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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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 안녕하세요! 아마 새로운터전에서 읽고 있겠지요?

발굴 조사도 해보고 선생님도 해보고, 갈토는 경험도 많고 냄새에 대한 추억도정말 많네요!‘ 전쟁같은,욕망이 분출하는 냄새’라는 표현력이 참신해서한참 웃었습니다. 여고였던 저도 체육시간이 지난 다음 수업에서는 냄새에 민감해진 서로를 건드리지 않는 암묵적 룰도 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청소년 때 뛰놀던 냄새는 잊을 수 없지요.


발굴조사를 할 때 토지신에게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는 것을 갈토를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갈토처럼 저도 비슷한 입장이어요. 개발되어야만 했는가 하는 마음이요. 콘크리트 바닥을 걷거나 높은 건물들을 보면 종종 상상해요. 옛날에 이곳은 어떤모습이었을까 하고요. 그러다보면 한번도 보지 못한 그 땅들이 그립기까지해요. 역사적 자료를 소중하게 대하는 것처럼, 흙도 나무도 유기체도 그렇게 존중받으면 좋겠어요.


이번 주제는 ‘나를 바꾼 꿈’이네요.전 꿈을 생생하게 꾸는 편인데요. 이 주제를 듣고 바로 떠오른 따끈한 소식이 있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구례에 집을 얻게 되었어요. 구례는 늘 빈집이 생기면 의정부장인한과(지금 먹고 싶네요.)티켓팅의 속도만큼 순식간에 팔렸는데요. 이번엔 정말 기쁘게도 제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3년을 기다린 보람이 들어요.저도 봄까지는 이곳 생활을 마무리 짓고, 여름부터는 지리산에서 살 것 같아요.드디어 저도 정착하나봐요. 계약을 다 마쳤음에도 사실 못 믿겠는 심정이에요. 갑작스레 다른 세입자가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만 같고요. 그래도 어떻게 집을 꾸릴지 생각하며 설레는 요즘입니다.


신기한게 있어요. 제가 집을 얻은 당일, 지리산의 한 친구네서 자다가 똥꿈을 꿨다는 거에요. 정말 작은 똥이긴 했지만 만지기까지 했어요. 일어나서 잠이 덜 깬 상태로꿈을 더듬으며 친구들에게 나불나불했는데 그날 밤 그렇게 빈집 소식을 들었어요. 검색해보니 똥꿈은 재물과 관련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예지몽이었던걸까요? 저는 턱이 다물어지지 않는 꿈, 머리카락 여기저기에 불이 붙는 꿈,귀신이 일주일내내 쫓아오는 꿈, 살아있는 돼지를 만지는 꿈등 기억에 남는 꿈이 많은데도꿈해몽과 맞는 일이 일어난 적은 없었거든요. 제가 의식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똥꿈을 꾸고는 저에게도 예지몽이 있구나, 기적이 오는구나! 생각했답니다.


참 꿈이라는 게 사는데 소소한 재미를 주는 것 같아요. 그냥 잠자고 일어나는 것보다 꿈꾸고 일어나면 하나의 이야기를 밤새 겪고 온 기분이 들어요. 꿈이 감정상태 파악에도 도움이 되고 예지도 해주고요. 언제는 명상센터에서 열흘간 진지하게 명상을 했었는데, 저뿐만 아니라 수련생들 대부분이 꿈이 생생해지는 경험을했었어요. 명상을 하면 정신이 또렷해져서 꿈도 선명해진다고 지도법사님께서 말씀해주시더라구요. 재밌거나 원하는 꿈을 꾸면 내용을 잇고 싶어서 다시 자기도하고, 정말 일상에 재미도 주지만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이에요.


갈토는 이사 무사히 마쳤나요? 동네 구경도가보셨나요? 이사하기전과 또 다른 마음일지 어떨지 궁금해요. 터전을 옮기고 적응도 해야하니 마음이 뒤숭숭하기도 하겠지만 다양한 냄새로 추억을 간직하는 갈토에게 또 새로운 냄새들이 찾아오길 바랄게요!


그리고 <지구 끝에 온실>책을 추천해주어 고마워요. 주변에서 정말 많이 읽어 보라고 한 책인데, 제가 책과 워낙 못 친해서 아직도 미루고 있었거든요… 갈토마저 추천해주니 이번에야말로 꼭 읽어야겠어요. 그럼 갈토, 화창한 4월 보내세요.

이만 유우야드림.

 

 

<유우야에게>


유우야~ 드디어 지리산에 살게 되시는 군요. 축하축하 축하드립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터전 마련이니, 얼마나 좋으실까 싶습니다. 많이 설레고 긴장도 되시죠? 저도 이번에 전세계약 할 때, 좀 큰 돈이라 얼마나 긴장했나 몰라요. 이 돈이 다 집으로 들어가다니 하면서. ㅋㅋㅋㅋ 어떤 집을 터전으로 찜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새로운 터전에서 첫 편지를 씁니다. 하지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서 어수선해요. 약 2주간 짐싸고 정리하고 일도 하고 친구와의 약속도 지키느라 너무 피곤하네요. 제가 갖고 있는 물건이 참 많더라고요. 매일 보물찾기를 하고 있어요. 이걸 어디다 뒀더라, 새로운 공간에서는 어디에 둬야하지 등, 그동안 익숙해졌던 리듬에서 벗어나서 일상의 아주 작은 것들의 위치가 모두 변하니 기억을 해야할 것들도 많고 몸도 많이 움직여야 하네요. 아직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매일 매일 변화를 조금씩 흡수하고 있습니다. 감사 일기도 밀려서 일주일치 쓰고 어떤 날은 포기도 하고. 빨리 일상을 찾고 싶네요. 그래서 답장도 늦어졌어요. 좀더 일상을 찾은 후 편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싶은데 아직도 정리가 안 끝났고 저의 인내심과 체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를 바꾼 꿈’이라, 가장 기억나는건, 죽은 사람을 만나는 꿈인 것 같아요. 십년도 전의 일이라 이제 꿈은 생생하지 않은데, 갑작스런 죽음에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세상은 어떻든 돌아가고 사람들은 웃고 즐기는데 그때는 어떤 것도 즐겁지가 않았어요. 이별로 인한 슬픔과 고통이 얼마나 오래갈지 그 깊이를 알 수 없어 어둠에 갇히지는 건 아닐지 두렵기도 했고. 

 

몇 달이 지나고 꿈에서 만났을 때, “나는 괜찮아”라고 말해주며 편안해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내가 참 그리웠구나, 나에게 괜찮다고 다시 만날때까지 잘 지내라고 이렇게 인사를 해주러 왔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그의 몫까지 더 재미있게 열심히 살아내는게 내가 그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에 보면 죽음으로 인한 이별로 슬픈 사람들이 종종 꿈에서 그 사람을 만나고 위로를 받기도 하고 인사를 나누기도 하는데, 제가 그걸 경험한 것 같아요. 신비롭고 귀한 경험이었어요. 나를 위해 내가 만들어 낸 꿈일까요? 아니면 꿈이 그를 만날 수 있는 다리 연결을 해주었던 걸까요?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큰 상실감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꿈에서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정말 큰 위로가 되었거든요. 꿈에서라도 만나서 너무 반갑고 너무 슬펐던 꿈, 나를 살게 한 꿈이었는데, 오랫동안 잊고 지냈네요. ^^

 

저는 꿈을 많이 꾸고 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무언가 초긴장, 스트레스가 많을 때는 꼭 지각하는 꿈을 꿔서 일찍 일어나요. 제가 무언가에 지각을 싫어하는 타입이라서 꿈에서 지각하면 그 상황자체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게 되거든요(이번 답장을 제때에 쓸 수가 없어서 스트레스가 꽤 되었습니다 --;;). 꿈에서 이미 1차 스트레스를 받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운 덕분에 지각을 하지는 않게 되는 것 같아요. 꿈이 일상과 연결되고 데자뷔 같을 때도 종종 있어요. 그래서 저는 꿈을 다 기억하고 싶은데, 잊어버려서 속상할 때도 있어요. 꿈을 해석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내 꿈이 괴이하기도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꿈을 덜 꾸고 좀 더 숙면을 취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지만 이 꿈들이 사라지면 자는 동안 심심할 것도 같아요. 자는 동안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나의 이 작은 머릿속이 참 용하기도 하거든요. ‘너는 쉬지도 않니? 안 피곤하니?’ 라는 생각이 들정도. ㅋㅋㅋ

 

그리고 꿈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기도 해요. 예전에 헤어진 연인이 1년 내내 꿈에 나와서 정말 잠드는 게 싫어질 정도 였거든요. 제 생애에 그렇게 꿈에 자주 등장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제가 그 헤어짐이 감당이 안되어서 였는지. 1년을 괴롭히더니, 제가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만 하면 꿈에 나타나서 저의 새로운 만남을 방해했습니다. 이전 관계에서의 감정을 정리 못한 것이 꿈을 통해 들통나서 새로운 인연을 맺는게 잘 안되더라고요. 내 안의 욕망이었던 것도 같아요. 새로운 만남을 시작할 용기도, 욕구도 없었는데 주변에서 소개해준다 만나봐라하면, 만나는 보는데 마음 깊숙이에는 ‘아직’ 누군가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줄 때가 아니었던 거죠. 마음이 좁은 건지, 문이 까다로운건지, 여튼 마음의 문 참 못 열어줘요.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전연인이 꿈에 나타났는데, 막판에는 호러로 끝맺음을 맺었습니다. 꿈의 내용이 부적절하여 공개할 수는 없는데, ^^ 여튼 저의 꿈의 세계는 놀랍답니다.

 

편지 마감일에 도저히 생산적인 글쓰기가 어려워 아침에 일찍 일어나, 겨우 답장을 마칩니다. 쓰다보니 생각나는 꿈이 여러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편지가 조금 늦어진 점 양해바랍니다. 요새 산불이 너무너무 많이 나서 걱정이 많습니다. 너무 건조하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인 것 같은데, 더 이상은 산불이 나지 않으면 좋겠네요. 무사하고 즐거운 4월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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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편지 : 유우야와 갈토] 나를 위해 내가 만들어 낸 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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