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2(수)
 

 

섬진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오고 가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2005년이나 2006년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구례에서 악양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왕복 60km였다. 


봄이 끝날 무렵 시작한 자전거 출퇴근은 겨울이 오면서 끝났다.

그 후로 자전거 출퇴근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하던 일을 그만두었고 악양은 나에게서 멀어졌다.

지리산에 내려와서 살게 된 이유는 간단했지만 살아가기는 녹록하지 않았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악양으로 향하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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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올해 지리산사람들 공동집행위장이 되었는데 올해 관운이 있는 사주라고 했다. 사진 김인호>

 

오늘 악양에 사는 최지한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를 지난겨울 남원의 산악열차 반대 시위장에서 본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남원시청 옆이었을 것이다.

한겨울이었는데 그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딱 봐도 보통은 아닌 사내다. 

머리는 삭발이었다.


그를 악양면 소재지에 있는 카페에서 만났다.

길 건너에 악양초등학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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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인상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진 김인호>

 

오래 전에 악양에 일할 때 그 초등학교 운동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신난 함성이 가득한 운동장에 오후에 햇살이 눈 부셨다.

커다란 히말라에시더(개잎갈나무 50미터까지 자란다)가 동쪽에 있었다.

누군가는 이 나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고 했었다, 

나도 가끔 동의하지만, 집안에 심기에는 나무가 너무 크다. 

이 나무를 키우다 보면 예상보다 너무나 커버리기 때문에 위를 잘라버린다.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은 싹을 잘라 버리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이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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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해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한국의 공해지도라는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 김인호 >

 

그의 첫인상은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히말라야 시더의 위를 자르는 것같은 

사회의 일반적인 잣대를 그는 봐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하동에 살게 된 것은 2006년쯤이라고 한다.

내가 하동을 떠난 것이 그쯤이었다.

 

그는 멀리 강원도 고성 출신이라고 했다.

화진포가 가까운 강원도 산골 마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북한을 지척으로 둔 강원도 최북단에서 태어났다.

나는 몇 해 전 화진포에 가봤다. 

화진포 바다는 서해나 남해와는 다른 고독하고 외로워 보이는 진한블루였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시절 어느 해 서울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 후 대학에서 양식업을 공부했다. 그리고 남해의 여러 섬마을을 전전하며 

양식장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결국 여기 하동 악양에 정착했다.


그의 직업은 대바구니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과 정원관리라고 한다.

그리고 지역의 사람들과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공해문제연구소에서 만든 한국의 공해지도라는 

책을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그 비슷한 책을 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염도가 높은 곳은 하동 넘어 광양이었다.

광양에는 광양제철소가 있다. 

 

세계최대 규모의 제철소가 있고 거기서 품어져 나오는 

대기 오염 물질은 한국 대기 오염 물질의 5.43%라고 한다. 

나 역시 검은 역기가 품어져 나오는 그 사진을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 책을 보고 열 받아서 환경운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동기가 순수하다. 아마도 그는 순수한 남자인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하동은 산악열차로 인해 갈등이 깊었다.

악양 형제봉에 산악열차를 설치하겠다는 하동군의 야심 찬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산악열차 반대 운동을 했다.


그것도 열 받아서 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양말을 신지 않는 이유를 물었는데 대답은 간단했다.

“발에 열이 많아서 답답해요.” 그는 역시 열이 많은 사람이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더니 그는

마루에서 3년을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왜 그러셨나요?


[어느 해 봄 비가 오는 날

구들이 고장이 나서 일산화탄소 중독이 된 적이 있어요.

마을로 기어와 동치미 국물을 얻어먹었어요.

그 후로 방에 들어가 자지 않았어요.]

방에 들어가지 않으니 마루밖에 잘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마루에서 3년을 살았다고 한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그가 일하는 대나무 공방에 가봤다.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라는 작은 안내문이 문 앞에 붙어 있었다.

나 역시 오래전에 녹색평론 읽기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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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디의 물레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수리하는 대바구니가 물레처럼 보였다.>

 

공방에는 헤진 바구니와 새로 만든 바구니 그리고 수리를 원하는 대바구니가 보였다.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이것으로 먹고살고 약간의 잉여자본도 생긴다고 했다.

간단한 도구로 생계가 가능한 일이라서 좋다고 했다.

나는 이런 식의 밥벌이를 본 적이 없다.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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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에는 헤진 바구니와 새로 만든 바구니 그리고 수리를 원하는 대바구니가 보였다.>

 

익숙하게 대바구니를 수리했다. 능숙한 솜씨가 보기 좋았다.

간디의 물레라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가 수리하는 대바구니가 물레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간단한 도구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거나 물건을 고치는 일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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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디의 상징이 된 물레>

 

그가 좋아하는 영화는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영의 빛이라고 했다.

섬진강을 따라 돌아오면서 오후에 햇살이 섬진강을 비추는 것을 봤다.

아마도 환영의 빛은 이런 빛일 것이다.

누군가 한 번은 자신을 끌어들이고 유혹하는 환영의 빛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는 

어느 곳에서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는 반항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그는 자본주의 주류 사회를 거스르고 싶은 환영의 빛에 어느 순간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는 빛이 이끄는 경로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항하는 청춘 최지한, 그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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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하는 청춘의 원더풀 라이프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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