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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나는 옛이야기3-견벽청야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나는 옛이야기4-견벽청야 견벽청야 堅壁淸野 굳은 견, 바람 벽, 맑을 청, 들 야 말 그대로 하면, 성벽을 굳게 하고 곡식을 모조리 걷어 들인다는 뜻이다.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해온 방어전술의 하나이다. 해자(垓子)를 깊이 파고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들에 있는 모든 곡식을 성내로 걷어 들여 공격해 오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으로, 우세한 적에 대한 수단으로 흔히 약자가 사용한다. 삼국지의 조조와 여포가 싸울 때 조조가 사용한 전법이기도 하고, 청태조 누루하치와 원숭환의 전투에서,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대패 당한 전법이기도, 그리고 한국전쟁 때 11사단장 최덕신 준장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펼친 작전이기도 하다. 이번 이야기는 지리산둘레길 동강-수철 구간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에 얽힌 이야기이다. 또한 이 이야기는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거창군 신원면에 있는 ‘거창사건 추모공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두 사건은 같은 사건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기구의 폭력성은 국가의 본질적 요소이다. 그게 인민(people의 한국말은 인민이다. 이 말을 좌익들이 사용했기에 80년대엔 민중이란 말을 대체용어로 사용했다)을 법과 제도에 종속시키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런 국가의 폭력성이 깔끔하게 드러날 때가 전쟁 혹은 내란의 시기이다.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3년 남북전쟁이 휴전되는 9년 동안 한반도의 남과 북에선 새로운 국가를 성립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폭력이 일어난다. 그 정점이 전체 인구 10%인 300만명이 사망한 남북전쟁이다. 지리산둘레길에서 문득 스쳐 지나가는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은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국가의 맨 얼굴을 직시할 수 있는, 아직, 살아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하게 된 유엔군은 후방 안정을 목적으로 11사단을 창설한다. 11사단의 주 임무는 지리산 등 산악지대에 잔존해 있는 인민군과 빨치산 토벌이었다 이를 작전 명령 형태로 공식화시킨 것이 '적의 손에 있는 사람은 전원 총살하라'는 작명5호였다. 이는 거창·함양·산청 민간인 학살이 일개 하급 지휘관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사단장, 국방부장관,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지휘명령체계를 갖는 국가으이 공식 행위라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당시 국가의 시선은 매우 경악스럽다. (지리산 일대) 약 7할 이상이 공비에게 협조하여 식량보급 및 정보를 제공하는 고로 이적행위로 인하야 아군작전에 지장을 초래케 하며 현재 소각당한 각 부락은 주간에는 대한민국이며 야간에는 인민공화국이라 아니할 수 없는데, 대한민국정부에 납세 혹은 국민된 의무는 전혀 없음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 간주할 수 없음으로 지리산토벌작전에 적의 이용당하는 인원 및 가옥을 파괴하지 않으면 작전수행을 도저히 기할 수 없는 고로 불가분의 조치라고 생각함. - 헌병대 보고서, "지리산 토벌작전으로 인한 민심동요에 대한 조사복명지건" 거창군 신원면 관내는 완전한 인민공화국이며 공비에게 일시적이 아니고 정신적으로 협조 충성을 다하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며 특히 신원면 5개리 주민은 공비화되어 있었음으로 이적행위자로 칭할 바 아니라 완전한 적으로 간주할 수 있는 바. 차를 사살하였음은 작전상 당연한 조치로 인정됨. 숙청당한 지대의 거주민은 추호도 개전의 여지 전무한 자이며 금후 공비의 완전한 소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해당지대의 가옥 및 거주민을 처분하지 않는 한 금후 공비세력이 강화될 것이므로 당연한 처사로 인정됨 -거창경찰서 보고서(1951. 3. 8) 국민당 중앙군 출신의 11사단장 최덕신이 중국의 전통전술인 ‘견벽청야’라는 이름을 언급했지만, 실제로 연대장, 대대장 등 일본군·만주군 출신의 산하부대 지휘관들은 일본군의 삼광작전이나 초토화작전이 훨씬 더 익숙한 개념이었다. 이들은 이미 해방 후에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 그리고 지리산에서의 반란군 토벌작전에서 초토화 작전을 편 바 있다. 11사단은 빨치산 토벌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산청·함양·거창에서 일본의 삼광작전을 그대로 진행하였다. 1951년 2월 2일 11사단 9연대는 경남 진주에서 함양으로 이동하였다. 9연대 3대대는 작전회의 지침에 따라 주어진 작전지역으로 이동하여 토벌작전을 시작하였다. 한동석 3대대장은 대대병력과 경찰, 청년의용대 병력 1개중대를 이끌고 2월 7일 10시경 신원면에 도착하였다. 애초 정보로는 신원면에 약 400~500명의 공비가 잠복하고 있다고 했으나 3대대가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단 한 명의 공비도 없었다. 단지 부녀자와 아이들, 노인들밖에 없었다. 이에 3대대는 신원면에 경찰과 청년대 병력 약 200명을 주둔시킨 다음, 산청 쪽으로 진격해갔다. 이때부터 지리산 주변의 산청·함양·거창 20여개 산골마을에서 1,400여명이 학살되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1951년 2월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 동안 9연대 3대대는 산청군 금서면, 함양군 유림면, 거창군 신원면에서 대규모 학살 사건을 자행했다. 2월 8일 아침, 지리산 줄기에 자리 잡은 산청군 금서면과 함양군 유림면 관내 10여개 자연부락의 날씨는 푸근했다고 전해진다. 아침 7시쯤 9연대 3대대 1중대 병력이 가현부락에 들이쳤고, 그들은 집집마다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40여 가구가 사는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1중대는 놀라서 뛰쳐나온 마을사람들을 마을 앞 속칭 산제당 골짜기로 끌고 가서 집중사격을 가해 사살했다. 학살을 마친 부대는 가현부락의 소와 돼지들을 몰고 바로 아래 부락인 방곡마을로 향했다. 방곡에는 이미 2중대가 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3대대 1중대는 2중대의 학살장면을 구경하면서 아래 점촌마을로 향했다. 당시 점촌마을에는 21가구 60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 부락 앞 논에서 총살당했다. 학살은 계속되었는데 그들은 학살 방식을 바꾸었다. 마을을 하나씩 초토화시키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판단한 3대대는 아예 여러 마을주민들 한 장소에 집합시켜 학살한 것이다. 함양군 유림면 손곡리의 손곡·지곡마을, 산청군 금서면 자혜리의 상촌·하촌마을, 화계리의 화계·화산·주상마을 등 7개 마을 주민들은 군인들의 총부리에 떠밀려 9시부터 유림면 서주리 동천강변에 모였다. 3대대 군인들은 장정 9명을 동원해 동천강변에 교실 넓이만한 구덩이를 두 군데 파게 했다. 주민들의 무덤이 될 곳이었다. 오후 4시쯤 300여명의 주민들을 두 개의 구덩이 속으로 몰아넣고 수류탄을 까넣은 뒤 기관총을 난사해 학살했다. 공비토벌 전공을 올리듯 박격포까지 쏘았다. 이렇게 해서 2월 8일 10시간만에 이 일대 주민 705명이 학살되었다. 2월 9일 아침 3대대는 산청군 생초국민학교를 출발해 거창 방면으로 향했다. 부대는 2월 9일 밤을 산속에서 숙영한 다음, 2월 10일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청연마을에 도착했다. 70여명의 마을주민들이 뒷산으로 끌려가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전원 살해되었다. 이날 오후 3대대 병력은 인근 와룡리와 대현리에서 주민들을 마을 앞 탄량 골짜기로 끌고가 학살했다. 탄량골에서 주민들을 학살한 3대대는 와룡리·과정리 일대의 주민들을 면소재의 신원국민학교로 모았다. 군은 12개 교실에 꽉 들어찬 주민 1,000여명 가운데서 현지 형사인 조용호, 박세복과 박대성 지서주임, 박영보 면장 등을 시켜 군·경 가족을 골라내게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머지 주민들을 근처의 박산 골짜기로 끌고가 총살하였다. 이 박산골 학살 현장에서 500여명 가운데 3명이 살아남았다. 산청과 함양에서 학살된 주민의 경우 705명 가운데 10세 미만의 어린이와 노인, 부녀자가 600여명에 달했다. 거창에서 학살된 719명 중 14세 미만의 어린이가 359명, 60세 이상의 노인이 59명으로 희생자의 75%가 어린이와 노약자였다. 민간인 학살사건이 알려지고, 정부와 군은 조직적인 은폐작전에 돌입했다. 신성모 국방장관은 현지를 방문하는 한편, 비밀회의를 통해 경남 계엄민사부장 김종원과 특무대원 계종운, 거창경찰서 사찰계 유봉순 등에게 사건의 조작과 은폐, 왜곡을 지시하였다. 게다가 이승만 대통령은 거창사건이 외신에 대서특필되는 등 문제가 되자 “치마 속 부끄러운 곳은 외국에 내보이지 말라고 했지 않아”라며 은폐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신성모 또한 이승만의 의중을 받아들여 사건의 책임자인 최덕신에게 ‘걱정하지 말고 토벌작전을 계속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심지어 100만원의 격려금까지 내렸다. 이후 9연대는 유아사체의 처리, 경남도경과 거창경찰서는 여론단속과 반증수집, 국회의원 무마, 유족과 주민 협박 등의 역할 분담을 하며 조직적으로 은폐 활동을 벌였다. 인명피해 뿐만 아니라 가옥소각, 농우탈취, 교실방화 등 물적 피해에 대해서도 철저히 은폐했다. 그러나 이미 사건이 정치권과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더 이상 덮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3월 30일 국회는 본회의 의결을 통해 거창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와 내무, 법무, 국방부의 합동조사단 파견을 결정하였다. 국회조사단은 4월 3일 거창에 도착하여 신원면 현장을 향해 출발했다. 계엄사령부 민사부장 김종원은 조사단이 지나갈 길목에 공비로 위장한 군병력을 매복, 배치해 총격을 가했다. 그러나 이미 알려지기 시작한 거창사건은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5월 하순부터 거창사건에 대한 헌병사령부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구 고등군법회의에서 재판부(재판장 강영훈 준장)는 김종원 징역 3년, 오익경 무기, 한동석 징역 10년을 선고하였다. 김종대는 무죄였다. 이 재판은 결국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던 셈이다. 재판 과정에서 거창 사건의 학살 진상을 밝히는 작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들도 1년 후 줄줄이 특사로 풀려나 다시 군에 복귀하였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9연대장 오익경은 출소 후 군에 복귀해 1956년 대령으로 예편했고, 1970년대 초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0년형을 선고받은 3대대장 한동석 역시 군에 복귀하여 9사단 부관, 수도사단 군수참모, 27사단 부연대장, 육군 첩보부대 교육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5.16 후에는 강릉·원주 시장을 거쳐 보사부 행정서기관으로 영전하는 등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살았다. 김종원의 승승장구는 더욱 놀랍다. 김종원은 군에 복귀했다가 경찰로 옮겨가 자유당 정권 시절 경찰 총수까지 거치며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였다. 학살의 책임자 최덕신 준장은 제1군단장을 지낸 뒤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였으며, 박정희 정권 하에서 외무부장관을 거쳐 1963년 주 서독 대사를 역임했다. 동백림 사건 당시 서독 대사로서 서독 정부의 반발을 무마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결국 실패하여 외교 문제로 비화된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국제적인 항의에 직면하게 되었고, 사태 수습을 위해서 박정희는 최덕신을 해임해 버렸다. 정권에서 내쳐진 최덕신은 1976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수시로 북한을 방문하고 공개적으로 6.25 전쟁 북침설을 주장하는 등 친북 활동을 벌이다가 1986년 아예 북한으로 망명하였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고 용서받지 못할 인간이다. 세월이 많이 지났다.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의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반쪽짜리 특별법이다. 산청함양거창사건에 대한 특별법도 1996년 ‘거창사건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란 이름으로 제정되었다. 그러나 산청함양거창사건 관련자에 대한 피해보상 등에 대한 법률 개정 혹은 특별법 제정은 20여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지리산둘레길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뭇생명들에게서, 수억년 세월을 지내 온 돌들과 물들에게서, 천년을 버팅겨 온 절집에서, 따뜻한 위안을 받는다. 그런데, 가끔 지리산에 묻혀 있는 아픔들을 바라볼 때가 있다. 그 또한 지리산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마치며... 1951년 국가는 민간인 1424명을 학살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가? “읍에서부터 우리를 참 깔보는 거에요. 거창사건을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논께네 아까도 내가 이야기 했지만 오죽했으면 국민투표 할 때 우리가 100%했어요. 99%가 아니라 100%라. 박정희 시대 국민투표를 몇 번 했거든요. 그걸 열람해보면 우리가 100%에요. 글을 몰라서 그렇지 절대로 우리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국가는 폭력을 통해 인민에게서 ‘국민됨’의 입증을 얻어 내었다.
    • 지리산문화
    2022-09-08
  • 지리산 풀뿌리 매체, 어깨겯고 ‘함께’ 나아가다
    지리산 풀뿌리 매체, 어깨겯고 ‘함께’ 나아가다 -인터넷신문 '지리산인' , 구례 '하동주민신문 ‘남원 산내소식지 ‘등 4 미디어오늘 기사 보기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512
    •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사람들 활동이야기
    2022-09-04
  • 산지관리법을 위반하며 진행된 ‘봉덕정 정비공사’에 대한 감사 청구
    6월 20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이하 지리산사람들)은 감사원에 ‘산지관리법을 위반하며 진행된 ‘봉덕정 정비공사’에 대한 감사 청구‘를 하였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이 공익감사로 청구한 사항은 ‘봉덕정 정비공사’의 행정절차 미이행, 군민과 약속한 봉성산 원상복구 약속 무시, ‘봉덕정 정비공사 복구계획’의 헌법, 산지관리법 위반, 공무원의 불법 행위에 대한 반성은 없이, 공사를 촉구하는 노조의 비상식적 행위 등 4건입니다. 해발 166m의 봉성산은 지리산의 주맥이 내려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구례의 주산(主山)이자 진산(鎭山)입니다. 봉성산은 구례군민 모두에게 소중한 숲이며, 「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률」이 정한 자연녹지지역이며 근린공원이고, 「산지관리법」에 의한 보전산지입니다. 구례군은 전국대회 유치를 위해 국궁장 확장공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봉성산 산림 약 2,400㎡를 훼손했습니다. 구례군은 19억여 원을 들여 봉덕정 목조 건물을 보수하고, 사로를 확장하려는 이 공사는 전국대회를 치르기에는 국궁장 사로가 비좁다는 민원을 구례군이 수용하면서 시작됐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단 한 차례도 묻거나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공사는 산지 전용 허가를 받지 않아 「산지관리법」을 위반하였고, 군 계획시설인 봉덕정에 대한 공사를 진행하면서 「국토의계획및이용에관한법률」에 의한 실시계획 인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봉성산에서 파낸 흙을 ‘구례 골프 연습장 예정지’ 복토작업에 사용하였으며 이 또한 허가 없이 진행한 일이었습니다. 불법적 행위에 대한 문제제기에 김순호 구례군수는 유시문 구례군의회의장, 봉성산훼손비상대책위와 ‘안전한 봉성산 조성을 위한 합의문’(2022년 2월 7일 작성하여 2월 11일 서명)에 서명하였고, 김순호 구례군수의 공식 사과(2022년 1월 28일 봉남리마을회관에서 방송)도 있었습니다. 훼손된 봉성산의 원상복구를 위한 구례군민들의 노력은 원만하게 진행되는 듯 하였습니다. 그런데 5월 16일 종합민원과가 승인한 ‘봉덕정 정비공사 복구계획’은 ‘안전한 봉성산 조성을 위한 합의문’에서 명문화한 ‘원상복구, 3과녁 유지 등에 정면 배치’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봉덕정 정비공사 복구계획’은 불법 훼손된 지역에 대한 복구계획만이 아니라 훼손되지 않은 지역까지 복구계획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헌법」 제37조 제2항,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됩니다. 복구는 형질변경, 훼손된 지역에 대한 재해예방, 산지의 형질 보존 등의 계획이므로 ‘봉덕정 정비공사 복구계획’ 대상지역은 훼손된 지역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종합민원과는 복구의 범위를 과잉으로 확장하여, 공사하지 않아도 될 지역까지 공사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명백히 「헌법」에 위배된 사항으로 ‘봉덕정 정비공사 복구계획’에 관여한 이광동 군수권한대행 등은 「헌법」에 명시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한 것입니다. 또한 전문가(박석곤 순천대 교수, 정태준 모두를위한생태연구소 소장)들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봉덕정 정비공사’ 중 훼손되지 않은 지역의 평균경사도는 35.2도입니다. 「산지관리법」 제18조(산지전용허가기준 등) 제5항, 시행령 제20조(산지전용허가기준 등) 제6항 ‘별표 4 중 2. 산지전용면적에 따라 적용되는 허가기준’에 의하면 ‘660제곱미터 이상의 산지의 경우, 전용하려는 산지의 평균경사도가 25도 이하일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구례군계획조례」 제19조(개발행위허가의 기준) 제1항 제2호에 의하면 ‘경사도가 20도 미만인 토지. 다만, 경사도가 20도 이상 25도 미만인 토지에 대하여는 군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허가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산지관리법」과 「구례군계획조례」는 경사도 25도 이상이면 개발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입니다. ‘봉덕정 정비공사’ 중 이미 훼손된 지역도, 훼손되지 않고 남은 지역과 비슷한 경사도였다는 것은 구례군이 2021년 12월 배포한 ‘봉덕정 정비공사’ 유인물 중 위치도, 현장사진, 공사계획평면도 등을 확인하면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봉덕정 정비공사 복구계획’은 「산지관리법」, 「구례군계획조례」의 경사도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리산사람들은 관련증거자료로 구례군에서 배포한 ‘봉덕정 정비공사’ 설명 유인물 (2021년 12월), 봉성산 훼손 현장 사진 (2021년 12월 촬영), 봉성산훼손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자료 (2021년 12월 30일), 봉성산훼손비상대책위원회가 구례군에 보낸 공문, 구례군에서 봉성산훼손비상대책위원회에 보낸 공문, 전문가 현장 방문 후 자문결과 (2022년 1월 10일 진행), 안전한 봉성산 조성을 위한 합의문 (2022년 2월 7일 작성하여 2월 11일 전체 서명), 전문가 자문회의(2022년 2월 15일) 후 오점곤 산림기술사 의견서, ‘봉덕정 정비공사’를 추진하고 진행한 전 과정에서 확인된 불법행위와 불법행위를 무마하려는 시도에 대한 고발장,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구례군지부가 발표한 ‘봉덕정 복구계획 승인 촉구 성명문’, ‘봉덕정 정비공사’ 중 훼손되지 않은 지역의 평균경사도 측정결과 (2022년 5월 22일, 25일 측정), 경사도 관련 「산지관리법」, 「구례군계획조례」 등 관련 조항, 봉성산훼손비상대책위원회 활동경과 등을 제출했습니다.
    • 우리마을
    • 구례
    2022-06-20
  • 지리산사람들 고유제에 초대합니다
    초대장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이하 지리산사람들)이 봉서리로 이사하였습니다. 하늘과 땅, 이웃에 지리산사람들의 움직임을 알리는 고유제를 합니다. 오셔서 축하해주세요. 언제 : 2022년 4월 14일 (목) 낮 5시 오실 곳 : 구례읍 봉서산정길 61-3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윤주옥 010-4686-6547 / 이창수 010-2963-4595 지리산사람들은 화장지, 화분 등 모든 걸 가지고 있습니다. 빈손으로 오시는 게 가장 큰 선물입니다. 고유제 후, 저녁 6시부터 <기획강좌-미얀마의 저항, 우리의 교감>과 박두규 시인의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躁鬱)의 시간 속에서』 출판기념회가 있습니다.
    • 지리산사람들
    • 공지사항.알림
    2022-04-07
  • 미얀마의 저항, 우리의 교감
    기획강좌 [저항과교감]-1 미얀마의 저항, 우리의 교감 4월 14일 (목) 17시 ~ 20시 30분 구례읍 봉서리 963-1 1부.고유제 (17시) “지리산사람들이 이곳 봉서리로 이사왔습니다” 흩어져서 요기하기 2부.에에띤(AYE AYE THIN)과의 대화 (18시) ‘미얀마의 저항, 우리의 교감’ 3부박두규 시인의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躁鬱)의 시간 속에서』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 참가비는 없습니다. “십시일반”합니다. - 에에띤은 미얀마 양곤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 부교수였으나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으로 해직되었습니다, - 기획강좌 “저항과교감”은 잘못된 것(힘)에 굴복하여 따르지 않고 거역하거나 버티는 사람들, 인간중심적 질서에 시위하는 비인간 생명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 시간입니다.
    • 지리산사람들
    • 공지사항.알림
    2022-04-04
  • 봉서리 사무실(봉서산정길 61-3)의 이름을 공모합니다
    4월 1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이하 지리산사람들)은 봉성산 아래 봉서리(봉서산정길 61-3)로 이사했습니다. 짐을 싸고, 옮기고, 정리하는 일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번 이사는 지리산사람들이 지리산자락으로 내려온 후 4번째 이사입니다. 봉남리에 창립준비위원회 사무실을 열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리저리 다니면서, 짐을 싸고, 옮기고, 정리하는 일은 늘 주변 분들의 손발과 시간, 마음이 움직였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때도 고마웠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이 봉서리로 사무실을 정한 것은, 국립공원과 지리산, 섬진강 보전 활동의 끈을 놓지 않되, 땅과 생명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끼고, 삶과 사람에 밀착된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봉서리 사무실은 나서자마자 이웃의 돌담과 400년 된 감나무가 보이고, 한 걸음 옮기면 논밭과 봉성산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산책 삼아 한겨레공원을 돌아볼 수 있고,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과 하늘을 나는 새들을 만날 수 있으며, 운이 좋은 날엔 고라니가 뛰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지리산사람들에게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욕심내지 말고, 숨 쉬고, 돌아보며 나아갈 생각입니다. 서두르지 않겠지만 자연의 아픔과 세상의 분노에 저항하며 마음을 모으겠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뜻, 행동이 모아질 봉서리 사무실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봉서리 사무실 이름 보내실 곳 : 윤주옥 010-4686-6547 봉서리 사무실 이름 결정하는 날 : 2022년 4월 14일(목) 낮 5시, <기획강좌 저항과교감-1>에 온 분들과 함께 봉서리 사무실 이름을 지어준 분에게 드리는 선물 : 상상 이상의 그 무엇
    • 지리산사람들
    • 공지사항.알림
    2022-04-02
  • 4월 1일은 “지리산사람들” 이삿날입니다. 모여주세요.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포위했던 지난 2년, 만남과 환대를 절제했던 지리산사람들이 밖으로 나섭니다. 밖을 나서니 땅에 접해서는 봄까치꽃과 광대나물이, 눈높이엔 매화와 산수유나무가 꽃을 피웠네요. 서시천엔 흑두루미가 내려앉아 먹이활동을 하고 있고, 덤불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나뭇가지엔 딱새가, 저 높이 하늘에는 말똥가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갑니다. 2007년 지리산자락에 터를 잡은 지리산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형편에 맞게, 적당한 곳에 사무실을 뒀습니다. 올해, 지리산사람들은 머물 곳으로 봉서리를 택했습니다. 봉서리에는 봉성산과 갈미봉, 봉서제와 오동제, 동산제(이상 저수지), 산정천, 섬진강 등이 있고, 봉서리 산정 보호수(감나무), 봉서리 보호수(느티나무), 봉서리 동산 보호수(느티나무), 봉서리 당산나무(느티나무) 등 마을을 지키는 큰 나무들이 있습니다. 봉서리는 구례읍이지만 도시화되지 않아 논밭이 많고, 나름의 특색을 가진 봉서마을, 산수동마을, 동산마을, 산정마을, 오봉마을, 양정마을 등에 약 1600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봉서리에는 한겨레평화공원이 있고, 느긋한쌀빵, 봉서리책방, 지리산게더링이 있어 좀 다른 방식의 삶을 꿈꾸며,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4월 1일은 지리산사람들이 꿈을 꾸며 사람을 만나고, 자연 안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될 봉서리로 이사하는 날입니다. 이삿날(4월1일)에는 손발이 많아야 기운이 납니다. 작게 크게 도움 줄 분들 모두 모여주세요. 이사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됩니다. - 지금 사무실로 오실 분 : 구례읍 봉성로 9-5 - 봉서리 사무실로 오실 분 : 구례읍 봉서리 963-1 102호 - 이사날 연락할 곳 : 유현숙 010-2857-3608, 윤주옥 010-4686-6547 4월 1일 지리산사람들이 봉서리로 이사하는 날, 봉성산은 벚꽃을 활짝 피워 지리산사람들을 반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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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사항.알림
    2022-03-15
  • 2022년에도 지리산사람들과 함께해요
    2022년 지리산사람들은 회원님과 함께 지리산을 걷고 섬진강에 나갑니다. 지리산의 나무와 풀을 만나고, 지리산자락 함양의 산과 강을 걸어볼 생각입니다. 특별하고, 풍요로운 자리에 회원님을 초대합니다. 늘지새강 지속가능한 착한 여행 프로젝트 2022 ‘늘 지리산에서, 새롭게 섬진강으로’ 매월 둘째 주 금요일(지리산에서), 토요일(섬진강으로), 지리산이 잘 보전되고, 섬진강이 생명의 강으로 되살아나길 원하는 마음들이 모아집니다. 3월엔 11일(금) 화엄사~노고단. 12일(토) 사포마을~상위마을~현천마을 윤주옥 010-4686-6547 궁금해함양산 2022년은 함양 발견의 해 ‘궁금해? 함양산!’ 매월 네 번째 토요일엔 지리산, 덕유산, 백두대간 등 함양의 산들을 만납니다. 3월엔 26일(토) 영취산~깃대봉~육십령 이영애 010-6320-6912 / 신강 010-4029-5910 목동반 매월 마지막 목요일엔 지리산계곡으로 나무와 풀을 만나러 갑니다. 3월엔 31일(목) 대성골(의신옛길) 못난이 010-2693-4595 / 윤주옥 010-4686-6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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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2
  • 2022년에는 소박하게, 좀더 평화롭게!
    2022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이하 지리산사람들) 회원모두모임은 2022년 2월 19일(토) 낮3시부터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회원총수 314명 중 71명이 참석(줌회의 17명, 위임 54명)하여 2021년 활동보고와 결산안, 감사보고서를 공유하였습니다. ‘2021년 지리산사람들의 활동과 회계에 대한 감사보고’를 통해 오정화 감사와 이순규 감사는 ‘코로나19의 변이가 더욱 세력을 확장하는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지리산사람들의 활동과 사업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으며, 회계는 수입과 지출이 적법하게 사용되었음을 확인했다. 다만, 활동가의 인건비에 대한 예산 배정이 필요하다고 권고’하였습니다. 안건 심의에서는 첫 번째 안건 ‘2021년 사업결과와 결산안’을 심의한 결과, 원안 의결하였고, 두 번째 안건 ‘제8기 임원진 변경안’과 관련해서는 조성천 대표가 서울로 올라가 실질적인 활동이 어렵고, 고영석, 배혜원, 조아라 이상 3명은 개인 사정으로 운영위원 활동을 중지하며, 소은숙, 최상두 회원을 운영위원으로 추가 선임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세 번째 안건 ‘2022년 사업계획안’은 원안 의결되었습니다. 안건심의 후 용방생태통로에 식생복구가 필요한 게 아닌지 관련기관에 확인했으면 한다(장연환 회원),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활동 공유(최지한), 시집 『은목서 피고 지는 조율의 시간 속에서』발간 알림(박두규), 인터넷신문 지리산인 회원가입 권유(김인호), 사무실 이사 계획 공유(윤주옥), 목동반 활동 안내(이창수) 등의 제안과 공지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로 대면 회의는 못하였지만, 참석한 회원들 각자의 이름과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등을 나누는 따뜻한 회원모두모임이었습니다. 4월 초에 사무실을 이사한 후에는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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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사람들 활동이야기
    2022-03-02
  • 지리산사람들 2022년 사업계획과예산안
    회원님께 입춘이 지났습니다. 사무실로 오는 길의 매화는.. 곧 피어날 기세입니다. 별일 없으시죠? 2022년 2월 19일 심의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의 2022년 사업계획과예산안 공유합니다. 살펴보고, 수정이 필요하거나, 첨삭되어야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늘 감사드립니다. 전화 : 061-783-6547 이메일 : jirisanp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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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사항.알림
    202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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