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리산자락 구례에 산다. 구례에 산다는 건, 어디에 있더라도 반야봉, 노고단, 왕시루봉을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행복한 일이다. 눈 오는 오늘, 지리산은 뿌옇다. 눈이 쌓이고 있는 지리산을 바라보니, 지리산에 깃든 생명들은 겨울 준비를 끝냈을까 궁금해진다.
지리산의 겨울은 춥고, ‘생태환경 보호 및 산불방지를 위한 국립공원 탐방로 출입 통제’를 하니 방문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덕분에 지리산은 쉴 수 있다. 국립공원공단은 ‘2023년 국립공원 탐방객 수는 봄철(3월~5월) 증가하다가, 여름철(6월~7월, 장마 기간) 소폭 감소 이후 여름 휴가철(8월)과 가을철(10월, 단풍 절정 기간)에 크게 증가한 후, 겨울철(11월 이후)에는 감소하는 추세’라고 하였다. 2024년에도 비슷할 것이다.
‘대피소’는 지리산에 가는 사람들에게 무척 고마운 곳이다. 쉴 수 있고, 따뜻한 것을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공원법 시행령」은 대피소를 ‘공원자원을 보호하거나 탐방자의 안전을 도모하는 보호 및 안전시설’로 분류하고 있다. 대피소는 국립공원에서 보전의 강도가 가장 높은 ‘공원자연보존지구’에 허용되는 시설이며, 위치 특성상 여러 제한이 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대피소가 있는 국립공원은 지리산(8개소), 설악산(5개소), 한라산(7개소), 덕유산(2개소), 오대산(1개소), 북한산(5개소), 소백산(1개소) 등 7곳이다. 대부분 고지대에 위치한 대피소는 탐방객 안전만이 아니라 산불, 야생동식물 보호 등 현장관리 기능도 한다.
‘대피소인데 왜 예약을 해야 하냐?’, ‘대피소가 아니라 숙박시설이다.’, ‘아플 때 쉬려고 하니 내려가라고 했다.’ 등은 ‘대피소’란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나오는 문제제기이다. 국어사전에 대피소(待避所)는 ‘비상시에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국립공원 대피소는 예약제로 운영되니 사전적 의미의 대피소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 세석대피소
↑ 세석대피소와 장터목대피소 길 안내 표지목
예전에는 대피소를 ‘산장’이라 불렀다. 1924년 건립된 북한산국립공원 ‘백운산장’이 우리나라 최초 산장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부터 건립된 산장을 국립공원공단은 2000년대에 철거하거나 리모델링하였다. 노고단산장, 세석산장, 치밭목산장 등 ‘산장’이었던 시설은 어느 날부터 노고단대피소, 세석대피소, 치밭목대피소 등 ‘대피소’가 된다. 고산지에서는 대피의 기능이 다른 기능에 우선하니 ‘대피소’가 타당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 치밭목대피소(위)와 ‘지리산산장’이라 쓴 치밭목대피소 옛 표지석
산장을 대피소로 명칭 변경한 국립공원공단은 1998년부터 직영 대피소에 대한 사전예약제를 시행하여, 이제 국립공원 모든 대피소는 예약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되었다. 지리산, 설악산 등 면적이 넓은 국립공원의 경우 한나절 탐방이 어려우니 숙박을 ‘공식’화하는 게 국립공원 훼손이나 탐방객 안전, 이용 편의 등에 적절했을 것이다.
산장이든, 대피소든 명칭이 뭐 그리 중요하냐 싶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립공원 대피소에서 잔 분들은 너무 더웠다, 찜질방이냐고 투덜댄다. 대부분 1,000m(장터목대피소는 1,653m이다) 이상에 위치한 대피소가 겨울에도 따뜻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전기를 쓴다는 이야기이다. 국립공원공단 관리자 중에는 ‘상전(국립공원 밖에서 생산된 전기는 전선을 따라 대피소까지 올라간다)이니 무방하지 않냐’는 분도 있지만 국립공원 안이건 밖이건 전기를 생산하려면 화석연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국립공원 대피소가 ‘대피소’라는 특성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기대하지만, 상황은 거꾸로 가는 듯하다. 올해 지리산사람들은 지리산국립공원 대피소 전수조사를 하였다. 마지막 조사는 노고단대피소였는데, 정말 놀랄 만한 대피소가 등장했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노고단대피소는 예전 대피소가 ‘내진등급 D’로 평가되어 철거하고 다시 지었다고 알고 있다. 나는 대피소 에너지에 관심이 많기에 다른 것은 몰라도 대피소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는 100% 재생에너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고단대피소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상전도 있지만 재생에너지만으로도 운영 가능하다고 하였다.
하룻밤을 노고단대피소에서 지낸 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노고단대피소는 요즘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한 건축물이었다. 국립공원의 여느 대피소와는 다르게 개인 방(옆 사람과 차단된)이 있고, 난방을 개인이 알아서 할 수 있으며, ‘저녁 8시 소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개인 방에서는 전등을 켤 수 있다. 게다가 취사장에는 콘센트가 있어 전기쿠커로 물을 끓이는 분도 있었다.
↑노고단대피소 시설 (개인용 난방시설, 개인 전등, 취사장 콘센트)
노고단대피소의 이런저런 시설을 경험하고 나니 건물에 붙여놓은 노고단‘대피소’라는 글씨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노고단은 성삼재에서 1시간이면 걸어갈 수 있고, 위급한 상황이면 차도 운행될 수 있으니 ‘대피소가 꼭 필요한 곳일까?’란 생각도 들었다. 국립공원 시설이라 해서 불편하고, 옹색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대피소’가 아닌 시설을 왜 대피소라 했을까도 궁금해졌다. 이러다가 노고단대피소가 기준이 되어 다른 대피소도 이렇게 바뀌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간판에서 ‘대피소’를 떼어야 할 것 같았다.
↑ 전기가 들어온 노고단대피소 간판
이에 대해 의문을 갖는 나에게 국립공원공단 직원 한 분은 ‘사람들이 엄청 좋아해요. 다른 대피소도 그렇게 바뀔 거예요.’라고 한다. ‘진짜요?’ 그러고 보니 로터리대피소를 신축하던데 거기도 이렇게 바뀌는 걸까?
❚ 참고자료
『2024 국립공원 기본통계』(2023.12.31.일 기준),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공단 누리집』 (https://www.knps.or.kr)
『연합뉴스』, “1924년 설립 국내 최초 산장 '백운대피소' 존치한다,” 2017.5.2.일자.
「자연공원법 시행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