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0-0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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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아의 지리산 둘레길 완주3] 함양 편
    지리산둘레길 함양 구간은 금계에서 동강까지, 동강에서 수철까지 이렇게 두 구간에 해당한다. 남원인 인월 구간에 함양 구간인 금계로 넘어오고, 동강에서 다시 산청 구간인 수철마을로 넘어가게 된다. 다른 구간은 끝점을 기준으로 나눈 반면 함양 구간은 시작점을 기준으로 나눈 까닭은, 동강에서 수철로 넘어가는 구간이 거의 산청 구간이긴 하지만, 이래저래 행정편의로 나누고 보니 온전한 함양 구간은 한 구간만 해당하여 함양에서 시작하는 동강 구간도 함양에 포함해 본다. 꼭 지역을 나누어 둘레길을 걷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별로 미미한 차이점과 특징들을 볼 수 있다. 함양 산청 구간은 지리산 자락을 타고 넘는 마을과 길들이어서 경사가 다소 있는 숲구간과 임로길이 많다. 또한 남원의 2,3구간을 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함양의 금계-동강 구간도 버스로 다시 원점회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함양군은 군청과 대부분의 마을이 오도재 너머에 있고, 지리산 천왕봉 자락에 위치한 마천읍 마을만 지리산자락에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함양군이 있는 곳과는 별개의 다른 군의 마을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이유로 마천 사람들은 남원 인월방향으로 더 잦은 교류를 한다. 마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다소 뒤섞인 말투를 사용한다고 하니 굳이 지역을 구분하는 것은 행정상의 편이에 해당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4구간. 금계-동강 (12.7km/ 난이도 상. 5시간)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에서 시작되는 둘레길이다. 인월에서 금계로 천왕봉자락이 있는 지리산을 바라보며 계곡 건너편 길을 걸어서 금계로 왔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 지리산 자락 안으로 들어는 코스이다. 의중마을 아름드리 당산나무에서 인증 스탬프를 찍고, 벅스의 화살표를 바라보면 두 갈래 길로 나뉜다. 지리산둘레길 ‘숲순환코스’다. 평탄한 아랫길을 따라 걷든지, 산길로 들어서든지, 방향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걷는 역량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산이 좋아 왔으니 당연히 숲길을 권한다. 당산나무가 있는 의중마을에서 서암정사에 이르는 숲길은 정말 아름답다. 서암정사는 벽송사로 오르는 길 아래에 있다. 벽송사로 오르기 전에 아름다운 서암정사를 둘러볼 수 있는 것은 이 코스의 또 하나의 묘미다. 입구부터 탄성을 자아내는 바위와 조각들이 색다른 느낌과 풍광으로 반긴다. 또한 서암정사 석굴법당은 자연 암반에 굴을 파 극랑정토를 표현한 예술품에 가까운 조각상들로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지리산 둘레길을 돌다 잠깐 옆으로 비켜갔다. 다시 벽송사 가는 갈림길로 돌아와 벽송사를 향해 오른다. 찻길로 나 있어 길은 넓고 시멘트길이나 경사가 다소 있는 편이다. 벽송사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면 정말 가파른 등산로를 올라야 한다. 그러나 그리 길지 않으니 쉬엄쉬엄 오르면 된다. 어느 정도 오르면 오솔길이 이어지고, 다음에는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숲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계곡도 건너고. 산길을 내려오면 당산마을에서 갈라졌던 ‘숲순환길’과 만난다. 급경사 산길이 힘든 사람들은 아랫길을 이용해 오면 된다. 여기서부터는 아주 길고 긴, 임로와 마을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숲길까지는 탄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포장길을 내려오며 툴툴거린다. 포장도로를 걸어 마을과 마을을 지나는 길은 그늘이 없어 덥고 지루하다. 계곡을 따라 쭉 뻗은 길, 구불구불 마을길, 구시락재를 넘어가는 길. 그래도 주변 풍경을 바라보고, 건너편 마을의 풍경도 즐기고, 도토리를 주워 걸어가시는 할아버지, 물에 담아 많은 도토리를 불리고 계시는 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 정겨운 길이다. 숲이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그래도 좋은 코스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완주가 목표가 아니라면 긴 숲길만 걸어도 좋은 길이다. 당산나무에서 서암정사, 벽송사로 갔다가 다시 순환지점을 타고 원점회귀하는 방법으로 선택하면 된다. 일행 중 한 사람은 이런 포장도로를 산길보다 더 좋아하기도 했으니 사람마다 길을 걷는 취향이 다름에 틀림없다. 5구간 동강-수철 (12.1km/난이도 중/5시간) 지리산둘레길 구간 중 유일하게 폭포를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거의 숲길로 이루어져 있어 난 이 길을 아주 좋아한다. 추모공원에서 산을 넘어가는 구간은 네다섯 번 걸었던 것 같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 길 걷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 동강마을에서 조금 걸어 점촌마을로 향하면 바로 ‘함양방면 표지판 시작점이 나타난다. 마을길은 함양에서 산청으로 이어지고, 산길은 함양과 산청을 넘나든다. 그러니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사실 동강-수철 구간은 ‘산청함양추모공원’에서 시작한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산청함양 추모공원은 산청함양사건 희생자 합동 묘역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지리산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중 무고한 민간인 705명을 학살하였는데, 이 때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모신 묘역이다. 지리산은 많은 역사의 아픔을 품은 산이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만큼 한국 현대사의 슬픔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추모공원을 둘러보고, 숙연한 마음으로 저수지길을 돌아 산길로 접어든다. 좁은 오솔길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자그마한 폭포를 만나게 된다. 상사폭포다. 늦봄까지 얼음이 남아 있는 서늘함에 잠시 피로를 식히고, 다시 길을 나선다. 폭포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쌍재에 이른다. 쌍재는 함양사람들이 곶감을 지고 산청으로 넘나들던 고개이다. 쌍재와 고동재에서는 왕산이 바라보인다. 왕산은 가야 10대 왕인 비운의 왕 '구형왕'의 타원형 (구)돌무덤이 있다고 한다. 구형왕은 자신이 죄인이라하여 돌무덤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그래서 무덤에 풀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지리산둘레길 5구간에는 구형왕의 슬픈 이야기가 얽혀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쌍재에서 임로를 따라 오르면 또 하나의 고개가 나오는 데, 그래서 쌍재인가 보다. 아무튼 또 다른 쌍재에서 산길을 따라 올라 고동재에 이른다. 고동재는 고동형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고동재라 불린다. 신라군을 피해 피난 생활을 하던 '구형왕'의 군사가 멀리 산청의 황매산에서 신라군사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보고를 하자, 왕은 다시 피난길에 올라 왕등재에서 내려와 고동재를 넘으며 고동을 불며 쌍재를 지나 왕산을 넘어갔다고 한다. 비록 전설이지만 고동을 불던 왕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헤아려본다. 고동재부터는 내리막길이다. 경사도 급하지 않은 예쁜 숲길이다. 숲길을 따라 내려오다보면 나무가 울창한 임로를 만나고, 임로에서 수철마을까지는 금방 내려온다. 5구간은 추모공원에서 수철마을까지 거의 모든 길이 숲길로 이루어진, 그리고 슬픈 역사를 되새겨 보게 하는 아름다운 구간이다. 이제 산청으로 넘어왔다. 또 다른 아픔을 간직한, 그리고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닌 산청 구간을 만나 보자. 함양구간은 두 구간 밖에 해당하지 않아 좀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으나, 산청, 하동 구간은 구간이 많아서 간단히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하긴 더 자세한 설명은 둘레길 홈페이지에 다 있으니 긴 말이 필요 없기는 하다.
    • 고을이야기
    2026-10-08
  • 내 얼굴도 저런갑서
    “늙어서 이쁜 사람 없어. 내 얼굴도 저런갑서" 옆자리에 앉는 할미가 귀에 대고 속삭인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할미의 웃는 얼굴을 휴대폰으로 찍어 보여준다. 할미 얼굴이 달처럼 환해진다. '이쁜 사람 많아요. 봐요, 할매 얼굴' 두 눈이 감기며 활짝 웃는다. 입꼬리 주름도 활짝 웃는다. 주름은 주름진 세월을 알 리 없다. 숱한 시간이 어느 날 불쑥 얼굴을 들이댈 뿐이다. 얼굴에 파인 주름 앞에서 당혹스러운 적이 있다. 팔자 주름을 펴려고 입안에서 혀를 굴러도 보고 문질러 보고 입술을 내밀고 진동해봐도 꿈쩍않는 주름 앞에서 헛헛하지만은 않다. 주변에 널린 나뭇잎 하나 붙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세한 결이 아름다운지 알아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굴곡진 세월의 고랑, 잘 살았다는 어쩌면 우리에게 주는 훈장일지 모른다. 할미의 약봉지가 토요일과 일요일을 지나 월요일이면 노인복지센터로 돌아온다. “깜빡했어” 하는 할미는 약을 챙겨 먹지 못한다. 당부해도 자꾸 잊어먹는다. 늦게 퇴근하고 늦게 일어나는 가족과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약 복용이 잘 안된다. 약이 너무 많다. 의사는 한 움큼의 약이 다 필요한 약이라고 하는데, 뭐래도 약이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센터에서는 순식간에 입안에 한 웅큼 약을 털어놓는다. 그 손이 왜 그리 쓸쓸한지 모르겠다. 할미 얼굴이 노인복지센터에 오면 편해지는데, 오늘은 맨 뒷좌석에 앉는 게 싫다고 한다. 다른 할미보다 인지능력이 좋아 좌석 배치에 양해를 구하다 보니 자꾸 뒷자리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왜 나만 손해 봐야 하느냐고 하소연한다. 꾹 참다가 오늘 몰아서 화를 낸다. 내 곁에 앉아 평소 담아둔 말을 하고 또 하고 나는 듣고 또 듣는다. 아침밥을 못 먹어도 자는 아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놓고 방문 앞에서 “ㅇㅇ야! 아침밥 차려놨다.” 대답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뒷모습, 구부정한 등이 애잔하다. 방문 앞에 흐르는 정적을 두고 한마디 한다. “엊저녁 늦게 와서 그래.” 마당에 키만큼 자란 들깻잎을 제치고 집을 나온다. 깻잎 향이 고소하게 길을 나선다. 덕분에 우리도 소녀처럼 킥킥대며 앞으로! 앞으로! 행진한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10-01
  • 사진으로 보는 919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9월 19일 구례와 남원산내에서 열린 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 보아요!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연대는 계속됩니다. 구례 구례군민뿐 아니라 멀리 부산, 산청, 순천, 여수, 전주, 진주에서 온 시민들까지 100여 명의 참여자가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였습니다. 구례 읍사무소 광장에서 구례 풍물패 단원들과 함께 지신밟기와 강강술래로 행진의 문을 열고, 남생이놀이로 참여자들 사이 벽을 허물어 행진의 열기를 달구었습니다. 경찰서 로터리에서 피켓의 문구와 기후정의 구호를 외친 뒤 구례읍 일대를 돌아 구례 봉성산 정상으로 행진하였습니다. 봉성산 정상에서는 참여자들이 기후정의를 외치며 지리산 자락 각지에서 벌어지는 환경 파괴 현장을 알렸습니다. 또 19일 하루 행사만이 아니라 9월 13일부터 19일까지 기후정의주간으로 정하고 워크숍, 책모임, 에너지토론회, 씨앗 나눔과 정책 제안, 기후정의 영화제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남원 산내 919기후정의행진 지리산행동 남원산내의 행사에 참여한 주민들은 람천과 임천의 수질 오염 문제, 송전탑 건설, 탈핵 및 기후위기 대응 등 지역과 지구적 현안을 한데 모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다양한 체험 부스와 문화 공연, 토크 콘서트가 이어져 온 마을이 함께하는 축제이자 연대의 장을 선보였습니다. 행사장 한편에서는 참가자들이 수달, 다슬기, 맨홀 뚜껑, 반달가슴곰 등의 가면과 피켓을 들고 각 생물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색 인터뷰와 지역에서 다양한 현장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실천가들의 토크 콘서트도 열렸습니다. 이야기마당이 마무리된 후 참가자들은 마당에 동그랗게 모여 손을 잡고 '평화의 둥근춤'을 추며 행진을 준비했습니다. 이어서 노래에 맞춰 직접 만든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산내면 일대를 힘차게 행진했습니다. 함께한 모든 분, 그리고 이날 오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함께한 모든 분 덕분에 기후정의의 나무가 더 튼튼하게 자라겠지요. 고맙습니다. 지리산사람들과 <지리산人>
    • 고을이야기
    2026-09-23
  • [비아의 둘레길 완주2] 남원 편
    지리산둘레길 남원 주천센터를 보통 지리산둘레길 시작점이라 부른다. 둘레길은 어디서든 시작해도 둥근원이니까. 한바퀴 도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개하기 쉽도록 ‘주천센터’를 시작점으로하여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 운봉으로 향하는 길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1구간- 남원 주천센타->운봉: 거리 14.9km / 난이도 중/ 6시간>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는 개천가를 따라, 농로를 따라 걷다가 숲길로 들어섰는데, 도로가 나면서 도로가를 걸어 숲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주천센터 앞 개울을 건너고, 도로를 건너 마을길을 따라 숲 입구까지 가면, 개미정자가 숲길의 시작점이다. 개미정자는 ‘왜적이 침입해 오자 개미가 잠든 장군의 다리를 물어 알려, 왜적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있는 쉼터이다. 이 숲길은 지리산 구룡폭포에 이르는 등산로와도 만나기 때문에 여름철 산행코스로 자주 다녔던 길이다. 오래전에는 구룡폭포를 돌아 다시 원점회귀 하는 1-1코스가 있었는데, 이번에 와보니 1코스라는 말이 없어지고, 둘레길 정식코스가 정비되면서 돌아 내려오는 코스는 없어졌다. 구룡폭포 등산로쪽으로 포함시킨 것 같다. 육모정에서 시작하는 구룡폭포계곡길을 따라 폭포까지 다녀오는 등산로도 좋은 길이다. 지리산을 올라 운봉방향으로 하산하면 운봉이 워낙 고지대에 있는 마을이라 하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산을 내려 평지길 마을과 논길, 그리고 다시 조그만 숲길을 내려서, 개천가를 따라 걷다보면 1코스 종점에 다다른다. 이 길에서 지나게 되는 마을 중 ‘노치마을’이 있다.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에서 유일하게 지나게 되는 마을이라고 한다. 잠깐 길에서 벗어나 500년 된 보호수가 있는 쉼터로 찾아들면 백두대간 정맥도와 호랑이상, 일제침략기에 나라의 정기를 막는다고 박은 돌 등을 볼 수 있다. 시원한 그늘에서 한숨 돌리면서 백두대간의 정기를 마시고 가자. 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숲이 있다. 2000년에 ‘아름다운 숲’으로 대상을 받은 서어나무 숲이 행정마을에 있다. 개천가길 건너편에 있기 때문에 다리를 건너 잠깐 들렸다 가면 좋은 곳이다. 보통은 시작점이라고 생각하는 주천에서 오르는 코스들로 많이들 다니나, 사실 이 코스는 역방향(?)으로, 운봉에서 시작하여 내려오는 코스로 걷는 것이 쉽다. 물론 역방향이라는 게 등산에서 의미는 없다. 난 이 코스를 좋아해서 숲길만 여러 번 이쪽, 저쪽 방향에서 많이 걸어 보았는데 어느 방향에서 오르고 내리던 간에 그 나름의 묘미가 있어 아주 좋은 코스다. <2구간. 운봉-인월 : 거리 9.7km / 난이도 하 /3-4시간> 서림공원에서 출발하는 이 코스는 둘레길 구간 중 가장 짧은 코스이다. 마을길이 대부분이라 그늘이 거의 없다, 이 구간에서는 ‘황산대첩비’와 국악의 성지 ‘동편제 마을’을 지난다. 황산대첩비와 고려말기 왜적을 물리친 이성계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왜구가 여기까지?’ 놀란다. 하긴 1코스의 개미정자도 왜적의 침입이었군. ‘황산대첩’이라고 하면 삼국시대의 황산벌싸움을 생각하게 하는데, 이성계와 얽힌 황산은 벌판이 아니라 뒤에 있는 황산을 일컫는 이름이다. 바로 옆에 있는 동편제 마을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동편제 마을을 둘러본다. 동편제를 맥을 세운 송흥록과 국창 박소월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짧은 구간에 난이도도 없는 구간이어서 여유롭게 쉬엄쉬엄 편안하게 걷는다. 이 코스는 짧고, 다음 ‘인월-금계’ 코스는 길기 때문에 3코스를 약간 걸어두는 것이 좋다. 오전에 출발하면 2코스 종점인 인월마을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먹을 수 있다. 인월센타에서 조금 휴식을 취하고, 다시 3코스를 출발하여 산을 넘어 장항마을까지 걸어두면 3코스의 부담을 좀 줄일 수 있다. 2코스는 인월 버스터미널 인근에 주차를 하고 남원버스를 타고 시작점인 서림공원까지 가고, 코스 걷기가 인월마을에서 끝나면 차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만약 코스를 연장하여 장항마을까지 오후에 걸었을 경우에도 장항마을에서 버스를 타고 인월마을로 돌아올 수 있다. 지리산둘레길 코스 걷기가 끝나고 여력이 남으면 남원 끝자락에 위치한 ‘실상사’에도 들러 보면 좋다. 실상사는 계곡옆 평지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문화재를 보유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3구간. 인월-금계 (거리 20.5km / 난이도 상 /시간 8시간)> 인월에서 시작하여 여러마을을 지나, 동구재를 넘으면 남원과 함양의 경계를 만난다. 남원 인월센터를 출발하여 항양센터에서 끝나게 되는 구간이다. 구간 중 가장 긴 구간이지만, 거의 모든 길이 숲길로 이루어져 있고, 경사도 급하지 않아. 둘레길 순례자들이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평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인월에서 장항마을로 넘어가는 구간은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숲과 계곡을 만날 수 있는 예쁜 길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피로를 풀며 쉴 수 있다. 배너미재를 넘어 장항마을에서 감식초공장 방향으로 도로를 건넌다. (2코스를 할 때 장항마을 감식초공장에서 끝냈다면 3코스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포장길을 따라 오르면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농장과 만난다. 사과농장의 빨간 사과, 다랭이 논의 푸르름, 아름다운 숲길, 그리고 설악초가 하얗게 피어있는 한옥. 그래서 순례자들이 이 코스를 좋아한다. 산자락을 타고 둘레둘레 힘들이지 않고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둘레길이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숲길 중간에 만나는 ‘동구렁 쉼터’는 이 구간의 또 하나의 묘미이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간절히 생각나게 하는 분위기의 주막이다. 3코스에는 포토존이 있다. 언덕을 넘어가는 곳(아래 사진)과 대나무 숲 사이로 빠져나가는 사람을 찍은 사진들은 아주 멋진 연출이 된다. 이제 3구간을 타고 남원에서 함양으로 넘어왔다. 길은 다시 함양으로 이어진다. (다음 '함양 편'에서 이어집니다.)
    • 고을이야기
    2026-09-20
  • 구례 사는 맛구례 사는 맛
    구례 살다 보면 구례 맛이 있다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정자 옆 연밭에 연꽃이 피었다. 유산 할미의 목소리가 정답다. 깜빡하는 기억도 이쁜 치매 어르신 파가 푸릇푸릇, 솔이 푸르고 열무가 파란 텃밭 대파 한두 뿌리 뽑고 싶다. 나는 영락없는 도둑심보다. 듬성듬성한 잔디가 말한다. 차라리 나를 밟고 밟아라. 내가 짠흐제! 분토마을 봉숭아꽃이 참 예쁘다. 손톱에 꽃물 들게 숯과 백반 넣어 봉숭아꽃, 잎을 넣고 돌로 찧던 날이 있었다. 할매들 합창을 한다. “긍께 말이요” 지리산에서 캔 고사리 말려 농산에 맡기고 센터로 가는 할미, 등을 쓰다듬자 “내가 짠흐제!“ 한다. 광의 주유소 왼쪽 길로 들어가면 백조미용실을 지난다. 마을 미용실이 남아있어 정답다. "이따 파마 흐러 강께 이따가 나 저그 앞에서 내려주씨요 이!" 아직 곱슬거리는 백발의 할미가 정겨워 자꾸 말을 걸고 싶다. 죽마리 할미 텃밭에도 대파가 쑥쑥 자란다. 파도 파도 팔 것이 많은 할매들, 입에서 나오는 입말이 맛깔스러운 파향처럼 퍼진다. 감칠맛 나는 꼬들빼기 넣은 파김치처럼, 언젠가 파꽃이 피겠지. 할매들 속에서 내 생각도 자란다. 긍께요, 거시기, 긍께말이요 일본어가 안되어 한숨을 푹푹 쉬는 정 선생. 나도, 복습 하나도 못했어요 흥께 “긍께요” 한다. 내 귀로 들어오는 낮은 음표 "긍께요" 후렴구 긍께요! 앞에서 일본어가 잘되는 문 선생님, "거시기해도 열심히 배워봅시다. 내가 도와줄게요." 학생들에게 일본어 자료를 출력하여 전해주는 팔순의 문 선생님 고마워 빠질 수 없는 일본어 수업, 일본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노트 한권씩 선물한다. 노트에 회화, 문법, 단어, 해석 등 자세하게 기록한 노트를 견본으로 보여주며 기록하여 항상 들고다니라고 나눠준다. 김선생님 덕에 일본 말이 몸으로 쳐들어와 빠질 수 없는 수업이 기다리고 있어요 구례, 긍께말이요, 거시기… 이 맛은 구례를 오래 살은 사람들이 주는 맛이그마요. 옆에서 정 선생이 긍께요, 한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9-08
  • [비아의 둘레길 완주1]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우리나라는 전국의 80% 가량이 산지로 되어있는 아주 작은 나라다. 따라서 아름답고 수려한 산들이 많다. 정상을 오르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즘은 모든 산들에 둘레길을 만들고 있다. 집 뒤 작은 산에도 운동을 위한 둘레길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니까. 작은 산은 한 바퀴 도는데 반나절, 조금 더 큰 산은 하루가 걸리는 곳도 있다. 네 개의 지역에 걸쳐 있는 지리산처럼 큰 산은 21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보통 사람은 21일 동안 걸어야 완주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공원에 모여 건강 체조나 춤을 춘다.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걷기 좋아하는 국민성 때문인지 전국에 ‘무슨 길’ 무슨 길‘ 하면서 전국을 걷는 길로 만들어 놓았다. 가보면 도로 옆을 하염없이 걸어야 하는 길도 있고, 아주 짧아서 거기까지 찾아온 것이 후회가 되는 길도 있고, 관리가 되지 않아 찾기 힘든 길도 많다. 혹자는 걷기는 명상의 일부라고 하고, 혹자는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 걷든 걷기는 몸과 마음 건강에 좋은 방법이다. 누가 나에게 왜 그토록 걷기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숲이 좋아서’ 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나 임도 등을 걷는 것은 극히 싫어하니까. 나무가 있고, 여러 꽃들이 피어 있는 흙을 밟을 수 있는 숲길이 좋다. 그래서 난 지리산둘레길 걷는 것이 좋다. 내가 지리산둘레길을 처음 찾은 것은 아마도 거의 20여 년 전인 것 같다. 처음 지리산둘레길이 생겼다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왔으니까. 숲길로 이루어진 지리산둘레길은 둘레길다웠다. 그때는 초기이고 걷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혼자 둘레둘레 걸으며 산속 마을을 지나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밭에서 일을 하시다 나를 보고 물으신다. “이곳이 뭐 볼 것 있다고 걷는다요?” 울창한 숲과 작은 계곡, 논과 밭, 그리고 간혹가다 마주치는 산골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지리산이기에 느껴지는 정취는 지리산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후로 지리산둘레길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찾아온 지리산, 어느덧 21개의 코스가 형성되고, 함께 걷는 프로그램도 생겼다. ‘사단법인 숲길’에서 ‘벅스(길안내 화살표)’도 세우고, 늘 관리도 하기 때문에 지리산둘레길은 늘 정성들여 가꾸는 손길과 찾는 발길들로 분주하다. 지리산 둘레길은 지역마다 센터를 운영한다. 둘레길 코스에는 구간 구간에 ‘벅스’가 서 있기 때문에 벅스의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되니 길 찾기가 쉽다.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하려면 ‘스탬프포켓북’을 사서 스탬프를 찍으면서 다니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스팸프북에는 코스별 안내도와 난이도, 스탬프와 화장실 위치 등도 나와 있다. 스탬프북은 각 센터에서 구매할 수 있다. 자세한 코스별 안내는 ‘사단법인 숲길’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숲길’에서 운영하는 ‘토요걷기’ 프로그램에 신청하여 함께 걷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교통편이 제공되기 때문에 다시 차를 가지러 되돌아와야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혼자 다니는 위험도 피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걷는 길에 동행이 있다는 것은 든든하고 즐겁다. 지리산은 남원, 함양, 산청, 하동, 구례 이렇게 5개의 지역에 걸쳐있기 때문에 둘레길 코스도 5개지역 21개 구간으로 나뉜다. 보통은 남원 주천센터에서 시작하는 둘레길을 1코스로 친다. 물론 둘레길 센터에서 나눈 것은 아니고, 처음 시작이 남원이어서 그때부터 1구간이라 부르던 것이 고정관념으로 남겨진 것 같다. 주천에서 시작해서 운봉 방향으로 걷는 길을 순방향(빨간색 화살표), 반대편 검은 화살표 방향으로 걷는 길을 역방향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길은 순방향이 편하고, 어떤 길은 역방향으로 걷는 것이 좀 더 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길도 순방향으로 걸을 때와 역방향으로 걸을 때 바라보여지는 풍광과 길의 느낌이 다르니, 이쪽저쪽으로 두 번 걸어도 손색이 없다. 숲길을 좋아하는 사람은 포장도로나 마을도로 길을 따라갈 때면 ‘둘레길이 뭐이래’ 하면서 싫어하고, 둘레길이니 평탄한 길 걷기라 생각하고 걷는 사람은 경사가 있는 산길을 오를 때면 ‘둘레길이 아니라 등산이네’ 하면서 힘들어한다. 둘레길이 숲 오솔길로만 이루어져 있으면 금상첨화이겠으나, 그렇게 만들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니 좋은 점만 취하면 된다. 숲길을 오를 때면 ‘숲길이어서 좋네!’ 하고, 평지 길을 걸을 때는 ‘마을구경도 하고, 평지라 편해서 좋네!’ 하고. 그래도 지리산은 전국 곳곳의 ‘산둘레길’ 어느 곳보다, 가장 ‘산둘레길’다우니까. 봄이면 길가에 벚꽃이 만발하고, 농장엔 감꽃, 배꽃 등 갖가지 꽃이 핀다. 산에 갖가지 야생화가 만발하는 것은 물론이다. 여름에는 계곡이 있는 숲길과 폭포가 있는 숲길을 걸을 수 있고, 가을이면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든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바람따라 일렁이는 춤을 볼 수 있는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곳곳에 자리한 마을들의 아기자기함과 논과 밭이 만들어낸 선들의 아름다움. 계절별로 다른 색색의 풍광들을 볼 수 있는 길이 지리산둘레길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거의 숲길로만 이루어졌던 둘레길이 이제는 포장된 임도와 마을길들로 바뀐 곳이 많아지고, 그늘이 없이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걸어야 하는 길도 늘었다. 숲에서 나와 도로를 따라 걷는 길도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서서히 진행되었는데,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예를 들자면 이렇다. 먼저 산속에 있는 밭의 농작물과 과수에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자꾸 손을 데면서, 피해를 당한 주인들이 길이 내주지 않게 되면서 둘레길이 우회 도로로 달라진다. 둘레길이 도로로 나왔다 들어갔다 하게 되는 이유다. 두 번째는 산 위까지 개발이 되면서 임가 포장이 되어 농로가 되고, 전원주택들이 들어서면서 포장도로로 변했다. 그러다 보니 임도를 또 다시 새로 내면서 시멘트 포장이 된다. 세 번째는 산사태, 산불 등의 자연재해다, 무분별한 개발이나 부주의로 인한 것이니 인재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작년과 올해는 산불과 산사태 등으로 인해 구간이 통제되고, 특히 산청지역의 피해가 심했다. ‘지리산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지리산에 오지 않는 사람이다’고 지리산둘레길 안내자는 말한다. 인간의 발길이 닿으면 그 자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의 훼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은 공존해야 하고, 숲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은 숲에 다녀간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이것이 우리가 등산을 하면서, 둘레길을 돌면서 지켜야 할 자연에 대한 예절이다. 자신이 만든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가야 하고, 과일껍질 등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간혹 음료수병, 떨어진 사탕껍질, 휴지 등을 볼 때면 얼굴이 찌푸려진다. 길을 내어준 농부들에게도, 산속 마을 분들께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걸을 일이다. 둘레길을 돌면서 ‘농작물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을 종종 접할 때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마을 주변에 심어진 농작물뿐 아니라, 밤농장 주변에 떨어진 밤이나 감. 매달려 익어가는 오디, 두릅 등등... 떨어져 썩어가는 것처럼 보여도 주인이 수확을 위해 키우고 있는 모든 것에는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 산속 깊은 곳을 걷다보면 산밤도 있고, 자생하는 오디, 머루 산딸기 등의 열매도 많이 있으니, 그런 자연의 선물만으로도 충분하다. 산길을 걷다 보면 음악을 크게 틀고 걷는 사람을 만난다. 음악은 자신에게 좋은 선율일지 모르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소음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 이어폰을 쓰면 좋겠다. 또산행을 할 때 스틱을 사용하는 것은 좋으나, 스틱을 자신의 몸보다 뒤로 들어 뒷사람을 다치게 할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가끔 겪는다. 스틱의 뾰족한 부분이 뒷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신경 쓸 일이다.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걷는 것도 좋지만 숲을 즐기면서 걷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숲속에는 다람쥐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시냇물소리 등 온갖 아름다운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귀 기울여 소리를 들어보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길에 핀 작은 야생화들이 제모습을 뽐내는 것도 바라보면서, 시인은 노래하지 않았나 ‘자세히 보아야 더 예쁘다’고. 지리산을 오르거나. 둘레길을 돌면서 느끼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리산 둘레길의 같은 코스를 서너 번씩 걷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렇게 여러 번 같은 길을 걸을 의미가 있어요?” 물론이다. 지리산둘레길은 걷는 계절에 따라, 그날의 날씨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보고, 느끼며, 걷는 걸음마다 길은 모습을 달리한다. 그러니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고, 오래도록 지리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더없는 바이다.
    • 고을이야기
    2026-09-07
  •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서 산이 보고 싶다니 산에 가기 전에 산은 이미 네 옆에 와 있다. 어디서 어디까지 산인지 모를 산에 도착하여 산을 딛고 산을 간다. 가고 싶던 지리산, 가자, 겁내지 말고. 이미 산에 왔잖아. 산에 왔으나 앞으로 가자고. 급하게 먹는 밥처럼 들어가지마. 산이 부르니? 가고 싶어 산에 간다니까 지리산이라서 간다니까, 지리산이 취향이야? 산에 가는 틈에 지리산의 틈새에 끼어 가는 중이야. 너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네가 가는 거야. 언젠가 산에 오지 마란 소리를 들었지. 산을 봐봐, 네가 지나치는 것 모두 산이야. 눈앞을 스치는 거미줄이 너를 기다리고, 우수수 낙엽 위로 미끄러진 바닥이 바로 산이야. 산이 네 몸과 하나 되는 그 착지에 목이 말라 턱없이 무너지는 산을 무너질까 두려워 시멘트벽을 쌓은 벽이 벽을 친다. 괴물 같은 벽을 돌아 우리를 돌아가게 하는 지리산에 주저앉아 가도 가도 길인 길을 어쩌라고, 언제 도착할까? 몇 시간 걸려요? 몇 km인가요? 가도 가도 보이지 않은 내리막. 턱턱 걸리는 돌부리, 가슴을 콕콕 찌르는 너는 멀리 보면 다정한 골짜기 너머 아득한 능선 찢어질 듯 닿지 않은 발이 헛발을 내리고 다시 오르내리는 능선은 바로 지금 네 능선, 신발 아래 느껴지는 감각이 가슴으로 퍼져온다. 생명을 밟고 또 밟은 너를 감싸는 공기, 산에 퍼지는 숲의 냄새 그 숨결 너는 모르고, 너를 보는 숲에서 잉잉거리는 벌의 추격에 잉잉대는 몸은 몸대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 빠져 산에서 허우적댄다. 산에 갔으나 산을 보지 못한 산속에 두고 온 것이 많아 또 가야 할 산은, 가지 않은 너를 몸으로 쓸 수밖에 없다. 산에서 앞으로 가지만 말고 산을 둘러보고 좀 더 머물다 올걸, 그 하얗게 내려앉을 별을 보고 별 위로 걸던 천상의 별꽃 허리 굽혀 찬찬이 들여다볼걸, 햇빛을 메고 가는 길 위로 떨어지는 햇빛 떨어지는 체력 안고 떨어지는 기분 엎어지는 발걸음 닥쳐올 시간 미리 겁먹지 말고 그늘에 앉아 숲의 노래 고요나 침묵 듣다가 올걸, 내 속에속에 불던 은밀한 바람 숲에 두고온 바람 앞으로 가지도 머물지도 못한 조심스러운 지리산 바라만 보는 지리산 오래오래 그 자리에 남아 품어나 주게,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9-01
  • 주지 못한 베개
    주지 못한 베개 자려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에 병상의 환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종양 병동 근무 당시의 일이다. 1111호에 입원한 김가람 님은 폐암 환자로 몇 번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는 날이었다. 평소 말이 없던 그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몽고풍의 모자를 쓰고 있던 그는 평소에는 잘 내색하지 않아 표정으로 통증의 강도를 읽던 분이었다. “수간호사님,이 베개 집에 가져가면 안 돼요?” “그 베개가 편하세요? “네,이 베개가 잠이 잘 와요.” 나는 왜“드릴게요”라는 말을 입안에 담고 있었는지, 아이처럼 베개를 안고 애써 용기 내서 말하고 웃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나는 왜 베개를 주지 못했을까? 베개를 챙겨주려 했는데 퇴원할 때 미처 주지 못했을 거야. 핑계를 댄다. 언뜻언뜻 생각나는 1111호 문 옆 침대에서 투병하던 김가람 님.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고 밥이 약인, 밥 한 술 한 술 넘기던 모습이 액자처럼 벽에 걸려있다. 주지 못한 베개 하나 빈 침상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새 베갯잇 씌운 베개를 그 품에 안겨주고 싶다. 그때 항암치료 부작용을 잘 극복하고 퇴원했으니 지금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몽고풍 모자를 쓰고, * 김가람 님은 가몀임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8-07
  • 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
    주성윤 시인의 시비를 찾아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문수제 지나 오미 송정간 둘레길에 주성윤 시인의 시비가 있다고 해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문수리 들어가는 마을 앞 오미 슈퍼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혹시 주성윤이라는 사람이 마을에 살았는지 묻자 흔쾌히 시비가 있는 곳을 안내한다. 차로 내죽 마을 위 단산 윗길로 들어서니 깔끄막에 朱成允 詩碑가 있다. 수풀 사이 자리한 시비에 풀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 주성윤 시인은 구례와 지리산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시비로 안내한 단산마을 정동기 님은 시비가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시비가 있는 땅은 어느 교장 선생님의 선산이라고 했다. 그분의 집이 운조루 옆이라고 해 찾아갔으나 문은 잠겨있고 초인종은 눌러도 대답이 없어 집 앞에 있는 500년 된 서어나무만 바라보다 왔다. 주성윤 시인(1939년~1992)은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니 본적은 경남 창원으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텅 빈 공백』, 『독설』, 『먼 산에 진달래』, 『산꼭대기의 말』 『조선의 빛』 많은 시집과 번역서가 있지만 절판된 상태였다. 유고시집 『무궁화밭』을 펴낸 도서출판 두꺼비는 사라지고 대행업체인 새길 아카데미에 연락되어 시집을 구할 수 있었다. 시집을 읽다 보니 평론을 쓴 임헌영 평론가와 유고시집을 펴낸 김승균 발행인, 추모글을 쓴 황선락 소설가와 시인은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시절 ‘최류탄문학 동인회’ 활동으로 유명하다. 『무궁화밭』, 임헌영 평론가의 발문/주성윤론에 의하면, 1966년 『청맥』에 실린 장시 <조국의 상>은 투사 주성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썼다. 『청맥』에 글을 싣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인들이 고통을 받던 당시 주성윤 시인도 그 희생자로서 깊은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시비 옆면에 1994년 7월 9일 한맥 문학사 주관으로 박혜범 스님의 부지 제공, 시공사인 문산 석재의 대표 최용길 님과 통화 후 한맥 문학사에 제작한 시비를 납품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주성윤 시인에 대해서는 더 알 수 없었다. 한 시인을 찾아가는 문턱은 시집 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구례에 머물며 한 시인에 대해 쓴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묻어두고 네이버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 몇 편 열람할 수 있어 1977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짧은 시 <스냅 1>을 소개한다. 수풀에는 조랑조랑 새 울음떼 열리다. 사원의 한밤에 아무런 뜻도 없이 멍청히 떠올라선 한동안 넌센스로 조용히 머문 세상사 시끄러움 같다. 모든 뜨거운 것은 서산 허리에 걸리고, 초설이 흰 이를 드러낸 여정 같이 쌕뚝쌕둑 그 면전에 스쳐내린다. 스냅처럼 지리산 자락 깔끄막에 조랑조랑 열린 시어들. 아니 풀이라는 시와 풀이 어우러져 시인이 풀로 와서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게 온통 시로 풀어지는 듯하다. 시인이여, 어찌하여 지리산 자락에 오게 되었는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새소리 듣고 있는지 아니 새가 되었는지 유고시집 『무궁화밭』에서 임헌영 평론가가 쓴 주성윤 시인,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인이 교류했던 그 당시를 빈약한 내 언어보다는 시를 직접 음미하는 편이 낫겠다. 난꽃이 피던 무렵 (임헌영 형의 일을 명상하며) 오늘은 웬 일인지 난이 핀 곁에서 난꽃이 핀 걸 보며 해 지는 줄 모른다. 길가에서 어제 만난 갓 출소한 그 친구. 친구의 얼굴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속에서. 감방에서 수년 살며 어쩌면 제 죄도 아닐지도 모를 죄를 다 씻어내고 이전보다 한결 더 스마아트해진 모습으로 갓 출소한 그 친구 인상을 나도 모르게 나는 난꽃에서 건져올리며 정처 없는 생각에 하염없이 잠긴다. 생각자면 나도 내 죄도 아닌 죄가 너무 많은 청춘……, 중략 이따끔씩 세상을 가르치러 온 것이 라이어트가 되지 않도록 목숨으로 값치른 스승들의 이름도 밝음으로써 어두운 난향 속을 떠돎을 봤다. 국립중앙국립도서관에서 찾은 또 한 편의 시는 <청산음>이다. 어슴푸레한 박명에 청산음이 실려 오듯 한 시인의 삶이 걸어온다. 어쩌면 한 생이 피다 말고 저버린 쉽게 닫혀버린 책이 되고 있어 더 바래지기 전에 펼쳐봐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 자락에 울리는 청산음을 듣고 있는가? 시에 걸린 그 죄명 하나 거울 속에서 울리는데, 하늘을 쳐다보고 풀밭에 누웠으면 나도 미풍에 나부끼는 한 포기 풀. 마음은 맑아져서 그 끝에 걸린 거울이다. 이따금씩 바람결에 기억의 박명이 실려와서 그 속에 얼굴들을 비치고 지나면서 풀잎 끝에 죄명을 하나씩 달아놓고 간다. 흡사 몰래 선생님 등 뒤에 망신스런 쪽지를 써붙여놓고 잠적해버리는 개구쟁이 생도들. 그러면 하늘이 파아래서, 그들을 저지못한 부끄럼으로 얼굴이 화끈 붉어져버린 풀은 꽃이라 갈채하는 사람들. 살고파라. 바람도 청산에 죄를 물어오지 않는 청산에. 그래서 이윽고는 기억도 백흑그림들처럼 깡그리 지워져 없어질 흑판같은 청산에. 주성윤 시인을 다시 좇는다. 김선기 평론가의 <시인 박진환론>을 보면 주성윤 시인은 1963년 9월 박진환, 김종해 시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新年代』의 창간 멤버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1969년 구중서, 임헌영 등과 함께 『상황』 의 동인지 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은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사라져갔는가? 1975년 3월 11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박재능 시인에 따르면, 주성윤의 『일광속에서』 는 현대시에서 정서 배제를 위한 지적 처리가 원만하게 시도된 느낌이 드는데 비법에서 소화가 덜된 생소한 단어들이 돌출되어 눈을 거슬리게 하지만 전달의 방편이란 입장에서만 본다면 시대적 호흡에 적응하려는 노고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시인을 찾는 과정의 수확은, 『청맥』에 연재하던 장시에 관한 연구이다. 1923년 한국해양대학교 김지녀, <1960년대 『청맥』誌의 ‘長詩’기획과 ‘참여시’의 의미에 관한 연구>에 실린 글을 옮겨적는다 잡지 『청맥』은 오경남, 주성윤, 김소영 등 신인들을 주축으로 장시가 실렸다. ‘장시’가 다양한 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시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을 검토해 작품 유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감각과 언어로 폭압적이고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청맥』에 장시를 연달아 3편 발표한 주성윤 시인은 사상적이거나 미학적 측면에서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신인들에게 묻고 또 그들이 장시의 형식으로 응답한 『청맥』이 지향한 문학 이념과 참여시의 속성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월 22일자 ifs Post News insight에서 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9> 에서 <문학적 사제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지는가-박목월 선생과 그 문하생들>을 인용한다. 주성윤 시인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시 쓰는 일에 모두를 걸고 있었다. 그가 박목월 선생 댁을 찾으면 사모님 유익순 여사는 옷가지며 반찬을 주어 보냈다. “주성윤이 시인으로 등단하면 사는 일이 나마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박목월 선생의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주성윤은 관념시로 자기 세계를 이뤄낸 시인이고. 주성윤의 타계 소식은 시간이 흐른 뒤 입을 통해 알려지고 시인의 은둔은 그렇게 깊고 적막한 것이었나 보다고 적고 있다. 드디어 주성윤 시비 옆면에 적힌 부지 제공한 박혜범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정환 님으로부터 그분이 구례에 상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994년 문수리 두지 바위 길옆에 시비를 건립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비가 사라지고 없어 궁금하던 차에 필자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시비를 찾았을 때 풀이 무성한 사이로 시인은 시비를 건립한 사람과 30여 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풀로 덮인 그의 약력은 잊힌 만큼 풀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박혜범 시인이 기억하는 주성윤 시인은 천재이고 이름 없는 별이었다고, 시인 천상병 같은 시인이었으나 다른 향기의 시인이고, 길을 잃고 스스로 갇혀버린 그의 죽음 앞에서 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주성윤 시인을 시작으로 문수리에 이름 없는 천재들의 시비 동산을 만들고 싶었다는 박혜범 시인. 이름은 있되 이름 없다는 말을 곱씹는다. 찾아야지 찾아가야지 돌에 새긴 시인 찾아가야지 하는 나는 해무처럼 적셔지는 근원적인 비애감에 갇힌다. 갇혀서 걷는 길 길은 항시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길에게 너 아디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갇혀 있기보다는 걷고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우리라고 길을 보면 나는 항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가도 가도 이다지도 가슴 답답함은 갇혀서 걷는 길인 탓도 아니라는데 나를 자유 속으로 해방시켜 줄 동행은 왜 또 아무도 없는 것일까? 절레절레 발을 절며 오늘도 나는 길을 따라 나서고 길은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시 시비가 있는 선산 주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500년 된 서어나무 앞집에 갔다. 여전히 문이 잠겨있다. 할 수 없이 마을 한 바퀴 돌아본다. 솔까끔 마을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을 기다리며 풀이 풀을 노래한다. 그 시절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다간 주류가 되지 못한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풀 같은 존재를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참여시를 쓰고 관념시를 쓰고 순수시를 쓴 주성윤 시인의 시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시인이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살다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미 슈퍼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 벽화 속 빨래하는 아낙들 소리가 도랑으로 흐른다 방망이질 소리가 도랑으로 빠진다 오미 슈퍼 할머니가 나와 기웃거린다 슈퍼가 이뻐서 사진 찍어요 하니 씨익 웃는다 시인이 싱겁게 웃는 것만 같다 시인의 육필 원고 <무궁화밭>이 수록된 시집 『무궁화밭』에 실린 <뚝섬 시초>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암만 해도 낯 익었네. 저 선회 풀밭 위를 지나다가 문득 꽃진 풀밭 위에 하얀 나비 두어 마리 배회하는 광경 전생 혹은 이생의 어딘가에서 꼭 한 번 만났던 것만 같이 생각 든다. 기억해 내려해도 푸른 잎사귀로 가려 덮으며 영 잃어버렸거나 죽었거나 없다고만 하고 손 젓고 섰는 이승의 풀밭. 해 저물녘엔 질퍽이는 관능의 바다 기일게 전개시켜 놓고, 그래도 물들지 않고 호올로 이승을 가는 외로운 사람처럼, 또는 영혼처럼 흰 돛단배 가네. 하루 해 싣고.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8-01
  •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아이들의 마음에 비친 반달가슴곰은 어떤 모습일까? 구례 토지초 아이들이 그린 반달가슴곰을 만나러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다녀왔다. 이번 반달가슴곰 작품 전시회는 지난 3월 27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열린 ‘우리동네 곰짝! 곰짝! 공존문화행사’(이하 곰짝곰짝 행사)의 결과 가운데 하나다. 곰짝곰짝 행사는 반달가슴곰 개체 수가 늘면서 안전 우려와 공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덩달아 늘어남에 따라 곰과의 공존 문화를 지역사회 안에 퍼뜨리기 위해 열린 행사로, 지리산 자락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 만든 행사다. 곰짝곰짝 행사에서는 지역 주민의 다양한 공연과 곰을 이해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구례 토지초등학교 아이들의 참여가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전교생이 ‘곰과의 공존’을 주제로 글·포스터 공모전에 참여했고, 4~6학년 학생들은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와 율동을 선보여 공존의 의미를 보여줬다.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가면 지난 행사 때 아이들이 만든 글·포스터 작품을 볼 수 있고,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도 들을 수 있다. 그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창의성에 놀라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지적 흡수력과 감수성에 다시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너무도 친근하게 표현된 반달가슴곰을 보고 있노라면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늘 무심했던 어른이었음이 부끄러워진다.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지역 주민들의 뜻이 아이들의 노력을 보태 이루어졌다니 참으로 희망이 가득한 사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보전하는 일에 함께해야 할까? 곰은 ‘생태계의 핵심종이자 우산종’이다. 말이 너무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곰의 존재가 생태계 내 다른 종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반달가슴곰은 다래, 머루, 도토리 같은 열매와 씨앗을 주로 먹는데, 곰이 싼 똥에서 식물이 발아하는 확률이 자연 발아에 비해 2배나 높다. 생태계 유지와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 반달가슴곰과 곰의 서식지를 보호하면 다른 종들의 서식지도 보호할 수 있는데, 마치 우산을 펼친 듯 하위 종들을 보호할 수 있어서 반달가슴곰과 같은 종을 우산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리산에? 곰은 단군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왔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먼저 살고 있던 한반도의 토박이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유전인자 보전을 위한 기존 야생곰이 남아 있고 안전하고 넓은 서식공간과 풍부한 먹이자원 등 충분하고 우수한 서식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반달가슴곰이 살아가기에 좋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반달가슴곰’을 보전하는 일을 해 온 남부보전센터는 곰짝곰짝 행사가 주민 주도로 이뤄질 수 있게 지원했다. 남부보전센터가 있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는 곰들이 산다. 이 곰들은 동물원처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야생성을 잃어버린 곰이나, 치료가 필요한 곰 등 보호·보존을 위해 마련된 곰들의 집이다. 남부보전센터틑 멸종위기종 복원과 탐사, 연구 사업 외에도 반달가슴곰과 함께 공존하기 위한 사업으로 탐방프로그램과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반달곰 보전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없애고, 인간이 생태계 파괴자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공존하도록 협의체를 구성하고 간담회를 연다. 왜 반달가슴곰을 보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까닭, 반달가슴곰의 생태, 반달가슴곰과 마주치지 않는 방법, 혹시 마주쳤을 때 피하는 방법 등 교육하기도 한다. 곰짝곰짝 행사도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찾아간 날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보전센터 소민석 센터장님을 만나 곰짝곰짝 행사에 대한 이야기와 보전센터의 역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소민석 센터장님은, 곰이 사람을 공격하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에 곰이 지리산에 사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사람이 곰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지, 곰이 사람의 영역으로 침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곰과의 공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강조했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한다. 반달곰도 마찬가지여서 사람 소리나, 방울, 종소리 등을 듣게 되면 먼저 피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시선을 피하지 말고 뒷걸음으로 곰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절대 혼자서 산행하면 안 된다.” 우리의 사고는 인간 위주여서,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한다. 학교에서 배운 ‘먹이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피라미드의 가장 우위에 있는 인간은,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두가 그 대답을 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려움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는 선뜻 행동으로 동참하기 쉽지 않다. 토지초 아이들과 토지면 주민들이 곰짝곰짝 행사를 멋지게 해낸 일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곰짝곰짝 행사를 마친 소감을 물었다.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프로그램이 좋았다고 소문이 나서 그 후로도 다른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까지 다녀갔지요. 보전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고 비협조적이어서 외롭고 힘든 일이었는데, 이 활동과 변화를 통해 직원들이 ‘아, 무언가 할 수 있구나’ 하는 활력과 힘을 얻게 되었지요.” 이어서 그는, ‘생태 보전 활동에 지리산 권역에 있는 기관들과 주민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함께 해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곰들은 보호 관리를 위해 추적기를 달고 있다. 야생생물보전원에서는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반달가슴곰 목격 제보를 받고 있는데, 추적을 나갔던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양봉하는 곳에서 반달곰이 벌집을 통째로 훔쳐 달아났는데 바위 뒤로 몸을 숨긴 곰이 꿀을 먹지 않고 바위 사이로 주인이 쫓아오는지를 엿보고 있더란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곰이 그제야 맛있게 꿀을 먹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사이에 출동한 사람들이 마취총을 쏘자, 오른쪽으로 날아오면 왼쪽으로 휙, 왼쪽으로 날아오면 오른쪽으로 휙, 고개를 돌리며 피하는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모두 같이 웃고 말았다고 한다. 곰의 식별 번호를 부르며, 거기 가만히 있어, 하니 또 가만히 서서 기다리더라는 이야기도 함께. 반달가슴곰들이 살고 있는 보전원 인공 서식지에서, 바위를 뒤뚱거리며 뒤로 내려오는 곰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이 ‘꿀을 훔친 곰’ 이야기 속 곰의 모습과 겹쳐 떠올라 혼자 웃었다. 오늘도 해가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지구 한편에 홍수가 나고, 다른 한 편은 가뭄으로 땅이 말라간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많은 동식물이 사라져 간다. 인간이 더 이상 환경 파괴자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이다. 반달가슴곰과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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