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4(금)
 

한신으로 들다

 

사람들은 나무를 참 좋아한다. 지리산에서 나무를 만나고 싶다던 누군가가 지난여름에 뜬금없이 목동반을 만들자고 한다. ‘목요일은 나무 동무를 줄여서 목동이란다. 이름이 귀엽다. 매주 목요일마다 숲으로 깃들면 좋으련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만 들기로 했다.

20219월 구례를 시작으로 하동, 산청, 함양, 남원 방향으로 매월 지리산을 돌아보기로 했다. 12월은 함양 한신계곡으로 들었다. 한신은 깊고 넓은 계곡으로 인해 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이란다.

 

겨울 숲의 나무는 잎이 없어 여간해서는 알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겨울에 나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뭇잎이 없는 나무는 일단 눈높이에서 보이는 줄기로 시선이 간다(줄기가 벗겨지는지, 갈라지는지, 모양, 색깔, 상처에 흐른 수액의 색깔, 껍질눈의 모양 등을 봐야 한다). 그리고는 시선을 올려 잔가지(나무초리)를 본다. 나무초리가 마주나는지 어긋나는지고 봐야 한다. 그리고 지난가을의 열매가 있는지 찾아본다. 겨울눈도 들여다봐야 한다.(겨울눈과 나무초리에 털이 있는지, 맨눈인지 비늘로 쌓여있는지, 비늘 조각은 몇 쌍인지, 모양과 크기, 색깔도 살펴야 한다.) 여전히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나무를 볼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위아래로 훑어보면 기분 나빠하는데, 나무는 위아래로 훑어봐야 한다라고 항상 강조한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나무마다 찬찬히 훑어보고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다.

고로쇠나무, 고욤나무, 산뽕나무,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을 읽어본다.

걸음이 느리다. 그러다 보니 한신계곡 입구에서 벌써 간식을 풀었다. 마침 지나가는 등산객이 웃는다. 시작부터 먹고 가는 모습이 재밌어 보이기도 보인듯하다.

느리게 나아가다 보니 해가 들지 않는 계곡은 더욱 춥다. 손과 발이 시리다. 속도를 내어 걸어본다. 재촉하는 걸음에도 계속 나무는 눈에 들어온다. 층층나무와 곰의말채나무를 비교해본다. 가로로 껍질눈을 가진 산벚나무와 개회나무도 비교해본다. 지각변동을 하듯 껍질이 벗겨지는 박달나무, 아주 얇게 그물 모양으로 껍질이 벗겨지는 피나무를 본다. 그리고 한신계곡에서 가장 많은 나무인 서어나무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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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나무의 이름은 유래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자로 서목(西木)이라 하여 서쪽 나무라는 의미란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다른 유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의 시선을 남원시 운봉읍 행정마을의 마을 숲으로 서 있는 서어나무숲에 머문다.

우리나라의 마을숲은 풍수지리학으로 보통 설명이 된다. ‘마을을 보호하는 숲이란 뜻의 비보림(裨補林)은 마을의 액과 재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물고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어부림(魚付林), 마을의 기운을 담아주는 역할을 하는 수구막이 등이 있다.

이중 행정마을의 서어나무 마을숲은 마을의 액을 막기 위해 만든 숲이다. 키가 20~30m에 달하는 서어나무는 밝은 색의 껍질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위용의 서어나무는 마을로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쉬이 막아낼 듯싶다. 서어나무는 우리 문화에서 실용적으로 사용되는 곳이 없다. 불땀이 없어 장작으로는 매력이 없고 껍질이 얇아서 표고목으로 활용도가 높지 않다. 줄기가 곧지 않아 목재나 가구를 만드는 용도로도 쓰지 않는다.

하지만 행정마을의 마을숲처럼 마을의 중요한 자리에 서 있는 모습으로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냥 서 있으면 된다. ‘서 있으면 되는 나무라는 뜻에서 서나무가 되고 지금은 서어나무라 불리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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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나 가구재로도 사용이 안 되는 이유는 울퉁불퉁한 줄기가 한몫을 한다. 그 줄기가 아주 특이해서 사람들은 근육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왜 이런 줄기를 가지고 있을까?

줄기의 굴곡은 양분이 모여서 생긴 것이다. 양분은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은 힘을 준 모양을 말해준다. 커다란 나무의 줄기가 굴곡이 생기려면 어린 나무 시절부터 울퉁불퉁하게 힘을 주던 것이 누적되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서어나무는 숲이 변해가는 천이과정에서 마지막 단계에 들어오는 나무이다. 서어나무가 우점한 숲은 안정된 숲이라는 말이다. 서어나무는 숲에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200년의 천수를 누린다.

그러나 숲의 주인으로 위풍당당한 서어나무는 사실 겁쟁이 나무였다. 다른 나무에는 별거 아닌 바람에도 어린 서어나무는 두려워서 반응을 했다. 이리저리 불어오는 바람마다 에너지를 쓰면서 줄기의 굴곡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위풍당당한 모습에는 두려움에 떨던 어린 시절이 숨어있었다.

 

이제 2022년 임인년이 시작되었다. 지난해처럼 우리는 한 해를 보낼 것이다. 2021년이 그랬듯이 어떤 상황은 나를 힘들게 할 것이고, 또 어떤 관계는 나에게 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 관계, 상황들이 삶의 근육을 만들어준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날들을 지나왔지만 또 어떤 바람에 흔들릴지도 모르는 시간을 살아갈 터이다.

수 십 년을 버텨 근육이 가득한 서어나무는 이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까? 두렵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내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살아내는 것. 그것이 삶일 것이다. 서어나무와 다르지 않은 나의 삶.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별에도, 서어나무에도, 그리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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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3

  • 37372
최문옥

그냥 서있기만 해도된다
괜찮네요
그냥 옆에 버티고 있는 의지가 되는 사람처럼
그렇게~~~
호빵 같은 글^^

댓글댓글 (0)
깊은강

나무도 꽃도 잘 몰라유
근데, 지리산에 대해선 조금 알아유...
못난이님이
"한신은 깊고 넓은 계곡으로 인해 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이라고 쓴 글을 보니
이렇게 산과 숲을 많이 다니는 사람도..잘 모를 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유
인터넷의 이런저런 자료엔
한신계곡 지명의 유래로
여름에 한기를 느껴서..
계곡의 물이 차고 험하며 굽이치는 곳이 많아 한심해서..
혹은, 한국전쟁때 한신 장군이 빨치산을 토벌한 곳이여서...라는 설들이 올라와 있네유...아닌듯해유

한신계곡 위엔 세석평전이 있고, 그 입구에 커다란 바위가 두 개 있는데,
이름이 한싱이바우(한신바위)와 운짱바우(운장바위)여서...한신계곡이란 이름을 얻은 듯 하네유..
그런 이름이 바위에 붙은 연유는...긴데...예전부터 높은 산 깊은 계곡에 공부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사람들이 중국역사의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습성이 있었나봐유...

사족이지만..
한신계곡 등산로는 1974년도 마천 산악회에서 약 80만원을 들여 개척한 코스여유
그전에는 거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계곡이었나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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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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