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9-11(수)
 

독거獨居

 

이 원 규

 

남들 출근할 때

섬진강 청둥오리 떼와 더불어

물수제비를 날린다.

남들 머리 싸매고 일할 때

낮잠을 자다 지겨우면

선유동계곡에 들어가 탁족을 한다.

미안하지만 남들 바쁘게 출장 갈 때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고

정말이지 미안하지만

남들 야근할 때

대나무 평상 모기장 속에서

촛불을 켜놓고 작설차를 마시고

남들 일중독에 빠져 있을 때

나는 일없어 심심한 시를 쓴다.

그래도 굳이 할 일이 있다면

가끔 굶거나 조금 외로워하는 것일 뿐

사실은 하나도 미안하지 않지만

내게 일이 있다면 그것은 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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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은유한 가끔 굶는 것과 조금 외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원규 시인이 삶의 현실에서 가장 비중 있게 지향하고 있는 그 무엇이다. 나는 그것을 인간적 욕망을 벗어나 존재의 본연을 찾아가려는 구도자적 지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볼 때 이원규는 구도자가 되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혼자 떠돌며 살아가는 것으로 보아 훌훌 털어 버렸을 것 같은 세속의 질긴 인연들도 사실은 자신의 내면에서 늘 데리고 다니는 것들이고, 시대적 현실문제도 나몰라라하고 도망치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이처럼 그는 탈속하지 않으면서도 그 지향은 구도의 길이다. ‘가끔 굶는 것과 조금 외로워하는 것에서 굶는 것은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구체적 생활세계에서 자신을 앞질러 가려는 세속적 욕망을 끊어주는 것이요, ‘외로워하는 것은 앞서 말한 존재의 본질적 외로움이며 또한 바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잃고 사는 현대인들은 존재의 본연인 자아를 만나야 한다는 당위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조금의 수식이 의미하는 것은 그럼에도 그것에 전격적으로 매달려 구도자의 길을 가는 것보다는 주어진 세속의 세월을 부대끼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점을 깊이 깨달은 것이라고 본다.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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