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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서시교를 죽이는 이유
어제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 브러시는 연신 유리창을 닦아 냈다. 하지만 비의 양에 비하여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도로 위로 산에서 내려온 물이 계곡처럼 물이 쏟아져 내려 도로는 마치 계곡처럼 보였다. 더구나 왼쪽 라이트 하나도 고장이 나서 잘 보이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물이 자동차 바퀴 중간까지 올라오는 곳도 있었고 그때 경고등이 들어왔다. 경고등이 4번 들어왔고 그때마다 나는 차가 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식은땀이 났다. 앞에 가던 승용차는 운행을 포기했는지 높은 곳에 주차했다. 다행히 고개 하나를 넘어가니 비가 그쳤고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 오전에 구례 서시교 관련한 구례 군민 토론회가 있었다. 구례에는 이름도 예쁜 서시천이 있다. 2020년 구례 수해 당시 서시천으로 섬진강 물이 역류하여 구례읍이 침수되는 홍수 피해가 있었다. 보통 지류의 하천이 본류인 강에 물이 흘러 강 수위를 높이는데 서시천에 합류지점이 휘어져 있다 보니 섬진강 물이 원심력에 의해 오히려 서시천 방향으로 역류한 것이다. 거기 다가 합류지점 근처에 수중보가 설치되어 있어 수위를 높이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하여 익산지방관리청은 이 서시천에 있는 서시교를 철거하려고 하고 있다. 서시교는 구례군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다리다. 대부분의 외지 관광객도 이 길을 통해 구례읍으로 진입한다. 구례에서 유일하게 신호등에 들어오면 차가 4-5대라도 있는 곳은 유일한 곳이다. 그 만큼 구례군민들에게는 사용 빈도가 높고 중요한 다리다. 서시교는 침수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다리가 어찌 된 영문인지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더구나 이 철거 결정에 구례 군민 80%가 찬성했다고 한다. 찬성한 주민은 186명이다. 그 중대한 결정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친 그 작은 숫자도 놀랍지만 어떤 질문을 했는지도 중요하다.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설문조사는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원하는 답을 얻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서시교를 그대로 둘 경우 다시 홍수 피해를 당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도 서시교를 그대로 두겠습니까? 라고 묻고 1번 서시교 존치 2번 서시교 철거 후 다른 곳에 설치 이렇게 질문 한다면 당연히 2번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시교를 그대로 둘 경우 서시교로 물이 범람은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만한 일이고 그것도 댐관리를 잘하면 없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 다음 질문 했다면 2번을 선택할 군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 설문이 이렇다.고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렇다는 것이다. 사실 구례군이 2020년이 수혜를 입은 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댐 관리를 잘못한 것에 있다. 예비 방류를 해야 했는데 무리한 물욕심에 만든 인재다. 왜냐하면 태풍 루사때는 더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당시 구례 읍에 침수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위한 일이 결국 서시교 철거까지 온 것이다. 멀쩡한 다리를 철거하고 1.2km를 우회하는 도로를 만들어 구례군민에게 불편을 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결정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들은 멀리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불편은 그들에게 닿지 않고 그들은 편리한 방식으로 결정을 하고 예산을 사용하고 집행하고 용역을 준다.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결정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 관리를 잘못해 생긴 인재를 회피하기 위해 3천억 이상 돈을 사용했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인재가 아니라 자연재해임을 주장하기 위한 변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제 그 많은 비가 내렸지만, 홍수는 없었다. 며칠 전부터 섬진강 댐은 많은 양의 물을 방류했고 홍수가 날지도 모른다고 연신 문자를 보냈다. 역시나 아무 일도 없었다. 구례군민은 불편이 없는 새로운 대책을 세워 달라고 익산청에 요구하고 있고 익산청은 답은 없는 상태다. 한 번 결정한 것을 번복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이 전문가이고 전문가가 선택한 방향이니 받아드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고 가버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되니까... 그리고 2020년 수해 당시 서시교로 물이 범람 하지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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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글을 잘쓰는 방법
페이스북에 쓴 "바코드" 일본에서 살던 경험에 허구를 더해 쓴 중편 소설과 단편 소설 두 편을 더 써봤다. 페이스북에 공개하지 않은 것과 지금 연재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코드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않다. 두 편은 일인칭으로 한 편은 삼인칭으로 썼는데 일인칭이 역시 쓰기가 쉬운 것 같고 삼인칭으로 써보니 좀 어렵지만, 이것 역시 나름 매력이 이었다. 최근 읽어본 책 중에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었다. 프랑스 리뷰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을 인터뷰한 것을 한국의 출판사에서 한국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작가들을 골라 엮은 책이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편을 읽어보고 흥미가 있어 3편을 모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모든 작가의 인터뷰를 다 읽지는 않았다. 내가 관심 있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작가, 읽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는 작가들 위주로 골라서 읽어봤다. 우리가 다 아는 작가들 이를테면 헤밍웨이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움베르토 에코, 파묵, 밀란 쿤데라, 오에 겐자브로, 수잔손탁같은 작가들이다. 이 작가들 작품은 내가 몇 권 읽었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작가들이다. 대부분 한 시대를 평정한 위대한 작가들이거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다. 파리리뷰 기자들은 이 작가들을 몇 번 방문해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지만, 작가가 된 이유나 글을 쓰는 방법들은 항상 질문에 있었다. 작가가 된 이유야 다들 다르겠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작품은 모두 자신의 직간접경험을 통한 것이라고 하는 작가들이 많았다. 적어도 모든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를 변형한 것이라는 것이다. 자전적 소설이 아니어도 주인공이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신을 투영해서 쓴다는 것이다. 다음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든 작가가 한 마디로 초고를 작성하고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을 수정하고 더하거나 삭제하면서 쓴다고 한다. 더는 스스로 할 수 없을 때까지 밀어붙이고 나서야 완결을 짓는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잠을 자지 않고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나도 잠시지만 세 편의 소설을 쓰면서 잠시 내가 그 상황에서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항상 교실에 앉으면 내 시선은 칠판이 아니라 창문 너머에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소설이나 책을 빌려 딴짓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때 시작한 이 버릇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항상 다른 상상들로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내가 공부를 한 시기는 딱 3번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1~2개월 그리고 읍내 중학교에서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한 4개월 정도 그리고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변해 가야겠다고 변심하고 공부한 그해 6월에서 11월까지다. 그렇다고 수업을 열심히 들은 적은 없었다. 국어 시간엔 역사를 역사 시간에 국어를…. 항상 딴짓만 하고 다녔다. 소설을 쓰는 것 자체는 재미가 있지만 "이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다. 그 재밌는 유튜브와 경쟁해야 하는데, 소설을 써서 무엇을 하겠는가? 하지만 취미로는 꽤 좋을 것 같다. 대한민국 성인은 1년에 책 한 권 정도는 읽는다고 한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읽는 사람만 읽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읽지 않는 시대다. 읽는 사람들이 점점 멸종되는 것이다. 요즘은 유튜브도 숏츠 같은 짧은 영상이나 드라마나 영화도 요약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소설이라니 그것도 실용적인 내용도 아닌 긴 소설이라니…. 읽힐 만한 이유가 없다. 최근에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나 현대 문학상 수상작, 문학동네 수상작들의 단편을 꽤 읽어 봤다 대부분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는 이유가 뭘까? 과거에 나는 매년 발표되는 수상작을 기다려 구매했다. 꽤 재밌어했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이제 이런 소설들이 유튜브와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한 소설이나 무협 공상 과학이나 웹툰 아니면 실용서들이나 지식을 전하는 책들과 같이 비교해도 읽는 재미로 치면 경쟁이 안 될 것 같다. 작가들의 수준이 낮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구례 서시교를 지나는데 현수막이 보였다. 섬진강 책방에서 열리는 문학강연이었다. 제목이 "문학의 필요성"이었다. 역설하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방법을 찾아서 필요성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하게 된다. 물론 필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유명한 작가의 소설은 잘 팔리고 많이 읽거나 적어도 구매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시대지만 여전히 쓰는 사람을 쓰고 읽는 사람을 읽을 것이다. "아니, 아니요. 이건 행복한 꿈이랍니다. 그것은 제 소설이지요. 저는 그것을 우편함에 넣고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 어언 매큐언의 말로 끝내고 싶다. 그러함에도 쓰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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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 산문집
'오늘 뭐 먹지?' 같은 걱정은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소박하고 단순한 식단을 추구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기도 하다. 음식을 소비 할 아이들이 없다. 한 명뿐인 식구는 한 달을 굶어도 될 만큼 배에 전대를 찬 듯 저장하고 있으니 별 신경 안 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얼굴을 못 알아 볼 정도로 살이 쪘으니 잘 먹기 보다는 어떻게 굶을 수 있는지에 더 신경을 써야 할 형편이다. 사실 그 동안 너무 많은 음식을 해 준 것에 대해 오히려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티비도 음식채널만 보고 책도 음식 관련 책 등 너무 먹는 일에 치중해 온 것 같다. 잘 멕여야 된다는 책임감이 강해 내 손으로 한 음식을 먹는 동물(사람 포함)들에게 너무 많이 멕여 모두 과체중이다. 물론 질도 좋은 것으로 해주려 했지만 양이 만만치 않았던 것을 고백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권여선 이란 저자 때문인데 공선옥과 햇갈렸다. '춥고 더운 집'에서 고생하던 공선옥의 메뉴가 궁금했던 것인가. 권여선이 적은 여러 가지 음식도 맛깔스럽고 먹음직스럽지만 그 음식을 표현하는 솜씨가 더 맛깔스럽다. 그러고 보면 음식을 소개하는 창의적인 레서피를 만들어 내는 일도 어렵지만, 이렇게 방법과 과정과 맛을 소개하는 산문이 훨씬 어려울 것 같다. 음식을 보지도 않고 침을 흘리고, 꿀꺽 침을 삼키고 배가 고파지니 말이다. 재료의 특이성과 맛의 표현, 그리고 그 음식을 먹게 된 역사 같은 것이 잘 버무려진 맛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권여선의 위장을 추앙하고 싶다. 그녀는 작가들 사이에 알려진 주당인 듯하다. 일단 그녀가 소개하는 음식은 거의 안줏감이다. 사실 주당 눈엔 모든 반찬이 안줏감으로 보이고 어떤 술이 어울리나 먼저 본다. 반찬에 따라 막걸리, 포도주, 중국술, 소주...를 선택하며 먹기도 전에 일차로 안주에 취한다. 우리 집에도 한사람 있어 내가 그 속내를 잘 안다. 난 영양과 맛과 건강을 생각해 만들지만 그의 눈에는 모두 안주로 보이는 것이다. 권여선 음식의 또 하나 특징은 매운맛이다. 청양고추의 그 무시무시한 매운맛을 그녀는 즐긴다. 우리 집 한 사람도 한 때는 그랬다. 청양고추를 듬북 넣어 먹는 사람들이 무섭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소가죽 같이 튼튼한 위장을 가진 족속들이다. 난 사람들이 고기와 즐겨 곁들이는 날 마늘을 먹지 못한다. 위가 뒤틀리며 아프다. 샐러드에 들어간 약간의 양파나 고기에 나오는 생 양파는 아주 조심해서 극소량만 먹어도 속이 아프다. 물론 술은 안받지만 한 모금이라도 먹으면 다음날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도 망치로 맞은 것보다 아프다. 술꾼의 소가죽 같은 위장이 정말 부럽다. 나의 위장은 금이 좍좍 그어진 낡은 레이스로 만들어진 것 같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맛있고 매운 안주가 가득한 위험하고 맛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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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이 책의 저자 루리가 그린 그림을 오래 들여다본다. 루리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 세상에 읽어야 할 책도 많지만 동화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헌책으로 선물 받았는데 손주에게 주려고 잘 간직하려 한다. 그가 만나는 세상이 어떨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했고 변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 빨라져 그와 나는 소통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안락한 치마폭에서 나온 그의 세상은 어떤 것일까. 어떤 세상을 만나든 그는 긴긴밤을 견뎌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할머니가 쓴 책은 아니지만 할머니가 주고 싶었던 책을 기억하면 좋겠다. 긴긴밤을 견뎌야 아침이 온다. 그의 생애에 긴긴밤이 자주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하지만 그렇더라도 잘 견디기를 바라며. 세상에 하나 남았다 절멸했다는 북부흰코뿔소. 참 신기하게 생긴 이 동물의 눈을 보면 말이 하고 싶다. 입에 알이 든 양동이를 물고 있는 펭귄. 모든 동물이 동무인 세상은 너무 멀고 같은 동물도 동무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이 긴긴밤을 잘 통과할 수 있을까. 지구 종말이 온다면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되고 싶은가. 어떤 식으로 남은 자들은 삶을 이어 갈 수 있을까. 코뿔소와 펭귄의 낯 설은 조합의 하모니가 없이 이음은 불가능하다. 누가 어떤 식으로 살아남든 연습이 필요하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조화롭게 살지 못하면 그렇지 않은 세상에서 조화는 더욱 힘들 것이다. 지구의 존속을 원한다면 평화는 매일 연습되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책의 독서 후에 드는 평화롭지 않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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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종말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제 이 업은 끝났어요. 더 이상 유지가 안 됩니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아요" 얼마 전 학교급식에 채소를 공급하던 업체 대표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 업체는 전남과 광주지역에 채소를 납품하는 꽤 큰 업체다. 20년 가까이 그 일을 해왔는데 지난주에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다 보니 채소를 납품하던 업체의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어드니 더 이상 유지가 힘든 것이다.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고 채소를 먹지 않으니 학교급식도 채소가 점점 밀려 나간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도 채소를 많이 먹지 않는다. 겨우 겨우 채소를 먹는 것은 주먹밥이나 비빔밥이 아니고는 잘 먹지 않는다. 고기와 라면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된 지 오래일 것이다. 중학생인 아들은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다. 하루에 먹는 김치양이 손톱크기 3-4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김치찌개에 들어가 있는 것을 먹으니 채소는 끓인 것이 아니면 손이 안 간다. 나는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한다. 고기반찬과 채소 반찬이 있으면 내 젓가락은 항상 채소에 먼저 손이 간다. 아이들 젓가락은 항상 고기를 향해 있고 모든 고기반찬이 사라지만 그때서야 채소를 먹어 볼까 하지만 차라리 맨밥을 먹고 만다. 그야말로 청소년의 식단은 육식이 되었다. "밥보다 빵을 채소보다는 고기를..." 산골에 사는 우리 집 밥상이 이런데 더 말을 하며 뭐 하겠는가? 물론 우리 집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는 채소를 잘 먹었다. 하지만 성장기에 접어들고 "잘 먹고 잘 커야 할 것 같은데 워낙 먹는 양이 적다 보니 그나마 고기라도 먹여야 하지 않을까 "하다 그렇게 변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업체 대표는 채소 유통업을 그만두고 대파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떠났다. 이미 심을 대파모종도 이미 준비했고 땅도 마련했다고 한다. 그만 두니 맘이 편하고 좋다고 했다. "진작에 그만두고 떠났어야 했어요." 제러미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마리 이상의 소가 있으며 미국에서만 10만 마리의 소들이 매일 도축되고 있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중앙아메리카 삼림의 25%가 육우 사육을 위한 목초지로 개간되었다. 육우 방목이 중앙아메리카의 삼림 파괴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30쪽) 하지만 육식은 종말 하지 않고 더 커지고 있다. 육식의 종말이 아니라 채식의 종말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채소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것에 기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처럼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시기에 더욱 그렇다. 텃밭이 없는 사람들에게 쌈채소 600g과 고기 600g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더구나 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비싼 채소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고기와의 전쟁으로 본다면 확실히 고기가 승자다. 주변에 식당을 봐도 채소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은 거의 없다. 물론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식당을 유지하는 곳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런 채식 식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시골 지역에서 찾기는 더욱 어렵다. 고기를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DNA에 각인된 욕망일 것이다. 인류문명 전체를 보더라도 사냥을 잘하고 고기를 먹는 것이 몸을 강하게 만들 고 매력적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존재했다. 레너드 쉴레인의 지나사피엔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의 식단이 채식에서 육식으로 변한 또 다른 결과는 우리가 고기를 더 많이 먹을수록 우리의 장이 더 짧아졌다는 것이다. 장이 짧아질수록 계속 커가는 뇌로 공급할 수 있는 산소가 더욱 많아진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소화기관에 가장 많은 산소를 할당한다. 식물성 음식을 소화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며, 에너지 자원이 많이 필요하다. 동물성 식품이 많은 식단으로 바꾸면, 소장은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일손이 남는 산소는 뇌로 차출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육식동물들은 초식동물보다 더 영리하다.(78) 칼라하리 사막의 쿵산족 사람들은 왜 사냥을 잘 못하는 남자들이 여자와 결혼하기 어렵냐는 질문에 "여자들은 고기를 좋아한다"라고 답했다. 육식이 인간에게 준 혜택 역시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랫동안 채식을 고집해 온 사람들이 꽤 있지만 모두 건강하게 건장하다. 하지만 채소는 점점 식탁의 변방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도시화가 가져온 필연일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싱싱한 채소를 소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냉동이나 냉장으로 공급되는 육식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간단하게 구워서 먹거나 가공해서 먹으면 되는 육류에 비하여 채소를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다. 대한민국 성인들 중에 고기를 못 굽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채소를 맛있게 먹는 것이라고는 유일하게 고기와 더불어 쌈으로 먹는 것 이외에 아무거도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런 시대에 살다 보니 채소는 점점 시장에서 밀려가고 있다. 적어도 아이들 식탁에서는 채소는 완전히 패배했다. 내가 고기보다 채소를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는 어려서 맛있는 채소를 많이 먹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라는 것은 결국은 그 요리에 담기 과거의 향수를 다시 되새김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기만 먹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이미 그런 세대가 20대 30대일 것 같다. 육식이 좋고 채식이 좋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의 사육을 위하여 토지가 황폐화되고 지구상의 1/3에 가까운 곡식을 소들이 먹는데 반해 기아에 처한 인간들이 많다"는 제레미리프킨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고 채소가 인간에게 주는 유익함이 결코 육식에 비해 가볍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업체 사장님의 건투를 빈다. 대파는 모든 요리에 꼭 필요한 필수 채소기 때문이다. 파절이 없는 고깃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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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똥이라면 그것도 작품이 될 수 있는가?
미술이나 문학이나 뭐든 작품의 원작은 무엇일까? 소설은 이 질문을 던진다. 사진이 작품이 되었다면 그 사진의 원작은 배경으로 나온 자연? 아니면 그 속의 인물? 아니면 찍은 사람? 원작은 반드시 불태워 없애버리는 재단에 초대를 받은 작가의 여정은 흥미롭다. 실수와 사고로 일이 꼬이는데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듯 초조하다.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화재를 통과하는데 과연 경험일까 상상일까도 궁금하다. 가끔 신문보도에서 접하는 뉴스이기는 하지만 많은 재산을 개에게 물려주는 사람들이 간혹있다. 개를 싫어한다면 혹, 좋아한다면 읽는 기분이 달라질까도 궁금하다. 난 개를 키우지만 개가 신기한 동물인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를 너무 좋아해서 싫다. 하필 작품의 이름의 'R의 똥'!(R은 개 이름의 첫자) 윤고은 만세!! 작품을 불태우진 않았지만 내 가슴 속에서 이렇게 잊혀지지 않고 불타고 있으니 내게로 넘어온 그녀의 작품이 원작이 되었다. 이 똥같은, 내가 끄적거리는 이런 독후감은(읽는 사람도 없고, 또 없길 바래지만) 나를 떠나 누구에게 불이 아니라 쓰레기통에 쳐 박히기를 바라며 독후감은 똥통에! ** 다른 이야기 작품명: 예술가의 똥 정량 30그램 신선 보관됨 생산및 밀봉 일자: 1961년 5월 이 작품은 작가의 진짜 똥이 들어있고 다 팔렸고 아직 유수의 미술관에 전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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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초 인류
-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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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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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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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산
-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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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철학
- 페미니즘, 페미니즘...언제부턴가 너무나 많이 회자되는 페미니즘. 대충 여성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정확히 알지 못해 많은 오해를 낳고 있다고 의심된다. 도대체 '페니니즘'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일단 보시라 권하고 싶다. '철학'이라는 단어가 망설이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철학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권하고 싶다. 페미니즘 철학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페미니즘 철학은 기존 가부장제 철학에 반대하는 반反철학이거나 여자가 하는 철학이 아니고, 또 여성만을 위한 철학도 아니라는 거예요. 저는 페미니즘 철학이라는 게 여성주의적 가치에대해 질문하고 탐구해보는 철학이면서 페미니즘의 내용들과 개념들을 철학적인 개념으로 만들어보는 철학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작업의 효과는 기존 철학의 주제들, 그러니까 인식론,존재론, 윤리학 같은 것들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페미니즘 철학의 활동은 근대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그 대안을 마련하려는 현대 철학과 조우하죠. p 46 들뢰즈Gilles Deleuze 같은 사람은 철학은 생성하는 사유고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는 배움의 운동이라고 해요. 그래서 철학은 동일자를 확인하는, 즉 A는 A다‘라는 걸 확인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고 새로운 사유의 방법을 증가시키는 작업이라는 거죠. 이제 철학은 새로운 방식의 사유를 모색하는 것을뜻합니다. p 52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 철학은 이래요. 타자인 여성이 철학 개념과 이론에 명시적이고 또 암시적으로 배어 있는 여성 평가절하의 논리를 추적하고 비판하는 건데, 여기에 철학의 도구를이용한다는 거죠. 기존의 철학을 겹쳐 쓰고 같이 쓰면서, 뿌리 깊은 기성 철학의 입장에서 벗어나 어디서든지 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사유들의 목초들, 풀들을 자라나게 하는 일인 거예요. 지워버리고 없애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 겹쳐 쓰다보면 새로운 모양이 될 수 있잖아요. 다 지우고 새로운 흰 종이에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방식 안에서새로운 운동을 발명하면서 살아가는 것들, 이게 저는 페미니즘철학인 것 같아요. p 53 남성에게는 남성의 성적 특징을 부과하지않는데, 여성에게만 여성의 성적인 특징들, 여성의 외모적 특징들을 여성성이나, 여성이라면 지녀야 할 굉장한 덕성인 것처럼이야기하는 게 틀렸다는 거예요. 남자들에게는 인간적인 특성을두고 말하는데 여자들에게는 인간적인 특징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 특징을 부과하는 것들이 부당하다는 거고, 여성도 똑같이 인간으로 대하라는 거죠. 그러니까 스테레오타입으로 대우하지 말라는 거예요. p64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런 걸 거부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요.왜냐하면 스테레오타입으로 누군가를 취급하면, 인간으로서 그누군가가 자기 개성을 만들 수가 없다는 거예요. p 65 “페미니즘은 언제나 구체적인 이야기들에서 시작해요. ‘페미니즘이 철학이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죠. 페미니즘 저서들을 보면 구체적인 사례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왜 그렇게 시작할까요? 추상적으로 접근하면 여자들이 벗어날 수가 없어요. 구체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지, 문제를 느끼고 바꿀 수가 있는 거죠. 그래야 구체적인 수단을 마련할 수 있잖아요. …… 자세하게 묘사를 하는 건 그래야만 여자가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인 겁니다. 이러한 묘사를 읽는 여성들은 여성들이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그리고 그 경험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함께 겪고 있고, 겪어왔던 일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다른 세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페미니즘의 출발은 여성들의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P135 “파이어스톤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재생산을 강조하고, 재생산을 이끄는 중요한 단위가 가족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근본적인 착취가 일어난다고 설명합니다. 가족을 착취의 자리로 분석하는 데에는 많은 여성들이 직관적으로 동의하게 되죠.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제도 안에서 권력의 차이가 선명하잖아요.” P 206 “그래서 저는 낙태권의 문제는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권리, 내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문제로만 협소하게 해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꼭 드리고 싶어요. 파이어스톤이 재생산의 권리를 제기한 이유를 떠올리면서요. 파이어스톤은 재생산이라는 게 지금의 가부장제를 지탱하는 억압이라고 분석했고, 이로부터 저항하면 가부장제라는 구조를 다 흔들어버릴 수 있다고 말한 거잖아요. 그리고 재생산 문제 때문에 성 계급까지 호명했잖아요.” p 296 책소개(알라딘) 기존의 이 세계의 뿌리를 흔들고 새로운 인식과 개념을 발명해온 페미니즘 철학의 기초를 독자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페미니즘 철학의 기초적인 세 가지 질문, 다섯 명의 사상가와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할 법한 그들의 핵심 도서와 문장들을 통과하며 페미니즘 철학의 기초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페미니즘 철학이란 무엇인가’ ‘여성은 인간인가’ ‘여성인가, 여성‘들’인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각 부로 구성해 1부에서는 페미니즘 철학의 자리를 소개하고 페미니즘 철학이 지금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그 고유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2부와 3부에서는 제1물결 페미니즘과 제2물결 페미니즘으로 분류되는 사상의 조류를 중심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특히 이 사상가들의 사유가 동시대의 철학으로 어떻게 위치할 수 있는지 그 맥락을 짚어내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의 문제들과 구체적으로 엮어 소개하려 노력했다. 2부에서는 ‘여성은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품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여권의 옹호》, 시몬 드 보부아르와 《제2의 성》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철학 초기의 사상을 다뤘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이성을 가진 평등한 존재라는 점을 주창한 열렬한 계몽주의자이자 근대 민주주의자였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이 언제나 타자의 지위인 제2의 성에 머물 수밖에 없는 기제를 밝히며 여성이 타자의 자리에 머무는 것은 ‘악’이며 여성이 자유를 획득해 주체의 자리에 서는 것이 도덕적 명령이라고 못박아버린 실존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사상을 여기에서 다뤘다. 목차 프롤로그: 눈의 여왕을 떠올리며 페미니즘 철학은 무엇인가 1장 페미니즘 철학이란 무엇인가: 페미니즘 철학과 보편적 인간에 대하여 여성은 인간이다 2장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외침: 메리 울스턴크래프와 여성의 이성 3장 타자로서 여성을 정의하다: 실존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 여성은 다르다: 복수의 여성들 4장 여성성이라는 신화를 부수며: 베티 프리단이 발견한 ‘행복하지 않은 여성들’ 5장 성 계급을 호명하며 자궁으로부터 해방을 선언하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과 《성의 변증법》에 대하여 6장 자매들의 밖에 서서 자매들에게 차이의 문제를 묻다: 오드리 로드Ⅰ 7장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다양한 여성들로 살아가기 위해: 오드리 로드Ⅱ 에필로그: ‘우리’가 서로를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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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오스카
- 데이비드 도사의 고양이 오스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고양이와 같이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고양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나와 같이 사는 고양이 초리는 끊임없이 나의 관심을 유발시킨다. 그의 존재가 나를 잠시도 쉬게 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나의 주위를 맴돌지만 나에게 안기거나 나의 손길을 달가와 하지는 않는다. 늘 나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늘 나를 주시하고 있다. 마치 CCTV의 감시하에 있는거와 다르지 않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의 뇌에 저장하는지 알 수 없다. 나 또한 그를 관찰하지만 "그는 정답이 없는 퍼즐이다. "내가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 집에 있는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은 어느새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집의 영혼이 되어간다.-장꼭또" 나는 그 퍼즐을 풀기 위해 이책 저책을 뒤적여본다. 초리와 같이 평범한 고양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고양이 오스카"의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그는 미국에 있는 한 요양원에 기숙하는 고양이다. 이 요양원은 동물을 기르도록 허락되지 않았지만 어느날 오스카는 이곳을 제가 살 자리라 맘을 먹었다. 고양이는 한번 자리 잡으면 쉽게 그 장소를 떠나지 않는 영역동물이다. 요양원의 사람들도 포기한채로 그를 인정하다 그를 한 식구로 받아들인다. 이 요양원이란 곳은 거의가 임종이 가까운 노인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그리고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다수인 곳이다. 이 곳의 환자를 돌보는 노인 전문의 데이비드 도사는 (그의 성이 도사다) 고양이 오스카에 대한 메리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넘겨 듣는다. 그는 치매에 걸린 환자들과 그의 가족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고양이 오스카의 특별한 능력을 마침내 인정하게 되고 책을 출판하기에 이른다. 메리의 이야기는 고양이 오스카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임종이 가까운 사람이 누군지를 안다는 것이다. 고양이 오스카는 병원 이곳 저곳을 다니지만 임종이 다가온 사람이 있으면 그의 침대 곁에 머무르며 임종을 지킨다. 그는 '임종지키미 고양이'인 것이다. 임종이 가까운 사람에게서는 특별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냄새에 예민한 고양이가 그 냄새를 알아채고 그의 곁을 지키는지 혹은 다른 어떤 이유로 임종을 지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반복적인 오스카의 행동은 이제 요양원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있다. 임종을 지키는 가족이 없는 경우에도 오스카는 그의 곁을 지키고 있어 보는 사람에게도 위로가 된다. 고양이 오스카의 이야기는 실화다. 치매가 반드시 누구나 거쳐가는 병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겪는 노인병이다. 데이비드 도사는 치매에 걸린 사람들의 가족을 만나며 지금 현재를 사는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치매는 기억을 잃는 것이다. 기억을 잃는 것은 지나온 시간을 잃는 것이며 지나온 삶의 괘적을 지우는 일이다. 죽음은 결국 모든 것을 지우는 일인 것을 인정 한다면 치매는 죽음으로 가는 인간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 삶의 과정에 고양이 초리가 함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이 두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고양이와 음악이다. -알버트 슈바이처" 목차 독자 여러분께죽음을 감지하는 고양이 오스카오스카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하루하루를 견디게 하는 작은 승리루벤스타인 부부스티어하우스와 고양이의 인연치매 환자 치료의 딜레마오스카와 함께한 첫 회진도나 모녀의 마음을 이어 준 오스카사라진 슬리퍼와 죄책감요양원에서 부모님을 떠나보낸 자매음악이 전부였던 리노 페레티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감당하기 어려운 일치매 환자는 무슨 꿈을 꿀까삶을 완전히 바꿔 놓는 병존엄하게 죽을 권리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빈 병실을 지키는 오스카간병하는 가족의 진실한 친구루벤스타인 부부의 마지막 결혼기념일이리스에게 마지막 인사를루스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새 환자, 그리고 오스카마치는 글데이비드 도사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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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오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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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마루야마 겐지
-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마루야마 겐지 일본인 마루야마 겐지는 동경의 한 무역회사에 다니고 글을 쓰고 문학계 신인상을 받았다. 25살에 귀농을 하고 집필에 전념하며 그의 농촌 체험기인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바다 출판사/고재운 옮김)” 펴내며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성 조언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 도시인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시골이나 귀농에 대한 환상을 와삭 부셔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절로 공감의 웃음을 짓는다. 목차만 훑어봐도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 어떻게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다. – 어딜가든 삶은 따라온다.”, “경치만 보다간 절벽으로 떨어진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자연의 성깔을 알아야 한다. 아름답다고 좋은 곳이 아니다”,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농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 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도시에서 느끼지 못하는 거친 자연과 시골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확실하게 깨부순다. 시골에 오니 좋은 것은 많다. 산이 바로 앞 마당이고 눈 앞에 푸른 산이 펼쳐져 있으니 산보가 등산이고 오염이 적은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조용하고 한가하며 먹거리는 모두 유기농이라는 것 등 셀 수 없이 많다. 과연 좋은 것만 있을까? 내가 알아온 진리 중의 하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 대가를 치르는 일은 어쩌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몇 배나 더 혹독한 것일지도 모른다. 겐지가 지적한 대로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그는 “혹독하고 위험하기 때문에 그림 같은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겐지가 지적하는 엄청난 위험은 모른척한다 하더라도 시골에 살려면 우선 내 마당 내 집에 드나드는 작은 동물과 곤충에 먼저 익숙해져야 한다. 내 집 마당이라고 집안에서 입던 반팔과 반바지로 마당에 나섰다가는 모기, 진드기, 심지어 쯔쯔가무시라는 보이지 않는 곤충의 공격에 무방비로 희생 될 가능성을 절대로 피 할 수 없다. 집 안이라고 안전하지 않다. 잠자리 풍뎅이 말벌조차 때론 길을 잘못 찾아 나와의 동거를 요구한다. 비 오는 날이면 배로 기어 다니는 것들도 동거에 참여하려 한다. 청정한 공기를 마시는 대신 자외선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농부치고 하얗고 뽀얀 얼굴은 가진 분을 본 적은 드물 것이다. 뭔가 갑자기 필요한 것이 생길 때는 꼬불 꼬불 어두운 산길을 내려가야하고 공공 시설의 혜택은 대충 포기하는 것이 맘 편하다. 요즘은 도시에서도 작은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작은 텃밭이라도 밭을 가꿔본 사람은 안다. 밥상에 무공해 유기농 채소 한 접시 올리기 위해서 흘려야 하는 땀과 잡초와의 치열한 전쟁과 그것에 들여야 하는 시간을. “농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갠지가 지적했듯이 농부 흉내라도 내며 조그만 텃밭 가꾸는 것도 허리가 휘어지게 벅찬 일이다. 내 손으로 돌을 고르며 흙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아주고 비에 넘어지면 일으켜주는 수고를 한 끝에야 비로소 유기농 채소라 불리는 나물 한 접시가 상에 올라 오는 것을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갠지는 처음 대하는 거친 자연과의 조우에 대해서도 경고하지만 처음 만나는 시골의 낯선 이웃들에 대한 경고에 더 한층 수위를 높인다. “깡촌에서 살인사건 벌어지고” “시골을 농락하는 수상한 사람들”이 시골에 있다고 겁을 준다. 그리곤 범죄자들이 시골로 이주하고 군침을 흘리며 당신을 노리고 있으니 가능한 큰 개를 기르라고 조언한다. 한술 더 떠 침실을 요새화하고 수제창까지 준비하라고 순진한 도시인을 공포에 몰아 넣는다.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 한 것”이라며 차라리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으라”고 까지 말한다. 사실 알고 보면 “관심 받고 싶었던 건 당신”이라며 허를 찌른다. 겐지가 이렇게 자연과 사람에 대해 경고하는 이유는 어디에서나 삶이 그렇듯 “어떻게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으며” “어딜 가도 삶은 따라온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또한 “엎질러진 시골 생활은 되돌릴 수 없으니” 떠나기 전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조언인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도시와 시골의 중간인 별장지대를 적격이라고 추천한다. 시골에서 인생 제 2막을 시작하려고 할 때 “유유자적하며 조용히 살고 싶다는 식의 추상적인 바람이어서는 안되며” “하루가 다 가도 모를 정도로 전념할 것이 있어야 하며” 그것도 “하면 할수록 심오함이 느껴지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하루가 다 지나갔을 정도로 모든 것을 잊고 몰두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동안 멋진 풍경에 취하고, 단지 그것만으로 행복과 충만감을 맛볼 수 있지만 그런 날들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고 그는 단언한다. 겐지는 그의 40년 체험한 시골생활의 경험으로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을 깨고 환경과 사람과의 관계를 직시 할 수 있도록 충고하고 있다. 그의 조언은 결국 도시에 살건 시골에 살건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귀착된다고 본다.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 지는 것은 아니고” “잘 먹고 잘 생활하면 잘 죽을 수 있으니” “병을 불러 들이는 생활 태도”부터 고치라고 말한다. 그가 건네 주는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면 도시건 시골이건 “홀로서기”에 성공하여 “자신다운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함이 치유”라며 “불편함”이 심신을 단련시켜주고 뇌를 말끔하게 청소해주며 당신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 돌려 준다”고 말한다. 지금 내가 어디에 있건 한번쯤 그의 충고에 귀 기울인다면 의존하고 있는 그것에서 조금 더 “홀로 서기”에 성공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골은 그런 것이다. 목차 서문 0061장. 어떻게든 되는 시골 생활은 없다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 0162장. 경치만 보다간 절벽으로 떨어진다스스로를 속이지 마라 0233장.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자연의 성깔을 알아야 한다 030 / 아름답다고 좋은 곳이 아니다 0314장. 텃밭 가꾸기도 벅차다농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038 /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 0425장. 지쳐 있을 때 결단하지 마라당신은 맛이 다한 차가 아니다 047 / 당신의 가난은 고립무원이다 050사이비 종교인들에게 당신은 봉이다 052 / 술을 마시는 건 인생을 도려내는 일 0546장.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온다외로움 피하려다 골병든다 062 / 자원봉사가 아니라 먼저 자신을 도와야 한다 0657장.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고요해서 더 시끄럽다 072 / 자연보다 떡고물이 더 중요하다 074윗사람이라면 껌뻑 죽는다 076 / 다른 소리를 냈다간 왕따당한다 078공기보다 중요한 지역 사람들의 기질 080 / 골치 아픈 이웃도 있다 0838장. 깡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시골로 이주하는 범죄자들 090 / 가능한 한 큰 개를 길러라 093 / 침실을 요새화해라 094수제 창을 준비해라 096 / 군침을 흘리며 당신을 노리고 있다 1019장.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관심받고 싶었던 건 당신이다 112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115그들에게 마을은 나의 집 118 / 돌잔치에 빠지면 찍힌다 120모임에 도시락을 대 주면 당선 12210장.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하루가 다 가도 모를 정도로 전념할 것이 있어야 한다 131이주자들과만 어울리면 사달 난다 132 / 시골을 농락하는 수상한 사람들 13511장. 엎질러진 시골 생활은 되돌릴 수 없다자신이란 자연을 먼저 지켜야 한다 144젊음을 흉내 내야 할 만큼 당신 젊음은 참담하지 않았다 149엄마도 아내도 지쳤다 153 / 엎질러진 시골 생활은 되돌릴 수 없다 15612장.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건 아니다의사만 믿다 더 일찍 죽는 수가 있다 165병을 불러들이는 태도를 뜯어고쳐라 170잘 먹고 잘 생활하면 잘 죽을 수 있다 17313장. 불편함이 제정신 들게 한다멋진 별장도 살다 보면 그 정도는 아니다 180불편함이 치유다 185 / 천국이나 극락으로는 이주할 수 없다 187죽음의 시기는 자신다워질 마지막 기회 191 마루야마 겐지 (Kenji Maruyama,まるやま けんじ,丸山 健二) 1945년 나가노 현 이에야마 시에서 태어났다. 1963년 도쿄의 한 무역회사에 통신담당 사원으로 취직하였으나, 1966년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게 되자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설 《여름의 흐름》을 썼다. 그것이 1966년이었다. 이렇게 난생 처음 쓴 작품으로 그는 「문학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작품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일본문학 사상 최연소로 수상하였다.1968년 소설 〈정오이다〉로 귀향한 청년의 고독을 그린 후, 나가노 현 아즈미노로 이주했다. 이후 문단과 선을 긋고 모든 문학상을 거부하며 50년 가까이 집필에 매진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 『파랑새의 밤』, 『달에 울다』, 『물의 가족』 등을 썼고, 산문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길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 『개와 웃다』, 『세계폭주』, 『산 자에게』, 『취미 있는 인생』,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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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마루야마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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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지리산사람들'이 책을 낸다면?
- '지리산사람들'이 책을 낸다면?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은 2007년 7월 14일 "현대문명이 만들어 낸 반생명, 반평화, 비인간의 인위적 질서를 거부하고 화해와 상생과 순환을 바탕에 둔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고자 또 "나아가 지리산 자락의 사람들과 함께 생태적 생활공동체를 복원"하고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지리산사람들이 책을 낸다면, 어떤 책이 나와야 할까요? 아니 왜 우리는 책을 내야 할까요? 회원님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편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아래 링크를 누르면 됩니다. https://forms.gle/fDmxz87Jc7LVZY5X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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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지리산사람들'이 책을 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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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서시교를 죽이는 이유
- 어제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 브러시는 연신 유리창을 닦아 냈다. 하지만 비의 양에 비하여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앞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도로 위로 산에서 내려온 물이 계곡처럼 물이 쏟아져 내려 도로는 마치 계곡처럼 보였다. 더구나 왼쪽 라이트 하나도 고장이 나서 잘 보이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물이 자동차 바퀴 중간까지 올라오는 곳도 있었고 그때 경고등이 들어왔다. 경고등이 4번 들어왔고 그때마다 나는 차가 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식은땀이 났다. 앞에 가던 승용차는 운행을 포기했는지 높은 곳에 주차했다. 다행히 고개 하나를 넘어가니 비가 그쳤고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오늘 오전에 구례 서시교 관련한 구례 군민 토론회가 있었다. 구례에는 이름도 예쁜 서시천이 있다. 2020년 구례 수해 당시 서시천으로 섬진강 물이 역류하여 구례읍이 침수되는 홍수 피해가 있었다. 보통 지류의 하천이 본류인 강에 물이 흘러 강 수위를 높이는데 서시천에 합류지점이 휘어져 있다 보니 섬진강 물이 원심력에 의해 오히려 서시천 방향으로 역류한 것이다. 거기 다가 합류지점 근처에 수중보가 설치되어 있어 수위를 높이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하여 익산지방관리청은 이 서시천에 있는 서시교를 철거하려고 하고 있다. 서시교는 구례군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다리다. 대부분의 외지 관광객도 이 길을 통해 구례읍으로 진입한다. 구례에서 유일하게 신호등에 들어오면 차가 4-5대라도 있는 곳은 유일한 곳이다. 그 만큼 구례군민들에게는 사용 빈도가 높고 중요한 다리다. 서시교는 침수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다리가 어찌 된 영문인지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더구나 이 철거 결정에 구례 군민 80%가 찬성했다고 한다. 찬성한 주민은 186명이다. 그 중대한 결정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친 그 작은 숫자도 놀랍지만 어떤 질문을 했는지도 중요하다.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설문조사는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원하는 답을 얻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서시교를 그대로 둘 경우 다시 홍수 피해를 당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도 서시교를 그대로 두겠습니까? 라고 묻고 1번 서시교 존치 2번 서시교 철거 후 다른 곳에 설치 이렇게 질문 한다면 당연히 2번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시교를 그대로 둘 경우 서시교로 물이 범람은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만한 일이고 그것도 댐관리를 잘하면 없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 다음 질문 했다면 2번을 선택할 군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 설문이 이렇다.고 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렇다는 것이다. 사실 구례군이 2020년이 수혜를 입은 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댐 관리를 잘못한 것에 있다. 예비 방류를 해야 했는데 무리한 물욕심에 만든 인재다. 왜냐하면 태풍 루사때는 더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당시 구례 읍에 침수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위한 일이 결국 서시교 철거까지 온 것이다. 멀쩡한 다리를 철거하고 1.2km를 우회하는 도로를 만들어 구례군민에게 불편을 주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결정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들은 멀리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불편은 그들에게 닿지 않고 그들은 편리한 방식으로 결정을 하고 예산을 사용하고 집행하고 용역을 준다.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결정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 관리를 잘못해 생긴 인재를 회피하기 위해 3천억 이상 돈을 사용했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인재가 아니라 자연재해임을 주장하기 위한 변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제 그 많은 비가 내렸지만, 홍수는 없었다. 며칠 전부터 섬진강 댐은 많은 양의 물을 방류했고 홍수가 날지도 모른다고 연신 문자를 보냈다. 역시나 아무 일도 없었다. 구례군민은 불편이 없는 새로운 대책을 세워 달라고 익산청에 요구하고 있고 익산청은 답은 없는 상태다. 한 번 결정한 것을 번복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이 전문가이고 전문가가 선택한 방향이니 받아드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으로 발령을 받고 가버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되니까... 그리고 2020년 수해 당시 서시교로 물이 범람 하지도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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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서시교를 죽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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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당 선언
- 책소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책이다. 서울, 경기도, 충청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대표로 나선 노년 여성이 쓴 흥미로운 삶의 연대기이자 구멍 많은 대한민국 헌법을 이렇게 저렇게 메워보자는 신선한 제안으로 가득한 “헌법 제안서”이기 때문이다.≪할매당 선언≫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노년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진솔하고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점이다. 각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은 독자들에게 진정성과 감동을 전한다. 예를 들어 권오자 님의 이야기에는 일생 겪어온 고난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잘 드러나고, 홍영미 님의 글에는 주변부로 밀려난 노년 남성을 바라보는 노년 여성의 따뜻한 시각이 있다. 하나같이 많은 사람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내용들이다.또 다른 매력포인트는 이 책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이다. 책 전체에 걸쳐 여성과 노년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데, 이러한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문제를 환기시키고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데 작은 첫발을 떼게 해줄 것이다. 목차 배성인_격려의 말선언사_할매당 출범을 자축하며권오자_전생 빚 많은 인생서현숙_책상 위에는 아직도손지영_‘할매당’ 창당을 쌍수 들어 반기며홍마리_소설 52년생 김미숙홍영미_50대 이후의 아들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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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글을 잘쓰는 방법
- 페이스북에 쓴 "바코드" 일본에서 살던 경험에 허구를 더해 쓴 중편 소설과 단편 소설 두 편을 더 써봤다. 페이스북에 공개하지 않은 것과 지금 연재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코드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않다. 두 편은 일인칭으로 한 편은 삼인칭으로 썼는데 일인칭이 역시 쓰기가 쉬운 것 같고 삼인칭으로 써보니 좀 어렵지만, 이것 역시 나름 매력이 이었다. 최근 읽어본 책 중에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었다. 프랑스 리뷰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을 인터뷰한 것을 한국의 출판사에서 한국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작가들을 골라 엮은 책이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1편을 읽어보고 흥미가 있어 3편을 모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모든 작가의 인터뷰를 다 읽지는 않았다. 내가 관심 있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작가, 읽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는 작가들 위주로 골라서 읽어봤다. 우리가 다 아는 작가들 이를테면 헤밍웨이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움베르토 에코, 파묵, 밀란 쿤데라, 오에 겐자브로, 수잔손탁같은 작가들이다. 이 작가들 작품은 내가 몇 권 읽었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작가들이다. 대부분 한 시대를 평정한 위대한 작가들이거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다. 파리리뷰 기자들은 이 작가들을 몇 번 방문해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지만, 작가가 된 이유나 글을 쓰는 방법들은 항상 질문에 있었다. 작가가 된 이유야 다들 다르겠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작품은 모두 자신의 직간접경험을 통한 것이라고 하는 작가들이 많았다. 적어도 모든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를 변형한 것이라는 것이다. 자전적 소설이 아니어도 주인공이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신을 투영해서 쓴다는 것이다. 다음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든 작가가 한 마디로 초고를 작성하고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을 수정하고 더하거나 삭제하면서 쓴다고 한다. 더는 스스로 할 수 없을 때까지 밀어붙이고 나서야 완결을 짓는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잠을 자지 않고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나도 잠시지만 세 편의 소설을 쓰면서 잠시 내가 그 상황에서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항상 교실에 앉으면 내 시선은 칠판이 아니라 창문 너머에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소설이나 책을 빌려 딴짓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때 시작한 이 버릇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항상 다른 상상들로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내가 공부를 한 시기는 딱 3번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1~2개월 그리고 읍내 중학교에서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한 4개월 정도 그리고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변해 가야겠다고 변심하고 공부한 그해 6월에서 11월까지다. 그렇다고 수업을 열심히 들은 적은 없었다. 국어 시간엔 역사를 역사 시간에 국어를…. 항상 딴짓만 하고 다녔다. 소설을 쓰는 것 자체는 재미가 있지만 "이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다. 그 재밌는 유튜브와 경쟁해야 하는데, 소설을 써서 무엇을 하겠는가? 하지만 취미로는 꽤 좋을 것 같다. 대한민국 성인은 1년에 책 한 권 정도는 읽는다고 한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읽는 사람만 읽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읽지 않는 시대다. 읽는 사람들이 점점 멸종되는 것이다. 요즘은 유튜브도 숏츠 같은 짧은 영상이나 드라마나 영화도 요약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소설이라니 그것도 실용적인 내용도 아닌 긴 소설이라니…. 읽힐 만한 이유가 없다. 최근에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나 현대 문학상 수상작, 문학동네 수상작들의 단편을 꽤 읽어 봤다 대부분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는 이유가 뭘까? 과거에 나는 매년 발표되는 수상작을 기다려 구매했다. 꽤 재밌어했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이제 이런 소설들이 유튜브와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한 소설이나 무협 공상 과학이나 웹툰 아니면 실용서들이나 지식을 전하는 책들과 같이 비교해도 읽는 재미로 치면 경쟁이 안 될 것 같다. 작가들의 수준이 낮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구례 서시교를 지나는데 현수막이 보였다. 섬진강 책방에서 열리는 문학강연이었다. 제목이 "문학의 필요성"이었다. 역설하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방법을 찾아서 필요성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하게 된다. 물론 필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유명한 작가의 소설은 잘 팔리고 많이 읽거나 적어도 구매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시대지만 여전히 쓰는 사람을 쓰고 읽는 사람을 읽을 것이다. "아니, 아니요. 이건 행복한 꿈이랍니다. 그것은 제 소설이지요. 저는 그것을 우편함에 넣고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 어언 매큐언의 말로 끝내고 싶다. 그러함에도 쓰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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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글을 잘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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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7일 낮2시] 마을공동체 방향모색을 위한 세미나
- 2024년 6월 7일(금) 낮 2시, 성심원 강당에서 ‘마을공동체 방향 모색을 위한 세미나’가 있습니다. 이 세미나는 열 번째 성심어울림축제 일정의 하나로 산청성심원은 ‘성심원이 바라고, 꿈꾸는 마을공동체!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세미나에는 승묵 스님(실상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김호열 목사(함양 두레마을), 김명철 원장(힐링, 치유마을), 이상충 과장(장애-비장애 통합마을, 대구 안심마을) 등이 참석합니다. 세미나 전후로 전야 축하공연, 축하 미사, 초여름 밤의 작은음악회 등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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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7일 낮2시] 마을공동체 방향모색을 위한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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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 산문집
- '오늘 뭐 먹지?' 같은 걱정은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소박하고 단순한 식단을 추구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기도 하다. 음식을 소비 할 아이들이 없다. 한 명뿐인 식구는 한 달을 굶어도 될 만큼 배에 전대를 찬 듯 저장하고 있으니 별 신경 안 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얼굴을 못 알아 볼 정도로 살이 쪘으니 잘 먹기 보다는 어떻게 굶을 수 있는지에 더 신경을 써야 할 형편이다. 사실 그 동안 너무 많은 음식을 해 준 것에 대해 오히려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티비도 음식채널만 보고 책도 음식 관련 책 등 너무 먹는 일에 치중해 온 것 같다. 잘 멕여야 된다는 책임감이 강해 내 손으로 한 음식을 먹는 동물(사람 포함)들에게 너무 많이 멕여 모두 과체중이다. 물론 질도 좋은 것으로 해주려 했지만 양이 만만치 않았던 것을 고백한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권여선 이란 저자 때문인데 공선옥과 햇갈렸다. '춥고 더운 집'에서 고생하던 공선옥의 메뉴가 궁금했던 것인가. 권여선이 적은 여러 가지 음식도 맛깔스럽고 먹음직스럽지만 그 음식을 표현하는 솜씨가 더 맛깔스럽다. 그러고 보면 음식을 소개하는 창의적인 레서피를 만들어 내는 일도 어렵지만, 이렇게 방법과 과정과 맛을 소개하는 산문이 훨씬 어려울 것 같다. 음식을 보지도 않고 침을 흘리고, 꿀꺽 침을 삼키고 배가 고파지니 말이다. 재료의 특이성과 맛의 표현, 그리고 그 음식을 먹게 된 역사 같은 것이 잘 버무려진 맛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권여선의 위장을 추앙하고 싶다. 그녀는 작가들 사이에 알려진 주당인 듯하다. 일단 그녀가 소개하는 음식은 거의 안줏감이다. 사실 주당 눈엔 모든 반찬이 안줏감으로 보이고 어떤 술이 어울리나 먼저 본다. 반찬에 따라 막걸리, 포도주, 중국술, 소주...를 선택하며 먹기도 전에 일차로 안주에 취한다. 우리 집에도 한사람 있어 내가 그 속내를 잘 안다. 난 영양과 맛과 건강을 생각해 만들지만 그의 눈에는 모두 안주로 보이는 것이다. 권여선 음식의 또 하나 특징은 매운맛이다. 청양고추의 그 무시무시한 매운맛을 그녀는 즐긴다. 우리 집 한 사람도 한 때는 그랬다. 청양고추를 듬북 넣어 먹는 사람들이 무섭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은 소가죽 같이 튼튼한 위장을 가진 족속들이다. 난 사람들이 고기와 즐겨 곁들이는 날 마늘을 먹지 못한다. 위가 뒤틀리며 아프다. 샐러드에 들어간 약간의 양파나 고기에 나오는 생 양파는 아주 조심해서 극소량만 먹어도 속이 아프다. 물론 술은 안받지만 한 모금이라도 먹으면 다음날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도 망치로 맞은 것보다 아프다. 술꾼의 소가죽 같은 위장이 정말 부럽다. 나의 위장은 금이 좍좍 그어진 낡은 레이스로 만들어진 것 같다. 세상 참 불공평하다. 맛있고 매운 안주가 가득한 위험하고 맛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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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권여선 음식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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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바오 내 친구 어린 바오밥
- 내가 사는 하동에는 글 쓰는 사람이 많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유명한 시인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산이 있고 들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근처에 있는 이곳에 살다 보면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시인 흉내를 조금씩 낼 수 밖에 없다. 그러다 어떤 이는 진짜 시인이 되기도 하고 소설가가 되기도 한다. 신비하고 장엄하고 영롱하고...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자연과 매일 마주하다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시심을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 뿐 아니라 그림, 노래, 춤 등 여러 방법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이 지리산 자락에 투성이다. 박남준 시인은 하동의 대표 시인이다. 그가 낸 시집은 하동도서관에 가면 즐비하게 꽂혀있다. 모두 뽑아와 읽어보면 그가 어떻게 사는지 어떤 사람인지 만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시를 쓰는 사람은 시를 쓸수록 마음이 맑아져 마침내 아이같이 순수해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그의 글을 읽으며 한다. 꿈을 꾸다 사랑하고 마침내 그 사랑을 찾아 떠나고 길고 힘든 여정 끝에 조우하고 입맞춤하고 품에 안고 돌아와 매일매일 돌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에 나무 구멍처럼 빨려 들어간다. 세상에 바오밥나무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나무의 밤의 모습과 낮의 모습, 사람과 함께 있고 별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 정말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누군가가 깊이 사랑하기에 그 사랑은 전염돼 함께 사랑하게 되는가. 이 사진들만 보아도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내 곁에 있진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서 돌보는 이야기는 딱딱한 마음을 말랑말랑 녹여준다. 바오 안녕, 무럭무럭 잘 자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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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바오 내 친구 어린 바오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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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이 책의 저자 루리가 그린 그림을 오래 들여다본다. 루리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 세상에 읽어야 할 책도 많지만 동화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헌책으로 선물 받았는데 손주에게 주려고 잘 간직하려 한다. 그가 만나는 세상이 어떨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했고 변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 빨라져 그와 나는 소통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모의 사랑이라는 안락한 치마폭에서 나온 그의 세상은 어떤 것일까. 어떤 세상을 만나든 그는 긴긴밤을 견뎌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할머니가 쓴 책은 아니지만 할머니가 주고 싶었던 책을 기억하면 좋겠다. 긴긴밤을 견뎌야 아침이 온다. 그의 생애에 긴긴밤이 자주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하지만 그렇더라도 잘 견디기를 바라며. 세상에 하나 남았다 절멸했다는 북부흰코뿔소. 참 신기하게 생긴 이 동물의 눈을 보면 말이 하고 싶다. 입에 알이 든 양동이를 물고 있는 펭귄. 모든 동물이 동무인 세상은 너무 멀고 같은 동물도 동무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이 긴긴밤을 잘 통과할 수 있을까. 지구 종말이 온다면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되고 싶은가. 어떤 식으로 남은 자들은 삶을 이어 갈 수 있을까. 코뿔소와 펭귄의 낯 설은 조합의 하모니가 없이 이음은 불가능하다. 누가 어떤 식으로 살아남든 연습이 필요하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조화롭게 살지 못하면 그렇지 않은 세상에서 조화는 더욱 힘들 것이다. 지구의 존속을 원한다면 평화는 매일 연습되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책의 독서 후에 드는 평화롭지 않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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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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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종말
-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제 이 업은 끝났어요. 더 이상 유지가 안 됩니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아요" 얼마 전 학교급식에 채소를 공급하던 업체 대표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 업체는 전남과 광주지역에 채소를 납품하는 꽤 큰 업체다. 20년 가까이 그 일을 해왔는데 지난주에 문을 닫았다. 아이들이 채소를 먹지 않다 보니 채소를 납품하던 업체의 매출이 줄고 매출이 줄어드니 더 이상 유지가 힘든 것이다. 아이들이 고기를 좋아하고 채소를 먹지 않으니 학교급식도 채소가 점점 밀려 나간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도 채소를 많이 먹지 않는다. 겨우 겨우 채소를 먹는 것은 주먹밥이나 비빔밥이 아니고는 잘 먹지 않는다. 고기와 라면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된 지 오래일 것이다. 중학생인 아들은 채소를 거의 먹지 않는다. 하루에 먹는 김치양이 손톱크기 3-4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김치찌개에 들어가 있는 것을 먹으니 채소는 끓인 것이 아니면 손이 안 간다. 나는 고기보다 채소를 더 좋아한다. 고기반찬과 채소 반찬이 있으면 내 젓가락은 항상 채소에 먼저 손이 간다. 아이들 젓가락은 항상 고기를 향해 있고 모든 고기반찬이 사라지만 그때서야 채소를 먹어 볼까 하지만 차라리 맨밥을 먹고 만다. 그야말로 청소년의 식단은 육식이 되었다. "밥보다 빵을 채소보다는 고기를..." 산골에 사는 우리 집 밥상이 이런데 더 말을 하며 뭐 하겠는가? 물론 우리 집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려서는 채소를 잘 먹었다. 하지만 성장기에 접어들고 "잘 먹고 잘 커야 할 것 같은데 워낙 먹는 양이 적다 보니 그나마 고기라도 먹여야 하지 않을까 "하다 그렇게 변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업체 대표는 채소 유통업을 그만두고 대파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떠났다. 이미 심을 대파모종도 이미 준비했고 땅도 마련했다고 한다. 그만 두니 맘이 편하고 좋다고 했다. "진작에 그만두고 떠났어야 했어요." 제러미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마리 이상의 소가 있으며 미국에서만 10만 마리의 소들이 매일 도축되고 있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중앙아메리카 삼림의 25%가 육우 사육을 위한 목초지로 개간되었다. 육우 방목이 중앙아메리카의 삼림 파괴에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30쪽) 하지만 육식은 종말 하지 않고 더 커지고 있다. 육식의 종말이 아니라 채식의 종말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채소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것에 기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처럼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는 시기에 더욱 그렇다. 텃밭이 없는 사람들에게 쌈채소 600g과 고기 600g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더구나 고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비싼 채소와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고기와의 전쟁으로 본다면 확실히 고기가 승자다. 주변에 식당을 봐도 채소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식당은 거의 없다. 물론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식당을 유지하는 곳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런 채식 식당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시골 지역에서 찾기는 더욱 어렵다. 고기를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DNA에 각인된 욕망일 것이다. 인류문명 전체를 보더라도 사냥을 잘하고 고기를 먹는 것이 몸을 강하게 만들 고 매력적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존재했다. 레너드 쉴레인의 지나사피엔스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의 식단이 채식에서 육식으로 변한 또 다른 결과는 우리가 고기를 더 많이 먹을수록 우리의 장이 더 짧아졌다는 것이다. 장이 짧아질수록 계속 커가는 뇌로 공급할 수 있는 산소가 더욱 많아진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소화기관에 가장 많은 산소를 할당한다. 식물성 음식을 소화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며, 에너지 자원이 많이 필요하다. 동물성 식품이 많은 식단으로 바꾸면, 소장은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일손이 남는 산소는 뇌로 차출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육식동물들은 초식동물보다 더 영리하다.(78) 칼라하리 사막의 쿵산족 사람들은 왜 사냥을 잘 못하는 남자들이 여자와 결혼하기 어렵냐는 질문에 "여자들은 고기를 좋아한다"라고 답했다. 육식이 인간에게 준 혜택 역시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오랫동안 채식을 고집해 온 사람들이 꽤 있지만 모두 건강하게 건장하다. 하지만 채소는 점점 식탁의 변방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것은 도시화가 가져온 필연일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싱싱한 채소를 소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냉동이나 냉장으로 공급되는 육식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간단하게 구워서 먹거나 가공해서 먹으면 되는 육류에 비하여 채소를 맛있게 만들어 먹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다. 대한민국 성인들 중에 고기를 못 굽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채소를 맛있게 먹는 것이라고는 유일하게 고기와 더불어 쌈으로 먹는 것 이외에 아무거도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런 시대에 살다 보니 채소는 점점 시장에서 밀려가고 있다. 적어도 아이들 식탁에서는 채소는 완전히 패배했다. 내가 고기보다 채소를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는 어려서 맛있는 채소를 많이 먹어봤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라는 것은 결국은 그 요리에 담기 과거의 향수를 다시 되새김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기만 먹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도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이미 그런 세대가 20대 30대일 것 같다. 육식이 좋고 채식이 좋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의 사육을 위하여 토지가 황폐화되고 지구상의 1/3에 가까운 곡식을 소들이 먹는데 반해 기아에 처한 인간들이 많다"는 제레미리프킨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고 채소가 인간에게 주는 유익함이 결코 육식에 비해 가볍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업체 사장님의 건투를 빈다. 대파는 모든 요리에 꼭 필요한 필수 채소기 때문이다. 파절이 없는 고깃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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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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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좌절의 시대
- 이 책은 작가 장강명이 2016-2024 까지 여러 매체에 쓴 칼럼을 모은 것이다. 짧지 않은 세월 여러가지 당시 사회적 이슈를 보며 적은 글이라 다양하고 재밌다. 무엇보다 소설가 인만큼 아주 미세하게 내면을 살핀다. 사실 알고 보면 뭐든, 자신이든, 가족이든, 사회든, 나라든 아주 미세한 부분을 간과하고는 전체를 볼 수 없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만 악마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일이 미세함에 있다. 미세함을 놓치면 어느 순간 배는 산으로 갈 수 있다. 장강명이 쓴 소설을 몇개 읽은 적이 있다. 모두 재밌게 읽었고 세대 차이를 실감했다. 그의 세대와 나의 세대는 다르다는 것, 아니면 그가 독특한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그의 이름은 내게 젊고 특이하고 내가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그는 전업소설가가 되기 위해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아내와 합의하고 정관수술을 했다. 효도는 셀프로 자기부모는 자기가 알아서 하기로 한다. 전업소설가라 집이 직장인데 밥은 주로 사먹는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거나 배달 음식도 자주 먹는다. 이런 것이 이 늙은이와의 세대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젊다는 것은 몇 살까지가 젊은 것일까? 어쩌다 70대에 이른 내게 '젊은이'는 70대가 아닌 모든이다. 이책은 얇지 않지만 칼럼이라 하나의 글이 길지 않다. 100여편 가까이 되는 글이 모두 미세한 느낌으로 쓰여져 깊이가 있고 흥미롭다. 그중에서도 보수와 진보에 대해 쓴 글이 눈길을 끈다. 보수는 뭐고 진보는 무엇일까? 나는 진보일까, 보수일까 아니면 그 중간일까, 아무것도 아닐까. 보수와 진보에 대해 자세히 공부해 본 적이 없어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의 스승은 '예수', 그리고 '제정구'같은 사람이다. 통념이나 관습의 틀을 깨는 사람, 그렇지만 전통은 중요시 한다. 막연히 내가 아는 진보다. 장강명같은 소설을 쓰는이는 당연히 진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보수라고 한다! 머리가 띠이잉~~ 그런데 그의 글을 읽어보면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나는 보수? 사실 나같이 나이 많은 늙은이는 거의 보수라 하고 주위 내또래는 모두 보수다. 내가 아는 보수는 사실 보수가 아니라 꼰대? 아니면 고집불통?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한 사람 안에 보수와 진보는 공존하다. 보수니 진보니 딱 2개로 갈라 서로 웬수 대하듯 하는 이상한 세태가 사람을 혐오증 환자로 만든다. 그가 말하는 보수와 진보는 방향이 아니라 속도라고 한다. 요즘 하동은 공공의료원이 핫이슈다. 군수는 일인시위까지 나서며 왜 반대하냐고 열을 올린다. 내 건강을 위해서라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고 수십 수백억을 들여 당장 병원부터 지어야 할까? 이웃 산청에는 수억을 준다해도 의사가 오지 않는다는데 하동에만 의사와 간호사가 떼로 몰려올 이유가 있을까? 권력을 잡은이는 자기 임기때 뭐든 보여주려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면 더욱더 무리하게라도 추진하다. 그래서 말아먹은 것, 망쳐놓은 것만 누가 좀 모아 목록을 만들면 수백페이지의 책이 될거다. 장강명의 말대로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 속도가 중요하다. 방향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찬찬히 미세하게 가는 길을 살펴보아야 한다. 미세 좌절은 대형 사고와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고 미래를 망칠 수 있다. 진보로 생각하고 보수로 행동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러다 분열증 환자가 되지는 않겠지. 미세하게 쪼개고 쪼개서 디테일 속에 악마를 솎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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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좌절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