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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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청명편지, 돌에게>

 

아아 돌,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편지에 쓰인 말들로 돌의 하루를 자세히 다 알 순 없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그저 모두 다 괜찮다고 안아주고 싶어요. 포옹과 온기를 편지에 마음 담아 보내니 잠시라도 눈을 감고 받아주세요. 끈덕지게 늘어지고, 축축 처지는 몸과 마음을 겨우 부여잡고, 밖으로 나와 자신을 세워두는 돌이 안쓰러웠다고 제가 감히 말해도 될까요? 동시에 우리의 펜팔이 멋진 문장을 만들어내기 보다 솔직한 삶의 일부를 들려주기 위한 것임을 상기시켜준 돌에게 위로를 받기도 했고요.

 

이번 돌의 편지를 보면서 ‘앗 내가 쓰고 싶었던 말들인데, 우리 참 닮았다!’하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나도 비염인인데 그래서 향에 무감했겠구나 하는 뒤늦은 깨우침도 있었고, 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야만 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것도요. 돌의 몸은 좀 더 누워있자고 하는 것 같은데 돌의 마음은 누우면 더 우울해지니 그러지 말자고 하는 것 같네요. 사람들 사이에서 눈을 반짝거리는 돌의 바깥세상과 바닥에 누운 채 별 수 없이 무기력함을 느끼는 돌의 심연이 꼭 낮과 밤처럼 여름과 겨울처럼 꽃과 낙엽처럼 느껴져요.

 

제가 사는 구례는 지금 벚꽃축제가 한창이에요. 사람들은 정말 꽃을 좋아해요. 여러 꽃들 중에서도 특히 눈이 부실정도로 희고, 화려한 벚나무를, 그것도 한 그루만으로는 모자라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쭉 이어지는 꽃길에 다들 홀려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로 꽃을 보느라 가던 발걸음을 종종 멈춰서요. 매년 벚꽃축제를 여는 구례에 살게 된 덕분에 꽃을 구경하러 찾아온 손님이라는 뜻의 ‘상춘객’이란 단어를 올해 처음 알았어요.(제 모자란 어휘력에 돌이 너무 놀랐지 않기를 바라요.ㅎ) 단어가 있을 정도로 인간들의 꽃구경은 유구한 역사를 지녔구나 싶었어요. 겨우내 가장 길었던 밤을 지나 해의 시간이 다시 길어지며 찾아오는 봄, 그리고 그 봄에 피어나는 꽃이 반가울 수밖에 없겠죠. 그토록 보고 싶을 만큼 생긴 것도 예쁘고, 꽃비가 되어 떨어지는 모습조차 예뻐요.

 

그런데 저는 올해 벚꽃을 보며 예전만큼 감탄스럽지가 않더라고요. 사방천지가 벚나무라 벌써 질려버린 걸까? 그건 아닌데, 왜 그럴까? 잠시 고민해보니 올해는 벚꽃 피기 전부터 봄을 알리는 신호들을 이미 많이 만났더라고요. 더욱 세차진 개울물 소리, 꽃씨를 심어둔 모종에 싹이 올라오는 모습, 하루가 다르게 맨바닥을 덮어가는 초록 풀들, 그리고 거기에 핀 좁쌀 크기의 꽃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연둣빛 잎이 총총히 뿌려진 모습, 더욱 풍성해진 아침 새소리, 날씬해진 참새 얘기는 제가 벌써 했지요! 이러니 벚꽃만 쭉 줄지어있는 도로가 보기에 예쁘긴 해도 어색해졌어요. 아마 이 어색함은 ‘여기 작은 풀들도 조용히 봄을 알려오고 있었는데..’하는 아쉬운 마음 같아요. 그리고 꽃이 다 지고나면 발걸음을 뚝 끊을 상춘객들에게도 미리 서운한 마음이 들었어요. 누가 봐도 빛나고, 아름다운 것에만 관심 주는 세상에 대한 괜한 심술일까요?

 

돌, 돌이 바깥에서 느꼈을 의지, 열정, 희망은 돌이 어두운 밤의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해가 물러간 뒤라 눈에 잘 띄지 않아도 분명 돌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피어나고 있을 거예요. 잠든 새 키가 크는 아이처럼, 꽃이 진 후에 맺힐 수 있는 열매처럼, 빛바랜 이파리를 모두 떨어트리고, 볼품없어 보여도 어느새 꽃눈을 품고 있는 나뭇가지처럼.. 하루 종일 데구르르 굴러다녔을 돌이 비로소 멈춰 선 밤이 그래 보여요.

 

어쩌면 저는 제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돌에게 해주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신기하게도 우리는 타인을 위한 기도를 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자기의 문제에서 해방되는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솔직한 일상을 공유해주어서 고마워요. 돌의 편지를 읽을 때면 돌이 가진 단단함에 기대어 제가 참 든든했어요. 그러니 좀 쉬면 어때요?! 지리산을 마음 한 켠에 품음으로서 소망하는 세상에 한 발 가까워졌다 말하는 돌의 열정과 희망을, 반짝 반짝 빛나던 순간들을 천천히 더 듣고 싶어요. 그러려면 굴러가는 돌을 곁에 붙잡아둘 수밖에 없겠어요!ㅎㅎ

 

이번 청명편지는 정해진 주제로 쓰지 않고,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했어요. 하루 빨리 응답을 보내고 싶었나 봐요. 돌도 저도 어제보다 조금 더 평안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게요. 편지 쓰기가 힘들만큼 바쁘고 지칠 때면 망설이지 말고, 얘기해줘요 기간을 조정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이만. 짹짹!

 

2023.4.2. 참새로부터

 

 

<참새에게>

 

참새, 괜찮다는 토닥임으로 시작하는 편지라니.. 제 속에 울음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읽다보니 울컥했어요. 지난 춘분 때 나름 안정을 다잡으며 책상 앞에 앉았고, 그렇게 편지를 쓰며 작은 평화를 찾았었어요. 그럼에도 제 끈덕진 기분들이 여실히 참새에게 다 전달됐나봐요. 편지를 통해 떠나보냈던 걸까요. 2주가 지나 저는 바닥에 딱 붙어있지 않을 수 있게 되었어요. 참새의 편지를 받은 날부터 몇번을 다시 들여보면서, 그때마다 제 상태가 조금씩 달라져 있는 것도 신기해요.

 

참새, 저의 눈빛과 바깥세상을 또 무기력과 심연을 연결해 일러주고, 낮과 밤, 여름과 겨울, 꽃과 낙엽으로 불러주어 한 번 더 고마워요. 스스로도 믿지 못한 의지, 열정, 희망에 이름 붙여주어 고마워요. ‘볼품없어 보여도 어느새 꽃눈을 품고 있는 나뭇가지’처럼 봄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할게요. 제 몸의 소리를 그렇게 들어야겠어요. 저로서는 스스로에게 할 줄 몰랐던 벅찬 말들을 참새는 매번 해주어요.

 

봄이에요. 불이 나고 비가 왔다가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는 이상한 봄이지만요. 저도 상춘객은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봄을 알리는 신호라며 참새가 전해준 신호들을 세 번 곱씹어 읽었어요. 개울물, 싹, 풀, 꽃, 연둣빛 잎, 새소리, 날씬해진 참새까지. 지리산 자락 구례에서의 봄은 이렇구나. 참새가 만나는 봄은 이런 장면들이구나. 열심히 이것저것 떠올리며 읽었어요. 그저, 들려주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꽃이 빨리 피고 또 지는 일이 왜 문제인지 알려주는 뉴스를 봤어요. 저만 벚꽃이 빨리 폈다고 느끼나 했는데 실제로 그랬나봐요. 오며가며 사진도 찍고 꽃구경을 했었고, “너무 빨리 폈어, 이상해!”라는 친구의 얘기에 “그러게”라고만 답했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맞았어요. 이른 개화가 꿀벌과 멸종 위기 식물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대요. 기온은 빠르게 상승해 나무의 꽃은 일찍 폈지만, 땅속 온도는 천천히 오르기 때문에 땅속에서 월동을 하는 많은 야생벌들이 아직 나올 시간이 아니라는 거죠. 벌은 먹이활동을 할 수 없고, 꽃과 식물들은 그만큼 수분을 못하겠지요. 적어도 내년까지는 영향을 미치는 일인 거예요.

 

기온이 오르는 것처럼, 위기의 징후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늘어만 나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전국적으로 크게 화재가 났지요. 지리산은 괜찮았는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방랑단이 칩코의 일기와 기자회견 소식을 올려준 것을 봤어요. 나무들이 타는 냄새부터 부고 소식까지 20년 사이 최대규모라는 게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어요. 무엇보다 화재가 자꾸 커지는 죽음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는, 숲이 스스로 재생할 수 있도록 놔두는 일이라는 말이 감사했어요. 우리는 매년 산불이 날 때마다 같은 얘기를 하는데 왜 재난은 자꾸 반복될까, 하고 암담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더 선명하게 말해주는 이들 덕분에 다짐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제가 지리산보다는 정부와 (거리 상으로도, 관계에서도) 가까이 있음을 느끼는 지점이기도 했어요. 숲이 어떻게 회복하는지를 자주 들르며 옆에서 본다면, 저도 마음 깊숙이 재생을 믿고 숲의 지혜를 말할 수 있을까요.

 

특히 근래에 저는 더 많은 이들이 다른 무엇이 아닌 자신의 삶으로부터, 사회-세상을 만나고 반응해온 경험으로부터, 바라는 상으로부터 언어를 만들어가길 바라며 애쓰고 있어요. 다른 이들의 삶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 아픔, 폭력을 보면서 동시에 제 삶에는 그러한 가치를 부여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 이야기가 정말 다른 생의 목소리와 공명하고 있나하고 물음표를 띄우기도 해요. 그럴 수록 제 가치를 의심하기보다는, 공명하는지 직접 찾아가고 호흡과 소리를 맞춰보고 듣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방랑단이 방구일기를 통해 전해주는 지혜들이 저에게는 응답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에요.

 

저도 이번 편지는 주제와 무관하게 썼어요. 참새와 방랑단의 이야기에, 지구 곳곳에서 나는 소리를 차분히 마주하는 일에 집중했어요. 일찍 도착한 편지를 받자마자 읽고선 쓰고 싶은 이야기를 한 가닥 적고, 다음 날 다시 곱씹고서 또 한 가닥 적고, 그렇게 마지막 날 오늘 완성했어요. 한 주를 꼬박 같이 한 편지를 보내보아요.

 

서울은 오늘 강풍이 불어 조심하라던데, 일상의 것들은 튼튼한 뿌리로 버티고, 둥둥 떠다니는 잡념과 어려움은 같이 날아가길 바라봅니다. 참새의 평화를 전하며, 굴러가요 데구르르-

4월 11일, 청명, 참새에게

일곱번째,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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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편지 : 참새와 돌] 스스로 재생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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