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KakaoTalk_20230228_131743728.jpg

디자인.칩코

 

<갈토에게>

 

안녕하셨나요? 갈토에게 편지를 보낼 때가 되면, 늘 절기가 바뀌는 때라는 걸 실감해요. 곧 우수가 다가오니 흐린 하늘을 보는 날이 많네요. 저는 새롭게 뻗어내는 나무가지들과 매화의 꽃봉우리, 가지각색 겨울눈을 구경을 하면서 입춘을 보냈어요.


아침에 이메일 체크를 한다는 갈토 이야기를 듣고 저도 모르게 숨겨 놓았던 제 모습이 들킨 양 재밌었어요. 보통 하루 일과를 마치고 느긋하게 앉아서 갈토에게 편지를 쓰는데, 다 써 놓고 그대로 잠을 자요.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더 읽어봐야 하거든요. 갈토의 답장이 빠른 편이라 저도 빨리 써서 보내고 싶지만 꼭 다시 한번 읽고 보내야 아차 싶지 않더라구요.


경찰과 대치한 상황에서 느낀 갈토의 감정이 또렷하게 와 닿았어요.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갈토를 위로하고 싶어요. 몸 다친 데는 없었나요? 당일 이태원에 없었는데도 참사 이후 압력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어요. 사방이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을 타게 되면 미세한 압박이더라도 그 날이 떠올라요. 희생자들의 당시 두려움의 크기를 저는 헤아릴 수 없겠지요. 그런데 추모하는 자리마저 대치를 해야 하니 마음이 혼란스러워요. 갈토도 그랬을 것 같아요. 내 앞의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나를 밀고 있을까. 어떤 신념으로 무엇을 지키고 싶을까 알 수 없어 슬퍼져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느낌이에요.


지리산 산악열차도 마찬가지였어요. 지난 10월, 남원에서 산악열차 시범사업 동의안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시의회에서 농성을 했어요. 건물 안 좁은 계단에서, 시의원과 이야기하고자 올라가려는 우리들과 그 앞을 막는 공무원들이 땀을 뻘뻘 내며 위태롭게 엉켜서 몇시간을 있었어요. 화를 내는 공무원, 허공을 바라보며 초점이 나간 공무원을 바라보면서 더 밀치고 싶지 않아졌어요. 그들은 어떤 명령을 받은 걸까요? 어떤 결단으로 그 곳에 있던 걸까요.


그럼에도 갈토가 또 다른 정의를 향해 사부작 하려는 모습이 멋져요. 이번에도 패스트 패션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실상을 알게 되는 만큼 마음이 힘들 수 있잖아요. 갈토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듯하면서도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사는 분 같아요. 관심 있는 주제의 다큐를 챙겨 보거나, 집회에 참여하거나, 조금 더 걸리더라도 자연을 만나는 출근길을 다니시고요. 지인이 준 옷들을 입고 다니는 것도, 친구들이 다칠까 봐 더 용감해지는 것도요. 제가 갈토 주변에 있는 친구라면 좋은 영향을 많이 받겠어요. 더 이상까지 말하면 서로 부끄러우니까 여기까지만 할게요.


이번 주제는 ‘우아한 당신’이에요. 우아하다는 말을 찾아보니 근사한 말이더라구요. 고상하고 기품있는데 아름답기까지! 이런 존재를 단숨에 떠올렸어요. 제가 살던 곳 근처에 큰 호수 공원이 있었는데, 휴일에 자주 그 곳으로 산책을 갔어요. 햇빛이 내리쬐는 호수 위에 하얀 왜가리가 있었어요. 홀로 깃털을 정리하는데 그 순간 발걸음과 시선을 빼앗겨 버렸지요. 왜가리에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한참을 쳐다보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나서야 아쉬움을 남긴 채 발을 돌렸어요.


그토록 홀려 버린 이유는 정말 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누리고 있구나 하는 감동이었어요. 세상살이에 휩쓸리고, 이런 저런 감정에 휩쓸리다가 문득 본질을 깨달은 느낌! 왜가리의 순수한 힘이 절 붙잡았나 봐요. 아마 잔잔하게 반짝이던 호수가 왜가리의 자태를 더욱 우아해질 수 있게 한몫 더했겠지만, 구름 잔뜩 낀 하늘아래의 호수라도 왜가리에게 같은 것을 느꼈을 거에요. 그 모든 게 있는 그대로 어우러져 한 장면이 되니,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겠죠!


우리 사람동물들도 왜가리처럼 지구를 누리며 살 날이 올까요? 모습 그대로의 서로를 이해하고 어울리는 거에요. 산악 열차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지 않아도, 패스트 패션을 소비하지 않아도 우리들은 충분히 멋진 삶일 텐데요. 깊숙히 숨겨둔 스스로의 본질을 찾아내면 대치 상황들 속에서 더 우아한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갈토를 곧 보네요. 오신 분들 중 누가 갈토인지 모르겠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에 신이 나요. 건강히 지내다가 만나요.


유우야드림

 

 

<유우야에게>


이번 답장이 많이 늦어졌죠? 저는 최근 감기로 심하게 아팠고 지금도 컨디션이 좋지 못해요. 오랜만에 몸이 아프다는 감각을 느껴봤네요. 몸이 아프고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 내가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과 건강함이 주는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통에 시달리고 잠을 못 자게 되니, 잠에 빠져드는 밤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되고 아프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너무 바쁘게 내 몸을 돌보지 않은 나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씩 아파야 되나 보다 싶기도 합니다. 건강을 잃었을 때, 아프지 않은 일상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삶에 대한 태도가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아무일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이 너무 그리워집니다. 제가 출근길을 걸어서 갔는데, 아프니까 그것도 못하게 되네요. 편지를 쓰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머리가 아파서 생산적인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어요. 쓰다가 마무리 못하고 미루게 되네요. 예전의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가득합니다. 평소보다 편지가 짧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우선 답장을 읽으며 경찰과 대치하며 느꼈던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서 아주 큰 위로가 되었어요. 아주 복잡한 마음이잖아요. 그걸 표현하기가 참 어려웠거든요. 근데 그걸 딱, 이해받은 느낌이었어요. 감사해요.


이번 편지의 주제가 ‘우아한 당신’인데, 진짜 한참 고민했어요. 평소 우아하다는 표현도 잘 안 쓰고, 우아한 당신을 만난 적이 있나. 생각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유우야가 왜가리를 이야기 하시는데, 아 맞다 생각이 들면서 저도 작년 겨울에 청계천을 걸었는데 그 때 봤던 새들이 생각났어요. 날씨가 추운데도 물에 긴 다리를 넣고 고고하게 서있는 이름 모를 새들이 위풍당당해 보였거든요. 어떤 새는 바위처럼 꼼짝 않고 서 있어서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물소리, 사람 소리, 차 소리로 혼란함 속에서 홀로 자기만의 세계를 온전히 지키고 있는 것 같았어요. 멋진 새에 대해서는 유우야가 이미 말했고, 저는 제 인생에서 우아함은 느꼈던 순간을 떠올려봤습니다. 

 

20230305_161759.jpg

 

문득 이 사진이 기억나서 사진첩을 오랜만에 뒤졌어요. 십년 전, 제가 여행중일 때였는데 여행 온 김에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밥먹는 시간도, 돈도 아까워서 아침에 일찍 나가서 식빵봉지 들고 다니며 돌아다니고 밤에 숙소에 들어왔어요. 여행 막바지기도 했고 체류비도 비싼 곳이다 보니 마음이 조급하기도 했어요. 그 날도 서둘러 아침 일찍 미술관 오픈 시간에 맞춰 나와서 걸어가는데 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없고 한적했어요. 아마 주말 오전이었던 것 같아요. 길가에 핀 초록이들을 만났어요. 아침 이슬을 맞았는지 물이 맺혀있었는데 그 모습에 매료되어 길에 서서 이들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어요. 미술관의 전시실에 걸린 유명한 작품들을 보려고 바빴는데, 그 그림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게 했죠. 단순히 신선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살아있는 생명체가 뿜어내는 신비로운 빛깔이라고나 할까요. 나뭇잎을 둘러싼 초록색 테두리와 나뭇잎사귀가 그려내는 추상적 선들, 도로롱 맺힌 맑은 물방울이 생명체의 힘을 뽐내는 것 같았어요. 바삐 돌아다니던 여행자인 저에게 “어이, 당신 왜 그리 바빠, 나 좀 보고가. 좀 천천히 다니라고. 중요한 걸 놓치지마”라고 말하는 대자연의 목소리로 저를 잡아 당기는 순간이었어요. 

 

우아한 당신이라는 주제를 듣고 이 사진이 왜 기억났을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저에게 우아함은 만들어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움과 힘을 갖고 있을 때 인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에게서는 찾기가 좀 어려웠겠다 싶어요. 인간은 멋내기를 좋아하잖아요. ^^ 저에게 우아한 당신은 멋내지 않음에서 오는 당당함과 생명력의 힘, 통찰력을 주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 날 제가 만난 초록이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는 것, 내 안의 고요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우아한 당신이었습니다.

 

이 주제 덕분에 내가 왜 이 사진을 좋아했는지, 왜 내가 그 순간 길가에 서서 한참 초록이들을 봤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감정을 잘 해석하지 못했거든요. 다만 내가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있고, 이건 뭔가 잘못됐어라고 느꼈고 초록색이 참 아름답다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우아한 당신과 나의 교감이 만들어 낸 순간이었어요. 십 년 후에야 그 때의 나를 이해하게 됩니다. 오래 살아야겠어요. 유우야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나의 경험을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십 년이 필요할 테니 말 입니다. ^^


먼 십년의 일은 둘째 치고 우선 당장의 건강부터 회복해야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만나기로 되어 있는데, 저는 잠을 못 이루고 있답니다. 아파서 저녁부터 잤는데 자정 전에 깨고 아직 잠들지 못했답니다. 저는 오늘 무사히 유우야님을 만날 수 있겠죠. 너무너무 기다리던 날인데, 이런 날 아프다니 속상합니다. 아침이 지나면 싹 나을 거에요. 곧 만나요.

 

갈토드림.

태그

전체댓글 0

  • 2011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우수 편지 : 유우야와 갈토] 우아한 당신과의 교감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