몰염치해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죽음은 어느날 갑자기 꼭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를 당신의 최고의 날인 동시에 최후의 날인 것처럼 생각하고 사십시오." 일상에 지친 분들이 있다면 정채봉님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
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첫째 마당]
[사진 류요선 : 양귀비꽃]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의 봄날이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남원시 운봉읍에서 인원면으로 이어지는 화수리 소석마을 앞의 24번 도로에서 버스를 내렸다. 바래봉을 목표로 소석마을을 경유하여 덕두산 정상으로 올라 산 능선 줄기를 타고 바래봉으로 향하는 등산길을 잡았다. 소석마을의 어느 집 낮은 돌담 아래 화단에 양귀비가 몇 그루 꽃 피어 있었다. 그 당시 소석마을 집들은 대부분 돌담이었다. 양귀비꽃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집에 사는 할머니가 나와서 박카스를 한 병 건네주었다. 그 집 할아버지는 매우 편찮았다고 한다. 몇 년 후 그 집 앞을 지나갔는데, 그 집은 비어 있었다. [사진 류요선 : 뚝새풀] 1990년대 후반에는 지리산 운봉목장과 초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래봉의 철쭉꽃을 감상하려고 찾아온 관광객들은 24번 도로변에 정차한 관광버스에서 내려서 운봉목장의 정문을 통과하고, 목장과 초원을 가로질러 바래봉으로 올라갔다. 이때 운봉목장은 면양들이 떠났고 이후에 가축 유전자 시험장이 되었다. 목장 가운데로 실개천이 흐르고 바래봉으로 올라가는 왼쪽은 소석마을 쪽인데 철조망이 허술한 곳이 있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운봉목장의 초원에서 독새기풀이라고도 부르는 뚝새풀을 운봉목장 초원의 풍경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 류요선 : 영국병정지의(꼬마붉은열매지의)] 이 시기에 지리산의 한 산장에 머물던 사진작가 한 분이 선태류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는 사진 작품 공모전에 선태류라고 출품하기도 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겨울에 바래봉 능선을 걷다가 눈밭에서 선태류라고 하는 이 돌꽃(?)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곳은 양떼가 다니던 길의 옆 비탈에 산사태가 조금 생겼고 그곳의 흙 표면에 이 돌꽃들이 있어서 오전에 사진을 찍었다. 능선 반대편에도 이런 꽃들이 있어서 그쪽은 오후에 사진을 찍었다. 그 당시에 사진작가들은 이것을 선태류로서 이끼 종류로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붉은색의 자실체가 끝에 달린 지의류의 한 종류로서 영국병정지의(꼬마붉은열매지의)이다. [사진 류요선 : 붓꽃] 류요선 사진작가는 지리산둘레길이 생기기 10여 년 전부터, 훗날 지리산둘레길이 될 산길을 혼자 걸었다. 어느 봄날 남원시 산내면의 실상사에서 출발하여 등구재 고개를 찾아가며 상황마을을 지나 산길을 걸을 때였다. 그늘진 산기슭의 한 무덤 벌안에 붓꽃이 피어있었다. 그 무덤은 후손이 없는지 또는 관리를 안 하는지 봉분에도 풀이 무성하였다. 해 질 무렵 무덤가에 무리지어 핀 아름다운 붓꽃을 사진에 담으며 마음은 쓸쓸하기도 하였다. 경남 함양군 삼정산의 삼불주암을 찾아가는 산길은 이웃하는 여러 암자를 차례로 답사할 수 있는 지리산 암자 순례길 코스에 속한다. 이 삼정산 자락의 한 골짜기는 견성골이라고 하는데, 까마귀나 까치도 불경을 외우며 날아간다고 한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에서부터 걸어서 삼불주암을 찾아갔다. 삼불주암은 산 아래 마을에서 2시간은 걸어야 도착할 거리의 산속에 있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에 자리한 비구니 참선 도량이었다. 이 사찰 뜨락을 지나 정갈한 텃밭에는 금낭화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었다. 금낭화 군락을 사진에 담은 지 20여 년 후 이 사찰은 비구의 도량이 되었다. 지금도 금낭화가 봄날에 피어나는지 삼불주암을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사진 류요선 : 금낭화]
-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
돈 없는 노인에게 긴 수명이란 재앙과 같다는 말이 있다. 돈이 없이 오래 사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수촌의 사람들이 부자는 아니었다. 지난 이틀간 넷플렉스에서 장수에 관한 다큐를 봤다. 이른바 블루존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관한 다큐였다.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 유명한 장수촌은 이런 정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다 알만한 곳이다. 지중해식 식단의 이탈리아의 섬마을 그리스의 이카리아 그리고 일본의 오끼나와 같은 곳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장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장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하지만 장수촌만의 특별한 것은 없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음식,운동, 커뮤니티, 일, 기후 같은 것들 말이다. 한국에서 가장 강조하는 돈은 없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이 다큐에서 블루존 지역의 특징 중 기억나는 것을 적어봤다. 경사가 있는 지역이나 활동이 많은 곳 지역 음식을 먹는 곳 운동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운동이 되는 곳 농사나 정원 같은 정기적이 활동 채식을 하거나 육류 소비가 적은 곳 즉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외롭지 않은 것이었다. 외로움은 수명을 15년 정도 단축 시킨다고 한다. 블루존에 장수 노인들은 특징은 즐겁게 산다는 것이다. 지역에 노인들이 참여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고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요양원이었다. 요양원은 수명을 2-5년 단축 시킨다고 한다. 이 지역의 노인들 대부분 치매 환자가 없다. 치매 환자가 없는 이유는 스트레스가 적거나 없기 때문이며 지역의 커뮤니티를 통해 항상 이야기 하고 웃고 즐기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걱정이 적다는 것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 오지도 않은 걱정 때문에 하루하루를 스트레스로 시작해서 스트레스로 끝을 맺는다. 스트레스는 모두가 알듯이 만병의 근원이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보다 스트레스가 없는 것 보다 좋지 않으며 어떤 장수에 도움이 되는 제품도 외로움이 없는 삶보다 좋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장수촌의 사람들은 소박하게 먹고 주변 사람들과 즐기며 지역의 음식으로 하루의 식사를 직접 준비한다. 90세가 되어도 하루에 3-4시간은 일을 한다. 여기서 일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활동 정원 가꾸기, 바느질, 음식 만들기, 가벼운 운동을 말한다. 내가 사는 파도리에도 90세 가까운 노인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 지금도 여전히 텃밭에서 일을 한다. 우리집 뒤편에서 농사 짓은 노인 3명을 알고 있는데 이들 모두 80대 후반이다. 모두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농사를 짓고 일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장수촌을 스스로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역의 음식으로 소박하게 먹고 지역 사람들과 다정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매일 아니면 주 2-3회 만나서 즐거운 이야기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놀거나 하면 된다. 이건 생각해 보면 지금 시골의 노인정이 하는 일이다. 함께 즐겁게 이야기하고 놀고 수다를 떨고… 하는 일 말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블루존의 사람들은 노인들만 함께 노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논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노인정엔 노인들만 있고 젊은 사람들은 없다. 하루 종일 노인은 노인과 이야기한다. 여자 노인은 여자 노인과 남자 노인은 남자 노인과말이다. 활기가 있기 어렵다. 이 다큐를 보기 전에 그리스의 섬마을 이카리아의 장수촌에 대한 댜큐를 본적이 있다. 이 동네의 100세 노인들은 아침에 일어나 2시간 정도 정원 일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논다. 대부분 노인과 놀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젊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매주 금요일엔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놀고 한 달에 한 번 온 14세에서 100세 노인까지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새벽까지 즐기며 논다. 생각만 해도 즐거울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이들은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니까.
-
-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
-
8초 인류
-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
8초 인류
-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
- 이야기
- 지리산인 칼럼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
-
다섯번째 산
-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
다섯번째 산
-
-
가여워 하는 마음
-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
- 이야기
- 지리산인 칼럼
-
가여워 하는 마음
실시간 이야기 기사
-
-
[무료나눔] 동화출판공사 세계 파퓰러 뮤직 대전집 LP판 60장
- [무료나눔] 동화출판공사 세계 파퓰러 뮤직 대전집 LP판 60장 턴테이블에 올려서 듣는 LP판 어딘가에서 잘 쓰여졌으면 좋겠네요. 가장 필요한 분에게 드리고 싶네요. 필요하신 분 문자로 연락주세요~~ 010-구사오삼-9412 (인스타 @kwangseok_foto)
-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
[무료나눔] 동화출판공사 세계 파퓰러 뮤직 대전집 LP판 60장
-
-
나는 개가 정말 싫어
- 저자 이푸른은 학교가 다니기 싫어 때려 치웠다고 한다. 일찌감치! 아마도 초딩때? 우리 막내도 아침 8시에 집에서 나가면 10분이면 가는 학교를 9시 넘어 맨날 지각했단다. 나중에 선생이 말해줘서 알았다. 무슨 선생이 엄마가 찾아가기 전까지 연락도 안해준단 말인가. 왜 그랬냐니, 산으로 돌아가서 그랬단다. 암튼 우리 막내도 학교 일찌감치 때려치고 이 책 저자 이푸른같이 홈스쿨링을 했으면 어땠을까? 이푸른의 홈스쿨링 시간표는 운동 영어(수학) 책읽기가 끝이다. 요일마다 운동의 종류가 다르고 영어는 수학과 하루씩 교대고 책읽기는 매일이다. 아빠는 집에서 애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엄마는 직장이 따로 있다. 출판업? 개에게 시쿤둥하던 아빠가 개에게 관심과 정을 주는 이야기다. 챕터마다 제목이 재미있다. 유명한 영화나 책, 드라마의 패러디. 이푸른의 친구가 그린 그림도 재밌다. 그냥 제목보고 만화만 봐도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나는 수준이 동화책이다. 노벨수상작가 아니에르노의 '세월'을 읽다가 이 책을 순독(순식간에 완독)했다. 그녀의 세월과 내 세월이 같을 수는 없겠지. 난 그녀같이 부지런하지 않아 매 순간을 글로 남기지 못한다. 이렇게 내 세월도 가고 끝이 보인다. 앞으로 5-10년 나의 종말이 궁금하다. 사실 나도 개가 정말 싫다. 고양이도 싫다. 다 싫다. 그냥 어쩌다 우리집에 갸들과 살게 되어 같이 산다. 그나저나 우리개 호두는 술찌끼먹고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몸이 큰 두부는 비틀거리면서 기분이 좋아 이리저리 개기는데 몸이 작고 털만 많은 호두는 뻗었다. 제발 죽지만 말아다오. 벌써 니가 눈에 밟힌다. 어흑, 엉엉
-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
나는 개가 정말 싫어
-
-
나혜석의 고백
- 나혜석은 (1897-1945)은 소위 '신여성'이라 불리는 여자들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내 또래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겠다. 그녀는 비구니가 되어 절에 들어간 그녀의 절친 김일엽의 이야기만큼이나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그 시대 여성들의 운명(이말은 싫어하지만)이라고 해야 할까? 나혜석이 화가이며 글도 쓰고 세대를 앞서간 진보적인 여성이라 알고 있지만, 그녀가 쓴 글이나 그림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이 책은 나혜석이 여기저기 발표한 글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여자도 사람이외다"인 것처럼 그녀는 여자사람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고 경험한 것을 용감하게 발표했다. 도도히 흐르는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한마리 연어처럼 강물에서 튀어 올랐다. 튀어올라 다시 물을 만나지 못한 고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처럼 그녀의 인생도 그러했다. 만일 나혜석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원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지금의 세상은 나혜석 같은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자도 사람이라고 외친 절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 )도 사람이다라고 괄호에 넣을 수 있는 명사는 더욱 많아졌는지 모른다. 이조시대로 끝난 것 같은 계급사회는 겉모양만 달라졌을 뿐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너와 나를 구분하는 차별화된 사회 속에서 다시금 나혜석의 절규를 듣는다.
-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
나혜석의 고백
-
-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요즘 책이 재미없다. 재미있는 책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이상해진 걸까? 아마도 후자. 이책 저책 끝까지 읽지 않고 반납만 반복했다. 이 책도 프롤로그를 읽으니 바로 관심에서 멀어졌다. 오십먹은 싱글여자가 부모와 같이 농사를 시작한 글이니 뭐가 재미있겠나 말이다. 난 이미 오십이 지났고 농사도 흉내를 내봤으니 말이다. 게다가 부모랑 산다니... 반납해야겠어 다시 뒤쪽을 들췄는데 '추간판 탈출증'이라 수술하는 장면이다. 얼마나 아팠을지 읽는 내가 끔찍했다. 그리고 그다음 고양이와 같이 사는 이야기. 고양이가 치매들면 똥오줌 못가리고 아무데나 싼다는 것에 깜놀. 정말 큰일이다. 우리 초리가 치매 걸리면 어쩌지? 아무래도 나보다 먼저 걸리지 않을까? 같이 걸리면? 이 저자는 고양이 사랑이 지극 정성이라 그 힘든 일을 다 해낸다. 난? 최근 김양미 작가는 개 병원비가 오백만원 나와서 걱정하는 글을 페북에 올렸었다. 오백만원 이라니... 고양이나 개 요양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어쩌지? 생각 안해 봤던 건 아니지만 이 어려운 숙제를 이 책은 나에게 남겨주었땅.
-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
그 남자네 집
-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박완서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 이분의 책을 빌려 본 적이 있다. 제목은 기억이 안나지만 그 때는 별 감흥이 없어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책은 권고로 읽게 되었는데 이 번엔 달랐다. 아마도 나도 그녀의 나이가 되어 그런건 아닐까. 역시 사람은 세월따라 변하고 사람도 뭐도 단정지어 말하는 건 위험하다. 박완서의 '첫사랑'에 대한 글인데 그녀의 딸 호원숙의 글을 읽어보면 소설이 거의 사실에 가깝다. 유명한 ㄱ 소설가도 사실을 거의 소설로 적어 고소에 휘말린 적도 있고, ㄱㅁㅈ ㄱㄴㄱ 소설도 거의 사실 폭로에 가까워 세간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글을 쓰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누구에게도 말할 지 못하는 마음 속의 짐이나 고민을 풀어놓는 해소제 역활을 하기 때문이다. '화가나면 일기를 쓰세요'라고 하지만 화가 나서 쓴 일기를 다 찢어버린 적도 있다. 매일 어떤 이유로 화가 났는데 아직도 화가 날 때는 같은 이유로 화가 난다. 결국 나의 문제일 것이다. 암튼 '첫사랑' 참 아름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새삼들었다. 그 행위가 아니라 그 말 자체가 말이다. '첫' 과 '사랑'의 조합! 내가 쓴다면 제목을 '첫사랑'이라고 고전적이면서도 도발적이면서도 촌스러우면서도 생동감 있고 오로지 순수한 이 어휘를 그대로 쓰고 싶다. 암튼 작가 박완서는 40에 시작해 그녀 일생의 순간 순간을 많은 책에 다 풀어놓았다. 그의 글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귀한 기록물이 되었다.
-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
그 남자네 집
-
-
지금 왜 고농서인가
- 지금 왜 고농서인가 이선재(한겨레생명평화농장 이사) 오늘 천하의 일 가운데 하루라도 빠뜨릴 수 없는 것을 찾는다면 무엇이 으뜸인가? 곡식이다! 시공을 통틀어 신분의 귀천과 지식의 다과에 관계 없이 하루라도 몰라서는 안 되는 것을 찾는다면 무엇이 으뜸인가? 농사다! <임원경제지> 지금 왜 고농서인가? 트랙터같은 힘센 기계와 효과 좋은 비료, 농약이 넘치는 이 시대에 고농서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눈앞의 현실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그 영향의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무도 기후위기가 가져올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는 없다. 인류는 기후위기의 쓰나미를 물리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있다. 물론 그 책임의 대부분은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 넷플릭스 영화 ‘돈룩업’은 이것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더욱 서글픈 사실은 기후위기의 고통은 저 기득권자들이 아니라 대다수 민중, 오랜 세월 피압박의 세월을 견뎌온 저개발 국가의 백성들이 짊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미래의 대안을 찾아 피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위기를 불러온 화석 에너지 문명을 끝내고 지구를 살리는 방법, 미래적 삶의 철학을 세우기 위한 치열한 모색과 성찰의 행진이 이미 오래 전부터 전개되고 있다. 다양한 방면의 노력들이고 그러기에 얼핏 보기에 모두 다르게 보이지만 생태주의라는 큰 흐름 안에 있다. 퍼머컬처가 그중 하나이고 개인적으로는 오늘날 가장 탁월한 생태주의 철학이자 방법론이라고 믿는다. 화석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사람의 노동력 역시 적게 사용하면서 효율적으로 생활하기 위한 원칙과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의 그 어떤 이론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듯이 퍼머컬처만으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과 다른 동양의 생활방식과 자연환경, 작물의 다름에 기인한 많은 사안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세부적인 대안들을 연구하고 현실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퍼머컬처가 농사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기계와 비닐, 농약과 비료에 의존하지 않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다. 고농서가 우리에게 유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전통농업은 이 땅에서 아주 오랜 세월 실천해 온 농사법이다. 옛 선인들은 오늘의 농사꾼보다 훨씬 더 많이 고민하고 실험하고 자연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비료와 농약 같은 편리한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직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한 해 한 해 새롭게 바꾸고 대를 이어 발전시킨 것이 전통농업이고 그것이 고농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완벽할 수 없고 일부 내용은 과학이 발달한 현재의 지식으로 판단했을 때 황당한 경우조차 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원들을 고려한다면 전통농업에만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땀과 눈물이 깊이 밴 고농서의 내용은 곱씹을수록 참맛이 우러나는 지혜의 샘이다. 나는 생태적 삶을 살고자 한다면 고농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
지금 왜 고농서인가
-
-
푸른 안개
-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한 번 불안해지기 시작하면 그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왜 또 그러지.. 그도 그럴 것이 요 며칠 불온한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가 느끼는 불안이라는 것은 대충 이랬다. 갑자기 몸이 가렵고 차 시동이 한 번에 걸리지 않거나 집 앞 현관을 나올 때 왼발이 먼저 나온다거나 하는 것 들이다.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면 재수가 없단 말이지.. 그는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오늘 그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거래처 김 씨와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그와 오랜 거래를 해온 사람인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이젠 가장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는 김 씨를 만나러 가는 날엔 항상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오늘 그가 불안한 모든 것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가 어떻게 된 것일까? 전화를 해볼까? 그러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으면 어쩌지... 그는 불안한 마음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와 만나기로 한 무진시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리는 곳이다. 약속까지는 아직 넉넉하게 남았다. 여유가 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만은 여유가 없었다. 국도를 타다가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는 출근하는 차들로 분주했다. 인터체인지를 통과할 때쯤 전화가 울렸다. 휴대폰을 잡으려고 하는데 휴대폰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있지..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휴대폰이 보이지 않는다. 여보 일어나요.. 여보..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 꿈이었구나..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 왜 그래요. 아니.. 나쁜 꿈을 꾸었어. 꿈이라 다행이야.. 오늘 김사장이랑 만나기로 하지 않았어요. 그랬지. 서둘러 그는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몸이 가렵지도 않았고 왼발부터 나가지도 않았다. 차 시동도 한 번에 걸렸다. 그의 마음은 불안하지 않았다. 그는 차 안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고속도로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 주유소에 기름도 채웠다.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주유한 금액을 문자를 확인하려고 보니 김 씨에게 문자가 왔다. 무슨 일이 있나... 부고.. 부고.. 김**님이 오늘 아침에 소천 하셨다는 문자였다. 가슴이 쓰라렸다. 고속도로에 오르니 안개가 가득했다. 오늘 안개는 유난하군... 푸른색이라니..
-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
푸른 안개
-
-
지리산의 아우라를 보려면 이곳을 오르세요!
- 구례군 산동면과 남원시 산내면 사이의 백두대간 능선에 만복대(萬福臺, 1,433m)가 둥두렷이 솟아 있다. 만복대에서 달궁계곡을 지나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산동면과 산내면의 행정 구역 경계는 산자락을 눈으로 가늠해야 한다. 이 지역에서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계가 된다. 구례군 산동면은 백두대간 마루금을 넘어서 달궁계곡으로 지역을 뻗쳐 낙동강 수계를 형성한다. 구례 상위마을 산수유 열매,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 마루금 능선길에 이곳 만복대를 오르는 경로로 으뜸은 정령치에서 남쪽으로 2.0km의 능선길이다. 남원시 산내면에서 구례군 산동면으로 넘어가는 지리산 주능선 관통 도로인 861번 지방도로의 성삼재가 있다. 성삼재에서 북쪽으로 작은고리봉을 지나 묘봉치를 거치는 5.5km 능선길이 만복대에 이르는 버금 경로이다. 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에서 북동쪽으로 계곡을 타고 3.0km 올라서 묘봉치에 이르고, 묘봉치에서 2.2km 능선길로 만복대에 이르는 경로도 있다. 만복대 조망, [사진, 이완우] 지리산국립공원은 가을 산불조심 기간을 설정하여,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만복대에 접근하는 탐방로도 통행이 금지되는 구간이다. 지난 14일 늦가을 아침에 산수유 열매가 붉게 물든 산동면 상위마을에서 묘봉치를 거쳐서 습기 머금은 산길의 서릿발을 밟으며 만복대에 올랐다. 너덜지대를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들리는 탐방로는 낙엽이 두껍게 쌓여 미끄럽기도 하였다. 조릿대 군락지, 너덜지대 바윗길과 낙엽 쌓인 푹신한 흙길을 번갈아 지나간다. 해발고도 700m 지점에 이르니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휴게 쉼터와 나무 데크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계곡 물소리가 그친 곳부터 가파른 지형을 탐방로는 나선형으로 등산로 경사를 완화하면서 한 걸음씩 올라간다. 만복대 근경, [사진, 이완우] 묘봉치에 올라서니 만복대를 향하는 능선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듭하며 걷기에 적당하다. 만복대 정상이 멀리서 보인다. 둥두렷한 산봉우리가 너그럽다. 만복대 정상 아래 동남쪽으로 펼쳐진 아늑한 지형의 작은 골짜기가 도장골이다. '도장'은 향토적인 어휘로 곡식을 저장하는 광이나 창고인데 주택의 안방에 붙어 있기도 했다. 지리산 만복대는 지리산에서 복과 덕을 가장 많이 간직한 포근한 곳이라고 한다. 이 만복대 바로 아래에 아늑한 지형의 도장골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상으로도 잘 어울린다. 만복대 정상, [사진, 이완우] 만복대 정상에서는 반야봉을 가장 가깝게 볼 수 있고, 만복대 남쪽의 노고단에서 동쪽의 천왕봉까지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노고단 서쪽으로 차일봉(종석대)의 양쪽 봉우리가 마치 기와집 지붕의 용마루 양쪽의 치미처럼 보인다. 만복대에서 바로 앞에서 뱀사골까지 심마니 능선을 뻗치며 자태가 늠름한 반야봉과 중봉은 지리산 주능선 조망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노고단에서 반야봉과 만복대의 사이로 내려오면서 열린 달궁계곡은 뱀사골과 마천면까지 이어지는 큰 골짜기는 백두대간의 종점인 지리산 주능선의 장엄한 아우라와 지체 구조를 더 돋보이게 한다. 노고단과 차일봉 조망, [사진, 이완우] 만복대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형세가 가파른데, 노고단과 반야봉은 봉우리가 둥두렷이 두텁고 평온하다. 아마 노고단과 반야봉이 천왕봉보다는 더 오래 풍화된 지형으로 보인다. 만복대는 노고단에서 달궁계곡을 따라 함양군 마천면의 임천까지 펼쳐진 웅장한 골짜기 위로 반야봉을 중심에 두고 서쪽 최고봉인 노고단에서 지리산의 정상인 천왕봉까지 45km의 지리산 주능선이 함께 조망되는 감동적인 전망대 역할을 한다. 달궁계곡과 천왕봉 조망, [사진, 이완우] 만복대와 반야봉 사이의 달궁계곡은 늦가을의 마른 갈색 단풍의 색채와 정적에 잠겨 있다. 달궁계곡은 반달가슴곰의 보금자리로 보호되고 있다. 만복대 정상 가까이에 형성된 습지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만복대의 기슭에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들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으며 지리산 생태계의 소중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만복대에서 머무르면서 확인한 지리산의 지리산다운 진정한 아우라의 감동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늦은 가을 차가운 바람에 마른 억새의 꽃이삭이 하얗게 물결치는 스산한 정서를 뒤로하고 만복대에서 내려왔다. 봄 여름의 생명력이 피어나는 계절에 다시 만복대를 찾아서 생명력 넘치게 푸른 지리산의 풍요로움에 안겨보리라 다짐하였다. 운봉고원 조망, [사진, 이완우] 만복대에 올라온 경로를 다시 되돌아 묘봉치를 거쳐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로 내려왔다. 묘봉치 아래 계곡에서 상위마을에 가까워지니 계곡을 따라서 계곡 따라서 검정 호스가 줄을 지어 내려온다. 봄에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아랫마을 주민들의 설비였다. 경사진 지형에 다랑논 흔적이 계속 이어지고 경작을 포기한 논바닥 평지에는 산수유와 차나무 등이 자라고 있었다. 만복대에서 상위마을까지 내려오는 5.2km 산길은 반야봉을 중심으로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의 장엄한 감동이 진한 여운으로 계속 남았다. 봄이면 노란 꽃으로 지리산 자락을 물들였던 산수유나무마다 붉은 열매가 가을 오후의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구례 상위마을 다랑논 흔적, [사진, 이완우]
-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
지리산의 아우라를 보려면 이곳을 오르세요!
-
-
진흥왕의 손자가 지리산으로 피신한 사연은?
-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 있는 삼정산(三丁山, 三政山)[1,156m] 정상의 세 봉우리는 상무주암, 문수암과 삼불주암(三佛住庵)을 거느리고 있다. 가운데 문수암에서는 지리산 천왕봉이 암자 앞의 산줄기에 막혀서 보이지 않고, 상무주암과 삼불주암에서는 동남쪽으로 10km 직선거리의 지리산 천왕봉과 중봉, 하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리산 삼불주암 천왕봉 전망, [사진, 이완우] 이들 세 암자는 지리산 7암자 코스의 셋째, 넷째와 다섯째 암자로서 지리산 칠암자 코스의 중심 지역에 있다. 삼정산의 남쪽으로 지리산의 도솔암과 영원사가 지리산의 주능선에 가깝게 높은 위치에 있고, 북쪽에 약수암과 실상사가 지리산 북쪽의 람천의 흐름을 지켜보며 지리산 7암자 코스의 시작과 마무리 지점을 이룬다. 11월 중순의 늦가을 지리산 문수암을 거쳐 삼불사 찾아가는 산길은 낙엽 밟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 암자는 도마마을에서 2시간을 걸어와야 하므로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조용한 암자이다. 법당에는 ‘삼불주(三佛住)’ 편액이 한가롭게 걸려 있을 뿐이고, 산신각과 요사채 등 사찰 전각들은 황토와 돌을 섞은 돌담 벽으로 이루어져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이다. 지리산 삼불주암 편액, [사진, 이완우] 법당 옆에는 3층 석탑이 서 있는데, 개성적인 양식이 눈에 띈다. 석탑의 1층과 2층의 탑신 네 면에는 불상, 사천왕상과 신장상 등의 부조가 있다. 1층 탑신의 전후 면에 있는 이불병좌상(二佛倂坐像)은 흔하지 않은 양식이고, 옥개석에 기왓골을 표현한 양식 기법은 거의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최근에 조성한 석탑이지만 미래의 석탑 양식을 지향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리산 풍경을 수십 년간 사진 찍어왔던 류요선(남원시 이백면 강촌마을)씨는 20여 년 전에 이곳 삼불주암이 비구니 참선 도량이었을 때 실상사에서 약수암과 도마마을을 거쳐서 찾아왔다고 말한다. 그가 이 암자에 도착한 봄날 늦은 오후에 뜨락 옆의 정갈한 텃밭에는 금낭화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었다며, 그때 찍은 금낭화 사진을 보여주었다. 지리산 삼불주암 금낭화(1995년 봄) [사진, 류요선] 이곳 삼불주암의 주지인 효성(曉星) 스님이 류요선 씨에 향기로운 차 몇 잔을 여유롭게 권하였다. 스님은 지리산 천왕봉 너머로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경은 참으로 맑고 깨끗하여 인상적이며, 비 내린 후 산자락에 피어나는 운무는 무념무상의 경지를 표현하는 듯하다고 했다. 밤하늘의 별빛과 고요한 달빛에 환한 도량은 또 얼마나 고적하며 평온하게 아름다울까? 류요선 씨가 효성 스님에게 지리산 풍경 사진 몇 장을 우편으로 보내주기로 약속한다. 스님은 메모지에 암자 아래의 마천면 도마마을 한 집 주소를 써서 건네준다. 이곳 암자에 오는 택배나 우편물은 아랫마을의 한 집에서 수령하여 머물러 있다가, 마을 주민이 이 암자에 올라올 일이 있을 때 가져다준다고 한다. 지리산 암자의 시간은 속세와는 다르게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지리산 삼불주암 법당 벽면 채반, [사진, 이완우] 이곳 삼불주암으로 도마마을에서 올라오는 삼정산 자락이 견성(見性) 골이다. 이 골짜기에는 “까마귀나 까치도 경(經)을 외우며 간다”는 속담이 예로부터 전해온다. 까마귀나 까치도 경(經)을 외우며 간다. 수수께끼 같은 이 속담은 함축적이며 흥미롭다. 이 속담은 이 지역에 전승하는 설화를 반영하고 있는데, 이 지역에 불교 활동과 민간에 대한 영향력이 그만큼 컸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7세기 중반인 신라 무열왕 때에 마적 대사가 이 지역 하천인 용유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삼정산에 문수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중기에는 인오(印悟, 1548-1623) 대사가 이 지역 지리산 영원사에서 수행할 때 함양 장터를 다니며 백성들과 소통하고 교화하면서 함께 산을 넘던 고개(오도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지리산 삼불주암 삼층 석탑, [사진, 이완우]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삼정산 아래 기슭인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는 군자사지(君子寺址)가 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 567~632, 재위 579~632)이 국왕으로 즉위하기 이전 10살의 어린 나이에 이곳에 피신하여 3년을 지냈다고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진흥왕(眞興王 534~576, 재위 540~576)이 승하하자, 진흥왕의 둘째 왕자가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으로 즉위하였다. 진흥왕의 태자인 동륜태자(銅輪太子, ? ~572)의 어린 아들(후대 진평왕)은 숙부가 왕위를 잇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국경 지대인 지리산 자락의 함양의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진지왕이 즉위 3년만에 화백회의에 의해 폐위되고, 진평왕이 13세의 나이로 신라 국왕으로 즉위하여 18세부터 친정하였다. 진평왕 어린 시절의 함양 지리산 자락 피신과 3년 후 화백회의에 의한 진평왕 즉위 등의 역사적 사건은 당시 신라 왕실의 왕권을 향한 권력 투쟁을 암시한다. 지리산 삼불주암 삼층 석탑 조형물, [사진, 이완우] 국왕이 즉위하기 전에 잠룡(潛龍) 신분으로 거주한 저택을 잠저(潛邸)라고 한다. 진평왕은 어린 시절에 거처했던 함양 지리산 자락의 잠저에 군자사(君子寺)를 건립했다. 이곳 군자사는 조선 시대에 지리산을 유산(遊山)하는 관리나 선비들이 머물렀다가 하동암을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주요 거점이었다. 진평왕이 어린 시절에 이곳 지리산 자락에 머물면서 아들 낳기를 지리산 산신에게 기원하여서 이곳 지명을 군자리(君子里)라고 한다는 지명 설화가 전해오는데, 진평왕의 아들은 기록에 나오지 않는다. 선덕여왕과 선화공주가 진평왕의 딸이며,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진평왕의 외손주이다. 진평왕이 이 지역에 세운 군자사의 사찰 이름에서 군자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진평왕은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王卽佛) 관념을 확립하였으며, 자신의 직계 가족을 부처의 집안과 동일시하였다. 진평왕은 다양한 방법으로 왕권을 강화하였으며 정치 제도를 정비하고 활발한 외교 정책을 펼쳐서 진흥왕에 이어서 신라의 삼국 통일 기틀을 다졌다. 지리산 삼불주암 삼층 석탑 부조, [사진, 이완우] 군자사는 진평왕이 어린 시절을 보내며 국왕으로 즉위하기 위해 때를 기다렸던 의미 있는 장소로서 진평왕의 53년 재위 기간에 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왕명에 의해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해 지리산을 오르내렸을 행렬에서 “까마귀나 까치도 경(經)을 외우며 간다”는 이 지역의 속담이 발생하였을 수 있다. 이 속담 속의 까마귀나 까치에서 같은 옷을 입은 단체가 줄지어 산길을 이동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지리산 삼불주암에서 지리산의 천왕봉과 중봉, 하봉을 바라보고, 시선을 돌려 산 아래 견성골 산자락을 찾아본다.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 능선, 골짜기와 계곡에는 역사와 설화들이 씨줄과 날줄로 잘 짜여 천오백 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오후의 산길은 낙엽이 밟히며 버석거리는 소리와 조릿대 군락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서걱대는 소리로 가득하였다. 지리산 삼불주암 흙집 산신각, [사진, 이완우]
-
- 이야기
- 지리산 생태 이야기
-
진흥왕의 손자가 지리산으로 피신한 사연은?
-
-
지리산 계곡 바위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풍경
- [대성골의 바위 모임. 1998. 4. 18.] 하동 화개면의 대성골 대성교의 콘크리트 다리 난간에서 계곡을 바라보았다. 녹음이 짙은 계곡에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커다란 바위들이 회의하는 듯 오개오개 둘러앉아 있었다. [심원마을 용소 계곡. 1997년 5월] 심원 마을 용소 계곡의 맑은 물과 화사한 진달래꽃. 1997년 7월 29일. 1시간에 149mm의 폭우가 내려 이 계곡의 지형이 번하였고, 이런 아름다운 풍경은 다시 만날 수 없다. [벽소령 남쪽의 쿵쿵소. 1997년 봄] 벽소령 남쪽 심정 마을로 가기 전의 쿵쿵소이다. 폭포 소리가 쿵쿵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바위 옆과 아래에 진달래꽃이 아직 활짝 피지 않았다. 햇빛을 잘 받은 곳은 꽃이 잘 피었고 그늘진 곳은 아직 덜 피었다. 그때 심정 마을에서 민박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한 2~3일 더 기다리면 진달래꽃이 다 필 텐데, 수중에 돈도 떨어지고 더 있을 수가 없었다.
-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
지리산 계곡 바위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