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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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칩코

 

<갈토에게>


갈토의 축하를 받으니정말 기쁩니다. 이번에 며칠 내려가서 새 집과 짧은 인사도 나눴어요. 갈토도 이 편지를 받을 때 즈음은 보물찾기 횟수가 줄었을 것 같아요. 조금 익숙해졌나요? 편지를 늦게 보내는 것은 정말 괜찮아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갈토처럼 지각을 원치 않는 타입이라 갈토가 얼마나 스트레스였을지 이해가 되어요. 저는 단 1분이라도 지각하면 끝도 없이 미안해집니다. 옛날 사람들은 달이뜨면 만나자, 초하루날 만나자는 등 낭만적인 약속을 했다는데, 시계 같은 저는 그게 잘 안돼서 아쉽기도 해요. 우리 서로가 그런 점에서 비슷한 마음으로 살았으니 더더욱 이 편지로 마음껏 지각해보면 어때요? 지각하는 사람도 되어 보고 늦어도 된다는 다른 마음으로도 살아보는 거지요. 하하 갈토의 인내심과 체력이더 소중하니, 일상을 찾고 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면 꼭 말해주세요. 이미 그렇게 편지 기간을 기존보다 늘린 펜팔팀도 있고요!


제가 찜한 집은 펜션으로 쓰이던 원룸인데 스트로베일 하우스라고 하더라구요. 볏짚을 바싹 말리고 압축해서 만든 집이래요. 이 방식이 생태적이기도 하지만 보기에도 예쁘더라고요! 처음 알게 되었어요. 또 읍내가 가깝고 친구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점이 살고 싶은 이유였어요. 5월 회동 때 제 집과 이웃 마을인 곳에 숙소를 마련해 두었으니 갈토에게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갈토가 회동에 꼭 올 수 있어야 할텐데요. 일정이 바뀌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이번 주제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어찌보면 앞서 말한 시계 같은 모습과 비슷한데요. 저는 뭐든지 칼같이 나누는 버릇이 있어요. 시간도 딱 맞춰서 장소에 나와 있어야 하고, 다같이 먹어도 칼같이 나눠서 돈을 지불하기를 좋아해요. 누가 사준다고 하면 기어코 갚아야 성이 풀리고, 먹지 않은 것까지 동의 없이 내는 상황에선 몇 천원도 억울해져요. 각자 먹은 것을 돈으로 십원단위까지 나눴을 때 딱 맞게 떨어진다면 희열을 느껴요.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친구랑 여러 개의 빵을 나눠 먹는데, 스콘을 양보한 친구에게 치아바타를 다 먹으라고 했어요. 제 나름은 스콘이 크기가 작지만 이 맛있는 걸 줬기 때문에 남은 치아바타를 친구에게 줘야 공평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친구가 장난스럽게 ‘어쩜 그렇게 칼 같냐’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친구가 저를 싫어한다는 뜻으로 얘기한 건 아니지만 자주 들은 말이었어요. 아마 세 자매인 저희 집이 싸우지 않고 오순도순 살기 위해 택한 방법이겠지요. 제 이런 점이 누군가는 부담스럽고 계산적이라고 느끼나 봐요. 그 친구는 칼보단 담는 그릇에 따라 양도 모양도 변할 수 있는 물 같아요.


제 성향처럼, 주고받는 것에 섬세한 친구와 만나면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그 자리에서 계산도 착착 되고, 무언가의 보답으로 준비해 간 선물에 부담보단 고마움을 느껴줘요. 그럼 선물이 더 뿌듯해지고 설명이 없어도 되니 편하고 공통점으로 공감도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하지만 물 같은 친구들을 만나면 또 배우게 되네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성향이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더 뚜렷이 발견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얻고요.


이런 면이 어쩌면 제 작은 환경 운동의 발판이 되었을 것도 같아요. 지구가 자꾸 주는 것 같아서 보답하려고 열심히 물도 아껴 쓰고 쓰레기도 덜 소비하려고 해도 지구만큼 못 따라가요. 지구에게 부채감만 남아 있는 느낌이에요.


갈토는 어느 쪽이에요? 갈토를 싫어하는 사람은 또 어떤가요? 갈토가 말해준 ‘까다로운 마음의 문’이 떠올라요. 그 속에 까다롭게 느낄까 걱정하는 갈토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그 까다로운 문이 열리는 순간은 언제였는지도 궁금하네요!


이만 마칠게요. 내일부터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에요! 곡우도 무사히 잘 지내보아요.

 

 

<유우야에게>


유우야 덕분에 스트로베일 하우스라는 것도 알게 되네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예쁜 집이 많네요. 가서 보고 싶은데.. 5월 20일에 갈 수 있어야 할텐데, 지금 상황으로는 낙관적이기 어렵네요. --;;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아직도 새집에 적응중이에요. 잠을 푹자지 못해서 피곤함이 점점 축적되어가는 기분이에요. 새벽에 빨래를 돌리는 분이 계셔서 그 소리에 깨기도 하고. 아직 새집의 소리와 빛에 적응이 안되네요. 예전에 비해 수면 시간이 줄었는데 몸이 그걸 또 적응하는게 신기하기도 해요.

 

제가 이번에 이사하면서 되도록이면 새 물건을 사지 않고 새 집을 꾸며보자는 포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매일 당근마켓을 보면서 필요한 물건을 나눔 받기도 하고. 사고 싶은 제품이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게 됩니다. 갑자기 이사를 가시는 분이 테이블을 나눔해주시기도 하고, 선반도 나눔 받았어요. 저도 이사갈 때 이웃에게 나눔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나눔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근마켓이 참 피곤한 곳이기도 해요. 때론 물건을 그냥 사는게 더 시간대비 저렴한 것도 같아요. 제가 사려는게 어차피 비싼 물건들도 아니고. 하지만 새 물건보다는 중고로 대체할 수 있다면 중고를 사자는 마음으로 견디는 중입니다. 물건 하나하나에 사연을 알면 더 좋겠지만, 그렇게까지는 이야기 나눌 수는 없고. 다만 나눔을 받을 때, 그 사람에게서 나에게 올 때 반가움과 나와도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요. 

 

나눔을 하는 이유는 다양할 거에요. 이사가는데 짐줄여야 해서, 더 이상 사용을 안 해서. 쓰레기 버리기 귀찮고 누군가 가져가주면 좋겠어서. 그냥 버려도 되지만, 필요한 이웃에게 나눔해주려면 여튼 애를 써야 하잖아요.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고, 저는 그 마음이 항상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나눔 받을 때, 제가 뜬 삼베 수세미를 나눔해드려요. 좋아하는 분도 있고, 안 받는 분도 있어요. 삼베 수세미 하나 뜨는데 30분 정도 걸리거든요. 실도 좋은 거고. 안 받는 분은 조금 서운한데 더 필요한 분께 드리자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당근마켓에서 좋은 이웃도 만나고 황당한 이웃도 만나서 이 이야기가 길었네요.


이번 주제가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군요. 저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인 줄 알고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을 마구 떠올렸는데. 완전 다른 주제네요. ^^ 저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좀 명확한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저의 에너지를 쓰지 않아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에게 쓸 에너지가 늘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곧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나의 세상은 나 중심으로 돌아요. ㅋㅋㅋㅋㅋ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라고 전전긍긍하는 스타일도 딱히 아니고. 좀 속상하지만, 너랑 내가 스타일이 달라서 그런가보다 해요. 

 

직장에서 나를 싫어하는 상사를 만나면 진짜 고달픈데요. 그러면 퇴사를 하죠. ㅋㅋㅋㅋ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각났어요. 주로 저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이에요. 하하하하 제가 엄청난 ‘강강약약’이거든요. 저와의 권력관계에서 약자라고 여겨지면, 너그러운 편인데, 강자에게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사들이 저를 주로 안 좋아해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하지만 가모장인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권력을 마구 휘두르면서 우리는 평등조직이고 자신의 역할일 뿐, 권력에 의한 상하는 없다고 믿는 아주 꼰대 가모장들이 저를 주로 싫어합니다. 

 

하지만 이제 저도 사회 생활의 얼룩으로 많이 순해졌어요. (저는 스스로 순둥이가 되었다고 하지만 측근들은 글쎄라고 합니다 ㅋㅋㅋㅋ) 예전에 다른 단체와 계약서를 쓰는데 저희가 갑이었거든요. 그래서 계약 조건이 우리에게 유리했어요. 저는 아무리 우리가 갑이라고 해도 단체간 계약인데 을에게 부당한 것 같아서 공정하지 못한 계약이라고 단체장에게 말했다가 진짜 제대로 폭언을 들었어요. 

 

과거를 잘 생각해보면, 다 그런 일들이에요. 부당하게 퇴사한 다른 지부 활동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거나, 임금 후원, 점수 평가제에 대해 논의 주제로 가져가 조직의 다른 사람들이 그 동안 관습처럼 해오던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변화’를 만들지만 조직이 순탄하길 바라는 윗 분들에게는 그게 공격처럼 느껴지나봐요. 잘못된 것이었지만 계속 이어져오고 있었는데 누군가 “왜”라고 질문해주는 용기와 무대포 정신이 있던 저는 요새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함께 일하는 동료들 중에 그래서 저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변화를 위한 조직내 갈등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저를 까다로운 동료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결국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가는데 말이죠. 여러 번 이렇게 조직 내 갈등을 경험하다보니 나에게 남는 건 퇴사인가 싶고, 이제는 조용히 살자, 편하게 살자, 되도록이면 문제제기 하지 말자라고 결심하게 되요. 내가 좀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고 나는 그 곳을 나와야 되는게 억울하기도 하고. 그래서 좀더 유연해지려고 해요. 상사들과도 잘지내고 싶고. 상사가 나를 안 싫어하면 좋겠어요. 상사에게 이쁨을 받으면 조직생활이 좀 편하니까.

 

근데 저는 송곳 같은 사람이라, 얼마나 이 송곳을 감추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ㅋㅋㅋㅋ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해요. 갈등은 변화를 위한 시작점이잖아요. 갈등을 잘 해결하면 변화를 만들 수 있는데, 갈등을 견디는 힘이 다 다르다보니, 때론 누군가에게 저의 문제제기가 고통을 안기기도 하는 거죠. 대부분은 상사들이었지만, 상사도 사람이고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요.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책임자가 안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인사권을 가진 사람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특정인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면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거든요. 공평하고 합리적인 상사가 될 자신 없으면 안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안하거든요. ㅋㅋ 근데 누구나 책임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좋은 책임자가 되도록 옆에서 기다려주고 조언을 해주는 것도 동료들 역할인 것 같아요. 

 

같이 일하기 제일 힘든 책임자가 자질도 부족한데, 동료들의 조언에 귀를 막고 회피하는 사람. 제가 딱 싫어하고, 저를 젤 싫어하는 사람들의 유형이에요. 저는 송곳이잖아요. 문제를 발견하고 변화를 만드는 송곳. 회피하는 사람들은 송곳을 너무 싫어해요. 우리는 상극인거죠. 가끔 자리가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든 걸까, 원래 저런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져요. 활동가로 살면서,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는 송곳 같은 사람들이 왜 조직 문제는 회피하는 걸까. 내가 일하는 터전이 안전하고 즐거워야 되지 않나. 여튼 저는 사회생활, 조직생활이 참 힘든 사람인데, 큰 재주가 없어서 직장생활을 해야합니다. 그래도 지금 있는 곳은 적게 일하고 적게 벌자의 저의 가치관과 맞아서 내가 원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오래 다녀보고 싶네요.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걸 느끼면 자존감도 떨어지고 스스로 위축되요. 특히 그게 생계와 연결되어 있다면 끔찍하죠. 만약, 이 글을 읽는 분이 딱, 그런 상황이라면 이 세상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꼭 기억하면 좋겠어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너무 많은 감정을 소모하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아까워요. 나의 시간과 마음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쓰이는 거. 그리고 내가 나를 좋아하면 좋겠어요. 부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면 좋겠습니다.


조금씩 일상을 찾아가고 있는 갈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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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편지 : 유우야와 갈토] 갈등은 변화를 위한 시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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