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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례 사는 맛구례 사는 맛
    구례 살다 보면 구례 맛이 있다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 정자 옆 연밭에 연꽃이 피었다. 유산 할미의 목소리가 정답다. 깜빡하는 기억도 이쁜 치매 어르신 파가 푸릇푸릇, 솔이 푸르고 열무가 파란 텃밭 대파 한두 뿌리 뽑고 싶다. 나는 영락없는 도둑심보다. 듬성듬성한 잔디가 말한다. 차라리 나를 밟고 밟아라. 내가 짠흐제! 분토마을 봉숭아꽃이 참 예쁘다. 손톱에 꽃물 들게 숯과 백반 넣어 봉숭아꽃, 잎을 넣고 돌로 찧던 날이 있었다. 할매들 합창을 한다. “긍께 말이요” 지리산에서 캔 고사리 말려 농산에 맡기고 센터로 가는 할미, 등을 쓰다듬자 “내가 짠흐제!“ 한다. 광의 주유소 왼쪽 길로 들어가면 백조미용실을 지난다. 마을 미용실이 남아있어 정답다. "이따 파마 흐러 강께 이따가 나 저그 앞에서 내려주씨요 이!" 아직 곱슬거리는 백발의 할미가 정겨워 자꾸 말을 걸고 싶다. 죽마리 할미 텃밭에도 대파가 쑥쑥 자란다. 파도 파도 팔 것이 많은 할매들, 입에서 나오는 입말이 맛깔스러운 파향처럼 퍼진다. 감칠맛 나는 꼬들빼기 넣은 파김치처럼, 언젠가 파꽃이 피겠지. 할매들 속에서 내 생각도 자란다. 긍께요, 거시기, 긍께말이요 일본어가 안되어 한숨을 푹푹 쉬는 정 선생. 나도, 복습 하나도 못했어요 흥께 “긍께요” 한다. 내 귀로 들어오는 낮은 음표 "긍께요" 후렴구 긍께요! 앞에서 일본어가 잘되는 문 선생님, "거시기해도 열심히 배워봅시다. 내가 도와줄게요." 학생들에게 일본어 자료를 출력하여 전해주는 팔순의 문 선생님 고마워 빠질 수 없는 일본어 수업, 일본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노트 한권씩 선물한다. 노트에 회화, 문법, 단어, 해석 등 자세하게 기록한 노트를 견본으로 보여주며 기록하여 항상 들고다니라고 나눠준다. 김선생님 덕에 일본 말이 몸으로 쳐들어와 빠질 수 없는 수업이 기다리고 있어요 구례, 긍께말이요, 거시기… 이 맛은 구례를 오래 살은 사람들이 주는 맛이그마요. 옆에서 정 선생이 긍께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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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8
  •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서 산이 보고 싶다니 산에 가기 전에 산은 이미 네 옆에 와 있다. 어디서 어디까지 산인지 모를 산에 도착하여 산을 딛고 산을 간다. 가고 싶던 지리산, 가자, 겁내지 말고. 이미 산에 왔잖아. 산에 왔으나 앞으로 가자고. 급하게 먹는 밥처럼 들어가지마. 산이 부르니? 가고 싶어 산에 간다니까 지리산이라서 간다니까, 지리산이 취향이야? 산에 가는 틈에 지리산의 틈새에 끼어 가는 중이야. 너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네가 가는 거야. 언젠가 산에 오지 마란 소리를 들었지. 산을 봐봐, 네가 지나치는 것 모두 산이야. 눈앞을 스치는 거미줄이 너를 기다리고, 우수수 낙엽 위로 미끄러진 바닥이 바로 산이야. 산이 네 몸과 하나 되는 그 착지에 목이 말라 턱없이 무너지는 산을 무너질까 두려워 시멘트벽을 쌓은 벽이 벽을 친다. 괴물 같은 벽을 돌아 우리를 돌아가게 하는 지리산에 주저앉아 가도 가도 길인 길을 어쩌라고, 언제 도착할까? 몇 시간 걸려요? 몇 km인가요? 가도 가도 보이지 않은 내리막. 턱턱 걸리는 돌부리, 가슴을 콕콕 찌르는 너는 멀리 보면 다정한 골짜기 너머 아득한 능선 찢어질 듯 닿지 않은 발이 헛발을 내리고 다시 오르내리는 능선은 바로 지금 네 능선, 신발 아래 느껴지는 감각이 가슴으로 퍼져온다. 생명을 밟고 또 밟은 너를 감싸는 공기, 산에 퍼지는 숲의 냄새 그 숨결 너는 모르고, 너를 보는 숲에서 잉잉거리는 벌의 추격에 잉잉대는 몸은 몸대로 산의 속내도 모르면서 산에 빠져 산에서 허우적댄다. 산에 갔으나 산을 보지 못한 산속에 두고 온 것이 많아 또 가야 할 산은, 가지 않은 너를 몸으로 쓸 수밖에 없다. 산에서 앞으로 가지만 말고 산을 둘러보고 좀 더 머물다 올걸, 그 하얗게 내려앉을 별을 보고 별 위로 걸던 천상의 별꽃 허리 굽혀 찬찬이 들여다볼걸, 햇빛을 메고 가는 길 위로 떨어지는 햇빛 떨어지는 체력 안고 떨어지는 기분 엎어지는 발걸음 닥쳐올 시간 미리 겁먹지 말고 그늘에 앉아 숲의 노래 고요나 침묵 듣다가 올걸, 내 속에속에 불던 은밀한 바람 숲에 두고온 바람 앞으로 가지도 머물지도 못한 조심스러운 지리산 바라만 보는 지리산 오래오래 그 자리에 남아 품어나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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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1
  • 주지 못한 베개
    주지 못한 베개 자려고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삶에 병상의 환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종양 병동 근무 당시의 일이다. 1111호에 입원한 김가람 님은 폐암 환자로 몇 번의 항암치료를 끝내고 퇴원하는 날이었다. 평소 말이 없던 그가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몽고풍의 모자를 쓰고 있던 그는 평소에는 잘 내색하지 않아 표정으로 통증의 강도를 읽던 분이었다. “수간호사님,이 베개 집에 가져가면 안 돼요?” “그 베개가 편하세요? “네,이 베개가 잠이 잘 와요.” 나는 왜“드릴게요”라는 말을 입안에 담고 있었는지, 아이처럼 베개를 안고 애써 용기 내서 말하고 웃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나는 왜 베개를 주지 못했을까? 베개를 챙겨주려 했는데 퇴원할 때 미처 주지 못했을 거야. 핑계를 댄다. 언뜻언뜻 생각나는 1111호 문 옆 침대에서 투병하던 김가람 님.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고 밥이 약인, 밥 한 술 한 술 넘기던 모습이 액자처럼 벽에 걸려있다. 주지 못한 베개 하나 빈 침상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그를 만날 수 있다면 새 베갯잇 씌운 베개를 그 품에 안겨주고 싶다. 그때 항암치료 부작용을 잘 극복하고 퇴원했으니 지금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도 나처럼 그때를 회상하며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몽고풍 모자를 쓰고, * 김가람 님은 가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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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7
  • 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주성윤 시비(朱成允 詩碑)를 찾아
    주성윤 시인의 시비를 찾아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문수제 지나 오미 송정간 둘레길에 주성윤 시인의 시비가 있다고 해 찾아가기로 했다. 마침 문수리 들어가는 마을 앞 오미 슈퍼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혹시 주성윤이라는 사람이 마을에 살았는지 묻자 흔쾌히 시비가 있는 곳을 안내한다. 차로 내죽 마을 위 단산 윗길로 들어서니 깔끄막에 朱成允 詩碑가 있다. 수풀 사이 자리한 시비에 풀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신기루처럼 어느 백일에 별안간 드높이 치솟아오른 세월의 망루 그 위서 날카로운 고양이 수염 하나 번뜩한 순간 어둠은 들쥐가 되어 달아나 버렸다 주성윤 시인은 구례와 지리산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시비로 안내한 단산마을 정동기 님은 시비가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시비가 있는 땅은 어느 교장 선생님의 선산이라고 했다. 그분의 집이 운조루 옆이라고 해 찾아갔으나 문은 잠겨있고 초인종은 눌러도 대답이 없어 집 앞에 있는 500년 된 서어나무만 바라보다 왔다. 주성윤 시인(1939년~1992)은 오사카에서 태어났으니 본적은 경남 창원으로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텅 빈 공백』, 『독설』, 『먼 산에 진달래』, 『산꼭대기의 말』 『조선의 빛』 많은 시집과 번역서가 있지만 절판된 상태였다. 유고시집 『무궁화밭』을 펴낸 도서출판 두꺼비는 사라지고 대행업체인 새길 아카데미에 연락되어 시집을 구할 수 있었다. 시집을 읽다 보니 평론을 쓴 임헌영 평론가와 유고시집을 펴낸 김승균 발행인, 추모글을 쓴 황선락 소설가와 시인은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시인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시절 ‘최류탄문학 동인회’ 활동으로 유명하다. 『무궁화밭』, 임헌영 평론가의 발문/주성윤론에 의하면, 1966년 『청맥』에 실린 장시 <조국의 상>은 투사 주성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준다고 썼다. 『청맥』에 글을 싣거나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인들이 고통을 받던 당시 주성윤 시인도 그 희생자로서 깊은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시비 옆면에 1994년 7월 9일 한맥 문학사 주관으로 박혜범 스님의 부지 제공, 시공사인 문산 석재의 대표 최용길 님과 통화 후 한맥 문학사에 제작한 시비를 납품한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주성윤 시인에 대해서는 더 알 수 없었다. 한 시인을 찾아가는 문턱은 시집 박물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이었다. 구례에 머물며 한 시인에 대해 쓴다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기에 묻어두고 네이버로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시 몇 편 열람할 수 있어 1977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짧은 시 <스냅 1>을 소개한다. 수풀에는 조랑조랑 새 울음떼 열리다. 사원의 한밤에 아무런 뜻도 없이 멍청히 떠올라선 한동안 넌센스로 조용히 머문 세상사 시끄러움 같다. 모든 뜨거운 것은 서산 허리에 걸리고, 초설이 흰 이를 드러낸 여정 같이 쌕뚝쌕둑 그 면전에 스쳐내린다. 스냅처럼 지리산 자락 깔끄막에 조랑조랑 열린 시어들. 아니 풀이라는 시와 풀이 어우러져 시인이 풀로 와서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게 온통 시로 풀어지는 듯하다. 시인이여, 어찌하여 지리산 자락에 오게 되었는지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새소리 듣고 있는지 아니 새가 되었는지 유고시집 『무궁화밭』에서 임헌영 평론가가 쓴 주성윤 시인, 시대를 아파하고 시대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던 시인이 교류했던 그 당시를 빈약한 내 언어보다는 시를 직접 음미하는 편이 낫겠다. 난꽃이 피던 무렵 (임헌영 형의 일을 명상하며) 오늘은 웬 일인지 난이 핀 곁에서 난꽃이 핀 걸 보며 해 지는 줄 모른다. 길가에서 어제 만난 갓 출소한 그 친구. 친구의 얼굴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 속에서. 감방에서 수년 살며 어쩌면 제 죄도 아닐지도 모를 죄를 다 씻어내고 이전보다 한결 더 스마아트해진 모습으로 갓 출소한 그 친구 인상을 나도 모르게 나는 난꽃에서 건져올리며 정처 없는 생각에 하염없이 잠긴다. 생각자면 나도 내 죄도 아닌 죄가 너무 많은 청춘……, 중략 이따끔씩 세상을 가르치러 온 것이 라이어트가 되지 않도록 목숨으로 값치른 스승들의 이름도 밝음으로써 어두운 난향 속을 떠돎을 봤다. 국립중앙국립도서관에서 찾은 또 한 편의 시는 <청산음>이다. 어슴푸레한 박명에 청산음이 실려 오듯 한 시인의 삶이 걸어온다. 어쩌면 한 생이 피다 말고 저버린 쉽게 닫혀버린 책이 되고 있어 더 바래지기 전에 펼쳐봐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 자락에 울리는 청산음을 듣고 있는가? 시에 걸린 그 죄명 하나 거울 속에서 울리는데, 하늘을 쳐다보고 풀밭에 누웠으면 나도 미풍에 나부끼는 한 포기 풀. 마음은 맑아져서 그 끝에 걸린 거울이다. 이따금씩 바람결에 기억의 박명이 실려와서 그 속에 얼굴들을 비치고 지나면서 풀잎 끝에 죄명을 하나씩 달아놓고 간다. 흡사 몰래 선생님 등 뒤에 망신스런 쪽지를 써붙여놓고 잠적해버리는 개구쟁이 생도들. 그러면 하늘이 파아래서, 그들을 저지못한 부끄럼으로 얼굴이 화끈 붉어져버린 풀은 꽃이라 갈채하는 사람들. 살고파라. 바람도 청산에 죄를 물어오지 않는 청산에. 그래서 이윽고는 기억도 백흑그림들처럼 깡그리 지워져 없어질 흑판같은 청산에. 주성윤 시인을 다시 좇는다. 김선기 평론가의 <시인 박진환론>을 보면 주성윤 시인은 1963년 9월 박진환, 김종해 시인 등과 함께 시동인지 『新年代』의 창간 멤버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1969년 구중서, 임헌영 등과 함께 『상황』 의 동인지 창간 멤버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은 활발한 활동을 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사라져갔는가? 1975년 3월 11일 자 중앙일보에 실린 박재능 시인에 따르면, 주성윤의 『일광속에서』 는 현대시에서 정서 배제를 위한 지적 처리가 원만하게 시도된 느낌이 드는데 비법에서 소화가 덜된 생소한 단어들이 돌출되어 눈을 거슬리게 하지만 전달의 방편이란 입장에서만 본다면 시대적 호흡에 적응하려는 노고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시인을 찾는 과정의 수확은, 『청맥』에 연재하던 장시에 관한 연구이다. 1923년 한국해양대학교 김지녀, <1960년대 『청맥』誌의 ‘長詩’기획과 ‘참여시’의 의미에 관한 연구>에 실린 글을 옮겨적는다 잡지 『청맥』은 오경남, 주성윤, 김소영 등 신인들을 주축으로 장시가 실렸다. ‘장시’가 다양한 미학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시의 개념과 본질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을 검토해 작품 유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신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감각과 언어로 폭압적이고 혼란스러웠던 1960년대, 『청맥』에 장시를 연달아 3편 발표한 주성윤 시인은 사상적이거나 미학적 측면에서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60년대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신인들에게 묻고 또 그들이 장시의 형식으로 응답한 『청맥』이 지향한 문학 이념과 참여시의 속성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월 22일자 ifs Post News insight에서 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9> 에서 <문학적 사제 관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지는가-박목월 선생과 그 문하생들>을 인용한다. 주성윤 시인은 자취생활을 하면서 시 쓰는 일에 모두를 걸고 있었다. 그가 박목월 선생 댁을 찾으면 사모님 유익순 여사는 옷가지며 반찬을 주어 보냈다. “주성윤이 시인으로 등단하면 사는 일이 나마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박목월 선생의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주성윤은 관념시로 자기 세계를 이뤄낸 시인이고. 주성윤의 타계 소식은 시간이 흐른 뒤 입을 통해 알려지고 시인의 은둔은 그렇게 깊고 적막한 것이었나 보다고 적고 있다. 드디어 주성윤 시비 옆면에 적힌 부지 제공한 박혜범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지리산人』 편집회의에서 정환 님으로부터 그분이 구례에 상주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1994년 문수리 두지 바위 길옆에 시비를 건립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시비가 사라지고 없어 궁금하던 차에 필자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시비를 찾았을 때 풀이 무성한 사이로 시인은 시비를 건립한 사람과 30여 년 만에 재회한 것이다. 풀로 덮인 그의 약력은 잊힌 만큼 풀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박혜범 시인이 기억하는 주성윤 시인은 천재이고 이름 없는 별이었다고, 시인 천상병 같은 시인이었으나 다른 향기의 시인이고, 길을 잃고 스스로 갇혀버린 그의 죽음 앞에서 우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주성윤 시인을 시작으로 문수리에 이름 없는 천재들의 시비 동산을 만들고 싶었다는 박혜범 시인. 이름은 있되 이름 없다는 말을 곱씹는다. 찾아야지 찾아가야지 돌에 새긴 시인 찾아가야지 하는 나는 해무처럼 적셔지는 근원적인 비애감에 갇힌다. 갇혀서 걷는 길 길은 항시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길에게 너 아디 가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갇혀 있기보다는 걷고 움직이는 것이 자유로우리라고 길을 보면 나는 항시 부랴부랴 짐을 챙겨 따라나섰다. 가도 가도 이다지도 가슴 답답함은 갇혀서 걷는 길인 탓도 아니라는데 나를 자유 속으로 해방시켜 줄 동행은 왜 또 아무도 없는 것일까? 절레절레 발을 절며 오늘도 나는 길을 따라 나서고 길은 저만치 앞질러 달아나며 따라오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다시 시비가 있는 선산 주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500년 된 서어나무 앞집에 갔다. 여전히 문이 잠겨있다. 할 수 없이 마을 한 바퀴 돌아본다. 솔까끔 마을 오솔길을 지나는 사람을 기다리며 풀이 풀을 노래한다. 그 시절 가난하고 고독하게 살다간 주류가 되지 못한 시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풀 같은 존재를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참여시를 쓰고 관념시를 쓰고 순수시를 쓴 주성윤 시인의 시가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으면 한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시인이 지리산 아래 구례에 살다간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미 슈퍼 앞으로 흐르는 물이 맑다 벽화 속 빨래하는 아낙들 소리가 도랑으로 흐른다 방망이질 소리가 도랑으로 빠진다 오미 슈퍼 할머니가 나와 기웃거린다 슈퍼가 이뻐서 사진 찍어요 하니 씨익 웃는다 시인이 싱겁게 웃는 것만 같다 시인의 육필 원고 <무궁화밭>이 수록된 시집 『무궁화밭』에 실린 <뚝섬 시초>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암만 해도 낯 익었네. 저 선회 풀밭 위를 지나다가 문득 꽃진 풀밭 위에 하얀 나비 두어 마리 배회하는 광경 전생 혹은 이생의 어딘가에서 꼭 한 번 만났던 것만 같이 생각 든다. 기억해 내려해도 푸른 잎사귀로 가려 덮으며 영 잃어버렸거나 죽었거나 없다고만 하고 손 젓고 섰는 이승의 풀밭. 해 저물녘엔 질퍽이는 관능의 바다 기일게 전개시켜 놓고, 그래도 물들지 않고 호올로 이승을 가는 외로운 사람처럼, 또는 영혼처럼 흰 돛단배 가네. 하루 해 싣고.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8-01
  •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우리는 반달가슴곰의 짝궁, "곰짝, 곰짝" 아이들의 마음에 비친 반달가슴곰은 어떤 모습일까? 구례 토지초 아이들이 그린 반달가슴곰을 만나러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다녀왔다. 이번 반달가슴곰 작품 전시회는 지난 3월 27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에서 열린 ‘우리동네 곰짝! 곰짝! 공존문화행사’(이하 곰짝곰짝 행사)의 결과 가운데 하나다. 곰짝곰짝 행사는 반달가슴곰 개체 수가 늘면서 안전 우려와 공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덩달아 늘어남에 따라 곰과의 공존 문화를 지역사회 안에 퍼뜨리기 위해 열린 행사로, 지리산 자락 주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 만든 행사다. 곰짝곰짝 행사에서는 지역 주민의 다양한 공연과 곰을 이해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는데, 특히 구례 토지초등학교 아이들의 참여가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전교생이 ‘곰과의 공존’을 주제로 글·포스터 공모전에 참여했고, 4~6학년 학생들은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와 율동을 선보여 공존의 의미를 보여줬다.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복원센터의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 가면 지난 행사 때 아이들이 만든 글·포스터 작품을 볼 수 있고, 곰짝곰짝 반달곰 노래도 들을 수 있다. 그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창의성에 놀라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지적 흡수력과 감수성에 다시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너무도 친근하게 표현된 반달가슴곰을 보고 있노라면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늘 무심했던 어른이었음이 부끄러워진다. 반달가슴곰과 인간의 공존을 바라는 지역 주민들의 뜻이 아이들의 노력을 보태 이루어졌다니 참으로 희망이 가득한 사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반달가슴곰을 복원하고 보전하는 일에 함께해야 할까? 곰은 ‘생태계의 핵심종이자 우산종’이다. 말이 너무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곰의 존재가 생태계 내 다른 종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반달가슴곰은 다래, 머루, 도토리 같은 열매와 씨앗을 주로 먹는데, 곰이 싼 똥에서 식물이 발아하는 확률이 자연 발아에 비해 2배나 높다. 생태계 유지와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 반달가슴곰과 곰의 서식지를 보호하면 다른 종들의 서식지도 보호할 수 있는데, 마치 우산을 펼친 듯 하위 종들을 보호할 수 있어서 반달가슴곰과 같은 종을 우산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리산에? 곰은 단군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살아왔다. 어쩌면 인간보다 더 먼저 살고 있던 한반도의 토박이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유전인자 보전을 위한 기존 야생곰이 남아 있고 안전하고 넓은 서식공간과 풍부한 먹이자원 등 충분하고 우수한 서식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반달가슴곰이 살아가기에 좋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반달가슴곰’을 보전하는 일을 해 온 남부보전센터는 곰짝곰짝 행사가 주민 주도로 이뤄질 수 있게 지원했다. 남부보전센터가 있는 지리산 반달가슴곰 공존센터에는 곰들이 산다. 이 곰들은 동물원처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 야생성을 잃어버린 곰이나, 치료가 필요한 곰 등 보호·보존을 위해 마련된 곰들의 집이다. 남부보전센터틑 멸종위기종 복원과 탐사, 연구 사업 외에도 반달가슴곰과 함께 공존하기 위한 사업으로 탐방프로그램과 홍보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반달곰 보전 사업에 대한 우려와 반감을 없애고, 인간이 생태계 파괴자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공존하도록 협의체를 구성하고 간담회를 연다. 왜 반달가슴곰을 보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까닭, 반달가슴곰의 생태, 반달가슴곰과 마주치지 않는 방법, 혹시 마주쳤을 때 피하는 방법 등 교육하기도 한다. 곰짝곰짝 행사도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우리가 찾아간 날 야생생물보전원 남부보전센터 소민석 센터장님을 만나 곰짝곰짝 행사에 대한 이야기와 보전센터의 역할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소민석 센터장님은, 곰이 사람을 공격하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걱정에 곰이 지리산에 사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실 사람이 곰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지, 곰이 사람의 영역으로 침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곰과의 공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강조했다. “모든 동물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한다. 반달곰도 마찬가지여서 사람 소리나, 방울, 종소리 등을 듣게 되면 먼저 피한다. 그러나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시선을 피하지 말고 뒷걸음으로 곰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절대 혼자서 산행하면 안 된다.” 우리의 사고는 인간 위주여서, 인간이 모든 동물의 우위에 있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한다. 학교에서 배운 ‘먹이 피라미드’가 떠오른다. 피라미드의 가장 우위에 있는 인간은, 먹이사슬이 무너지고 자연의 질서가 파괴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두가 그 대답을 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어려움과 불편을 감수하면서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는 선뜻 행동으로 동참하기 쉽지 않다. 토지초 아이들과 토지면 주민들이 곰짝곰짝 행사를 멋지게 해낸 일은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곰짝곰짝 행사를 마친 소감을 물었다.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프로그램이 좋았다고 소문이 나서 그 후로도 다른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생들까지 다녀갔지요. 보전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고 비협조적이어서 외롭고 힘든 일이었는데, 이 활동과 변화를 통해 직원들이 ‘아, 무언가 할 수 있구나’ 하는 활력과 힘을 얻게 되었지요.” 이어서 그는, ‘생태 보전 활동에 지리산 권역에 있는 기관들과 주민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함께 해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지리산에 살고 있는 곰들은 보호 관리를 위해 추적기를 달고 있다. 야생생물보전원에서는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 반달가슴곰 목격 제보를 받고 있는데, 추적을 나갔던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양봉하는 곳에서 반달곰이 벌집을 통째로 훔쳐 달아났는데 바위 뒤로 몸을 숨긴 곰이 꿀을 먹지 않고 바위 사이로 주인이 쫓아오는지를 엿보고 있더란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곰이 그제야 맛있게 꿀을 먹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사이에 출동한 사람들이 마취총을 쏘자, 오른쪽으로 날아오면 왼쪽으로 휙, 왼쪽으로 날아오면 오른쪽으로 휙, 고개를 돌리며 피하는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모두 같이 웃고 말았다고 한다. 곰의 식별 번호를 부르며, 거기 가만히 있어, 하니 또 가만히 서서 기다리더라는 이야기도 함께. 반달가슴곰들이 살고 있는 보전원 인공 서식지에서, 바위를 뒤뚱거리며 뒤로 내려오는 곰의 귀여운 모습을 보고, 이 ‘꿀을 훔친 곰’ 이야기 속 곰의 모습과 겹쳐 떠올라 혼자 웃었다. 오늘도 해가 쨍쨍하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한다. 지구 한편에 홍수가 나고, 다른 한 편은 가뭄으로 땅이 말라간다. 기후위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많은 동식물이 사라져 간다. 인간이 더 이상 환경 파괴자가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함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이다. 반달가슴곰과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7-13
  •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박순남 할매와 함께 걷는 계단 보클보클한 구름이 짖는다. 노인복지센터 차가 박순남 할매 사는 이층집에 도착했다는 거다. 할매는 여든여덟이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다리에 힘이 없어 부축을 받아야만 걸을 수 있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 계단까지 가야 한다, 그 전에 차에서 내리는 순서가 있다, 오른발을 먼저 차 난간에 내려주고 엉덩이를 받쳐 내린 다음 오른발을 내려서 몸을 붙잡고 한 발 한 발 걷기 시작하면 꽃님이가 꼬리치고 반긴다. 계단 앞까지 왔으니 계단에 한발 한발 옮기면 된다. 왼발을 손으로 계단에 올려준다. 그다음은 할매 스스로 오른발을 옮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시선은 자연스레 아래로 간다. 그 순간 스치는 경이로움, 화강석 계단 틈 사이 자란 풀이 꽃을 피웠다. 할매, 저 풀꽃 봐요! 할매는 두 손으로 계단 난간을 잡고 오르다 아래를 본다. “잘 안 보여” “꽃이 예뻐요” 저 풀도 이름이 있을 텐데, 그러게, 우리는 한 몸이 되어 계단을 오르고 구름이 짖는 소리가 하늘로 퍼져 구름이 된다. 보클보클한 구름이는 할매집에 사는 반려견 이름이다. 드디어 문 앞, 으싸! 마음이 바빠진 할매 발걸음이 빨라지며 앞으로 넘어질 듯 걷는다. 문고리에 걸린 열쇠를 빼고 문을 연다. 문을 여는 일은 할매가 오늘 하루 잘 지냈다는 일. 오늘도 애쓰셨어요. 꽃장식 보라색 모자도 벗어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 밖에서 문고리를 채운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할매가 기어서 계단에 내려와 낙상한 적이 있다. 노인들이 눈 깜빡할 사이 낙상하면 골다공증이 심해 골절될 확률이 높다. 할매와 헤어져 계단을 뛰어내린다. 살아가는 것은 계단이야. 할매가 휠체어 도움 없이 포기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지금처럼 걸을 수 있다. 비 오듯 땀에 젖고 마르는 일 또한 계단이다. 나를 향해 구름이 짖고 난리다. 안녕, 구름아! 손을 흔들고 차에 오르자 우리를 차창으로 보고 있던 할매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금세 땀이 마르고 몸이 가벼워진다. 내 손이 박순남 할매의 발이 되는 계단. 가요! 파초길 지나 지리산을 보고 달려요. 잘 웃는 박순남 할매 목소리는 비음이 매력적이다. 키 크고 잘생긴 아들과 예쁜 며느리가 처음 만나 연애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체조 시간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 율동하지 못해도 콧노래 부르고 손뼉을 치며 웃는 할매 보고 나도 웃는다. 어느 날 잘생긴 아들이 밭에서 따온 호박을 건네준다. 다음날은 복지센터에서 호박전 부쳐 먹는 날이다. 달착지근한 호박전 생각에 벌써 행복해진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7-09
  • 파초가 사는 집, 어머이
    파초가 사는 집, 어머이 파초를 처음 본 것은 무덥던 어느 여름날 불일암 마루에서다. 법정 스님이 타준 차를 마시며 파초를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그곳에서 가져온 파초가 내게로 와 동면에 들지 못하고 얼어버렸다. 흙 위로 솟은 푸른 잎을 풀인 줄 알고 뽑아버린 뒤 늦게 찾아온 손가락만 한 파초잎에 물을 주다 불쑥 찾아온 파초가 있다. 파초가 있는 마당, 거동이 불편한 어머이를 부축하는 간호사를 두고 어서 가라고 성화다. 미안해하는 어머이를 현관 안까지 부축하여 거실로 모신다. 노인복지센터에 다녀온 어머이 보고 좋아 야단법석인 강아지. 지팡이와 신발을 가지런히 두고 스타렉스에 오른다. 갖은 풀이 녹색을 뿜어내는 사잇길을 후진하는 사회복지사의 운전실력이 오랜 경력을 말해준다. 사무실에서 말이 없는 그녀는 스타렉스에 타면 말문이 트여 비로소 동료애를 느낀다. 며느리는 집 근방에서 밭일로 바쁘네요. 전라도 말로 “어머이” 어머니 말이에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부르는 어머이, 호칭에 며느리 애정이 배어납니다. 어머이 그 발음과 억양을 글로 쓸 재주가 없군요. 불러야만 어머이 호칭이 완성됩니다. 불러도 부르고 싶은 어머이, 먼 기억 속을 걸어옵니다. 파초 잎처럼 너른 품, 어머이는 이제 며느리가 돌봐주어야 할 딸 같은 어머이가 된 것입니다. 어머이를 모시는 며느리는 어머이의 딸입니다. “어머이가 약을 드셔도 요실금이 좋아지지 않아 기저귀 차고 복지센터에 안 가시려고 해요. 허리가 아픈데 복지센터에 누워있으면 욕할까 봐 안 가시겠대요” 며느리 목소리와 눈빛에 걱정이 서립니다. 그 어머이의 애잔한 등, 조절되지 않은 방광, 마당에 선 커다란 파초 잎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감쌉니다. 괜찮아요, 어머이! 숱한 길 걸어 비록 노쇠해도 그 사랑 뿌리 깊이 뻗어가는 파초와 닮았습니다. 날마다 보는 들판은 어머이가 걸어온 시간입니다. 희끄무레한 구름이 물러납니다. 괜찮아, 괜찮아요, 어머이! 어머이가 참기름에 무쳐주던 쑥부쟁이나물, 그 쑥부쟁이가 바람에 살랑대는 것 봐요. 오늘도 노인복지센터를 나온 차는 파초가 사는 집에 옵니다. 희멀건 어머이 웃음. 품이 너른 파초 잎 열고 어머이! 그 어머이가 지금 가슴 속에서 옵니다. 밭일을 마친 며느리가 어머이! 하고 부릅니다. 글쓴이 : 이촉 _시인.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6-24
  • 구례를 걷는다구례를 걷는다
    봉북 샛길 가축병원 자리 골무 사태 들어 대장간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봉남리로 나가는 샛길, 벽화 따라 걷는 봉동리 더듬어 주욱 이층집 지나 큰길 건너 읍사무소 자리 역사의 거리 지나 성당을 돌아 봉산 쪽으로 간다. 길을 접어 작은 길을 가니 소식다료. 들어서니 아는 사람이 앉아 있다. 호지차 한잔 주문하여 홀짝이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연둣빛 봉산이 금세 내 안으로 쏟아질 듯 하다. 구수하고 따듯한 호지차처럼 구례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찻집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은 샛길 같다. 길 안에서 길을 마시는 차의 여백, 찻잎처럼 떠다니는 여백을 떠다니는 생각에 싸여, 걷는다. 봉북샛길 접어드니 샛길이 나를 기웃대며 녹슨 파란 대문이 꿈속으로 부는 바람처럼 나를 건든다. 고양이 두 마리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 후딱 피한다. 가지 마! 나도 몰래 새 나가는 말이 전봇대 아래 멈추고 야옹, 고양이 눈이 맑다. 개울 따라 접어든 구례 샛길이 살갑다. 지나는 사람은 그림이 되고 십자가 뒤로 장미슈퍼가 미소 짓는 저물녘. 장미슈퍼 와상에 메주와 우유를 내놓았다. 먼 날이 불러오는 풍경 한파가 이어지던 영하 10℃ 냉장고를 나온 두부가 손님을 기다리던 시간 위로 떠 오르는 얼굴 함께 구례를 다시 걷는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5-16
  • 최갑순 할매 / 서시내 가면,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들> 최갑순* 할매 철쭉빛 스카프 목에 두르고 뭘 보고 있소 서시내 보요 노고단을 보요 할매 독다리 건너던 독다리 보요 꼭 다문 입술 열고 한 잎 한 잎 띄워 보내요 꽃바람에 맨발로 앉은 보따리 꼭꼭 싸맨 가슴 풀어나 봐요 할매 꽃신 어디 두었소 꽃신 따라 건넌 시간 어디 두었소 꽃 대신 울다 피다 울다 철쭉 또 오거든 함께 걸어요 쑥부쟁이 독다리 건너 건너 광의에 가요 오늘은 서시내 깔따구가 따라와 눈을 뜰 수 없어요 할매 철쭉 빛 스카프 바뀌고 또 바뀌면 어둠 머금고 봄은 언제 올까요 * 구례 평화의 소녀상 서시내 가면, 동광 사거리 지나 당산나무가 있고 서시교까지는 포플러가 즐비한 신작로였다. 고흐 사이프러스 길이 생각나는 포플러 길. 신작로, 말만 들어도 구례가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다. 서시내는 뭇 생명과 함께 흐르는 구례 아이들 놀이터였다. 요즘은 섬진강 다슬기로 유명하지만, 구례말은 데사리나 고동이다. 서시내서 잡은 데사리 한 바구니 데쳐 가족들 함께, 옷핀으로 빼먹던 고동, 모래알 같아 퉤퉤 뱉던 그 초록 알이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듯하다. 서시내 둑방은 어린 내가 오르기에는 좁고 가파른 길이었다. 몇 해 전 수해로 둑은 더 높아져 지리산을 막고, 밤이면 가로등 번쩍이는 꽃길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 둑방 아래 조성된 공원 산책로를 걷다 보면 구례 평화의 소녀상 최갑순 할매가 바위에 앉아 있다. 항상 맨발인 할매. 어릴 적 꽃신 사준다고 해 따라나선 길은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먼 길이었을까? 그 길 가슴에 싸맨 보따리 하나 두고 앉은 할매. 할매 곁에서, 때로는 지나는 사람이 씌워준 모자와 목도리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지리산과 서시내도 계절을 갈아탄다. 오늘 할매 이야기 듣다 어두워지고 밤이 온다, 글쓴이 : 이촉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시집 『검은 해바라기』를 펴냈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5-01
  • 내 몸에 흐르는 지리산
    내 몸에 흐르는 지리산 『지리산人』 편집위원들과 함께 피아골로 들어요, 어릴 적 밟던 산 흙을 밟는 걸음이 무거운 것은 두렵기 때문이죠. 앞서는 걸음이 불확실해 품기만 하던 피아골 품에 들어갑니다. 숨은 항시 따라붙는 것이라 숨결처럼 달라붙는 산에서 나는 작아집니다. 쓰러져 있는 신갈나무가 병들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우리는 매장에 관해 말합니다. 수목장이 좋을 것 같아요. 조장이 괜찮겠어요. 얼른 떠오르지 않은 단어를 품고 기다립니다. 화장, 화장은 한 생애를 태우는 고통이지요. 지리산이 듣고 있어요. 앞서가는 선재님이 진달래 꽃잎을 따 먹습니다. 꽃 맛은… 진달래가 떨고 있어요. 뒤따르던 지리산도 진달래 몇 잎 따서 먹었답니다. 상추처럼 시원하고 신선한 첫맛? 바람은 듣지 못하여서 흔들거려요. 쓰러진 나무 아래 겹겹이 쌓인 낙엽 위로 이끼긴 바위 아래 돌계단이 휘청합니다. 산에서 산을 꼭 잡고 서요. 입 마른 산수국 꽃잎이 툭툭 말을 겁니다. 시는 산수국 꽃잎처럼 오가며 말을 겁니다. 지리산에 묻어둔 기억은 표고막터 거쳐 그리던 삼홍소에 빠진 산 그림자 한번 보려는데 봄이라고 부슬, 봄이라고 부슬, 비가 내려 쌉니다. 삵의 똥은 까맣게 삵의 흔적을 말합니다. 가던 길 멈추고 힘들다는데, 말하지 않아도 오르막은 힘든 법이랍니다. 진달래 숨결은 보드라운데, 산바람 할퀴고 피는 진달래라고 씁니다. 지리산이 듣고 있어요. 사방이 지리산이라 나는 피아골 대피소로 피해 숨을 돌립니다. 피아골을 들이마십니다. 비로소 산에 있어요. 멀리서 그리던 산에 왔어요. 하여 넘어져도 가고 넘어져도 산인 지리산에서 오던 길 다시 돌아 산을 또 내려갑니다. 그렇게 『지리산人』 되어갑니다.
    • 고을이야기
    • 구례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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