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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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가로에게>


와아, 이사 축하해요! 독립한 것도 축하합니다! 지금쯤 방 정리를 마무리하고 아늑한 가로만의 공간을 꾸몄을까요? 산달리기를 다녀왔을 날에는 따뜻한 차와 함께 몸도 녹이고 열 발가락을 쭈욱 뻗고 온전한 한 숨을 깊게 내쉴 수 있는 편안한 시간을 가졌길 바래봅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라니.. 제가 다 기뻐요!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참 뿌듯한 일인것 같아요. 문득, 새로 이사간 곳에는 어떤 이웃생명들이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새로운 주변의 환경에서도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을 눈으로, 냄새로, 분위기로.. 하나씩 잘 찾아내는 재미가 있길 바라요. 

 

‘집’이라는 공간은 우리들에게 참 중요한 곳인 것 같네요. 몇년 전 도시에서 살 땐,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과 걸어서 15분 거리에서 따로 살았어요. 따뜻한 밥, 가족들의 온기, 편안함보다 저에게 더 소중했던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키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땐 나의 마음과 생각들을 공감해주는 이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아.. 너는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공감의 언어가 필요했는데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외톨이가 된 느낌이었달까. 온전히 나로써 인정받고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나 역시도 가족들에게 그런 품을 내어주기엔 부족하기도 했구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게 산이 내게 주는 느낌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문득 높은 곳에 올라 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바람 소리, 새 소리, 낙엽을 떨어뜨리는 소리로만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아 기뻤어요. “있는 그대로의 너는 참 아름다워.” 하고 말이에요. 산은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까요. 


지리산으로 이사 온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그런 산에게 기대어 산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그 존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요.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내 이웃이 된 그들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며 인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강아지에게 인사할땐 눈을 마주치지 않고 손 등을 내밀며 매너있게 인사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처럼, 나무 한 그루에게 다가갈 땐 가지 끝에 달린 작은 겨울눈과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불러보고 있어요. 가까이 다가가 손끝으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목을 길게 뻗고 높이 올려다보기도 해요. 새롭게 알아가는 이름이 하나씩 늘고 있는데 꽤 즐거운 일이에요. 


서울 회동을 곧 앞두고 입춘 편지의 주제는 ‘나의 전투복’이네요. 전투복이라니! ‘전투'라는 단어는 듣기만해도 무서운 느낌이에요. 적을 만드는 것을 무서워하는 저는 쫄보인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날 만큼은 당당하고 싶고, 멋진 아우라를 뽐내고 싶다하는 날에 입는 옷을 생각해봤어요. 


어릴 적 엄마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보여서 저도 한참 손으로 만드는 것을 배우는 걸 좋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옷만들기에요. 엄마만큼 솜씨가 좋지는 못하지만 열심히 배워서 흉내는 내보았어요. 스웨터나 가디건을 직접 짜입기도 하고 조끼와 바지를 직접 만들어 입기도 해요. 모자를 짠다던지 안입는 코트를 잘라서 가방을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나에게 전투복이란 내가 직접 만든 옷을 꺼내입는 것인것 같아요. 나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잘 전해지기를 바라는 그런 날에는 내가 만든 옷들 중에서 하나를 코디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로 만든 옷이기도 하고, 내게 가장 편안한 감촉과 품으로 만든 옷이기에 입었을때 가장 나다운 느낌이랄까. 옷을 지어입는다는 것은 그런 것인것 같아요. 오롯이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에요. 나의 몸을 떠올려보고 나의 몸짓은 어떤지, 나는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습관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를 위한 옷을 만들기가 어려우니까요. 


옷을 만드는 시간은 산만하게 움직이는 마음과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 요즘엔 손으로 옷을 만든 적이 정말 뜸했어요. 시골에 살다보니 옷도 가짓수가 많은 것은 짐만 되는 것 같아 필요없는 옷은 사지도 않고 만들지 않으려하는 것도 있어요. 취미라고 생각하고 옷을 만들었는데 가로에게 편지를 쓰면서 옷을 만들어 입는 행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네요. 나에게 이만큼이나 의미가 있는 일이었구나..! 하고요. 


최근엔 바늘을 잡는 시간보다는 누워있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것 같은데.. 몸이 자꾸 편한 쪽으로 선택이 기울때 나를 탓하기도 하고 지금의 시간들이 불편하고 불안함을 느껴요. 


가로의 문장들을 여러번 곱씹어 봐요. 나 자신을 믿고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어요. 천천히 조금씩 쉬어가는 법을 배우고 싶은 것처럼. 

종종 아름답고 사랑이 깃든 존재들 곁에서도 나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요. 내 안에 두려움을 마주칠 때마다 찾아오는 습인것 같아요. 쫄보여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줄래요. 


이 글을 적다보니 지금의 나를 충분히 안아주고 싶어요! 새로운 전투복을 만들어보고 싶은 느낌이 말랑 말랑 찾아오네요. 옷을 만드는 솜씨가 좋지는 못하지만 조금씩 배우는 재미가 있어서요. 편지를 쓰다보면 생각 속 저편에 있는 나를 꺼내게 되는 것 같아요. 편지가 온통 나에 대한 이야기라 부끄럽기도 하네요.. 가로의 전투복 이야기도 기다려져요! 


내일은 봄을 세우는 날 ‘입춘’이네요. 

가로와의 펜팔 덕에 지난 겨울은 참 포근했어요. 


우리는 어떤 봄을 맞이하게 될까요? :)


-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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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의 입춘 편지] 내가 직접 지어 입는 전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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