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쌀밥 먹는 시간

- 김은숙 

 

경기도 여주땅을 지나다가

쌀밥집이라는 상호를 처음 보았는데

쌀밥이라는 낯익은 어휘가

한 집의 주인으로 반듯하게 서 있는 게 문득 새로워

차림표에 의젓하게 자리한 쌀밥 한그릇 반가이 청했는데

 

보통의 이런저런 반찬으로 차려진 밥상의 중심에

마지막으로 올라온 쌀밥 한 그릇

한참 동안 밥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다가입 안 가득 담아 넣는 한 숟가락의 밥

사십여 년 지탱해온 내 몸의 모든 것이

때마다 떠 넣은 밥숟가락에 힘 입은 것이어서

내 디뎌온 발자국 하나하나가

이 쌀 한 톨 한 톨의 힘이 아닌 것이 없어서 

앞에 놓인 쌀밥 한 그릇 한 숟가락의 밥이

새삼 가슴 뜨겁게 뭉클해지는데

 

뿌리 끝 흔들리는 절망에 닿아서도 서로를 부축하여

굳건히 어깨를 걸어온 벼들이 벌판 가득 일렁이고

불어오는 바람도 넉넉히 품은 서늘한 깊이가

고단한 일상의 허기를 채우는 이 땅의 가을

 

입안 가득 쌀밥을 꼭꼭 씹어 삼키며

한 톨 한 톨의 쌀알들이 뜨겁게 몸을 데우는 시간

영혼의 허기도 비로소 삭아들며 푸근해지고

한 그릇의 밥 앞에서 숙연해지는 가을 한나절

생활에 지치고 발걸음 무거운 이들에게도 나도

더운 김 솔솔 나는 뜨거운 밥 한 그릇 지어내고 싶다

 

사본 -C39A8614.jpg

-분홍노루귀 / 사진 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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