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9-0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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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1일관덕정에서(제주애국인민) 

/130X160cm/아크릴물감,알루미늄판,못,콘테,연필/2023

 

  

 

1946년 10.1대구 항쟁이 폭발하면서 미군정은 이튿날인 10월 2일 오후 7시 대구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미군을 동원해서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군 개입으로 대구항쟁은 경산, 성주, 영천 등으로 확대되었다. 미군정의 행정에 분노한 경북도민들은 미군정과 계속 충돌했고 이후 경북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1946년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 열기는 1947년 3월 1일 제주로 이어졌다. 제주시민들은 삼일절 제28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관덕정에 모여 “통일을 먼저 이루자! 단선단정을 반대한다! 그리고 제주 중학생들은 양과자 수입 막아 식민지화를 막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했다. 가두시위 도중 어린아이가 말발굽에 치였는데 경찰은 아이를 두고 가버린다. 이를 본 시위 군중들은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경찰은 이 군중을 보고 시위대에 그대로 발포해 버려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시민들은 이날 발포 사건에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민.관 총파업을 벌여 투쟁한다. 미군정은 총파업을 강경 대응하며 500명을 체포하고 2,500명을 고문과 구타를 했다. 제주 민심은 들끓어 다음 해인 1948년 4.3일 제주 무장대는 봉기를 시작한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14연대 군인들도 이러한 제주도민들을 애국인민으로 보았고 학살할 수 없다며 항명하였다. 작품에서 나는 4.3항쟁의 시작점으로 내 분신을 보내 제주 애국인민들을 응원한다. 당신들은 애국인민이다!

 

  

 


박금만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라 세종대학교 미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과 고흥, 부산과 여수 등의 개인전 및 초대전에 참여했고, 아트페어를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 소장처로는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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