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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공원을 관광지로 만든 주범(성삼재·정령치도로)
    지리산 이야기 (3) 국립공원을 관광지로 만든 주범(성삼재·정령치도로) 도심처럼 국립공원도 교통체증·매연·소음 '몸살' 배혜원 시민기자(지리산필름 대표)·윤주옥 시민기자(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대표) (webmaster@idomin.com) 2021년 05월 03일 월요일 서울올림픽 맞춰 관광도로 건설 후 연간 차량 약 45만 대 운행…2007년 대도시급 미세먼지 측정 당장 아스팔트포장 못 뜯는다면 주민 운영 친환경차량 이용하고 일반차량은 통제하는 도로 돼야 2003년 가을, 나는 성삼재도로를 처음 걸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초등학생부터 60대 어른까지 50명 정도가 함께였다. 천은사에서부터 걷기 시작한 우리는 심한 굴곡과 급경사지를 달리는 차량이 내뿜는 매연과 타이어 타는 냄새, 소음에 아찔했던 기억이 있다. 천은사에서 출발해 약 10㎞를 걸어 올라간 우리는 달궁에서 약 9㎞를 걸어 올라온 분들과 성삼재휴게소에서 만나 지리산에 대한 마음, 성삼재도로를 걸으면서 느낀 점 등을 이야기했다. 다시는 걷고 싶지 않다는 분도 있었고, 달리는 차량으로 위험했지만 걸을 만했다는 분도 있었다. 2003년 이후로 나는 1년에 한 번 이상은 성삼재도로를 걷는다. 성삼재도로를 걸어서 오르자는 캠페인을 할 때도 있었고, 성삼재도로 주변에 사는 나무와 풀을 조사하려고 또는 지리산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성삼재도로가 다른 지역의 도로와는 어떻게 다른지 조사하기 위해서였기도 했다. 내가 성삼재도로를 걷는다고 하면, 첫 번째 반응은 '몸에 안 좋을 텐데 뭐 하러 걷느냐?'였다. 그럴 때면 생각한다. 맞다, 성삼재도로를 걷는 것은 몸에 좋지 않다. 그러면 이곳이 삶의 터전인 반달가슴곰은, 히어리는, 쇠딱따구리는, 그들 모두는 얼마나 힘겨울까. 국립공원공단이 2007년에 발간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성삼재도로 주변의 대기질 농도가 도로에서 멀리 떨어진 노고단대피소보다 전반적으로 짙은 농도를 나타냈다. 가장 심각한 항목은 미세먼지였는데, 2007년 10월 26일(금)∼28일(일) 조사 시 성삼재휴게소는 대기환경기준을 초과했고, 대도시 지역(서울시 월평균 60㎍/㎥)의 평균 농도보다 높은 101㎍/㎥을 나타냈다. 소음 측정 결과도 성삼재도로 주변은 주간 평균 58.6∼65.3㏈로 국립공원이라는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면 낮은 수치가 아니다. 내가 걸으면서 느꼈던 구토와 어지럼증은 상상이 아니라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하늘에서 본 성삼재도로. /김인호 시민기자 자동차 문화가 보편화된 세상에서 성삼재도로를 달려 지리산국립공원에 오르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1100m 깊고 높은 곳에, 그것도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을 달리는 도로가 어떻게 생길 수 있었을까? 구례 천은사에서 남원시 산내면을 연결하는 성삼재도로는 1985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차관을 포함한 약 68억 원 예산으로, 1988년 서울올림픽을 보기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지리산국립공원을 편하게 관광하도록 건설됐다고 한다. 성삼재도로와 함께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와 산내면 달궁을 연결하는 정령치도로를 건설하고, 1991년에는 성삼재주차장을, 1993년에는 정령치주차장을 만들면서 지리산국립공원은 이리저리 잘리고 파헤쳐졌다. 성삼재·정령치도로로 야생동물 이동통로가 단절되면서 연간 100건 정도의 로드킬이 발생하고, 도로를 건설하면서 심은 외래 수종들로 도로 주변 생태계와 경관은 변화하고 있다. 성삼재·정령치도로는 지리산국립공원의 이용행태를 바꿔 놓아, 도로가 생기기 전과 비교하여 지리산국립공원 탐방객은 2배, 노고단 탐방객은 7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화엄사에서 시작해 연기암을 지나 국수등, 집선대, 코재를 땀 흘리며 천천히 걸어야만 오를 수 있었던 1507m 노고단은 성삼재까지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슬리퍼를 신고도 갈 수 있는 유흥지가 된 셈이다. 1988년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는 지리산국립공원 심장부까지도 아스팔트 도로를 깔아 돈만 벌면 되는 시대였고, 도로가 건설되면 지역에 큰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도로만 건설되면 잘살 수 있다는 '도로 신화'는 지리산자락 마을들을 스쳐 지나는 관광지로 만들었다. 성삼재·정령치도로가 생기기 전, 지리산 아래에서 하루 묵고 지리산에 오르던 등산객들, 밥도 먹고, 차도 마시던 도시 사람들은 이제 물까지 사 가지고 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성삼재도로에 뒤엉킨 차량들. /윤주옥 시민기자 이런 지역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비집고, 표면 뭐든지 된다는 정치인과 돈을 따라 움직이는 토건업자들은 지리산에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2012년 남원시, 함양군, 산청군, 구례군은 지리산국립공원 반야봉, 천왕봉, 노고단에 4개의 케이블카를 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모두 부결시켰지만 지금도 틈만 나면, 선거가 가까워지면 지리산 케이블카를 이야기한다. 정치인과 토건업자들은 케이블카만이 아니라 산악열차도 필요하다고 한다. 하동군은 형제봉에, 남원시는 성삼재·정령치도로에 산악열차를 깔겠다고 나서고 있다. 4개의 케이블카와 2개의 산악열차,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지리산국립공원일까,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5월 1일, 나는 남원시가 계획 중인 지리산 산악열차 1구간인 정령치도로를 걸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 스산하고 싸늘한 날씨였다. 그러나 걷기를 시작하자마자 만난 초록의 향연은 시끄럽던 마음을 위로하고 평화롭게 했다. 3시간쯤 걸어 도착한 정령치엔 우박이 내리고 있었다. 자연의 변화, 숲의 냄새, 새 소리, 모두 천천히 걸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함께 걸은 분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 질주하는 오토바이에 무서웠지만 고추나무 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나는 성삼재·정령치도로가 도로가 아니라 산길이라면 더 좋겠지만, 도로여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삼재·정령치도로를 지금처럼 놔두고, 똑같은 방식으로 이용하면서, 지리산국립공원 보전을, 반달가슴곰과의 공존을, 녹색뉴딜과 탄소중립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보호지역 중 보전의 정도가 가장 높다는 국립공원에, 1100m 고지에, 1년이면 45만 대 이상의 차량이 아무런 제한 없이 달릴 수 있다는 현실에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가 싶다. ▲ 지난달 29일 열린 성삼재·정령치도로 전환연대 출범식. /정결 시민기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성삼재도로의 아스팔트 포장을 뜯어내어 원래 상태로 복원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당장 그럴 수 없다면 도로 이용 방식을 바꾸면 된다. 일반차량은 지리산 아래에 놓고, 지역주민들이 운영하는 친환경 차량을 타고, 지리산국립공원의 과거와 지금, 이곳에 사는 야생 동식물에 대해, 지리산 곳곳이 간직한 이야기를 들으며, 지리산국립공원으로 들어가면 된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과 단체들은 지난 4월 29일 국회 앞 산림비전센터에서 '성삼재·정령치도로전환연대'(이하 전환연대)를 출범했다. '전환연대'는 기후위기시대, 탈탄소사회로 가는 길에 성삼재·정령치도로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장기적으로 모색함과 함께, 당장의 과제로서 일반도로인 성삼재·정령치도로를 국립공원도로화해 일반차량의 출입을 통제하고, 구례와 남원의 주민들이 공동운영하는 친환경 전기버스만 다닐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전환연대의 활동으로, 전환연대와 같은 뜻이 있는 지역사람들과 국민의 바람으로 지리산국립공원에 새로운 역사가 쓰일 것이라 기대한다. 1967년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1988년 성삼재·정령치도로 건설, 2004년 반달가슴곰 복원사업 본격적 시작과 함께 2025년, 2030년의 어느 날이, 성삼재·정령치도로의 정의로운 전환의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리산은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이며 사람과 야생 동식물 모두의 삶터이며, 생명의 산이다. 현 세대가 이 땅을 떠나도 100년, 200년, 1000년 이곳에 있을 지리산과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는 생명들을 위해, 그리고 기후위기시대에 국립공원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성삼재·정령치도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 실었던 기사를 재수록하였습니다.
    • 연재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2-06-20
  • 텃밭교사 상글이 원하는 세상은?
    2022년 5월 28일 구례 오일장 상설무대에서 진행된 ‘잘 뽑고 싶다구례 문화제’에서 발언한 상글의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구례에 살며 초등학교 아이들과 텃밭에서 만나는 상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발언할 수 있도록 초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리산에 깃들어 살게 된지 올해로 3년차에요. 봄이 되면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풀도 매고, 자연의 시간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살게 되었네요. 생태텃밭수업 덕분에 저는 올해 돌보고 있는 텃밭이 4곳이나 있어요. 하나는 저희집 마당이구요, 용방, 토지, 옆 동네 남원에도 한곳있어요. 농은 곧 생명을 돌보는 일이니, 그만큼 책임감도 느끼고 기대가 되기도 해요. 모두의 마음이 푸르러지는 올 봄, 우리는 씨앗을 싹 틔우고 모종을 길러 저마다의 소중한 기대를 담아 텃밭에 옮겨심었어요. 완두, 토마토, 가지, 고추, 파프리카 먹을거리도 풍성하게 심고, 메리골드, 한련화, 해바라기 다양한 꽃들도 어우러져 심었어요. 아이들은 매일 아침 물을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올해도 우리는 텃밭에서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을 만날거에요. 그런데 요즘은 손끝에서 가뭄을 느끼고 있어요. 아침에 물을 준 것도 금새 말라버리고,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놓은 빗물 저금통에 물이 말라버린지는 꽤 오래되었어요. 한 없이 펑펑 쏟아져나올 것 같던 수돗물도 요즘엔 찔끔거릴 때가 있어요. 지난 주, 저희 마을에서는 이장님께서 방송을 하시더라구요. 날씨가 가물어 물이 부족하니 빨래를 자제하고, 불필요한 생활용수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덧붙여 텃밭에 물주는 것도 자제하라고 하셨어요. 비가 오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여느때보다도 날씨가 덥고 기온이 높아 땅에 있는 수분의 증발 속도도 훨씬 빠르다고 해요. 지구는 오랫동안 경고신호를 보내왔어요. 이것은 환경적 재난이고 기후위기입니다. 위기감이 우리의 삶에 점점 더 가까워 지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구례군은 기후위기에 대한 어떤 대안을 준비하고 있나요? 우리는 어떻게 조금이라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늦출 수 있을까요? 코로나로 모든 물리적인 접촉이 제한될때, 무엇보다도 간절한 것은 다시 ‘연결’되는 것이었어요. 불안 속에서 다시 안정을 되찾고 서로에게 따뜻한 포옹을 건넬 수 있는 안전한 사회. 그 안에 있던 연결감을 되찾는 것이요. 저는 이것이 돌봄의 감각으로 온다고 믿어요. 누구나 우리 안에는 돌봄의 감각이 있겠지요. 텃밭에 찾아오는 아이들에게도 있어요.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인간에게도 비인간동물에게도, 할머니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우리 모두에겐 돌봄의 힘이 있어요. 오로지 경제 성장 중심의 해법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어요.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생각해요. 개인과 사회의 목표가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노동이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돌봄을 중심에 놓고 살 수 있는 경제구조와 문화를 만들어야합니다. 생태텃밭에서는 흙의 생태계를 돌보는 일을 함께 하고 있어요. 땅을 갈아엎지않고, 자연 멀칭을 하고, 돌려짓기, 사이짓기를 하고, 퇴비를 직접 만들어 유기물을 땅에 보태줌으로써 흙의 생태계를 되살리고 흙을 지키는 농을 실천하고 있어요. 농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농부님들에게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 살충제를 뿌리는 것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겠지요. 지자체에서 흙을 살리는 농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정책을 시급히 마련하기를 바랍니다.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더 싼 가격에 배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도 지구에도 건강하게 순환될 수 퇴비를 생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주세요. 이제는 전 국민이 기후위기대응교육에 함께 참여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교육에서 농을 만나는 일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환경과 생태를 따로 공부할 것이 아니라 농을 통해 텃밭에서 우리는 자연을 만나고 다양한 생태계를 접할 수 있어요. 더 많은 아이들이 생태적으로 순환하는 농을 경험할 수 있도록 생태전환 교육 예산을 확보하기를 요구합니다. 수해 이후 첫 선거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후위기대응 정책을 가지고 있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 그것이 첫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지리산운동
    • 기후 위기
    2022-05-31
  • 양수발전소 댐 생기고 아름다운 골짜기 잃었다
    지리산 이야기 (2) 편리함 위해 파헤쳐진 계곡(산청양수발전소) 양수발전소 댐 생기고 아름다운 골짜기 잃었다 배혜원 시민기자(지리산필름 대표) (webmaster@idomin.com) 2021년 04월 13일 화요일 정부 친환경에너지 홍보와 달리 삼림·생태계 파괴에 수질악화 편리함·발전 명목 개발만 몰두…회복·치유 등 새로운 대안을 "산청에 양수발전소가 생길 때는 왜 반대운동을 안 했습니까?" 2019년 2월 하동군 화개면 양수발전소 반대 대책위가 활동할 당시 연대를 요청하러 다니는 중에 들었던 이야기다. 산청군에 양수발전소가 들어선 것은 2001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양수발전소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산청에 양수발전소가 생긴다는 것은 더더욱 알 수 없는 초등학생이었다. 청소년들도 환경운동에 뛰어들게 된 현재는 기후변화로 인간 문명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그때부터 반대운동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양수발전소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화개 사람들은 반대집회 당시 산청양수발전소에 다녀와서 화개면 양수발전소 반대집회 때 후기를 공유하기도 했다. 산청양수발전소는 고운동 계곡에 상부댐, 거림계곡에 하부댐이 위치한다. 상부댐 일부 지역은 하동군 청암면을 접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전력은 가동하는 동안 잉여전력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이용해 양수펌프로 하부댐에 있는 물을 상부댐으로 퍼올려 담아뒀다가 하부댐으로 흘려보내 낙차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다. 말하자면 원자력발전소의 잉여전력을 위한 배터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상부댐에 있는 물을 하부댐으로 내려 한번 발전을 하는 데 6~8시간, 반대로 상부댐으로 물을 퍼올릴 때 8~10시간이 소요돼 발전소를 최대한 가동한다고 해도 최대 가동률은 25% 내외라고 한다. 1조 원이라는 건설비용을 생각했을 때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발전소의 발전단가는 매우 높은 편이다. ▲ 산청군 고운동 계곡에 건설한 양수발전소 상부댐. /배혜원 시민기자 산청에 사는 친구의 소개로 지역주민을 만났다. 하부댐 인근 곡점마을에 터를 잡은 지 19년째라고 소개한 ㄱ 씨는 산청양수발전소에서 산청군과 시천면에 발전기금을 제공하고 있고, 수몰된 예치마을은 인근지역으로 이주해 펜션단지를 조성했으며 상부댐이 있는 고운동까지 도로를 건설해 교통이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수질은 확실히 나빠졌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양수발전소를 신재생에너지, 친환경에너지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건설과정에서 삼림 훼손, 수계통제로 하천 생태계 파괴와 수질 오염 등을 간과한 이야기다. 시천면에서 나고 자란 ㄴ 씨는 대규모 토목공사로 인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됐다고 이야기했지만 계곡에 이끼가 많아져 눈으로 봐도 물이 오염된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산청양수발전소 입구에는 수질 현황판을 붙여놓고 관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부댐이 위치한 고운동에 40년째 사는 ㄷ 씨는 반천동과 고운동에서 각각 길을 막는 등 반대운동을 했으나 끝내 막지 못했다고 했다. 반천동에서 고운동으로 이어지는 길도 막혀버렸다고 이야기했다. 최치원 선생의 호 '고운'에서 유래한 고운동은 깊은 산속에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분지 지형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자리다. 여름철 부채도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했던 이곳은 양수발전소 건설 이후 2~3도가량 평균기온이 올라갔고, 전기 없이도 소박하고 고요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아름다운 고운동 계곡이 사라졌다고 한다. 집이 수몰될 위기에 처했던 내가 환경운동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자기 집이 수몰된다는데 반대하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ㄴ 씨는 양수발전소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시천면 일대에 4군데가 넘는 생수공장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머지않아 지하수 자원이 고갈될 것이고, 오가는 대형 화물트럭들로 소음과 사고위험이 있고 지역에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나다니는 트럭들을 보며 양수발전소 송전탑들을 보며 지리산의 산수를 파헤치고 생산한 전기와 물이 다른 지역으로 팔려나가는 현실을 체감했다. 지역주민들이 혜택을 보는 점도 있고, 생활도 이전보다는 많이 편리해졌겠지만 우리는 고운동과 거림계곡의 이전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다. 나는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풍천리 주민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하동에서는 응모를 포기했지만 홍천은 당시 신규 양수발전소 후보지 중 한 곳이다. 농성장을 강제 철거당한 뒤로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알지도 못하고 쪽수가 없어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며 산청양수발전소가 건설될 당시 반대운동의 기억을 떠올렸던 ㄷ 씨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우리는 언제까지 편리와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소중한 것들을 놓쳐야 할까. 코로나19라는 전염병과 기후위기에 대처하면서도 이런 문제들을 불러왔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는 없을까. 개발과 보존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니라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개발과 편리함 속에 고통받고 폭력을 당해야 했던 사람과 동물들, 뭇 생명들은 잊히고 우리는 그들과 단절된 채로 살아간다. 작고 약한 것들에 대한 연결감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의 첫 번째 단계는 아닐지 생각해본다.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 연재 되었던 기사의 재수록입니다.
    • 연재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2-05-08
  • 빠른 길은 무너지고 있다(중산리∼천왕봉)
    지리산 이야기 (1) 빠른 길은 무너지고 있다(중산리∼천왕봉) 잘리고 파헤쳐진 지리산에 희망의 씨앗을 배혜원 시민기자(지리산 필름 대표) (webmaster@idomin.com) 행정, 지역발전 미명하 자연파괴 도로 넓히고 산악열차 사업 추진 토건 개발이 지역 미래 보장할까 지속가능한 삶 이룰 방법 찾아야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선배들의 안내에 따라 서울에 갔던 나는 그곳에 내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고향에 돌아와 살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지리산에 와서 산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나의 터전이 수몰된다는 소식에 억울한 마음에 환경운동을 하게 된 것도, 지금처럼 살면 지구의 평균온도가 1.5도 상승하는 데 10년 남짓 남았고 그 후에는 돌이킬 방법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3년 동안 고향인 하동에서 지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첫째로 도시처럼 많이 벌고 많이 소비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 우리가 조금 빠르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게 되는 일들은 어떤 곳에 사는 사람들과 동식물들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라는 것, 우리가 우리 사회와 자연환경 안에서 연결감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한다면 세상은 조금씩 변해 갈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 현실은 말하자면 앞으로 우리가 기후위기를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7.5년 남짓 남은 것이다. 3월 17일, 오랜만에 천왕봉 등반을 위해 중산리로 향했다. 관광객들과 물동량을 늘리려고 4차로 확장공사가 한창인 19번 국도 화개∼악양 구간에서는 많은 벚나무가 잘려나갔다. 남은 벚나무들에서 예년보다 2주나 빠르게 벚꽃이 터지고 있었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 샴푸는 왜 쓰고 디젤차는 왜 타냐'는 질문은 이제 환경운동하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비판이 아닌 상황이 되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하동에서 서울까지 4시간이면 갈 수 있고, 2시간이면 지리산을 둘러볼 수 있는 지리산 산악열차를 놓겠다는 계획마저 등장했다. 교통이 빨라진 탓에 코로나19도 빠르게 번졌다. 농산물가격은 폭등하고 돈이 있어도 마트에 식료품이 없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장면이 세계 곳곳에 펼쳐지고 있다. 갑작스런 한파에 미국의 텍사스 지역에서는 전기공급이 끊기기에 이르렀다. 민영화된 전기공급회사가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난방설비를 폐기한 까닭이었다. 석탄화력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이 암에 걸려 죽어나가고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이 유출되어도 전기 공급은 멈출 수가 없다. 수십 년 된 벚나무가 잘려나가고 이름 모를 생명이 죽어나가도 도로 확장은 계속 되어야 하고,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비롯한 산악 개발은 계속 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먹고살기 위해서다.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는 숭고하기 때문이다. ▲ 천왕봉에서 바라 본 산청군 중산리 쪽 지리산줄기. /배혜원 "산악열차는 이념이다, 인민군과 국방군의 차이와 같다." 지리산권 전북 남원 모 시의원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는 매우 불편하지만 성찰의 지점이 있다. 국내에서 추진한 모노레일 사업은 수익성이 알려진 바 없고, 케이블카 사업 역시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바는 미미하다. 알프스하동프로젝트의 시공업체로 선정된 대림건설이 '사업성 저하로 사업추진이 불가하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이념논쟁이라면 국내 산악관광 개발사업 추진은 환경문제와 경제성, 주민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과 합리성이 배제된 가치관과 믿음에 대한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념에 따라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고 여성들을 겁탈할 수 있다는 논리가 지배했던 해방공간의 지리산이 떠오른다. 기후위기와 코로나19 세계 대유행(팬데믹)이 덮친 지구에 인민군과 국방군, 인간과 동물, 환경론자와 개발론자로 나뉜 것들은 서로 화해하지 못한 채 함께하고 있다. 어쩌면 기후위기와 팬데믹조차도 믿는 이와 믿지 않는 이로 나뉘어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가 이념논쟁일까. 알프스하동프로젝트 추진위원회와 하동군수는 산악열차를 비롯한 지역의 관광산업 활성화만이 지역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고, 지금이 대규모 개발사업을 통해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리산권뿐 아니라 전국의 인구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지역이 소멸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 하동군청 앞에서 '산악열차 반대'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 시민. /배혜원 지역의 청년들이 사라지고 인구가 소멸하는 이유는 지역에 산업단지와 대규모 관광 랜드마크가 없어서가 아니다.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자연,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무시하고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무리하게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벚나무들을 베고 도로를 확장하고, 강을 파헤쳐 돈으로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가진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고 돈으로만 계산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돈으로 계산해도 수지가 맞지 않는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대규모 토목건축사업만이 우리의 꿈과 희망이라고 우기고 있다. 지난 23일 지리산산악열차의 시공사로 선정됐던 대림건설은 지역갈등과 환경민원이 해소되지 않고, 사업성 저하로 산악열차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고 알려왔다. 기업이 사업성 저하와 지역갈등을 문제로 철수할 정도라면, 공공개발로 산악열차를 추진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이 아닐까. 지역에 공항과 고속철도 같은 교통시설을 건설하는 일이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지역에 관광개발을 한다고 해서 지역이 발전할 수 없다. 관광객이 빠르게 지리산에 오갈 수 있다면 그 지역 안에서의 숙식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다. 청년들이 일용직,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시골에 살 이유가 없다. 빈집이 넘쳐나지만 도시 사람들의 세컨드하우스 개발사업으로 부동산 가격은 폭등한다. 시골에서마저 살 만한 집을 구하기 어렵다. 제대로 된 공공병원과 보육시설도 부족하다. 겉으로 청년들이 희망이라고 하지만 첫째는 얼마, 둘째는 얼마, 셋째는 얼마라는 식으로 신생아마저 가격표를 붙여 돈을 지급하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책임하고 쓸모없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 하동군 한 게시대에 걸려 있는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현수막. /배혜원 10여 년 만에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천왕봉에는 덱도 많이 생기고, 지난 수해로 강돌도 많이 들여 놨다. 무엇보다 법계사 입구까지 버스도 다닌다. 지리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더 빨라졌다. 설악산 정상에 케이블카가 놓인다면, 지리산 정상에 케이블카가 놓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지구에 발붙이고 살 수 없는 시기도 더 빨라질지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지역은 이미 자립할 수 없는 상황이고,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구의 기후 위기도 마찬가지다. 성장이나 개발이라는 상상이 가능할까? '발전적 해체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땅을 일군다. 자립을 꿈꾼다. 한 줌의 씨앗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다. 역부족이나마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콘크리트 바닥 갈라진 틈 사이로 싹이라도 틔우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7개월간 지리산 이야기로 글을 쓰게 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11편을 연재하는 제목인 '지리산 이야기'는 나를 비롯한 지리산 사람들이 지리산의 자연환경을 바라보고, 우리 공동체가 이곳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이어나가는 방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면을 할애해 주신 경남도민일보에 감사드린다. 배혜원 시민기자(지리산 필름 대표) *이 기사는 '지리산사람들' 회원들이 경남도민일보에 연재 하였던 "지리산 이야기 기획시리즈"를 재수록 하였습니다.
    • 연재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2-04-27
  • 하동 동네책방 ‘시소’의 주인장, 비성은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한다
    내가 하동에 있는 동네책방 ‘시소’의 주인장, 비성을 만난 건, ‘지리산둘레길’에서다. 그녀는 볼 때마다 분주했다. 그녀는 ‘사단법인 숲길’의 든든한 일꾼이었고, 나는 가끔 ‘지리산둘레길’을 걷거나, 간혹 어떤 행사장을 기웃거리는 손님이었다. 몇 년 전, 만나면 반가운 그녀를 구례 용호정 숲에서 만났다. 걷고, 말하는 것이 아픈 사람처럼 느껴졌기에 아무 생각 없이(나름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디 아프세요?’라고 물었다. 주변 사람들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오래지않아 그녀가 파킨슨병이라는 걸 알았다. 최비성, 그녀를 생각하면, 용호정 숲을 걷던, 그녀의 약간 기운 뒷모습이 떠오른다. 2022년 3월 14일 아침부터 비가 뿌리던 날, 그녀의 놀이터 ‘시소’를 찾았다. ‘인터넷신문 지리산인’에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겸하여, ‘시소’를 열게 된 계기, 시소의 운영상황, 뭐 이런 걸 듣겠다는 이유였으나 그 무엇보다도 그녀가 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가 묻고, 비성이 답하고, 김인호 편집장(인터넷신문 지리산인)과 칩코가 거들며 함께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주옥: ‘시소’를 연지 8개월쯤 됐다고 들었는데 동네책방 ‘시소’를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비성: 책방을 열게 된 얘기를 하려면, 몸이 아픈 얘기부터 해야되거든요. 어렸을 때 꿈이 책방을 해보는 거였어요. 꿈을 잊고 지내다가 파킨슨병에 걸렸잖아요. “지리산둘레길(사단법인 숲길)”을 그만두고 한두 달 쉬고 있는데,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매일 출근하던 곳이 없어지니 그때는 지금 정도로 안 아팠는데도, 제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것 같드라고요. 그때 알고 지내던 시인 선생님이 시를 써보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를 조금씩 긁적거리다보니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가 책방을 차리고 싶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날이 벚꽃 핀 날, 저녁이었는데, 벚꽃을 보고 이 앞을 지나가는데 ‘세놓음’이라고 붙여놨더라고요. 그때가 밤 9시였거든요. 그냥 전화번호를 눌렀어요. 일주일 전쯤에 여기 세가 나갔다고 했는데 ‘세놓음’이라고 돼 있다고 했더니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저 주세요.’ 그랬어요. 얼마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저 주세요’라고 한 거예요. 그랬더니 주인이 ‘뭐 하고 싶어서 그러냐?’고 해서 ‘책방을 하고 싶은데요.’, 그랬어요. 제가 퇴직금을 딱 천만 원 받았거든요. 12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예요. 500만원은 보증금 내고, 나머지 500만원으로 준비를 하면 딱 되겠다 싶더라고요. 남편한테 손 벌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장생활해가지고 그동안 모았던 돈으로 내 공간을 만드니까,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고민도 안 하고 그 밤에 결정을 해서, 그 뒷날부터 조금씩 준비 했거든요. 주옥: 몸도 아픈데, 책방 내는 게 힘들지 않았나요? 비성: 남편이 페인트 칠해주고, 아는 목수 분과 그분의 아내가 싱크대해준 거 말고는 아무도 안 도와줬어요. 혼자서 그냥 하나씩, 싸구려 사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했거든요. 그래서 애착이 가요. 하동이 문학의 도시라고 얘기를 하는데 책방 하나 없다는 게 좀 조금 슬프더라고요. 책방을 내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순천에 있는 ‘골목책방 서성이다’에 갔었어요. 그 사장님이 ‘몸이 아프면 하세요.’ 그러면서 ‘잘 안 될 거니, 그 공간에서 독서토론을 한다든지, 문화공간으로 생각하고 재미있게 해야지 안 그러면 오히려 건강이 나빠진다.’고 그러더라고요. ‘서성이다’는 순천의 중심가에 있고, 도서관에 납품도 하고, 명소로 알려져 있더라고요. 부러웠지만, 저는 저만의 색깔대로 해야겠다 싶어가지고, 책의 전면이 보이게 전시했어요. 책을 이렇게 전시한 이유는 돈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요. 제 나름의 전략이었어요. 아는 언니는 ‘왜 사람들한테 부담을 주냐, 책을 막 강매하듯이 진열을 했다’라고 하는데, 책을 일반적인 방식으로 꽂으면 책장 한 칸을 채우는 데도 돈이 많이 들거든요. 책방에 아무리 많은 책이 갖다놔도 손님들이 원하는 찾을 다 갖출 수는 없어요. 그래서 주문 위주로 하고 있어요. 주옥: 시소라는 이름,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비성: 놀이터의 시소예요. 시소(see, saw), ‘보다, 보았다’는 의미도 있고요. 이곳은 나만의 놀이터인데, 저 혼자면 시소를 탈 수 없으니까 할머니라든지, 선생님들처럼 오시는 분들이 함께 시소 타러 놀러 왔다는 의미로, 제가 의미 부여를 한 거예요. 몸이 안 좋으니까, 중간에 문 닫을 때가 많아요. 마비가 오면, 말이 안 될 때도 있고요. 손발이 안 움직여지기도 하고. 저녁에는 거의 잠을 못 자다시피 해요. 근데 약을 먹고 여기 나오면 몸이 반응을 해요. 참 신기해요. 어제는 집에 있었는데 하루 종일 아팠거든요. 근데 여기 나오면 몸이 이곳을 기억하고, 또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면서 에너지를 주고받고 하면 약 기운이 약간 늘어나는 거 같아요. 저번에 코로나 백신 1, 2차 맞고 나서 3시간 가던 약 기운이 1시간으로 줄어들어서, 의사 선생님도 놀라고, 약이 안 들어서 일주일 동안 문을 닫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약을 좀 세게 지었는데 그 대가가 커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약을 먹는데 약기운 떨어졌을 때는 굉장히 아프거든요. 어떤 때는 나쁜 생각이 들고 그래요. 우울증은 아닌데, ‘그냥 목숨을 버릴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울 때도 있고 그렇거든요. 근데 여기 나와 있으면 그런 생각이 사라져요.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닌데, 책하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치유도 되고요. 주옥: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나봐요. 앤과는 언제 만난 건가요? 비성: 중학교 때부터 『빨간 머리 앤』에 빠졌는데, 앤의 긍정적인 캐릭터가 너무 좋았어요. 저희 집에 딸이 셋인데 저는 제가 주워 온 줄 알았거든요. 어렸을 때 이웃들한테 그런 말을 많이 들어서요. 이웃들은 장난이었는데, 저한테는 상처였거든요. 그래서 엄마, 아버지가 친엄마, 친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춘기였죠, 그때 『빨간 머리 앤』을 읽었는데 마치 앤이 나인 것처럼 빙의가 되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라든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 캐릭터에 빠졌던 것 같아요. 빠지고,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했는데, 그 뒤에 만화가 나왔거든요. 만화도 보고, 또 보고 막 이렇게 했어요. 닮고 싶은, 내 속의 또 다른 자아가 앤을 닮고 싶다 였어요. 저뿐만 아니라 저와 비슷한 세대들은 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더라고요. 몽고메리라는 그 작가도 너무 매력적인 게, 평생을 『빨간 머리 앤』 하나만 썼잖아요. 그 시대에 앤을 통해서 여성의 자립된 모습이라든지, 성장 과정을 자연스럽게 쓴 책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앤을 좋아하게 됐어요. 주옥: 시소에 있는 책 중, 책 한 권만 추천해주세요. 비성: 지금 있는 책 중에서는, 김서령 작가의 『여자전』이요. 작가가 직접 만난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거든요.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이렇게 돼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힘이 나더라고요. ‘대단하다’ 이런 분도 계신데, 그까짓 파킨슨병에 걸렸다고, 이불 속에 누워서 눈물 흘릴 일이 아니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힘을 많이 얻었어요. 주옥: 시소에 오는 사람들은 많은가요? 비성: 일부러 오는 사람들은 제 지인들이고, 아까처럼(인터뷰하려고 기다리는 동안에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가셨다.) 할머니들이 오셔요. 여름에는 제가 그냥 들어오시라고 해요. 들어오셔서 좀 쉬었다 가시라고. 오후되면 봉사 할아버지들, 초등학생들 건널목 건너게 해주고, 교통 정리하시는 할아버지들이 계시거든요. 여름에 아이들이 집에 가는 시간, 낮 2시면 엄청 덥거든요. 할아버지들에게 잠시 들어오셔서 물 한 잔 드시고 가라고 해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사람을 통해서, 아이들을 통해서 에너지를 받아요. ‘지리산둘레길’에서 일하기 전에 논술학원을 했었거든요. 그때는 독서 치료라는 말이 없었을 때인데, 글쓰기 치료, 독서 치료가 자동적으로 돼가지고, 정신적으로 힘든 애들이 제 덕분이 아니고, 책을 통해서 글쓰기를 통해서 치유가 됐었어요. 제가 그걸 눈으로 봤기 때문에 굉장히 보람이 컸었거든요. 학원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밖으로 데리고 다니고, 놀이터에서 놀고, 그렇게 몸으로 익힌 걸 글로 재밌게 쓰게끔 해가지고, 다들 글쓰기 좋아하는 애들로 만들었거든요. 제 자랑이고 보람이고, 그랬어요. 주옥: 시소 운영은 어떤가요? 비성: 운영하기는 힘들어요. 인건비는 당연히 안 나오고요. 순소득이 월 6, 7만 원 될 때도 있더라고요. 책이 25% 정도 수익이 남아요. 만 원짜리 책 한권 팔면 2500원, 처음엔 이거 큰일 났다 싶었는데, 제가 만약에 요양원에 들어간다고 하면 병원비를 내야 되잖아요. 요양병원비, 비싸더라고요. 여기는 내 놀이터고, 내 ‘치료 장소다’라고 생각하면 괜찮아요. 괜히 욕심을 내면 몸이 더 아플 것 같아서 맘을 편히 갖기로 했어요. 알바 할 게 있으면, 몸 아프지 않게 일해서 월세내고 있어요. 주옥: 책방 하는 거 말고, 하고 싶은 게 더 있나요? 비성: 제가 아프고 나서 버킷리스트가 있었는데, 책방 내는 것과 타투해보는 거, 벌써 둘 다 했어요. 제 팔목에 있는 생명평화 문양, 이거 할 때 엄마한테 ‘타투하고 싶다’고 하니, 엄마가 ‘그러면 병이 낫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다’고 하니 ‘그러면 해, 많이 해’ 그러더라고요. 또 하고 싶은 건, 시집을 내고 싶어요. 우리나라에 파킨슨병을 앓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시집을 내고 싶어요. 서울에 있는 파킨슨병에 걸린 분이 있는데, 그분이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를 둘이나 낳았거든요. 굉장히 씩씩하게 살더라고요. 그 분들과 함께 하는, 시집을 냈으면 하는 거죠. 제가 하동에서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하동에 대한 자료, 사진, 어머니들의 이야기, 하동의 역사, 이런 걸 모아서 기록물을 남기고도 싶어요.‘지리산둘레길’에 있을 때, 하동의 큰 나무들을 조사해서 원고는 다 써놨었어요. 원고도 쓰고 사진도 다 찍고 했어요. 제가 하동을 좋아하는 거는 아버지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는 자식들을 하동에 가둬서 키웠거든요. 옛날에는 공부를 조금 하는 친구들은 마산이나 진주로 중고등학교를 가거든요. 근데 오빠, 언니, 저, 동생들 모두 밖으로 못 나가게 했어요. 아버지가 굉장히 하동사랑쟁이에요. 저도 하동을 사랑하고, 그래서 하동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책도 내고 싶은 거예요. 그녀는 잘 있었다. 시소는? 시소도 그녀만이 아니라 동네 할머니들의 놀이터가 되어,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었다. 교과서, 자습서, 참고서말고는 읽고 싶은 책을 살 수 없는 하동, 구례, 산청 등에 동네책방이 생기고, 그곳이 그럭저럭 잘 유지되어 동네사람들의 놀이터가 된다는 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일이다. 그러니 나는 동네책방 ‘시소’가 잘 버텨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소의 주인장 비성이, 파킨슨병에 당당히 맞서, 하고 싶은 일은 하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 우리마을
    • 하동
    2022-03-16
  • 툇마루 수다
    한승명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 저는 지리산(산내면)에 깃들어 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이를 키워내고 이제는 <지리산생명연대>에서 함께 지리산이 되자고 총총 걸음을 걷고 있는 아낙입니다. 봄볕 따사로운 툇마루에서 봄나물 다듬듯 잘 아시는 이야기 하나 풀어놓을게요. 한 농부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어느 날 더 많은 황금알을 갖으려고 거위배를 갈라보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거위는 죽고 뱃속에는 창자와 똥뿐이였습니다. 농부는 울상이 되었습니다. '지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우리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황금(돈)인줄 알던 때도 있었고 성공인줄 알던 때도 있었고 사랑인줄 알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리산에 깃들면서 진정 내게 소중한 것은 '생명'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리산을 우러러 어머니의 산, 여신(마고)의 산이라고 칭송하는 것은 모든 것을 내어주고 살려주고 품어준 '생명의 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리산을 나의 이기와 편리로 파헤치고 자르고 베어 거위 죽이듯 지리산을 죽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곳에 태어나 지리산 덕분에 잘 살아왔고,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어려움과 직면하거나 어지러운 세상, 환란을 맞아 살아보고자 깃들은 지리산이건만 그 고마움을 망각한 채 그 지리산이 죽어가고 있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듯 침묵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은 이 땅을 지키고자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았으며, 모든 생명이 함께 살아야한다고 거리에서 외치고, 어린 자식들을 잃고 슬피 우는 어미들을 안아 주었고, 병든 세상에 맞서 서로를 살리기를 기꺼이 해낸 지리산 같은 이들 덕분입니다. 나는 그들을 주저 없이 '지리산'이라고 부릅니다. 지리산은 제일 높이 솟은 천왕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높으니 낮으니 어깨를 걸고 있는 모든 봉우리가 모두 '지리산'입니다. 자신을 내어놓고 서로 돌보고 살리면 내 자신의 생명도 건강하고 풍성하게 살수 있다는 지혜를 지리산은 가르쳐주었습니다. 오늘도 멍청이 잠을 자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기지개켜는 흙, 개구리 울음에 흔들리는 바람, 소녀의 숨소리처럼 달뜬 냇물, 온갖 생명들이 저마다 부르는 노래... 지리산이 이 봄에 내 귀를, 내 눈을, 내 온 몸을 흔들어 깨웁니다. 쑥개떡이나 빚어 이웃과 나눠 먹어야겠네요. 이만 총총.
    • 연재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1-06-01
  • 지리산 아래(下)
    김창승 (섬진강 수해극복 구례군민 대책본부 상임대표) 지리산과 함께 사는 기쁨을 아십니까. 큰산과 더불어 살고 싶다는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습니다. 갈망하면서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산, 누구나 어느 때나 다가갈 수 있는 산이지만 특별히 허락된 자에게만 자신의 몸 한자리를 내어주는 산이기에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참배하듯 산을 보며 어떤 인연과 행운으로 지리산 아래(下)로 왔을까? 자문해봅니다. 그건 내 의지와 희망으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래 전 부터 한 인간의 외로움과 허기 같은 갈증을 지켜보며 그의 자락, 어머니 같은 그의 품으로 불러준 지리산의 호명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리산이 '김창승' 이름 석 자를 불러주었던 2014년 1월 14일, 그날은 지리산 하(下)에서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시작한 생일 같은 날입니다. 트럭에 짐을 싣고 오는 욕망의 덩어리를 지리산은 두 팔 벌려 그의 품에 안아주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 시린 등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날로 부터 지리산은 내 영혼의 안식처가 되었고 그의 곁으로 한 발 한 발 다가설수록 쉼표와 느낌표를 주었습니다. 산의 깊은 숨소리에 위안과 기쁨을 느꼈고 둘이서만 나누는 은밀한 대화는 달콤했습니다. 그를 떠나 멀리가면 왠지 어린아이처럼 불안했고 산이 도망가 버릴 것 같은 마음에 서둘러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무지개 터널을 지나 지리산과 구례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에 서면 나도 몰래 안도의 한숨이 나오곤 했습니다. 지리산중(中)을 돌면서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을 이름도 산을 닮은 그곳에는 야생화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상죽, 내죽, 상용, 중용, 하용, 상유, 중유, 하유, 상무, 하무… 산에 기대어 살며 산 하나씩을 내면에 끼고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무심해 보였지만 인사를 건내면 물 한 잔이라도 하고가야 한다며 옷 소매를 붙드는 속정 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햇볕 드는 마루에 앉아 몇 시간이고 살아온 얘기, 먼저 가신 서방님 얘기, 아이들 모두 잘 됐다는 얘기를 오래된 지인처럼 하시다가 다시 꼭 오라며 손을 흔드는 고향 같은 사람들을 이었습니다. 이런 인연들을 하나씩 쌓으며 지리산 들꽃 같은 사람들 이야기를 마음속 앨범에 저장하면서 7년이란 세월을 꿈처럼 보냈습니다. 지리산 꼭대기(上)에는 흰 눈이 내렸습니다. 산에 기댄 사람들은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추억을 더듬고 산짐승은 깊은 잠에 들었습니다. 백옥의 산을 올려다 봅니다. 아, 깨끗하고 때 묻지 않으며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세상을 봅니다. 지리산으로 오기 전에는 높이 높이 올라가려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래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려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 헛된 꿈과 욕심을 내려놓고 이제는 소박한 꿈을 꿉니다. 봄이 되면 들꽃, 산꽃 가득한 마을로 가는 꿈을 꿉니다. 마당에 들어서며 '이모님, 어르신' 그간 잘 계셨는지 안부를 묻고 손을 덥석 잡는 꿈을 꿉니다. 낮은 곳에서 산을 보는 기쁨, 지극히 겸손하나 산을 닮은 옹골진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 목숨걸고 지켜온 그들의 깨알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특별함, 작은 꽃 하나와도 눈맞춤을 하며 대화하는 여유… 이 모두가 지리산의 선물입니다. 가장 평화롭고 생명력 넘치는 것들은 낮은 곳에 있었습니다. 하늘처럼 높고 존귀한 것들은 장엄한 산을 바라보며 기도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었습니다. 잔잔한 평화로움이 무엇인지, 더불어 함께 가는 삶이 무엇인지, 작은 것 하나라도 함께 나누면 내가 먼저 행복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 어머니의 산, 높지만 낮은 곳을 사랑하는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 지리산입니다.
    • 연재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1-06-01
  • 시민으로 살아가기
    박형규 (기후위기남원시민모임 대표) 2016년 봄, 15년 간 살던 경북을 떠났다. 애초부터 딱히 정해진 곳이 있어서 움직인 건 아니었다. 산정호수 시절부터 20년이 넘게 산골생활을 한 아내는 아이들도 다 나갔으니 이젠 좀 따뜻한 남쪽나라에 가서 살자고 했다. 따뜻한 남쪽나라? 그래 그러면 아예 이참에 쿠바로 가서 살까? 했더니 그건 또 아니라 한다. 그러더니 친정인 무주 안성면에서 1시간 거리 정도면 된다면서 한계를 정해 준다. 임실, 곡성, 장수, 진안, 완주 등 몇 군데 찾아봤지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러던 10월 어느 날 지리산 산내 사는 후배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강변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쉬고 있는 데, 흐르는 강물이 편안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바로 전화를 해서 “여보, 남원은 어때요?” “시내인가요?” “응, 그래” “그럼 거기서 한번 찾아 봐요.”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순식간에 남원으로 결정되었다. 박근혜 탄핵운동이 한창인, 11월 중순 경에 세를 얻어 요천가, 죽항동에 살기 시작했다. 이사한 그 주일 박근혜 탄핵운동 남원집행부를 찾아 갔다. 내 소개를 하고 집행부에 함께 동참하면서 남원살이가 시작되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직후부터 <직접민주주의 시민남원회의>, <시민참여제도연구회>, <기후위기남원시민모임>의 이름으로 광치동화력발전소 반대투쟁 승리, 남원시민참여기본조례 제정운동을 해왔고, 현재는 기후위기운동과 지리산산악철도 반대운동을 진행 중에 있다. 대부분의 지역 소도시들이 그런 것처럼 남원에도 역시 ‘구체적인 민주주의’가 없다. 남원행정은 지역 주민들의 행복?을 위한 일을 한다면서 전혀 주민, 시민들에게 제대로 묻지 않는다. 남원시엔 16명의 시의원들이 있다. 그런데 이 16명 전부가 다 민주당이다. 게다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임실, 순창, 남원 지역위원장이 현 이환주 남원시장이다. 어찌 이런 파행적인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시행정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자들의 공천권, 그러니까 생사여탈권을 현직 시장이 쥐고 있는 거다. 이건 시장도, 시의원들도 남원시민을 기만하고 무시하는 처사다. 올바르게 돌아가는 지역이라면 행정과 의회,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어떤 일이든지 정당한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진행되어야 하고, 그것은 마땅히 민주적인 사회의 바탕이 되는 기본이다. 남원의 실정이 이런데 시의회가, 시의원들이 제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시장도, 시의원들도 시민을 존중하기는커녕 시민의 뜻과 의사를 전혀 개의치 않는 곳이 남원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가 없다. 2주 전에 남원시 의회가 ‘기후위기조례 입법예고를 했다. 이는 매우 환영받을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 와중에도 남원시청 기획실에서는 9월 2일에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 시험노선 유치를 위한 전략분석 및 정책성 수립용역> 심의회 결과보고 공문을 냈다. 처리기간은 1일이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지리산산악전기열차는 현재 여러 가지 논란이 일고 있다. 지리산은 남원사람 만의 재산이 아니다. 지리산은 전 국민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까지 함께 누리고 보전해야할 소중한 공유자산이다. 이미 이웃지역 하동에서는 이른 바 ’하동알프스 프로젝트(산악열차, 케이블카, 모노레일)를 반대하는 대대적인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엄혹한 기후위기 시대에 개발과 토건을 중지하고 근본적인 정책전환을 도모 하지는 못할망정 이명박의 4대강과 다름이 없는 국립공원을 개발을 하겠다고 하는 망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 연재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1-06-01
  • ‘17년 지리산 살이’
    문미랑 (경상남도환경교육원) 대학을 졸업하고 빛나는 20대 시절에 나는 지리산에 살고 있었다. 구례 화엄사 황전마을 부근에서 5만 원 짜리 월세를 살면서 적은 월급이었지만 우체국의 이자율 9% 짜리 적금을 넣으면서 현재보다 더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살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드라마 속 밝고 긍정적인 주인공처럼 살아갔던 것 같다. 새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파이팅!’을 외치며 일어나, 어제 보았던 야생화의 꽃봉오리가 폈겠지 하는 설렘으로 카메라를 챙겨 출근을 하여, 동료들과 탐방로를 올라 식물 공부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환상적인 직장 생활이었고 주변에는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현 국립공원공단)에서 근무하는 것이 행복했다. 해설을 하거나 외부 강의에 나가면 자랑처럼 나는 이야기했다.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사는 삶이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실로 그 시절에는 그랬다. 현재 나는 43살이다. 중년이라고 불리는 나이이고 조심하지 않으면 꼰대라고 뒷담화를 들을 수 있는 나이이다. 현재 나는 지리산국립공원 중산리에서 근무하고 있다. 나의 소속은 국립공원공단에서 경상남도 소속으로 바뀌었고 그 사이 하동군 소속으로 7년간 하동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나는 평생 지리산 부근에서 돈을 벌고 생활을 하고 사람을 사귀며 살아가고 있다. 지리산을 무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들을 했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도 지리산권 마을마다 몇 명씩은 생겨났다. 지리산 어느 동네를 지나더라도 밥 먹을 사람, 차 한 잔 같이 할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3번의 직장을 옮기며 구례, 하동, 산청으로 다니면서 한곳에 정착을 하지 못했다. 지리산권 어디를 가더라도 아는 사람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는 나지만 나는 17년이라는 시간동안 어느 지역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이 내가 사는 곳이다 고 아직 말할 곳이 없다. 지금 근무하는 산청으로 온지는 이제 일 년 하고 6개월이 지났다. 아직도 적응기이고 아직도 누군가를 사귀기에 낯을 가리고 있다. 아주 오래전 천은사에서 가졌던 모임에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가 있었다. 진행자가 유도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리산에서 살게 된 이유를 자신의 소개와 함께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도 그때 그 모임에서 내가 지리산에서 살게 된 이야기를 소설처럼 이야기 했던 것 같다. 그런 와중 뒤에서 누군가의 삐죽거림이 들렸다. “다들 지리산 병에 걸렸구나. 와서 망치지나 말았으면” 그분은 내가 아는 누구보다 지리산을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그 모임 이후로 나는 그분을 볼 때 마다 주눅이 들어 은근 피하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내 양심을 찔리게 한 건지 나는 오랫동안 그 이유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작년부터 번아웃(burnout)도 왔고, 20대의 마음처럼 내가 하는 일이 마냥 즐겁지도 않고 지리산 살이가 완전히 행복하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가끔 직장을 탓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 사람들을 혼자 미워하기도 한다. 제발 좀 쉬고 싶다는 생각과 26살의 나로 돌아 갈순 없지만 43살의 지금의 나로 계속 살아가는 것은 참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이다. 나는 천은사 회의 때 이야기했던 지리산 살이 찬양을 지금까지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를 비롯해 그저 왔다갈 사람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이야기하며 지리산을 망쳐놓고 떠나버리는 모습이 야속해서 그분은 독설을 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양심에 그분의 독설에 눈치를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원고 펑크도 냈었고 매번 원고마감이 다되어서야 편집자의 속을 썩이며 원고를 냈었다. 모자란 글 솜씨로 열심히 쓰려고 노력은 했지만 바쁜 직장생활 핑계를 대며 정성들여 쓰지를 못했다. 일이 바쁘고 원거리 인터뷰의 험난함을 이유로 나는 5월 편집회의에서 편집위원 자리를 내어 놓았다. 그리고 17년 동안 지리산 살이에 정착하지도 못한 내가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나간다는 것도 나에겐 모순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뭐 하나라도 들어내고 쉬고 싶다. 이제는 좀 쉬면서 내가 정착할 곳에 정을 들여야겠다. 정착할 마음의 끈을 다잡아야겠다. 글하나 안 쓴다고 내 생활이 엄청나게 편해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일을 하나씩 줄이고 17년 지리산 살이의 결론을 좀 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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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1-06-01
  • 나의 주인은 나
    문미랑 (경상남도환경교육원) 언제부턴가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대신 명사의 강의나, 읽어 주는 라디오 책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음악을 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며 멜로디를 통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고독을 즐기기도 하고 고민의 답을 찾아내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이것들이 스트레스로 느껴져서 명사가 ‘이렇게 해라’, ‘저것은 틀렸다’ 하는 가르침을 받는 편이 편해져 버렸다. 예전처럼 음악을 삶에 담고 있지 않는 것이 나이듦의 시작인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지만 이제부터는 마음도 몸도 편안하게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구례에 사는 김동관씨를 만났다. 그와는 조금의 친분이 있는 사이이다. 그는 집짓는 목수, 철학을 논하는 명상가이다. 나는 명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내가 아는 명상은 가부좌를 틀고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눈을 감고 마음을 평온의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김동관씨는 무척 말라 있었다. 내 기억 속에 그는 덩치가 꽤 크고 노래를 잘불렀던 사람이었는데 왜소한 그를 만나니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1991년에 지리산살이를 시작한 그는 구례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다. 그를 유명하게 한 것 중 하나는 목수 일이다. 나도 그가 지은 집과 집주인을 몇 분 아는데 그가 지은 집은 대부분 그 집에 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가 지은 집을 보고 느껴지는 것들의 공통점은 집이 사람과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시인의 집은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고 외로운 홀아비의 집은 사랑을 찾는 이의 쓸쓸함이 느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자연속의 일부인 듯한 자연스러운 어울림이 그가 공정에 참여한 집들이 갖는 공통점이었다. 그와 ‘명상과 삶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솔직히 나는 간간히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도 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그가 몽상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 혼란 속에서 한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음악듣는 것을 즐기지 않게 된 후에는 생각의 늪에 사로잡히는 것이 귀찮은 나였는데 그와 대화를 이어 갈수록 나는 내 속의 질문과 고민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나온 로드킬 이야기를 하면서는 로드킬의 공포로 밤길 운전이 두려워 밤에 활동하지 않는 나의 문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구절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똑바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살자. 나는 어디에서든지 명상을 한다. 일상 속에서도 명상을 하고 지금처럼 대화를 하면서도 명상을 한다. 나는 스트레스가 전혀 없어요. 생명의 본질을 깨닫고 매 순간 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살아가면 그게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이루면 스트레스는 자연히 없어집니다. 자신의 껍데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많아요. 육체는 노예처럼, 감정은 하인처럼, 생각은 지나가는 바람처럼 살아 가다 보면 내 자신의 주인은 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아이들에게 늘 강조했던 말은 다섯 가지입니다. 무해(無害), 남에게 절대로 해를 끼치는 일을 하지마라. 진실(眞實), 진실로 상대방을 대하라. 성실(誠實),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라. 매순간 내 인생에 충실해야 후회가 없다. 절제(節制), 지나치지 말고 절제하라. 성찰(省察), 자신을 돌아 보고 반성하며 살아라.” 명상을 하든 일을 하거나 음악을 듣든, 로드킬이 염려되는 길을 운전해가든지 우리는 껍데기를 위해 살지 말고 내 자신의 주인으로 나를 사랑하고 살면 필요없는 염려를 버리고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을 그는 나에게 끊임없이 힘주어 강조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강 옆에 있는 시골길을 운전해 가면서 나는 음악을 틀었다. 12월 U2공연이 서울에서 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본 것이 기억나서 U2의 음악을 들으며 운전을 했다. 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너무 고민하지 않았고 운전을 하며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천천히 조심스레 운전했다. 더 이상 음악은 스트레스가 아니었고 시골길 로드킬에 대한 공포도 시나브로 사라져갔다. 나는 그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명상으로 깨달음을 얻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연재
    • 지리산자락 사람들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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