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 지리산에서 온 편지 


지금은 사라진 하늘 아래 첫 동네


                                                          박 두 규(본지 편집인)


  지리산 북서면 노고단 뒷자락에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심원마을이 있었다지금은 뱀사골 초입인 반선마을에서 노고단 성삼재로 해서 구례로 넘어가는 도로로 갈 수 있지만 오래 전에는 이 반선마을에서 계곡을 따라 노고단 쪽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심원마을을 만날 수 있었다그 당시만 해도 참으로 궁벽한 곳이어서 집이 서너 채밖에 없었다하룻밤을 청하면 자연스럽게 민박이 되었는데 돈 받는 걸 어색해 하며 미안해 할 정도였다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는 골짜기였다처음에는 약초꾼들이 약초를 채취하며 임시로 거처하다가 겨울이 되면 철수하곤 하던 곳이었는데 차츰 나름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와 자리 잡게 된 곳이었다


  나는 겨울 등반을 할 때는 피아골로 해서 반야봉에 올라 심원으로 내려가곤 했는데 그 쪽이 지리산 북사면이어서 눈이 녹지 않고 많이 쌓여 있기 때문에 그나마 구례에서는 겨울 지리산의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등산로였기 때문이다(지금은 폐쇄되어 갈 수 없다). 그 때 심원에 가면 묵는 곳이 민선생 댁이었다(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그 삶을 존중하는 의미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당시 민선생님은 60대 초로의 나이였는데 본디 강원도 출신이라고 했다젊은 시절에는 김대중씨가 강원도에서 활동할 때 그 밑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아무튼 그도 군사정권의 엄혹한 시절을 보내며 이런저런 세파에 휘둘리다가 어찌어찌하여 이곳까지 들어와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창식이라는 이름의 나와 동갑인 아들이 하나 있었다당시 우리는 30대 중후반 무렵이었는데 그는 정신지체가 있어서 초등학생 수준의 나이에 머물러 있었다작은 키에 볼살이 붙어 있어 어려 보였으나 수염이 까칠까칠하게 돋아 나이를 숨길 수는 없었다나는 참으로 순진무구한 그와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그리고 심원마을을 갈 때면 반드시 챙기는 것이 있었다창식이에게 줄 두툼한 사탕 봉지를 맨 먼저 챙기고 민선생님에게 드릴 미역이며 말린 홍합새우 등을 바리바리 싸서 가져가곤 했다창식이는 내가 가면 반가움의 첫인사가 사탕 줘!였다그리고 심원은 산중인데다 당시는 차도 없어서 저자거리에 나오기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그래서 민선생님에게는 바다에서 나는 건어물 같은 것이 최고의 선물이었다.


  창식이와 나는 아궁이에 같이 앉아 불을 때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주로 그가 궁금해 하는 것은 바깥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도시의 목욕탕 이야기며 백화점 이야기 등을 하면 귀가 쫑긋해져 들었고창식이를 놀리려고 도시의 아가씨들 이야기를 하면 그저 평범한 이야기인데도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하곤 했다창식이는 군불을 듬뿍 땐 후 꼭 내 방에 와서 같이 잤는데 사람이 그리웠는지 수염이 거친 얼굴을 내 볼에 비비며 잠들곤 했다창식이의 꿈은 부산에 한번 가는 것이었다어렸을 때 부산을 다녀온 듯 했는데 그 기억 하나가 지금껏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내가 본 가장 순수한 영혼 하나가 그 깊은 심원마을에 있었다그리고 그 맑은 영혼이 그 나이토록 꿈꾸어 온 것이 부산에 한번 다녀오는 것이라니그래어쩌면 그것이 인생인 지도 모른다평생 부산에 한번 다녀오는 그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 간절함이 너무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다사는 일이 저리도 단순한 것인데저리도 소박한 것인데 우리는 욕망에 휘둘려 온갖 걱정과 두려움을 이고지고 살며 좌절하고 절망하며 슬퍼하는지그러구러 나이를 먹다 문득 돌아보면 찰나의 한 생인 것을인생을 걸만한 간절함도 없이 이런저런 손익계산이나 하며 늙어가는 것인가


  내 머릿속에는 지금도 창식이네 집이 있던 심원의 사계절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나무들이 일제히 연초록 새 잎을 올려 만드는 젊고 푸른 세상무성한 녹음의 그늘을 끊임없이 흐르는 힘찬 물소리의 벅찬 생명력붉게 물든 환희의 시간들순백의 고요에 묻혀 끝없이 깊어가는 구도자의 풍모그렇게 지능선의 봉우리들이 첩첩이 이어져 주능선으로 벋어 있는 심원의 지리산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구례에서 천은사를 지나 성삼재에 이르고재를 넘어 심원을 거쳐 뱀사골에 이르는지리산을 남북으로 횡단하는 도로가 생기면서 심원은 관광지가 되어 갔다번듯한 숙박시설이 생기고 산천어 횟집에 노래방까지 들어서는 어느 즈음 심원을 찾았을 때 창식이네는 이미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어디로 갔을까창식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부산으로 갔을까아니면 또 다른 하늘아래 첫 동네를 찾아 갔을까


  마을에 관광객과 피서객들이 붐비기 시작하면서 심원의 수려한 경관은 훼손되어 갔고 환경오염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자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이나 지리산 사람들’ 같은 환경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사실 심원마을은 지리산 국립공원 지역의 깊은 곳에 있어서 현행법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마을이었다하지만 약초꾼들의 임시 거처로 사용될 때만 해도 큰 문제가 없었으나 지금에 와서 지리산 깊은 곳에 관광지와 같은 마을이 형성되고 갈수록 도시형으로 발전한다면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었다해가 바뀔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니 지금이라도 어떤 조치가 필요해진 것이다그래서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시민단체들의 오랜 노력 끝에 정착한 주민들을 설득하고 보상하며 이주시키기에 이르렀고 현재는 마을이 완전히 폐쇄되고 다시 자연으로 복구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끝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거대한 바위나 산과 바다 또한 끊임없이 그 안과 밖에서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다우주의 모든 행성들과 우주 자체도 쉼 없이 변화하고 있으니 변화하는 질서 속에서 예외인 것이 어디 있으랴작은 씨앗 하나가 집채만한 느티나무로 변하고 또 언젠가는 소멸하는 것이니 사람의 나고 죽음 또한 그렇지 않은가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어서 인생이 무상하다는 말이 오히려 무색하다이러한 진리를 나의 현실로 조금만 당겨보면 찰나의 시간 속에서 나는 지금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질투하고 분노하고 평생 돈을 쫒아 다니며 마감하는 인생이 삶의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리산의 심원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다조금 더 세월이 흐르면 언제 이 곳에 마을이 있었으며 순진무구한 노총각 창식이가 군불을 때던 곳이라고 하겠는가우리네 삶도 그러할 것이다지금 현재야말로 아름다운 추억인 것이지 먼 훗날 누가 있어 나를 호명하며 기억할 것인가이 아름다운 세상기적 같은 삶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전체댓글 0

  • 74297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지금은 사라진 하늘 아래 첫 동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