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염정에 가서
나 종 영
그대는 바람소리를 놓아두고 떠났다.
하얀 눈길 위로 발자국 하나 없어도
그대 가는 길이 훤히 보여 눈이 아프고 시리다.
물염정 적벽 소나무에 눈꽃이 일고
강물이 멈춘 어두운 시간에
그대는 홀로 어디쯤 닿아 있는가?
훨훨 버리고 떠난 그대가 남겨둔 솔바람 소리
저 단애를 비껴간 세월은 아직 눈썹달마냥 남아 있는데
흩어지는 눈발을 뒤로 하고
그대는 오늘도 어느 길위에서 뒤척이는지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는 물염 절벽에
그대는 칼끝을 세워 청풍 바람소리를 새기고
쇠기러기 떼 지어가는 새벽하늘
강물은 굽이굽이 떠나간 그대 흰 옷자락을
혼신의 힘으로 붙들고
멀리 하나둘 등불 켜진 마을
언 강둑 위로 맨발을 끌고 가는
그대의 마지막 잔기침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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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은 전남 화순 이서의 물염절벽에 있는 정자로 물염은 물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파에 물들지 않는 꼿꼿한 선비를 떠올리게 하는 정자 이름이다. 세상은 늘 변하는 세상이지만 한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변치 않아야 할 무엇이 항상 있는 것이니 그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지키는 것이 옛 선비들의 지조였고 사람의 도리였다. 시인은 이 시대에 너무 휩쓸리며 사는 사람들을 보며 물염의 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