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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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지방이라면 소멸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지방이라면 소멸하지 않을 겁니다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아버지가 젊은 날 북파공작원 훈련을 받다가 부상을 입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그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 입대를 준비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오래 묵혀둔 상처를 들춰내는 걸 원치 않았지만, 이걸 다큐로 만들면 '대박 나겠다' 싶은 마음에 아버지를 카메라 앞으로 끌어냈다. 아버지가 북파공작원으로 보상을 받게 되면 군 면제가 될 거란 이야기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 감독 지망생으로서 이런 '대박 아이템'으로 졸업작품을 만들면 각종 영화제에서 이름을 떨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지리산 산골에서 자라서, 고3 때 자전거로 66일간 북미 종주 여행을 하고, 한예종에 입학하고, 레바논 파병부대에 자원해서 군 복무를 하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종횡무진하던 시절, 그의 삶의 가장 큰 목표는 사회적 인정과 명성이었다.이제 서른 살이 된 그는 전혀 다른 삶을 꿈꾼다. 그는 지금 <지리산필름>의 대표로 고향인 화개에 머물며 <월간 하동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동네 사람들의 삶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지리산 산악열차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운동에 앞장서고, 자연과 동물과 사람이 모두 존중받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캠프 '지리산게더링'을 연다.3년 전, 고향 화개로 돌아온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어린 시절 지리산과 섬진강의 품에서 자라면서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도시 생활에 지쳐 돌아온 그에게 새롭게 다가온 이유는 뭘까? 지난 17일, <지리산필름> 대표 배혜원 감독(30)을 만나러 경남 하동으로 찾아간 날, 기습적인 한파로 칼바람이 불고 눈발이 회오리쳤다. 빼꼼히 봉오리를 틔우기 시작한 매화꽃을 시샘하듯 날카로운 추위였다. ▲ <지리산필름> 대표 배혜원씨가 주변 산세와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진순 와글 이사장 ⓒ 와글 지리산에서 영화 찍는 청년, '감자''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대책위' 사무실로 쓰는 하동의 한 공방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물을 끓여 하동 녹차를 우려냈다. 따뜻한 찻물이 들어가면서 방안의 냉기도, 어색함도 조금씩 누그러들었다. - 지리산필름 대표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신데 제가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까요? 대표님? 감독님?"저는 그런 호칭이 불편해서요, 그냥 이름으로 부르시든가... 별명이 있는데 '감자'라고 부르셔도 되고요."- 왜 감자예요?"감자같이 생겨서요. (웃음). 그렇게 불리고 보니, 감자가 저장도 오래 되고 그 자체로 씨앗이자 열매이자 뿌리인 거예요. 저는 이 별명이 맘에 들어요." ▲ 배혜원은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지리산 산악열차 오지마’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는 곳은 그들의 대책위 사무실로 쓰고 있는 마을 공방이다. ⓒ 와글 - 여기서 사신 지는 얼마나 되었어요?"제가 4살 때 부모님이 화개로 이사 오셨어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요양차 쉴 곳이 없나 찾다가 이쪽까지 오게 되셨다고 하더라고요. 전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여기서 다니고 고등학교는 진주에서, 대학은 서울에서 다니느라 집을 떠나 있었죠. 다시 들어온 건 2018년입니다." ▲ 한 학년 24명이 졸업할 때까지 한 반이던 화개초등학교 시절 배혜원. 지리산 계곡에서 올챙이 잡고 앵두를 따 먹으며 뛰어놀았다. ⓒ 배혜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치고 진주의 신흥 명문인 사립고등학교로 유학을 갔다. 아버지는 건설직 일용노동자로 일하고 어머니는 차밭을 일궈 생활하느라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부모님은 두 아들의 공부 뒷바라지에 헌신적이었다. 부모님의 기대대로 여섯 살 위 형은 육사에, 혜원은 한예종에 입학했다.-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셨겠어요. 원래 착실한 학생이었나요?"고등학교 생활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어요. 아침 7시반에 학교 종이 땡 치고 나면 선생님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나와 지각생들을 엎드려 뻗쳐 시키고 팼어요. 방학도 없이 밤 10시까지 야자(야간자율학습)하고. 어른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 못가면 큰일 난다고, 인간으로 대접받으려면 공부하는 일밖에 없다고 하셨죠. 감수성이 예민할 때였는데 사물놀이 동아리 선배들하고 고2 여름 방학때 해남 땅끝마을까지 자전거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 기억이 너무 좋아서 그해 겨울 방학때는 하숙집 보증금을 빼서 캐나다로 갔죠. 밴쿠버에서 멕시코까지 자전거로 3000킬로를 달렸어요."-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대륙종단 자전거 여행을 했다고요? 고3 올라가는 방학에?"운이 좋았어요. 66일 걸렸는데 자전거 펑크도 한 번밖에 안 났고요. 고3, 4월에 돌아왔는데 하숙할 돈이 없어서 진주지역 사물놀이 동아리방에서 숙식을 했어요. 그때 형들이랑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가 <똥파리>(양익준 감독)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피 철철 흐르는 아픈 상처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때가 고3, 6월이었는데 그때까진 전 한예종이 어딘지도 몰랐어요(웃음). 마이클 무어 감독 다큐를 불법 다운로드해 보면서 '다큐멘터리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구나' 생각했죠. 그때부터 다큐 감독이 되겠다 마음먹었어요."내 인생의 '테크트리'로 성공을 꿈꾸던 시절2010년 배혜원은 한예종에 입학했고 인생의 은사인 김동원 감독을 만났다. <상계동 올림픽>(1988) <송환>(2004) 등 사회적 메시지가 뚜렷한 다큐를 내고 해외영화제에서도 인정받는 선생님처럼 그도 '거장'이 되고 싶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자연다큐팀에 합류해서 현장감독으로, 조연출로 경력을 쌓아갔다. 군대도 레바논에 파병 지원을 해서 다녀왔다. ▲ 한예종 재학시절 배혜원 ⓒ 배혜원 - 20대 초반까지 삶만으로도 드라마가 몇 편 나오겠어요. 포레스트 검프 같아요(웃음)."그 무렵에 '테크트리'(Tech-tree)라는 용어가 많이 쓰였는데, '어떻게 삶을 사느냐에 따라 자기 진로가 탄탄대로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초반 '빌드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갈린다고, '초등학생 때 선행학습 얼마를 하면 어느 대학에 무난히 간다', 이런 게 테크트리를 잘 만드는 거죠. 군대도 그런 게 있었어요. 스무 살이 되고부터 군대를 언제 어디로 갈까, 진로설계에 노심초사했어요."- 그래서 계획대로 되었나요?"레바논에서 돌아왔을 때는 수중에 돈도 좀 있고 해서 한 달에 50만 원 받고 자연다큐하는 팀에 들어가 7개월간 일했어요. 어린 나이에 그런 경험을 해두면 남들보다 선택지가 넓어질 거라 생각했죠. 제 졸업작품도 그 무렵부터 준비했는데, 주변에서 '아이템이 좋다'고들 하니까 잘하면 크게 될 줄 알았죠. 아버지는 옛날 일을 다시 들추는 걸 싫어하셨는데 주말마다 지리산에 와서 아버지를 '취조'했어요. 아버지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면서 싸우다가 같이 술 먹고 울다가 '아이고 아버지, 이거 얘기해 주셔야 내가 성공합니다' 하고..."- 아버지가 얘기해야 제가 성공합니다. 빨리 상처를 드러내 주세요!"(웃음) 맞아요."아들의 성화에 아버지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북파공작원 훈련을 받던 중 잠수훈련을 하다가 고막이 터졌는데 고막에서 피가 흐르는 그에게 뭇매가 쏟아졌다고 했다. 그 훈련 끝나고 외박을 나간 뒤에 복귀를 안 해서 탈영자 신분이 되었고, 어떤 보상도 못 받은 채 지금까지 입 다물고 살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졸업작품은 대박이 났나요?"아뇨. 그 영화로 잘 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커서 그랬을까, 조급한 마음에 편집작업을 제대로 할 엄두가 안 났어요. 나중에 '특수임무 수행자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조사관이 나와서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데 그걸 통째로 찍어서 원씬 원컷으로 내놓았죠. 졸업작품 상영회 이후에는 한 번도 어디서 틀어본 적이 없어요(웃음)."- 아버지는 뭐라세요?"아버지도 보다 주무시더라고요(웃음)."- 실망이 컸겠어요."뭘 하든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욕구가 되게 강했어요. 지금은 인정욕구에 대한 거부감이 있죠. 그게 사람을 들뜨고 조급하게 하니까요. 자연다큐 하면서도 회의감이 많았어요. 자연다큐도 알고 보면 연출이 들어가거든요. 제가 했던 작업 중에 개구리를 잡아먹는 곤충이 있었는데, 개구리를 잡아먹는 장면을 찍으려고 개구리를 패대기쳐서 주거나 냉동실에 얼렸다가 주고, 올빼미가 쥐를 잡아먹는 장면을 찍을 때는 쥐를 생포해서 카메라 앞에 묶어놓기도 하고..."- 그렇게 찍는군요."'이런 건 조연출이 하는 거지', '나는 못하겠으니 네가 해라' 그런 얘길 많이 들었어요. 그 무렵에 이한빛 피디 사망사건이 있었는데 그분의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가요. 자연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구실로 생명을 미끼 삼아서 그림을 만드는 것, 제가 아버지 이야기를 찍은 것도 사실 마찬가지죠.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취지로 아버지의 상처를 후벼 파서 착취하고 상품으로 만들려는 욕망을 앞세웠던 것. 그런 폭력적 작업을 멋도 모르고 해버린 거예요."어느 순간, 다큐 작업에 대한 회의가 물밀 듯이 몰려왔다. 다시는 영상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제주도로 훌쩍 내려갔다. 2017년 9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제주에서 목수 일을 하면서 지냈다. ▲ 2017년 가을, 영상작업을 생업으로 삼지 않겠다 다짐하고 제주도로 내려가 목수 일을 하며 지냈다. ⓒ 배혜원 목수는 적성에도 맞고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비 오는 날엔 일이 없다. 이래저래 공치는 날이 많았다. 마침 친구가 영상 제작지원금을 받을 수 있겠다면서 작업 제안을 해왔다. 목수 일이 없는 날, 카메라를 들고 나가 찍었다. 표류문학의 산실인 제주에서 각기 다른 시기를 산 세 남자의 인생 표류기를 담았다. 조선시대 <표해록>을 쓴 제주 선비 장한철, 제주에 사는 조작간첩 피해자 강광보, 그리고 동남아와 서울을 거쳐 제주까지 오게 된 모로코인 오마르의 이야기를 한데 엮어 <표해록>이란 다큐멘터리로 내놓았다. 2019년 각종 영화제에서 상영이 되었고 최근엔 배급사가 나서서 해외시장에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네요. 영상을 안 하겠다고 제주에 내려갔는데 그때 만든 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전에 꿈꾸던 걸 이루었어요(웃음)."맞아요. 영화에 대한 이메일이 들어오는 게 저도 신기해요."- 그래서 이제 다시 영상작업을 해도 되겠다 생각하셨나요?"영상작업을 하더라도 생업으로 삼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생업으로 하면 뭐가 문젠데요?"안 해도 될 일을 하게 되고 피사체를 괴롭히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걸 내가 밥 먹는 수단으로 삼으면 안 되겠다 생각해요."배혜원의 리틀 포레스트2018년 11월 제주를 떠나 화개로 돌아왔다. 부모님이 겨울에 석 달간 여행을 떠나신다며 "와서 집 좀 보고 개 밥 좀 줘라" 하시길래 "알겠습니다"하고 들어왔을 뿐, 처음부터 길게 눌러살 작정은 아니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이름도 혜원인 것 아시죠(웃음)? 배혜원의 리틀 포레스트, 오랜만에 고향 집에 돌아와 지내는 시간은 어땠어요?"그때의 경험이 제겐 참 특별했던 게, 새삼 '내 삶이 나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성공하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고... 그동안엔 왜 그렇게 다른 사람 시선 속에서 내 입지를 갖고 싶어 애썼을까 싶더라고요. 석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해도 예전처럼 초조하지 않았어요."- 뭐가 그렇게 사람을 변화시킨 걸까요?"그제서야 지리산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집 앞에서 황장산이 마주 보이는데 아침마다 그 산을 보면 마음이 녹더라고요. 그 전에는 한없이 벗어나고 싶은 곳, 성공하려면 벗어나야 하는 곳이었는데, 집에 와서 석 달을 보내다 보니, 산과 자연이 저한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어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너의 속도대로 살라'고. 그 기억이 참 편안하고 좋았어요."지리산 넓은 자락에 조바심과 초조함을 내려놓을 줄 알게 될 무렵, 청천벽력 같은 일이 터졌다. 부모님이 여행에서 돌아오신 며칠 뒤, 동네에 양수댐을 짓는다고 사업설명회를 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주민들과 사전 협의도 없는 일방적 통보였다. 부모님은 "여기가 수몰지역이 될지도 모른다는구나"하며 한숨을 내쉬셨다. 이제사 고향 땅에 정을 붙이게 되었는데 그걸 빼앗길지도 모른다니 황망했다.주민들과 열흘 동안 밤마다 모여 회의를 했다. <하동군 양수발전소 유치 반대대책위>를 결성하고 배혜원이 사무국장을 맡았다. 주민들이 한목소리로 강력히 항의하고 나선 덕에 다행히 발전소 계획은 철회되었다. 배혜원이 "내 삶은 이 일을 계기로 전과 후로 나뉘게 되었다"고 할만큼 그의 인생에선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 양수발전소 반대운동을 하면서 그는 다큐제작자로서 할 일을 새삼 깨달았다. 그 이후로 하동사람들을 찍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왼쪽이 배혜원 ⓒ 배혜원 지리산 산악열차를 반대하는 이유-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그때부턴가요?"지리산을 몰랐다가 뒤늦게 '내가 쉴 수 있는 곳'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곳'이란 걸 깨닫게 되었는데 그런 개발 바람이 들이닥치는 걸 보면서 '더는 도망갈 데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수발전소가 입지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물 좋고 산 좋은 곳이에요. 거기서 평안히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역풍을 맞은 거죠. 전지구적으로 이제 오지란 존재하지 않고 내가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곳이 없겠구나 싶어요. 마치 좀비세상에서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 성채를 쌓아가고 있는데 좀비들이 사방에서 성채를 공격하는 느낌이랄까."- 지금 하동군과 기획재정부는 지리산 형제봉 일대에 산악열차와 모노레일,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이른바 '하동 알프스계획'을 추진 중이죠. 양수댐과 달리 이 사안은 주민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려서 쉽지 않을 텐데요."답답하죠.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케이블카 놓고 표 얻는 데만 관심 가지니... 사회의 근본적 욕망이 변화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대안이 될 수 없단 생각이 들어요. 내가 이장이 되면 마을을 바꿀 수 있을까 싶어 이장선거에 나가기도 했는데."- 그래요?"떨어지고 대신 반장이 되었어요(웃음)."- 산악열차를 찬성하는 측에선 지역경제 활성화를 들고 나오는데 반대대책위에서는 반달곰 서식지를 파괴한다는 얘기를 해요. 그렇게 해서 대화와 설득이 될까요? 산악열차 반대는 사람을 위한 겁니까?"결론적으로 사람을 위한 거죠. 아인슈타인이 한 말 중에 '문제를 초래한 방식으로는 결코 그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관광객이 없으면 오게 하고 돈이 없으면 돈을 벌게 하고 에너지가 부족하면 에너지를 만드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 못 해요. 공기나 햇빛을 무상으로 가져다가 돈으로 바꿀 수 있으면 뭐든 다 한다는 사고방식 때문에 코로나나 기후위기가 닥치는 건데, 언제까지 그 방식을 고집할 건가요?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화해선 안 돼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연결감'이잖아요. 내가 이 사람이랑 인맥을 만들어 뭘 얻어야지 하는 수단으로 삼는 게 아니라, 같이 있으면 왠지 편하고 즐겁고 좋은 것, 사람하고도 자연하고도 그런 연결감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죠."- 그게 현실에서 가능할까요?"일본 아소산 기슭에 '표주박시장'이란 곳이 있어요. 텐트랑 밥그릇만 가지고 가면 전기 안 쓰고 화석연료 안 쓰고 일회용품도 거의 안 쓰면서 캠핑을 해요. 때때로 장을 열어서 돈을 쓰지 않고 서로 필요한 물건을 맞바꾸는 데 그걸 표주박시장이라고 하죠. 같이 밥 해 먹으면서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하고 영화하는 사람은 영화 틀고..."- 지역의 청년들이 빠져나가서 지방소멸론이 대두하고 있는데, 요즘 청년들은 스타벅스나 멀티플렉스가 없으면 잡아두기 어렵다는 말이 있어요."스타벅스나 멀티플렉스가 필요 없는 문화를 만들 수 있어요. 표주박시장에 일주일 정도 머물다 왔는데, 그런 식으로 해서 잃어버린 사람들 사이의 연결감, 자연과의 연결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지역을 위해서도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죠. 그런 생각으로 친구들이랑 지난 9월에 '지리산게더링'이란 걸 한 달 동안 해 봤어요."알음알음으로 생태주의 취지에 공감하는 '대안판' 젊은이들이 모였다. 적을 땐 1~2명, 많을 땐 20~30명이 모여서 토론하고 먹고 노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올해부터는 구례에 있는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의 평화공원에 땅을 빌어서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도 짓고 청년들이 언제라도 머물 수 있는 농막을 지어, 비거니즘과 생태운동 공동체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협의 중이다. ▲ 지난 9~10월 지리산게더링. 가운데 모자 쓴 이가 배혜원 ⓒ 배혜원 - 정말 아름다운 생각이긴 한데... 그렇게 해서 세상이 바뀔까요?"요즘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 스스로 바뀌는 게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제 안에서 생긴 변화가 어떤 나비효과가 돼서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면 그게 세상을 바꾸는 것 아닐까요? 제가 좋아하는 김동원 감독님이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하셨는데, 영화를 만드는 저 자신이 바뀌는 게 정말 중요한 변화의 출발이라고 생각해요."유명한 다큐감독이 되어서 인기와 명성을 누리며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소년은 이제 스스로를 바꾸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의 작지만 위대한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그는 지금 그 누구보다 더 큰 변화, 더 근본적인 혁명을 꿈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진순씨는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으로, 와글 간행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인터뷰집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의 저자입니다. #배혜원 #이진순 #지리산게더링 #지리산필름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
    •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사람들 활동이야기
    2021-08-29
  • 종이신문에서 인터넷신문으로
    종이신문에서 인터넷신문으로 지리산인에 대한 애틋함과 기대가 오간 시간, <지리산인과의 대화> 2010년 봄부터 준비한 ‘지리산인’이 4면 타블로이드판 종이신문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날은 2010년 11월 15일입니다. 지리산인 제호를 써준 박태후 화백, 글을 보내준 김광철 님, 신연숙 님, 조태용 님, 이성아 님, 진재선 님, 그 글들을 모아서 교정교열한 편집위원들, 디자인과 인쇄를 해준 열린컴, 그리고 발송과 배포작업을 했던 지리산사람들 활동가들, 모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12년이 되었습니다. 12년 동안 지리산자락의 일들을 글과 사진, 그림으로 전한 모든 분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4면에서 시작하여 2012년 봄호부터는 8면으로, 그리고 2016년 가을호부터는 12면으로, 할 얘기는 많은데 지면이 부족한 때도 있었고, 지면을 채우는 일이 버겁게 다가온 때도 있었습니다. 원고료 없이 청탁하는 일이 쉽지 않았고, 발송 작업을 할 사람이 없어 간사 혼자 하루 내내 봉투 작업을 해야 할 날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지난 12년 동안 여러 부침이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만큼 12년 동안 끈을 놓지 않고 만들어낸 것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지리산인은 지리산자락에서 생명평화적 삶을 실천하는 김석봉 님(환경운동연합 전 대표), 도법 스님, 성염 전 대사, 임봉재 님(한국가톨릭농민회 전 회장), 한성수 님(하늘씨앗교회 목사) 등 다섯 분이 자문위원입니다. 자문위원님들은 매호마다 ‘지리산인의 생각’을 써주셨습니다. 이호신 화백이 보낸 지리산과 그 자락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지리산인의 품격을 높였다고 생각됩니다. ‘지리산자락 사람들’과 ‘지리산 생태이야기’, ‘꿈을 찾는 농부들’, ‘산청의 젊은이를 만나다’, ‘지리산자락의 시인과 시’, ‘백세시대 건강 칼럼’ 등은 기획하고 글을 쓴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꼭지였습니다. 구례, 남원, 산청, 하동, 함양 등 지리산권 5개 시․군의 지면을 담당하는 편집위원들은 바쁜 중에도 지역현안과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지리산인은 지리산을 겨냥한 대규모 개발사업, 지리산자락에서 벌어진 아픔과 함께 하였습니다. 지리산 케이블카, 지리산 산악열차, 섬진강 수해, 성삼재․정령치도로 등에서 돈과 성장만을 중시하는, 그리하여 결국 우리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드는 자본주의문명의 한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리산인 편집위원회는 “지리산인의 인터넷신문 전환”에 대해 어떤 방식과 과정을 거쳐야할지 관심 있는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결정한 후, 코로나19로 모두가 함께 모일 수 없다면, 지리산권 5개 시군별로 지역별 간담회를 하자고 이야기되었습니다. 하여 지난 6월과 7월, 지리산인은 인터넷신문으로 재창간되는 지리산인에 대해 알리고, 지역별 활동그룹을 만들어내기 위해 산청, 구례, 하동, 함양 등에서 지역별 간담회 <지리산인과의 대화>를 진행했습니다. 남원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고, 동선이 겹치는 분들이 있어 상황이 진정될 때 다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지리산인과의 대화>는 지난 12년 동안 함께 했던 분들을 만나 감사인사를 드리고, 인터넷신문 지리산인과 함께해 줄 분들을 찾고, 인터넷으로 확장된 지리산인을 위한 소재를 발굴하고, 지역에서 발간되는 신문들과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산청모임은 6월 1일 남사예담촌에 있는 ‘지금이꽃자리’(이호신 화백 집)에서, 구례모임은 6월 8일 ‘느긋한 쌀빵’ 2층에서, 하동모임은 7월 4일 하동참여자치연대 사무실에서, 함양모임은 7월 5일 창원마을 김석봉 님 댁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2년 전에 함께 시작했던 분들은 마음은 그대로인데, 흰머리와 주름은 늘었다고, 컴퓨터에 앉아 글을 쓰는 일도 쉽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지리산인과 만났던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다고, 그 꿈이 지금도 우리를 숨 쉬게 하고, 가슴 뛰게 한다고, 어떤 방식으로든 인터넷신문 지리산인에도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이호신 화백님은 지리산인 재창간에 맞춰 지리산자락을 다시 그리고, 그 그림을 2개월에 한 번씩 보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구례에서 발간되는 <봉성신문>, 하동에서 발간 준비 중인 <오하동 하동주민신문> 편집위원들과의 만남은 제대로 된 지역신문에 대한 절실함이, 어떻게 하면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여러 분들이 읽을 수 있는 신문으로 지속적으로 발간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협력하자고 이야기되었습니다. 4개 지역에서 진행된 <지리산인과의 대화>는 인터넷신문 지리산인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인터넷신문 등록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 인터넷으로 공간이 확장되었으니 지리산에 사는 사람들, 지리산에 오려는 사람들이 궁금한 일반적인 정보(성삼재 버스 시간 등)도 공유되었으면 좋겠다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신문 지리산인에 들어올 수 있도록 페이스북 연동, 정기적인 메일링 서비스, 카톡 공유 등도 진행되어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지리산인과의 대화>는 종이신문 마무리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공유하고, 고민하고, 제안하고 격려하는 자리였습니다.
    •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사람들 활동이야기
    2021-08-26
  • 목동반에 함께 할 분을 모십니다
    목동반에 함께 할 분을 모십니다 목동반은 매주 목요일 나무와 풀을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왜 목동이냐? 이건, 알아서 해석하세요.^^ 목동반은 매주 목요일, 각자가 위치한 그곳에서 나무와 풀을 공부합니다. 목요일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나무, 풀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자는 의미입니다. 공부하다가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봅니다. 누구에게? 못난이와 할미꽃에게^^ 목동반은 한달 한번, 목요일에 만나 현장에서 공부합니다. 몇 번째 목요일에 만날지는 목동반에 모인 분들과 의논합니다. 우리가 만날 현장은 지리산국립공원 계곡입니다. 남원을 시작으로 함양, 산청, 하동, 구례.. 이렇게 5개 시군에 있는 계곡을 순환하는 것입니다. 남원 뱀사골, 함양 한신, 산청 거림, 하동 대성골, 구례 피아골.. 이렇게 한 바퀴 돌고, 그 다음엔 남원 구룡, 함양 칠선, 산청 대원사, 하동 의신, 구례 화엄.. 이렇게 한 바퀴 돕니다. 어떤 계곡을 갈지도 목동반에 모인 분들과 의논합니다. 그리고 계곡을 다니며, 주변에 조릿대 상황도 기록해볼까 합니다. 목동반에 함께할 분, 8월 26일까지 연락주세요. 못난이 010-2693-4595 / 윤주옥 010-4686-6547
    • 지리산사람들
    2021-08-16
  • [9월24일~25일]문명의 위기, 멈추어 평화를 나누다
    "문명의 위기, 멈추어 평화를 나누다" 전 세계를 덮치고 있는 이상기후와 코로나19는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의 징후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문명은 바로 우리의 발아래에서 스스로 그 기반을 허물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20세기가 남긴 대립의 상처들로 미래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가로막히고 있습니다. 희망은 생명을 살리는 문명의 전환과 평화를 향한 삶의 새 질서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최: 한겨레통일문화재단 /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후원: 한겨레신문사
    • 우리마을
    2021-08-03
  • 지리산운해 노고단 성삼재
    • 지리산문화
    2021-07-14
  • 지리산을 그리는 화가 이호신
    •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사람들 활동이야기
    2021-07-14
  • 사단법인 숲길로부터 후원증서를 받았습니다
    사단법인 숲길(이하 숲길)은 5월 29일(토) 포아브와 함께 누적 걸음 수에 따라 발생되는 기부금을 지리산사람들에 전달하기 위한 ‘지리산둘레길 봄소풍 걸음 기부 캠페인’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날 한걸음을 걸으면 0.5원씩 후원되는 캠페인에는 지리산둘레길만이 아니라 제주올레길, 북한산둘레길 등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함께 하여 예정시간보다 빨리 후원걸음이 마무리되었습니다. 7월 2일 지리산사람들과 숲길은 지리산둘레길 구례센터에서 만나 후원증서와 감사장을 주고받았습니다. 숲길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지리산은 늘 고마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머무는 지리산을 아끼고, 사랑하고, 보전하는 활동에 앞장서는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에 감사드리며, 이 후원증서와 후원금을 드립니다.’라고 하였고, 지리산사람들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이하 지리산사람들)은 지리산을 보전하고 지리산자락의 평화로운 공동체를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지리산사람들은 <사단법인 숲길>이 추구하는 생명평화 세상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런 만큼 이번 후원금은 지리산사람들의 활동을 존중하고, 연대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리산사람들은 <사단법인 숲길>의 후원금에 감사하며, 첫 마음을 잃지 않고 한걸음 더 내딛겠습니다.’라고 감사인사를 건넸습니다.
    •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사람들 활동이야기
    2021-07-07
  • 지리산방랑단과 함께 하는 기억산책, 지리산자락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4월 1일 함양을 시작으로 남원, 구례(5월), 하동(6월), 산청(7월)을 걷고, 만나고, 바라보고, 느끼고 있는 지리산방랑단의 긴 여정이 7월 25일 산청에서 마무리됩니다. 그간 지리산방랑단은 방랑의 기억들을 모아 절기마다 <지리산방랑단과 함께 하는 기억산책>을 진행하였습니다. 마지막 기억산책이 진행되는 7월 24일, 25일에는 함께 할 분들을 초대합니다. 함께할 분은 사전 신청해주세요. 상글 010-2075-1400
    • 지리산사람들
    • 공지사항.알림
    2021-07-07
  • 300번째 회원님.. 축하합니다
    지리산사람들 회원 수가 300명이 되었습니다 2007년 7월 14일, 지리산자락 구례에 터를 잡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이하 지리산사람들)의 회원 수가 2021년 6월 24일 300명을 되었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은 지난 14년 동안 정부나 지자체, 기업으로부터 단 1원의 지원금도 받지 않고 오직 회원과 지지자들의 후원금만으로 살림을 해왔습니다. 지리산사람들이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현장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회원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지리산사람들은 회원 300명의 지혜를 모아, 지리산을 온전히 지키고, 지리산과 함께 하는 공동체 문화 만들기에 더 노력하겠습니다. 300번째 회원으로 가입한 이○○ 회원님에게는 신입회원에게 보내는 우편물과 함께 반달곰 인형이 배달되었습니다.
    •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사람들 활동이야기
    2021-07-07
  • 지리산국립공원 세석대피소의 전기 인입 계획 중지해야
    <국립공원 대피소의 에너지 전환에 대한 우리의 입장> 지리산국립공원 세석대피소의 전기 인입 계획 중지해야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이하 지리산사람들)은 지리산국립공원 세석대피소에 상전이 올라갈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현장을 확인한 결과, 거림에서 세석대피소 방향으로 굵은 케이블이 올라간 현장을 목격하였고, 그 케이블은 상전이 아니라 공용기지국 설치를 위한 공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지리산사람들은 국립공원 대피소와 대피소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원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는 지리산, 설악산 등에 총 20곳의 대피소가 있고, 그중 15곳은 국립공원공단(이하 공단)이 직영하며, 3곳은 임대, 2곳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립공원 대피소 20곳 중 16곳은 국립공원 용도지구 중 보전의 강도가 가장 높은 자연보존지구에 위치해있으며, 자연보존지구에 설치가능한 공원시설 중 규모가 가장 큰 시설이 대피소이다. 그리고 20곳 중 14곳이 1200m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해있다. 코로나 19로 국립공원 대피소가 폐쇄된 시간, 지리산사람들은 국립공원 대피소를 이용자가 아닌 국립공원과 야생동식물, 사회적 의제인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특히 국립공원 대피소의 에너지원은 어떠한지를 강은미 국회의원의 자료에 기초하여 분석하였다. 국립공원 대피소 중 석유발전을 하는 곳은 장터목대피소, 세석대피소, 치밭목대피소(이상 지리산국립공원), 중청대피소, 소청대피소, 희운각대피소, 양폭발전소(이상 설악산국립공원), 삿갓재대피소 등 8곳이다. 대부분 1400m 이상 자연보존지구, 국립공원특별보호구역에 위치한 이 대피소들은 에너지 사용을 이유로 헬기로 석유를 운송한다. 지리산사람들은 환경부와 공단이 다른 어떤 의제에 우선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환경부와 공단은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실현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현장에서보여줘야 할 것이다. 국립공원 대피소 중 상전이 올라가는 곳은 벽소령대피소, 로터리대피소, 노고단대피소, 피아골대피소, 연하천대피소(이상 지리산국립공원), 수렴동대피소(설악산국립공원), 향적봉대피소(덕유산국립공원), 백운대피소, 도봉대피소(이상 북한산국립공원), 연화봉대피소(소백산국립공원) 등 10곳이다. 석유 발전 대피소만이 아니라, 상전이 올라간 대피소도 국립공원 밖에 있는 석탄발전소,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산꼭대기로 올리기 위하여 전선을 공중, 매립 등의 방법으로 설치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니 상전을 통한 에너지 확보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리산사람들은 공단이 거림~세석구간 공용기지국에서 세석대피소로 상전을 끌어오려고 시도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세석대피소 상전 인입은 2017년에도 문제가 됐던 사안이며, 당시에도 사회적 합의를 진행하지 못해 폐기된 사안이다. 탄소중립이 가장 절실한 지금, 국립공원 대피소로의 상전 인입은 더 이상 거론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지리산사람들은 환경부와 공단이 국립공원 대피소에서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에너지원이 100% 신재생에너지로 전환되도록, 국립공원 대피소의 기능과 운영, 에너지원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진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2021년 7월 7일, 소서에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지리산사람들
    • 지리산 오늘
    • 기후 위기
    2021-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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