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1(수)
 

그런 날이 있다. 몹시 지리산에 가고 싶은 날, 그런 날에 지리산으로 향할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다. 장마라고 하기엔 좀 이상한, 해가 나다가 소나기가 쏟아지길 반복하는 날들 사이, 비 소식이 없던 712일의 일이다.

 

낮밥을 싸고 텃밭에서 딴 토마토를 챙겨 집을 나섰다. 화엄사에서 시작하여 용소, 참샘, 국수등, 코재를 지나 노고단까지 가볼 생각이었다. 화엄계곡엔 물이 넘쳐났다. 저 위 무넹기에서 물을 돌린 덕분에 화엄계곡은 사시사철 물 많은 계곡이 되었다. 남원 달궁계곡 분들이 양해해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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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되면 화엄계곡엔 물이 넘친다

 

<지리산사람들>은 화엄사숲에 관심이 많다. 화엄사숲은 서어나무, 참나무 등이 많은 낙엽활엽수 숲이다. 그런데 용소를 지나면서 숲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낙엽활엽수 대신 편백나무가 가득한 숲이 된다. 겨울이면 숲의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는데, 편백나무 숲 아래엔 작은 나무나 풀들이 거의 살지 않아 썰렁하다. 여름인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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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낙엽활엽수 숲()과 편백나무 숲(아래)

 

편백나무는 습하고 따뜻한 지역에 사는 나무이다. 오구균 박사는 편백나무는 지리산에 살던 나무는 아닌데, 편백나무가 빨리 자라는 특성이 있어 경제 수목으로 심었으나 돈이 되지 않자 그냥 놔둔 것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편백나무 씨앗이 땅에 떨어져도 싹을 틔우지 못했지만, 기후변화로 따뜻하고 습해지니, 싹을 틔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긴 시간 동안 화엄사숲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장마 때 숲을 거닐면 곳곳에서 버섯이 발견된다. ‘, 여기에 방울토마토가..’ 손이 가다가 멈췄다. 버섯이다. ‘독버섯이라 불리는데, 먹는 순간 온몸이 마비될 수도 있다고 한다. 후덜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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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를 지나 연기암으로 오르다 보면 서어나무 쉼터를 만난다. 고인이 된 이경재 선생님이 구례에 오셨을 때 이곳을 함께 왔었는데, 그때 들은 이야기로는 여기 서어나무 쉼터는 야영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야영이 금지되면서 이곳은 서어나무 숲으로 변하는 중이다.

 

연기암 길에서 참샘으로 오르는 길에는 아치형 출입구와 온갖 안내판이 서 있다. 아치형 출입구도 그렇지만, 대문짝만한 안내판도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화엄계곡을 통해 지리산에 오르는 분들이 물을 채울 마지막 장소인 참샘, 참샘에 김해 어느 산악회에서 리본을 달아 놨다. 저 산악회는 참샘과 어떤 인연이 있을까? 정기적으로 이곳에 와서 청소라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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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암길에서 잠샘으로 오르는 초입 아치형 출입구와 대형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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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샘에 달아 놓은 김해 OO산악회 리본

 

지리산에서는 눈만 크게 떠도 새와 양서파충류, 곤충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떡 버티고 있는 두꺼비도, 사람들의 발소리에 구애받지 않고 먹이활동을 하는 들꿩도, 한가로이 낮잠을 즐기는 메뚜기도, 그리고 지리산이 그리워 걷고 있는 나도 지리산은 묻지 않고 품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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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들꿩(가운데), 메뚜기(아래)

 

국수등에서 잠깐 쉬었다면 집선대까지는 쉬지 않고 천천히 오르는 것을 추천한다. 오르다보면 서서히 안개가 밀려오는데, 안개가 짙어질수록 집선대가 가깝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늘 집선대에 안개가 꽉 찬 것을 보니, 선녀들, 또는 신선들, 아니면 도깨비들의 모임이 있는가 보다. 집선대를 지나자 안개가 걷혔다. 참 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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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선대가 근처는 온통 안개 세상이다

 

숲이 환해지니 이것저것 눈에 띄는 것도 많다. 돌도, 쓰러진 나무도, 계곡 물보라도, 모두 모두 소중한 숲의 식구들이다. .. 그런데, 이런.. 저건, 고로쇠나무에 수액 호스가 꽂혀있네, 한 그루만이 아니라 여기, 저기, 또 저쪽에도 이곳의 고로쇠나무들은 지금까지 호스를 꽂고 있었다. 고로쇠 수액 채취가 끝나면 철거해야 하는데, 아직도 꽂고 있다니.. 먹고 사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고로쇠나무들은 고무호스를 몸의 일부로 평생 달고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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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선대를 지나 코재 방향 탐방로 주변 고로쇠나무에 꽂혀 있는 호스

 

이제 코재다. 코재를 오르면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큰길과 만난다. 땀을 흠뻑 쏟고 나니 뻥 뚫린 길이 나왔고, 길 양쪽으로 큰뱀무, 큰까치수염, 산꼬리풀, 둥근이질풀 등 여름꽃들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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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까지수염(), 산꼬리풀(아래)

 

노고단대피소에서 낮밥을 먹었다. 노고단대피소는 예전 대피소가 내진설계 D등급으로 진단되어 다시 지었단다. 신축 노고단대피소는 재생에너지 100%를 약속했는데, 잘 지켜지려나. 국립공원 대피소들이 산 아래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면서(산에서는 화석연료 발전을 안 한다고 자랑하는) '넷제로'를 말하는 건, 참 민망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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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대피소

 

노고단삼거리에서 구름 가득한 반야봉을 바라보며 나무데크를 걸어 노고단으로 향했다. 여름 노고단은 꽃밭이다. 노고단 입구에서 노고단까지 가는 동안(600m이니 천천히 또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해가 나왔다가 구름이 몰려왔다가를 서너 차례 반복한다. 이곳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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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노고단에서 바라본 종석대와 서북능선(아래)

 

712일 노고단에서 만난 꽃들은 물레나물, 말나리, 기린초, 지리터리풀, 산오이풀, 노루오줌, 미역줄나무, 큰뱀무, 꿩의다리, 둥근이질풀, 동자꽃, 원추리, 톱풀 등이다. 나는 내가 아는 만큼만 이름을 불렀으니, 내가 모르는 꽃들까지 합친다면 정말 많은 나무와 풀들이 노고단을 만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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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이질풀(), 미역줄나무 꽃(가운데), 원추리(아래)

 

노고단에서 내려와 성삼재까지 오는 길에는 산수국이 보라,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고, 곳곳에서 짚신나물, 물봉선 등도 볼 수 있고, 노각나무에서 떨어진 꽃도 만날 수 있었다. 이 길은 너무 넓고, 잘 닦여 있어 낯설지만, 지리산을 만나려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곳이니 고마운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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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국(), 성삼재길에 떨어진 노각나무 꽃(아래)

 

성삼재에서 반야봉과 만복대를 바라본다. 지난해 12월 구례군은 바로 이곳에 지리산 케이블카 상부정류장을 짓겠다는 계획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버스도 다니고, 승용차로 올라올 수도 있는 곳에 케이블카를 만들겠다는 사람들, 이유가 있겠지만 누구를 위한 케이블카인지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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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월 구례군은 성삼재 주차장에 지리산 케이블카 상부정류장를 놓겠다는 계획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사진: 김인호)

 

게다가 지리산국립공원으로 올라오는 케이블카는 국비가 단 1원도 지원되지 않고 민간사업자가 투자할 수도 없으니, 거의 모든 비용을 군비(설악산 오색 케이블카의 경우는 총사업비 1172억 원 중 양양군이 부담할 비용이 948억 원이다. 80% 이상을 양양군이 부담한다. 구례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로 부담해야 하는 건설사업이다. 군민을 위한 복지, 교육예산을 케이블카 건설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며, 케이블카 운영 과정에 발생하는 적자 역시 군민 세금으로 메꾸겠다는 것인데, 구례군민인 나는 정말 걱정이다.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좀더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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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지리산에서] 그런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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