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9-2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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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가로에게>

오늘은 사람들과 화엄사 계곡에 나무를 보러 다녀왔어요. 혹시 그거 알아요? 나무 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표정들을 찾을 수 있어요. 아까시나무 잎자리는 양쪽에 달려 있는 가시와 어울려 꼭 도깨비 얼굴 같기도 하고, 물오리나무는 잎자리는 꼭 웃고 있는 아이 얼굴 같기도하고요. 가래나무에는 음매~하는 염소 얼굴이, 합다리 겨울눈은 꼭 강아지 발처럼 생기기도 했어요. 누가 또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고 찾아보는 재미도 있어요. 

잎도 다 떨어지고 벌거벗은 초라한 것이 겨울나무라고 생각했는데, 겨울 나무에는 재미있고 신비로운 것들 투성이에요. 겨울이 아니면 보기 힘든 것들이기도 하지요. 화려한 잎을 다 떨구고 지나온 역사를 온전히 꺼내 보여주는 것이 겨울나무인 것 같아요. 2년전 끝눈의 흔적, 잎이 달려 있던 자국, 불안해서 내밀어보는 맹아, 동물친구들이 시원하게 등을 긁었던 흔적도. 나무 한그루에 온갖 이야기가 들어있어요. 

겨울 나무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은 제 일생에 가장 운이 좋았던 일이에요. 덕분에 숲에서 눈인사를 건네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산달리기를 좋아하는 가로에게도 겨울 나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문득 추천해주고 싶었어요. 산달리기를 하며 응원을 건네주는 나무 친구들이 많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일 것 같네요. 

겨울눈을 들여다보던 사이 봄이 성큼 다가와있네요. 옷을 가볍게 입고 외출할 수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한 매일이에요. 따뜻한 햇살이 함께 걸어주는 산책길이 외롭지 않아요. 바람을 타고 오는 매화 향기가 최면을 걸어오는 것처럼 눈을 감게하기도 하고요. 눈을 감으면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 적 외할머니댁을 향해 혼자 걷던 뚝방길로 데려가주어요. 외할머니댁에 가는 일은 늘 설레는 일이었어요.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에 차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을 홀로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내리면 40분이 넘도록 어두운 시골 길을 걸었던 날이 기억이 나요. 용감하게도 7살 아이가 혼자서 외할머니댁을 찾아가던 길을 매실나무 꽃 향기가 그 길을 외롭지 않게 함께 걸어가주던 기억이에요. 무사히 외할머니댁에 도착했던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날이었어요. 여전히 혼자 걷는 길 위에 늘 누군가 나와 함께 해주고 있다고 믿어요. 매화꽃 향기일수도 있고, 은은한 달빛일 수도 있고, 개굴개굴 개구리 소리로. 

가로에겐 어떤 잊을 수 없는 향기가 있나요? 
봄날의 기운을 담뿍 담아
 
토토
 
<토토에게>

토토 전 매일 토토가 보내준 편지를 밤마다 읽지만, 오늘이 가장 편안한 밤인 것 같아 편지를 써요. 오늘밤 토토는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까요. 아, 잊을 수 없는 향기라 잊을 수 없는 향기,, 다 잊은 것 같으면서도 어느 날 내 심장을 쿵하고 멈추게 하는 그런 때가 간혹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정말 많이 사랑했던,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를 가진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정말 미안하지만 당신은 그 향기가 참 안어울리네요,, 나를 욕해도 좋아요. 그 향기는 내가 정말 많이 사랑했던 사람의 향기라서요... 조금은 못되고 이기적인 생각을 해요. 나는 내 사랑이 너무도 특별한가봐요. 내 소중한 내 사랑을, 내 추억을, 내 향기를 그대로 잃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서, 오래오래 내 심장을 쿵하고 멈추게 하고 싶어서.

참 신기하게도 향기라는 것은 단순히 냄새만을 뜻하는건 아닌거 같아요. 냄새 속에 담겨진 나만의 이야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오래오래 잊지 않고 그리게 될 기억, 추억. 결국 나는 당신을, 그 시간을 다시 사랑하게 될 것을 왜 알지 못했나, 결국은 나를 잊지 않게 되는 것.

그런데 글을 쓰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또 있네요. 잊을 수 없는 향기는, 내가 오래전 잃어버린 향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잃어버렸다가 찾지 못한 그런 향기. 그래서 내가 먼저 찾지는 않지만, 너무나 그리워하는 거 같아요.

토토 우리의 질문이 좋아하는 향기가 무엇인지를 물었다면 우리의 대답이 조금은 달랐을거에요. 우리가 좋아하는건 왠지 닮았잖아요. 우리는 나무들도 좋아하고 숲도 좋아하고 산도 좋아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가리지 않고 계절을 다 좋아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토토는 겨울나무의 표정도 찾아주고 이름도 찾아주고, 지금은 그들의 향기가 제일 좋은데, 지금의 향기를 잃어버릴까봐 걱정도 되고. 한편으론 또 우리가 진짜 그리워하는 추억하는, 잊지 못하는 향기는 왠지 사람의 따듯한 온기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잊을 수 없는 향기, 불쑥 또 찾아와주길.
너무 외로워지기전에.

토토의 천천한 봄밤을 기도하며, 가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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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편지 : 토토와 가로] 불쑥 또 찾아와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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