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0-08(목)
 

봄비가 내렸다. 귀퉁이에 쌓여 있던 마지막 눈덩이들이 겨우내 있었던 일들을 지우듯 사라져갔다. 

수현은 마당에 나와 떨어진 낙엽과 눈을 치웠다. 이제 다시 농사를 시작해야 했다. 

수현은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작년에 준비했던 볍씨를 소독해야 하고, 모판에 흙을 채워야 하고, 벼를 키우고 

또 논을 갈고 편 다음 모를 심으면 되는, 정확한 순서가 있고 거기에 맞춰 일을 하면 결과가 나오는 일이었다. 

이렇게 고민 없이 순서에 따라 일이 진행되는 농사가 좋았다.


병충해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안 되는 일은 포기하면 되는 것이었다. 

수현이 하고 있는 유기농 벼농사는 쉬우면서 어려웠다. 풀을 잡기 위해 우렁이를 넣었고 

우렁이들은 벼와 풀을 구분하는 영특함을 가져 스스로 풀만 골라 먹었다.


논 농사의 핵심은 제초였다. 벼와 풀은 농사를 시작했던 과거부터 경쟁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풀을 제거해야 벼는 맘껏 포기를 불리고 풍성한 이삭을 만들어 낸다. 

제초제를 사용하면 쉽지만 수현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렁이가 하지 못하면 수현이 풀을 뽑았다.


부드러운 흙을 밟고 풀을 뽑는 일도 수현에게는 땅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다. 

벼와 피는 무척 닮았다. 어려서 어머니는 수현에게 벼와 피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수현아, 피 뿌리는 붉고 벼와 피를 만져보며 피는 미끈해. 알았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벼를 심으면 벼 사이로 바람이 충분히 소통했고 병충해는 줄었다. 

어떤 해는 한 번도 친환경 농약을 치지 않았는데도 수확이 충분했고, 어떤 해는 수확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돈을 써야 할 것이 없었다. 모든 농사는 오직 자신의 몸으로 해결했다.


아버지 석태가 30년 전에 구입한 경운기 한 대가 수현의 유일한 농기계였다.

봄 햇살이 따스해지자 수현은 경운기에 냉각수를 채우고 시동을 걸었다.

끼릭 끼릭 텅 텅 텅 터텅텅…


시동이 걸리자 수현은 경운기를 몰고 논으로 향했다. 넓고 넓은 평야에 한 점으로 보이는 아버지가 물려준 논이 보였다.

수현은 경운기를 몰고 갔다. 익숙하게 경운기 바퀴를 쇠로 바꾸었다. 

그리고 트레일러를 분리하고 쟁기를 달았다.


이른 봄 끝없이 펼쳐진 평야엔 수현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현은 익숙한 솜씨로 논을 갈아엎었다. 

녹이 슬어 있던 보습은 흙과 만나 어느새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수현의 등 뒤로 아침 해가 떠올랐다. 등이 따스했다. 수현의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났다. 

봄볕처럼 따스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손길이 생각났다.


어느 해 수현은 경운기를 운전하다 고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도 봄이었고 모판에 채울 흙을 골랐던 날이었다. 하루 종일 붉은 황토를 체로 걸렀다.


그 흙을 경운기에 가득 싣고 수현은 집으로 향했다.

 수현은 아버지와 막걸리를 한 잔 했고 수현은 취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취했고 경운기 운전은 수현이 했다.


수로를 따라 가다가 경운기 손잡이를 놓쳤고 경운기는 휙 돌아 수로로 돌진했다. 

다행히 수현은 경운기에서 뛰어내렸고 수로에는 다행히 물이 없었다. 

아직 이른 봄이었고 논에 물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었다. 

수현 뒤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석태는 자전거를 버리고 달려왔다.


“수현아 괜찮아!”

“아.. 네. 아버지 죄송해요.”

“하루 종일 일했는데..”

“아니다.”

석태는 수로에 내려가 경운기 엔진을 껐다. 

그리고 동네 트랙터를 빌려 경운기를 꺼냈다. 

다행히 경운기는 트레일러를 연결하는 부위가 파손되었을 뿐 큰 고장은 없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랬잖아…. 급할수록 천천히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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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아버지에게 경운기 운전을 배웠다. 

“수현아 천천히. 빨리 하려고 하면 다친다니까…. 

천천히 가.. 천천히 해봐..” 아버지는 항상 수현에게 천천히 하라고 했다. 

급하면 돌아가라고 수현의 아버지는 말했다.


아버지는 급하면 돌아가라 했지만 아버지는 급하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도 급할 때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수현은 이제 급할 것도 서둘러 돌아갈 곳도 없었다. 

풀이 가득했던 논은 쟁기가 지나가자 뿌리째 엎어졌다.


수현은 오래전 자신이 세상을 갈아엎는 쟁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쟁기가 되지 못했다. 날카로운 보습도 되지 못했다. 

생각이 많아지자 이랑은 삐뚤어졌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넘어가자 수현은 경운기 쇠바퀴를 고무바퀴로 바꾸었다. 

수현은 다시 경운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수현아!” 현주가 집 앞에 수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무슨 일이야…”

“아니 이 동네 지나가는 길에 잠시 들렀어

. 너 혼자 산다며… 반찬은 있어.. 이거 집에 남는 반찬이 있어서 너 먹으라고.”

수현은 경운기에서 내려 현주가 주는 반찬을 받았다.

“어.. 그래 고맙다.”


현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차를 타고 돌아갔다. 수현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현주가 준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 솜씨가 좋았다.


이후로 현주는 가끔 수현을 찾았다. 수현은 현주가 오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현주는 수현의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수현과 현주가 함께 살기 시작하고 두 해가 지나자 현주는 수현의 아이를 낳았다. 

수현은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하지만 수현은 현주와 결혼하지 않았고, 

현주는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할 때 수현을 떠났다.


집에 들어와 살 때도 떠날 때도 수현은 현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주는 그런 수현을 참을 수 없었다.


현주는 자신을, 수현을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 스스로 들어온 것처럼 스스로 수현의 집을 떠났다.


“아이는 당신이 키워….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미안해….

” 현주는 그 말을 남기고 수현이 살던 도시를 떠났다.


수현은 혼자 아이를 키웠다. 수현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싫지 않았다.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잠을 재우고 하루하루가 아이의 생활에 맞춰야 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수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몇 번 지나고 수현의 아이는 학교에 들어갔다. 

시골 학교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수현의 아이 수지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1학년에 아이가 3명뿐이었다. 

수현은 어느새 40대가 되었다.


나경의 아이는 사회성이 없었다. 나경은 자신의 아이가 일반 학교에서 다닐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아니 적어도 일반 학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나경의 아이를 받아주는 곳은 많이 없었다. 

나경의 아이는 매년 이 학교 저 학교를 전전했다.


다행히 나경의 아이는 많이 좋아졌다. 나경이 보기엔 충분했다. 

스스로 대소변을 처리했고 한글을 알고 오랜 언어치료를 통해 말도 제법 잘했다. 

눈치 없는 아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학교가 바라보는 나경의 아이는 일반 아이와는 전혀 다른 아이였다.


나경의 아이는 특수반에서 공부했다.

“특수반은 뭐야 엄마….”

“어. 특별한 아이들이 있는 곳이야.”

“나는 왜 아이들과 하루 종일 수업하지를 않아? 나는 왜 달라?”


나경의 아이 석민이 이런 질문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나경의 아이는 질문하지 않았다. 

특수반에 자신이 왜 있는지, 왜 자신은 다른 아이들과 다른지 관심이 없었다. 

자신을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았다.


비교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아이를 통해 배우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웃고 있어도 따라 웃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이 울고 있어도 따라 울지 않았다.


“엄마 아파요? 엄마 힘들어요?”라는 말을 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석민이 너는 참 편하겠다. 

세상일에 이렇게 무관심하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있으니….”

나경은 매일매일 지쳐갔다. 아픈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일반 아이를 키우는 것에 비해 열 배 아니 그 이상 힘든 일이었다.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30대 엄마가 아이와 함께 투신자살을 했습니다.”라는 기사가 뉴스에 나올 때 

나경은 그 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나경도 석민이가 말을 하지 못해 병원에 가서 발달장애가 있다는 진단… 

아니 확정을 받던 날, 

나경도 아이와 함께 도쿄 오다이바 바다에 빠져 죽어 버릴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처음 나경의 아버지가 석민을 만났을 때 나경의 아버지는 석민이를 영진에게 주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었다. 

영진이 맘에 들지 않았던 나경의 아버지는 석민이도 싫어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더 싫었고 석민이가 하는 행동 모두가 맘에 들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봐도 웃지도 않았고 인사도 하지 않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발달장애는 천형과 같은 것인가? 영원히 정상 아이들과 격차가 줄여지지 않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 하나를 해결하면 늘 열 가지 문제가 앞에 있는 것이라고 나경은 생각했다.


일반 아이들이 직행버스라면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자전거도 되지 못했다. 

달리기를 할 때 걸었고 아이들이 노래를 할 때 의미 없는 소리를 질렀다.


나경은 그래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간극이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을 거두지 않았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는 일반 아이들과 같아질 날이 올 거야!!”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경의 아이가 11살이 될 때 서울의 

그 많은 학교 어디에서도 나경의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석민이 어머님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민원이 들어와서요.”

“이제 저학년이 아니고 고학년이고… 이제 아이들 공부도 해야 하고요.”

“석민이가 수업 시간에 이상한 질문을 해서 수업 진행이 안 됩니다.”

“석민이가. 석민이가……”


나경은 더 이상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석민이 갈 수 있는 학교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해 봄 나경은 수현이 있는 시골로 내려왔다. 나경이 아는 시골은 수현이 살고 있던 동네뿐이었다. 

수현을 만나러 여러 번 왔었고 익숙했다.


교육청에서 소개해 준 작은 시골 학교에 갔을 때 나경은 수현을 닮은 아이를 봤다.


“어머님 이 학교엔 5학년이 두 명뿐이에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네.”

“우리 아이도 괜찮아요?”라고 나경이 물었을 때 교사는 짧게 말했다.

“그럼요.”

“괜찮아요.”

“저희가 잘 돌볼게요.”


읍에 아파트를 구입했다. 작은 소읍이었고

 마트라고는 하나로마트가 유일했다. 

걸어서 20분이면 끝에서 끝에 도착했다. 

나경은 이 작은 시골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길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이 도시에 나경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아이를 키우는 것뿐이었다.


“석민이 어머니 혹시 학교 운영위원을 해주실 수 있나요?”

“혹시 학부모회를 해주실 수 있나요?”

나경에게 걸려 오는 전화는 도시에서는 석민이가 문제가 있다는 

전화에서 학교를 위해 나경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는 전화로 바뀌었다.


나경은 매일 학교에 갔고 학교 가는 일이 나경의 일이 되었다. 

가끔은 학교에서 장애인 인식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일본어를 교육하거나 피아노를 알려주기도 했다. 

나경은 점점 활기를 얻었다.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가 아닌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석민이도 시골에 친구들이 생겼다. 축구를 하면 아무도 하지 않는 골키퍼를 했고 

곧잘 공을 막기도 했다. 아이들이 부족한 곳에서 석민이도 역할이 주어졌다.


나경은 그런 석민을 보며 자신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경은 스스로 가두고 살았던 희망이나 행복을 다시 꿈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순간 눈물이 흘렀다.


“엄마 왜 울어?”

석민이 엄마에게 그 말을 꺼냈을 때 나경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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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키즈의 생애 16편 “특수반은 뭐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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