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코딱지들의 상냥한 안내를 통해 ‘수달레이스’라는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양반새라는 탐조모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뭔가 달리기 경주를 연상시키는 이름이어서 루트를 빨리 달려야하는 것인가(?) 자신이 없어져 재차 물었더니 수달의 생태를 함께 관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너무 신기했다. 우리에겐 ‘멸종위기종’으로 알려져있는 수달을 관찰하다니, 게다가 ‘수달아빠’가 안내해 준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레이스를 기다렸다.
레이스를 기다리던 중 불현듯 떠오른 기억. 만나서는 안될 위치에서 우연히 만난 수달들이 떠올랐다. 몇 년 전 나는 엄마와 고군산열도라 불리는 섬 여행을 위해 새만금방조제를 건너고 있었고 사람의 방향을 가로지르며 건너는 한 가족이 있었다. 수달 가족이었다. 엄마로 보이는 수달과 2-3개월령 정도의 고양이 크기의 아기수달이 4-5마리 쯤 엄마를 따랐다. 방조제를 따라 주행하던 모든 차들은 일제히 속도를 줄여 수달 가족의 횡단을 가슴을 쓸어내리며 바라봤다. 길은 안전하게 건넜지만 도로 연석이 문제였다. 엄마수달은 연석을 오르는 방법 알려주려고 거의 부메랑 영상앱처럼 오르내림을 반복했지만 수달아기들에겐 그 높이가 너무 높았다. 야생동물이라 사람이 도와줄 수도 없었고 수달엄마도 어쩐일인지 목덜미를 잡고 끌고가진 않았다. 계속 오르락 내리락만 반복할뿐… 차량정체로 인해 그 자리를 빠져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가끔 그 수달 가족은 잘 건넜는지 건넜다면 그 다음엔 어디로 갔을지 궁금하던 차 였다.
이후에 나는 귀촌을 해 구례에 정착했고, 비건이 되었고, 수라라는 영화를 보고 울었고 (그때도 그 수달 가족을 떠올렸고), 코딱지들을 포함해 자연과 동반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리고 수달레이스를 통해 ‘안타까운 곳’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닌 ‘그들의 동네’에 내가 직접 방문해보게 된 것이다. 수달이 사는 곳에 내가 함부로 가도 될까… 수달에게 초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입장바꿔 생각하면 좀 싫을 것 같기도 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수달의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널리 공유하는 것이 난개발을 막을 수 있는 작은 근거라도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미안한 마음을 추스렸던 것 같다.
과거의 기억과 복잡 미묘했던 감정이 사그러진 후 수달레이스가 시작되었다. 2일에 걸쳐 진행이 되었고 1일차는 수달의 생태에 대해 강의를 듣고 주요 수달 동네를 돌며 위치를 확인했고 2일차 새벽에 본격적인 수달 관찰을 했다. 생각보다 수달의 동네는 아주 가까웠다. 아니 우리의 동네와 다르지 않았다. 여기 이 개울에 이 저수지에 수달이 산다고!? 오, 이런~! 수달, 너를 만나면 나는 무슨 말을 해 줄까? 뭔가 잔뜩 흥분이 되었다. 우리 동네에 ‘수달학원’이 있는데 너랑은 상관없이 수학을 가르치더라… 라는 시시껄렁한 농담도 건네고 싶었다.
1일차 탐색 때 수달의 동네 답게 수달의 흔적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되었다. 귀여운 발자국과 분변이었다. 수달아빠가 냄새를 권해 냄새를 맡았다. 똥냄새라기 보다는 국멸치 냄새였다. 신기했다. 오로지 물고기만 편식하는 수달 분변에서만 날 수 있는 냄새라고 한다. 그 다음부터 포인트에 가면 분변 먼저 찾고 냄새를 맡아 보기 시작했다. 멸치냄새가 나면 수달의 것이다.
2일차 새벽에는 3-4개 조로 나누어 집중 관찰을 했다. 나는 지난 밤 분변이 많이 쌓여있던 개울의 모래톱을 담당했다. 차안에서 숨을 죽이고 수달을 기다렸지만 여명에 찰랑거리는 물멍에 빠질 뿐 수달이 나타나진 않았다. 수달아빠와 몇 가지 다른 포인트로 이동하여 관찰했지만 당일 수달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포인트 족족 멸치냄새가 그득한 그들의 귀여운 분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쉽거나 안타깝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잘 살고 있구나. 안심이 되었다. 원래 밥 잘 먹고 똥 잘 싸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지라. 흐흐흐.
관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흩어졌던 한 조에서 수달 두 마리를 보았다는 축전을 전달 받았다. 와! 축하드립니다. 무엇을 축하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기뻤고 축하를 건넸다.
모두 모두 마음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