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6-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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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안녕하세요. 내일이 딱 경칩이네요~ 경칩의 뜻대로 겨울잠을 깨지 않고서는 못 배길 봄날의 햇살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갈토가 우아한 당신으로 뽑아 준 ‘초록이’ 사진을 왜가리 바라볼 때처럼 한참 바라봤어요. 갈토가 교감했던 그 때가 선명하게 그려지면서 저도 그날의 갈토가 된 기분이었어요. 사진을 뚫고 나오는 ‘멋 내지 않은 우아함’이 더 근사해 보이는 것이, 지난 회동에서 제가 본 갈토의 모습과도 비슷했답니다.


몸은 회복되었나요? 지난 편지 초입부에 적어 준 갈토의 마음들을 몇 번이고 읽으면서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에 감동하고, 건강함과 단조로운 일상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면서 겸허해져요. 저도 아팠던 때 똑같은 감정을 느낀지라 더 와닿았어요. 참, 이사는 어떻게 돼 가고 계신가요? 실제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니 묻고 싶은 안부가 늘었네요! 갈토는 유우야가 도무지 누군지 모르겠다 하셨지만, 저는 아픈 갈토를 보면서 내 짝꿍 아파서 어쩌나 걱정도 하고, ‘유우야를 보러 왔는데 나만 들통났다’는 말에 웃겨서 내적 호들갑을 떨기도 했어요. 혼자만 웃고 싶었던 건 아닌데… 2월 회동에서는 서로 비밀인 채로 만나는 것이라고 좀 더 확실한 설명을 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어설프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ㅠㅠ


그리고 갈토가 자랑하고 싶은 만큼 좋은 짝꿍의 편지 구절에서 제가 왜 갈토의 감사 일기 문단을 선택했는지 궁금해하셨지요. 사실 자랑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너무 많았는데 고른 문단마다 한 문장씩 갈토의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게 조심스러워서, 제외하고 고르다 보니 첫 편지의 감사일기 문단이 나왔어요. 그런 구절들은 앞뒤 내용이랑 함께 읽어야 제 맛이 나서 뽑기가 주저되었어요.


아무래도 제가 그렇거든요. 저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해요. 제 이런저런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까지 오래 걸려요. 좋아졌지만 아직도 연습 중이랍니다. 문득 지하철에서 추억에 빠졌다가 눈물이 왈칵 해버린 날엔 숨을 곳도 없어요. 남들이 볼까 봐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훔치느라 슬픈 추억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요, 길을 지나가던 누군가 저를 툭 치고 가버리면 뒤를 돌아보면서까지 째려봐요. 가끔은 소리를 지를 때도 있어요. 그러면 이런 걸로 화를 낸다며 제 자신을 혐오하게 돼요. 또 다들 웃지 않을 때 혼자 웃어버린 적도 있어요. 그럼 눈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민망해져요. 그 순간, 다른 사람의 감정은 다 옳고 저만 틀린 사람이 돼요. 모두가 제 감정이 틀렸다고 말해도 제자신만큼은 저를 이해해주었다면 나만 틀린 사람이 되진 않았을 것 같아요. 

 

이게 잃어버린 초심 아닐까요? 처음부터 제 감정들을 혐오하진 않았거든요. 아직도 기억나요. 다른 감정은 모르겠지만 분노의 감정만큼은 초등학생 때 느껴보고 정말 신비로웠어요. 아 심장이 쿵 내려앉더니 부글부글 거리고 얼굴이 굳어버리는 것이 화가 난거구나, 나 지금 화가 난 게 맞다! 하고요. (왜 화가 났는지는 조금 더 나중에 말할 수 있게 되길 바라요. 아직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전에는 혐오하고 우울해지면서 상황이 끝났지만, 3년 전에 명상을 배운 후로는 창피해하는 모습을 이해해주고 있어요. 혐오하는 자신을 토닥여 주기도 하고요! 남들 진지한데 혼자 웃어버리면 난 왜 웃음이 났는가 끝까지 추궁해봐요. 그럼 저를 알게 되는데 도움이 되더라구요. 역시 저도 오래 살아야겠어요. 경험치가 쌓이다 보면 해석 능력치도 올라가게 될 것 같아요! 그럼 아마 갈토의 말을 빌려서, 갈토가 10년만에 알게 된 감정을, 다음에는 5년만에, 그 다음에는 더 빨리 알게 되지 않을까요?


갈토의 물음에 솔직한 답변을 하고 싶어서 고심하다 보면, 알게 되는 제 이야기가 많아서 고마워요. 이번에도 왜 그 글을 선택했는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닫고 기뻤어요. 갈토에게 참 고맙습니다. 더 물어봐 달라는 뜻으로 오해는 마세요.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스스로가 치유되어 용기를 쌓아가는 느낌이에요.


편지 마칠 때가 되니 갈토의 잃어버린 초심이 점점 더 궁금해져요. 이사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지리산의 봄바람처럼 시원하고 가벼운 기분으로 준비하시길 바라요! 건강하세요!


유우야드림

 

<유우야에게>


유우야 안녕하세요? 저만 들통이 나서 아주아주 부끄럽고 심술이 납니다. ^^ 알고 갔으면 연기를 좀더 할 수 있었을 텐데. 몸이 아파서 정신도 없고 상황 판단이 잘 안되었습니다. 내 짝꿍을 홀로 두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 몸을 이끌고 갔는데 나만 들켰어!!! ㅋㅋㅋ 전 유우야가 누굴까 추측하며 예상되는 분을 좁혔지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 분이겠거니 생각하며 글을 쓰기로 했는데, 글을 읽어보면 또 그 분이 아닌 것 같고. 사월까지 기다려야 될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 프로젝트는 놓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귀한 경험인 것 같아요. 낯선이에게 편지를 받고, 편지를 쓰는 설렘과 감동을 느끼는 소재는 영화에서도 다뤄지기도 하고. 뭐랄까 고전적 의사소통과 교감의 방법인데, 어느 순간 우리는 이러한 노력은 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아요. 저는 소설, 영화, 드라마를 무지 좋아하거든요. 이 셋의 공통점은 ‘이야기’인데요. 저는 이야기가 좋아요. 이야기를 통해 감동받고, 나를 돌아보고, 치유되기도 하고. 

 

근데 편지를 쓰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또 다르더라고요. 소설, 영화, 드라마보기는 수동적이잖아요. 비록 내가 시간을 내야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생산해내지 않고 받아드리면 되는데, 편지를 주고 받는 건 내가 능동적으로 글을 쓰고 생산해내는 작업이고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나의 경험을 반추해보기도 하고 정리할 수도 있어서 교감이 극대화되는 것 같아요. 물론 무언가 숙제가 있다는게 부담은 되지만, 그 숙제를 끝낸 성취감과 그 보상으로 답장을 받는 것도 일상생활에 드문 소소한 행복입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 나를 칭찬해줘야지. ^^ 그리고 지난 번에 만났을 때 유우야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누군지 모르니 말 못했어요. 유우야의 편지 무지 반갑고, 고맙습니다.


이번 주제가 잃어버린 초심이군요. 흠, 어려운 주제네요.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기분. ^^ 초심이라고 하니, 나에게 잃어버릴 초심이란게 있나 싶습니다. 초심은 나의 모습 중 일부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처음 마음인 것 같은데 성격, 가치관이란게 정말 바꾸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변화되는 나를 포기하고 그냥 나를 받아드리기로 한 것 같아요. 그냥 초심을 안 만드는 거죠. 순간을 열심히 산다, 느리게 조금씩 내가 간절히 원하면 변하겠거니, 생존본능 차원에서 그렇게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요.


저는 친구를 깊이 있게 소수로 사귀는 편이거든요. 제가 예전에 해외봉사활동을 갔을 때 A가 봉사활동을 마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면서 저에게 마지막 인사로 “나는 너를 좋아해”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 때 제가 좀 충격을 받았어요. 왜냐면 봉사활동하면서 참 좋은 사람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그 사람에게 나와 친구 될 기회를 주지 않았거든요. 나를 둘러싼 나의 감정의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내가 원하는 사람만 그 안에 들어오게 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잘 다가가지 않아요. 그 때 그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했을 때, 그 서운함이 느껴졌어요.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라고. 그 사람도 참 좋은 사람인데, 그 사람을 알아갈 기회를 내 스스로 놓치고 후회했어요. 

 

살면서 종종 선배들에게 친구들에게 그런 피드백을 받았어요. 넌 친한 사람한테는 다 줄 것처럼 구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차갑다고. 그 경험을 한 후 내가 친구를 선택하지 않고, 나를 친구로 하고 싶은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자고 마음 먹었어요. 근데 참 사람이 변하기 어렵더라고요. 나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틈을 안 주는 거에요. 그럴 때마다 좀더 친구의 폭을 넓혀보자고 스스로에게 얘기해봤지만, 어느 순간 그냥 이게 내 성향인가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바꾸기 어렵고, 나의 소수의 친구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충만한 우정, 사랑을 주고 받고 있고, 가볍게 사람을 만나는데 소질이 없어요. “넌 너무 진지해”라는 얘기를 들으면 그래서 기운이 좀 빠져요. 관계를 중시하고 진지하게 맺는 건 저의 큰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가벼운 관계를 유지할 바에는 외부인으로 두고, 내 사람들을 소중히 잘 챙기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는데 무슨 친구를 더 만드나 싶고. 하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하지 않나란 생각도 들어요. 새로운 친구가 생기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거잖아요. 어렵다. 타고난 성격이라는 핑계로 초심을 잊고 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참, 신기한 건 오랫동안 저의 친구로 옆에 머물러주는 이들이 한결같이 진지한 사람들이에요. 끼리끼리 논다고. 근데 가끔 안 진지하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 가끔 가볍게 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해요. 저 욕심쟁이인가요? 결론은 초심은 없고 욕심쟁이였다.


이번 주제는 어렵게 느껴져서 답장을 써두고 여러 날 붙잡고 있었어요. 다시 써야 하나, 뭘 써야하나 고민하다 처음에 적은 글을 조금 수정해서 보냅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더니, 다시 추워지네요.

저는 3월 말에 이사를 하게 되어서 두루 두루 바쁜 나날들을 보낼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


갈토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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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 편지 : 유우야와 갈토] 그냥 나를 받아들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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