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9-0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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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사는 맛구례 사는 맛
    구례 살다 보면 구례 맛이 있다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정자 옆 연밭에 연꽃이 피었다. 유산 할미의 목소리가 정답다. 깜빡하는 기억도 이쁜 치매 어르신 파가 푸릇푸릇, 솔이 푸르고 열무가 파란 텃밭 대파 한두 뿌리 뽑고 싶다. 나는 영락없는 도둑심보다. 듬성듬성한 잔디가 말한다. 차라리 나를 밟고 밟아라. 내가 짠흐제! 분토마을 봉숭아꽃이 참 예쁘다. 손톱에 꽃물 들게 숯과 백반 넣어 봉숭아꽃, 잎을 넣고 돌로 찧던 날이 있었다. 할매들 합창을 한다. “긍께 말이요” 지리산에서 캔 고사리 말려 농산에 맡기고 센터로 가는 할미, 등을 쓰다듬자 “내가 짠흐제!“ 한다. 광의 주유소 왼쪽 길로 들어가면 백조미용실을 지난다. 마을 미용실이 남아있어 정답다. "이따 파마 흐러 강께 이따가 나 저그 앞에서 내려주씨요 이!" 아직 곱슬거리는 백발의 할미가 정겨워 자꾸 말을 걸고 싶다. 죽마리 할미 텃밭에도 대파가 쑥쑥 자란다. 파도 파도 팔 것이 많은 할매들, 입에서 나오는 입말이 맛깔스러운 파향처럼 퍼진다. 감칠맛 나는 꼬들빼기 넣은 파김치처럼, 언젠가 파꽃이 피겠지. 할매들 속에서 내 생각도 자란다. 긍께요, 거시기, 긍께말이요 일본어가 안되어 한숨을 푹푹 쉬는 정 선생. 나도, 복습 하나도 못했어요 흥께 “긍께요” 한다. 내 귀로 들어오는 낮은 음표 "긍께요" 후렴구 긍께요! 앞에서 일본어가 잘되는 문 선생님, "거시기해도 열심히 배워봅시다. 내가 도와줄게요." 학생들에게 일본어 자료를 출력하여 전해주는 팔순의 문 선생님 고마워 빠질 수 없는 일본어 수업, 일본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노트 한권씩 선물한다. 노트에 회화, 문법, 단어, 해석 등 자세하게 기록한 노트를 견본으로 보여주며 기록하여 항상 들고다니라고 나눠준다. 김선생님 덕에 일본 말이 몸으로 쳐들어와 빠질 수 없는 수업이 기다리고 있어요 구례, 긍께말이요, 거시기… 이 맛은 구례를 오래 살은 사람들이 주는 맛이그마요. 옆에서 정 선생이 긍께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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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2026-09-08
  • [비아의 둘레길 완주1]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우리나라는 전국의 80% 가량이 산지로 되어있는 아주 작은 나라다. 따라서 아름답고 수려한 산들이 많다. 정상을 오르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즘은 모든 산들에 둘레길을 만들고 있다. 집 뒤 작은 산에도 운동을 위한 둘레길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니까. 작은 산은 한 바퀴 도는데 반나절, 조금 더 큰 산은 하루가 걸리는 곳도 있다. 네 개의 지역에 걸쳐 있는 지리산처럼 큰 산은 21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보통 사람은 21일 동안 걸어야 완주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공원에 모여 건강 체조나 춤을 춘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걷기 좋아하는 국민성 때문인지 전국에 ‘무슨 길’ 무슨 길‘ 하면서 전국을 걷는 길로 만들어 놓았다. 가보면 도로 옆을 하염없이 걸어야 하는 길도 있고, 아주 짧아서 거기까지 찾아온 것이 후회가 되는 길도 있고, 관리가 되지 않아 찾기 힘든 길도 많다. 혹자는 걷기는 명상의 일부라고 하고, 혹자는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걷든 걷기는 몸과 마음 건강에 좋은 방법이다. 누가 나에게 왜 그토록 걷기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숲이 좋아서’ 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나 임도 등을 걷는 것은 극히 싫어하니까. 나무가 있고, 여러 꽃들이 피어 있는 흙을 밟을 수 있는 숲길이 좋다. 그래서 난 지리산둘레길 걷는 것이 좋다. 내가 지리산둘레길을 처음 찾은 것은 아마도 거의 20여 년 전인 것 같다. 처음 지리산둘레길이 생겼다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왔으니까. 숲길로 이루어진 지리산둘레길은 둘레길다웠다. 그때는 초기이고 걷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혼자 둘레둘레 걸으며 산속 마을을 지나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밭에서 일을 하시다 나를 보고 물으신다. “이곳이 뭐 볼 것 있다고 걷는다요?” 울창한 숲과 작은 계곡, 논과 밭, 그리고 간혹가다 마주치는 산골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지리산이기에 느껴지는 정취는 지리산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후로 지리산둘레길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찾아온 지리산, 어느덧 21개의 코스가 형성되고, 함께 걷는 프로그램도 생겼다. ‘사단법인 숲길’에서 ‘벅스(길안내 화살표)’도 세우고, 늘 관리도 하기 때문에 지리산둘레길은 늘 정성들여 가꾸는 손길과 찾는 발길들로 분주하다. 지리산 둘레길은 지역마다 센터를 운영한다. 둘레길 코스에는 구간 구간에 ‘벅스’가 서 있기 때문에 벅스의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되니 길 찾기가 쉽다.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하려면 ‘스탬프포켓북’을 사서 스탬프를 찍으면서 다니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스팸프북에는 코스별 안내도와 난이도, 스탬프와 화장실 위치 등도 나와 있다. 스탬프북은 각 센터에서 구매할 수 있다. 자세한 코스별 안내는 ‘사단법인 숲길’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숲길’에서 운영하는 ‘토요걷기’ 프로그램에 신청하여 함께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교통편이 제공되기 때문에 다시 차를 가지러 되돌아와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혼자 다니는 위험도 피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걷는 길에 동행이 있다는 것은 든든하고 즐겁다. 지리산은 남원, 함양, 산청, 하동, 구례 이렇게 5개의 지역에 걸쳐있기 때문에 둘레길 코스도 5개지역 21개 구간으로 나뉜다. 보통은 남원 주천센터에서 시작하는 둘레길을 1코스로 친다. 물론 둘레길 센터에서 나눈 것은 아니고, 처음 시작이 남원이어서 그때부터 1구간이라 부르던 것이 고정관념으로 남겨진 것 같다. 주천에서 시작해서 운봉 방향으로 걷는 길을 순방향(빨간색 화살표), 반대편 검은 화살표 방향으로 걷는 길을 역방향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길은 순방향이 편하고, 어떤 길은 역방향으로 걷는 것이 좀 더 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길도 순방향으로 걸을 때와 역방향으로 걸을 때 바라보여지는 풍광과 길의 느낌이 다르니, 이쪽저쪽으로 두 번 걸어도 손색이 없다. 숲길을 좋아하는 사람은 포장도로나 마을도로 길을 따라갈 때면 ‘둘레길이 뭐이래’ 하면서 싫어하고, 둘레길이니 평탄한 길 걷기라 생각하고 걷는 사람은 경사가 있는 산길을 오를 때면 ‘둘레길이 아니라 등산이네’ 하면서 힘들어한다. 둘레길이 숲 오솔길로만 이루어져 있으면 금상첨화이겠으나, 그렇게 만들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니 좋은 점만 취하면 된다. 숲길을 오를 때면 ‘숲길이어서 좋네!’ 하고, 평지 길을 걸을 때는 ‘마을구경도 하고, 평지라 편해서 좋네!’ 하고. 그래도 지리산은 전국 곳곳의 ‘산둘레길’ 어느 곳보다, 가장 ‘산둘레길’다우니까. 봄이면 길가에 벚꽃이 만발하고, 농장엔 감꽃, 배꽃 등 갖가지 꽃이 핀다. 산에 갖가지 야생화가 만발하는 것은 물론이다. 여름에는 계곡이 있는 숲길과 폭포가 있는 숲길을 걸을 수 있고, 가을이면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든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바람따라 일렁이는 춤을 볼 수 있는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곳곳에 자리한 마을들의 아기자기함과 논과 밭이 만들어낸 선들의 아름다움. 계절별로 다른 색색의 풍광들을 볼 수 있는 길이 지리산둘레길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거의 숲길로만 이루어졌던 둘레길이 이제는 포장된 임도와 마을길들로 바뀐 곳이 많아지고, 그늘이 없이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걸어야 하는 길도 늘었다. 숲에서 나와 도로를 따라 걷는 길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었는데,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예를 들자면 이렇다. 먼저 산속에 있는 밭의 농작물과 과수에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자꾸 손을 데면서, 피해를 당한 주인들이 길이 내주지 않게 되면서 둘레길이 우회 도로로 달라진다. 둘레길이 도로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게 되는 이유다. 두 번째는 산 위까지 개발이 되면서 임가 포장이 되어 농로가 되고, 전원주택들이 들어서면서 포장도로로 변했다. 그러다 보니 임도를 또 다시 새로 내면서 시멘트 포장이 된다. 세 번째는 산사태, 산불 등의 자연재해다, 무분별한 개발이나 부주의로 인한 것이니 인재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작년과 올해는 산불과 산사태 등으로 인해 구간이 통제되고, 특히 산청지역의 피해가 심했다. ‘지리산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지리산에 오지 않는 사람이다’고 지리산둘레길 안내자는 말한다. 인간의 발길이 닿으면 그 자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의 훼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은 공존해야 하고, 숲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은 숲에 다녀간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등산을 하면서, 둘레길을 돌면서 지켜야 할 자연에 대한 예절이다.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가야 하고, 과일껍질 등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간혹 음료수병, 떨어진 사탕껍질, 휴지 등을 볼 때면 얼굴이 찌푸려진다. 길을 내어준 농부들에게도, 산속 마을 분들께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걸을 일이다. 둘레길을 돌면서 ‘농작물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을 종종 접할 때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마을 주변에 심어진 농작물뿐 아니라, 밤농장 주변에 떨어진 밤이나 감. 매달려 익어가는 오디, 두릅 등등... 떨어져 썩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주인이 수확을 위해 키우고 있는 모든 것에는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 산속 깊은 곳을 걷다보면 산밤도 있고, 자생하는 오디, 머루 산딸기 등의 열매도 많이 있으니, 그런 자연의 선물만으로도 충분하다. 산길을 걷다 보면 음악을 크게 틀고 걷는 사람을 만난다. 음악은 자신에게 좋은 선율일지 모르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소음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이어폰을 쓰면 좋겠다. 또산행을 할 때 스틱을 사용하는 것은 좋으나, 스틱을 자신의 몸보다 뒤로 들어 뒷사람을 다치게 할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가끔 겪는다. 스틱의 뾰족한 부분이 뒷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신경 쓸 일이다.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걷는 것도 좋지만 숲을 즐기면서 걷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숲속에는 다람쥐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시냇물소리 등 온갖 아름다운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귀 기울여 소리를 들어보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길에 핀 작은 야생화들이 제모습을 뽐내는 것도 바라보면서, 시인은 노래하지 않았나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쁘다’고. 지리산을 오르거나. 둘레길을 돌면서 느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리산 둘레길의 같은 코스를 서너 번씩 걷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렇게 여러 번 같은 길을 걸을 의미가 있어요?” 물론이다. 지리산둘레길은 걷는 계절에 따라,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보고, 느끼며, 걷는 걸음마다 길은 모습을 달리한다. 그러니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고, 오래도록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더없는 바이다.
    • 고을이야기
    2026-09-07
  •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서 산이 보고 싶다니 산에 가기 전에 산은 이미 네 옆에 와 있다. 어디서 어디까지 산인지 모를 산에 도착하여 산을 딛고 산을 간다. 가고 싶던 지리산, 가자, 겁내지 말고. 이미 산에 왔잖아. 산에 왔으나 앞으로 가자고. 급하게 먹는 밥처럼 들어가지마. 산이 부르니? 가고 싶어 산에 간다니까 지리산이라서 간다니까, 지리산이 취향이야? 산에 가는 틈에 지리산의 틈새에 끼어 가는 중이야. 너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네가 가는 거야. 언젠가 산에 오지 마란 소리를 들었지. 산을 봐봐, 네가 지나치는 것 모두 산이야. 눈앞을 스치는 거미줄이 너를 기다리고, 우수수 낙엽 위로 미끄러진 바닥이 바로 산이야. 산이 네 몸과 하나 되는 그 착지에 목이 말라 턱없이 무너지는 산을 무너질까 두려워 시멘트벽을 쌓은 벽이 벽을 친다. 괴물 같은 벽을 돌아 우리를 돌아가게 하는 지리산에 주저앉아 가도 가도 길인 길을 어쩌라고, 언제 도착할까? 몇 시간 걸려요? 몇 km인가요? 가도 가도 보이지 않은 내리막. 턱턱 걸리는 돌부리, 가슴을 콕콕 찌르는 너는 멀리 보면 다정한 골짜기 너머 아득한 능선 찢어질 듯 닿지 않은 발이 헛발을 내리고 다시 오르내리는 능선은 바로 지금 네 능선, 신발 아래 느껴지는 감각이 가슴으로 퍼져온다. 생명을 밟고 또 밟은 너를 감싸는 공기, 산에 퍼지는 숲의 냄새 그 숨결 너는 모르고, 너를 보는 숲에서 잉잉거리는 벌의 추격에 잉잉대는 몸은 몸대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 빠져 산에서 허우적댄다. 산에 갔으나 산을 보지 못한 산속에 두고 온 것이 많아 또 가야 할 산은, 가지 않은 너를 몸으로 쓸 수밖에 없다. 산에서 앞으로 가지만 말고 산을 둘러보고 좀 더 머물다 올걸, 그 하얗게 내려앉을 별을 보고 별 위로 걸던 천상의 별꽃 허리 굽혀 찬찬이 들여다볼걸, 햇빛을 메고 가는 길 위로 떨어지는 햇빛 떨어지는 체력 안고 떨어지는 기분 엎어지는 발걸음 닥쳐올 시간 미리 겁먹지 말고 그늘에 앉아 숲의 노래 고요나 침묵 듣다가 올걸, 내 속에속에 불던 은밀한 바람 숲에 두고온 바람 앞으로 가지도 머물지도 못한 조심스러운 지리산 바라만 보는 지리산 오래오래 그 자리에 남아 품어나 주게,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9-01
  • 주지 못한 베개
    주지 못한 베개 자려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에 병상의 환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종양 병동 근무 당시의 일이다. 1111호에 입원한 김가람 님은 폐암 환자로 몇 번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는 날이었다. 평소 말이 없던 그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몽고풍의 모자를 쓰고 있던 그는 평소에는 잘 내색하지 않아 표정으로 통증의 강도를 읽던 분이었다. “수간호사님,이 베개 집에 가져가면 안 돼요?” “그 베개가 편하세요? “네,이 베개가 잠이 잘 와요.” 나는 왜“드릴게요”라는 말을 입안에 담고 있었는지, 아이처럼 베개를 안고 애써 용기 내서 말하고 웃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나는 왜 베개를 주지 못했을까? 베개를 챙겨주려 했는데 퇴원할 때 미처 주지 못했을 거야. 핑계를 댄다. 언뜻언뜻 생각나는 1111호 문 옆 침대에서 투병하던 김가람 님.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고 밥이 약인, 밥 한 술 한 술 넘기던 모습이 액자처럼 벽에 걸려있다. 주지 못한 베개 하나 빈 침상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새 베갯잇 씌운 베개를 그 품에 안겨주고 싶다. 그때 항암치료 부작용을 잘 극복하고 퇴원했으니 지금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몽고풍 모자를 쓰고, * 김가람 님은 가몀임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8-07
  • 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
    주성윤 시인의 시비를 찾아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문수제 지나 오미 송정간 둘레길에 주성윤 시인의 시비가 있다고 해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문수리 들어가는 마을 앞 오미 슈퍼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혹시 주성윤이라는 사람이 마을에 살았는지 묻자 흔쾌히 시비가 있는 곳을 안내한다. 차로 내죽 마을 위 단산 윗길로 들어서니 깔끄막에 朱成允 詩碑가 있다. 수풀 사이 자리한 시비에 풀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 주성윤 시인은 구례와 지리산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시비로 안내한 단산마을 정동기 님은 시비가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시비가 있는 땅은 어느 교장 선생님의 선산이라고 했다. 그분의 집이 운조루 옆이라고 해 찾아갔으나 문은 잠겨있고 초인종은 눌러도 대답이 없어 집 앞에 있는 500년 된 서어나무만 바라보다 왔다. 주성윤 시인(1939년~1992)은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니 본적은 경남 창원으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텅 빈 공백』, 『독설』, 『먼 산에 진달래』, 『산꼭대기의 말』 『조선의 빛』 많은 시집과 번역서가 있지만 절판된 상태였다. 유고시집 『무궁화밭』을 펴낸 도서출판 두꺼비는 사라지고 대행업체인 새길 아카데미에 연락되어 시집을 구할 수 있었다. 시집을 읽다 보니 평론을 쓴 임헌영 평론가와 유고시집을 펴낸 김승균 발행인, 추모글을 쓴 황선락 소설가와 시인은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시절 ‘최류탄문학 동인회’ 활동으로 유명하다. 『무궁화밭』, 임헌영 평론가의 발문/주성윤론에 의하면, 1966년 『청맥』에 실린 장시 <조국의 상>은 투사 주성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썼다. 『청맥』에 글을 싣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인들이 고통을 받던 당시 주성윤 시인도 그 희생자로서 깊은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시비 옆면에 1994년 7월 9일 한맥 문학사 주관으로 박혜범 스님의 부지 제공, 시공사인 문산 석재의 대표 최용길 님과 통화 후 한맥 문학사에 제작한 시비를 납품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주성윤 시인에 대해서는 더 알 수 없었다. 한 시인을 찾아가는 문턱은 시집 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구례에 머물며 한 시인에 대해 쓴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묻어두고 네이버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 몇 편 열람할 수 있어 1977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짧은 시 <스냅 1>을 소개한다. 수풀에는 조랑조랑 새 울음떼 열리다. 사원의 한밤에 아무런 뜻도 없이 멍청히 떠올라선 한동안 넌센스로 조용히 머문 세상사 시끄러움 같다. 모든 뜨거운 것은 서산 허리에 걸리고, 초설이 흰 이를 드러낸 여정 같이 쌕뚝쌕둑 그 면전에 스쳐내린다. 스냅처럼 지리산 자락 깔끄막에 조랑조랑 열린 시어들. 아니 풀이라는 시와 풀이 어우러져 시인이 풀로 와서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게 온통 시로 풀어지는 듯하다. 시인이여, 어찌하여 지리산 자락에 오게 되었는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새소리 듣고 있는지 아니 새가 되었는지 유고시집 『무궁화밭』에서 임헌영 평론가가 쓴 주성윤 시인,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인이 교류했던 그 당시를 빈약한 내 언어보다는 시를 직접 음미하는 편이 낫겠다. 난꽃이 피던 무렵 (임헌영 형의 일을 명상하며) 오늘은 웬 일인지 난이 핀 곁에서 난꽃이 핀 걸 보며 해 지는 줄 모른다. 길가에서 어제 만난 갓 출소한 그 친구. 친구의 얼굴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속에서. 감방에서 수년 살며 어쩌면 제 죄도 아닐지도 모를 죄를 다 씻어내고 이전보다 한결 더 스마아트해진 모습으로 갓 출소한 그 친구 인상을 나도 모르게 나는 난꽃에서 건져올리며 정처 없는 생각에 하염없이 잠긴다. 생각자면 나도 내 죄도 아닌 죄가 너무 많은 청춘……, 중략 이따끔씩 세상을 가르치러 온 것이 라이어트가 되지 않도록 목숨으로 값치른 스승들의 이름도 밝음으로써 어두운 난향 속을 떠돎을 봤다. 국립중앙국립도서관에서 찾은 또 한 편의 시는 <청산음>이다. 어슴푸레한 박명에 청산음이 실려 오듯 한 시인의 삶이 걸어온다. 어쩌면 한 생이 피다 말고 저버린 쉽게 닫혀버린 책이 되고 있어 더 바래지기 전에 펼쳐봐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 자락에 울리는 청산음을 듣고 있는가? 시에 걸린 그 죄명 하나 거울 속에서 울리는데, 하늘을 쳐다보고 풀밭에 누웠으면 나도 미풍에 나부끼는 한 포기 풀. 마음은 맑아져서 그 끝에 걸린 거울이다. 이따금씩 바람결에 기억의 박명이 실려와서 그 속에 얼굴들을 비치고 지나면서 풀잎 끝에 죄명을 하나씩 달아놓고 간다. 흡사 몰래 선생님 등 뒤에 망신스런 쪽지를 써붙여놓고 잠적해버리는 개구쟁이 생도들. 그러면 하늘이 파아래서, 그들을 저지못한 부끄럼으로 얼굴이 화끈 붉어져버린 풀은 꽃이라 갈채하는 사람들. 살고파라. 바람도 청산에 죄를 물어오지 않는 청산에. 그래서 이윽고는 기억도 백흑그림들처럼 깡그리 지워져 없어질 흑판같은 청산에. 주성윤 시인을 다시 좇는다. 김선기 평론가의 <시인 박진환론>을 보면 주성윤 시인은 1963년 9월 박진환, 김종해 시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新年代』의 창간 멤버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1969년 구중서, 임헌영 등과 함께 『상황』 의 동인지 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은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사라져갔는가? 1975년 3월 11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박재능 시인에 따르면, 주성윤의 『일광속에서』 는 현대시에서 정서 배제를 위한 지적 처리가 원만하게 시도된 느낌이 드는데 비법에서 소화가 덜된 생소한 단어들이 돌출되어 눈을 거슬리게 하지만 전달의 방편이란 입장에서만 본다면 시대적 호흡에 적응하려는 노고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시인을 찾는 과정의 수확은, 『청맥』에 연재하던 장시에 관한 연구이다. 1923년 한국해양대학교 김지녀, <1960년대 『청맥』誌의 ‘長詩’기획과 ‘참여시’의 의미에 관한 연구>에 실린 글을 옮겨적는다 잡지 『청맥』은 오경남, 주성윤, 김소영 등 신인들을 주축으로 장시가 실렸다. ‘장시’가 다양한 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시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을 검토해 작품 유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감각과 언어로 폭압적이고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청맥』에 장시를 연달아 3편 발표한 주성윤 시인은 사상적이거나 미학적 측면에서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신인들에게 묻고 또 그들이 장시의 형식으로 응답한 『청맥』이 지향한 문학 이념과 참여시의 속성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월 22일자 ifs Post News insight에서 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9> 에서 <문학적 사제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지는가-박목월 선생과 그 문하생들>을 인용한다. 주성윤 시인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시 쓰는 일에 모두를 걸고 있었다. 그가 박목월 선생 댁을 찾으면 사모님 유익순 여사는 옷가지며 반찬을 주어 보냈다. “주성윤이 시인으로 등단하면 사는 일이 나마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박목월 선생의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주성윤은 관념시로 자기 세계를 이뤄낸 시인이고. 주성윤의 타계 소식은 시간이 흐른 뒤 입을 통해 알려지고 시인의 은둔은 그렇게 깊고 적막한 것이었나 보다고 적고 있다. 드디어 주성윤 시비 옆면에 적힌 부지 제공한 박혜범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정환 님으로부터 그분이 구례에 상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994년 문수리 두지 바위 길옆에 시비를 건립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비가 사라지고 없어 궁금하던 차에 필자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시비를 찾았을 때 풀이 무성한 사이로 시인은 시비를 건립한 사람과 30여 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풀로 덮인 그의 약력은 잊힌 만큼 풀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박혜범 시인이 기억하는 주성윤 시인은 천재이고 이름 없는 별이었다고, 시인 천상병 같은 시인이었으나 다른 향기의 시인이고, 길을 잃고 스스로 갇혀버린 그의 죽음 앞에서 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주성윤 시인을 시작으로 문수리에 이름 없는 천재들의 시비 동산을 만들고 싶었다는 박혜범 시인. 이름은 있되 이름 없다는 말을 곱씹는다. 찾아야지 찾아가야지 돌에 새긴 시인 찾아가야지 하는 나는 해무처럼 적셔지는 근원적인 비애감에 갇힌다. 갇혀서 걷는 길 길은 항시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길에게 너 아디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갇혀 있기보다는 걷고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우리라고 길을 보면 나는 항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가도 가도 이다지도 가슴 답답함은 갇혀서 걷는 길인 탓도 아니라는데 나를 자유 속으로 해방시켜 줄 동행은 왜 또 아무도 없는 것일까? 절레절레 발을 절며 오늘도 나는 길을 따라 나서고 길은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시 시비가 있는 선산 주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500년 된 서어나무 앞집에 갔다. 여전히 문이 잠겨있다. 할 수 없이 마을 한 바퀴 돌아본다. 솔까끔 마을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을 기다리며 풀이 풀을 노래한다. 그 시절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다간 주류가 되지 못한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풀 같은 존재를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참여시를 쓰고 관념시를 쓰고 순수시를 쓴 주성윤 시인의 시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시인이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살다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미 슈퍼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 벽화 속 빨래하는 아낙들 소리가 도랑으로 흐른다 방망이질 소리가 도랑으로 빠진다 오미 슈퍼 할머니가 나와 기웃거린다 슈퍼가 이뻐서 사진 찍어요 하니 씨익 웃는다 시인이 싱겁게 웃는 것만 같다 시인의 육필 원고 <무궁화밭>이 수록된 시집 『무궁화밭』에 실린 <뚝섬 시초>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암만 해도 낯 익었네. 저 선회 풀밭 위를 지나다가 문득 꽃진 풀밭 위에 하얀 나비 두어 마리 배회하는 광경 전생 혹은 이생의 어딘가에서 꼭 한 번 만났던 것만 같이 생각 든다. 기억해 내려해도 푸른 잎사귀로 가려 덮으며 영 잃어버렸거나 죽었거나 없다고만 하고 손 젓고 섰는 이승의 풀밭. 해 저물녘엔 질퍽이는 관능의 바다 기일게 전개시켜 놓고, 그래도 물들지 않고 호올로 이승을 가는 외로운 사람처럼, 또는 영혼처럼 흰 돛단배 가네. 하루 해 싣고.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8-01
  •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아이들의 마음에 비친 반달가슴곰은 어떤 모습일까? 구례 토지초 아이들이 그린 반달가슴곰을 만나러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다녀왔다. 이번 반달가슴곰 작품 전시회는 지난 3월 27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열린 ‘우리동네 곰짝! 곰짝! 공존문화행사’(이하 곰짝곰짝 행사)의 결과 가운데 하나다. 곰짝곰짝 행사는 반달가슴곰 개체 수가 늘면서 안전 우려와 공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덩달아 늘어남에 따라 곰과의 공존 문화를 지역사회 안에 퍼뜨리기 위해 열린 행사로, 지리산 자락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 만든 행사다. 곰짝곰짝 행사에서는 지역 주민의 다양한 공연과 곰을 이해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구례 토지초등학교 아이들의 참여가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전교생이 ‘곰과의 공존’을 주제로 글·포스터 공모전에 참여했고, 4~6학년 학생들은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와 율동을 선보여 공존의 의미를 보여줬다.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가면 지난 행사 때 아이들이 만든 글·포스터 작품을 볼 수 있고,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도 들을 수 있다. 그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창의성에 놀라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지적 흡수력과 감수성에 다시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너무도 친근하게 표현된 반달가슴곰을 보고 있노라면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늘 무심했던 어른이었음이 부끄러워진다.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지역 주민들의 뜻이 아이들의 노력을 보태 이루어졌다니 참으로 희망이 가득한 사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보전하는 일에 함께해야 할까? 곰은 ‘생태계의 핵심종이자 우산종’이다. 말이 너무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곰의 존재가 생태계 내 다른 종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반달가슴곰은 다래, 머루, 도토리 같은 열매와 씨앗을 주로 먹는데, 곰이 싼 똥에서 식물이 발아하는 확률이 자연 발아에 비해 2배나 높다. 생태계 유지와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 반달가슴곰과 곰의 서식지를 보호하면 다른 종들의 서식지도 보호할 수 있는데, 마치 우산을 펼친 듯 하위 종들을 보호할 수 있어서 반달가슴곰과 같은 종을 우산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리산에? 곰은 단군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왔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먼저 살고 있던 한반도의 토박이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유전인자 보전을 위한 기존 야생곰이 남아 있고 안전하고 넓은 서식공간과 풍부한 먹이자원 등 충분하고 우수한 서식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반달가슴곰이 살아가기에 좋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반달가슴곰’을 보전하는 일을 해 온 남부보전센터는 곰짝곰짝 행사가 주민 주도로 이뤄질 수 있게 지원했다. 남부보전센터가 있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는 곰들이 산다. 이 곰들은 동물원처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야생성을 잃어버린 곰이나, 치료가 필요한 곰 등 보호·보존을 위해 마련된 곰들의 집이다. 남부보전센터틑 멸종위기종 복원과 탐사, 연구 사업 외에도 반달가슴곰과 함께 공존하기 위한 사업으로 탐방프로그램과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반달곰 보전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없애고, 인간이 생태계 파괴자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공존하도록 협의체를 구성하고 간담회를 연다. 왜 반달가슴곰을 보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까닭, 반달가슴곰의 생태, 반달가슴곰과 마주치지 않는 방법, 혹시 마주쳤을 때 피하는 방법 등 교육하기도 한다. 곰짝곰짝 행사도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찾아간 날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보전센터 소민석 센터장님을 만나 곰짝곰짝 행사에 대한 이야기와 보전센터의 역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소민석 센터장님은, 곰이 사람을 공격하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에 곰이 지리산에 사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사람이 곰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지, 곰이 사람의 영역으로 침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곰과의 공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강조했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한다. 반달곰도 마찬가지여서 사람 소리나, 방울, 종소리 등을 듣게 되면 먼저 피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시선을 피하지 말고 뒷걸음으로 곰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절대 혼자서 산행하면 안 된다.” 우리의 사고는 인간 위주여서,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한다. 학교에서 배운 ‘먹이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피라미드의 가장 우위에 있는 인간은,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두가 그 대답을 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려움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는 선뜻 행동으로 동참하기 쉽지 않다. 토지초 아이들과 토지면 주민들이 곰짝곰짝 행사를 멋지게 해낸 일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곰짝곰짝 행사를 마친 소감을 물었다.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프로그램이 좋았다고 소문이 나서 그 후로도 다른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까지 다녀갔지요. 보전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고 비협조적이어서 외롭고 힘든 일이었는데, 이 활동과 변화를 통해 직원들이 ‘아, 무언가 할 수 있구나’ 하는 활력과 힘을 얻게 되었지요.” 이어서 그는, ‘생태 보전 활동에 지리산 권역에 있는 기관들과 주민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함께 해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곰들은 보호 관리를 위해 추적기를 달고 있다. 야생생물보전원에서는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반달가슴곰 목격 제보를 받고 있는데, 추적을 나갔던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양봉하는 곳에서 반달곰이 벌집을 통째로 훔쳐 달아났는데 바위 뒤로 몸을 숨긴 곰이 꿀을 먹지 않고 바위 사이로 주인이 쫓아오는지를 엿보고 있더란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곰이 그제야 맛있게 꿀을 먹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사이에 출동한 사람들이 마취총을 쏘자, 오른쪽으로 날아오면 왼쪽으로 휙, 왼쪽으로 날아오면 오른쪽으로 휙, 고개를 돌리며 피하는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모두 같이 웃고 말았다고 한다. 곰의 식별 번호를 부르며, 거기 가만히 있어, 하니 또 가만히 서서 기다리더라는 이야기도 함께. 반달가슴곰들이 살고 있는 보전원 인공 서식지에서, 바위를 뒤뚱거리며 뒤로 내려오는 곰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이 ‘꿀을 훔친 곰’ 이야기 속 곰의 모습과 겹쳐 떠올라 혼자 웃었다. 오늘도 해가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지구 한편에 홍수가 나고, 다른 한 편은 가뭄으로 땅이 말라간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많은 동식물이 사라져 간다. 인간이 더 이상 환경 파괴자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이다. 반달가슴곰과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7-13
  •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박순남 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보클보클한 구름이 짖는다. 노인복지센터 차가 박순남 할매 사는 이층집에 도착했다는 거다. 할매는 여든여덟이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다리에 힘이 없어 부축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 계단까지 가야 한다, 그 전에 차에서 내리는 순서가 있다, 오른발을 먼저 차 난간에 내려주고 엉덩이를 받쳐 내린 다음 오른발을 내려서 몸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하면 꽃님이가 꼬리치고 반긴다. 계단 앞까지 왔으니 계단에 한발 한발 옮기면 된다. 왼발을 손으로 계단에 올려준다. 그다음은 할매 스스로 오른발을 옮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시선은 자연스레 아래로 간다. 그 순간 스치는 경이로움, 화강석 계단 틈 사이 자란 풀이 꽃을 피웠다. 할매, 저 풀꽃 봐요! 할매는 두 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고 오르다 아래를 본다. “잘 안 보여” “꽃이 예뻐요” 저 풀도 이름이 있을 텐데, 그러게, 우리는 한 몸이 되어 계단을 오르고 구름이 짖는 소리가 하늘로 퍼져 구름이 된다. 보클보클한 구름이는 할매집에 사는 반려견 이름이다. 드디어 문 앞, 으싸! 마음이 바빠진 할매 발걸음이 빨라지며 앞으로 넘어질 듯 걷는다. 문고리에 걸린 열쇠를 빼고 문을 연다. 문을 여는 일은 할매가 오늘 하루 잘 지냈다는 일. 오늘도 애쓰셨어요. 꽃장식 보라색 모자도 벗어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 밖에서 문고리를 채운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할매가 기어서 계단에 내려와 낙상한 적이 있다. 노인들이 눈 깜빡할 사이 낙상하면 골다공증이 심해 골절될 확률이 높다. 할매와 헤어져 계단을 뛰어내린다. 살아가는 것은 계단이야. 할매가 휠체어 도움 없이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지금처럼 걸을 수 있다. 비 오듯 땀에 젖고 마르는 일 또한 계단이다. 나를 향해 구름이 짖고 난리다. 안녕, 구름아! 손을 흔들고 차에 오르자 우리를 차창으로 보고 있던 할매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금세 땀이 마르고 몸이 가벼워진다. 내 손이 박순남 할매의 발이 되는 계단. 가요! 파초길 지나 지리산을 보고 달려요. 잘 웃는 박순남 할매 목소리는 비음이 매력적이다. 키 크고 잘생긴 아들과 예쁜 며느리가 처음 만나 연애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체조 시간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 율동하지 못해도 콧노래 부르고 손뼉을 치며 웃는 할매 보고 나도 웃는다. 어느 날 잘생긴 아들이 밭에서 따온 호박을 건네준다. 다음날은 복지센터에서 호박전 부쳐 먹는 날이다. 달착지근한 호박전 생각에 벌써 행복해진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7-09
  • 파초가 사는 집, 어머이
    파초가 사는 집, 어머이 파초를 처음 본 것은 무덥던 어느 여름날 불일암 마루에서다. 법정 스님이 타준 차를 마시며 파초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곳에서 가져온 파초가 내게로 와 동면에 들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흙 위로 솟은 푸른 잎을 풀인 줄 알고 뽑아버린 뒤 늦게 찾아온 손가락만 한 파초잎에 물을 주다 불쑥 찾아온 파초가 있다. 파초가 있는 마당, 거동이 불편한 어머이를 부축하는 간호사를 두고 어서 가라고 성화다. 미안해하는 어머이를 현관 안까지 부축하여 거실로 모신다. 노인복지센터에 다녀온 어머이 보고 좋아 야단법석인 강아지. 지팡이와 신발을 가지런히 두고 스타렉스에 오른다. 갖은 풀이 녹색을 뿜어내는 사잇길을 후진하는 사회복지사의 운전실력이 오랜 경력을 말해준다. 사무실에서 말이 없는 그녀는 스타렉스에 타면 말문이 트여 비로소 동료애를 느낀다. 며느리는 집 근방에서 밭일로 바쁘네요. 전라도 말로 “어머이” 어머니 말이에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부르는 어머이, 호칭에 며느리 애정이 배어납니다. 어머이 그 발음과 억양을 글로 쓸 재주가 없군요. 불러야만 어머이 호칭이 완성됩니다. 불러도 부르고 싶은 어머이, 먼 기억 속을 걸어옵니다. 파초 잎처럼 너른 품, 어머이는 이제 며느리가 돌봐주어야 할 딸 같은 어머이가 된 것입니다. 어머이를 모시는 며느리는 어머이의 딸입니다. “어머이가 약을 드셔도 요실금이 좋아지지 않아 기저귀 차고 복지센터에 안 가시려고 해요. 허리가 아픈데 복지센터에 누워있으면 욕할까 봐 안 가시겠대요” 며느리 목소리와 눈빛에 걱정이 서립니다. 그 어머이의 애잔한 등, 조절되지 않은 방광, 마당에 선 커다란 파초 잎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감쌉니다. 괜찮아요, 어머이! 숱한 길 걸어 비록 노쇠해도 그 사랑 뿌리 깊이 뻗어가는 파초와 닮았습니다. 날마다 보는 들판은 어머이가 걸어온 시간입니다. 희끄무레한 구름이 물러납니다. 괜찮아, 괜찮아요, 어머이! 어머이가 참기름에 무쳐주던 쑥부쟁이나물, 그 쑥부쟁이가 바람에 살랑대는 것 봐요. 오늘도 노인복지센터를 나온 차는 파초가 사는 집에 옵니다. 희멀건 어머이 웃음. 품이 너른 파초 잎 열고 어머이! 그 어머이가 지금 가슴 속에서 옵니다. 밭일을 마친 며느리가 어머이! 하고 부릅니다. 글쓴이 : 이촉 _시인.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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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4
  •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2026 생명평화 하지제 이야기 "벽소령을 흔들지 마라!" 올해도 지리산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며 하지제를 함께했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은 난개발로 힘들어하는 지역에 찾아가 연대의 마음으로 하지제를 열곤 했는데, 올해는 벽소령에서 하지제가 열렸습니다. 산청, 하동, 함양에서 벽소령을 깎아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들이 흘러나왔기에 벽소령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하지제였습니다. 벽소령으로 오르는 길이 두 군데가 있더군요, 함양에서 오르거나, 하동에서 오르거나. 함양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함양에서 올라왔고, 저를 포함해 하동에 가까이 사는 분들은 하동에서 올라왔지요. 함양에서 오른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함양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꽤 편했다고요,,,,, 산에 좀처럼 오르지 않는 저에게 하동에서 벽소령 올라오는 구간은 정말 정말 어려웠습니다. 올라올 때는 심장이 요동쳤고요, 내려올 대는 무릎이 욱신거렸지요. 그러나 힘듦보다는 숲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더욱 오래 남았습니다. 정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숲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다만, 제 체력으로는 당분간 다시 오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이 너무 많았는데, 정신이 아득하여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습니다. 게다가 새 소리와 계곡 물 소리, 함박꽃 향기, 단당풍 향기, 나무 질감 같은 시각 아닌 감각을 자극하는 무수한 숲의 선물은 사진에도 담기 어려웠으니, 다녀오시는 분만이 알겠습니다. 발로 땅을 짚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도로를 놓겠다는 공약은 제발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아름다우니까 지키자는 말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 제발 지켜지면 좋겠다고 말해야겠습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오래 전부터 숲을 살리며 살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아실 테지요. 하지제를 열었습니다. 숲에 계신 분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히, 따끈하게- 저마다 하나씩 가져온 감자를 모아 쪘습니다. 아, 맛이 기가막히네요. 온 세상 모두에게 이 감자 한 알씩 맛보게 하고 싶습니다. 조금씩 갖고 온 음식도 모아 모아, 햇차도 올리고, 다례상을 차렸습니다. 벽소령을 지켜 달라는 마음을 담아 목소리도 외치고, 글도 함께 읽었습니다. 해성과 영권 샘은 노래도 불러 주셨지요- 최고! 우리의 아기자기한 하지제가 부디 벽소령을 무사히 살게 하는 큰 힘에 보태져 세월이 흘러도 이 숲과 생명이 순환하며 이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읽은 편지를 아래 붙이겠습니다. 벽소령이, 지리산이, 그리고 모든 생명이 무사하길 바라는 분들, 함께 읽어 주세요. 고맙습니다.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올리는 편지 하지, 여름이 이르렀다는 계절에 너무 무더운 하짓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무더운 하짓날 우리는 지리산 벽소령에 다 함께 모였습니다. 올해 만든 첫 햇차를 올리고, 함께 모여서 감자를 삶아 먹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시와 노래를 나누기 위해 모였습니다. 지리산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우리의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또 모인 이유는 지리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난개발 공약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리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만들겠다. 지리산에 댐을 만들겠다.’ 실현 불가능한,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공약과 개발 계획들이 비 온 뒤 죽순이 나오듯 사방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리산이 어떤 곳입니까? 국립공원 1호이고,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입니다. 이곳만은 보전하자고, 훼손하지 말자고 함께 약속한 땅입니다. 다음 세대들 또한 지리산에 올라서 지리산의 너른 품에 안기고, 지리산 속에서 위안과, 생명의 사랑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지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기후위기로 인해 여름은 우리가 알던 여름이 아니고, 계절의 경계가 사라지고, 절기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습니다. 너무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종들이 계속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재난은 어느덧 해마다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기후위기 시대에, 행정가나 정책 입안자들은 난개발 공약들만 즐비하게 내놓고 있습니다. 숲을 지키고, 물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더 노력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기후위기 시대에 나무를 베어내고, 강을 막아 댐을 만들고, 생명의 땅인 산을 깎아 없애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많은 발전과 개발이 아닌 탈성장, 멈춤입니다. 미래 아이들에게 이런 심각한 기후 재난의 세상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멈추고, 숲과 강, 산을 지켜나가는 보전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한계를 모르고 발전과 개발만을 좇는다면 미래 아이들에겐 기후위기와, 기후 재난, 재앙만을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멸망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함께 살아가는 길로 나아갈 것인지, 우리 미래 아이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다시 생각하고 방향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지리산 마고신께 빕니다. 지리산 생명의 안녕을 바라며 힘겹게 마을을 지키는 이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지하수로 싸우고 있는 삼장면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골프장으로 싸우고 있는 차황면 철수마을 주민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온갖 난개발 공약이 실현되면 위기에 처할 벽소령을 부디 난개발로부터 지켜주십시오. 기후위기로 재난과 같은 일이 없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우리도 올 한 해 지리산의 난개발 공약을 막아내기 위해 함께 연대하여 싸워 나가겠습니다. 2026년 6월 21일 하짓날 지리산 벽소령에서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산청난개발대책위, 함양난개발대책위
    • 고을이야기
    2026-06-22
  •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지리산 지하수 이야기 5)
    ‘300미터 지하 암반수’라고요? 사실은 29미터 지하 암반수입니다. ㈜지리산산청샘물의 관정(특히 5호정)과 주민관정, 국가지하수보조측정망 007이 같은 레벨에 있으며, 고갈 현상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바로 케이싱의 길이와 해발고도입니다.케이싱은 우물에 흙이 들어오거나 우물벽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는 플라스틱관 또는 강관을 말합니다. 케이싱이 없는 지점에서부터 암반수는 우물 속으로 스며듭니다.지리산 생수는 ‘300미터 지하 암반수’라고 홍보되지만, 그것은 우물의 최대 깊이이고, 1호정은 지하 101m, 4호정은 지하 79.6m, 5호정은 지하 29m에서부터 우물 안으로 스며드는 물을 뽑아 올릴 수 있습니다. 생수공장의 물은 사실 그리 깊은 물이 아닙니다. 특히 5호정은 지면과 굉장히 가까운 지점(지하 29m)에서부터 스며든 물을 뽑아 올리고 있습니다. 산청샘물 인근 삼장다목적캠핑장 위치한 보조측정망 007은 해발고도가 5호정 보다 약 30미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5호정 케이싱 깊이와 레벨이 같습니다. 이 두 우물은 서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고을이야기
    • 산청
    20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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