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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본성
    공감본성 요즘 도시의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각박한 현실 속에서 간혹 숨통이 막힐 것 같으면 휴머니티를 이야기하며 ‘시골 인심’이니 ‘시골 밥상’이니 하며 시골을 이야기 한다. 절대로 시골에 내려와 살 마음도 없으면서 왜 가만히 있는 시골을 들먹일까? 그 ‘시골’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를 방어하지 않아도 되는 편한 곳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왠지 나만의 사정을 이해해 줄 것 같고 고단한 심신을 어머니처럼 품어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시골은 아직도 ‘공감 본성’이 그대로 일상의 삶 속에 녹아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괴테는 “인간은 함께할 경우에만 진정한 인간이며 유일한 개인이라도 자신을 전체의 일부로 느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만 즐겁고 행복할 수 있다”라고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의미를 정리해서 말했다. 이것은 괴테의 말이지만 표현만 다를 뿐이지 과거 깨달음에 이른 성현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해왔다. 하나만 예를 들면 맹자는“우물에 빠지는 아이를 보게 되면 예외 없이 소스라치며 다급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이건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도 칭찬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무정하다는 비난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인간은 본래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것들이‘공감본성’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다. 오늘날에는 제러미 리프킨이 이런 이야기를 현대의 상황에 맞춰 ‘공감’이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변주해내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공감본성이 있다고 말한다. 다윈도 고등동물들 중에 사회성이 있고 감정이 풍부하고 동료의 곤경을 걱정할 줄 아는 종이 많다고 이야기 한다. 오늘날 공감본성이 크게 회자되는 것은 그 공감본성이 인간 스스로가 가진 ‘본래성품’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 절실해진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가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물질의 소유’가 삶의 절대가치로 올라오고 이것과 함께 경쟁주의, 속도주의, 물량주의, 이기주의 등의 많은 자본주의 문화가 형성되면서 인류는 끊임없이 공감본성을 잃어왔다. 내가 내 것을 소유하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이 험한 세상을 처자식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불안과 걱정에 몰두하며 살다보니 어떻게 공감본성이 발현될 수 있겠는가? 공감의식의 발현은 일상에서 나눔과 섬김이라는 행위로 나와야 할 텐데 그것은 가치관의 전환이라는 자기 인생의 전향적 사고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사회가 되었으니, 말이 쉽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하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는 섬김 의식과 빵과 포도주를 나눠 먹으며 자신의 피와 살(목숨)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나눔 의식은, 기독교의 본질인 사랑이 ‘섬김과 나눔’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 우리 한국 사회만 해도 예수의 제자들이 한 집 걸러 두 집에 살고 있는 실정인데 예수가 깨달은 이 진리의 삶의 방식을 얼마나 실천하며 사는지 모르겠다. 이렇듯 공감본성을 현실사회에서 일깨우고 실천하며 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감본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만이라도 계속 일깨워야 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본래의 나(공감본성)’를 되찾게 될 거라는 생각도 없이 산다면 얼마나 슬프고 불행한 인생인가. 인디언 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인디언이 높은 산정에서 큰 독수리 알을 하나 발견하여 가져왔다. 마을의 닭 울타리 안에 놓았는데 암탉이 이 알을 품어 부화했다. 어미닭보다 큰 새끼독수리는 그렇게 태어나 흙에서 지렁이나 잡아먹고 그 큰 날개로 날지도 못하고 파닥거리기만 하며 어미 닭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며 덩치 큰 평범한 닭으로 살았다. 어느 날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높은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날갯짓도 파닥거리지 않고 늠름하게 편 채로 높은 하늘을 빙 날고 있는 것이다. 너무 멋있고 아름다워서 어미닭에게 물었다. 어미닭은 그 새는 황금독수리라는 새이며 하늘의 제왕이고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존재라고 말하며 어서 지렁이나 잡아먹으라고 말한다. 그 독수리닭은 바쁘게 땅을 후비며 지렁이나 잡아먹고 살다가 마침내 닭이라는 이름으로 죽었다. 우리는 누구나 황금독수리 같은(공감본성을 가진 ‘본래의 나’) 존재인데 닭처럼 살다가 인생을 마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자신이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본성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라는 걸 모르고 닭으로 살다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많이 억울하지 않은가. 닭이라면 닭처럼 살다가 가도 괜찮겠지만 황금독수리가 닭처럼 살다 간다면 이처럼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섬진강변의 남바람꽃 / 사진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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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2
  • 니란자 강가의 숨소리
    니란자 강가의 숨소리 나이를 먹으면서 언젠가부터 ‘시간’은 그 많은 의미와 가치를 버리고 ‘늙음’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 나를 따라 다녔다. 그것은 삶의 지층, 그 어느 바닥에서 막연한 어떤 어둠과 절망의 우울한 안개를 뿜어 올리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매우 못마땅했고 불편했다. 그 ‘시간’이라는 관념을 극복하지 않으면 내 남은 생에 온전한 평화도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시간’에 골몰해 있을 때 불현듯 오래 전 읽었던 헷세의 소설 『싯타르타』가 생각났다.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시간’과 관련된 무엇인가 소설의 말미를 장식했던 것 같았다. 소설을 다시 읽으며 내가 찾던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것은 없다’라는 거였다. 소설 속의 싯타르타는 집을 떠나 스승들을 찾아 구도행을 하다 세속에 들어 돈도 벌고 여인을 만나 사랑도 하고 아들도 얻게 되나 다시 떠돌다 마지막으로 니란자 강가에 이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뱃사공 바수데바를 만난다. 끊임없이 흐르는 세월과 같은 니란자 강이 삶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면 뱃사공 바수데바는 그 강을 자유롭게 건너다니는 각자(覺者)인데 시타르타는 강에서 그와 함께 보내며 깨달음을 얻는다. 강을 바라보고 강의 깊은 소리를 들으며 시간의 관념을 극복하고서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시간의 집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몸’을 떠나 현존할 수 없으니 나에게 시간은 결코 관념이 아니며 골수에 박혀있는 존재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몸에 대한 해석을 바꾸어 몸을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는 명상 의학자 디펙초프라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에게는 몸은 새로운 세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뿐이지 노화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렇게 신체 세포는 항상 새것이며 나이 백 살을 먹어도 살아있는 몸의 세포는 낡고 오래된 것이 아니라 항상 새것이라는 것이다. 피부는 한 달에 한 번씩 새롭게 교체되고 위벽은 5일마다, 간은 6주마다, 골격은 3개월마다 새롭게 바뀌며 한 해가 지날 때면 우리 몸속 원자의 98%가 새것으로 교체된다는 것이다. 흐르는 강처럼 몸은 육안으로는 언제나 같아 보이지만 실은 항상 변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디펙초프라의 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바른 것이며 그러하기에 ‘현존’이라는 개념이 진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몸은 낡은 세포는 버려지고 늘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그것으로 현존한다. 살아 있는 현재가 생명 자체이고 전부인 것이다. 이 전의 죽어버린 세포나 앞으로 생겨날 세포는 ‘몸’이 아니듯이, 말하자면 생명존재의 개념에서 보면 과거나 미래 같은 것은 원래 없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 같은 시간은 만들어낸 관념이며 습(習)일 뿐이다. 신체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고 여길 뿐이다. 그래서 강의 비밀은 ‘시간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상류의 폭포에도 하류의 나루터에도 강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며 인생은 하나의 강일뿐이다. 흐르고 있으면서도(변화하면서도) 과거나 미래라는 것이 없이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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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09
  • 욕망의 인간화
    욕망의 인간화 -닥터 비치의 ‘휴마나이즈(humanize)’를 생각하며 우리 인류는 근대를 진행하는 동안 꾸준히 과학기술의 발달을 이루었고 과학의 발달을 토대로 산업화가 이루어졌으며 산업화는 자본의 축적을 가져왔다. 그리고 21C에 들어선 지금은 우리 스스로도 놀랄만한 문명과 함께 이것들로 인해 역으로 꾸준히 자연은 침탈당해왔음을 본다. 그 결과 자연의 순환질서는 깨지기 시작했고 생명 본성을 거역하는 사회적 가치관이 형성되었으며 개인적 삶의 목표들이 부정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며 세상살이의 우울함을 떨칠 수 없다. 이런 사유와 감상의 어느 지점에서 늘 만나는 질문 하나가 ‘인간의 욕망’이다. 인류사 속의 많은 종교와 사상들이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거론해왔던 ‘인간의 욕망’은 이제 물질만능주의 사회로 진입한 오늘날 최고의 화두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일단 이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 과학과 자본의 결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 속하지만 비치 선생의 ‘휴마나이즈(humanize)’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에 관한 글을 읽으며 잠시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닥터 비치의 이 두 가지에 대한 개념을 간략히 말하면 이렇다. ‘문명이라는 것이 없었던 인류의 초기에는 자연 자체가 커다란 위협이고, 심할 때에는 인간이 죽거나 하는 상태도 있었을 것이다. 휴마나이즈 라는 것은 그러한 환경에 대한 극복 요구로부터 서서히 일어났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테크놀로지란 인간으로서 위협이 없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것이며 테크놀로지의 역할은 가까운 미래에 대하여 세계를 휴마나이즈 (humanize)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휴마나이즈의 제일 기초가 되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안전성이라는 것이다.’ 비치 선생의 과학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는 인간사회에 대한 공동체적 인식과 깊은 휴머니즘이 깔려있어서 감동이 있다. 닥터 비치의 생각은 인간의 과학기술 문명의 출발점과 진행 과정과 미래에 대한 것이지만 시종일관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편안하고 유익하게 할 수 있느냐는 휴머니즘적 인식이다. 하지만 요즘 과학이 자본과 결탁하여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며 ‘인간의 욕망’을 넘어선 ‘탐욕’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과학기술의 인간에 대한 기여는 비치 선생의 순박한 생각을 넘어 인간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인류 최고의 적은 과학도 아니고 자본도 아니고 과학과 자본의 결탁이 만들어낸 ‘탐욕’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문명과 산업자본문명으로 대표되는 근대문명의 진행과정에서 꾸준히 함께 커온 것이 있다면 그건 인간의 탐욕이다. 이 탐욕은 많을수록 좋다는 자본의 속성과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암종으로 굳이 명명하자면 심암(心癌)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준이 되는 가치관과 삶의 목표가 자연스럽게 ‘돈’이라는 것으로 변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는 이미 이 심암(心癌)이라는 암종이 모든 생활반경에 전이되어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닥터 비치는 서서 진료하던 치과의사들을 앉아서 진료행위를 하게 한 혁명적인 치과 진료대를 발명 제작한 사람이지만 자신은 정작 달랑 집 한 채 가지고 변변치 않게 살아가는 가난한 의사이다. 그 진료대와 다른 발명품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기본으로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휴마나이즈(humanize)’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에 관한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참으로 인간적인 과학자요 의사인 닥터 비치의 삶에서 현대 문명인들이 지녀야 할 마음을 본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욕망은 끊임없이 휴머니즘적 욕망(욕망의 인간화)으로 묶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의 말이 해답인지도 모른다. -남바람꽃 / 사진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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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인 칼럼
    2022-04-13
  • 진속불일불이 眞俗不一不二
    진속불일불이 眞俗不一不二 현재 이 시대의 문명이 보여주는 모순과 위기를 감지한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생명평화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생명평화운동은 조금씩 다른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진행되고 있다. 유기농을 매개로 또는 대안학교를 통해 혹은 종교적 관점에서 또는 과학적 관점이나 역사적 관점 등 학문적 접근에서 그리고 정치적, 사상적 관점에서 참으로 다양한 집단과 단체, 개인들이 생명평화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생명평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생명의 존귀함을 부정하거나 평화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생명평화를 얼마나 ‘나’ 개인의 구체적 삶으로 인식하느냐 이며 생활 속에서 얼마나 깊게 느끼며 얼마나 절실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살아내느냐의 문제라고 본다. 인류는 현대에 이르는 동안 꾸준히 과학과 산업을 발달시켜왔고 그 속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일상의 편리와 물질의 풍요를 얻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물량주의와 속도주의의 경쟁 속에서 인간의 ‘욕심’ 또한 꾸준히 키워왔다. 그리고 그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행복해지는 거라는 가치관이 형성되었고 그 가치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 ‘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것으로 변질되었으며 그 개인화 된 욕심은 이미 ‘나’의 밖으로 나와 상대방을 죽이고 빼앗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그만큼의 ‘나’를 잃었으며 우리의 본래면목과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 또한 현대에 이르러 그동안 인류의 삶을 지탱해오던 많은 사상들은 수식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소유의 논리, 힘의 논리, 공격의 논리, 그 단순한 이익의 논리만이 개인과 그 집단과 그 국가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천박한 영혼, 척박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인문학의 저조를 가져왔으며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명상하지 않는 오만한 자아를 키워왔다. 그래서『생명평화결사』에서 내건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라는 슬로건이 대중들에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실 이제는 ‘나’가 변화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화할 수 없을 만큼 ‘나’의 오만과 욕망은 너무 비대해져 버리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현대문명의 모순과 위기 속에서 대안적 삶의 운동으로 시작된 생명평화운동은 궁극적으로는 나의 성찰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론적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자는 운동이며 나아가 공존과 조화의 운동이며 공동체 복원의 운동이다. 2004년 시작된『생명평화결사』는 이러한 의지를 로고에 담아 깃발로 올렸다. ‘나는 물고기이고 새이며 짐승이고 나무이며 달이고 해이다’ 라는 메시지 를 이미지화 시킨 것인데 덧붙이자면 이 세상에 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해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존재요, 세상에 나무가 없다 면 나는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나무에 의지하여 살 수밖에 없는 존재요, 마찬가지로 짐승이 없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으며, 네가 없으면 나는 혼자서 존재할 수 없으니 나는 그 모든 생명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이러한 존재론적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부터가 생명평화운동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저 도토리나무이고 다람쥐며 까마귀이고 갈치 한 마리라는 생각, 그리고 이것은 결코 관념이 아니고 비유도 아니며 구체적 생명현실이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생명평화운동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존재라는 이러한 인식 속에서 출발해야만 세상의 모든 현실적 갈등과 대립을 허물 수 있고 존재의 개별화와 고립을 막고 공존과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생명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眞俗不一不二’는 다양하게 풀이할 수 있겠으나 眞은 자연의 질서요, 俗은 인간의 질서라고 말할 수 있으며 본래 인간의 질서는 자연의 질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인간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고 착취하며 반생명 반평화적이며 자연에 반하는 질서의 그런 문화와 문명을 일구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眞의 세계가 아니며 俗의 세계 또한 아니다. 자연의 질서와 가치를 무시한 세계, 근본이 가진 가치를 망각하거나 무지한 상태의 세계, 이것은 眞도 아니고 俗도 아닌 탈근본의 세계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생명평화운동은 이 자연의 질서와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며 그와 같은 인간의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것은 ‘나’의 존재론적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고 구체적 생명 현실로 구현해내야 하는 뼈저린 성찰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본래의 우리로 돌아가는 당연한 일일 것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껏 추구해온 편리와 부와 욕망의 반대편에서 성찰해야 하기 때문이며 그것을 나눠야 하고 자신을 존재하게 해주는 모두를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평화운동은 현재의 삶의 시각을 교정하고 가치관을 수정하고 삶의 구체적 생활세계를 변화시키자는 운동이며 궁극적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생명평화운동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유기농을 하며 자급자족하는 소극적적인 자기 살리기이거나 자연에 묻혀 도인이 되자는 것쯤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의 공간이나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특히 도시에서 더욱 필요한 운동이다. 철저하게 자연의 질서를 파괴한 도시 속에서도 생명의 순리인 자연의 순환성에 바르게 복무하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길은 내가 감으로써 생겨나듯이 이것이 스스로 절실하고 절박하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은 그 길을 갈 것이고 길은 만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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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인 칼럼
    2022-03-09
  • 탐욕에 대하여
    ■ 『지리산 人』의 생각 탐욕에 대하여 지리산 자락, 섬진강 하류 기슭 어느 구석에 거처를 마련하고 처박힌 지도 벌써 10여년 세월이 흘렀다. 나는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사실은 새로운 인생살이를 꿈꾸며 들어왔다. 누구든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해서는 그 상황과 조건을 바꿔내려고 새로운 각오를 한다. 나도 이곳에 들어오며 새 집을 짓고 상량문에 그 마음을 새겼다. 노자와 묵자에서 빌려와 無爲無不爲무위무불위와 愛人若愛身애인약애신이라는 글을 새겼는데 집이 내려앉을 때까지 얻지 못할 말을 새겨놓고 쳐다볼 때마다 후회하며 살고 있다. 無爲無不爲를 새길 때만해도 나름의 해석을 글로 정리하기도 했는데 그 일부를 보면 대충 이렇다. “......나무는 어디도 가지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세상의 비와 바람을 다 맞는다. 그리고 꽃을 피워 봄이 있게 하고, 벌과 나비의 양식이 되고, 씨를 맺어 생명을 잉태한다. 평생을 한 곳에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또는 세상에게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사실은 이처럼 모든 것은 그 존재 자체로 스스로 빛나는 것이다.......” 무엇을 인위적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無爲無不爲)는 그 말이 당시에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일상에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경지의 삶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그 내용이 멋있어서 그렇게 나댔었나 싶다. 하지만 21세기 현대인들은 이 무위무불위의 진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저절로 운영되는 우주자연의 존재적 질서와 그 존재의 순환적 질서를 철저하게 깨며 이루어낸 것이 오늘날 현대문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은 자본주의를 만나 발전된 것이기에 오늘날 우리 문명사회는 자본의 본질적 특성의 하나인 탐욕을 내장하게 된다. 성장주의나 물량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지독한 이기주의, 이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실현시켜온 현대문명의 특징들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자본의 논리는 끝없이 탐하는 인간의 탐욕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탐욕은 반드시 폭력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돌아보면 이러한 탐욕이 상류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자연스럽게 형성하여 보이지 않게 우리 사회를 폭력적우로 지배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과 법을 집행하는 검사들과 그것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인, 그리고 재벌들이 결탁하면 대한민국은 이들의 나라였다. 그 중심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인 검찰이 있었다. 검찰의 눈으로 보면 누구든 털면 나오는 것이고, 누구든 죄인으로 만들고 안 만들고도 그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하니 골목대장 검찰의 주변에 붙은 언론인과 정치인들, 재벌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검찰은 이러한 자연스럽게 조성된 기득권 세력의 카르텔 속에서 중심을 형성하며 지금껏 부정부패를 저질러온 곳이지만 이것을 바로잡기는 너무 어렵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검찰은 모든 법의 우위에 있는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같은 기관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서 청와대의 수족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족쇄에서 풀려난 지금은 검찰을 통제할 기관이 없으니 그야말로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공수처 설치의 필요성은 여기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검찰개혁인데 문재인 정부가 조국을 앞세워 대대적으로 검찰을 개혁하려하자 검찰은 전쟁을 불사할 수밖에 없었다. 최상위 포식자의 권한을 내려놓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목숨을 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도덕이나 상식과 같은 일상의 룰은 깨지게 되어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는 과정이 아니라 결론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수처라는 상위 포식자가 두려워 전 조국 장관을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그것을 윤석열이 진두지휘 하였으며 검찰은 이제 윤석열 이후 그냥 검찰이 아니라 정치검찰이라는 본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통령 선거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기득권 카르텔에 들어와 있는 언론인과 법조인과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의 본질적 원인을 짚어보면 아마도 4,5백 년 동안 진화해온 자본주의 속에서 제어장치 없이 커온 인간의 탐욕에 이를 거라고 생각한다. 탐욕이라는 것은 생존의 욕구로부터 시작되고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 생존욕구가 탐욕으로 탈바꿈하는 경계선을 인간은 제어하기 힘들다. 그래서 사회적 도덕률과 법률로써 재어하려 하나 그 법률 자체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것도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국회라는 곳이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이익과 파당적 이익에만 매몰되어 필요한 법을 만들어내는 것에도 힘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법이 만들어졌다 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판검사들이 또 조화를 부린다. 그리고 언론들은 그것을 왜곡해서 보도한다. 그러면 올바른 여론은 형성되지 않고 사회적 도덕률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이라고는 1표밖에 없는 국민들이 이들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른 투표를 해서 우리사회의 바른 잣대로서 그 몫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이런 의식을 가지고 바르게 세상살이를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민들 또한 자본 속에서 자라난 탐욕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은 세상에서 탐욕은 이미 21세기의 삶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정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이 탐욕이야말로 폭력의 근원이고 모든 순환 질서를 깨는 근본 원인이지만 이것은 오늘날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는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당위적 삶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우리사회나 다른 누구의 탐욕에는 분노하면서 자신의 탐욕에는 관대한 그런 뻔뻔스러운 삶을 잘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글 박두규 시인) -반야봉 설경(사진 김인호)
    • 연재
    • 지리산인 칼럼
    2022-02-07
  • 自然스러운 사람
    自然스러운 사람 13세기 지금의 터키 지역에 나스레딘 호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당나귀를 잃어버려 울면서 하루 종일 찾으러 다니다가 갑자기 팔을 올리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참으로 감사드리옵나이다.” 이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물었다. “당나귀를 찾다 말고 웬 감사요?” 그러자 호자가 대답했다. “내가 그 당나귀 위에 올라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한다네. 만약 그랬더라면 내 자신도 잃어버렸을 것 아닌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당나귀는 그 지역의 특성상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고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살고 있는 집 다음으로 큰 재산이었을 것이다. 나스레딘은 현자였기 때문에 재물을 잃고서도 감사할 수 있었다. 재물을 잃은 것도 슬픈데 마음마저 잃고 자신을 잃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나귀 위에 올라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은 재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자본주의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재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항상 일상생활에서 손해와 이익을 따지며 산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을 살아갈 수 없는 바보가 되고 무능력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나무가 손해와 이익을 따지면서 서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별이 반짝이는 것 또한 손해와 이익을 계산해서 빛나는 것이 아니건만 얼마나 아름답게 잘 살고 있는가. 우리도 그런 자연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 자연自然스러운 사람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부터 나는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 자연스럽게 살자’는 슬로건 하나를 갖게 되었다. 옷차림이 참 자연스럽다고 하면 세련되고 멋지다는 말이고, 분위기가 자연스럽다는 것은 자유로우면서 편하다는 이야기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꾸밈이 없고 진실하다는 말일 것이다. 더 다양하게 쓰이고는 있지만 종합해보면 ‘자연스럽다’는 것은 진실하며 자유롭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스럽다’는 말의 뿌리는 ‘자연(自然)’이니 사실은 ‘자연’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산과 바다의 일상이나 비가 오고 꽃이 피는 일 등이 자연이고 자연의 현상인데 그것들에 무슨 거짓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성현들은 자연은 진리요 도(道)이고 법(法)이며 생명 그 자체라고 말해왔다. 그러니 인간사 모든 문제의 답도 자연에 있다는 말은 틀림이 없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자연’보다는 ‘자연산(自然産)’만 좋아한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연산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생태환경과 함께 사회적 문제의 본원에 있는 자본주의 대량생산이 가지는 문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어쨌든 현대인들은 그렇게 자연과 거리를 두고 있고 자연이 가진 진리와 도(道), 법(法)이며 생명 그 자체와는 떨어져 살고 있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본 ‘호수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가 제 그림자를 호수 위에 드리우되 일부러 그러지 아니하고, 호수는 기러기의 그림자를 비추되 일부러 비추려하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자연스럽다’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지 않겠는가. 흐르는 물처럼 주어진 삶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자기 본연의 삶을 충실하게 살다보면 타자와도 저절로 어울리게 되고 하나의 완성된 아름다운 그림이 되니 ‘자연’이 바로 그러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기러기나 호수의 마음에 근접해 있는 사람이 바로 ‘자연스런 사람’ 아니겠는가. -박두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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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인 칼럼
    2022-01-16
  • 지리산권에 불어오는 새바람이 되길
    지리산권에 불어오는 새바람이 되길 임봉재 (자문위원) 『지리산人』 이 지리산의 친구로 살아 온 세월만큼이나 지리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통의 길잡이 역할을 해 왔을 것입니다. 이제 인터넷신문으로 탈바꿈하게 된다니 베어져 나가는 나무가 조금은 줄어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반갑기도 합니다. 그동안 지리산자락에 둥지를 틀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은 본 적 없어도 『지리산人』이라는 신문을 통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알아가는 좋은 소통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 왔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기에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 든 어르신들은 인터넷신문을 어려워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여러모로 많은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나름 잘 적응해 가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그 같은 염려는 내려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멈출 줄 모르는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 극심한 몸살에 시달리던 지구, 결국 기후변화와 온난화에도 대응하지 않으니 코로나19가 나타나서 위기에 놓인 지구를 대신하여 그 어떤 정치권력도, 군사와 무력도 피해 가지 못하게 발을 묶어 놓는 현상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잘 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이나 잘사는 나라나 못사는 나라나 다 같이 코로나19의 악재를 피해 가지 못하고 세계가 하나같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까요. 거리두기와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바깥나들이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지도 벌써 2년! 백신으로 답답한 마스크를 벗어버릴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보기도 하겠지만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들의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틀을 바꾸지 않는 한 쉽사리 마스크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더구나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에서부터 이제 갓 태어나는 아이들뿐 아니라 다음세대 아이들은 마스크 쓰고 지내는 풍경이 하나의 당연한 풍속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참 슬퍼지다 못해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지리산人』 신문이 인터넷신문으로 탈바꿈하면서 그만큼의 나무는 살아남겠다 싶어 그야말로 지리산의 좋은 친구 ‘『지리산人』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것에도 장단점이 있듯이 그동안 『지리산人』 을 만드느라 원고 수집에 편집하여 인쇄소로 발로 뛰며 수고하시고 또 우편 발송까지 많은 수고를 하신 선생님들의 고충이 인터넷신문으로 전환되면 그러한 수고들은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을지, 그동안 자문위원이라는 이름만 달고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한 죄스러움과 미안한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 숙여 용서를 빕니다. 그동안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잘 헤쳐 오셨듯이 앞으로도 인터넷신문 『지리산人』 이 새바람을 타고 지리산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반달가슴곰 이야기, 지리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뿐 아니라 철 따라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인터넷신문을 통해 지리산권의 사람들 뿐 아니라 지리산권 바깥 세계까지 널리 알려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슬쩍 얹어 인터넷신문 『지리산人』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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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인 칼럼
    2021-08-26
  • 그날의 지리산 성지순례(聖地巡禮)
    그날의 지리산 성지순례(聖地巡禮) 성염 (자문위원) 지난 6월 25일, ‘지리산종교연대’가 산청함양추모공원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한국전쟁 71년을 맞아서 불교, 천주교, 개신교, 원불교가 ‘좌우 남북 대립에 스러져간 영령들을 기억하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정착을 위해 드리는 생명평화 기도문’을 함께 작성해서 종단별로 번갈아 낭송한 다음, 경건한 침묵 중에 공원을 한 바퀴 돌며 묘역에 참배하였다. 1951년 2월 7일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설날을 맞아 늙으신 부모님 슬하로 모인 민간인 705명이 대한민국 군인들에게 집밖으로 끌려나와 학살당한 흔적이다. 묘석에 적힌 생몰 연월일로 보아 희생자 거의 절반이 10세 미만의 어린이, 나머지 절반이 아낙네들이었다. 그런데 묘역을 참배하는 ‘종교연대’ 사람들의 양심을 더욱 참담하게 누른 것은, 국민을 지키는 국군이 산골 어린이들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는 범죄를 자행한 용기가, 기독교 장로대통령 이승만이 “남녀 아동이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여 반역적 사상이 만연하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서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날 하늘에 올려진 종교인들의 기도문은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서 좌와 우, 남과 북의 생명평화의 길을 닦게 해주소서!”라는 염원으로 이어졌다. 죽음의 공포에 떠는 어미 품에 안겨 세상 모르던 젖먹이들, 할머니 치마폭에 싸여 벌벌 떨다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진 저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수 있다?’ 지리산의 근대사만으로도 동학운동을 일으켰다 우금치에서 패퇴하여 뱀사골로 들어왔다 관군에 몰살당한 농민들, 여수 순천에서 몰려 피아골로 들어섰다 토벌대에 총 맞아 죽은 시민들, 산청 방곡 고향집에 모여 설을 쇠다 끌려나와 국군의 손에 학살당한 아녀자들의 죽음이 무슨 보람을 낳을 수 있단 말인가? 필자도 종교를 신봉하지만 ‘선한 창조주가 선한 인간을 만들었다’는 교설보다 인생 자체가 생로병사로 엮어진 고해(苦海)라는 가르침에 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도 지구상에 만연한 인생고, 더구나 무죄하고 무구한 어린이들의 기아와 병고와 죽음을 목도하노라면 사찰 본존의 은은한 미소에서도 가슴을 쓸어내지 못한다. 다만 굴곡 많은 현대사에서 월남이나 한국의 스님들이 올려온 소신공양(燒身供養)이나 등신불(等身佛)의 일그러진 표정에서는, 숨 끊어진 시신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단말마에서는 언뜻 해답도 비칠 듯하다. ‘무죄한 자의 고통과 죽음’이 타인을 살리는 희생(犧牲)이라는 종교적 교설이 맞다면, ‘과거사위원회’의 추산으로 6.25 전후 대한민국 군경의 손에 학살당한 민간인이 150만이라니까, 가련한 민족사의 구비마다,지리산 능선과 골짜기마다 세워진 무수한 십자가들이 속삭이는 것 같다. “우리 혼백이 지리산 자락에서 가냘픈 몸뚱이를 벗던 순간 이 반도 속으로 우린 스며들었다오. 저기서 우린 이 땅에 살아갈 겨레의 번영을 도모하는 기운으로 되살아나고 있다오!” 그래서 노고할매 치마에서도 끝자락 방곡에 세워진 추모공원은 민족사의 성지(聖地)였고 그 작은 묘석 밑에 한 줌 흙으로나마 묻힌 어린이들은 세계 유일의 분단을 털고 일어나라고 겨레를 일으켜 세우는 순교자(殉敎者)들이었다! 그날 우리 기도회는 참 경건한 성지순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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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26
  • 꽃 피는 봄이 오면
    박두규 (시인) 예전에는 봄이 오면 꽃들이 그래도 순리대로 피었다고 할까,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피었다. 매화가 피면 산수유 꽃이 따라서 피었고 이어서 벚꽃이 길가에 가득 피어나면 개나리가 그리고 자두꽃 살구꽃이 피고 복숭아꽃이나 사과꽃 배꽃이 이어서 피어나면 산 위에선 산벚이 가로등처럼 꽃을 달고 군데군데 피어났다. 그렇게 2월이 지나며 피기 시작한 꽃이 3월과 4월에 걸쳐 절정을 이루고 5월까지 그 모습을 이어갔다. 그렇게 봄은 꽃들이 온 동네를 감싸니 가히 꽃대궐이라고 노래할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한꺼번에 꽃들이 피어난다. 산벚꽃 마저도 산 아래 꽃들과 함께 피니 간극의 차이로 피던 꽃들의 질서가 문란해졌다. 기후위기라는 것도 그렇지만 흡사 도리가 무너진 인간세상의 무질서를 따라오는 듯하여 마음이 그냥 즐겁지만은 않다. 몇 년 전의 이야기다. 벚꽃이 흐드러져 절정에 이른 어느 봄날 강아지 새끼 한 마리를 기르게 되었는데 뱃속에서 나와 지금껏 꽃 구렁의 세상을 두리번거렸을 것이니 꽃돌이라 이름 지었다. 사실 나는 개를 기른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고 있던 때였다. 어느 날 지인의 개가 새끼를 8마리 낳았는데 한 마리만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개는 사람처럼 강한 에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웬만한 일에 섭섭해 하거나 슬퍼하거나 절망하는 일도 없을 것이니, 이것도 팔자려니 하며 개 닭 보듯 그냥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넘겨받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녀석이 너무 나만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는데 목줄을 안 했으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냥 혼자 놀았으면 했다. 그런데 내가 안에 있을 때면 문 앞에서 낑낑대고 나가면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비가 와서 땅이 젖은 날에도 그렇게 달려드니 옷이 엉망이 되곤 했다. 툇마루도 그 녀석 차지가 되어 온통 더럽혀져 있어서 그곳에 앉아 먼산바라기를 하던 즐거움도 잃게 되었다. 게다가 텃밭 일을 하면 따라다니며 밭의 작물을 온통 짓밟고 다니니 점점 귀찮은 존재가 되어 갔다. 그렇다고 목줄을 매자니 저도 한 생명인데 2~3m 정도로 행동반경을 좁혀 감옥생활을 시키는 것은 할 짓이 못되었다. 그러다보니 꽃돌이 때문에 내가 몇 년 동안 공들여 얻어낸 일상의 평화가 깨지게 되었다. 아내의 지청구를 들어가며 고집을 부려 이 집을 지었고 본가를 오가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 ‘두텁나루 숲’의 공간을 나름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는데 꽃돌이 녀석 때문에 이 집에서 보내는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하지만 개를 넘겨받는 순간 모든 걸 스스로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꽃돌이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그 녀석은 그 녀석대로 제 주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나는 나대로 이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아이든 아내든 친구든 손님이든 강아지든 함께 한다는 것은 한 생명을 모시는 일이기도 해서 스스로를 그만큼 내려놓지 않고서는 도대체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처럼 벚꽃이 절정에 이르러 꽃터널을 이루는 화사한 봄이 오면 그래도 정이 들었었는지 수년 전 우여곡절 끝에 헤어진 꽃돌이가 가끔 생각난다.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지. 살아있기는 한지. 사람이건 동물이건 사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서로의 마음을 진정으로 주고받았다면 그것도 사랑인지. 멀지도 않은 그 옛날, 담장 너머로 주고받던 눈빛 하나, 손을 마주잡던 한 순간의 기억으로 한 생을 버티기도 했을 사람들. 그 순정이 있어 삶은 아름답다는 생각도 한번 해보는 것이다. 꽃돌이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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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1
  • 다시 새해
    김석봉 자문위원 밀레니엄의 종소리가 귓가에 생생한데 벌써 스무 해가 지났다. 도시의 거리에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던 그날이 새삼 떠오른다. 무엇인가 커다란 변화가 있을 거라는 설렘과 기대에 부풀었던 날들이었다. 세상이 확 바뀔 것 같은 예감이 가득 찬 시절이었다. 그리고 한 해 두해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느새 스무 해를 꽉 채웠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무엇이 얼마만큼 달라졌나를 확인하곤 했다. 해마다 그랬듯 결과는 절망이었다. 우리네 삶의 문명은 언제나 더 높은 곳을 지향했고, 더 많은 것을 탐해 왔다. 지리산도 내내 몸살을 앓았다. 곳곳에서 케이블카를 놓겠다며 덤벼드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한 물 간 양수발전소 건설계획이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성삼재까지 고속버스가 운행하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 현실이 됐다. 태풍과 폭우로 섬진강이 범람하여 주민들 삶의 터전을 할퀴는 사이 정부는 산등성을 파헤치는 산악열차 관광사업 프로젝트를 툭 던져놓았다. 주민들이 갈라서고 공동체가 너덜너덜해질 지경에 이르러서야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은 발을 뺐고, 끝내 주민들만 멍든 상처를 안고 견뎌야 했다. 우리네 삶의 문명이 대개 이랬다. 이런 문명의 한복판을 코로나 바이러스가 휘젓고 있다. 벌써 한 해가 다 되었다. 점포는 문을 닫았고 사람들은 집으로 숨어들었다. 직장동료라는 이유로 한 번 만나보지도 않은 그이의 어버이 문상을 한답시고 밤 새워 달려갔고, 친척이라는 이유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몇 촌 조카 결혼식장 찾아 다녔다. 그렇게 경조사 챙기고 상부상조하는 것을 미덕이라 여겼다. 그렇게 만나 축하하고 달래는 것이 사람 사는 정이라고 여겼다. 그런 일에 빠지면 눈 밖에 났고, 외톨이로 지낼 수밖에 없어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어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기 지리산 구석구석도 많이 달라졌다. 명절마다 자동차로 가득 찼던 마을공터엔 추석인데도 썰렁했다. 일가친척들 다 모이던 선산벌초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음력 시월 묘사를 지내는 곳도 보이지 않았다. 도시 사는 아들딸들 김치 통 들고 줄줄이 모여들던 김장철 풍경도 사라졌다. 자식들은 그저 오붓하게 온 듯 만 듯 다녀갔다.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이 하나 둘 귀향의 보따리를 싸들고 동구 밖을 기웃거린다. 늙은 부모를 봉양하며 대대로 내려온 다랑이논에 삽질하는 낯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필경 음식점을 하다 망했거나 실직한 아들에게 자신의 삶터를 물려주고 낙향한 중늙은이들일 것이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다. 인류에 기생하며 함께 진화해온 이 바이러스를 어쩌겠는가. 피해 갈 수 없으면 받아들여야하고 아픈 만큼 새로운 무엇을 창출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강요했다. 그동안 우리가 향유해온 소비중심적인 우리네 삶의 양식에 경종을 울렸다. 마천루로 상징되는 21세기 삶의 문명, 삼천 포인트를 향해 질주하는 주가지수와 황새가랑이도 찢어놓을 듯 치솟는 집값에 매달려온 허접한 삶의 문명을 내려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동안 만나고 모이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왔다. 올해는 그 많던 동창회도 송년회도 열리지 않았다.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동안 경조사를 온라인으로 챙기다보니 굳이 만나야하냐는 생각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에게 친숙해진 많은 것들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 빈자리를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앞만 보며 빠른 속도로 짓쳐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며 천천히 걸어가는 발걸음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였다. 가까이에 있는 것들에 온정을 쏟고 정성의 손길을 보낼 줄 아는 삶. 저 덤불 속 작은 새와 풀숲의 꽃들과 돌담 위에 오두마니 자리 잡은 길고양이와 그 담 너머 늙은 이웃들이 다 나와 같다고 여기면서 살아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다. 그런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올해는 바이러스를 넘어 그 길을 나서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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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인 칼럼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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