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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악열차와 공공선
    지리산, 설악산 등 우리나라 주요 산들은 개발하려는 움직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내가 사는 남원 지리산에도 그 바람은 거세다. 산과 강처럼 자연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건만 정치인들은 표에 이득이 될 것 같으면 배설하듯 개발 공약을 내뱉는다. 지난 10월 24일은 세계 소아마비 날이다. 10월 28일은 전 세계 소아마비 퇴치를 가능하게 한 '조너스 소크'가 태어난 날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광복을 이야기해 보자. 1945년 8월 15일 광복은 민족의 독립투사에서부터 조선의 민중들까지 한마음으로 일제에 항거한 결과가 쌓이고 쌓여 서서히 무르익어갈 무렵에 엄청난 한 방이 터진 결과로 이룩하게 된다. 그 어마 무시한 한방은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은 각각 ‘리틀보이’와 ‘팻맨’이라는 코드명이 있다. [난쟁이와 뚱뚱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코드명은 당시 미국 대통령인 루즈벨트와 영국 수상인 처칠의 별명이다. 영국 수상은 몸이 뚱뚱해서 별명이 그렇다 치자. 하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은 키가 188cm이다. 그런데 난쟁이라니 이상한 별명이다. 이 이상한 별명에는 사연이 있다. 루즈벨트가 정치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39세 나이에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에 앉아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난쟁이라 놀린 것이다. 개인의 안타까운 질환을 놀리는 행위는 우리 정서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표현이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리 불렀다고 한다. 특히 핵무기를 개발하는 맨하튼 프로젝트는 국가 주도로 진행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안타까운 질병에 관한 별명을 코드명으로 사용한 것은 다시 생각해도 대단해 보인다. 우리는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예술, 창작, 표현을 자유롭게 풀어내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미국의 또 다른 힘인 듯싶어 부럽기도 하다. 소아마비는 5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에게 주로 걸리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한번 발병하면 사망하거나 장애를 안게 될 확률이 아주 높은 무서운 병이다. 실례로 미국에서 1952년 한 해 동안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들이 58,000명이라는 보고가 있다. 이 중 3,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사망하고, 20,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장애를 가졌다. 루즈벨트는 자신을 괴롭혔고 많은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는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예방과 치료를 위한 노력을 쏟게 된다. 1955년, 드디어 '조너스 소크'에 의해 백신이 개발되었다. 제약회사들은 돈다발을 들고 그를 찾아갔다. 특허를 내고 백신을 생산하기만 하면 말 그대로 돈방석에 앉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크는 어떤 제약회사에도 백신을 팔지 않았다. 대신 모든 제약회사에 백신 만드는 법을 알려주어 누구라도 돈이 없어 백신을 맞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방송 인터뷰가 쇄도했다. 사회자가 “왜 백신에 특허를 내지 않았나요?”하고 물었다. 이때 소크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긴다. “태양에 특허가 있나요?” 사람들 누구나 공짜로 태양 빛을 이용하듯이 자신이 개발한 백신도 누구든 돈에 구애받지 않고 맞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선의 실천이다. 누구나 말은 쉽게 하지만 자신에게 엄청난 부을 안겨줄 이익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 어려운 일을 알지도 못하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실천한 것이다.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국가를 상대로 수익을 올리면 안된다. 그리고 사유화해서도 안된다. 마찬가지로 국립공원도 국립공원에 사는 뭇 생명이 주인이다. 몇몇 정치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약을 남발하고, 개발하고, 이용하는 대상이 되면 안 되는 곳이다. 국립공원은 인간 활동 때문에 무기력하게 파괴되는 자연이 이대로 가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위기감에 사람들이 이곳만은 지키고자 만든 곳이다. 우리 국민 모두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그곳은 한 줌도 안 되는 정치인과 공감력이 없는 무서운 과학자들이 재능을 시험하는 곳이 아니다. 제발 산악열차가 놓이지 않기를 바란다.!!!! 제발 지리산이 그대로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연재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11-17
  • 오리 날다
    오리 날다. 1월의 목동반은 남원의 신선자락길로 들었다. 신선자락길은 뱀사골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산내면 원천마을로 이어지는 옛길이다. 이 길은 계곡 가까이 붙어 있어 사람의 흔적이 적은 길로 오소리와 담비 등 야생이 살아있으며 생동감이 넘친다. 또한 이 길은 나무와 얽히고설킨 덩굴식물이 엄청난 크기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여간해서는 만나기 힘든 오리나무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오리나무가 숲에서 보이지 않는다. 숲에는 물오리나무만 있고, 사람의 손때가 묻은 곳에는 사방오리나무만이 자란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들은 오리나무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물에 잠기는 땅을 가장 좋아하는 오리나무는 버드나무, 참느릅나무처럼 물을 떠나서는 살기 힘들다. 만나기 힘든 오리나무, 앞에 두고서도 알아보기 어려운 오리나무가 이번 목동반의 주제이다. 오리나무의 겨울눈. 성냥개비를 닮았다. 오리나무의 어원은 오리마다 심어서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나는 이런 말은 우스개 소리로나 하는 말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오리마다 심었으면 지금도 오리나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리마다 심었다는 것은 국책 사업일진대 이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오리마다 심었다는 말은 나무 이름에 유래를 끼워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 오리나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가 아는 오리는 집에서 기르는 집오리를 말한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날아와서 물에서 자맥질하며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다가 갑자기 날아가버리는 새들, 즉 물에서 먹이활동을 하며 사는 새들을 통칭 오리라고 불렀다. 이들 오리 종류의 새를 쇠오리,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원앙 등으로 구분 지어 부르지만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도 오리라고 간단하게 부른다.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어버린 새가 있다. 딱따구리 종류 중에서 가장 큰 새인 크낙새는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었다.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체수가 늘어나서 아주 흔하게 되면 해제된다. 다른 하나는 멸종이 되면 해제된다. 가슴 아프게도 크낙새는 후자인 경우이다. 크낙새는 크기가 45cm에 달하는 새다. 이 새가 둥지를 틀려면 100년 이상 살아온 서어나무나 오리나무처럼 물을 가까이 있으면서 오래 사는 나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일제의 산림수탈, 6.25전쟁, 무절제한 산림훼손을 거치면서 우리의 숲은 오래된 커다란 나무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것은 나무의 크기만 사라진 것이 아니고, 큰 나무가 있어야 살아가는 크낙새의 보금자리가 사라진 결과로 이어졌다. 크낙새가 사라진 지금 크낙새가 둥지를 틀고 난 뒤 그 둥지를 이용하는 오리는 이제는 둥지 틀 고목이 없어서 아파트의 보일러실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 오리나무에 둥지를 트는 오리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오리나무와 함께 잊혀 갔다. 하지만 오리나무에는 오리가 새끼를 낳아 길렀었다. 물가 주변에서 살아가는 나무에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것을 보고 ‘오리가 사는 나무‘라는 의미의 ’오리나무‘라 이름지었던 것이다. 또 다른 이름의 유래는 오리나무의 열매다. 이는 ‘수달아빠’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최상두샘이 해준 말이다. 오리나무는 겨울에도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열매를 늦은 봄까지 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열매가 오리의 똥을 닮아있어 오리나무라고 부르는 것 같다고 한다. 정말 오리의 똥을 보면 오리나무 열매와 많이 닮아있다. 오리마다 심었다는 말보다는 훨씬 일리가 있어 보인다. 오리나무. 겨울이라 나무를 식별하긴 어렵다. 가지끝에 달린 열매가 보인다. 오리는 솟대 위에도 앉아있다. 물론 진짜 오리는 아니고 나무로 깎아 만든 오리가 솟대 위에 앉아있다. 솟대 위의 오리는 삶이 고단했던 민초들의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와 물에서 살다가 갑자기 날아가버리는 오리를 보면서 옛날 사람들은 오리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로 여겼었나 보다. 그래서 하늘을 날 수 있는 오리에 사람들은 작은 소망을 기원하여 그 소망이 하늘에 닿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느 시대나 삶이 퍽퍽하면 어떤 강한 존재에 의지하게 되듯이 현실의 고단함이 내일에는 미래의 자식들의 삶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놓은 것이 오리이기에 오리가 힘차게 날아 하늘에 닿았으면 하는 바람을 같이 해본다. 오리나무의 특징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물을 좋아한다. 물은 식물도 좋아하지만, 동물도 좋아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은 물을 중심으로 마을을 만들고 밭과 논은 만든다. 그리고 길을 만들고 수로를 만든다. 사람과 같은 공간을 두고 경쟁하는 것은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커다란 위험이다. 버드나무처럼 어마어마한 번식력과 생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사람과의 경쟁에서 견뎌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오리나무는 목재가 좋아 목기, 탈(하회탈의 재료), 나막신 등 생활 도구로 사용되었고, 몸에 이롭다는 보신 문화가 더해지면서 점차 사라져갔다. 오리나무의 다른 특징은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이다. 뿌리혹박테리아의 위대함은 질소고정이다. 공기 중에 78%나 존재하는 질소는 모든 생명이 성장에 필요 요소이다. 하지만 과자봉지 외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는 질소를 그 작은 세균이 식물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프리츠 하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질소 이야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화학자인 프리츠 하버가 빠질 수 없다.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으로 지금의 80억 인류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다. ‘공기로 빵을 만든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은 멜서스의 트랩을 멋지게 깨뜨려버렸다. 하지만 그 위대함을 상쇄시킬 만큼의 죄악을 인류에 끼치기도 했다.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를 있게 한 독가스를 제조했다. 자신도 유대인이면서 자신의 사촌을 비롯한 수많은 유대인과 집시들을 죽음으로 몰아놓은 가스를 제조한 것이다. 그리고 독가스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농약이 되고 많은 지역의 봄을 침묵시켰다. 20세기의 성배인 질소를 멋지게 만들어냈지만 최악의 과학자로 이름을 남긴 프리츠 하버는 오리나무와 질소 앞에 항상 생각나는 이름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솟대가 떠오른다. 실상사의 돌도 만든 솟대 솟대. 우리 지리산을 지키는 사람들도 솟대이고 솟대 위의 오리가 아닐까 한다. 하늘과 민초들의 삶을 이어주던 오리처럼 사람과 자연, 사람과 지리산 사이에서 솟대와 오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 중심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을 고민하는 것. 우리가 소중한 만큼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자연의 고마움을 아는 것. 인간의 볼 권리가 자연의 생명을 우선하지 않는 것. 인간의 편리함에는 항상 자연의 희생이 동반된다는 것 등 무수한 파괴의 현장을 알리고 무심코 뽑아 쓰는 휴지 한 장, 종이컵 하나에도 생명이 들어 있음을 알고 이어주는 오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2년. 오리야 날자. 다시 한번 힘차게!
    • 연재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2-10
  • 한신으로 들다
    한신으로 들다 사람들은 나무를 참 좋아한다. 지리산에서 나무를 만나고 싶다던 누군가가 지난여름에 뜬금없이 ‘목동반’을 만들자고 한다. ‘목요일은 나무 동무’를 줄여서 ‘목동’이란다. 이름이 귀엽다. 매주 목요일마다 숲으로 깃들면 좋으련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만 들기로 했다. 2021년 9월 구례를 시작으로 하동, 산청, 함양, 남원 방향으로 매월 지리산을 돌아보기로 했다. 12월은 함양 한신계곡으로 들었다. 한신은 깊고 넓은 계곡으로 인해 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이란다. 겨울 숲의 나무는 잎이 없어 여간해서는 알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겨울에 나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뭇잎이 없는 나무는 일단 눈높이에서 보이는 줄기로 시선이 간다(줄기가 벗겨지는지, 갈라지는지, 모양, 색깔, 상처에 흐른 수액의 색깔, 껍질눈의 모양 등을 봐야 한다). 그리고는 시선을 올려 잔가지(나무초리)를 본다. 나무초리가 마주나는지 어긋나는지고 봐야 한다. 그리고 지난가을의 열매가 있는지 찾아본다. 겨울눈도 들여다봐야 한다.(겨울눈과 나무초리에 털이 있는지, 맨눈인지 비늘로 쌓여있는지, 비늘 조각은 몇 쌍인지, 모양과 크기, 색깔도 살펴야 한다.)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나무를 볼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위아래로 훑어보면 기분 나빠하는데, 나무는 위아래로 훑어봐야 한다”라고 항상 강조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나무마다 찬찬히 훑어보고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다. 고로쇠나무, 고욤나무, 산뽕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을 읽어본다. 걸음이 느리다. 그러다 보니 한신계곡 입구에서 벌써 간식을 풀었다. 마침 지나가는 등산객이 웃는다. 시작부터 먹고 가는 모습이 재밌어 보이기도 보인듯하다. 느리게 나아가다 보니 해가 들지 않는 계곡은 더욱 춥다. 손과 발이 시리다. 속도를 내어 걸어본다. 재촉하는 걸음에도 계속 나무는 눈에 들어온다. 층층나무와 곰의말채나무를 비교해본다. 가로로 껍질눈을 가진 산벚나무와 개회나무도 비교해본다. 지각변동을 하듯 껍질이 벗겨지는 박달나무, 아주 얇게 그물 모양으로 껍질이 벗겨지는 피나무를 본다. 그리고 한신계곡에서 가장 많은 나무인 서어나무를 만난다. 서어나무의 이름은 유래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자로 서목(西木)이라 하여 ‘서쪽 나무’라는 의미란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다른 유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의 시선을 남원시 운봉읍 행정마을의 마을 숲으로 서 있는 서어나무숲에 머문다. 우리나라의 마을숲은 풍수지리학으로 보통 설명이 된다. ‘마을을 보호하는 숲’이란 뜻의 비보림(裨補林)은 마을의 액과 재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물고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어부림(魚付林), 마을의 기운을 담아주는 역할을 하는 수구막이 등이 있다. 이중 행정마을의 서어나무 마을숲은 마을의 액을 막기 위해 만든 숲이다. 키가 20~30m에 달하는 서어나무는 밝은 색의 껍질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위용의 서어나무는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쉬이 막아낼 듯싶다. 서어나무는 우리 문화에서 실용적으로 사용되는 곳이 없다. 불땀이 없어 장작으로는 매력이 없고 껍질이 얇아서 표고목으로 활용도가 높지 않다. 줄기가 곧지 않아 목재나 가구를 만드는 용도로도 쓰지 않는다. 하지만 행정마을의 마을숲처럼 마을의 중요한 자리에 서 있는 모습으로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냥 서 있으면 된다. ‘서 있으면 되는 나무’라는 뜻에서 ‘서나무’가 되고 지금은 ‘서어나무’라 불리는 듯싶다. 목재나 가구재로도 사용이 안 되는 이유는 울퉁불퉁한 줄기가 한몫을 한다. 그 줄기가 아주 특이해서 사람들은 ‘근육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왜 이런 줄기를 가지고 있을까? 줄기의 굴곡은 양분이 모여서 생긴 것이다. 양분은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은 힘을 준 모양을 말해준다. 커다란 나무의 줄기가 굴곡이 생기려면 어린 나무 시절부터 울퉁불퉁하게 힘을 주던 것이 누적되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서어나무는 숲이 변해가는 천이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 들어오는 나무이다. 서어나무가 우점한 숲은 안정된 숲이라는 말이다. 서어나무는 숲에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00년의 천수를 누린다. 그러나 숲의 주인으로 위풍당당한 서어나무는 사실 겁쟁이 나무였다. 다른 나무에는 별거 아닌 바람에도 어린 서어나무는 두려워서 반응을 했다. 이리저리 불어오는 바람마다 에너지를 쓰면서 줄기의 굴곡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위풍당당한 모습에는 두려움에 떨던 어린 시절이 숨어있었다. 이제 2022년 임인년이 시작되었다. 지난해처럼 우리는 한 해를 보낼 것이다. 2021년이 그랬듯이 어떤 상황은 나를 힘들게 할 것이고, 또 어떤 관계는 나에게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 관계, 상황들이 삶의 근육을 만들어준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날들을 지나왔지만 또 어떤 바람에 흔들릴지도 모르는 시간을 살아갈 터이다. 수 십 년을 버텨 근육이 가득한 서어나무는 이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까? 두렵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내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삶일 것이다. 서어나무와 다르지 않은 나의 삶.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별에도, 서어나무에도, 그리고 나에게도.
    • 연재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1-07

실시간 지리산 생태 이야기 기사

  • 산악열차와 공공선
    지리산, 설악산 등 우리나라 주요 산들은 개발하려는 움직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내가 사는 남원 지리산에도 그 바람은 거세다. 산과 강처럼 자연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건만 정치인들은 표에 이득이 될 것 같으면 배설하듯 개발 공약을 내뱉는다. 지난 10월 24일은 세계 소아마비 날이다. 10월 28일은 전 세계 소아마비 퇴치를 가능하게 한 '조너스 소크'가 태어난 날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광복을 이야기해 보자. 1945년 8월 15일 광복은 민족의 독립투사에서부터 조선의 민중들까지 한마음으로 일제에 항거한 결과가 쌓이고 쌓여 서서히 무르익어갈 무렵에 엄청난 한 방이 터진 결과로 이룩하게 된다. 그 어마 무시한 한방은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은 각각 ‘리틀보이’와 ‘팻맨’이라는 코드명이 있다. [난쟁이와 뚱뚱보]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코드명은 당시 미국 대통령인 루즈벨트와 영국 수상인 처칠의 별명이다. 영국 수상은 몸이 뚱뚱해서 별명이 그렇다 치자. 하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은 키가 188cm이다. 그런데 난쟁이라니 이상한 별명이다. 이 이상한 별명에는 사연이 있다. 루즈벨트가 정치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39세 나이에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에 앉아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난쟁이라 놀린 것이다. 개인의 안타까운 질환을 놀리는 행위는 우리 정서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표현이 자유로운 미국에서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리 불렀다고 한다. 특히 핵무기를 개발하는 맨하튼 프로젝트는 국가 주도로 진행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안타까운 질병에 관한 별명을 코드명으로 사용한 것은 다시 생각해도 대단해 보인다. 우리는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예술, 창작, 표현을 자유롭게 풀어내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미국의 또 다른 힘인 듯싶어 부럽기도 하다. 소아마비는 5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에게 주로 걸리는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한번 발병하면 사망하거나 장애를 안게 될 확률이 아주 높은 무서운 병이다. 실례로 미국에서 1952년 한 해 동안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들이 58,000명이라는 보고가 있다. 이 중 3,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사망하고, 20,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장애를 가졌다. 루즈벨트는 자신을 괴롭혔고 많은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는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그래서 많은 의사들이 예방과 치료를 위한 노력을 쏟게 된다. 1955년, 드디어 '조너스 소크'에 의해 백신이 개발되었다. 제약회사들은 돈다발을 들고 그를 찾아갔다. 특허를 내고 백신을 생산하기만 하면 말 그대로 돈방석에 앉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크는 어떤 제약회사에도 백신을 팔지 않았다. 대신 모든 제약회사에 백신 만드는 법을 알려주어 누구라도 돈이 없어 백신을 맞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방송 인터뷰가 쇄도했다. 사회자가 “왜 백신에 특허를 내지 않았나요?”하고 물었다. 이때 소크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긴다. “태양에 특허가 있나요?” 사람들 누구나 공짜로 태양 빛을 이용하듯이 자신이 개발한 백신도 누구든 돈에 구애받지 않고 맞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공선의 실천이다. 누구나 말은 쉽게 하지만 자신에게 엄청난 부을 안겨줄 이익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 어려운 일을 알지도 못하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실천한 것이다.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국가를 상대로 수익을 올리면 안된다. 그리고 사유화해서도 안된다. 마찬가지로 국립공원도 국립공원에 사는 뭇 생명이 주인이다. 몇몇 정치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약을 남발하고, 개발하고, 이용하는 대상이 되면 안 되는 곳이다. 국립공원은 인간 활동 때문에 무기력하게 파괴되는 자연이 이대로 가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위기감에 사람들이 이곳만은 지키고자 만든 곳이다. 우리 국민 모두의 약속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그곳은 한 줌도 안 되는 정치인과 공감력이 없는 무서운 과학자들이 재능을 시험하는 곳이 아니다. 제발 산악열차가 놓이지 않기를 바란다.!!!! 제발 지리산이 그대로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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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11-17
  • 단풍이야기
    <국립공원의 가로수가 산의 경치를 가로막고 있다.> 계절은 봄에 꽃의 손을 잡고 산을 오르고 있었다. 새순과 더불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계절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 나뭇잎과 동무하여 내려오고 있다. 산을 오를 때는 연분홍의 수줍음으로 산을 오르더니 내려올 때는 빨갛고, 노랗게 잔뜩 상기되어 내려오고 있다. 단풍이 든 것이다. 단풍이란 무슨 말일까? 노란 은행잎을 보면서도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붉은 단풍나무를 보면서도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갈색으로 변한 잎들을 보면서도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단풍은 어떤 색일까? 사람들은 단풍이라 하면 붉은색을 떠올린다. 어릴 적부터 들어온 단풍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붉은 색을 가장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단풍은 붉은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란색을 포함하여 나뭇잎이 변해가는 여러 가지 색들이 있다. 그럼에도 붉은색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붉은 것은 열정적이고, 뜨거운 색이어서 뇌리에 깊게 각인되기 때문일 것이다. 단풍(丹楓)은 붉은 ‘단(丹)’에 단풍나무 ‘풍(楓)’ 자이다. 단풍나무 ‘풍’은 나무 ‘목’에 바람 ‘풍’ 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글자이다. 즉, 단풍은 붉은 바람이 나무에 드는 것이다. “나무에 붉은 바람이 든다.” 영화나 드라마의 제목을 연상시키는 감상적인 의미가 들어 있어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단풍이다. 붉은 빛을 강조한 것을 보면 옛날 사람들도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색깔 중에서 유독 붉은 빛이 기억에 남았었나 보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유독 가슴을 설레게 한다. 봄에 피는 꽃이 그러하며, 겨울에 내리는 눈이 그러하고, 가을날의 단풍이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러나 단풍으로 인해 설레는 것은 봄의 흥분과는 다르고, 겨울의 편안함과는 다르다. 가을의 설레임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설레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이상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가을 낙엽이 주는 멋은 역시 고독한 설레임이고 외로운 가슴이 뛰는 것이다. 가을에 지는 낙엽은 일 년을 마무리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른 봄부터 뜨거운 여름을 지나 보내고, 결실을 맺는 가을을 갈무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을의 멋을 만나기 위해 산을 찾는다. 내가 사는 주변인 지리산 뱀사골에도 아주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그리고 길에서 단풍을 뒤로하고 멋지게 인증 샷을 찍는다. 사람들이 예쁘게 사진을 찍는 데 불편하다. 삼삼오오 모여서도 찍고, 혼자 멋을 내며 사진을 찍는 데 불편하다. 이 불편함은 가로수로 심어진 단풍나무 때문이다. 그냥 단풍나무가 아니라 새순 때부터 붉은 잎을 달고 나오는 ‘홍단풍(노무라단풍)’이어서 불편하다. 우리의 산에, 아름다운 국립공원에 단풍을 구경을 와서 홍단풍 앞에서 멋있게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국립공원은 생태계를 인간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하여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래서 국립공원 내에서는 나뭇잎 하나를 따서도 안 되며, 가을이 되어 말라버린 억새를 하나 꺾어도 안 된다. 2010년 어느 가을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함께 단풍을 보러 성삼재에 올랐다. 시암재 방향으로 도로를 걷다 눈앞에 흔들리는 억새를 보니 씨앗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민들레 씨앗을 날리던 생각이 나면서 억새를 하나 꺾었다. 아들 앞에서 민들레 씨앗을 후하고 불어 날리듯이 입으로 바람을 세게 불어보았다. 억새는 민들레처럼 날리지 않았다. 이 광경을 누군가 보고 있었다. 공단 직원이 소리치며 달려와서는 혼을 낸다. 국립공원에서는 풀하나 나뭇잎 하나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을 모르냐고 아주 강하게 이야기를 했다. 아들 앞에서 많이 머쓱해졌다. 그렇지만 잘못한 것은 맞기에 미안하다고 했다. 잠시 지난 경험을 이야기했지만 국립공원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런 곳에 왜 일본단풍나무와 그것을 개량한 노무라 단풍을 심었는지 묻고 싶다. 사람들이 그냥 단풍인 줄 알고 사진을 찍어서 그렇지 가로수로 심어진 나무가 일본산이란 것을 알면 쓴웃음을 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비단 일본산 나무를 심은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만은 아니다. 국립공원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산은 산세가 아름답고 그곳에 살고 있는 나무와 풀이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가로수가 모두 막아버린다. 가로수는 삭막한 도시의 녹색을 담기위해 심는다. 도시의 공기를 정화하기 위해 심는다. 바쁜 도시의 생활에서 잠시 시선을 풀꽃에서 쉬어가라고 심는 것이다. 이런 가로수를 깊은 산의 골짜기마다 심는다는 것이 너무도 이상한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무계획적이고, 무조건적인 가로수 심기는 정말 재고되어야 한다. 이야기하는 김에 한두 가지를 더 보태려 한다. 뱀사골에서 성삼재로 가는 길에 심어진 만첩빈도리(겹꽃일본말발도리)와 영산홍(일본철쭉을 개량해서 만든 것)도 정리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국립공원이 진짜로 우리의 산이 되고, 인간의 간섭이 없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사람들은 산의 아름다움을 만나고자 모여들고 있다. 산은 보답이라도 하듯이 계절을 내려 보내고 있다. 먼 산의 능선에서 시작한 단풍은 이미 사람의 마을 가로수에까지 내려와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에 낙엽이 흩날린다. 어린 날 책갈피에 꽂아두던 은행잎이 생각난다. 그래 은행잎 하나를 주워야겠다.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심어진 홍단풍으로 인해 사람들은 일본단풍나무가 지리산 자생종인줄 안고 단풍예찬비까지 세웠다.>
    • 연재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10-26
  • 뱀사골 계곡에서
    뱀사골 계곡에서 지리산 숲해설 대표 김귀옥 지리산국립공원 뱀사골 탐방안내소를 지나 뱀사골 생태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물고기가 유유히 노니는 커다란 물웅덩이 같은 소가 나타난다. 그 소는 푸른빛이 돈다. 엄밀히 말하자면 초록빛이 돈다. 소가 잘 바라보이는 곳에서 계곡물 소리와 그 초록빛과 헤엄치는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시간을 갖곤 한다. 그렇게 맑은 물을 바라볼 수 있음에 행복해하면서도 한구석으론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이 자주 든다. 그 까닭은 청소년 시절 내가 살던 곳인 울주군 궁근정리 개울의 둥글둥글하면서 흰빛으로 빛나던 돌들과 맑게 흐르던 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개발의 미명 아래 물길이 바뀌고, 호박돌의 색깔이 바뀌고, 물에 비치던 하늘빛마저 바뀌어 안타까운 마음을 추스르느라 몇 년을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어서이다. 그나마 젊은 시절에 동생과 함께 한 지리산 여행길에서 마주했던 뱀사골 계곡의 물은 청소년기의 궁근정리 개울에서 받았던 안타까운 마음을 치유해 주는 고마운 물, 아름다운 물로 다가와 주었다. 이순을 넘긴 나이가 된최근에는 뱀사골 계곡에서 살고 있는 수서곤충을 관찰하는 기회가 있었다. 큰 바윗돌 사이 사이에 있는 작은 돌들을 들추면서 작은 생명들을 찾아 물이 든 채집통에 모은 뒤 참여자들과 함께 살펴보았다. 한국강도래, 진강도래, 부채하루살이, 알통하루살이, 물날도래KUa, 바수염날도래로 보이는 맑은 물을 증명해 주는 물 속 주인공들을 만났다. 아직은 뱀사골 물 속에서 잘 살고 있어서 참 고마웠다.젊은 시절에 만났었던 뱀사골 계곡물에 비해 비록 유량은 줄어들고 그 초록빛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뱀사골 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주변을 보면 그 아름다움 옆에 공존하는 불길함이 보인다. 깊은 숲속에 도로를 내고, 자동차가 심심치 않게 다니고, 심지어 포크레인을 동원해 주차장을 만들어서 숲이 훼손되고 있음이 보인다. 거기에다 엄청난 숫자로 드나드는 탐방객들이 옮겨 두고 가는 세속의 때가 더해지고, 야영객들이 머물고 간 뒤의 혼탁한 흔적들까지 쌓이면서 물속 산소가 모자라고, 물속의 온도가 올라가고, 유기물의 농도가 자꾸 높아지고 있음을 뱀사골국립공원 입구 다리 아래쪽의 자갈돌, 호박돌의 미끄러움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뱀사골 계곡에서 살고 있던 작고 여린 수서곤충인 강도래와 하루살이와 날도래들의 다양함과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음을 나만 느끼는 걸까? 이네들이 사라지면 낙엽이 떨어져 물속에서 썩어도 치워줄 이가 없게 되고, 물 속 자갈돌 위에 자라는 녹조류를 먹을 이가 없게 되고, 나아가 이들을 먹고 살아가는 물까마귀와 꺽지와 쉬리는 어디서 먹이를 구할 수 있을까?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진대, 우리 사람들이 구태여 간섭하여 망치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이기적인가! 생물들의 서식처를 훼손하는 행위들을 멈출 때 먹이사슬의 고리는 더욱 다양하고 튼튼하게 연결될 수 있다. 뱀사골 맑은물은 물속의 수많은 주인공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먹고 먹히는 길고 긴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얻어낸 소중한 결과물이다. 시멘트 도로, 자동차 통행, 넓은 주차장, 손만 뻗으면 물이 닿을 듯한 위치의 견고한 나무 데크, 관광을 위한 편의시설 등이 국립공원에는 없어도 되지 않을까?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서식처를 교란시키고 파괴하는 여러 행위들을 멈추어야 한다. 이젠 멈추자. 노인이 된 나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노인이 되었을 때도 진강도래 애벌레, 바수염날도래 애벌레, 부채하루살이 애벌레가 잘 살아가고, 뱀사골 계곡의 초록빛 물이 위풍당당하게 계속 흐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필자 젊은 시절의 뱀사골 소 바수염날도래 애벌레와 집 진강도래 애벌레 부채하루살이 애벌레
    • 연재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9-28
  • 만복대를 걷다.
    7월의 목동반은 만복대로 향했다. 능선의 시원함과 여름 풀꽃이 우리 걸음과 함께 한 날이었다. <하늘말나리> <말나리> <검나무싸리> <지리터리풀> 만복대로 오르기 위해 정령치 주차장에 모였다. 정령치는 마루금 복원으로 터널을 만들고 식생을 복원했다. 식생복원이라고 하지만 영산홍과 일본 원예종인 홍단풍(노무라단풍)이 심어져 있었다. 우리의 문제 제기로 홍단풍은 제거 되었지만 아직도 영산홍은 그대로이다. 이제 계단을 오르려 한다. 그런데 계단 입구 오른쪽에 ‘해충기피분사기’가 있다. 사람들은 제 몸에 칙칙하고 뿌린다. 해충. 사전적 의미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은 인간의 서식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의 서식지에서는 인간이 최선이고, 인간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며, 인간이 지고지순한 가치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숲은 인간의 서식지가 아니다. 나무와 풀을 비롯한 식물을 먹이와 은신처로 살아가는 크고 작은 동물들의 서식처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숲은 그곳에 사는 동물과 식물이 주인이다. 사람이 숲에 가는 것은 그곳에 살기 위함이 아니다. 잠시 스쳐 지나는 것이다. 그럼 주인에게 해로운 대상은 누구인가? 사람의 서식처에는 온갖 벌레가 해로운 존재라고 한다. 그럼 동식물의 서식처에는… <해충기피제 분사기의 친절한(?) 설명서 > 지난 6월에 함양에서는 함양교육청 주관으로 생태강좌와 환경교육포럼이 진행되었다. 함양의 상징인 상림에 대한 발표는 나와 함양여중 학생이 발제를 했다. 여학생의 주제는 ‘상림의 해충과 벌레’였다. 천년의 숲, 상림은 본디 동식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상림에 운동이나 산책을 하면서 사람을 귀찮게 하는 벌레를 해충이라 부르며 없애고 있다. 해충기피제를 뿌리고, 가로등 아래 설치된 해충살충기의 기계 소리가 불빛으로 날아온 벌레를 빨아들이고 있다. 숲의 주인인 벌레를 쫓거나 잡아 죽이면서 숲을 걷는다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발제를 했다. 사람이 불편하지 않으면 정의로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로 던진 것이다. 그 어린 14살의 중학교 1학년이 보기에도 어색한 ‘해충’ 이미지가 안타깝게도 국립공원 정령치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숲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당연히 불편한 벌레가 살고, 독초라 불리는 사람에게 해로운 식물도 있다. 사람에게 좋고 나쁨이 같이 있는 것이다. 숲이 좋으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숲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녀가는 것이다. 그게 숲을 대하는 바른 태도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이다. 숲에 벌레가 있다고 민원을 제기하면 그 민원을 들어줄 것이 아니라 계도를 해야 한다. 국립공원이 진정한 동식물의 보고가 되고, 오랫동안 그 자연과 함께하려면 우리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지금 전 세계는 탄소중립이 화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산악열차가 덜컹거리며 지리산을 오르려 발악을 하고 있다. 숲의 주인인 벌레를 해충이라 부르는데 거부감이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자연을 무시하고, 숲을 파괴하면서 사람만 잘사는 법이 있을까? 단언하건대 없다!
    • 연재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8-19
  • 멸종위기 물고기 보전 협약식
    지난 7월26일 함양군 대회실에서 남강 수계 멸종위기 담수어류 보전협의체 업무협약(MOU) 있었다. 국립생태원, 낙동강유역환경청, 진주시, 산청군, 함양군,진주교육지원청, 산청교육지원청, 함양교육지원청, 수달친구들, 진주환경운동연합, (사)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주)생물다양성연구소 참여 했다 협약목적은 국립생태원과 남강 수계 관계기관은 멸종위기 담수어류(여울마자 등) 보전및 서식지 보호 활성화, 멸종위기 담수어류 보전 및 서식지 보호, 멸종위기 담수어류 가치 홍보 및 시민 교육, 기관의 상호 합의한 협력 사항 및 공동 발전 방안 마련 하고자 진행 되었다.
    • 우리마을
    • 함양
    2022-07-29
  • 두지터. 절망을 지우는 길
    6월 목동반 산행은 백무동에서 칠선계곡으로 가는 길인 두지터이다. 백무동 버스터미널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못난이쌤이 이번 산행 일정은 잦나무 군락까지 갔다가 돌아내려 오는 길이라고 설명하였다. 김귀옥․김문숙 선생님이 작년 산행에 갔었는데 “두지터 길은 잦나무 군락이 아니라 일본잎갈나무 군락이라고 하셨다.” 하여 가서 확인해 보자고 하며 길을 시작했다. 알록제비꽃 숲 입구에 알록달록 올라온 알록제비꽃 잎을 시작하여 참반디꽃들이 소박하게 피어 있었다. 백무동에 계곡에는 밤새 비가 왔는지 바위들이 미끄러워 다들 조심조심하며 길을 올랐다. 그 지독한 가뭄을 뚫고 나무는 꽃을 올렸고, 꽃을 피웠던 나무는 열매를 달고 있었다. 작살나무의 향은 여전히 작살나게 좋아 김귀옥 선생님은 이름을 허벌나무로 바꿔야 한다고 하셨다. 향이 허벌나게 좋아서. 그렇게 작살나무에 취하고 서로의 농담에 웃기도 하면서 길을 걸었다. 예전에 이 외길 숲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분들은 지금처럼 과학이 가미된 등산화도 없이 통풍이 잘되는 옷도 없이 산길을 고스란히 발로 느끼며 땀을 흘리며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 삶의 흔적들은 숲에 쌓여 진 돌담과 밤새 비바람에 떨어진 맺지 못한 감나무 열매와 호두나무 열매들이 보여 준다. 마을에서 살지 못하고 이 깊은 숲까지 들어온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숲은 분명 친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들어온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오소리에게 그랬듯이, 반달곰에게 그랬듯이, 그리고 미역줄나무에게 그랬듯이 친절하지 않으나 무심히 그 생명을 품었을 것이다. 너의 이름은? 길이 외길이다 보니 선두 잡은 못난이쌤과 거리가 먼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몇몇 나무 앞에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작살인지 병꽃인지 헷갈렸던 나무는 나뭇잎을 따서 못난이와 가까웠을 때 물어본 김문숙 선생님 덕분에 괴불나무로 정정 되었고, 고광나무라고 생각했던 나무는 말발도리로 정정이 되었다. 두지터 가는 길은 덩굴나무가 많았다. 칡과 머루가 나란히 오르고 있어 칡과 머루의 다른 점을 알게 되었고 평소 헷갈렸던 노박덩굴과 털노박덩굴이 친절하게 자신들의 다른 점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미역줄나무의 굵기를 보고 다를 놀라워하면서 선녀 부채 같았던 열매를 슬며시 만져보기도 했다. 깊은 숲에서나 볼 수 있는 할미밀망덩굴. 나무를 공부하지 않으면 다들 풀이라고 외칠 사위질빵이 자신의 목본 정체성을온온몸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선녀가 든 부채모양의 열매-미역줄나무 어떤 시간을 살았길래 이렇게 깊은 주름이 있는 걸까? 털노박덩굴 두지터 오르기 전 잦나무와 일본잎갈나무 논쟁은 잦나무로 판명이 났다. 다들 잦나무 향이 이렇게 코에 맴도는데 어떻게 다른 나무로 착각했냐고 하니 김귀옥 선생님이 그때 걸었을 때는 겨울이었고 우산을 들고 있어서 땅을 보고 걸으셨다고 하셨다. 그래도 선생님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잦나무 군락 직전에 아름드리 일본잎갈나무가 서 있었다. 양팔을 벌려도 다 안을 수 없을 정도의 굵기였다. 아마 그 나무 요정이 김귀옥 선생님과 김문숙 선생님의 눈을 홀리지 않았을까? 하여 우리도 반쯤 두지터 길에 홀려 미소를 가득 안고 길을 걸었다. 어제는(6월29일) 남원시청 앞에서 산악열차 반대 촛불집회를 다녀왔다. 다들 힘든 싸움이 될 거라고 한다. 형제봉의 산악열차 문제가 지금 남원으로 번져 정령치에 산악열차를 놓겠다고 한다. 꺼진 불이라고 여겼던 설악산 케이불카는 불씨가 오르더니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우리의 산과 강은 아마 더 큰 시련이 올 것이다. 두지터 길을 함께 걸으면서 어제 느꼈던 절망이, 그 한숨이 점점 지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산과 강을 파헤치려는 의도를 무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든 것은 아니다. 김소연 시인의 시집 ‘시옷의 세계’에서 “절망과 어려움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밥처럼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사이로 희망이 끼어들어 이유를 완성한다.”라고 하였다. 이 절망을 내 이웃과 밥처럼 나누다 보면 그 밥이 힘이 되고 희망이 되지 않을까? 지금 절망 중이신 분들은 이웃과 함께 두지터 길을 걸으시라. 그 호젓한 길들이, 풀들이, 나무들이 당신과 연대해 줄 것이고, 숲은 그 옛날 절망을 품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품을 열어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무심히 길을 열어 줄 터이니......
    • 연재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7-13
  • '식물이름에 왜 동물이?
    오늘은 식물이름에 숨어 있는 동물을 찾아봐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토끼풀’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센스쟁이~ 또 뭐가 있을까요? ‘제비꽃’ 광한루에서 뇌병변장애인 대상으로 숲체험을 했다. 한가로이 거닐면서 그 분들과 동물이름이 들어 있는 식물을 찾는다. ‘소나무요’ 어! 금새 숨어 있는 동물을 찾아낸다. 근데 소나무의 소가 그 소일까요? 일단 소리로는 같으니 그렇다하고 또 찾아봐요. 소나무 아래에 또 보이는데 뭘까요? 자~ 생각해 봅시다. 개미에게 자손을 멀리 퍼뜨려 주라고 씨앗에 개미가 좋아하는 영양물질을 배달비로 붙여 놓는~ 보라색 꽃을 피우고 오랑캐꽃이라고도 하는~ 몰라요. 다 잊어먹었어요 ㅎㅎ 꽃이 보이지 않으니 몰라본다. 제비꽃 잎인데 이제 아시겠지요? 아! 제비라는 새가 숨어 있었네요. 제비꽃이라는 이름은 꽃이 물 찬 제비와 같이 예쁘다거나 튀어나온 꽃뿔의 모양이 제비를 닮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옛 문헌에서 뒤통수의 한가운데에 골을 따라 아래로 뾰족하게 내민 머리털을 ‘제비초리’로 표현한 것에 비추어, 제비꽃은 꽃의 생긴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광한루에서는 오늘 드라마 촬영을 한다고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김혜수가 주연이라는데 꼬빼기도 볼 수가 없다. 철통?수비?를 한다. 광한루와 오작교로는 접근을 차단하는데 혹여 우리들이 카메라에 잡힐까봐서란다. 그런 탓으로 무료입장이란다. 우리들은 그들이 머얼리 보이는 곳으로 다니며 식물속의 동물을 찾는다. 잔디관리를 아무리 잘한다 해도 그들은 비집고 들어선다. 누굴까요? ‘토끼풀’ 징그러운 토끼풀~~ 모두 토끼풀에 데인 사람들 같다. 토끼풀은 땅속으로도 달리고 땅위로도 달린다. 몽골에서 생토끼가 땅굴을 파놓고 들락거리는 것을 봤는데... (토끼풀과 잔디는 지표면과 지하에서 서로 공간을 나누어 가지지만, 토끼풀은 마침내 지표면을 피복함으로써 잔디는 빛 경쟁에 밀려 살아남지 못한다.) 토끼풀이라는 이름은 토끼가 잘 먹는 풀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유럽 원산으로 20세기 초반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토끼풀’이라는 한글명은 <조선식물향명집>에서 최초로 발견된다. 여기 또 한 가지 있는데 잎을 먹으면 신 맛이 나고 고양이가 배 아플 때 먹는 소화제~ 아! 내장산에서 먹었는데... 먹었다는 것만 생각나죠? ㅋ 괭이밥이랑께요~~ 우리들은 소화불량일 때 뭘 먹는가요? 괭이밥이라는 이름은 식물체에 들어 있는 산 성분이 소화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어 고양이가 소화가 되지 않을 때 뜯어 먹는 풀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광한루 서문 입구에 노란꽃을 피우고 있는 이름표까지 달고 있는 기린초를 보고는 여기도 하나 있어요. 기린~~ 기린초의 기린이 목이 긴 동물 기린이 맞는지... 암튼 소리가 같으니~ 기린초라는 이름은 한자어 기린초(麒麟草)에서 유래한 것으로, 두꺼운 잎과 노랗게 피는 꽃 모양이 상상속 동물인 기린(麒麟) 또는 그 뿔을 닮았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월매집 담장 가에 살구가, 살구색이 어떤 색인지를 보여주며 먹음직스럽다. 떨어진 살구가 맛있다는데 하나씩 주워들고 쪼개 먹는다. 씨가 깔끔하게 떨어진다. 대여섯 개씩 먹으면 좋으련만... 앵두가 빨갛게 이쁘다. 연못가에 부처꽃이 피었다... 오늘 만난 식물속의 동물을 복습해서 뇌를 깨운다. 기린초, 괭이밥, 토끼풀, 제비꽃, 소나무 오늘 만나지는 안했지만 혹시 생각나는 식물속의 동물 있을까요? 뱀딸기요! 맞아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뱀딸기가 있었네요~~ 뱀딸기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전래된 ‘蛇苺’(사매)를 차용한 것으로 이를 번역하면 뱀딸기가 되며, 열매와 자라는 모습 등이 딸기를 닮았으나 그보다 못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오늘 식물속의 동물을 찾아보니 어땠나요? 재밌었어요~~ 담주에 시험 볼 테니 잊어버리지 말기!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식물이름 속의 동물이 있는데 우선 곤충 이름이 들어 간 식물은 개미자리, 잠자리난초, 나비나물, 매미꽃, 모기방동사니, 벼룩나물, 사마귀풀, 땅빈대. 파리풀, 나나벌이난초 등이다. 곤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류도 있다. 까치박달, 까마귀베개, 닭의장풀, 제비꽃, 꿩의밥, 공작고사리, 오리방풀, 병아리난초, 참새피, 뻐꾹나리, 두루미천남성, 매발톱나무, 황새냉이, 해오라비난초, 새깃고사리, 방울새란 등이다. 양서파충류도 있다. 개구리발톱, 올챙이고랭이, 거북꼬리, 자라풀, 뱀딸기 등이다. 그렇다면 포유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많다. 괭이밥, 쥐똥나무, 박쥐나무, 강아지풀, 곰취, 범꼬리, 호랑버들, 기린초, 노루귀, 말나리, 족제비싸리, 토끼풀, 여우구슬, 고슴도치풀, 다람쥐꼬리, 돼지감자 등이다. 어떤가? 거의가 친근한 동물들이다. 식물은 낯설기도 하겠으나 식물속의 동물들은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친근하다. 어류도 있으며 절지동물도 있고 상상을 뛰어 넘는다. 붕어마름, 미꾸리낚시, 낙지다리, 가재무릇, 조개나물, 새우나무, 부게꽃나무, 거미고사리, 지네고사리 등이다.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라는 책에서 한번 찾아보았다.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다. 우리 땅에 뿌리내리고 오래도록 살아 온 동물과 식물들을 뱀사골을 찾은 탐방객들이 모른다. 국적 불명의 식물들과 동물들은 잘 알면서 우리 것들을 모르는 게 맘이 상했다. 왜 그럴까... 정말 왜 그럴까...
    • 연재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6-18
  • 남생이 탐사단 - 봉서리 남생이가 다니는 길을 탐구한다
    남생이는 이웃 중에서도 가장 느린 이웃입니다. 느린 이웃을 생각해 보면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생이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은 다른 느린 존재들도 안전한 길이 되지 않을까요?
    • 지리산운동
    2022-06-13
  • 찔레꽃
    우리집 마당에는 찔레나무가 있다. 물론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같이 사는 옆지기가 찔레꽃과 향기를 좋아하는데 찔레나무를 파는 곳이 없었다. 하긴 온 들에 산에 지천인 찔레를 누가 팔까? 그렇다고 야생에서 멀쩡히 자라는 나무를 캐오는 것은 못할 짓이어서 아무것도 안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5년 이른 봄에 유기된 찔레나무를 만났다. 사연인즉 우리 집 옆에 사과 과수원을 하시는 형님이 텃밭에 흙이 필요한지 트렉터로 흙을 담아가고 있었다.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를 언제나 살갑게 맞아주는 분이라 만나면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건네는 데 그날도 형님이 나를 보자 트렉터를 멈췄다. 흙 퍼가는 이야기를 하는데 언뜻 보니 흙에 작은 찔레나무가 들어있었다. 물어보니 산에 흙을 퍼오는데 그냥 따라온 것이란다. 올커니! 분명 형님 집으로 가면 버려져 죽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혹시나 심어 키우실 건지 물어보고는 얻어 왔다. 요즘 들개 문제가 종종 거론된다. 문제의 시작은 키우다가 여건이 안된다는 이유로 반려견을 내다 버리는 것이다. 유기견이 된 것이다. 유기동물의 문제는 들개가 되어 사람과 가축, 혹은 야생동물에게 위해가 되는 것만이 아니다. 정을 주고, 이름을 불러주며 같이 살던 반려자를 버리는 반인륜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보면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교육과 정서의 문제가 더해진다. 정말 심각한 일로 엄격한 규제와 처벌 등의 방안이 하루빨리 만들어지고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소한의 규칙이라도 있어야하고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버려지는 것이 동물만의 일이 아니라고 본다. 식물에게도 일어난다. 화분에서 키우던 식물을 야산에 심어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것은 유기이자 생태계 교란이기도 하다. 그러나 식물을 이렇게 유기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내가 유기라고 말하는 것은 길가에서 매번 잘리는 식물이다. 특히 나무는 매년 잘리면 결국 살아갈 수 없다. 같이 살다가 버린 것은 아니지만 깨끗한 길을 위해서, 안전한 길을 위해서 자꾸만 잘리는 것은 사회적으로 버려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기되는 식물’이라 표현한 것이다. 우리 집 마당에 찔레는 이렇게 심어졌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면 찔레 순을 따먹던 어린 날을 기억하고, 오월이면 찔레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찔레~ 그 곱고도 아련한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찔레의 어원은 두 가지로 보인다. 찔레나무를 손으로 잡아보려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꼭 한번은 찔린다. 찔레나무의 가시가 너무 굳세고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가시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가시로 찌르는 나무’인 찔레가 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찔레꽃의 향기다. 특히 장사익님의 ‘찔레꽃’ 노래에는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다고 표현을 한다. 노랫말처럼 슬프게 가슴을 찌르고, 너무 고운 향기가 코를 찌르는 나무라 해서 찔레나무라 불린다.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월이면 우리 집은 찔레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겹으로 꽃잎을 가득 만들고, 꽃의 크기를 키우고, 빨강, 노랑, 파랑 등 현란한 색으로 눈을 사로잡는 탐스러운 장미가 아니다. 홑잎으로 꽃을 피워 장미에 비해 크기가 작고 왜소해 보이며 하얀색으로만 피어나는 찔레꽃을 기다린다. 분명 붉은 꽃잎을 지닌 장미는 탐스럽고 어여쁘다. 피어나는 꽃은 싱그럽기도 하다. 그러나 무언가 어색하다. 그 어색함은 꽃을 가만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들에서 만나는 꽃과는 다르게 장미는 꽃잎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그 꽃잎을 헤치고 벌이 꽃가루나 꿀을 찾아 갈수도 없을 듯싶다. 이렇듯 엄청난 양의 꽃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화려함과 강렬함이 오히려 장미에게 독이 된 것이다. 장미의 원종은 찔레이다. 찔레는 붉은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고 편안하고 순해 보이는 것은 하얀 색의 꽃잎 때문이지 아닐까? 하얀 꽃을 가진 식물은 많다. 그럼에도 유독 찔레나무의 하얀 빛에 정감이 간다. 앞에도 말했듯이 어린 날의 시간을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제주도에서는 찔레를 ‘독꼬리’라 불렀다. 그냥 부모님이 부르고, 형,누나가 부르고, 주변 친구들이 그렇게 불렀다. 독꼬리는 새순이 참 맛있었다. 도톰한 새순을 찾아 가시를 똑똑 분지르고는 껍질을 살짝 벗겨서 입에 넣으면 그 육즙에 향과 보드라움이란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독꼬리’는 아마 ‘닭의 꼬리’를 말하는 것인 듯싶다. 그때는 무언지 몰랐었지만 찔레나무에는 붉은빛이 도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벌레집일 듯하다. 생김새도 닭을 좀 닮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그것이 닭을 닮아서 ‘독꼬리’라 부르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었다.(‘독’은 닭을 제주 사투리로 부르는 말이다. 달걀을 ‘독새기’라고 한다.) 찔레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찔레가 사는 곳이다. 찔레는 숲이 우거진 곳에는 살지 못한다. 가시가 있지만 키 작은 떨기나무이고 햇빛을 좋아해서 다른 나무 밑에서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숲의 언저리나 교란된 곳에서만 살아간다. 열매는 작고 빨갛다. 숲의 언저리는 작은 동물의 서식처다. 힘없는 작은 새의 서식처다. 얼기설기 얽혀있는 찔레나무와 그 가시는 힘없는 동물이 살아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육즙이 풍부한 붉은 먹이도 제공한다. 나에게는 찔레와 된장과 얽힌 이야기가 있는 또 다른 찔레가 있다. 지리산자락으로 귀농하고 처음으로 된장을 담아보았다. 계란을 띄워 소금물 농도를 맞추고, 메주를 넣은 항아리에 붓는다. 빨간 고추 몇 개와 숯을 넣고 대나무를 위에 대주고 깨끗한 돌로 누른다. 시간이 지나서 어찌 되나 한번 항아리 뚜껑을 열었는데 뭔가 하얀 곰팡이가 가득하다. 놀라서 장모님께 전화 드렸더니 장모님께서 ‘응 찔레가 피었어? 괜찮아.’하신다. 저 하얀 곰팡이를 찔레가 피었다고 표현하신다. 다시 옛 어른들의 표현력에 감탄을 한다. 숲의 가장자리에 잘 자라는 찔레는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배부르지는 않아도 먹을 수 있는 하얀 꽃과 새순이 있어 기억 속에 늘 같이 있는 찔레는 하얀색과 연결이 되는 바로 미터였던 것이다. 고향의 그리움이 물씬 나는 찔레가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는 된장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숲의 언저리에서 찔레나무는 숲을 지킨다. 날카로운 가시로 중무장을 하고, 드러누운 줄기로 아무에게나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짐승과 새들에게는 안전한 찔레성벽이 되었다. 5월이면 어린 기억의 추억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떠오르게 하고, 이곳에서는 작은 동물과 숲을 하얗게 지키는 찔레꽃이 기다려진다.
    • 연재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5-18
  • 남생이탐사단을 모집합니다
    봉서리 남생이가 다니는 길을 탐구하는, <남생이탐사단>을 모집합니다. 신청 : http://forms.gle/gFs9pUoYXqNkEq6N8 문의 : 061-783-6547
    • 연재
    • 지리산 생태 이야기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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