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읍 장미 나이트 클럽
- 박 두 규
구례에 첫발을 디딘 1986년에도
번잡한 장터거리 끄트머리에 있었지
입구의 골목에 빨간 넝쿨장미가 피어 있는
일반 가정집 같은 장미 나이트클럽
키 큰 사람이 손을 올리면 천장에 닿는
손바닥만 한 나이트클럽
대여섯 식탁의 홀에 룸도 하나 딸려 있어
장날이면 견우와 직녀가 된
광의면 홀애비와 문척면 홀엄씨가
술잔을 훌쩍이며 손을 잡고 신세타령도 할 만한
구례읍 장미 나이트클럽
읍내에서 어울리던 늙은 한량 중 한 명이
가족을 따라 미쿡으로 영영 들어간다고
송별식을 위해 장미 나이트클럽을 통째로 빌렸는데
흰머리, 벗은 머리 여나뭇 모이니 홀이 꽉 찬다
장에서 사 온 순대와 회무침, 김밥을 벌여 놓고
음주가무에 판이 어우러지니 석별의 정인들 따로 있을까
파장 술에 취해 늘 그러하듯 취하면 그만인 것을
어쩌면, 한 치 앞을 모르고 더듬거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어서
부는 바람 홀로 맞아내는 것이 사람의 일이기도 해서
그렇게 오늘도 섬진강의 노을이 붉다
어두워진 지리산의 공제선이 더욱 또렷하다
장미 나이트클럽의 쌍팔년도 장밋빛 붉은 사랑
불현듯 한 생이 그처럼 지나간다
구례읍 한량들이 그렇게 또 취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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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장터거리의 끄트머리에 이 나이트클럽이 있다. 지나갈 때마다 젊은 날 나이트클럽(고고장)에 가고 싶어서 친구들과 함께 공사판 노가대 일을 다녔던 일이 생각나는 곳이다. 입구에 덩쿨장미가 피어있고 텃밭이 딸려있는 가정집처럼 보여서 묘하게도 애틋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구례에 산 날들이 20년 가까이 되지만 올해에서야 처음으로 우연한 기회로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래서 시도 한 편 쓰게 되었다. 이 시를 페북에 올리려고 나이트클럽 야경을 찍으러 갔는데 밤 10시경, 나이트 클럽의 영업이 이제 막 시작되는 시간이어야 할 텐데 벌써 영업이 끝나 간판의 불이 꺼져있었다. 나이트라는 말이 무색하게 행인 하나 없는 거리에 가로등 불빛만 가물거리고 있었다. 요즘 시골의 밤 풍경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