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12(수)
 

12월 중순인데도 봄날처럼 따뜻한 날씨였다. 지리산 자락의 함양 금대산(金臺山, 851.5m)으로 오르는 산길 길섶에는 쑥부쟁이의 연보라색 꽃이 반갑게 남아 있었다. 함양 마천면은 예로부터 지리산 가는 으뜸 관문이었으며, 지리산을 조망하는 이름난 전망대가 많았다. 오도재 위의 삼봉산과 마천의 임천(瀶川)을 내려다보는 금대산 등, 이 지역은 지리산 주능선의 북쪽에서 지리산을 전망하기 좋은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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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금대암 금대 너럭바위 위 전망(사진 이완우)

 

함양 마천면의 금대산은 임천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을 마주하고 있어서 산줄기로는 지리산 주능선에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금대산에 있는 금대암과 안국사 등의 사찰을 지리산 절집으로 기록했다. 임천강 물줄기의 근원을 지리산의 만복대 반야봉과 노고단 등의 지리산 주능선으로 보았고, 지리산의 개념을 산줄기와 물줄기를 통합하여 이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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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금대암 금대 너럭바위(사진 이완우)

 

함양 금대산은 '지리방장 제일금대(智異方丈 第一金臺)'로 알려져 왔다. 지리산에서 이곳 금대산 또는 금대암이 으뜸가는 전망대라는 의미이다. 부처가 앉는 자리인 연화대를 금대라고 하는데,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 정토에서 공덕이 으뜸인 자에게 앉게 하는 자리를 금대라고도 한다. 


마천면의 임천 옆 도로에서 건너편 도마 마을의 그림처럼 펼쳐진 다랑논 논배미를 보며 금대암까지 2.5km의 임도를 올라갔다. 이 임도의 중간 지점에 안국사로 향가는 갈림길이 있다. 금대암 가는 임도는 경사도가 만만치 않으며 산줄기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금대암에 이르면 암자 앞에 높이 40m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고 수령이라는 전나무가 눈에 띈다. 이 전나무가 지리산의 기상을 표상하는 듯하다. 나한전 옆에 집채만 하게 우람한 너럭바위 윗면은 천연 좌대(坐臺)로서 이곳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는 조망은 장엄하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의 지리산 주능선과 서북능선이 함양 마천면을 중심으로 활처럼 휘어져 생동감 넘치는 전망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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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금대암 앞 전망(사진 이완우)

 

금대암에는 도선 국사의 일화(逸話)가 전해온다. 그가 지리산 여러 곳을 돌아보며 수행하면서 이곳 금대암 너럭바위에 이르러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을 보았다. 그는 사흘 동안이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도선 국사는 이곳에 머물러서 이 바위 옆에 나한전을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 시대에 관리나 선비들이 지리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에는 함양에서 지리산의 유산(遊山)을 출발하는 사례가 많았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들에게 유산은 심성 수양의 실천과 탐구의 과정이었다.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의 '두류기행록'에 의하면 그가 이곳 금대암을 방문(1489년 4월 16일)하여 승려들의 범패 수련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 승려가 물을 긷고 있었다. 뜰에는 모란 몇 그루가 있어 반쯤 시들었어도 매우 붉었다. 승려 20여 명이 뒤따르며 범패를 하고 있었는데 속도가 매우 빨랐다. 금대암이 범패의 정진 도량이라고 한다. 그 법이 정일하여 잡됨이 없고, 나아가되 물러섬이 없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매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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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금대산 능선길 암괴 천연 방장(사진 이완우)

 

함양 금대산 지역은 신라의 정치 세력과 관련이 깊다. 태종 무열왕 때인 656년에 이 산에  안국사와 금대암을 함께 창건하였다. 이곳 금대암에서 임천 건너 내려다보이는 군자리에 있었던 군자사(君子寺)는 태종 무열왕의 외조부인 진평왕이 어린 시절 3년간 머물렀던 잠저 터이다.


군자사는 천년 사찰로 조선 시대 중기까지 건재하였고, 금대암과 군자사는 지리산 유람을 시작하는 거점이었다. 조선 시대에 선비나 관리들은 금대산 금대암에서 지리산을 조망하고, 금대산을 내려가 군자사에 며칠씩 머물기도 하였다. 


유서 깊은 천년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군사사터를 금대암에서 가늠해 본다. 박장원(朴長遠, 1612~1671)의 '유두류산기'에 그가 지리산을 유산하며 군자사에 머물렀던 기록을 남겼다. 


대전(大展)과 방옥(房屋)이 모두 매우 크고 화려하다. 절 서편에는 새로 지은 별전이 하나 있는데 금빛과 푸른빛으로 화려하게 단청하였고 '삼영당(三影堂)'이라 한다. 이 당 안에는 청허(淸虛), 사명(四溟)과 청매(靑梅) 세 대사의 진영(眞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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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산 정상 금대 암릉(사진 이완우)

 

금대산 정상은 금대암에서 0.7km 능선 길을 올라가야 한다. 함양 마천면 지역은 노출된 바위와 기반암이 검은색이 짙은 석질이 좋은 마천석 화강암이다. 산 능선에 돌출한 검은색 화강암 바위들은 품격이 출중하다. 산 능선 산길 양쪽에 집채만 한 바위가 비스듬히 맞대 산길이 천연 방장을 이루고 있다. 비바람을 피하며 머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되겠다. 


금대산 산마루에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앉아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가깝게 등구 마을이 보이고, 오도재가 보였다. 휴천면으로 흐르는 임천강이 보이고, 천왕봉 아래 칠선 계곡이 보였다. 지리산 천왕봉, 중봉, 제석봉에서 노고단까지 생동감 넘치는 기상으로 주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금대산 정상에서 백운산(白雲山, 903m)으로 향하는 1km의 능선 길은 돌출된 바위와 울창한 숲을 지난다. 백운산 정상은 나무들이 무성하여 지리산 조망이 쉽지 않았다. 지리산은 청산으로 움직이지 않고 고요한데, 백운산은 흰 구름이 오고 가고 있으며 한가로웠다. 금대산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산마루 구간은 지리산의 동부능선에서 서북능선까지 잘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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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산 정상 지리산 조망(사진 이완우)

 

백운산에서 손에 잡힐 듯한 풍경으로 오도재와 삼봉산을 조망하고, 금대산으로 되돌아왔다. 금대산에서 안국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지름길은 조릿대 군락 사이로 오솔길이 선명했다. 조릿대 잎이 숲속 바람에 흔들리는데, 습기 머금은 오솔길의 황토색 토양은 먼지  없이 깨끗하였다.


금대산을 내려오면서 내내 생각해 보았다. 금대산이 지리산의 드높고 맑은 기상을 품고 싶은 신라 태종 무열왕의 염원이 서린 산이 아니었을까? 금대산과 금대암의 시대를 초월하여 금빛으로 빛나는 '금대(金臺)'에서 속세의 인연으로는 태종 무열왕의 사위가 되는 원효 대사의 정토 사상이 연꽃 향기처럼 피어나고 있는 듯했다. 


지리산 여느 산줄기의 등산은 수려한 지리산 자연의 풍광에 더하여 역사와 설화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인문학적 유산(遊山)으로서 의미가 가치가 새롭다. 임천강변의 우람한 '지리방장 제일금대(智異方丈 第一金臺)'의 표지석은 지리산 제일 전망대로 여겨지는 금대산 탐방의 설레는 시점이며 뿌듯한 종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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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방장 제일금대 표지석(사진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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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나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탄한 지리산 제일의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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