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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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야기2- 친구

 

  지리산을 늘 함께 오르던 친구가 있었다. 세상의 모든 빛 중에 저무는 빛이 가장 강한 빛이라는 것을 안 것은 친구의 죽음 때문이었다. 노을이 지는 동안 능선들이 모두 침묵 속에 숙연해지는 것도 저무는 빛으로부터 시작되는 시간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화려한 도시의 빌딩 사이로 저무는 강한 빛을 보며 문득문득 외로워지는 것도 까닭모를 그리움도 모두 여기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친구가 죽고 나는 혼자서 산에 다녔다. 산정의 차가운 샘물을 마시면 간절한 마음이 먼저 목젖을 적셨고 구상나무에 눈이 가득 내리면 눈밭에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술잔을 나누던 친구가 생각났다. 그를 잃고 여느 짐승들처럼 겨울잠에 들고 싶었고 스스로도 잊고 혹독한 바람에도 깨어나지 않는 오랜 침묵이 되고 싶었다. 무심한 계절이 숱하게 지나가고 저물어 가는 산들의 어둠 사이로 그와 함께 다녔던 길 하나가 살아남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홀로 빛나는 것들에는 언제나 슬픔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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