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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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곳
    [백두대간 마루금인 도로 : 사진 이완우] 남원시의 운봉읍과 주천면이 만나는 지역은 백두대간이 형성한 개성적인 지형이다. 운봉읍과 주천면이 맞닿아 있는 2km는 거의 평지 도로인데, 이 평지 도로가 지리산 자락 운봉고원의 외륜(外輪)으로 엄연한 백두대간 산맥의 마루금이다. 이 도로에서 정령치 방향을 바라보고 설 때, 이 도로의 왼쪽은 낙동강 수계이고 오른쪽은 섬진강 수계로서 이 지역은 곡중분수계(谷中分水界)를 이룬다. 백두대간 봉우리인 이곳의 수정봉 아래에 노치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을 백두대간 마루금이 관통하고 있다. 이 마을 앞의 운봉고원 곡중분수계 지역을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풍수적 관점에서 백두대간의 목 부분에 해당한다고 인식한 듯하다. 일제는 무게가 100kg 정도 되는 목돌을 6개 만들어 노치마을 앞의 평지에 깊숙이 묻었다. 일제가 이렇게하여 한반도의 백두대간에 흐르는 기맥을 누르려 했다는 이야기가 이 마을에 전해온다. 이곳 노치마을 회관 옆에는 이때 묻었던 목돌 중 5개를 파내어 보관하고 있다. 곡중분수계이며 백두대간 마루금인 2km 도로 구간의 중간 지점 가까이 낙동강 수계인 곳에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이 있다. 이곳은 백두대간의 생태와 자연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이곳 전시관은 한반도 지도 형상을 본떠서 지붕을 만들었다. [백두대간 노치마을 : 사진 이완우] 백두대간은 한반도에서 생명의 나무처럼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의 산줄기라도 백두대간의 13정맥에서 다시 뻗어 나온 작은 가지로 볼 수 있다. 백두대간으로 이해하는 한반도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은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이다. 백두대간은 동물들의 이동통로이자 서식처이며, 여러 강의 발원지로 생명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이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 사진 이완우] 구절초가 찬 이슬을 머금은 한로(10월 8일) 절기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을 방문하였다. 전시관에 입장하면, 백두대간에 우뚝 솟은 산봉우리에서 담아온 흙을 넣은 130개의 진공관으로 한반도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위쪽의 40개 진공관은 비어 있는데, 북한 지역의 산봉우리들이다. 남한 지역 산맥의 사이에는 그 지역의 강물을 담은 진공관이 있다. 이 130개 진공관의 한반도 조형물은 한반도의 산봉우리 모든 흙과 강의 물이 한군데에 모이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 한반도 조형물에서 북한 지역은 백두산의 흙만 진공관에 소중하게 담겨 있다.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남북의 두 정상이 함께 한 기념식수 행사에 사용된 백두산 흙이라고 한다.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은 백두대간의 시작과 끝, 백두산과 지리산의 흙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전국 최초의 곳이다. [ 한반도의 산흙과 강물 진공관 지도 조형물 : 사진 이완우] 숲은 이산화탄소의 흡수와 산소의 배출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숲이 사라지고 있어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숲과 공존하는 어울림은 절실하다. 우리가 행성 지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연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자연이 전하고 있는 신호와 메시지를 인식할 수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 전시관에는 지리산 생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동식물을 모형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였다. 용모도 귀엽고 털도 아름다운 족제빗과의 담비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용맹한데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는 참갈겨니, 돌고기와 쉬리가 물속을 헤엄치고 수달과 여우가 어슬렁거리며 생명력 넘치는 자연 생태계이다. 둥치 큰 은사시나무 아래 백두산 호랑이가 포효하려는 기상이다. 참매가 낮의 숲을 지배한다면 올빼미는 밤의 숲을 지배한다. 은사시나무 가지에는 올빼미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앉아 있는데 개성 있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숲의 나무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은 백두대간의 생태 자연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백두대간의 환경 훼손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보로 주제를 확대한다. 백두대간은 과도한 개발과 관광이나 등산으로 멍들고 식생이 훼손되어 동식물들이 생명의 터전을 잃어가고 있다. 대규모로 지형이 변형되면서 백두대간의 단절까지 초래하기도 하며, 등산로 따라 주변 식물이 말라 죽고 등산로의 노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여 동식물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종 다양성이 감소하고 있다. 일상화된 전 세계적인 폭염과 산불, 최악의 가뭄, 대규모 홍수는 기후위기를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해결책은 숲 복원이다. 숲은 인간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탄소의 3분의 2를 포획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숲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의 파괴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숲의 나무가 폭염과 가뭄의 공격에 시달리며 내성을 잃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에 직면한 수많은 동식물을 살려내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지리산 왕등재 습지의 물고기 모형 : 사진 이완우] 이곳 전시관에서는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의 경보를 게시물로써 잘 알려주고 있다. 여우가 새의 알을 물고 가서 겨울을 위해 저장하는 모습을 보면 동물의 생존을 위한 적응 변화가 처절하기까지 하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동식물의 서식지가 변화하고 있다. 꼬리표가 달린 동물과 조류가 야생에서 발견되니 생물종이 감소하고 있는 반증이다. 고온 건조한 바람 등 기상 여건이 심상치 않아 재앙적인 폭염이 반복되며 심지어 겨우내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이곳 전시관의 포토 아크(photo ark)에는 생명의 방주를 타고 있는 동식물의 사진을 게시하고 있다. 창세기의 신화에서는 지구를 휩쓴 대홍수에 노아의 방주에 의지해 많은 생명이 멸종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현재 전 지구적인 기후위기에서 생명의 대멸종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한 지구 자체가 또한 생명의 멸종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방주가 되어 있는 역설적 상황이다. [숲속의 소쩍새와 올빼미 모형 : 사진 이완우] 인간의 역사 1만 년 동안에 지구상에 있는 산림의 3분의 1일이 사라졌는데, 지난 백 년 동안에 사라진 면적이 그중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숲이 주는 혜택은 식량과 목재의 획득, 탄소 저장 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숲을 찾으면 산림욕으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숲과 나무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이곳 생태교육장에서 산림청에서 제작한 25쪽 분량의 백두대간 생태지도를 홍보물로 받았다. 이 생태지도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향로봉까지 10개 구간별로 동물, 식물, 식생, 대표 수종, 대표 동물과 대표 식물 등의 서식 위치를 지도에 표기하고 사진을 첨부한 책자였다. 백두대간 생태교육장과 전시관에서 우리가 지구와 공존하는 노둣돌은 숲과 나무임을 확인하였다. [백두대간 은사시나무와 호랑이 모형 : 사진 이완우]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0-09
  • 8초 인류
    나 같은 나이에도 나 스스로 스마트폰 중독이라 여기고 있으니 이삼십대 젊은 친구들과 스마트폰의 친밀 관계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안에는 나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같이 애들이 멀리 사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폰을 들여다 봐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얼굴을 볼 수 있고 손주의 움직이며 노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듯 볼 수 있다.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도 돈이 들어왔나 확인 할 때도 그것을 봐야한다. 잊어 먹을까 메모도 거기에 녹음도 거기에 뭘 몰라 물어 볼 때도 거기에 한다. 노래를 들을 때도 영상을 볼 때도 그것을 찾는다. 그것이 손에서 떨어지면 금단 증상이 온다. 어딨지? 바로 옆에 놓고 가슴이 철렁! 큰일 난 듯 두리번댄다. 사진을 찍고 올리는 일이 이것을 통해야 쉬우니 일단 이것으로 사진을 올리고 컴터에서 글을 쓰던 뭘하던 한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그 안에 있고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을 그것은 알고 있다. 외울 필요가 없으니 그것을 보고 있다 머리를 들면 바로 까먹는다. 지금 찾고 조금있다 찾고 내일 또 찾는다. 한 집에 살면서도 때론 문자가 더 편하다. 사진까지 같이 보내며 요런거라고 똑 부러지게 부탁한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르는 사람의 일상까지 읽으며 나 지금 뭐하지? 하며 스스로 끔찍스러워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너와 가까이 하지 않겠다고! 그러나 마치 고기가 어항 밖으로 튀어나와 발버둥치듯 손을 덜덜 떨며 그것을 찾는다. 증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한 병을 앓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300쪽 가까이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실험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근데 왜 뭐하러 읽고 난리야. 뭐 좋은 소리라도 있을까해서? 그 병이 확실한가 오진은 아닐까 확인해 보려고? 암튼 나는 뭘 몰라서 못하기 보다 삼일을 넘기지 못해서 못한다. 이 중독 증상이 병이라면 고쳐야겠지만 미리 단언한다. 고치지 못할 거라고 아니 안 고칠거라고! 그러나 정말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다고! 꼭 필요할 때만 쓰는거 아니였나? 그럴때가 많을 뿐이쥥 헤헤. 20분이 지나면 이미 우리는 공부한 것의 60퍼센트만을 기억할 수 있고,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이 채 안 되며, 하루가 지나면 단지 3분의 1만 기억할 수 있다. 한달이 지나면 뇌 속에는 정보의 15페센트 밖에 남지 않는다. (헤르만 에빙하우스) p15 오늘날 지구상의 이동 전화 가입자 수는 79억명이다.(2019). 전 셰계 인구는 76억 명이니 사람보다 사용중인 심카드가 더 많은 셈이다. 매년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심 카드가 탄생한다는 주장은 내게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생략) 자랑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는 한국(삼성의 본국)과 홍콩에 이어 인구 대비 모바일 기기 수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나라다. (생략) 지금 이 순간, 지구상에 집에 화장실이 있는 사람보다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유엔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4억 명의 사람들만 화장실을 소유하고 있으며, 약 10억 명의 사람들은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한다. p41 오늘날 평균적인 사용자가 아이푠을 잠금 해제하고 사용하는 횟수가 하루에 약 80회, 1년에 거의 3만회(지금은 이미 그 이상일 것이다)에 이른다는 애플의 데이터나 하루에 스마트폰을 만지는 횟수만 해도 2,617회에 이른다는 또 다른 연구의 결과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웹 전문가 니르 이얄은 <훅>에서 스마트폰 소유자의 79퍼센트가 매일 아침, 잠에서 깬 후 15분 이내에 기기를 확인한다는 자료를 내놓았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 는 잠이 완전히 깨기도 전에 숨 쉬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침대 옆 협탁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들 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문자를 찍고, 눈을 제대로 뜨지 않고도 페이스북 앱을 열 수 있다. 게다가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것이 없는데도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환각의 한 형태로 10명 중 9명에게 일어나며 심지어 '팬텀진동증후군'이라는 학술명까지 가지고 있다. 팔다리를 잃은 사람이 뇌의 잘못된 재조정으로 인해 여전히 팔다리가 있다고 느끼는 현상,마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지의 말단 신경으로부터 계속해서 자극과 신호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현상인 '환각지phantom limb'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놀랍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어느 정도로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략) "스마트폰 진동처럼 작고 빈번한 세포의 경련인 진동들은 감지되고 서로 교루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데는 두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이 우리의 두뇌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히 우리가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시지에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우리를 초조하고 과민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죠."p46 8초는 오늘날 우리가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평균 시간이다. 기사를 읽을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집중력을 잃는다. 8초! 금붕어보다 짧은 시간이다. 단 8초의 집중력으로 인해 우리는 오해와 소통 불가능, 고독 그리고 침묵의 형을 선고받았다.p66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산만함을 '산만함'이라 부르기를 그만두었다. 이 말의 근저에 깔려 있던 모든 부정적 의미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멀티태스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컴푸터의 기능에서 차용한 용어다. (생략) 안타깝게도 실제로 컴퓨터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생략) " 완전히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짓이 아닌 이상,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하는 것은 전환입니다. 굉장히 빠르게 앞뒤로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 순간 우리가 주의를 다시 집중시킨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하루 종일 이 업무 전환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집중력과 두뇌에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집중력이 낮아지는 것을 디대로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은 그 물리적 존재만으로도 인지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 두기만 해도 우리의 주의력은 분산된다.p91 인간의 기능을 기계가 대신할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그리고 뇌에서 어떤 능력이 제거되는 것이다.p132 화면의 LED가 청색광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이것을 날이 밝은 하늘의 푸른빛으로 알고 잠이 깰 때를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디지털 기기가 뇌의 기억 능력에 미치는 첫 번째 직접적인 영향입니다."p154 2017년에 노벨 의학상은 일주기 리듬(대략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는)을 제어하는 분자 매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세 명의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태양광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방출되는 청색광과 같은 단파장에 노출되면 우리의 신체는 모든 관점에서 '활성화'되어 반응한다. 반대로 양초의 빛과 같은 붉은 빛의 긴 파장에 노출되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이 들려는 성향이 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깨지면 당뇨병이나 비만, 우울증, 심부전, 천식과 같은 심각한 질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어두운 방에서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행동이다. p155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 정도의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좋아요'와 '엄지 척' 사회는 계속될 것이다. 웹의 거인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빙산에서 타이타닉 호를 구하라고 요구하느느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p193 가끔은 무언가를 모른다는 것, 의심에 빠진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되었는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단어들의 올바른 문자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엄청난 양의 온라인 정보들 사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p217 "독서는 정신의 학교입니다. 읽기 회로를 개발하면 점점 회로가 성장합니다. 깊이 읽을수록 생리학적으로 더 정교해집니다. 깊이 있는 독서는 수신하는 정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고 있는 것과 생각하고 있는 것을 연결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구축하기 때문이죠. 두뇌는 이러한 네트워크에 의해 말 그대로 장악되며, 신경학적 관점에서 이 모든 네트워크들이 모여 분석 능력을 구축합니다." 즉 깊이 있는 방식으로 더 많이 읽을스록 '정교한' 과정을 더 많이 강화하고, 읽은 내용이 기억 속에 더 많이 굳게 자리 잡을수록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매이렁 울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골똘히 생각하기think hard'였다.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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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24
  •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제목이 코믹하다. 부제는 '정치적 동물의 길'이다. ”사실 정치에 관심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뉴스보면 기분 나빠지고 욕 나오니 싫다. 모든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지고 싶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모든게 정치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는게 정친데 정치가 싫다? 이 무슨 모순이고 비극인가? 그렇다면 정치가 재밌고 좋아지려면 어찌해야 하나? 뭐 내가 결론내는 건 언어도단이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불행하지 않으려면 정치가 재밌어야 하겠지? 그런 일이 있을랑가는 몰겄지만 이런 재미있는 정치에세이는 어떤가! 이 책은 전문 정치학 책은 아니고 에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1부 정치란 무엇인가? 로 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정치 얘기를 한다. 쉽고도 재밌다. 또 영화 얘기도 많고 그림 얘기도 많다. 알고보면 이 모두가 정치라는 얘기다. 결국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정치 없이 인간은 없다. 뭐 그런 이야기?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처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P9 정치가 어디 있냐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이 세상에 태어나 있고, 태어난 바에야 올바르게 살고 싶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노력해보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니 합의가 필요하고, 합의하려니 서로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합의했는데도 합의는 지켜지지 않고, 합의 이행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고, 규제를 실천하려니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 남용을 막으려니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보장하려니 재산이 필요하고, 재산을 마련하니 빈부격차가 생기고, 빈부격차를 없애자니 자원이 필요하고, 개혁을 감행하자니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하자니 토론이 필요하고, 토론하자니 논리가 필요하고, 납득시키려니 수사학이 필요하고, 논리와 수사학을 익히려니 학교가 필요하고, 학교를 유지하려니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일터의 사람은 노동을 해야 하고, 노동하다 죽지 않으려면 인간다운 환경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돌거나 외국이 침략할 수도 있다. 공동의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많고 쉬운 일은 없다. 이 모든 것을 다 말하기가 너무 기니까, 싸잡아 간단히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는 서울에도 지방에도 국내에도 국외에도 거리에도 집 안에도 당신의 가느다란 모세혈관에도 있다. 체지방처럼 어디에나 있다, 정치라는 것은. P23-24 정치 공동체는 자연의 산물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우연이 아니라 본성상 정치 공동체가 없어도 되는 존재는 인간 이상이거나 인간 이하다. -아리슽텔레스 "정치학" 중 p25 폴리스 시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는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 아테네 사람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초탈한 사람이라고 존경하지 않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한다." p29 모든 권력을 싫어한다는 말은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말이며, 모든 욕망을 무시한다는 것은 삶을 혐오한다는 것이다. 권력은 권력만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여러 일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은 종종 목표를 지향하고, 그 목표는 권력의 향사를 통해 달성된다. 아무 것도 도모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까. 체속을 초월하겨고 드는 선사도 해털을 도모한다. 마음의 고요를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는 어떤 나직한 힘이 필요하다. 정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겠다면 어딘가 조용히 숨어서 자신의 멸종 소식을 기다려라.p53 근대 정치 이론의 초석을 놓은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그처럼 한갓 사적 인간이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낱낱이 흩어져 있던 인간들이 어떻게 단일한 의지를 가진 권력체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일까? 그냥? 심심해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죽지 못해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지속되는 두려움과 난폭한 죽음의 위협"으로 인해 인생이 고독하고, 열악하고, 고약하고ㅡ 잔인하고, 짧아질까 봐" 변신하는 것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더로 괴롭기 때문에 정치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 변신 덕분에 인간은 비로소 삶을 견딜 수 있게 된다. 투표는 인간이 정치적 인간으로 변신했던 그 위대한 상상을 되살리는 축제다.p109 다민족 국가를 다스리는 일의 어려움은 피터 반 더 보트의 1578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온갖 짐승들의 머리가 달려 있는 거대 괴물을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이 당혹스럽게 바라보고 잇다. 이 괴물은 다민족 제국의 여정을 시작하던 16세기 후반의 (오늘날)네덜란드를 상징한다. 그러나 다민족 국가가 반드시 통치의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잘만 소화하면 그것은 활력의 근원이 될 수 있다. 유럽 각국이 가톨릭이냐 프로테스탄트냐의 갈림길에서 탄압과 전쟁을 일삼고 있을 때, 네덜란드는 적극적으로 관용 정책을 택했다. 그에 따라 칼빈주의자뿐 아니라 가톨릭 루터교, 유대교, 재세레파 신자 등 타국에서라면 이교도로 낙인찍혀 핍박을 받았을 인재들이 네델란드에 몰려와 살게 되었다. 17세기 초 암스테르담 인구의 40퍼센트를 이민자가 차지할 정도였다. 다양해진 인구 구성을 장애물이 아니라 활력으로 승화시켰을 때, 네덜라드는 본격적인 번영을 구가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향유하고 표방해온 다양성과 자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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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5-18
  •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지리산 봄(春/見), 루이네 강회진(시인, 독립연구자)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어 앞으로 운이 좋아 80살 까지 산다고 쳤을 때 내게 남은 생은 살아온 날 보다 적다. 마음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견디는지도 모른 채 인생이 지나고 있다. 나의 욕심으로 때론 너무 왔거나 지나갔거나 눈치 채지 못한 관계에 지치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늘 고단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드디어 나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나. 오랫동안 지리산과 섬진강을 그리워했기에 구례, 하동을 꿈꾸었다. 언젠가 초여름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보았던 산내의 다랭이논 일렁이는 초록 물결과 손에 잡힐 것 같던 흰 구름, 고즈넉한 실상사의 저녁 예불 모시는 풍경들이 자꾸만 나를 불렀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을 구하기 어렵다는 산내에 빈 집이 나왔고 내놓은 아파트는 금방 입주자가 나타났다. 마치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처럼. 2. 세 가지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그 먼 곳으로 가느냐 물었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먼 곳이라는 말일까?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지 못했다. 마당에서 듣는 하루 두 번 실상사 범종 소리와 수달이 살고 있다는 람천의 우렁찬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이곳으로 이사를 위한 이유로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게다가 이곳은 내게 완벽하게 낯선 곳. 이사를 하는 날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이사하는 날 눈이 오면 부자된다 안하요.”라며 애써 웃음을 보였다. 지리산 IC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저 멀리 펼쳐진 지리산 자락이, 마을이 온통 눈으로 환하게 빛났다. 지리산에 곁들어 사는 일은 지리산이 허락해야 한다던데 드디어 나도 지리산의 선택을 받았구나. 다정한 지인들은 문패를 만들어 보내주었고 마당에 심을 꽃나무와 다양한 꽃씨를 보내주거나 어여쁜 커튼을 보내 새로운 출발을 기꺼이 응원해 주었다. 이사 후 두 번의 큰 눈이 내렸다. 저 멀리 눈에 덮인 천왕봉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실상사 저녁 범종 소리를 들으며 구들방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가끔 불씨가 아까워 고구마를 구워 강아지와 나눠먹었다. 그렇게 산내의 첫 겨울이 고요히 흘러갔다. 3. 산내는 산내말로 살래 맘씨 좋은 이웃이 밭 귀퉁이를 무상으로 빌려주셨다. 또 다른 이웃은 슬며시 거름을 부려놓고 가셨다. 감자를 심고 두둑 가에는 옥수수도 심어야지. 밭을 일궈 고랑 네 개를 만들고 거름을 뿌렸다. 다음날 맞춤비가 내렸다.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꽃씨를 담구고 씨감자 눈을 쪼개다보니 어느새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막 피어나는 춘분이 되었다. 밤마다 멀리 무논에서 개구리들이 정겹게 울어댔다. 어느 밤, 마당에 나가 올려다본 하늘, 선명하게 반짝이던 북두칠성이 말했다. 그래, 잘 찾아왔어. 너의 길. 이른 아침 단풍나무에 새가 날아와 한참을 앉았다 날아가는 흔하디흔한 그 풍경이 좋았다. 새들을 위한 모이를 뿌리고 수돗가 물을 갈아준다. 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이른 아침, 멀리 천왕봉을 게으르게 앉아 바라보는 그 시간을 놓칠까봐 아침 일찍 일어난다. 지리산에 와 매일 매일이 행복한 검은 개 루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이웃 어르신들이 묻는다. 어디사요? 놀러왔는가베? 아니요, 저 살래 살아요. 저 멀리 앞 산 노란 산수유 지면 대문 옆 감나무에도 반짝이는 새 잎 무성할 것이다. 마당에 정성껏 심은 모란이 피고 지는 깊은 봄이 흘러 옥수수를 따고 감자를 캐면 좋은 사람들 모아 잔치를 해야지. 지리산의 첫 봄, 살래의 첫 봄, 나의 첫 봄이 설렌다. -달궁수달래 /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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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4-09
  • 다섯번째 산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 2천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세계적인 음반회사의 중역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다, 1986년 돌연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순례를 떠난다. 이때의 경험은 코엘료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다. 그는 이 순례에 감화되어 첫 작품 『순례자』를 썼고, 이듬해 자아의 연금술을 신비롭게 그려낸 『연금술사』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출판사) 세상 모든 사람은 피하라 수 없는 일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들은 극복했고 어떤 이들은 포기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비극의 날개가 우리 인생을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한 적 있다. 이유가 뭘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엘리야를 따라 아크바르의 시간 속으로 떠났다. 파울로 코엘료p12 "인간은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천사가 대답했다. "결정을 내리는 힘이 바로 너의 능력이다."p192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자신의 길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다. 선택을 하지 않는 자는 아직 숨을 쉬고 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신의 눈에는 죽은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누구도 죽지 않는다. 영원함은 모든 영혼에게 열려 있고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다.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p193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나?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p279 아이들은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주죠. 별 이유 없이도 행복해하기, 무언가에 항상 몰두하기,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온 힘으로 매달리기. 제가 아크바르로 돌아온 것도 저 아이 때문입니다. p276 "주님의 말씀은 네 주변의 온 세상에 쓰여 있단다. 네 삶에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보면 너는 하루의 순간순간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뜻을 숨겨놓으신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해내도록 노력하렴. 그것이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란다."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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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3-08
  • 가여워 하는 마음
    가여워하는 마음 박두규/시인 어김없이 새날이 오듯 새해도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쁜 연말이나 연시의 와중에도 한 번쯤은 가는 세월이나 오는 세월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거나 다짐하게 된다. 나는 인생 간판에 시인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연말연시가 되면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가끔 되짚어보곤 하는 것인데 그때마다 박수근(화가)이 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기억에도 없는데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처럼 나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수시로 울림을 준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영역이라면 그 아름다움은 선함과 진실함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의 말처럼 정말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도 있는 이 말이 나에게 강하게 올 수 있었던 건 아마 당시 이런저런 경전들을 읽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경전의 바탕이 선함과 진실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때 그것들을 읽어내며 스스로의 단어로 정리해낸 말은 ‘가여워하는 마음’이었다. 그 즈음에 나온 시집의 제목을 ‘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라고 붙인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이런저런 부족한 짓, 말도 안 되는 짓, 터무니없는 짓들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점은 윤가와 그의 사람들에게는 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긴 자가 진 자에 대해 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 또는 민초들에 대해 ‘가여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됨의 근본이 없는 것이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이 살아가는 것들이 무슨 정치며 예술이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마음을 학문이나 사상에 앞서 삶 속에서 잘 보여준 옛사람으로 퇴계 이황 선생이 있다. 요즘 자본주의 기후 위기에 연계된 이런저런 책들을 보게 되었는데 21세기에 들어 사상적 출구를 모색하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주목받는 사람 중에 퇴계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퇴계를 생각하면 그의 사상이나 학문보다는 그가 살아낸 구체적인 일상 삶과 그를 통해 보여준 ‘가여워하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고 아내 김해 허씨와 함께 슬하에 두 아들을 두었지만, 아내가 결혼 6년 만에 병사한다. 그리고 3년 상을 치른 후 재혼하는데 맞아들인 권씨 부인은 정신질환이 있는 병약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퇴계가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권주(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사약)의 아들 권질의 딸이었다. 권질은 조광조 숙청의 기묘사화 때 예안으로 귀양 와 있었는데 퇴계가 이따금 찾아가 문안 인사를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권질은 병을 얻어 죽으며 여러모로 부족한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퇴계에게 딸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퇴계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분의 집안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몰락하는데 자손들마저 불행해지는 것이 가슴 아파서 그 딸을 맞아들여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진정 훌륭한 점은 결혼 후 그 정신적 질환이 있는 부인에게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를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퇴계 선생이 공부하고 펼친 지식과 사상이 현실 속에 살아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또 그의 ‘가여워하는 마음’의 정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알다시피 퇴계는 인간의 근본 마음 네 가지 중 앞세운 것이 측은지심(仁)이며 바로 ‘가여워하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늘 4단四端의 마음을 중심에 두고 7정七情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당시 선비들의 수행이고 공부였는데 선생은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결혼생활도 16년 만에 권씨 부인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퇴계의 ‘손님처럼 공경하는 법도’ 또한 그렇게 끝났는데 퇴계는 훗날 그 시절을 ‘결혼생활 16년 동안 더러는 마음이 뒤틀리고 생각이 산란하여 고뇌를 견디기 어려운 적이 없지 않았다’라고 술회한다. 이러한 고백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비록 퇴계가 그 시절을 자신의 덕을 쌓는 수양의 화두로 삼아 모범을 보였다고는 하나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퇴계의 ‘가여워하는 마음’을 짐작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일화는 그의 며느리 이야기다. 둘째 아들 채(寀)는 정혼한 상태였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급사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예식도 못 올린 며느리를 맞이해야만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퇴계는 당시 삼종지의三從之義의 엄격한 규율을 깨뜨리고 처녀의 몸으로 며느리가 된 여인을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하게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의 바탕에 있던 ‘가여워하는 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퇴계는 엄격한 유가의 선비였으나 깊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삶을 꾸려내었으며 세상의 법도 이전의 ‘불법不法의 예’를 보인 진정한 유가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퇴계는 첫째 부인이 죽은 후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관례에 따라 첩을 들였는데 그 첩도 선생보다 먼저 죽게 된다. 첩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 또한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차후에 그 아들의 후손들이 적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족보에 적서의 구별을 두지 않게 하였다. 또 퇴계 선생은 이런저런 굴곡의 가정사를 다 넘기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중에 단양군수로 있을 때는 단종 복위에 참여했던 사대부의 후손으로 어린 나이에 관기가 된 기생 두향을 소실로 맞아 외로움을 달래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서자와 관기라는 당시 천한 신분의 사람에게도 시대의 법도를 넘어 사람의 근본에 있는 ‘가여워하는 마음’으로 차별 없이 대하였다. 나는 퇴계 선생의 아픈 가정사를 보면서 평범한 일상생활 속의 착함과 진정함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박수근이 말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그 말의 깊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황이라는 사람은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기 전에 ‘가여워하는 마음’이라는 존재의 근본을 깨달은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살아낸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이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는가. 국정을 운영한 새 정부의 2022년을 보면서, 제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는 권력을 보면서, 그들의 치졸한 양아치 정치를 보면서, 윤가와 그 권력의 발뒤꿈치를 쪼아 먹고 사는 닥터피쉬들을 보면서, 그 언론과 정치권과 검찰과 윤의 사람들을 보면서, 언감생심焉敢生心 ‘가여워하는 마음’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인가 하는 절망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것은 국민이니 한편으론 할 말도 없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 자유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 안에서 돈만 있으면 되고 나만 살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의 정서가 우리 사회 안에서 당위적 정당성을 얻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여워하는 마음’은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처럼 개개인의 진정성으로 실천하는 정도를 넘어 지난날 촛불처럼 온 국민이 지극정성으로 ‘가여워하는 마음’을 기원하는 계묘년이 되기를 바란다. <끝>
    • 이야기
    • 여기저기 민들레
    2023-01-26

실시간 이야기 기사

  • 사이버리아드, 스타니스와프렘, SF
    띠이잉~~~ 머어엉~~~~ 등장인물 이름을 외우기는 커녕 매번 읽기도 힘들다. 트루룰과 클라파우치우시, 나올 때마다 한자 한자 다시 읽어야 한다. 트.루. 룰. 클.라.파.우.치.우.시. 주인공이니까...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이 책을 건네준 사람을 생각한다. 2+2=7 이라고 내게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이 '그'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는 내가 바로 2+2=7이라고 우긴다고 할 지 모른다. 그가 사는 세상을 내가 모르며 내가 사는 세상을 그가 모른다. 살면 살수록 2+2= 정답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나는 이책이 하나도 웃기지도 않으며 재미있지도 않다. 그는 이 책의 저자 스타니스와프 렘이 쓰고 타르콥스키가 만든 영화 "솔라리스"가 어쩌구 하지만 난 오래전 봤는지 조차 한조각도 생각이 안난다. 이해해야 하는 책이라면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고 웃기는 책이라면 한번도 웃지 못했고, 한마디로 뭔소린지 모르겠다. 나는 동화나 우화, SF, 특히 코믹버전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아니면 머리가 엄청 딸리는 것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책이 증명해 줬다. "대규모로는 아주 드물고 있을 법하지 않은 사건이지만, 원자 기체 속에서는 내내 일어나고 있어. 그 안에서는 10만 분의 1초마다 1조 번씩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이런 문제가 있어. 어떤 기체는 아주 적은 양 속에서 원자들이 흔들리고 부딪치면서 정말 심원한 진실과 교화의 격언을 만들어 내지만 반대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진술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전자보다 후자가 수천 배는 많다는 거지. 그러면 바로 지금 여기 너의 톱 같은 코 앞에 있는 1밀리그램의 공기 속에, 1초를 무수히 나눈 시간의 조각 안에 실존의 모든 수수께끼와 존재의 신비에 대한 해답을 포함한 놀랍고 풍부한 진실과 더불어 앞으로 100만년 동안 탄생할 모든 서사시의 모든 시편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해도, 여전히 그 정보를 분리해낼 방법이 없는 것이야. 특히 원자가 서로 머리를 부딪쳐 무엇인가를 형성하지마자 원자는 산산이 흩어지고 형성되었던 것은 영원히 사라질 테니까 더욱 그렇지. 그러므로 비결은 혼란스럽게 쇄도하는 원자의 배영 속에서 오직 의미를 가진 것만 선택하는 선별자를 만드는데 있다. 이것이 바로 제 2종 악마 뒤에 깔린 아이디어인 것이지. 거대하고 끔찍한자여.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는가? 우리에게는 원자의 춤에서 진실한 정보만을 추출할 악마가 필요해. 그 정보는 수학적 정리나 패션잡지, 청사진, 역사적 연대기 혹은 이온 크럼펫(핫케이크)요리법, 석면 옷을 빨고 다림질하는 법, 시, 과학적 조언, 책력, 달력, 비밀문서, 우주의 모든 신문에 나왔던 모든 것, 미래의 전화번호부....." "됐어, 됐어!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퍼그가 외쳤다. p250-251 난 뭔 소린지 전혀 모르겠다. 알겠고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을 읽으시라.
    • 이야기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10-03
  • 류요선 작가의 지리산 사진 이야기 [첫째 마당]
    [사진 류요선 : 양귀비꽃]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의 봄날이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남원시 운봉읍에서 인원면으로 이어지는 화수리 소석마을 앞의 24번 도로에서 버스를 내렸다. 바래봉을 목표로 소석마을을 경유하여 덕두산 정상으로 올라 산 능선 줄기를 타고 바래봉으로 향하는 등산길을 잡았다. 소석마을의 어느 집 낮은 돌담 아래 화단에 양귀비가 몇 그루 꽃 피어 있었다. 그 당시 소석마을 집들은 대부분 돌담이었다. 양귀비꽃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 집에 사는 할머니가 나와서 박카스를 한 병 건네주었다. 그 집 할아버지는 매우 편찮았다고 한다. 몇 년 후 그 집 앞을 지나갔는데, 그 집은 비어 있었다. [사진 류요선 : 뚝새풀] 1990년대 후반에는 지리산 운봉목장과 초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바래봉의 철쭉꽃을 감상하려고 찾아온 관광객들은 24번 도로변에 정차한 관광버스에서 내려서 운봉목장의 정문을 통과하고, 목장과 초원을 가로질러 바래봉으로 올라갔다. 이때 운봉목장은 면양들이 떠났고 이후에 가축 유전자 시험장이 되었다. 목장 가운데로 실개천이 흐르고 바래봉으로 올라가는 왼쪽은 소석마을 쪽인데 철조망이 허술한 곳이 있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운봉목장의 초원에서 독새기풀이라고도 부르는 뚝새풀을 운봉목장 초원의 풍경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 류요선 : 영국병정지의(꼬마붉은열매지의)] 이 시기에 지리산의 한 산장에 머물던 사진작가 한 분이 선태류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그는 사진 작품 공모전에 선태류라고 출품하기도 했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겨울에 바래봉 능선을 걷다가 눈밭에서 선태류라고 하는 이 돌꽃(?)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곳은 양떼가 다니던 길의 옆 비탈에 산사태가 조금 생겼고 그곳의 흙 표면에 이 돌꽃들이 있어서 오전에 사진을 찍었다. 능선 반대편에도 이런 꽃들이 있어서 그쪽은 오후에 사진을 찍었다. 그 당시에 사진작가들은 이것을 선태류로서 이끼 종류로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붉은색의 자실체가 끝에 달린 지의류의 한 종류로서 영국병정지의(꼬마붉은열매지의)이다. [사진 류요선 : 붓꽃] 류요선 사진작가는 지리산둘레길이 생기기 10여 년 전부터, 훗날 지리산둘레길이 될 산길을 혼자 걸었다. 어느 봄날 남원시 산내면의 실상사에서 출발하여 등구재 고개를 찾아가며 상황마을을 지나 산길을 걸을 때였다. 그늘진 산기슭의 한 무덤 벌안에 붓꽃이 피어있었다. 그 무덤은 후손이 없는지 또는 관리를 안 하는지 봉분에도 풀이 무성하였다. 해 질 무렵 무덤가에 무리지어 핀 아름다운 붓꽃을 사진에 담으며 마음은 쓸쓸하기도 하였다. 경남 함양군 삼정산의 삼불주암을 찾아가는 산길은 이웃하는 여러 암자를 차례로 답사할 수 있는 지리산 암자 순례길 코스에 속한다. 이 삼정산 자락의 한 골짜기는 견성골이라고 하는데, 까마귀나 까치도 불경을 외우며 날아간다고 한다. 류요선 사진작가는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에서부터 걸어서 삼불주암을 찾아갔다. 삼불주암은 산 아래 마을에서 2시간은 걸어야 도착할 거리의 산속에 있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에 자리한 비구니 참선 도량이었다. 이 사찰 뜨락을 지나 정갈한 텃밭에는 금낭화가 군락을 이루고 피어 있었다. 금낭화 군락을 사진에 담은 지 20여 년 후 이 사찰은 비구의 도량이 되었다. 지금도 금낭화가 봄날에 피어나는지 삼불주암을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사진 류요선 : 금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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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10-01
  •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제목에 끌려 뽑아 온 책이다. 형식도 특이하다. 황선우와 김혼비라는 사람이 주고 받는 편지다. 황선우와 김혼비 둘다 유명한 사람인 것 같은데 난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름으로 보아 성별도 잘 구별되지 않는다. 글을 읽으며 누가 여자고 누가 남자일까 유추했지만 처음부터 알기는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첫부분 그러니까 첫번째로 주고 받은 편지를 읽다 덮어버렸다. 잘 안 읽혔다. 게다 '제주도우다'도 같이 빌려온 터라 제주도우다를 읽기 시작하니 잘 읽혔다. '제주도우다'를 다 읽었는데 우울했다. 옆에 뒹구러져 있는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어 지난번 읽은 다음부터 읽는데 잘 읽힌다.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며 웃음이 픽픽 나온다. 참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 하마터면 나에게 웃음을 주는 이 책을 그냥 반납할 뻔했다. 어떻게 이렇게 살까? 그런데 나도 한 때는 이렇게 산 적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렇게 산다. '이렇게'라는 것은 잠 잘 시간도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 때 나는 다행히 '성내과'라는 곳의 좋은 의사를 만나 피난처를 찾았었다. 극도의 피로로 죽을 것 같을 때 피 할 곳도 방법도 없을 때 그녀는 피로가 싹 가시는 주사를 주었다. 이것이 바로 마약이다. 물론 내가 맞은게 마약은 아니지만 진짜 마약의 효능을 짐작한다. 자꾸 맞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의사에게 창피한 느낌으로 자제했지만 나를 육체적으로 구원해 준 것만은 사실이다. 사실 나는 자주 가는게 창피해 자제했지만 의사는 자주 오라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피로가 극에 달했을 때 멈출 수 있다면 다행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멈춰야 하는데 이 두사람의 편지는 재미있고 유익한 방법으로 멈출 수 있게 해준다. 알고보니 둘다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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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9-25
  • 제주도우다2,3
    2권과 3권을 힘들게 다 읽었다. 처참하게 이어지는 처절한 이야기 끝 단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인간이란? 인간은 상황에 따라 최악의 악인이 될 수도 있고 최선의 천사도 될 수 있다. 그 상황을 선택 할 수도 있지만, 혹은 선택한다고 했지만 알고보면 선택이 아니었다. 많은 경우 어쩌다 보니 그 상황에 놓여져있다. 선택되어 태어나지 않았고 부모도 형제도 지역도 종교도 선택하지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거기에 우리가 놓여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것을 말해준다. 모든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하다 비참하게 죽어갔다고. 누구든 어떤 환경에 놓여져도 인간답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투쟁하고 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조금씩 전진한다고 믿는다. 그 틈새에서 많은 희생이 없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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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9-23
  • [10월13일~14일]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지리산1019생명평화기행 네 번째 치유하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 지리산으로 떠나는 여순 1019 생명평화기행 네 번째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70년 세월 숨죽여 지낸 유족들의 사무친 한을 풀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한 성찰과 사색의 길입니다. 우리의 미래 세대가 진실을 이해하고 상생과 평화, 그리고 통일의 길을 걸어가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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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9-18
  • 지리산에서 50년. 지리산 삼일암 종설스님의 지리산 이야기
    지리산에서 50년. 지리산 삼일암 종설스님의 지리산 이야기. 유튜브 체널에서 뒷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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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9-15
  • 제주도우다
    '제주도우다'? 제주도가 도와? 제주도의 우다? 제주도가 울어? 책의 내용을 읽기 전까지 제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궁금했다. '제주도다', 혹은 '제주도이다'의 제주도 말이 '제주도우다'이다. "남한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고 제주도다!" 과연 제주도는 제주도다! 제주도 말이 많이 나오지만 해석이 필요하지는 않다. 경상도나 전라도 말같이 어미가 다르다. 그러고보면 모든 지방의 어미는 다르다. 1권만 읽었는데 3권까지 읽으면 제주도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주도 민요나 노동요도 많이 나오는데 참 정겹고 마음이 아리다. "이여싸 이여싸나 요 파도야 뭘 먹고 둥듯둥긋 살쩠느냐 바람통 먹었느냐, 구르몽 먹었느냐 뭉클뭉클 잘도 올라온다 이여싸나 넘고 가자 이여싸나" 1930년대 오사카의 이주조동자는 제주출신이 오만명이었다고 한다. 짧은 노래가락이 조선인의 형편을 그대로 알려준다. "조선 사람 가엽구나, ,싸움 지고 나라 잃고 지진 탓에 집 무너져 납작궁 납작궁 조선 사람 가엽구나, 넝마 주워 하루 5전 밥 모자라 배때기가 호올쪽 호올쪽"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할 때 '스텐카라진' 이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넘쳐 넘쳐 흘러가는 볼가 강물 위에 스텐카 라진 배 위에서 노랫소리 들린다 페르시아의 영화의 꿈 다시 찾는 공주의 웃음 땐 그 입술에 노랫소리 드높다 돈 코사크 무리에서 일어나는 아우성 교만할 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주린다 다시 못 올 그 옛날의 볼가강은 흐리고 꿈을 깨는 스텐카 라진 장하도다 그 모습" 낯선 외국의 독특한 고유명사가 나오는 이런 노래를 아이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이런 노래는 누가 만들었을까?? 나와 띠 동갑이신 현기영 작가님은 이런 노래를 다 기억하실까? 우리 때도 고무줄 놀이는 많이 했다. 나는 변방에서 엄청난 기술로 검은 고무줄을 마치 무용수 같이 늘이고 줄이며 노래하는 아이들을 구경만 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나는 외톨였거나 운동신경이 젬병이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는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라든가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그리고 "대통령 우리 대통령 이승만" 어쩌구~~ 모든 제주의 조천리 사람들은 "새콧알할망"이 하느님이다. 지리산의 '마고 할미' 같은 분이시다. 모든이가 간절한 마음으로 두손모아 새콧알할망에게 빌고 또 빈다. 처음 이사와 이 시골동네에서 내가 참석했던 당산제는 내 안에 있던 담벼락을 다 부숴놓았다. '새콧알할망'이나 '마고할미'같은 이름이 이제는 참으로 정겹다. 3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1권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까지의 제주 조천리 마을의 이야기다. "영미야, 창근아, 그 시절엔 의리를 매우 중요시하고, 선배를 잘 따랐주. 반일 투쟁했던 선배들의 정신을 본 받으려고 했어. 그분들이 대부분 좌익이었고, 그래서 후배들은 유식하면 유식한대로, 무식하면 무식한대로 좌익이 된거라. 그땐 다 그랬쥬."p343 해방이 되었는대도 어이없게도 '맥아더 포고령'이라는 것이 내려졌다. 이것은 미군이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할 것이며, 일본군은 미군이 인수할 때까지 삼팔선 이남에서 조선의 치안을 유지하는 동시에 행정기관을 존치할 것과, 경찰관, 면서기 등은 별도 명령이 없는 한 종래의 직무에 종사할 것을 명하는 것이었다. 말이 해방이지 해방이 아닌 것이다. 듣고 또 들어도 괘씸한 일본의 만행과 우리 조상이 당한 억울하고 분하고 불쌍한 삶과 죽음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절대로 잊을 수 없고 잊으면 안된다.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그들을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이 책은 지금 아주 적절할 때 발간 된 것이다. 나라는 잃었어도 남녀는 사랑을 하고 친구는 우정을 쌓는다. 여기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 중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그 당시 살았던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도 없다. 다만 소설 속의 창세, 만옥, 행필 같은 사람들 만이 살아 이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들은 우리의 조상이고 가족이며 나 자신인 것이다. 모든 기억과 역사를 동원해 죽은 이들을 살아 숨쉬게 하는 작가라는 존재는 참으로 위대하다. 2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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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2
  • 네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거야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 워크숍 뒷이야기 네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거야 _문홍현경 사진1. 신비한 생명의 숲, 노자산.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가르치시려고 “먼저 가세요.” 결국, 내뱉고야 말았다. 정상까지는 반도 넘게 남았는데 내 체력은 벌써 바닥을 보였다. 좀처럼 유산소 운동은 안 해오던 탓도 있었겠지만, 구례에서 거제까지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면서 멀미한 탓이 커 보였다. 숨이 차고 어지럽고 속이 매스꺼워서 참다 참다 멈춤 단추를 누르고야 말았다. “좀 어지러워서요, 다들 올라가시면 뒤꽁무니 보고 따라갈게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도움의 손길이 밀려왔다. “가방 이리 주세요.” “기다렸다가 같이 갈게요.” “물 좀 드릴까요?” “과자나 뭐 달곰한 거 좀 드실래요?” “이거 지팡이 쓰세요.”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손사래를 쳤지만, 이미 내 가방은 다른 이의 어깨에 가 있었고 한 손에는 과자 몇 개가 쥐어져 있었으며 다른 한 손엔 지팡이가 들려 있었고, 이내 목구멍으로는 누군가 건넨 단물이 넘어가고 있었다. 도움 더하기 도움에 가까스로 또 발을 떼 본다. 이제 제대로 알 것 같았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시려고 시련을 주셨다는 걸.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어 따라왔다가 도움을 받고 가려니 고맙고 미안했다. 내가 따라나선 이 길은 지리산사람들의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길이었다. 지리산골프장과 구례 양수발전소 건설에 맞서는 시민들도 함께한 든든한 걸음이었다. 첫째 날엔 노자산골프장 예정지 산행을, 다음 날엔 가덕도신공항 예정지 탐방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저질 체력으로는 내일이 없어 보였다. 그치만 절대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르고 싶었다. 이 정도도 못 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 이 숲을 다 벗겨 골프장을 만들려는 인간들한테 지고 싶지 않은 독기. 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를 혼자 남겨둘 수 없다며 옆을 지켜 준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팔색조(별칭) 님을 포함하여 모두의 응원을 받아 계속 힘을 냈다. 사진2. 노자산 나무와 케이블카. 시끄럽게 오가는 케이블카를 바라보며 나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짚을 수 있는 나무가 보이면 보이는 대로 살짝 의지했다. 굴참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때죽나무, 노각나무, 소태나무, 갖가지 나무들이 나를 지지해 주었다. 지금 이 나무들 말고도 내가 기대고 선 것들이 얼마나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웬 나무 하나를 짚었는데 나무껍질이 마치 용의 눈처럼 신령스러운 동물의 눈을 닮아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올라갈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사진 찍을 겨를도 없어 그 나무를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비슷한 나무를 발견하고 사진에 담았다. 사진3. 까치박달나무 기둥. 껍질 무늬가 신령스러운 동물의 눈처럼 생겨 나를 바라보는 듯했다. 나중에 나무 박사님 못난이에게 물으니 까치박달나무라고 했다. “까치요? 새, 까치?” “아니, 무좀 걸린 적 있어요? 무좀 걸리거나 발에 굳은살 생겨서 살이 갈라져 터질 때가 있는데, 겉살이 실금처럼 갈라져 터지면 안에 속살이 보이잖아요. 그 까치눈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까치가 붙어요.” ‘아, 용의 눈이 아니라 까치눈이었구나.’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아무튼 내가 정상까지 오르는 데 못난이의 나무 강의가 큰 도움이 됐다. 내 느린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이건 뭣이고, 저건 뭣이고 하면서 온갖 나무들을 얘기해 주었다. 이름만큼이나 생김새도 다양하고 만졌을 때 느낌도 달랐다. 못난이의 나무 이야기에 정신을 뺏긴 덕에 힘들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됐다. 알고 보니 그러려고 못난이는 일부러 나를 붙잡고 나무 강의를 들려준 거였다. “헉.” 딱 봐도 힘들어 보이는 가파른 길이 나왔다. 또 주저앉은 나에게 못난이가 다 죽은 듯 보이는 나뭇잎 하나를 주워서 냄새를 맡아 보라고 건넸다. 신기하게 향이 났다. 나뭇잎 향을 맡으니 기운이 돋는 듯했다. 못난이가 이름을 가르쳐 주었지만 까먹었다. 다행히 그다음으로 건네준 나뭇잎은 기억하고 있다. 비목이라고 했다. 이름을 또 까먹지 않으려고 코 비(鼻)자를 생각하며 잘게 자른 비목 나뭇잎을 코에 바짝 갖다 댔다. 나뭇잎에서 다채로운 향이 나는 것도 신기했고, 그걸 또 알아보고 갖다 주는 못난이도 신기했으며, 향기만으로도 몸에 기운이 돌다니 그것 또한 신기했다. 마법의 숲이로세. 사진4. 멸종위기종 대흥란. 우리가 운이 좋았는지 이 시기에 잘 피지 않는다는 대흥란이 하나 피어 있었다.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흥란은 골프장 개발지 바깥 3곳에서만 95개체 발견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었지만, 올해 7월 낙동강유역환경청 등이 공동 조사를 벌인 결과, 대흥란은 골프장 개발지 전역에서 727개체를 확인했다.”(오마이뉴스) (사진 최상두) 나는 어느새 기어가고 있었다. 두 손으로 바위나 계단 등을 짚고 그 뒤를 다리가 따라왔다. 몇 번을 주저앉아 쉬었더니, 의도하지 않게 흙을 가까이 들여다보게 됐다. 아주 작은 생명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살면서 처음 보는 곤충들도 있었다. 아주 작은 버섯, 아주 작은 풀도 보였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은 또 얼마나 많을까. 100만 평 골프장이 생기면 다 사라질 것들이었다. 대흥란, 거제외줄달팽이, 팔색조, 긴꼬리딱새 같은 멸종위기종이 발견되어도 싹 다 밀어내고 골프장을 짓겠다는 사람들에게 멸종위기종도 아니고, 천연기념물도 아닌 이 작디작은 생명들은 있어도 없는 존재들이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말, 이제 다 왔다는 말 “누구 뒤에 더 오십니까?” 맨 앞에서 사람들을 이끌던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원종태 님(생태조사담당)이 아주 커다란 바위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다른 이들은 모두 전망대에 도착해 쉬고 있었고, 그는 뒤처진 우리가 길을 못 찾을까 봐 기다린 거였다. “우리가 마지막입니다.” “그래요, 이제 조금만 오르면 됩니다. 다 왔어요.” 다 왔다고. 다 왔다고! 조금만 오르면 된다는, 다 왔다는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생태 학살에 맞선 모든 싸움도 다 왔으면 좋겠다. 이제 더는 없으면 좋겠다. 골프장이 생긴다는 노자산과 지리산을 끝으로, 신공항을 짓겠다는 가덕도를 끝으로 더는 막개발 때문에 싸울 일이 없으면 좋겠다. 아, 이제 다 왔다, 하는 생각으로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 생태 환경 운동하는 이들이 희망을 보면 좋겠다. 현실은 시궁창이다.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앙으로 단어가 바뀌는 동안에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가파르게 올랐고, 해수면 온도 역시 해마다 역대 최고치를 갈아엎고 있다. 폭염, 산불, 긴 장마, 홍수, 가뭄 같은 재해 소식은 여기저기서 너무 쉽게 들린다. 엄청난 탄소를 흡수하던 산호는 하얗게 죽어 가고, 늘 얼어 있던 영구동토층은 녹았다. 인간이 화석연료를 끄집어내 펑펑 썼는데도, 여태 지구가 남아 있을 수 있게 버텨 주던 모든 자연 순환 장치들이 다 임계치에 다다랐다고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면 이제 좀 정신 차려야 하지 않나. 언제까지 골프장, 케이블카, 양수발전소, 신공항 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을 건지. 어느 모로 보아도 타당하지 않은 이야기로 개발을 부추기는 사람들은 지구의 경고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니 숲이 사라진다는 말에도 ‘어쩌라고’ 자세다. 기후위기가 이렇게 심해지면 결국 먹을 것도 사라질 텐데, 돈 먹고 살 참인가? 사진5. 노자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100만 평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축구장 450개 면적 숲이 벗겨지고, 나무는 최대 200만 그루가 사라진다고 한다. 겨우겨우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노자산 위아래 풍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여기가 다 사라질 겁니다. 저어기 끝에서 저어기까지 다요. 요 능선, 요 능선, 그다음에 지나서 저쪽 능선까지.” 100만 평이라고 했다. 인간이 만든 측량 단위로는 감이 오지 않던 넓이가 눈으로 보니 실감할 수 있었다. 거대한 면적이었다. “왜요?” 하고 묻고 싶었다. “골프장 때문에요”라고 누군가 답하겠지만, 그럼 또 “왜요”라고 묻고 싶었다. 끝없이 “왜요, 대체 왜요, 이게 왜 사라져야 해요?” 하고 묻고 싶었다.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이지요”라는 답이 돌아오겠지, 저 하늘에서. 얼마 전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은 노자산에 골프장을 만들려는 거제남부관광단지개발 사업의 환경영향평가가 거짓 작성되었다고 해당 업체를 고발했다. 대흥란, 거제외줄달팽이 등의 개체 수가 실제보다 더 적게 쓰였고, 생태·자연도 1등급 비율도 실제보다 낮은 것처럼 보고되었다고 했다. 모두 시민의 힘으로 알아낸 결과였다. 아이들부터 시민과학자까지 힘을 모아 노자산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들이 있어서. 사진6. 노자산에 살지도 않는 중국단풍나무 등을 케이블카 기둥 옆에 갖다 심어 놓은 꼬락서니. ‘찰칵찰칵’ 노자산에 들어선 케이블카 기둥 옆에서 못난이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가 뭘 찍느냐고 묻자 못난이는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중국단풍. 노자산 식생을 하나도 모르고 심어 놨어. 케이블카 세운다고 나무를 다 베어 놓고, 겨우 다시 심어 놓았다는 게 이 모양이네. 노자산에 사는 나무들이 뭔지도 모르고. 쯧쯧.” 이 모양이다. 아무거나 갖다 꽂아 놓기. 골프장은 이 모양도 안 나올 거다. 숲을 파헤쳐 농약과 제초제 마구 뿌려 대고 어마어마한 물도 끌어다 쓰는데,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한들 골프장은 지구에서 좋은 모양이 될 수 없다. 찬성 측에서 천연기념물이든 멸종위기종이든 골프장 짓다가 나오면 다른 데로 옮겨 주면 되지 않느냔 말이 나왔다던데,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왜 이 숲이 사라지면 안 되는지를 상상하지 못하나. 있는데, 없을 겁니다, 이러다가는 사진7. 아미산전망대에서 멀리 보이는 가덕도와 도요등 그리고 둘레 섬들. “여기도 싹 다 없어질 거예요. 저 산, 저 산 다 깎이죠. 저기 마을 다 사라지고, 이 바다도 매립되고요. 대항전망대에서 마을 봤죠? 거기도 다 사라질 겁니다.” 워크숍 둘째 날,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김현욱 집행위원장님과 함께 가덕도신공항이 생기면 사라질 곳들을 둘러봤다. 대항전망대 아래로 보이던 마을도, 새바지항 멀리 보이는 파도와 둥근 돌 해변도, 외양포항에서 본 포진지와 모든 역사적 증거로 남은 공간들도, 울렁울렁 이어지는 산도 다 사라질 것들이었다. 지금은 있는데 앞으로는 없을 것들이었다. 사진8. 가덕도 포진지가 있는 외양포 마을.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원주민을 몰아내고 진해만 요새 사령부를 만든 마을이다. 대포 자리와 포탄 저장고가 있는 이 마을엔 일본식 가옥, 일본식 공동목욕탕, 헌병대 막사, 일본군사령부 포진지를 나타내는 ‘사령부발상지지’ 비석도 모두 그대로 남아 있다. 100여 년 전 진해만 요새 사령부 주둔 당시 침략의 역사를 간직한 이 마을 역시 신공항이 들어서면 모두 사라진다. 여기가 사라진다는데도 기어이 들어온 것들도 있었다. 새로 지은 패널 집들이 눈에 띄었다. 신공항이 생길 거라는 소식에 어중이떠중이 덤벼 대충 집처럼 생긴 것들을 박아 놓은 모양이다. 신공항이 생기면 다 사라질 마을에 으리으리한 카페들이 척척 올라갔다. 보상을 바라는 이들이 미리미리 손쓴 모양이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라도 신공항이 들어서길 바라는 사람들은 신공항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목소리 낼 수 없게 또 미리미리 손을 쓴다는데. 집행위원장님은 외롭게 싸우는 듯 보였다. “가덕도 둘레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와 습지보호구역도 있어요. 여기 보이는 바다도 해양생태도 1등급인 지역으로 상괭이가 살아요. 아직 결정도 안 된 엑스포를 명분으로 내세워서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무슨 상괭이가 밥 먹여 주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신공항이 생길 가덕도를 바라보기 위해 아미산전망대에 올랐을 때, 기어이 그의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가 삼킨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모자를 내려 그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맘껏 울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마구마구 가슴속 응어리를 터뜨리면 좋겠다 싶었다. 그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는 빨개진 볼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가덕도신공항은 다음 해인 2024년 말 착공해 2029년 12월 조기 개항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여의도 면적의 두 배가 넘는 규모(666만 9,000㎡)라고. 초안보다 목표 개항 시점을 6년이나 앞당긴 데다가, 가장 최근 발표한 사업비만 15조 4,000억 원으로 앞으로 사업비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데. “가덕도신공항 예정지엔 멸종위기 야생동물 1·2등급인 삵과 솔개, 수달, 표범장지뱀이 살고 있어요.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이에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100년 이상 보존된 동백군락지도 있어서 전문가들도 이런 숲은 없애선 안 된다고 말해요.” 김현욱 집행위원장님은 가덕도의 생태적, 역사적 가치가 어마어마한데도 부산 엑스포를 내세워 완공 시기를 앞당기려고만 하는 정책에 한숨지었다. 우리는 100년 넘게 보존된 동백군락지를 가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 가지 못했다. 사실 나는 체력도 바닥난 상태였다. ‘다음에 갈게. 그때도 무사히 있어 줘, 제발.’ 다음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안 보고 싶은 건 따로 있는데. 다음에 또 만나요, 무사히 우리의 연대 탐방은 이렇게 마쳤다. 거제 노자산골프장도, 가덕도신공항도 절대 안 되는 까닭은 차고 넘친다. 그 가운데 일부를 우리가 보고 왔다. 또 우리는 사람들을 보고 왔다. 보존해야 할 존재들이 버젓이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들에 맞서는 사람들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열렬하게 맞서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씩 고개를 돌려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서로 안전한지 확인하듯, 우리는 고개를 돌려 서로 ‘있음’을 확인하고 왔다. 이번 지리산-노자산-가덕도 연대 탐방을 마무리하며 모두가 하나같이 공감한 생각은 바로 연대의 힘이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진짜 연대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이 맨 마지막까지 남는다. “팔색조가 밥 먹여 주냐? 상괭이가 중요하냐?” 묻는 사람들이 더 생기지 못하게 하려면, 비인간-비자본 존재들 생각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이들이 손잡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팔색조가 밥 못 먹는 세상에선 우리도 밥 못 먹는다, 상괭이가 중요하지 않은 세상에선 무엇도 소중해질 수 없다”는 당연한 소리가 묻히지 않기를 바라며 구례로 돌아왔다.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마음은 좀 더 단단해진 듯했다.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3-09-09
  • 수달과 담비가 사는 청정 계곡이 양수력발전소 하부댐 예정지?
    수달과 담비가 사는 청정 계곡이 양수력발전소 하부댐 예정지?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 양수력발전소 하부댐 예정지 답사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 계곡 ⓒ 정정환 구례군의 남부인 문척면과 간전면을 나누는 산줄기의 중심에 계족산(鷄足山, 702.8M)이 있다. 이 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려서 나온 호남정맥이 400km를 용트림하여 섬진강을 마주하며 머물면서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풍수 지세를 형성한다. 이 산에서는 노고단에서 왕시루봉까지 지리산의 장엄한 장관이 한눈에 들어오며, 섬진강의 굽이치는 물줄기까지 볼 수 있다. 회룡고조는 근원되는 산에서 파생되어 산줄기를 타고 멀리 돌아온 산이 다시 원래의 산과 서로 마주하는 형국이니, 계족산은 이 형국에 적합하다 구례군 계족산 야생동물, 팔색조 ⓒ 정정환 이 산의 산자락과 이어지는 계곡에 양수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백로(白露) 절기를 며칠 앞둔 9월 초순에 양수력발전소 하부댐의 예정지인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를 찾아갔다. 도로 옆에는 양수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찬성과 반대 표현의 현수막이 곳곳에 편을 이뤄 걸렸다. 양수력발전은 심야의 남는 전력을 이용하여 하부댐에 머무는 물을 수백 미터 높은 위치의 상부댐으로 끌어올려 저장하고, 전력수요가 증가할 때 상부댐의 수량을 하부댐으로 낙하시켜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신재생에너지 또는 친환경에너지로 환영받고 있다. 국내의 양수력발전소는 16기가 운영 중인데, 총용량은 4700MW로 국내 전체 발전 설비 용량의 4.4%가 된다고 한다. 탄소 중립을 지향하는 시대에 주목받는 발전이며, 전력의 백업 설비로서 에너지저장 장치(ESS)의 역할을 하여 세계적으로 양수발전소는 증가 추세에 있다. 구례군 계족산 중산천계곡 야생동물, 수달 ⓒ 정정환 양수력발전은 상부댐에서 하부댐으로 물을 내려보내 전력을 생산하는 시간은 6~8시간 정도이다. 하부댐에서 상부댐으로 물을 퍼 올릴 때는 8~1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 발전소의 최대 가동률은 25% 정도여서, 1조 원 이상의 건설비용을 대비하면 발전단가가 높은 편이라는 지적이 있다. 또한, 양수력발전은 발전소의 건설 공사 과정에서 험한 산지에 S자형의 도로를 굽이굽이 설치하면서 상당한 산림 훼손은 피할 수 없다.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을 통제하여 하천의 생태계 파괴와 수질 오염 발생의 문제점이 있다. 자연 생태계와 환경보호 활동 ⓒ 국립공원을 지키는 사람들 모임 구례의 양수발전소 예정지인 이곳 지역에 살면서 야생동물을 탐사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정정환(구례군 문척면 중산리)씨는 9월 초부터 구례군청 앞에서 양수력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정정환씨는 양수력발전소의 하부댐 예정지인 문척면 중산천에는 수달, 담비와 삵이 서식하고, 청딱따구리, 긴꼬리딱새와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국제적인 멸종위기 조류인 팔색조 등 조류가 산다고 설명한다. 상부댐 예정지인 계족산 기슭에는 하늘다람쥐가 산다고 했다. 이 지역에는 얼레지꽃이 많이 피고 히어리 군락지도 있다. 정정환씨는 멸종위기종 야생동식물이 다수 서식하고 있는 청정 지역의 환경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지역에 양수력발전소를 건설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구례군 계족산 야생동물, 청딱다구리 ⓒ 정정환 '국립공원을 지키는 사람들 모임'의 윤주옥 대표는 자연보전과 지역경제 개발의 대립하는 의견과 주장이 함께 표출될 때 소수의 목소리도 공감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례군에서는 양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 피해 주민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 주민들이 분명하게 반대한다는 걸 알고 있죠. 그러나 마치 반대가 없는 것처럼 추진하는 거고요. 처음에 이 개발 사업이 제기되었을 때 구례군에서는 주민들 이야기를 다 듣고, '주민들이 반대하면 추진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양수력발전소 견학도 주민들이 단체로 다녀오고, 발전소 건설 추진대회도 하고 있어요. 구례군이나 양수력발전소 측은 상당한 반대가 있어도 추진하는 과정을 진행하려 하겠지요. 그렇더라도 분명히 반대하는 주민이 있고, 반대 의견을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구례군 문척면 계족산 ⓒ 정정환 행정 기관이나 영향력이 있는 단체에서 계획하고 추진하는 사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역 사회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평화로운 자연과 환경 생태계는 배려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피해를 보며 소외된 소수의 의견과 주장은 외면하고 단절하기 쉬운 현실이다. 양수력발전소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는 큰 역할을 하지만, 이 발전소를 건설하려 할 때마다 해당 지역에서는 생태계 파괴와 산림 훼손을 막으려는 발전소 반대 활동으로 사회적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바닷물을 활용한 양수력발전도 가능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 바다에 양수력발전소 설치가 가능하다면 산림 훼손이나 생태계 파괴도 발생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열에너지 저장이나 압축공기 에너지 저장 등 새로운 기술 개발도 자연 생태계와 환경을 보전하는 미래를 위한 대안이 될 것이다. 구례군 문척면 계족산 ⓒ 정정환 -이완우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 이야기
    • 류오선의 지리산이야기
    2023-09-08
  •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
    돈 없는 노인에게 긴 수명이란 재앙과 같다는 말이 있다. 돈이 없이 오래 사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장수촌의 사람들이 부자는 아니었다. 지난 이틀간 넷플렉스에서 장수에 관한 다큐를 봤다. 이른바 블루존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관한 다큐였다. “100세까지 살기 블루존의 비밀” 유명한 장수촌은 이런 정보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다 알만한 곳이다. 지중해식 식단의 이탈리아의 섬마을 그리스의 이카리아 그리고 일본의 오끼나와 같은 곳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장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장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하지만 장수촌만의 특별한 것은 없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음식,운동, 커뮤니티, 일, 기후 같은 것들 말이다. 한국에서 가장 강조하는 돈은 없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이 다큐에서 블루존 지역의 특징 중 기억나는 것을 적어봤다. 경사가 있는 지역이나 활동이 많은 곳 지역 음식을 먹는 곳 운동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운동이 되는 곳 농사나 정원 같은 정기적이 활동 채식을 하거나 육류 소비가 적은 곳 즉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외롭지 않은 것이었다. 외로움은 수명을 15년 정도 단축 시킨다고 한다. 블루존에 장수 노인들은 특징은 즐겁게 산다는 것이다. 지역에 노인들이 참여 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고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요양원이었다. 요양원은 수명을 2-5년 단축 시킨다고 한다. 이 지역의 노인들 대부분 치매 환자가 없다. 치매 환자가 없는 이유는 스트레스가 적거나 없기 때문이며 지역의 커뮤니티를 통해 항상 이야기 하고 웃고 즐기기 때문일 것이라고 한다. 걱정이 적다는 것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 오지도 않은 걱정 때문에 하루하루를 스트레스로 시작해서 스트레스로 끝을 맺는다. 스트레스는 모두가 알듯이 만병의 근원이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보다 스트레스가 없는 것 보다 좋지 않으며 어떤 장수에 도움이 되는 제품도 외로움이 없는 삶보다 좋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장수촌의 사람들은 소박하게 먹고 주변 사람들과 즐기며 지역의 음식으로 하루의 식사를 직접 준비한다. 90세가 되어도 하루에 3-4시간은 일을 한다. 여기서 일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활동 정원 가꾸기, 바느질, 음식 만들기, 가벼운 운동을 말한다. 내가 사는 파도리에도 90세 가까운 노인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 지금도 여전히 텃밭에서 일을 한다. 우리집 뒤편에서 농사 짓은 노인 3명을 알고 있는데 이들 모두 80대 후반이다. 모두 나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농사를 짓고 일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장수촌을 스스로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역의 음식으로 소박하게 먹고 지역 사람들과 다정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매일 아니면 주 2-3회 만나서 즐거운 이야기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놀거나 하면 된다. 이건 생각해 보면 지금 시골의 노인정이 하는 일이다. 함께 즐겁게 이야기하고 놀고 수다를 떨고… 하는 일 말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블루존의 사람들은 노인들만 함께 노는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논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노인정엔 노인들만 있고 젊은 사람들은 없다. 하루 종일 노인은 노인과 이야기한다. 여자 노인은 여자 노인과 남자 노인은 남자 노인과말이다. 활기가 있기 어렵다. 이 다큐를 보기 전에 그리스의 섬마을 이카리아의 장수촌에 대한 댜큐를 본적이 있다. 이 동네의 100세 노인들은 아침에 일어나 2시간 정도 정원 일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고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논다. 대부분 노인과 놀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젊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매주 금요일엔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놀고 한 달에 한 번 온 14세에서 100세 노인까지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새벽까지 즐기며 논다. 생각만 해도 즐거울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이들은 세상일에 별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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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는이야기/책마을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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