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먹는 시간
김은숙
쌀밥 먹는 시간
- 김은숙
경기도 여주땅을 지나다가
쌀밥집이라는 상호를 처음 보았는데
쌀밥이라는 낯익은 어휘가
한 집의 주인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 게 문득 새로워
차림표에 의젓하게 자리한 쌀밥 한그릇 반가이 청했는데
보통의 이런저런 반찬으로 차려진 밥상의 중심에
마지막으로 올라온 쌀밥 한 그릇
한참 동안 밥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가입 안 가득 담아 넣는 한 숟가락의 밥
사십여 년 지탱해온 내 몸의 모든 것이
때마다 떠 넣은 밥숟가락에 힘 입은 것이어서
내 디뎌온 발자국 하나하나가
이 쌀 한 톨 한 톨의 힘이 아닌 것이 없어서
앞에 놓인 쌀밥 한 그릇 한 숟가락의 밥이
새삼 가슴 뜨겁게 뭉클해지는데
뿌리 끝 흔들리는 절망에 닿아서도 서로를 부축하여
굳건히 어깨를 걸어온 벼들이 벌판 가득 일렁이고
불어오는 바람도 넉넉히 품은 서늘한 깊이가
고단한 일상의 허기를 채우는 이 땅의 가을
입안 가득 쌀밥을 꼭꼭 씹어 삼키며
한 톨 한 톨의 쌀알들이 뜨겁게 몸을 데우는 시간
영혼의 허기도 비로소 삭아들며 푸근해지고
한 그릇의 밥 앞에서 숙연해지는 가을 한나절
생활에 지치고 발걸음 무거운 이들에게도 나도
더운 김 솔솔 나는 뜨거운 밥 한 그릇 지어내고 싶다
-분홍노루귀 / 사진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