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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가을 익어가는 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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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령백로는 보통 음력 8월에 들지만 올해는 7월 25일에 들었습니다. 8월의 시작이 백로인데 7월에 들었으니 빠른 백로입니다.음력 8월은 12지지 중 유酉월로 유는 항아리에서 술 익는 모습을 표현한 겁니다. 7월에 시작한 가을이 8월에 익어가는 거겠지요. 7월 처서에 팬 이삭이 8월 백로에 익기 시작하는 건데요, 그래서 백로가 되서야 늦게 팬 이삭은 쭉정이가 됩니다."백로에 벼 이삭패지 않은 집엔 가지도 말아라" 라는 속담은 얻어먹을 게 없다는 뜻일거구요, 괜히 민폐끼칠 걸 저어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8월의 정점은 추분과 추석입니다. 이 대목에선 진짜 드릴 말이 많으니 그 때 가서 하기로 하고 요번엔 백로에 집중할까 합니다.가을이 무르익는 백로이젠 진짜 본격적인 가을에 들어섰습니다. 새벽엔 이불 덮어야 남은 잠 청할 수 있는 때가 된 것이죠. 찬 기운에 놀라 창문 닫고 겹이불 덮었는데도 이미 깬 잠을 이어가지 못 해 이글을 긁적이고 있네요.그런데도 한 낮은 여름이 아직 남아있어 조심은 해야 합니다.백로에 딱 맞춰 출수를 완료한 벼 이삭의 익어가는 모습은 진짜 그럴듯합니다. 그 거 보고 싶어 눈에 어른 거릴 정도니요.모종하지 않고 씨로 심어 지주 없이도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고추와 가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듬직하기만 합니다. 때를 놓쳐 너무 웃자란 놈을 모종해 기대도 안했던 들깨와 콩들도 고추 가지 못지 않은 기세를 보면 미안키도 하지만 대견한 마음이 크네요. 논 둑에 심은 콩은 자리잡자마자 떡잎만 남기고 과감히 적심해주는데요, 웃자라 이미 떡잎은 대부분 떨어져 어딜 잘라줄지 몰라 물어보는 아내를 저는 그냥 모른 척 하고 말았어요. 아내도 결국 죽거나 말거나 대충 하고 뒤돌아선 모양이대요. 풀 속에서 목숨줄 겨우 잇고 있는 놈에게 숨통을 터 주려 풀을 벤 건 순전히 벼를 위한 거였어요. 근데 그러고 나서 힘을 내기 시작하더니 벼를 흉내 내려는 건지 그럴 듯하게 코투리를 달고 키우고 있는거지 뭡니까. 어린 콩코투리 즙을 쪽 빨아먹어 쭉정이 만드는 개미허리노린재도 올 해는 나타나질 않아 코투리가 예쁘게 익어갑니다.들깨는 웃자라도 잘 사는 편이지만 이번엔 좀 심했습니다. 그렇게 뻘춤히 웃자란 들깨를 고구마 심듯 누여 심고 윗 순을 잘라주라는 제 말에도 아내는 심드렁했지요.워낙 생명력이 강한 놈이라 믿긴 했지만 뿌리 내릴 때쯤 북을 주며 바라보는 제 마음도 심란하긴 매 한가지였어요.그럴 때는 그냥 잊고 마는 게 상책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들깨는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여지껏 키운 것 중 단연 제일입니다. 열심히 순도 지르고 잎사귀도 따다 먹었지요. 이젠 이놈도 가을이 온 걸 눈치 챘는지 잎의 기세가 약해져 있더만요. 에너지를 모아 꽃을 피우려 용을 쓰고 있는 겁니다.네팔 소식을 그냥 넘기려니 개운치가 않습니다. 남 얘기가 아니기도 하고 또 우리 잘못 같아 더 그렇습니다.사실 기후 변화는 지구 입장에선 하나의 생리현상 같은 걸지 모릅니다. 감기 같은 거라 할까요?구석기 시대처럼 이동하는 삶에선 기후변화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답니다. 기후 따라 이동하면 되니까요. 아마 기후변화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전 지구로 퍼져갔을 겁니다.그런데 농사지으며 붙박이 삶이 위기를 키웠습니다. 어디 갈 데도 없고 갈 방법도 잊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이번 기후변화는 도시문명이 주도하고 있어 그 심각성이 더 합니다. 네팔이 그걸 얘기해주고 있는데요 당장의 홍수는 새발의 피일지 모릅니다. 빙하가 사라지는 게 더 큰 문제이지요. 히말라야 빙하는 남극, 북극과 또 다른 극으로 몬순기후의 발원지입니다. 그 덕에 장마가 있어 폭염에도 견디고 살 수 있는 거겠죠. 알프스, 안데스 고산 빙하도 그런 역할을 합니다. 지구 곳곳의 고산 빙하들이 지구의 다양한 기후 조건들을 만들어주어 인간도 그 외 많은 생명들도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겠지요.더 중요한 사실은 고산 빙하들이 바로 많은 강들의 발원지라는 사실입니다. 빙하가 사라지면 강들도 말라버릴 수 있다는 점이죠. 강도 사라지고 몬순도 사라져 비도 오지 않는다면 지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기후변화의 끝판은 바로 가뭄입니다. 제가 되도록 물 적게 주고 작물의 자생력을 키워보려 농사짓는 나름의 명분입니다. 되도록 직파한다든가, 지주를 세워주지 않는다든가 논에 물을 자주 뺀다든가 하는 식이죠.고추든 가지든 직파를 하면 지주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뿌리를 깊게 내려 스스로 버티고 쓰러지지 않으려 열매를 많이 달지 않지요. 적당히 감당할만큼만 열매를 여니 쓰러지지도 않고 거의 병도 없습니다. 가지는 더 쉽구요, 토마토는 아직 모종을 하지만 지주는 세워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량은 적지만 물도 안 주고 지주도 안 해주는데 병도 없다면 전체적으론 가성비가 높지요. 더 중요한 건 가뭄에 대비한 이른바 한전旱田농법의 주요 방법이라는 겁니다. 전통농법의 지혜이지요.논에도 벼가 자리잡아 그늘을 드리우면 풀이 힘을 못 쓸 때 물을 뺍니다. 그러다 이삭 팰 때 물을 넣는데 자작자작할 정도 넣고 그것도 이삼일 있다 빼지요. 수확할 직전까지 물 담아 놓는 논하곤 다릅니다. 물이 상시로 담겨 있으면 논 흙이 혐기상태가 되어 발생하는 메탄도 거의 없을 겁니다. 거름도 완숙된 거나 오줌으로 웃거름 정도만 주니 메탄가스든 그보다 더 무섭다는 아산화질소 같은 온실가스가 별로 발생되지 않을 거라 자신하지요.몇년 전까진 저희 논에 장마 때 아니면 아얘 물이 없었어요. 논 벼인데도요. 모내기도 건답에서 했지요. 훨씬 전엔 벼도 직파를 했어요. 그러다 지금처럼 제한 급수를 하고 모내기를 하는 건, 제초와 밀 이모작 때문입니다. 확실히 물을 채우니 피사리를 한 두번밖에 하질 않아요. 수량도 1.5배는 되구요. 더 결정적인 건 밀과 이모작이 된다는 겁니다. 직파하면 일찍 심어야 해서 이모작이 안되거든요.암튼 지금처럼 물을 많이 쓰는 농사방식은 기후변화에 아주 위험합니다. 물을 아끼며 농사지었던 조상들의 지혜가 절실합니다. 네팔사태가 일러주는 메시지를 저는 그렇게 해석하지요.옛날처럼 기후변화에 따라 이동하며 살 수는 없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붙박이 삶이 기후변화를 억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 땅이 가뭄으로 사막화되는 걸 막아야 하니까요. 이동하는 삶은 떠나면 그뿐이니 사막화를 막지는 않을거잖아요. 지금 지구 곳곳의 사막들이 그렇게 방치되어 생긴 것들이 많을 겁니다.그렇지만 지금처럼 물도 낭비하고 끝없는 단작농사로 토양을 망가뜨리고 도시에선 온실가스를 펑펑 뿜어대면 지구엔 더 많은 사막들이 생길겁니다.반대로 조상들의 지혜를 살리면 대안을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당장의 문제를 막지는 못해도 노아의방주 같은 대안은 되지 않을까요? 내일 당장 하늘이 무너진다해도 나는 오늘 한알의 콩씨를 심으려 하는 명분이지요. 그것도 즐거운 마음으로요.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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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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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1일관덕정에서(제주애국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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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1일관덕정에서(제주애국인민)
/130X160cm/아크릴물감,알루미늄판,못,콘테,연필/2023
1946년 10.1대구 항쟁이 폭발하면서 미군정은 이튿날인 10월 2일 오후 7시 대구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을 동원해서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군 개입으로 대구항쟁은 경산, 성주, 영천 등으로 확대되었다. 미군정의 행정에 분노한 경북도민들은 미군정과 계속 충돌했고 이후 경북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1946년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 열기는 1947년 3월 1일 제주로 이어졌다. 제주시민들은 삼일절 제28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관덕정에 모여 “통일을 먼저 이루자! 단선단정을 반대한다! 그리고 제주 중학생들은 양과자 수입 막아 식민지화를 막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했다. 가두시위 도중 어린아이가 말발굽에 치였는데 경찰은 아이를 두고 가버린다. 이를 본 시위 군중들은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경찰은 이 군중을 보고 시위대에 그대로 발포해 버려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시민들은 이날 발포 사건에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민.관 총파업을 벌여 투쟁한다. 미군정은 총파업을 강경 대응하며 500명을 체포하고 2,500명을 고문과 구타를 했다. 제주 민심은 들끓어 다음 해인 1948년 4.3일 제주 무장대는 봉기를 시작한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14연대 군인들도 이러한 제주도민들을 애국인민으로 보았고 학살할 수 없다며 항명하였다. 작품에서 나는 4.3항쟁의 시작점으로 내 분신을 보내 제주 애국인민들을 응원한다. 당신들은 애국인민이다!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칼럼에 게시된 글과 그림의 저작권은 박금만 작가에게 있으며, 작가의 허락 없이 복사하거나 다운로드하여 활용하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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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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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농촌기본소득에서 구례형 기본사회로 ―노인들의 천국, 구례를 꿈꾸다" 김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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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기본소득에서 구례형 기본사회로
― “노인들의 천국, 구례”를 꿈꾸다
김흥주 (원광대학교 라이프케어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구례 주민)
구례에서 농촌기본소득이 시작된다. 구례군은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지역으로 선정되어 모든 주민에게 매월 2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첫발은 잘 내디뎠다. 그러나 사업에 선정되고 돈을 지급한다고 해서 저절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성공은 그 돈이 구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바꾸고, 지역 안에서 얼마나 따뜻하게 순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기본소득을 단순히 주민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정책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주민이 지역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보장하고, 동네 가게와 시장, 농민과 돌봄 제공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마중물이어야 한다. 그래서 구례 농촌기본소득의 성과를 인구가 얼마나 늘었는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주민의 식탁이 좋아졌는지, 동네 가게에 손님이 늘었는지, 혼자 지내는 어르신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생겼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그동안 농촌의 발전 전략은 주로 외부의 사람과 돈을 끌어오는 데 집중되어 왔다. 산업단지를 만들고 관광시설이나 케이블카를 세우면 관광객이 몰려오고 젊은 사람도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사람이 오지 않으면 큰 시설과 유지관리비만 남는다. 건물은 번듯한데 정작 주민의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 일도 많았다.
구례의 미래를 토건 사업과 청년 유입에만 걸어서는 안 된다. 일자리와 생활 기반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과 관광시설을 늘린다고 청년이 저절로 찾아오거나 오래 머무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구례는 65세 이상 주민이 전체 인구의 40%를 훨씬 넘는 초고령 지역이다. 이제 정책의 중심을 ‘언젠가 들어올 사람’에서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옮겨야 한다.
그렇다면 발상을 바꿔보자. 고령화를 극복해야 할 약점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초고령사회에 가장 잘 대응하는 지역을 만들 수 있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르신들이 살던 마을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선 고령 친화 지역을 만들어보자. 구례의 미래 비전을 “노인들의 천국”으로 삼아보자는 이야기다.
물론 노인들만 모여 사는 거대한 복지시설을 만들자는 뜻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살던 집과 마을에서 건강하게 지내고, 밥을 먹고 병원에 가고 이웃을 만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지역을 만들자는 것이다. 노인이 행복한 동네는 아이와 장애인, 청년과 여성에게도 살기 좋은 동네다. 언젠가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결국 모든 주민을 위한 구례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촌기본소득과 통합돌봄을 단단하게 연결해야 한다. 기본소득을 받아도 마을에 쓸 곳이 없다면 돈은 금세 구례 밖으로 빠져나간다. 반대로 그 돈을 지역 먹거리와 반찬 배달, 병원 이동, 집수리, 문화와 여가 활동에 사용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민의 생활이 편안해지고, 지역 안에는 새로운 일자리도 생긴다. 기본소득의 액수만큼 중요한 것이 “그 돈이 구례 안에서 몇 번이나 돌고 도는가”이다.
먼저 경로당부터 달라질 수 있다. 담소를 나누고 점심을 함께 먹는 공간을 넘어, 마을의 작은 생활돌봄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건강을 살피는 돌봄 반장, 식사와 반찬을 챙기는 먹거리 돌봄, 병원과 시장에 갈 수 있는 이동 지원, 간단한 집수리를 연결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어르신들은 낯선 시설로 떠나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마을에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지역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구례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로 어르신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학교와 복지시설, 공공기관이 지역 농산물을 우선 구매하면 어떨까. 마을부엌과 반찬가게, 공동급식과 식사배달을 지역의 사회적경제 조직이 맡을 수도 있다. 그러면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판로가 생기고, 청년에게는 일자리가 생기며, 어르신의 식탁은 더 건강해진다. 이렇게 기본소득은 농민과 청년, 노인을 하나로 이어주는 셈이다.
어르신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아서도 안 된다. 지리산의 산나물과 약초, 섬진강의 생태, 마을의 역사와 음식에는 오랫동안 살아온 어르신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들이 농산물 가공과 마을식당, 생태해설과 전통음식 교육에 참여하도록 해보자. 도움만 받는 노인이 아니라 일하고 가르치고 지역의 미래를 결정하는 당당한 주민으로 서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구례만의 보물을 더할 수 있다. 자연을 깎고 파헤치는 대규모 관광개발보다 치유와 장수, 생태와 돌봄을 중심으로 한 체류형 관광이 구례에 더 잘 어울린다. 어르신과 가족이 함께 걷는 무장애 숲길, 섬진강 치유 프로그램, 지역 농산물로 만든 건강식, 농촌마을 체류를 연결하는 것이다. 지리산과 섬진강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구례 사람들의 건강과 삶을 지켜주는 공동의 자산이어야 한다.
이런 변화는 행정에만 맡겨놓는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 활동가와 귀촌인, 농민과 상인, 의료기관과 사회적경제 조직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읍·면 기본소득위원회도 지급 대상자를 심사하는 데 머물지 말고, 기본소득과 돌봄, 먹거리와 지역경제를 함께 설계하는 주민자치 조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성과를 평가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전입 인구가 몇 명 늘었는지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식탁이 좋아졌는가?”, “병원에 가지 못하는 어르신이 줄었는가?”,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이웃과 함께 먹게 되었는가?”, “동네 가게와 농민의 소득이 늘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런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때 구례 농촌기본소득은 비로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구례는 더 큰 건물을 가진 지역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관광객이 잠시 보고 떠나는 곳을 넘어, 지금 사는 주민이 가장 존중받고 행복한 생활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리산과 섬진강, 농촌기본소득, 초고령사회라는 세 가지 조건을 잘 엮는다면 구례는 대한민국 농촌의 미래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노인들의 천국, 구례”는 고령화에 체념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오히려 고령화의 현실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이를 돌봄과 순환경제, 생태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지역을 새롭게 설계하는 힘으로 바꾸자는 제안이다. 농촌기본소득에서 출발한 구례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구례는 사라져가는 농촌이 아니라 새로운 기본사회를 가장 먼저 만들어낸 지역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쓴이 : 김흥주
_현재 원광대학교 라이프케어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교육부 인문사회융합인재양성 사회구조사업단장(2025~현재), 전북특별자치도 먹거리위원회 공동위원장(2026~현재), 한국농촌사회학회 회장(2021~2023), 한국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SSK) 먹거리지속가능성연구단장(2010~2021), 한국사회복지학회 운영이사(2011~2012), 서울시 친환경무상급식심의위원회 부위원장(2012~2015), 사회복지시설 사회복지관 현장평가위원(제5기, 제6기, 제7기), 기초 푸드뱅크사업 현장평가위원(2012년),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배분위원(2015~2019). 저서 <지역사회복지론>, <사회적경제와 공공성>,<사회복지조사방법론>(공저) 등.
[뒤웅박 씻나락 칼럼]
지리산 자락 삶이 우리 사회의 대안적 삶의 모습이 되길 꿈꾸는 <지리산人>의 바람을 담아, 지리산 곳곳에 계신 씨앗 같은 이들의 삶과 생각을 싣고자 합니다. 칼럼 글쓴이의 일부 주장이 <지리산人>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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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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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이삭 패는 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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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제주도 재래종인 토종 구억배추, 우:잡종 결구배추_둘 다 직접 키운 거지만 지금은 토종만 심는다. 결구배추가 키우기 힘든 것도 있고 토종의 깊고 구수한 맛도 없어 심지 않게 되었다. 가끔 불량식품도 먹고 싶을 때가 있듯 결구배추의 고소한 속맛이 당길 때도 있긴 하지만.......
처서는 처서였습니다. 열대야가 조금 누그러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벼가 이삭을 패기 시작했거든요. 낮엔 여전히 34도 웃도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혹시나 논엔 가을이 찾아와 있지 않았을까 싶어 두눈 크게 뜨고 살폈지만 이삭을 보진 못했어요. 실망한 마음에 당근밭 풀이나 매야지 하고 갔다가 아직 뜨거운 더위가 힘들어 딴 일 찾아 창고로 갔습니다. 길가 그늘쪽 풀이나 제초할 요량에 새로 구입한 예초기 날 교체하려고요. 날을 고정할 볼트가 안 보여 핑계김에 잘 됐다는 심보로 연장통 정리나 하고 있는데 아내가 물 먹으러 왔다가 반가운 목소리로 벼 이삭을 보았다고 전해주네요."어디 어디? 난 못봤는데.""논 끝에 있어 못 봤구나, 근데 아직 두그루뿐이야.""그게 어딘대?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그러고는 이삭 잘 패라고 그새 콩 심어놓은 논 둑 풀매고 왔다지 뭡니까. 바람 잘 통하라구요. 극성은 극성입디다. 더위가 아직 한창인데 말이죠. "아냐, 바람이 약간 있어 할만 했어." 이마에 땀방울 흠뻑 맺힌채 찬물 들이키며 그딴 소리나 하니 걱정은 되지만 놓친 가을 소식에 기분은 좋더이다. 바로 논으로 달려갔지요.처서는 가을 첫달인 음력 7월의 정점임에도 음력이 조금 늦은 올해는 처서가 보름 전에 들었네요. 그렇지만 7월 11일이라 그리 늦은 편은 아니고요, 곧 7월15일 백중이 찾아오니 가을은 하루하루 다르게 익어갈겁니다. 작년엔 윤6월14일에 든 입추에 벼 이삭이 팼습니다. 윤달이 아니었으면 7월14일에 이삭이 올라온 것이니 7월12일에 이삭 올라 온 올해랑 음력 기준으로 보면 엇비슷 해보입니다. 그런데 양력 기준으로 보면 작년엔 입추에 팼는데 올해는 처서에 팼으니 보름가량 늦은 건데요, 제가 볼 땐 입추에 팬 작년이 이상한겁니다. 올해가 정상이죠.처서가 되면 가을은 점차 가속도가 붙어 익어 갈겁니다. 입추에 맥아리 없던 귀뚜라미 소리가 처서가 되었다고 한결 청아해진 걸 봐도 알 수 있지요. 다만 소서에 피던 무궁화꽃이 올해는 일주일 이상 늦게 피다 이제서야 절정이니 서리가 늦게 올 것 같아 걱정이긴 합니다. 서리 내릴 때를 알려주는 똑똑한 꽃 무궁화가 늦게 피어 서리도 늦으면 서리 맞아 맛이 드는 무, 배추가 제대로 서리를 맞지 못 할 수 있거든요.처서 즈음해 드는 음력 7월15일 백중은 단오 다음으로 큰 마을 축제였습니다. 먹을 게 별로 없어 배고픈 축제가 단오라면 백중은 비로소 먹을 게 많은 배부른 축제였어요. 이 때쯤 되면 풀에서 나는 과채류 과일, 곧 수박 참외 오이 호박 가지 고추가 한창이고 나무에서 나는 포도 자두 복숭아 파란 햇사과도 한창이지요. 요즘은 일찍 먹을 욕심에 뭐든지 일찍 익게 종자 개량들을 해서 제철 맛이 사라진 게 진짜 아쉽지요. 백중절도 사라진 게 그래서일까요?그건 아니구요. 일제강점기 때 단오와 함께 없어졌습니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핑계였지만 마을공동체 문화에 기대 언제 다시 필지 모를 독립운동의 싹마저 말살하려 했던 거죠.암튼 또 다르게, 단오는 벼 모내는 축제인 반면 백중은 말복으로 논 피사리 끝내고 쉬는 축제였습니다. 호미를 씻어 걸어둔다 해서 호미씻이, 피사리 머슴 쉰다 해서 머슴생일이라고도 했지요.그렇지만 마냥 축제만 즐길 한가한 것만은 아닌 건 김장농사 준비 때문입니다. 무, 배추, 알타리, 쪽파 등 김장 작물은 벼와 곡식 다음으로 중요한 우리네 주식이지요. 여름 풀 거두고 거름 넣어 땅을 갈아둡니다. 저는 배추 육묘용 씨를 입추에 심지만 시중의 배추 모종은 대서 직후 파종한다고 하니 가을 농사가 엄청 빨라졌어요. 김장의 꽃은 역시 배추입니다. 그런데 배추 농사가 만만하지 않아 문제입니다. 아마 제일 키우기 어려운 게 배추일겁니다. 특히 가을 배추가 어렵지요. 한여름 동안 밭에 각종 벌레들이 번식한 상태에서 심어야 하니 힘들 수밖에요. 가을배추를 괴롭히는 놈들은 한 십여 가지 될겁니다. 청벌레 잎벌레 톡톡이 민달팽이 집달팽이에서부터 메뚜기 귀뚜리도 달려들고 관문을 다 통과했다 싶으면 진딧물이 나타나 배춧잎을 도포해버려 도저히 먹을 수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무사마귀병. 뿌리혹병이라는 전염병입니다. 밤엔 멀쩡한데 낮엔 잎들이 데쳐놓은 것 마냥 풀썩 주저앉길 반복하다 결국 죽고 말지요. 왜 배추농사는 이렇게 힘들까요?원래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인간이 크고 맛있게 먹으려 배추 본성에 거슬려가며 심기 때문입니다.배추는 영상 30도 이상의 온도가 되면 아주 힘들어 합니다. 봄 가을의 서늘한 환경을 좋아하죠. 그런데 아직 영상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 심으니 문제인겁니다. 일찍 심어 크게 키워먹으려 하는 건대요, 그 욕심을 부추긴 건 바로 결구배추입니다. 양배추처럼 알이 꽉꽉 차는 배추로 크기도 무게도 상당합니다. 그렇게 키우려면 일찍 심어야 하는데 그때가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라는 게 문제인거지요.결구배추는 1970년대 이후에 일반화되었는데 호배추라 해서 조선배추와 별도로 김장 담갔어요. 결구배추는 맛있고 일찍 익지만 무르기도 해 빨리 먹을 김치로 담그고 조선배추는 억셔 늦게 익고 깊은 맛 때문에 늦게 먹을 김치로 담갔어요. 그러다 냉장고가 발달해 결구배추만 자리잡은 거지요.지금의 결구배추는 기존의 다양한 토종배추들을 교배해 맛도 좋고 결구도 잘되는 걸 선발 육종한 겁니다. 우장춘 박사가 만들었다는 오해가 있지만 그건 아니고 배추 육종 교배이론과 기술을 닦은 것이라해야 맞습니다. 그덕에 결구배추가 만들어진 거겠지요.다만 문제는 결구배추는 잡종이라 씨를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씨 받아 키우면 결구배추가 아닌 엉똥한 애들이 나옵니다. 숨어있던 열성인자들이 나오는 거지요. 매번 씨를 사다 심어야 합니다.자가채종하는 이른바 농부권Farmer's right이 배제된 씨로 저는 이걸 불임씨앗이라고 합니다. 맛은 있을진 모르나 달고 고소한 쪽으로 육종 해 벌레도 잘 달겨듭니다. 농부가 계속 씨를 받아 온 토종배추는 맛도 맛이지만 병해충에도 강한 씨를 계속 선발해 받아왔기에 환경적응력이 뛰어나지요. 가임종자의 매력입니다.앞에서 얘기했듯 배추는 야생순무에서 온 거라 순무처럼 쌉싸르하면서 개운한 뒷맛이 진짜입니다. 할머니들이 그랬어요. 맛있는 배추는 갓 맛이 난다고요. 순무 같은 맛이지요. 그 맛은 배추 겉잎에 많지 속잎에는 적습니다. 속이 꽉 찬 결구에는 달고 고소하긴 하나 참 배추 맛이 아닌 겁니다. 배추 수확할 때 보면 겉잎은 다 버리고 속만 가져가는 게 안쓰럽기만 한 까닭입니다. 진짜는 버리고 쭉정이만 가져가는 꼴이거든요.저는 이런 토종배추만 키워 먹지만 그래도 결구배추를 보면 우리의 김치문화가 만든 육종 기술의 쾌거란 생각도 지울 수는 없습니다.다만 육종하다보면 잡종교배는 필수 방법이겠으나 그 잡종 종자도 씨를 받아 재배할 수 있는 순종 종자로 만들어 누구나 씨 받아 농사지을 수 있게끔 했으면 좋겠습니다. 불임종자로 종자를 독점하면 언젠가 종자가 사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자의 지적재산권과 자가채종하는 농부권이 배치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라의 종자정책도 선회하길 기대합니다. 그동안 지적재산권 보호에만 신경쓰다 농부들의 토종보전에도 관심갖기 시작해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곡식종자는 식량종자라 나라에서 육종 보급하는데, 씨값이 저렴해 좋긴 하지만 그보다는 사지 않고 씨 받아 심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농부권이 보장되어 누구나 받아심을 수 있어야 종자가 지켜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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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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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주옥 X 인간주옥] ⑥ 문수사를 나온 곰들, 무니와 수리 그리고 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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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구례곰마루쉼터(이하 곰쉼터)에 있는 무니, 수리, 부기는 올해 4월 30일까지 문수사에서 살았다. 내가 이들을 처음 만난 건 2012년이었는데, 그 후로 문수사를 생각하면 곰들이 갇힌 철장이 먼저 떠올랐다.
“2013년에 문수사 갔다가 갇혀 있는 곰을 보고 다시는 가지 않았습니다.”
“사찰에서 철창에 갇힌 곰에게 줄 먹이를 팔다니요.”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는 거대한 곰의 모습에 눈물이 납니다.”
“저희 아이도 오래전에 거기 곰들을 보고 너무 충격받아서 문수사 간판만 봐도 싫어합니다.”
문수사와 그곳에 사는 곰들에 대한 사람들의 댓글이다. 나 역시 문수사를 떠올리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그럼에도 1년에 한 번씩은 문수사에 올라가 곰들이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는지 확인했다. 확인한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질문에 매번 “그 곰들은 개인(문수사 주지)의 사유재산이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올해는 지난 2월, 문수사 주변으로 올무 수거 활동에 갔다가 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여 문수사에 올라갔다. 여전히 철장 안에서, 여전히 왔다 갔다 하고, 여전히 돈을 내고 곰들에게 먹이를 주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우리를 본 곰 한 마리가 철장에 머리를 부딪히며 소리를 지르는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그 곰이 철장에 머리를 부딪힐 때마다 내 머리도 철장에 ‘쿵’ 부딪히는 통증이 전해졌다. 더는 그곳에 서 있을 수가 없어 일행들에게 내려가자고 이야기했다. 문수사에서 내려오면서, 가까이에 곰쉼터가 있는데 이 곰들은 왜 여전히 이곳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납득되지 않았다.
↑ 무니와 수리, 부기가 살던 문수사 철장(뜬장)
3월 초, ‘문수사 철장에 갇힌 곰들을 곰쉼터로 보내자’는 서명과 항의 전화를 요청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나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서명은 100명에서 1천 명으로, 다시 2천 명, 3천 명으로 삽시간에 늘어났고, 항의 전화를 했다는 분들이 상황을 전해왔다. 결과적으로 문수사의 곰들은 곰쉼터로 옮겨졌다. 3월 초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곰들이 이주한 게 4월 30일이니 두 달 만에 묵은 숙제를 한 셈이다.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고 실천하면 부조리한 일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 일이었다.
무니, 수리, 부기는 4개월째 곰쉼터에서 살고 있다. 잘 살고 있겠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더운 여름애 뭘 하며 지내는지 궁금하여 곰쉼터를 찾았다. 최신영 수의사는 무니, 수리, 부기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지 말해줬다.
“무니, 수리는 문수사에서 온 친구들이라 자연스럽게, 마지막 한 친구에게 ‘사니’라고 붙이려 하니 ‘사니?’ 이런 물음으로 들려 좀 이상해서요. 그런데 그 친구가 잘 걷지를 못하는 거예요. 걷는 모습이 거북이 같아서 ‘부기’라고 했습니다.”(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 면담)
↑ 곰쉼터로 옮겨진 후 건강을 회복한 부기 (사진제공 : 구례곰마루쉼터)
곰쉼터에 왔을 때 거북이처럼 걷던 부기는 많이 좋아졌다. 척추에 손상을 입었을 것으로 예상되어 압박이나 염증을 줄여주는 약물치료를 했고, 곰쉼터 바닥이 타일이라 미끄러우면 걷는 게 힘들 수 있으니까 청소 후에는 최대한 물기가 없도록 했다. 이제는 걷는 모습이 눈에 띄게 괜찮아졌다. 100% 완벽한 건 아니지만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은 없다.
나는 문수사의 곰들이 ‘이사’, ‘이주’했다는 표현보다는 ‘옮겨졌다’는 말을 더 많이 쓴다. 문수사 곰들뿐 아니라 곰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사람에 의해 이동하는 과정에는 마취를 하거나 포획틀을 사용하는 등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다.
윤주옥: 문수사에서 여기는 무척 가깝잖아요. 그럼에도 여기까지 올 때, 마취를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최신영: 네, 그렇습니다. 문수사 철장 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이동이나 환경 변화에 예민할 수밖에 없어서요. 흥분한 상황에서 마취를 하지 않고 케이지로 이송한다면, 그 친구들에게는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거든요.
윤주옥: 더 좋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거잖아요?
최신영: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작은 공간에 갇혔다가 (넓어지고 깨끗해졌지만) 익숙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흥분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곰이 다칠 수 있고 또 사람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마취가 좀 더 안전한 거죠. (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와의 대화)
무니와 수리, 부기는 얼떨결에 옮겨졌지만,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 최신영 수의사는 문수사에서 매일 같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공격적이지 않았’고, ‘다른 친구들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적응을 잘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지하게 더웠던 올여름은 어떻게 지냈을까? 지리산 자연에 사는 곰들은 계곡에서 지낼 수 있으니 어떻게든 여름을 보냈을 텐데, 털 많은 곰들에게 이 더위는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각 방에 물 양동이를 하나씩 넣었어요. 물놀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던 친구들도 있었는데 햇빛이 강하니까 안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중간방사장 위쪽에 검은색 천막을 쳐줬고요. 또 방마다 선풍기를 설치하고, 과일을 얼려서 주기도 합니다. 여기 바닥이 타일이거든요. 타일이 시원하니까 최대한 몸을 펼치고 누워 있더라고요. 입추 지나면서 조금 시원해져서 다행이에요.” (2026년 8월 13일 최신영 수의사 면담)
↑ 물통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무니 (사진제공 : 구례곰마루쉼터)
↑ 타일 바닥에 몸을 최대한 펼쳐 누워 쉬고 있는 수리 (사진제공 :구례곰마루쉼터)
최신영 수의사와의 대화 후에 무니와 수리, 부기를 만났다. 부기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봤고, 무니는 바닥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으며, 수리는 옆 방의 친구들이 궁금한 듯 눈과 귀가 옆 방을 향해 있었다. 최신영 수의사는 곰들을 ‘친구들’이라고 칭했고, 개별 곰에 대해 말할 때는 이름을 불렀다. ‘부기야, 뭐 하니?’, ‘무니, 많이 덥구나’ 이런 식이다. 곰들을 대하는 그의 말과 태도에서 곰을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무니와 수리, 부기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 덕분에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최신영 수의사는 ‘계속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직 사육농장에 남아 있는 곰들이 있고, 곰쉼터에서 살아가는 곰들도 사람들의 관심이 끊기면 지원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곰들이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계속 관심을 갖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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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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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귀뚜라미 소리로 오는 입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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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지지 중 음력 7월은 신申월로 가을의 시작입니다. 봄은 인(寅, 1월), 여름은 사(巳, 4월), 겨울은 해(亥, 10월)와 함께 해당 계절의 첫달이자 시작이지요. 여름의 끝달인 미未월 밑에서 열매와 이삭의 기운인 가을이 꼬물락 거리다 신월이 되어 이삭이 패고 열매가 영글어갑니다. 열매와 이삭 자체는 음 기운이지만 이삭이 패고 열매가 익어가는 형국은 양의 기운입니다. 그래서 신은 양금陽金으로 대표 동물을 원숭이로 배치했는데 이삭과 열매가 익어가는 양의 기운을 상징한 것 같습니다. 이 나무 저 나무 점프해 다니며 열매 따먹는 원숭이의 기운 보면 그럴 법도 하지요.보통은 음력 7월에 입추와 처서가 드는데 올해는 음력이 늦어 아직도 입추는 6월에 머물고 있습니다. 25일이 입추로 일진으로는 계축癸丑입니다. 전날의 일진은 임자壬子일로 물기운을 많이 담고 있어 조만간 폭염은 가실 것 같습니다. 다만 입추날이 여름의 끝인 6월 하순에 들어 가을이 금방 올 것 같지는 않네요. 적어도 말복인 다음 주까진 한 낮 폭염은 계속되다 음력 7월 15일 백중까지도 여전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태풍이라도 들이닥치지 않을까 노파심이 드네요.어젠 입추답게 가을이 오는 걸 알리는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해 반가웠지만 소리에 힘은 별로더니 입추인 오늘 밤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네요.
작년엔 입추가 윤6월에 들어 올벼도 아닌 벼가 입추에 이삭을 패서 긴장을 했었습니다. 보름은 빠른 거였어요. 근데 대개는 이삭 패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마구 패는데 몇 놈만 패곤 처서 즈음해서야 본격적으로 패는 걸 보고 윤달은 윤달이네 했었죠. 과도기라 뭔가 정상적이지 않은 일들이 생기거든요.올해는 서리 내리는 때를 알려주는 무궁화 꽃도 늦게 피고 음력 9월말 쯤 돼야 서리 내리는 상강도 9월 보름 전에 들어 이래저래 추위가 늦을 것 같네요. 벼도 처서 지나 좀 늦게 패지 않을까 싶구요.아무튼 입추는 입춘 입하 입동과 함께 해당 절기가 시작하는 입절기로 전 계절의 마지막 기운이 극성을 부릴 때 옵니다. 그러니까 그 절기가 시작되는 걸 체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중 특히 입추가 제일 극적입니다. 가을이 시작되는 입추가 지났는데 마지막 더위 말복이 들이닥치니 더 그렇지요. 액이 빠져나갈 때 꼬리로 뒤통수 치고 나간다는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습니다. 춘분 지나 들이닥치는 꽃샘 추위와 비슷하죠.입추가 되어도 폭염이 여전해 요즘은 오후 5시 넘어서야 밭에 갑니다. 아내나 저나 새벽 1시쯤에나 잠이 드는 야행성 게으름뱅이라 새벽엔 못 가죠. 오후 느즈막이 가서 해질녁 시원해진 바람 쐬며 들어오는 게 참 좋거든요.대서 지나 물 뺀 논에 들어가 하는 피사리는 미안하게도 아내 몫입니다. 물 빼기 전에 해야 피사리가 덜 힘든데 요번엔 녹조가 생겨 부득이 물 빼고 하려니 힘이 더 듭니다. 온몸이 땀에 절은 모습 보고 걱정하는 내게 벼 그늘에 허리숙여 하니 덜 힘들다고 기염을 하니 안쓰럽기까지 합디다.들깨밭 제초와 북주기는 폭염 전에 마무리하고 봄 가뭄에 반밖에 올라오지 못한 생강밭 제초와 당근 심을 풀밭 다스려 파종도 끝냈으나 직파한 가지 고추밭 제초는 결국 폭염 속에서 끝냈습니다. 오후 5시여도 땀 뻘뻘 흘리며 하느라 넓지도 않은 밭 하는데 3일이나 걸렸네요.그래도 아내는 밭에 들어가면 수확을 먼저 합니다. 지주 세워주지 않은 토마토에서 숨은 보물 찾듯 열매를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입니다. 작년에 쌓아둔 풀 더미 속 부엽토만 갖고 키운 토마토가 아주 싱그럽습니다. 병은커녕 열매가 아주 탱글탱글합니다. 폭염에 가물고 뜨거우면 칼슘 결핍이 일어나 열매가 갈라지거나 배꼽썩음병 같은 게 생기는데 이놈은 전혀 그럴 기세가 없네요. 넝쿨 속에 가려져 가뭄도 덜 타고 새도 열매를 쪼아놓질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지주 세워 키우는 것보단 수량이 적겠으나 가성비 관점에서 이것저것 따지면 훨 나은 느낌입니다. 요즘 거의 매일 토마토를 먹고 있어 어째 수량도 더 많아보이더만요.토종오이와 수박 수확하는 재미도 참 쏠쏠합니다. 오이 모종을 수수 사이에 심어 수숫대 올라타는 놈보다 직파로 오이만 심어 바닥 기는 놈이 더 수확을 많이 하는 것도 재밌대요. 수수밭 오이는 깊이 뿌리내리는 수수와 경쟁할 일도 없고 햇빛 가릴만큼 수수를 밀식한 것도 아닌데 해석이 잘 안됩니다. 수숫대 타느라 넝쿨손 키우는 데 힘 써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어쨌든 오줌을 더 주어도 별반 차이가 없네요. 수숫대가 통풍을 방해해 매개충이 적은가 싶은 의구심만 갖고 더 지켜볼 요량입니다.토종수박은 그야말로 자급농사만 주는 기쁨이 진짜 쏠쏠합니다. 잘 해야 애 머리정도밖에 크질 않고 익은 거 고르기가 쉽지 않아 냉장고에 이삼일 숙성시키고 먹는데요, 단맛은 덜하나 수박향이 끝내줍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감동은 수박속껍질 나물입니다. 오이노각 나물처럼 해먹는데 수박향 때문에 맛이 더 끝내주죠. 옛날 농서에도 덜익은 수박은 나물 해먹으면 좋다고 했는데요,이게 바로 자급농사만이 즐길 수 있는 혜택입니다. 토종수박을 비롯해 토종과일들은 저장성이 떨어져 오래 못갑니다. 그래서 사라진 것들도 많아요. 대표적인 게 해남물고구마와 소사(부천)물복숭아입니다. 먹으면 꿀물 같은 게 입안 가득할 정도로 과즙이 끝내주는데 그 때문에 저장성이 떨어져 시장에서 외면받은 거죠.그런데 저장성이 좋아 두고두고 먹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 자리에서 뚝 따먹는 게 최고죠. 토종수박도 바로 따 그 자리에서 속도 먹고 껍질은 나물 해먹어야 하니 시장에 낼 수도 없어 소비자는 먹어볼 기회가 없습니다. 자급 농부만이 즐길 수 있는 먹거리인겁니다.한번은 토종씨앗 수집하러 갔다가 텃밭에서 참외 수확하는 할아버지를 만나 얻어 먹어 본 참외맛에 모두들 놀라고 만 적이 있었어요. 생긴 건 개량참외와 똑 같은데 시장에 내다 팔진 못하고 당신과 식구들 먹을 요량으로만 한답니다."팔면 인기 있을 것 같은데요?"했더니"냉장고에 넣어도 하루 지나면 삭아버리는 걸 어떻게 팔아요?" 하시네요.생각해보면 과일이란 게 사람 먹으라고 맺혀진 게 아니잖아요. 빨리 삭아 번식하기 위한 게 목적이니 그럴 것 같습니다. 유통하기 좋으라고 저장성이 좋은 건 자연스런 건 아닐겁니다.늦게 심은 토종참외도 이제 열매맺기 시작하니 참외 얘긴 다음에 해야겠습니다.입추는 입추인가 봅니다. 기온은 별 차이가 없는데 대문 기둥이 덜 달구어져 있고요, 그늘의 시원한 보도블럭만 찾던 삽살개가 입추 하루 지났는데 흙바닥 찾아 드러누워있네요. 입추 전날부터 울던 귀뚜라미가 다시 뜨거워진 입추 다음날엔 찍 소리 하나 내지 않다 입추 이틀 지나자 뭔가 선선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더니 오늘 밤부터는 새로 울기 시작하더만요. 힘없이 울던 입추 전날보단 확실히 소리에 힘 들어가 있어 가을이 오는 건 시간문제만 남은 듯 하더이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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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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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의 절기 이야기] 무더위의 한복판, 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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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전후로 달궈진 복사열의 정점이자 복더위의 정점은 대서와 중복입니다.장마 끝무렵이자 무 더위 한복판이기도 하죠. 가끔 마른장마가 오기도 하지만 덥고 습한 무더위는 피할 수가 없어요. 동남아시아 몬순기후 지대의 특성입니다. 건기 우기로 나누는 적도 근방 열대지역도 여름인 우기에 습하고 무더운 건 비슷하죠. 반면 지중해와 유럽, 중동의 사막지대 들은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이 옵니다. 그 밖의 아열대 고원지대와 초원지대도 비슷하죠.
덥고 습한 우리의 장마철은 만물이 극성장하고 풀도 우거져 농부에겐 아주 바쁜 농번기입니다. 우리는 춥고 건조한 겨울에 만물이 겨울잠에 들어가니 비로소 농부도 쉬어가는 농한기에 들어갑니다. 봄이 새 학기인 이유고, 유럽에선 가물고 뜨거워 작물이 자랄 수 없는 여름이 농한기라 가을이 새 학기가 되는 이유입니다. 날씨에 따라 농사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이치예요.
무더운 장마철은 물과 불이 치열하게 싸우는 현장입니다. 물이 이기면 홍수가 나고 불이 이기면 폭염과 가뭄이 듭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거구요, 대개는 물과 불이 만나는 곳에 생명이 깃듭니다. 장마철은 물과 불의 격렬한 싸움만큼 만물의 성장에너지도 격렬하지요.
암튼 어찌 되었든 물과 불이 만나는 곳에 생명이 깃드는 것은 왜 그럴까요? 물과 불이 만나기만 하면 다 그럴까요?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좀 다릅니다. 가장 좋은 만남은 올라가려는 물과 내려오려는 불이 만날 때입니다. 그래야 순환이 작동해 생명이 깃들 수 있거든요. 그걸 표현한 게 태극마크입니다. 불은 양(붉은색)이라 위에 있고 물은 음(파란색)이라 아래에 있지만 불의 머리는 아래를 향하고 물의 머리는 위를 향하고 있죠. 그렇게 해서 물과 불은 지속해서 순환하며 생명을 창조하는 겁니다.
원래 물은 내려가려 하고 불은 올라가려 하지만 그러면 잘 만나지지도 않거니와 만나면 큰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게 장마철이고 태풍이지요. 아니면 폭염과 가뭄이고요. 그러나 이게 다 나쁜 건 아닙니다. 망가진 순환 시스템을 고치고자 애쓰는 홍역일 수 있어요. 요즘의 기후변화도 그런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홍역 이후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좋아질 수도 있어요.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물과 불이 만나는 곳 중 재밌는 곳이 부엌과 밭입니다. 먼저 부엌 얘길 해볼까요.
옛날엔 집에도 신이 있다고 했어요. 그중 부엌신이 원래는 최고였지요. 나중에 성주신이 들어와 최고 자리를 차지했지만요.
신이 진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지금 집에 25년 살고 있는데 어쩌다 해외여행 나갔다가 집에 뭔가를 두고 온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무슨 물건 같은 건 아니고요, 굳이 말하면 나를 받쳐주는 무언가였어요. 여독에 감기 걸려 호텔에 누워 있을 때 강하게 느꼈죠. 그때는 그냥 집에 두고 온 또 다른 내 흔적이거나 타지에서 힘들 때 생기는 향수병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만일 붙박이 생활이 강했던 옛날처럼 몇백 년을 조상 대대로 한 집에 살아 조상들의 흔적이 겹겹이 쌓였다면 그걸 신이라 표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조상뿐이겠습니까? 함께 살면서 쌓인 생명들의 흔적까지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할 것 같습니다.
그중 부엌신, 부뚜막신, 조왕신은 물과 불의 조화로 생명의 먹을거리를 만들어 주었으니 최고의 신이자 어머니 신이었어요. 어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깨끗한 정화수 한 사발을 떠와 아궁이 위에 정갈하게 걸어둔 선반 위에 얹어놓고 조왕신께 빌고 나서 아궁이에 불을 붙여 밥을 짓습니다. 물과 불의 위치가 바뀐 것 같지만 올라가는 불의 기운을 내려가는 정화수의 기운으로 눌러주어 밥을 태우지 않고 잘 익게 해달라 했을 겁니다. 이런 정성으로 온 식구의 먹을거리를 지었으니 그 밥은 사랑과 정성, 나아가 신이 깃든 생명의 음식이었던 겁니다. 제가 급식과 매식을 비판하고 도시락과 집밥을 살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사랑과 정성과 신이 깃들지 않은 음식을 먹고 자란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쓰럽지 않을 수 없어요. 소아당뇨, 비만, 알러지, 각종 소아 대사질환, 그리고 옛날엔 보기 힘들었던 우울증, 신경발달장애 들까지 생각하면 원인이야 복합적이겠으나 신이 결핍된 먹을거리 문화의 영향이 적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럼 밭에선 어떻게 물과 불을 만나게 해야 할까요?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논에선 물을 잘 가둬두는 게 중요한 반면 밭에선 물을 잘 흘러가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논은 보수, 밭은 배수가 중요한 거죠. 배수를 강조하니 물이 필요없다고 오해하진 마세요. 물이 머물지 않고 흐르는 겁니다. 강물처럼 마냥 흐르는 게 아니라 저수지처럼 마를 때는 가둬두고 습할 때는 배출하는 거죠. 토양의 삼상구조라 해서 흙의 기본은 흙알갱이인 고상이 반이고 나머지 반을 액상과 기상이 반반씩 차지하면서 가물 때와 습할 때에 따라 들쑥날쑥 저수지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흙알갱이 벽면에 유기물이 5% 정도 코팅되어 있는데 비중은 적지만 흙의 삼상구조를 만들고 떠받치는 주역입니다. 땅심이라고도 하고 지력이라고도 하는 게 이 유기물을 표현하는 거고 이게 잘 있어야 흙의 저수지 기능이 작동해서 물이 흐르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땅심의 모습은 내면적인 거구요, 배수가 잘되는 외형적인 밭의 모습은 어떨까요? 가장 중요한 관건은 도랑입니다. 물을 잘 빠지게 하는 배수로이죠.
배수로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요, 가장 큰 거는 밭 둘레의 도랑입니다. 밭의 경사와 방향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가장 근본이 되는 도랑이죠. 대동맥쯤 될 겁니다. 경사가 높은 쪽에서 장마 때 물이 쏟아진다면 도랑을 두 개는 파야 합니다. 이 도랑은 이웃과 경계가 되기도 해서 소홀하기 쉬워 방치하면 병해충의 숙주공간이 되고 잡초의 온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바람과 물이 잘 통하도록 관리해 주어야겠지요.
다음으론 본 밭에는 도랑보다 작은 고랑들을 만드는데요, 농부가 드나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때론 밭둑이 될 수도 있어요. 이 공간이 아까워 작게 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저도 초보 때 아까운 마음에 엉덩이도 돌리기 힘들 만큼 좁게 했다가 들락거리기 힘드니 역효과만 본 적이 있어요. 이 길은 통풍 배수에도 좋지만 작물에게도 여유 공간이 되어 줍니다. 밭 둘레보다 깊어선 안 되는 건 당연하겠죠. 그렇게 했다간 물이 빠지지 않고 고일 테니까요.
그다음 중요한 고랑은 두둑과 두둑 사이입니다. 물론 길도 되지요. 다만 융통성이 있어 해마다 바뀔 수가 있습니다. 작물을 돌려 심고(윤작), 섞어 심기(혼작)를 바꿀 때마다 달라질 수 있는 거거든요. 한 줄로 심은 작물 수확 후 두 줄로 심을 작물을 심는다면 달라지는 게 그려지죠? 이 고랑은 당연히 앞의 길로 쓰는 고랑보다 깊으면 안 됩니다.
마지막 고랑은 씨나 모종을 심는 곳입니다. 호미든 괭이든 줄뿌림할 때 골을 내고 심고는 골을 살려둡니다. 그러면 작물과 작물 사이는 두둑이 되겠죠. 그러다 작물이 자라고 두둑에도 풀이 올라오면 두둑을 뒤집어 작물에 북주기를 합니다. 그걸 한 번 내지는 두 번에 걸쳐서 하고 나면 작물은 두둑 위로 올라가고 작물 사이의 두둑은 고랑으로 바뀌게 되는 거예요. 이를 견종법이라 합니다. 고랑(견畎)에 심는다는 뜻이고 밭의 모양이 바뀐다 해서 대전(代田)법이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헛골농법이라 합니다. 골이 곧 없어지니 그렇게 이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인곡선이 코사인곡선으로 단면이 바뀐다 해서 사인코사인 농법이라 붙여 봤는데 다들 웃고 말대요.
암튼 이 방법은 두둑을 덮는 비닐멀칭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제초와 북주기를 동시에 하는 첨단 농법이었어요. 게다가 작물이 어릴 때는 마르면 안 되니 골에 심고, 어느 정도 자라선 통풍이 중요하니 두둑 위로 올라가게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것도 한방에 해결하니 얼마나 지혜로운 방법이에요?
밭이 크면 소 쟁기를 이용하는데 두둑 없애며 북주기를 할 때는 쟁기날이 쇠가 아닌 나무로 되어 있고요, 두둑을 뒤집지 않고 좌우로 훑어주기만 해서 훌치기라고도 합니다. 소 주둥이에는 작물을 못 먹게 입마개를 씌우지만, 잘 훈련된 소는 필요 없었답니다. 재밌죠? 어쨌든 이 헛골도 두둑과 두둑 사이의 골보다 깊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밭에도 물길과 바람길(온화한 불의 길?)을 잘 만들었습니다. 임원경제지를 쓰신 서유구 선생은 이렇게 밭을 만들면 밭이 저수지 같은 노릇을 해, 가물 때는 습기를 내어주고(또는 물을 가둬두고), 습할 때는 물을 빼주어 농부는 또다른 수자원 관리인이라 했으니 큰 물길 잡아주는 것 못지않은 치수정책이었던 겁니다. 황하의 본류를 잡으려다 실패한 우왕의 아버지와 다르게, 황하의 지류를 잡아 치수에 성공해 왕이 된 우왕과 다르게, 본류 지류가 아닌 물의 모세혈관을 다스리는 일이니 더 근본 방책 아니었겠어요? 기후변화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대가뭄을 생각하면 귀 기울여볼 만한 지혜이겠습니다.
방금 말한 도랑과 두둑 및 밭 전체 배수로와 견종법은 다음 그림을 참조해보세요. 통풍 배수가 잘 돼 작물이 건강하고 제초를 따로 하지 않고 한번에 하니 일석이조가 됩니다.
고랑 별 깊이를 잘 조절하고, 작물은 헛골에 심었다가 나중에 북주기 하면 작물은 두둑 위로 올라가고 작물 사이는 골이 되어 통풍과 배수가 잘 되니 건강하게 자랍니다.
** 대문사진 : 대서 되니 벼가 확실하게 그늘을 드리워 풀이 들어올 엄두를 못낼 때 물을 뺍니다. 처서 지나 이삭 패면 다시 물을 넣어주는데 적셔주는 정도로만 줍니다.
글을 쓴 안철환 선생은 온순환협동조합, 전통농업연구소 대표이고 경기도 안산에서 ‘산림생태텃밭 먹거리숲 농장’을 운영한다. 남은 음식물과 똥오줌, 커피 찌꺼기를 받아 직접 거름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으며, 우리 토종 종자와 전통 농업 살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25년 전, 처음으로 심은 배추 씨가 3일 만에 싹 트는 걸 보고 ‘씨 안에 누가 있었구나!’ 깨닫고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가 먹는 배추는 단순히 물질적인 먹을거리가 아니라 나와 별 차이 없는 생명이며, 그래서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먹고, 생명과 소통하고, 생명과 하나 되는 일이라고 믿는다.
쓴 책으로 《시골똥 서울똥》(2009), 《24절기와 농부의 달력》(2011), 《호미 한자루 농법》(2016), 《토종농법의 시작》(2020)이 있고, 옮긴 책으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200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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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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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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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심장(10.1대구항쟁)
/160X130cm/콘테/2024
나는 나름 작품으로 철학적 구축을 다져나가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의 흔적을 2017년 인터넷에서 순천경찰서기록으로 발견한다. 서울경기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약 15년간 할아버지 흔적을 찾아다녔는데 못 찾고 여수로 귀향한 지 2년 만에 기록을 찾은 것이다. 그 기록은 매우 건조했다.
- 활동유형: 좌익활동(우익,좌익,좌익활동)
- 장소: 광천 다리 밑
- 사망유형: 총살
순천경찰서의 이 기록은 그동안 우리 가족의 괴롭고 어둡던 모든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분노와 슬픔으로 그동안 그려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여순항쟁 작품에 몸을 던진 계기가 되었다. 기록을 발견하고 일주일간 잠도 잘 못 자고 먹지도 못하며 생각했던 것은, 첫째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알리자, 둘째 작품에서 지형이나 복장 무기 등은 철저히 고증하자, 셋째 피나 잔인한 장면을 서정적인 슬픔으로 승화하자(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이렇게 시작한 작품들이 방대한 여순항쟁 역사에 미미하지만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나는 지금도 여순에 살고 있다.
여순항쟁은 대구항쟁과 제주4.3항쟁과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래서 여순의 기원을 그려 보기로 했다. 해방이 지난 1년 후 1946년 10월1일 미군정은 친일 관리를 등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 공출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한다. 쌀값은 폭등해서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또한 콜레라가 창궐했는데 어린이들은 의약품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대구시민들은 "쌀을 달라! 생필품을 달라! 어린이를 치료할 의약품을 달라! 친일경찰 물러나라!" 외치며 차라리 길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거리로 나온다.
10월1일 대구부청 앞에서 기아 대책을 세우라는 시위 도중 민간인 황말용, 김종태 2명의 노동자가 경찰의 발포로 사망하게 된다. 다음 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으로 대구의 굶주린 일반시민들, 노동자, 학생들까지도 시위에 합세하게 된다.
만여 명의 시민들은 대구경찰서를 포위했고 결국 경찰들은 무장해제를 한다. 대구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며 경찰권을 인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로 민중들은 거리 한쪽에서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위 작품은 분노한 대구민중들이 돌을 들기 직전을 작품화한 것이다.
이후 몰리고 있던 경찰들은 발포를 해서 24명의 시민들이 사망한다. 이를 기점으로 대구항쟁은 영남일대로 번지고 나중 제주4.3항쟁, 여순항쟁까지 항쟁의 불꽃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대구시는 '10월 항쟁'이란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난 2016년 대구시가 '대구 10월 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마련한 것이다. 이전에는 주로 '대구 10월 사건', '대구 10·1 사건' 등으로 불렸다. 일각에서는 폭동, 소요사태 등 부정적인 단어가 쓰이기도 했다. 지금도 극렬 유튜버들은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며 대구항쟁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있다.
<지리산人>에서 박금만 작가의 '여순그림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여순항쟁을 담아 사실적인 역사화를 그려 오고 있는 박금만 작가의 이번 칼럼을 통해, 여순항쟁(여순10.19항쟁)의 역사와 아픔 나아가 항쟁에 함께한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지리산人> 드림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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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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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 씻나락] "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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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료사협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
김명철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사진: Unsplash의 Shane Rounce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제 주변 사람들도 같이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이야기해 오던 공동체를 느슨하게라도 실현하고 싶었습니다. 만드는 게 힘이 들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형성이 되고 나면 (마치 합창처럼) 거기서 느껴지는 ‘같이하는’ 것에 대한 행복감을 맛보고 싶었던 거죠,
시작은 안솔기마을이라는 생태마을에서 했습니다. 같이 음악회도 하고 소풍도 가고 운동회도 하고.... 그러다 마을이 너무 작아 같이 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분들을 봤고 그러면서 안 하고 싶은 자유가 굉장히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마을들과 합창제도 해 보고 같이 운동회도 하고 했는데 이것도 역시 쉽지는 않더군요. 그러면서 규모가 좀 커야 개인의 자유도 보장하고 좀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다 12년 전 산청에 한방 엑스포가 열린다길래 군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강좌를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마수걸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운영위를 만들었고 그 운영위 중 한 분이 구례 콩장을 다녀와서는 우리도 플리 & 프리마켓을 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저도 그게 너무 좋겠다 싶어 동의했고, 그 길로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모임을 열고 그 해에 목화장터라는 마켓을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엔 이 마켓이 생기면 촌에서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번씩 모여 안부도 묻고 정보도 나누고, 재미난 공연으로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분들에겐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 제공도 되고, 또 혼자 먹기에는 많고 시장에 내다 팔기에는 어중간한 분들의 판매처도 되고, 직접 만든 공예품이나 옷 같은 것을 팔 수도 있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들을 팔거나 나눔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적극적으로 찬성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기대를 했던 건 맥주나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소통을 하다가 집으로 갈 때는 장 본 것을 들고 가는 독일의 어느 장터를 우리도 했으면 하는 것이었죠.
그렇게 장터를 주변 사람들과 같이 열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우리 온라인 커뮤니티(밴드) 회원이 많아지다 보니(현재 5,075명) 모임을 만드는 것이 쉬워져 합창단,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 원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이 장터의 힘으로 만들어진 지속넷(지속가능발전네트웍)에서 주최한 100인 원탁회의에서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었고 많은 분의 도움으로 이 일도 진행이 되었죠.
사실 의료사협을 만들자고 했을 때 제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를 돕고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싶어서였는데 만들고 보니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더군요. 시작할 때의 슬로건은 ‘함께 만드는 건강, 더불어 행복한 삶, 지속 가능한 공동체’였는데 한의원이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운영되니 지역에서 일어나는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게 되었고 성심원 내에 장애와 비장애,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공동체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실제로 시작을 한 상태이긴 합니다) 제대로 된 요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을 포함한 힐링센터를 만들 수도 있겠단 꿈을 꾸기도 하고요. 그리고 즐거운 일들은 같이 나누고 힘든 일은 같이 돕는 이런 일들을 어느 정도 실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실제로 목화장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지속넷과도 같이 협력하며 도와 주기도 하고 지역의 ‘그늘과 언덕’이라는 곳과도 같이 힘을 모아 작년의 수해복구와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일도 했고요. 이런 일들을 의료사협이라는 곳의 조직력과 (미미하지만) 재정적인 여유로 같이 행복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지금은 재택의료센터도 만들어 열심히 방문 진료를 하는 중이고 가정의학과도 열어서 한방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서 통합돌봄을 실천 중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어쩌면 정신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좋은 강좌나 지역 소모임을 통해 아프기 전에 건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혹시 아프면 믿을 수 있는 의료진과 주변의 도움으로 나을 수 있도록 하며, 설령 잘 낫지 않아 사망하게 되더라도 주변의 배웅과 도움을 받으며 존엄하고 평안하게 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다 실행이 안 될 수도 있겠지만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익이다.’란 생각으로 ‘오늘도 어떻게 하면 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글쓴이 : 김명철
_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홈페이지 https://gscmedc.org 사무국 055-973-0407
경남 산청군 산청읍 산청대로 1381번길 17
*산청 주민이 아니어도 조합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사무국으로 문의해주세요.
[뒤웅박 씻나락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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