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7-15(월)
 

페이스북에 쓴 "바코드" 일본에서 살던 경험에 허구를 더해 쓴 중편 소설과 단편 소설 두 편을 더 써봤다. 

페이스북에 공개하지 않은 것과 지금 연재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코드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지만 

두 번째는 그렇지 않다. 


두 편은 일인칭으로 한 편은 삼인칭으로 썼는데 일인칭이 역시 쓰기가 쉬운 것 같고 삼인칭으로 

써보니 좀 어렵지만, 이것 역시 나름 매력이 이었다. 

 

최근 읽어본 책 중에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었다.

프랑스 리뷰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을 인터뷰한 것을 

한국의 출판사에서 한국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작가들을 골라 엮은 책이다. 

총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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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을 읽어보고 흥미가 있어 3편을 모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모든 작가의 인터뷰를 다 읽지는 않았다.

내가 관심 있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작가, 읽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는 작가들 위주로 골라서 읽어봤다.

우리가 다 아는 작가들 이를테면 헤밍웨이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움베르토 에코, 파묵, 밀란 쿤데라, 오에 겐자브로, 

수잔손탁같은 작가들이다. 이 작가들 작품은 내가 몇 권 읽었거나 한 권이라도 읽어본 작가들이다. 

 

대부분 한 시대를 평정한 위대한 작가들이거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다. 

파리리뷰 기자들은 이 작가들을 몇 번 방문해 인터뷰 기사를 작성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지만, 

작가가 된 이유나 글을 쓰는 방법들은 항상 질문에 있었다.

 

작가가 된 이유야 다들 다르겠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작품은 모두 자신의 직간접경험을 통한 것이라고 하는 작가들이 많았다. 

적어도 모든 소설은 자신의 이야기를 변형한 것이라는 것이다. 자전적 소설이 아니어도 

주인공이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신을 투영해서 쓴다는 것이다.

 

다음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모든 작가가 한 마디로 초고를 작성하고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을 수정하고 더하거나 삭제하면서 쓴다고 한다. 더는 스스로 할 수 없을 때까지 밀어붙이고 

나서야 완결을 짓는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잠을 자지 않고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인터뷰에서 말했는데 

나도 잠시지만 세 편의 소설을 쓰면서 잠시 내가 그 상황에서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항상 교실에 앉으면 내 시선은 칠판이 아니라 창문 너머에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소설이나 책을 빌려 딴짓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때 시작한 이 버릇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항상 다른 상상들로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내가 공부를 한 시기는 딱 3번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던 1~2개월

그리고 읍내 중학교에서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공부한 4개월 정도

 그리고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변해 가야겠다고 변심하고 공부한 그해 6월에서 11월까지다.

 

그렇다고 수업을 열심히 들은 적은 없었다.

국어 시간엔 역사를 역사 시간에 국어를…. 항상 딴짓만 하고 다녔다.

소설을 쓰는 것 자체는 재미가 있지만 "이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다. 

그 재밌는 유튜브와 경쟁해야 하는데, 소설을 써서 무엇을 하겠는가?

 

하지만 취미로는 꽤 좋을 것 같다. 

 

대한민국 성인은 1년에 책 한 권 정도는 읽는다고 한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읽는 사람만 읽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읽지 않는 시대다.

 

읽는 사람들이 점점 멸종되는 것이다.

요즘은 유튜브도 숏츠 같은 짧은 영상이나

 드라마나 영화도 요약 영상을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소설이라니 그것도 실용적인 내용도 아닌 긴 소설이라니….

 

읽힐 만한 이유가 없다.

최근에 이상 문학상 수상작이나 현대 문학상 수상작, 문학동네 수상작들의 단편을 꽤 읽어 봤다

대부분 재미가 없었다. 

 

재미가 없는 이유가 뭘까? 

과거에 나는 매년 발표되는 수상작을 기다려 구매했다. 꽤 재밌어했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이제 이런 소설들이 유튜브와 경쟁에서 이길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야한 소설이나 무협 공상 과학이나 웹툰 아니면 실용서들이나 지식을 전하는 

책들과 같이 비교해도 읽는 재미로 치면 경쟁이 안 될 것 같다. 

 

작가들의 수준이 낮아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제 구례 서시교를 지나는데 현수막이 보였다. 

섬진강 책방에서 열리는 문학강연이었다.

제목이 "문학의 필요성"이었다. 

역설하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방법을 찾아서 필요성을 찾아보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하게 된다. 

 

물론 필요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유명한 작가의 소설은 잘 팔리고 많이 읽거나 적어도 

구매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런 시대지만 여전히 쓰는 사람을 쓰고 읽는 사람을 읽을 것이다.

"아니, 아니요. 이건 행복한 꿈이랍니다. 그것은 제 소설이지요. 저는 그것을 우편함에 넣고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

어언 매큐언의 말로 끝내고 싶다. 

 

그러함에도 쓰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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